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설교 -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받는 새 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받는 새 힘
- 이사야 40:12∼31 -
인생의 최고의 가치는 조물주 여호와를 바라보고 새 힘을 받는데 있다는 것을 본문에 말씀했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요, 겸손한 마음으로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당신이 쓸 만한 사람이 되도록 새 힘을 주는 데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위대성을 알아야 한다 (12∼26)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다는 것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자기에게 표준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뚝배기가 토기장이를 자기와 같다고 하는 것이니 우리 사람으로서 완전한 인격을 소유하려면 조물주 하나님의 위대성을 바로 알아듣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린아이가 완전한 장부가 되기 전에 자기를 기르는 부모나 가르치는 선생의 그 인격을 바로 알 수 없고 또는 기술자가 기계를 제작한 사람의 그 기술을 알려면 그 기계의 내용을 아는 자라야 아는 것같이 사람으로서 조물주 하나님의 위대성을 아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광대한 섭리를 알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받은 자 밖에는 조물주의 위대성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지식은 조물주 하나님의 위대성을 아는 데서부터라야 바로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 두뇌로서 하나님을 알아보려는 것은 작은 조갑지로 바닷물을 되려는 것과 마찬가지요, 작은 저울로 산을 달아보려는 사람과 일반이요, 자기 뼘으로 하늘을 재어 보려는 사람과 일반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사야 40:12 이하를 보면 하나님의 위대성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나 말로써 감히 말할 수 없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신이시며, 무소불능의 신이시며, 진실 무위하시고 영원 존재하신 완전무결의 신이라는 것을 신앙 하므로 만이 그의 완전성을 신앙할 수 있는 증거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입장 (27)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입장은 하나님만이 알고 사람은 모르는 사정을 당할 때, 하나님만이 책임지고 해결해 주어야 할 원통한 일을 당할 때, 여기에서 자기가 방법을 취하여 보려고 하지도 말고 "나의 사정을 나보다 더 아시는 하나님이여, 내가 사람에게 원통한 일을 당하였으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지고 해결해 줄 것을 믿나이다" 하는 신앙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종에게 이런 일을 당하도록 모략적인 방법으로 까불어 보는 것은 당신의 사람을 더 완전한 영계로 올려놓기 위한 방법이다. 어느 종이든지 딱한 사정과 원통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인정해 줄만큼 여호와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3. 하나님의 완전한 형체가 사람에게 새 힘으로 온다 (28∼29)
하나님은 뼈와 살이 있는 실체를 가진 것보다도 영이신 동시에 얼마든지 사람을 완전케 할 힘을 가진 것이니 우리는 그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보다도 또는 만진다는 것보다도 그 신의 완전한 새 힘이 오는 것을 받는 자로서 하나님의 완전성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무능한 지렁이 같은 몸이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새 힘이 오므로만이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몸으로서 남은 종이 될 수 있다. 이 새 힘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변화성도에게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될 자에게는 여러 가지 시련을 주어서 시련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새 힘을 받으므로 만이 완전한 역사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4.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일 (30∼3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한 것이 아니고 완전하게 될 수 있는 사람을 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가 중생을 받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을 말했고, 은사를 받는다는 것은 그 영계가 발전해서 올라가는 것을 목적했고, 새 힘을 받는다는 것은 그 몸이 완전해지는 것을 뜻한 것이다.
중생도, 은사도, 새 힘도, 받은 자 밖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자가 없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사람의 정신 작용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적 활동 아래에서 영적으로 중생을 받고, 영적으로 은사를 받고, 영적으로 오는 영체(靈體)를 받으므로만이 종말에 변화성도의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는 이유는 진노의 날에 역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적이니 은혜시대의 종으로서는 모든 육체가 풀같이 쓰러지는 때이므로 새 힘이라는 것을 무엇인지 체험할 수 없으나,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는 대표적인 사람이 먼저 새 힘을 받으므로써 심판의 다림줄의 변론을 바로 증거하게 되고 바로 증거하게 되므로만이 일반이 다 같이 새 힘을 받고 남은 종이 될 것을 이사야 41장에 가르친 것이다.
이사야 40: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13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주었느뇨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16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위하여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 궁핍하여 이런 것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썩지 않는 나무를 택하고 공교한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웠고 겨우 뿌리웠고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의 부심을 받고 말라 회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草芥) 같도다 25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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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할 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할 일
- 이사야 40:9∼11 -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비밀의 진리를 말한다.
이날까지 기독교에서 전한 비밀은 누구든지 십자가의 보혈을 믿으므로 죄를 사한다는 비밀이다.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 일을 하던 예수 한 분이 죽으므로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죄가 사하여지고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이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시민권을 받는다는 비밀도 인간의 지혜로써는 알 자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이사야 40:1∼5까지의 예언이 자기에게 응하였다고 하면서 외치는 증거를 오히려 유대인들은 반대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사렛 목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증거하기 때문이었다(요한복음 1:19∼34).
이제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시온이 되고 예루살렘이 된 교회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할 때는 어느 때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1. 강한 자로 임하실 때다 (9∼10상반절)
하나님께서 어린 양 예수의 보혈을 통하여 죄인을 부를 때는 잠잠히 계셨고 모든 종들을 들어 쓸 때 아무리 핍박이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는 일이 있다고 해도 때가 올 때까지 잠잠히 계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아들을 보내서 죽기까지 순종케 한 하나님의 사랑이 세계에 알려지는 때이니 만큼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를 보시고 모든 죄인을 부르시는 역사이므로 아들을 보내서 털 깎는 자 앞의 소리 없는 양같이 아무런 입을 열지 않고 죄인들에게 악행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그 무리를 위하여 이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요 하는 기도로 죄인을 용서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둘째 : 무조건 용서해 주라는 해방 운동이니 이 해방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한 분이 죽기까지 순종했으므로 이루어지는 해방이다. 이 해방은 단체적인 해방이 아니고 개인 개인의 영혼이 해방을 받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방 세력이 억압을 하고 압박을 해도 그 사람의 영혼을 죄에서 해방해주면 아버지의 뜻은 다 이룬 것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영적 해방이 아니고 시온의 자녀를 압박하고 죽이고 쫓아내던 그 세력을 모두 지상에서 없애버리는 역사이다. 이를 행하러 오시는 주님은 강한 자로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째서 "아름다운 소식"이 되느냐면 시온을 통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날까지는 영혼 구원을 목적한 운동이므로 악한 세상이 악한 자의 정권 아래에서 아름답지 못한 더럽고도 누추한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강한 자로 오시는 주님은 아름답지 못한 정치나 종교나 또는 어떠한 단체든지 침략의 정신을 가지고 남을 해 코자 하는 마음에서 자기의 복리를 도모하는 자나,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한 아름다운 시대를 목적하지 않고 현실주의로 흐르는 사람들을 다 없애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지므로 만이 아름다운 시대가 온다는 것을 정확히 가르친 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란 것이다.
2. 친히 그 팔로 다스리는 일이다 (10중반절)
이날까지는 이 세상을 악한 자에게 맡겨서 다스리게 했으므로 의인이 악인에게 억압을 당하고 진리가 비 진리에게 피해를 당하고 거룩한 단체가 속화된 단체에게 축출을 받고 거짓된 사람들이 정직한 사람을 모함해서 죽이는 일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친히 팔로 다스릴 때는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를, 정직한 자가 거짓된 자를, 거룩한 단체가 속화된 단체를, 진리의 역사가 이단적인 세력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시온이라도 하나님과 의합된 시온만이 남아서 아름다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은) 각 사람의 인격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목적하고 잠잠히 역사하지만 친히 팔로 다스릴 때는 잠잠히 개인에게 역사해서 아름답게 할 때에 아름다워진 자라야 아름다운 시대의 왕권을 받고 시민권을 받게 되는 것인데, 하나님의 종이라도 아름다워진 자라야 남은 자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 중에서도 아름다워진 자가 새 시대에 들어가는 것을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이다.
3. 상급과 보응이 있음 (10하반절)
이날까지의 거룩하고 지혜롭고 정직하고 사랑의 심정을 가진 자들이 억울하게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한 것은 상급을 주기 위한 목적이요 아무리 악한 자라도 권세를 그냥 주어서 역사하게 한 것은 원수를 갚아주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왜냐하면 악한 자가 강하게 일어나도 정직하게 나가고 담대히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자가 왕권을 받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악한 자들은 자기네가 영원히 주권을 쥐고 지상을 지배할 것 같았으나 보응의 날에는 악하고 강한 세력은 모두 없이하고 아무리 미약해도 아름다운 소식의 말씀을 겸손히 받는 자만 말씀에 의하여 보호하고 그 밖의 세력은 다 없애는 것을 하나님의 종말의 역사라는 것이다.
4. 택한 자를 안아주고 인도하는 일 (11)
지금 하나님께서 - 택한 자가 악자에게 억울함을 당하고 멸시를 받기를 애굽이 이스라엘을 압박할 때에 잠잠히 있듯이 때가 찰 때까지는 - 당신의 백성을 안아주고 인도해주는 일이 없는 것같이 쓴 잔을 맛보게 하고 고통 중에 부르짖어도 큰 역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과연 안아주고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한 목적이다.
이날까지의 인도라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죄를 범하는 사람을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인도이지만 여기의 인도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재앙을 받고 환란 중에 쓰러져 죽는 날이라도 당신의 '시온'은 안아주고 인도하는 것은 환란과 재앙을 받지 않고 아름답게 보호하고 아름답게 인도해서 아름다운 소식의 요지를 간단히 말한 것이요, 40:30 이하와 이사야 전체는 아름다운 소식을 구체적으로 말씀한 것이니 동방 역사가 이사야 41장같이 일어나서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을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이다.
결 론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가 높은 산에 올라간다는 것은 성산을 가르친 것이니 이 성산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소식의 말씀이 임한 산을 말한다. 이사야 25:6에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연회를 베푼다"고 하였고, 7절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라고 하였고, 10절에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난다"고 했으니 말세에 맑은 포도주와 같은 아름다운 소식이 나타난 산이라고 보게 된다.
앞으로 기독교는 개 포도주를 먹고 취하는 자가 이사야 28:7과 같이 있고, 맑은 포도주를 먹고 심령 소성을 받은 자가 이사야 55:1∼3같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가 높은 산에 오른다는 것은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므로써 완전히 이 소식을 전하게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사야 40:3에 광야라고 말씀한 그대로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쳤다면 기독교 종말에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한 것도 실제 높은 산으로 보아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월간지를 발행하는 이뢰자 목사는 새일수도원이 자리잡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굴속에 자리 잡고 기도하다가 새 힘을 받고, 입에 말씀을 받아서, 얼마든지 각종 서적이 그 입에서 말하는 대로 받아 쓰면 성경을 보지 않고도 환하여지는 진리가 햇빛같이 나타나서 새일수도원의 학과인 성경해석법, 요한1서 강의, 선지서 강의, 계시록 강의, 인간론, 새일성가집, 또는 말씀의 칼과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가 달마다 70페이지를 발간하여 금번 11월 호를 발행케 된다. 누구든지 이 책을 읽어보면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일의 대표자가 누구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사야 40: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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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하늘과 땅의 의의
하늘과 땅의 의의
- 창세기 1:6∼13 -
우리 인생은 하늘과 땅의 의의를 바로 아는 데서부터 참된 지식을 소유할 수 있다. 동방에 소위 문학이라는 것에는 '천지는 작부모' 라는 문귀가 있다. 이것은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미라는 말이니 이것이 문학의 근본이라면 이 문학으로는 옳은 발전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소위 역사의 근본을 천황씨, 지황씨, 인황씨라는 것으로 삼았다는 것은 그 근본조차 바로 찾지 못한 역사이다. 완전한 문학을 가져오는 하늘과 땅의 의의를 아는 데서부터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1. 하늘의 의의 (6∼8)
하늘이라는 것은 궁창을 뜻한 것인데 궁창은 창조할 때 물을 갈라서 놓기 위하여 창조한 것이다. 창세 전에는 전부 물 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한 것뿐이고 이 물체라는 것은 전부가 많은 물 속에 잠겨 물만이 가득한 것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들어 물을 몰아내어 궁창 위로 나가게하고 궁창 아래에 물이 없는 세계를 이루어 놓은 것이다.
예를 든다면 큰 그릇을 물 속에 넣으면 그릇 안에는 물이 없는 세계가 있듯이 궁창 안에 들어온 별 세계는 궁창이 물을 막아주므로 물이 없는 공간을 보존하고 있다. 이렇게 한 것은 궁창 안에 우주 세계를 두어 여기에서 역사를 시작하여 궁창 밖의 천국의 세계로 사람을 인도하여 영원한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니 궁창은 천국과 지옥 세계와 인간과의 어간에 있는 한계를 막고 있는 궁창이다.
그런데 이 하늘을 아버지라고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또는 궁창 안에 사는 사람이 궁창 밖의 일을 모르고 소위 유물론 공산당이란 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인공 위성을 타고 지구를 돌면서 망원경을 쓰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천국을 보지 못했다는 망령된 소리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볼 때에는 예를 든다면 세계 인류가 사는 큰 그릇 안에 벌레들이 오물거리듯이 살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말씀했다(이사야 40:15, 22). 다시 말한다면 큰 천막을 치고 그 속에 공장을 시설한 것과 같다. 세계 인류가 사는 생활은 하나님이 볼 때에 한 공장으로 보는 것같이 되어 있다. 사람이 만든 공장은 고장이 나도 하나님이 만든 우주 공장은 쉬지 않고 돌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하늘의 의의를 바로 알므로 천국을 바로 알 수 있고 인간을 바로 알 수 있다. 인간이 우주 공장에서 활동하는 모든 것은 천국을 위한 건설이라고 본다. 이곳에서 인격을 바로 이루는 자라면 천국에 가서 큰 자가 되는 것이 공장 안에서 바로 만들어진 기계가 공장 밖에 나가 가치가 있듯이 우주 공장 안에서 바로 이루어진 인격이 궁창 밖의 세계에 나가서 영원히 가치가 있는 인격으로 왕권을 누리게 된다(계시록 21:1∼2, 22:1∼5).
2. 땅의 의의 (9∼13)
궁창을 지어서 궁창 아래에 물이 없는 공간을 내시고 적게 남은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바다가 되게 하고 흙을 한 곳으로 모아 지구성을 이루어서 지구에서 자동적으로 열매있는 각종 식물을 내게 한 것은 그 열매로 말미암아 천국을 이루는 활동에 필수품이 되게 했다. 만일 금일에 지구에서 맺어주는 열매가 없다면 궁창 밖에 아무런 것도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한 것은 이 땅에서 사는 생활에 먹고 입고 사는 생활을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천부께서 더하여 주신다는 것은 궁창 밖의 나라를 위하여 바로 일하는 자에게 땅에서 열매를 많이 맺게 축복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 위에서 날마다 그날 그날의 수고를 영광으로 알고 일해 나가는 것이 가장 족한 생활이라고 말씀했다(마태복음 6:33∼34).
하나님께서 우주 안에 모든 별 세계가 움직이는 것은 지구 위에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징조, 사시, 일자, 연한으로 규정되어 움직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를 싸고 생명을 주는 공기는 움직이고 있고 그 공기 안에서 사람에게 활동할 수 있는 작용을 하고 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이 입히시고 공중의 나는 새도 하나님이 먹이신다고 말씀한 것이다.
천하에 제일 큰 일은 천국으로 사람을 인도하기 위하여 전도하는 일이라고 부탁하면서 주님은 승천하셨다(사도행전 1:8∼9). 올라가신 주께서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이 천국 건설 운동을 하게 하기 위하여 성신의 역사를 부어 주시되 20세기에 도달하도록 계속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오늘에 과학이 극도로 발전하게 한 것은 지상에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니 지구에서 되어지는 모든 열매는 천국을 위한 활동 기간이 되는 것 뿐이다. 아무리 유물론 사상이 과학 발전을 하나님같이 알고 있다 하여도 필경은 하나님 모략 안에서 이용을 당하는 것뿐이다. 악자의 활동이나 의인의 활동이나 다 천국을 위한 활동이 되고 만다.
결 론
인생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의 의의를 바로 알고 움직일 때에 그야말로 복된 생활이요, 이것을 모르고 산다면 그야말로 가련한 생활이다. 오히려 동물은 하늘과 땅의 의의를 따라서 움직이고 있지만 사람이 바로 살지 못하므로 동물보다도 더 화가 크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만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뿐이니 심판과는 하등 관계가 없고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사람이니 하나님의 심판에 해당되는 것이다.
창세기 1: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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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기도 생활에 있어야 될 원칙
기도 생활에 있어야 될 원칙
- 마태복음 7:1∼14 –
기도 생활에 있어서 원칙을 떠날 때에 그 기도는 아무런 열매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진리의 하나님께 상달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도를 받으시기를 원하시고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기도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3가지 원칙을 본문을 통하여 말한다.
1. 마음의 원칙 (1-6)
마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문이요, 제단의 위치라고 본다. 기도의 사람이 마음에 죄가 있다면 도저히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마음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라고 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죄를 숨기고 남의 잘못을 판단한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과 상대가 될 수가 없을 것이로되, 먼저 자기의 마음 가운데 숨은 죄를 회개하면서 형제를 대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상대 할 수 있는 마음의 위치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도의 사람의 마음은 항상 자기 마음 속에 숨어 있는 들보와 같은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만을 바라보는 마음의 터가 확정되어야 되는 것이다. 금일에 많은 사람이 기도를 하지만 기도의 열매가 나타난 일이 적은 것은 그 마음과 하나님과에 가까이 부딪쳐지는 위치에 있지 못한 원인이라고 보게 된다. 항상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되 "은밀히 보시는 마음의 숨은 죄"를 하나님께 항상 통회하는 애통이 있는 마음에 여호와의 신은 응답의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2. 생활의 원칙 (7-12)
기도는 실천의 생활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중심에 원함이 있다 하여도 실천이 없는 생활이라면 기도는 응답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구하라, 문을 두드리라, 찾으라 하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 두드리고 찾는 목적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고 남을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움직이는 활동이 있어야 된다. 예를 든다면 나무 가지가 진액을 받아서 열매를 맺는 것은 사람을 대접하는 열매가 되듯이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은 하나님이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일에 완전한 열매를 구해야만 될 것이다.
어떤 종이 기도 할 때에 자기의 만족이나 영광을 목적했다면 그 사람은 있던 것도 다 빼앗기게 될 것 이로되, 마음에 어떠하든지 형제를 살리는 열매를 구하는 종이라면 생각 밖에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란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택한 자에게 무엇을 주실 적에는 직접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고 모든 종들을 통하여 주시는 것이니 과거의 선지자들이 기도하다가 묵시의 글을 쓰게 된 것은 억울한 사람에게 압박을 받고 배척을 받는 자리에서 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뜻밖에 홀연히 묵시의 글이 나타나서 그 글을 기록하게 된 것이니 이 글로 말미암아 많은 생명이 참된 진리를 찾게 되었고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을 생각할 때에 남을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종에게 묵시를 보여 주기도 하시고 또한 그 말씀대로 역사하는 종들이 신약 시대에 예수님을 비롯하여 사도들을 통하여 모든 성도가 하나같이 그들이 기록한 진리를 받으므로 하나같이 큰 구원의 축복을 받고 하나같이 새로운 시대에 왕권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왕국 반열이 이루어질 것은 어떤 사람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축복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본문에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했던 것이다.
3. 노선의 원칙 (13-14)
우리의 신앙 노선에는 언제나 넓은 길과 좁은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넓은 길이라는 것은 세속화된 노선이요, 좁은 길은 성별된 생활에서의 순교적인 노선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세속화된 노선은 다수가 가는 것이요, 순교적인 노선에는 언제나 적은 수가 가는 것이니 주님께서 "너희가 내 제자가 되려면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고 했고 "부모나 형제나 처자를 나보다 더 사랑해도 내게 합당치 않다"는 것은 좁은 길을 뜻한 것이다.
언제나 많은 사람이 기도하지만 기도의 응답을 받고 승리의 생활을 하는 자는 구약 때나 신약 때나 심히 소수의 사람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그러므로 좁은 길, 좁은 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첫째 : 양심에서부터 신앙 지침의 획선이 바로 서야 한다. 예를 든다면 태평양 바다를 건너가는 큰 기선은 지남침의 획선에 따라서 방향을 바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물결치는 파도가 많은 세상에서 좁은 문, 좁은 길 같은 그 획선을 양심에서 바로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는 신앙이라면 파선된 배와 같다(디모데전서 1:19-20). 하나님은 위대한 신이시요 가장 세밀한 신이시니 양심 속에 조그마한 티와 같은 것이라도 잘못된 획선을 가진다면 하나님은 응답의 역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 싸우는 생활에서 가장 날카로운 말씀을 써야 한다. 만일 어떤 종이 말씀에 날카로운 칼이 없이 하나님 말씀을 아무렇게나 제 마음대로 이리 저리 갔다 붙여 이용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 사람은 밝은 진리 획선을 잡지 못한 자로서 자기도 죽고 대중(大衆)을 죽이게 될 것이다.
셋째 : 분별력이 강해서 영적으로 멀리 내다보는 획선이 있어야 한다. 영계라는 것은 반드시 그 획선을 바로 찾지 못하면 얼마든지 혼란한 영계가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1서 4:1에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했던 것이다. 우리 영계 분별이라는 것은 먼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된 그 역사에서부터 금일에 우리에게 역사하는 그 영계의 획선이 있는 것이니 언제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역사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마리아 몸에 잉태될 때부터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까지 진리가 조금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혼선되지 않도록 역사하는 진리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영계를 분별할 때에 말씀의 획선을 바로 찾는 지식에서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역사를 바로 분별해서 나갈 수 있다.
결 론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할 일을 알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신다. 그러므로 기도의 사람은 양심의 원칙, 생활의 원칙, 노선의 원칙을 바로 찾아야 열매 있는 생활이 있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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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 종이 되자
- 디모데전서 3:8∼13 -
믿음의 큰 담력이라는 것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 오는 축복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에는 큰 담력을 얻어서 작은 일에 충성을 하던 자가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지만, 맡은 일에 충성을 하지 않는 자는 큰 일을 맡아 하다가도 점점 맥이 빠져 쓰러지는 상태에 들어갈 때에 오히려 일을 시작하지 않았던 자보다도 더 불행스러운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집사의 일을 잘 하는 자가 믿음의 큰 담력을 얻는다고 말한 것이다. 언제나 큰 역사를 하는 종들은 다 집사의 일을 충성되이 보던 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역사를 하는 종이 집사의 직을 거치지 않고 된 자는 없을 줄 안다. 그러면 어떠한 집사가 되어야 큰 담력을 얻는 종이 될 것이냐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말한다.
1. 단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8)
단정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은 절대로 변함이 없는 사람을 찾고 있다. 누구든지 한 번 하나님 앞에 작정한 것은 변함이 없어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에 성직을 맡은 자로 입의 말이나 물질이나 모든 일에 단정한 사람이 될 때에 입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오고, 물질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오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란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한다든지 세상 재리(財利)에 명랑한 사람이 못 된다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의 입을 쓰고, 물질을 통하여 주의 일에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니 신앙의 큰 담력을 얻으려면 입에 열매가 있고, 물질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정직이 있어야 할 것이다.
2. 깨끗한 양심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9)
언제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마음이 깨끗할 때에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앙의 비밀을 체험하게 된다. 만일 이것이 없는 자라면 어려운 난제를 당할 적에 이길 수 없이 쓰러지고 말게 된다. 신앙이라는 것은 비밀의 교통이 없다면 진액이 없는 마른나무 같다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신앙의 비밀이 있는 자라야 날이 갈수록 더 담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뭇가지가 진액을 받을 적에 점점 튼튼한 가지가 되듯이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이 있는 자는 날마다 점점 자라나는 신앙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된다.
3. 가정에서부터 바로 서야 한다 (13)
가정은 신앙을 길러 주는 학교라고 볼 수 있다. 가정에서부터 배워지는 일이 없다면 그 신앙은 정상적인 신앙이라고 볼 수가 없다. 가정 자녀를 다스릴 줄 모른다면 큰 교회를 바로 지도할 수 없을 것이다. 혹은 하나님께서 택한 종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가정에 시험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가정의 식구들에게 감화를 주지 못한다면 그 종은 내장이 잘못된 몸과 같이 될 것이니 가정에서부터 바로 서는 종이 될 적에 그 종은 모든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생활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위하여 부모나 전토나 모든 자녀를 버리고 나가는 자라면 백 배나 받는다"고 한 것은 주를 위하여 일할 때에 가정에 얽매이지 말고,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올 것을 믿고 맡은 일에 충성을 다 하면 가정의 모든 난제 해결은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이루어 준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만일 어떠한 종이 가정 식구가 방해한다고 주의 일을 중지하고 만다는 것은 오히려 가정을 망치는 일이 될 것이니 가정의 자녀나 모든 식구를 다스리되 주님의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기 위하여 권위 있게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부모나 처자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합당치 않다"고 한 것은 이것을 가르친 것이다.
누구든지 주님의 일꾼이 되려고 할 때에 주님의 일 하나를 바로 하기 위하여 승리의 길을 가므로 갈수록 큰 힘을 얻는 종이 될 것이니 조금도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만 큰 담력을 얻는 종이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종이 신앙의 큰 담력을 얻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는 것을 마음에 명심하여야 될 것이다.
1) 주님의 일을 내 일보다도 더 존중히 할 것.
2) 주님의 일을 할 때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큰 일로 생각하여야 될 것.
3) 주님의 일을 할 때에 주님의 역사로만이 될 것을 믿는 마음이 강하여야 될 것.
이와 같이 나갈 때에 집사의 일을 하던 자가 큰 담력을 얻고 아름다운 지위를 받게 될 것이다.
디모데전서 3:8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 된 자라야 할지니라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 일지니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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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자의 승리와 천년왕국
- 계시록 19:11~20:3 -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신이시며 사랑의 자체가 되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을 들어 쓸 적에 공의롭게도 쓰시고 사랑으로도 쓰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은 백마 탄 군대를 일으켜서 승리를 이루게 하므로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기까지가 끝을 맺는 일이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십자가의 종말을 천당으로만 본다는 것은 종말관을 똑똑히 모르는 자라고 보게 된다. 백마 탄 자의 승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시대를 구분한다.
1차 승리가 있으므로 은혜시대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2차 승리가 있으므로 천년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의 승리로 말미암아 1차 승리의 역사가 많은 종들을 들어서 역사하게 되어 세계 만방에 십자가의 도가 땅 끝까지 전파되었고, 2차 승리가 이루어지므로 천년왕국이 오는데는 그 비밀은 바울 서신에 있지 않고 계시록에 있는 것이다. 이제 백마의 승리와 천년왕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말할 수 있다.
1. 준비 기간 (11-12)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만 왕의 왕을 모시고 싸울 수 있는 자의 수가 차게 되는 기간을 은혜 시기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충성된 증인으로 승리하시므로 임금의 머리가 되시었다(계시록 1:5). 이날까지 수많은 성도들이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피 흘려 순교를 하였고 마지막 때의 기독교 역사라는 것은 변화성도가 무장을 하고 일어나는 것이며 수가 찰 때에 되는 일이니 수가 차기까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참고 기다리면서 잠잠히 계시므로 그리스도밖에는 알 자가 없다. 누가 백마 탈 군대가 될 자격이 있는지도 사람은 모른다.
그러므로 본문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그 이름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는 아는 자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어느 사람이 면류관을 쓰고 만 왕의 왕을 따르며 완전 승리를 이룰 것인지 이것을 알 자는 전혀 없다. 수가 찰 때까지는 각자 각자의 완전 무장을 목적하고 역사하는 것이니 우리는 각자가 진실이라는 것으로써 주님을 따라갈 것 뿐 이다. 우리가 지금은 주님의 인도를 따를 때에 백마 탄 군대가 되어 따르는 것이 아니고, 그 자격을 얻기 위하여 훈련 중에서 따라가는 생활이다.
2. 군대를 이루어서 싸우는 기간 (14-16)
군대를 완전히 이루는 것은 주님이 재림(공중재림)한 후에야 완전 조직을 이루는 것이다. 이 군대라는 것은 부활성도를 뜻한 것이 아니고 변화성도를 뜻한 것이다. 주님이 공중 재림할 때 죽은 자는 부활하고 남은 자는 변화를 받는데는 남은 자가 될 자격은 붉은 용의 앞잡이 짐승의 정권과 거짓 선지자의 교권과의 진리를 가지고 전하기 위하여 싸우던 사람들이 변화성도가 되어서 들림을 받게 되고 완전한 조직을 이루어서 다시 지상 강림할 때에 백마 탄 군대가 짐승의 군대를 쳐 없이하기 위하여 만국을 치게 된다.
3. 짐승의 군대가 전멸을 당하고 천년왕국을 이룸 (19-20:3)
짐승의 군대가 전멸 당하는 시기는 바벨론이 완전히 불타고 그 다음에 전멸을 당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14만 4천이 시온산에 서서 새 노래를 부르는 광경을 14장에 보여준 것은 계시록 9:4과 같이 첫째 화를 피하고 남은 종이 되어 들림을 받아 다시 내려올 때에 자기네가 싸우던 싸움을 끝을 맺는 것은 전하던 말씀에 의하여 완전히 승리를 이루는데는 짐승의 세력이 세상을 불태우는 일이 있다(계시록 17:16).
붉은 짐승은 거짓 선지자를 이용하여 이 세상 사람을 다 미혹하여 짐승의 표를 받게 했으므로 세계를 사상으로 통일했던 것이다. 그런데 도적같이 만 왕의 왕이 백마 탄 군대를 데리고 붉은 짐승을 치기 시작할 때에 짐승의 세력이 자기네 군대를 내놓고는 온 세계를 다 불살라 버리는 것이다. 지금 공산당이 지하정부를 다 만들어 놓은 것은 이때에 그들이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들은 지하정부에 들어가서 온 세계가 불타도 피해를 당치 않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18장에는 바벨론이 한 시간에 불타는 광경을 보여줬고 19장에는 백마 탄 군대가 짐승의 군대를 전멸시키는 광경을 보여줬으니 이것이 있으므로 완전한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천년왕국이라는 것은 변화성도의 승리로 이루어지는 시대를 말한 것이다. 변화성도라는 자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동방에서 나와 인을 칠 때에 한 무리가 된 14만 4천이니 이 무리가 남은 종이 되어 재앙으로 땅을 치며 짐승의 나라에까지 전도하게 될 때에 굴복하고 들어온 자들이 곡과 마곡의 한 무리가 되는 것이요, 변화성도는 완전히 승리하므로 짐승의 군대가 전멸되는 동시에 지상왕국이 이루어지니 지상왕국이 이루어지는 역사는 근본이 동방에서 나오는 역사이다.
구약 말기에 동방 고레스가 바벨론을 치므로 남은 자가 예루살렘을 복구한 것같이 동방에서 일어난 역사가 변화성도를 일으켜 짐승의 군대를 없이하므로 바벨적인 세력은 전멸 당하고 시온산 통치의 천년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군대를 이길 자는 백마 탄 군대요, 붉은 용을 이길 자는 천사들이다.
* 본문에서 말하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정권과 교권 전체를 말한 아니라, 정권과 교권의 대표가 되는 각각 1인을 뜻한 것입니다(즉 42달을 통치하는 정치적 우두머리와 그 옆에 붙어 있는 종교 보필자입니다).
계시록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20: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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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라
- 요한1서 4:16∼21 -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신이신 동시에 사랑의 신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의 뜻을 만족히 채우기 위하여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부터 사랑을 목적하고 역사 하신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 외에는 가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피조물 자체에는 남을 사랑할만한 인격이 완전히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에 끌려서 활동하는 뿐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연계를 움직이는 것도 사랑을 목적 한 것이요, 영계를 움직이는 것도 사랑을 목적한 것이니 우리는 그 사랑 속에서 순종하여 쓰여지는 도구가 될 것 뿐 이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이 요소가 있는 것이다.
1. 사랑 안에 거하는 자를 만족케 하심 (16)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사랑해 주시는 그 안에 순종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만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생자를 보내서 십자가에 죽게 하고 이제 그 사랑 안에 들어오라고 죄인들을 부르는 것이니 누구든지 믿고 순종하며 그 안으로 들어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만족한 생활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 외에는 만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 동물은 먹는 것으로 만족을 누릴 수 있으나 사람은 먹는 데 국한된 동물이 아니요,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졌으므로 "하나님 안에 안기는 생활"이 있으므로만이 인생의 가치를 발휘하기도 하며 또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만족히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의(義)라는 것은 누구든지 사랑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만족함을 누리도록 해 주는 것을 십자가 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생자를 주신 사랑의 십자가이니 그 안에서 무엇이든지 다 하나님께 받게 되기 때문이다.
2. 심판 날에 담대함을 주심 (17)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은 사랑의 법을 완성하는 오메가 역사이다. 사랑의 시작은 누구든지 아들을 믿으면 다 사랑 안으로 들어와서 만족을 얻게 하는 것이라면, 심판이라는 것은 사랑 안에 들어 온 자로 새로운 왕국을 이루기 위한 종말적인 역사이니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판이라는 것은 사랑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고 배반한 자를 다 없애는 것이 심판이다.
누구든지 죄가 있으므로 심판을 받는 것보다도 그 사랑을 믿지 않은 조건으로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그 안에 들어오는 자를 온전하게 만들어 그 사람들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얻어 남은 자가 되게 하는 동시에 심판을 나리기 때문에 심판이라는 것은 오히려 온전하게 된 자를 더 사랑하는 시대로 옮겨 놓기 위하여 심판하는 것이니 지금 이 세상은 사랑하는 자가 시련을 받고 억울함을 당하는 시대이지만, 심판은 사랑하는 자로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어서 영광의 복락을 누리게 하기 때문이다.
3. 두려움이 없게 하는 사랑 (18∼21)
인간은 죄를 질 때부터 두려움이라는 것이 있게 되어 거기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항상 인류 역사가 두려운 전쟁, 사망, 고통, 재앙으로 내려온 것 뿐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에 빠진 인생들을 두려움이 없는 자리로 옮겨 놓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이다(히브리서 2:14∼15).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공포심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사랑에서 온전함을 이룬 인격이라고 볼 수 없다. 온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두려움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며 죽음을 돌파하고 나가는 인격이다.
어떤 사람이 "믿는다" 하면서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참 사랑의 인격을 갖지 못한 자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 한 분만이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고 그 사랑을 인간에게 주시는 동시에 사람으로서 그 사랑 속에서 남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온전한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는 것은 하나님께 있는 영생의 생명과 영광의 나라의 기업을 택한 자에게 주고자 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이 원하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므로 하나님이 주고 싶은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는 형식과 의식이 필요 없고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므로 하나님 마음에 사랑이 불타는 심정으로 -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은 그 마음을 만족케 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 독생자를 보내어 대신 죽게 한 것이다.
이제 그 십자가를 통하여 사랑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은 다 이루어지되 하나님과 동거할 수 있는 인격을 만들어 영원히 같이 영광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인 동시에 완전한 역사라는 것이다.
요한1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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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기독교 난국 돌파의 위력
기독교 난국 돌파의 위력
- 계시록 12:1∼6 -
기독교는 시작될 때부터 어려운 난국을 놓고 싸우는 데서 시작되어 전세계 인류에게 큰 빛을 비춰 주었던 것이다. 이 빛이라는 것은 죄와 사망의 그늘 아래서 죽은 영들을 살리는 큰 빛이다(이사야 9:1∼2).
그러나 이 본문에 몸에 해를 입고 발 아래 달을 딛고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은 기독교가 무서운 붉은 용의 세력과 마지막 싸움을 싸우는 광경을 보여준 것이다. 기독교의 큰 난국은 과거보다도 앞으로 큰 붉은 용을 이겨야만 된다는 것에 있으니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하와를 꾀이던 옛 뱀이 큰 용이 되어 종말에 허락을 받고 나오는 때에 기독교로서 그 난국을 돌파하고 나갈 일을 큰 이적으로 보여준 것이 본문이다. 우리 기독교가 어떻게 하여야 큰 붉은 용의 세력으로 나오는 난국을 돌파할 힘을 얻을 것이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해를 몸에 입어야 한다 (1 상반절, Earlier section)
이것은 큰 빛을 발하는 위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큰 흑암의 세력이 허락을 받고 나오는 환란기에는 빛을 따라간다는 정도라기 보다도 빛의 큰 세력을 가져야만 된다는 것이다. 만일 앞으로 기독교가 조금이라도 진리나 영계에 어두운 것이 있다면 난국을 돌파할 수 없을 것이다. 말씀도 영계도 햇빛같이 밝아서 감히 어두움의 세력이 침투할 수 없는 교회가 되어야만 된다. 만일 어떤 교회가 말씀이 조금이라도 가감된다면 그 교회는 붉은 용의 세력을 도저히 이길 수 없고 큰 미혹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붉은 용의 세력을 짐승의 정권에 주고 거짓 선지의 교권에 주어서 13장과 같이 미혹해 보는 것은 진리가 완전히 밝은 교회만을 남은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하여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2. 발 아래 달이 있어야 한다 (1 중반절, Middle of the section)
이것은 땅의 권세를 의지하고 있는 교회가 아니고 성도의 권세를 중심하여 뭉쳐진 교회라는 것이다. 달이라는 것은 자체로는 빛이 없으되 태양 빛을 받아서 어두운 밤을 비춰 주는 작은 광명이니 앞으로 남은 교회가 되려면 세상에 물들지 말고 성별된 생활을 하는 성도들만이 뭉쳐진 단체가 되어야 난국을 돌파할 위력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성도의 권세를 통하여 역사하기 때문이다. 계시록 11장에 증인에게 권세를 준다고 하였으니 달과 같은 종들이 뭉쳐진 힘으로 세운 교회를 발 아래 달이 있다고 한 것이다.
지금의 교회들 안에는 여러 가지 부패성과 세속화된 일이 많이 있지만, 난국을 돌파하고 나가는 교회는 조금도 부정이 없는 성도들만으로 뭉쳐진 교회 단체를 이룰 것이다.
3.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써야 한다 (1 하반절, Later section)
우리 (기독) 교회라는 것은 과거에 열 두 사도가 승리하고 왕권의 면류관을 받은 것이니 조금이라도 그들의 교훈이나 사상에서 변하면 '큰 위력'을 상실하게 된다. 왜냐 하면 그들이 시작한 (기독교 역사가) 말세 교회의 승리로 마쳐지는 일이 마지막 난국을 돌파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순교자들의 왕권의 반열에 들려면 그들의 모든 승리의 면류관을 목적에 두고 싸워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우리도 주님 재림할 때에 그들과 같이 왕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미 승리의 왕권을 받은 종들로 말미암아 우리도 강권적인 큰 위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4.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힘이다 (2)
만일 기독교가 금일에 와서 해산할 힘을 잃는다면 이 교회는 도저히 난국을 돌파할 수가 없을 것이다. 누구든지 순교자의 계통적인 신앙노선에 선 자라면 하나님께서 큰 위력을 주어 철장권세의 종이 되도록 역사해 주실 것이다. 아무리 붉은 용이 대항해 나온다 하여도 기독교는 필연코 권세의 종을 내므로써 난국을 돌파하게 될 것이다.
결 론
이날까지의 모든 성도들이 피 흘리며 싸우던 싸움은 이제 끝이 나는 단계에 들어갈 것이다. 우리가 붉은 용의 앞잡이 '짐승의 정권'과 '거짓 선지자'와 싸우지 않고는 도저히 교회를 유지할 수도 없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의 난국을 당하게 되는 것은 신령한 촛대교회만을 남기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요한계시록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 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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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바벨론이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계시록 18:4-10)
바벨론이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
- 계시록 18:4∼10 -
인류역사상 환란과 재앙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바벨론이 망하는 재앙을 받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은 무엇이냐는 것을 택한 백성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다가 보호를 받고 축복을 받은 일도 없진 않지만 바벨론이 받는 재앙을 받지 않고 남은 자같이 복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일 큰 재앙도 이제 남아 있고 제일 큰 축복도 이제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큰 재앙을 받느냐, 큰 축복을 받느냐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깊이 깨달아서 진리를 바로 찾아야 할 때는 이때라고 보게 된다. 오늘에 남은 전쟁이라는 것은 바벨론이 한 시간 동안에 전멸을 당하는 광경으로 사도 요한이 이 계시를 보았는데, 금일의 과학 발전으로 볼 때,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요한 사도가 본 인류 종말이 이 때라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이제 재앙 받을 행동에 대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1. 죄가 하늘에 사무친 일 (4∼5)
역사적으로 이 세상은 죄의 세상 이어 왔다고 말할 수 있지만 금일같이 죄악에 사무친 세상은 과거에 없던 일이라고 보게 된다.
1) 정치적으로 범한 죄
금일에 공산주의가 정치적으로 범한 죄는 인류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도둑 중에도 큰 도둑이요, 거짓 중에도 제일 큰 거짓이요, 배도 중에도 가장 큰 배도 라고 볼 수 있다.
2) 사상적으로 범한 죄
금일에 무신론 사상이라는 것은 최후의 인심을 악화시키는 죄다. 이 사상은 사람을 금수(禽獸)화시키는 동시에 죄를 짓고도 하등 양심에 거리낌없이 살게 만드는 사상인데 이 사상으로 말미암아 범하는 죄는 금수의 행위보다도 더 큰 죄이다.
3) 전쟁으로 범한 죄
과거의 전쟁은 도덕적 전쟁이었다. 그러나 금일의 전쟁은 애매한 백성을 전멸시키는 폭격이라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이유 없이 남의 건물을 파괴하고 가족을 몰살시키고 한다는 것은 전쟁 중에도 큰 죄악을 행하는 전쟁이라고 보게 된다.
4) 종교적으로 범한 죄
종교라는 것은 그 종교의 "신앙절개"라는 것이 있어야 되는 것인데 오늘의 종교는 어느 종교나 다 타협적인 노선을 걷자는 것이다. 이에 있어 더구나 기독교까지 협상주의로 흐른다는 것은 종교적으로 큰 죄악이 되는 것이다.
5) 방랑적인 자유의 죄악
소위 민주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사람들이 극도로 방랑생활에 떨어지고, 다수의 악당들이 주권을 쥐고, 사회의 도덕까지라도 다 파탄을 당하는 현실이 오늘이라고 보게 된다.
대략적으로만 보아도 정치, 사상, 전쟁, 종교, 자유로 짓는 죄가 하나님이 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되어 있다고 보게 된다. 무엇으로 보든지 이 시대는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는 때라고 보게 되니 이때에 하나님의 백성은 이 죄에 참여하지 않아야 재앙을 받지 않을 것이니 성별된 생활이 있어야 될 것이다.
2. 갚아 주는 재앙 (6∼7)
하나님은 갚아 주는 공의의 신이시다. 그러므로 재앙도 갚아 주기 위해서, 축복도 갚아 주기 위해서 오는 것이니 갚아 줄 일을 하나님은 이날까지 행한 것이다. 하나님이 마귀에게 미혹 받고 타락한 인간을 그냥 심판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억울한 일이므로) 의로운 심판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독생자를 보내서 전 세계 인류에게 얼마든지 살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하여 선지와 사도와 성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복음을 전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악한 인간들이 구약 때나 신약 때나 참된 종의 말을 배척하고 거짓 선지의 말을 따라 갔다는 것은 갚아 줄 조건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이 자기 목숨을 바쳐 피를 쏟으며 증거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만을 영화롭게 해보려는 교만에서 현실주의 향락에 도취가 되어 오히려 참된 종들을 무시하고 압박을 하고 심지어 죽이는 일을 했다는 것은 의로운 심판자로서 갑절이나 재앙으로 갚아 줄 일이다.
죄 중에 큰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진리를 대적하고 음녀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니 이는 영원히 멸망을 당할 일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음녀주의 사상에 동참한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다 망하는 것이다.
3. 일 시간에 불에 살라지는 재앙 (8∼10)
지금 과학 발전으로 세계가 한 시간에 살라지게 되는 원자핵이 나오게 된 것은 큰 재앙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세계 인류가 한 시간에 없어지는 재앙이 온 후에는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이 계시록과 모든 선지서가 가르친 말씀이다. 우리는 그 날과 그 시는 알 수 없으나 무엇으로 보든지 지금은 심판기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바벨론이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는 경고의 나팔을 나가서 불 때가 왔다고 본다. 지금은 이 경고의 나팔을 부는 마지막 변화성도의 역사가 일어나야 할 때다. 부활성도가 전하는 복음은 속죄 구령이지만 변화성도가 전하는 복음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라고 말할 책임이 있다.
오늘에 어떤 교파를 막론하고 산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다 하나같이 총 궐기해서 한 데 뭉쳐 성별된 단체를 이루는 동시에 신령한 촛대교회를 일으켜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전할 자는 세상이 불타서 전멸되는 가운데서 재앙을 받지 않고 새 시대 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계시록의) 목적이니 우리들은 각성하여 바벨론에서 주의 백성들이 나오도록 외쳐야 할 때가 왔다.
결 론
"슬프다. 주의 백성들이여! 이 때를 알라! 각성하라! 준비하라!" 하는 경고의 나팔을 불 때는 이 때이니 우리 기독교는 바벨론이 받을 재앙을 온 교회가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종 된 자의 사명이라고 본다.
요한계시록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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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처를 생각하라
- 누가복음17:22-37 -
서 론
우리는 주 재림이 임박해서 주를 맞이할 자는 특히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 의인 가정이라도 진노의 날에는 어느 때 보다도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어떤 신자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진노의 날에 하등 문제없다고 방심적인 태만을 가지고 있다면 롯의 처와 같이 멸망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1. 확실한 증거를 보고도 태만 하는 자가 되지 말라
이것은 롯의 처는 자기 집에 직접 천사가 찾아와서 때가 급했다는 것을 경고했을 뿐 아니라 악당들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그 가정에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이 롯의 가정을 특히 사랑해서 말씀으로만 경고한 것이 아니고 실천적인 행동에서 그 가정에 나타났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말세 성도가 직접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내 마음에 오셔서 역사 하는 증거도 받고 하나님의 보호도 받은 체험도 있는 신앙을 가지고 짐짓 말세 예언을 등한히 한다면 안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체험 받지 못한 자 보다도 먼저 죽는 저주가 올 것이다. 짐짓 하나님의 명령을 만홀히 알았기 때문이다.
2. 강권 역사에 끌려가면서 짐짓 마음이 태만 하는 자다
천사는 롯의 처의 손을 쥐고 끌고 가는 일이 있었다. 이것은 금일의 강권 역사의 힘을 받아서 나가던 사람도 떨어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노력을 한 일이 없는데도 하나님이 강권으로 이끌어주는 체험을 받고도 세상을 돌아다보는 자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확실한 하나님의 체험을 받고 급했다는 증거자를 통하여 인도를 받아서 나가던 자라도 멸망할 자가 있다는 것이다. 천사가 끌고 가던 자도 떨어지는 자가 있었거늘 사람에게 인도를 받는 사람 가운데도 있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증인을 통하여 강권적인 역사가 임할 때 절대로 세상 일은 돌아다보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군인이 출전 명령이 나렸는데 뒤로 후퇴하는 자는 쏘아 죽이는 것이 군법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전 삼년반기가 닥쳐와서 사명자가 앞을 향해 나갈 명령을 받고 세상일을 보고 후퇴할 수 없을 것이다. 주 재림이 온다는 경고는 말세의 권세 받은 종이 나타날 때다. 권세 역사라는 것은 천사가 롯의 처를 끌고 가는 것과 같은 강권 역사다.
3. 천사는 롯의 요청대로 가까운 소알 땅으로 편리를 보아주었다
먼 동리에는 미처 급했기 때문에 가까운 그곳만 가면 산다는 편리를 주었다. 하나님의 택한 사람은 급한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하든지 살리겠다는 심정에서 안정처를 알려주고 보여주는데도 그 말을 등한히 여겼던 것이다. 롯의 아내가 사실을 확실히 믿었던들 뒤를 돌아다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진노의 날이란 예언의 말씀을 조금만 가해도 감해도 재앙이라는 것이 여기에 연결된 것이다. 예를 들면 급해서 종을 인도하는 것은 아끼는 심정이다. 사랑 중에 제일 큰 사랑은 하나님이 롯의 집에 보낸 천사의 사랑일 것이다. 낮고 더러운 인간들인 롯의 가정을 살려보겠다고 천사가 와서 이렇게도 애를 쓰는 그 사랑을 태만히 하니 다시는 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아의 집보다도 롯의 가정은 강권적인 사랑이 임했던 것이다. 노아는 자기 손으로 배를 짓느라고 최선을 다했지만 롯의 가정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무조건 구원해 주겠다는 사랑이다. 말세의 주 재림기에 살아 남아 있는 종들에게는 이와 같은 사랑을 베풀어준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결 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두 남자가 한 자리에 있으면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 둠을 당한다고 하였다. 또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는데 한 여인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여인은 버려 둠을 당하였다 하였으니 롯의 처와 같이 태만한 사람은 버림을 당한다는 것이다. 롯의 부부가 일생동안 아름다운 부부생활을 했으나 그 처는 태만하니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는 싸워야 된다는 것이다(33).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의 명령인 예언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길을 걷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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