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새 일을 고하고 행하시는 하나님

- 이사야 42:9, 43:19∼21 -


이사야 42: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고할 책임도 있고 행하실 책임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새 일이라는 것은 인생이 행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일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타락한 인생으로서 하나님의 새 일을 행하시는 일이 없다면 이 세상은 영원히 죄악의 세상이요 사망의 골짜기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독생자의 거룩한 피로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그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사가 1900여년이 되는 금일에 이 세상은 더 악해지고 오히려 더 혼란을 가져오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새 일을 고하고 행할 때가 온 증거라고 본다. 이제 새 일을 고하고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서로 증거한다.


1. 새 일을 고하시는 하나님 (42:9)


하나님은 당신이 행하실 일은 당신이 빠짐없이 고하는 것이다. 이사야 42:1∼4를 보면 아드님을 보내서 교훈할 것을 말씀하고 그 교훈을 온 세계가 앙망하게 되는데는 이방의 빛이 되게 한다고 6절에 말씀했다. 그러면 예수님의 교훈은 이방의 빛이 되는 교훈이다. 하나님도 모르고 천국도 모르고 아무런 진리도 모르는 이방 민족에게 하나님의 존재와 독생자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증거해서 사망의 권세 아래 있던 그 영들이 빛을 따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를 한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교훈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가르칠 교훈을 선지서에는 분명히 다 말하지 않고 교훈이 있다는 것만 말하고 간단히 독생자가 처녀 몸에 난다는 것을 이사야 7:14에 말했고, 베들레헴에 난다는 말을 미가서 5:2에 말했다. 갈릴리에서부터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가 나온다고 이사야 9:1∼2에 말했고,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을 스가랴 9:9에 말했고, 은 삼십에 팔릴 것을 스가랴 11:12∼13에 말했고, 십자가에 죽을 것을 시편 22:16, 이사야 53:5에 말했고, 부자 무덤에 장례할 것을 이사야 53:9에 말했고, 부활할 것을 시편 16:10∼11에 말했으며 그 밖에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을 가르친 것이 선지서라고 본다.  


선지서는 목적이 심판과 새 시대이니 새 일의 역사를 하나님이 미리 빠짐이 없이 말씀한 것이다.  독생자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피를 이루어 그 피로 모든 만민을 피로 사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셨지만, 새 일을 말씀한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말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훈은 천국 복음이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들에게 나타난 것은 새 시대를 이루는 영원한 복음이 된 것이다(계시록 10:7, 14:6). 그러므로 새 일에 대한 교훈은 은혜시대의 종들이 전할 복음이 아니요,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변화성도들이 전할 복음이니 새 일을 가르친 말씀인 선지서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이사야 48:6). 천국 복음은 십자가를 증거하는 것을 목적한 것이므로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도록 하는 것으로써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요 종말에 전하는 복음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보호를 받고 새 시대 가도록 전하는 복음이다. 이것이 선지서와 계시록이다.


2.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43:19∼21)


새 일을 행하시는 일은 원수를 갚아 주는 역사인데 이날까지는 영혼 구원을 목적하고 하나님은 기다렸지만 새 일을 행하는 날에는 더 기다릴 것이 없고 원수의 나라를 다 없이 하고 죄인의 세력을 세상에서 없이하고 오직 하나님의 친 백성만이 남아서 지상 축복을 받게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난제를 해결시켜 주는 일이다. 새 일을 행하시는 일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 : 주 재림 후에 행하시는 일이다.


주 재림까지는 성신이 역사해서 신부 단장시켜 왕국 부서를 완전히 이루는 기간이요 재림 후에는 새 시대에 들어갈 백성들을 하나님이 보호하고 양육해서 새 시대의 축복을 받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변화성도가 새 일 진리를 증거하는 것은 재림 후에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신다는 것을 전해주는 것을 다시 예언이라는 것이다.


둘째 : 이 천지를 새롭게 하는 일이다.


첫째 아담이 범죄하므로 저주받았던 우주 세계를 다시 새롭게 해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믿는 사람들로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새 사람을 만드는 것은 영혼이 새로워지므로 천국으로 가게 한 것이 이날까지의 역사이지만 말세에는 당신의 자녀를 그 몸을 새롭게 해서 새 땅의 축복을 받게 하는 일이다(이사야 43:7). 이날까지는 신, 불신을 막론하고 그 몸은 하나같이 쓰러졌다(이사야 40:6∼7).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이루고 당신의 백성을 들어가게 하는데는 모든 사람이 다 불에 사름을 당해도 당신의 백성만은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에 들어간다는 것이 모든 선지의 전한 복음이다. 하나님께서 첫째 아담은 감히 왕권을 받을 자격이 없게 창조했지만, 둘째 아담 예수로 말미암아서 완전한 왕국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의 역사가 된다.


결 론


하나님은 완전한 신이시지만 첫 번 창조로써 당신의 할 일을 완성한 것이 아니고 새 일을 행하시므로 만이 당신의 행하실 일을 완전히 행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고도 새 일을 행치 못하신다면 완전한 역사라고 볼 수가 없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일을 시작하였다가 그 일이 성공이 못 된다고 중지하고 만다는 것은 완전한 인격이 못된 증거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인생이 타락했다고 해서 이 세상을 버리고 만다는 것은 완전한 하나님의 역사가 못 되는 것이니 새 일을 행 하므로 써 하나님은 완전한 역사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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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물이 쑥물 되는 일과 죽음

- 계시록 8:10∼11 -


요한계시록 8:10 "세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고 저에게 축복하신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준 것은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영원하고도 완전한 인격과 생활과 나라를 주자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간교한 뱀의 말과 하나님 말씀을 병합시킬 때에 뱀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죽이는 열매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은 (목적이) 더 좋은 것을 주자는 목적이요 옛 뱀의 말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말이었다.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은 언제나 당신의 법이 있는 동시에 그 법을 반대하는 세력을 세워서 대항을 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의 법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사명을 맡긴 것은 완전케 하시는 하나님 말씀만 순종하라는 것이 계명이다. 오늘 본문은 인간 종말에 완전한 평화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단물과 쑥물이 서로 대립이 되게 하는 동시에 단물과 쑥물이 합하면 죽는다는 것이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말이나 같은 말이다.


1. 교회에 들어오는 쑥물


첫째 : 사악한 자 (예레미야 23:15)


사악이라는 것은 사단의 감화를 받은 사람을 통해서 나오는 행동이다. 포악이라는 것은 나타나게 악한 것을 말하는 것이요, 사악이라는 것은 겉으론 옳은 것 같으나 중심은 악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참된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이었다. 진실한 자에게서는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을 살리는 역사가 올 것이고, 사악은 하나님 말씀을 잘못되게 해석을 하고 증거하는 자가 될 것이다(이사야 28:7)


둘째 : 세상 영광을 따르는 자 (아모스 6:1, 12∼14)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학적으로 해석하며, 진리를 증거하는 것보다도 자기의 유명한 학식을 자랑하며, 세상의 안일한 생활에서 영계를 등한시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쑥물을 먹이는 것이다(아모스 5:6∼7). 이스라엘이 북방 사마리아로 저주를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자기의 정권 야욕을 가지고 남방 예루살렘의 예배를 금하고,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사람들이 그리심산에 산당을 짓고 금송아지를 섬기게 되므로 쑥물을 내는 사마리아가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종말에도 처음에는 진리를 믿던 자들이 세속으로 흘러갈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세속적인 방면으로 해석을 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을 자기의 주권과 명예를 목적한 생활에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릴 적에 하나님의 역사가 떠나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쑥물을 내는 교훈을 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떠나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시대의 법이 되는 것이니 가해도 감해도 그 사람은 쑥물을 내는 사람이라고 보게 된다.


2. 교회 안의 샘과 강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울 적에 완전한 인생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요 더러운 죄인들을 위하여 또는 고통 속에 있는 인생을 위하여 교회를 세운 것이니 교회 안에 있는 샘과 강은 무엇이냐는 것을 성서를 통하여 말한다.


첫째 :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 (스가랴 13:1)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 놓은 것은 더러운 인간들을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니 그리스도를 통하여 샘과 같이 솟아오르는 완전한 은혜를 나리어 누구든지 십자가 보혈을 믿는 자는 샘솟듯 하는 은혜 속에서 성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말세에는 쑥이라는 별이 샘에 떨어져 쑥물을 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부인하고 보혈의 샘을 더럽히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성신의 잉태설을 부인하는 것이나 또는 성결을 부인하는 것이나 은혜의 역사를 인정치 않는 것은 다 마귀의 쑥물이라고 본다. 기독교는 항상 솟아오르는 샘같이 성결케 하는 역사가 없다면 이것은 쑥물이 들어온 증거라고 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것은 항상 맑은 샘이 솟는 것과 같은 체험을 받게 될 때에 성결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 평강의 강 (이사야 48:18, 66:12)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평강이 강같이 넘쳐흐르는 것이다. 기독교가 타협적인 노선을 걷게 될 때에 극한 환란을 당하게 되는 것이요, 말씀을 떠는 마음으로 순종해 나갈 때에 아무리 환란이 오는 날이라도 평강이 강같이 흐르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가 일시 육체적인 안락을 따라 간다는 것은 쑥물을 먹게 되는 일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얼마든지 평강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 시대가 평강보다도 무서운 환란 고통이 오게 된 것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들을 없이할 징조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완전한 평강이 강같이 흐를 축복이 올 징조라는 것을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참된 평강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만 있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쳤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는 마귀를 들어 쓰는 것은 '참된 평강'을 '순종하는 자'에게 주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다.


결 론


쑥이라는 별이 강과 샘에 떨어져서 쑥물을 내므로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말세에 소위 지도자들이 더러움을 씻는 성결한 샘이 되는 십자가의 은혜와 완전한 평강을 누리게 하는 다림줄의 진리를 부인하고 인간의 학적으로, 권리로 일을 하는 자들이 교회를 망칠 것을 가르친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소위 평화라, 자유라, 사랑이라 하는 간판 밑에서 마귀와 타협하는 평화, 타협하는 자유, 타협하는 사랑, 이것을 따라나간다는 것은 단물에 쑥물을 내므로 죽게 하는 미혹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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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는 역사

- 요한복음 17:21∼24 -


요한복음 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다"


인류 역사상 하나가 되는 일은 심히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 것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온전함을 이루게 됨으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오신 것이다. 완전한 나라라는 것은 온전함을 이룬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이루어지는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온전함을 이루어서 하나가 되게 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주 안에 있게 되므로 하나가 됨 (21)


주 안이라는 것은 주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는 그 사랑 안에서 아들에게 사명을 맡기어 세상에 보내시므로 아들이 그 뜻에 순종하므로써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는 일을 한 것과 같이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나'라는 자체는 다 각각 다르지만 주님의 사랑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므로 아드님을 보내셨고,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므로 그 사랑 안에서 우리가 하나가 될 때에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신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행하기 위하여 역사할 때 우리는 그 사랑에 이끌려서 하나가 되는 가운데 그리스도 품 안에서 도덕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완전히 받아서 그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만이 하나가 될 수 있고 그 밖에서는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타락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2. 영광을 받음으로 하나를 이룸 (22)


세상 영광을 바라보는 자는 서로 물고 싸우다가 피차에 망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받는 자는 완전한 인격으로서 하나를 이루기를 성부, 성자가 하나를 이룬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은 만족한 영광을 소유하게 될 때에 더 이상 좋은 것을 바라지 않게 되므로 명예의 욕이나 물욕이나 그 밖의 모든 정욕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정욕이라는 것은 완전한 것을 받지 못한 타락한 인생이 만족이 없음으로 더 얻어 보려는 마음이 있을 적에 정욕이라는 것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받은 자는 세상 영광을 분토같이 보게 되므로 만족함을 얻은 인격으로 하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종이 세상의 어떤 영화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받지 못한 증거라고 본다. 그러므로 주께서 이 본문에 하신 말씀은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라고 하였다. 우리 인생은 주께서 주시는 영광을 받은 자가 아니고는 완전히 하나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3. 성부 성자의 일체된 역사로 하나를 이룸 (23∼24)


하나님께서 인생을 일남 일녀로 창조했지만 선악과를 먹은 아담하와의 몸에서 가인아벨이 나오게 되므로 하나를 이루지 못하고 형이 동생을 때려 죽였다는 것이 아담, 하와의 처음 열매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은 가정은 골육 상쟁의 비참을 이루어서 피로 이 땅을 적시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는 아브라함이라도 이스마엘이삭이 나오므로 원수가 되었고 이삭의 몸에서 에서야곱이 나오므로 원수가 되었고 야곱의 몸에서 열 두 아들이 있었지만 하나를 이루지 못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은 아담, 하와의 혈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생자 예수님이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를 이루는 역사로 말미암아 타락한 우리에게 완전함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의 완전 역사로 말미암아서 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첫째 아담이 하나님과 의합하지 않으므로 인간의 싸움이 왔고, 둘째 아담 예수님이 하나님과 의합하므로 싸움이 없는 평화 통일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소원이 온전한 사람으로 하나가 되어서 나라를 이루는 것이요, 사람이 원하는 것도 누구나 다 하나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하는 역사를 순종치 않을 때는 오히려 하나가 되어 보겠다는 목적에서 피 흘리는 전쟁이 역사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왜냐 하면 언제나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어서 강자의 세력으로 하나가 되겠다는 것이 죄악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생을 찾아 오셔서 인생을 위하여 자기가 죽어서 하나가 되게 한다는 것이므로 이 사상만이 완전한 사랑이니 이 사랑의 역사로만이 세계 평화 통일의 하나를 이루는 승리가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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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영화(榮華)와 아버지의 영화(榮華)

- 요한복음 17:1∼7 -


요한복음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榮華)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榮華)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榮華)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榮華)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榮華)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영화(榮華)라는 것은 아들의 영화(榮華)와 아버지의 영화(榮華)가 무엇인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기독 신자가 덮어놓고 영화(榮華)를 바라본다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자의 영화(榮華)와 성부의 영화(榮華)를 바로 아는 데서 우리는 영화(榮華)롭게 될 수 있다.


1. 성자의 영화(榮華) (1∼2)


예수님께서 영화(榮華)롭게 된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 사람의 몸을 입고 인간에게 온 일이다. 성자께서 영원히 성자의 신으로 있다는 것은 영화(榮華)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아담을 낼 때에 아담 자신이 영화(榮華)롭게 될 인격을 준 것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것은 아들의 이름으로만이 영화(榮華)롭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둘째 아담으로 나신 일이 창조의 목적을 달성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인 것이다. 흙에서 난 몸이 흙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 영화(榮華)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소원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로 거룩한 물과 피가 마리아에게 임하여 그 몸이 인간에 탄생되었다는 것은 성자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완전한 몸이 없이는 영화(榮華)라는 것이 다 풀의 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자의 신이 완전한 몸을 하나님께로 받았다는 것은 큰 영화(榮華)를 가져올 싹이 되었던 것이다.


둘째 : 그 몸이 대속의 제물이 된 일이다. 아무리 성자가 완전한 몸을 성령의 잉태로 받았다 하여도 그 몸을 가지고 홀로 있다는 것은 영화(榮華)가 될 수 없고 그 몸이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써만이 천하 만민이 예수님의 몸과 같은 몸으로 가지게 된다는 것이 큰 열매가 되는 것이니 영화(榮華)가 되는 것이다.


셋째 : 통치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통치하려 해도 죄진 사람을 그냥 두고 통치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그 아들에게 맡긴 것이 만민에게 영생을 주는 일이 됨으로 영화(榮華)롭게 된 것이다.


2. 성부의 영화(榮華) (3∼7)


조물주 하나님은 영화(榮華)를 목적 두고 창조하신 것이다. 여호와의 신은 자기 홀로 있어서 아무런 영화(榮華)가 없으므로 대 자연을 창조하시고 자연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보다도 그것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서 그 사람을 통하여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피조물이 된 사람은 자기 힘으로 도저히 자연을 바로 사용하는 인격을 갖지 못하므로 오히려 자연계를 지배하는 것보다도 자연계의 지배를 받고 오히려 그 물질 앞에 종이 된 인생이라는 것은 조물주를 영화(榮華)롭게 못하고 노엽게 하는 일이 된다. 이제 성부의 영화(榮華)는 무엇이냐는 것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행하는 자가 있으므로(3∼4)


이 땅에서 하나님이 하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없게 될 때에 이 세상은 죄의 세상, 사망의 구렁텅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하라는 일을 다 하였던들 그야말로 얼마나 큰 영화(榮華)가 될 것인가!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榮華)롭게 하였다고 말씀한 것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없다면 하나님께는 아무런 영화(榮華)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그 영화(榮華)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榮華)보다는 하나님의 큰 슬픔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죽은 인생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행하시는 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아버지 앞에 예배하고 하나님을 순종하게 되었다는 것은 큰 영화(榮華)가 되는 일이다. 첫째 아담이 순종치 않으므로 천하의 모든 사람이 질적 타락으로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에베소서 2:3).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신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됨으로써 주고 싶은 사랑의 자체가 되신 하나님의 영화(榮華)가 되는 것이다. 의중에 큰 의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시키시는 일을 순종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그리스도 한 분이 하라는 일을 함으로 하나님을 영화(榮華)롭게 한 것이다.


둘째 : 아들과 함께 영화(榮華)롭게 됨(5)


예를 든다면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있지 않으면 아버지 마음이 슬퍼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은 아들과 함께 영화(榮華)롭게 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아들이 영화(榮華)롭게 될 때에 아버지는 그것을 자기 영화(榮華)로 생각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는 것이다(요한복음 14:13∼14). 인간이 행함으로 되는 것 보다 도 아들의 이름으로 응답이 와서 이루어지는 일을 하나님은 영광스럽게 아는 것을 우리 인생은 알고 겸손히 그 뜻에 순종 하는 것 뿐이다.


결 론


영화(榮華)라는 것은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고 성부, 성자의 영화(榮華) 아래서 우리는 같이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 우리의 영화(榮華)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성부, 성자의 활동은 죄를 지은 인생들이 성부, 성자의 영화(榮華) 아래 들어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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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가정의 종교 싸움

- 창세기 4:1∼12 -


창세기 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종교라는 것은 질적 타락을 가진 사람에게 영혼 구원을 목적한 것이 종교의 시발점이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질적 타락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사람이 질적으로 타락이 될 때에 피로써 대속의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면 도저히 그 영혼까지도 다 사망에 들어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가정에 종교 싸움이 시작된 것이 금일까지 계속되는 싸움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종교 싸움이라는 것은 왜 있느냐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말한다.


1. 응답이 있고 없는 데서 싸움이 있음 (1∼5)


종교라는 것은 그 제사가 상달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데 의하여 합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좌우된다. 아무리 한 아담의 몸에서 난 가인 아벨이지만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 응답이 있을 때에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왜냐 하면 예를 들 적에 한 가정에 두 아이가 있는데 한 아이에게는 맛있는 빵을 주고 한 아이에게는 주지 않는다면 받은 아이는 기뻐하고 받지 못한 아이는 성이 날 것이다. 그러면 부모가 빵을 주는 것도 아무 아이에게나 줄 수 있다. 속담에 미운 녀석 빵 조각 더 주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진리의 하나님은 아무리 사랑하는 아담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을 적에 용서 없이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었거든 하물며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는 것이니 중심에 간절한 마음이 없는 사람의 제사는 받을 수 없을 것이고 간절한 사람의 제사만 받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가인의 제사는 왜 받지 않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 선을 행치 않는 죄이다(6∼7 상반절). 하나님은 그 제물을 보는 것보다도 중심에 하나님의 시키시는 일을 단 마음으로 순종하느냐, 않느냐는 것을 보시는 것이니 하나님의 일을 단 마음으로 순종치를 않는 것이 큰 죄이므로 선을 행치 않는 가인의 영적 상태를 볼 때에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심중은 간절하나 실수가 있는 사람보다도 제사는 드리면서도 그 중심이 간절한 것이 없는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 죄의 어미가 되는 일이다(7 하반절).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였다. 죄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자기가 고의적으로 지은 죄가 아니고 상대편에 끌려서 실수한 것은 죄의 어미가 되는 행동이 아니로되 옳은 사람을 이유 없이 미워하는 것은 죄의 어미가 되는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 자체는 그 마음을 정욕의 사단이 점령했기 때문에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니 상대편이 내게 감정을 주므로 끌렸다는 것과 상대편이 내게 옳게 대해 주는데 해코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은 벌써 그 속에 마귀의 역사가 주인이 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언제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남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기 부족을 깨닫는 마음으로 제사를 하면 받으실 것이로되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남을 미워하는 제사는 도저히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 : 하나님의 대적이 된 일이다(8∼9). 대적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해치는 것도 내 대적이요, 직접 나를 대적하는 것도 내 대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았는데 가인은 아벨을 죽였으니 하나님의 대적이요, 하나님을 대하여 반항심을 가진 것이니 즉 하나님이 기뻐하는 아벨을 죽인 일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했던 것이다.


종교 악이라는 것은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외식하는 일이요, 둘째는 시기하는 일이요, 셋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불평을 두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종교를 믿어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 억울한 피와 보응 (10∼12)


억울한 피가 이 땅을 적신 일은 대부분이 종교 싸움에서 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담의 집에서 시작된 피의 호소가 이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피 값은 새 시대가 이룰 때에야 갚아준다고 계시록 16:6, 17:6, 6:9∼10에 말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마귀의 도구가 되었고, 제사의 응답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되어 억울하게 마귀의 도구가 되는 사람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것이 이날까지 종교적인 싸움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 싸움은 이제 끝을 맺는 단계에 들어온 것이 우리 앞에 남은 전쟁이라는 것이다.


아담은 미약하므로 남에게 끌려 범죄했으니 그의 제사는 받았지만, 가인은 남에게 끌려서가 아니고, 짐짓 하나님의 사람을 미워하고 죽인 죄이므로 하나님의 대적이니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고 저주를 받아 영원히 멸망의 자식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금일도 종교의 싸움이 진리를 위하여 피해를 당한 자는 다시 살아서 왕권을 받을 것이고, 피해를 주던 자는 영원히 멸망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아벨이 형에게 죽은 것은 선악과를 먹은 죄 값에 죽은 것이 아니고 의로운 제사를 위하여 죽었으므로 그는 죽었더라도 왕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의로운 사람을 마귀의 도구가 되는 거짓 종교인에게 죽게 한 것은 피 값을 갚는 날에 왕권을 주기 위한 방법이라고 본다.


결 론


하나님은 마귀를 들어서 쓸 적에 아담, 하와는 직접 뱀으로 꾀어 보았지만, 가인 때부터 지금까지는 종교인으로서 의로운 제사를 못 드리는 자는 다 영적으로 마귀의 정복을 당해서 뱀의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내려와서 끝을 맺는 것이니 계시록 13:11 이하를 보면 거짓 선지가 참된 성도를 해치는 정책을 쓰는 것이 마지막 환란인 것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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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재림시의 환란과 복된 사람

- 다니엘 11:40∼12:4 -


다니엘 11:40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를 찌르리니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들어가며 물이 넘침같이 지나갈 것이요 41 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케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존귀한 자들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42 그가 열국에 그 손을 펴리니 애굽 땅도 면치 못할 것이므로 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 은과 모든 보물을 잡을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44 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로 번민케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도륙하며 진멸코자 할 것이요 45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베풀 것이나 그의 끝이 이르리니 도와줄 자가 없으리라 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다니엘서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시기와 복된 사람이 누구냐는 것을 목적 두고 묵시를 받은 말씀이다. 다니엘서 전체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바벨론 포로 중 한 사람인 다니엘이 지혜의 영감을 받아 느부갓네살이 꿈꾼 묵시에 대하여 해석한 데서부터가 다니엘서의 종말관이 기록되었다.


주 재림기의 환란은 여러 인종이 섞여서 살 때에 도저히 합할 수 없을 때 심판이 온다는 것을 목적 두고 말한 것이 다니엘서의 비밀이다.금, 은, 동, 철, 반 철, 반 토의 우상이 나타났다. 이것은 금머리는 바벨론이 되고, 은은 메데파사가 되고, 동은 헬라가 되고 철은 로마가 되고, 로마 문명이 세계를 기독교화시키는 문명의 말기를 당하여 도저히 합할 수 없는 연방국과 합중국이 대립된 것이 미,소 양국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연방국과 합중국이 합할 수 없는 것이 주 재림기의 환란이라는 것이다(다니엘 2:43∼44).


또는 네 큰 짐승을 보았는데 넷째 짐승이 세 짐승과 달라서 도저히 합할 수가 없는 것은 넷째 짐승이 심히 무섭고 이는 철이요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수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는다고 하였다(7:19∼21). 이것을 보면 세 짐승은 흙과 같이 무르고 넷째 짐승은 극도로 강하다는 것을 말했으니 4대 강국의 세 나라는 자유 진영을 말했고 쇠같이 강한 것은 공산 진영을 말했다고 볼 수 있다. 또는 11:40 이하를 보면 북방 왕이 극도로 강하므로 중동을 중심하여 아프리카를 침투할 때에 동북의 소문을 듣고 떨다가 북방 세력이 망하는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시므로 망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다니엘서다.


그러므로 주 재림시의 환란과 복된 사람이 누구냐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말하고자 한다.


1. 주 재림기의 환란


첫째 : 물이 넘침 같이 북방에서 내려오는 환란 (11:40∼41)


이 환란이라는 것은 마지막 환란이니 이사야 선지도 8:7에 넘치는 큰 하수같이 환란이 올 때에 임마누엘 날개가 세계를 점령한다고 하였고, 미가 선지도 5:5 이하를 보면 북방 세력이 우리 지경을 짓밟을 때에 북방 세력이 망하고 남은 자가 승리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북방에서 내려오는 환란을 인력으로 막을 수가 없을 때가 주 재림기라고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가르쳤다.


둘째 : 남방 구스가 북방을 시종드는 환란이다 (42∼43).


앞으로 큰 문제는 아프리카 사람이 북방 강한 세력과 합작이 되므로 중동 문제가 도저히 북방을 막을 수 없게 될 때에 주님이 재림할 것을 말했다.


셋째 : 동북의 소문을 듣고 북방 왕이 분노할 때 (44∼45)


북방 세력이 성도를 대항하고 나오다가 동방에서 북방을 점령하고 들어가는 역사가 있으므로 북방은 최후의 발악적인 행동을 할 때에 주의 재림이 온다. 이사야서에도 동방 땅 끝 사람이 북방을 짓밟고 나갈 것을 말했고(이사야 41:25, 42:10∼13, 43:13∼14) 그 밖에도 모든 성경을 보면 성도의 권세가 북방을 짓밟고 들어가는 일이 있으므로 마지막의 역사가 끝을 맺는다고 한 것이다.


넷째 : 개국 이래로 없던 환란 (12:1 상반절)


주 재림기의 환란이라는 것은 미가엘 대군이 일어나지 않으면 피할 수가 없는 환란이다. 환란도 전무후무한 환란이 있는 동시에 천사의 보호도 전무후무한 보호가 있을 것이다.


2. 복된 사람


첫째 : 책에 기록된 자 (1 하반절)


가장 복 있는 사람은 환란 가운데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천사의 특별 보호를 받으므로 새 시대의 영광을 백성으로 누릴 자들이다.


둘째 : 깨어 영생을 얻는 자 (2)


이미 죽은 자 중에도 다 부활하는 것이 아니고 왕권 받을 종만이 부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다고 한 것은 죽은 자가 다 부활할 것이 아니고 계시록 20:4과 같이 순교자 부활을 가르친 것이다.


셋째 : 지혜를 받아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한 자 (3∼4)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종이 되어 마지막 환란에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한 자라고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제일 빛나는 사람이요 영원히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변화성도를 뜻한 것이다. 누구든지 지혜를 받은 자 외에는 다니엘서를 바로 깨달을 수 없다(12:10). 다니엘서라는 것은 복음화 되어 있는 글은 아니고 마지막 환란 때를 분명히 가르친 글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지금 이 때가 주 재림기의 환란으로 들어가는 시기라고 보게 된다. 그 날과 그 시는 알 수 없으나 분명히 합할 수 없는 환란이 오는 때에 지혜로운 자가 되어 많은 사람을 옳은 곳으로 인도하는 자가 새 시대를 이루는 종이니 가장 별같이 빛나는 종이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들어서 환란을 오게 하고 그 환란 가운데 주님이 오시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성도의 권세를 높이기 위한 목적


둘째 : 하나님의 보호로 알곡을 모으기 위한 작정


셋째 :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나므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 것을 만민에게 알려 주는 목적에서 환란이 있는 동시에 주님이 오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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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받은 축복

- 창세기 28:10∼22 -


창세기 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이 축복 받은 비결은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 : 모태로부터 택함을 받은 것이니 이것은 행함으로써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의 축복이다(창세기 25:22∼23).


둘째 : 믿음으로 받은 축복이다. 야곱의 행한 일을 본다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배고픈 형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장자의 기업을 팔라는 일이나, 아버지의 눈이 어두운 기회를 타서 속이고 축복을 받은 일이나 이 모든 일은 행위로 본다면 복을 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축복을 믿는 믿음을 볼 때는 축복을 에서보다도 야곱이가 받아야 할 것이다.


셋째 : 시련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간 일이다. 어린 야곱이 정든 고향을 떠나 눈물겹게 홀몸으로 적막한 들에서 찬 돌을 베고 쓰러져 있으면서도 담대히 하나님을 바라 본 그 마음을 하나님은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는 야곱의 생활은 아무리 부족한 인생이지만 택함을 받은 사람은 남보다도 믿음이 강하다는 것과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 축복 받을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제 야곱이 받은 복은 다음과 같다.


1. 세계적인 대표가 됨 (13∼14)


가장 큰 축복은 야곱에게 준 축복이니 모든 성경에 이스라엘이라, 야곱이라는 이름 아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복 받을 것을 가르쳐서 종말의 14만 4천을 이스라엘이라고 하였고 말세에 동방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종을 야곱이라 한 것은 야곱의 사명적인 계통을 가르친 것이다. 주님이 탄생할 때도 야곱의 집에 왕이 된다고 말씀했으니 야곱의 축복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야곱과 같이 택함을 받은 사람으로 사람 앞에 모든 일이 부족하다 하여도 축복을 믿는 믿음하나님만 바라보는 의지가 강하다면 모든 것을 다 용서하시고 무조건 복을 나려 주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 (15 상반절, Earlier)


우리의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을 지키거나 말씀을 지켜서가 아니고 택한 자를 지켜 주시기 때문에 믿음이나 또는 움직이는 생활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야곱이 미약하고 어리석고 너무나 단순해서 속기를 잘하지만 하나님이 지켜주는 사람이 되므로 어린 소년이 어디를 가나 피해를 당치 않고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되고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3. 약속이 다 이루기까지 역사해 주심 (15 하반절, Back)


야곱에게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은 금일에 우리에게까지 이루어지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종을 야곱이라고 한 것은 과거의 야곱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 약속이 말세에 새 시대가 이루어지기까지 포함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약속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떠나지 않고 다 이루도록 역사해 주시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끝까지 이루어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는 자에게 무조건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4. 축복 받은 야곱의 제단 (16∼22)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동시에 그곳을 잊지 않고 돌을 세워 놓고 기름을 부으며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열의 하나 분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고 그때부터 용기 있게 새로운 출발을 했던 것이다. 언제나 복을 받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날 때에 그 말씀을 존중히 아는 동시에 실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야곱은 절대로 믿음이 강한 자로 조부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말씀을 의심 없이 믿고 싸웠지만 이때부터는 직접 자기에게 축복하신 하나님 말씀을 믿고 용기 있게 싸워 나가므로 완전 승리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하나님께 받게 된 것이다.


결 론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야곱과 같이 모태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동방 땅 끝 야곱을 택하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대로 종말의 야곱의 사명을 맡은 우리들에게 역사하므로 야곱의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을 새 시대 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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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중에 부르짖는 자의 승리

- 시편 118:5∼24 -


시편 118: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8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10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11 저희가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12 저희가 벌과 같이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같이 소멸되었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13 네가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셨도다 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5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16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18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 19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 가리로다 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24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무소불능의 신이시지만 덮어놓고 역사 하는 신은 아니시다. 반드시 고통이 있게 하고 고통 중에서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역사 하는 능력의 신이시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요구하는 것은 고통 중에서 부르짖는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제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오는 승리에 대하여 본문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1. 여호와는 이러한 자의 편이 되신다 (5∼7)


우리는 고통을 주는 사람이 하나님 편이냐 고통을 받는 자가 하나님 편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남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하나님 편이 아닌 것이니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돕는 역사를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꼭 같이 역사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주던 바로는 망하였고 이스라엘은 승리한 데서 부터,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 로마, 소련 이 7대 강국은 다 거룩한 성도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을 하는 나라로서 한 때는 강국의 기세를 날렸지만 과거나 미래나 다 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택한 사람에게 고통이 올 때는 하나님이 싸워줄 때가 온 증거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2. 여호와께서 원수를 끊어 버리심 (8∼12)


하나님께서 원수의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서 택한 백성을 괴롭히게 하는 것은 그 원수를 끊어버릴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과거의 역사를 본다면 강대한 나라가 망할 때는 다 택한 백성을 괴롭히다가 망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금 북방 세력이 성도를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이 북방 세력을 끊어 버릴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묵시를 볼 때에 극도로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힐 때는 여호와 일어나서 그 원수 세력을 끊어버리고 성도의 나라가 오게 한다고 예언한 것이다. 애굽도 처음에는 이스라엘을 환영했으나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 망했고, 그 밖에의 모든 나라도 하나같이 망할 때는 다 성도를 괴롭히다가 망한 것이다. 금일에 소련(러시아)도 처음에는 기독교 종교국 이었으나 성도를 괴롭히는 정치를 하게 된 것은 망할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3. 여호와의 오른 손이 권능을 베푸심 (13∼17)


하나님의 권능의 손은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행하기 위한 목적이니 여호와 권능이라는 것은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홀연히 나타나서 그 일을 모든 사람이 다 알도록 선포를 시키는 것이다. 과거에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권능이 나타난 동시에 하나님 말씀을 기록하게 한 것은 그와 같이 종말에도 행하시겠다는 표적이 되는 것이다.


4. 응답으로 구원하심 (18∼24)


구원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자리에서 받게 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 와도 하나님의 구원은 홀연히 나타나서 여호와를 찬송할 수 있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결 론


고통을 당할 때에 부르짖는 자가 된다면 인간의 할 일은 그것으로 끝이요, 그 밖에는 여호와께서 행하심으로만 된다는 것이 언약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약하고 어리석고 궁핍한 자리에 있다 하여도 고통이 올 때에 부르짖는 힘만 가진 자라면 완전 승리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이 오는 것은 완전 승리를 이루는 요소의 하나인 것을 알고 고통이 올 때에 더 단결하고 더 강하여지고 더 각성을 받고 부르짖는 단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남의 나라보다도 우리 나라에 여러 가지 난제가 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가 나타날 때가 온 증거인 줄 알고 강하게 부르짖는 용사들이 금년부터 나타나야 할 것이다. 모든 성경에 동방 땅 끝에 부르짖는 역사는 새 시대를 이룬다고 한 것이니 지금 고통을 면할 수 없는 난국이 온 것은 머릿돌 되신 예수님이 나타날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가 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변치 않아야 할 것.


둘째, 원수를 두려워말고 타협치 않고 하나님의 역사가 임할 것을 믿는 신앙에서 강하게 부르짖는 힘을 내어야 할 것.


셋째, 조금도 후퇴하지 말고 전진의 걸음을 걸어 나갈 때에 고통이 지나고 완전 평화의 나라가 영원히 이루어질 것이니 잠깐 동안 고통 중에서 부르짖고 영원한 왕권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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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랏 산에 걸린 방주와 감람나무 새순

- 창세기 8:1∼19 -


창세기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오십 일 후에 감하고 4 칠월 곧 그 달 십칠 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5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 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7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 들이고 10 또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 놓으매 11 저녁 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12 또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 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13 육백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14 이월 이십칠일에 땅이 말랐더라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17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할 때에 노아의 방주로 남은 자가 새 땅을 개척하게 할 때 아라랏 산에 방주가 걸린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후세에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를 보여주기 위하여 된 일이라고 본다. 지금 방주가 아라랏 산꼭대기에 얼어붙어 있다는 것을 현재 발견하여 배의 형체가 신문에 발표한 사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기후가 변천되게 했다는 것도 그 방주를 썩지 않게 얼어 붙이기 위한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질 수 있다. 하여튼 노아 홍수 심판 후에 기후가 변천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둘째 : 이 땅에 악의 씨를 없애고 인종을 전하는 시발점이 높은 산에 방주가 걸린 것같이 새 시대를 이루는 촛대교회의 아름다운 소식도 높은 산에서 시작된다고 이사야 40:9 이하에 말씀했다. 언제나 하나님은 모두 되어지는 일을 아무런 의의가 없이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될 진리를 표현했다고 본다.


셋째 : 방주가 높은 곳에 앉게 된 것은 가장 성별된 뜻을 보인 것이다. 속화된 인간에 있지 않고 가장 조용하고 거룩한 산 위에 앉게 한 것은 촛대교회는 성별되어야 된다는 뜻을 나타냈다고 본다. 이제 방주 안으로 들어온 감람나무 새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고 본다.


1. 비둘기가 가지고 옴 (10절∼11 상반절, Earlier)


이 뜻은 비둘기 같은 성신의 역사는 감람나무 왕권의 징조를 보여준 것이라고 본다. 참 감람나무의 역사라는 것은 가장 순결한 비둘기 같은 성신의 역사라야 이루어질 것을 뜻한 것이다.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고 올라오는 예수님의 머리 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할 때에 하늘 문이 열려지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나타났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역사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2. 감람나무 새순을 방주로 들인 것은 방주와 같은 촛대교회의 순의 역사가 나타날 것을 보여준 일이라고 볼 수 있다 (11 하반절, Back)


다윗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목적하고 감람나무 순이 비둘기를 통하여 방주에 나타난 것은 방주 후에 심판이 있게 될 때는 감람나무 순의 종이 나타날 것을 방주에서 시작된 인간 개척을 감람나무 순으로 기쁜 소식을 알려 주었다. 물에 잠기어 멸망한 땅 위에 새순이 나타났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기쁨을 주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촛대교회의 순의 종들이 나타나는 것은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완전한 개척을 시작함 (12∼19)


촛대교회는 그대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교회인데 노아 방주는 분명히 촛대교회를 뜻한 예언이라고 보게 된다. 방주 안에 있는 여덟 식구가 세계 인류의 인종의 씨가 된 것 같이 앞으로 촛대교회 안에 있는 남은 자들이 새 시대를 이루는 종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촛대교회라는 것은 감람나무 순의 종을 통하여 아름다운 소식을 알게 되고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니 다윗 왕권을 감람나무의 역사라고 시편 52:8과 스가랴 4:3과 12절, 로마서 11:24, 계 11:4에 말했다. 이것은 전부가 감람나무 육적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 보다도 다윗의 왕권 계통을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방주에 나타난 감람나무의 순은 반드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결 론


아라랏산에 방주와 감람나무의 순은 새 시대를 이루는 알파적인 역사가 되는 것이니 종말에 방주와 같은 촛대교회가 감람나무 순과 같은 종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왕국이 이루어질 때는 노아 때와 같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다. 노아 방주로 말미암아 예언적인 시대가 시작되었다면 말세에 방주와 같은 교회로 말미암아 예언이 성취될 것은 새로운 감람나무 순의 종들이 나타나므로 이루어질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방주에 완전한 준비가 있으므로 남은 자가 있게 되어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씨가 된 것 같이 기독교 종말에도 완전 준비를 갖춘 촛대교회가 있으므로 그 안에서만이 새로운 시대를 이룰 자를 내게 된 것이다. 금일의 교회는 방주의 자격을 이루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가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첫째 진리를 모르는 교회요,

둘째 합심이 되지 못한 교회요,

셋째 완전히 희생 봉사가 부족한 교회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촛대교회를 이루려면 노아 방주 같이 되어야만 될 것이니 방주 안으로 비둘기를 통하여 푸른 새 순이 들어온 것은 완전 준비가 된 교회에서 새 시대를 이루는 왕권이 나올 것을 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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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될까 조심하라

- 야고보서 4:1∼4 -


야고보서 4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기독교의 흑암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는 종교 부패요, 흑암이라고 본다. 구약 말기에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다가 이방 바벨론에게 망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자리에 있게 되므로 하나님은 진노의 막대기로 예루살렘을 쳤던 것이다. 주님 당시에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을 하므로 또다시 예루살렘은 망하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이 금일에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면 무서운 심판이 교회로 올 것이다. 이제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행동은 무엇이냐는 것을 성서로 증거한다.


1. 다투고 싸우는 일이다 (1∼2)


하나님께서 제일 원수로 아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대적하고 싸우는 무리들이다. 이사야 41:11∼12을 보면 말세에 동방 땅 끝에서 붙들어 쓰는 종을 향하여 다투고 싸우는 자는 다 멸망을 시킨다고 말씀한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운 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가장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은 하나님의 참된 진리의 종을 대적하는 일이나 공연히 서로 시기하고 다투는 일일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다투고 싸우는 자들에게 임하는 것은 이런 무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고 망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2. 정욕적으로 구하는 일 (3)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기를 기뻐하는 동시에 정욕으로 구하는 사람은 오히려 대적으로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보다도 자기의 뜻을 내세우는 패역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종교인의 제일 큰 죄는 종교를 악용하는 일인데 자기의 욕망을 채워 보려는 마음에서 아무리 소리를 높여 기도한다 하여도 오히려 하나님은 낯을 가리우시는 것이다(이사야 1:15, 미가서 3:4, 11). 기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있다면 아무리 주의 종이라도 하나님은 대적으로 알고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은 내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이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발람이 기도를 하고 예언을 하고 했지만, 불의한 삯을 따라 갈 때에 망하고 만 것이다. 종교인의 제일 큰 비극은 정욕으로 하려고 기도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들은 기도할수록 점점 손해요, 흑암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덮어놓고 구한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라의 법에 의하여 신청하지 않고, 문서를 위조하고 신청했다는 것은 신청을 하지 않은 사람보다도 더 불행이 될 것이다.


3. 세상과 벗되는 일 (4)


우리는 세상을 원수시하고 나간다는 것도 탈선이요, 세상과 벗이 된다는 것도 탈선된 일이 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는 범위 안에서 나가야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겸손하게 역사하는 일, 아들을 희생시켜서 역사하는 일,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면서 역사하는 일,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겸손과 희생과 인내, 이것으로써 역사할 때에 하나님과 의합된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언제나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을 하지 않고, 친구가 되는 일을 할 때에는 무엇이나 기도하는 것 밖에의 더 좋은 것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로되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을 한다면 생각 밖에의 두려운 일, 망신하는 일, 크게 수치를 당하는 일이 오게 될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덮어놓고 자기가 정통이라는 교만, 자기의 주권을 위한 야욕, 자기의 안락을 위한 물욕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수치를 당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가장 슬프고도 부끄러워 할 일은 종교인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일을 하다가 원수인 마귀 자식들에게 먹힘을 당하고 포로가 되고 큰 피해를 당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라고 본다. 우리는 육적 이스라엘의 종말을 깊이 생각하고 구약 선지서를 심판의 다림줄로 알고 자세히 읽어보면서 자아를 반성하며 회개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진노의 날에 먼저 막대기를 맞게 될 것이니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이 때에 나 자체가 어떠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가는 생활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슬퍼하시면서 떠나가는 일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사상과 마음을 가진 자에게서 떠나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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