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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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을 받은 자는 신이다

- 요한복음 10:34∼39 -


요한복음 10: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39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말씀을 주실 적에 각자 각자에게 직접 주는 것이 아니고 대표적인 사람에게 말씀을 주는 동시에 그 사람을 신과 같이 들어 쓰므로 그 말씀이 널리 전파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바로 깨달아 믿게 하는 방법이라고 본다. 이제 하나님 말씀을 받은 자를 신과 같이 쓴 것을 성서를 보아서 알 수 있다.


1. 율법과 계명을 받은 모세 (출애굽기 4:11∼12, 7:1, 14:21)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국을 이룰 때도 말씀을 받은 모세를 신과 같이 쓰므로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해결하도록 하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말씀만 모세에게 주고 신과 같이 들어 쓴 일이 없다면 이스라엘의 왕국을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받아 기록한 사람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그 때 즉시 말씀이 이루어지는 때의 종은 신과 같이 썼고, 이루어질 것을 묵시로 받아쓰는 종은 잠잠히 글만 기록하는 것으로 머물러 둔 것이다. 모세는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말씀이 이루어지는 때에 말씀을 받아 가르친 종이므로 그 말씀이 응하기 위하여 신과 같이 쓰여진 것이다(창세기 15:12∼1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말씀대로 이스라엘이 이방의 객이 되어 애굽을 섬겼고 말씀대로 400년 동안 괴로움을 받았고, 말씀대로 그 나라를 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언제나 사람을 들어 쓰되 그 입과 손을 들어 쓰므로 입에도 손에도 열매를 맺게 하므로 신과 같이 역사하게 하는 것이다. 모세는 애굽 나라에 신과 같이 나타나서 역사하므로 그 압박 속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한 것이다.


2. 말씀을 받은 베드로를 들어 쓰심 (사도행전 3:6∼8, 5:3∼6)


많은 제자가 있지만 베드로를 통하여 신과 같이 역사하도록 한 것은 주님께서 "천국 열쇠를 네게 주노라" 하였고 또는 "내 양을 먹이라"고 한 것은 대표적인 사람으로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아무리 예수를 세 번씩 모른다고 부인한 실수도 있지만 말씀을 맡겼기 때문에 그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신과 같은 사람이 되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사도 요한은 아무리 십자가 앞에서 대신 아들이라는 명분까지 받았지만, 은혜시대의 복음을 맡은 자가 아니고 영원한 복음이 되는 계시록을 잠잠히 받아 기록한 것으로 끝을 맺었다. 사도 중에도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책임을 맡은 바울과 할례 받은 자에게 총 책임을 맡은 두 사도만을 들어서 놀라운 역사를 하게 한 것은 복음의 말씀을 위한 대표로 들어 썼기 때문이다.


3. 예언의 말씀을 맡은 증인 (계시록 11:3∼6)


모든 선지가 묵시의 말씀을 기록했지만, 그들을 통하여 큰 역사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묵시를 볼 때에 앞으로 동방 땅 끝에서부터 역사가 일어나되 원수를 회삼물같이, 진흙같이 짓밟고 나간다고 이사야 41:25에 말했고, 불 가운데로 지나도 불꽃이 사르지 못한다고 이사야 43:2에 말했고, 원수의 세력이 부끄러워 손으로 입을 막고, 귀가 막히게 되어 떨게 된다고 미가서 7:15∼16에 말했고, 하나님같이 쓰여진다고 스가랴 12:8에 말했고, 동북의 소문을 듣고 북방의 세력이 번민케 되어 발악적인 행동을 하다가 망한다고 다니엘 11:44에 말했으니 이 모든 성경은 다 말세 재앙의 날에 선지의 예언을 가지고 다시 예언하는 종들의 역사라고 보게 된다. 그 밖에도 모든 선지는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은 불이 되고 원수는 초개같이 된다고 말씀했으니(편주: 오바댜 1:18, 시편 83:13, 이사야 25:10, 41:2, 47:14, 예레미야 13:24, 말라기 4:1) 우리는 말씀을 받은 종이 신같이 쓰여진다는 것만으로 그 시대의 모든 난제를 해결한다고 믿는 것이다.


율법시대가 시작될 때도 말씀이 임한 자를 신같이 썼고, 은혜시대가 시작될 때도 말씀이 임한 자를 신과 같이 썼으니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마지막 역사에도 말씀을 받은 종이 신과 같이 쓰여질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모든 난제는 말씀이 임한 종을 신과 같이 들어 사용하므로써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하신 것을 어찌 폐할 수가 있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결 론


기독교가 산 종교라는 것은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으되 사람을 신과 같이 쓴 것으로써 그 시대 사람들에게 증거를 보여 주므로 원수의 무리를 이기고 나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일이 과거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게 되므로써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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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갚는 날의 영광

- 이사야 59:14∼21 -


이사야 59:14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 도다 15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 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공평이 없은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17 의로 호심경(護心鏡)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고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9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 임이로다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 당신의 영광을 사람에게 주기 위하여 이루어 놓았지만 사람이 영광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므로 범죄를 하게 되어 타락했지만, 다시 그 영광을 주고자 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40:5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이 이루어진 시대가 은혜시대라고 본다. 그러나 이제 원수를 갚는 날의 영광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강권 역사이다 (14∼18)


강권 역사가 없이는 원수를 갚는 날에 영광을 받을 자는 하나도 없으리만큼 부패될 것을 말했다(14∼15). 그러므로 하나님은 원수를 갚는 날에 하나도 쓸 사람이 없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라고 하였다. 이것은 강권을 뜻한 것이다. 택한 자를 강권으로 붙들어서 쓰시되 하나님의 의로써 당신의 종을 들어 쓰는 것이니 이 날을 원수 갚는 날이라고 했다. 강권 역사에 대해서 세 가지 요소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첫째 : 택한 자를 들어 쓰되 여호와의 도구로 쓰는 일,

둘째 : 열심을 주되 원수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일,

셋째 :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완전 개조를 시켜서 남은 자가 되게 하는 일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원수를 갚는 날이니만큼 택한 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일이므로 아담의 가정에서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피로부터 이날까지 순교자의 피 값을 갚는 일이니 만큼 그들의 기도가 응답으로 나리는 것이다. 계시록 6:10과 같이 피의 호소를 들으시고 계시록 7:2∼3같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역사를 강권이라 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급할 때에 강권으로 용사를 붙들어다가 싸우게 하듯이 원수의 세력을 없이하는 종말의 역사는 강권이 없이 안 된다는 뜻을 가르친 것이다. 인류 역사의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강권으로 역사할 때에 쓰여지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 하면 모든 선지와 사도와 성도들은 원수에게 억울하게 쓰러져서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갔지만 원수를 갚는 날에 쓰여지는 종은 원수를 짓밟고 나가기 때문이다(이사야 41:25).


2. 해 돋는 편에 나타날 영광 (19)


금일에 서방에서는 물질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여 그 영광에 도취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 동방 사람은 서방의 문명을 받아들여 그 지도를 받고 있다. 심지어 풍속까지라도 서방 풍속을 받아들일 때에 동방의 예의까지라도 서방의 풍속에 물들고 보니 이것이 동방 셈의 민족의 영광이라고 볼 수가 없다. 또는 소위 공산주의라는 침략적 정책이 동방 아시아의 기름진 땅을 다 점령하고 가장 아름다운 산까지도 메말라 붉은 산이 된 남한만 남았다는 것은 현재로 보아서는 영광이라고 할 수 없다. 본인이 이 나라에서 출생하여 57년 생활에 걸어 온 길을 돌아보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첫째 : 고아의 쓰라린 생활 15년


둘째 : 일본 제국주의 정치 아래서 압박을 받던 생활,  공산 정치 아래 무서운 박해를 받던 생활


셋째 : 6·25 동란의 피난민 생활


넷째 : 깊은 영계의 생활에서 심령적으로 쓰라린 영적 전쟁에서 군대 마귀와 싸우는 영계, 대장 마귀와 싸우는 영계, 붉은 용과 싸우는 영계에서


억울한 말을 많이 듣는 피해를 당하게 된 금일에 1971년 새 봄을 맞이하는 입춘 절기를 맞이하여 간곡히 바라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이 나라에 나타나 세계를 깨우치는 선지 국가가 될 것을 믿는 바이다.


3. 성결한 자로 입에 말씀이 임하는 일 (20∼21)


이날까지 많은 성자가 없는 것은 아니로되 그들은 다 완전 역사라는 것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원수를 갚는 날의 남은 종에게는 완전한 역사가 임할 것을 가르쳐서 죄과를 떠난 자라 하였고(이사야 59:20), 여호와의 신이 같이하는 자로 여호와의 말씀이 입에 있으므로 이것으로 영원한 새 시대를 이룬다고 했다. 이날까지에 모든 선지는 영광스러운 일이 두 번 있을 것을 말할 때에


첫째는 갈릴리 해변을 가르쳐 말했고


둘째는 해 돋는 편이라고 말한 것은


분명히 동방 땅 끝에 있는 우리를 가르친 말씀이다. 지금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가 부족한 이 사람의 입술에 말씀이 같이 해서 얼마든지 받아서 기록하는 대로 내 입에서 말씀이 나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나타날 일이 시작되었다고 믿어진다. 왜냐 하면 내가 연구한다는 것은 조금도 영광이 못되겠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이 나려 수많은 책자가 내 입을 통하여 계속으로 나릴 때에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나"라는 생각이 들어갈 때에 한 자 글도 쓸 수 없이 되기 때문이다.


언약의 말씀이 묵시로 나타난 나라(육적 이스라엘)는 적군에게 먹힘을 당해서 이날까지 긴 세월을 흘러 내려왔지만, 그 묵시의 말씀이 햇빛같이 나타나서 세계를 밝히는 그 나라(대한민국)는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나라라고 이사야 60장에 가르쳤으니 역사상 큰 영광은 해 돋는 편에서 원수를 갚는 날에 나타나므로 완전한 영광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인간들이 영광을 바라는 것은 욕망의 하나라고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원수를 갚는 날에 큰 화가 될 것'을 (도리어)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흑암으로 본다. 정권을 잡는 것을 영광으로 보고 물권을 잡는 것을 영광으로 보고 심지어 교회라 하면서 까지도 교권을 잡으려고 한다면 부패된 세상에 원수 갚는 일이 심판으로 오게 될 때에 (그 영광이 오히려 심판당할 조건이 되는 것이니) 영광이라는 것은 말씀대로 원수를 갚는 날에 그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종에게만 본문의 영광이 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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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증인의 심정

- 빌립보서 1:3∼11 -


빌립보서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기독교 안에 많은 사람이 진리를 증거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볼 때에 어떠한 심정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하여 모든 역사는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볼 때에 환영을 받고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것 같으나 그 열매가 완전한 것이 없다면 그 종의 심정은 바로 선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이제 참된 증인의 심정은 어떠한 심정이 있어야 완전한 열매를 맺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항상 간구하는 심정이 있어야 된다 (3∼4)


아무리 외형적인 열심히 있다 하여도 중심에 항상 간구하는 마음이 불타지 않으면 그 열심이라는 것은 얼마 가지 않아서 식어지고 말 것이다. 바울이 아무리 옥중 생활을 하지만 조금도 식어지지 않고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는 마음이 불탈 때에 비록 옥중에 있지만 옥중에서도 많은 열매가 있는 종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쓴 옥중 서신은 이 날까지에 큰 열매를 가져오는 진리 운동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항상 간구하는 마음이 있는 자라면 어디를 가나 항상 열매 있는 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간구하는 기도는 다 주님께서 책임을 질 일이기 때문이다.


2. 확신이 있어야 된다 (5∼6)


확신이라는 것은 양심적인 신앙에서 가지게 되는 것이니 조금도 인위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고 순수하게 주님의 역사에만 순종하는 자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마음에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은 모두 되어지는 일이 전부가 주의 역사에서 되어지는 일을 볼 때 자기를 확신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더욱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하는 일은 처음에는 될 것 같으나 그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볼 때에 낙망을 하게 되는 것이요, 참된 증인이 하는 일은 자기가 하는 일이 아니요, 그 증거의 말씀대로 신의 역사가 점점 강하게 일어나므로 실패 같으나 모든 일이 뜻밖에 이루어질 적에 더욱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증인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함 (7∼8)


세상에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자를 사모하지만 그 사모라는 것은 한 인정에 지나지 못한 것이로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하는 것은 인정적이 아니요 참으로 심장으로 그를 완전히 복을 받도록 하겠다는 불타는 마음에서 목숨을 바치기까지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되 그리스도의 영의 역사에 의하여 마음에 불타는 마음을 금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가는 종을 하나님은 인정하는 것이다.


4. 남이 완전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9∼11)


언제나 참된 종의 심정은 사랑하는 양 떼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이냐는 것을 심각히 생각해서 그 결말이 바로 되기를 바라는 심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거짓 선지라는 것은 일시 사람에게 흥분과 감정을 주는 것을 목적해서 자기를 따라오게 하려는 것 이로되 참된 증인의 심정은 양 떼가 점점 자라서 잘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흥분이 없이 완전한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을 목적하고 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양 떼는 임시 자기에게 좋게 하는 것을 따라가게 되므로 결말이 좋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주의 날에 부끄러움이 없이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하나를 목적 두고 일하는 것이 참된 증인의 심정이라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의 사업이라는 것은 참된 증인의 심정을 떠나게 되면 오히려 사회 기관보다도 더 가증한 일이 될 것이니 항상 간구하는 마음과 확신하는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과 남의 장래를 심각히 생각하고 나가는 마음이 있어야만 열매 있는 종이 될 것이다. 금일에 하나님의 종들이 이 네 가지 마음이 없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 예배나 그 전도나 기도를 받을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은 진노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완전한 사람은 없는 것이로되 참된 증인의 심정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완전히 들어 쓰므로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동시에 완전한 열매를 많이 맺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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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암 세력과 인의 역사

- 계시록 9:1∼6 -


요한계시록 9: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2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5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신이시니 빛도 어두움도 환란도 평안도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는 신이시다(이사야 45:7).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어두움의 권세를 먼저 역사하게 하고 다음에 하나님의 역사로써 어두움을 물리치고 승리케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 : 어두움을 들어서 미혹을 시켜 보는 것은 당신 말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이며,

둘째 : 말씀을 가지고 승리하는 종에게 왕권을 주기 위한 목적이요,

셋째 : 왕권을 가진 종으로써 완전한 승리의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이제 흑암의 세력을 내보내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이미 흑암에 잠겨 있는 백성을 구원하는 일 (이사야 9:1∼2)


이 흑암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범하므로 그 영과 육이 아울러 죽게 된 흑암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에게 법을 주고 간교한 뱀으로 꾀어 볼 때에 그 법을 지키지 못하고 범죄한 데서부터 인간에게 온 흑암이다. 이 흑암은 인간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가 없는 흑암이니 인간이 범죄 하므로 사망 아래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흑암을 통하여 세계 인류는 도저히 영생이라는 소망을 찾을 수 없게 된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한 승리를 이루는 십자가의 의로써 누구든지 그 의를 믿는 자는 그 흑암을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원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생이 자범죄를 벗어날 수가 없는 자리에 떨어지므로 흑암에 떨어진 것은 그 죄를 사해 주는 공로로만이 흑암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2. 해와 공기를 어둡게 하는 흑암 (계시록 9:1∼3)


이 흑암이라는 것은 사람이 범죄하므로 사망에 떨어진 흑암이 아니요 마귀에게 권세를 주어서 당신의 자녀를 미혹해 보라는 흑암이다. 에덴 동산에 죄가 없는 아담 하와에게 꾀어 볼 수 있는 권리를 간교한 뱀에게 맡긴 것같이, 말세에도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와 종들을 꾀어 보는 흑암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영혼 구원을 목적하는 역사가 아니고 변화 승천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하여 흑암의 권세를 개방시킨 것이다. 왜냐 하면 이 몸이 변화 승천하는 사람이 되려면 흑암을 뚫고 나가는 자에게 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흑암 세력은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도 미혹시켜 보는 흑암의 역사라고 본다. 범죄로 말미암아 흑암에 떨어진 영들은 십자가의 승리의 보혈로 해방을 받고 올라오는 것이요, 시험해 보기 위하여 허락한 흑암은 인의 역사를 통하여서만 벗어나게 된다. 이 인의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인인데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말씀 권세다


이 말씀 권세라는 것은 마귀를 없애 버리는 다림줄을 가르친 것이다. 보혈의 능력은 속죄의 권세가 십자가의 의를 통하여 따르는 것이요, 말씀 권세는 심판의 권세가 따르는 것이니 말씀으로 심판이 있고 새 시대가 오는 데는 아무리 마귀 흑암이 강하게 나온다 하여도 이 흑암을 들어 쓰는 것은 말씀 하나를 바로 증거하며 싸우는 사람으로 변화 승천의 역사를 하기 위한 목적이다. 독생자의 승리는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요, 심판의 말씀의 권세는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해 주고 원수를 갚는 권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심판의 변론의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종은 그 말씀 권세로 마귀를 물리치고 남은 종이 될 수 있다(이사야 59:2160:3). 예를 든다면 하루의 기간을 정하고 일하는 사람이 아침에는 태양 빛이 흑암을 물리치므로 그 빛 아래서 역사했지만, 다시 어두움이 올 때는 등불이 아니고는 일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의의 태양이 되시는 예수님의 빛의 역사에서 세계적인 대승리를 보는 기독교 역사가 있었지만 종말에 하나님의 종들을 시험해 보는 흑암이 나올 때는 말씀의 빛으로만이 흑암을 물리치고 나가게 되는 것이다(이사야 60:2).


2) 통치의 권세다


이 통치라는 것은 마귀 세력을 완전히 없애고 성도가 통치하는 것을 뜻했다. 그러므로 인 맞은 종들이 절대로 어두움을 이기므로 지상에 완전한 왕국이 인 맞은 종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통치 시대가 온다. 성신의 인은 천국을 이루는 역사라면 하나님의 인은 지상 통치 왕국을 이루는 역사라고 보게 된다. 왜냐 하면 에베소서 1:13~14을 보면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말씀했고, 하나님의 인은 계시록 7:2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 천사가 크게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하였고, 계시록 9:4절에 흑암에서 나온 황충이들에게 이르시되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 인의 역사는 세계 통일의 역사가 틀림없다. 계시록 14:1에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이 14만 4천은 변화 성도로서 세계를 통일할 승리의 용사를 뜻한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천국은 중생과 천국이요, 새 시대는 승리와 새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천국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지상 왕국은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말씀 권세역사로 승리하게 되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흑암의 권세가 세계를 덮고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가 악의 세력을 완전히 없애고 세계를 통일할 새 시대가 올 징조라고 보게 된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흑암의 세력을 뚫고 나갈 수 없는 난국을 당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권세의 사람을 들어 쓸 징조이니 우리는 인의 역사를 받기 위하여 노력하는 데는 말씀의 완전 무장을 갖추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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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해진 기도와 하나님의 진노

- 계시록 8:3∼5 -


요한계시록 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성도의 기도는 계통적인 기도이므로 서로 합해지는 것이다. 기도도 합해질 기도가 있고 합해지지 못할 기도도 있다. 우리의 기도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을 지어서 말할 수 있다. 죄를 고백하는 기도가 있으니 이것은 깨끗함을 받는 열매가 된다(요한1서 1:9). 또는 성신을 받기 위하여 합심 기도할 때 큰 역사가 임하게 된다(사도행전 1:14). 또는 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부르짖는 기도가 있으니 이 기도는 옛날 성도의 기도나 우리의 기도가 합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도 남을 살리기 위하여 부르짖는 기도는 종말에 진노의 날에 가서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왜냐 하면 모든 선지와 사도와 성도들이 쓰러지기까지 부르짖던 기도는 전부 심판 날에 가서 원수의 세력을 없이하고 새 시대가 올 때에 다 하나같이 왕권을 받게 되는 종들의 기도이므로 이들의 기도가 연합이 되므로 다음과 같은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1. 해 돋는 편에서 나오는 역사다 (이사야 41:25, 59:19, 계시록 7:2)


이것은 원수를 갚는 진노의 날의 역사를 뜻한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세 가지 요소를 말한 것이다.


첫째는 언약을 세우기 위하여 묵시를 보일 때에 예언적으로 보여준 역사도 있고, 또는 그 예언이 이루어지기 시작할 때에 이루어진 역사가 있으니 이것은 신약의 언약의 피로 성립된 구원의 역사다. 다음에 끝을 맺는 역사가 있으니 이 역사는 언약을 세울 때의 성도의 기도나 언약이 이루어지기 시작할 때 성도의 기도나 끝을 맺는 종말의 성도의 기도나 다 합하여질 적에 끝을 맺는 진노의 날에 남은 자를 통하여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 돋는 편에서 일어나는 역사는 동방 역사를 뜻한 것이니 이 역사는 원수를 없이하고 완전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역사이므로 모든 순교자나 변화 성도가 합하여 통치하는 지상 왕국이므로 진노의 날에 성도의 원한이 다 이루어지게 된다(계시록 18:20).


2. 권세 역사이다 (계시록 11:3∼6)


권세라는 것은 진노의 날의 역사를 뜻했다. 진노의 날에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종이 권세로 역사하는 것은 심판의 경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권세는 성도의 피 값을 갚는 진리 운동이니 환란 재앙에서 이 종의 전하는 말을 순종하면 진노의 날에 사는 것이요, 순종치 않으면 재앙을 받는다는 것을 권세 역사라 하는 것이다. 이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모든 성도의 기도가 합하여져서 일어나는 역사이니 칠 배나 강한 영감이 내리게 된다.


둘째 :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때에 진노의 하나님 대행자로 쓰여지는 것이니 그 종을 들어서 재앙으로 땅을 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다른 천사가 나타나서 보여준 묵시는 진노의 날에 일어날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계시록은 전체가 진노의 날에 될 일을 목적하고 보여준 계시이니 선지서와 목적이 같은 것이다. 선지서는 억울함을 당한 선지들에게 피 값을 하나님이 갚아 주고 새 시대를 이루겠다는 것을 목적으로 보여준 묵시요, 계시록은 그 묵시의 글을 종합하여 진노의 날에 전할 복음으로 조직화시켜서 보여준 계시이니 다른 천사가 7장에 하나님의 인을 들고 해 돋는 데서 나왔다는 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에게 승리의 역사로 오는 권세 인이다. 계시록 9:4을 보면 진노의 재앙이 올 때에 인을 맞지 아니한 사람만 해하라고 한 것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의 인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에게 주는 권세 역사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8장에 다른 천사가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아 성도의 기도와 합해서 하나님께로 올린다는 것은 계 5:8에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고 한 것을 보아서 합해진 역사라고 본다.


3.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종말의 역사이다 (계시록 10:7, 11:15)


천국을 목적한 복음 운동은 은혜 시대의 속죄 구령의 역사를 뜻했고, 종말의 성도의 기도가 몽땅 이루어지는 역사는 세상의 악의 세력을 없이하고 성도만이 통치하는 나라를 이루는 역사이니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부는 역사는 마지막 때에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심판기가 오는 순서를 보여준 것이다.


첫째 나팔은 혁명기, 둘째 나팔은 사회 혼란기, 셋째 나팔은 교회 혼란기, 넷째 나팔은 악의 발전기, 다섯째 나팔은 큰 시련기, 여섯째 나팔은 환란기, 일곱째 나팔은 심판기,


이렇게 계시록에 보여준 것은 인간 종말에 이러한 재앙이 올 때에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역사는 다른 천사가 작은 책을 들고 크게 외치는 역사인데, 사도 요한에게 이 책을 받아먹고 세계 만방에 다시 예언하라고 한 것은 기독교 종말에 새 시대를 이루는 복음 운동을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악의 세력이 최후 발악을 하는 역사와 의의 세력이 최고도로 강하게 역사하므로 원수를 이기고 지상 평화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목적하고 보여준 계시이니 기독교 종말의 역사라는 것은 부활 성도의 기도가 이미 금 향로에 담겨져서 말세 변화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역사가 일어나되 진노가 내려 악의 세력을 없이하고 완전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남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서는 자의 기도가 연합이 되어 종말의 역사를 일으키므로 완전 승리의 평화 왕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결 론


가장 위대한 역사는 합해진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역사라고 보게 된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완전한 평화 왕국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 이루는 것이 아니고 성도의 원한을 이루어주는 것으로 완전한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도록 종말에 진노를 내리고 당신의 종과 백성을 아껴 보호하며 왕권, 시민권을 주되 기도가 상달되어 역사를 일으킨 종은 왕권을 받고 역사를 일으킬 때 회개하고 돌아온 백성은 새 시대의 종족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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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인도와 두 가지 길

- 마태복음 7:13∼14 -


마태복음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하나님은 자유의 신이신 동시에 인생에게 두 가지 인도와 두 가지 길이 있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 : 순종의 여부를 따라서 갚아준다는 뜻이요,

둘째 : 하나님께 합당한 자를 찾자는 것이요,

셋째 : 사람에게 요구하는 대로 이루어 주는 것이니 이렇게 하는 것은 의로운 사람을 찾는 동시에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창조할 때에 두 가지 길을 갈 수 있는 인격을 주는 동시에 두 가지 인도가 있게 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두 가지 인도자 (스가랴 3:1∼5, 마태복음 4:1∼11)


이 성경을 보면 반드시 대표적인 사명을 가진 종들에게도 사단의 피해도 있고 천사의 인도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마귀도 천사도 하나님이 부리는 영이라고 본다. 왜 이렇게 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 :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인격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요,

둘째 :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역사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요,   

셋째 : 완전한 대표를 삼기 위한 목적이다.


예수님도 - 신성만도 아니고 인성만도 아닌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인격이지만 - 성신의 인도를 따라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에 나가서 오직 좁은 길을 가느냐, 넓은 길을 가느냐 하는 두 가지 시험을 가지고 시험해 보았던 것이다. 아무리 이적을 행한다 하여도 넓은 길을 가게 된다면 불법이 되는 것이다(마태복음 7:22∼23). 우리가 주의할 바는 아무리 사명을 맡은 자라도 두 가지 인도자가 나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잘 분별하되 이것이 하나님 말씀에 탈선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분별해야 될 것이다.


사단도 주의 종을 얼마든지 이끌고 갈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성신도 인도할 수 있는데, 마귀도 법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요 성신도 천사도 법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다. 불신자에게는 마귀 인도가 따로 있을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마귀에게 정복을 당해 있기 때문이다.


마귀는 어떤 방법으로 인도하느냐 하면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 같이 하면서 미혹을 주는 것이요, 성신의 인도는 구속을 받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는 자유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무조건 자유를 준다는 것은 오히려 그 아이를 망치게 하는 것이요, 그 어린아이를 자유를 주지 않고 어머니가 붙들어주고 안아주고 업어주는 것은 그 어린아이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피해를 당하기 때문에 붙들어주고 업어주고 안아서 보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신은 어린아이 같은 심령을 길러주기 위하여 조금도 잘못된 길에 서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항상 구속을 주는 것같이 하지만 실제는 그 길은 사는 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마음에 허황한 마음을 넣어주고 마음이 공연히 쓸데없는 일에 기울어지도록 만들어 놓고 또는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이상한 해석을 해서 사람의 마음에 임시 기분을 주는 일을 하므로 사람들은 마귀가 인도하는 길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마귀의 역사는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공연히 여러 가지로 치우치게 하는 마음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은 한 가지 획선이 있는데 그것을 생각지 못하게 하고 여러 가지로 이것 저것 생각이 나게 해서 이리 저리 치우치는 생활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을 마귀 미혹이라는 것이다. 하와에게도 이러한 시험으로 왔던 것이다.


첫째 :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볼 것이 아니라는 것,

둘째 :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

셋째 : 사람에게 절대로 피해가 오는 일은 없이 잘 될 수 있다는 것으로 꾀었던 것이다.


이러한 꾀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에게 오는 것이니 우리가 참으로 나를 인도하는 신은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친히 체험 하는데 서 분명히 분별해야 될 것이다. 금일에 많은 종들이 있지만 이것을 분별치 못하는 데서부터 영계 혼선을 가져오게 되고 큰 실패를 당하게 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무조건 다 하나님이 인도할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는 자에게 그 법대로 역사하는 것이니 언제나 두 가지 인도자(성령, 마귀)를 들어 역사하면서 당신의 사람으로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되 여러 가지 시험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 편주 ☞ 시편 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2. 두 가지 길


우리의 신앙 노선이라는 것은 두 가지 노선이 있는 것이니 여러 가지 방면으로 타협적인 노선을 갈 수도 있고, 절대 타협이 없는 순교적인 노선도 있는 것이다. 모든 선지나 사도들이 걸어간 노선은 순교적인 노선에서 인정을 받고 묵시를 받아 글을 쓸 적에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같은 야곱이요 시온의 자녀이지만 반드시 두 가지 노선이 있다는 것을 말할 때에 타협적인 노선은 심판 날에 망한다고 하였고, 순교적인 노선만이 승리의 왕권을 받는 노선인 것을 가르친 것이니 언제나 소수의 사람이 순교의 길을 갔고 다수의 무리가 세상의 권리를 쥐고 세상 향락에 도취가 되어 순교적인 신앙 노선을 걷는 자를 오히려 무시하고 어리석은 사람의 하나로 인정했던 것이다. 홍수 심판 시에도 수많은 의 후손이 다 노아의 방주를 부인하고 넓은 길을 갔던 것이다. 다윗 왕국의 말기에도 많은 사람이 참된 선지 예레미야를 무시하고 넓은 길을 가다가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메시야를 영접하는 때에도 많은 사람이 다 넓은 길을 가고 십자가의 길을 무시하다가 예루살렘이 다시 멸망을 한 것이다.


언제나 흑암의 인도라는 것은 자세히 성경이 읽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요, 또는 성경을 해석하되 비밀에 탈선된 해석을 하도록 하여 인생에게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마귀가 끌고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시대가 변천될 때에 소위 하나님만 공경한다는 자들이 다 속화 되어서 넓은 길을 가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나타나서 역사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알려주는 일이 없이는 그 비밀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기독교가 소위 평화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소위 기독교의 사랑이라는 것을 가지고 세속화 신학이라는 것까지 말하게 된다는 것은 넓은 길이라고 본다.


이제 동방 땅 끝 한 모퉁이에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입에 말씀이 임하여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월간지를 내게 되는 것은 현 교계가 볼 때에 도저히 찾기가 어려운 세계의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신앙 노선이다(계시록 10:7).


과거 선지시대에도 좁은 길이요, 은혜 시대에도 좁은 길이요, 재앙의 날에도 좁은 길이 되는 비밀을 말한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란 것이다.  말세 재앙의 날 남을 자 쫓겨나는 자요, 미움받고 멸시받고 억압을 받고 지렁이 같이 짓밟혀 무시를 당하는 자가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의 선구자가 될 것을 말한 것은 기독교는 끝까지 좁은 길을 가는 자로 새로운 시대를 이룰 것을 뜻한 것이다.


결 론


의로운 심판이 있게 되는 것은 두 가지 인도자를 내세워서 두 가지 길을 가게 한 후에 심판을 내리는 것이니, 심판 날에 남을 자가 되려면 좁은 길로 인도하는 인도를 받아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야만 지상 왕국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왜냐 하면 과거에 모든 선지나 사도나 성도들이 다 좁은 길을 가다가 순교를 했고, 이제 남은 종이 될 변화 성도도 좁은 길을 가다가 변화 승천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국이라는 것은 좁은 길을 가던 자에게 왕권이 있게 되므로 성도의 나라가 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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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위력과 임마누엘의 날개

- 이사야 8:5∼8 -


이사야 8:5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일러 가라사대 6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7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하셨느니라"


조물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원수에게 위력을 먼저 주시고 그 위력 앞에 모든 사람이 떨게 될 때에 홀연히 원수의 위력을 없이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므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일을 행하시는 것이니 과거 이사야 시대에 북방 앗수르의 위력을 들어서 부패한 이스라엘을 짓밟고 들어오게 하는 동시에 히스기야 왕의 간곡한 기도로써 북방에게 승리하게 하는 증거를 보여주면서 인간 종말에 대한 묵시의 말씀을 책에 기록하게 하여 세계 인류에게 전하게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경고가 됨 (5∼7)


이스라엘이 생명수와 같은 말씀을 버리고 이방적인 세력에게 속화가 되는 사마리아가 될 때에 앗수르를 들어 막대기를 쓴 것은 심판기에 부패한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고 이방과 타협할 때에 북방으로부터 심판의 위령을 가진 악의 세력이 올 것을 말씀한 경고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는 예언적으로 나타난 역사도 있고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나타난 역사도 있으니 악자를 들어서 쓴 것도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하나가 되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도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니 과거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일은 임마누엘을 통하여 나타날 증거로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계통적인 역사니 묵시를 받는 선지들이나 묵시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은혜 시대 역사나 심판기의 역사는 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계통적인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도록 끔 하신 하나님께서도 계속적으로 역사하는 것이요, 그때 마귀 앞잡이로 역사하던 악의 세력도 계통적으로 역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큰 전쟁이 있을 때에 한 사람으로써 그 전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아무리 희생자가 있다 하여도 계속으로 용사를 공급하는 나라가 되어야 전쟁에 승리할 수가 있는 이치와 같다. 만일 어떤 나라가 전쟁을 시작하고 희생자가 있다고 하여서 용사를 보충시키지 못한다면 그 나라는 반드시 패전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마귀와 싸우는 용사를 들어서 과거 앗수르, 바벨론 시대에 싸우도록 한 것이 구약 선지시대라는 것이다. 모든 선지를 통하여 하나님은 묵시로 말씀을 주실 적에 끝까지 승리하도록 계속으로 마귀편과 싸우게 하므로 필연코 이스라엘 왕국이 새 시대를 이룬다고 말씀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선지서다. 그러므로 끝까지 악의 세력이 강하게 일어날 것을 말씀했고, 또는 하나님의 종들도 더 강하게 일어날 것을 말씀할 때에 먼저 임마누엘이 되는 그리스도의 역사를 말할 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했고, 임마누엘이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는 일을 하므로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말했다(이사야 7:14∼15).


그러므로 지금 북방의 공산당이 앗수르계의 계통이라면 우리 성도는 다윗의 뿌리가 되는 임마누엘의 계통이라고 보게 된다. 우리의 사명은 독립적인 사명이 아니고 계통적인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는 다윗의 뿌리라고 말씀하셨고 또는 그 자손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신성과 인성을 가르친 것이다(계시록 22:16).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나시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인 신으로 역사해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다윗 왕국을 이루었으므로 다윗의 뿌리가 되는 신성을 가졌고 또는 다윗의 자손으로 탄생하시어 완전히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으므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다윗 왕국에 들어갈 자가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되었고 종말에 변화 성도를 통하여 완전히 마귀 세력을 지상에서 없이하는 대 승리를 이루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 선지서에 가르친 말씀이다.


북방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게 멸망을 당하게 되고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은 이스라엘 계통인 변화 성도를 뜻한 것이다(이사야10:22∼23).


2. 임마누엘의 통치 (8장, 9:6∼7)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고, 아담을 창조할 적에 아담을 통하여 세계를 통일하는 나라를 이루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왜냐 하면 아담을 통하여 영광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면 성부, 성자, 성신님께 영광이 될 수 없다. 왜냐 하면 영원한 나라를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 놓으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의 한 일을 자랑하는 일이 되겠으므로 가장 간교한 뱀을 창조하여 사람을 꾀어 보게 하고 사람이 어리석어서 꾀임을 받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인생을 버리지 않고 성부, 성자, 성신이 사람에게 역사해서 타락한 인생을 다시 구원해주므로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가르쳐서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고 하신 것이다.


예를 든다면 비행기가 공중으로 날 때 날개 없는 인간이라도 그 비행기를 타면 같이 날게 되듯이, 누구든지 완전하신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의 완전 승리의 역사의 힘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생들이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을 창조할 때에 임마누엘의 역사를 믿어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목적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범죄케 하는 신은 아니다. 사람이 약해 범죄 하더라도 임마누엘의 역사로써 택한 자를 구원하여 승리하게 되도록 역사해 주는 것을 임마누엘의 나래라는 것이다. 어떤 신학자가 예정론을 말할 때에 사람이 타락하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라 하는 것은 탈선된 학설이라고 본다. 사람이 마귀에게 꾀임 받아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예정한 목적을 이루어 놓는데는 임마누엘을 통하여 이루어 놓되 회개하는 자의 죄를 사해 주시고 자기의 부족을 깨닫고 지혜를 구하면 지혜를 주고 능력을 구하면 능력을 주되 택한 자에게 회개하도록 징계하시고 완전한 인격을 이루도록 하시되 택한 자에게 믿음을 주어서 믿고 구하는 대로 주는 것을 임마누엘의 역사라는 것이다.


결 론


완전이라는 것은 독립적인 완전이 없고 대상자가 있으므로써만이 완전이라는 것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스스로 계신 완전한 신이 있다 하여도 그 신께서 홀로는 완전이라는 것을 나타낼 수 없되 완전 역사를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되는 인생이 있으므로써 신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피조물된 인생에게 완전한 열매가 되는 것이다. 또는 인생으로 하여금 신의 완전한 역사를 받는다 하여도 사람에게 원수가 되는 세력이 없다 해도 신의 완전 역사는 인생에게 큰 영광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금일에 우리의 원수가 되는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남으로써 임마누엘의 나래가 되는 강한 역사가 우리에게 완전한 열매가 되므로 새 시대가 완전히 이루게 되니 이것을 가르쳐서 북방의 위력과 임마누엘의 날개의 역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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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적인 신앙의 계통

- 요한복음 1:39∼51 -


요한복음 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십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 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기독교는 계통적인 신앙이 있는 것이니 이 계통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1. 오실 메시야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된 계통 (39∼45)


많은 사람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들은 이방 갈릴리를 찾아가서 맑은 공기, 맑은 물을 벗삼고 기도하면서 고기를 잡는 생활에서도 양심을 살려 가며 기도의 한 클럽이 되어 벳세다 동네를 자리잡고 오실 메시야를 고대했던 것이다. 이 때에 헤롯의 정치 부패, 바리새교의 영계 부패, 그 지도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직접으로 교통하는 한적한 곳을 찾아간 그의 신앙 믿음으로 사귀어진 친구들이 사도의 한 클럽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순수한 성경 본문 주의에서 기록한 그대로 될 것을 믿었던 것이다.


신앙 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절대로 두려워하는 동시에 그대로 믿는 신앙이라야 사도적인 신앙이라고 보게 된다. 이들은 나사렛 목수 예수를 볼 때 성경에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고 45절에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신앙을 가진 자들을 갈릴리 바다 옆으로 인도한 것은 그들은 자기네가 거기서 메시야를 영접하리라고 생각한 바는 없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예정 아래서 인도했던 것이다.


지금도 택한 사람은 자기가 계획한 바는 아니로되 하나님의 신이 인도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한 동네에서 살 때에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함께 사도가 되자는 생각조차 해 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한곳으로 모아서 메시야를 영접하게 한 것이다. 지금도 순수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들어 쓰기 위해서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한 클럽이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것이다.


2. 간사함이 없는 사람들이다 (46∼47)


신앙이라는 것은 조금도 간사함이 없는 자라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니 나다엘이 참된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은 간사함이 없다는 조건이다. 간사함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은 비밀을 알려 주기도 하시고 그를 들어 쓰기도 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혈통에 관한 것보다도 사상, 정신, 양심에서 간사함이 없는 자라면 하나님은 그를 찾으시는 것이다. 완전한 사람이 되므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고 간사함이 없는 자라면 그에게 사명을 맡겨 일할 수 있도록끔 지혜와 능력을 주어서 역사 하는 것이다.


3. 하나님만 상대하는 생활이 있다 (48∼51)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하나님만 상대하는 숨은 기도, 숨은 봉사, 숨은 중심 성결이 있어야 된다. 은밀한 가운데 살피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 알게 일하는' 자에게 역사하는 신이시다. 누구든지 작은 일에 충성을 하되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을 중심 할 때에 놀라운 역사를 할 수 있는 영계를 얻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도들이 완전한 권능을 못 받고 완전한 신앙 지식에 들어가지 못할지라도 그들이 그 시대에 가장 합당한 자라는 것을 주님은 인정하시고 그들을 부르셨던 것이다. 지금도 누구든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며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라면 주님은 그들을 통하여 재림의 주를 영접하도록 역사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것은 언제나 계통이 있는 것이니 사도들이 메시야를 영접할 때에 가졌던 계통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까지 그 계통으로 끝을 맺게 될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은혜를 크게 받음으로써 바로 선다는 것보다도 바른 신앙을 가질 적에 큰 변화를 받게 되며 큰 역사를 받게 되므로 시대적인 역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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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재림 시(時)까지 머물게 한 사명

- 요한복음 21:21∼23 -


요한복음 21: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금일에 기독교는 이 날까지 머물게 했던 사명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시대를 따라 종을 들어 쓸 적에 성경이 없이 들어 쓴 종도 있고,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들어 쓴 종도 있고, 기록한 성경을 바로 가르치기 위하여 들어 쓴 종도 있다. 먼저 성경이 없이 들어 쓴 종은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들어 쓴 종은 첫째 모세니 이 사람은 몽학적인 율법을 받아 기록한 종이다. 그 때에는 율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모든 종을 들어 쓰되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가르치는 시대가 있었다. 또는 언약의 말씀인 예언서를 기록한 종들이 있으니 이것을 선지 시대라는 것이다.


이 종들로 기록한 글은 몽학적인 교훈이 아니요, 여호와께서 앞으로 말세에 행하실 일을 묵시로 나타나 말함으로 기록한 자들이다. 그 시대에는 선지서를 가르치는 때는 아니었다. 오히려 율법을 가르친다는 성전에서 참된 선지들이 묵시로 받은 책을 반대하고 심지어 불살라 버리는 일까지 있었다. 그 때 사람이 이 글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단시하고 배척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탄생할 때부터 재림 시까지는 율법을 가르치는 시대가 아니고 선지서를 가르치는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선지서를 가르치는 사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선지서를 가르치는 사도들을 박해하는 때가 있었다


이 때는 소위 율법주의에 빠진 자들이 율법을 가르치면서 선지서를 가르치는 일을 반대했던 것이다(사도행전 3:24∼26, 4:1∼3). 아무리 율법주의자들이 반대해도 담대히 선지서를 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때가 사도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성경을 해석해 주었던 것이다(누가복음 24:25∼27, 44∼47). 이렇게 성경을 깨닫도록 가르친 것은 사도들이 성경을 해석할 범위를 말씀하되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한 성경을 가르친 것이다. 지서를 깨달은 사도들은 4복음을 기록할 때에 선지서를 가지고 해석하면서 예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이것이 은혜 시대의 종들이 성경을 가르치는 지식의 한계가 되었던 것이다(베드로후서 1:19∼21). 어느 사도나 다 하나같이 예언서를 들고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초대 교회 교훈이었던 것이다. 그 때는 신약 전서가 있던 것이 아니요 성경을 가지고 증거할 때에 사도들은 율법을 가르치는데 목적을 둔 것도 아니고, 선지서를 가지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동시에 예수 행적을 말하게 되었던 것이다(사도행전 13:27∼30).


그 때를 지나 모든 사람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그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여 그대로 저술된 것이 복음서이다(누가복음 1:1∼3). 그 때는 성경을 새로 기록한다는 목적이 아니고 성경대로 이루어 졌다는 것을 전하기 위하여 예수 행적을 썼던 것이다. 또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자는 성신이 오셔서 역사할 때에 선지서의 예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기록했던 것이다. 편지서를 쓸 때에도 선지서를 증거하되 예언대로 은혜 시대가 왔으니 우리는 이루어진 십자가를 믿고 이루어진 성신의 역사를 받았으니 이리 저리 치우치지 말고 신앙 생활을 바로 해 나가라는데 대하여 권면을 했던 것이다.


그 후에 사도들이 기록한 책을 그대로 전하기 위하여 싸워 온 것이 기독교 역사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이 날까지의 사명에서 사도가 쓴 성경해석 외에 해석을 더할 자는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날까지의 정통 학설은 사도들이 해석하여 놓은 해석에 의하여 좀 더 변론을 세밀히 말한 것 정도요, 이것이 오늘까지 정통 신학의 학설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러나 성신이 충만치 못한 사람들이 쓴 일부 학설이 세력을 얻어 교계를 지배하게 될 때에 금일에 영들을 죽이는 쑥물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날까지 하나님께서 머물러 둔 사명은 무엇이냐는 것을 이제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전한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복음에는 예수님이 전한 천국 복음이 있고(마태복음 24:14),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전한 복음이 있는데 이것은 천국을 목적한 복음이 아니요 지상 왕국을 목적한 복음이다(계시록 11:15). 천국 복음은 베드로에게 맡긴 사명이요, 지상왕국이 오는 영원한 복음은 요한에게 계시로 보여준 복음이다. 바벨론이 망하고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이다(계시록 14:6∼7, 20:1∼3).


기독교에 머물러 있던 사명은 붉은 짐승의 표를 받으면 죽고, 안 받으면 이 세상이 불타는 날에 남은 백성이 되어 새 시대 간다는 복음이다. 이 복음은 선지서에 기록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죽어 천당을 목적한 말씀이 아니요, 몸에 사망이 온 땅에 사망이 없는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이사야 25:7∼8). 인간에 사망이 온 것은 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니 죄를 없이 하고 사망을 없이 하는 세상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종들로 큰 축복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에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의 재림이 임하는 날에 남은 종이 전하는 복음이다.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는 변화 성도가 전할 복음인 동시에 심판의 다림줄이 되는 것이다. 요한은 계시를 볼 때 인간 종말의 역사는 해 돋는 편에서 일어날 것을 보았고 자기가 받은 진리는 재앙의 날에 읽고 듣고 지켜야 될 말씀이라고 받았던 것이다. 이 재앙이라는 것은 인류 전멸의 재앙이다. 금일의 기독교가 머물렀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이 사명을 바로 찾아서 역사 하는 일이 없다면 극도로 위기를 만난 것이 71년도부터 오는 시기라고 본다(1972년 2월달 제작문서임). 그러므로 주님께서 요한에게 이 계시를 보이기 전에 베드로가 묻는 말에 대하여 요한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머물러 두겠다고 하셨던 것이다. 선지서를 전하는 사명에 있어서 사도들은 선지서를 들고 십자가 부활을 증거했지만 재림 시에 남아 있는 변화 성도는 선지서를 들고 심판과 새 시대를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때부터 선지서를 그대로 읽어서 전하는 때가 왔으니 이 말 저 말 쓸데없는 학설을 듣지 말고 선지서 전체를 그대로 전하는 자로만이 새로운 역사를 받음으로 완전한 승리의 용사로 새 시대를 정복하게 될 것을 명심하자.


결 론


선지서를 전하는 종들의 축복은 다음과 같다. 선지서를 들고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던 종들은 은혜시대를 이루었고 선지서를 들고, 심판과 새 시대를 증거하는 종들은 새 시대를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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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된 자격과 사명

- 사도행전 1:21∼23, 계시록 10:7∼11 -


사도행전 1: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저희가 두 사람을 천(薦)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계시록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독생 성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증거할 신앙의 대상자로 세우기 위한 목적이므로 친히 제자를 불러서 항상 같이 하게 하는 동시에 우리 주님께서 3년간 함께 하던 종들을 증인으로 세우시고 주님은 승천하신 것이다. 먼저 제자를 택하여 세울 때에 완전한 종으로 쓴 것이 아니고 완전한 종이 될 수 있는 증인을 삼아서 그들이 보고 듣고 만진 바를 증거하므로 누구든지 그 증거를 믿으므로 만이 구원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이제 증인된 자격과 사명에 대해서 본문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부활을 증거하기 위한 자격과 사명 (사도행전 1:21∼23)


아무리 사명을 맡은 자라도 (주님이) 그 사명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맡기고는 그 즉시에 들어 쓰는 것이 아니고, 그 사명을 할 수 있는 인격을 먼저 이루어 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롯 유다는 사명을 맡았으나 그 사명을 할 수 없는 자이므로 타인에게 옮겨갈 때 요한의 세례로부터 주 예수께서 승천할 때까지 항상 같이한 자를 택하여 가룟 유다를 대신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은 자라야 12 사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12 사도는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고 예수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라는 것을 먼저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율법 시대의 선지 사명은 세례 요한으로 끝을 맺고 그의 제자로서 예수를 증거하게 된 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란 사람들은 선지 사명이 아니요 선지자의 증거를 듣고 이루어진 것을 본대로 나가 증거하는 자들이다. 세례 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요 1:29) 할 때에 그 증거를 믿고 따라가서 (예수께서)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것을 친히 보았으므로 그들은 세례 요한의 증거가 참으로 그대로 이루어 진 것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인줄 믿기는 했으나 분명히 만민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후에야 증거할 자격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요한복음 10:40∼41).


둘째 : 끝까지 따라 왔다는 것이 증거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고 예수를 따라가던 자라도 끝까지 남아 따라가던 자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할수 있는 증인의 자격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완전히 보고 친히 들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도의 증거는 이루어질 것을 증거하는 사명이 아니요, 이루어진 것을 증거하는 사명이기 때문에 항상 예수와 같이 한 자라야 (사도가) 될 수가 있다.


셋째 : 승천할 때에 친히 본 자라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 승천하는 것을 본 자들은 주께서 친히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권능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8)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대표적인 종을 세울 때는 친히 보고 듣고 체험한 자로서 선구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선구자가 완전한 증인 자격이 없다면 이것은 아무런 열매를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넷째 :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명은 죽은 영을 살려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명이다. 누구든지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의 말을 듣고 의심없이 믿는 자는 즉시에 중생을 받는 체험을 받게 되므로써 중생을 받은 자로 사도의 사명을 계대하는 자가 된 것은 그들은 친히 예수를 따라가며 보고 듣고 만져본 사람들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사도들의 증거를 의심없이 믿을 때에 자기가 받은 체험이 있기 때문에 사도의 증거를 자기도 다시 증거할 수 있는 증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이날까지 증거한 목적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온 천하 사람이 다 믿으므로 중생을 받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중생과 천국이라는 것이다.


2. 다시 예언자의 자격과 사명 (계시록 10:7∼11)


사도 요한이 기독교 종말에 끝을 맺는 말씀인 계시록을 받을 때에 십자가에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서 안팎으로 가득히 기록한 책을 하나님께로 받는 광경을 계시록 5장에서 보았고, 그 책에 봉한 인을 뗄 때 백마 탄 자가 나타나서 두 번째 이기려고 하는 광경이 나타났고 다음에 붉은 말, 검은 말, 얼룩 말, 세 말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심판기에 심판의 대상자는 붉은 말, 검은 말, 얼룩 말인데 심판자는 백마란 뜻이다. 그러므로 다시 예언이란 뜻은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가 된다. 이 진리를 증거하려면 하나님의 비밀이 옛날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먼저 꿀같이 받아 먹되 사람에게 받아 먹는 것이 아니고 직접 하나님께로 받아 먹은 자로서 아무리 쓴 시련이 와도 달게 먹은 책을 토하지 않고 끝까지 이기고 나아간 자라야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계시로 받았지만 기독교 종말에 가서는 보고 기록한 계시록의 비밀을 꿀같이 하나님께 직접 받아 먹고 시련을 이기고 나가는 자가 나올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는 자의 자격이 이루어지는 순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은혜 시대의 종은 중생을 받은 자라면 자기가 받은 체험이 있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는다는 것을 말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예언자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책에 기록한 대로 몽땅 먹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그 종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 한 사람에게 기독교 종말의 비밀을 다 알려 주므로 꿀같이 먹게 된다는 것이다. 이날까지 십자가를 믿으므로 중생받은 사람은 많이 있지만 기독교 종말의 진리를 하나님께로 받아서 꿀같이 먹은 자는 전혀 없었다. 이것은 심판기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비밀을 종들에게 꿀같이 먹도록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심판기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종에게 꿀같이 먹도록 알려줄 것을 보여준 것이다.


둘째 :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쓴 것을 통과시키는 것은 꿀같이 먹은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나 시험해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을 완전히 변론하여 다시 예언하려면 그만한 영계에 도달하도록 쓴 시련을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다시 용서할 기회가 없는 때이니 만큼 미리 시험을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셋째 : 세계적인 대표의 사람이 되어야만 되는 것이다. 왜냐 할 때에 심판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구원 문제가 아니요,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그날에 받는 구원은 인류적인 큰 구원이 되는 문제이므로 세계통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영계에 올라가야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말씀대로 죽기까지 순종했으므로 세계 인류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열매로 나타났고, 말세에 다시 예언자가 나옴으로써 환란과 재앙 속에서 세계 인류가 그 예언을 듣고 지키므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을 믿으므로 가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다시 예언하는 말을 순종해야만 재앙을 면하고 천년 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계시록11:1에 성전과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 한 것은 세계적인 대표의 사람의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종들이 통일될 것을 뜻한 것이다. 지금 기독교 지도자들의 영계 혼란과 진리 말씀에 혼선을 바로 잡는 것은 다시 예언자가 나오므로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언제나 대표적인 사람을 먼저 세우고야 역사하시는 것이니 할례 언약에 아브라함, 율법과 계명에 모세, 부활을 증거하는 일에 12 사도, 예언을 다시 증거하는 일에 두 증인 이렇게 되므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세운 언약이 다 이루어지므로 지상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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