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김정일, 김일성보다 종교에 더 적대적

김정일정권을 해부한다(22): 김정일의 종교정책


김일성 사후 10년, 김정일 체제 하에서의 북한의 종교정책은 무엇일까. 지난 12일 모퉁이돌선교회 주최로 ‘김일성 사후 10년과 김정일시대의 북한선교’를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발표내용을 중심으로 김정일의 종교정책을 살펴본다. 


김정일 시대 북한의 종교에 대한 정책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반종교 정책이고, 둘째는 통일전선을 위한 남한 및 해외 종교인들과의 협력강조이며, 셋째는 외형상 드러난 신앙의 자유에 대한 보장 선언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종교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이는 대체로 김일성 시대부터 이어져온 것으로 내용적으로 보면 서로 모순되기도 하는데 이는 종교정책을 체제의 필요에 따라 변화시켜온 결과이며 종교를 보는 유물론적 사관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김정일은 어린 시절 교회에 다닌 경험이 있는 아버지 김일성과는 달리 종교에 대한 체험적 지식이 거의 없다. 김정일은 해방 당시 겨우 네 살이었고 6·25기간과 ‘사회주의건설시기’ 북한에서 종교에 대한 적대적 이해가 팽배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종교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면이 더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50~60년대 북한의 종교에 대한 정책은 김일성이 1962년 사회안전부에 내린 교시에서 잘 드러나 있다.

“종교인들은 모두 착취계급의 대변자로서 거의가 다 우리를 반대하여 왔으며, 우리 공산주의자들을 마귀라고 욕하고 저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종교인들을 함께 데리고 공산주의사회로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 천주교에서 집사 이상의 간부모두와 그 밖의 종교인 중 악질을 재판해서 처단해 버렸습니다...종교인들은 죽여야 버릇을 고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북한당국은 1958년 종교인과 그 가족은 반혁명적 요소로 규정하고 주민성분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약 10만 가구 45만 명의 종교인과 그 가족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기독교의 경우 2,000개의 교회, 900여 명의 목사, 30만 명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1년 김일성은 북한을 방문한 도쿄도지사에게 “북한에는 예배당이 없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북한의 종교정책이 외형상 일관된 반종교정책으로 나타난 것만은 아니다. 북한에서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남북회담과 상호방문이 실시된 것과 때를 맞추어서 조선기독교도연맹, 조선불교도연맹,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등 세 개의 종교단체가 등장했다. 북한내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통일전선’을 형성하려는 의도였다. 이러한 북한의 의도는 1971년 전국시군사회안전부장(경찰서장) 앞에서 한 김일성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철없는 젊은이들이 종교에 물드는 것은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종교의 허위성과 비과학적인 내용을 잘 해설해 주면 (종교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습니다… 적대 계층 출신자들의 경우에는 모두 수용소에 가두도록 하면 됩니다...걱정하지들 말고 머리를 쓰시오.” 

김일성은 1975년 내적비밀교시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 조국 남반부에 수많은 종교인들이 살고 있는데 우리가 종교인들을 다 죽인다고 생각하면 그들도 우리를 반대하는데 합세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중앙에 불필요한 종교조직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은 1980년대 들어와 북한 종교인의 외국방문과 남북고향방문단이 평양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허용했으며(1985)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을 설립하는(1988) 등 외부적 변화를 과시했다. 이즈음 최고재판소 부소장을 역임하던 강영섭이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계기로 목사가 되고 조선기독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받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1990년대와 2000년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김일성 사후 급격히 어려워진 경제문제는 북한의 종교정책에 대한 외형상 변화와 종교단체의 활동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했다. 

특히 남한의 교회들이 대북 경제지원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남북간의 ‘종교교류’ 범위가 넓어졌다.
 북한은 1990년대 초까지 개신교의 KNCC 등 주로 남한의 진보적 단체와 접촉했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남한 개신교의 보수교단과도 교류를 시작했다. 2003년에는 584명의 종교인이 경제지원을 명목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에서의 종교정책의 확립은 주체사상과 그 시기와 맥을 같이해왔다. 주체사상에서는 종교를 “사회적 인간의 지향과 염원을 환상적으로 방영하여 신성시하며 받들어 모시는 초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존대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일성은 사후에도 ‘영생’ ‘불멸’의 구호로 북한 전역에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김정일은 이를 적극활용 체제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김정일은 체제유지를 위해 주체사상을 포기할 수 없으며 이 같은 상황에서 남북’종교’교류나 북한 종교인들의 활동은 제한될 수 밖에 없고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강변하는 도구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통일교와의 긴밀한 관계형성도 김정일체제 하에서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 김일성 사후 당시 박보희 세계일보의 사장은 북한을 방문했고 문선명도 특별보좌관의 조전이라는 형식을 빌려 김정일에게 호의를 보였다. 현재 문선명의 생가인 평북 정주는 관광지로 꾸며지고 있으며 통일교는 자동차·관광사업 등 각종 경제사업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김범수기자  2004-07-17 오전 10:27:00

김정일,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서울=연합뉴스) 정연식 기자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8일 0시 김일성 주석 10주기를 맞아 북한군 고위 간부들을 대동하고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참배했 다고 조선중앙방송이 보도했다. 조명록 총정치국장, 김영춘 총참모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리용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리을설 원수, 백학림ㆍ김익현ㆍ리종산ㆍ김룡연ㆍ장성우ㆍ리하일ㆍ박기서 ㆍ전재선 차수, 그리고 최고사령부 지휘관 등 북한군 고위 간부들이 김 위원장을 수 행했다. 육ㆍ해ㆍ공군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노동당 중앙위원회ㆍ노동당 중앙군사위원 회ㆍ국방위원회 공동 명의의 꽃바구니가 김 주석 동상에 바쳐졌고 김 위원장과 군 간부들은 `경의'를 표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2004/07/08 07:10 송고  

jys@yna.co.kr

번호. 603 애국청년 2004-07-04. 22:58 조회 : 2 

제목 : 석기현 목사 설교 전문!![펌] 
설교제목: 아말렉의 이름을 도말할지니라 
부제목: - 6.25를 상기하면서 - 
본문: 신명기 25장 17~19절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어느 교인 한 분이 우리나라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방문 중에 어떤 청년을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북한이 또 남침하지 않을지 걱정도 안 되세요?”라고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의 대답이 “같은 민족인데 설마 쏘겠어요?”라고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교인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청년이 ‘설마’라고 생각하고 있는 일은 바로 54년 전에 이 한반도에서 실제로 일어났었습니다. 그 비극적인 ‘육이오 사변’은 분명히 ‘불법남침’이었으며, 그 동족 침략 전쟁의 원흉인 북한 공산 정권은 분명히 이 대한민국의 적이었습니다. ‘육이오 사변’은 ‘정전’이 아니라 ‘휴전’으로 끝났으며 그 상태는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북한 공산 정권은 법적으로 따져도 지금도 여전히 이 대한민국의 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대한민국의 전후 세대는 그 ‘육이오 사변’의 뼈아픈 교훈을 급속도로 잊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에 발맞추어서 국내의 좌익분자들은 ‘한 민족’이라는 말을 내세워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이념의 차이를 가리고 있으며, ‘통일’이라는 말을 내세워서 침략자와 피해자를 전혀 구분하지 않고 얼버무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휴전선 너머 북쪽에서 ‘육이오 사변’ 때보다도 더 많은 대포와 총구가 이 남쪽을 향해 겨누고 있는 이 현실 앞에서도 그냥 “같은 민족인데 설마 쏘겠어요?”라고, 자기 혼자 어수룩한 무릉도원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이래도 되겠습니까? ‘육이오 사변’이라는 것을 이런 평화 시대에는 그저 다시는 기억도 하고 싶지 않은 과거로만 덮어 버리면 되는 것입니까? 이 조국의 평화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지나간 전쟁을 두고 누가 침략자니 원수니 하고 굳이 더 이상 따지지 않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이겠습니까? 

적어도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결코 그렇게 잊어 버려서는 아니 될 적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영원한 적이 하나 있다고, 철저하게 ‘주적 개념’을 설정해 주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고 엄명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왜 이스라엘은 아말렉을 영원한 원수로 기억하고 있어야 했습니까? 왜 대한민국은 북한 공산 정권이 저지른 일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며, 왜 우리 기독신자들은 북한의 공산 독재자들을 영원한 적으로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1. 북한 공산 정권은 하나님의 적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5장 17절과 18절 상반절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이란 출애굽기 17장 8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 행군을 하고 있던 중에 아말렉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그 아말렉을 맞서 싸울 때, 바로 모세의 기도하는 손을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받쳐 올려서 내려오지 않게 함으로써 결국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 승리 직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리신 특명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모세 역시 그런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여호와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라는 이름의 단을 그 자리에 쌓고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처럼 아말렉을 당신의 영원한 적이라고 단정하시고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선전포고를 내리셨습니까? 그 이유가 바로 여기 신명기 본문에 기록된 대로 그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한’ 족속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이 이스라엘의 적이라고 말씀해 주시기 이전에 먼저 그 아말렉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적이라고 만천하에 공언하셨던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오늘날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사상 근간에 자리 잡고 있는 유물론 자체가 하나님을 전면 부정합니다. 즉 ‘정신은 물질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절대자의 존재는 물론이고 사람의 영혼의 존재조차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무신론 사상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는 아편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짜 기독교라면 북한 공산 정권이 가만히 둘 리가 없습니다. ‘모든 종교는 백해무익’이라는 것이 그들의 철칙이고, 특히 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반공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육이오 사변’ 도중에 기독교 신자라면 여지없이 다 죽였던 것입니다. 

참된 기독교에 대한 가혹한 박해는 지금도 북한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국에 있는 여러 탈북자 선교 목사나 교회를 통하여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한 탈북자들 중에서 다시 제 발로 입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단 한 가지, 북한의 인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하겠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그렇게 재입북해서 전도하다가 체포되어서 공개 처형을 받는 장면은 그 쪽 지역에 사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아주 흔한 장면이 되어 있습니다. 

원래 공산당원이었던 한 탈북자는, 자기가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그 안에서도 따로 격리 수용되어 있던 한 특수한 수감자들을 목격했었습니다. 그 탈북자는 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한참 나중에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기독교인들은 그 안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고된 용광로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 한 사람도 허리가 바로 펴진 사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수용소 간수들이 그 기독교인 수감자들 중에 몇 명을 땅바닥에 엎드리게 해 놓고 그 위에 쇳물을 부어 태워 죽이는 것을 그 탈북자가 목격했는데, 그 무서운 장면 때문에 자기 자신도 오랫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대표적인 사단의 앞잡이들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남한의 기독단체들이나 목사들 중에서 북한 공산 독재자들을 찾아가서 절이나 하고 소위 ‘조선 기독교 연맹’의 목사들과 교류랍시고 하고 다니고 있는 자들은 도대체 어느 편입니까? 하나님 편입니까, 아니면 무신론자 편입니까? 박해당하고 있는 기독신자들 편입니까, 아니면 공산당의 꼭두각시 편입니까 


2. 북한 공산 정권은 우리 민족의 적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5장 18절 하반절에 「너를 길에서 만나 너희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저질렀던 비겁하고도 악랄한 행위를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이 행군을 하다 보면 자연히 노약자들이나 병자들이 뒤쪽으로 처지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행렬의 후미는 전혀 전투력이 없을 뿐 아니라 가장 취약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말렉은 이스라엘과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아니하고 바로 그런 비전투원들, 그 중에서도 병약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후미를 공격해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이 그처럼 이스라엘의 가장 약한 자들을 괴롭히고 죽였던 그 악독한 행위를 결코 잊지 말라고 모세와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북한 공산 정권으로 인하여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북한 주민들입니다. 이들은 현재 이 지상에게 최악의 독재 정권하에서 실로 비참하기 그지없이 살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 전체가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전혀 없는 사회에서 그저 김정일만을 신처럼 모시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북한에 정치범 수용소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거기 수감된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면서 서서히 죽어가고들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북한이 지금 세계적인 가난뱅이 나라가 되어서 수백 만 명의 주민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에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 사람더러 북한 공민증 얻어 가지고 그 나라에 이민 가서 한번 살아 보라고 말할 것입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실제로 그렇게 북한으로 넘어갔던 한 목사가 있는데, 나중에 북한을 방문한 자기 친구 목사를 평양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친구 손바닥에다가 ‘나 좀 살려줘.’라고 손가락으로 몰래 적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소위 북한 선교한다는 목사들 사이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이 왜 그렇게 못 살면서 또한 독재 정치의 나라가 되어 있습니까? 너무나도 간단한 이유, 공산주의 경제 정책 때문입니다. ‘부자들 것 빼앗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 경제 원리 아닙니까? 자본주의 경제로 부자들이 많이 생긴 나라를 공산화하면 처음 얼마 동안은 이게 좀 통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부자들 다 없애고 나면 그 다음은 빼앗아 낼 사람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고 자연히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가난해지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의 현실인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산주의 사회의 빈부의 차이는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 차이보다 훨씬 더 큽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 사원과 부장급 사원의 월급 차이가 대략 다섯 배 정도 된다고 한다면, 공산주의 사회에서 일반 노동자와 공산당 중간급 간부의 월급 차이는 열 몇 배 차이가 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 노동자와 대통령의 월급들을 공산주의 사회에서 일반 노동자와 김정일 같은 독재자의 수입들과 비교한다면 그 차이라는 것은 이미 비교의 대상도 될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공산주의 사회는 독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처럼 부조리한 경제 구조 하에서 가진 자가 없는 자의 불만을 억누르고 자기 가진 것을 지키려 하자니, 자연히 공산주의 사회는 감시에 감시로 이어지는 구조이며, 제일 위에서 감시하는 독재자의 일인천하와 우상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보름 동안 배급을 못 받게 되자 북한의 어느 한 아주머니가 배급소 앞에서 ‘일제 때보다도 못하다.’하고 울분을 터뜨렸는데, 그 날 밤으로 그 집 일가식구 전체가 어디론지 끌려가 버렸다는 어느 탈북자의 증언이 바로 그런 북한의 현실을 잘 보여 주는 것 아닙니까? 

북한 공산 정권은 지금 우리 동포들 가운데 가장 ‘약한 자’들을 이토록 괴롭히고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 공산 독재자들이 우리의 원수가 아니라는 말입니까? 지금 이런 공산주의자들의 사상을 이 대한민국에 유포시키면서 정권을 잡으려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 편입니까? 민족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공산주의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정치가들은 도대체 어느 쪽에 속한 자들입니까? 지상 최악의 독재와 가난에 고통당하고 있는 북한의 이천 만 동포들의 편입니까, 아니면 바로 자기 민족을 그렇게 굶겨 죽이고 때려 죽이면서 자기 한 몸만 호의호식하고 있는 공산 독재자들 편입니까? 


3. 북한 공산 정부는 세계 평화의 적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5장 19절에 기록하기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안식을 얻게 될 때’에도 특히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 것을 잊지 말라고 엄명하고 계십니다. 이제 약속한 땅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다 평안해질 것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때도 오히려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말렉에 대한 적대감을 잊지 말라고, 아니 아말렉을 완전히 도말하고자 하는 승리 목표를 잊지 말라고 강조하시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아말렉은 완전히 없애 버리지 않으면 두고두고 이스라엘의 ‘안식’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미국이 세계 평화를 제일 위협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반미감정은 아랍 국가들까지 제치고 세계 일위로 일약 급상승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입니까? 진짜 제국주의는 소련이었습니다. 천만 감사하게도 그 공산주의 제국이 망해버리고, 그 결과 미국만 세계 제일의 군사 강대국으로 남게 되니까 그런 소리를 듣게 된 것일까요? 

하지만 소련 공산 제국주의 하에 있던 나라들은 단 한 나라도 예외가 없이 다 독재와 가난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미국의 소위 제국주의를 두고 말하자면, 미국에게 전쟁에 졌던 일본과 독일은 지금 세계에서 둘째, 셋째를 달리는 경제 강대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일본과 독일을 미국의 제국주의에 맞서서 끝내 이겨 내고 소위 주체성을 지켰다고 하는 북한과 베트남이 지금 사는 꼴과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도대체 제국주의를 이렇게 하는 제국이 어디 있습니까? 

‘여중생 사망 사건’을 두고 미국은 한 순간에 대한민국의 우방국에서 대한민국을 점령하고 있는 침략국이란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남침했던 북한 공산군의 소련제 탱크가 이 나라 군인들과 국민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그 일을 두고는 마치 미국을 향해 선전포고마저 불사할 사람들처럼 난리를 쳤습니다. 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군이 우리나라의 꽃다운 여학생 두 명을 치어 죽였는데, SOFA 협정이란 게 뭔지, 우리가 직접 그들을 재판 못하고 미국 저희들끼리 쑥덕쑥덕해서 처리하니까 정말 자존심 상하고 불쾌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정의감이 왜 북한의 도발적인 행위들에 대해서는 전혀 발휘되지 않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여중생 사망 사건 얼마 전에 ‘서해 교전’ 사건이 있었을 때에는, 그 의분들은 도대체 어디 있었습니까? 서해 교전은 우발적인 사고였고, 여중생 사망 사건은 고의적인 사고라서 그랬습니까? 총으로 사람 맞추기가 그렇게 쉽게 ‘우발적’으로 되는 줄 아십니까? 탱크 사방이 자동차처럼 훤히 보이는 유리로 되어서 멀쩡히 보면서도 ‘고의적’으로 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게 아니면 서해 교전은 북한이 사과했고, 여중생 사망 사건은 미국이 사과하지 않아서 그랬습니까? 북한 당국에서 서해 교전을 두고 무슨 ‘유감’이라는 단어 딱 한번 쓰니까 우리 정부는 당장 ‘북한이 사과한 것이나 다름없다.’하고 냉큼 받아 들였습니다. 하지만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주한 미군 사령관이 사과했음은 물론이고 부시 대통령까지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사과했는데도, 끝까지 ‘공개 사과’하지 않았다고 물고 늘어졌습니다. 

우방이 범한 명백한 과실치사를 두고는 그렇게 온 나라가 벌떼처럼 일어나면서도, 적군이 조준해서 쏜 탄환에 우리 청년들이 여섯 명이나 죽었을 때에는 왜 어디 촛불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까? 그 때에는 우리나라에 양초가 없었습니까? 결국은 이라크 국민들을 후세인의 독재로부터 구해 낸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두고는 그렇게 분개하는 사람들이, 민간인 항공기들을 납치하여 민간인들을 수천 명이나 죽였던 9.11 테러 사건을 두고는 도대체 얼마나 분개했었습니까? 

미 여군이 이라크 포로를 벗겨 놓고 사진 몇 장 찍은 것 두고는 천하에 없는 포로 학대라고 규탄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천인공노할 만행에 대해서는 왜 그리 이해심이 많은 것입니까? 미국 싫으면 싫어하십시오. 하지만 미국을 두고 그렇게 분개하고 증오할만한 사람이라면 북한 공산 독재자들을 두고는 그보다는 몇 십 배는 더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지금 원자폭탄 가지고 위협하면서 정치 협상에 나오는 자들입니다. 테러국가에 미사일 팔아 먹으려는 자들입니다. 비전향 장기수를 곱게 돌려보내어 주고 온갖 햇볕 정책으로 다 퍼 먹여 주었는데도, 단 한 명의 납북 어부도 돌려보내지 않는 것은 물론 KAL기 폭파 사건이나 아웅산 테러 사건 등에 대해서 끝까지 오리발만 내미는 자들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되었기에,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를 지켜 주기 위해서 자기네 나라 청년들 수만 명을 희생시킨 미국을 두고는 ‘한미 공조’ 파괴하자고 하면서, 이런 북한 공산 정권과 ‘민족 공조’라는 것을 하겠다는 말입니까? 정말 어느 편입니까? 같은 민족이니까 더욱 온 세계 앞에 창피한 이 북한 공산 테러 정권 편입니까, 아니면 자유 우방의 편입니까? 

성도 여러분, 실제로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도 사사 시대와 왕정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스라엘을 평화를 위협하며 전쟁을 걸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사울 왕 때에 그 아말렉을 완전히 제거해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그 하나님의 ‘완전 도말’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아말렉의 위협은 그 뒤로도 계속 되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하만이라는 아말렉 사람이 유다 민족 전체를 죽이려 하는 위기 상황까지 초래되었던 것입니다. 

북한 공산 정권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승공 멸공의 의지는커녕 반공 정신마저도 잃어버리게 되면, 그 결과는 정말 두려운 것이 될 것입니다. 지금 북한 공산 정권이 남한의 좌파 정치가들과 입을 맞추어 떠들고 있는 평화 통일의 제스처는 ‘육이오 사변’ 직전에도 있었습니다. 지금 미군이 철수하게 됨으로써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더욱 실제화된 상황도 역시 ‘육이오 사변’ 직전에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육이오 사변’ 때에는 남한 사회가 반공 의식이라도 제대로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용공 친공 사상에 점점 더 물들어 가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적을 우리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적의 스파이이든지 아니면 적의 교란작전에 넘어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 대한민국에서 북한 공산 정권을 두고 우리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 둘 중에 어느 한쪽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아말렉이 행한 일을 기억하고 아말렉을 도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이스라엘의 평화와 존망이 걸려 있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공공연히 대적하고, 우리의 불쌍한 북한 동포들의 이토록 괴롭히고 있으며, 또한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이 북한 공산 정권의 독재자들이 행하고 있는 악을 기억하고 이들을 도말함으로써 이 조국에 참된 자유민주통일을 앞당기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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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25년 전부터 정치범 수용소서 생체실험'


북한이 25년 전부터 정치범 수용소에서 독가스를 사용한 생체실험을 해왔다고 일본의 산케이 신문이 북한을 탈출해 서울에 머물고 있는 화학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증언한 사람은 지난 2001년 북한을 탈출해 제 3국을 경유해 한국에 망명한 54살의 정대성씨로 정씨는 북한의 이과계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도 갖고 있다고 산케이 신문은 전했습니다.


정씨는 자신은 25년전인 1979년 화학연구소 책임자로 독물제조에 관여해 정치범 수용소에서 행해진 독가스 생체 실험에 입회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독가스 생체 실험은 가로 2미터 세로 3미터높이 2.5미터 정도의 두 개의 실험실에서 이뤄졌으며 청산가스와 오르토 니트로크로로벤젠 화학제등 2종류를 사용했다고 정씨는 말했습니다.


산케이 신문은 당시 독가스 생체실험에 군수산업부 간부가 입회했었다며 이는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생화학무기를 수출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전했습니다.


산케이 신문에 증언을 한 정씨는 재미 민간단체의 초청을 받아 다음달 미국을 방문해 미 의회 공청회에서도 북한의 생체 실험에 대해 증언할 예정입니다.


2004-03-22-05:35 신춘범 기자

“북한 교회지도자 240명 매월 한주간 금식 기도”


출처 : http://www.futurekorea.co.kr/

이삭 목사 “지하교회 신자 30만 이상”


북한전문 선교기관인 모퉁이돌선교회(대표 이삭 목사)가 지난달 발행한 소식지를 통해 현재 북한에는 최소 240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매월 한 주간을 금식(禁食)하며 기도하고 있다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선교회는 잡지에서 76세의 북한 기독교 신자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해방 이후 북조선에 남아 신앙을 지켜온 성도들이 많이 죽어갔고, 오늘도 죽어가고 있소… 이들을 보며 기도할 책임을 느낀다오. 그래서 매월 셋째 주일을 금식하는 날로 정해 기도하고 있소… 내가 양육한 240명의 지도자들이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소.”


보안상 이름을 밝히지 않은 76세의 이 북한성도는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한 모통이돌선교회 소속 K선교사와의 인터뷰에서 “해방 이후 이(북한) 땅에서 저질러지는 우상숭배와 기독교인들을 처형하는 죄악”을 고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기도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사람을 키우는 일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땅에 50년이 넘게 살면서 신도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다”고 증언했다. 


모퉁이돌선교회 대표 이삭 목사는 현재 북한 내 지하교회의 성도 숫자가 30만~4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대표는 전화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지역의 신자만 3만5,000명에 달하며 신앙을 이유로 수용소에 갇힌 신자가 10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30만~40만 명이라는 숫자는 황해도와 평안남북도를 포함한 북한 전역의 지하교인 숫자를 추측한 것. 


이 목사는 하루에 한 두 끼만 먹고 있는 북한의 일반주민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하루 한끼 금식이라도 하루금식에 해당한다”면서 북한 성도들이 실천하고 있는 금식기도의 절박함을 설명했다.


선교회의 관계자는 “한국에 나와 있는 탈북민들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굶주림이 맺힌 사람들이 금식을 결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1983년 설립된 모통이돌선교회는 성경반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중국과 북한에 성경배달을 해오고 있으며 선교사 교육과 북한으로의 파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모통이돌선교회는 북한주민의 재파견 사업 외에도 선교회 소속 선교사가 1년에 한 두번 직접 북한을 방문, 지하교회 성도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범수기자 2003-11-15 오후 1:02:00

탈북자 주순용씨의 증언




증언자로 참석한 북한의 인민배우 주순용(38)씨의 증언(사진 맨 오른쪽) 김필재기자


탈북자 주순용씨의 증언


지난 18일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CNKR)주최로 서울외신기자클럽에서 ‘베이징 올림픽 참관 보이콧 WOL서명운동’기자회견이 있었다. 이날 증언자로 참석한 북한의 인민배우 주순용(38)씨의 증언내용이다.<편집자주>  


나는 탈북 후 2001년 12월7일 내몽골에서 체포됐으며 2002년 2월 13일 북으로 다시 강제 송환됐다. 그 후 다시금 탈북에 성공하여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됐다. 나는 탈북 후 중국과 몽골 국경에 위치한 감옥에서 함께 탈출한 일행과 수감됐다. 이곳에서 나는 예전에는 상상도 못한 모진 경험을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루 한 끼로 연명했다. 북한에서는 그래도 고위층이었기 때문에 배고픔을 몰랐던 나로서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탈북민의 눈물과 중국 올림픽-북한으로 강제 송환돼 재 탈북한 주순용씨가 

송환당시 중국공안에 의해 자행됐던 인권유린의 실상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승재기자 fotols


어느 날 같은 방을 쓰던 탈북민이 감옥의 천장을 뚫고 탈출을 시도하다 간수에게 들켜 전기봉으로 고문을 받았다. 그 사람은 동물처럼 비명을 저질렀다. 차마 인간의 목소리라고 생각 할 수 없는 동물의 울음소리 같았다. 어느 임산부는 행여 감옥에서 아이를 낳으면 풀려나지나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일부러 아이를 낳는 시늉을 했다. 이를 눈치 챈 간수는 이 여자를 마구 때리고 전기봉으로 몸을 지졌다.


2001년 12월 북송을 앞두고 있을 때 중국공안은 우리를 도와준 조선족들이 누군지 말하라고 협박했다. 당시 50여명의 탈북 민들이 북송 됐으며 중국공안은 우리를 통해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을 알아내려 협박을 하고 때리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우리에게 족쇄를 채웠으며 북송되는 과정에서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빼앗아갔다.


그들에게 돈을 뺐기지 않으려고 자궁에 몰래 숨겼던 2명의 여자는 염증이 생겨 고생을 했다. 그러나 이 두 명의 여자가 돈을 숨긴 사실이 나중에 발각되었고 중국인들은 군견을 풀어 살을 물어뜯게 하고 전자봉으로 고문을 한 뒤 돈을 빼앗아 갔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뭉치로 돈을 삼킨 나머지 위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본적도 있었다.  


2002년 2월 13일 北으로 86명의 탈북자가 강제 송환됐다. 우리의 몰골은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북으로 송환되자마자 국가보위부 간부들에 이끌려 보위부감옥에 다시 수감됐다. 나는 이곳에서 돼지죽인지 개죽인지 알 수 없는 짐승의 사료와 같은 음식을 먹으며 목숨을 연명했다.  


모진 고초를 겪은 후 다시 북한을 탈출하게 된 경위를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북한 보위부 감호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감호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80%가 기독교인이었으며 이들은 늘 주위 동료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나는 이 분들의 기도로 이곳 자유대한민국 땅을 밟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늘 이 자리를 빌어 그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미래한국신문/김필재기자(외교*안보)/spooner1@futurekorea.co.kr




北, 테러지원국에 이어 종교탄압국


미 국무부 보고서(2001년 11월 7일 수요일)


북한,테러지원국에 이어 종교탄압국 명단에 


남북頂上회담 이후에도 북한엔 신앙의 자유란 햇볕이 들어가지 않고 있다


[편집자 注 : 미국 국무부는 지난 10월25일 2001년도 「국제 종교 자유 실태 보고서」를 작성하여 美 의회에 보고했다. 1998년에 만들어진 국제종교자유법에 의거하여 작성된 이 보고서는 북한을 「종교탄압 특별 우려 대상국」 명단에 새로 올렸다. 이 명단에 올라가 있는 종교 탄압 국가는 버마, 중국, 이란, 이라크, 수단, 그리고 탈레반 정권이다. 美 국무부의 리더츠 바우처 대변인은 북한이 이 명단에 올라가게 된 데 대해서 『북한 內 지하 교인들 및 해외 종교단체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체포, 잔인한 대우, 처형에 관한 未확인 보도가 있으며 그런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에서 미국 국무부는 『종교와 양심의 자유는 戰後 국제 인권 기구의 본질적인 권리의 하나가 되었다』고 지적하고 인간의 기본권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타고나는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북한은 1987년 金正日의 지령으로 이뤄진 대한항공 폭파사건(115명 사망)으로 인해 테러 지원국 명단에 올라 있다. 이들 테러 국가들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경제적 제재를 가하게 되어 있다. 국제종교 자유법은 종교탄압 국가 명단에 오른 국가들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가 경제적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 보고서는 남한의 기독교와 정부에 대해서 하나의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기독교 말살 정책을 펴는 북한 정권에 대한 많은 남한內 기독교회와 정부의 침묵과 그런 탄압을 지휘하고 있는 정권 담당자들에 대한 교회와 정부의 무조건적 지원이 갖는 「正義의 실종」과 「인권의식의 실종」이 그것이다. 남한의 일부 목사들은 북한을 방문했을 때 金日成 동상에 참배한다고도 한다. 日帝 때의 神社 참배보다도 더한 反성경적, 反인륜적, 反대한민국적 행태에 대한 경고로서 美 국무부 보고서의 북한 부분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북한의 종교상황 파악 어려워


북한 헌법은 「종교적 신앙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감독한 경우를 제외하고, 조직적인 종교활동을 억제하고 있다. 진정한 종교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보고서에 망라된 기간 중에는 종교적 자유에 대한 상황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 정권은 최근 승인을 받지 않은 종교집단을 단속한 것으로 보이며, 지하 기독교 교회신자를 살해했다는 未확인 보도가 있다. 이밖에도 傳道(전도)를 하는 종교인이나 중국 국경 너머의 외국 선교그룹과 연계된 종교인이 체포되어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는 몇 개의 未확인 보도도 있다.


1980년대 末에는 정부가 金正日의 「자비로운 정책」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종교적 차별정책을 약간 완화했다. 당시에 설립된 정부 후원의 종교그룹은 계속 운영되고 있고, 이 시기에 북한을 방문했던 외국 종교 지도자의 이야기가 이 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다. 2000년 중반에 있었던 남북 頂上회담으로 인해 대한민국과의 접촉은 증가했지만, 종교적 자유에 준 영향은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종교적 자유에 대한 사회적 태도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입수할 수 없었다.


미국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과 외교관계가 없고, 이 나라의 종교적 자유에 대한 정보는 제한되어 있다. 북한 정부는 이 나라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엄격하고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북한은 외국 정부의 대표, 기자 또는 초청을 한 방문객에게 인권상황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10년 이상에 걸쳐 입수한 정보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최근의 인터뷰, 보도 및 기타 자료에서 입수한 정보로 수정했다. 비록 세부적인 면에서는 제한되어 있지만, 이 정보는 오늘날 북한의 종교적 자유가 처해 있는 상황을 어느 정도 설명해 주고 있다.



1. 종교적 인구분포


이 나라의 면적은 4만7000평방 마일이고, 인구는 2100만명 가량이다. 종교 신자의 수는 알 수 없지만, 개신교도 1만명, 불교도 1만명, 가톨릭교도 4000명 가량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밖에도 전통적 종교운동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정부의 후원을 받고 있는 천도교 청우당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제한된 규모로 불교가 재건되어, 古寺刹(고사찰)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을 번역해서 발간하기도 했다.


1980년대 末, 북한 정부는 두 사람의 가톨릭 사람을 로마에 보내서 공부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신부 서품을 받기 전에 귀국했고, 아직 가톨릭교회를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가톨릭 신부가 이 나라에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교황으로부터 평양교구장으로 임명된 서울대주교 鄭鎭奭(정진석) 신부는 1940년대 이 나라에 50명의 신부가 있었으나, 2000년 7월 현재 그들이 아직 살아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다.


1988년 이후 평양에는 평신도의 지도 아래 개신교 교회 두 곳과 신부가 없는 로마 가톨릭교회 한 곳이 문을 열었다. 그 중 한 개신교 교회는 前 북한의 지도자 金日成의 어머니이고, 장로교 집사이기도 했던 강반석을 기념하여 봉헌되었다. 평양에 거주하는 일부 외국인은 이런 교회에서 열리는 한국어 예배에 정례적으로 나가고 있다. 지난 수년간 이 나라를 방문했던 외국인들은 교회활동이 연출된 것이라고 증언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비록 설교에 종교적인 것과 북한 정부를 지지하는 정치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는 해도 그 예배가 진짜였다고 믿고 있다.


정부는 공인된 「가정교회」가 500개 이상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방문자들은 그것을 확인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수백명의 종교인들이 이 나라를 방문했는데, 그 중에는 교황청 대표, 빌리 그래험 목사, 대한민국과 미국 및 기타 나라의 종교계 대표들이 포함되어 있다. 2000년 11월에는 바티칸의 셀레스티노 밀리오레 외무차관을 포함한 교황청 대표단이 이 나라를 방문했다. 이 대표단은 평양의 가톨릭 신도와 북한 가톨릭협회 지도자를 만났다고 보고했다. 외국의 종교 구호단체 역시 이 나라의 식량위기를 돕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다. 한 해외 불교도 단체는 1998년부터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에서 취학 전 아동을 위해 식품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북한에는 300개의 불교사원이 있다. 이 사원은 대부분 문화유적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그 일부에서는 종교활동이 허용되고 있다. 지하 기독교 교회 신도에 관한 未확인 보도도 있다.



2. 종교자유의 상황


법 및 정책의 현황


북한 헌법에는 「종교적 신앙의 자유」가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공식으로 승인된 그룹의 감독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조직된 종교활동을 억제하고 있다. 진정한 종교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은 또 종교는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공공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기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50년에서 1953년까지 계속된 한국전쟁 기간과 그 직후, 북한 정부는 많은 종교인들을 「反혁명분자」로 간주하고 그 대부분을 죽이거나 집단수용소에 감금했다. 이같은 탄압은 1970년대 초 헌법개정으로 「反종교활동의 자유」에 관한 항목이 추가됨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1980년대 末에 이르러 북한 정부는 金正日의 「자비로운 정책」을 강조하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종교적 차별정책을 완화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 정권은 주민을 가족의 배경과 정권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10여 개의 엄격한 기준으로 분류했던 1950년대의 파벌투쟁 이후 도입되었던 제도를 완화하고, 정부의 후원을 받는 몇 개의 종교단체 설립을 허가했다. 이 단체는 외국의 교회단체와 국제원조기구와의 접촉창구 역할을 했다. 이 단체 대표와 만났던 외국인들은 그 중 일부는 진짜 종교인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종교적 도그마나 교리를 모르는 것 같았다고 지적했다. 비록 이 단체는 계속 운영되었고, 외국 종교인의 방문도 증가했지만, 정부는 최근 수년간 認可(인가)를 받지 않은 종교집단을 탄압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도를 하거나, 중국 국경 너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외 선교그룹과 연계된 사람은 체포되어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는 몇 가지 未확인 보도가 있다. 2000년 6월 중순에 있었던 남북頂上회담으로 대한민국 국민과의 접촉은 증가했지만, 그것이 북한의 종교자유에 준 영향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1992년의 헌법개정으로 反종교 선전활동의 자유에 관한 구절이 삭제되었고, 종교적 집회가 허용되었으며, 「종교적 사용을 위한 건물을 건축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었다. 종교교육을 위한 학교도 몇 군데 존재하고 있다. 개신교와 불교 성직자를 훈련시키는 3년제 대학이 있다. 1989년에는 金日成 대학교에 종교연구과정이 설립되었다. 그 졸업생은 통상 외국무역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2000년에는 외국 선교그룹의 후원으로 한 개신교 신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것을 지원하고 있는 최소한 한 명의 관리가 포함된 비판자들은 북한 정부가 외국 종교적 非정부기구(NGO)의 원조자금을 원활하게 받기 위해서 요원들을 훈련시키려고 그 신학교를 열었다고 증언했다.



종교적 자유에 대한 제한


선교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체포되어 투옥이나, 이유 없는 장기구금 등의 엄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중국 북동부 국경지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남한의 종교적 난민구호단체가 정권타도를 포함한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식량위기 때문에 정부는 反정권 활동에 대한 경계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1999년의 로동신문 기사는 「제국주의자와 반동분자」가 이념과 종교를 포함한 문화침투로 내부에서 사회주의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南韓의 법은 북한을 여행하거나 북한인과 접촉하는, 종교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남한 보안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 때문에 북한관리들은 그런 그룹의 의도에 대해서 더욱 의심을 하고 있다.


이 나라 종교인들의 실제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정부의 승인을 받은 종교단체의 구성원들은 차별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사실은 그들은 정부가 동원한 것으로 되어 있다. 부모가 信者이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관료조직의 적어도 중간 수준까지는 승진할 수 있다. 과거에는 그런 부류에 포함된 사람이 광범위한 차별을 받았다. 국경지대의 선교활동과 연계된 지하교회 신도들은 파괴분자로 간주되고 있는 것 같다.



종교자유 탄압


정부는 정권이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된 종교행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반대세력을 가혹하게 다루고 있다. 1999년 4월, 증인들은 1990년대 初 감옥에 수용되었던 사람의 처우에 대해 증언했다. 이 증인들은 종교적 신앙 때문에 억류된 사람들은 다른 수감자보다 더 열악한 대우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전에 수용소 경비원이었던 한 증인은 당국이 『모든 종교는 아편이다』고 교육했기 때문에 신을 믿는 사람은 미친 사람으로 간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여자가 매를 맞고 있는 아이를 위해서 기도를 하다가 경비원에게 들켜 여러 번 발길로 차이고, 며칠 동안이나 그 상처를 돌보아 주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나라는 폐쇄된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확인할 수 없다. 이 나라 밖에 있는 종교 및 인권단체들은 지하교회의 신도들이 종교적 신앙을 이유로 구타당하고, 체포되거나 살해되었다는 수많은 未확인 정보를 제공했다. 한 未확인 보고는 1999년 10월과 2000년 4월 사이에 정부 당국이 10여 명의 기독교 신자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未확인 보고에 의하면, 15세에서 58세에 이르는 일곱 명의 기독교 신자가 2000년 4월에 살해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未확인 보고는 1999년 10월에서 2000년 4월 사이에 23명의 기독교 신자가 살해되었는데, 그 중 일부는 날조된 범죄로 기소되었고, 일부는 처형당하기 전에 고문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한 종교적 非정부단체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한 南韓 목사가 1999년에 400명의 기독교 신자가 살해되었다고 한 주장을 인용했다. 이 보고는 북한 정부가 효과적으로 외국 관측자를 저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새로운 보고에 의하면 북한 정부는 중국 국경지대에서 통제를 강화하고 처벌을 증대하고 있으며,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밀고자에 대해 보상을 늘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남한의 선교사는 기독교 지도자를 찾아내서 체포하기 위해서 (북한 당국이) 「교육회의」를 열고 있다고 주장했다. 종교인이 얼마나 구속되거나 투옥되어 있는지에 대해선 믿을 만한 정보가 없지만, 이 나라에서 종교 때문에 구속된 사람이 있다는 未확인 보도가 있다.



북한이 「종교탄압 특별 우려 대상국」 명단에 오르기까지 국제종교자유법은 북한정권의 목을 조르라고 美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있다


1998년 미국 의회에서 제정한 국제종교자유법에 의하여 국제종교자유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이 위원회는 연례 보고서를 작성하여 대통령과 의회 및 국무부에 제출하고 정책 건의를 한다. 美 국무부에서 매년 발표하는 국제종교자유 연례 보고서는 이 위원회의 보고서를 기초로 삼고 있다. 지난 10월25일에 美 국무부가 발표한 국제종교자유 2001년 보고서는 지난 5월1일에 국제종교자유 위원회(위원장 엘리오트 에이브람즈)가 발표한 보고서에 근거한 것이다. 위원회는 이 5월 보고서에서 작년 6월에 美 국무장관에게 북한을 특별우려 국가(CPC:Countries of Particular Concern)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했었다고 기록했다. 이 위원회는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언론자유와 이동의 자유를 질식시킴으로써 종교 탄압에 대한 정보수집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북한의 행위에 대하여 상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또 작년 10월에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예정이 발표되었을 때, 위원회가 장관 앞으로 서신을 보내 종교 자유 문제를 회담 때 언급하도록 촉구했다고 밝혔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인권 및 노동 담당 차관보 해롤드 고홍주씨를 대표단에 포함시켜 종교자유와 인권문제를 제기토록 했다고 한다. 이 위원회는 작년에도 북한을 라오스 등과 함께 특별우려 국가로 지정토록 건의했으나 美 국무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이번에 부시 행정부는 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특별우려 국가」는 「특별히 심각한 종교자유의 억압행위」가 발생하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지정된다. 「특별한 억압행위」란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인권을 부정하고, 종교자유를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탄압하며, 고문·장기간 구금·실종사태가 자행되고 있는 것」을 뜻한다.


특별우려 국가로 지정되면 국제종교법은 미국 대통령에게 이들 국가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하도록 지침을 제시한다. 美 대통령은 이미 가해지고 있는 제한조치로써도 만만하다고 판단하든지 국제종교법에 따른 건의를 보류하는 방법으로써 이 지침을 실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법이 지정하고 있는 규제조치로서는 미국 정부의 개발 원조 및 군사 원조의 중단, 이들 나라에 대한 수출입 은행의 제한조치, IMF 같은 국제금융기구에 의한 원조를 못 받게 하도록 하는 조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 5월1일자 국제종교자유 위원회 보고서는 북한에 대한 특별우려 국가 지정과 함께 일곱 가지 정책을 부시 행정부에 건의했다. 


1. 북한 정부와 협상할 때 미국 정부는 북한이 정치적·민간적 권리에 대한 국제 헌장을 준수한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도록 강력하게 촉구할 것.


2. 미국 정부는 북한이 즉시 종교자유의 상태를 평가하고 그 진전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반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3. 미국 정부는 장차 북한 측과 평화협정을 맺을 때 종교 자유를 보장하고 종교적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도록 규정하는 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


4. 미국 정부는 북한 정부에 대해서, 북한의 종교자유와 인권의 신장이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제제조치를 완전히 완화하는 전제 조건이란 점을 통보해야 한다. 


5. 미국 정부는 북한 정부에 대해서, 북한에 미국의 외교 공관이 문을 열게 되면 종교자유의 상황을 평가하고 그 진전 과정을 관찰할 수 있게끔 외교관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줄 것과 종교자유에 대한 대화가 최고위층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통보해야 한다.


6. 미국 정부는 종교자유의 문제가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개선시키는 데 있어서 핵심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과 접촉하는 모든 고위 외교 협상 채널을 통해서 통보해야 한다.


7. 미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3각 조정의 일환으로서 북한과의 협상에서 인권과 종교의 자유를 신장시키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이런 국제종교자유 위원회의 건의는 비록 국제종교자유법에 의거하고 있지만 美 대통령이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은 아니다. 클린턴 정부는 북한을 특별우려 국가 명단에 넣도록 하라는 건의를 묵살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올해 이 건의를 수용했다. 북한 정권에 대한 검증과 상호주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로서는 위원회의 여러 건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외교 수단을 적절히 활용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테러지원국 명단과 종교탄압 우려 국가 명단에 다 같이 끼인 데다가 9월11일 자살테러 사태 이후엔 빈 라덴과의 관련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등 포위망에 들어가 목이 졸려 가는 형국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전개에 맞추어 우리 정부와 기독교계 및 불교계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


스룹바벨 선교회 관련문서로



기독교인 86명 비밀 예배보다 “수난”


보위부원 증언....1990년 황해도 안악에서 


1990년 초 북한 황해남도 안악군에서 86명의 지하 기독교인들이 국가안전보위부에 발각돼 일부는 처형되고 나머지는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사건이 있었다고 최근 탈북한 보위부 출신의 이민수(가명)씨가 밝혔다. 보위부내에서 ‘황해도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은 근래 보기 드문 대규모 지하 교회 탄압사건이다. 


이 사건의 전모는 1996년 보위부 내부 비밀강연자료에 상세히 밝혀져 전 보위원들이 참고했으며, 체포에 공로를 세운 보위부 비밀정보원의 육성녹음테이프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당시 보위부에서는 남한의 ‘악질’ 목사들이 성경책을 밀반입 시켜 북한 내부를 끊임없이 파고들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지만 단서를 잡지 못해 혈안이 됐다. 수십년 보위부에서 잔뼈가 굵은 여성보위원이 다리 관절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자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27세의 딸을 정보원으로 끌어들여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는 안악군에서 의심이 가는 지하교인에게 접근해 그에게 전도당하는 것처럼 위장해 침투했다. 교인들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김일성 초상화도 잘 달지 않았다. 


보위원의 딸은 오랜기간 공을 들인 끝에 지하 교인들의 예배장소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교인들은 어두운 지하실에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예배 전에 차례로 자기 소개를 했다. 어디 사는 누구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됐고 등등. 이 이야기를 비밀 보위원은 모두 머릿속에 담았다. 86명의 신상명세를 전부 외울 만큼 그녀의 기억력은 비상했다. 


그녀의 보고로 비밀 교회는 무너졌다. 그녀는 비밀정보원에서 정식 보위부지도원으로 승격됐고 최고훈장인 노력영웅메달까지 받았다. 김정일로부터 금으로 된 명함시계와 컬러TV, 냉동기(냉장고)까지 선물로 받았다. 


이민수씨는 북한 사회가 식량난 등으로 불안해지면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비밀리에 확산되고 있어 국가보위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처벌이 엄중해 질수록 종교 활동도 더욱 은밀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철환기자/nkch@chosun.com 


이 글은 조선일보 NKchosun.com의 "북한 사람 북한 이야기" 가운데서 퍼온글입니다.

탈북자 이순옥씨 증언


- 어머니의 기도는 헛되지 않았다 -


저는 북한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근 50년을 북한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은총으로 96년 아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하느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제가 영문도 모른 채 지하 감옥에서 모진 고문과 사형선고까지 받고 사형집행날 극적으로 사형을 취소한다는 통지와 함께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 졌을 때 수용소 안에서 겪은 북한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저는 김일성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기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유일하게 6,000 여명이 수용된 그 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생산지휘와 모든 재정업무를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작업장들을 이곳저곳 마음대로 갈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를 담당하고 있던 재정부장 교도관이 저를 불러놓고는 단단히 교육을 시켰습니다. 


“너는 오늘부터 매일 어떤 공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공장에는 미친 정신병자 놈들만 모여 있다. 그 미친 정신병자 놈들은 당과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자들이니 너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곳에 가야 된다. 그리고 그 미친 자들하고는 절대 눈 길 한 번 마주치지 말아라. 그렇지 않고 네가 그자들이 믿는 하늘을 믿게 되면 네 목숨은 여기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거기 가서 그 사람들을 보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무리 같지 않았습니다. 1,500도 이상 시뻘겋게 타오르는 용광로의 고열 노동 작업장이었는데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보았을 때, 무슨 짐승의 무리 같기도 하고 외계인 같기도 하고 도무지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에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얼굴은 해골 같고 이빨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키기 다 줄어들어서 120센티 30센티 요렇게 땅에 딱 붙은 난쟁이들만 움직였습니다. 나는 가까이 가서 그들을 보았습니다. 전 너무나 놀랐습니다. 잡혀 올 때는 정상인들이 잡혀 왔는데 거기 와서 하루 열 여섯 시간, 열 여덟 시간씩 먹지도 못하고 그 고열 노동 속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 사람들은 척추가 녹아 내려서 뒷잔등에 혹이 되어 있었고 몸이 다 휘어져서 앞가슴하고 배가 마주 붙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모두 그렇게 육체가 망가져 기형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프레스로 찍어도 한 판에 그렇게 똑 같은 모습으로 찍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일하는 작업장에는 교도관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교도관들은 말로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소가죽 채찍을 윙윙 휘두르고 다니면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의 몸에는 옷이 입혀져 있지 않습니다. 저는 처음에 멀리서 그 사람들을 보았을 때 모두 다 꺼먼 옷을 입고 있는가 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찬찬히 보니 그 사람들은 맨 살가죽에다 앞에 시커먼 고무 앞치마 하나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용광로의 뜨거운 불꽃이 앙상하게 말라붙은 살가죽에 튀고 또 튀어 딱지가 앉고 그 자리에 쇳물이 또 떨어지고, 타버리고 해서 그 사람들의 피부는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었고 마치 짐승의 가죽과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 곳에서 정말 말로 전하기 힘든 너무나 끔찍하고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제가 공장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공장안이 쥐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작업장 한 가운데 수 백 명의 그 죄수 아닌 죄수를 모아놓고 담당 교도관 두 명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미친 듯이 고함을 치며 날 뛰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서 문 옆 한쪽에 비켜 서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정신병자 놈들이라고, 소리 소리지르며 그 사람들을 차고, 때리고 하면서 인간이하의 취급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너희들 가운데서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대열 앞에 나서라. 하늘을 믿지 않고 수령님을 믿겠다고 하면 자유세상으로 내보내서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하면서 그 사람들을 윽박지르며 하늘을 거부하라고 그렇게 채찍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나도 이상했습니다. 수 백 명의 그 사람들은 왜 그런지 아무 대답도 없이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침묵으로 맞섰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서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 되는데 그래야 오늘 누가 맞아죽지 않을 텐데 왜 계속 저렇게 입을 다물고 있나. 저러고 있으면 또 누구를 끌어내다가 밟아 죽일지 모르는데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급하게 생각하며 문 옆에 서서 무서움과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데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은 계속 침묵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때 독이 오른 교도관이 그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닥치는 대로 아무나 여덟 명을 끌어 내다가 땅바닥에 엎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구둣발로 내리밟고 짓이겼습니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고 허리며 팔 다리뼈가 부러졌습니다. 그 사람들은 고통 중에서도 몸을 뒤틀면서, 짓밟힐 때마다 신음소리를 냈는데 그 신음소리가 너무나도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그때, 주님이 누군지,하느님이 누군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이 구둣발로 짓밟혀 뼈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부서져 나가면서 신음소리처럼 애타게 불렀던 것은 바로 주님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당했던 고통의 천만 분의 일도 제대로 여러분에게 전해 줄 수가 없습니다.


미쳐 날 뛰던 교도관 두 명은 “수령님과 당을 믿는 우리가 사는가 아니면 하느님을 믿는 너희가 사는가 보자” 면서 달려 가더니 용광로의 펄펄 끓는 쇳물통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쇳물을 피투성이가 된 그 신자들 위에 부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순식간에 살이 녹고 뼈가 타면서 숯덩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난생 처음으로 내 눈앞에서 사람이 숯덩이로 변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그 충격이 컸던지, 그 곳을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기억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 도무지 눈을 감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정신적 충격으로 눈만 감으면 눈앞에 숯덩이가 된 사람이 어른거려서 도무지 눈을 감을 수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고,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으며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정신이 들어갔다 나갔다 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수령님과 당에 대해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말입니다. 인간은 주님을 꽉 잡아야 된다는 것을 저는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다시,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하늘에 기도했다는 그 하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간절하게 하늘을 찾았습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불에 타 죽으면서까지도 저렇게 거부하지 않고, 저렇게 믿는 하늘이, 진짜로 그 하늘이 어디에 계시다면 나를 좀 살려달라고... 그리고 저렇게 무서운 짓을 하는 저 자들에게 하늘에서 정말 벌을 내려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자나깨나 꿈속에서도 하늘을 찾고 또 찾고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주님께서 그 간절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공개처형이 있었는데 어느 날 누구를 또 공개처형 시키려는지 6천명이나 되는 수용소 사람들을 한 자리에 다 모이게 했습니다. 공개처형 때는 언제나 하늘을 믿는 사람들을 맨 앞 줄에 앉힙니다. 그런데 "하늘을 믿는 자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늘을 믿지 못하게 하라"는 김일성의 특별지시와 규정이 있어서 하늘을 믿는 그 사람들을 앉힐 때에는 무릎사이에 목을 끼우고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게 했습니다. 심지어 죽어서도 하늘을 믿지 못하게 해야 한다면서 죽은 시체도 목을 꺾어 거적에 말아서 어두컴컴한 산골짜기 나무 밑에 파묻게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날도 신자들은 하늘을 조금도 못 보도록 목을 무릎사이에 끼우고 맨 앞줄에 앉아 있었고, 그 뒤쪽으로 다른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를 또 공개처형 하려는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쇠몽둥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찔하여 대답도 할 수가 없었고 일어 설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간수들이 나를 끌어내다 앞에 세웠습니다. 내가 군중들 앞에 섰을 때, 수용소 소장이 나에게 “고마운 수령님과 당의 은덕으로 너는 이 시각에 석방이다”라고 통보를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목을 무릎에다 끼우고 맨 앞줄에 엎드려 있던 신자들이 내가 석방된다는 소리에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분들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 분들은 눈빛으로 간절히 말했습니다. ‘밖에 나가거든 자기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 달라’고.. 지금도 제 가슴에는 그분들의 그 간절한 눈빛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빌고 또 빌은 그 하늘이, 한 번 들어가면 살아 나올 수 없는 그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저를 살려 주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 모자를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북한의 수용소에 갇혀있는 그 신자들의 눈빛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이 시대의 순교자라고 봅니다. 


저의 증언으로 인해 북한 신자들의 인권문제가 150 여개 나라에 나갔고 세계가 떠들었습니다. 유럽의 지식인 100 여명이 프랑스에 모여 북한 신자들의 인권을 위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북한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 탈북자 이순옥 사비나(천주교 신자임)의 증언 중 일부 발췌 -


이 글은 제가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여중생의 집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눈에 띤 가톨릭 성모회지 <성모님의 동산> 2002년 10월호(138호) "함께 계신 하느님" 란을 읽고 충격을 받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확인하신 바가 바로 "적그리스도 정권"인 공산당의 실체입니다. 저런 마귀의 자식들이 "평화공존"을 외칠 때 여러분은 따라가시렵니까? 저들이 옆구리에 성경을 들고 나올 때 여러분은 반가워 그들과 함게 거짓된 공동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와 우리나라 종교는 저들(공산당=러시아, 중국, 북한)의 평화공존 속임수에 박수를 쳐주고 있으며, 저들의 거짓 목사들과 남북공동예배를 드리곤 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속고 있는 것임을 외치는 제단이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멸공진리>의 본 제단입니다. 북방세력 속에 갇힌 가련한 양떼를 구원시키실 것입니다. 바로 우리들을 통해서!


멸공용사가 



이순옥 씨 - 북한 죄수캠프에서의 7년간의 고문

 


이순옥은 북한의 개천교도소의 죄수였다. 그녀는 최근에 자신의 체험을 발간했으며 미국 의회에서 겪은 일을 증언했다. 또한 미국 NBC뉴스에게 자신의 개천에서의 시간들을 말했다. 


저는 평안북도 개천에 있는 정치범교화소에 7년동안 투옥되었습니다. 저는 1987년부터 1993년 1월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투옥시 제 나이는 39이었습니다. 저는 중앙 물자보급소에서 일했으며, 저는 그 곳에서 관리자였으며, 북한에서 우리는 주민들에게 식량과 물자들을 배급했습니다. 북한경제가 침체되고 물자배급 상황이 나쁘다는 이유로 저는 투옥되었습니다.


개천교도소에는 6,000명 이상의 죄수들이 있었습니다. 전부 정치범이었고 그들은 꼭 짐승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 간수들은 죄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인간이 아니다. 너희들은 짐승들이라고 생각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모든 죄수들이 사상적으로 반정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식량부족때문에 비참하게 되었고, 한마디 불평을 중얼거렸을 때에 그들은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간주되었습니다. 7,000명의 죄수들 중 2,000명은 집에 아이들이 있는 주부들이었으며, 죄수생활한 지 한 달만에 그들이 처형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습니다.


저는 5살, 7살의 아이들을 둔 젊은 주부를 보았습니다. 그녀가 교도소에 끌려 왔을 때 “나는 아이들이 있고 남편도 교도소에 있는데 이제 내 아이들은 집에서 굶주릴 것이다”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6,000명의 죄수들이 보는 앞에서 그 여자가 처형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교도소에 있을 때 여성이라고 달리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김정일 독재정권 아래에서, 저는 쇠기둥에 가슴, 배, 다리가 묶여 있었습니다. 총알 3발씩을 가지고 있는 6명의 사형집행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부 18발의 총알을 심장에 쏠 것입니다. 비인간적입니다. 저는 너무나 슬펐고, 우리가 전쟁범죄자들도 아니고, 적도 아닌데, 아이들의 어머니인 젊은 여자를 그렇게 처형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교도소에는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6.25전쟁 이후로 제1의 적은 하나님입니다. 김일성은 하나님을 가장 싫어했습니다. 1956년과 1963년 사이에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투옥되었고, 그들의 가족들은 별도의 교도소에 투옥되었습니다.


개천교도소에서 저는 하나님을 믿게 되어서, 저는 간수들에게 걷어 차이고, 철공소에서 일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일들은 고열 속에서 해야 하기에 제 등골이 오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키는 120-130센치가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동물처럼 취급 당했습니다. 제 등은 축구공처럼 휘게 되었고, 제 심장과 위장사이의 간격이 좁아졌습니다. 제 어깨와 뼈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저는 기이한 동물처럼 보였습니다.


제 어깨 뼈가 너무나 튀어 나와서 저는 머리가 두개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외계인처럼 느껴졌고 이 세상의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바로 짐승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동물처럼, 노예처럼 취급 당했습니다. 10센티 넓이, 1.5미터 길이의 가죽혁대로 맞았습니다. 군화발에 차였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생긴 동물처럼 되었습니다.


저는 교도소생활동안 이 잔악함을 겪었으며, 7년동안 매 끼니로 100그람의 강냉이만 받았습니다. 저는 단 한번도 다른 음식을 먹지 못했습니다. 강냉이과자는 쵸코파이의 크기인 100그람짜리입니다. 그리고 소금물 작은1컵을 주었습니다. 일일 정량을 다 먹지 않는 사람은 50그람으로 줄였습니다.


저는 단지 독재치하의 죄수였습니다. 이러한 독재치하에서는, 우리는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고, 웃지도 못하며, 눈물을 보일 수도 없고,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도 없으며, 우리는 하루에 3번만 화장실에 가도록 강요되었습니다. 저는 총칼의 압박아래서 제 신체적 기능을 유지하면서 그런 엄격한 통제 밑에서 살아 남은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개천교도소의 6,000명의 죄수들 대부분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으며, 그들은 정치범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런 말 한마디를 중얼거렸습니다. “왜 우리가 굶주려야 하는가. 지도자인 김정일이 있다면 왜 우리가 굶주려야 하는가.” 이런 불평 한마디가 우리를 교도소로 집어 넣습니다. 저는 공개처형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이것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지구상의 인간지옥입니다. 


그리고 저는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생화학 무기를 만들어 적이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유로 동물이 아닌 인간을 상대로 실험하는 것에 대해 정말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김정일의 지시였습니다. 그들은 동물 대신에 죄수들에게 테스트했습니다.


저는 불쌍한 희생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생화학 실험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1987년에 투옥되었으며, 1988년부터 석방된 1993년까지 사이에 저는 실험감독관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기대 이상으로 생화학무기의 효과가 나온 것을 즐기고 있었으며 그들은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를 회상하며 저는 아직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다시피 제 얼굴이 이렇게 쪼그라든 것이 저는 정말로 슬픕니다. 제 얼굴은 쪼그라들었고, 제가 할 일을 안했다는 이유로 저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제 얼굴의 왼쪽은 이렇게 기형이 되었으며 본모습으로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이 교도소에는 6,000명의 죄수들이 있었고, 북한에는 전부 20만명의 정치범들이 있습니다. (울기 시작한다) 우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는 정권치하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정치범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이것은 말도 안됩니다.


그렇게 많은 정치범들을 가두고 있는 것은 비정상입니다. 북한에 이렇게 많은 정치범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신다면 고맙겠습니다. 이쪽 편에서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자기의 좋아하는 아이들을 돌보고 옷과 먹을 것을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북한에서의 죄수생활을 회상할 때엔 그 곳에는 2,000명이 넘는 주부들과 임산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정치범들은 3대를 멸하는 법이 있습니다. 


세대를 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를 낙태시키도록 강요받습니다. 그들은 여자들이 임신 8개월이나 9개월이 되었어도 태아를 죽이기 위해 커다란 주사기로 임산부의 자궁에 소금물을 집어 넣었습니다. (운다). 그리고 가끔 산 아이가 태어나면 간수들이 핏덩이의 아이를 발로 차서 죽입니다. (운다). 그리고 저는 갓난 아이가 고통으로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운다). 저는 이러한 비인간적인 지옥을 목격한 것을 이렇게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운다). 저는 86년 10월에 붙잡혔으며, 87년과 88년 5월에 투옥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잊을 수 없읍니다. 간수들은 군화발로 저를 찼으며, 해보지도 못했던 노동을 강요받았습니다. 한번 그들이 우리들 중 50명을 뽑아서 강당에 넣고 그들에게 삶은 배추 조각을 주었고, 그들이 그것을 먹자마자, 그들의 입과 항문에서 피가 쏟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그들이 이렇게 20분 내지 30분만에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저는 마음을 둘 곳이 없었습니다. 이게 생시입니까 악몽입니까. 그 때 저는 비명을 질렀고 강당 밖으로 쫒겨 났습니다. 그것은 생화학실험이었으며, 10,000분의 1이라는 지극히 소량만을 사용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한 인간이 다른 건강한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 있습니까.


1990년, 91년, 92년에 걸쳐 그들은 기독교신자들을 더욱 가혹히 다루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별도의 작업장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때, 30명의 죄수들이 간수들의 군화발에 차여 죽었습니다. 2명의 간수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 주님.”하고 주님을 찾아 울 때, 그들은 끓는 물을 그들에게 부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잿더미로 되었습니다. 북한같은 지옥은 또다시 없습니다. 우리는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가장 열악한 상태인 3등급 영양실조에 달하면, 물이나 빵을 먹으면 곧바로 항문을 통해 배출되어 버립니다. 교도소에는 쥐들이 있는데, 그곳에는 가죽제품들을 만들기에 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쥐를 붙잡으면 그 날은 행운의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쥐를 잡는 것이 발각되면 우리는 별도의 독방에 쳐 넣어집니다. 쥐를 잡으면 우리는 요리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먹었습니다. 


우리가 한조각의 빵과 소금기 있는 물을 마시고 이렇게 1년을 지내면, 인간은 짜든 날것이든 무엇이든지 그 맛 감각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쥐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맛 없이. 저는 머리를 발로 걷어 차여서 종종 두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시력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제 어께는 휘어 있습니다. 어깨 양쪽이 똑바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물고문도 당했습니다. 저는 물 속에서 물을 마셔야만 했습니다. 저는 드러 누어서 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그 때 제 위장이 물로 가득찼을 때 그들은 제 위장을 밟아서 물높이와 제 몸 높이를 같게 하고, 물이 제 입과 항문으로 쏟아져 나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물높이와 제 몸 높이가 같아질 때까지 짓밟았습니다. 


그리고 데 갈비뼈와 등뼈 그리고 제 다리는 정상상태가 아닙니다. 북한에서의 고문으로 인한 육체적 부작용은 아직까지도 굉장합니다. 저는 남한에서 위수술을 받을 수 있었지만 물고문때문에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물고문을 할 때 그들은 특별히 고안된 10리터짜리 주전자를 사용했습니다. 그들이 죄수들의 입에 주전자꼭지를 넣으면 목구멍이 자동으로 열렸습니다. 


그 때 제 얼굴에 이렇게 상처가 생겼습니다. 지금도 여기 그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를 천장에 두 손과 함께 매달고 저를 때렸습니다. 제가 매달렸을 때 제 몸의 무게때문에 수갑을 찼기에 손목에 부상을 입고 살점이 떨어졌습니다. 제 어깨 오른쪽은 덩어리채 튀어나왔고, 뼈가 위로 치솟았습니다. 그리고 이 쪽은 그들이 짓밟았기에 움푹파였습니다. 


그 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고문이었습니다. 저는 제 사무실에서 이유도 모른채 그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제 책임이 아니고 지도자 (김정일)의 책임이었는데도 그들은 주민들에게 식량이 공급되지 않은 것이 제 책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로부터 제 책임이라는 시인을 받기 위해 저를 고문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고문할 동안, 어쩔 때엔 이틀씩, 저는 의식을 잃었고,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 제 등에 상처가 난 것을 보았고, 커다란 파리들, 어쩔 때엔 구더기들이 피묻은 부분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 내 사랑하는 남편이 나의 투옥과 아무 관계가 없는데도 강제노역소로 가야만 했던 것 때문에 제 가슴은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체제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고, 오직 북한에만 존재합니다. 그 때 제 유일한 아들은 김일성대학 대학생이었고, 제 남편은 교장선생님이었습니다. 그들은 강제노역소에서 노동을 해야했으며, 저는 아직도 제가 북한에서 태어난 것과 제 남편이 그러한 상황에서 죽은 것 때문에 마음이 안 좋습니다. 제 아버지는 북한에서 고위직이었고, 제 자신도 대학을 나왔으며 노동당 당원이었고, 그 전에는 아무런 고통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심한 고통을 참을 정도로 제가 강하지 못했던 이유입니다.


교도소에서 그 고통을 겪어야 했으며 그런 상황에서 자유롭게 된 것이 분명 기적입니다. 지금은 완전 180도 달라졌습니다. 바로 지금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느낍니다. 저는 마치 제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낍니다. 당장은 2,300만 북한주민들이 해방될 수 있는 날이 더 가까워진다고 희망합니다.


저는 북한으로부터 신체적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비인간적인 자입니다. 저는 그러한 잔혹함을 겪었고 그것을 세상에 알렸으며, 그래서 김정일은 수백번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 생명이 희생되어도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왜 내가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의 이유입니다.


저는 세상사람들 모두가 북한에서의 그러한 잔혹함을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이 없는 곳--- 오직 북한에서만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그곳에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 중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가족교도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두사람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있었던 곳 같은데서 살아 남은 사람은 제가 유일합니다. 이것은 비밀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들은 미국 의회와 미국 정부, 그리고 UN에서 알아야 하며, 그들은 김정일이 죄수들을 해방시키게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북한주민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저는 이것을 진심으로 요청합니다. 


제가 그곳에 있을 때, 24개의 교도소가 있었습니다. 그 후, 저와, 제 아들, 그리고 강철반, 안혈, 안영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들을 UN을 포함한 세상에 알렸으며, 저는 김정일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지금은 교도소 숫자가 반으로 줄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수들의 숫자 20만여명, 그리고 다른 형태의 죄수들 20만 --- 전체 40만명의 죄수들이 교도소에 있습니다. 지금은 몇명이나 교도소에 갇혀 있으며 몇명이나 죽음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북한은 매년 죄수의 숫자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죄수들이 만드는 제품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북한사람들, 3살짜리 아이들도 죄수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아이가 울다가도 교도소에 보낸다고 하면 울음을 멈춥니다. 그들은 잘못 말하면 언제 붙잡혀 교도소로 보내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의견을 표현하는데에 매우 조심합니다.


저는 고문때문에 제 눈 왼쪽에 상처자국이 있고 제 이빨들은 부러졌습니다. 제 얼굴 왼쪽은 마비되었습니다. 그들이 제 몸을 너무나도 심하게 짓밟아 제 이빨이 부러졌고 제 눈알이 튀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눈알을 다시 집어 넣고 손으로 며칠동안 주물렀습니다. 그리고 눈이 부풀러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 파인 곳을 보십시오. 제가 의식을 차린 후에 발견했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무엇인가로 찔림을 당했음에 틀림없습니다.


원문: http://www.msnbc.com/news/859731.asp?0cb=-113130711


Soon Ok Lee is a former prisoner at Kaechon Prison in North Korea. She recently published her memoirs and testified about her experiences before the U.S. Congress. She also spoke with NBC News about her time at Kaechon. Below is an edited account of that discussion, in her own words. (Editor’s note: Soon’s descriptions are graphic and may not be suitable reading for all.)


I WAS imprisoned for seven years at the political brainwashing camp Kaechon in Pyungbuk province.… I was in prison from 1987 till January 1993. I was imprisoned at the age of 39.


I worked at the chief product supply office, I was the general manager of the product supply office, in North Korea we were supplying food and materials to people. And I was imprisoned because the North Korean economy was in recession and the supply of materials was not in good condition, that’s why I was imprisoned.


In Kaechon Prison, there were more than 6,000 prisoners. All of them were political prisoners, and they were treated just like beasts.


And the guards of the prison told the prisoners, “You are not human beings. You must think that you are beasts; otherwise you will not survive.”


Not all the prisoners were ideologically against the government — they were just miserable because of the lack of food, and when they uttered one word of complaint, they were considered to have a problem ideologically.


Among 7,000 prisoners there were about 2,000 housewives who had children at home, and after one month of my life in prison, I saw them publicly executed.


I was crying out, calling my children’s name. And I saw one young housewife who had children age 5 and 7. I saw she was forced to come to the prison, and she shouted “I have children but I’ve been imprisoned, and my husband was imprisoned, and now the children will starve at home.” And I saw her executed, in public, in front of 6,000 prisoners. 

When I was in prison I was treated with no regard to my motherhood. Under the regime of Kim Jong Il’s dictatorship. I was fastened to an iron pole, fastened at my bosom and stomach and legs.


There were six executioners with three bullets each. They would shoot a total of 18 shots to the heart. That is inhuman. I was so sad, and I was so stunned to see that young woman executed although we are not war prisoners and we are not enemies, but they executed a mother of children, just like that.


In the prison there were many Christians. And since the Korean War — in Korea they call it June 25 War — the No. 1 enemy is God. Kim II Sung hated God most.


Between 1956 and ’63 many Christians were imprisoned, and the rest of their families were imprisoned in another separate prison for families. 


In the Kaechon Prison, I believed in God, and I was kicked by the guards, and I had to work in the ironworks factory.

That type of work is done under a high temperature, and my spine started to shrink. And my height became 120-130 centimeters. And I was treated just like an animal. My back became curved like a soccer ball, and the distance between my heart and stomach narrowed, and my shoulders, the bones stuck out. And I looked like a strange animal. 


I felt like I had two heads because my shoulder bone protruded so much. I felt I had become an alien, not a human being in this world. I was just like a beast. I was treated just like an animal, just like a slave. 


I was beaten with a leather strap 10 centimeters wide and 1.5 meters long. And I was kicked with boots. And I became just like a strange animal in shape. 


I experienced this atrocity during my prisoner’s life, for seven years I got only 100 grams of corn for every meal. I had no other


시스템클럽 2003.3.7 게시판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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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은 무신론 짐승의 세력입니다. 비록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뱀의 사상'입니다.....


일 공산당, 자위대. 천황제 인정 방침


일본 공산당은 자위대와 천황제를 한정적으로 용인하는 당강령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오늘 보도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후와 데쓰조 공산당 의장이 어제 열린 제7회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자위대와 천왕제 인정을 골자로 하는 당강령 개정안을 제시했으며, 이에 따라 당은 오는11월 전당대회에서 정식으로 새 강령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번에 공산당이 마련한 당강령 개정안은 최근 활력을 잃은 일본 공산당의 대중적 기반을 확장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KBS 2003-06-22-13:47 양지우 기자


공산당은 무신론 짐승의 세력입니다. 비록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뱀의 사상'입니다. 뱀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숨어 있다가 날카로운 이빨과 독으로 지나가는 동물들을 잡아먹으려고만 합니다. 거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하지 않습니다. 타 동물의 눈을 속이는 그물을 쳐놓고는 조용기 기다리기만 합니다. 세균도 마찬가지지요. 거미나 벌처럼 스스로 일하며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항상 타 동물 속에 기생하여 그 피와 영양분을 빼앗아 먹고 삽니다.


지구상에서 뱀과 거미와 세균의 특성을 모두 겸한 유일한 집단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공산당입니다. 저들은 모습만 사람이지 그 속은 독사의 사상과 똑습니다. 저들이 간교하고 더럽고 교만한 짐승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를 황무케 했던 일본의 천황우상을 인정한다는 발언은 '공산당'의 근본과 뿌리(마귀)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상기시켜 줍니다.


스룹바벨 선교회가 외치는 '멸공진리'는 이 땅의 정치인들이 이해하는 세상 수준의 멸공이 아닙니다. 멸공은 정치용어가 아니요, 오직 의의 나라를 이루는 진리의 심판 역사(새일)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찾아낸 '무신론'과 '교만의 세력'




교만의 세력, 무신론 짐승정권


♬ 새일성가 21장

 


1. 교만의 세력, 짐승정권의 원류

 

창세기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계시록 12:9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계시록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2. 짐승의 본성과 특징 그리고 즐겨하는 말.

 

시편 10:3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鑑察)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시편 12:4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시편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53: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73:8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9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잠언 5:3~6 "...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계시록 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그러나 성도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 짐승을 이겨야 한다.


계시록 12:9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 새일성가 70장

 


3. 짐승과 이들에게 연합된 자들의 하는 짓.

 

다니엘 3: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고는 육십 규빗이요 광은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도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2 느부갓네살 왕이 보내어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을 자기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신상의 낙성 예식에 참집하게 하매 3 이에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신상의 낙성 예식에 참집하여 느부갓네살의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 4 반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가로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5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6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하매 7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리어 절하니라"


다니엘 5:1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그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2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3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기명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4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22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23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다니엘 6:4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 그런즉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다니엘 8:11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12 범죄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다니엘 8:23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패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엄장(몸가짐,몸짓,태도 등이 장대한 것-Majesty / fierce난폭한,거친)하며 궤휼에 능하며 24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비상하게 패괴(부서뜨리고 무너뜨림)를 행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25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궤휼을 이루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한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깨어지리라"


다니엘 9:26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다니엘 11: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32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궤휼로 타락시킬 것이나..... 36 이 왕이 자기 뜻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쉴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37 그가 모든 것보다 스스로 크다 하고 그 열조의 신들과 여자의 사모하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아무 신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할 것이나 38 그 대신에 세력의 신을 공경할 것이요 또 그 열조가 알지 못하던 신에게 금, 은 보석과 보물을 드려 공경할 것이며 39 그는 이방 신을 힘입어 크게 견고한 산성들을 취할 것이요 무릇 그를 안다 하는 자에게는 영광을 더하여 여러 백성을 다스리게도 하며 그에게서 뇌물을 받고 땅을 나눠주기도 하리라"


다니엘 12: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계시록 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계시록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육이니라"


♬ 새일성가 24장




이들의 하는 짓이 이러하니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고린도전서 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고린도후서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계시록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 이사야 27:1 -


♬ 새일성가 6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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