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설교 - 할 수 없는 그 것을 하나님은 하신다 (로마서 8:3∼11)
할 수 없는 그 것을 하나님은 하신다
- 로마서 8:3∼11 -
로마서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인간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해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예정 속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섭리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할 수 있게 지은 것보다도 사람으로는 할 수 없고 당신이 역사해 주심으로만 할 수 있게 하여 당신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로 영광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는 동시에 영광스러운 나라를 그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지만 지킬 수 없는 사람을 지킬 수 있도록 역사해 주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사람으로서 다 하나가 되게 하는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각자 스스로가 할 수 있게 내었다는 것으로 통일을 가져올 수 없고 할 수 없는 인간으로 하나님께서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은혜로만 하나가 되는 거룩한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아들의 몸에 죄를 정하심 (3)
인간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법을 행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법을 숨김없이 인간에게 알도록 발표한 것이 율법과 계명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죄가 무엇이라고 알려준 것은 인간이 죄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뜻한 것이 아니고, 죄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려준 것뿐이다. 예를 든다면 의사가 병자 자신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조건으로 병의 내막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병이 있는데 이러한 방법을 쓰면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율법과 계명을 가르친 것은 죄가 무엇인지 알려 주고 그 죄를 없이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오직 독생자의 몸에 죄를 정해서 대신 죽는다는 법밖에 없다는 것을 선지서에 가르쳤으며, 그 법대로 실천한 것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이란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죄도 알리지를 않으시고 어떠한 방법으로 죄를 사해 주신다는 것도 알리지 않으시고 무조건 역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병세를 알려주는 것과 고쳐 주는 것을 의사가 하듯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알려주는 동시에 어떠한 방법으로 그 죄를 없이해 준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하여 이 날까지 많은 종들을 희생시키면서 인간의 죄를 걸머진 독생자의 십자가를 증거하게 한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도덕에 불과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죄를 아들의 몸에 걸머지게 하는 데서부터가 인간에게 나타낼 사랑이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의인 동시에 독생자의 의며 독생자의 의인 동시에 믿는 자의 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역사에 끌려가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아들의 몸에 걸머지운 것은 인간에게 주고 싶은 그 마음을 발표하는 행동 개시의 역사이다.
2. 성령을 좇아 행하게 하심 (4∼5)
인간은 성령을 좇을 수 없는 타락한 인간이지만 누구든지 독생자의 거룩한 보혈을 믿으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므로 믿게 된다. 죄인들이 성령을 좇아 행하게 된다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거기에 결부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찾으시는 방법의 하나이다. 십자가의 의는 택함 받은 자를 위한 의이니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가 범죄에 있다 하여도 성신으로 역사해서 책망을 하게도 하시고 징계도 하게 하시어 떨리는 마음으로 순종하고 따라오게 하시는 것이다. 오순절 성신이 임하실 적에 성신의 책망이 베드로의 입을 통하여 나타날 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욕하고 때리던 무리들이 마음에 찔려 어찌할꼬(사도행전 2:37) 하고 떠는 마음으로 베드로 앞에 울면서 모여든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역사가 무엇인 것을 모든 인간들은 알게 되었다. 성신의 역사가 (인간들이 반대하여도) 택한 자에게 임하는 것은 택한 자를 위하여 죽으신 십자가의 의로 말미암아 성신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신님께 순종하는 것이 의무요, 그 밖의 것은 하나님께서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역사뿐이다.
3. 성령이 거하게 하심 (6∼9)
성령은 거룩한 신이시지만 독생자의 의로 택한 자에게 보냄을 받을 적에 택한 자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요, 성령이 우리에게 와서 죄를 깨닫도록 책망하고 믿어지도록 감화를 주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를 따라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의 의로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신이 거하는 사람을 그리스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 론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사람이 죄에서 해방을 받은 것도 기쁜 일이요, 마귀의 인도를 따르던 사람이 성신의 인도를 따르는 것도 기쁜 일이요, 마귀가 마음에 거하던 지옥 생활에서 성령이 마음에 거하는 천국 생활도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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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주의 날을 사모하는 성도의 기도 (빌립보서 1:9∼12)
주의 날을 사모하는 성도의 기도
- 빌립보서 1:9∼12 -
빌립보서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우리의 기도라는 것은 주의 날을 사모하는 중심에서 할 때에 그 기도는 완전한 열매를 이루게 된다. 주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나리는 것은 재림의 날에 설 수 있는 인격을 이루기 위하여 나리는 것이다. 주의 날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자라야 된다.
1.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풍성해지기를 목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9)
오늘날 기독교가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진리의 지식이 없고, 영계적으로 밝은 자리에 이르지 못하므로 사랑을 바로 베풀지 못하고, 비진리를 사랑하고 참된 진리의 사람을 이단시하며 참된 성신의 역사를 사단으로 알고, 사단의 역사를 성신으로 아는 폐단이 있으므로 기도를 하여도 아무런 응답이 나리지 않는 일이 많다. 기도는 진리에 의하여 상달되는 것인데 진리의 지식이 없이 영계의 분별도 없이 기도한다는 것은 바리새 교인의 기도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과 총명이 점점 더 풍성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기도해야 될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기도는 이방인의 기도와 같고 오직 진리의 깊은 지식에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야만 될 것이다. 기도의 중점이 지식에 있지 않고 헛된 허영심에 있게 될 때에는 기도는 오히려 더 손해를 보는 일이 있게 된다. 아무리 사랑이라 하여도 참된 지식과 총명이 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 자체가 죄를 이루게 된다.
2. 선한 것을 분별하므로 허물이 없이 되기를 목적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10)
성도의 허물이라는 것은 선한 것을 분별치 못할 때에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그 열심은 허물을 더 많이 내게 되는 일이 있게 된다. 예를 든다면 길을 가는 나그네가 길을 분별치 못하고 잘못된 길로 열심히 걸어간다는 것은 가면 갈수록 더 불리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도하는 사람이 선한 것을 분별치 못하고 무조건 열심히 해 나간다면 그것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열심이 된다. 오늘날 기독교가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여도 허무한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보다도 분별할 수 있는 그 일을 먼저 목적으로 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3.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목적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11)
기도의 목적은 무엇이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의의 열매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인간 자체가 행했다는 것이 결부되어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서만 상달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마음이 있을 때에는 기도라는 것은 하등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불완전한 사람에게 응답을 내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의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완전한 의의 열매를 얻고자 할 때에는 그리스도의 의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여야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를 요구하시는 것보다도 그리스도의 의로써 인간에게 응답을 나려 의의 열매가 되게 하여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흑암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인간의 도덕적인 의로 치우쳐서 사람에게 보이려는 중심에서 움직일 적에 그 하는 일은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행동을 하는 일이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자기의 의를 사람 앞에 나타내려는 자를 통하여 있게 된다.
결 론
기도라는 것은 이방적인 기도도 있고 성도의 기도도 있으니 아무리 기도를 한다 하여도 하나님께 상달이 되지 않는 기도는 다 이방적인 기도가 된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는 정상적인 기도가 있어야 한다. 푸른 나무의 순이 계속으로 진액을 받으므로 열매가 많듯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아무런 실패가 없이 이르는 성도가 되려면 기도의 세 가지 요소가 항상 있어야 한다.
첫째 : 점점 풍성해지는 일과,
둘째 : 허물이 없이 되는 일과,
셋째 : 열매가 충만해지는 일이 있는 사람은 주의 날에 설 수 있는 무장을 갖춘 자이다.
기도라는 것은 날마다 인격이 완전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날에 칭찬 받을 일을 목적으로 두는 생활에서 기도해야만 될 것이다. 할 수 없는 그 것을 하나님은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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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 이사야 51:1∼3 –
이사야 51:1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3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행하신 일은 그들에게 약속한 언약대로 복을 받을 종들에게 준 교훈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대표적인 사람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복을 받을 사람에게 교훈이 되는 증거를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 날에 남은 종이 될 사람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었다. 이제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볼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순종 하는 생활을 함 (창세기 12:1∼4)
하나님께서 대표적인 사람을 세울 때에 순종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일 큰 사명을 맡은 사람이 철저히 순종하는 일이 없다면 대중을 지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하셨던 것이다. 이때에 아브라함은 용기 있게 말씀을 순종하여 하란을 떠나 순종의 걸음을 걸었다.
만일 세계적인 사명을 걸머진 아브라함이 용기 있게 걸어 나가지 못했다면 하나님은 대 사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로되 아브라함 한 사람이 순종을 할 때부터 하나님은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를 개척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말씀대로 시행하시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아브라함은 어리석은 자 같으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구와 같이 여기셨던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다.
2. 순종의 제사를 드림 (창세기 22:9∼22)
아브라함은 순종이 제물보다 낫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로 번제를 드리라고 할 때에 용기 있게 아들을 번제로 드리기로 작정하고 아들을 제단에 놓을 적에 하나님은 그것을 만족한 제사로 인정하고 그 아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금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자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제물로 바친 것으로 인정을 하고 아브라함에게 큰 축복을 하셨다. 우리의 제사라는 것은 제물을 바치기 전에 순종이 제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명을 맡은 자는 조금도 생명을 아끼지 않고 순종해 나갈 때에 우리가 죽지 않았어도 주를 위하여 죽은 것과 같이 인정하는 것이요, 우리가 바친 것이 없다 하여도 바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제물을 바쳤다 하여도 중심에 순종이 없다면 받지 않는 것이요, 완전히 바치지를 못했더라도 끝까지 순종할 때에 바치고도 외식하는 자 보다 더 인정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종이 주인의 일을 받들 때에 주인은 그 종에게 물질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인이 시키는 일을 진심으로 순종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받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요, 그 순종을 보고 기뻐하시는 것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당신에게 바치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몸을 하나님께 바칠 적에 죽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요, 죽지 않고 순종의 제물로 많은 열매가 있기를 원하신다.
과거의 순교자들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으므로 축복의 죽음을 준 것이요, 살아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을 받을 변화성도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친 것과 같이 몸을 완전히 바칠 적에 이삭의 몸을 아껴서 죽이지 못하게 한 것처럼 우리 몸도 하나님께서 산 제물로 인정을 하시고 우리의 몸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역사하신 말씀대로 거룩한 씨가 새 시대에 번창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3.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만민이 복을 받게 됨 (창세기 22:18)
하나님께서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 것은 네가 내 말을 준행했으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것을 본다면 대표적인 아브라함의 순종이 우리에게까지 응답이 미쳐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사명적인 일체가 되므로 앞서간 종들의 순종한 열매가 우리에게 열매가 되는 것이니 그들이 간 신앙 노선을 우리가 생각하고 아무런 시련이 와도 순종할 때에 그에게 약속한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고 아무런 어려운 환란이 우리 앞에 온다 하여도 큰 축복이 올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련 끝에 인정하고 세우신 언약은 우리 변화성도로서 환란과 재앙을 만나도 끝까지 참고 나가는 사람에게 에덴 축복이 올 것을 언약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위로하되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축복을 받으므로 잠깐의 시련을 지나서 영원한 기쁨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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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과 성결
- 요한1서 3:1∼9 –
요한1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경륜은 완전 성결의 인격을 이룬 자로써 거룩한 나라를 이루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귀를 들어서 쓰신 것은 마귀를 이기는 자를 완전히 성결에 이르는 인격으로 인정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과 성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는 사랑 (1)
이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고 싶은 심정을 가지시고 인간이 그 심정을 알게 하는 동시에 실천적인 증거를 나타낸 사랑이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라는 것이다. 이 사랑의 비밀은 세상과 거리가 너무나 멀기 때문에 세상이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런 일이 없는 악한 죄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의 명분을 얻게 된다는 것은 그 은혜를 받은 자 밖에는 알 자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사랑을 받아 자녀가 된 자는 깨닫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당하는 일도 있게 되는데 그것은 거룩한 생활을 해 나가기 위한 데서 세상에 대적이 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미움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5:19).
2. 왕권을 받게 하는 사랑 (2∼3)
하나님의 사랑의 한계는 죄인을 불러서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는 것으로 교회를 세우게 되고, 거룩한 당신의 아들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해서 왕권을 받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주님을 다시 오시게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완전한 성결은 마음에 두지를 않고 한 죄인의 한 사람이 되는 자리에서 만족하여 예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일에 목적을 두고 싸워 나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와 같이 왕권을 누리는 단계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모든 순교자들은 재림의 날에 완전한 구속을 받는 몸이 될 것을 바라보고 순교적인 생활을 했던 것이다.
3. 죄를 없이 하는 사랑 (4∼5)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용납하는 사랑이 아니고 죄를 없이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의 완전한 체험을 받으려면 죄와 싸우는 생활에서 자신의 죄의 근성까지 없이할 것을 믿고 싸워 나갈 때에 하나님의 사랑은 그 죄를 없이하는 역사를 하시므로 거룩한 인격을 이루게 된다. 우리가 행함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죄를 없이하는 그 사랑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4. 마귀의 일을 멸하는 사랑 (6∼8)
어떤 사람이 사랑이라는 간판 밑에서 마귀의 일을 용납한다면 거짓 영의 미혹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한 자이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조금도 타협이 있을 수 없고 마귀의 일을 없이하는 주님의 역사를 받을 때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베풀 때에 사랑의 씨를 먼저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천적인 사랑을 가지셨으므로 말로만 거룩하게 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고 거룩한 씨를 주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대신 죽게 하시고 누구든지 믿는 자는 죄를 이길 수 있는 씨를 주어서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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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지혜로운 일과 어리석은 일 (마태복음 25:1∼13)
지혜로운 일과 어리석은 일
- 마태복음 25:1∼13 -
마태복음 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주께서 가장 중대한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말씀하실 때에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일을 가르쳐서 기독교 종말의 역사를 말씀하셨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도 중대한 일을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대 사업을 신랑과 신부가 한 몸이 되어 실천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제일 큰 뜻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일과 어리석은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의 말씀으로 증거한다.
1. 지혜로운 일 (2, 4)
지혜라는 것은 그 이치를 바로 알아 그 이치에 꼭 맞도록 끔 하는 일을 지혜라는 것이다. 등불이라는 것은 기름이 많기 전에는 완전한 효과를 낼 수가 없다. 아무리 등이 있다 하여도 기름이 없이는 아무런 효과를 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등불을 드는 것으로 만족을 삼는 것이 아니요, 앞으로 그 불이 꺼지고 꺼지지 않는 것을 큰 문제로 알았던 것이다. 무엇이나 앞으로의 문제를 바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그 일은 시작을 했다 하여도 결국은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등불이 어두운 밤에 필요하다고 아는 것이 완전한 것이 아니요, 이 등불이 밤에 절대로 꺼지지 않고 있는 것이 완전일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아는 것만으로 전부가 아니며 실천에서 완전히 목적을 이루는 것이 없다면 그 신앙은 헛된 일을 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그 결과를 목적으로 두고 나가는 것인데 그 결과를 이룰만한 준비가 있어야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계속하여 은혜를 나리는 것은 앞으로 완전한 열매를 이루게 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누구든지 앞으로 여러 가지 난제를 돌파하고 나가겠다는 결심에서 구할 때에 그 난제를 해결하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게 된다. 우리가 쉬지 않고 일하는 목적은 완전 열매를 이루자는 것인데 열매라는 것은 주님 재림 시에 일한 대로 갚아주는 그 날에 가서야 완전한 열매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말씀을 세밀히 가르칠 적에 재림의 주가 오는 날에 남은 종으로서 하여야 할 문제를 제일 큰 문제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선지서 전체를 보면 초림의 주가 오실 때에 맞이하는 것을 세밀히 말하지 않았고,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 종들의 역사가 잘못 되지 않도록 세밀히 말씀해 놓았다. 영혼 구원이라는 것은 죽은 영이 중생 받는 시간에 얻는 것이요, 하나님의 종들이 앞으로 오는 어려운 문제를 돌파하고 나가서 새 시대를 완전히 성도의 나라로 이루어 놓는 것을 큰 문제로 말씀한 것이 여호와의 책이다.
모든 성도의 기도는 지상왕국이 이루어지므로 완전한 열매가 되는 것이니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것도 재림의 주가 오는 날에 될 일을 큰 문제로 여기시는 주님께서 비유로 가르친 말씀이다. 언제나 성신의 역사는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 맞이할 인격을 완전히 이루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2. 어리석은 일 (3, 5∼9)
어리석은 자라는 것은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방심하고 있다가 일이 이루어질 적에 급하게 무엇을 해보려고 하는 자이다. 이러한 자들은 앞으로 올 문제를 깊이 생각조차 하지를 못하고 그때 그때 임시 평안을 따라가는 것이다.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은 아무런 준비가 없이 그날 그날을 허송 세월 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생활이다. 누구든지 자기 앞에 급한 일이 올 때에 잘못을 깨닫는 것은 다 가지는 일이지만 앞으로 올 문제를 위하여 완전 준비를 갖추는 사람은 무슨 일에서나 심히 적다.
주님께서 제일로 기뻐하지 않고 노여워하실 사람은 앞으로 오는 어려운 문제를 등한히 알고 방심과 태만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예를 든다면 남편이 중대한 일을 놓고 노심초사하고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아내 되는 사람이 여기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등한히 알아 남편의 보조를 맞추어 주지 않는 다면 남편에게 그 아내는 큰 원수같이 여겨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처녀는 신랑을 노엽게 하는 처녀라고 볼 수 있다.
3. 주의 날에 큰 문제가 되는 일 (10∼13)
인간에게 제일 큰 문제가 되는 일은 주의 날이다. 지금 인간들은 큰 문제를 문제로 생각지 않고 작은 문제를 문제로 알고 날뛰고 있다. 어리석은 자들은 문을 닫은 후에야 열어 달라고 하는 자인데 이러한 자들은 후회 막심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한 번 문을 닫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문을 닫기 전에 시간을 아끼고 아껴서 준비한 자들이 기뻐할 날이 올 때에 때를 (기회를) 잃은 자들은 다 슬퍼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준비가 없이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같이 보이지만 주의 날이 올 때에 가장 지혜로운 자는 주의 날에 설 수 있는 준비를 갖춘 자이다. 지금 세상은 쉬지 않고 준비하는 자들을 볼 때에 가장 어리석은 자로 보는 것이다. 주의 날에 '주님을 맞이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일 크다는 것을 생각하고 노력하는 자를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가르친 것이 열 처녀 비유의 말씀이다. 이것은 절반만 준비하게 된다는 말이 아니고 준비가 있고 없는데 따라서 어리석고 지혜롭다는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결 론
인간 종말의 비극은 어리석은 자에게 있고 가장 즐거운 일은 지혜로운 자에게 있다는 것을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셨다. 우리는 기름과 등을 준비하는 인격이 가장 복되고 존귀한 인격임을 본문을 통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역사할 수 있는 완전 무장이 없는 자라면 도저히 남을 수가 없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의 날이라는 것은 흑암의 날이므로 완전 준비를 가진 자 외에는 남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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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전도의 열매
- 골로새서 4:2∼6 -
골로새서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5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기독교의 전도 운동이라는 것은 합심 기도가 없이는 아무런 열매를 거둘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전도라는 것은 마귀와 싸우는 전쟁에서 잃었던 백성을 찾아내는 것이니 아무리 사도 바울이 위대한 역사를 했다 하여도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는 봉사가 없었다면 아무런 열매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봉사가 있으므로 큰 열매가 나타난 것을 본문에 가르쳤다. 기도와 전도의 열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기도에 항상 힘쓰므로 (2 상반절, Earlier)
기도라는 것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믿음에서 항상 힘써야 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둘째 : 기도의 분량을 채우기 위하여,
셋째 : 사랑에 불타는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일이다.
아무리 은혜를 받았다 하여도 이 세 가지를 목적으로 하고, 항상 힘쓰는 것이 없다면 역사가 따르지를 않는다. 기도라는 것은 분량이 많으면 역사가 강하고 분량이 적으면 역사가 적고, 분량이 없으면 역사가 없는 것이다.
2. 기도에 항상 감사하므로 (2 하반절, Back)
기도라는 것은 항상 감사 할 조건에서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첫째 :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요,
둘째 : 기도를 하므로 얼마든지 받게 되는 일이요,
셋째 : 기도를 하므로 왕권을 받게 되는 일이다.
기도라는 것은 감사의 생활이 있게 되므로만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내는 열매가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마음에 불평이 있다든지 정욕이 있다든지 의심이 있다든지 하면 이 사람의 기도는 상달될 수 없고, 그 마음에 죄가 있으니 이 죄를 회개할 조건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마음에 감사하는 기도를 할 때에는 벌써 마음에 승리가 있는 것이니 그 기도는 남을 구원해 주는 열매가 있게 된다.
3. 사명자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므로 (3)
기도라는 것은 사명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하여 사명자에게 역사를 나린다. 왜냐하면 사명이라는 것은 시대를 따라 동일한 사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직접으로 말씀을 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참된 종을 위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따라서 그 종을 들어 쓰되 기도를 하는 자나 말씀을 전하는 자나 동일하게 인정한다.
어떤 사람이 사명이 크다 하여도 그 사람 혼자로써는 할 수 없겠지만, 여러 사명자가 도와주므로 되는 것이다. 바울은 전도 문이 열리는 것도 입이 열리는 것도 다 신앙 동지의 기도로 되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왕국 건설의 한 단체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결 론
기도의 열매로 모르는 백성들에게 그 시대의 비밀을 널리 알리게 되는 것이니 항상 은혜 가운데서 큰 변화를 일으키는 역사가 있게 된다. 기도라는 것은 예를 들면 화약과 같고 말씀은 탄알과 같다. 아무리 탄알이 있다 하여도 화약의 분량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과 같이 말씀의 운동이라는 것은 기도가 분량이 차므로 그 말씀이 능력 있게 나가므로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열매가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서 역사를 나리는데 있어서는 기도에 따라 나리기 때문이다.
사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성취시키는 일이니 예수님은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이 열매가 되었고, 모든 사도와 성도들도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한 것이 열매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사명을 계대하는 것이니 그들의 기도가 우리에게 열매가 되고 그들의 전한 복음이 열매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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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의 차이점
- 미가서 3:11∼12, 7:7∼13 -
미가서 3:11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심이 있다 하여도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도 있고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는 것이다.
1. 하나님을 의지하여도 화를 받을 일 (3:11∼12)
하나님을 의지하여도 진노의 날에 화를 받을 자는 소위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선지자라 하면서 돈을 위하여 점을 치는 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양심에 거리끼게 생각도 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를 의지하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 신념을 가진 자이다. 이들의 신앙 상태는 어떠한 것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 성직을 직업화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자들은 성직을 위하여 희생한다는 것보다도 성직을 이용하여 자기 생활의 무대를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을 가진 자는 사람에게 삯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목적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6:1이하를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을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할 때에
벌써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되므로 이러한 자의 기도나 예배는 하나님께서 도저히 받을 수 없고 사단의 회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되지 못하고 삯군을 위하여 한 직업화되는 단체가 될 때에 거기에 있는 양 떼 들은 오히려 이용을 당하는 일 밖에는 되는 것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나리지 않는다면 그 교훈은 오히려 말씀을 이용하는 일 밖에 되지 않으므로 이러한 자들이 가르치는 교훈은 하나님의 아무런 응답이 없게 되니 그 교회는 진노의 날에 황폐화되고 마는 것이다.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 될 수도 있고 삯군을 위한 한 단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삯군을 위한 단체라는 것은 거기에 따라가는 무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보다도 사람을 경외하여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도 인물을 섬기고 진리를 위하여 싸운다는 것보다도 말씀을 한 학과에 불과한 것으로 말씀의 아무런 역사를 체험치 못하고 정통이라는 관념에서 그 신앙이 의식화되고 한 고질화된 형편에서 그것을 신앙 정로로 아는 데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단체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역사를 중심하는 것보다도 교권과 물권과 인권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둘째 : 이러한 자들은 양심이 마비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보다도 이것을 영적 문제보다 육적 생활의 한 방편으로 이모저모로 유익을 보는 것을 중심한 것이다.
과거의 발람이가 하나님을 찾았지만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것보다도 자기의 명예와 안락을 따라가는 교훈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을 대적할 수가 없을 것이로되 이런 무리들은 하나님의 종을 대적하면서도 이것을 오히려 자기의 자랑거리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참된 하나님의 종을 받드는 것보다도 그 종의 역사를 시기하여 막는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원을 바라보는 무리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리들은 반드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을 의지하고 승리할 일 (7:7∼13)
하나님을 바라보고 승리할 사람은 조금이라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생활에서 여러 가지 시련을 겪고 나가는 자이다. 다시 말하자면 여러 가지 난관을 당해도 하나님의 완전 역사를 의지하고 싸워 나가는 것인데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이다.
첫째 : 엎드려져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어나는 일이요,
둘째 : 흑암이 온 땅을 덮어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빛을 찾는 일이요,
셋째 : 범죄가 있다 하여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용기있게 싸워 나가는 일이다.
이러한 자는 대적을 진흙같이 밟고 나가는 용사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역사가 있게 되므로 많은 대중을 구원하는 일이 있게 된다. 이러한 용사의 영계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넘어졌다는 것은 용기 있게 마귀와 싸우는 생활에서 돌진의 걸음을 걸어 가다가 넘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일어났을 적에 어떤 군대는 자기가 위험하다고 도망을 가서 숨은 자도 있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싸워 나갈 때에 부상을 당한 자도 있을 것이다. 이때에 용사는 부상을 당했다 하여도 용기 있게 싸운 자일 것이다. 이와 같이 삯을 받아먹고 평안히 지내는 자보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가는 사람이라면 강한 원수에게 쓰러지는 일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들어서 쓰는 것이다.
흑암을 뚫고 나가는 종으로서 흑암의 세력이 그 종을 덮고 나온다 하여도 그 자체가 흑암에 빠진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종에게 흑암을 물리칠 수 있는 빛의 역사를 주시는 것이요, 사람이 볼 때에 실수하는 범죄가 있다 하여도 중심과 사상이 바른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종을 버리지 않고 더 강하게 들어 쓰므로 대적을 짓밟고 나가는 완전 승리를 이루게 하신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하시는 당신을 바라보는 자를 들어 쓰되 조금이라도 자기의 몸과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라면 중심을 보시고 들어 쓰시기 때문이다. 과거에 아무리 베드로가 원수들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일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의 모든 성직자보다도 더 강하게 들어 쓴 것이다.
결 론
어떤 종이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여도 자기의 안락을 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무런 역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가기 위한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들어서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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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 중에 여호와를 앙망하자
- 미가서 7:1∼12 -
미가서 7:1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실과를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2 이와 같이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3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도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 4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숫군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5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6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로다 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8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되실 것임이로다 9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10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 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 11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하수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인류 종말의 재앙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세상에 재앙이 오는 순서는 먼저 선한 사람이 세상에서 끊쳐지고 정직한 자가 인간 중에 없으므로 도저히 정치인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며 이웃이나 친구나 집안 사람까지 믿을 수가 없는 인심 악화의 혼란기가 오는 것이다. 도저히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인심 악화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오는 과정이니 이러한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다음과 같은 축복을 받게 된다(1∼6).
1. 응답을 받게 된다 (7)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나 어려운 일이 닥쳐올 때에 낙심하지 않고 당신을 바라보는 자에게 응답을 나리신다. 예를 든다면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이 없이 쓰러진 사람이 나를 일으켜 달라고 할 때에 일으켜 주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없는데 도와 달라는 것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므로 그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무소불능의 하나님의 역사는 난국을 당하는 자에게 그 능력을 베풀어주는 것이 원칙이다. 난국을 당하지 않은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강하게 임할 필요가 없을 것이로되 난국을 당한 자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호소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역사를 내릴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극도로 악화되고 도저히 믿을 사람이 없게 될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진 자라면 능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다.
2. 흑암을 뚫고 나가게 된다 (8)
하나님께서 흑암의 세력을 개방시킨 것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특별한 역사를 내려 넘어져도 일어나게 하시고 아무리 흑암이 덮인 곳이라도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도저히 난국을 돌파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에게 돌파할 수 있게 응답을 내리므로 재앙의 날에 남은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의합된 사람으로 새 시대를 이룰 작정이므로 흑암의 세력을 개방시켜 택한 자를 시련시켜 보는 것이다.
3. 광명에 이르도록 인도하게 된다 (9)
아무리 범죄를 하였다 하여도 재앙의 날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주께서 광명한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말씀대로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인도하는 일이 있게 된다.
4. 대적을 짓밟고 나가게 된다 (10)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를 들어서 강한 대적을 이기게 하시는 것이 아니요, 아무리 쓰러지고 넘어지는 자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라면 그를 강하게 들어 쓰시므로 대적을 짓밟고 나가게 하신다. 아무리 모세가 원수에게 죽을까 무서워서 미디안으로 도망을 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이 변치 않을 적에 그를 들어서 원수를 승리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다.
그리고 원수가 무서워서 도망을 가는 일이 있었던 엘리야도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원수를 이기게 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재앙의 날에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백전백승의 용사가 되도록 들어 쓰신다는 것이다.
5. 세계 통일의 왕국을 이루게 된다 (11∼12)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으로 왕국을 이루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라면 그 사람으로 원수를 이기게 하므로 원수의 나라까지라도 여호와를 바라보는 자 앞에 굴복을 당하게 하여서 모든 사람들이 다 굴복하고 돌아오므로 세계 통일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의로운 통치라는 것은 억지로 사람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모든 사람이 따라 오도록 역사하시므로 평화로운 나라가 이루어지게 한다.
결 론
하나님의 완전 역사는 악한 세상에서 외로운 가운데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를 들어서 대적을 이기게 하므로 하나님만을 자랑할 수 있는 나라를 이루는 것이 재앙의 날에 남은 종을 들어 쓰는 역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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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정죄함이 없는 역사
- 로마서 8:1∼2, 34∼35 -
로마서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역사하시는 일은 죄를 없이 하고자 하여 아들을 죽게 하신 것이니 결코 정죄하지를 않고 역사하시므로 당신의 뜻을 완전히 이루시되 다음과 같이 하신다.
1.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는 역사 (1)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를 불러서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 역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택한 자를 친히 찾으시는 역사로,
둘째는 강하게 붙들어서 인도하시는 역사로,
셋째는 완전히 은혜로 다스리는 역사로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신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어머니는 어려운 일이 올수록 어린이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전심 전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는 절대로 택한 자를 당신의 품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역사하되 신자의 마음이 조금도 세상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세상의 쓴잔을 주어서 시련을 시키는 일도 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 품안을 벗어나지 못하도록징계하는 일이 있다(요한계시록 3:19∼20).
주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당신이 친히 십자가에 죽은 피의 공로로 얼마든지 용서하는 법을 세우신 것은 죄를 범해도 품에 안아 준다는 것이 아니고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항상 택한 자를 다스리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승리가 없다면 죄인을 불러서 자기 안에 둘 수가 없을 것이로되 택한 자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으므로 택한 자를 강권으로라도 당신 품안으로 인도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2. 성신의 법으로 행하는 역사 (2)
성신의 법이라는 것은 생명의 활동으로 역사하는 것인데, 십자가 해방의 역사이다. 누구든지 십자가를 믿어지도록 하는 것도 성신의 법이요, 죄를 이길 수 있게 역사하는 것도 성신의 법이니, 성신의 법이라는 것은 택한 자에게 무조건 역사하는 법이다. 십자가라는 것은 불택자를 위한 십자가가 아니요, 택자를 위한 십자가이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고 할 때에 벌써 택한 사람을 구속하는 제사가 완성되었으므로 택한 자를 강권으로 성신이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신을 찾아서 받는 것이 아니요, 성신이 택한 자에게 강하게 역사하기 위하여 다스리시므로 죄를 회개하지 않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죄를 고의적으로 짓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의라는 것은 우리가 구할 때에 역사 하는 것보다도 구하기 전에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이니 택한 자는 십자가의 의가 믿어지면서 회개하게 되는 역사가 심령을 통하여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 사람 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고 택한 자에게 성신의 법이 해당되므로 택한 사람은 그 법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인간의 어떤 결심이 아니요, 자기도 모르게 성신에게 이끌려서 믿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의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택한 자가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고 정죄에 이르지 않도록 성신의 법이 그를 다스리는 것이다.
3. 사람이 정죄할 수 없는 역사 (34∼35)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정죄하지 않고 성신의 법으로 다스릴 때에 어느 사람이나 그 사람을 다스릴 권리가 없고 그 마음을 지배할 수 없다. 만일 기독교 신자가 어떤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긴다든지 어떤 사람에게 정죄를 받아 은혜가 떨어진다든지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항상 택한 자를 위하여 간구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간구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첫째는 범죄가 있어도 기도하시고,
둘째는 위험한 일을 당해도 기도하시고,
셋째는 크게 역사할 일을 위해서도 기도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택한 자를 정죄할 수는 없다. 아무리 훼방을 하고 거짓말로 음모를 꾸민다 하여도 결국은 그를 들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결 론
가장 복된 일은 정죄함을 받지 않는 일이다. <죄가 있어도 책망을 할지언정 절대로 정죄하지 않는 사랑>과 <죄를 이기도록끔 역사해 주는 사랑>과 <남을 사랑하도록끔 역사해 주는 사랑>과 그리고 <남을 가르칠 수 있도록끔 역사해 주는 그 사랑>은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고 택한 자에게만 오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결코 정죄함이 없는 역사는 불택자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선택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어떤 자가 죄를 짓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독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택한 자를 죄를 짓지 않도록 해서 거룩한 자녀를 삼으며 거룩한 종을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을 <결코 정죄하지 않는 역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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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인도
- 시편 42:9∼43:5 -
시편 42: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43: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녀를 인도할 때에 진리가 없이 인도하는 일이 없고 먼저 진리를 나타내 보여주시고 인도하시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사람의 생각 범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생각으로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범위에 숨어 있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시대적인 진리를 바로 깨닫게 되면 그 진리대로 주의 인도가 같이하고 그 진리를 널리 전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동시에 진리로 말미암아 완전한 승리의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제 진리와 인도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낙망 속에서 도움을 받게 됨 (9∼11)
누구든지 진리를 따라가는 길에는 원수의 비방과 압제가 같이 하므로 낙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 닥쳐오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도움을 진리대로 체험 받게 될 때에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진리라는 것은 언제나 마귀의 자식들에게 압제를 받게 되고 비방을 받게 되는 것이 원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종이나 진리대로 인도를 받게 되는 종에게는 슬퍼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찬송을 할 수 있는 일이 있게 되므로 진리의 인도를 따르던 사람이 그 진리를 더 확신하고 그 진리대로 남을 지도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2. 판단 속에서 건져냄을 받게 됨 (43:1)
진리를 따라가는 사람은 진리대로 판단하는 역사가 있게 될 때에 오히려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건져냄을 받게 된다.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말씀대로 판단을 내릴 책임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아무리 간사하고 불의한 자들이 둘러싼다 하여도 진리를 따라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하므로 건져냄을 받게 된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진리대로 따라가는 자에게 간사하고 불의한 자가 대적을 하게 하면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진리대로 따라가는 사람을 축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3. 연약한 중에서 힘을 얻게 됨 (2)
하나님께서 진리를 따르는 자를 연약한 자리에 버려두시는 것은 당신의 능력으로 역사할 때가 된 증거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슬픔 속에서 여호와의 힘은 홀연히 그에게 임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진리를 따르는 사람으로 하나님만 자랑할 수 있는 일이 있게 하시는 것이다.
4. 진리대로 성산에 이르게 됨 (3)
진리라는 것은 성산에 이르기까지에 목적을 두고 약속한 말씀이니 그 진리대로 따라가는 자라면 아무런 환란이 온다 하여도 결국은 성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게 가장 복된 길은 진리대로 인도를 받아 성산에 이르는 것이다. 성산의 축복이라는 것은 받을 자가 심히 적으므로 언제나 망할 자들에게 억울하게 압제를 받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5.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게 됨 (4∼5)
지극히 즐거운 일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를 인도하시되 극도로 즐거운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택한 자를 마귀의 자식들에게 여러 가지 시련을 받게 하는 것은 극도로 즐거운 일을 하나님과 같이 누리게 하자는 것이다. 하나님도 마귀의 자식들에게 괴로움을 받게 되고 복을 받을 사람도 괴로움을 받게 해서 함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 성산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결 론
진리는 하나님께 있고 사람은 그 진리를 믿는데 진리를 가진 하나님은 진리를 믿는 사람에게 진리대로 인도하고 진리대로 성산의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진리대로 인도를 받는 자는 무슨 일이나 처음에는 슬픈 것 같으나 오히려 찬송을 하게 되고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인생이라는 것은 진리대로 인도를 받는 사람이 심히 적고 진리의 대적이 되는 마귀의 인도를 따르는 자가 많다. 그러므로 언제나 진리의 인도를 따라는 자가 너희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는 말을 듣게 되는 고독한 생활에서 슬픔을 당하게 되는 것이 망할 세상에서 당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극히 즐거움을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는 당신의 백성이 영광을 받도록 역사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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