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설교 - 참된 지식을 따르는 생활 (빌립보서 3:5∼16)
참된 지식을 따르는 생활
- 빌립보서 3:5∼16 -
빌립보서 3:5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을 따라 가느냐에 의하여 그 생활이 좌우되는 것이다. 돈을 따르는 생활은 그 생활이 물질을 초월할 수 없고, 세상 권리를 따르는 생활은 그 생활이 그 권리를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참된 지식을 따르는 생활은 참된 지식 안에서 지식의 범위를 다 소유할 수 있는 열매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제 참된 지식을 따르는 생활에 대하여 본문으로써 읽어 알 수 있다.
1. 참된 지식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는 생활 (5∼8)
사도 바울은 가장 (높은 신분의) 귀족이요, 가장 정통을 자랑하는 바리새인이요, 또는 인간적으로 희망이 가득한 청년이었다. 그러므로 영웅심이 강한 청년으로 기독교를 대적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핍박하던 그리스도를 알게 될 때에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일이니 이것을 분명히 알고 그 진리 안에서 복을 받으려 할 때에 그 지식의 대적이 되는 것은 다 분토같이 보고 용기 있게 나섰던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가장 옳은 지식을 찾게 될 때에 명예보다도 육체의 안락보다도 세상 권세보다도 가장 귀한 것은 참된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진리의 싸움을 하게 된다. 이런 자라야 그 진리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2. 참된 지식 안에서 발견하려는 생활 (9)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을 새로이 발견하는 생활이 있으므로 그 생활의 미를 이루고 또는 생활에 새로운 발전을 보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만이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지식을 남보다도 깊이 발견한 사람이다.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써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진리를 발견하여 14권이나 쓴 글은 전 세계 인류를 살리는 진리 운동이 된 것이다. 과학자가 과학적 지식으로 기계를 하나 발명해도 그 기계로 말미암아 세계 인류에게 큰 유익을 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진리를 발견한 것은 전 세계 인류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사가 되어 영원히 망하지 않는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
3. 참된 지식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생활 (10∼11)
참된 지식이라는 것은 내 생명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참된 지식이 없다면 생명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생명보다도 그 지식을 더 사랑할 때에 생명이 더 풍성함을 받게 되는 것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열매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생명이 피해를 당할까 무서워서 참된 지식을 위하여 싸우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참된 지식의 가치를 발견치 못한 자라고 볼 수 있다. 참된 지식이라는 것은 그 생명을 잃게 하는 지식이 아니요, 생명을 더 풍성히 얻는 것과 영광의 풍성한 것을 누리게 하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4. 참된 지식의 온전을 위하여 진보하는 생활이다 (12∼13)
인간 생활이라는 것은 하루살이 생활이 아니고, 하루하루 사는 생활이 완전을 목표하고 전진하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금일에 하루를 만족으로 안다는 것보다도 내일의 장래를 위하여 금일의 수고가 족한 줄 알 때 그 생활은 날이 갈수록 전진의 걸음을 걷는 동시에 온전이라는 그 세계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5. 참된 지식의 목적 (14∼16)
참된 지식의 목적은 자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천지를 창조하신 조물주께서 완전한 것을 주는 데까지가 목적인 것이다. 인간에 국한된 지식은 아무리 애써 보아도 온전을 이룰 수가 없을 것이로되 인간을 초월한 무소불능의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는 것을 받을 수 있는 지식은 온전이라는 것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적 지식이 발전하여 잠깐의 유익을 준다 하여도 온전이라는 것을 얻는 지식은 될 수가 없고, (다만) 온전한 것을 얻는 활동을 돕는 지식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과학적 지식을 무시한다는 것이 참된 지식이 아니고, 과학적 지식을 초월한 지식을 위한 생활에서 과학적 지식에 국한된 물질을 바로 사용하는 것이 온전을 이루는 생활의 열매가 될 것이다.
결 론
인생은 지식을 위한 인생이 아니요, 지식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니 사람은 그 지식을 바로 사용할 때에 인간의 할 일을 할 수 있는 데까지 도달할 수 있는 인격을 찾게 되는 동시에 참된 지식의 인격을 소유한 자에게 주는 온전은 왕권의 축복을 상급으로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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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18:1∼33 -
창세기 18:1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20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24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 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27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 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 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 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사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이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이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은 왜 복된 가정이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손님 대접하기를 기뻐하는 가정 (1∼5)
아브라함은 비록 자녀가 없는 쓸쓸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있는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는데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 그는 부지중에 하늘의 천사를 손님으로 대접한 일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를 대접하는 것을 당신이 대접을 받는 것과 같이 갚아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다. 그러므로 손님을 대접하기를 기뻐하는 아브라함의 가정에 천사를 보냈던 것이다. 인생의 가치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대접을 받는 것보다도 대접하는 생활이 가장 물질을 바로 쓰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은 도둑의 생활이요, 남을 대접하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종의 생활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사람에게 주는 것은 서로 대접을 하며 살면 더 좋은 것을 얼마든지 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손님 대접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므로 "너는 복의 근원"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받게 되었다.
2. 합심된 가정 (6∼8)
아무리 좋은 일을 하려 해도 가정에서 합심이 안되면 복된 가정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정은 아브라함이 손님을 대접 하고자 할 때에 합심하여 급한 요리를 제조했던 것이다. 가정의 미라는 것은 남을 대접하는 일이라면 전 가정이 합심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아름다운 복된 가정을 이루는 요소가 될 것이다. 합심이라는 것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어떤 가정은 손님을 대접하지 않고 자기네 가정만 잘 살아 보려는 데서 합심된 가정이라는 것은 아무런 가치를 발휘할 수 없을 것이로되 남을 살리고 대접하기 위하여 합심된 가정에는 얼마든지 하늘에서 남을 살리고 대접할 수 있도록 공급하는 축복이 있을 것이다.
3. 이적으로 되는 가정 (9∼15)
아브라함의 가정은 세계적인 사명을 갖되 거룩한 씨를 전하는 사명이 있는데 인간의 무엇으로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가정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라는 다시 자기에게 거룩한 씨가 될 자식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단념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가정에 나타난 천사는 말하기를 "사라의 몸에서 아들을 낳으리라"고 할 때에 사라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으면서 "내가 나이 늙었고 경수가 끊어졌고 노쇠한 사람이 이제 와서 어린애를 낳는다"고 하면서 코웃음을 쳤던 것이다. 그 때에 천사는 네가 왜 웃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은 능치 못한 일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며 기한이 이를 때에 네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했던 것이다. 그 말대로 노쇠한 몸에서 이적으로 거룩한 씨가 될 이삭을 낳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복된 가정에는 모든 일이 이적적으로 되게 하는 것이다. 인간 생활이라는 것은 과학에 국한된 생활에서 복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과학을 초월한 이적으로 되는 일이 있으므로 복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4. 강대한 나라를 이루는 가정 (16∼18)
가정은 국가를 이루는 본부가 되는 것이니 강대국을 이룰 수 있는 인격은 복된 가정에서부터 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과학을 초월한 이적으로 시작된 거룩한 씨는 악의 세력을 이기고 세계를 통일하는 강대국을 이루게 될 것을 성경은 가르쳤다. 아무리 자녀가 많아도 멸망의 자식이 된다는 것은 불행 중에 불행이요 아무리 작은 겨자씨 같은 이삭 한 사람을 낳은 가정이라도 그 씨가 새 시대를 이루는 열매를 가져왔다는 것은 복된 가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인간의 참된 미라는 것은 결말이 좋아지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가정의 씨가 세세 왕국을 이루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이라는 것을 인간들은 모르는 것이다.
5. 의를 위하여 택한 가정 (19)
가장 복된 일은 하나님이 당신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일이라고 보게 된다. 인간이 볼 때는 어리석은 일 같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서 당신의 의를 이루기 위한 사람이라면 누가 그 세력을 막을 자는 전혀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가정을 택할 때에 하나님께서 의로운 일을 개척한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시작된 그 일의 열매가 되는 사람이 될 때에 가장 복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누구든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 했던 것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대 주재 하나님이 그 가정을 통하여 당신의 할 일을 행하게 하신다는 것이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을 말씀했던 것이다.
6. 급한 비밀을 알려주는 가정 (20∼33)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도 그들은 내일의 멸망을 모르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짓고 오락하고 춤추다가 한 시간에 멸망을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천사가 와서 그 비밀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소돔 고모라를 염려하여 "의인이 그 성에서 열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나이까?" 하는 데까지 물어 볼 때에 하나님은 열 사람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실 때에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 롯을 생각하여 의인 열 명이 되지는 않겠는가 생각한 일도 있은 것이다. 그러나 의인 열 명이 없으므로 그 성은 망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복된 가정은 급한 비밀을 하나님께로 알려주는 일을 받게 될 것이다.
결 론
천하에 복된 가정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축복을 받게 되는 가정일 것이다. 우리가 받는 축복은 전부가 복된 가정인 아브라함의 집에서 시작된 그 축복을 받게 되는 가정이니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아서 복된 가정의 시발점이 무엇인 것을 알아 끝을 맺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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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본 환상과 요한이 본 계시
- 사도행전 10:9∼16, 계시록 22:6∼7 -
사도행전 10: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육시더라 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요한계시록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모르는 인간들에게 그 비밀을 알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시대적인 복음을 전하게 하는데 는 대표적인 사람에게 먼저 그 비밀을 알도록 보여 주고, 그 대표 사람에게 준 사명을 모든 사람이 다같이 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알게 해 주므로 알 수 있고 또는 전하게 하므로 써 전할 수 있는 것이니 이제 베드로에게 보여준 환상과 사도 요한에게 보여준 계시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1. 베드로에게 보여준 환상(사도행전 10:9∼16)
주님께서 승천하실 적에 너희는 성신의 권능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라는 사명을 맡기고 승천하신 후에 성신을 예루살렘 다락방으로 보내 주시므로 성신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고 이방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게 하셨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데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소리가 들려 오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대답하기를 주여 그럴 수가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 하였나이다 할 때에 다시 소리가 들려 오기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러한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갔다.
이것은 베드로가 전할 복음의 총 대지가 되는 뜻이다. 왜냐 하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무리 짐승같이 타락한 인생이라도 다 하나같이 깨끗하게 해서 너와 같이 하나가 되게 할 것이니 너는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십자가를 전하라는 뜻을 보여준 것이다. 그때 베드로는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서슴지 않고 복음을 전할 때에 이방 사람에게도 꼭 같이 성신이 임하는 것을 볼 때에 베드로는 큰 용기를 얻고 율법주의자와 싸우면서 이방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까지의 사명은 어느 종이나 다 베드로가 본 환상의 뜻을 따라서 움직인 것뿐이다. 십자가의 복음이 오늘날 야만인의 나라에까지 다 전파된 것은 이 환상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2. 요한에게 보여준 계시(계시록 22:6∼7)
이 계시는 베드로가 본 환상의 뜻이 다 이루어져서 어느 민족이나 다 같이 복음을 받은 후에 전할 복음을 보여준 것이다.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어 보여준 계시다. 여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있는 것이다.
첫째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 된 선지들에게 묵시를 보여줄 적에 아브라함의 자손의 나라에서 예수가 나실 것을 말했고,
둘째 : 그 소식을 세계에 전하므로 세계 민족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것을 보여 주는 동시에 하나님께로 돌아 온 백성을 심판할 때에 어떠한 자가 새 시대 간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셋째 : 구약 말기에 종교 부패, 정치부패, 인심악화, 경제혼란이 있을 때에 북방 환란이 내려 와서 부패한 종교와 정치와 악화된 인간들이 다 환란에서 망하는 동시에 경제권을 쥔 세력이 다 원수에게 먹힘을 당한 것같이, 인간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을 말했고, 그 환란 가운데서도 끝까지 선지를 통하여 전해준 말을 믿고 참음으로 기다리는 자들에게 권리를 주어서 다시 다윗 왕국을 복구함 같이 인간 종말에도 아무리 환란이 와도 예언을 지키는 자라야 주님 다시 올 때에 복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계시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은 베드로가 선지서를 들어서 십자가 부활을 증거한 것 이외의 예언을 혼선되지 않도록 증거하게 하기 위하여 완전 계시로 보여준 것이다. 사도 요한이 본 계시가 아니라면 선지서에 있는 심판의 다림줄을 정확히 증거할 수 없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록을 보여 주고 그 계시에 의하여 선지서의 비밀을 햇빛같이 밝히 증거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성도는 베드로가 받은 영감의 은사적인 계통이요, 말세에 주 재림시기에 남은 변화성도는 완전 계시를 본 사도 요한의 영감 계통으로 역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권세의 역사가 되는 것이니 원수를 승리하고 나가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되는 역사라고 보게 된다.
율법 시대의 교권주의 바리새 교인들이 베드로가 환상을 본 비밀을 모르고 이단시하다가 예루살렘이 망했고, 주님 다시 올 때에 요한이 받은 계시의 비밀을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거짓 선지의 미혹을 받거나 (혹은) 이 예언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다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결 론
우리가 대표적인 사람에게 한 번 보여준 환상이나 계시를 조금이라도 등한히 한다는 것은 큰 죄가 되는 것이다. 은혜시대에도 베드로가 본 환상에 의하여 전하는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은 다 망했고, 주 재림 시기에도 요한이 본 계시의 비밀을 지키지 않는 자는 다 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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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지는 바울의 인격
- 빌립보서 4:10∼15 -
빌립보서 4: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종 된 자의 인격을 향상시킬 때에 날마다 배워지는 인격이 있게 하므로 종 된 자로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생활에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게 하신다. 예를 든다면 과실을 맺는 나무가 새로워지는 것이 있으므로 과실을 맺듯이 종 된 자의 생활이 새로이 배워지는 인격이 되므로 그 인격은 마른나무 같은 인격이 아니고, 푸른 나무 같은 인격으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발전이 있을 때에 그 종을 통하여 많은 열매를 맺으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1. 자족하기를 배우는 인격(10∼11)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스스로 족하게 생각이 나도록 배워진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지각이 있는 인격이라고 본다. 마음에 불만과 불평이 있는 자는 지각이 없는 자요, 날마다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족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사랑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자라고 본다. 왜냐 할 때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무엇이나 유익하도록 하는 모략의 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것은 택한 자에게 유익을 얻도록 하는 방침을 세울 때에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오히려 낙심을 하고 불만을 두고 점점 떨어지는 인격을 가지게 되지만, 자족하기를 배우는 인격이라는 것은 무슨 일을 당하나 새로운 발전을 보게 된다.
2. 비결을 배우는 인격 (12)
인생이 완전한 인격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무슨 일이나 그 속에 숨어 있는 비결을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 일이 다 형통을 이루는 열매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무가 열매를 맺을 적에 추운 바람, 더운 바람, 뜨거운 태양, 부딪히는 폭우 등 여러 가지를 거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있음으로써 그 나무는 건전한 나무를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이방 사도로서 복음을 전하러 나선 몸으로 여러 가지 풍랑을 만났지만, 거기서 신비한 체험을 받게 되는 동시에 어찌해서 이러한 일이 내게 온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감사했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죽는 길 같으나 살고도 남음이 있고, 굶주리는 일 같으나 그런 일이 있으므로 더 풍부한 것이 오고, 실패를 당하는 일 같으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주의 일이 더 확장되는 것을 볼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완전 역사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3.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됨 (13∼15)
주의 종이라는 사람은 배워지는 인격을 가질 적에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이 된다. 왜냐하면 배워지는 인격에는 주의 능력이 나리기 때문이다. 주의 능력이라는 것은 주의 뜻을 따라 역사하되 바로 배워지는 인격을 들어 쓰기 때문이다. 능력이라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주께서 어려운 시련을 주는 동시에 그 난관을 돌파하고 나가도록 역사하는 것을 주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주께서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되 법을 따라 주는 것이니 진리의 법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능력을 주어서 역사하게 한다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능력을 줌으로써 일을 한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 능력은 어떠한 일에 어떠한 목적을 위하여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 께서 능력을 주는 일에 대하여서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 :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기 위하여 능력을 주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한다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영광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시는 것이다. 왜냐 할 때에 하나님의 대적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자기 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볼 때에 교만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둘째 : 약한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주는 것이니 항상 약해서 쓰러지는 사람을 무시하지 말고, 불쌍히 볼 때에 능력은 쓰러지는 사람을 위해서 나리는 것이다.
셋째 : 하나님은 마귀의 세력을 들어서 하나님의 종을 대적하게 하고, 종에게 능력을 주어서 역사하게 하는 것은 그 종에게 마귀를 이김으로써 세세 왕권을 받게 하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아담, 하와는 능력을 받지 못했으므로 타락했지만, 지금 하나님의 종은 주님의 대행자로 나섰기 때문에 주의 이름으로 능력이 오게 된 것은 주의 손에 붙들린 인격이기 때문이다. 천하에 제일 강한 자는 주의 능력의 손에 붙들린 종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을 대적하던 로마의 정권과 모든 교권은 다 무너졌지만, 사도 바울이 능력을 받아 세운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동시에 세계 통일의 완전한 평화 왕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결 론
가장 인생 중에 복된 자는 배워지는 인격으로써 날마다 진보하는 성도라고 본다. 왜냐 하면 이 성도의 주권으로만이 세계 인류는 가장 행복 된 세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볼 때는 작은 일 같으나 제일 큰 일이 날마다 새로이 배워지는 종의 인격이라고 본다. 아무리 세계적인 강대국이라는 나라도 아무런 열매 없는 허수아비 같이 되었지만, 배워지는 인격을 가진 바울은 지금에 와서 큰 열매를 이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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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행하는 자의 비극
- 마태복음 7:22∼23 -
마태복음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가장 불행스럽고도 부끄러운 일을 당할 자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불법을 행한 자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수고를 하고도 제일 큰 화를 받기 때문이다. 차라리 하나님을 모르고, 종교를 모르고 살던 사람보다도 하나님을 안다 하며 종교적인 지도자라 하면서 불법을 행했다는 것은 큰 비극이라고 보게 된다. 선지 국가의 왕조가 될 사울 왕이 불법을 행하므로 받은 화나, 엘리 제사장이 불법을 행하므로 받은 화나 다 비극의 하나라고 보게 된다. 이제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하면서 불법을 행하는 자는 어떠한 자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은혜를 악용하는 일 (22 상반절, Earlier)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성직을 이용하여 자기의 주권이나 명예나 물질이나 안락을 취했다면 이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집에 도둑이 되기 때문이다. 은혜로써 성직을 받았다면 끝까지 은혜로써 끝을 맺어야 할 것이다. 불법이라는 것은 원칙을 떠나는 것을 가르쳤다. 종된 자의 원칙이라는 것은 세 가지 원칙을 떠나면 불법이 된다.
첫째 : 하나님만 영화롭게 한다는 원칙이 있어야 된다. 내가 괴로워도 죽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절대로 순종한다는 원칙을 떠나면 불법이 된다. 종된 자는 주인이 하라는 것 외에 자기의 주관을 세운다든지 자기의 이익을 탐한다는 것은 불법이 되는 것이다.
둘째 : 남을 살리는 일에 원칙을 세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낸 목적은 죽을 인생을 살리겠다는 것이 목적이다(요일 4:9∼11). 누구든지 인생을 살리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칙을 떠나면 불법이 된다.
셋째 : 진리를 사수한다는 원칙을 떠나면 불법이 된다. 아무리 진리를 증거한다 하여도 그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희생이 없다면 그 진리의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불법이 되는 것이다.
2. 이적을 악용하는 일 (22 하반절, , Back)
하나님께서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신 것은 이적을 위한 이적이 아니고 진리를 위한 이적이다. 그러므로 이적을 악용하는 일은 무엇이라는 것을 말한다.
첫째 : 이적을 행하고 그것으로 사람을 자기 앞으로 이끌어 보려는 일이다. 주님께서 이적을 나타내는 것은 어떤 종을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 목적인데, 이적을 행할 때에 나는 이 만큼 영계가 높은 자라 하는 것을 내세우든지 내가 어느 종 보다 옳다는 것을 내세워서 양떼들이 자기만을 따라오게 만드는 것을 목적 둘 때에 사단은 기회를 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이적이 나타날 때에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까지 말한 것은 이적을 보고 많은 사람이 공연히 따라 오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진리를 목적하지 않고 이적을 보고 따라 오는 무리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둘째 : 이적을 행하므로써 자기의 어떤 영리를 취하는 일이다. 연보를 많이 내면 기뻐하고 적게 내면 많이 내라고 강조하면서 병을 고침 받고도 감사 할 줄 모르면 오히려 저주가 된다고 하는 말을 써서 위협을 준다는 일의 결말은 불법적인 행동으로 기울어질 것이다. 원칙을 세우자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준 것이니 거저 주는 것 뿐이요, 그 밖의 무엇을 요구한다는 것은 불법이 되는 것이다.
셋째 : 이적을 행할 때에 그 사람의 생명을 구원해 낸다는 진리 운동을 목적하지 않고 이적이 나타나면 하나님께서 내게 역사하니 나는 조금도 진리에 잘못된 것이 없는 사람인 줄 생각을 하고 하나님 말씀의 깊은 도리를 바로 전하는 일에 전력을 두지 않으면 불법적인 일이 될 것이다. 이적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바로 전하기 위한 목적에서 보여준 것인데 진리의 도리를 바로 가르치는 일을 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에 적극 순종해야만 될 것이다.
3. 주께서 인정할 수 없는 일 (23)
주께서 베들레헴에 나신 것은, 말씀대로 죽기까지 순종하려 오셨고 다시 오시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한 자를 일한 대로 갚아 주려고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떠는 자라야 재림의 날에 설 수가 있게 될 것이다. 이제 말씀대로 갚아 주시는 일에 있어서 세 가지로 되어 있다.
첫째 : 말씀대로 중심이 성결한 자라야 주 앞에 설 수가 있다. 마음에 성결이 없다면 벌써 그 마음이 하나님 말씀과 합치된 마음이 못되기 때문이다.
둘째 : 활동한 일이 말씀에 맞아야 한다. 아무리 활동을 했다해도 그 활동이 그 진리에 합한 일이 못된다면 그 한 일에 대하여 주께서 인정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셋째 : 말씀을 전했다 하더라도 전한 사람의 그 생활이 그 말씀과에 합치된 생활이 못된다면 말씀을 전했다 하더라도 그 일에 대하여 주께서 말씀을 전한 자에게 갚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말씀과에 대적이 되는 생활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자는 그 말씀이 인격화되고 생활화됨으로써 전한 자라야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결 론
인생이라는 것은 진노의 날에 인정을 받는 인격이 될 때에 큰 축복이요 인정을 받지 못할 때에 영원히 화를 받는 비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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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
- 히브리서 7:18∼25 -
히브리서 7:18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언약이라는 것은 예언적인 언약도 있고, 실천적인 언약도 있다. 구약 시대의 지성소에 드리는 대제사장의 직분은 예언적인 언약의 증거라면 신약 시대의 이루어진 언약이 영원한 속죄를 이룬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언약을 실천하는 일의 보증이 된다. 예를 든다면 구약 시대는 죄를 지으면 용서 없이 죽인다는 율법을 기준 하여 세워진 언약이며 언약의 증거요, 신약의 은혜는 얼마든지 살려준다는 언약의 보증이다. 다시 말하면 첫째는 공의를 목적 둔 것이라면 둘째는 사랑을 목적한 것이다. 죄를 지으면 용서 없이 죽인다는 언약을 받은 민족도 복되다 하였거든 얼마든지 살려 준다는 언약의 보증이 되시는 예수를 믿는 자에게 그 축복이야말로 감히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계명은 무익하므로 폐하고 좋은 소망이 생기게 함 (18∼19)
하나님께서 계명으로만 행하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무능력한 하나님으로 보게 된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물 밖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정신을 차리라, 여기로 나오너라" 하는 말을 해 보았던들 그 사람을 물에서 건져낼 능력이 없다면 "정신을 차려라" 하는 말이나 "물에서 나오라" 하는 말은 하등 필요가 없는 말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죄악의 물결에 휩쓸려 들어간 인생들을 향하여 "정신을 차려라, 죄에서 나오너라" 하더라도 그 인생을 끌어내어 올 능력이 하나님께 없다면 그 계명은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익한 법은 폐지하고 좋은 소망을 인생에게 준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계명을 가르친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알도록 선포한 것 뿐이요, 그 계명을 인간이 행할 수 있다는 조건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행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는 법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기 위한 과정에서 예언적인 증거를 보여준 것뿐이다. 인간이 행하므로 된다는 것은 소망이 될 수 없고, 인간이 행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행함으로써 인간을 구원해 준다는 것이 소망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 힘으로 도저히 나올 수 없으나 다른 사람이 구원선을 타고 물에 빠진 자를 끌어 배에다 올려놓듯이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교회를 구원선과 같이 세운 것은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한 속죄제를 드리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여 성신을 내려 보내므로 죽은 영들이 살아나는 교회가 이루어질 때에 이루어진 교회에서 전도하는 목적은 누구든지 이루어진 교회에 나와서 은혜를 받으라는 것이다. 누구나 믿음으로 교회에 들어올 때에 다 같이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심 (20∼21)
하나님께서 맹세를 세우되 아브라함에게는 "네 씨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는 맹세를 세웠고(창세기 22:16∼18),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맹세는 완전한 속죄제를 완성하시고 누구든지 믿으면 이루어 준다는 맹세이니 이 맹세로만이 완전이라는 것을 이루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먼저 맹세는 아들을 보내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영원한 속죄가 되게 한다는 것을 목적했지만, 은혜시대는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으니 이 언약의 피를 믿으면 무조건 구원한다는 맹세이다.
3. 항상 살아서 간구하시므로 (22∼25)
만일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 하여도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 없다면 보증적인 역사가 될 수 없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보증을 서고도 책임을 할 능이 없어서 활동을 못한다면 그 보증은 무효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속죄를 완성하시고 맹세를 세운 동시에 그 맹세대로 실천하기 위하여 항상 택한 자를 위해 간구하는 기도가 있으므로 택한 사람에게 예정대로 모든 것을 다 이루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속죄는 물에서 건져 주는 역사라면 간구하는 기도는 물에서 건져낸 사람을 완전하게 만들어서 완전한 일을 하도록 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보증을 서고도 그대로 못하는 수가 있지만, 우리의 보증이 되신 예수님은 언약의 말씀대로 몽땅 다 행하시는 보증이시다. 가장 완전한 일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보증적인 인격을 가진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이다.
결 론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보증을 서 주는 신앙이라고 보게 된다. 완전한 계약서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한 언약의 속죄의 피가 이미 우리를 살려준 일이니 보증적인 그리스도의 역사로만이 앞으로 오는 모든 난제는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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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평강이 같이 하는 생활
- 빌립보서 4:4∼7 -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은 평강을 주기를 기뻐하는 신이신 동시에 평강을 위하여 역사하시고 평강을 위하여 친히 갚아주는 신이시다. 하나님의 신의 성품은 피조물 된 인생에게 더욱 평강의 평강을 더 주는 데에는 무조건 주시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 난관을 당하게 하시는 동시에 그 난관을 돌파하도록 역사해서 더 큰 평강을 주시는 데 있어 어떠한 자에게 주신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자 (4)
누구든지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와도 주안에서 기뻐하는 생활이 있다면 무엇이나 뜻밖에 평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부자유스러운 생활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은 주안에 안겨 있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자기 죄로 말미암아 옥에 갇혔다면 불행 중에 불평의 생활이었겠지만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하여 옥에 갇힐 때에 이것은 주안에 있는 생활이니 누구든지 남을 살리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자는 다 주안에 있는 생활이다(요한1서 3:24). 인생의 참된 평강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생활에서 초인간적인 평강을 누리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역사를 하므로 사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참된 기쁨과 평강을 누리게 된다. 인간이 볼 때에 불행스러운 일 같으나 오히려 더 큰 축복이 오게 될 때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생활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쓴 글은 오늘까지도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복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2. 관용심을 가진 자 (5)
인생을 저주하기를 기뻐하지 않고 용서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은 남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자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남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유익이 있다.
첫째로 영적 축복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용서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역사가
더 강하게 역사를 나릴 때에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열매가 있기 때문이요
둘째로 하나님의 깊은 사랑 속에 더 들어가게 되므로 그 생활이 더욱 평화롭고도 자유로워지는 거요
셋째로 주님이 다시 올 때 갚아주는 보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그러이 용서해 주는 것이 있으므로만이 주의 종은 지금도, 미래도 열매를 거두기 때문이다.
3.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자이다 (6)
하나님 앞에는 무엇이나 억지나 불만이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는 사랑이시니 무슨 일이나 전부가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니 인간이 볼 때 억울하고 불만을 둘 일이 있는 것 같지만 그 일이 있으므로 만이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일이 열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목자가 양 무리를 인도할 때 높은 산을 넘어가면 양에게 만족을 줄 푸른 초장과 시냇물이 있는데 양은 그것을 모르되 목자는 알고 양의 무리를 억지로 몰아서라도 그 산을 넘게 할 때에 알지 못하는 양 떼는 오히려 괴로워 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목적지까지 도착하여서 뜻밖에 기갈을 면할 수 있게 됨을 체험할 때 그 때에야 양들은 기뻐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주의 인도를 따르는 종은 무슨 난관을 만나든지 감사하므로 기도하게 될 때에 생각밖에 홀연히 더 좋은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결 론
평강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역사가 없이 평강은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자기에게 있는 평강을 택한 자에게 주기 위한 목적에서 주시겠다고 언약을 세우시고 (이사야 48:18∼19, 미가서 5:5∼9) 그것을 주기 위하여 역사하는 것을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는 것이다. 평강을 잃은 인생에게 당신이 가진 평강을 주기로 언약을 세우시고 이것을 주기 위한 실천을 하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공포 속에 문을 닫고 숨어있는 제자들을 찾아가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오시는 주님은 환란을 만난 자들에게 평강을 주시려 오는 것이다. 첫째는 영적 평강을 주고 다음에는 몸에 평강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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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돌아갈 몸과 하늘로 올라갈 몸
- 창세기 3:17∼19, 계시록 11:7∼12 -
창세기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니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동시에 사람도 그 역사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를 창조하시고 흙에서 창조를 받은 몸을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흙에서 난 몸이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것은 무조건 되는 것이 아니요, 반드시 간교한 뱀으로 시험을 해보고 이기면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간교한 뱀을 이기지 못하므로 흙으로 돌아갈 몸이 된 인간이 다시 간교한 뱀을 이기고 그 몸이 하늘로 올라가기 까지가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것이다.
1. 흙으로 돌아가게 된 몸 (창세기 3:17∼19)
아담이 간교한 뱀에게 미혹 받은 여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이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몸을 이루게 된 것이다. 소위 왕권을 받아야 할 사명자가 여자의 말을 따라갔다는 것은 큰 과오가 아닐 수 없다. 하와는 뱀의 미혹을 받고 선악과를 먹을 때에 벌써 그 몸은 뱀의 도구가 되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령이 된 아담을 통하여 (그가) 생명과를 먹어 그 몸이 하나님과 동거동락하게 하시려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몸이 없는 여호와께서는 몸이 있는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의 만족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완전한 것을 줄 수 있는 완전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한 것을 주는데는 완전히 이기는 사람에게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상대하여 큰 나라를 이룰 사명을 맡은 자로서 뱀의 도구가 된 여자를 용납했다는 것은 벌써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는 자격인 동시에 선악과를 먹기까지 했다는 몸은 필경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몸이라는 것이다. 이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몸이 되는 죄는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첫째 : 주권을 상실한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라는 것인데 여자 하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여자에게 지배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준 주권을 상실한 죄이다.
둘째 : 여자의 손에 있는 선악과를 먹었다는 죄다. 하나님의 일꾼인 사람(남자)이 남을 옳게 먹여야 할 위치에서 도리어 여자의 손에서 주는 선악과를 경솔히 받아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죄이다.
셋째 : 하나님의 일꾼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게 알지 않고 여자의 말에 끌렸다는 것은 말씀을 전할 자격이 없는 인격이다.
하나님의 일꾼이 주권을 찾지 못하고 의무를 상실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지 못하면 모든 일이 다 헛수고가 되고 또는 열매 없는 인격으로 흙 한 덩이로 이루고 마는 것이다.
2. 하늘로 올라갈 몸 (계시록 11:7∼12)
하나님께서 이 날까지 종들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은 죽은 영을 살리는 일에 목적을 두고 역사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영들이 다 타락하여 이미 죽은 영들이었으므로 그 영을 살려 놓고야 하늘로 올라가는 몸이 되는 역사를 하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 인류를 향해 다 하나같이 죽은 영들이 살게 되는 일이 있게 하시고, 산 영들을 한 번 시험해서 시험에 떨어지지 않으면 그 몸이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역사를 하는 것이 오메가의 역사이다. 죽은 영을 살리는 일에는 마귀로 시험을 해보는 때가 아니고 이미 마귀에게 사로잡힌 영들에게 해방을 주기 위하여 회개 운동을 일으키되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이 회개만 하면 무조건 그 죄를 용서하고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는 역사이다(누가복음 24:47∼48).
시험이라는 것은 죽은 영들을 시험해 보는 것이 아니고, 산 영을 가진 자를 그 몸이 영생하게 하는 목적을 두고 역사하는데는 에덴 동산에서 생령을 가진 아담, 하와를 간교한 뱀으로 시험해 보듯이, 중생 받은 생령의 사람들을 시험해 보는 때를 인류 종말의 환란기라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는 아담이 여자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으므로 흙으로 돌아갈 몸이 되었고, 기독교 종말에는 음녀적인 바벨에게 미혹을 받지 않아야 영생할 몸이 되는 것이다. 이제 하늘로 올라가는 몸이 되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음을 말한다.
첫째 :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쓴 것을 통과하여 세계적인 예언을 다시 하는 대표의 사람이 나오는 일(계시록 10:10∼11).
둘째 : 진리로 하나같이 척량을 받는 일(계시록 11:1).
셋째 : 권세를 받아 마귀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일(계시록 11:3∼6).
넷째 : 삼일 반 동안 쓰러져 있다가 썩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는 일(계시록 11:7∼12).
첫째 아담은 성신을 받지 못했으므로 이기지 못하였지만, 말세의 종은 둘째 아담 예수님의 승리의 왕권으로 오는 성신을 받아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데는 권세까지 받게 되므로 옛 뱀 용의 앞잡이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세력을 이기게 되어 변화 승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로 올라가는 몸이 되는 것은 말씀 권세로 마귀 권세를 이기고 들림 받게 되는 것을 기독교 종말 역사라는 것이다. 우리 앞에 난국은 말씀을 지키나, 못 지키나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붉은 용, 붉은 짐승, 거짓 선지자가 권세를 받고 나와서 (교회와 성도를) 시험해 보는 것을 난국이라 하는 것이다. 이 난국을 돌파하는 것은 예언의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증거하는 종을 통하여 난국을 돌파하고 다시 에덴 축복의 새로운 왕국을 이루는데는 마귀의 세력을 이기고 나간 자들로 지상 통치 평화 왕국이 이루어진다.
결 론
하나님이 (말씀을 어길 때) 흙으로 돌아갈 사람이 되게 한 을은 <공의의 법칙>이라 한다면 (말씀을 지킬 때) 하늘로 올라갈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사랑의 법>의 완성이라고 본다. 사람이 아무리 타락해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서 완전한 왕국을 이루어내는 것을 <하나님의 의요, 승리>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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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롭게 할 권세와 인치는 일
- 계시록 7:1∼3 -
요한계시록 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인간 종말의 역사를 보일 적에 해롭게 하는 권세와 인치는 일에 대하여 천사로 지시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큰 뜻이 있다.
1. 해롭게 할 권세 (1∼2)
하나님은 해롭게 하는 일도 새 시대를 이루는 일에 큰 권세를 주는 것이다. 왜냐 하면 해할 자를 해하도록 하므로써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금일에 인간 과학 문명의 선구자로 되어 있는 나라는 미, 영, 불(프), 소(러)라고 본다. 이 나라의 과학 발전이 전 세계 인류에게 이날까지는 유익을 주었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결국은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것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면 이 네 천사는 인류 종말에 해롭게 할 권세를 보여준 것 뿐이요 실제로 천사가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들어 쓴다는 것이 계시의 목적이 아니요 천사를 보내어 속히 될 일을 지시한 것뿐이다(계시록 22:6). 이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되는 것이니 과학이 크게 발전하는 것은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의 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과학 발전이 없다면 세계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겠으므로 과학이 발전하도록 하나님은 허락해서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도 도구로 쓰여지게 했고, 세계 인류를 전멸시키는 일에도 도구로 쓰여지게 한 것이니 과학 발전의 도구가 없다면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말의 활동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 발전으로 세계적인 전멸이라는 위기를 이룬 것은 분명히 심판과 새 시대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한 정한 때가 된 증거라고 본다.
둘째 : 정한 때가 올 때까지 하나님이 그 권리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종들에게 하실 일을 다한 후에야 해할 권세를 허락하는 것은 종들에게 큰 역사를 해서 해할 권세를 받은 자를 지배하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강권 역사를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해할 권세를 주시고도 머물러 두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일에 과학적 전쟁은 하나님의 종들이 할 일을 다 할 때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셋째 : 해할 권세는 저주받은 만물을 다 없애기 위한 방법이니 저주받은 사람과 만물을 없앰으로써만 복된 시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 인치는 일 (3)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종말의 역사를 이마에 인치는 역사로 보여준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한다는 인이다(계시록 9:4). 인을 치는 일은 하나님께서 종마다 직접으로 치는 것이 아니고 인의 권세를 받은 종에게 전권을 맡기어 인을 치는 역사를 하므로 한 단체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몸이 죽고 그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단체적인 구원이 아니고 개인이 한명(限命)에 의하여 천사의 인도를 받아 그 영혼이 낙원으로 가는 역사이다(누가복음 16:22). 그러나 인을 치는 역사는 한 단체를 이루어 단체적으로 역사 하다가 단체적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것이다.
둘째는 권리 행사로 되는 일이니 예를 든다면 큰 전쟁이 있을 때에 군부에서 권리로 군대를 모집하는 것이나 같은 뜻이 있다. 왜냐 하면 기독교 종말은 적 그리스도와 싸우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방에서 일어나는 역사는 적 그리스도의 세력과 싸우는 역사이므로 하나님께서 선구자가 되는 종들에게 권리 행사를 맡겨 강권으로 종들을 깨우쳐 즉시에 무장을 가지도록 하는 역사이니 은혜 시대의 역사와는 다르다. 은사 역사는 믿지 않던 사람들이 각자가 깨닫고 회개할 때에 개인 개인이 은사를 받게 되는 일이요 하나님의 인의 역사는 이미 은혜를 받고 시련 가운데서 때를 기다리고 있던 종들이 각성을 받고 일어날 때에 하나같이 새로운 역사를 완전 영감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만일 집회를 가진다 하면 다소를 막론하고 참된 종들은 일시에 인의 역사를 받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훈련소에서 군대들이 일시 훈련을 받고 나가듯이 하나님의 종들이 권리 행사를 행하는 종을 통하여 일시에 완전한 영감을 받게 될 때에 하나같이 권리 있게 싸우는 용사가 될 것이다.
셋째는 하나님의 인은 마귀 권세를 때려부수는 역사를 가르친 것이니 예를 든다면 군대가 계급을 막론하고 꼭 같이 적군을 때려 부실 권리가 있듯이 14만 4천명의 사명 용사는 꼭 같이 황충떼의 피해를 당치 않고 주님 올 때까지 승리의 용사로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인의 역사를 받은 종이 아니고는 환란의 피해를 당치 않고 심판의 다림줄의 경고의 말씀을 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역사는 대표적인 사람에게 완전한 인의 영감의 역사가 오므로써 그 종의 변론을 통하여 하나 같이 각성을 받게 되되 선구적인 단체가 동방에서 나온다는 뜻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데서 나온다고 한 것이다(이사야 41:25, 59:19).
결 론
해롭게 할 권세는 세상 정권의 강대국에게 있고 인을 치는 역사는 동방에 나타난 종들에게 있으므로써 하나님의 역사는 종결을 짓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끝을 마치는 동시에 세상 정권은 자멸이라는 비참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인의 역사라는 것은 원수를 갚는 권세역사이니 만큼, 이 역사가 있으므로 기독교는 택한 자의 원한이 다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환란 중에 역사하는 종들은 다 이스라엘적인 새로운 다윗 왕국을 이루게 되는 뜻으로써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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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가정에 나타난 말씀과 세계
- 창세기 8:20∼22, 9:25∼27 -
창세기 8: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9: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인류 역사상 가장 귀한 가정은 노아 가정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신앙으로는 특별한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많이 있지만 온 가정이 단합된 가운데서 세계 인류의 어머니 가정이 되는 노아의 가정은 대표적인 가정이니 만큼 그 가정에 나타난 여호와의 말씀은 세계 인류가 이 땅에 존재할 때까지 큰 문제를 놓고 나타난 말씀이라고 본다. 이제 노아의 가정에 나타난 말씀과 세계 문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자연계 문제 (8:20∼22)
하나님은 노아의 가정에서 드리는 제사를 향기롭게 받고 말씀하실 때에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우리는 자연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안심하고 살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엇이나 언약이 없이 행하시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자연계가 움직이는 일에 있어서 자연의 모든 현상들이 조물주의 언약이 없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안심할 수 없는 세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로되 노아의 가정에 나타난 말씀에 의하여 자연계의 어떤 변동이 있으므로 지구에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노아의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서 온 가정이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가정이다. 그러므로 그 가정에 나타난 말씀에 의하여 장래에도 자연계에 큰 변동이 없을 것임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과학자의 말보다도 우리는 노아의 가정에 나타난 말을 믿어야 할 것이다.
2. 셈의 하나님을 찬송할 일 (9:25∼26)
하나님이 노아의 입을 통하여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라"고 한 말씀은 노아의 가정에서부터 금일까지 하나님은 셈의 장막에 나타나 일하셨다는 것이다. 언약 시대나 율법 시대나 은혜 시대나 다 셈의 장막에서 시대적인 새로운 역사가 나타나서 시대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는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메시야도 다 셈의 장막에서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세상이 알도록 한 것이니 앞으로 심판과 새 시대를 앞에 놓고 급한 환란과 재앙을 피하고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들어가는 역사도 동방 땅 끝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은 해 돋는 편에 영광으로 임하실 것을 말씀했으니 오늘에 지금 아시아 대륙에 적그리스도의 나라가 강한 위력을 가지고 다 삼켜 먹다 남은 땅은 우리 나라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호는 우리 나라에 있으므로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 24:16을 보면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사야 42:10을 보면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고 하였고 이사야 59:19에 "해 돋는 편에서 영광을 두려워하리라"고 한 것을 보면 셈의 하나님을 찬송할 때는 분명히 재앙의 날에 동방 땅끝 사람이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하였으니 셈의 하나님은 셈의 장막에서 모든 묵시를 보여줄 적에 중동에서 북방은 망한다고 하였고 동방에서는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고 서방 사람은 셈의 장막에서 나타난 역사를 따라가게 되므로 동방과 서방이 결합된 것을 말했다. 하나님께서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켜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일에 대표적인 사람이 되도록 역사할 것을 말씀했으니 아무리 지금 극동 난제를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난관이 닥쳐왔더라도 셈의 장막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가 나타날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3. 야벳을 창대케 하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는 일 (27)
금일에 4대 강국이라는 세력은 세계 운명을 좌우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4대 강국의 과학적 문명의 세력이 세계를 평화의 왕국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결말은 셈의 장막에 와서 거하므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을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는 셈의 장막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야벳이 창대케 되므로 그 물질 문명이 세계 인류가 그 세력 앞에서 머리를 숙이게 된 것 같으나 결말은 셈의 장막인 동방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세계 열방의 재물은 하나님이 같이하는 동방 사람에게로 돌아오고 말 것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인간이 볼 때는 야벳이 창대한 것을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셈의 하나님이 나타나므로 야벳의 창대한 세력은 다 굴복을 하고 셈의 장막에서 일어나는 역사를 따라오므로써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될 것이다.
결 론
노아의 가정에 나타난 말씀은 새 시대를 이루는 것으로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니 완전한 성경이 세상에 기록된 것도 노아의 가정에 나타난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노아의 가정과 같이 구원받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은 그 가정에 나타난 말씀이 다 이루어질 때에 완전히 끝을 맺는 역사가 노아 때와 같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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