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설교 - 주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자(마태복음 11:28~30)
주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자
- 마태복음 11:28~30 -
인간생활의 가치는 배움에 있다고 본다. 정신 작용으로 배워지는 활동에서 물질계가 화려해질 수 있고, 영적으로 배워지는 생활에서 화려한 세계를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정신 작용으로나 영적으로나 배워지는 생활에서 인간의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조그만 그릇에 담긴 물이 불의 힘으로 끓는 것을 깊이 생각할 때에 배워지는 것으로 오늘날 물과 불의 힘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빨리 다닐 수 있는 세계를 이루었고, 작은 골방에서 책 하나를 들고 배워지는 생활은 정신작용으로 배워진 것보다도 더 빠른 교통을 보게 되었는데 이것을 영계 생활이라고 한다. 그러면 주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는 생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말한다.
1. 무거운 짐을 벗어야 함 (28)
인생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무거운 짐을 지었다고 본다. 이 짐이라는 것은 지고 싶어서 지는 것이 아니고, 벗고자 해도 벗을 수 없는 무거운 짐이다. 이 짐을 지고 가는 자들은 인간의 가치를 상실한 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수고 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 짐 하나를 벗겨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많은 영도자가 있지만 이 짐을 벗겨 줄 자는 오직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왕의 아들로서 옥중 방문을 한 일이 있었다. 옥에 간 왕자는 죄수들에게 “무슨 죄를 짓고 이렇게 옥에 와서 고생을 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모든 죄수들은 왕자 앞에 와서 말하기를 “우리는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인데 억울하게 옥에 갇혔다”고 하는 것이다. 그 때에 죄수 한 사람은 왕자 앞에 공손히 엎드려서 하는 말이 “저는 백 번 죽어도 마땅한 죄를 지었는데, 이날까지 내 생명이 살아서 있다는 것은 임금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자는 이 죄인에게 말하기를 옳은 사람만 사는 옥중에서 죄인 혼자 있을려니 얼마나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냐고 하면서 당신은 이곳에서 나가 자유롭게 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에 오실 때에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시면서 인간들의 무거운 죄의 짐을 벗겨 주기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죽어서 죄인들에게 참된 자유를 주는 역사를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무거운 죄의 짐을 벗어버린 자는 주님의 멍에를 멜 자격이 있다. 죄 값으로 헛된 수고를 하다가 영원히 멸망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사망의 법을 벗어나서 주님의 멍에를 메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2.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심 (29)
주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사람을 향하여서는 항상 온유하시고 겸손하시다. 택한 사람이 아무리 주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있다 하여도 온유하게 대해 주시는 것은 택한 사람을 바로 깨닫게 하여야 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요한1서 5:20).
그러므로 사울이 아무리 주님을 핍박하는 사람으로 다메섹을 향하여 갔지만, 주님은 나타나셔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말씀하실 때에도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를 깨닫게 해주셨다. 주님께서 바리새교인을 대할 때에는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시면서, 죄인들을 대할 때에는 온유하게 대해 주신 것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죄가 없어도 당신을 대적하는 자는 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시었고, 알지를 못하고 죄를 지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대하실 때에 언제나 눈물 흘리는 심정으로 대해 주셨던 것이다.
주님께서 온유와 겸손이 없이 대하신다면 우리는 감히 주의 멍에를 메고 배울 수가 없는 인간들이다. 나는 40년간 신앙 생활에 19세에 교회의 성직을 맡아 가지고 오늘까지 배워진 것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이다. 내가 주를 위하여 일을 하다가 넘어지고 실수가 있을 때에 은혜를 더욱 풍성히 내려 주시는 그 은혜를 받았으므로 믿는 형제가 아무리 실수가 있어도 그 형제에 대하여 조금도 무시할 수가 없다. 이것은 주님께서 나에게 그렇게 대해주셨으므로 나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형제의 실수를 보고 혈기를 낸다든지, 무시를 한다든지, 악평을 한다면 이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멍에를 멘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주의 일을 한다 하여도 자기 멍에를 멘 사람이지, 주의 멍에를 메고 나가는 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소는 쟁기를 쥔 주인의 원하는 대로 움직일 것뿐이다.
이와 같이 주의 멍에를 멘 자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서 지도하시는 대로 순종할 것뿐이지, 한 사람이라도 주님이 용서하는 자를 멸시하거나 압박하거나 저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주의 멍에를 메었기 때문이다.
3. 쉽고 가벼워짐 (30)
주님께 배우는 생활은 극도로 쉬워지고 가벼워지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주의 멍에는 승리의 멍에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으므로 그 멍에는 주님의 승리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이 하등 필요가 없고, 주의 승리의 능력이 오므로써 배워지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둘째: 주의 멍에는 능력의 멍에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당신이 승리하신 다음에 능력을 주어서 역사하시는 것은 왕권 받을 인격이 이루어 지도록 역사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멍에를 메고 배우는 자는 인격적인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역사로 말미암아 배워지는 생활이 있게 된다.
셋째: 주의 멍에는 사랑의 멍에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역사라는 것은 하나도 억지가 없고 불타는 사랑에서 오는 역사이니 그 사랑에 이끌려 가는 자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가벼워지는 힘을 얻는 것은 우리 주님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멍에를 메고 배우는 사람은 주의 대행자가 되는 것이니 주의 명령에 순종할 것뿐이다.
결 론
주님께서는 택한 자를 배워 주실 적에 쉽고 가볍게 일하도록 배워 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의 능력의 역사가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시므로 배워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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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성실과 정의의 하나님(스가랴 8:1∼8)
성실과 정의의 하나님
- 스가랴 8:1∼8 -
하나님은 아무리 예루살렘을 택했고, 또는 자기를 공경하는 성전이 있다 해도 그들이 진리를 바로 증거하는 선지의 말을 순종치 않을 때에 말씀대로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을 들어서 예루살렘을 황폐화시켰고, 심지어 성전까지라도 다 없애버리는 환란을 통과하게 하셨다. 그 환란에서 남은 자가 되어서 끝까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자를 들어서 예루살렘을 회복할 때에 스가랴 선지를 통하여 인간 종말에 될 일을 보여준 것이 스가랴書(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된다"고 8절에 말씀하셨다. 이 본문은 과거 예루살렘의 복구를 가르친 것이 아니고 새 시대를 목적하고 가르친 말씀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다윗 왕국에 이루어진 일은 전부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성도의 나라'에 대한 예언적인 역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은 육적 이스라엘에 대하여 성실과 정의의 하나님이 되신 것 같이 영적 이스라엘이 된 우리에게도 성실과 정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1. 질투의 하나님 (1∼2)
하나님이 시온을 택한 것은 당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택한 것이니 아무리 시온이 부족하다 하여도 아주 버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도록 징벌을 하시고, 회개하고 순종할 때에 시온을 위하여 싸워 주시되 승리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비록 한때는 시온을 징계해서 깨닫도록 하기도 하셨으나 남은 자의 원한을 이루어 주기 위하여 싸워 주신 것같이, 기독교 종말에도 부패한 교회를 없이하는 환란이 오지만 남은 자의 간곡한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구약 시온을 위하여 싸우셨듯이) 택한 교회를 위하여 싸워 주시므로 그 교회가 새로운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다.
환란이 와도 말씀대로 오고 다시 평화로운 왕국이 오는 것도 말씀대로 오게 하는 것은 한번 약속한 말씀은 그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용서없이 환란과 재앙이 오기도 하고, 또는 다시 불쌍히 보고 택한 자로써 승리하도록 해서 아름다운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다.
2. 함께 하시는 하나님 (3)
하나님은 언제나 택한 자와 함께 하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함께 하시는 것은 성실과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성실치 아니한 자나 불의한 자에게는 함께 하실 수 없고, 비록 적은 무리라도 성실하게 행하며 의롭게 나갈 때에 하나님의 신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할 때에 "진리의 성읍"이라, "성산"이라 일컫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있으므로 만 완전한 것을 소유할 수 있다.
3. 사망이 없게 하시는 하나님 (4∼5)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사망이 없도록 하는 것을 완전 역사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는 완전한 것으로 이룬 것이 아니고,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하여 이뤄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그 몸이 죽게 되었지만, 다시 그 몸이 죽지 않도록 해 주시는 것을 기독교의 완전 역사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말씀대로 사람을 죽지 않게도 하시는 진리의 신이시니 말씀을 순종치 않으므로 사망이 왔다면 말씀을 순종하는 자로 하여금 사망이 없는 왕국을 이루시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성실과 정의라는 것이다.
4. 인도하시는 하나님 (6∼8)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시되 반드시 성실과 정의로 말씀대로 행하시어 여호와의 성산의 축복을 받게 하시되 영원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을 대할 때에 성실과 정의로 대하시는 것이니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를 남은 자라고 한 것은 아무런 어려운 시험이 와도 하나님은 절대 거짓이 없다는 것을 믿고 마음이 변치 않는 자를 남은 자가 되게 하여 새 시대를 이루겠다는 것이니 (이런 자는) 누구든지 다 하나같이 완전한 사람으로서 완전한 왕국의 완전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결 론
천하에 가장 복 있는 자는 성실과 정의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환란과 재앙에서 남은 자라고 보게 된다. 모든 일에 완전한 것을 사람에게 주기 위하여 이모저모로 시련을 시켜 보는 것은 합당한 사람을 찾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예루살렘이요, 친 백성일지라도 합당치 않은 자는 다 없애기 위하여 무서운 환란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육적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여러 환란을 만났지만,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황폐화시킨 때와 같은 환란은 없었던 것처럼, 기독교가 아무리 많은 역사적 환란이 있었다 하여도 계시록 13장과 같이 오는 환란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환란을 들어서 택한 백성을 치는 것은 성실과 정의의 하나님의 백성만으로 새로운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스가랴 8:1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聖山)이라 일컫게 되리라 4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5 그 성읍 거리에 동남(童男)과 동녀(童女)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 6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8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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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2:11 "애굽에서 나온 자들의 이십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정녕히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순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12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다시 예언) ☞ "죄악세상 애굽에서 영적으로 출애굽하여 중생 받은 기독교인들 중 신앙 생활 오래하여 교권화 된 자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천년왕국 땅의 축복을 정녕히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읽고 듣고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다만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이 ’귀 있는 자들’ 144,000명은 천년왕국을 볼 것은 그들이 계시록과 시편과 예언서의 모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라"
여호수아, 갈렙과 같이 신앙 지조 있는 144,000 명이 20세 미만의 어린아이와 같은 '흰 무리'를 회개시켜 천년왕국에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이사야 11:16절이요, 호세아 2:15절이요, 미가 7:15절이다.
• 히브리서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 로마서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 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 고린도전서 10: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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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저희가 내게 대하여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망자 존대(妄自 尊大)할까 하였나이다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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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통해 오는 온전
- 야고보서 1:1∼4 -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온전한 것을 주시기로 작정했고, 또는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온전을 준다는 것은 공의가 아니기 때문에 시험을 해보고 참는 자에게 온전한 것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에 있어서 온전한 것을 이루기까지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시험을 받을 자격 (1)
시험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된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는 법이다. 왜냐하면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은 시험을 통과시킬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라고 한 것은 영적 이스라엘을 가리킨 것이다.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하나님 편에 속한 자로서 마귀 편과 싸우는 생활을 하는 것이니 과거에 육적 이스라엘이 이방 사람보다도 시련이 더 많은 것은 이스라엘 나라로 말미암아 참된 영적 이스라엘의 교회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요, 영적 이스라엘에게 여러 가지 시련을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누구든지 중생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반드시 시험을 통과시키는 것은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2. 온전한 기쁨을 가지게 됨 (2)
기쁨이라는 것은 일시 흥분의 기쁨도 있고, 소망의 기쁨도 있으니 세상에 오락적인 기쁨이라는 것은 온전한 기쁨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시험이 올 때에 온전히 기뻐하는 것은 소망에서 오는 기쁨이라고 본다. 소망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시험을 통과하므로 이루어진 일을 말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지금 고난을 받는 것은 장차 받을 영광에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로마서 8:17∼18). 인생이라는 것은 온전한 기쁨을 가짐으로써만 발전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더욱 자라나는 지각이 있고 힘을 얻기 때문이다.
3. 인내를 이루게 됨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는 것도 있고, 상급으로 주는 것도 있으니 은사라는 것은 거저 주는 것이요, 상급이라는 것은 참았다는 조건으로 주는 것이다. 참음이 많을 적에 상급이 많고 참음이 적을 적에 상급이 적고 참음이 없을 적에 빈 껍데기만 남는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발전이라는 것은 참음을 통과 하므로 만 있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반열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악한 마귀를 들어 쓰는 것은 참음이 있나, 없나를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다.
4. 부족함이 없게 됨 (4)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게 해 준다는 것이 사랑의 한계가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낼 때에 부족한 사람으로 창조한 것은 시험을 통과시켜 본 후에 부족함이 없는 과실인 생명과를 먹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은 부족함이 없게 창조한 것이 아니고, 부족함이 없는 인격을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것이니 이 세상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을 이루는 인격 훈련소라고 보게 된다.
결 론
온전한 것이라는 것은 만물 중에 사람만이 받을 인격이 있고 특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것은 시험을 이길 수도 있고, 이기지 못할 때도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어 참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신 것은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는 동시에 참는 자로서 이룰 왕국 부서를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는 것을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인데, 마귀를 쓰는 것도, 성신을 주시는 것도 목적은 시험을 이기므로 온전함을 이루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역사이다.
야고보서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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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기독교 안의 쑥물은 무엇인가?(계시록 8:11~12, 예레미야 23:13~17)
기독교 안의 쑥물은 무엇인가?
- 계시록 8:11~12, 예레미야 23:13~17 -
예레미야 23:13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중에 우매함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탁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14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중에도 가증한 일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행악자의 손을 굳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 사람과 다름이 없고 그 거민은 고모라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로서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서 론
하나님께서 맑은 강과 샘이 쑥물이 되는 광경을 보여준 것이니 기독교 종말에 영계를 망치는 쑥물이 큰 별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큰 별은 쑥물을 내어서 기독교를 망칠 종이요, 지도자를 말한 것이다. 구약 성전이 황폐될 때에도 지도자가 쑥물을 먹인 죄값이었고 말세 교회가 맑은 강과 샘물같이 신령하였으나 쑥물이 들어오므로 망쳐질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제 쑥물은 무엇이냐는 것을 말한다.
1. 가증한 일이다 (14)
가증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세상과 타협해서 속화된 일을 말한 것이다. 기독교는 신랑 예수님과 약혼한 처녀와 같은 것이니 만 왕의 왕을 신랑으로 모실 교회가 만 왕의 왕을 대적하고 세속에 물들어 타협하는 것이 가증이라는 것이다. 이 가증은 주님께 볼 때 밉게 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자로서 제일 미운 물건은 자기와 결혼한 여자가 다른 데로 마음을 두는 일일 것이다. 이런 무리는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회개라는 것은 세상을 끊어 버리는 것이 참된 회개라 하는 것이다.
2. 사악이다 (15)
악도 포악과 사악이 있으니 포악이라는 것은 사람이 보기에 나타나는 악을 말했고 사악이라는 것은 겉은 옳게 보이면서 중심이 악한 바리새인 같은 행동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종교이니 사악이라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쑥물이 될 것이다.
3.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것이다 (16)
하나님의 종은 자기 마음 대로라는 것이 있을 때 자동적으로 쑥물을 내는 것이다. 종이라는 것은 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하겠다는 것 외에는 위법이니 위법은 쑥물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강단에서는 종이 헛된 말로 세상 적인 지식으로 지절거리기를 좋아한다면 그 강단은 쑥물이 되는 것이다.
4.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에게 '평안'이라는 표어가 있다는 말이다 (17)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치 않고 그 말씀을 멸시하는 자에게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것보다도 자기의 주권으로 그 사람을 포섭하는 방침을 쓰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니 아무런 재앙이 오지 못하리라 말하면서 실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일이다.
결 론
하나님은 이러한 쑥물을 먹고도 참된 선지 예레미야를 대적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악인의 머리를 폭풍과 회리바람같이 치겠다고 말씀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할 때 너희들은 완전히 깨달으리라고 말한 것이다. 쑥물을 먹는 자도 멸망이 올 때는 후회막심해 진다는 것이다. 이 쑥물은 멸망에 떨어뜨리려는 마귀의 미혹이니 임시 기분, 감정, 흥분을 주는 것이 쑥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참된 생활을 하는 것은 조금도 말씀에 가감 없이 순종의 걸음을 걷는 데서만 있는 것이니 말씀을 가해도 감해도 그 교훈은 영을 죽이는 쑥물이 되는 것이다.
계시록 8:10 "세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12 네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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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한 사람으로 감사할 일
로마서 7:22∼8:2
인생에 있어서 곤고한 생활이 있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곤고한 자체는 아주 버림을 당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요, 택함 받은 사람에게도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곤고라는 것은 택한 자에게 없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택한 자가 하나님을 경외해도 완전히 성신으로 이루어지는 인격을 받기까지는 자신 속에 싸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싸움이라는 것은 두 가지 법이 있기 때문이니, 첫째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고, 둘째는 그 법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첫째 사람은 양심이라 볼 수 있고, 둘째 사람은 육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택한 자라도 육체의 사람이 양심의 사람을 이기게 되면 죄를 짓고 양심의 사람이 육체의 사람을 이기면 의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곤고한 사람이 감사할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1.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과정 (22∼24)
현재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감사할 수 있는 과정을 거치는 자는 적다고 본다. 왜냐하면 죄와 싸워 보려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불신 사회는 말할 것도 없지만 교회 안에서도 죄와 싸워 이겨 보려고 곤고를 느끼는 사람이 적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고 죄와 싸우기에 곤고한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 있다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케 하고자 하는 사랑이 계신 동시에 죄와 싸우기에 곤고한 사람에게 완전이란 것을 주기 위해서 역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와 싸우는 자는 그 영이 하나님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하기 때문에 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요, 완전해 보려고 애쓰는 곤고한 자이기 때문에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도 요한1서 5:16에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를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범죄자를 위하여 저희에게 생명을 주시리라"고 말했던 것이다.
예를 든다면 군대가 적군과 싸우다가 피곤하여 쓰러질 때는 그 사람을 보호할 책임이 군부에 있는 것같이 이 세상 전쟁에서 죄와 싸우다가 곤고한 자를 하늘 본부에서 그를 버리지 않고 그에게 감사할 수 있는 일이 있도록 역사해 주는 것이다.
2. 예수로 말미암아 감사할 일 (25)
그리스도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것이니 중심으로 하나님의 법을 사모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믿는 자를 그 마음의 소원대로 이루어 주는 역사를 하는 것을 성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우리가 완전해 지므로 써 성신을 받는 것이 아니고 완전해지고자 하여 죄와 싸우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바라볼 때 다음과 같이 감사할 일이 있게 된다.
① 결코 정죄함이 없음 (8:1)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누구든지 중심으로 죄를 미워하고 주님을 향하여 나갈 때에 결코 정죄하지 않고 그 사람을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끔 역사하는 것을 십자가의 도의 역사라는 것이다.
② 참된 해방을 줌 (8:2)
이 해방이라는 것은 성신의 법으로 말미암아 주는 해방이니 이것을 십자가의 도의 역사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죄를 없이하는 능력이니 성령으로 와서 역사할 때 십자가의 능력이 믿는 자에게 오므로 죄를 이기는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일은 전부가 성신의 법으로 되는 것이니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는 생활이다.
하나님은 성신의 법에 의하여 역사하기 때문에 전부가 하나님께 감사할 것뿐이라는 열매를 성령으로 맺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으로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이루어 주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니 사랑이라는 것은 당신의 아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결 론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은 생명인데, 육체의 생명이 있는 '몸'에 곤고를 느끼게 되고 영적 생명이 있는 '마음'에 곤고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와 대립하는 세상에서 육이나 영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새로운 것을 받으므로만이 곤고한 몸과 영은 소성을 받게 되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영적 곤고를 느끼는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인하여 감사하게 될 때에 그는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게 되었다(8:18).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자기에게 참된 해방이 온 것을 받는 생활에서 고난을 당한 것은 죄로 말미암아 오는 고난이 아니요, 자기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도 받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는 생활에서 기뻐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바울은 넉넉히 이기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8:37∼39).
복음적인 생활이라는 것은 전부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사하는 데서 모든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은 곤고한 사람을 찾는 사랑이요, 죄를 사하기를 원하는 사랑이요, 해방을 주기를 기뻐하는 사랑이요, 일한 대로 갑절이나 갚아 주기를 원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사랑을 받은 자는 억지로 하는 일은 전혀 없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영광으로 아는 생활에서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로마서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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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83. 믿음이 자라나서 완전한 열매를 맺는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변)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므로 반드시 자라나는 것인데 그 환경과 그 생활에 의하여 자라나고 자라나지 못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한 알의 씨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씨가 싹이 나서 자라나는데 있어서는 독립성을 가지고 자라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가꾸어 주는 사람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도 자라나는데 있어서는 옳은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내가 17세에 중생을 받은 후, 40년간 신앙 생활에서 믿음이 자라나는 일에 대하여 지장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체험한 바를 말합니다.
첫째 : 지도자가 교파심을 넣어 주는데 있어서 큰 신앙에 지장을 받아 보았습니다. 장로교인으로서 장로교 외에는 다 이단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신앙의 장성을 가지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둘째 : 지도자가 동역자를 탄압하는 일을 볼 때에 마음에 반항심을 가져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존경하던 종을 노회에서 이유도 없이 탄압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노회와 시찰회에 큰 반항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신앙에 타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이 동역자를 탄압하는 일은 양떼의 신앙을 망치는 일이라고 봅니다.
셋째 : 지도자가 타협적인 노선으로 지도하는 일을 할 때에 믿음에 큰 지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정 말기에 신사 참배는 국가 의식이라는 조건하에 국민의 의무라는데서 종교와는 하등에 관계가 없다고 하는 일에 압력을 받아 신앙에 큰 타격을 받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이 타협하는 일이라는 것은 양떼에게 영적으로 큰 손상을 주는 일이라고 봅니다.
넷째 : 지도자들이 복음적이라는 미명하에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이고 주일 성수나 십일조나 금식 기도나 산 기도 같은 것은 철저히 해 나갈 필요가 없다는 관념을 양떼에게 주는 일입니다. 지도자들이 은근히 영적 방면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는 영향을 받을 때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지도자는 (양떼들에게) 철저하게 나가야 된다고 지도하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섯째 : 지도자들이 양떼들에게 독선 주의의 정신을 가지고 자기네가 제일이라는 마음을 넣어 주는 일입니다. 이러한 정신을 받게 될 때에 공연히 남을 비판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신앙에 큰 타격을 받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절대로 독선적인 정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다음은 신앙이 속히 자라나는 일에 대한 체험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 중심 성결을 목적하고 해산의 수고를 해야만 된다고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중생을 받았다 하여도 중심 성결을 목적으로 두고 싸우는 일이 있어야만 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중심에 죄가 있다는 것은 병든 심령이므로 자라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속에 질병이 있으면 자라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중심에 죄가 있는 심령은 병든 아이와 같습니다. 내가 중심에까지 죄가 없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을 때에는 영적으로 아무런 발전을 보지 못하였고 중심 성결을 목적하고 입산하여 9일간 계속으로 해산의 수고를 다할 때에 중심에 뜨거운 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중심 성결을 체험한 나로서 신앙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둘째 : 남을 살려 보려고 밤을 새워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 기도를 하다가 하늘로부터 생수가 내리는 체험을 받고 나날이 소성하는 힘을 받을 적에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는 영력을 받게 되어 신앙 장성의 큰 체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다면 무엇보다도 신앙은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있어야만 새로운 역사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셋째 : 성경을 짝을 맞추어 그 뜻을 바로 알게 될 때부터 믿음이 빨리 장성하는 것을 체험한 일입니다. 이것을 본다면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다는 것은 신앙 장성에 큰 금물이 된다고 봅니다.
넷째 :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될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생각지 않았던 뜻밖에 큰 은혜가 오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아무리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일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 중심에서 성결하게 나가는 자는 믿음이 급속도로 자라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섯째 : 주님의 의(義)로만 내게 새로운 것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자기"라는 것을 버리게 되는 일입니다. "자아"라는 것을 버리게 될 때에 신앙이 극도로 강하여지고 완전한 인격을 하나님께로 부터 받게 될 때에 완전한 진리의 세계가 무엇인 것을 알게 되므로 주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 장성에 있어서는 철저한 것이 있어야만 자라나게 되는 것이요, 철저한 것이 없이 나가는데 있어서는 그날이 그날과 같이 항상 평범한 생활에서 아무런 발전도 없이 마른 나무같이 되고 만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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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가정 지도 방법
(질문) 81. 가정 생활에 있어서 날마다 어제가 옛날이라고 말하리만큼 시국이 변천됨에 따라서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가정 지도를 해 나가야만 되겠습니까?
(답변) 가정이라는 것은 그 시대에 따라 조물주 하나님의 비밀이 나타난 가정이 된다면 여기서부터 모든 것은 축복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담의 가정은 하나님의 비밀을 모르므로 살인자를 내는 저주받은 가정이 되었고, 노아의 가정은 그 비밀을 지켜 나갈 때에 세계 인류의 역사적인 복된 가정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볼 때는 쓸쓸한 생활 같으나 혈혈단신으로 유리하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동거하는 가정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다'는 비밀을 받았으므로 복된 가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는 젊은 청년 남녀로써 시대적인 비밀을 알고 참고 나갈 때에 가장 영화로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가정이나, 아브라함의 가정이나, 요셉의 가정보다도 이 시대의 비밀을 바로 아는 가정이라면 그 축복이야말로 얼마나 크다는 것을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같이 인간 종말을 말할 때에 온 세계 인류가 불에 사름을 당하는 날에 피해를 당치 않고 구원을 받는 가정이 가장 복되다는 것을 중점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국이 변천됨에 따라서 악한 영향을 받는 가정이 되는 것보다도 시대적인 변천의 징조를 볼 때에 더 각성을 하고 더 거룩해지는 가정이 되기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의 비밀을 모르고 자녀를 가르치는 부모나 그 비밀을 모르고 방황하는 자녀는 큰 불행이겠지만 이 시대의 비밀을 알아 그 진리에 의하여 자녀를 사상으로 지도하는 부모와 그 교훈을 받아서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성별된 생활을 하는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은 시국이 어려워짐에 따라서 더 거룩하고 성별되게 되므로 더 큰 영적 축복을 받는 동시에 몸에 축복을 받아 새로운 시대의 축복을 받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이제 가정을 지도해 나가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 부모가 승리의 왕권을 받기 위하여 가정에 자녀보다도 교회에 대한 문제를 더 중요시하고 움직일 때에 가정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천 생활에서 체험하는 바입니다.
둘째 : 가정에서 합심 호소하는 시간이 많은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못하는 어린 자녀들까지라도 그 호소를 따라서 할 때에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부모가 자녀를 데리고 호소 성가를 올릴 수 있는 열심이 있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 가정에게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호소 성가를 많이 부를 때에 다같이 기도하는 가정이 되므로 주의 천사가 보호하게 됩니다.
셋째 : 조금도 빚을 지지 말고 적게 소비하는 생활이 되도록 전력을 두어야 합니다. 남의 재물에 대하여 손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에서 움직여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잠잠히 축복하시는 일이 있어서 큰 수입이 없다 하여도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있는 생활의 축복을 주므로 외형으로 볼 때는 가난한 자 같으나 실지는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업을 받들어 보려는 마음에서 단합이 될 때에 그 가정의 축복은 왕권의 축복으로 오게 됩니다. 새 시대의 왕권 축복을 받을 정도의 가정이라면 그 가정의 영원한 축복을 빼앗을 자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끝으로 생각할 것은 이때 까지는 개인 구원인 천당을 목적하고 생활했지만 지금은 가정 단체적인 구원을 목적하고 가정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진리로 모든 식구들이 하나같이 소망을 가지고 각자가 말씀으로 마음의 무장을 가지는 동시에 말씀 안에서 여러가지 난제가 와도 조금도 동요를 받지 않고 나갈 때에 홀연히 큰 기사와 이적을 보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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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집에 왕이 되신 예수님
누가복음 1:26~33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할 때의 목적은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인데, 피조물된 인격으로는 세계 통일의 왕국을 이룰 자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지와 예정이 계신 동시에 그 예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 번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언적으로 이루어지는 야곱의 집에서 왕 노릇하는 다윗 왕국과 열매가 되는 그리스도의 왕국과의 연결성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야곱의 집과 촛대교회와의 연결성
야곱의 집과 촛대교회와의 연결성을 말하자면 과거에 야곱의 집이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고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싸운 것같이 기독교 종말의 촛대교회도 성산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싸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씨라도 축복을 등한시하는 에서는 아무리 사람이 볼 때는 강한 것 같으나 예언적인 왕국을 이루지 못하였고 사람이 볼 때 미약한 사람 같으나 축복을 위하여 싸우는 야곱은 예언적인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어 놓은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금도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강한 세력을 가졌고, 하나님의 성산의 축복을 두고 싸우는 자는 극도로 미약한 상태에 있지만 완전한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믿고 싸우는 자를 하나님께서 도와주고 보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은 언약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일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싸우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2) 야곱의 집의 시련과 촛대교회의 시련
언제나 마귀는 축복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 시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축복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편이요, 축복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의 편이 되기 때문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본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했고, 마귀는 얼마든지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피조물로 창조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으신 것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니 화를 위하여 역사하는 마귀의 역사와 축복을 위하여 역사하는 성도의 역사와 대립을 시켜서 축복을 받기까지 싸우는 집을 야곱의 집이라는 것이다. 과거에 이스라엘의 왕국은 야곱이 축복을 위하여 싸우는 열매로 이루어졌고 영원한 이스라엘의 왕국도 촛대교회가 끝까지 싸우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야곱의 집의 왕권과 촛대교회의 왕권
야곱이 끝까지 싸우므로 예언적인 다윗 왕국의 축복을 받게 되었고 촛대교회가 왕권을 받으므로 세세 왕국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천사가 마리아에게 지시하기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한 것은 육적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영적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이 되는 진리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성령으로 잉태된 몸이므로 왕 될 자격이 있다 (26-31)
첫째 아담이 마귀의 말을 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은 그 피를 받은 사람으로는 그 몸이 썩지 않고 왕이 될 자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그 세력 아래 속했기 때문이다(로마서 6:17). 그러므로 예수님은 잉태할 때에 천사가 나타나서 사람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잉태가 아니고 하나님의 신의 역사로써 이루어지는 것을 말할 때에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면서 야곱의 집에 왕이라고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몸으로 왕 노릇하는 것을 인생의 제일 큰 축복이라고 본다(계시록 20:6). 완전한 몸을 가지신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 되시므로 그를 믿는 자들도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살아서 왕국을 이루는 데는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순종한 자는 부활해서 왕이 되고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짐승'과 '거짓 선지'를 이긴 자는 살아서 변화를 받아 왕이 되는 것이다(계시록 20:4). 우리 사람이라는 것은 타락했지만 야곱과 같이 축복을 믿고 싸워 나가므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2. 큰 자가 되므로 (32)
인류 역사상 제일 크게 된 자는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탄생하여 빈한한 목수의 생활을 거쳐, 피곤한 노방 전도를 거쳐, 쓰라린 심령의 고통을 주는 겟세마네를 거쳐, 쓰라리고 뼈가 저린 십자가의 사형을 거쳐, 캄캄한 무덤을 거쳐, 구름을 타고 올라가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대제사장이 되어 기도하시며 성신을 부어 주시다가 구름을 타고 강림하여 죽도록 충성한 종들을 부활시키고 쓰러지기까지 싸워 나가던 종들을 변화시켜서 영원한 왕국을 조직하여 이루시는 예수님밖에 더 큰 이가 없으니 우리는 그를 믿고 끝까지 싸워 나가므로만이 복 있는 자가 될 것이다.
3. 왕국이 다함이 없음 (33)
세상에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한 때는 강했지만 바람 앞에 등불 같이 꺼지고 만 것이 인류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야곱의 집에 왕국은 영원히 세세토록 왕 노릇하되 지상의 천년 왕국을 거쳐 천국에 들어가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한다(계시록 22:1-5).
이러한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신으로 잉태된 몸이 마귀와 싸우는 생활을 거쳐서 만왕의 왕이 된 것같이 성신을 받은 종들도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싸움을 거쳐 왕국의 반열을 이루게 된다. 가장 복된 자는 왕국의 반열에 들어가는 자라고 보게 된다(계시록 19:9).
결 론
복 되도다. 다윗 왕국이여, 산 깊은 골짜기에서 양을 치던 목자 다윗이 만왕의 왕조가 될 줄 누가 알았으며, 나사렛 골짜기 목수의 가정에서 목수 일을 하던 나사렛 예수가 만왕의 왕이 될 줄 누가 알았으며, 갈릴리 바닷가에 그물 한 채를 씻고 있던 시몬이 세계적인 왕국을 건설하는 운동의 선구자가 될 줄을 누가 알며, 어부의 한 사람으로 베드로의 뒤를 따르던 요한이 지상 왕국을 이루는 마지막 역사의 선구자가 될 줄을 누가 알았으리요, 낙심 말자, 우리의 소망은 여기 있다.
이 왕국 건설 운동은 너무나 크고 영원한 일이 되기 때문에 작은 일에 낙심하는 자나 잠깐인 고난을 참지 못하는 자는 들어갈 수가 없을 것이로되,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잠깐 동안인 고난을 참고 끝까지 싸워 나가는 자에게는 인간이 볼 때에 실패자 같고 망하는 자 같으나 이 왕국 반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너무나 크고도 귀한 일이니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기 위해서는 모략적인 방법으로 까불어 보는 일이 없이는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까불어 보는 때에 인격을 골라내고 수가 찰 때에 일한 대로 갚아 주는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끝까지 참는 자는 그의 반열에 들 것이다.
누가복음 1: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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