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해 돋는 편에서 두려워 할 영광
-사59:18~60:3-


인류 역사상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곳은 아시아라고 보게 된다. 에덴 동산을 창설할 때도 아시아요 인간이 타락하여 생활 개척에 번창의 시발점도 아시아요 무서운 홍수 심판의 방주를 타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노아의 가정도 아시아 사람이라고 보게 된다. 셈과 함과 야벳이 번창할 때에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후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 일은 완전한 언약의 말씀이 모든 선지를 통하여 기록된 역사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조물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비밀을 인간에게 나타나 보이기도 하고 역사를 보여 주는 동시에 이와 같은 역사가 앞으로 다시 있으므로써 모든 예언은 이루어져 평화의 왕국이 온다는 것이 과거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 일이라고 보게 된다(사46:10). 

모든 예언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장소는 이방의 갈릴리라고 말씀한 대로 갈릴리를 중심하여 이방을 밝히는 빛이 나타났던 것이다(사9:1~2). 그야말로 얼마나 영화로운 일인가! 나사렛 골짜기의 한 목수의 가정으로 자리잡고 자라난 그리스도의 역사는 해변에 나가서 그물 한 채를 들고 있던 갈릴리 벳세다 동네의 어부들이 사도가 되어 세계 열방에 죽은 영들이 살아나는 빛의 종교를 이룬 것이 얼마나 영화로운 일인가. 

이제 더 큰 영광은 어디서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이사야 성경의 목적이 큰 구원을 말한 것인데 이 큰 구원이라는 것은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재앙에서 남은 자가 되어 눈물 없고 질병 없고 전쟁 없는 새로운 시대에 세세 왕권의 영광을 누리는 일을 목적 둔 것이다. 그러므로 갈릴리에서 시작된 빛이 시작이라면 해 돋는 동방에 나타난 영광은 끝을 맺는 역사라고 본 성경은 가르쳤다.

이제 해 돋는 편에 나타날 두려운 영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1. 재림의 주를 영접하는 영광이다 (19~20)

인류 역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가 많이 있지만 주 재림시에 남아 있는 자가 볼 영광을 목적 두고 선지와 사도와 성도들은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했던 것이다(약5:7~10, 롬8:18). 그러면 이미 죽은 자들도 이것을 바라보고 싸웠다면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자들의 영광을 가르쳐서 해 돋는 편에서 그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성도에게 나타날 큰 역사는 해 돋는 편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계시록 7장에도 해 돋는 데서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나온다고 했으니 재림의 주를 맞이할 종들이 이마에 인맞는 역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계시록 10장과 11장에 분명히 가르쳤다. 그러므로 이 영광은 원수를 갚는 날에 남은 종이 받을 영광이다(19).

 
2. 동방 사람에게 마지막 역사가 임하는 일이다 (21)

역사적으로 모든 선지를 통하여 보여준 묵시의 말씀이 다 이루어지는 영광의 새 나라에 들어갈 백성들에게 전할 말씀이 해 돋는 편에 있는 사람에게 입에 임하여서 그 역사로 완전히 끝을 맺는 일이다. 이제 이러한 역사가 없이는 기독교 종말에 나타날 영광을 누릴 진리 운동을 사람으로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직접으로 입에 말씀을 주어서 바로 증거하도록 하는 역사가 동방의 역사라는 것이다(사41:1~2, 24:14~15, 46:11). 이것은 두려워할 일이 된다. 왜냐하면 심판 권세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 중에 가장 큰 역사는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종말의 동방 역사이다.

 
3. 열방을 통치하는 영광이다 (60:1~3)

이 영광은 세계가 흑암이 덮이는 무서운 재앙 속에서 세계 인류를 구원해 주는 역사이니 새 시대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역사의 본부는 동방 해 돋는 편이라는 것이다. 잃었던 백성을 찾는 역사는 아시아 서편 지중해 옆 유대 나라요 하나님께로 돌아온 백성을 보호하여 새 시대로 인도하는 역사는 예루살렘에서 획선을 그어서 동쪽으로 나가면 우리 대한민국이 된다.

현재에 극동에 모든 제단이 다 황폐화되고 한국만이 남아서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 라는 우렁찬 애국가를 부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나라에 나타나 보호하는 일이 있을 것을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노래를 부르게 하신 것이라고 믿어진다. 기독교의 진리가 이것인 것을 모른다면 기독교는 지금부터 흑암에 떨어지는 비참을 보게 될 것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대한 민국에 나타날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에 목적을 둔 일이 지상 평화 왕국인데 이것을 이루는 진리가 햇빛 같이 말씀으로 새일수도원 강단에 임했다는 것은 만민 앞에 자랑할 영광이 될 것이다. 경솔한 인간들은 공연히 남의 말에 끌려 이 나라에 나타난 진리를 비소하지만 그들도 눈물 흘리며 회개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 나라에 모든 문제는 이 민족 위에 나타난 진리 이것으로 해결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야 60장 전체를 읽어보아서 알 수 있다.


결 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과거가 아니요, 이제부터 기독교에 나타날 것이니 이것을 바로 알려주는 일이 새 일을 고하는 일이다(사42:9 이하). 만일 누구든지 이 역사를 반대하는 자는 전멸을 당한다는 것이니 가장 두려운 일이다(사60:12).

 

성경 본문

59: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9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기독교의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 사 28:6~13 -

기독교는 진리 하나를 바로 전하기 위하여 세상에 교회의 확장을 이루게 한 것이요 또는 진리 하나를 위하여 싸워 승리하기 위한 데서 하나님의 종들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금일에 기독교가 세계적인 대종교를 이루어 놓은 것만은 누구나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기독교는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냐 하는 것을 누구나 다 주목하는 바이다. 이와 같은 난국을 당하여 “아름다운 소식” 이라는 월간지를 세상에 내 놓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성서 본문주의로 깊이 들어가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전한 신이신데 목적을 두고 완전한 언약을 하셨고 언약을 따라 역사하는 진리의 신이시다. 만일 기독교가 십자가의 도로써 세계 인류의 죽은 영을 살려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을 얻게 하는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가르쳐 주는 교회가 못된다면 큰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교회가 될 위기에 놓여있는 현실이라고 보게 된다. 성경이라는 자체는 하나님의 법이 인간에게 나타나되 그 시대 시대에 따라 타락한 인류를 어떠한 방법으로 인도하고 다스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이날까지에 기독교의 진리 운동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다 이루어지는 역사에서 진리 운동을 한 것이 아니고 성경대로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 진리를 사도들에게 성경을 깨닫게 하는 영을 주어 바로 증거하도록 하신 것이다(눅24:44~49). 이 은혜를 받은 사도들은 선지서를 읽을 때에 십자가의 도가 정확히 깨달아지는데서 완전 변론을 하되 율법과 은혜라는 제목 하에서 율법주의의 잘못된 바리새교인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웠던 것이다.

그 때는 신약 전서를 손에 들고 싸운 것이 아니고 율법과 선지서의 글을 가지고 예수의 행적을 전하며 또는 십자가의 도를 믿는 신자들에게 율법을 초월한 성도 생활에 지침이 되는 편지를 써서 보냈던 것이다. 이것은 깨닫는 영을 받은 사도들이 성경이 이루어진 사실을 바로 가르치며 모든 일에 완전한 열매를 맺어야 되는 성신의 도리를 기록했던 것이다. 그 때에 성도들은 예수 행적과 사도행전과 편지서를 사도들에게 받아 가지고 이 글을 읽어가면서 교회를 세우는 동시에 가르치는 일을 했던 것이다. 

지도자의 양성을 필요로 느낀 성도들은 교회 확장에 따라 그것을 가르치는 성서학원 신학원을 설립하게 되어 내려오던 중 금일에 와서 신학대학이라는 명칭까지 가지게 된 것이 기독교 종교 교육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금일에 이 신학으로만이 성경을 다 가르치는 일에는 불가능함으로 사28:7같이 되는 일이 있게되는 것은 사람이 억지로 선지서를 해석해 보는 과오가 시작되어 이것은 오히려 기독교에 혼란을 일으키는 현실을 이루게 된 것이다. 

사도의 사명은 선지서의 목적을 다 이루는 데가 한계가 아니요  초림의 주가 오시어 신성과 인성을 가진 동정녀 잉태로부터 십자가 부활 승천, 성신 강림의 역사로 죄와 사망에 깊이 빠진 영들을 이끌어 내주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행적을 쓰는 사도들이 선지서를 이용하여 자기의 사명을 하기 위한 목적에서 주님의 가르쳐 준 교훈에 의하여 신약 전서에 대강 기록한 것 뿐이다. 이사야서를 본다면 사7:14, 9:1~2, 11:1, 28:16, 40:1~6, 42:1~8, 49:8상반절, 53:4~10, 61:1, 65:1을 증거한 것 뿐이다. 그 밖에 이사야서 전체는 환란과 재앙 속에서 변화성도로 눈물 흘려 다시 예언할 복음이 된다(계10:7).

금일에 기독교는 선지서의 전체를 본문대로 들어가서 그의 경고를 우리가 나가서 전할 말씀이며 우리가 살아서 남은 종이 되고 남은 백성이 될 자들이 걸어 나갈 신앙 노선이 된다. 죄인을 부르는 은혜시대와 죄인을 없애 버리는 진노의 날이 있고 새 시대가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활성도의 성서적인 활동과 변화성도의 성서적인 활동이 그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2. 사명의 획선을 바로 찾자는 것이다

사명은 사도적인 사명의 획선도 있고 선지적인 사명의 획선도 있으니 사도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만이 그의 획선이다. 행1:21~22의 사명은 속죄 구령의 사명이다. 이것이 금일까지에 기독교 강단에서 가르치는 사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림의 주를 맞이할 생존성도는 다시 예언의 사명을 하는 선지의 역할을 하게 된다(계11:3~12, 22:6, 17~19).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는 목적이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했다. 이스라엘 말기에 극도로 선지국가인 다윗 왕국이 부패하여 바벨론에게 망하게 될 때에 그들은 눈물 흘려서 말씀을 예언했지만 부패한 정부가 거짓선지와 합작이 되어 참된 선지를 축출하고 학살시킬 때 하나님의 묵시가 피 흘리는 선지들에게 피 값을 갚아주는 일이 있을 것과 새로운 시대의 왕국이 올 것을 묵시로 보여 주었다. 그들은 묵시 가운데서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쓸 적에 심판의 다림줄을 세밀히 변론적으로 하나님께 받아 쓰게된 것이다.

그러므로 속죄 구령의 도리는 쓰지 않고 심판과 새 시대를 쓸 적에 그리스도의 탄생이 있을 것과 세계적인 평화의 복음이 전파 될 것과 인류 종말의 재앙이 북방으로 올 것과 환란과 재앙 속에서 남은 자가 있게 될 것을 말할 때에 고레스의 역사로 바벨론에서 남은 자가 예루살렘을 복구한 사실을 들어서 인류 종말에 북방 환란에서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 갈 자는 동방에서 일어나는 역사로 말미암아 완전한 다윗 왕국이 세계를 통일하는 새 시대가 올 것을 말할 때에 이사야 24장에 세계를 뒤집어엎는 진노의 날이 하나님께로 오는데는 동방 바다 옆에서부터 외치는 소리가 나온다고 24:14에 말했고 땅 끝에서부터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는 노래를 부른다고 16절에 말했고 그 노래의 뜻을 설명할 때 25장에 설명했고 27장과 같이 심판이 오고 새 시대가 오는데는 심판의 대상자는 28장과 같이 주의 종들이 이상을 그릇 풀고 재판할 때 실수하는 죄가 많으므로 하나님은 11절과 같이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고 하였다. 이것은 안식에 대한 말이라고 12절에 말했고 이것을 듣지 않을 때는 반드시 환란에서 망할 것을 13절 이하에 가르쳤다.

금일에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월간지가 나오게 되는 것은 새일수도원 원장이 강단에서 설교하던 중 위로부터 서책을 받아쓰라는 명령이 있어서 수도를 받던 종들이 붓을 들 때에 입에서 말씀이 나리기 시작하여 아무런 서책을 보지도 않고 말씀이 나오는 대로 기록한 것이 조직신학 강의, 선지서 강의, 계시록 강의, 요한一서 강의, 인간론, 새일 성가집 등의 서책이 나오게 되었다.  금일에 와서 이제는 입에 말씀이 임하는 대로 써서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월간지를 발행하라는 지시에 의하여 1970. 6. 17일부터 기록하기 시작했으니 이 글을 읽어보면 누구든지 분명히 혼선된 진리가 없도록 목회 할 수 있게 되며 신앙 노선에 큰 발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본문

28:6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마는 

7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9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11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