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설교 - 대강 기록한 바울의 편지 (에베소서 3:1~9)
대강 기록한 바울의 편지
- 에베소서3:1∼9 -
우리는 성경을 읽을 적에 대강 기록한 책도 있고 빠짐이 없이 기록한 책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이다. 이사야 34:16을 보면 여호와의 책은 하나도 빠진 것이 없다고 말씀했다. 그러나 바울의 편지엔 대강 기록했다고 했으니 여기에 대하여 그 차이점을 분명히 알고 우리는 이 말씀을 증거해야만 될 것이다. 이제 대강 기록한 바울의 편지와 빠짐이 없는 여호와의 책 간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대강 기록한 편지의 목적 (1∼4)
바울 사도가 성경을 보고 "계시의 역사로 깨달아진 것"(서신)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그때에 바울은 율법주의자와 변론하기 위해서 편지를 쓰게 되었다. 왜냐하면 율법주의자들이 바울을 염병 같은 이단이라고 하며 이단 중의 괴수라고 정죄를 하고, 바울이 교회를 세운 곳마다 율법주의자들이 따라가서 파괴 운동을 할 때에 바울은 급하게 대강 기록해서 보낸 것이 그의 서신이다. 이는 율법과 은혜를 잘 구분해서 율법시대에 된 일과 은혜시대에 되는 일은 시대가 다르다는 것을 목적 두고 말할 때에 율법주의자들에게 성도들이 미혹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적하고, 또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성령의 법을 따르는 성도 생활과 생활 도리를 쓰게 되었고, 고통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주님 다시 올적에 받을 상급을 말했던 것이다. 이 때는 대강 기록한 편지로라도 그 당시에 오는 혼란을 이길 수 있는 형편이었다.
2. 기록한 사명적인 한계 (5∼7)
사도 바울은 "내 사명은 십자가 외에는 말하지 않는 것"이라는 한계를 말했다. 십자가의 도 전파가 자기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기독교 종말론을 중심한 편지가 아니고 십자가의 도를 바로 전하는 것을 목적하여 십자가 도를 믿으므로 받는 구원의 확실성과, 구원받은 성도에게 임하는 성신의 역사에 대한 확정적인 것을 자기 신앙생활의 체험에 의하여 글을 썼던 것이며, 모든 성도로 하여금 자기가 받은 십자가의 비밀을 바로 증거하는 사람이 되도록 성신의 역사를 혼선시키지 않고, 생활에 부덕을 끼치지 않기 위한 범위 안에서 이 글을 기록한 것이다.
3. 활동의 범위 (8∼9)
그는 문서 운동을 할 때에 이방을 중심 하여 어떡하든지 이방 사람들에게 풍성한 은혜가 있을 것을 기록하였는데, 이 서신은 금일에 이방 모든 민족들에게도 다 해당되는 글이 되었던 것이다. 바울의 편지 문서 운동이 아니었던들 우리 이방은 사망의 그늘 밑에서 생명의 빛 되는 복음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붓을 들어서 눈물겹게 기록한 책은 오늘 우리 마음속에 산 체험이 되는 복음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확정할 일이다.
이제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대강 기록한 바울 서신으로써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계시록 10:7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외칠 때는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계시를 보았다. 그러므로 요한 사도는 계시록 5:1에 안팎에 기록한 책을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맡아서 떼는 광경을 계시를 보고,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방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가 되는 바울의 서신은 세계 인류에게 빛이 되는 서신이요,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록은 환란과 재앙의 날에 성도들이 읽고 듣고 지켜야 될 예언의 말씀인데, 이 계시록은 사도 바울이 대강 기록하고 남은 것을 모두 전해야 될 말씀인데, 이것은 변화성도들이 전하는 복음이 된다.
그러므로 20세기 말기를 당하여서 붉은 세력이 세계를 침투하고 협상주의 거짓 선지가 교회를 짓밟고 들어오는 이 때에 우리들은 성경을 대강 기록한 바울의 서신으로는 막을 수 없고, 계시록과 선지서를 밝히 빠짐없이 알아서 증거해야만 될 때가 왔다고 본다.
결 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은 구약 때는 언약을 세우는 하나님께 묵시를 받아 빠짐없이 기록했고, 은혜시대에는 사도들이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선지서에서 대강 기록했고, 마지막 환란과 재앙이 올 때는 변화성도들이 하나님의 비밀이 옛날 선지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만 된다고 본다.
에베소서 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4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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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안의 쑥물은 무엇인가?
- 계시록 8:11~12, 예레미야 23:13~17 -
예레미야 23:13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중에 우매함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탁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14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중에도 가증한 일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행악자의 손을 굳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 사람과 다름이 없고 그 거민은 고모라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로서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서 론
하나님께서 맑은 강과 샘이 쑥물이 되는 광경을 보여준 것이니 기독교 종말에 영계를 망치는 쑥물이 큰 별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큰 별은 쑥물을 내어서 기독교를 망칠 종이요, 지도자를 말한 것이다. 구약 성전이 황폐될 때에도 지도자가 쑥물을 먹인 죄값이었고 말세 교회가 맑은 강과 샘물같이 신령하였으나 쑥물이 들어오므로 망쳐질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제 쑥물은 무엇이냐는 것을 말한다.
1. 가증한 일이다 (14)
가증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세상과 타협해서 속화된 일을 말한 것이다. 기독교는 신랑 예수님과 약혼한 처녀와 같은 것이니 만 왕의 왕을 신랑으로 모실 교회가 만 왕의 왕을 대적하고 세속에 물들어 타협하는 것이 가증이라는 것이다. 이 가증은 주님께서 볼 때 밉게 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자로서 제일 미운 물건은 자기와 결혼한 여자가 다른 데로 마음을 두는 일일 것이다. 이런 무리는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회개라는 것은 세상을 끊어 버리는 것이 참된 회개라 하는 것이다.
2. 사악이다 (15)
악도 포악과 사악이 있으니 포악이라는 것은 사람이 보기에 나타나는 악을 말했고 사악이라는 것은 겉은 옳게 보이면서 중심이 악한 바리새인 같은 행동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종교이니 사악이라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쑥물이 될 것이다.
3.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것이다 (16)
하나님의 종은 자기 마음 대로라는 것이 있을 때 자동적으로 쑥물을 내는 것이다. 종이라는 것은 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하겠다는 것 외에는 위법이니 위법은 쑥물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강단에서는 종이 헛된 말로 세상 적인 지식으로 지절거리기를 좋아한다면 그 강단은 쑥물이 되는 것이다.
4.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에게 '평안'이라는 표어가 있다는 말이다 (17)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치 않고 그 말씀을 멸시하는 자에게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것보다도 자기의 주권으로 그 사람을 포섭하는 방침을 쓰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니 아무런 재앙이 오지 못하리라 말하면서 실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일이다.
결 론
하나님은 이러한 쑥물을 먹고도 참된 선지 예레미야를 대적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악인의 머리를 폭풍과 회리바람같이 치겠다고 말씀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할 때 너희들은 완전히 깨달으리라고 말한 것이다. 쑥물을 먹는 자도 멸망이 올 때는 후회막심해 진다는 것이다. 이 쑥물은 멸망에 떨어뜨리려는 마귀의 미혹이니 임시 기분, 감정, 흥분을 주는 것이 쑥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참된 생활을 하는 것은 조금도 말씀에 가감 없이 순종의 걸음을 걷는 데서만 있는 것이니 말씀을 가해도 감해도 그 교훈은 영을 죽이는 쑥물이 되는 것이다.
계시록 8:10 "세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12 네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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Ⅹ. 영원한 무궁세계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에 이 물질계에서 사람을 창조하여 간교한 마귀로 시험을 해보고 그 시험을 완전히 이기는 자는 왕국의 축복을 받고서 무궁세계로 들어오게 하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지 못했더라도 절실히 회개하고 그 영이 버림을 당하지 아니한 자는 영원한 무궁 세계에 들어가되 부활을 해서 들어가게 하신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 중에서도 진리를 위하여 죽은 자는 천년 왕국의 왕권의 영광을 받고 무궁세계로 들어간다. 그밖에 죽은 자들은 천년왕국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마지막 행위 심판 때 부활을 받는데 이때에는 지옥에 갈 자도 부활을 받되 심판의 부활을 받고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생명의 부활을 받게 되어 영원한 무궁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요한복음 5:29). 이때는 행함 따라 보응을 받게 되는데 생명록에 기록된 자는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록에 기록된 자는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면 무궁세계에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 이미 천년 시대에 왕권을 받았던 자는 그대로 무궁세계로 들어간다 (계시록 21:24).
백성된 자는 백성된 자의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된다(계시록 21:26). 죽은 자 가운데도 왕권과 시민권이 있고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가는 자도 왕권과 시민권이 있는 것이니 그 영광을 누리되 왕권의 영광도 영원히 누리는 것이요, 시민권의 영광도 영원히 누리는 것이다.
천년 시대에는 백성된 자의 자손이 번창하였지만 무궁세계에는 자손 번창이 없다. 왜냐 하면 시민권을 받은 자도 왕권을 받은 자도 영체가 되기 때문이다. 천년 시대에는 왕권 받은 자만 영체의 사람이요, 그 백성들은 사람된 몸이니 얼마든지 지금 사는 세상에서 자기네 손으로 집을 짓고 과원을 재배하고 모든 생산을 내며 자녀가 지금과 같이 생육하였지만 무궁세계에는 영체로서 영원히 행함에 따라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되는 일은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분명하게는 알 수 없으나 계시록 21장을 보아서 극도로 화려한 도성에서 영화롭게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둘째 : 영원한 도성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왕권을 받은 자의 영광 아래 모든 사람은 시민권으로 그 영광을 같이 누리되 도성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도성을 받을 만한 종들에게 각각 나누어 있게 된다. 나라와 같은 조직이 이루어지는데 왕권에도 행함 따라 차별이 있고 시민권도 행함에 따라 차별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인격을 이루어 놓은 세상이요, 무궁세계는 이루어진 그 인격대로 계급이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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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고 죽어 천국 갈 소망은 계시록과 예언의 말씀이 열리기 전까지는 기독교 신앙계의 최종 목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제 인봉된 말씀이 열렸으므로 (예수 보혈을 영접하여 중생하는 역사는 물론 계속되어야 하거니와) 다시 회복되고야 말 에덴동산 낙토에 들어갈 소망이 더욱 우선시되는 신앙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땅을 차지하라"는 이 한 가지가 모든 선지자들이 공통으로 받은 묵시의 요지인 것이다. 사도적 사명자로서는 (천국열쇠만 가졌기에) 같은 성경을 보아도 종말론이 보이지 아니하고 구속의 도리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구속 얻은 종들 중에 기독교의 끝을 바로 맺는 사명에로 불리 움 받은 말세 종들에게는 육체에 죽음이 사라진 세계 곧 에덴회복의 도리가 담긴 예언서가 보이며 그 말씀이 꿀같이 달게 되어 있다.
오해하지 말 것은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가자"는 메시지는 결코 천국복음과 대치되는 이단적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 천국은 백보좌 심판 이후에 펼쳐지는 세계로서, 아담이래로 죽었던 모든 자 중 택함 받은 자가 생명의 부활로 들어가는 곳이고, 새 시대(천년왕국)는 아마겟돈 심판과 백보좌 심판 사이에 존재하는 천년간의 지상 안식세계라는 점을 기독교계는 명확히 구분할 것을 권고하는 바이다. 천년왕국에 대해 자신이 없으므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자칭 정통파들이 기독교 안에 많은데, 오히려 이런 애매모호함이 이단에 가까운 것이다. 시작은 그럴 듯해도 끝이 다른게 이단 아닌가? 마지막 열매를 잘못 맺으면 그간 잘했던 것이 무효로 돌아간다는 것은 기독교의 기본원리이다(에스겔 3:20, 18:26, 33:12~13. 마태복음 19:30). 이런 자들의 훗날 대사가 마태복음 7:22, 25:11, 24~25절에 잘 나타나 있다. 비참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구속의 피를 흘려 주심으로 믿는 자가 '천년왕국' 끝에 펼쳐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완성하셨고(4복음서와 편지서), 그 후 당신의 피값으로 성부 오른손의 책을 넘겨받아 사도 요한에게 계시하셨다(계시록과 예언서). 주의할 것은 뒤에 주신 이 책을 꿀같이 먹거나 들어야 '천국'에 앞서 펼쳐지는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종말을 당한 기독교가 순서적으로 바로 알 것은 피로 산 예언서를 청종하므로 들어가는 '천년안식'이 먼저이고,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들어가는 '천국'이 '천년왕국' 이후라는 점이다. 우리 기독교 성도들이 망가진 6천년간의 죄악세계와 신령한 제8천년기인 '천국' 사이에 제7천년기에 해당하는 회복된 지상낙원 '천년왕국'(Millennium)이 존재한다는 점만 명심한다면 종말론에 관한 모든 혼선을 물리칠 수 있다. 6일간 땀흘려 고생하고 제7일날은 안식하라는 율법이 거대한 천년의 틀로 확대되어 제7천년기에는 먹고 웃고 안식하며 할렐루야를 돌려야 함은 당연한 일 아닌가? 베드로후서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 시편 90: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更點) 같을 뿐임이니이다"
요약컨대, 새 언약 청종은 '천국행' 티켓을 확보함이요, 새 일 청종은 '천년왕국행' 티켓을 확보함이다. 혼인예식을 마쳤다면 신혼여행을 다녀와 달콤한 신혼살림을 이루어야 할 것이 아닌가? 다시 예언하여 증거 마치고 공중에서 예수님 만나 혼인잔치를 벌였다면, 짐승이 통치하는 '후 3년 반' 동안 하늘 보좌로 신혼여행을 떠나 처음 보는 하늘 세계 실컷 구경하고 신혼살림 계획 잘 세우고 돌아와 전 주인(마귀)이 쓰던 집 깨끗이 뜯어내고(아마겟돈) 천년간 깨소금 쏟아내며 신혼살림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신랑은 이렇게 하고 나서 본살림(천국)을 차려 영원토록, 영~원토록 함께 살자 하시는데, 신부될 자라는 것이 미련하고 둔하여서 처음 가진 등불과 기름으로 본살림 차릴 생각만 하고 앉아 있으니 이 일을 어찌 해야 하나...? 오직 여분의 기름(신혼집에 불 밝혀 줄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처녀들만이 혼인예식에 참여하여 신랑의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할 것이다. 신랑 뜻을 무시하고 본살림 집으로 마구 쳐들어가려고만 하던 미련한 처녀들은 신혼살림 천년이 끝날 때까지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태복음 25:30) 하신 말씀대로 '옥'으로 쫓겨날 것이다. 하지만 신랑은 본살림(천국)을 차리시는 그날에 그들에게도 '당신의 피'가 발리운 것을 기억하시어 다시금 거두어 주실 것이다(부끄러운 구원).
회사 일로 잠시 외국에 다녀오겠다면서 다음달 8일날 귀국하겠다고 말하고 떠난 남편(예수)이 비서(요한)를 통하여 7일날 귀국할 뜻을 전했다면, 7일날 잡힌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남편을 맞으러 나아가야 제대로 된 아내이다. 비서가 긴급히 전한 계시록을 전에도 자주 보내주던 사랑 쪽지이겠거니 하면서 "내가 남편 사랑하고 남편이 나 사랑하는 거 이미 다 아는 사실인데 뭐..." 이렇게 말하면(계시록 몰라도 구원에 지장 없다는 교만), 결국 미련한 다섯 처녀의 무리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이웃집 공서방(공산당)과 춤바람이 나서 8일이고, 7일이고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미쳐 있는 성도가 꼭 절반이다(W.C.C. 에큐메니칼 세력). 천국 티켓은 천국 갈 보증의 인(印)이니 귀하고 귀하다. 그러나 지금은 확보된 것(영혼구원) 가지고 자랑할 때가 아니다. 잘 생기고 기운 세 보이는 이웃 집 남자에게 눈 돌릴 때는 더더욱 아니다(협상운동). 지금은 오직! 천년왕국 티켓을 얻어내기 위해 이사야 25:6~8절을 소망하며 이사야 55:1~2절같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아멘!
이사야 25: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7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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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으므로 천국 가는 것은 죽었던 영혼이 '중생' 받는 <영혼구원>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중생' 받은 사람이 마귀의 미혹을 이기고 '예언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아담이 빼앗긴 지상축복을 되돌려 받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천년시대>입니다. 천년안식시대가 끝난 후 펼쳐지는 제8천년기의 무궁안식시대를 <천국>이라 합니다.
주 재림기 이전까지는 모든 인간이 예수 안에서 구원을 얻지만 그 육은 썩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실 시기를 사는 60억의 인구 중에는 몸이 썩지 않고 그대로 새 시대 천년왕국으로 살아들어갈 자도 있고(흰 무리), 3일 반만 죽었다가 <1차부활> 시에 일어나 완전 변화된 몸으로 새 시대에서 치리권을 행사할 자들도 있습니다(144,000).
정리하자면, 이 시대의 60억의 인구 중에서는 144,000명과 엄청난 수의 흰 무리가 몸이 썩지 않고 새 시대로 들어가는 자들이요(144,000은 3일 반 죽었다가 첫째 부활로, 흰 무리는 예비처로), 과거 시대의 죽은 자 중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목베임 받은 자(순교자)들만 <1차부활> 시 함께 살아나 왕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살아서 천년안식 세계로 가는 자들은 천년이 차면 자동적으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천국 가자는 <천국복음>의 메시지가 아니라, 천년왕국에 가자는 <영원한 복음>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 점에 유념하여 마귀의 장난과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아야겠습니다.
(문의) 10. 천년 시대가 왜 있는지를 아십니까? (계시록 20:7-9).
(답변)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한 후에 아담에게 축복을 주었지만 아담 하와가 간교한 뱀에게 미혹을 받아 범죄하므로 이 땅은 저주를 받고 창조의 본의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둘째(마지막) 아담 예수로 말미암아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의 본의를 다시 이루어 놓는 것을 천년 왕국이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할 때에 천하에 모든 족속이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누린다는 약속은 천년 왕국으로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모든 선지는 천국을 말하지 않고 전부 지상 축복의 왕국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만일 지상 평화왕국이 없다면 하나님은 참신이라고 볼 수 없게 됩니다. 오늘의 소위 정통 신학자들이 천년 왕국을 부인한다는 것은 모순 중에도 큰 모순이라고 보게 됩니다. 소위 공산당이라는 변론은 과학적인 지상의 평화 왕국을 꿈꾸는 것인데, 기독교의 신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지상 왕국의 의의를 모른다면 공산당의 과학적인 변론 앞에 머리 숙이고 협상하게 될 우려가 없지 않은 것입니다.
모든 성경에 인간 종말을 말할 때에 반종교적인 악한 무신론 정책이 북방에서 내려오는데 중동으로 침투하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으므로 북방은 망하게 되는 동시에 북방과 타협하던 음녀적인 세상도 함께 망한다고 하였고, 그 중에서 사상과 신앙 절개를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던 자들이 남아서 지상 축복을 받게 될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첫째 아담은 말씀을 지키지 않으므로 축복을 빼앗겼지만 인간 종말에 말씀을 지키고 이긴 자들이 지상 축복을 다시 받게 될 것을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이라 합니다. 공의라는 것은 한번 목적을 정했으면 그 목적대로 의롭게 이루고야 마는 것을 하나님의 공의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하나도 지킬 인격이 못되지만 하나님께서 공의의 법칙을 행하는 역사가 있으므로 지상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이사야 9:6-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년 왕국이란 것은 창조의 본의를 이루어 놓는 것이요, 조물주 하나님의 의로 통치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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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온전함을 이룬 자의 사상 (빌립보서 3:10-16)
온전함을 이룬 자의 사상
- 빌립보서 3:10∼16 -
인생이라는 것은 온전함을 이루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아무런 열매 없는 동물에 불과한 것이로되 온전함을 이루게 될 때는 그리스도와 동등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동물은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가질 수 없는 것이로되 사람은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기독교를 박해하고 대적하던 사울이 바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붓을 들어 기독교 성경을 14권이나 썼다는 것은 개인의 생활에도 믿기 전 생활과, 믿은 후 생활이 너무나 차이를 가진 것이니 어찌하여 한 사람이 이렇게 인격을 온전히 이루게 되었느냐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1.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는 생활 (10∼11)
그는 십자가의 도를 반대하는 한 사람이었지만, 다메섹 광야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서 그에게 십자가 도에 대한 확신을 가지도록 하셨으므로 그는 예수와 같이 자기도 만민을 위하여 죽되 예수는 죄를 위하여 죽었지만, 자기는 이 십자가의 도를 만민에게 전하기 위하여 죽는다는 것과, 죽어도 주와 같이 산다는 소망에서 담대히 나설 때에 아시아를 비롯하여 유럽에까지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우리의 사상이라는 것은 희생을 각오한다는 것이 없다면 그 사상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말씀했던 것이다(요한복음 12:25). 하나님은 무소불능의 신이지만, 희생적인 사상이 없는 자에게는 능력을 주지도 않고, 역사도 하지 않기 때문에 희생을 각오하는 사상이 없이는 그 능력을 체험할 수가 없다. 밀알 한 알이 완전한 열매를 맺는 것도 그 자체가 희생이 없고 는 열매가 있을 수 없다(요한복음 12:24). 식물이 완전한 열매를 맺는 것은 희생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같이 사람의 인격이 온전함을 이루는 것도 희생이 없이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2. 돌진의 걸음을 걸어야 된다 (12)
사상이라는 것은 뚜렷한 목적이 없이는 있을 수 없고, 목적을 위하여 돌진의 걸음을 걷지 않는다면 그 목적지를 도착할 수 없음 같이 우리 기독 신자가 그 목적을 땅에 두지 않고 위에서 갚아 주시는 것을 목적했다면, 그것을 얻기까지 전진해 나가는 데는 조금도 다른 곳에 정신을 둘 수 없고, 일구월심에 그 목적 하나만을 이루기 위하여 생각하는 것이나 움직이는 것을 꼭 같이 해야만 될 것이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그 목적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온전함을 주고자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사람을 낼 때에 온전함을 준 것이 아니고, 온전함을 이룰 수 있는 자격을 준 것이다. 동물과 식물을 창조한 목적은 사람을 위하여 지은 것이요, 사람을 창조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하여 창조한 것이니, 사람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주고자 하는 온전을 바라보고 돌진할 때에 무소불능의 신은 그 사람에게 온전함을 이루도록 역사하는 것을 기독교 능력의 역사라 하는 것이다.
천하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땅의 것만을 생각하는 자요, 제일 지혜로운 자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용기 있게 나가는 생활에서 위의 것을 받는 생활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들어 쓰는 것은 온전한 사람을 이루기 위하여 쓰는 것이니 아무리 악한 자의 박해가 있다 하여도 조금도 여기에 눌리지 않고 모든 것을 돌파하고 전진할 때에 악한 자의 박해가 오히려 온전함을 이루는데 요소가 될 것이다.
3. 하나님의 뜻만 생각해야 된다 (13∼14)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수고한 대로 갚아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조물주이신 동시에 사람에게는 갚아 준다는 것 하나를 더 두시고 사람을 상대해서 역사하시되 갚아 주는 일에 목적을 두고 약한 자를 돕기도 하시고,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도 하시는 동시에 잘못된 것을 고쳐 주기도 하시되 은혜는 거져주고 일한 데는 갑절이나 갚아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 사랑의 범위는 사람을 창조한 데서 시작되어 사람을 일한 대로 갚아 주는 천국으로 끝을 맺는 것이니, 그 범위는 무한 광대한 사랑이다. 이 사랑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택한 자를 불러서 역사하게 하는 것을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4. 잘못된 사상을 가진 자를 받지 아니 하심 (15∼16)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사, 그 중심에 하나님이 갚아 주시는 것을 목적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가졌다면 하나님은 오히려 그 사람을 미워하시는 것이다(말라기 2:1∼3).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대 자연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낼 때에 그 목적이 사람에게 법을 주고 그 법을 지키면 더 좋은 것을 주어서 이 물질계 밖에 있는 영원한 도성을 왕권으로 주고자 하는 것인데 이 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목적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그 사상이 맞지 않으므로 오히려 버림을 당하는 것이다.
결 론
온전함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면 이 역사를 믿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본분일 것이다. 그러므로 온전함을 이루는 자의 사상은 온전함을 이루어 주는 하나님의 뜻과 합하는 생활이 있음으로 만이 온전함을 이루는 인격을 가지게 될 것이다.
빌립보서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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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성도의 고난과 기도
성도의 고난과 기도
- 시편 102:1∼28 -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억울한 고난을 당하게 하는 것은 그를 통하여 영원한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한 목적이란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이제 고난 당하는 성도의 기도에 대하여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괴로운 날 내 기도 (1∼11)
성도의 괴로움이라는 것은 극도로 심령의 피곤이 올 때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영적으로 피곤이 오게 하고 원수에게 훼방 거리가 되게 하고 눈물로써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난관을 당하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극도로 심령의 곤핍을 느끼게 될 때 자기 약점을 깨닫게 되고 억울하게 훼방을 받고 괴로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으로 괴로운 날을 통과시키는 것은 더욱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 것과 더욱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심정에서 괴로운 날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2. 영원한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심 (12∼14)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주시는 긍휼과 자비의 은총은 영원한 것으로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괴로운 날에 부르짖는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왕권을 주는 은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영원히 그 종에게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시험이 없이 긍휼을 베푼다는 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택한 자의 원한이 이루어지는 것은 고난의 날을 통과한 후에야 있기 때문이다.
3. 세계 통일의 역사를 하게 된다 (15∼22)
주님께서도 고난의 날을 통과하시므로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 복음의 자체가 되셨고, 사도들도 고난을 통과하므로 세계적인 열방에 전파될 복음을 기록하게 되었고, 말세에도 고난을 통과한 자라야 세계적인 통일의 완전 역사를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고난을 통과한 종에게 세계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왕권을 주기 때문이다.
4.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된다 (23∼28)
고난의 날에 응답을 받는 종을 통하여 영원한 왕권을 받는 동시에 그 자손은 영원히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변화성도를 통하여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영원한 축복을 자손까지 받을 종에게는 누구보다도 시련이 많고 공연히 사람에게 훼방을 받고 멸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가장 복 있는 자는 고난 가운데 기도로 승리한 종의 자손이라고 보게 된다.
사랑하는 여러 사명 동지들이여, 본문 성경을 읽어서 큰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내게 쓰라린 고통을 주시는 것을 원망치 않겠나이다. 내가 아무리 괴롭다 한들 주의 십자가에 비할 수 있사오리까! 할렐루야로 영광을 돌려서 감사할 일은 영원한 왕권과 내 자손의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을 감사할 것뿐이로소이다.
결 론
하나님께선 고난 없이 응답하지 않고, 응답이 없인 긍휼이 없고, 긍휼이 없이는 영원한 축복이 없다. 그러므로 시편 102편은 시련 받는 종이 세계를 통일하는 왕권을 받고 그 자손이 영원히 왕족으로 축복 받을 것을 두고 가르친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시편 102: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2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3 대저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燒滅)하며 내 뼈가 냉과리 같이 탔나이다 4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같이 쇠잔(衰殘)하였사오며 5 나의 탄식 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6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7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8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훼방하며 나를 대하여 미칠듯이 날치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9 나는 재를 양식같이 먹으며 나의 마심에는 눈물을 섞었사오니 10 이는 주의 분과 노를 인함이라 주께서 나를 드셨다가 던지셨나이다 11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13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 14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연휼(憐恤)히 여기나이다 15 이에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16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17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 18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19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20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21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려 하심이라 22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 23 저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시며 내 날을 단촉케 하셨도다 24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년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25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26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27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 28 주의 종들의 자손이 항상 있고 그 후손이 주의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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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응답과 새 시대
- 이사야 41:14∼20 –
하나님께서 언제나 새로운 역사가 올 때는 홀연히 응답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는 목적이 타락한 인생을 위하여 그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이니 언제나 시련 가운데서 어찌할 수 없는 난관을 당하게 하고 거기서 원망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부르짖는 자를 통하여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 말씀이 세상에 기록되어질 때도 시련 가운데 기도하는 종에게 응답이 오면서 묵시의 말씀이 나타났고 그 말씀이 이루어질 때도 시련 가운데 기도하는 종에게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시련 중에서도 낙심치 않고 기도할 때 네 씨가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 동안 압박을 당하다가 내가 그 압박 속에서 그들을 징벌하고 네 자손을 인도하여 가나안 복지에 새로운 왕국을 이루겠다고 언약을 세우셨다. 그 언약이 이루어질 때에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에게 압박을 당하는 자리에서 모세의 간곡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나리어 그 민족을 강권으로 인도하여 가나안 복지에 다윗 왕국을 이루었다.
다윗 왕국 말기에 극도로 부패할 때 시련을 받던 종들이 낙심치 않고 기도할 때에 그들에게 묵시의 말씀이 임하여 기록된 말씀이 구약 말기에도 예언대로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무서운 압박을 받게 되었고 그 압박 속에서 낙심치 않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응답이 나리어 새로운 성전을 짓고 예루살렘을 복구한 것과 같이 인간 종말의 말기에도 시련 가운데 부르짖는 종들에게 응답이 날리어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가르친 것이 오늘 본문이다. 이제 어떤 자에게 응답이 오느냐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말한다.
1. 지렁이 같이 된 야곱에게 강한 역사가 임한다 (14∼16)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종을 강하게 들어 쓸 때는 극도로 미약해지고 멸시를 당하고 인간이 볼 때는 아무런 소망 없는 사람이 되게 하고 그러한 가운데서도 부르짖는 종에게 강한 역사가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영광을 받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쓸 때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인격이 극도로 무가치하게 되는 환경에 떨어뜨리는 것은 사람으로 하나님만 자랑하게 하는 방법이요,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은 만족함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완전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필요가 없게 될 것이요, 그 능력도 하등의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에 신과 같은 인격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지렁이 같이 무능한 인생으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를 받으므로 만이 승리하게 하는 것이 사랑의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원수의 세력은 강하게 하고 인간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그 원수를 당할 수 없게 하신 후에 홀연히 나타나서 당신의 종으로 그 원수를 이기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약한 종을 쓰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므로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겸손과 진실이다.
2. 가련하고 빈핍한 자의 기도를 응답하심 (17)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풍성한 것을 주시므로써 당신의 백성이 극도로 아름답게 사는 것을 원하시는 신이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아무에게나 준다는 것은 공의가 아니므로 언제나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할 때에는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을 시험해 보는 것이니 지상의 축복을 받아서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릴 종의 장막에 가련과 빈핍을 거치게 하는 것은 무한한 축복을 주기 위한 선한 방법이니 아무리 궁핍하고 가련해도 물질에 끌려서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끝까지 자기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자에게 새 땅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말씀을 믿나 믿지 않나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
어느 선지나 다 하나같이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에 가는 사람은 '가난한 자'라고 한 것은 인심이 악화된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는 사람은 악당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억울하게 물질의 손해를 보고 억울하게 사기를 당하게 되는 일도 있게 되므로 시련 가운데 기도할 수밖에 없는 난제가 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게 하는 것은 강한 기도의 힘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우리 나라의 성도들이 남의 나라보다도 경제 시련이 많은 것은 오히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높은 영계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가장 빈핍한 민족이 백의민족(白衣民族)이요, 가장 빈핍한 사람이 기도의 사람이요, 가장 빈핍한 사람이 양심의 사람이다. 우리는 물질에 국한된 인격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인격을 가져야만 될 것이다.
3. 새 땅의 축복 (18∼20)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의 축복은 무조건 주었으므로 그것을 길이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에 대하여 시험을 해 본 것이 마귀의 시험이다. 마지막 아담 예수를 통하여 중생 받은 이스라엘이 새 시대를 축복으로 받는 것은 미리 시련을 통과시키고 시험을 해 본 다음에 주는 축복이니 완전한 왕국이 된다. 만일 지금도 시험을 해보지 않고 준다면 또다시 부패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을 해보고 응답 받는 자로써 이루어지는 새 땅은 에덴 동산보다도 더 완전한 왕국이 된다. 완전이라는 것은 응답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응답은 시련을 통과한 자에게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어 중생을 받은 이스라엘이 되므로가 완전이 아니요 이스라엘이 된 백성으로 시련 가운데 낙심하지 않고 기도 하므로써 응답의 열매가, 즉 새로운 시대를 성도의 나라로 이루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창조를 받은 사람만이 아니요, 인정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루어지는 새 시대니 하늘과 땅과 산천 초목이 다 같이 기뻐할 일이다.
결 론
응답을 받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본문에서 깨달은 자가 조금도 이 본문을 통하여 새로운 힘을 얻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영원히 지렁이 같은 인간이 될 것이로되 이 본문을 통하여 새 힘을 얻고 용기있게 나가는 자라면 새 타작기 같이 강하게 쓰여질 것이다.
이사야 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15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17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18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19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20 무리가 그것을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은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창조한 바인 줄 알며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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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땅 끝에서 붙든 종의 승리
땅 끝에서 붙든 종의 승리
- 이사야 41:8∼13 -
땅 끝이라는 것은 언제나 우리 나라를 뜻했다고 보아야 된다. 주님께서 승천하실 적에 너희는 권능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었다. 그런데 성신의 역사가 임하여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 하나님은 마게도니아로 건너가도록 지시하여 빌립보 교회를 비롯하여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고 로마의 네로 황제의 박해로 모든 사도는 다 순교를 당하고 남은 자는 사도 요한이었다.
요한은 기독교 종말의 변론을 계시로 받아쓸 적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들고 동방 땅 끝인 해 돋는 편에서 나오는 것을 계시로 보고 기록할 때에 이스라엘 중에 종된 자가 14만4천이 인을 맞는 광경을 보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면 오늘 이 본문에 "나의 종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라고 한 것을 보면 이것은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요 기독교 종말에 승리의 이스라엘이 될 종들을 가르쳤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록까지의 성경 전서가 되어 그 책이 외국어로 번역될 때에 서양의 문명을 따라서 되되 루터 종교 개혁을 중심하여 번역되어 어느 누구나 성경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해방 운동이 일어나서 이 말씀을 비롯하여 모든 민족들이 새로운 문명을 가져오게 된 것은 아시아가 아니요 유럽의 지중해를 비롯하여 대서양 바다 해변으로 발전되어 세계적인 문명을 자랑할 수 있는 발전을 보게 되었다. 과학의 발전은 기독교인을 통하여 가져 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아시아보다도 유럽의 과학 발전은 세계를 정복할 강대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얻은 자도 기독교인이고, 그 땅의 이상적인 민주 국가를 개척한 자도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서아시아에서 서쪽으로 발전되어 아메리카에 합중국이라는 나라를 이루어 그곳에서 극동에 복음을 전하는데 큰 승리를 이루게 된 것이니 동양 삼국에 일본도 2∼3백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고 중국도 3∼4백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지만 우리 나라는 기독교 역사가 80년에 이르는 금일에 세계적으로 으뜸이 될만한 교회 확장을 가져 온 것은 동방 땅 끝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져야 될 일이라고 본다.
만일 어떤 종이 이스라엘을 팔레스틴의 유대 족으로 본다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십자가를 무시하는 망령된 말이니 동방 땅 끝의 이스라엘을 우리 나라로 보는 것이 합법적인 진리라고 본다. 이제 동방 땅 끝에서 붙든 종의 승리를 본문을 통하여 말한다.
1. 싫어버리지 아니하심 (8∼9)
이 붙들었다는 뜻은 죄인을 불렀다는 뜻과는 다르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버림을 당할 수도 있다(이사야 65:1∼5). 그러나 붙들었다는 것은 시련 가운데서 인정하고 완전히 쓰려고 붙들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종된 자로서 특별히 뽑아 낸 자라고 보게 된다. 죄인을 부르는 은혜 시기가 아니고 동방 땅 끝의 종을 붙들어 쓸 때는 진노의 날에 원수를 갚는 역사를 하기 위하여 붙들었기 때문에 다시는 버림을 당하지 않는 완전 역사를 하게 될 것을 뜻했다.
십자가의 도는 중생 받은 자가 즉시에 전하는 것이요, 기독교 종말에 승리의 역사라는 것은 은혜시대의 종 중에서 붙들어 완전한 무장을 주어 쓰는 것을 뜻했다. 아무리 원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이 종을 해칠 자는 없다는 것이다. 동방 땅 끝에서 붙든 종은 이사야 40:9과, 27절에 연결되는 말씀이다. 가장 원통하고도 딱한 사정을 만난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붙들어 쓰는 종이다.
2. 참으로 도와주시므로 (10)
아무리 두려운 일이 오고 놀랄 일이 동방 땅 끝에 온다 해도 하나님은 그 종을 굳세게 들어 쓰시는 동시에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가장 두렵고 놀란 일이 앞으로 동방 땅 끝 종에게 올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은 언제나 큰 역사를 일으킬 때에 인간으로서 두려워하고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을 만나게 하고 거기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초인간적인 역사를 하시는 것이다.
모세를 들어 쓸 때도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해서 이스라엘이 두렵고 놀라게 만들었고, 엘리야를 들어 쓸 때도, 아합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이세벨을 들어서 종들을 해치게 만들면서 엘리야를 들어 역사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산 같이 강한 원수가 아시아를 다 집어 먹고 작은 반도의 남쪽 땅 끝에 자리잡은 우리로서 반공 투쟁의 일선에 섰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월남이나 일본 같은 나라는 용공주의 사상이 대대적으로 활동을 하고 미군은 후퇴 작전을 하고 날마다 경제 혼란이 극심한 이 땅에 인심 악화를 수습할 길이 없고, 경제 혼란에 쓰러지는 이 민족을 구출할 길은 막연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 때에, 아무리 하나님이 보호 하사 우리 나라 만세 라는 애국가를 부르면서도 실지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일을 하는 정부가 되며 민족이 되었느냐에 대하여 두렵게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오늘에 동방 땅 끝이 나라에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두렵고 떠는 심정으로 밤을 새워 기도하여야만 될 것이니 이러한 자에게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하는 음성이 하나님께로 오게 될 것이고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하는 음성이 오는 동시에 완전 승리의 역사가 오게 될 것이다.
3. 대적을 멸망시킴 (11∼13)
말세에 하나님이 붙들어 쓰는 종은 대적을 멸망케 하기 위한 목적에서 들어 쓰는 것이니 모세를 들어 애굽을 치듯이, 엘리야를 들어서 바알 선지를 치듯이, 기드온을 들어서 미디안을 치듯이, 하나님께서 기독교 종말에 완전 승리의 역사를 하기 위하여 들어 쓰는 종이니, 그 종을 대적하는 자는 전부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날까지는 수많은 순교자가 피를 흘려서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 뿐이었으나 동방 땅 끝의 종으로 붙들어 쓸 때는 용서없이 멸망시킬 마지막 심판의 변론을 가지고 나오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동방 땅 끝에 종을 붙드는 때는 부활성도의 역사가 아니고 변화성도의 역사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부활성도는 은혜 시대 역사라면 변화성도는 진노의 날에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화성도는 대적을 짓밟고 나가는 역사를 하다가 재림의 주를 영접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노의 날에 주님을 맞이할 남은 종이기 때문이다.
이사야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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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기독교 종말의 변론
기독교 종말의 변론
-이사야 41:1~7-
하나님께서 완전한 변론이 없이 완전한 역사를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니 완전 변론이 어디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본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날까지 기독교 역사라는 것은 성경대로 이루어진 일을 증거하는데는 온 세계 인류가 다 육체는 풀같이 쓰러지지만 그 영을 구원해 준다는 것을 목적한 것이다(베드로전서1:5-9). 모든 사도들은 말세에 나타난 영혼 구원을 목적하고 증거한 것이 기독교 중생의 도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면 다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누가복음 24:44-49).
그러므로 선지서의 변론은 목적이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이요, 야곱이요, 시온이지만 어떠한 자가 되어야 재앙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서 지상에서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목적 두고 가르친 것이다. 어느 선지나 동일하게 영혼 구원을 목적 두고 묵시의 말씀을 받은 것이 아니요, 진노의 재앙이 오는 날에 남은 종, 남은 백성이 지상에 평화 왕국이 올 때에 축복 받을 것을 목적하고 말씀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세계 통일의 나라가 올 것을 가르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리를 이날까지 전한 것은 온 세계 인류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역사이기 때문이다(계시록 5:9). 이제 기독교 종말의 변론에 대해서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세계적인 변론 (1)
하나님께서 이날까지 기독교가 세계에 확장하도록 하는 동시에 과학적인 발전을 가져와서 세계를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한 것은 기독교 종말의 변론을 세계적으로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본다. 만일 기독교가 세계에 확장되지 않았다면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하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이며, 만일 과학이 발전 안 되어서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며 활동할 수가 없게 되었다면 기독교 종말의 변론자가 세계적인 역사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금일에 와서 세계 인류적인 큰 변론의 역사는 반드시 있어야 될 때가 왔다고 본다. 어느 선지나 묵시를 볼 때에 세계적인 인류가 다 들으라고 하는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이사야 1:2, 24:1, 미가 1:2, 요엘 2:1, 오바댜1:1, 하박국 2:2,8, 스바냐 1:2-3, 스가랴 12:3-4을 보면 전부가 세계적인 변론을 목적한 것이다. 이것은 세계 인류적인 심판과 세계 통일의 새로운 시대를 목적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종말의 변론 앞에서는 세계 사람이 다 그 변론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사야 40장은 세례 요한의 증거와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종말의 사명자를 구분하여 말씀하셨고, 41장은 기독교 종말에 변론의 역사가 나오므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목적하고 가르친 말씀이다.
2. 동방에서 대표적인 사람을 일으킨다 (2)
세계 인류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을 하기 위하여 유대 광야에서부터 외치고 세계 인류를 다 통일시켜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동방에서 일으키되 세계 통치권을 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방에서 일어나는 심판 변론의 역사로써 세계를 심판하고 구원하기 때문에 인간 죄악의 정권이 다 그 앞에서 굴복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을 말했다. 하나님께서 이날까지는 세계 열왕을 다 기다리고 참으시면서 용납했지만, 심판의 변론이 동방에서 나올 때부터는 세상의 죄악의 정권을 다 없애버리는 때이므로, 자동적으로 동방 사람 앞에 굴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사야 24:14이나 다 동일한 뜻이라고 보게 된다. 이 동방이라는 것은, 서 아시아를 뜻한 것이 아니고 동 아시아를 뜻한 것이다.
왜냐하면 서 아시아에서 동방이라고 가르치되 이사야 59:19에는 해 돋는 편이라고 했고, 41:25에는 해 돋는 곳이라고 했고, 다니엘11:44에는 동북이라고 했고, 이사야 24:16에는 땅 끝에서부터 노래한다고 했고, 이사야 41:8에는 땅 끝에서부터 종을 붙든다고 했고, 42:10에는 땅 끝에서부터 노래한다고 했고, 43:6에는 내 딸들을 땅 끝에서부터 오게 하라고 했고, 이사야 60장에는 열방의 재물이 동방으로 들어올 것을 가르쳤다(새일성가 75장). 이것을 보면 동방 땅 끝이 즉 대한민국으로 보게 된다.
왜냐하면 극동 아시아에 교회가 남아서 발전하는 것은 남한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 힘 받은 종의 입술을 통하여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월간지로 완전한 변론이 나오게 되는 것은 작은 일이라고 볼 수 없다. 지금 이 일이 작은 일 같으나 앞으로 세계 열방을 깨우칠 진리 운동이 되리라는 것은 너무나 똑똑한 사실이다. 기독교 역사상 많은 신학자의 변론이 있지만 그것은 바울 서신에 의하여 부분적인 변론을 말한 것 뿐이다. 이제 기독교가 새로운 종말의 변론이 나오지 않으면 안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사야 40:9과 같이 높은 산에 올라가서 새 힘을 받되 30절과 같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현저히 받고 있다.
이 뢰 자 목사가 매일 10시간씩 강의하고 남은 시간은 월간지를 쓰게 하고 밤마다 밤을 새워 기도하고 음식은 아무런 영양이 있는 것은 먹지 않고 단지 채소와 한 홉에 불과한 음식으로 하루를 지내면서 사자같이 외친다는 것은 기독교 역사상 없었던 새 힘이라고 보며 얼마든지 기독교 종말의 변론을 입으로 불러서 책자를 쓰고 있는 것도 새로운 역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누구든지 이 변론을 듣지도 않고, 그 책자를 읽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은 멸망 받을 일이라고 본다. 누구든지 가까이 나아와 서로 변론해 보자.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켰느냐 하는 것은 오늘의 이 역사라고 본다.
지금 이 뢰 자 목사의 입에 완전한 변론이 임한 증거는 현재의 서책으로 증명된다. 언제나 대중 앞에서 강단에서 입으로 불러 변론의 서책을 내고 있다. 이 목사는 세상 학적으로 학교에 다닌 일도 없고 고려 신학에 2년밖에는 거친 일이 없다. 순수한 노동자요, 농민이요, 아버지를 잃은 유복자로 세상에 나서 서글픈 곡산이란 대각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에서 자라난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피난민의 한 사람으로 지나는 부산 영도 빈민굴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빈민을 봉사하던 사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해서, 그 종을 통하여 어느 종이나 다 만족한 수도(修道)를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이 일으킨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든지 경솔히 생각지 말고 그 입에서 나타난 아름다운 소식을 자세히 읽어 보라.
3. 자유로운 권세를 준다 (3∼4)
동방에서 일으킨 사람은 어느 곳에나 원수의 나라라도 마음대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그 종 앞에는 누구나 다 떨 수밖에 없는 일이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진노의 날에 원수를 무찌르고 나가서 원수의 손에 사로잡힌 양 떼를 해방시키는 역사를 하기 위한 것이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을 고레스를 통하여 해방을 주듯이 앞으로 동방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바벨론은 완전히 망하게 되고,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는 심판의 다림줄의 변론을 받은 종이니 만큼, 그 말씀대로 권세 있게 들어 쓰기 때문에 모든 인간 세력이 그 앞에서 굴복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멸시받고 천대를 받고, 무시를 당하던 사람에게 묵시를 보여준 것은 종말에 동방 땅 끝 가련하고 빈핍한 백성 중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일으켜 원수를 승리하게 하므로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가르친 것이다. 아무리 우상적인 세력이 합심 단결해서 일어난다 하여도 동방 역사는 반드시 원수를 이기고 새 시대를 이룰 것을 가르쳤다(6∼7).
결 론
하나님께서 마지막의 변론을 할 사람을 동방에서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니 묵시를 보여 줄 적에도 셈의 장막(아시아)에 보여 주었고, 그 묵시의 말씀을 완전히 세계적인 심판의 변론으로 말해서 열왕이 굴복케 하는 것도 셈의 장막에서 나오되 동방 땅 끝이라고 가르친 것이다(새일성가 32장1절).
이사야 41: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辯論)하자 2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3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5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6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담대하라 하고 7 목공은 금장색을 장려하며 마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군을 장려하며 가로되 땜이 잘 된다 하며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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