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되자

- 미가서 5:7∼9 -


미가서 5:7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8 야곱의 남은 자는 열국 중과 여러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9 네 손이 네 대적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완전 승리의 열매를 가져오는 사람은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본문에 가르쳤다. 앞으로 짐승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자가 되려면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영계에 들어가는 자라야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며 완전 승리의 왕국을 이루는 자가 될 것이다.


1.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역사를 계속해서 받는 자 (7)


아무리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이슬같이, 단비같이 내리는 역사가 없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 남은 자가 될 수가 없다.  어느 때보다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는 때에는 여호와께서도 강하게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지금은 분명히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에 가야할 때가 온 것이다. 이 본문을 보면 심판기에 북방 세력이 교회를 짓밟고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남은 자가 될 종들에게 역사를 강하게 나릴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사람도 40년간 기도 생활에 여러 가지 체험이 있지만 금년 71년도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호소 성가를 보내시사 이 성가를 부를 때에 이슬같이 단비같이 쏟아져 내리는 역사를 점점 강하게 받고 있다. 만일 이러한 역사가 없다면 이 위기를 만난 종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지만 계속해서 내리는 역사를 받을 적에 자기도 모르게 인격이 점점 강해지는 증거를 보게 된다. 지금 내리는 역사는 은사가 아니고 권세 새 힘의 역사이다.


2. 사자같이 강하게 되므로 (8)


우리가 인생을 기다린다는 것은 초 인간 적인 인격을 가지지 못한 증거이다. 인생을 기다리지 않고 나가게 되는 것은 초 인간 적인 인격이 이루어질 적에 조금도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세계에서 유물적인 짐승의 사상을 짓밟고 나가게 된다. 만일 유물론 사상이 세계를 검은 연기같이 덮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나리는 역사를 받지 못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짐승의 세력 앞에 짓밟히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물론 공산당을 완전히 이길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강하게 나리는 역사를 받아 사자같이 강한 인격을 이루기 전에는 싸울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이론이 아니요, 산 체험인 동시에 하나님 말씀은 목적이 심판기에 북방을 없이 하고 새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니 하나님 말씀은 조금도 폐할 수 없는 말씀이므로 그 말씀으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방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도 말씀이 응하기 위한 과정이라면 말세의 남은 자가 사자같이 강하게 되어 북방의 세력을 없이하게 된다는 것도 분명히 응하게 될 것은 사실이다.


3.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된다 (9)


완전 승리라는 것은 인생을 기다리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슬같이 단비같이 받은 종들이 세계를 정복하는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기독교는 이날까지 피 흘리는 박해의 종교라고 말하리만큼 억울함을 당하였지만 최후의 승리는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 초인간적인 역사가 임하므로써 이루게 된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나리는 역사를 계속적으로 받고 있는 자가 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편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북방 세력을 강하게 하는 것은 당신의 종들을 들어서 북방을 진멸 시킬 때가 온 증거이다. 과거 예언적인 이스라엘의 역사에도 원수를 강하게 들어 쓰신 후에 당신의 종으로 그 원수를 이기게 하여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증거로 보여 준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역사이다. 우리가 원수와 타협을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요 원수를 이기게 해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니 만큼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로서 반드시 완전 승리를 이룰 것을 확신해야 할 것이다.


결 론


가장 위대한 힘은 인생을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시었고, 성경대로 기독교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미가서 5:2∼4) 성경대로 북방이 강하게 일어났으며 성경대로 하나님의 종들이 완전 승리를 이룰 것은 미가서 5장을 읽어보아도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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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완전 역사

- 누가복음 3:15∼17 -


누가복음 3: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를 증거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무리들의 크게 가졌던 기대가 어긋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면 가장 영광스럽게 나타나고 자기들 나라가 영광스러운 나라가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 무리들을 책망하고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를 증거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영광스럽게 와서 영광스러운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는 어떠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이 증거했다.


1.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증거함 (15∼16)


그리스도의 왕국은 육적 이스라엘로 이루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으므로만 그리스도의 왕국에 가입할 인격이 있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네가 메시야를 영접할 자격이 있는 민족이라고 생각하므로 책망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소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신앙 사상을 버리고 이기적인 교권 야욕을 가지고 세례 요한을 책잡고자 할 때에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여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리스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고 하면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이를 증거했던 것이다.  


죄를 지은 인간들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수 있는 그리스도는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이르기에는 너무나 인간이 갈 수 없는 험한 길이었다. 유대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시어 애굽의 피난을 거쳐 나사렛 동네에서 빈한한 목수의 생활을 거쳐 정한 때가 왔으므로 세례 요한이 그를 증거하기 위하여 나타났던 것이다. 세례 요한이 나사렛 목수인 예수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할 때에 교만한 바리새 교인과 유대인들은 믿지 않고 오히려 세례 요한을 반대하고 미친 사람으로 알았던 것이다.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오늘날 그리스도가 베푼 성령과 불 세례를 우리가 받게 될 때에 세례 요한의 증거는 참된 증거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미리 선지를 통하여 요엘 2:28에 만민에게 성신을 부어줄 것을 말씀했지만 다시 예언자인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를 증거했던 것이다. 이 증거를 믿고 따라가는 제자들은 요한의 증거대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어주는 역사를 받았다. 세계 만방이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받는 동시에 역사가 나리는 일이 사도를 통하여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역사를 체험치 못한 자들이라면 세례 요한의 사명과 계통적인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우리 종된 자의 자격은 말씀만 받는 것이 아니고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증거를 받아야 한다. 만일 현재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역사는 완전 역사라고 볼 수 없다.


2.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신다고 증거함 (17 상반절, Earlier)


하나님께서 지금까지는 씨를 뿌려 싹이 나게 하고 가꾸는 것과 같은 역사를 하시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아직은 완전한 교회를 이룬 것이 아니고 완전한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과정으로 장성하는 발전 단계에 있다. 그러면 완전한 교회라는 것은 어떤 교회냐 하면 조금도 부정이 없는 청결한 교회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어야 된다. 기독교의 역사는 교파를 초월하여 다음과 같이 되는 것이다.  알곡만 모을 수 있는 청결한 교회가 나타나고 쭉정이만 모이는 바벨적인 교회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타작 마당을 정케 한다는 것은 거룩하고도 깨끗한 동산인 촛대교회를 뜻한 것이다. 촛대교회라는 것은 손에 키를 들고 쭉정이와 가라지를 날려 버리듯이 주님께서 강한 역사를 행하시어 쭉정이와 가라지를 몰려 나가도록 해서 알곡만 남은 교회를 말한다. 이 강한 역사라는 것은 사단의 세력이 완전 소멸되고 완전 청결의 역사를 뜻한 것이다.  


기독교가 추수기를 만난 이때에 타작 마당에 남아 있게 되는 완전한 역사를 받아서 그날에 설 수 있는 무장이 되려면 정케된 교회가 되어야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역사하는 것이니, 지금이 타작 마당을 정케하는 키로 들고 까부는 때가 왔다고 본다. 그러므로 키를 든 주님 앞에 남은 종이요 남은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 말씀 하나를 완전히 믿고 단결하는 교회가 되어야만 한다. 주님의 역사는 지금 택한 자를 한 곳에 모으기 위하여 키로 까불어 보는 것은 완전한 교회를 이루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다. 이사야 30:28를 보면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분다고 하였다. 이때는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을 하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인데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라고 하였다(31∼32). 지금 멸망의 미운 물건을 들어서 교회를 까불어 볼 때가 왔다고 본다.


3.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임 (17 하반절, Back)


하나님께서 멸망의 미운 물건을 들어 쓰는 것은 알곡을 모으는 촛대교회를 세울 모략적인 방법이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때는 모략적인 역사가 없었지만 알곡을 모아 들이는 역사에는 하나님의 선한 모략이 같이하는 것이다. 멸망의 자식을 들어서 쓰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요 북방 세력을 들어 쓰고 북방을 없이하는 것도 하나님의 선한 방법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알곡을 모아 들이는 역사로써 지상 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아모스 9:9).


결 론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를 세 가지 법을 들어서 증거한 것은 모든 선지 예언의 전체를 대지적으로 증거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말세의 변화성도는 세례 요한의 사명을 다시 계대(繼代)하는 자들이다. 세례 요한이 선지서를 들어 다시 예언의 말을 한 것과 같이 우리는 선지서 전체의 말씀을 예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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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되다고 인치는 믿음

- 요한복음 3:31∼36 -


요한복음 3: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33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 쳤느니라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이 무엇을 찾는 데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편에서 완전 계약의 말씀을 인간에게 주는 동시에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증거를 하실 때에 받는 자로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참되다고 인을 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확신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완전한 진리의 종교라고 할 수 없다. 진리라는 것은 참되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이 진리인 동시에 그 진리는 다음과 같이 증거가 있다.


1. 위로부터 오는 증거 (31)


기독교는 전부가 땅에 속한 것을 목적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 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만물에 속한 것을 말했다면 이것은 과학적인 지식에 불과할 것 이로 되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보내는 증거가 즉 그리스도의 탄생인데, 그리스도의 잉태는 땅에서 올라 온 만물에 속한 혈통이 아니고, 위에서 부터 온 것이니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물과 피가 임하여 이루어진 몸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몸도 땅 위에 속한 혈통을 받은 몸이라면 그 몸은 참되신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위에서 부터 온 몸이요, 또는 신이시다.


2.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함 (32∼33)


주님께서는 스스로 말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알게 해 주는 동시에 그대로 행하시는 주님이시라 주님께서 모든 증거 하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는 증거라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오신 메시야가 아니고 거짓 선지가 될 것 이로되 주님의 증거는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분명히 알게 해 주셨으므로 그 증거는 참되다고 인을 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므로 (34)


아무리 예수님께서 성경을 증거 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준 역사가 없다면 참된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예수님 머리 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것을 볼 때에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다고 증거 했다(요한복음 1:31∼34). 언제나 참된 증거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따르는 것이다. 지금도 기독교가 아무리 진리를 증거 한다 하여도 성신을 부어 주는 역사가 없다면 참되다고 인을 칠 수가 없다.


요한복음 1: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4. 영생이 있는 증거 (35∼36)


영생이라는 것은 현저히 그 생명이 믿는 자에게 온다는 것을 분명히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생명이 오므로 써 나날이 발전하는 영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뭇가지에 진액이 오므로 써 그 가지에 순이 나서 자라듯이 영생의 생명이 흘러오므로 날마다 그 영이 자라나 큰 역사를 하게 되는 열매가 있게 된다. 영생이 오는 것은 행함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으므로 그 영생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의 신앙은 하나님이 행하시겠다는 말씀을 먼저 선지를 통하여 세상에 나타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증거가 그리스도의 성신 잉태로부터 십자가 부활, 승천, 성신 강림으로 현저히 나타났다. 그러므로 택한 자는 이 증거를 받게 되는 동시에 참되다고 인을 치는 신앙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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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핍한 자에게 안식을 주는 여호와의 말씀

- 이사야 28:7∼13 -


이사야 28:7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9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11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에게 곤핍을 오게 하는 것은 안식을 줄 때가 온 증거라고 본다. 이사야 28장은 심판기에 극도로 곤핍해질 때에 안식을 주는 역사는 무엇이라는 것을 말할 때에 여호와께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말씀을 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곤핍한 자들이 안식의 복락을 받게 되는 일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곤핍을 당하는 자에게 안식을 주는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곤핍해 지는 일 (7∼10)


심판기에 모든 심령이 곤핍해진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독주를 먹고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에 실수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그들이 서는 강단에 은혜가 나리지 않게 될 때에 그 강단은 자동적으로 속화되므로써 모든 영들은 극도로 곤핍해질 것을 가르쳤다. 금일에 교계가 이 상태로 나간다면 도저히 새 시대를 이룰 수가 없다고 본다. 새 시대라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라도 말씀대로 심판이 내리는 것이니 하나님 말씀을 바로 해석하지를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는 이 교계를 하나님은 그냥 두고 심판할 수가 없고 또는 소위 교회의 상부라는 기관에서 참된 종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예루살렘 공회가 예수를 이단이라고 하듯이 오늘의 교회가 함부로 남을 이단이라고 정죄한다는 것은 큰 실수라고 본다.


2.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말씀하는 일 (11∼12 상반절, Earlier)


금일에 어떤 신학자들은 이 사람의 입술에 말씀이 임해서 아무런 연구가 없이 말씀의 칼, 조직 신학 강의, 선지서 강의, 계시록 강의, 인간론, 성경해석법, 요한1서 강의, 새일 성가,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계속 발행하게 되는 것을 그 자체가 이단이라고 한다는 것은 너무나 경솔한 말이라고 본다. 내가 지금 매일같이 책자를 쓸 때에 한 번이라도 내 생각을 집중시킨다면 도저히 입에서 말씀이 나오지를 않고 생각을 집중하지 않고 있어야만 입에서 말씀이 나와서 책자를 쓰게 되는 것을 보면 나 자체는 스스로 떠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성경을 택할 때에도 내 생각을 집중하면 택하여지질 않고 믿고 기도할 때에 입술에 말씀이 나오는 대로 성경이 택하여지고 제목과 서론과 대지와 결론이 스스로 나오게 되는 것을 보면 분명히 내 입술을 여호와의 신이 사용한다고 믿어진다. 하여튼 누구든지 이 책을 하나님의 말씀인줄 알고 자세히 읽어 볼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할 것이다.


3. 듣지 아니할 때에 망하게 된다 (12 하반절, Back∼13)


하나님께서 과거의 선지를 통하여 기록한 글을 다시 알려주는 일이 없이 그냥 심판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지금 혹자는 성경을 모르는 것이 정통이라 또는 해석할 탓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본다. 이 사람이 이사야서를 읽지도 않고 그냥 말씀이 임하는 대로 기록하고 성경을 읽어 볼 때에 성경은 하나도 사람이 달리 해석을 할 것이 없이 그 본문 그대로 읽어서 완전히 변론을 할 수도 있고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성경이다. 그러므로 내 입술에 임한 말씀이 성경과 같다는 것 보다도 성경을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내막의 뜻이 무엇이라고 간단히 알려주는 식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이 그 글을 읽어서 모를 때에 그 글은 무슨 뜻으로 기록했다는 것을 간단히 말해도 읽어보면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입을 통하여 간단히 그 내용을 깨닫도록 말씀을 나타냈다고 믿어진다. 지금 월간지도 본문을 택할 때에 입에 말씀이 와서 택하고 또는 그 성경을 보아도 내용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모르나 입에 말씀이 임하는 대로 받아 기록하고 보면 그 본문 내용이 대지적으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누구든지 이것을 대적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리라고 본다. 왜냐 하면 성신의 훼방 죄 중에도 제일 큰 죄가 되기 때문이다. 이적을 보고 반대해도 훼방이라고 하였거든 하물며 여호와의 신이 합법적 변론으로 말씀을 나리는데도 이 진리를 대적한다면 본문대로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다.


결 론


앞으로 기독교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그대로 믿고 싸우느냐, 강한 이방 앞에 협상을 하느냐 하는 것으로 종말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14∼16절을 보면 너희 말에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을 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의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가르쳤는데 머릿돌 예수로 나타날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절대로 타협적인 노선을 걷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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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이 있어야 아는 비밀

- 마태복음 13:10∼17 -


마태복음 13: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비밀이라는 것은 일을 새로이 계획하고 행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악한 자는 악한 계획을 할 때에 숨은 비밀이 있고, 선한 자는 선한 일을 새로이 하려고 할 때에 비밀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언제나 새로운 역사를 할 시대가 올 때는 그 시대의 비밀이 있는데 그것을 먼저 합당한 자에게 알도록 허락한 다음에 그 허락을 받은 사람이 선구자가 되게 하여 그 시대의 빛이 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먹고 입고 사는 것은 세계 인류에게 다 같이 허락한 것이지만 당신의 비밀을 아는 것만은 누구든지 다 알게 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택한 자에게 알도록 허락이 있으므로 알게 되는 것이다. 택한 자에게 비밀을 알도록 허락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진실함이 있는 자에게 알게 하심 (10∼11)


택한 자라는 것은 진실한 자이다. 아무리 인격과 지식이 훌륭하다 하여도 택함을 받지 못한 자는 진실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거리에 수많은 사람이 왕래하고 있었지만 참으로 진실한 사람이 아니고 교권, 명예, 안락을 도모하는 종교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 시대의 숨은 종교인의 하나가 되는 어부들을 택하여 그 비밀을 알게 했던 것이다. 비밀이라는 것은 새로운 일을 계획한 자가 알려주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나사렛 목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민의 구주요, 그로 말미암아 온 세계 인류가 구원을 받고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비밀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비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알려주는 자가 아니고는 예수를 믿을 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마태복음 24:25∼27). 인간이 볼 때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이라고 보게 된다. 만일 하나님의 비밀을 인간의 두뇌로서 허락이 없이 안다면 하나님과 인간과는 동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물주 하나님의 비밀을 두뇌로 안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해 주어야만 알게 된다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 운동이라는 것이다.


2. 완악한 자가 깨닫지 못하도록 하심 (13∼15)


하나님께서는 완악한 자들에게는 오히려 깨닫지 못하는 신을 부어 주신다(이사야 29:10∼12, 이사야 66:4). 하나님께서 법을 세울 적에 순종치 않는 자는 마귀가 지배하도록 법을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라도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마귀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가장 거룩한 신이시니 거룩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만 당신의 비밀을 알도록 하기 때문이다.


3. 정한 때가 될 때에 비밀을 알려 줌 (16∼17)


모든 선지는 메시야를 영접하기를 원하는 마음 간절하였으나 그들은 메시야가 올 것을 받아 기록하고도 때가 아니므로 다 세상을 떠나가고, 주님 탄생시에는 아무런 선지의 역할이 400년 동안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잠잠하고 희미한 상태에 내려간 것이 400년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도로 예루살렘 성전은 부패하였고 참으로 진실한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는 예루살렘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갈릴리에 있는 어부들에게는 비밀을 알게 해 주시고 예루살렘에 왕래하는 대제사장, 유사, 장로 등의 무리들은 이 비밀을 아는 것은 허락지 않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바알세불이 들렸다고 까지 말했던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 말하여도 짐짓 더 악해진 것이 비밀을 모르는 유대교인들의 행한 일이라고 본다.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할 때에 당신의 비밀을 알려 주되 미약한 자, 어리석은 자에게 알려주고 교만한 자, 부한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으므로 권리를 가진 종교인과 정치인이 그들을 반대하고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선지에게 비밀이 묵시로 나타날 때에도 모든 부패한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이 그 종을 반대하게 되었고 그 선지 예언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때에도 메시야 탄생을 모르고 반대하는 무리들과 비밀을 안 사람들과 큰 싸움이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비밀을 아는 종과 모르는 자와의 큰 싸움이 있어서 교회는 반드시 갈라지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복 있는 자는 그 시대의 비밀을 알도록 허락을 받은 사람이라고 본다. 알게 허락한 것은 그 복을 주기로 작정한 증거라고 본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비밀이 깨달아 지는 자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자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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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

- 야고보서 1:5∼8 -


야고보서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하나님 앞에 제일 큰 죄는 의심이라고 본다. 왜냐 하면 의심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자기의 것을 없는 자에게 주고자 할 때에 받는 자가 자기를 의심한다면 자동적으로 마음 가운데 노여운 마음이 있게 되는 것은 인격을 무시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하고도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니 아무 것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은 어떠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치 않고 믿었다는 것이 믿음의 조상이 되므로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기를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은 주고자 하는 사랑을 가지신 사랑의 자체이신데 그것을 의심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죄가 된다. 왜냐 하면 주겠다는 것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이제 의심하지 않는 자라야 받는다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자기 부족을 깨닫는 마음에서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5)


하나님은 자기 부족을 깨닫고 의심없이 구하는 자는 다음과 같이 축복을 하시는 것이다.


첫째 : 구하는 것 밖에 더 넘치도록 주시는 것이다.


둘째 : 완전하게 하시되 당신의 소원을 의심 없는 자에게 주므로써 이루는 것이다.


셋째 : 당신은 참이라는 것을 의심 없는 믿음을 가진 자를 통하여 만민이 알도록 표적을 나타내신다.


그러므로 과거에 어느 종이나 특별히 대표적으로 쓰는 종에게 의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몰아 넣고, 까불어 보는 것은 조금도 의심치 않는 자에게 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그를 통하여 세상에 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모세도 40년간 미디안의 쓰라린 시련을 겪게 해서 세운 것이요, 아브라함도 백세가 되도록 시련을 주어서 세운 것이요, 모든 선지 중에서 대선지 이사야도 벗은 몸, 벗은 발로 3년 동안 전도하게 하시면서 말씀을 주신 것이요, 사도 바울도 무서운 박해를 당하여 어려운 난관 속에서 수많은 편지서를 쓰게 한 것이요, 사도 요한도 무서운 네로 황제 박해 속에서 쓴 환란을 통과하고 쓰라린 밧모 섬에서 계시를 받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 것은 그 성경 내막이 다 어려운 난관을 당해도 의심치 않는 자에게 주겠다는 비밀이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간교한 뱀을 들어서 하나님 말씀이 의심나게 꾀이는 그 역사는 아담, 하와로부터 새 시대가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계시록 20:1∼3).


가장 정상적인 인격은 하나님의 지혜를 풍성히 받은 자에게만 있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은 아무 것도 더함이 없는 바람잡이 생활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완전한 지혜를 받은 사람은 무엇이나 확정적인 진리에 서게 되므로 한 시간도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게 될 것이며 한 마디의 기도라도 헛되이 기도하는 시간이 없는 동시에 무슨 일이나 다 열매 있는 생활이 될 것이다.


2. 의심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얻을 수 없다 (6∼7)


최고의 불행스러운 사람은 구하고도 받지 못하는 자라고 본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후하게 주시겠다는데 이것을 하나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스러운 일인가? 기도하지 않는 사람보다도 기도하고도 받지를 못한다는 것은 더욱 불행한 자라고 본다. 그러므로 가장 행복스러운 사람은 의심 없이 믿고 구하는 자요, 가장 불행한 자는 구해도 의심이 있어서 받지 못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해 주시는 하나님을 의심치 않는 사람을 찾아서 주고픈 그 사랑을 다 이루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의심 없는 믿음으로 구하여서 지혜를 풍성히 받는 생활이라고 본다. 가장 영화로운 일은 지혜를 구하던 솔로몬 왕이라고 본다. 왜냐 하면 그 손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고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천지 만물을 다 창조한 후에 성전을 제일 먼저 지은 사람은 지혜를 받은 솔로몬이다. 그렇다면 성전을 시작하는 자가 지혜를 받아 시작했다면 완전한 촛대교회를 이루어서 새 시대에 들어가는 자도 지혜를 받은 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구할 것은 지혜라고 본다.


결 론


지혜를 구하고 의심하는 자는 마귀의 흑암이 올 것이요, 지혜를 구하고 의심치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신이 올 것이다. 이제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않는 자의 받을 축복은 다음과 같다.


첫째 : 몸의 영생이다.

첫째 아담은 말씀을 의심했으므로 그 몸이 죽었고 말세의 성도는 예언의 말씀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순종할 때에 그 몸이 살아서 새 시대를 보게 되는 것이다.


둘째 : 세계 통일의 통치권을 받는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했으므로 통치권을 상실했지만, 말세의 성도는 아무리 마귀 미혹이 강해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말씀을 지키므로 세계를 통치하는 사람이 된다.


셋째 : 완전한 축복을 받게 된다.

첫째 아담은 말씀을 의심했으므로 축복을 빼앗겼고, 말세의 성도는 의심 없이 말씀을 지켜 나갈 때에 완전한 축복을 영원히 후손까지 받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난다고 다니엘 12:3에 말했다. 이 날까지도 지혜로운 자가 복을 받았지만, 완전한 축복을 받을 자는 지혜를 풍성히 받은 자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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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

- 히브리서 10:9∼18 -


히브리서 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16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리스도는 영원한 것을 인생에게 주기 위한 활동을 개시할 때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었다. 종교라는 것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종교의 중심이 되는 동시에 그 제사를 통하여 그 종교는 모든 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는 영원한 제사를 드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이다. 우리는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예수를 믿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폐하고 세우신 것을 믿는 것이다 (9)


우리 인생 자체가 무엇을 폐하고 세웠다는 것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폐하시고 세운 것은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는 조건이 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율법에 관한 것을 폐하지 않고 믿으라 하는 것이라면 우리 죄인들은 감히 그를 신앙할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율법으로는 저주를 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는 완전히 세운 것이 없다 해도 믿을 수 없다. 왜냐 하면 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한 목적이니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죽으시므로 폐할 수도 있고, 세울 수도 있는 조건이 확립된 것이다. 십자가에 죽으므로 율법의 저주는 폐한 바 되고 은혜의 법은 세운바 된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법을 세웠다가 폐하고 아무 조건 없이 세우기도 한다면 이것은 진리의 신이라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그대로 행치 않고, 그 말을 취소하고 또 다른 말을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신용이 없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말한 다음에 그 말을 폐하는 것도 합법적인 조건이 성립되고 다른 방법으로 세우는 것도 합법적인 조건이 성립되게 하는 자라면 이 사람은 법의 사람이니 그 사람을 참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한 번 말씀하고 그 말씀을 폐하는 것도 당신이 조건이 있게 폐하시고 다시 새로운 일을 세우는 것도 합법적인 조건이 있게 세운 것이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라는 것이다.


2. 단번에 거룩함을 얻게 하심 (10)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라는 것은 그 몸을 단번에 드리어서 영원히 다시는 제사를 드릴 필요조차 없이 된 것을 가르친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고라도 그것이 완전 거룩(Holy)을 주는 열매가 없다면 우리는 그 십자가를 믿을 수 없는 것이로되 우리가 1900여년 전에 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원한 속죄를 믿음으로 지금도 우리 마음에 거룩(Holy)을 주는 증거를 받을 때에 영원한 속죄가 된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 수 있다.


3.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으므로 (11∼12)


우리의 신앙의 대상자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속죄제를 드리었으므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지금은 대언의 기도 한 마디면 얼마든지 세계 만민을 살릴 수가 있는 특권을 가지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한 번 말할 때에 하나님은 그 말에 응답을 나리게 되는 것이 예수님 이름으로 오는 응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다 시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한복음 14:13).


4. 원수를 갚는 권세가 있음 (13)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제는 죄를 사하는 특권이 있는 동시에 원수를 갚는 권세가 따르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으므로 그 피를 믿는 사람은 의롭게 여기는 동시에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은 원수를 갚아 주는 동시에 억울함을 당한 당신의 사람에게는 상급을 주고 당신의 사람을 억울케 하던 자는 멸망을 시키는 것이다.


5. 영원히 완전케 하심 (14∼18)


주님께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으므로 죄를 사해도 영원히 다시 기억하지도 않는 것이요, 영원히 영생을 누리게 하는데는 영원한 기업을 주시되 무엇이나 영원한 것으로 갚아 주는 것이다.


결 론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는 우리에게 완전을 주기 위한 제사이니 그 제사로만이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이루어지되 피조물 된 인간에게 주고자 하는 모든 것이 전부 영원한 제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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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전쟁과 땅 위의 전쟁

- 계시록 12:7∼9, 13:4∼8 -


요한계시록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13: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인류 역사의 가장 큰 전쟁은 끝을 맺는 전쟁일 것이다. 전쟁에는 영토적 전쟁도 있고 사상적 전쟁도 있는 것이다. 큰 전쟁은 영토전이 아니고 사상전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나타난 전쟁은 영토전을 가리킨 것이 아니요 사상전이라고 본다. 이제 사상전이 왜 큰 전쟁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하늘의 전쟁 (12:7∼9)


하늘의 전쟁은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우는데 붉은 용의 세력이 미가엘 대군에게 쫓겨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과거를 말한 것이 아니고 인간 종말의 일인데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 : 왕국 건설을 위하는 싸우는 전쟁.


마귀는 얼마든지 왕국 건설을 방해할 권리를 받은 것이니 이것은 마귀의 방해를 이기는 자라야 왕국 건설의 왕위를 가질 수 있다는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가엘 대군은 왕국 건설을 위하여 싸우되 자기가 왕권을 받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고 왕권을 받을 수 있는 종들을 위하여 싸워 주고 있다. 그러므로 마귀는 붉은 짐승에게 권세를 주고(계시록 13:2), 하나님은 당신의 종에게 권세를 준다(계시록 11:3). 마귀의 권세를 받은 짐승은 예언을 반대하게 하고 권세를 받은 증인은 예언을 하게 해서 싸움이 있게 하는데는 예언을 증거하는 종을 위해서는 미가엘 대군이 싸워 주고 짐승의 정권을 위해서는 마귀가 싸워 주게 되는 것이다. 이 영적 전쟁이 하늘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을 기독교 종말의 영계 혼란기라 하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양편에 동등한 권리를 주는 것을 뜻했다. 이날까지는 그리스도께서 승리 하셨으므로 그 십자가를 믿는 자가 마귀 권세에서 해방을 받아 하나님 편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기독교 종말에 있어서는 마귀 권세를 개방시켜 하나님의 종들을 대항하게 하여 큰 전쟁이 일어나게 하는데 는 영적으로 큰 혼란이 오게 된다.


둘째 : 영계의 전쟁은 그 사상 문제를 놓고 일어나는 싸움이 된다.


마귀의 말을 가지고 나오는 거짓 선지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오는 참된 종과 사상적으로 대립이 된다. 마귀의 사상은 하나님 말씀은 다 거짓이요, 자기의 말이 참이라는 것이요, 하나님의 종들의 사상은 하나님 말씀만이 참으로 믿을 말씀이요, 그 밖의 모든 말은 다 믿을 수가 없는 마귀의 말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의 정통 사상 이라는 것이다. 지금 소위 레닌 막스주의라는 것은 마귀의 말이라면 그를 대적하는 멸공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사상전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공산당을 반대하기 위하여 꾸며낸 학설이 아니요, 공산 사상이 나오기 전에 벌써 하나님은 미리 말씀한 것이니, 붉은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이제 나오는 것 보다 도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즉 금일의 사상전이라는 것이다. 붉은 사상이 나오는 것도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요, 그를 없이하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가 나오는 것도 하나님 말씀에 이미 기록된 대로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공 운동을 하기 위하여 조직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왔으므로 그 말씀이 조금도 어김없이 응하여지는 사실을 그대로 믿고 나갈 때에 자동적으로 사상전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천사도 말세의 종도 같이 된 종이다(계시록 22:9).


2. 땅 위의 전쟁 (계시록 13:4∼8)


하나님은 하늘의 전쟁이 끝나게 하는 동시에 지상에 대 환란이 오게 한다. 하늘의 전쟁은 왕권을 받은 자의 수가 찰 때까지 싸우는 것이요, 수가 찰 때는 하늘에서 마귀 떼는 완전히 쫓겨 지상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 때에 이 세상은 마귀의 표를 받은 자 외에는 매매도 할 수 없고 또는 그 앞에 절하지 않고는 생명을 보존하기가 어려운 환란이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환란을 앞에 놓고 참된 종은 누구든지 예언의 말씀을 지켜야만 대 환란이 올 때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하므로 피해를 당하지 않고 남은 자라야 심판의 재앙을 피하고 새 시대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사상전이 벌어지는 것은 짐승의 사상은 망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제 대 환란이 올 때 되는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종이 휴거를 받음 (계시록 11:7∼11)


재림시까지 남아 있는 종은 자동적으로 짐승과 전쟁을 하게 된다. 왜냐 하면 진리사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날까지의 정치라는 것은 기독교를 없애 버리는 사상을 목적한 정치는 없었다고 본다. 혹 기독교를 박해하는 정치가 있던 것은 단지 종교 문제에 있어서 큰 변론이 없이 자기네 종교를 순종하라는 것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공산당은 변론을 중심 한 사상적인 문제를 놓고 나오는 정치이므로 성도는 자동적으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변화성도는 지상왕국을 목적했기 때문이다.


둘째 : 그리스도 왕국이 지상에 이루어지는 것은 붉은 용, 붉은 짐승의 정권과 거짓 선지의 세력을 몽땅 없이하는 진리 운동이기 때문에 사상적인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재앙으로 땅을 치고 나갔지만 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증거를 마치고 재림의 주를 영접하여 휴거를 받게 되는 동시에 완전한 왕국이 조직되는데는 짐승의 나라를 쳐서 없애는 것을 지상왕국이 이루어지는 전쟁이라는 것이다(계시록 19:19∼21). 이 전쟁은 아마겟돈 전쟁이라는 것이다. 지금 인력으로써 전쟁을 끝을 맺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성도를 통하여 초인간적인 역사를 일으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전쟁의 끝을 맺는 지상통치는 성도가 하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전쟁 자체를 위하여 우리가 싸운다는 것 보다 도 우리는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니 자신이 할 사명을 하기 위해서 싸우는 동시에 원수를 갚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초인간적인 하나님의 역사로 <끝을 맺는 전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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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 공력이 헛될까 조심하자

- 고린도전서 3:10∼23 -


고린도전서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 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우리는 날마다 사는 생활이 집을 세우는 자와 같은 생활이다. 그러므로 집을 짓되 어떠한 집을 지어야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만일 집을 짓고라도 그 집에서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면 오히려 집을 짓지 않은 것만도 못할 것이다. 이제 어떻게 집을 지어야 그 공력이 헛되지 않을까 하는 일에 깊이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1. 사도 바울이 닦은 터 위에 집을 짓자 (10∼15)


우리는 이 말 저 말, 이 생각 저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사도 바울이 14권의 성경을 쓴 그대로 신앙의 토대를 잡으면 그 이상 더 할 것이 없다고 본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십자가의 도를 남보다도 더 명확히 쓸 수 있는 영감을 주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복음은 완전히 기독교의 정통 신앙의 터를 닦았다고 본다. 이 사람은 과거 청년 적에 바울 서신을 많이 본 것은 어느 성경보다도 내 신앙에 완전한 확신을 주기 때문이었다. 누구든지 바울 사도의 기록한 서신에서 조금이라도 가감된 신앙을 가진다면 그 터를 바로 잡지도 못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완전한 터를 잡고 다음과 같이 해야 될 것이다.


첫째 : 다른 터를 닦을 자가 없다고 생각을 두어야 한다 (11).


우리는 대표적인 종이 받은 것 외에 다른 것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은 신앙관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세운 대표이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에서 가해도 교만이요, 감해도 교만일 것이다. 왜냐 하면 바울 사도를 들어서 우리에게 완전한 신앙의 토대를 잡도록 성신이 역사 하셨는데 여기에 기준하지 않고 다른 무엇을 생각한다면 바울을 대적하는 것보다도 성신을 근심케 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 불타지 않을 것으로 세워야 될 것이다 (12∼15).


우리의 수고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주님께서 갚아 줄 수고도 있고 갚아 줄 것이 없는 수고도 있으니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만을 중심 하지 않고 어떤 인물이나 교파를 중심 해서 수고했다면 주님은 책임을 질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주님의 일은 어떤 개인이나 개 교파를 초월해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끌려서 그 사람에게 보이려고 일했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한 것이니 이것은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과 같이 몇 날이 못 가서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주님만 중심 해서 그 뜻에 복종하는 수고 외에는 다 헛수고가 될 것이다.


2. 일꾼된 자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16∼17)


일꾼이라는 것은 자기 홀로 일할 수 없고 성신이 내주하여 역사하는 대로 쓰여지는 것 뿐 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소불능의 신이시지만 일하는 사람의 몸을 거룩한 성전같이 성별 되게 쓰는 것이니 일꾼 된 자가 자기 몸을 함부로 아무 곳에나 쓴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과 같다. 우리 몸은 주의 피로 산 몸이니 주님이 가실 곳을 우리 몸이 가고, 주님이 붙들 사람을 우리 손으로 붙들어 주고, 주님이 하라는 말을 우리 입으로 하게 되고, 주님이 하시던 일을 우리 몸으로 하는 것이 일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면서 성신을 받으라고 했던 것이다(요한복음 20:21∼22). 하나님은 예수님의 몸을 세상 죄를 걸머지고 죽으라는 사명을 맡겨 보냈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우리를 쓰시는 것은 주님이 행하신 일을 우리가 나가서 전하되 주님의 대행자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신앙의 대상을 완성시킨 일을 하셨고, 우리는 모든 사람이 바로 믿도록 전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3.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18∼23)


하나님께서 제일로 싫어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세상 지혜로 하려는 자라고 본다. 그러므로 세상 지혜를 어리석은 일로 보고 하늘의 지혜로만이 하나님의 일을 바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절대 사람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의 완전 지혜를 받기 위하여 노력하는 동시에 그 지혜로만 모든 일을 이루어 나가려고 할 때에 지혜로운 건축자가 될 수 있다.


결 론


인간 생활의 가장 비극은 남지 못할 일을 위하여 수고하는 생활이라고 본다. 또는 인간 생활에 있어서 가장 복된 일은 작은 일에서나 큰 일에서나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일을 하는 자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고 하였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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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학자의 혀를 받은 종

- 이사야 50:4∼11 -


이사야 50: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 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9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11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들어가며 너희의 피운 횃불 가운데로 들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슬픔 중에 누우리라"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선지들에게 묵시를 받게 하고 말씀을 받아 기록하도록 한 것이 선지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묵시의 뜻이 무엇이며 자기가 기록한 글도 무슨 뜻인지를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심판기에는 학자같이 말하는 혀를 주어 모든 사람들이 다 무슨 뜻인지를 알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 없다면 혼란기에 미혹을 받게 되겠으므로 이제 학자의 혀를 받게 하는 종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곤핍한 자를 도와주는 역사 (4)


지금 모든 영들은 다 곤핍을 느끼고 있다. 중생의 역사가 임할 때에 중생을 받고 은사를 받고 자라났지만 지금 곤핍을 느끼는 원인은 학자의 혀를 받은 종이 나타나야 할 때가 온 증거라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세에 남은 종이 될 자에게 학자의 혀를 주어서 곤핍을 느끼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소성을 받게 하는 역사가 있을 것을 본문에 말했다. 학자같이 깨달아 듣게도 하는 역사가 학자의 혀를 받은 종을 통하여 있게 되는 것이다.


2. 순종하게 하는 역사 (5)


누구든지 학자같이 말하는 종을 통하여 학자같이 깨닫게 될 때에 용기있게 걸어나가는 힘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억지로 지배할 것이 아니고 종말의 진리를 바로 증거할 때에 듣는 자들이 완전히 깨닫게 되므로 용기 있게 따라가게 하는 것이 완전 역사라는 것이다. 종교는 맹목적으로 남을 따른다는 것이 있다면 그야말로 가련한 일이라고 본다. 그 진리를 완전히 깨달을 적에 절대 거역할 수가 없고 자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신앙 자유라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역사 (6∼9)


하나님은 덮어놓고 돕는다는 것이 아니요 진리의 법에 따라서 돕는 것이니 학자같이 깨달아 듣는 자라면 그 진리대로 하나님이 책임을 지고 도와주시므로 절대로 수치를 당치 않고 승리를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진리를 분명히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도와 줄줄 믿는다면 이것은 미신에 불과한 신앙이다. 이러한 자들은 큰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4. 흑암을 뚫고 나가는 역사 (10∼11)


흑암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자같이 깨달아 듣는 종은 아무리 흑암 중에서라도 진리의 봉홧불을 들고 용기 있게 나가서 안식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오는 흑암을 뚫고 나가려면 덮어놓고 따라갈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학자의 혀를 주어서 바로 증거하는 종의 말을 듣고 따라 가야만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금일에 많은 종들이 진리를 가르치지만 직접 하나님의 신이 그 혀를 학자같이 말하도록 사용하는 종이 아니고는 하나님 말씀을 바로 증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사야 28:11에는 종의 입술을 하나님께서 사용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증거하는 일은 하나님의 역사가 학자같이 말하는 혀를 주어서 증거하므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깨닫고 흑암을 뚫고 나가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종의 입을 통하여 시대를 따라 증거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큰 역사는 이적이 아니요, 학자같이 진리를 바로 증거하도록 그 입을 열어지게 하는 역사라고 본다. 이 학자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신이 종말의 비밀을 바로 증거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하늘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그 종에게 학자같이 말하게 하므로 그것만이 바로 증거할 수 가 있고 그 진리를 따라서 하나님이 역사 하므로 써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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