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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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본 가정

- 요한복음 11:17∼44 -


요한복음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의 맞던 곳에 그저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의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어 많은 가정을 친히 방문했지만, 나사로의 가정을 제일로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는 슬픔의 가정, 낙망의 가정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 없는 고아들이 나사로 하나를 믿고 마르다 마리아가 그 날 그날을 살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두 딸을 두고 한 독자를 불러 가신 하나님 앞에 이 가정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만한 가정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슬픔과 낙망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원망치 아니할 일 (17∼21)


인간이 생각할 때에 원망할 일은 어느 때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에 늘 와서 유숙하시면서 많은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어 갈 때에 아무리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도 예수님은 오시지를 않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나사로는 죽게 되고 말았다. 죽은지 나흘에 가서야 예수님은 나사로의 집을 찾아 올 때에 한 마디의 원망이 없이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 하는 말로 평화스럽게 말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여자로서 경솔하지 않고 말 한 마디 불평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던 것이다. 금일에 와서 너무나 경솔한 여자가 교회에 많다고 볼 수 있다. 무엇이 조금만 불만해도 입으로 불평을 토하고 조금만 자기에게 불리하면 입으로 악담을 하는 여자가 많은 세상에서도 마르다와 같은 믿음이 있는 자라면 반드시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2. 변치 않고 믿는 일 (22∼24)


믿음이라는 것은 낙망될 일이 와도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질 적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영광을 나타낼 때는 택한 자의 믿음을 달아보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데는 변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자라야 하나님은 인정하시고 홀연히 역사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믿음 (25∼27)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역사하는 것이다. 아무리 믿는다 하여도 완전성을 믿지 않을 때는 완전한 역사는 응답으로 올 수가 없다.


4. 부활의 영광을 봄 (39∼44)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썩어서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무덤에서 일어나 나온 일이다. 이것은 전 세계 인류에게 큰 소망을 주는 일이다. 나사로의 부활이 있으므로 그 즉시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된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전 세계 인류에게 예수는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나사로를 말미암아 더욱 확신하게 된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주님 다시 올 때에 한마디 음성에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살아 남은 자는 변화를 받을 것을 확실한 증거로 나타났다. 인간이 볼 때는 아무런 존재가 없는 가정이지만 주님께서 그 가정을 통하여 큰 영광을 나타낸 것은 앞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영광을 나타낼 가정을 예표적으로 보여준 일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가장 복된 가정은 아무리 외롭고 가난하고 비천한 생활이라도 주님이 인정하는 가정일 것이다. 언제나 예루살렘에서 주님이 주무시지 않고 친히 도보로 걸어서 베다니 나사로의 집을 찾아가 주무셨다는 것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정하는 가정은 모략적으로 까불어 본 일은 더 큰 영광을 나타낼 징조였던 것이다. 잠깐 동안 슬픔의 사망이 왔고, 괴로운 병마가 왔지만 이것은 죄 값으로 오는 질병과 사망 가운데서라도 인정받는 가정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을 증거로 보여준 일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슬픔과, 낙망이 없이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슬픈 일, 낙망할 일이 와도 원망하지 않고, 변하지 않고, 주님의 완전성을 믿고 나갈 때에 주님은 친히 찾아 오셔서 썩어진 냄새나는 몸을 일으켜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던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죄값으로 썩을 몸이라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나타내려면 나사로의 가정을 본받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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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위에서 합심할 일과 하늘의 응답

- 마태복음 18:15∼20 -


마태복음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기독교는 하늘의 응답이 있고 없는데 따라서 모든 일이 좌우되는 것이다. 응답이 있으므로 승리요 응답이 없으므로 부패를 가져오는 것이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요 죽을 죄인들을 완전하게 만들어서 영원한 나라를 이루는 것이 사명이니 하늘에서 응답을 나리는 교회가 되려면 어떠한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권고가 있어야 한다 (15)


우리는 죄를 용납하는 것도 불법이요, 죄를 범하는 자를 무조건 버리는 것도 불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와 싸우는 것이 합법적인 교회이다. 그러면 죄를 용납하지도 말고 또는 범죄자를 멸시하지도 말고 권고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속죄의 법이 없다면 권고할 필요가 없겠지만 얼마든지 죄를 사해 주는 예수님의 피로 산 교회는 항상 권고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어떤 형제가 실수가 있을 적에 그 사람을 조용히 권고하지 않고 그 죄과를 폭로 시키어서 악선전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보다도 마귀 편에서 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가 교회에 들어 올 때에 이것을 막는 방법은 은밀히 들어오는 죄를 은밀히 권고하는 일이 있어야 될 것이다. 은밀히 들어오는 죄의 역사를 은밀히 말살시켜 없애는 방침을 하지 않고 떠들며 광포하는 것은 마귀를 더 청해 들이는 행동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 할 때에 마귀는 언제나 교회를 어지럽히고 더럽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하는 것이 목적인데 눈물겨운 권고가 없이 남의 죄과를 함부로 대중 앞에 폭로한다는 그 자체가 책임을 질 일이 된다. 왜냐하면 교회를 소란케 한 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죄, 형제의 믿음을 손상케 한 죄가 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합심된 교회가 되려면 죄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죄의 세력이 발동을 못 하도록 하는 방침은 개인 방문으로 간곡히 권고해서 교회의 덕이 되도록 형제에게 은혜가 되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개인 방문의 권고를 힘써야만 될 것이다.


2. 성별이 있어야 한다 (16∼18)


성별이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만 집결한 것을 가르친 것보다도 거룩한 사랑으로 성별되어야 한다. 거룩한 사랑이라는 것은 진리를 대적하는 자를 용납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형제라도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짐짓 진리를 대적할 때는 성별시켜 이방인과 같이 여기라는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 사랑이라는 간판 밑에서 회개할 일을 회개치 않고 덮어놓고 하나가 된다는 것은 쑥물과 단물을 한 데 섞는 것과 같으므로 교회를 망치는 행동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사랑은 죄를 위하여 피 흘린 십자가의 사랑이니 죄를 회개치 않는 자에게 그 사랑은 하등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회개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사랑해 준다면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은 죄를 용납할 수 없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완전 성결을 목적한 십자가이니 아무리 죄가 많아도 회개하면 성결이요, 작은 죄라도 회개치 않으면 정죄를 하는 것이다. 죄를 없이 하는 방법이 십자가의 승리며 완전 성결을 이루는 것이 십자가의 권능의 역사이다.


3. 합심 기도가 있어야 한다 (19∼20)


기도라는 것은 자기 부족을 깨닫는 마음에서 합심이 될 때에 그 기도는 즉시로 응답이 나리는 것이요 또는 남을 살리기 위하여 합심 기도할 때 그 기도는 주님 다시 올 때까지 이루어진다. 이 땅에 합심 기도의 힘이 아니고는 하늘의 응답이 나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합심이 없이는 응답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응답을 하시되 법을 따라 응답하는 것이니 세계 만민에게 꼭 통일된 법으로 응답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도 주고 저 사람은 저렇게도 준다면 하나님은 하나를 이루는 것이 못되고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라도 합심이 되면 응답이 나리는 것이다.


결 론


이 땅에서 사는 인간은 아무리 지렁이 같은 인간들이라도 하늘의 응답을 받을 때에는 새 타작기가 될 수가 있다. 어리석어도 지혜를 응답하고 약해도 능력을 응답하고 아무리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흰 눈같이 응답을 나리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십자가의 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義)중에 큰 (義)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응답을 받는 일이요, 죄 중에 큰 죄는 남의 죄를 용서할 줄 모르고 남을 압박하는 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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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을 먹고 다시 예언할 사명

- 요한계시록 10:5∼11 -


요한계시록 10: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 세세토록 살아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기독교는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므로써 완전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것을 보여준 것이 계시록의 중점이 되는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는 사명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무서운 거짓 선지의 미혹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 작은 책을 먹고 다시 예언하는 사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작은 책을 꿀같이 먹을 일 (5∼9)


계시록의 다른 천사의 역사는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할 사명이 무엇인 것을 보여준 것을 목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천사가 몸에 구름을 입고 내려오는 광경이 나타났다. 이것은 변화성도의 역사가 무엇인 것을 보여주는 광경이다. 변화성도라는 것은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구름을 타고 승천하신 예수님의 몸과 같이 될 것을 뜻한 것이니, 이와 같이 된 자라면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는 것은 완전한 약속의 말씀이 영감으로 머리 위에 임하는 뜻이요, 얼굴이 해같이 되는 것은 능히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칠 빛의 권세를 뜻한 것이요, 발이 불기둥 같다는 것은 원수를 짓밟고 나갈 승리의 용사를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를 하는 종은 사자같이 외치되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종말의 경고이다. 그러므로 작은 책을 꿀같이 먹어야만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이 무엇인 것을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책이라는 것은 다시 예언할 수 있는 완전 계시의 말씀인 책이니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가르친 것이다(계시록 5:1). 이날까지의 전한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전한 천국 복음이요 이제 기독교 종말에 다시 예언할 종은 작은 책을 다시 먹어야만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은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의 비밀을 기록한 계시록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계시록을 완전히 먹은 종은 대표적인 종이 나타날 것을 뜻한 것이다. 먹는다는 것은 자기가 연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받아서 먹을 때가 올 것을 보여준 것이다.


2. 쓴 것을 통과함 (10)


쓴 것이라는 것은 그 말씀이 쓰다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완전히 깨달은 종으로서 사단의 피해를 당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쓴 잔을 통과했고, 말세의 종은 작은 책을 꿀같이 먹었으므로 쓴 잔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는 것이 사명이니 그것이 쓴 잔이 되었고 말세의 종은 작은 책을 완전히 먹고 그것을 전할 수 있는 인격에 도달하기 위해서 쓴 잔이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쓴 것을 통과한 후에야 대표적인 종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 모세도 예수님도 말세의 종도 다 쓴 잔을 통과한 후에 그 사명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말세의 종은 천국을 위한 사명이 아니요, 일곱째 나팔을 부는 때에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 나라가 되는 이 역사에 대표적인 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표에도 언약의 대표가 있고 율법의 대표도 있고 구원의 대표도 있고 다시 예언의 대표도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아브라함, 모세, 그리스도, 말세의 다시 예언자 이것으로써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천하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는 그 언약은 모세의 받은 율법으로써 예언적인 선지 국가가 이루어지므로 민족적인 종교가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완성하므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고, 말세의 종이 다시 예언 하므로 써 완전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표적인 종에게는 쓴 잔을 통과하고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3. 다시 예언 (11)


다시 예언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심판의 경고를 뜻한 것이니 모든 선지들이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묵시를 본 말씀을 말세의 대표적인 종을 통하여 선지들의 받은 묵시를 다시 예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 있으려면 작은 책의 비밀을 꿀같이 먹고 마귀와 싸우는 시련에서 승리를 이루는 인격이 되므로써 세계적인 역사가 있을 것을 뜻한 것이다. 사도 요한은 계시를 보았지만 이것은 사도 요한의 사명적인 뢰자의 영감의 역사를 할 때가 올 것을 보여준 것뿐이다. 많은 제자가 있지만 베드로에게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라는 사명을 주었으므로 이름대로 역사 했고 요한은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심판의 역사를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예언이라는 것은 용서 없는 심판의 다림줄을 뜻한 것이다.


결 론


제일 큰 것은 다시 예언의 사명이니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에게 제일 큰 문제를 놓고 말한 것은 심판과 새 시대를 중점 했으므로 종말의 종은 일점 일획도 가감할 수 없고 여호와의 말씀을 다시 예언하는 것만으로 세계 통일의 역사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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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잊지 못할 종의 영광

- 이사야 49:14∼23 -


이사야 49: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19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20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21 그 때에 네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와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22 나 주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열방을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호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23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 가장 잊지 못할 종은 어떠한 종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금일에 많은 종이 있지만 잊지 못할 종은 첫째로 아무리 시련이 와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종이며 아무리 어려운 환란이 와도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싸워 나가는 종이며 아무리 주님께서 모략적으로 시험해 보는 일이 있어도 끝까지 주님만 바라보고 싸워 나가는 종일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적에 천신만고의 어려움이 와도 남편을 도와서 절개 있게 나가는 아내를 통하여 가정의 모든 일이 바로 되어 나갈 때에 그 남편은 아내를 믿고 모든 일을 활발스럽게 해나가므로써 성공적으로 된다면 처음보다도 더 그 아내를 잊을 수 없는 것같이 주님께서도 당신의 종을 들어 쓸 적에 처음보다도 모든 일을 해 나갈 때 주님을 위하여 여러 가지 풍파가 닥쳐오고 자기 자신이 크게 손상을 보고 피해를 당한다 하여도 주님의 일만을 부흥케 하기 위하여 끝까지 싸워 나가는 종이라면 그 종을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이 될 적에 그 종이 받는 영광은 어떠하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본문의 말씀이다.


1. 영원한 도성을 받게 됨 (16)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끝까지 싸워 나가면서 충성을 다하는 종에게는 영원한 왕궁 도성을 맡기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대자연을 창조한 목적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신이신 동시에 홀로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영원한 도성을 이루어 충성을 다하던 종들에게 주는 동시에 그 종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이 조물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대사업을 성취시키는 일을 종을 통하여 이루었기 때문이다. ♬신의 영광이라는 것은 자기 홀로 있는 것이 영광이 될 수 없고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서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것이 있으므로 만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2. 모든 나라 사람으로 영광이 되게 함 (17∼18)


종을 대적하던 무리를 다 없애는 것이 심판인 동시에 종을 따라 오던 무리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되니 모든 백성은 다 그 종을 통하여 새 시대의 축복을 받게 될 때 축복을 받는 백성은 그 종의 영광이 될 것이다. 지금의 인간들은 어떤 주권을 잠깐이라도 쥐게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이 주권을 위하여 싸우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는 종은 세세토록 그 백성을 통하여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지면에 충만해지므로 (19∼21)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적은 돈을 가지고 많은 재산이 이루어질 적에도 기뻐하는 것이요, 적은 씨를 뿌려 가지고 많은 열매를 거둘 적에도 기뻐하는 것이요, 시련을 당하다가 그 일이 바로 될 때에 기뻐하는 것이 사람의 성품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종이 고난을 극복하고 나가면서 복음을 전하므로 진리를 통하여 새 시대를 이루게 되어 지면에 충만한 강국을 이룰 때에 복음을 전하던 종이 자동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4. 숭배를 받음 (22∼23)


지금은 숭배를 받는 것이 영광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나님 외에 어떤 종을 숭배한다는 것은 숭배하는 사람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요, 숭배를 받는 자도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왕국에 들어가서 종이 숭배를 받게 하는 것은 일한 대로 갚아주는 때이므로 이것은 영광이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숭배를 받으라고 세운 종이 아니요, 멸시를 받고 미움을 받으면서라도 복음을 전하라는 때이므로 하나님의 종이 숭배를 받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큰 손해를 보는 일이 될 것이로되 왕권의 영광을 누리는 그날에는 숭배를 받고 영광을 받아야만 된다는 것이다.


결 론


인간이 인간을 잊을 수 없는 일로 혹은 기념비로 동상으로 또는 큰 기념탑이 서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잊을 수 없는 종이 되었다면 그야말로 얼마나 큰 영광이 될 것인가!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은 주께서 잊을 수 없는 종이 된 일이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사람에게 멸시를 받고 미움을 받고 억압을 받게 하는 것은 이런 가운데서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자라면 그 종을 진실한 자라고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그 종에게 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칙인 동시에 사랑의 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주께서 잊지 못할 종이 받는 영광이라고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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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제사가 있는 생활

- 히브리서 13:12∼17 -


히브리서 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사람의 가장 가치 있는 생활은 참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참된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만 역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앙 생활이 있다 하여도 참된 제사를 드리지 못한다면 그 신앙 생활은 자동적으로 외식이 되고 말 것이다. 가장 허무 맹랑한 생활은 신자라 하면서 참된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참된 제사가 있어야만 그 생활에는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니 참된 제사에 대하여 성경 본문으로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몸을 희생하는 생활 (12∼13, 로마서 12:1)


우리 몸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바칠 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나가려고 하는 자라면 그 몸은 하나님이 받아 쓰시는 도구가 되므로 자동적인 제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되 사람의 몸을 통하여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소불능의 신은 아무리 부족한 인생이라도 그 몸을 하나님께 희생으로 바칠 때에 무조건 들어서 쓰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참된 가치라는 것은 그 몸이 평안한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몸을 참된 진리를 위하여 희생하는데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 몸을 어디 바치든지 바치는 데에 따라서 그 생활은 좌우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 몸을 바로 바치느냐 못 바치느냐에 따라서 모든 열매는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금일에 많은 기독교인이 있지만, 그 몸을 완전히 바치지 못하는 생활에서는 아무런 체험적인 생활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2.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생활 (14∼15)


누구든지 완전히 몸을 바치는 생활에는 찬송이 인격이 되고 생활이 될 때에 그 찬송은 하나님께 제사가 되는 동시에 입술에 열매가 되는 것이다. 가장 하늘에서 기뻐하는 것은 몸을 바치고 싸우는 종들이 우렁차게 찬송을 올릴 때에 그 찬송은 제사가 되므로 응답이 내리는 것이다. 금일에 소위 교회가 찬송을 부르는 일에 제사가 못된다면 그 예배는 한 의식에 불과한 예배가 될 것이다. 찬송의 제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 : 성결한 마음으로 찬송할 때에 제사가 된다. 찬송은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불탈 때에 그 진리를 입으로 불러 찬송하는 것은 그 심령이 하나님의 세계를 향하는 데서 영적으로 신의 세계와 화답이 있게 된다.


둘째 : 마귀를 대적하는 마음에서 담대히 부를 때에 찬송이 하나님께 상달되는 제사가 되므로 마귀가 물러가는 새로운 힘이 내리므로 승리의 열매가 된다.


셋째 :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를 때에 하나님은 그 찬송을 영광으로 받으시고 그 종의 생활에 더욱 감사할 수 있는 일이 있도록 역사를 나리시는 것이다.


3. 서로 접대하는 것이 제사가 됨 (16∼17)


항상 남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의 생활은 하나님께서 제사로 받으시고 얼마든지 줄 것이 있도록 응답을 나리신다. 우리가 받지 못하는 것은 주고자 하는 마음이 적을 때에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종된 생활은 남에게 주지 못하는 것을 눈물겹게 생각할 때에 이것이 제사가 되므로 항상 그 종을 통하여 차고 넘침이 있게 한다.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무엇을 주시되 사랑하는 종을 통하여 주시기 때문에 항상 남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자를 통하여 역사하시므로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는 생활은 받는 자에게 있지 않고, 주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했으니 이것은 주는 것이 제사가 된다는 뜻이다.


결 론


제사라는 것은 언제나 희생이 없이는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주기를 기뻐하시되 제사를 받으신 후에야 주시는 것이니 몸을 제물로 바치고 입으로 찬송하며 손으로 봉사하는 생활이 있어야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는 생활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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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부요한 자가 되자

- 요한계시록 2:8∼11 -


요한계시록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도덕과 의식과 교리를 초월한 생활에서 실상은 부요하다는 주의 은총을 받는 생활이 있어야만 된다. 금일에 교회가 외형적인 발전은 가져 왔다고 볼 수 있으되 실상은 빈곤에 빠진 영적 부패를 볼 때에 오히려 주님은 슬퍼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종이 되려면 실상은 부요한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1. 환란과 궁핍이 있으므로 (9)


기독교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환란 궁핍이 없이는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종 된 자의 생활은 완전을 이룬 것이 아니고 완전을 목적하고 싸우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 된 생활은 환란 궁핍이 오는 것이 불행이 아니요, 부요한 것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방법이다. 이제 환란 궁핍이 올 때에 부요 해지는 종의 생활의 세 가지 요소를 말한다.


첫째 : 환란 궁핍이 오는 원인은, 종이란 생활은 마귀에게 포로된 자를 해방시키라는 것이 사명이니 마귀 편이 먼저 환란과 궁핍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마귀에게 포로된 주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싸울 때에 마귀 편이 하나님의 종을 대항을 하는 조건에서 오는 것을 뜻한 것이다. 앞서간 모든 종들이 환란과 궁핍을 만난 것은 자기의 구원 문제를 위해서가 아니고 남을 구원코자 해서 담대히 나설 때에 환란과 궁핍이 왔던 것이다. 그러나 환란, 궁핍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종은 많은 열매를 맺는 초인간적인 역사를 하게 될 때에 그 종에게 실상은 부요한 축복이 오므로써 많은 교회를 일으키는 열매를 보게 되었다.


둘째 : 진리를 사수할 때에 오는 것이니 언제나 마귀의 권세는 허락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종이 진리를 사수하나 못하나 보기 위한 목적에서 마귀를 들어서 쓰는 일이 있기 때문에 마귀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종을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잠깐의 환란 궁핍이 와도 진리를 사수하는 자에게 뜻밖에 홀연히 실상은 부요한 축복을 받게 된다.


셋째 : 사상적인 문제이다. 사상이라는 것은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타협을 하자고 하여도 타협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사상이다. 언제나 마귀라는 놈은 진리를 강압적으로 대적하다가 할 수 없게 될 때에는 타협적인 방법으로 침투하게 되는데 이것을 용납치를 않아야 된다. 아무리 히스기야가 강하게 환란 궁핍을 이기고 나갔지만 바벨론 사신에게 타협이 있으므로 바벨론에게 망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안되고, 원수의 세력이 강하다고 후퇴해도 안되고, 원수의 세력이 타협을 하자고 해서 거기에 조금도 용납을 한다면 실패에 들어가는 것이다.


2.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 것 (10상반절, Earlier)


하나님의 종이 앞으로 올 난제를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이 그날 그날에 닥쳐오는 일을 실천해 나갈 때에 날마다 더 힘을 얻게 되고, 풍부한 은총이 나릴 때에 앞으로 더 큰 고난이 온다 하여도 아무런 문제없이 능히 돌파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일을 염려할 것 없이 그 날의 괴로움을 만족히 알고 나가므로써 내일이라는 장차 올 일을 극복할 힘을 더욱 받게 되는 것이다.


3.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됨 (10하반절, Back)


기독교의 전쟁은 면류관의 왕권을 목적한 것이다. 어떤 종이 자기 개인의 구원 문제 하나를 믿는다 하여도 남을 살리기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일이 없다면 그 종은 왕국 건설에 대하여 오히려 방해를 준 자이므로 그 죄를 회개하는 일이 없이는 주 앞에 설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종 된 생활은 죽도록 충성이라는 것이 없이는 열매 없는 가을 나무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종을 들어 쓰는 방법은 죽도록 충성하라는 방법에서 쓰는 것은 왕국 건설을 위하여 그 종에게 왕권을 주기 위한 사랑의 법이 된다.


결 론


실상은 부요한 종의 생활이라는 것은 인간을 초월한 세계에서 움직이는 활동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니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 없이 주님 중심에서 면류관을 위한 싸움의 생활이 아니고는 항상 부요한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부요하시매 당신의 종에게 이것을 주기 위해서는 자칭 유대인이 되는 교권주의 자들에게 동참치 못하게 하고 오히려 훼방을 받게 하므로 인간이 볼 때는 궁핍을 당한 것 같으나 실상은 부요케 해서 그 종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남은 종이 될 촛대 교회 사자에게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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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와 사상을 아시는 하나님의 역사

- 이사야 66:18∼24 -


이사야 66:18 "내가 그들의 소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열방과 열족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19 내가 그들 중에 징조를 세워서 그들 중 도피한 자를 열방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열방에 선파하리라 2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열방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약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21 나는 그 중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23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24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종말의 역사를 일으킬 때에 그 종들의 소위와 사상을 아시고 당신과 의합이 된 자를 들어 쓰는 것이니 그 종의 하는 일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 합당하고 그 사상이 합당한 자라면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이 그들을 한데로 모아서 역사를 일으켜 그들로 말미암아 완전한 새로운 시대를 이룰 것을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무리 육적 이스라엘족이라도 그 소위와 사상이 하나님과에 합하지 못한다면 버릴 것이고 아무리 이방족 중에서라도 그 소위와 사상이 합한 자라면 그들로 말미암아 영원한 제사장과 레위족을 삼아서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역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심 (18)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59:19 이하에 말씀하시기를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때에는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는 그의 영광을 두려워 할 것은 여호와께서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임할 것이라고 하였고, 60:1에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리니 어두움이 온 땅을 덮어서 만민을 가리울지라도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고 말씀했다. 그러면 서방보다도 해 돋는 편 동방 사람이 소위와 사상을 바로 지도할 수 있는 주권이 있게 될 것이다. 금일에 소위 과학 문명이라 하는 것을 중심한 소위와 사상은 하나님과 대적이 될 것이로되 아무리 가난하고 무식한 자라도 그 소위와 사상이 하나님과 합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2. 세계 통일의 완전 역사 (19)


하나님께서 당신이 볼 때에 소위와 사상이 옳은 자라면 그를 들어서 종말에 큰 역사를 일으키므로 세계를 깨우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그 사람의 소위와 사상을 검토 하므로 써 합당한 자라야 그를 들어서 쓰시는 것이니 우리는 과학적인 문명으로 오는 새 시대를 말하는 유물론 공산 사상을 배격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이 오고 말씀대로 보호가 있고 말씀대로 승리가 있고 말씀대로 새 시대가 올 것을 믿고 일하는 사상을 가진 자라야 그 말씀을 세계에 전파할 역사를 하게 될 것이다.


3.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심 (20∼21)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소위와 사상을 바로 가진 자라면 완전한 왕권을 주시되 이스라엘에게 세웠던 그 왕권을 영원히 가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이스라엘은 약속을 말씀으로 받은 자라면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끝까지 싸워 나가는 자라면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는 레위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과거에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 말씀한 것은 그때의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종말에 모든 민족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싸워 나가는 소위와 사상이 바른 종들로 말미암아 영원한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가르친 것이라고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이사야 선지를 들어서 유대와 예루살렘에 관한 이상이라고 1장 2장의 1절에 말한 것은 과거에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결론적으로 분명히 가르친 것이 66:18이하라고 보게 된다. 지금 소위 신학자들이 하나같이 이사야의 경고를 과거에 이스라엘에 대한 것으로 돌린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보게 된다.


4. 자손 만대의 축복을 줌 (22∼23)


하나님께서 소위와 사상을 보고 택하여 세운 이스라엘을 통하여 신천 신지의 영원한 왕국의 축복을 받게 하시는 데는 그 자손이 함께 복을 누리되 영원한 왕국이 항상 있을 것 같이 그들의 자손과 이름이 항상 있을 것을 말씀했다.


5. 패역한 자를 영원히 없이 함 (24)


패역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사상을 가진 것을 뜻한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그 소위와 사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가진 자는 영원히 그 자체가 없어지게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대로 심판이 오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소위와 사상이 바른 사람을 택하여 그 사상으로 세계를 통일하되 완전한 왕국을 이루는 것이니 금일에 소위 공산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종교를 아편이라, 독약이라 하는 것이니 이런 사상을 조금이라도 용납한다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릴 수 없고 소위와 사상이 바른 자라야 신천 신지의 영원한 왕국을 축복으로 받되 그 자손까지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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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복

- 마태복음 24:42∼47 -


마태복음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인생 중에 가장 복 있는 자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의 생활이라고 본다. 인간이 세상에 났다가 단지 자기를 위하여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인간의 무가치한 생활이라고 본다. 아무리 충성을 해도 참된 진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아무리 지혜가 있는 것 같아도 그 지혜가 참된 진리를 아는 지혜가 아니라면 스스로 속는 지혜가 될 수 도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지혜는 뱀같이 하라 한 것은 마귀도 극도로 지혜롭다는 것을 뜻한 것이다(마태복음 10:16). 그러므로 참된 진리를 위하여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된 자의 축복을 본문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예비가 있어야 된다 (42∼44)


예비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 자기 안락을 위하여 예비하는 자가 있다(누가복음 12:16∼22). 어떤 부자가 물질을 많이 쌓아 놓고 그날 밤 말하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할 때에 하나님은 그날 밤에 그 영혼을 도로 찾아갔다. 이것이 헛수고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쓸데없는 허영심을 가지고 집 위에 집을 짓고 물질에 대하여 애착심을 가지고 쌓아 놓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볼 때에 가장 어리석은 자로 보게 된다.


둘째로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의 예비라는 것은 아무런 마귀 미혹이 와도 물리칠 수 있는 진리의 지식을 갖추는 일, 아무리 환란이 와도 그 환란의 피해를 당치 않을 인격을 갖추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종은 항상 게으르지 않고 앞으로 오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리 예비하는 일을 목적 두고 전력을 둘 때에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종에게 완전 무장을 주시는 것이니 하나님의 종 된 사람은 항상 자기 부족을 깨닫고 어떻게 하든지 아무런 난관이 와도 난관을 돌파하고 나갈 수 있는 그 목적을 두고 진리로 완전 무장을 해야만 될 것이다.


2. 모든 사람에게 만족함을 주는 종이 되어야 한다 (45∼46)


세상에 제일 큰 일은 참된 진리로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세상에 여러 가지 자선 사업을 많이 하는 자도 있지만 그 자선 사업으로써 완전한 천국을 이룰 수가 없고 천국을 이루는 일은 오직 진리로 남을 살리는 일로 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일은 조물주 하나님께서 영원한 나라를 이루 기 위하여 하시는 일이니 가장 복 있는 자는 이 대사업에 완전히 끝을 맺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주님 다시 올 때까지 진리로 남을 살리는 자는 성경 전체를 다 가르치는 지혜를 받는 동시에 전무후무한 환란이 와도 변치 않고 충성을 다 하게 되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3. 모든 소유를 다 맡게 됨 (47)


이 천지 만물은 첫째 아담의 범죄로 다 저주를 받았지만 둘째 아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소유는 주님 올 때까지 진리를 옳게 증거하던 종이 모든 복된 소유를 다 누리게 된다. 이 소유라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왕국의 축복을 가르친 것이다. 지상 왕국이라는 것은 재림시까지 남은 종이 되는 변화 성도의 소유가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 종이 증거하는 진리로 말미암아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 하나를 얼마나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이 본문에서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 된 우리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는 것 하나만이 축복을 받는 요소가 될 것이다. 공연히 스스로 남을 판단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종이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들어 쓸 적에 언제나 그 시대에 비밀을 남에게 알려 주어서 그 종을 통하여 대중을 살리자는 것이 목적이니 재림시까지 남은 종이 되려면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를 받아 가지고 그 시대 사람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줄 때에 그 종을 통하여 모든 난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님 다시 올 때에 큰 문제가 되는 일은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 그 종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남은 자가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일 것이다. 그러므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종을 통하여 완전히 주의 일에 끝을 맺는 일이 있을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때가 멀었다느니 함부로 남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자들은 자동적으로 주님 올 때에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외식이라는 것은 (이렇다) 그 시대의 비밀을 모르는 자에겐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나 설교나 모든 하는 일은 자동적으로 외식이 되기 때문에 큰 화를 받게 되는 것이다(마태복음 24: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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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성도의 교제

- 빌립보서 3:20∼4:3 -


빌립보서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서로 교제하는 것을 바로 하고 못 하는데 따라서 모든 일의 열매는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미(美)라는 것은 교제가 없이는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참된 성도들이 재림의 주를 고대하면서 교제하는 그 단체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완전히 성취하는 것이다. 이제 재림의 주를 고대하는 성도들에게 있어 참된 교제가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소망의 확실성 (3:20∼21)


우리 성도들의 소망이라는 것은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것으로 전부가 아니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이 완전한 영광의 몸으로 변화가 되도록 역사하실 것을 믿는 것이 확실한 성도들이라야 참된 교제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대 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람의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영원히 영광을 누리도록 하시고자 하는 것이니,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인간(人間)에 오시어 인간이 사는 생활을 친히 하시되 무엇이든지 다 친히 인간의 행할 일을 행하시고, 그 몸이 영광의 몸으로 부활 승천한 것은 자기와 같은 몸으로 이루어지도록 역사하기 위하여 승천하셔서 지금 성신의 역사를 우리 성도의 몸에 부어 주는 것은 자기와 같이 세세 왕권의 영광을 누릴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시면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영혼 구원을 목적하는 것보다도 우리 몸이 변화 승천하는 것을 목적하고 싸워 나가야 할 것이다. 사도 시대에도 이것을 목적한 것은 완전한 성신의 역사라고 본다. 왜냐하면 성신이 오신 목적은 영혼 구원을 목적한 것이 아니요, 우리의 몸까지 완전하게 영광스러운 몸으로 이루어 놓기 위한 목적이니 초대 교회도 모든 성도들이 재림의 주를 기다리면서 불타는 마음으로 자기 사명에 충성을 다하게 한 것은 주님 다시 올 때에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여 세세 영광을 누리게 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2. 형제를 자기의 면류관으로 아는 사람이다 (4:1)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면류관을 쓰려는 것이 아니고, 믿는 형제를 면류관으로 알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왜냐하면 믿는 형제에게 행하는 일이 내 면류관이 된다는 상급을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랑이 있는 바울은 인간이 볼 때에 가장 괴로움이 되는 옥중 생활을 했지만, 옥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쓸 적에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게 된 것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핍박과 환란을 만나고 옥중에까지 갇힌 것은 자기의 일을 위해서가 아니고, 형제를 구원해 주기 위한 일이기 때문에 "너희는 나의 면류관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 세상 사람은 자기가 이익을 보려는 생각에서 교제를 하고 있지만, 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성도들은 주님 앞에 설 때에 주께서 주시는 면류관을 목적했기 때문에 형제를 위하여 괴로움을 받고 죽는 데까지 이르러도 그 형제를 내 면류관으로 알고 기뻐하는 것이 참된 교제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3.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게 됨 (2)


세상에 많은 단체가 있지만, 참으로 마음이 하나가 되는 단체는 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성도들의 순교적인 생활이라고 본다. 기독교에 여러 가지 단체가 있지만, 이것은 인위적인 단체라고 본다. 어떤 교파를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단체는 재림시까지 남은 성도들이 뭉쳐진 단체일 것이다. 이 단체야말로 영원한 왕국을 이룰 단체라고 본다. 세상에 많은 나라가 있지만, 마음이 하나가 되는 나라는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성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나라는 마음이 하나가 된 나라이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같이 하는 거룩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4. 동역자를 서로 돕는 일 (3)


마음이 하나가 된 단체는 서로 돕는 것으로 아름다운 미를 이루게 된다. 예를 든다면 한 몸의 모든 지체는 하나같이 움직이되 서로 돕는 것으로 하나를 이루는 것을 건전한 몸이라고 본다. 손은 손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요, 발은 발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지체는 다 이, 목, 구, 비가 자기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요, 서로를 돕기 위한 결합 단체이다. 이와 같이 사명자는 다 자기를 위한 사명이 아니요, 남을 돕기 위한 사명이니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 멍에를 같이 하고, 남종과 여종이 서로 돕고 협력할 때에 이것으로 말미암아 주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명이 큰 자는 더 많은 사람을 돕게 하는 것이니 동역자가 서로 돕는 것이 아니라면 완전한 교회를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결 론


참된 교제의 성도가 있으므로 그들을 통하여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고, 재림의 주를 맞이한 자라야 왕권을 받을 수 있다(계시록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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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올 때 인정받는 자가 되자

- 야고보서 1:12∼18 -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자는 시험을 참는 자라고 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시험이 오는 동기 (12∼14)


시험의 동기가 어디서 부터 오느냐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자기가 시험에 들어가는 것이 근본이 무엇인 것을 모른다면 그 자체는 정욕에 속한 자가 될 것이다. 시험도 옳게 인정할 조건으로 오는 시험도 있고, 옳게 인정을 못할 조건으로 오는 시험도 있으니


옳게 인정을 받을 시험은 다음과 같다.


첫째 : 참는 마음에서 오는 것은 의를 위한 시험이니 정욕을 참지 못해서 받는 시험과는 다르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할 때에 인내력을 길러서 그 종을 쓰기 위한 목적이 있으니 이것은 인정을 하기 위한 방법이다.


둘째 : 시험을 피할 수 있지만 사명을 하기 위해서 당하는 시험이 있다. 이것은 주님께서 시험을 해보는 것보다도 열심히 일하기 위하여 싸우는 조건으로 오는 시험이니 이 시험을 통하여 남을 구원해 주는 일이 있으므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셋째 :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당하는 시험이니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그 시험을 당하지 않을 것인데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당하는 시험은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일이니 이 세 가지 방면으로 오는 시험은 상급이 될 조건이 있다고 보게 된다.


그러나 욕심에 끌려서 받는 시험은 다음과 같다.


첫째 : 마음에서 정욕이 발생하므로 받는 시험인데 이것은 마음으로 범죄하는 죄가 되므로 중심적인 개조를 받기 전에는 그 시험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 말에 실수가 있으므로 오는 시험이니 이것은 입을 지키는 일이 있음으로 만이 물러갈 수 있는 것이다.


셋째 : 불의를 용납하므로 오는 시험이니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을 용납한 죄로 큰 시험이 민족적으로 왔고, 베드로가 작은 계집아이에게 말을 용납해서 거기서 공포를 가진 것으로 시험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게 해 주든지 두렵게 해 주든지 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지 않아야 될 것이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의 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임으로 시험 받은 일이나 베드로가 작은 계집아이 말을 두렵게 들으므로 실수한 일을 보아서 불의한 자의 말은 절대로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한다 (15∼18)


스스로 속는 자라는 것은 자기가 욕심에 끌리고도 옳은 줄 아는 것이라고 본다. 욕심이라는 것은 위로부터 오는 것만을 바라보지 않고, 땅의 것을 생각할 때부터가 욕심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있다 하여도 위에서 주는 것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고, 사람에게서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것은 열심히 있어도 스스로 속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서 자아의 인격을 완전히 찾는 사람이 되는 데는 하나님께로부터 그 인격을 받아야 될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되 그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을 따라 받는 신앙에 들어가야만 열매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다 하는 자들이 자아라는 인격을 바로 찾지 못하고 무조건 믿음으로 된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 일이다. 말씀에서 바로 서는 신앙은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첫째 :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자가 되어야만 될 것이요,


둘째 : 그 말씀에 떠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요,


셋째 : 그 말씀에서 체험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가 되므로 써 시험을 참고 나가는 자로 면류관을 받는 왕권에 도달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결 론


신앙 생활은 시험이 없이 자랄 수 없고, 시험이 없이는 타락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시험을 참음으로 향상이요, 시험을 참지 못하므로 타락이다. 시험이라는 것은 왜 오느냐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 빛이라면 시험을 물리치는 것도 빛으로야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시험이 오되 억울하게 오면 그것 때문에 참지를 못하고 타격을 받는다는 것도 인정받지 못할 일이요, 짐짓 욕심에 끌려 시험을 받으면서 회개할 줄 모른다 해도 이것은 큰 실패를 가져올 것이다.


이제 시험에 다음과 같이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다. 첫째 시험해 볼 사명을 맡은 자는 마귀다. 그러므로 마귀는 얼마든지 시험을 해보는 것이 자기 할 일이므로 마음에 기회가 있으면 마음에 들어가 역사하고, 가정에 기회가 있으면 가정에 역사하고, 교회에 기회가 있으면 교회에 역사 하므로 개인과 가정과 교회를 망치는 일이 있게 된다. 이제 개인의 시험은 개인의 인격 하나를 바로 가지므로 이길 수 있고, 가정의 시험은 그 가정이 단합 되므로 만이 물러가게 되고 교회의 시험은 교회가 진리 안에서 단결하여 목숨을 바쳐 싸우는 희생 적인 순교의 정신이 없이는 교회는 신령한 교회로 보존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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