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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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할 일

- 이사야 40:9∼11 -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비밀의 진리를 말한다.


이날까지 기독교에서 전한 비밀은 누구든지 십자가의 보혈을 믿으므로 죄를 사한다는 비밀이다.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 일을 하던 예수 한 분이 죽으므로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죄가 사하여지고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이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시민권을 받는다는 비밀도 인간의 지혜로써는 알 자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이사야 40:1∼5까지의 예언이 자기에게 응하였다고 하면서 외치는 증거를 오히려 유대인들은 반대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사렛 목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증거하기 때문이었다(요한복음 1:19∼34).


이제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시온이 되고 예루살렘이 된 교회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할 때는 어느 때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1. 강한 자로 임하실 때다 (9∼10상반절)


하나님께서 어린 양 예수의 보혈을 통하여 죄인을 부를 때는 잠잠히 계셨고 모든 종들을 들어 쓸 때 아무리 핍박이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는 일이 있다고 해도 때가 올 때까지 잠잠히 계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아들을 보내서 죽기까지 순종케 한 하나님의 사랑이 세계에 알려지는 때이니 만큼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를 보시고 모든 죄인을 부르시는 역사이므로 아들을 보내서 털 깎는 자 앞의 소리 없는 양같이 아무런 입을 열지 않고 죄인들에게 악행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그 무리를 위하여 이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요 하는 기도로 죄인을 용서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둘째 : 무조건 용서해 주라는 해방 운동이니 이 해방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한 분이 죽기까지 순종했으므로 이루어지는 해방이다. 이 해방은 단체적인 해방이 아니고 개인 개인의 영혼이 해방을 받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방 세력이 억압을 하고 압박을 해도 그 사람의 영혼을 죄에서 해방해주면 아버지의 뜻은 다 이룬 것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영적 해방이 아니고 시온의 자녀를 압박하고 죽이고 쫓아내던 그 세력을 모두 지상에서 없애버리는 역사이다. 이를 행하러 오시는 주님은 강한 자로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째서 "아름다운 소식"이 되느냐면 시온을 통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날까지는 영혼 구원을 목적한 운동이므로 악한 세상이 악한 자의 정권 아래에서 아름답지 못한 더럽고도 누추한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강한 자로 오시는 주님은 아름답지 못한 정치나 종교나 또는 어떠한 단체든지 침략의 정신을 가지고 남을 해 코자 하는 마음에서 자기의 복리를 도모하는 자나,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한 아름다운 시대를 목적하지 않고 현실주의로 흐르는 사람들을 다 없애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지므로 만이 아름다운 시대가 온다는 것을 정확히 가르친 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란 것이다.


2. 친히 그 팔로 다스리는 일이다 (10중반절)


이날까지는 이 세상을 악한 자에게 맡겨서 다스리게 했으므로 의인이 악인에게 억압을 당하고 진리가 비 진리에게 피해를 당하고 거룩한 단체가 속화된 단체에게 축출을 받고 거짓된 사람들이 정직한 사람을 모함해서 죽이는 일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친히 팔로 다스릴 때는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를, 정직한 자가 거짓된 자를, 거룩한 단체가 속화된 단체를, 진리의 역사가 이단적인 세력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시온이라도 하나님과 의합된 시온만이 남아서 아름다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은) 각 사람의 인격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목적하고 잠잠히 역사하지만 친히 팔로 다스릴 때는 잠잠히 개인에게 역사해서 아름답게 할 때에 아름다워진 자라야 아름다운 시대의 왕권을 받고 시민권을 받게 되는 것인데, 하나님의 종이라도 아름다워진 자라야 남은 자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 중에서도 아름다워진 자가 새 시대에 들어가는 것을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이다.


3. 상급과 보응이 있음 (10하반절)


이날까지의 거룩하고 지혜롭고 정직하고 사랑의 심정을 가진 자들이 억울하게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한 것은 상급을 주기 위한 목적이요 아무리 악한 자라도 권세를 그냥 주어서 역사하게 한 것은 원수를 갚아주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왜냐하면 악한 자가 강하게 일어나도 정직하게 나가고 담대히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자가 왕권을 받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악한 자들은 자기네가 영원히 주권을 쥐고 지상을 지배할 것 같았으나 보응의 날에는 악하고 강한 세력은 모두 없이하고 아무리 미약해도 아름다운 소식의 말씀을 겸손히 받는 자만 말씀에 의하여 보호하고 그 밖의 세력은 다 없애는 것을 하나님의 종말의 역사라는 것이다.


4. 택한 자를 안아주고 인도하는 일 (11)


지금 하나님께서 - 택한 자가 악자에게 억울함을 당하고 멸시를 받기를 애굽이 이스라엘을 압박할 때에 잠잠히 있듯이 때가 찰 때까지는 - 당신의 백성을 안아주고 인도해주는 일이 없는 것같이 쓴 잔을 맛보게 하고 고통 중에 부르짖어도 큰 역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과연 안아주고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한 목적이다.  


이날까지의 인도라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죄를 범하는 사람을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인도이지만 여기의 인도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재앙을 받고 환란 중에 쓰러져 죽는 날이라도 당신의 '시온'은 안아주고 인도하는 것은 환란과 재앙을 받지 않고 아름답게 보호하고 아름답게 인도해서 아름다운 소식의 요지를 간단히 말한 것이요, 40:30 이하와 이사야 전체는 아름다운 소식을 구체적으로 말씀한 것이니 동방 역사가 이사야 41장같이 일어나서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을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이다.


결 론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가 높은 산에 올라간다는 것은 성산을 가르친 것이니 이 성산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소식의 말씀이 임한 산을 말한다. 이사야 25:6에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연회를 베푼다"고 하였고, 7절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라고 하였고, 10절에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난다"고 했으니 말세에 맑은 포도주와 같은 아름다운 소식이 나타난 산이라고 보게 된다.


앞으로 기독교는 개 포도주를 먹고 취하는 자가 이사야 28:7과 같이 있고, 맑은 포도주를 먹고 심령 소성을 받은 자가 이사야 55:1∼3같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가 높은 산에 오른다는 것은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므로써 완전히 이 소식을 전하게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사야 40:3에 광야라고 말씀한 그대로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쳤다면 기독교 종말에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한 것도 실제 높은 산으로 보아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월간지를 발행하는 이뢰자 목사는 새일수도원이 자리잡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굴속에 자리 잡고 기도하다가 새 힘을 받고, 입에 말씀을 받아서, 얼마든지 각종 서적이 그 입에서 말하는 대로 받아 쓰면 성경을 보지 않고도 환하여지는 진리가 햇빛같이 나타나서 새일수도원의 학과인 성경해석법, 요한1서 강의, 선지서 강의, 계시록 강의, 인간론, 새일성가집, 또는 말씀의 칼과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가 달마다 70페이지를 발간하여 금번 11월 호를 발행케 된다. 누구든지 이 책을 읽어보면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일의 대표자가 누구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사야 40: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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