문서설교 - 성도의 교제적인 생활 (에베소서 4:25~32)
성도의 교제적인 생활
- 에베소서 4:25~32 -
서 론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된 성도의 생활에 있어서 교제적인 생활이 있으므로 구속의 날까지 교회는 활동하는 동시에 승리를 이루는 열매 있는 성도가 될 것이다. 성도는 독립적인 생활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무의 한 가지가 독립할 수 없고, 몸의 지체의 한 부분이 독립할 수가 없는 것과 같은 교제적인 인연을 가진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아시아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썼던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성도의 교제적인 생활이냐 하는데 대하여 본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1. 참된 것을 말하여야 된다 (25)
만일 우리 성도가 성도를 속인다는 것은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해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도의 교제는 어떤 물질이나 또는 사업적인 것에 국한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한 양심적인 교제니 참이라는 것을 떠나서는 안 될 것이다.
2. 분을 내어도 해지도록 품지 말 것 (26)
우리는 신이 아니요, 사람이니 만큼 혹 감정 날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분을 오래 품고 있을 때 성도의 교제를 깨지게 하는 마귀는 틈을 타는 것이다. 무엇이나 우리 성도의 목적은 서로 합심해서 마귀와 싸워 이기라는 것을 목적한 것이니 이해를 막론하고 서로 오해를 풀고 속히 합심되기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성도의 교제는 마귀에게 파탄을 당할 것이다.
3. 손으로 수고하는 일 (28)
우리는 서로 수고하는 봉사 없이 성도의 교제는 있을 수가 없다. 만일 어떤 신자가 자기는 일하지 않고 형제의 덕을 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지체된 정신을 떠났다고 보게 된다. 우리는 천국에 보물을 쌓아 두고 생활하는 정신에서 각자가 노력하며 남을 돕고자 하는 정신에서 형제의 교제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4. 서로 덕을 세우기 위하여 말할 것 (29)
우리는 말할 때에 성도의 위신을 세워 주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다. 만일 형제에게 누명을 씌우는 말을 하기를 좋아한다면 정신병자가 자기 몸을 망치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형제에게 은혜가 되도록 해보려는 목적 밑에서 말하는 것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5. 성신을 근심케 말 것 (30)
성도의 교제란 성령을 통해서 영적으로 되는 교제니 아무리 서로 육적으로는 친분이 있게 나가도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이 있을 때는 성도적인 영적 교제는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육에 속한 교제가 아니요, 성령에 속한 교제이니 성령을 근심케 하는 자와 사귀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6. 서로 불쌍히 보고 용서해 주는 것이다 (32)
예를 들면 어느 지체가 괴로울 때 그것 하나를 위하여 온 몸이 고통을 당하게 될 때 전력을 다하여 그 지체의 괴롭게 하는 것을 없애 보려고 하는 것이 지체된 자의 자동적인 행동이다. 이와 같이 어떤 형제가 죄를 짓고 괴로워 할 때에 불쌍히 보고 서로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 교제를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완전한 몸이 없이 싸울 수도 없고 완전한 몸 없이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성도의 지체적인 완전 교제 없이 교회에 들어오는 마귀를 이길 수 없다. 또는 목적지가 되는 새 시대를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니 성도의 교제적인 생활로 이루어진 교제는 신령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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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자식이 될까 조심하자
- 이사야 1:2∼20 -
이사야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의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도덕적으로는 부모를 거역하는 일이요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을 받고도 짐짓 거역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를 해코지 하는 마귀를 거역하는 것은 의가 되는 것이요, 우리에게 복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멸망 받을 죄라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일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마음이 멀어지는 것이다 (4)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하나님과 마음이 멀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마음이 태만해지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무엇을 한다 하여도 중심보는 하나님은 더 가증히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시되 가까이 하기를 기뻐하시고, 고쳐주기를 기뻐하시고 ,복을 주기를 기뻐하신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멀어질 적에 슬퍼하는 것은 주고 싶은 마음이 불타오르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가슴에 빚어진 젖이 있는데 이것을 주고픈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잃고 슬퍼하듯이, 하나님은 충만한 은혜를 가지시고 주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 없어서 마음이 멀어진 자녀를 향하여 슬퍼하는 경고를 하셨는데, 그것이 이사야서이다.
2. 불탈 것을 슬퍼하신다 (7)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가 불탈 때도 친히 롯의 가정을 찾아 구원하고자 했지만 순종치 않는 롯의 처를 버린 것같이 지금 온 세상이 불탈 수밖에 없는 무서운 환란을 앞에 놓고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을 건지고자하여 아무리 기다리고 참고 있어도 짐짓 순종치 않을 때에, 하나님은 기뻐 심판하심이 아니고 오히려 슬퍼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큰 집에 불이 붙게 되었는데 그 집에 있는 자녀가 도저히 아무것도 모르고 잠이 들어 있다면 슬피 울면서 그 자녀를 그 불에서 건지고자하는 심정을 가질 것은 부모의 사랑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장 슬퍼하는 일은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들이 심령상태가 병들어 피곤해졌고, 상처를 받았고,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 떨어진 것을 볼 때 그대로 있다면 불타는 재앙이 올 때 자기의 자녀도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슬퍼하시는 것이다.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자는 병든 심령을 가진 자라고 보게 된다.
3. 헛된 예배를 드리는 자 (11∼14)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것이 예배가 신령한 일이요 제일 슬퍼하는 것이 예배가 속화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예배를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은혜를 내리기를 기뻐하는 신이시니 예배가 상달될 때에 얼마든지 하나님은 아낌없이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이다. 예배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요, 자기 부족을 깨닫는 예배라면 얼마든지 받으시고 은혜를 내리시므로 예배하는 자들로 만족함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예배하는 시간에 죄를 짓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4. 외식으로 기도하는 자 (15)
기도하는 것은 아무리 말을 많이 하더라도 중심에 사랑이 없다면 그 기도를 오히려 싫어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서 무엇을 요청한다는 것은 오히려 요청하는 것이 더 수치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사람들이 횡설수설한다는 것은 오히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도 더 가증한 일이 될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사랑이 식어진 마음으로 기도를 오래 한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기도를 많이 한다는 바리새교인들을 책망할 때 너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마태복음 6:5).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살피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갚아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제일로 슬퍼하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음이 식어지는 일, 피곤해지는 일, 예배할 때 범죄 하는 일, 죄를 숨기고 기도하는 일, 이러한 무리들은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지만 진노의 날에 하나도 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회개하면 흰 눈 같이 희게 하여 새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하기 위하여 심판의 변론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순종치 않을 때는 원수의 칼에 삼킴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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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복된 생활
- 창세기 1:26∼31, 2:18∼19 -
창세기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요 생명의 근원이요 빛의 자체이시니 인생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복된 생활이 인생에게 있게 하여 복된 생활을 하는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목적을 이루자는 것이 조물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라는 것이다. 이제 조물주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복된 생활을 주신 일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1. 복된 인격 (26∼27)
가장 복된 인격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룬 인격이라고 본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 인격 하나를 바로 가지지 못한다면 모든 일이 다 헛된 것뿐이로되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인격이 있는 자에게는 하나도 허사가 없고 다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인생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활동하는 인격이라는 것은 한 짐승에 불과하다고 계시록 13장에 가르쳤다. 이것은 붉은 용의 도구가 되고 보니 심판의 대상자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은 짐승의 사상의 표를 받지 않고 이긴 자들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을 기독교의 완전한 구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낼 때에 복된 인격을 준 것인데 뱀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믿으므로 복된 인격을 상실한 것을 인간의 타락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종말의 진리를 믿으므로 간교한 뱀의 미혹을 이긴 자는 복된 인격을 다시 찾게되므로써 이루어지는 시대를 완전한 구원이라는 것이다.
2. 복된 사명 (28∼31)
인생이라는 것은 복된 사명을 바로하므로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한 목적이 인생의 복된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창조했기 때문이다. 인생이 복된 사명을 하므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요, 그 목적을 달성할 때 인생은 그 사명을 다했다는 값으로 세세 왕권을 누리기 때문이다.
인생의 사명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자녀를 이 땅에 충만케 하라는 것이니 복된 인격이 복된 사명을 다 할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이루어진 인격을 지면에 충만케 하므로 완전한 영광의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미(美)라는 것은 충만에 있다고 본다. 우리 사명을 가진 자들은 우리의 받은 인격을 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요, 자기와 같은 사람을 많이 번창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라고 본다.
이렇게 되는데는 모든 만물은 사람이 복된 사명을 바로 하므로 말미암아 바로 사용되는 만물이 될 때에 그 만물은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만물은 복된 사명을 위하여 있고 천국의 만물은 사명을 다한 종들의 영광을 위하여 있다(계시록 21:5∼7).
3. 복된 교제 (2:18∼19)
복된 교제라는 것은 돕는 배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물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너는 내 아내요 나는 네 남편이라고 하시었고, 예수님도 당신은 신랑이요 우리를 신부라고 한 것은 복된 교제를 뜻한 것이다. 인간이 아무런 교제없이 홀로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창세기 2:18). 그래서 여자를 낼 때에 남자와 복된 교제를 할 수 있는 인격을 만들어서 남자를 돕게 했던 것이다. 언제나 남자라는 것은 여자의 돕는 일이 없이는 복된 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일이 남자와 여자가 성결한 생활에서 복된 교제가 있으므로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남자에게 큰 사명을 맡기고 여자가 그 사명을 도와 주므로써 완전한 열매를 맺는 일을 하게되고 열매있는 생활이 있으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동시에 그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미(美)라는 것은 돕는 자가 있게 되므로 친밀한 교제를 하게되고 친밀한 교제가 있으므로 아름다운 가정과 아름다운 사회를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 가장 복된 인격을 이룰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고 복된 사명을 맡길 때에 얼마든지 자유롭게 충만해지고 정복하고 다스리면서 살라는 것이며 복된 교제를 하게 할 때에 영, 육간 일체된 관계를 맺으면서 아름다운 만물을 아름답게 사용하고 아름답게 생활하면서 아름답게 길이길이 영광을 누리라는 것이 사람에게 축복한 것이니 이 축복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그 축복을 다시 받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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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는 말씀에 대한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요한계시록 19:10 [개역]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답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모두 '예언의 영'입니다. 그 말씀을 받아 증거하는 종들의 말도 그 영을 받아 대언하는 것이므로 또한 '예언의 영'입니다. 예언하시는 자는 예수님 한 분뿐이시고, 우리 모든 사명자들은 그 예언의 영을 이 세상에 전파하는 대언자에 불과합니다. 진리란 말씀 자체이기 때문에 주님의 예언과 그 증거를 받은 자들의 대언을 통해서만 하늘의 진리가 이 땅에 전파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신령이시고, 그 영이 담긴 글자가 말씀(예언)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모세 5경(율법)은 예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모세의 입을 통해 전하신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모세 5경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이방 민족의 우상을 좇아갔습니다. 이 때 모세 5경(율법)대로 하라고 자기 백성을 쳐서 대언한 자들이 바로 '그 종 선지자들'입니다. 선지자들이 율법대로 행하라고 외친 말들이 그대로 전부 예언서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인 율법을 듣지 않을 때 그것이 더 많은 대언의 분량으로 재해석되어 사람을 통해 외쳐진 것의 총집합이 곧 '예언서'입니다.
그 예언서 중에 일부를 초림주가 오셔서 다 이루셨고(요한복음 19:30), 이제 재림주께서 오실 때 나머지 말씀들이 이루어지면, 흰 말이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시록 6:2) 하신 백마의 두 번 승리가 성취됩니다. 이 진리를 사도요한은 다음과 같은 예언으로 받은 것입니다.
계시록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율법에서 예언서가 나왔고, 예언서 일부분의 성취가 4복음과 편지서로 나타났고, 예언서의 나머지 모든 말씀이 재림 시에 이루어지는데 그 정황을 묵시로 알게 해 준 것이 요한계시록이니, 요한계시록은 대언(예언)의 영의 핵심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는 예수에 대해서 증거한 책입니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 전체가 예수를 증거하고 있고, 성경 전체는 예수께서 증언하신 말씀입니다. 사명자는 그 증언에 불리움 받아 몸만 빌려드릴 뿐입니다. 다시 예언하는 144,000 명은 예수님께 몸을 바친 마지막 종들입니다. 그 사상이 순교적이므로 예수님께서 그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셔서(계시록 11:3) 당신의 예언이 다 대언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고로 율법이건 시편이건 예언서건 성경의 그 어떤 부분이든 그 말씀대로 믿지 못하고 행하지 못할 때 예수님은 심히 화내시며 강하게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4: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누가복음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의 증거가 대언의 영이라는 저 말씀은 예수를 증거할 사명자는 율법과 시편과 예언서를 이 시대에 대언(다시 예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예수께서 증거하시고자 하는 모든 진리는 율법과 시편과 예언서, 즉 성경 속에 '예언의 영'(=대언의 영)으로 다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미 죽은 순교자들도 예수의 말씀을 대언하다 죽었고, 144,000도 그리 하다 죽을 것이며, 지금 사도요한에게 묵시를 주러 심부름 온 천사도 주의 뜻을 대언하고 있을 뿐입니다. 말씀(진리) 자체는 예수님 한 분뿐이시므로, 천사건 인간이건 피조물된 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대언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밖의 것(월권)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 부족한 피조물들이 몸과 입과 정신만 내어드리면 주의 뜻이 전파될 수 있도록 주님은 미리 모든 것을 예언하여 성경에 기록해 두신 것입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아멘!
예수가 증거하신 것은 예언의 영으로 된 것입니다. 또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서는 대언의 영을 받지 않고는 안 됩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는 이 말씀에는 그러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 10: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 말세의 사명자들은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그대로 '대언'하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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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귀 선교회와 목사님 및 성도 여러분께 하나님의 크신 은혜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저의 금번 질문은 다름이 아니라 영적 유다의 70년 회복에 대한 문의입니다.
이 영적 유다를 대한민국이라고 보시는 연유와 어떻게 70년 회복이란 수치가 상정이 되었는지를 중점으로 의견을 주셨으면 합니다.
항상 귀한 의견으로 하나님의 높이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답변] 영적 유다 '대한민국'과 70년 회복(스가랴 1:12)의 비밀.
성경의 주무대는 아시아 셈의 장막인데, 씨 뿌리는 그 일을 아시아의 극서쪽인 '육적 유다'에서 시작했다면, 추수하는 그 일은 아시아의 극동쪽인 '영적 유다'가 담당하게 됩니다.
1. 영적 유다가 대한민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ㄱ) 계시록 해석이 대한민국 땅에 주어졌다는 점.
추수하는 복음인 '영원한 복음' 즉, 요한계시록의 해석을 동방 땅 끝 대한민국 이뢰자에게 주신 점입니다. 세계의 많은 신학자들의 계시록의 해석을 시도하였지만, 모두가 사람의 머리로 연구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받아 적으라"는 명령에 의해 순수히 "받아 적은 해석"이 존재합니다. 바로 1958년 3월 19일에 받은 "이뢰자 목사의 요한계시록 해석"입니다. 하루에 30분만 재우시면서 열 달간 철야기도를 시키신 끝에 주신 요한계시록 해석은 대한민국이 백마 2차역사를 감당할 '영적 유다'의 사명국임을 깨닫게 하는 신호탄인 것입니다.
ㄴ) 대한민국을 보호하신 역사와 한국의 영적 부흥.
하나님을 찬송할 '영권(靈權, Spirit power)'을 소유한 '셈'의 장막(창세기 9:26)이 붉은말(무신론공산주의)에게 전부 집어 먹히던 20세기의 현실속에서, 오직 대한민국만이 공산화되지 않고 종교활동이 가능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유엔 16개국의 참전으로 다 먹힌 이 나라가 공산화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특별간섭이었습니다. 현재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높은 세계선교사 파송(dispatch)비율과 전국민의 30% 이상이 기독인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유일로 새벽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불교 및 여러 미신이 지배하는 가운데서도 십자가의 복음이 강하게 퍼져갔다는 것도 이적입니다.
이런 정황들은 하나님이 이 나라를 용의 손에 빼앗기지 않고 꼭 붙들고 계시다는 증거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왜 2천년 전, 바울에게 아시아로 복음전도 떠나는 것을 허락치 않으셨을까요?(사도행전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그것은 아시아 땅은 마귀에게 잡혀 있다가 종말의 '영적 유다'로서 깨어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2~3장 아시아 7교회에 보낸 편지가 1958년 이뢰자에게 내린 계시록 해석을 통하여 아시아 땅에서부터 세계로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ㄷ) 대한민국의 지리적 위치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다'는 항상 '해 돋는 편'에 진을 쳤으며(민수기 2:3. 이사야 24:15, 41:1, 46:11. 에스겔 47:1~5. 계시록 7:2~. 역대하 31:14), 이족의 침입이나 전쟁을 해야할 위기에서 항상 '머리'가 되어 움직였습니다(민수기 10:14. 사사기 1:1~2, 20:18). 현 대한민국의 지리적 위치 역시 아시아 셈의 장막 중 극동 쪽이며, 나 이 나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영계적 싸움이나 미혹은 가히 세계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재림주가 가장 많이 등장해 있는 나라, 좌우 이데올로기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은 나라, 6자 회담의 진행 등...). '한국'이 영적 유다라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극동전쟁을 통해서도 증명될 것입니다.
ㄹ) 북편군대가 내려와 멸망할 '동해'와 '서해'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요엘 2:20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군은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 아사아 셈의 장막에서 예수를 가장 잘 믿고, 계시록 해석을 받은 상태에서 북편군대가 침략할 가장 많은 가능성을 지니면서 '동해', '서해'를 가진 민족은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적그리스도인 '북방 왕'도 '동북'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문으로 인해 크게 번민한다고 하였으니(다니엘 11:44), 과연 동북아시아의 주역 대한민국은 적그리스도를 번민케 할 철장권세의 나라가 틀림없습니다.
ㅁ) 형제의 찬송이 되며, 절을 받을 만한 사건이 터질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 제 힘 세다고 남의 땅 '독도'도 제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이나,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약소국에 압력을 가하며 자국의 실리를 추구하는 미-러 중심의 시대가 현 21C입니다. 과연 한국은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들로 절하게 할 만한 어떤 힘을 갖고 있습니까? 과학기술력은 일본에 20년 뒤져 있다 하고, 군사력은 북한보다도 열등한 형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나라를 위하여' 어떤 큰 일을 행해 주시기 전에는 절대로 세상 강대국은 이 나라 앞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큰 일'이 생깁니다. 바로 위에 설명한 요엘 2:20절 사건, 곧 초막절 사건입니다.
스가랴 8: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소망하며 전파하는 그 나라가 영적 유다입니다. 한국이 요엘 2:20절 사건으로 이사야 60:1~ 일어나 빛을 발하면 스가랴 8:23절과 같은 많은 무리가 "은총 은총"(스가랴 4:7)하며 몰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 이러한 해석을 기반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나라가 '영적 유다'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ㅂ) 다섯 성읍 때 세워진 애굽 땅 중앙제단(이사야 19:18~21)이 있습니다.
영적 유다란 '유다의 소문'으로 열방을 떨게 할 권세를 가진 민족이어야 하는데, 그 중심에 '한 제단'을 갖고 있는 나라여야 합니다. 우리는 1971년 중공이 유엔에 가입하여 '거부권'을 쥔 나라가 '5개 강국'이 된 이후, 본 예언대로 '애굽 땅 중앙제단'을 세웠습니다. 1974년 9월 24일날 세워진 '한 제단'은 분명 다섯 성읍 때 세워진 유다의 제단입니다.
2. 영적 유다이려면 그 대적국가 바벨론의 포학을 경험한 나라여야 합니다.
* 예레미야 51:34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나(유다=시온=예루살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나로 빈 그릇이 되게 하며 용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 35 나와 내 육체에 대한 잔학(殘虐)이 바벨론에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시온 거민이 말할 것이요 내 피 흘린 죄가 갈대아 거민에게로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예루살렘이 말하리라"
* 하박국 2:4~8절은 바벨론의 속성을 나타내 줍니다.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궤휼하며",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자기에게로 만국을 모으며 만민을 모으나니"
영육간의 배경이 구약 유다와 같지 않다면 다시 예언을 감당할 종말의 '영적 유다'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같아야만 예언을 진실되이 그대로 읽어 전할 때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유다'만 삼킨 나라가 아닙니다. 중동 일대를 전부 장악한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종말 아시아의 역사에서도 '한국'만이 아닌, 아시아 일대를 전부 장악한 '한 나라'가 존재해 주어야 합니다. 그 나라가 어디이겠습니까? 바로 '일본'입니다. 러일전쟁, 청일전쟁, 조선침략 등을 일삼고 소위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이라는 명목으로 아시아 모든 민족의 피를 빨아 먹고 미국에까지 주먹질을 해댄 나라가 바로 '아시아의 바벨론' 일본입니다.
왜 저러한 잔인하고 사악한 민족성을 가진 나라가 한국을 40년간(1905~1945) 짓밟았는지에 대한 해답은 대한민국이 '영적 유다'이기 때문이라는 영적인 답으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아래 문서를 통해 직접 저들의 만행을 확인하십시오). 구약 유다가 당한 설움보다도 더욱 비참하고 잔악한 고통을 겪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영적 유다'였습니다. 이것은 이 민족의 사명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대목입니다. http://goo.gl/GWbCNi
3. 그렇다면 과연 '70년'이라는 수치는 어떻게 상정되었는가?
70년의 설정은 간단합니다. 우선 '바벨론'의 속성을 가진 '한 나라'가 우리나라를 치고 들어오는 시작점이 70년의 첫 해가 되며, 그로부터 70년이 차는 해가 '70년의 끝점'이 됩니다. 아시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소위 '일본'이 우리나라를 속국화한 첫해는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진 1905년입니다. 혹자는 1910년 '한일합방'으로 볼 수도 있는데 굳이 1905년을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70년 회복' 시점이 1975년이냐, 1980년이냐를 묻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근대사에서 1975년과 1980년을 비교하여, 어느 해가 해방연대로서의 더 합당한 영적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분별해 보면 됩니다. 다음의 세 가지 근거는 1975년이 영적인 해방연대임을 입증해 줄 것입니다.
ㄱ) 1975년도부터 이 나라는 보릿고개가 사라지고 풍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풍년의 징조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영적인 선물입니다. 그 이유는 '한국'을 예표하는 구약 '유다'의 역사에서 풍년사건이 징조로 등장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37:29 "네(앗수르=적기독예표)가 나를 거스려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 자갈을 네 입에 먹여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30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금년에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이년에는 또 거기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 31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는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히리니"
"네가"라는 것은 유다와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기독 국가인데, 일본은 우리를 40년간 괴롭히다가 망하였으므로 70년을 홀로 독접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70년이 한 나라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된다면 일본은 바벨론이 될 수 없고, 앞으로 '한국'을 70년간 점령할 새로운 바벨론 나라가 등장해야 한다는 말이기에 주 재림을 70년 이상 지연시키는 합리적이지 못한 발상입니다. 고로 "네가"라는 나라를 "마귀의 종이 된 나라의 연속적인 사명"으로 파악해야 된다는 답이 나옵니다. 다음을 보면 설명이 될 것입니다.
a) 일본 (1905~1945 한국 점령)
b) 공산당 (1950~1953 400만 살상)
c) 청황색말 궤휼정권(참 바벨론) (1958~현재)
로마서 2:28~ | 1차 몽둥이 | 2차 몽둥이 | 3차 몽둥이 |
구약 종말 | BC 606. 역대하 36:5~ | BC 598. 역대하 36:9~10 | BC 587. 역대하 36:11~. 예레미야39장 |
신약 종말 | AD 1905. 스가랴 1:12~. 이사야7:1~9 | AD 1950.6.25. 이사야 2:1~19 | 이사야 7:17~20, 8:6~8, 10:5, 36~37장. 에스겔 38:1~12 |
즉 일본으로부터 시작된 '유다민족의 고통'은 1975년도에 마감되되, 그해에는 '풍년'이라는 징조만 임하고 1975년도가 훨씬 넘은 이 시점(2005년)까지 아직 바벨적 사상이나 포악한 국가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은 세계 교회를 예표했고, 일본이나 공산당은 최후의 바벨론을 예표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1975년의 귀중성이 드러납니다. 풍년이 임한 1975년도는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지 14년째 되는 해입니다. 묘하게도 저 징조를 받은 구약 당시의 상황도 히스기야 14년이라는 점입니다. 그 당시에 저 징조 앞에 앗수르 패망하였다면 종말에도 1975년이라는 징조 앞에 종말적 바벨의 세력이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풍년이라는 징조로 인해 1975년은 구약의 예언을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할 수 있는 해방연대가 됨과 동시에 저 연대로부터 70년을 감산할 때 잔인한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잠식한 1905년이라는 연대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ㄴ) 풍년의 징조를 굳게 잡고 장차 싸워 이길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용감히 맞서라고 1974년 9.24에 한 제단을 세워주셨다.
1975년에 육적인 풍년만 임하고, 일본도 북한도 러시아도 패망하지 않은 것은 싸움이 기독교(144,000)와 적기독(황충떼)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할 144,000 용사들에게 기드온에게 주어진 '이슬-양털'과 같은 징조가 필요한 것입니다. 종말의 바벨세력을 쳐부술 어떤 징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징조가 바로 1975년 한국 땅에 임한 '풍년의 징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영적인 비밀을 하나 발견케 됩니다. 과거 유다를 침공했던 앗수르는 침공한 그해(히스기야 14년)에 멸망하였습니다(이사야 37:36. 열왕기하 19:35). 그런데 이사야를 통해 주신 그 멸망의 징조는 '3년 간의 풍년'이라는 것입니다. 어째서 징조에 대한 결과(앗수르 패망)보다 징조자체가 더 오래 갈 수 있는 것일까요? 상식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징조는 어떤 일의 성취여부에 대하여 미리 주어지는 보증수표와 같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패망하여 물러간 뒤에도 2년이나 더 풍년의 징조가 임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영적 유다의 개념이 필요케 되는 것입니다. 즉 이 묵시는 '구약 유다'를 위한 묵시가 아니라, 예언이 종결되는 종말에 가서 이 이사야서를 다시 예언할 '영적 유다'로 이루어질 묵시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예언할 수 있는 제단부터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1975년 첫해에도 스스로 난 것을 먹고(1975~1976), 두번째 해에도(1976~1977), 제 3년에도 그러했습니다(1977~1978). 이것이 '전 3년'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전 3년'이 시작되기 전에 '전 3년'을 겪을 한 제단이 나와야 함이 당연합니다.
육적인 풍년이 드는 동시에 영적으로도 말씀의 풍년을 이룰 교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37:31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는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히리니 32 이는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 1975~1978년의 역사로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는 자가 다시 아래로 뿌리 박고 위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니 바로 '순'의 역사를 뜻합니다. 순의 역사를 위해서 순의 제단이 세워졌습니다.
학개서 2:6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진동시키는 종말에 주님이 영광으로 충만케 해주실 "한 제단"이 필요한데, 이 제단의 설립이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이라는 것입니다.
학개서 2:18 "너희는 오늘(9.24)부터 이전(以前)을 추억하여 보라 구 월 이십사 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殿 地臺)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 구약 '스룹바벨 총독'이 70년이 찰 때 '유다의 남은 자들'을 이끌고 고토(유다땅)로 돌아와서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였듯이, 영적 스룹바벨 역시 정치계가 무신론을, 종교계가 청황색말을 따라가는 바벨의 시대에 일제침략으로부터 70년이 되는 어간에, '육적풍년'과 더불어 '영적풍년'을 이루기 위해서 영계적으로 무너진(협상으로 치우친) 기독교 성전을 재건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순금등대 촛대역사 사명의 시작입니다.
다리오 왕이란 성전건축에 있어 방해자는 대들보에 목을 달아 죽이라는 강권적인 조서정치를 시행한 이방의 왕이었습니다. 1974년째에 유신 2년을 맞이한 박정희 대통령도 예수님을 영접치 못한 이방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멸공사상으로 본 제단의 설립에 있어 영계적으로 도움을 준 대통령입니다. 만일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의 좌익 사상에 의해 우리와 같은 제단은 이미 큰 훼방을 받고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마 한국이 이미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신론 공산주의에 대하여 승리를 이루고, 모든 종교협상주의를 깨부수고 주 재림을 맞이할 신부들을 단장시키기 위해 학개서 9.24 성전이 존속할 수 있도록 정치적인 배경도 들어쓰신 것입니다. 1974년 8월 15일날 문세광의 총탄에 박정희가 쓰러지지 않고 육영수 여사가 쓰러진 것도 다, 다리오 왕 2년 9.24 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리오 왕 2년 9월을 한 달 남겨 놓고 박정희가 죽어버리면 학개서의 예언이 성취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ㄷ) 스가랴 1:12절은 B.C.520년에 임한 묵시로서 구약 70년(B.C.606~536)과는 무관하므로 한 나라 '영적 유다'가 나타나 스가랴 1:12절을 증거해야 한다.
선지자 스가랴가 받은 "이를 노하신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는 탄식은 종말의 영적 유다의 고난을 묵시로 받은 것이지, 당대의 유대민족을 위한 탄식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묵시를 받은 시점이 "다리오 왕 이 년 팔 월"(스가랴 1:1)이기 때문입니다. 다리오 왕 2년 8월은 B.C.520년으로서, 유대민족이 잡혀가 종살이하기 시작한 해(B.C. 606)로부터는 86년째요, 해방을 받고 고국에 돌아와 성전을 짓기 시작한 때(B.C. 536)로부터는 16년이나 지난 시점입니다. 고로 그제사 "이를 노하신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한다는 것은, 종말에 등장할 영적 유다에 관한 묵시라는 것입니다. 고로 이 예언은 시기적으로는 반드시 1905년(을사보호조약)으로부터 약 70년이 되는 1974~1975년 어간에 깨달아져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 예언을 해석한 제단이 바로 <스룹바벨 선교회> 입니다.
4. 결 론
왜 대한민국이 영적 유다이며, 70년 상정의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대한민국이 아시아 셈의 장막 중에서도 극동 해돋는 편에 위치한다는 점!
2) 수많은 계시록 해석이 난무하지만 "하늘로부터 직접 받아 쓴 순수한 해석"이 이 나라에 임하였다는 점!
3) 불교 및 갖은 미신이 난무하는 아시아 땅에서 영계적으로 눌리지 않고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어 약 1200만 이상의 국민이 예수를 믿는다는 점!
4) 잔인한 일본이 40년간 씹어 삼키려고 몸부림쳤어도 소화하지 못하고 다시 토해냈다는 점!
5) 무신론 공산사상이 기독교(하나님)를 대적하고 영적 유다를 멸망시키려고 했지만, 검정말(U.N.군)로 보호하시므로 아시아 동방 땅 끝을 보호해 주셨다는 점!
6) 일본의 침입으로부터 70년이 되던 해인 1975년에 '앗수르가 망할 징조'로 '3년간의 풍년'과 '연속적인 풍년'이 임하고 있다는 점!
7) 앗수르와 같은 북편군대가 내려와서 멸망할 '동해'와 '서해'(욜 2:20)를 가진 유일무이한 나라라는 점!
8) 이 모든 일을 증거할 1974년 9.24제단을 출발시키시려고 강한 멸공사상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을 세우시고 1974년 8.15 행사에서 킬러의 손으로부터 그의 생명을 보호하셨다는 점!
9) 구약 유다가 '3차 침입'을 받은 것처럼, 영적 유다도 '3차 침입'을 당하게 된다는 점(위 도표 참조).
* 인도의 詩聖 타고르의 영시 역시 그가 썼다기 보다, 하나님이 그를 통해 미래를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다음 문서 제일 뒷부분에 타고르의 시와 사진을 참조하세요.
이상이 우리가 증거하는 '대한민국'이 영적 유다가 될 수밖에 없는 근거들이며, '70년 회복'이 1905년~1975년까지 상정된 이유입니다.
2005년 4월 2일 <스룹바벨 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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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대한민국이 영적 유다인 이유
대한민국 = 영적 유다
동방 땅 끝 고레스 사명
성경을 통해 표면적 구약 유다와 신약 종말의 이면적 유다에 대해 상고해봅시다(로마서 2:28).
구약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등장하며, 그 중에서도 주인공격이요, 수두(首頭)로 앞장서는 지파가 있습니다. 바로 유다 지파입니다(민수기 10:14. 창세기 49:8). 그렇다면, 예수 피로 거듭난 이방인의 시대가 전개되면서 예수의 피로 산 영적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도 다시금 영적 유다가 존재해야 함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근거들을 다음의 몇가지 말씀을 통하여 증거하겠사오니,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영적 비밀들을 깨달아 세계를 살릴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택민의 개념
육적 족보는 무의미 하고 신령한 영적 지파, 영적 백성으로 개혁됨을 깨달아야 합니다(히브리서 9:10). 율법 시대의 택민이 있었듯이, 은혜로 택한 은혜 시대의 택민이 있습니다.
로마서 2: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儀文)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 오직 이면적(영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 하셨습니다.
로마서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 차별 없이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주가 되신다 하셨으니 예수 이후로 택민(아브라함의 자손)은 개혁되었습니다.
로마서 9:6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 '이스라엘'을 규정하심에 있어 육신의 자녀는 부인하셨고, 약속(언약)의 자녀만을 인정하셨습니다(로마서 3:22~31 참조).
골로세서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 현 육적 유대인(이스라엘)은 비밀의 영광이 이방으로 건너갔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예수를 받아들임으로써 참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는 길을 얼마든지 열려있습니다(갈라디아서 3:27~29).
요한복음 8:39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혈통은 무의미하며(요한복음 1:13)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는 자'(믿음과 행위)라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하시겠다고 예수님께서 혈통적 유대인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3:9~12).
모세의 율법시대는 세례 요한까지라 구분했고(누가복음 16:16),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로부터는 율법시대가 은혜시대로 개혁되었음을 성경은 못박았습니다(히브리서 9:10). 예수님의 가지(하나님의 자녀)를 육적 족보로써만 논하는 시대는 이미 2000년 전에 끝났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율법에서부터, '족보'로서가 아니라 말씀과 명령을 '듣고 지키는 나라'로서 당신 백성을 삼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영적 이스라엘 12지파' 중 '영적 유다'를 찾아보려는 이 일이 우리에게는 소망에 찬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26:16 "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17 네가 오늘날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 18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은즉 19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이사야 42: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 사도들을 통하여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심은 창세 전부터 택하여 두신 당신의 자녀 이스라엘을 때가 차매 부르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유대인은 이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예수를 발로 차므로 스스로 멸망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마태복음 8:11~12, 21:43, 23:37~39).
2. "다시 택하는 일"
율법의 선민 중에 은혜로 택한 백성이 오늘날의 기독교를 이루었듯이, 이제 환난 시대가 임하매 또 다시 택함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백성들이 있음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이사야 14: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故土)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 그들과 연합할 것이며 2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를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를 주관하리라" - 이스라엘을 다시 택한다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율법의 선민을 성령의 법으로 다시 택할 때가 은혜시대요, 은혜시대의 선민을 종말에 계시록과 예언서 곧 "예언의 등불"로 다시 택할 때가 바로 환난시대입니다. 성경에는 새롭게 불러 모으는 역사, 여호와의 영광이 이방 중에 크게 되는 역사가 예언되어 있습니다(말라기 1:11. 이사야 49:6~). 이제 사도들이 증거하거나 인용치 못한 선지서의 남은 예언은 모두가 환난시대에 종합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것이니, 이것을 증거해야 할 자는 '우리'입니다. '고토(故土)'란 근본적으로 우리가 빼앗긴 에덴동산을 말하는 것이지, 사막 팔레스타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에덴동산은 바로 예수의 재림으로써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성도의 나라)'을 뜻합니다(천국은 천년왕국이 끝나고 펼쳐지는 하늘나라요, 천년왕국은 제7일 안식일이 천년의 틀로 이루어지는 제 7천년기 곧 밀레니엄(Millennium) 왕국입니다). 따라서 '다시 택한다' 함은 천년왕국에 들어갈 백성들을 기독교인과 세계의 회개하는 자들 중에서 다시 뽑아내겠다는 뜻이 됩니다.
스가랴 2:12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 장차 유다를 취하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한다는 이 말씀이 새롭게 들리시지 않으십니까? 왜 이날까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도 그 의미가 다가오지 않았던 것일까...? 구약 때는 바벨론에서 70년 만에 돌아온 '스룹바벨 단체'가 새로 택한 단체가 되는 것이요(에스라 2:64~65, 약 5만명), 은혜시대 종말에는 영적 바벨론 환난에서 나온 144,000 명이 60억 인구 중에 "땅에서 구속 받아 처음 익은 열매"가 됨으로 새로운 순의 단체가 되는 것입니다(계시록 14:1~5). 물론 이들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여 나온 셀 수 없는 '흰 옷 입은 무리'도 새 시대의 백성이 됩니다(계시록 7:9~). 그러나 이 일은 예수께 접붙은 종말의 인 맞은 용사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장차 유다를 취하여'라는 말씀과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라는 말씀은 응당 종말에 역사할 '영적 유다'가 아니고서는 성취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은 유다 땅에 있는 성읍으로서 이스라엘의 모든 경건한 자들이 절기와 제사 때마다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종말에도 유다와 같은 한 나라에 영적 센타(애굽 땅 중앙제단/이사야 19:19)가 있을 것이며 이 나라를 중심으로 그 변경의 기둥 즉 세계의 경건한 자(인 맞은 자)들이 모여 역사할 것을 우리는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역사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치 않은 중동의 이스라엘과는 무관합니다. 또한 기독교회라도 자만할 것이 없는 것은, 이 일은 심판기에 될 일이며 심판기에는 본 백성이 떨어져 나가는 일도, 백성 아닌 자가 순종하여 백성에 가입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공의입니다(이사야 10:22). 공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그 남은 자로 새 시대를 이룸에 있어 '애굽 땅 중앙에 한 제단'을 택하여 그로부터 세계의 알곡들을 모아 복받게 하리라는 예언은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부터 성취되지 않고서는 이루어드릴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이사야 19:19~25).
이사야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15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이사야 44:1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2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3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4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5 혹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혹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칭할 것이며 혹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칭호하리라"
주님께 택함 받은 종들이 자기가 "야곱"이라고 자칭하며,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스스로 칭호하리라 하심은 이들은 실상은 "야곱"도 "이스라엘"도 아니었음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다 유대인 곧 본 가지는 떨어져나가고 이방 중에서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로 다시 택하는 역사가 있을 것임을 예언하신 것임과 동시에, 종말에 기독교가 부패되어 떨어져 나가고 순수한 흰무리가 이방족중에 많이 연합되어 새 시대에 들어감으로써 최종적인 성취를 보게 될 예언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약 19억의 기독교인 중 계시록과 예언의 말씀을 꿀같이 먹고 온 세계에 다시 예언할 자들이 나타날 것인데, 이들이 바로 이마에 인 맞은 자로 표현된 계시록 7:2~8절까지의 주인공들이라는 점입니다. 계시록 7:9~17절의 수많은 흰무리는 이들이 살려내는 열매입니다). 마귀는 이 일을 방해하기 위해 세계 여러 민족 중에서 나타날 144,000명(미가서 5:7~9)을 상징수로 매도해 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특정 종파에 가입해야 144,000명이 될 수 있다는 미혹과, 144,000명은 상징수라 하는 2가지 미혹을 과감하게 내치시고 성경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다시 택했다면 영적 유다의 지정학적 위치와 군사적 위치도 구약에서 보여주셨는가?
종말을 미리 보여주던 시대(이사야 46:10)에 12 지파 중 동방(민수기 2:3) 해 돋는 곳에 진 친 지파, 전쟁에서 수두로 앞장섰던 지파가 유다였던 것은, 종말의 유다도 이와 동일할 것을 미리 고하고, 보이고, 일러주신 사건이 됩니다.
1) 민수기 2:3 "동방 해 돋는 편에 진 칠 자는 그 군대대로 유다의 진기에 속한자라 유다 자손의 족장은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
2) 민수기 10:14 "수두로 유다 자손 진기(陣旗)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유다 군대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영솔(領率)하였고..."
3) 사사기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4) 사사기 20: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기브아의 비류들이 레위 사람의 첩을 강간살해한 죄악 때문에 / 삿 19장)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일지니라"
5) 이사야 24:15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16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궤휼자가 궤휼을 행하도다 궤휼자가 심히 궤휼을 행하도다 하였도다"
6) 이사야 46:11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이사야 24:15~동방, 이사야 41:1~동방 사람, 이사야 46:11~동방 독수리, 이사야 59:19~해 돋는 곳에서 하나님의 신이 임하심, 에스겔 47:1~5 성전 동쪽 문지방 밑에서 나오는 생수 역사, 계시록 7:2~ 해 돋는 데의 역사... 등의 말씀을 볼 때, 신구약을 통틀어서 유다 지파의 사명은 해 돋는 동편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구약 육적 전쟁에서도 유다 지파가 동편에 진을 치고 앞장섰다면, 종말에도 사탄과 싸우는 큰 영적 대전쟁에서도,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사령관으로 모신 피로 산 장막(교회) 안에서 십자가의 깃발을 들고 담대히 돌진할 영적 유다지파가 있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합니다(구약은 종말을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 이사야 46:10. 로마서 15:4).
신약을 성경으로 인정치 않는 저 육적 유다(이스라엘)가 종말론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음은 누구나 인정해야 합니다. 심판기의 역사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그들은 뒤늦게 회개하여 생명을 보존하게 되는 일은 있겠지만은, 심판기의 주인공 역할은 할 수 없는 것이 상식입니다. 아직도 메시야를 고대하는 그들이 어찌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며 종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고로 144,000명을 유대인으로 보는 견해나, 계시록은 유대인들에게 주신 말씀이라 하는 주장도 모두가 사단의 사주를 받는 견해라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 동방역사, 새 일 역사는 그들(유대인)이 알 수 없으며(눈 뜬 소경), 오직 받은 자 곧 말씀을 읽고 깨달아 순종하는 자(대한민국)만이 말하고 전파할 수 있는 말세 사명자의 특권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 물과 불이 못당하는 마지막 때의 초강권역사를 행하실 때, 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3: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 8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9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은들 그들 중에 누가 능히 이 일을 고하며 이전 일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들로 증인을 세워서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어 듣는 자들로 옳다 말하게 하라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 이 구절이 여호와의 증인들에 의해 도용되고 있지만, 이것은 그들과는 무관한 예언입니다. 이 말씀은 흑암에 덮여(마태복음 25장) 세상이 소경이 되었을 때,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 종들을 불러내시되 제일 처음 '동방'에서부터 시작하여 세계 '원방 땅 끝'에서까지 다 모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 사역에 있어 선구자의 사명으로 일할 나라! 그 나라가 바로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동방 땅 끝 해 돋는 나라인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픈 것입니다.
계시록 7: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144,000)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치 않고 계시록을 성경으로 인정치 않는 육적 유대인들은 3절에 기록된 "우리"에 해당될 수 없습니다. 그럼 유다와 관련된 약속적, 지리적, 군사적인 모든 특성을 겸하면서도 예수를 메시야로 영접하고 계시록을 종말의 정확한 다림줄로 인정하는 예수 믿는 민족 안에서 반드시 유다 지파가 새로 나와야 한다는 결론이 자동 증명되는 것입니다.
4. 종말을 보여주는 히스기야 왕정 때의 제사장 고레(KORE)의 사명 상고
역대하 31:14 "동(東)문지기 레위 사람 임나의 아들 고레(kore)는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맡아 여호와께 드리는 것과 모든 지성물을 나눠 주며..."
이 "고레(Kore)"라는 사람은 동(東)문지기의 사명자이며 땅의 거룩한 것을 모아 하나님께 바친다 한 것을 볼 때 제사장임이 분명합니다. 이를 알고 다음을 상고해 봅시다. 표면적으로 이 인물은 유대 민족 히스기야 왕정 때의 한 제사장을 뜻한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에 학개, 스가랴 예언에 의해 부패해 무너져가는 기독교계에 다시금 신령한 성전 재건역사가 일어날 때 - 곧 영적ㆍ이면적으로 구약의 모든 묵시가 정확히 종말의 정치, 종교상황에 맞아떨어지는 시기가 될 때 - 구약의 한 인물이었던 '고레(KORE)'라는 이름의 제사장 사명이 아시아 셈의 장막, 동방 땅 끝 '코레아(KOREA)'라 이름하는 사명국가로 넘어오게 되는 것이니, 이는 대한민국이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맡아 여호와께 드리고 이 시대의 귀한 양식(마태복음 24:45~46)을 전 세계에 나누어 줄 선지국가, 제사장국가가 되리라는 것을 미리 고해준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은 모델하우스이니 종말의 역사는 모델하우스의 모양대로 지어지게 됩니다. 로마서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출애굽기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 택민의 자격은 족보로서가 아니라 "말씀을 잘 듣고 언약을 지킴으로써"라고 말씀하셨고, 그러한 하나의 민족을 당신의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겠다고 약속하였으니, 이 일이 중동의 유다민족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까? 극동의 대한민국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까?
5. 고레스의 사명 상고
'고레스'라 이름 지어진 '하나님의 기름받은 종'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45:14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애굽의 수고한 것과 구스의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족속들이 다 네(=고레스)게로 돌아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성경은 진리의 책이요, 영언(靈言)임과 동시에 축자영감의 책이기도 하므로, 구약 당시 동(東)문지기 제사장의 사명을 맡은 자의 이름이 고레(KORE) 라는 것은 종말의 코리아(KOREA)라는 영적 유다의 사명자들에게 (비록 '역대기'가 예언서는 아니지만) 힘을 얻게 해주는 비밀임을 말씀드렸습니다. 보고 깨달을 사명자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작은 선물로 보시면 무난할 것입니다. 이제 '고레스'의 역사 또한 세계가 대한민국을 따르고 대한민국의 진리의 외침 앞에 스스로 낮은 자세를 취하여 따라올 것을 보인 예언으로 볼 때, 사명자들에게는 더 큰 힘이 솟게 됩니다.
1) 역대하 36:22~23 / 2) 에스라 1:1~3, 7~11 / 3) 이사야 44:28 / 4) 이사야 45:1~7
모든 진리의 기준인 성경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변론합니다. 구약의 '고레스'는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적도 없거니와 성전건축을 허락은 했지만 그의 손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중건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고레스'라 함은 이사야 44:28절대로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신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쁨 곧 예루살렘이 중건되는 역사는 고레스의 손에 의해 마무리되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동족들의 방해와 참소문이 고레스왕 때부터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를 거쳐 바사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성경을 참고해 보십시오! (에스라 4~5장).
고레스왕에 의해 성전중건 명령이 내려진 것은 사실이나, 구약의 고레스를 통해 성전 역사가 완성된 것이 아님을 기억한다면 구약의 바사 왕 고레스가 이사야 44:28절과 45:1~ 예언의 참된 주인공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어설프게 이루어지는 책이 아니라, 완전하게 성취되는 하나님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역사는 오히려 다리오왕 6년에 필역되었습니다(에스라 6:15). 또한 그 전(殿)의 성곽은 느헤미야 6:15절에 가서야 이루어집니다. 그러하니 우리는 이사야서의 고레스 예언을 1~2차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고레스'라는 이름의 사명자는 1차로는 표면적 구약 성민(이스라엘)을 표면적 마귀국가(바벨론)로부터 해방시키는데 쓰임받은 사명자입니다. 그림자인 이 역사가 실체화될 때는 종말의 2차성취 때로서 이면적 이스라엘(영적 야곱=예수님의 피로 산 백성)을 마귀 지배하에 있는 현 세상(이면적 바벨론/계시록 17~18장)으로부터 해방시켜 새 시대(천년왕국=다윗의 왕국=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의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인도할 하나님이 쓰는 말세 사명자, 혹은 사명국가가 되야 하는 것입니다.
예언을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요, 영적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며, 성경은 한 나라의 멸망과 회복을 예언하고 이루는 책이 아니요, 오직 지구와 온 우주를 회복시키는 거대한 에덴동산 회복 설계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종 '고레스'의 사명을 오직 구약으로써만 국한시켜 볼 것이 아니라 ①무신론 공산주의(붉은말) ②자본주의 경제권(검정말) ③북방궤휼 및 기독교 협상주의(청황색말=쑥물)가 성행하는 이 혼란한 시기에 하나님의 택한 종들, 택한 이스라엘들을 끌어내어 주 앞으로 인도할 매우 귀중한 사명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바로 보는 눈인 것입니다.
따라서 "고레스"는 하나님의 모든 예언의 말씀(철장권세)으로 이 악하고 혼란한 혼란한 바벨사상을 파(破)하여 없애고 재림의 주 예수님을 영접도록 이 시대의 백성을 인도할 목자적 사명이요(이사야 44:28), 21세기 인류 종말에 와 타락해 버린 기독교회! 곧 "무너진 성읍(성전)을 중건하며 새로 기초를 세우는" 사명자가 될 것이니, 고레스라 함은 당연히 종말의 사명이요, 하나님이 택하여 기름부어 모든 예언의 말씀을 환히 밝힐 수 있는 사명이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성경의 비밀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사명을 대한민국의 제사장 사명으로 수렴시키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 이후 타락한 이 지구성(地毬性)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신창조하는 거대한 역사에 있어서 세계를 살릴 '한 나라'가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대한민국), 거짓선지 음녀의 세력(교회)을 말씀으로 파(破)하고 주님의 피로 산 수많은 교회를 살려낼 책임이 있는 한 교회(촛대)가 있어야 함도 당연한 일입니다(애굽 땅 중앙제단). 모세의 지팡이에 임한 권세를 위임 받아 대행할 증인권세자들이 종말에 등장한다는 것 역시 계시록과 온 예언서가 공통되이 증거하는 바이니..... 우리는 고레스의 역사를 잘 알고 고레스의 사명 감당을 청해야만 할 것입니다. 기도 없이는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에스겔 36:37). 우리로서는 약해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오직 일곱 영의 강권역사로 기록된 모든 예언의 말씀을 이루실지로다. 아멘! (이 글을 접하신 감취어진 사명자들이여! 힘내어 기도하시고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6. 하나님의 배려, 종들을 위해 기록해 주신 말씀의 짝들!
'고레'와 '고레스'를 논하고 있지만, 이밖에도 깨달아 힘을 얻을 만한 하나님의 선물(배려)들이 성경에는 많이 숨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가랴 6장에 기록된 '4대 병마'가 계시록 6장에서 '네 마리 말'로 다시 등장하는 것이나, 다니엘 7장의 '네 짐승'이 계시록 7장에서 땅을 해롭게 할 '네 바람'으로 다시 보여지는 것 등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이 혼선치 않고 확실히 말씀을 무장할 수 있도록 모략적 기록하신 선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 두 가지 예를 더 들자면, 땅에서의 완전수이자 사단의 비밀이며 짐승의 수이며 인간의 수인 666 이 두라평지에 세워진 66 신상의 높이와 넓이에서 폭로되는 것(다니엘 3장), 땅 위의 모든 부귀영화와 쾌락을 거머쥔 솔로몬의 세입금 금 666 달란트에서 나타나는 것(열왕기상 10:14), 또한 계시록 13장에서 폭로된 짐승의 표에서 보여지는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의 일치를 통하여 사탄의 정체가 성경에서 어떻게 폭로되는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말씀들을 짝 맞추어 거대한 시각으로 보게 될 때, 숨겨진 하나님의 모략은 자꾸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암호체계와도 같습니다.
한 차원 높은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다니엘 10:4~ 세 이레 큰 전쟁에 관한 예언인데,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성경을 많이 상고하고 많은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 10:4~ '정월 이십 사일'은 세 이레 큰 전쟁이 끝나는 날짜로 기록된 것이니, 이를 영적으로 환원하여 볼 때, 이 땅의 마귀를 없이하고 재림 주를 영접하는 동방역사 곧 '말씀성전'과 '말씀성곽' 건축의 역사가 끝나는 날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한부 종말론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성경의 모든 날짜는 반드시 주의 깊게 그리고 건전하게 상고되어야 합니다(창세기 1:14, 신명기 32:7, 사도행전 17:26).
종말의 모든 이면적 역사는 구약에 반드시 미리 고해진 것이니(이사야 46:10, 로마서 15:4)) 표면적으로 벽돌을 쌓고 나무를 대어 만든 성전ㆍ성곽의 역사를 상고해 볼 때, 종말의 모든 비밀을 한 층더 잘 밝힐 수가 있게 됩니다. 바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이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은 구실을 합니다. 이 두 역사서에 기록된 성전건축의 완공일과 성곽 건축기간은 진주와도 같은 말씀인데, 바로 에스라 6:15절과 느헤미야 6:15절입니다(같은 장, 절수에 넣어주신 것은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에스라 6:15절에는 다리오왕 6년 아달월 3일(12월 3일) 곧 성전 완공일이 나와 있고, 느헤미야 6:15절에는 성곽 역사기간인 52일이 나와 있으니... 비록 이 두 기간이 역사적으로 약 82년간의 시간차를 갖고 있지만 중간 공백기를 제외하고(하나님의 역사는 카이로스 시간이므로) 이 두 날짜를 합치면(12월 3일+52일=1월 24일) 다니엘 10:4절 '정월 이십 사일'의 비밀이 드러나게 됩니다.
곧 정월 24일의 비밀을 풀어보면 구약의 성전ㆍ성곽 건축이 완성된 날짜요(에스라 6:15, 느헤마야 6:15), 또한 재림 주님의 형상을 하신 분이 힛데겔 강가에 나타나 다니엘이 본 날짜이니(다니엘 10:4~), 종말로 다시 예언될 때에는 주 재림 전 신령한 영적 성전, 성곽공사가 있을 것이요, 이 두 기간 사이에는 구약과 같이 간격(시차)이 있을 것이요, 다니엘과 같은 마지막 신앙절개자들이(144,000) 증거를 마치고 "이리로 올라오라"(계시록 11:12) 하시는 음성을 예수님을 영접케 될 날짜가 정월 24일이 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종말의 일어날 세 이레 큰 전쟁도(백마와 청황색말의 대결) - 육적 성전ㆍ성곽은 벽돌과 나무이지만, 영적 성전ㆍ성곽은 순금등대 촛대교회 곧 사람의 힘과 능(能)으로 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신(神)으로 되는 역사임을 감안할 때 - 신령한 말씀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 3년 1개월'간의 말씀성전 건축(촛대교회=애굽땅 중앙제단)과 이 말씀으로 무장된 종들이 '5개월'간의 황충떼 환난(계시록 9장)에서 마귀의 공격을 말씀의 불성곽으로 막아내는 강권적인 역사가 일어날 것을 보여주신 것이 됩니다. 물론 이 두 사건 사이에는 북방군대가 영적 유다 땅에 내려와 하루 아침에 시체가 되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존재합니다. 바로 이사야 37:36절이요, 요엘 2:20절입니다. '동해'와 '서해'가 있어 이 어마어마한 예언을 이룰 나라는 눈 씻고 찾아봐도 삼면이 바다인 영적 유다 대한민국 밖에는 없습니다. 교만한 북방 무신론 군대가 영적 유다에 내려와 하루 아침에 시체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면 세계의 인 맞은 종들이 영적 유다에 다 연합되어 세계를 돌아 북방까지 치고 들어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린다고 하였습니다(슥 6:8)
지금까지 말세종들을 위해 모략적으로 기록해두신 하나님의 몇가지 선물들을 살펴보았습니다(스가랴 6장=계시록 6장, 다니엘 7장=계시록 7장, 666, 에스라 6:15=느헤미야 6:15).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선물은 이러한 모든 비밀을 밝히 드러낼 사명을 띤 종말의 고레스! 대한민국 유다의 말세 사명자에 관한 말씀에서도 주어진 것이니 바로 전술한 바 있는 동방 땅 끝의 사명자 고레스의 이름에서입니다.
7. 고레(KORE) >> 고레스(CYRUS) >> 고레(COREE) >> 고레아(KOREA)
몽고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뤼부룩(Rubruc)의 서신에 의해 최초로 서방에 전해진 한국의 초기이름은 Caulei(까우레이) 였는데, 이것이 Coree(꼬레) 로, 다시 Korea(코리아) 로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 현재 대한민국의 외래명칭 국호로 굳혀진 것입니다. 뤼부룩의 활동당시는 AD 1200년대 경이고, 동(東)문지기 제사장 고레(KORE)의 활동당시의 왕은 히스기야이며 그의 통치는 BC 716~697년까지이니, 한국의 이름이 서방에 알려지지 무려 1,900여년 전에 이미 동방 땅 끝의 제사장 나라 '한국(KOREA)'의 이름이 '고레(KORE)'라는 제사장의 이름으로 구약에 그림자로 비추어져 있던 것입니다(참고: 그러나 역대기는 예언서는 아닙니다).
지금 이 설명들은 어떤 학술지의 논문이 아닙니다. 학자들(믿음이 없는 헬라자식들 / 스가랴 9:13)은 항상 객관성, 합리성, 근거(증거) 지상주의를 들고 나오며, 신령한 하늘의 역사에 도전하곤 합니다. 언제나 순진한 하나님의 종들이 깨달은 성경의 비밀들을 자신들이 섬기는 '이성의 신'(Reason)의 힘을 가지고 공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영적인 눈으로써만 분별할 수 있는 책이니, 합리주의를 섬기시는 분이라면 이 글을 어서 다른 분께 넘겨 주십시오. 이 글은 학술적인 눈으로 성경을 보는 자들에게 주는 글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히며 대한민국(=영적유다=고레스)이 왜 영적 이스라엘 중에서도 대표가 되는 '유다 지파'여야 하며, 어찌하여 '고레스'의 사명을 가진 선지 국가가 되는지를 좀 더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8. 창세기 49:8~12절에 담긴 축복!
창세기 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홀(忽)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예수)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예언을 보십시오! 오직 예수님의 재림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는 예언입니다. 원수의 목을 잡는다는 것은 붉은 용 사단이 무저갱에 들어갈 때에 진정 성취되며(계시록 20:1~3), 홀(=왕권, 치리권)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함을 말할 때 실로(=예수)가 오시기(재림시)까지 미친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종말 재림 역사에서 붉은 용을 무찌르는 크나큰 영적 전쟁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앞장서는 '한 지파'가 있어야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현 육적 이스라엘이 이 예언을 이룰 수 없는 것은 그들은 여전히 양의 피로 제사하는 율법에 거하는 무리요, 예수님을 메시야, 만왕의 왕으로 인정치 않고 있는 족속이기 때문입니다.
※ 육적 유다와 맺으신 언약이 종말의 영적 유다로서 완전히 성취된다는 이 '큰 비밀'을 전할 때 부딪히게 되는 많은 난관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있어 지혜롭게 변론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기반으로 확실히 무장하셔서 종말의 큰 전쟁에서 용사로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첫째, 때가 찬 이때까지 현 육적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또 메시야로 인정치 않고 있다는 사실!
만일 육적 족보가 영적으로 개혁되는 일이 없다면 육적 유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실패한 목수의 아들로 영원히 남겨져 있게 됩니다. 유대인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아직 메시야를 보내지 않으셨다면, 한국 땅과 세계 땅에 세워져 있는 저 무수한 십자가들은 다 헛것이요, 저 기호를 세우기 위하여 피흘려 죽어간 순교자들의 죽음은 모두 개죽음이 되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몇백만 안 되는 유대인들의 주장 따위에 의해 예수님의 보배 피와 그 귀한 종들의 피값이 수포로 돌아갈 수야 없는 것이지요. 또한 유대인의 주장이 옳다면 하나님이 유다에게 행하신 약속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패한 것이 됩니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하나님은 약속을 실행시킬 수 없는 무능한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결코 무능한 신이 아닙니다. 고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지 2,000년이 넘는 이 마당에 신앙의 역사가 단절됨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 구세주로 영접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이 쭉 이어져 왔어야 하는 것이며(사도행전 1:8. 마태복음 24:14), 그분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영적 이스라엘 곧 '피로 사신 교회'(사도행전 20:28) 안에 가장 용맹스럽고 충실한 지파인 '영적 유다'가 존재해야 함은 당연지사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는 분이시므로(민수기 23:19), 제자들을 통하여 이 천국복음(마태복음 24:14) 땅 끝까지 전파되게 하셨고(2000년간), 이제 남은 모든 예언의 말씀과 계시록을 이루시면 성경 기록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 곧 셈의 장막의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창세기 9:26).
율법과 시편과 선지서의 내용 중에서 십자가(유월절)와 성령강림(오순절)의 역사는 아시아 셈의 장막 극서쪽, 육적 유다나라에서 성취하셨으나, 종말에 열방의 왕들을 굴복시키시고 세계 영적 이스라엘 중 알곡을 모으시는 초막절(수장절) 역사를 행하실 때에는 동방 땅 끝 해 돋는 곳에서 다른 천사(계시록 7:2)의 사명이 나타나 세계 영적 이스라엘 중 '하나님의 인(印)'을 맞을 144,000명을 모으고 그들이 '흰 무리'를 끌어낼 때 아시아의 극동 역사로 세계적인 추수와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계시록 11:15, 14:1~5). 기득권을 가진 교만한 이들은 마지막 때 등장할 아시아 극동의 사명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의 '동방'을 '페르시아'로 주장하거나, 지구는 둥그니 어디든 동방이 될 수 있다는 궤변까지 늘어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동방 한국'의 말세 사명이 워낙 큰 만큼 사단 역시 이 비밀을 원천봉쇄하려는 시도에 열을 올릴 것이 뻔한 일입니다. 이미 박태선이나 문선명 계통에서 동방역사를 들고 나와 많은 이들을 미혹케 하고 절망에 빠뜨린 일이 있으므로, 사단의 작전은 먹혀 들어간 것입니다. 하지만 마귀 떼가 성경에 기록된 '동방 해 돋는 곳'의 역사를 아무리 휘저어 더럽혀 놓는다 해도 하나님은 당신의 권능으로 '해 돋는 동방의 역사'를 반드시 성취시켜 주실 것입니다.
성경 전체는 에덴회복을 놓고 묵시받은 조감도이며, 특히나 예언서에 등장하는 '악을 제거하고 선을 택하여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이사야 7:15)는 모두가 종말의 환난과 아마겟돈 때로서야 최종 성취되기 때문에 이 때 쓰임받을 만한 '나라'가 과연 "중동지역의 동방이냐? 극동지역의 대한민국이냐?"만 따져 보아도 대한민국이 확실한 우위에 서게 됩니다. '동방'에 해당하는 말세 사명의 주인공 지파는 '우상'을 배격하고 예수 믿는 믿음의 장막 중에서 '동방'에 해당하는 무리여야 함은 변치 않는 대전제입니다. 중동지역에는 기독교가 살아숨쉴 수 없는 실정이며, 계시록은 거의 읽히지 않고 있으므로 계시록 7:2~3절의 역사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일본이나 대만도 동방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론으로 펴는 이들도 있지만은, 그들은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땅 끝'도 아닌 '섬'이므로 이러한 주장은 상고할 가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3대 절기를 정하시고 두 절기를 실질적으로 이루셨는데, 아시아 극서쪽의 육적 이스라엘에서 유월절(마태~요한)과 오순절(사도행전~유다서)을 성취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율법, 시편, 예언서의 성취되지 않은 남은 말씀과 계시록)을 행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무능한 신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무능한 신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전능자로서 이 3대 절기를 반드시 다 행하시는데 있어(이사야 43:13) '유다'가 그 선두로 나서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며, 이 때 유다는 예수님의 피로 산 세계 이스라엘 12지파 중 거룩한 선지 국가로, 제사장 국가(출애굽기 19:5~6)로서 우뚝 설 '한 나라'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 장소에 있어서는 '동방', '땅 끝', '해 돋는 곳'이라고 분명히 못박으셨기 때문에 이 모든 조건을 예수 믿는 믿음 안에서 충족시키는 나라는 눈씻고 찾아보다도 고요한 아침의 나라 '동방 땅 끝 해 돋는 곳' 대한민국밖에는 없게 됩니다. 다음 구절들을 읽고 외쳐야 할 '유다'는 바로 우리 '대한민국'인 것입니다(이사야 24:15. 이사야 41:2,25. 이사야 46:11. 계시록 7:2. 이사야 59:19~60:1~13 / 구약 보여줄 때 = 민수기 2:3. 10:14. 사사기 1:1~2. 역대하 31:14. 스가랴 12:7. 창세기 49:8~12).
셋째,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아모스 9:9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심판을 놓고 벌어지는 인류 종말의 구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란 하나님의 선택 받은 언약의 족속을 의미하는 것으로, 계시록 7장은 '이스라엘'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자세히 뒷받침해 줍니다.
계시록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겠습니까? 율법만을 고집하며 양의 피로 제사하는 육적 이스라엘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예수 믿고 거듭나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교인들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당연히 후자일 것입니다(갈라디아서 3:27~29, 마태복음 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들 중에서도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라 기록된 사명자들을 다시 뽑아내는 역사가 마지막 때 등장하는 '동방'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 때 '우리가'라고 기록된 자들은 바로 '세계 영적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도 선두격에 해당하는 한 민족 '유다' 중에서도 더욱 선구자적인 시련을 거쳐 단련된 '인을 소유한 자들'이어야 합니다. 인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통치하에서 식민지노릇을 하고 있을 때, 동방 페르시아의 '고레스 정권' 아래서 복구를 받은 것처럼, 이제 진정한 '다윗왕국'(=메시야왕국)이 복구되려면 '구약의 표면적 바벨론'이 이면화되어 '21세기의 악한 죄악세계'가 된 것처럼(계시록 17~18장), '동방 페르시아의 고레스 정권'과 같은 한 나라 역시 '종말의 악한 바벨론' 세계와 맞설 수 있는 (영적) 무기를 갖춘 어떤 '한 나라'(혹은 세력)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세의 역사를 앞두고 성경의 '이스라엘'이 모두 다 저 '중동의 이스라엘'로 이해되어지는 무지(無知)는 철저히 배격되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세계화되었으니 '유다' 역시 세계화된 이스라엘 안에서 찾아져야만 합니다. 계시록 5:9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인맞은 자들은 순교자들과 더불어 새 시대에서 왕노릇을 할 자들인데(1차부활자), 이들은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린 자' 중에서 나온다고 하였으므로, 계시록 7장의 이스라엘 중에 '인 맞은 자'란 예수 믿는 '피로 산 교회'(사도행전 20:28)에서 나오는 말세 사명자들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육적 이스라엘과 더불어 세계 중에 가장 고난을 많이 받은 나라이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도를 많이 시키신 나라이며, 또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세계 사람들이 알아서 '극동', '동방', '동북아시아의 맹주'라고 불러 주는 나라입니다. 사단이 아무리 종말의 '영적 유다'의 사명을 방해하고 나와도 우리나라는 성경에 작정된 말세의 '동(東) 문지기 제사장 사명' 고레(KORE)의 역할을 하나님 앞에 이루어드리고야 말 것입니다. 역대하 31:14 "동(東) 문지기 레위 사람 임나의 아들 고레(KORE)는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맡아 여호와께 드리는 것과 모든 지성물을 나눠 주며..."
9. 현인(賢人)들의 증거와 자연적 계시!
성경적 인물은 아니지만 인도의 시인 ‘타고르’도, 루마니아의 신부 ‘게오르규’도 또 많은 세계의 철인(哲人), 현인(賢人)들의 저서에는 한국은 세계의 등불이 될 것이요, 무한한 에너지가 잠재해 있는 나라로서 세계가 해결치 못하는 인간 난제들을 해결할 것이요, 가장 거대한 대륙과 가장 거대한 대양을 이어주는 다리구실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전 세계에 생명의 메세지를 가져다 줄 영적 폭발력이 내재된 국가라고 암시하며 시사한 바 있습니다. 흔히 미국으로 유학간 학생들이나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은 그네들이 한국민족을 'tenacious peple'(트네이셔스 피플)이라고 부르는 걸 들어보게 됩니다. 이 'tenacious'라는 단어는 '절대 굽히지 않는', '고집하는(진리를 고집)', '저력있는',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서방인들의 인식 속에서도 한국은 '무언가를 꼭 쥐고 놓지 않는 고집 있는 나라', '저 동방 코리아는 불붙으면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나라'라는 의식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의 말을 의지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경에 기록된 사명을 믿고 깨달음으로써 일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기록합니다. 'Korean pine'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입니다. 이를 묵상할 때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를 물로 심판할 때 홀로 살아남은 노아 가정이 타고 있던 방주를 생각해 봅시다. 창세기 6:14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세계가 다 망할 때 인간을 살린 방주의 재료가 잣나무인데 그 나무의 학명이 'Korean pine' 곧 'Pinus koraiensis'라는 것을 알고 계셨는지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엄청난 영적 파워가 숨겨진 하늘의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아 때에 그 지방에 자라던 '잣나무'가 노아의 홍수 이후, 울릉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한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라고 있어 외국에서는 잣나무를 영어로 'Korean pine'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백과사전이 증거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바다를 건너온 소나무라는 뜻으로 해송(海松)이라 부르며, 신라가 잣을 중국에 수출했기 때문에 신라송(新羅松)이라고 부릅니다. 이렇듯 우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학자들과 외국인들이 알아서 그렇게 불러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깨닫고 힘을 내라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는 무지하여 원한적도 없었는데, 하나님은 위에서 친히 주관해 주셨습니다.
우리 국화 '무궁화'는 또 어떻습니까? 무궁화의 영어명은 '샤론에 피는 장미'라는 뜻의 'Rose of Sharon' 입니다. 찬송가 89장에는 "♬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로 시작하여 그 후렴에서는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샤론의 꽃 예수와 샤론의 꽃 무궁화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영적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게 됩니다. '샤론의 장미'의 향기는 질병과 고통하에 있는 자, 절망과 낙심 중에 있는 자에게 도움을 주어 왔다 합니다. 그래서 '샤론에 피는 장미'라는 무궁화꽃의 학명은 'Althea rosea' 곧 '약용 장미'라 합니다('Althea'는 그리스 말로 '치료하다'라는 뜻). 그렇다면 이것은 대한민국이 저주받은 6,000년의 죄악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택함받은 막둥이 나라로서 이제 저주가 사라지고 모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고(이사야 35:10), 만국을 소성시키는 순금등대 촛대교회(스가랴 4:6)의 역사를 감당하여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천년안식세계'로 세계를 인도할 '그리스도의 향기', '치유의 나라'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무궁화의 뿌리, 껍질, 꽃들은 위경련, 복통, 설사 등에 좋은 약으로 쓰였다 합니다. 아픈 상처를 치유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을 통해서 나타나야 하겠는지... 중동 지방의 유대민족이나 중동의 어느 동방 민족들 하나에서 나타나야 하겠는지... 영의 사람과 양심이 답을 줄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커다란 소망을 받은 민족입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내 생명이 참 사랑의 향기로 간 데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 (찬송가 89장)
5개월간의 창일한 홍수물(창세기 7:24)이 범접지 못한 방주! 5개월간 유유히 떠 올라 생명을 보존케 해 준 방주! 한국은 '첫째 화'인 '5개월 환난'(계시록 9:3~11)에서 황충 떼의 피해를 물리치고 세계의 양 떼를 살려낼 좋은 재목의 나라! 곧 잣나무(Korean Pine)의 나라입니다. 아무리 강한 원수가 짓밟아도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 하는 초등 음악책의 가사처럼 주님이 일으켜 다시금 살게 해오신 나라가 끈기 있고 저력 있는 이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이 나라 안에 잣나무와 같은 주의 귀한 성도들이 많이 숨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샤론의 꽃 예수의 향기, 곧 무궁화의 향기로 세계를 살릴 참된 종들이 많이 숨어 울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에스겔 9:4).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러한 영적 사실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어찌 게으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세계 중에서도 가장 부지런히 일해야 할 나라입니다. "빨리, 빨리"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KOREA' 한국 민족입니다. 이 민족성은 나라를 망치는 창피한 민족성이 결코 아닙니다. 이 급하고, 했다 하면 밀어 부치는 민족성은 때 5개월 환난 때 세계를 살리라고 하나님이 친히 다져 놓으신 우리의 자랑스런 민족성입니다. 앞으로 세계는 점점 더 잠(흑암)에 취해만 갈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유다 민족은 60억이 살고 있는 지구촌의 파수꾼 민족으로서 "♬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10. 육적(肉的)이건, 영적(靈的)이건 선택과 축복은 오직 '유다'에게...
1) 스가랴 12:7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거민의 영광이 유다 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유다 안에 다윗의 집도, 예루살렘도 속한 것인데, 도대체 어찌하여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시며, 어찌하여 다윗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신다 하셨는지...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육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다분히 영적이며 종말론적 말씀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예루살렘'을 현 중동지방의 공간적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예루살렘은 본래 이스라엘 12지파 전체가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지였으니 종말론적으로 이해할 때도 (공간 개념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기독교 제단(법궤를 좇는 신앙)의 차원에서 보아져야 합니다(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 곧 올바른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지명'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통일 왕이므로, '다윗의 집'은 통치가문입니다. 다윗의 통치 안에 이스라엘 12지파가 들어 있으므로 다윗 집의 영광이란 치리권자들(144,000)의 영광으로 보아야 합니다. 곧 종말론적으로는 예수님(다윗)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사명자들(계시록 14:4)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관건은 '유다'입니다. 스가랴 12장에 기록된 '유다'는 메시야 왕국 직전에 일어날 백마 2차 용사들 중에서도 두목에 해당하는 선구자들을 지칭하는 말씀이니 곧 '영적 유다'입니다. 이들은 세계의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말세에 다시 뽑히움 받아 사단과의 전쟁에서 최전방에 서야 할 '영적 선구자' 단체입니다. 이것은 4천 7백만의 대한국민 전체 백성이 아니고, 한국 안에서도 계시록과 예언서를 꿀같이 먹고 햇빛같이 증거하는 말세 사명자들로 제한지어질 것입니다. 세계적인 144,000명은 바로 이 '유다 두목들'에 의해 격동받아 전 세계적으로 확대된 무리일 것입니다. 유다를 '활'로 해서 나머지 11지파의 사명자들이 '살'이 되어 적기독의 무리를 친다고 예언된 스가랴서의 말씀(스가랴 9:13)은 바로 '유다 두목들'의 활동으로 시작, 성취됩니다.
2) 시편 76:1 "하나님이 유다에 알린 바 되셨으며 그 이름은 이스라엘에 크시도다 2 그 장막이 또한 살렘에 있음이여 그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3 거기서 저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깨치시도다(셀라)" - 종말에 대한 대부분의 예언에서 언제나 '유다'가 앞서는 것은 '유다지파'는 말세 선구자적 사명의 지파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3) 예레미야 33: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 공평과 정의를 실행하실 때는 주가 재림하시어 이 땅의 천년왕국이 펼쳐질 때이니, 심판기에 예수 재림을 사모하는 장막이 유다요, 예루살렘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육적 유다인을 종말론의 주인공인듯 해석하는 신학자들은 다 가짜인 것입니다(마태복음 8:11~12절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십시오).
4) 시편 78:65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 자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66 그 대적들을 쳐 물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시고 67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고 69 그 성소를 산의 높음같이, 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으며 70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71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72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 대적을 물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실 때는 종말의 심판기이므로, 이 때 이 사명을 행할 유다 지파와 시온산을 주님은 다시 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5) 이사야 26: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信)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 '성과 곽'의 역사 곧 성전건축과 성곽건축의 역사를 이면적으로 성취시켜 무서운 환난의 물결을 이겨내 '견고한 성읍'이 되어 기쁜 노래를 부를 장막! 그곳이 바로 '유다 땅'인 것입니다(제사장국가).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의 모든 기독교가 물량화되고 부패 타락해가도 꿋꿋이 서서 신(信)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되어 선지국가의 사명을 감당하므로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만 충만한 새 시대 건설의 주역이 될 나라입니다.
결 론
그런데 이 막중한 사명을 가진 땅 아시아 셈의 장막을 하나님을 무시하는 저 무신론 공산주의가 점령한 현실은 인간 종말의 비극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감사한 것은 유일하게 공산통치에서 벗어나 조금 남아 있는 땅이 바로 아시아 셈의 장막 동방 땅 끝의 해 돋는 곳 대한민국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가련하고 가난한 이 나라를 이렇게 남겨두신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셨는지요?
2차 세계대전이 종결 ⇒ 유엔 창설 ⇒ 거부권(veto) 행사권한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존재(미,영,불(프),소,중) ⇒ 중국 공산혁명(1949년) ⇒ 자유중국 모택동 공산당에게 나라 빼앗김(1949.12) ⇒ 안보리 상임이사국 4개국으로 축소(미,영,불(프),소) ⇒ 50년 6월 김일성 괴뢰군 38도선 전역에서 불법남침 ⇒ 유엔 안보리, 북괴 공격을 침략으로 규정하고 철수요구 결의안 채택 ⇒ 안보리이사회, 찬성9, 기권1, 소련의 거부권행사 거부로 유엔군 파병통과 ⇒ 율법과 시편과 예언서에 기록된 종말의 영적 유다(KOREA) 사명을 위한 하나님의 완전 보호 실행.
불과 1년이라는 시차인데, 중국은 도와주고파도 못 도와주고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 대한 유엔군 파병은 거부권을 가진 소련 대사가 행사권을 포기하므로 통과되었으니, 이렇게 되야만 하는 것은 계시록 8:7~12절의 예언같이 땅 1/3 이 붉은 공산당에게 점령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공산화되어야 하고 한국은 되지 않아야 하는 이 신비! 이것은 땅의 크기나 인구의 숫자보다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이 귀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역사의 한 폐이지일 것입니다.
깊이 깊이 묵상하고 또 묵상해 봅시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은 가장 큰 나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벼룩'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벼룩은 자기 몸의 볓백배를 뛰어 오르는 놀라운 동물이기도 합니다. 사무엘상 24:14~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자신을 '벼룩'에 비유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과 사울을 이기고 다윗의 왕국, 평화의 왕국을 이루었습니다. 동방 해 돋는 곳의 역사와 관련하여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동방역사는 다윗왕국을 건설하는 역사입니다. 구약의 모든 언약은 모두가 종말을 목적하여 보여주시는 예표적(그림자적) 사건들입니다(창세기 2:8. 이사야 46:10. 히브리서 10:1. 로마서 15:4. 고리도전서 10:11. 이사야 11:16. 미가서 7:15. 호세아 2:15).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볼 때, 대한민국은 반드시 목숨 바쳐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므로 세계에 우뚝 선 제사장 국가(역대하 31:14)가 될 것이요, 선지 국가(출 19:5~6)가 되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시편 144:15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 이사야 60:1 -
동방의 등불
- 타 고 르 -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 코리아(KOREA).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될지니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곳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다니엘 2:44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선지국가⇒메시야왕국)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우상세계)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다윗(예수)의 왕국, 평화의 왕국, 메시야 왕국을 이루심에 있어서 1등 종으로 택하심을 받은 나라! 그 나라가 바로 예의를 자랑하며 흰 옷 입기를 좋아하는 동방 땅 끝 해돋는 곳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임을 생각할 때면 자다가도 머리를 들고 기도하게 됩니다. 사명자들이여, 일어나소서! 할렐루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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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는 말씀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요한계시록 19:10 [개역]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답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모두 '예언의 영'입니다. 그 말씀을 받아 증거하는 종들의 말도 그 영을 받아 대언하는 것이므로 또한 '예언의 영'입니다. 예언하시는 자는 예수님 한 분뿐이시고, 우리 모든 사명자들은 그 예언의 영을 이 세상에 전파하는 대언자에 불과합니다. 진리란 말씀 자체이기 때문에 주님의 예언과 그 증거를 받은 자들의 대언을 통해서만 하늘의 진리가 이 땅에 전파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신령이시고, 그 영이 담긴 글자가 말씀(예언)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모세 5경(율법)은 예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모세의 입을 통해 전하신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모세 5경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이방 민족의 우상을 좇아갔습니다. 이 때 모세 5경(율법)대로 하라고 자기 백성을 쳐서 대언한 자들이 바로 '그 종 선지자들'입니다. 선지자들이 율법대로 행하라고 외친 말들이 그대로 전부 예언서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인 율법을 듣지 않을 때 그것이 더 많은 대언의 분량으로 재해석되어 사람을 통해 외쳐진 것의 총집합이 곧 '예언서'입니다.
그 예언서 중에 일부를 초림주가 오셔서 다 이루셨고(요 19:30), 이제 재림주께서 오실 때 나머지 말씀들이 이루어지면, 흰 말이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시록 6:2) 하신 백마의 두 번 승리가 성취됩니다. 이 진리를 사도요한은 다음과 같은 예언으로 받은 것입니다.
계시록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율법에서 예언서가 나왔고, 예언서 일부분의 성취가 4복음과 편지서로 나타났고, 예언서의 나머지 모든 말씀이 재림 시에 이루어지는데 그 정황을 묵시로 알게 해 준 것이 요한계시록이니, 요한계시록은 대언(예언)의 영의 핵심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는 예수에 대해서 증거한 책입니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 전체가 예수를 증거하고 있고, 성경 전체는 예수께서 증언하신 말씀입니다. 사명자는 그 증언에 불리움 받아 몸만 빌려드릴 뿐입니다. 다시 예언하는 144,000 명은 예수님께 몸을 바친 마지막 종들입니다. 그 사상이 순교적이므로 예수님께서 그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셔서(계시록 11:3) 당신의 예언이 다 대언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고로 율법이건 시편이건 예언서건 성경의 그 어떤 부분이든 그 말씀대로 믿지 못하고 행하지 못할 때 예수님은 심히 화내시며 강하게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4: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누가복음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의 증거가 대언의 영이라는 저 말씀은 예수를 증거할 사명자는 율법과 시편과 예언서를 이 시대에 대언(다시 예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예수께서 증거하시고자 하는 모든 진리는 율법과 시편과 예언서, 즉 성경 속에 '예언의 영'(=대언의 영)으로 다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미 죽은 순교자들도 예수의 말씀을 대언하다 죽었고, 144,000도 그리 하다 죽을 것이며, 지금 사도요한에게 묵시를 주러 심부름 온 천사도 주의 뜻을 대언하고 있을 뿐입니다. 말씀(진리) 자체는 예수님 한 분뿐이시므로, 천사건 인간이건 피조물된 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대언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밖의 것(월권)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 부족한 피조물들이 몸과 입과 정신만 내어드리면 주의 뜻이 전파될 수 있도록 주님은 미리 모든 것을 예언하여 성경에 기록해 두신 것입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아멘!
예수가 증거하신 것은 예언의 영으로 된 것입니다. 또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서는 대언의 영을 받지 않고는 안 됩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는 이 말씀에는 그러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 10: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 말세의 사명자들은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그대로 '대언'하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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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인생에 있어서 곤고한 생활이 있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곤고한 자체는 아주 버림을 당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요, 택함 받은 사람에게도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곤고라는 것은 택한 자에게 없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택한 자가 하나님을 경외해도 완전히 성신으로 이루어지는 인격을 받기까지는 자신 속에 싸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싸움이라는 것은 두 가지 법이 있기 때문이니, 첫째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고, 둘째는 그 법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첫째 사람은 양심이라 볼 수 있고, 둘째 사람은육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택한 자라도육체의 사람이 양심의 사람을 이기게 되면 죄를 짓고 양심의 사람이 육체의 사람을 이기면 의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곤고한 사람이 감사할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1.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과정 (22∼24)
현재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감사할 수 있는 과정을 거치는 자는 적다고 본다. 왜냐하면 죄와 싸워 보려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불신 사회는 말할 것도 없지만 교회 안에서도 죄와 싸워 이겨 보려고 곤고를 느끼는 사람이 적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고 죄와 싸우기에 곤고한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 있다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케 하고자 하는 사랑이 계신 동시에 죄와 싸우기에 곤고한 사람에게 완전이란 것을 주기 위해서 역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와 싸우는 자는 그 영이 하나님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하기 때문에 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요, 완전해 보려고 애쓰는 곤고한 자이기 때문에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도 요한1서 5:16에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를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범죄자를 위하여 저희에게 생명을 주시리라"고 말했던 것이다.
예를 든다면 군대가 적군과 싸우다가 피곤하여 쓰러질 때는 그 사람을 보호할 책임이 군부에 있는 것같이 이 세상 전쟁에서 죄와 싸우다가 곤고한 자를 하늘 본부에서 그를 버리지 않고 그에게 감사할 수 있는 일이 있도록 역사해 주는 것이다.
2. 예수로 말미암아 감사할 일 (25)
그리스도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것이니 중심으로 하나님의 법을 사모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믿는 자를 그 마음의 소원대로 이루어 주는 역사를 하는 것을 성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우리가 완전해 지므로 써 성신을 받는 것이 아니고 완전해지고자 하여 죄와 싸우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바라볼 때 다음과 같이 감사할 일이 있게 된다.
① 결코 정죄함이 없음 (8:1)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누구든지 중심으로 죄를 미워하고 주님을 향하여 나갈 때에 결코 정죄하지 않고 그 사람을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끔 역사하는 것을 십자가의 도의 역사라는 것이다.
② 참된 해방을 줌 (8:2)
이 해방이라는 것은 성신의 법으로 말미암아 주는 해방이니 이것을 십자가의 도의 역사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죄를 없이하는 능력이니 성령으로 와서 역사할 때 십자가의 능력이 믿는 자에게 오므로 죄를 이기는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일은 전부가 성신의 법으로 되는 것이니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는 생활이다.
하나님은 성신의 법에 의하여 역사하기 때문에 전부가 하나님께 감사할 것뿐이라는 열매를 성령으로 맺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으로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이루어 주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니 사랑이라는 것은 당신의 아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결 론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은 생명인데, 육체의 생명이 있는 '몸'에 곤고를 느끼게 되고 영적 생명이 있는 '마음'에 곤고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와 대립하는 세상에서 육이나 영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새로운 것을 받으므로 만이 곤고한 몸과 영은 소성을 받게 되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영적 곤고를 느끼는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인하여 감사하게 될 때에 그는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게 되었다(8:18).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자기에게 참된 해방이 온 것을 받는 생활에서 고난을 당한 것은 죄로 말미암아 오는 고난이 아니요, 자기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도 받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는 생활에서 기뻐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바울은 넉넉히 이기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8:37∼39).
복음적인 생활이라는 것은 전부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사하는 데서 모든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은 곤고한 사람을 찾는 사랑이요, 죄를 사하기를 원하는 사랑이요, 해방을 주기를 기뻐하는 사랑이요, 일한 대로 갑절이나 갚아 주기를 원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사랑을 받은 자는 억지로 하는 일은 전혀 없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영광으로 아는 생활에서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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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시험을 통해 오는 온전
시험을 통해 오는 온전
- 야고보서 1:1∼4 -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온전한 것을 주시기로 작정했고, 또는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온전을 준다는 것은 공의가 아니기 때문에 시험을 해보고 참는 자에게 온전한 것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에 있어서 온전한 것을 이루기까지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시험을 받을 자격 (1)
시험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된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는 법이다. 왜냐하면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은 시험을 통과시킬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라고 한 것은 영적 이스라엘을 가리킨 것이다.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하나님 편에 속한 자로서 마귀 편과 싸우는 생활을 하는 것이니 과거에 육적 이스라엘이 이방 사람보다도 시련이 더 많은 것은 이스라엘 나라로 말미암아 참된 영적 이스라엘의 교회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요, 영적 이스라엘에게 여러 가지 시련을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누구든지 중생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반드시 시험을 통과시키는 것은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2. 온전한 기쁨을 가지게 됨 (2)
기쁨이라는 것은 일시 흥분의 기쁨도 있고, 소망의 기쁨도 있으니 세상에 오락적인 기쁨이라는 것은 온전한 기쁨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시험이 올 때에 온전히 기뻐하는 것은 소망에서 오는 기쁨이라고 본다. 소망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시험을 통과하므로 이루어진 일을 말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지금 고난을 받는 것은 장차 받을 영광에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로마서 8:17∼18). 인생이라는 것은 온전한 기쁨을 가짐으로써만 발전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더욱 자라나는 지각이 있고 힘을 얻기 때문이다.
3. 인내를 이루게 됨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는 것도 있고, 상급으로 주는 것도 있으니 은사라는 것은 거저 주는 것이요, 상급이라는 것은 참았다는 조건으로 주는 것이다. 참음이 많을 적에 상급이 많고 참음이 적을 적에 상급이 적고 참음이 없을 적에 빈 껍데기만 남는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발전이라는 것은 참음을 통과하므로만 있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반열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악한 마귀를 들어 쓰는 것은 참음이 있나, 없나를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다.
4. 부족함이 없게 됨 (4)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게 해 준다는 것이 사랑의 한계가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낼 때에 부족한 사람으로 창조한 것은 시험을 통과시켜 본 후에 부족함이 없는 과실인 생명과를 먹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은 부족함이 없게 창조한 것이 아니고, 부족함이 없는 인격을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것이니 이 세상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을 이루는 인격 훈련소라고 보게 된다.
결 론
온전한 것이라는 것은 만물 중에 사람만이 받을 인격이 있고 특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것은 시험을 이길 수도 있고, 이기지 못할 때도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어 참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신 것은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는 동시에 참는 자로서 이룰 왕국 부서를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는 것을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인데, 마귀를 쓰는 것도, 성신을 주시는 것도 목적은 시험을 이기므로 온전함을 이루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역사이다.
야고보서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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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함을 얻은 자의 기도
- 요한1서 3:13~24 -
하나님은 거짓이 없는 신이시요, 능력이 무한한 신이신지라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에게 역사하는 신이시다. 기도라는 것은 마귀와 싸우는 전쟁에서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해주실 줄 믿고 구하는 것이니 누구든지 원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세상일에 끌리지 말고, 담대히 믿고 구하는 자라야 큰 열매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어떤 자라야 담대함을 얻을 수 있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16-19)
형제를 해치고자 하는 자는 비겁한 자요,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자는 담대한 자이다. 왜냐할 때에 형제를 해치려는 자는 그 마음에 은혜가 떠나고, 극도로 고통이 있고,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니 이것은 그 영이 활동을 못하는 증거다. 영이라는 것은 남을 살리고자 하는 일에만 활동하는 것이요, 해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적에 이것은 육의 정욕을 따라오는 것이니 영에 따라 움직이는 자는 담대함을 얻어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육을 따라 움직이는 자는 기도의 힘을 잃고 극도로 약한 자리에 떨어지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마음이 불탈 때에 하늘로부터 오는 큰 힘을 얻게 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싸울 적에 구하는 대로 응답이 나리는 것이다.
2. 양심에 가책이 없게 하는 자 (20-21)
사람이라는 것은 양심이 있는 것이니 누구나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할 때에 자동적으로 약해지고 겁이 나는 마음이 생기므로 그 사람은 하나님을 상대할 수 없고, 사람 앞에 보이려는 가면을 쓰게 된다. 이렇게 되므로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사람의 눈을 맞추어 일을 해 보려고 할 때에 그 사람은 기도할 수 없는 영이 되어 아무런 활동을 못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회개하고,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보다도 “하나님이여, 나를 아시나이다” 라는 양심에서 나가는 자라면 그 영은 하나님과 상대되는 심령으로 나날이 소성을 받아 담대함을 얻는 용사가 되어 하나님과 씨름하는 기도의 생활에서 야곱과 같이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지는 승리의 용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이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할 때에 용서 없이 징계를 나리는 것은 구하는 대로 주기 위한 목적이니, 언제나 양심적인 생활에서 하나님을 상대하는 생활이 있다면 기도의 큰 열매를 가져오는 사람이 될 것이다. 가장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인격을 찾지 않고, 사람 앞에 담대히 서려는 수단을 부리는 자이다.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큰 과오를 범하는 근본이 된다.
3. 주안에 거하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22-24)
인간이라는 것은 주님 품 안을 벗어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에는 타락의 본질과, 사망의 법인 마귀를 벗어날 수 없는 죄의 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5:6을 보면 사람이 내 안에 있지 않으면 열매 없는 나뭇가지같이 되어 불에 사름을 당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맡긴 사명에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자라야 주는 그 안에 있고 그는 주안에 있어서 담대한 사람이 되는 동시에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는 실천이 있고, 주님께서 가르친 말씀을 그대로 믿는 자에게 이루어지는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최고 인격은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는 것이니 이러한 자라면 무엇이나 구하는 대로 열매를 맺게 된다.
결 론
기독교는 담대함을 얻어 기도로 승리하는 것이 있으므로 흑암의 권세 아래서 죄인들을 해방시켜 천하에 교회를 확장시켰고, 종말에도 담대함을 얻은 자들이 기도로 승리할 때에 세계를 정복하는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된다. 누구든지 주안에 거하는 자라면 주의 임하시는 날에 담대함을 얻는 동시에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요한1서 2:28).
언제나 하나님께서 원수의 세력을 강하게 하시는 것은 담대함을 얻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으로 승리케 하기 위한 선한 방법이니, 우리들은 이 시대에 담대함을 얻어서 기도로 승리하는 용사가 되어야만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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