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종교인의 봉사까지 ‘反美’ 연결해 폄하
北, 종교인의 봉사까지 ‘反美’ 연결해 폄하
언더우드家 "한국에서 할일 다해 떠나겠다"…"반미흐름 앞에 쫒겨가는 것" 비난
2004-05-24 17:37:44
북한의 대표적 대남공작 전위대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은 연세대 설립자이자 한국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인 언더우드(Underwood) 일가가 한국을 떠나는 것과 관련 "반미의 흐름 앞에 더는 배겨낼 수 없게 되어 쫒겨가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민전 대변인은 지난 21일 논평을 내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로 나아가는 오늘 이 땅에는 언더우드뿐아니라 그 어떤 외세도 남아있을 자리가 없다"며 "언더우드 4세의 귀환은 그들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발표후 우리 민중의 반미자주기운이 급격히 높아지고 숭미굴종의식이 무너져내린 대세의 흐름 앞에 더는 배겨낼 수 없게 되어 쫒겨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변인은 또 "전 국민은 반미자주화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 올려 미군강점 60년이 되는 2005년을 이 땅에 대한 미국의 강점과 지배를 완전히 끝장내는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입국 119년 만에 한국을 떠난다는 영국 런던 출신의 언더우드 1세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에서 살다 1885년 선교사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광혜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언더우드 1세는 연희전문학교와 새문안교회를 설립하고 한국YMCA를 조직했다.
2세 원한경 박사와 3세 원일한 박사, 4세 원한광 한·미교육위원회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언더우드가는 연희전문학교 교장직과 연세대 재단이사 등을 두루 맡으며 한국의 교육·종교·사회운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다음은 한민전 대변인 논평 전문이다.
미국선교사 언더우드 4세가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두세기전에 이 땅에 기여든 언더우드일가는 이조봉건말기와 일제식민지통치시기, 미군강점하의 전 기간 「자선」과 「박애」의 간판 밑에 교묘한 방법으로 미국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는 한편 교활한 정탐활동으로 미국의 대한반도침략정책을 앞장에서 충실히 집행해왔다.
언더우드일가는 4대에 걸쳐 120년동안이나 선교사의 탈을 쓰고 미국의 한반도침략의 발판을 닦아온 길잡이이고 척후병이며 이 땅에 숭미공미사상을 전파시키고 양키 문화를 퍼뜨려온 주범이다.
언더우드일가의 추악한 행적은 곧 미국의 한반도침략의 역사이며 그들이 대물림하며 우리 민족에게 지은 죄는 결코 용서될 수 없고 역사에 가장 수치스러운 기록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언더우드 4세의 귀환은 그들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발표후 우리 민중의 반미자주기운이 급격히 높아지고 숭미굴종의식이 무너져내린 대세의 흐름 앞에 더는 배겨낼 수 없게 되어 쫒겨가는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로 나아가는 오늘 이 땅에는 언더우드뿐아니라 그 어떤 외세도 남아있을 자리가 없다.
언더우드족속들이 쫒겨가게 된 것처럼 이제는 미강점군도 쫒겨갈 때가 되었다.
각계 애국민중은 가장 낡은 것인 미국의 지배와 침략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만악의 근원인 미군을 하루빨리 철수시키기 위한 투쟁에 한 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한다.
전 국민은 반미자주화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 올려 미군강점 60년이 되는 2005년을 이 땅에 대한 미국의 강점과 지배를 완전히 끝장내는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우리 민중의 확고한 반미의지를 똑바로 보고 언더우드 4세뿐아니라 강점군과 전쟁장비를 걷어가지고 이 땅에서 지체없이 물러가야 할 것이다.
주체 93(2004)년 5월21일
서 울
[신혜식 기자] king@independ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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