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본문] 눅 3 : 3 - 9, 15 - 17

 

[요절]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눅3:9)

 

[서론]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를 비롯하여 말라기 선지까지 메시야가 오실 것과 심판주로 오실 것까지 완전한 언약의 말씀으로 책을 주신 하나님께서 메시야가 오시기 6개월 앞에 놓고 마지막 선지 세례요한을 세상에 보내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알려주기도 하시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율법시대의 종말에 마지막 선지로 다음과 같이 경고를 하였다.


[1대지] 이사야 선지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경고 (3-6)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첫 과정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아만 오면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아무런 계급이 없는 평등적인 평화의 은총 속에서 세계인류가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목적한 것이다.

[2대지] 합당한 열매와 심판의 경고 (7-9)

하나님은 차별이 없는 은총을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사랑이 계시지만 은혜를 받고도 합당한 열매가 없다면 용서 없는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번 용서하고 은혜를 준 것은 거룩한 자녀가 되어 완전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가 있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3대지] 메시야의 완전성을 말함 (15-17)

그리스도는 선지자 보다 더 높은 것은 선지는 한 예언의 말씀을 하나님께 받아서 전하는 것뿐이요 그리스도는 그 예언대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기도 하고 알곡을 모으기도 하고 쓰지 못할 쭉정이와 같은 악인들을 없애는 심판도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없다면 기독교는 완전한 종교가 아니다. 종교란 것은 완전한 사람을 위한 종교가 아니고 완전치 못한 사람을 완전케 만들어서 알곡이 되게 하는 동시에 진리를 순종치 않는 경우에 심판하여 알곡만 사는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 완전한 진리의 종교의 요소가 된다.


[결 론] 

우리 학생들은 앞을 향하여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 같은 생활이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똑똑히 알려면 선지의 예언은 우리를 살려주기 위한 언약의 말씀이니 그 말씀대로 우리를 다스리는 그리스도를 순종하는 신앙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본문 말씀

누가복음 3장 3-9절, 15-17절

3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 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본문] 눅 2 : 1 - 14

 

[요절] 모든 백성은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눅2:10)


[서론]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상에 낼 때에 우는 일이나 죽는 일이 없도록 아름다운 동산에 아름다운 생활이 있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와가 미혹을 받아 하나님의 법인 선악과를 먹은 죄로 금일까지 인간들에게는 눈물이 없을 수 없고 죽음이 없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세상에 사는 우리들이 기뻐할 일은 다음과 같다.


[1대지] 극도로 타락한 사람들도 기뻐할 일이다 (1-7)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참된 기쁨과 영생의 생명을 주기 위하여 가장 천하고도 더럽고 누추하고도 괴로운 자리가 되는 말구유에 오게 된 것은 아무리 죄를 짓고 저주를 받아서 문전 거지가 된 사람이라도 다 영생으로 인도한다는 뜻으로 이런 자리에 탄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전 7백년 때에 미가 선지를 통하여 원수에게 압박 받던 사람들이 참된 평강을 얻게 될 것은 베들레헴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다는 것을 묵시로 주신 말씀이 글자대로 응한 사실이 베들레헴 여관 말구유에 탄생한 것이다.

[2대지] 극도로 수고하는 사람들이 기뻐할 일 (8-11)

인생이 밤낮으로 수고해야만 먹고살게 된 것은 죄를 진 까닭인데 주님 탄생할 때에 밤을 새워 가며 자지도 못하고 목장에서 수고하던 사람들에게 천사는 찾아왔다. 천사가 말하기를 “너희는 무서워 말라 온 천하 사람이 다 크게 기뻐할 좋은 소식을 내가 너희에게 알려주노니 너희 구주가 다윗의 동네에 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전 7백년전 이사야도 사11:1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서 세계 평화 승리의 기호를 세우게 되고 각 나라의 남은 자들이 그 깃발아래 모여 괴로움이 없는 완전평화의 왕국이 온다고 말씀한 그 말씀이 금일에 응한 것이다. 우리 새일 교단에 승리의 깃발을 준 것이 앞으로 세계를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룰 교단이란 것으로 주신 것이니 이것은 우리 교단에 세계가 기뻐할 아름다운 소식이 되는 다림줄의 진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세계의 완전한 평화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역사는 우리의 교단에 있다.

[3대지] 땅에 모든 민족이 평화를 누릴 일이다 (14)

인류역사에 페이지를 이룬 것은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전쟁으로 피 흘린 역사이다. 그러나 작은 어린아이로 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는 전쟁이 없는 영원한 왕권으로 다윗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이사야선지는 말했다(사9:6-7). 학생들에게 있어서 전쟁이 없는 완전평화의 왕국에 들어가게 될 것은 기뻐할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새일 교단은 하나님께서 이사야43:19절과 같은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한 지상 평화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명령을 내림으로 이루어진 새일 교단이다.


[결 론] 

이날까지는 지옥을 면하고 천당을 가는 사람들이 예수 믿고 기뻐했지만 우리 새일 교회 학생들은 남이 다 재앙을 받고 죽는 날에도 할렐루야로 새 노래를 부르며 기뻐서 춤추며 새로운 땅을 기업으로 받을 학생들이다.

본문 말씀

누가복음 2장 1-14절

1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 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본문] 마 1 : 18 - 25

 

[요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1:21)


[서론]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 요셉은 훌륭한 지식의 사람이 아니요 부자도 아니요 정치인도 아니다. 훌륭한 상인도 아니다. 산 깊은 나사렛 동네에서 뼈저린 노동을 하는 목수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큰 구원을 가져오는 가장 기쁜 소식은 마음이 정직하고 청백하고 하나님을 극진히 사랑하는 목수의 집에 전해졌는데, 하늘의 뜻이 땅위에 이루어지는 일에 대하여 사람으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일이므로 깨닫도록 해 주었다.

 


[1대지] 잘못된 생각이 없도록 가르쳐 주었다 (19)

요셉은 성결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의 몸에 잉태했다는 말을 듣고 자기는 결혼식 이전에 이런 일을 당할 적에 맑은 심령에 큰 고통이 없을 수 없다. 왜냐하면 처녀가 잉태했다는 것은 그 시대에 사형에 처할 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사랑하는 요셉은 가만히 끊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시험을 받게 되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중심을 보는 가운데 속히 천사를 보냈던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모든 일을 바로 깨닫도록 해주시는 것이다.

[2대지] 마리아는 가장 거룩한 여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0)

기도를 항상 하는 마리아에게 거룩한 성령은 크게 역사하여 신의 능력으로 잉태 됐다는 것을 천사는 가르쳐 주었다. 성령은 무소불능의 신이시니 지금도 살아서 새 시대 갈 사람을 예수의 몸이 거룩한 성신으로 탄생한 것 같이 우리를 예수와 같이 동거동락 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학생들도 성신이 그 몸을 주관할 때 죄가 없고 죽음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3대지] 성경을 깨닫게 되었다 (23)

이날까지 깨닫지 못하던 사7:14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시대적인 선지의 비밀을 옛날에도 의로운 요셉의 가정에 알게 하고 그대로 축복을 이루어주셨다. 세상에 가장 복 있는 가정은 빈한한 목수의 가정에 왔던 것이다. 메시야가 빈한하고도 쓸쓸한 가정이지만 마음이 깨끗한 요셉의 가정에 왔고 다시 오시는 주님도 가난하고 쓸쓸한 생활을 하지만 마음이 깨끗한 집에 그 비밀을 알게 하고 주님을 살아서 영접하도록 축복해 줄 것이다.

 

[결 론]

학생들이여 우리는 가난을 부끄러워 말고 마음이 더러운 사람이 될까봐 부끄러워하라 앞으로 환난 가운데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깨끗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본문 말씀

마태복음 1장 18-25절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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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기도의 열매
-마7:1~12-


기도라는 것은 참되신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기도가 아니고는 다 헛된 우상적인 종교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66:3이하를 보면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의 기도는 가증하게 보고 우상과 같이 취급한다고 말씀했다. 오늘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지만 그 기도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줄 수 있는 기도가 되느냐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참된 기도가 무엇이냐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1. 마음에 들보가 없는 기도이다 (1~5)

만일 어떤 사람이 마음에 자기라는 주관을 내세우는 들보가 있다면 하나님과 상대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자기라는 주관이 앞서는 자가 될 때에 자칭 선지라는 교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기도는 자기라는 자체를 뽑아버리는 희생적인 것이 없다면 도저히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를 가질 수 없다. 자기라는 들보가 없어지고 하나님만으로서 중심에 소유하게 될 때에 밝히 볼 수 있는 영안이 밝아지는 것이다. 인생 자체에는 빛이 없고 밝히 볼 수 있는 빛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자라 하여도 자기라는 중심에서 남을 판단한다는 것은 완전한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심판에 해당하는 생활이 된다. 그러므로 오직 참된 판단은 하나님께만 있다는 마음에서 남을 판단하는 것보다 먼저 자기가 주 앞에서 판단을 받는 양심적인 회개의 기도 생활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판단을 받는 회개의 생활이 없다면 그 자체가 자동적으로 형식을 따르는 일이 있게 된다.

언제나 자기를 없애 버리는 사람의 기도라면 시간 시간마다 깊은 영계를 체험 할 수 있게 된다.


2. 애써 노력하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 (7~11)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더라도 사람 편에서 노력하는 것이 없다면 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약속은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구하는 자에게 준다는 약속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행하는 신이시니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있는데 하나님께로 받아야 할 인생이 먼저 필요성을 느끼고 구할 때에 두드리면서 찾아오는 심정이 생기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환경에 떨어뜨리는 일이 있는 것이다(사26:16~17). 이것은 하나님의 선한 방법이니 하나님의 약속을 참으로 믿나 의심 하나를 보자는 모략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참된 기도가 있을 때는 반드시 어려운 환경에 떨어뜨리는 것이 더 큰 것을 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역사를 보아도 큰 역사를 일으키는 종들에게는 다른 사람보다도 더 어려운 난관이 닥쳐왔던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요, 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무소불능의 역사를 일으키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가 될 것이다.


3. 남을 대접하기를 목적 둔 기도이다 (12)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택한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어서 남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서 세세 왕권을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 하나님의 큰 뜻이니 누구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마음보다도 남을 대접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인간을 초월한 하늘의 것을 주어서 기도의 사람을 통하여 남에게 만족한 것을 얻도록 한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아무런 열매가 없을 것이다. 

모든 선지와 사도들이 다 이러한 신앙 사상에서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을 마땅하게 생각하고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들은 조금도 사람에게 대접받기를 원한 것은 조금도 없고 하늘에서부터 주는 것 하나만을 목적했던 것이다(빌3:14~15). 그러므로 이러한 인격을 가진 자라야 조물주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어리석은 자는 기도를 하되 헛되이 구하는 자요, 가장 지혜로운 자는 참된 기도를 드리는 자로서 하나님께 더 좋은 것을 받아 길이길이 누리는 자라고 보게 된다.

 

본문 말씀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성경과 신앙 사상 문제
-요5:39~44-



금일에 성경이 세계적으로 번역되어 어느 나라나 그 민족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은 큰 축복을 받을 기회라고 보게 된다. 그러나 성경과 읽는 사람의 신앙과 사상이 합치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과오가 있게 될 것이다.

성경을 하나님께로 받아 기록한 사람이 유대인이요, 성경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 유대인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이 오신 메시야를 오히려 이단시하고 아직까지 메시야 오기를 기다리는 무서운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어떠한 방법으로 구원해 주는가와 동시에 심판을 나리고 새 시대를 이루고자 하는 뜻을 기록한 것인데, 신앙 사상이 그 하나님과 맞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가 없는 마른  나무가 되고 말 것이다. 이제 어떠한 신앙 사상이 있어야 성서를 통한 열매가 있겠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성경을 우상화시키지 말 것이다 (39)

우상화라는 것은 유대인들이 자기 나라 사람이 성경을 기록했으니 자기에게만 영생이 있다는 관념이다. 성경을 순종하는 양심이 아니고, 성경을 이용하는 것이 큰 과오가 된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전부 자기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 원인은 독선의 교만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성경을 - 목적이 무엇이며 누구를 가리킨 말씀인 것을 분명히 알기 전에 - 함부로 자기 주관에 맞춘다는 것은 성경을 우상화시키는 일이 되게 쉽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고 성경대로 행하시는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신앙 사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2.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 있어야 된다 (40~42)

언제나 하나님께 겸손히 순종한다는 마음이 없는 자라면 성경을 읽어도 오히려 마음이 더 강퍅해 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오는) 실천 생활의 순종이 없이는 아무런 체험이 없으므로 성경을 많이 볼 수록 마음이 더 굳어지고 강퍅해질 우려가 있다. 왜냐하면 성경의 비밀을 모르고 잘못 해석하는 가운데 오히려 남을 판단하는 과오를 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에 이 목숨을 바쳐 그 뜻에 순종한다는 맑은 양심에서 읽는 자라야 성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영광만 구하는 자라야 된다 (43~44)

누구든지 사람의 영광을 목적하면 언제나 거짓 선지에게 미혹을 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라는 것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끄는 방침을 가지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는 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보다도 인간의 무엇으로 보든지 옳게 보이는 일로 가장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하고 하나님께로만 보이려는 사상이 아니라면 성경의 깊은 비밀을 도저히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의 시대적인 비밀을 모르고 오히려 반대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성경은 기록한 선지들이 억울하게 사람에게 멸시를 받고 핍박을 받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려는 생활을 할 때에 그 시대의 사람들이 다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인정받고 묵시로 받아 기록한 글이니, 이것은 그 뜻을 바로 알자는 성경을 기록하던 선지와 같은 신앙 사상에서 하나님의 영광만 바라보고 나가는 자라야 하나님의 참된 신의 감화를 받게 되므로 시대의 비밀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초림의 메시야가 올 때도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는 제사장들과 교법사, 유사, 장로들은 오히려 예수를 이단이라고 판정을 내렸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묵묵히 기도하던 시몬이나 안나 같은 선지들은 어린 예수를 품에 안고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려고 성전에 들어갈 때에 벌써 메시야인줄 알았던 것이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칠 때에 바리새교인들은 몰랐지만 베드로와 요한과 그 밖의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전도를 받고 메시야를 영접했던 것이다.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만 바라보는 종들 외에는 다 성경의 비밀을 모르고 오히려 성경을 그릇되이 해석하므로 예언을 멸시하다가 멸망을 자취할 것이다.


결 론

성경을 손에 들고 신앙 사상이 잘못된 자 보다도 성경을 알지 못하고 마음이 정직하고 겸손한 자가 있다면 오히려 성경을 들고 잘못 해석하는 자보다는 시대적인 참된 증인의 전도를 받고 축복을 먼저 받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본문 말씀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
-사19:19~25-


기독교는 율법시대를 기하여 모든 선지들이 하나님께로 묵시를 받아 책을 기록할 때에 하나님께 대한 세 가지 역사를 중심하여 기록했다.


첫째는 너그러이 용서하기 위한 하나님의 비밀을 말했고

둘째는 진노의 날에 보호하는 비밀을 말했고

셋째로는 새 땅 축복을 받는 일을 말한 것이 선지서의 3대 요지가 된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성전이 은혜시대의 다락방으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은 제사를 받으실 때에 진리를 따라서 그 시대에 말씀을 순종하는 제사라야 받으시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는 기뻐하지 않고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남녀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장소에 성령의 역사가 불로 임하는 동시에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방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하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맹렬히 다락방 교회를 박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락방 교회는 세계를 정복하고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져 없어지고 만 것이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은 은혜시대가 지나고 진노의 날이 올 때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제단은 어떠한 제단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은 언제나 제단이 없이는 역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이제 어떠한 제단이 되어야 진노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남은 제단이 되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에서 깊이 생각할 문제라고 본다. 만일 이것을 분명히 모르는 자가 된다면 헛된 수고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본문에서 어떠한 제단이 되어야 하느냐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1.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기둥이 된 제단이다 (19)

제단이라는 것은 (건물에 따라서가 아니고) 그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기둥 같이 튼튼히 선 사람이 없이는 여호와를 기쁘게 할 수가 없다.

3년 6개월 가물 때에 엘리야는 흔들리지 않고 담대히 서서 제단을 쌓고 손들어 기도할 때에 800여명 바알 선지를 쳐부수는 승리를 이루었던 것이다. 제단이라는 것은 다수가 모인다고 여호와께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요, 적은 수라도 기둥이 될 때에 하나님은 그 종을 통하여 승리하도록 응답을 나리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담대한 사람이 올리는 제사를 기꺼이 받기 때문이다.


2. 표적과 증거가 된다 (20)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난관을 당할 때에 담대히 부르짖는 제단에 (하나님은) 오셔서 그 시대 사람이 깨닫도록 표적과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앞으로 남은 교회가 되려 할 때 초자연적인 역사가 표적과 증거로 나타나야만 될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응답하므로만이 사명을 감당하는 제단이 될 것이니 아무리 원수의 압박이 있다 하여도 거기에 굴복지 않고 여호와를 위하여 그 시대적인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할 것이다. 오늘에 많은 사람이 예배하고 있지만 주님 오실 때까지 강하게 역사하는 교회는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라고 보게 된다.


3. 대 승리를 이루는 제단이다 (21~22)

기독교의 승리라는 것은 개혁을 일으키는데 있는 것이니 이 개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단을 통하여 응답을 나리므로 큰 변동을 일으키는 열매를 보게 된다. 악한 세상으로 평화로운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은 어느 교파를 중심한 데서가 아니고 인간의 어떤 정치나 무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한 제단을 중심하여 세계 통일의 완전한 평화 왕국을 이루도록 역사하시므로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난제 해결은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 없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배하는 자체가 목적이 아니요, 그 예배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느냐 않느냐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진노의 날에 남은 제단은 진노의 날에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바로 알아서 그 뜻에 순종하는 제단이 아니고는 아무런 열매가 없을 것이니 난국을 당한 이 때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바로 쌓는 것이 급선 문제라고 본다.

결 론

어느 나라나 여호와를 위하여 옳은 제단을 쌓던 사람은 다 하나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이루어 원수의 나라가 다 이스라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23~25절까지 가르쳤다. 가장 복 있는 자는 여호와를 위하여 응답 받는 제단을 쌓는 자라고 보게 된다.

 

성경 본문

19:19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20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의 연고로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21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것이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인고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를 고쳐주시리라 

23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니라

기독교 종말의 완전 역사
-사32:1~4-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지상 통치의 역사를 완전 역사라 하는 것이다. 이날까지의 역사는 지상 통치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세계적인 민족 중에 택한 자를 찾으시는데 불과한 역사이지만 종말의 완전 역사는 의로 통치하는 시대를 이루는 것을 기독교 종말의 역사라는 것이다. 완전 역사라는 것은 사람을 억지로 구속시키는 것으로서가 아니고 인력으로써 할 수 없는 것을 이루어 주는 것을 뜻한다.

 
1.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역사다 (1~2)

아무리 광풍과 폭풍이 불어오고 아무리 메마르고 곤핍한 일이 온다하여도 거기에서 피해를 당치 않고 나가는 역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려운 환경이 오게 하는 것도 택한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한 목적이니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는 자리는 인력으로써 당할 수 없는 일이 올 때라고 본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니 어려운 풍파가 일어나는 것은 당신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어려운 난관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맛보게 되므로 영원한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주의 인도하는 길은 어려운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니요, 광풍 같이 폭풍같이 불어오는 환란에서 피할 길이 있고, 아무리 메마른 땅에도 만족히 마실 물이 있게 하고, 곤핍한 땅에서도 새로워지게 하는 일이 있으므로 진정한 신의 능력을 체험한 자 만으로 새로운 왕국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2. 보고 듣는 자에게 만족을 준다 (3)

언제나 완전이라는 것은 보고 들을수록 만족함을 준다. 완전치 못한 것은 처음에는 좋게 보이나 자세히 보면 볼 것이 없고 처음에는 듣고 싶으나 자세히 들을수록 더 들을 것이 없는 것이지만, 완전이라는 것은 처음 보는 것 보다 볼 수록 더 볼 것이 있고 들을 수록 더 깨달아 지는 것을 기독교의 종말의 완전한 진리라는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소위 선교 국가라는 나라들이 모이는데 힘을 잃고 주일날 낮 예배만 보고는 다시 모이지를 않는다는 것은 강단에서 완전한 진리를 가르치지 못하는 일이 있게 되는 동시에 들으나 마나 하다는 싫증을 낼 때에 소위 세속주의라는 신학까지 나오게 된다. 우리는 이때에 들을 수록 볼 수록 은혜가 되고 만족해지는 역사가 없다면 교회는 이 시대에 필요 없는 기관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복 있다는 것은 기독교의 완전 역사를 뜻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시대 사람에게 완전한 것을 주는 것이니 지금 과학 문명을 자랑하는 인간들에게 더욱 만족을 주는 진리 운동이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이다.

 
3. 조급한 마음에 지식을 준다 (4상반절)

사람이라는 것은 공연히 마음이 조급해질 적에 큰 과오를 범하게 된다. 조급은 마귀 시험을 받는 일에 문을 열어주는 일이다.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가 타락한 동기가 간교한 뱀의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급해지는 시험을 받아 하나님 앞에 물어본 일도 없이 선악과를 먹게 되므로 인류 타락의 시발점이 되었다. 기독교의 신앙심이라는 것은 무조건 무슨 일이나 급하게 서두르는 것은 언제나 마귀 올무에 걸리는 행동이라고 보게 된다. 

오늘의 기독교가 과학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할 때에 완전한 진리의 지식이 없는 인간들이 과학 만능을 부르짖는 마귀 소리에 미혹을 받게 된다. 금일에 완전한 신앙 지식을 가진 자라면 이 시대를 바로 분별하는 동시에 시대적인 진리 지식에 입각하여 마음에 조급이 없는 완전한 인격을 소유한 성도의 생활에서 시국 난제를 해결할 지식을 성서에서 완전히 찾게 되는 일을 완전 역사라 하는 것이다.

 
4. 말을 분명히 하는 자가 된다 (4하반절)

오늘에 기독교 강단에서 말을 분명히 하지 못하므로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고 말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역효과를 주는 일이 너무나 많다. 설교가 영을 살리는지 죽이는지를 모르고 무조건 떠든다는 것은 예배를 망치는 설교가 될 것이다. 분명한 말을 못하는 자의 강단 생활은 자신조차 흑암에 빠지는 일이 된다(사8:20).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자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합리적인 변론이 구비된 글이다. 어떤 자들이 하나님 말씀은 아무렇게 각각 해석할 탓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는 말이라고 본다. 사45:19을 보면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않았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이 분명히 말할 진리를 주지 않고 무조건 나가서 증거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종이 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분명한 말을 못하면 완전한 인격을 가진 자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금일에 기독교의 완전 역사는 신자로서 분명한 말을 하게 될 때에 마귀의 흑암은 물러가고 천사는 같이하므로 백전 백승의 용사의 걸음을 걷게 될 것이다.

 
결 론

우리 인생의 참된 행복의 세계를 이루는 것은 과학을 초월한 하나님의 완전 역사로만이 완전한 인격을 찾게 되는 동시에 완전한 열매를 이루는 자로서 새로운 의의 통치 시대를 이루는 것을 기독교 종말의 완전 역사라는 것이다.

 

성경 본문

32:1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3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4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