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설교: 이스라엘 -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자 (이사야 49:1-7)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자
- 이사야 49:1∼7 -
하나님께서 승리의 용사로서 환란 가운데 남은 종이 될 자를 '이스라엘'이라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하나님은 모략적인 방법으로 택한 자에게 억울함을 당하게 하고 끝까지 싸우는 자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준 것이니 말세에 남은 종이 될 자는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에 인정을 받은 자라야 될 것이다.
2)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야곱에게 약속한 축복을 받을 자는 환란 가운데 남은 종이라야 될 것이니 누구든지 살아서 새 시대를 보는 자는 다 이스라엘이 된다.
3) 잃었던 지상 축복을 다시 찾는 것은 '간교한 뱀'인 마귀의 세력을 이겨야 할 것이니 누구든지 '붉은 용'과 싸워서 이기는 자라면 다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이제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는 일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인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1. 하나님께서 보증을 설 사람이 되어야 한다 (1-4)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증을 설 조건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택한 종을 통하여 큰 영광을 나타내려고 할 때에 그 종을 시련시키되 사람으로서는 감히 인정할 수 없는 일을 많이 당하게 한다. 이스라엘에 일곱 해 큰 흉년이 질 때에 애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요셉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길을 가게 되었고, 애굽의 무서운 바로의 압박에서 이스라엘을 구출시키는 모세도 인간으로서 인정할 수 없는 길을 갔다.
우리가 사람이 인정하는 정도의 일만을 하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일이 없다면 금시는 영광스러워 보이나 결말은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금시는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이 보증 설 일이라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일이라고 보게 될 것이다.
2. 세계적인 구원을 전하는 자이다 (5-6)
인생이 세상에 났다가 자기 하나를 위하여 살았다는 것은 영광 될 일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가 될 것이로되 전 세계 인류를 환란에서 구해 내는 복음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 아무런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람 같으나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나타내는 동시에 세세 영광을 줄 것이다. 영광이라는 것은 잠깐의 영광도 있고, 영원한 영광도 있는 것이니, 영원한 구원의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일했다는 것이 아니고는 영원한 영광을 소유할 자는 전혀 없는 것이다.
갈릴리 어촌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주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던 베드로의 사명을 비롯하여 세계 인류가 음부의 권세를 이기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이며, 동방 땅 끝 지렁이 같은 야곱이가 새 타작기 같이 쓰여져서 태산같이 교만한 세력을 무너뜨리고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 우리는 새 시대의 구원, 방주를 이루는 촛대교회의 운동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영광이 아닌 영광을 좋아하고 심지어 영광이 되는 진리 운동을 어리석게 본다는 것은 이방적인 세력이 된 증거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새 시대 영광을 목적하고 싸우는 사람은 다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3. 세계 열왕을 굴복시키는 일 (7)
이날까지에 소위 강대국이라는 이름 하에서 한 때는 약소 국가를 짓밟아버리는 침략적 행동을 한 일은 있어 왔지만, 세계 열왕을 모두 굴복시키는 자는 전혀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는 종 앞에 세계 열왕이 굴복을 당하게 되는 것은 그를 택한 진실한 여호와 하나님을 인함이라고 가르쳤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책임지고 원수를 갚아 줄 조건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세계 열왕을 굴복시키는 승리를 이룰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세계의 국가 운영이나 개인의 생명이나 대 자연계를 하나님은 다스리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택하여 쓰는 종만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가장 복된 자는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는 변화성도라고 보게 된다.
결 론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훌륭하게 보는 일도 있지만, 영적으로 본다면 그 사람들같이 어리석은 자가 없다. 이날까지 (오신 메시야를 영접 못하고) 메시야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흑암 중의 흑암이다. 그러므로 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은 "동방 땅 끝"이라는 것을 이사야 41:8에 말한 것이다.
이사야 49:1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腹中)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磨光)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정녕히 나의 신원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5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 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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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 영원한 복음
영원한 복음
- 아름다운 소식 -
"영원한 복음"이란 계시록 14:6절에 기록된 말로서 큰 바벨론이 무너질 때 영·육을 살려주는 복음입니다. 영원한 복음이 전파되기 전에 먼저 외쳐질 화평의 복음(사도행전 10:36)은 영혼이 구원받는 복음으로서 유월절로 오순절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천국복음 운동입니다(마태복음 4:23, 24:14). 그러나 영원한 복음은 인간 종말에 영과 육이 아울러 구원을 얻어 새 시대로 인도 되어지게 하는 초막절 역사입니다(☞ 3대 절기로 바로가기). 그러니까 영원한 복음은 예수님이 유월절 양의 사명을 마치시고 하늘로 승천하여 아버지의 오른 손에 있는 책을 당신 피로 사서 받아내신 후 이 땅의 교회에게 다시 주신 복음이 됩니다(계시록 5:1~8).
이 복음으로서 지구는 인류종말에 다시 에덴동산을 회복 받는 데는 노아 때처럼 가족이 구원받고 영·육이 살아서 1000년간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 지상세계를 만드신 창조의 축복을 완전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다시 찾는 인류 종말적인 역사는 예수 믿고 죄사함만 얻으면 공산당도 좋고 불교도 좋다하는 협상주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땅의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완전히 멸하여야만 죄악 없는 새 시대가 건설된다는 영원한 복음으로써만 이룰 수 있음을 한 시(時)라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이루러 오신 예수님께서마 26:24절에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하셨던 것처럼, 재림 때에도 오직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기록케 하신 예언을 가감하면 재앙을 받게 됩니다(계시록 22:18~19). 예수 피로 영혼의 구원을 얻고 그분이 피로 사서 주신 모든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서(계시록 1:3) 6,000년 이어져 내려온 우상 바벨론이 망하고 새 시대가 건설될 것을 선포하는 이 영원한 복음을 자세히 읽고 듣고 지켜 예수 안에서 영, 육 간의 완전한 삶을 얻어 누립시다. 아멘!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계시록 2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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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맞는 이스라엘이 되자
- 계시록 7:2∼4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에게 아무런 증거 없이 일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확실한 인을 치심과 동시에 사람을 들어서 쓰는 것이다. 은혜시대는 죽은 영을 살려서 성신의 인을 쳐 신앙의 확정을 마음에 가지게 하여 담대히 증거하게 되었다(에베소서 1:13∼14). 신앙이라는 것은 마음에 확정적인 것이 없다면 그 신앙은 완전한 천국을 소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인 맞는 자 14만 4천이라는 것을 현 유대족으로 본다는 것은 너무나 말씀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줄 적에 예수를 반대하라고 준 이스라엘이 아니다. 현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볼 때에 이스라엘이 아니요 참으로 성신의 인을 받고 확실한 보증이 있는 신앙으로써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어 새 시대를 정복할 용사를 일컬어 이스라엘 중에 인 맞은 자라고 한 것이다.
이 인을 맞는 이스라엘이 되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성별된 생활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육적 이스라엘이라도 성별된 생활이 없이 이방인과 타협적인 노선을 걸을 때에 하나님은 용서 없이 이스라엘을 이방 세력을 들어서 친 것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이스라엘의 피를 더럽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부족하다 하여도 성별된 생활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인도만을 따라갈 때에 하나님은 보호하고 다스리되 인정하는 뜻으로 이마에 인치는 것이다. 사명을 맡은 자로서 핍박과 어려움이 온다 하여도 끝까지 절개 있게 싸워 나갈 때에 하나님은 그로 말미암아 남은 종이 되게 할 것으로 확인하는 것을 이마의 인(印)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죄를 완전히 사했다는 확인을 마음에 주는 것이요, 여러 가지의 시련 가운데서 끝까지 절개 있게 나가는 자를 남은 종이 되게 하였다는 것은 완전 영감을 머리 위에 주는 동시에 조금도 마귀의 권세가 그 사람을 대항하지 못하도록 이름 권세의 인을 주는 것이다(계시록 9:4).
그러므로 계시록 7장에 인 맞은 이스라엘은 분명히 환란 가운데 남아서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성도를 가르친 것이니 변화성도는 완전한 승리의 왕권을 받는 종들이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라고 한 것은 종 중에서 특별히 뽑아 내는 것을 뜻했다. 그러면 이 종이라는 것은 구약의 선지를 말함이 아니요 신약시대에 온 세계 인류가 살라져 버리는 무서운 환란을 앞에 놓고 마지막 역사를 할 종들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은 땅과 바다가 피해를 당할 무서운 전쟁의 피해를 뜻한 것이다.
2. 완전 무장으로 한 단체를 이루어야 된다
본문에 해 돋는 곳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들고 나와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쳐서 이스라엘 중에 14만 4천이 나온다는 것은 완전 결합을 이루는 용사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결합이라는 것은 역사가 종들에게 일시에 임할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인을 치는 역사가 해 돋는 곳에서 나온다는 것은 이사야 59:19이하와 같이 종말의 역사가 동방에서 나와서 세계의 모든 하나님의 종들로 한 무리를 이루게 하는 기독교 통일의 역사를 뜻했다.
이날까지 역사라는 것은 이방을 찾아가서 한 사람 한 사람 회개시켜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확장시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다락방에 떨어진 성신의 은사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회를 주어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에 속한 자는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는 역사였다(갈라디아서 3:28∼29. 에베소서 3:6). 이 역사의 기간이 20세기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미 종 된 자들 중 그 이마에 인치는 역사는 땅과 바다를 해칠 권세를 받은 네 천사가 나타난 후라고 했으니 이것은 계시록 9:15이하를 보면 분명히 년, 월, 일, 시에 사람 3분의 1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며 마병대가 2만만인데 말들의 머리는 사자 같고 꼬리는 뱀 같고 꼬리에 머리가 있고 입이 있어서 불과 유황이 나와서 사람 3분의 1을 죽인다고 한 것을 보면 이것이 분명히 무력적인 전쟁을 뜻한 것이다. 불과 유황으로 죽이는 무력이라는 것은 금일에 와서 과학 발전으로 되는 신 무기 전쟁을 가르친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전쟁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때에 동방에서 인을 치는 역사가 나와서 14만 4천이 나온다고 한 것을 보면 부활성도가 아니고 분명히 무서운 전재(戰災)가 와서 세계가 전멸 상태에 들어갈 때 쓰여질 종이라는 게 틀림없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교파를 초월하여 재앙 속에서 남을 종은 하나같이 완전 무장을 받게 되되 동방에서 일어나는 역사로 말미암아 받게 될 것을 가르쳤다.
3. 영원한 이스라엘이 되어야 한다
육적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아무리 성민의 이름을 가진 자라도 북방 사마리아가 된 일이 있고 아무리 이스라엘이라 하여도 반 기독자가 되어서 스탈린과 같은 공산당이 나온 일도 있으니 소위 이스라엘 국가라는 간판을 가졌다고 그것이 영원한 이스라엘이 아니요 땅이나 바다나 다 피해를 당할 재앙 속에서 남은 자가 될 때에 이들로 말미암아 영원한 다윗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책망할 때에 너희는 독사의 새끼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 말라고 했고 주님도 바리새교인들에게 네 아비는 마귀라고 했고 바울도 로마서 2:28에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했던 것이다.
14만 4천을 이스라엘이라 한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재앙기에 남은 자가 되어 그들로 말미암아 영원한 왕국이 지상에 이루어지는 때에 승리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새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가르쳤다(이사야 44:5).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명의 이름을 주신 것은 육적 혈통을 뜻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질 것을 목적하고 이름을 주신 것이다. 신약시대에 베드로란 이름을 준 것도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라 한 것은 유대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 교회를 다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2:9∼10까지를 보면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영원한 이스라엘이 되어야 하는 데는 계시록 14:4∼5과 같이 된 자라야 영원한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천하의 가장 복 있는 자는 재앙 가운데 남은 종으로서 영원한 이스라엘이 되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이사야 66:20을 보면 열방에서 다시 제사장과 레위족을 택해서 그 자손이 영원히 복을 누린다고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어 만민을 피로 사서 한 나라를 이루게 하는데는 먼저 이 땅에 이스라엘 왕국이 이루어지되 중생을 받고 성신 받은 종으로서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적인 사명을 하다가 들림을 받게 되는데는 그 종의 예언을 듣고 회개하고 나오는 무리는 아무리 이방 사람이라도 새 시대의 종족이 될 수 있다(계시록 7:9이하).
결 론
가장 복 되도다, 인 맞은 이스라엘이여! 첫째 화를 당치 않고 남은 종이 되어 공중에 나타나는 주님을 맞이할 것이요, 그들이 전하는 종말의 심판 경고의 예언을 듣고 회개하는 무리는 촛대 교회에 들어오는 양 떼가 되어 큰 환란에서 보호를 받고 새 시대 영광을 시민권으로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명을 맡은 자로서 인 맞은 이스라엘이 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될 시기가 이 때라고 보게 된다. 역사적인 조류가 흘러오던 중 지금같이 위기를 앞에 둔 때는 없는 것이니 아무쪼록 인 맞는 이스라엘이 되기 위하여 순교적인 생활을 하자.
요한계시록 7: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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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일꾼 된 바울
- 골로세서 1:23~29 -
기독교를 핍박하고 훼방하면서 나섰던 사울이 복음의 일꾼 된 바울로 나서게 된 것은 세계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키는 운동의 처음 열매가 되는 일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를 핍박하던 자를 회개시켜서 썼다는 것이 기독교 역사의 특징이 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할 때에 기독교에 이런 역사가 없다면 세계 인류를 마귀 권세 아래서 해방시키는 역사를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의 일꾼 된 기독교 역사의 표준적인 일이다. 이제 복음의 일꾼 된 바울에 대하여 그의 일꾼 된 자격은 어떠한 자격이라는 것을 본문에서 배우는 동시에 우리가 따라가야 할 선구자가 되는 바울임을 깨닫고 본받자.
1. 우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했다 (24)
복음 자체는 그리스도인데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받은 고난을 기뻐했으니 복음의 일꾼도 이 사상을 가지게 된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던 사람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기뻐했다는 것은 초인간적인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일꾼이라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그 목적을 완전히 바로 두지 못한 원인일 것이다.
금일에 어떤 종이 만일 양 떼를 위하여 괴로움 받는 것을 회피하려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선구자 바울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쓸 때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쓴다는 것보다도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깨달을 때 자기가 구원받은 복음을 남에게 전하기 위하여 괴로움을 당해도 기뻐한다는 것이 기독교 사랑의 본질이다. 참된 기쁨이라는 것은 이것이라고 보게 된다. 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괴로움을 기뻐한다는 그 자체가 복음의 일꾼 된 마음이다. 누구든지 이러한 마음을 가졌다면 이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이 들어 쓰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괴로움이 올 때에 기쁨으로 일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참과 거짓은 자동적으로 판명된다. 그러므로 '미혹하는 선지'라는 것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면 화평으로 말하고 유익이 없으면 싸움을 일으킨다는 것이 '거짓 선지'의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미가 3:5). 누구든지 일꾼 된 자격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이니 이러한 것이 없는 자라면 자동적으로 삯꾼이 될 것이다(미가 3:11).
2. 하나님 말씀을 이루려고 함 (25-27)
복음이란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를 통하여 말씀한 대로 행하는 일이 복음이니 그 복음은 자체가 그리스도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도성인신'하여 나타난 일이 없다면 하나님 말씀은 복음이 될 수 없다.
바울은 그리스도 한 분이 나타나므로 그 목적은 유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온 세계를 위한 복음인 것을 깨달을 때 이 복음을 모든 이방 사람들이 알게 하므로 그들이 살게 될 것을 생각할 때에 그는 전하지 않으면 화가 오리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이 깨닫게 되었다. 모든 이방 사람은 다 영들이 죽었는데, 내가 전하지 않으면 저들은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괴로움을 생각하지 않고, 밤낮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
언제나 복음이라는 것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비밀이니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억울한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어느 때나 인간들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요, 모르는 것은 무조건 반대하는데 이렇게 되는 것은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인간의 방법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로만 된다는 것을 그는 확신했던 것이다.
언제나 복음의 일꾼은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는 일"에 있어 종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될 것이다. 어떤 종이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을 목적하지 않고, 자기의 어떤 주장을 내세운다면 그는 자체로서 복음의 대적이 되는 자가 될 것이다. 언제나 복음은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니 어느 인간도 막을 자가 없다는 담력을 가지고 나서야만 될 것이다.
3. 남을 완전케 하려는 것이다 (28-29)
'완전'이라는 것은 복음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니 복음을 전하는 자가 남의 단점을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복음과는 관계가 먼 자이다. 언제나 복음 안에서 능력으로 모든 사람이 완전케 될 것을 믿고, 조금도 다른 사람의 과오를 말하지 않고, 언제나 능력의 역사를 따라서 완전해진다는 것만을 믿고 힘을 다하여야만 될 것이다.
능력이라는 것은 복음을 따라서 오는 것인데 -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주겠다는 언약의 말씀이므로 - 능력의 역사를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아무런 역사가 없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복음의 일꾼은 능력으로써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완전케 해 주실 것을 믿고, 남의 실수를 볼 때에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함과 병행하여 복음을 전해야 될 것이다. 아무리 수고한다 하여도 남을 완전케 해보려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결 론
복음의 일꾼이라는 것은 자기 자체가 복음으로 녹아진 일꾼이 되어 져 나서야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음이 내게 완전한 체험으로 임하지 않은 사람은 그 복음과는 상관이 없는 인격이므로 복음을 전할 자격을 가진 자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을 볼 때, 복음을 반대하던 자가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는 이 사실은 기독교 복음 운동의 표준이 되는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골로세서 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 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 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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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를 영접하는 인격
- 요한복음 1:35~51 -
하나님께서 야곱의 씨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모든 선지를 통하여 예언할 때에 메시야가 올 것을 빠짐 없이 가르쳤으므로 그들은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큰 소망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을 믿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보다도 이스라엘 나라에 메시야가 온다는 것이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큰 자랑이 되었던 것이다. 만왕의 왕 메시야가 자기 나라에 오면 그들은 세계의 으뜸가는 나라가 되고 세계 열방을 다 통일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민족을 상대하지 않고 자기네만이 메시야를 영접할 민족이라는 것을 믿는 동시에 극도로 교만한 위치에서 남을 무시하는 민족이 되었던 것이다.
예루살렘 거리에 많은 사람이 거룩한 예복을 입고 왕래하지만 세례요한의 증거를 듣고 메시야를 영접하는 자는 갈릴리 벳세다 동네의 어부들뿐이었다. 그들만이 메시야를 영접했던 것이다. 어찌하여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세례요한의 전도를 받지 않고 이방 갈릴리에 있는 불학무식(不學無識)한 어부들이 받았던가 하는 것을 이제 알아야 할 일이다.
1. 마음이 겸손한 자들이다 (35-42)
언제나 겸손한 자는 영안이 밝고 교만한 자는 어두운 것이다. 세례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고 할 때에 교만한 인간들은 오히려 이단시하고 대적했지만, 기도의 사람으로 메시야를 고대하던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를 볼 때에 영적으로 알려지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 안드레, 이 사람들은 비록 무식하고 빈곤한 생활을 하였지만 메시야를 고대하며 기도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은 확실한 일이라고 본다. 주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므로 그들을 만날 때에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었던 것이다.
언제나 신령한 세계를 체험하려면 부유한 생활보다도 빈곤한 생활에서, 호화로운 자리보다도 비천한 자리에서, 화려한 도시보다도 조용한 곳에서, 많은 무리보다도 작은 무리라도 합심하는 곳에서, 영계 운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메시야를 고대하는 신앙 양심에서 산명수려(山明水麗)한 갈릴리 해변을 찾아 작은 동네의, 작은 집에, 적은 무리가 모여서,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메시야를 고대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들을 만날 때에 직접 "따라 오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그만큼 그들이 준비되어 있던 신앙가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무런 믿음이 없고 합당치 못한 사람을 "모르고" 택한 것이 아니고 "알고" 택할 때에 가룟 유다 외에는 다 승리의 왕권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가룟 유다를 택한 것도 말씀이 응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메시야를 영접할 자격은 성신을 충만히 받지는 못했으나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날 그날에 하나님과 그의 양심과에 접촉되는 생활에서 메시야를 영접했던 것이다.
2. 성서적인 사람이다 (43-45)
언제나 성경을 많이 읽고 사모하는 생활이 없이는 도저히 영계 생활이 보존될 수가 없다. 그들은 성경을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성경에 메시야가 온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정도의 지식을 가지되, 동정녀 몸에 탄생한다는 것(이사야 7:14), 베들레헴에 난다는 것(미가 5:2), 갈릴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사야 9:1-2)..., 이와 같은 성경을 절실히 믿었던 것이다. 그들은 반드시 메시야의 역사는 예루살렘에서가 아니고 갈릴리 해변에서부터 날 것을 특히 깨닫고 - 지금 우리가 재림의 주가 올 때는 동방에서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듯이 - 메시야가 올 때에 갈릴리 해변에서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철저히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볼 때에 자기네가 기다리던 메시야인 것을 확신했던 것이다. 벳세다 동네의 어촌은 메시야를 고대하는 신앙촌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고대하는 신앙 양심에서 두텁게 사귀어졌던 친구들이다. 이 친구야말로 고락을 같이 겪는 영원한 친구가 되었던 것이다. 세상에 많은 친구가 있지만 이와 같은 친구는 역사적으로 한 페이지가 되는 친구가 되었다.
이와 같이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때에 동방에서 나오는 선구자의 한 단체가 나오는 것도, 사도와 같이 막역한 친구의 한 무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신앙적인 양심에서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친구가 메시야를 맞이하던 갈릴리 벳세다 동네의 친구와 같은 인연이 있게 될 것이다.
3.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 (46-51)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간사함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는 메시야를 영접할 참 이스라엘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은 참 이스라엘을 찾기 위하여 벳세다 동네의 어부들을 찾아갔던 것이다. 모든 바리새교인들은 간사한 무리들이므로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명예를 위하여 권리를 다투며 싸우는 무리였던 것이다. 이들도 메시야를 고대했던 것은 학과적으로 배우고 교리적으로 남을 가르치고 베들레헴에 난다는 것을 마태복음 2:4~6에 말했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신앙은 교리만이 아니요, 양심이라고 보게 된다. 아무리 이들이 학과적으로 가르치는 무리들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하나의 교권과 명예의 감투를 쓰고 세상 안락에 마음이 어두워진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동방박사가 별을 보고 예루살렘을 찾아올 때에 그들은 오히려 헤롯과 같이 왕으로 나신 메시야를 죽이는 무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앙 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무리가 아니고 전부 간사한 거짓 선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책망했던 것이다. 예수님도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까지 했던 것이다(요한복음 8:44).
아무리 이스라엘이라 하여도 간사한 정욕이 있는 사람은 죽은 영이니 자동적으로 마귀의 자식이 된다. 신앙은 간사함이 없는 양심에서라야 이스라엘이라는 영적 사람이 될 것이다. 나다나엘은 비록 어촌에 사는 사람이지만, 날마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는 것을 주님께서 보았다고 말씀했던 것이다. 은밀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양심의 사람이라야 메시야를 영접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 되었던 것이다.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이스라엘 중에서 메시야를 영접한 사도들이요, 또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동방 땅 끝의 종들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갈릴리 벳세다 사람은 은혜시대의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선구자가 되었고, 동방 땅 끝에 해변의 종들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진리 운동의 선구자라는 것을 성경은 가르쳤다. 그러므로 갈릴리 바다 옆의 어부들은 부활성도의 선구자요, 동방 땅 끝에 있는 종들은 변화성도의 선구자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영접할 자의 자격과 재림의 주를 영접할 자의 자격을 논의한다면 다음과 같다. 동방 땅 끝에서 종들이 일어남으로써 원수를 회삼물같이 짓밟고 나간다고 했고, 이사야 41:8-25을 보면 분명히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라고 했고, 이사야 9:1-2을 보면 갈릴리 바다 해변에서 일어나는 역사는 이방의 빛이 된다고 말했으니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가 은혜시대 역사라면 이방 세력을 짓밟고 나가는 역사는 진노의 날에 남은 <변화성도의 역사>라고 본다. 그러므로 언제나 시대가 바뀔 때에 종은 선구자적인 자격을 가져야 된다.
결 론
율법시대가 끝이 나고 은혜시대가 이루어질 때에 메시야를 영접한 사도의 인격은 율법시대의 영계의 선구자로서 은혜시대를 이루는 일에 "처음 열매"가 되었던 것이다. 가장 복되고도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갈릴리 벳세다 동네의 어부가 된 일과 사도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세계 만방에 기독교가 대 승리를 보게 된 일은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성도의 인격이 이루어진 자로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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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에 대하여...
1. 하나님의 대적이 되므로
에스겔 38:2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곡 곧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3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로스는 러시아, 메섹은 모스크바, 두발은 북서시베리아의 '투발스크'인데, 이 땅을 다스리는 '곡'이라는 왕에 대해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대적하여"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위 지역과 그 땅을 통치하는 왕은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주님도 그들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대적하는 대상은 반드시 그들도 하나님께 대항하기 마련입니다.
2. 온갖 적기독 무리의 대장이 되므로
에스겔 38:7 "너는 스스로 예비하되 너와 네게 모인 무리들이 다 스스로 예비하고 너는 그들의 대장이 될지어다"
러시아 땅의 왕인 '곡'은 자기 나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가증한 무리들을 다 이끌고 그 무리의 대장이 될 것이므로, 러시아 땅의 왕 또는 러시아 영토가 속한 어떤 큰 연합체를 다스리는 한 왕이 적그리스도가 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3. 말년 곧 끝날에 나타나므로
에스겔 38:8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에스겔 38:16 "구름이 땅에 덮임 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로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니라"
"말년"과 "끝날"이라는 표현은 러시아 땅을 지배하는 왕이 인간 종말의 최후 적그리스도 등장하였다가 멸망할 것을 알려줍니다.
4. 모든 선지자들이 공통으로 말한 그 자이므로
에스겔 38:1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옛적에 내 종 이스라엘 선지자들을 빙자하여 말한 사람이 네가 아니냐 그들이 그때에 여러 해 동안 예언하기를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그들을 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
많은 이들이 러시아를 배제한 채, 유렵연합의 통합대통령에만 관심을 갖고 있지만... 실로 종말에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 세상을 요란케 하다가 멸망할 자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왕 곡>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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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선택과 역사
- 요한복음 15:16~20 -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인생 자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주님의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역사이니, 이 역사를 방해할 자는 전혀 없다. 주님께서 택한 종을 시련 받게 하는 것도 역사 하기 위한 방법이요, 핍박을 만나게 하는 것도 역사를 하기 위한 방법이니, 택함 받은 종으로는 아무 것도 염려할 것 없고 두려워 할 것도 없이 순종 할 것 뿐이다.
선택이라는 것은 무소불능 하신 하나님께서, 예지와 예정 아래서 택한 것이니 주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거리에 거룩한 예복을 입고 왕래하였지만, 그 사람들 중에는 택한 자가 없으므로 그들은 오히려 메시야를 반대하는 운동에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요한복음 10:26~31). 인간이 볼 때는 아무리 거룩한 자 같고, 진실한 자 같지만 택한 자가 아닌 자들은 중심(진심)으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고, 자동적으로 형식을 따르게 된다. 이제 택한 자에 대한 주님의 역사를 본문에서 읽으면서 알아보기로 하자.
1. 택하여 세움 (16상반절)
주님께서 택하여 세우는 일은, 택한 자가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세우는 것이니 택함을 입는 자의 입장에서는 뜻밖에 홀연히 이루어지는 일로 되는 것이다. 벳세다 동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자기네가 사도가 되리라는 것은 생각조차 못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역사라는 것은 종 된 사람이 어떤 계획이나 방법을 세우는 것이 아니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되어지는 일이므로 오히려 자기 사명을 모르고 떠는 마음도 가지게 된다. 베드로가 부름을 받을 적에 “주여, 나를 떠나소서” 하고 떨었던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누가복음 5:8).
사람이 주의 일을 할 때에 자기의 어떤 욕망이나 기대를 가진다는 것은 성서적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소망 없는 자리에서 양심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택하신 하나님 편에서 그를 찾아와서 강권으로 깨우쳐 주고 붙들어서 쓰는 것이니, 누구든지 스스로 섰다 하는 사람은 자칭 선지가 될 것이다.
금일에 와서 아무런 체험이 없이 신학을 나오고 시취를 받고 주님께로부터 특명을 받은 일이 없이 나선 사람에게는 어떠한 주의 역사도 없는 것이니, 주의 종이 되는 자는 주님이 채워 주시는 체험을 확실히 받은 자가 되어야만 참으로 택함받은 종이라고 보게 된다. 어떤 종이 자기는 아무런 체험이 없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이 어떤 큰 체험을 받고 나오는 것을 오히려 이단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자동적으로 외식하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2. 기도의 응답이 있음 (16하반절)
택한 종의 기도라는 것은 주님께서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권으로 시키는 일이 있는데, 심지어 징계까지 하는 일이 있다. 어떠한 종이 기도를 하기 싫어하고, 기도를 하지 않아도 아무런 징계가 없다면 이 사람은 주님께서 택한 종이라고 보기 어렵다. 택한 종이라는 것은 무엇을 내가 얻겠다고 구하므로써 주님이 준다는 것보다도, 주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기도할 목적까지 알려주시는 체험을 받는 자이다. 우리의 참된 기도라는 것은 '억지'로는 행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무시로 되는 것인데, 이런 기도만이 성령이 시키는 기도라고 보게 된다(로마서 8:27). 택한 종의 기도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① 항상 기도를 하게 되는 일이요.
② 중심에서 불타는 마음을 금할 수 없는 일이요.
③ 구하기 전에 먼저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일이 있으므로 뜻밖에 더 큰 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느 종이나 택함 받은 종이라면 자기가 기도하지도 않던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 체험을 갖게 된다. 베드로가 기도할 때 자기가 메시야가 오면 수제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일은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한 일도 전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하려고 기도했는데 이루어지는 일은 전혀 뜻밖의 다른 것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바로 택한 종의 기도 응답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앞날에 될 일을 모르는 존재이니만큼, 구하는 바가 그대로 이루어지기보다 예상치 못한 더 큰 일로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열매가 더 많아지는 택한 종의 역사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그 양심에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할 때 그는 두려워서 떨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한 번 설교할 때에 3천명이 회개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생각 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3. 서로 사랑하게 된다 (17~20)
택한 종이 된 자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은 도덕을 초월한 일인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오거나 심지어 옥중에서도, 불 속에서도, 환란 속에서도 서로 변치 않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택한 종들의 사랑의 단체라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은 주의 손에 붙들린 종으로서 사랑의 도구가 되는 것이니 여기에는 억지가 있을 수 없고 도리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도 기뻐하는 단계까지 들어가는 것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단체다. 금일에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동역자의 잘못을 흠잡아 보려는 마음에 붙들렸다는 것은 성령이 떠난 사단의 회의 열매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사랑이라는 것은 세상과는 원수가 되는 사랑이다. 세상과 싸우는 단체이니 세상이 미워하는 것이다. 금일에 종들이 세상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택함 받은 종으로서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미워하는 것은 주님이 택한 증거라는 것을 본문에 말했다. 주께서 싸우던 싸움을 이제 택한 종이 싸우는 것이니 우리는 끝까지 세상과 싸워서 승리의 열매를 얻는 것을 <택한 종의 역사>라 하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의 특색은 택한 종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만일 택한 종이 없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세상과 다른 점이 있을 수 없고 오히려 세속화된 교회로서 세상에 밟힌 바 되어 아무런 열매 없는 나무가 될 것이로되, 택함을 받은 종으로 말미암아 되는 일은 세상에게 미움을 받고 멸시를 받고 압박을 받는 일이지만 도리어 이러할 때 초인간적인 역사가 나타나므로 세상 사람들까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종 앞에 전부 굴복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타협적인 노선에 아무런 역사가 없게 될 것은 타협이란 택함 받은 종의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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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함을 얻은 자의 기도
- 요한1서 3:13~24 -
하나님은 거짓이 없는 신이시요, 능력이 무한한 신이신지라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에게 역사하는 신이시다. 기도라는 것은 마귀와 싸우는 전쟁에서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해주실 줄 믿고 구하는 것이니 누구든지 원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세상일에 끌리지 말고, 담대히 믿고 구하는 자라야 큰 열매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어떤 자라야 담대함을 얻을 수 있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16~19)
형제를 해치고자 하는 자는 비겁한 자요,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자는 담대한 자이다. 왜냐할 때에 형제를 해치려는 자는 그 마음에 은혜가 떠나고, 극도로 고통이 있고,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니 이것은 그 영이 활동을 못하는 증거다. 영이라는 것은 남을 살리고자 하는 일에만 활동하는 것이요, 해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적에 이것은 육의 정욕을 따라오는 것이니 영에 따라 움직이는 자는 담대함을 얻어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육을 따라 움직이는 자는 기도의 힘을 잃고 극도로 약한 자리에 떨어지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마음이 불탈 때에 하늘로부터 오는 큰 힘을 얻게 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싸울 적에 구하는 대로 응답이 나리는 것이다.
2. 양심에 가책이 없게 하는 자 (20~21)
사람이라는 것은 양심이 있는 것이니 누구나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할 때에 자동적으로 약해지고 겁이 나는 마음이 생기므로 그 사람은 하나님을 상대할 수 없고, 사람 앞에 보이려는 가면을 쓰게 된다. 이렇게 되므로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사람의 눈을 맞추어 일을 해 보려고 할 때에 그 사람은 기도할 수 없는 영이 되어 아무런 활동을 못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회개하고,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보다도 “하나님이여, 나를 아시나이다”라는 양심에서 나가는 자라면 그 영은 하나님과 상대되는 심령으로 나날이 소성을 받아 담대함을 얻는 용사가 되어 하나님과 씨름하는 기도의 생활에서 야곱과 같이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지는 승리의 용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이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할 때에 용서 없이 징계를 나리는 것은 구하는 대로 주기 위한 목적이니, 언제나 양심적인 생활에서 하나님을 상대하는 생활이 있다면 기도의 큰 열매를 가져오는 사람이 될 것이다. 가장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인격을 찾지 않고, 사람 앞에 담대히 서려는 수단을 부리는 자이다.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큰 과오를 범하는 근본이 된다.
3. 주안에 거하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22~24)
인간이라는 것은 주님 품 안을 벗어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에는 타락의 본질과, 사망의 법인 마귀를 벗어날 수 없는 죄의 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5:6을 보면 사람이 내 안에 있지 않으면 열매 없는 나뭇가지같이 되어 불에 사름을 당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맡긴 사명에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자라야 주는 그 안에 있고 그는 주안에 있어서 담대한 사람이 되는 동시에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는 실천이 있고, 주님께서 가르친 말씀을 그대로 믿는 자에게 이루어지는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최고 인격은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는 것이니 이러한 자라면 무엇이나 구하는 대로 열매를 맺게 된다.
결 론
기독교는 담대함을 얻어 기도로 승리하는 것이 있으므로 흑암의 권세 아래서 죄인들을 해방시켜 천하에 교회를 확장시켰고, 종말에도 담대함을 얻은 자들이 기도로 승리할 때에 세계를 정복하는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된다. 누구든지 주안에 거하는 자라면 주의 임하시는 날에 담대함을 얻는 동시에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요한1서 2:28).
언제나 하나님께서 원수의 세력을 강하게 하시는 것은 담대함을 얻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으로 승리케 하기 위한 선한 방법이니, 우리들은 이 시대에 담대함을 얻어서 기도로 승리하는 용사가 되어야만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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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과 유익
- 디모데전서 4:6~16 -
인생은 피조물이다. 피조물이라는 것은 완전하게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고, 완전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지음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령의 사람으로 창조했지만, 죽은 영이 된 우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둘째(마지막) 아담 예수님의 십자가의 부활로 우리 죽은 영을 (다시) 생령이 되게 하고, 생령된 사람으로서 전부가 아니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 데에 따라서 나날이 발전할 수 있는 자가 생령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연습과 유익"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본문으로 알 수가 있다.
1. 선한 교훈을 받는 일이다 (6)
아무리 중생을 받은 자라도 잘못된 교훈을 받으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이요, 좋은 교훈을 받아서 양육을 받을 때엔 옳은 진리 가운데서 날마다 마귀와 싸우는 생활이 있으므로 나날이 연습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연습이라는 것은 몸에도 필요하고, 영적으로도 필요한데 가장 유익이 되는 것은 영적 씨름이라고 본다(에베소서 6:12).
하나님께서 중생 받은 자를 언제나 악령과 싸우는 생활에서 날마다 일취월장(日就月將)하도록 연습적인 생활을 시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중생을 받았다 해도 아무런 연습이 없이 잠자는 상태에 있다면 그 생활은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이다.
2. 수고하고 힘을 다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7~10)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힘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중생 받은 사람은 소망을 하나님께 둔 것이니,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소망에 필요 없는 말이나 교훈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신데, 진리라는 것은 우리에게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고, 역사라는 것은 진리를 따라 있고, 진리를 따르는 역사는 목적을 진리에다 두고 수고하며 애써 힘을 다할 때라야 진리대로 이루어지는 열매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있다 하여도 가만히 있는 자에게는 아무런 역사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역사하되 수고하고 힘을 다하는 자에게만 역사하는 것이다.
3. 본이 되고자 하여야 한다 (11~15)
하나님의 종이 되려는 자에게 언제나 실천적인 본이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런 열매가 없는 나무와 같이 될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인격을 이루는 것이니 진리를 가르치는 자가 인격을 상실한다면 생명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라고 했고, 항상 조심해서 전심전력을 다하며 진보적인 사람이 되라고 눈물겨운 부탁으로 글을 썼던 것이다. 청년이라는 것은 진보적인 사람이 되어야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종이 된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내려다 보실 때에 어떡하든지 모든 일을 바로 해보려고 애써 연습하는 자를 바로 되도록 해 주는 것이니, 이것이 하나님의 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성령은 완전한 신이지만, 원치 않는 자에게 역사하는 것이 아니요, 간절히 원하는 자에게만 역사하는 것이다. "연습과 유익"은 사람의 할 일에 성신의 역사가 합해지므로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결 론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화시키는 신이 아니시고, 사람은 연습하면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몸도 연습에 따라서 유익이 있는 것인데, 몸의 연습에는 성신의 역사가 필요 없으나, 영적 진리의 경건을 위하여 연습하는 데는 초인간적인 신의 역사가 같이 함으로써만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데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디모데후서 3:17).
디모데전서 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着念)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 의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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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 하게 하신 예수께 감사할 일
- 디모데전서 1:12~17 -
기독교가 세계를 통일할 역사에 대해서 말하자면, 아무리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람이라도 그리스도는 그 사람을 버리지 않고 불러 능 하게 만들어서 그리스도의 정병으로 피 흘리기까지 싸우도록 하는 역사가 있으므로 아무리 원수가 많은 세상에서라도 대 종교를 이룬 것이다. 생명의 종교라는 것은 율법과 도덕을 초월하여 사람을 능하게 만들어서 역사하게 하는 것이니 능 하게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충성되이 보시므로 (12)
주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것이니 사도 바울이 아무리 기독교를 박해하는 사람의 하나이었으나 주님이 보실 때에 충성된 사람인 것을 아시고 불렀던 것이다. 인생(Life 人生) 중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고 다 죄인이지만 주께서 보실 때에 충성되이 나가려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깨닫게 해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시고 지혜롭게 하시되 모든 일을 능하게 하도록 주님은 역사를 나리어서 쓰시는 것이다.
주님의 보시기에 "충성"이라는 것은 조금도 외식이 없고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디모데후서 1:3). 바울은 아무리 기독교를 반대하고 나왔지만, 바리새교인 중에도 외식하는 자가 아니요, 정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다. 누구든지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알지를 못하고 실수하고 넘어진다 하여도 주님은 그 사람을 찾아서 다시는 넘어지지 않도록 능 하게 들어 쓰시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할 때에 짐짓 알고도 자기의 욕망을 채우겠다는 것이 있는 자는 주님께서 절대로 응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주님을 따라오며 주를 위해서 일해 보겠다는 자라도 중심에 정욕을 따르는 자라면 그 사람은 오히려 주님께서 버릴 것이로되 몰라서 진리를 반대한다 하여도 옳은 양심으로 충성을 다 하려는 마음이 있는 자라면 그 사람에게 주님은 나타나는 것이다.
2. 긍휼함을 입은 자다 (13)
긍휼이라는 것은 완전한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고, 넘어지고 쓰러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니 인간이 충성을 다해 보다가 인간으로서 깨닫지를 못하고 쓰러지는 자라면 주님은 불쌍히 보고 그 사람을 깨닫게 해서 너그러이 용서하고 그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시고 능하게 하셔서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주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율법자요, 바리새 교인이요, 유대교의 가장 지나친 열심을 가진 자였다(갈라디아서 1:14). 우리가 주님 앞에 긍휼함을 받는 것은 열심으로 힘을 다하여 나가던 자에게 있는 것으로, 예를 든다면 누워서 잠자는 자보다도 넘어지더라도 열심 있게 나가는 자를 주님은 더 긍휼히 보시는 것이다. 바리새 교인을 보고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던 주님은 바리새 교인 중의 하나인 바울이 기독교를 없애려는 폭행을 하며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주님은 공중에 나타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음성으로 그를 깨우쳐 주었던 것이다.
오늘도 택한 종이 열심 있게 일해 나가다가 지나친 열심을 가지고 알지 못하는 도중에 실수가 있더라도 주님은 그를 버리지 않고, 찾아와서 붙들어 주며 깨우쳐 주는 일이 있으므로 만이 앞으로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도 바울이 과거에 사도들과 대적이 되어서 성신이 충만한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하고 나갔지만 강권으로 사도 바울은 사도와 같이 하나가 되게 한 것을 보면 종말에 종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고, 주님께서 직접 택한 자를 긍휼히 보시고 깨우쳐 주고 만이 하나가 될 것이다.
지금도 진실한 종들 중에 기독교의 종말관을 모르고 이 진리 운동을 핍박하는 자가 있지만, 그 종들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충성된 자라면 불쌍히 보고 깨닫게 하므로 하나가 되게 하실 것이다.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이 월간지를 이 시대에 발행하게 하는 것은 충성된 종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 역사라고 본다.
3. 믿음과 사랑이 넘치게 하므로 (14)
믿음과 사랑이라는 것은 인생(Life 人生)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택한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누구든지 과거에 자기 부족을 절실히 깨닫고 충성을 다 하려는 자에게는 믿음도 사랑도 주시는 동시에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케 해서 그리스도만을 자랑할 수 있는 능력의 종이 되게 하신다. 우리가 넘치도록 받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충성된 마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누구든지 충성된 사람이라면 바울에게 주던 몇 배를 더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역사할 때보다도 더 악하고도 무서운 환란이 앞에 있으므로 충성된 종들에게 더 강한 역사를 부어 주시는 것이다(요엘 2:29).
기독교의 역사상 가장 넘치도록 주시는 때는 지금이라고 보게 된다. 아무리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지만 당신의 종들에게 이슬과 단비같이 역사를 나리어 수풀 속의 사자같이 강하게 쓸 때가 즉 이 때라고 보게 된다(미가 5:6~9). 왜냐하면 주님은 원수 세력이 강할 때는 당신의 종을 더 능하게 해서 들어 쓰기 때문이다(이사야 41:14~16, 25).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 때는 능하게 쓸 때이니 자다가도 마땅히 각성을 받고 일어날 때다. 이사야 60:1 이하를 보라! 우리는 강하게 일어나면 무한한 축복이 올 것이다.
결 론
가장 기뻐하고도 만족한 생활은 능하게 된 종의 생활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죄인 중에 괴수가 되는 바울이 그 손으로 성경을 14권이나 썼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오늘에 가장 복된 자는 모든 선지들이 쓰러지며 압박 속에서 묵시를 보던 심판의 다림줄이 우리 동방에 나타나서 가장 무식하고도 못난 지렁이 같은 종의 입을 통하여 얼마든지 진리의 변론을 말하도록 해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되는 일이다. 전부가 그리스도께서 나를 능하게 하는 일이라고 자랑할 수밖에 없다.
디모데전서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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