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선, “목사·십자가는 공포의 대명사”
“목사·십자가는 공포의 대명사”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증언
제4회 북구원 월요기도회가 지난 5일 종로 기독교100주년기념관 4층에서 5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인 가운데 개최됐다.
이날 모임은 김상철 북구원 공동회장(미래한국신문 회장)의 시론 강연,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의 증언, 이수영 북구원 공동회장(새문안교회 목사)의 말씀에 이어 30분 간의 뜨거운 합심기도가 이어졌다.
특히 김성민 대표는 증언에서 북한 초·중학교에서의 반기독교 교육을 소개하고 절박한 탈북과정 중에 갖게 된 신앙과 자유북한방송을 운영하면서 겪는 고초 등 자신의 경험을 생생히 전해 주목을 받았다. 다음은 김 대표의 증언내용 요약.
북한의 인민(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교과과정을 통해 소위 ‘기독교의 악마성’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인민학교 교과서에는 아펜젤러라는 선교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민학교 학생이 사과나무에 손이 꽁꽁 묶여 있고 이마에는 청산(靑酸)으로 ‘도적’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그림이 나오는데 그것은 어린 학생이 배가 고파 미국인 선교사가 소유하고 있는 평양의 과수나무 밑에서 사과를 주워먹다 발각돼 선교사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있는 장면이다.
중학교에 가서는 언더우드 목사의 얘기를 배운다. 언더우드는 평양 근교에서 병원과 교회를 세웠다고 하는데 교회 지하실에서 의사 모자를 쓰고 북한주민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고 있는 그림이 나온다. 그는 주민들의 장기들을 떼내어 미국으로 보내고 있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 어떻게 장기를 떼내고 이것이 돈이 될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다시 한번 미국 선교사와 기독교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던 기억이 있다.
초·중학교 교과과정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운 이러한 교육은 북한주민들의 마음 속 깊이 새겨지게 되고 선교사, 목사, 십자가는 곧 공포의 대명사가 된다. 탈북민들이 대체로 기독교를 불신하고 십자가를 두려워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나 또한 교회와 십자가를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조선족 교회에서, 그리고 죽기 위해 북송되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탈출하는 과정 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영접하게 됐다.
한국에 와서는 연세대와 중앙대 대학원에서 공부도 했고 KTV, EBS, MBC, KBS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으며 작년에는 시인으로 등단도 했다. 백두한라회에서 초대회장을 했고 탈북자동지회에서 사무국장도 지냈다.
하지만 남한사회가 그저 공부하고 출퇴근하면서 노임을 받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든다. 어느날 갑자기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이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으면 방송 PD들은 카메라를 스톱 시키기 시작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27%가 북한을 가장 가까운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고 31%는 체제에 상관없이 통일만 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시청 앞에서 ‘미제미군철수 우리끼리민족통일’의 구호를 걸고 하는 촛불시위 장면을 사진으로 봤을 때 나는 정말 그것이 평양시 김일성 광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집회인 줄 알았다. 북한을 경험한 탈북민으로서 더 이상 살이 떨려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죽더라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자유북한방송을 만들었다.
보도를 본 분들은 방송사 규모가 꽤 큰 줄 아는데 정작 방송국은 책상 두 개에다가 청계천 중고상가에서 산 마이크 두 개와 중고 인터넷 2개 그리고 21만 원짜리 믹서기가 전부이다. 도합 120만 원도 안 들었다. 그런데 그나마 그 방송을 하겠다고 하니까 남북 장관급회담에서는 북측에서는 기조발언으로 탈북자들이 하는 방송 중단하라고 했다. 그것이 김정일의 지시라는 것은 곧 알게 됐다.
어느날 주요 일간지 기자가 꼭 만나야겠다고 해서 가보니 김정일 지시문 몇 개를 보여줬다. 그 중에 하나가 자유북한방송을 하는 자들을 처벌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직접 나서지 말고 3자를 동원해서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총산회라는 단체가 나서 황장엽 선생에게 협박 글을 보내고, 다음에는 북한의 대표적 대남선전 단체인 평양의 ‘한민전’에서 ‘조국을 버리고 간 배신자들을 용서못한다’는 담화문을 냈다. 한국에서는 통일연대라는 단체의 할아버지 할머니 30여 명이 나와 자유북한방송 앞에서 시위를 했다. 나는 시위장소에서 할 말을 잃고 있다 기절해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이러한 안타까움과 혼돈, 거짓 속에서 활동을 계속 해야 하는가. 나는 한동안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구원기도회에 와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내가 열 명을 설득하고 백 명을 설득해서 되는 일이 아니구나. 북한구원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이구나’라는 것이다.
정리/김범수 기자 bumsoo@
김범수기자 2004-07-09 오후 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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