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새일중앙교회 새일말씀 +5055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0302_이사야43장04절~



[수 오후 설교] 이사야 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리라" 2016/03/02 Wednesday Afternoo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זרובבל משימה"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0301_D_예레미야애가02장



[수 새벽 설교] 예레미야애가 3장 : 환난 중에 하나님을 앙망함 2016/03/02 Wednesday Daw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זרובבל משימ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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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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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예레미야 애가 3장

제목 : 환난 중에 하나님을 앙망


1. 재화에 대한 선지자의 탄식 : 1~20


『 1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 2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3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 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꺾으셨고 5 담즙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6 나로 흑암에 거하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7 나를 둘러 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9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사 내 첩경을 굽게 하셨도다 10 저는 내게 대하여 엎드리어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의 사자 같으사 11 나의 길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로 적막하게 하셨도다 12 활을 당기고 나로 과녁을 삼으심이여 13 전동의 살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14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15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16 조약돌로 내 이를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17 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 버렸음이여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


참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민족을 대표한 처지에서 자기 민족이 당한 고난의 의의(意義)를 보여주고 있다. 당한 고난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암담한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1) "흑암"과 같은 혼돈(2절).

2) "종일토록" 구타를 당함과 같은 괴로움(3절).

3)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뼈를 꺾는 것" 같은 고통(4절).

4) "담즙" 곧 쓸개즙과 같이 쓴 것과 수고로 사방이 에워싸이는 절망과 답답함(5절). 70년간 고난을 벗어날 길은 없게 됐다.

5) "죽은지 오랜 자"같이 된 절망(6절). 시편 143:3참조.

6) "결박" 당하여 꼼짝할 수 없는 부자유(7절). 욥기 19:8, 시편 88:8참조.

7) "기도응답"은 커녕 상달조차 되지 않는 것 같은 버림받은 느낌(8절). 70년간은 아무리 괴로워도 응답을 주실 수가 없다. 하박국 1:2. 그러나 진노기간이 끝나면 응답하신다(하박국 2:1~3, 시편 91:15, 시편 102:2, 잠언 18:10, 이사야 65:24, 요엘 2:32 참조).

8) "다듬은 돌을 쌓아" 길을 막아 놓은 것이 절대자의 간섭임을 깨달음(9절).

9) 하나님의 징계가 대기(待機)하였다가 달려드는 "곰과 사자"의 공격같이 느껴짐(10절).

10) "몸을 찢는 것" 같은 고통으로 느껴짐(11절).

11) "적막한 처지"에 빠져 희망의 서광을 찾아볼 수 없는 처지(11절).

12) 겨누어 쏜 "활"에 맞은 것처럼 괴로움(12~13절).

13) "조롱거리"가 된 듯한 수욕감(14절, 예레미야 20:7 참조). 에스겔 선지자도 자기 백성에게 속담거리가 되었었고(에스겔 12:22), 노아도 산 위에 쓸모 없이 큰 배만 짓는다고 모든 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었었음. 말세 종도 같은 길을 가야 함.

14) 먹지 못할 "쓴 것"을 억지로 삼켜야 하는 고통(15절).

15) "돌" 섞은 식물을 먹다 "이"가 부러지게 된 자의 고통과 허탈함(16절).

16) "재로 덮은 자"와 같이 비천케 된 처지(16절 하반).

17)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므로" 복은 자취도 찾을 수 없게 된 절망(17절).


『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


선지자는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라고 아뢰며 낙심 중에 기도하지만 21절 이하에 소망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2. 하나님의 긍휼과 성실을 앙망 : 21~23


『 21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시다(찬송가 82장). 알곡에게는 그분의 초림도, 재림도 최고의 살아생전 최고의 소망이 된다. 구약 교회가 선지자의 예언을 무시하다가 북방 칼에 잡혀갔으나 70년(예레미야 25:11, 예레미야 29:10)이 지나면 스룹바벨 총독의 인도로 귀국하여(에스라 1:8, 세스바살=스룹바벨 총독) 학개,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스가랴 8:9)대로 성전을 재건함이 그들 최후의 소망이었듯이... 기독교 종말에도 다시 예언하라(계시록 10:7~11) 하신 재림 예수님의 명령을 패역한 자들은 반대하다가 북방 칼에 잡혀가 죽게 되지만, 순종하는 스룹바벨 단체 144000 명에게는 이 명령이 새 시대를 향한 최후 소망이 되는 것이다. 이 소망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예수님이 순종한 144,000과 더불어 지상강림하심으로써 새 천년 안식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레미야 31:15~22절에 기록되길 야곱의 부인 라헬이 자식이 없어 울 때 최후의 소망은 :22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하신 말씀이었다. 이는 "큰 이적"으로서 바로 계시록 12:1~5절에 나타난 내용과 동일하다.


3. 환난을 참고 하나님을 대망할 것 : 24~33


『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  


여호와는 우리의 기업이시다. 예레미야 51:19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 이사야 19:25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 지어다"


하나님은 창세기 13:14~17, 22:15~18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다 주셨다. 주시되 400년 후에 (유월절이 성취되므로) 주신다고 언약하셨다(창세기 15:13). 구약 때의 표면적 400년은 출애굽기 12:40~ 430년 만에 이루어진 모세의 출애굽역사로 이루어졌고, 이면적 400년은 마태복음 27장에서 이루어졌는데, 말라기 1:10절의 말씀대로 성전 문을 닫은 지(예언자가 끊긴 지) 430년 만에 예수님이 양의 문, 성전의 문(요한복음 10:7,9)으로 오셔서 십자가상에서 유월절 양으로 화목제사를 완성하심으로써 우리의 소망은 성취되었다. 이 기쁜 소식을 사도행전 1:8절같이 "땅 끝까지" 전하느라고 2000년이 걸렸고, 이 은혜의 기간동안 양의 문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구원을 주셨다(베드로전서 1:9).


반면, 육체구원은 70년 만에 이루어지는 출 바벨론 역사인데 표면적으로는 B.C. 606~536년까지의 70년 세월이었다. 썩은 것을 도려내고 새로운 순 같은 스룹바벨 단체가 귀국해서 성전을 재건한 역사가 70년 회복이었는데(순의 역사), 이것이 이면적으로 성취될 사명의 장막이 영적 유다인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1905~1975 / 70년 회복이다. 스가랴 1:12). 일본을 들어 이 나라를 노하실 때로부터 70년이 차매, 학개서에 기록된 날짜 9월 24일날에 지대를 놓아 제단을 세우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인 맞은 종들 144000명을 불러모을 다림줄, 머릿돌의 권세가 장전된 것이다.


우리가 이 동방역사에 기록된 말씀대로 죽도록 충성하면 세계의 선구자적 동무 종들(144,000)이 자연스레 하나가 되어 모이되 무신론, 이방종교, 정치협상, 종교통합 운동 등의 비진리 세력에 성경대로 맞서 죽기까지 싸워(다시 예언) '여호와만이 참신'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전 세계의 흰무리들이 회개하고 쏟아져 나오도록 역사하게 된다. 이들이 해산수고를 다할 때 천년왕국이 건설되어 아담이 빼앗긴 땅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 세계 알곡들에게 선포할 사명이 동방 유다나라의 선구자적 종들과 전 세계의 144,000명에게 있는 것이다. 이들은 황충떼가 일어나 인 맞지 못한 자들을 괴롭히는 5개월 동안 세계적으로 강하게 외치다가 3차대전 직전에 적그리스도의 손에 의해 순교할 것이다. 수를 채운 순교자의 동무 종들이 역사를 마치면 예수님은 이들을 불러 올리시기 위해 공중에 재림하신다(계시록 11:1~12).


구약 유다를 통해 보여주신 400년과 70년이라는 1차, 2차 역사가 새 언약, 새 일의 실질적 역사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신약과 종말의 역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3대절기 중 유월절, 초막절에 해당하는 역사이다. 기독교가 영혼구원으로 시작하여 완전한 영,육 구원으로 마무리된다는 데에는 이러한 두 가지 연대(400년, 70년)와, 두 가지 약속(새 언약, 새 일), 그리고 3대절기라는 배경이 있는 것이다.


천년왕국은 순교자와 변화성도라는 1차부활 받은 자와, 이 땅에서 육체가 살아 들어가는 백성들(예비처 흰 무리)로 이루어지기에 몸의 구속, 육체구원, 육체보호는 더 이상 이단적 내용일 수 없다. 오히려 기독교 종말론의 핵심적 내용이 된다. 핵심을 말할 때가 되니 마귀가 총동원되어 방해하고 있다. "기업"이라는 것은 몸을 가진 인간이 받아누리는 재산이자 터전인데, 왜 이 시대의 기독교는 기록된 피조세계의 참다운 회복인 천년왕국을 간과하고 곧바로 영체가 누리는 무궁안식시대(천국)부터 가려고들 하는가? '제7천년기'로 작정된 땅의 안식을 거쳐 '제8천년기'인 무궁안식 세계로 이전하여 주님과 영원토록 동거 동락하라는 것이 성경이 명하고 있는 구원의 정로(正路)이다. 우리는 학창시절의 경험을 통하여 공부 못하는 학생이 꼭 '영어' 시간에 '수학' 책을 펴놓는다는 진리를 안다. 지금은 '천년왕국' 수업시간이다. '천국' 수업은 이전에 지나가지 않았는가? 그러나 흑암이 와서 덮어 버리니 다음 시간 수업교재도 펴놓지 못하고 졸며 앉아 있는 것이다. 선생님(재림 주)은 이런 학생을 교실 밖 복도로 내쫓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있으라" 하실 것이다(마태복음 25:12, 26~30).


하나님은 저주가 삼킨 땅에서 저주를 물리쳐 주시어 에덴이 다시 금 회복되도록 역사 하시려 한다.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온전한 땅의 축복을 누리는 것을 보셔야만 물질계를 창조한 목적을 달성하시게 된다. 그 때 다시 한 번 웃으시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실 것이다. 계시록 16:17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창세기 1:31 "보시니 심히 좋았던" 알파 때의 기쁨을 종말에 "되었다" 하심으로 다시 맛보시는 때가 바로 천년왕국이다.


창조목적은 물질세계인 천년왕국이 마무리되고 영원무궁세계가 펼쳐짐으로써 마감되는데, 이 거대한 역사는 완전한 안식으로 우리를 데려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되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사랑이요 꿀이로되 이 사랑을 압축할 때 나오는 고농축액이 바로 '로얄제리'인 '새 언약'과 '새 일'이다(렘 31장).


새 언약 = 예레미야 31:31~34, 누가복음 22:20,

히브리서 9:15절의 유월절 양의 역사이다(고린도전서 5:7).


새 일 = 이사야 42:9, 이사야 43:19, 이사야 48:6,

예레미야 31:21~22절의 예언으로 출바벨론 역사, 철장권세 역사이다.

영육구원, 가족구원, 세계통일의 역사이다.


『 25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  


"기다림(25~26)" 하나님의 언약인 70년을 기다림이다. 다니엘 9:1~3절에 다니엘은 바벨론 속에서 하루 3번씩 기도하며 기다리다가 연수를 깨닫고 유다의 회복을 보았다.


"멍에를 메는(27~29)일"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의 특별한 사명(예레이야 1:5, 에스겔 1:3)을 말하는데, 시대마다 이 멍에를 메야 하는 대표자가 있다. 율법은 모세에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다(요한복음 1:17). 환난시대에는 학개서 2:23절에 스룹바벨을 하나님의 인(印)으로 택하셨다.

"혼자 앉아서(28절)"란 대표적인 종은 항상 홀로될 수밖에 없음을 보이시는 말씀이다(이사야 11:1~의 한 가지, 이사야 19:19~의 한 구원자, 이사야 45:1~의 고레스의 역사는 인간 종말의 큰 구원을 이룰 때 동방역사 대표적 사명자가 등장하여 일할 것을 알려주는 예언이다).


『 29 입을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32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니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


사명 국가가 예수님 나라를 건설하는 대역사에 불리움 받아 일을 하다가 약하여 범죄함으로 징계나 핍박을 받을 시에는 달게 받는 자세, 아니 오히려 더 많이 받기를 원하는 영적 지혜가 유망하다는 뜻이다.


주님의 때리는 매는 그 끝이 정하여져 있으므로 그 매를 순히 맞으라고 함(30~32, 욥기 5:17~18, 미가서 6:9 참조).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주님의 "본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 고난을 당케 하시는 것은 주님 보실 때 그것이 필요하므로 내리시는 사랑의 징계라는 고백이다(33절).


4. 재난 중에서 반성하고 회개할 것 : 34~41


『 34 세상에 모든 갇힌 자를 발로 밟는 것과 35 지극히 높으신 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 사람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것은 다 주의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37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하랴 38 화(禍), 복(福)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냐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   


① 선민의 억울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 참을 줄 아는 것이 지혜라고 하신다(34~36).

②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주의 명령"에 의하여 되는 것이니만큼 인간은 그것을 잘 참아야 된다고 하신다(37~38).

③ 선민이 고난받는 것은 "자기 죄로 벌을 받음이니" 그것을 원망치 않는 것 역시 지혜라고 하신다(39절).


원죄로 인해 질적으로 타락한 인간을 고난의 풀무에 집어넣어 연단시킴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은 그분의 사랑 담긴 모략이다. 오늘날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생명의 근원인 새 언약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자범죄를 용서한 것이지, 원죄까지 다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 원죄가 사라진즉 육체의 죽음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믿고도 모든 육체가 풀과 같이 쓰러지는 것은 믿음의 법(로마서 3:27)에 의해 마지막 날에 생명의 부활을 주시겠다는 공의의 법인 것이다.


하지만 천년왕국을 앞에 두고 까불어 보는 이 시점에서는 십자가의 도(道)만 전해서는 참 종이 될 수 없다. 만일 십자가의 도(道)만 전파하는 것으로써 기독교가 끝을 바로 맺을 수 있다면, 또다시 예수님이 계시록 5장에서 당신의 피로 책을 사서 사도요한에게 계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새 시대의 문턱에서는 반드시 (쭉정이의) 육체를 심판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육체구원을 위하여 새 일 교훈을 주신 것이다. 육체를 개조시켜서 변화체로 만드시는 일이 없고서는 마지막 주의 종들도 마귀의 손에 의해 다 전멸될 것이다. 그러면 이 땅은 회복될 수 없는 것이다. 고로 기독교 종말에 영과 육을 당신의 몸과 같이 변케 하는 마지막 역사를 남겨두신 것이다(빌립보서 3:21. 로마서 8:23. 에베소서 4:30. 계시록 14:4). 이사야 42:9~ 새 일을 고하고, 43:1~ 육체를 신창조시켜서, 43:19~ 새 일을 행하므로 새 시대에 들여보내 주신다는 약속이 있다. 이사야 57:15~21절에도 거듭난 백성의 탐심의 죄악을 고쳐서 완전케 하신다는 예언이 있고, 또한 이사야 25:6~8, 스가랴 3:9절에도 새겨야 할 말씀을 다 새겨서 하루에 죄악을 제하신다는 약속이 있다.


이 모든 예언들은 십자가 피로 인한 '믿음의 법'을 이루려고 주 신 말씀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바울이나 베드로나 요한의 서신에는 위 구절들 중 적어도 하나는 인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 계통의 어떤 종도 위 구절들을 인용치 못했다. 피로 산 '예언의 법'이 집행될 시기에 성취될 예언은 하나님의 인 맞은 자들이 인용한다. '피'를 흘리시고는, '피로 산 말씀'을 받아서 영혼구원 얻은 기독교회에게 "읽고, 듣고, 지키라" 말씀하신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가? 그것은 영을 죽이는 자범죄뿐만 아니라 육체를 썩게 하는 원 죄악까지 굴복시켜 아름다운 새 시대를 이루시기 위함이다.


현 기독교계에 육체구원이라는 단어는 여간 생소한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이 생소해 한다고 주 께서 기록된 말씀을 가감하실 수 있으랴! 지금은 비록 많은 사람이 믿지 않고 핍박하므로 이 새 일의 일꾼들이 고난의 길을 걷고 있지만, 시편 119:67~74절에 "고난이 유익"이라 하신 것은 새 일의 역사를 통하여 모두가 웃으며 "할렐루야"를 돌릴 수 있는 아름다운 추수의 날을 이루시겠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당당히 믿고 전파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영혼구원'의 역사도 2000년 전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를 거쳐 지중해 일대를 장악하고 아프리카를 거쳐서(16C) 유럽으로 건너가 아메리카 대륙을 경유하여 아시아 장막으로 들어와 동방 땅 끝의 이 작은 땅 대한민국에 전해질 때까지 대적들로부터 얼마나 심한 중상모략과 핍박을 당해왔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 일을 상기해 볼 때, 새 천년 큰 축복을 앞두고 벌어지는 새 일의 동방역사에서 당신의 종들이 다시 한 번 낮아지고 멸시 천대 받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고 감사하게 된다. 동방 새 일의 역군들은 성령님의 동행하심으로 모든 것을 견디며 넉넉히 이기고 나아갈 것이다.


아멘...


『 40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41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


민족을 위해 회개하며 성민의 회복을 바라는 선지의 마음은 이 종말의 기독교에게 지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새 일 역사 앞에 돌아오라는 말로 다시 예언될 수 있다. "행위를 조사하라"는 말씀은 말씀 앞에서 시대를 분별하여 구체적으로 회개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회개나 고침을 이룰 수 없고 오직 여호와의 새 일 교훈으로만 뼛골 속 깊은 데까지 곪은 영적 부패를 치료하여 원죄의 질을 뽑아낼 수가 있다.


예수님의 피로는 자범죄를 씻음 받고(스가랴 13:1~. 이사야 53:1~12. 시편 22장) - 성자의 유월절 역사.

성령님의 역사로는 영적 장성을 얻어 열매 맺음을 받으며(갈라디아서 5:22) - 성령의 오순절 역사.

이제 마지막 초막절기 곧 여호와 성부의 새 일 교훈(피로 산 심판 책)으로는 6,000년 묵은 선악과의 원죄 질을 고침 받아 새 시대 에덴에서 축복을 누리며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 이사야 42장 "하나님의 3대 역사" 참조.


5. 죄로 인한 환난과 그에 따른 비애 : 42~54


『 42 우리의 범죄함과 패역함을 주께서 사하지 아니하시고 』


모든 죄악은 선악과의 원죄로 말미암아 일어나는데 이 죄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해주겠다는 언약서가 바로 성경이라는 책이다.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께서 죄인의 죄짐을 100% 맡아서 해결해 주심에 있어서, 요한복음 19:30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다시 계시록 5:7절의 말씀을 이루셔야 한다.

곧 계시록 6:1~2절의 흰 말 타신 예수님이 "이기고"(유월절-영혼구원) "또 이기는"(초막절-육체구원) 백마 2차 승리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주장하기를 "흰 말은 마귀"라 하나 흰 말은 마귀가 아니요, 오직 '기독교 복음운동'인 진리 역사이다. 두 번 이겨야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하늘의 작정이 "이기고 또 이기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뿐이다.


이러한 하늘의 뜻에 대하여 땅의 인간이 "십자가 승리로 한 번만 하면 됐지 뭘 또 하냐" 한다면 참으로 당돌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성자 예수님은 이기고 올라가시어 당신 피값으로 성부 오른손에 든 책을 사서 그 인을 떼어 요한에게 계시하실 때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라"는 지상명령을 주셨다. 그런데도 그의 피로 산 백성된 자들이 "우리는 예수 십자가로 영혼구원 받았다"라고 말하며 계시록 6:1~2절의 역사를 마귀역사라 한다면 이제 "또 이기시려는" 하늘의 예수님은 참으로 난감치 않으실 수 없다. 사명자로서 분명히 말하건대, 계시록 6:2~ 백마의 "이기고"는 기독교 1차 승리! 곧 어린 양 예수가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음을 뜻한다(골로세서 2:15, 계시록 5:5, 요한복음 19:30, 고린도전서 15:20). 바로 뒤 백마가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것은 기독교 2차 승리! 곧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아버지 손에 있는 봉한 책(구약 모든 예언서의 비밀)의 내용을 열어 보이심으로써 그간 감취어진 '하나님의 비밀'(계 10:7)이 인간 종말에 완전히 개시되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인 계시이다.


세계적으로 왕권을 누릴 종들(변화성도)과 백성될 자들(예비처 흰무리)을 모아 육체구원(보호)을 이루어 새 시대 들어갈 구원의 목록을 마련하는 역사가 바로 "또 이기려고 하더라"로 보여진 백마의 2차 승리 역사이다. 이것은 계시록 19:11~21절 아마겟돈 전쟁의 대 승리로 마무리되는데, 이 땅에 존재하는 원수 마귀(600)와 그 앞잡이 짐승 정권(60)과  그에 빌붙은 거짓 선지 교권(6)을 없이 하므로 끝을 맺는다. 잡히는 과정은, 먼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잡혀 산 채로 유황 불 못에 던져지고(계시록 19:20), 그 다음으로 용이 잡혀 무저갱에 던져짐으로 끝난다(계시록 20:1~3). 이렇게 되면 이 땅은 에덴으로 완전히 회복된다.


이제야 비로소 '눈물'과 '고통'과 '한숨'과 '질병'과 '슬픔'과 '탄식'과 '저주'와 '전쟁'이 사라지고, '사망'까지 사라진 완전구원, 영육구원, 완전안식의 땅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백마가 2번째 이기는 모습으로 보인 것이니 "백마는 마귀"라 설교하는 그 목사가 마귀이다. 만일 모르고 그랬다면 회개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확실히 알고서도 계속하여 "우리는 예수 십자가로 영혼구원 받았다" 말하며 계시록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겠는가? 여전히 여호와의 새 일은 이단이며, 계시록 6:1~2절의 역사는 마귀역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43 진노로 스스로 가리우시고 우리를 군축하시며 살륙하사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 44 주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우사 기도로 상달치 못하게 하시고 45 우리를 열방 가운데서 진개와 폐물을 삼으셨으므로 46 우리의 모든 대적이 우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 47 두려움과 함정과 잔해와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 』


유다 민족의 역경과 곤란은 "진노로 스스로 가리우심", "군축하심(따라잡음)""살륙하심", "기도를 들어주시지 아니하심"(44절)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 밉보이면 이리도 불쌍히 된다. "열방 가운데서 진개(티끌)와 폐물"처럼 천대와 조롱을 받는 것은 이스라엘이 주 앞에 다시 서기 위해 필수과정으로 치뤄야 하는 죄값의 결과이다(45~46).


"두려움과 함정과 잔해와 멸망"(47절) - 극도의 재앙을 뜻함인데, 마음이 강퍅한 죄인들은 이같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회개치 아니한다. 하나님께서 인정사정 보지 않고 이토록 여지없이 벌하신 것은 사랑과 더불어 지켜져야만 하는 공의가 무엇인지를 인간종말을 살고 있는 세계교회에게 일깨워주시기 위함이다. 인간이 죄를 범하고도 죄의 삯을 치르지 않는다면 - 죄 지은 인간을 하나님이 거저 용서하여 주신다면 - 하나님 역시 마귀 앞에 고소를 당하여 꼼짝 못하시게 된다. 하나님은 깡패가 아니시라 공의의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마귀가 하나님께 허락 받은 한도 내에서 참소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랑스런 당신의 자녀일지라도 무턱대고 편들기만을 행하실 수는 없는 것이다. 불법은 하나님의 속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 자녀가 다칠지라도 당신 입에서 나간 공법을 진실하게 집행할 의무가 하나님께는 있다.


이스라엘을 땅 위에서 아주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이렇게 고난의 풀무에 던져 단련시키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 "인간 사랑"에 기인한다. 내 자식인 아담(사람)이 아무리 잘못하여도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부모의 마음... 동시에 마귀를 따라가 죄를 범하는 불의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심판주의 공의(公義)...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간자, 참소꾼, 훼방꾼인  마귀! 마귀는 인간 중 범죄치 않는 자가 하나도 없는 사실을 카메라에 찰칵 찍어 주님 앞에 가져오는 것이다. 죄악의 구렁텅이 속에서 날마다 허우적대는 인간들.... 마귀 참소에 걸리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는 이 사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사실은 한없는 사랑이심과 동시에 '눈이 정결하시어 죄악를 참아보지 못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하박국 1:13)을 난감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인간의 전적인 부패는, 정확하게 집어내어 고소하는 마귀의 참소권에는 더욱 힘을 실어 주는 반면, 인간을 살리기 위해 변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누를 끼치기에 충분할 만한 패역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멋있는 분이신 것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공의를 빌미삼아 인간을 사망으로 몰아가려는 사단 마귀의 참소가 아무리 섬세하고 날카로울지라도 당신의 자녀를 건져내시고 남음이 있는 - 가히 '하나님적'이시라 말할 수밖에 없는 - 엄청난 계획을 갖고 계신 사실에 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의 사랑이 우리의 부족과 그 부족을 공격하는 방해꾼의 참소 앞에 소멸될 정도라면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이 아니로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주(主)시며 야곱의 허물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니 또한번 할렐루야! (민수기 23:21).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으려 손을 뻗던 그 순간부터, 아니 뱀이 인간을 속이려고 하와에게 다가가던 그 순간부터 벌써 인간이 패할 것을 아시고 인간을 살릴 작정을 세워 놓으신 것이다(창세기 3:15,21. 신명기 21:23. 시편 40:7, 22:1~21).


혹시 시기 질투자요, 거짓말하는 자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한복음 8:44)인 마귀의 참소에 걸려 오늘도 양심에서 들려오는 죄의식을 외면하고 자기 힘으로 자신의 수치를 가리워 보려고 무화과 잎사귀 따기에 여념이 없는 중생받지 못한 분들이 계신다면 오늘 주님의 사랑 안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길 주 앞에 간구한다. 마귀의 올무로부터 범죄한 자녀를 살려 내시려는 아버지의 작정이 기독교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데, 진리를 몰라 물없는 샘인 율법(유대교), 또는 이방 종교(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에 속하여 생수를 얻어보려고 애쓰는 수많은 자들이 있다.


그러나 택자라면 "누구든지" 먼저 자신의 더럽고 수치스러운 부분을 조용히 떠올리며 자신이 죄인임을 주 앞에 고백할 때, 죄 없는 그분이 죄인을 달아 죽이는 사형틀에서 비참하게 피흘려 죽어 간 그 사실에 가슴이 미어질 것이다. 택자라면 "성경 속의 십자가 사건"을 묵상해 볼 때 그분의 선물(에베소서 2:8)이 하늘로부터 임할 것이 확실하다.


로마서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행위로는 선(善)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이 알려주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인데, 수 많은 이방 종교와 유대 교회는 행위로써 사람을 꽁꽁 묶어두어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해방(구원)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위에서 오는 선물이란 바로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비천한 인간세계에 내려오시어 인간의 죄를 떠맡아 대속의 피를 흘려주신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다(빌립보서 2:5~10). 이제 한 이야기를 들어보라!


사업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누린 한 남자가 있었다. 성공으로 인해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많아진 그는, 이제 세상을 즐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시작한 것이 카지노 노름이었다. 돈에 더 욕심을 낼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한 여유를 가진 그였지만(창세기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아담은 왕이었고 부요했다), 더 크게 한 탕 잡을 수 있다고 집요하게 유혹해오는 노름에서의 승부욕은(창세기 3:4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그것을 먹는 날... 하나님과 같이 되어...") 그의 영적 눈을 가리우고 정욕의 눈만 밝아지게 만들었다(창세기 3:6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한탕주의라는 이름의 선악과를 따 먹은 그에게! 이제 점점 심각한 상황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는 자기가 벌거벗은 거지와 같이 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급한 김에 손 닿는 대로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아 보다가 결국 '사채'의 수렁에까지 발을 디디게 되었다(창세기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사채'라는 수렁은 늪이 되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급기야 낯을 들고 가족을 볼 면목조차 생기지 않게 된 그는 하루 이틀씩 외박을 하게 되었고, 그의 죄의식은  그로 하여금 자꾸만 사람들을 피하여 숨고 싶게만 만들었다(창세기 3:8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이 노름(선악과)은 한 푼 두 푼 아껴서 장만했던 집과 수십 년간 땀과 눈물로 이룩해 놓은 회사를 먹어 치워 버렸다(창세기 3:17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오손도손 다정했던 가족관계도 다 파괴되고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고독과 쓸쓸함과 쇠약함과 질병과 언제 당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였다. 카지노에서 고용한 조폭들과 사채업자(마귀)는 떠나간 처와 자식에게까지 찾아가 윽박지르며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했지만, 가장이 되어 위협당하는 가족조차 보호할 힘조차 없게 된 그는 "이제 더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하며 자살을 생각하기까지 이른다. 자살을 맘먹고 강가에 앉은 그는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위하여 소주를 연거푸 두 병이나 들이부었다. 얼큰한 기운이 올라오자 그는 준비한 면도칼을 집어들어 자신의 동맥줄에 가져다 대었다. 그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치는 영상이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사업 핑계로 그간 한 번 제대로 찾아뵙지도 못했던 80 먹은 아버지의 얼굴..... "죽기 전에 아버지 얼굴이나 뵙고 죽자" ..... 이렇게 다짐한 그는 칼을 접어 넣고 아버지의 집 앞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대문 앞에 도달하였으나 차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업성공으로 부요를 누릴 때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던 불효가 양심을 짓누르고 있었다. "쓸 데 없는 불효자식, 얼른 죽지 뭐하러 이곳은 찾아 왔나!" 이렇게 되뇌이며 홀딱 망한 모습으로 아비의 집 앞을 얼쩡거리는 모습이란..... 비참 그 자체였다(누가복음 15:17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렇게 몇 시간을 떨다 지친 그는 혈관과 뇟속을 휘감는 알콜 기운에 휘말려 쓰러졌고, 차디 찬 밤이슬은 그의 온 몸을 적시었다.


새벽녘, 신문을 가지러 나오던 그의 아버지는 노숙자 차림의 거지가 대문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들뻘 되는 남자가 술에 골아 집에도 못 가고 남의 집 대문가에 추하게 쓰러져 있는 모습이란... "쯧쯧쯧..." 아버지는 한심하기도 함과 동시에 나이나 허우대가 얼굴 본 지 오래된 아들뻘쯤 되는 것 같아 딱한 생각이 들어 깨워 따끈한 차나 한 잔 먹여 보낼까 하는 심정으로 신문을 집어 들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다가가면서 드는 생각이..... '설마 아들 녀석일까?' ..... 왜 이런 생각이 나는 건지..... 아들일 리 만무한데 말이다. '닮긴 매우 닮았는걸...' 하면서도 '아닐거라' 생각하며 한걸음씩 다가가 보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설 수록 저 가슴 밑이 뭉게져 녹아 내리는 것 같음은 왜일까...?, 그렇다! 아비의 본능은 그가 아들임을 분별해 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무조건 등에 업어 방으로 들여놓고 보았다(누가복음 15:20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비는 아랫목 아직 개지 않은 이불 밑으로 아들의 몸을 뉘이고 그의 몸을 녹여 주었다.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잠에서 깨어난 아들은 인자한 모습으로 자신을 내려다보시는 아버지 앞에 정신을 차리며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누가복음 15: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노름에 손을 댄 것부터 시작하여 사채업자의 협박, 가정불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자살을 결심한 데 이르기까지, 아들은 가슴 속 모든 응어리를 아버지 앞에 털어놓았다. 이미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된 일인지를 어림잡아 짐작했던 아버지는 그 모든 이야기를 화 한 번 내지 않으시고 차분히 들어주셨다. 아들의 이야기가 끝나자 깊은 한 숨을 쉬신 후, "걱정할 것 없다" 하시며 종이를 하나 꺼내 와서는 무어라고 끄적끄적 쓰셨다. 그리고는 아들의 손을 잡아끌어 손가락을 강제로 펴시고는 인주를 묻혀 지장을 찍게 하셨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사채업자 '○○○'에게 대출받은 일금 '○○○'원 총액에 대하여 父 '○○○'는 子 '○○○'를 대신하여 일체의 채무를 이행할 것을 약속한다. 父 '○○○'와 子 '○○○' 양방은 ○○년 ○월○일 부로 위 내용이 사실임에 동의한다. 금일 이후로 사채업자 '○○○'와 子 '○○○' 간의 채무관계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모든 법적 책임은 父 '○○○'에게 영구적으로 이양되며, 만일 채무 불이행으로 빚을 갚지 못할시 동반되는 형사적 처벌까지 父 '○○○'이 담당할 것을 명히 계약한다"


채권자 : 사채업자 ○○○ (마귀떼  印)

채무자 : 죄인괴수 ○○○ (아들딸  印)

연대보증자 : 무소불능 ○○○ (성삼위  印)


○○○○년 ○월 ○일


아버지는 당신이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는가를 생각하셨는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세상에서 볼 재미는 다 본 사람이다.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라 생각하고 이 일은 내 소관대로 처리하게 맡겨 두어라. 이 일에 관하여는 일체 간섭치 말고 이제 너는 내가 네게 주는 이 돈을 가지고 가서 새 출발을 하여라. 애비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나도 너를 더 이상 아들로 생각지 않겠다. 네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라 생각하고 어여 가 가족들을 찾아 다시 일어나거라"


이와 같다. 한 번의 실수로 사채업자에게 완전히 발목을 잡혀 죽게 된 아들은, 죄로 인해 사탄에게 잡혀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 우리 인간이다.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버리고, 아들의 인생을 부활시키는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 인간을 대속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다. 그러나 이 비유적 이야기로 어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올바로 전달할 수 있으랴! 세상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빚을 갚거나 대신 형을 살아줄  순 있어도, 도박계를 청소할 수 있다거나 법망을 피해 이익을 챙기는 악독한 사채업자들을 처벌할 지혜도 권세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이 땅의 모든 죄짓게 하는 것과 불의의 처사와 악인을 아울러 심판해버릴 완전권세를 갖고 계신다.


지금의 세상은 악인이 득세하고 거짓된 자가 흥황하여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듯 느껴지는 세상이다.

• 시편 10:3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 시편 92:7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 하박국 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심판은 여지 없이 시행되고야 말 것이다.

• 욥기 8:22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 시편 9: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 시편 1: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 시편 9: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塗抹)하셨나이다"

• 시편 11: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 시편 37: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 시편 92:7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 시편 104:35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지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철없는 못된 아들이 슈퍼마켓(화려한 애굽, 바벨론 마귀세상)에서 좋은 물건(선악과)을 훔치다가 걸렸다 하자. 아들을 법대로 반드시 감방에 집어넣고야 말겠다는 못된 슈퍼주인(마귀)에 대하여 아버지는 철없는 아들이 행한 절도에 대한 처벌을 자신이 대신하여 받겠다 나선다. 혹여나 슈퍼 주인이 후에라도 아들을 해꼬지 못하도록 처벌받음과 동시에 물건값까지도 다 지불하겠다는 것! 지불하되 아들이 밖에 나가서나 학교생활에서라도 혹여나 슈퍼 주인의 소문 퍼뜨림을 인하여 고개숙이는 일이 없도록 두 배나 넘치게 철저히 갚아주시겠다는 것이다. 슈퍼 주인은 아버지의 희생적이고 깔끔한 일처리로 인하여 그 아들을 참소할 권리를 박탈당한다. 이것이 아들을 위한 아비의 사랑이다. 사단도 어찌해 볼 수 없는 넘치는 아비의 사랑...! 사탄이 원하는 것은 돈도 아니요, 아비의 처벌도 아니다. 오로지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들을 아비로부터 떼어내려는 이간이다. 아들을 흑암(사망) 속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 원하고도 원하던 사탄의 소망이겠지만, 두 배나 갚아 버리고 친히 형무소생활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완전한 아버지를 슈퍼주인(마귀)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 이사야 40: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 스가랴 9:12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保障)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그러므로 참되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참아들)은 하나님(참부모) 앞에서만 고개를 숙이며, 오로지 하나님께만 감사하게 된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이방 종교의 구원을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인가? (가톨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서부터는 이방종교의 구원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현 W.C.C.도 8차까지의 총회내용을 살펴볼 때 구원 문제에 있어서 이방종교가 치고 들어올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주고 있다. 진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슈퍼(화려한 바벨론) 주인(사단)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을 건드릴 수조차 없는 것이어늘(로마서 6:9,14, 8:2. 히브리서 11:28)... 이 시대의 처녀(기독교) 딸 시온은 이방 사상을 따라감으로써 다시금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 31:21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오늘 예레미야 애가서와 계시록의 내용은 날 위해 죽어주신 주님을 찬미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복음서와 편지서의 메시지를 통하여 2,000년간 온 세계에 전파된 내용이다. 지금은 천국복음으로 씨 뿌릴 때가 아니고 계시록과 예언서로 알곡을 추스려야 할 때인 것이 분명한 만큼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는 진리를 선포할 때인 것이다(계시록 5:9~10). 죄 지어 죽게 된 인간이 어차피 죽을 목숨 주를 위해 살아드려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면 죄인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시되 '해를 입은 한 여자'를 통하여 '철장 든 아들 144,000'명을 해산케 하심으로써만 이루어지는 귀한 면류관이다.


만일 하나님이 아들(예수)의 몸을 율법의 요구 앞에 내어주심으로써 기독교의 모든 구원이 끝난 것이라면, 오늘날 예레미야 애가서는 우리 앞에 아무 소용도 없게 된다. 애가서는 택함받은 백성이 다시금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므로 당하게 되는 성민(이스라엘)의 심판임을 기억하라(기독교 심판 = 미련한 다섯 처녀 = 한 달란트 받은 자 = 마태복음 25장). '십자가의 도'는 거저 베풀어 주시고는 한없이 기다려 주시면서 예수를 영접하는 자가 영혼구원 얻어 자녀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은혜시대의 사랑이다. 그러나 이제는 은혜로 값없이 부르시는 시기를 접으시며 구약 백성에게 행하시던 그 공의를 들고 찾아오시어 세상의 악을 제하실 때(교회를 심문하실 때)이므로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하는 자세로는 심판 주님을 영접할 수가 없다. 생명을 주고 산 아들 곧 피로 산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발로 차고 이방종교와 협상하며 무신론과 손잡으며 참 선지를 핍박한다면 하나님은 아무리 당신의 아들 딸일지라도 공의에 의해 다시 파멸시킬 수밖에 없다 하신다. 하나님의 '이 아픈 마음'이 오늘 예레미야의 마음을 통해 슬프게 다시 외쳐지고 있는 것은 누구를 위한 교훈인가? ....... 바로 예레미야서를 들고 다니는 종말의 기독교인들을 위한 교훈이 아니겠는가!


『 48 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49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50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는도다 』


이 말씀은 선지자의 슬픔을 보여 주심이다. 백성은 저희의 죄악으로 인하여 벌을 받았으나 선지자는 자신을 (때리고 가두던) 그들의 이 비참한 처지를 보고 고소해하지도 통쾌히 여기지도 않는다. 눈물로써 슬퍼한다. 오늘날도 참 선지자라는 것은 교파, 교단을 초월하여 이렇게 죄인의 패망에 대하여도 애석히 여기는 마음을 금하지 못하므로 울며(에스겔 9:4) 다시 예언하는 것이다(계시록 10:11). 그 눈물은 소망 없는 사람의 슬픔 같은 단순한 인정(人情)이 아니다. 하나님을 찾는 하나의 애도(哀悼)인 것이다. 이 시대의 기독교는 (아니 바로 당신은) 예루살렘 성읍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들로 울고 있는가? 아니면 예루살렘 성읍의 모든 죄악을 조장하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 51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를 인하여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하는도다 』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는 유다의 모든 도시들을 의미하고 종말로 볼 때에는 천주교를 포함하여 십자가로 세운 모든 개신교 교파들을 의미한다.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한다" 함은 예루살렘 멸망의 참상을 두 눈으로 지켜보며 울 수밖에 없는 선지자의 고통을 말함이다. 계시록과 예언서를 꿀같이 먹은 자는 이 고통을 갖게 되며, 이 고통을 가진 자에게는 예언서와 계시록이 꿀 같은 양식이 된다.


『 52 무고히 나의 대적이 된 자가 나를 새와 같이 심히 쫓도다 53 저희가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 54 물이 내 머리에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


또 다시 선지자는 유다 민족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여 그 당한 참상을 표현하고 있다. 선지자는 자신이 "새가 사냥꾼에게 쫓김같이" 되었으며, 원수들이 그를 "구덩이에 넣고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란 이런 비참하고 긴박한 처지에 떨어질 때라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된다(고린도후서 1:8~9).


6. 하나님의 구원과 적에 대한 보복을 구함 : 55~66


『 55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56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57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 58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을 펴셨고 내 생명을 속하셨나이다 59 여호와여 나의 억울을 감찰하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신원하옵소서 60 저희가 내게 보수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감찰하셨나이다 61 여호와여 저희가 나를 훼파하며 나를 모해하는 것 62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과 종일 모해하는 것을 들으셨나이다 63 저희가 앉든지 서든지 나를 노래하는 것을 주여 보옵소서 』


선지자는 하나님께 자기 민족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간구한다. 선지자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이유로써 기도한다.


"심히 깊은 구덩이"에 빠졌기 때문에...(55절).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을 때에 하나님만이 구원자가 되신다.

"과거에 도와주신 일"이 있었기 때문에...(56절). 욥기 5:19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라고 하였다.

③ 하나님께서 일찍이 "두려워 말라"고 약속하신 적이 있기 때문에...(57절). 바닷물이 마를 수 없음같이 바다보다 넓은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는다.

"생명을 속(贖)하셨기" 때문에...(58절).

⑤ 하나님의 선민이 죄 값으로 벌을 받은 것이지만 "원수에게 억울하게 된 슬픈 처지를 다 감찰하셨기" 때문에(59~63), 하나님께 매를 맞는 자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위로가 다시 임하는 날이 오게 된다.


『 64 여호와여 주께서 저의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하사 65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고 저주를 더하시며 66 진노로 저희를 군축(窘逐)하사 여호와의 천하에서 멸하시리이다』


본 절은 유다의 원수를 벌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저의 손으로 행한대로 보응함", "그 마음을 강퍅케 하심", 그들을 "저주하심", 그들을 "따라 잡으심", 그들을 "천하에서 멸하심"이다.


다니엘 5:24~ 벨사살 왕이 하나님의 성전 기명으로 술을 마시던 날 분벽에 하나님의 글자가 나타나 심판을 단행했다. 바벨론 심판은 하늘에서 정한 뜻이니 땅에서 이루어질 때 동방 바사 왕 고레스의 칼이 그날 밤 성문을 뚫고 들어왔던 것이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이 목베임을 당하므로 유다는 귀국했는데, 바로 약속된 70년이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예레미야 25:10~11).


율법으로 거룩히 성별한 백성이 우상숭배와 탐심으로 흘러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할 때 무시무시한 심판을 당하여 70년을 잡혀갔다는 것은, 종말에 예수의 피로 산 교회가 애굽(세상복락)을 바라보고, 강대국(미국)을 의지하며, 이방종교를 수용하면 다시금 북방 바벨론(러시아) 손에 잡혀가 '후 3년 반'을 살게 될 것을 미리 고하신 것이다. 스룹바벨 제단에서 울며 외치는 다시 예언의 다림줄을 멸시치 말고 남은 4~5장의 말씀으로 크게 깨닫기를 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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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0301b_이사야08장



[성회 설교 화 오후] 이사야 8장 : 임마누엘 역사 2016/03/01 Tuesday Afternoon Memorial service for the Assemblies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זרובבל משימ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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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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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사야 8장

제목:임마누엘 역사


2003.4.24일(목) 설교

2003.3.20일(목) 설교


임마누엘의 역사란 예수님의 역사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이란 뜻이다. 이미 7장에서 예언하심과 같이 유다의 원수를 없이 하시는 징조로 예수님이 처녀 몸에서 탄생하셨고, 그 후 2,000여 년이 지났으니 이제 기독교의 남은 역사는 이 땅에서 원수의 세력을 심판하는 일뿐이다.  본 장(章)은 “임마누엘 역사는 무엇인가?”에 대해 예언되어 있다. 기독교가 임마누엘을 믿었어도 종말에 와서 임마누엘의 역사를 모르면 끝을 바로 맺을 수가 없다. 시작을 바로 했다면 끝도 바로 알고 말씀에 떨어야 한다.


1. 악(惡)을 들어 쓰고 없이 함:1~8


『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2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거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3 내가 내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4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긴 바 될 것임이니라  5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일러 가라사대  6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라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7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하셨느니라 』 


종말에 악(惡)의 세력은 북방인데, 북방을 들어 쓰고 없이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사야의 두 아들은 징조와 예표라 했다(8:18). 7장의 큰 아들은 스알야숩(남은 자가 돌아오리라)인데 종말의 예표 역사요, 둘째 아들은 마헬살랄하스바스(노략이 속함)인데 종말의 순의 역사이다. 유다의 원수는 65년 내에 멸망하는 것이 예언이니 소련이 내려오면서 세 뿔(몽골, 중국, 북한)을 뽑고 유다의 목에까지 들어왔다가 하룻밤에 185,000명이 송장이 된다. 스가랴 1:12~ 이하에도 유다를 노하신지 70년이 되면 여호와가 돌아와서 성전을 건축한다 하셨고, 스가랴 4:7~ 스룹바벨의 머릿돌로 태산을 평지로 만드는 역사가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 1974년 9월 24일에 지대 놓은 학개서 2:10~23절의 제단은 원수를 없이 하는 권세의 제단이다. 피로 산 제단(사도행전 20:28)은 영혼 구원이 목적이지만, 촛대 교회는 원수를 없이 하고 이 땅에 예수의 왕국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제단이다. 말씀의 법적으로 볼 때 북방 원수는 이미 1975년에 9·24 제단 앞에서 망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책을 받아서 계시하셨으니 그 책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인간이 한 것이 아니고 모든 역사를 주께서 하셨다.


- 4절:1974년 9·24 제단이 시작되었으며 아빠, 엄마 하는 시기는 돌 지나기 전이니 1975년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1975년도에 진리의 말씀으로 이미 이겨 놓은 상태이다. 백마의 1차 승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예언을 순종하심이요(골로세서 2:15), 2차 승리는 택한 종들이 피로 산 책을 순종함인데, 순종하면 144,000명 반열(班列)에 들게 되며, 들게 되면 곧 영원한 제사장이요 왕이 된다. 진노의 막대기가 오는 것은 쭉정이를 없이 하고 알곡만 골라서 하나님의 인(印) 맞은 자를 가려내기 위함이다. 심판 역사의 시작은 동방 땅 끝 해 돋는 한국(셈의 장막)에서부터이다(계시록 7:2).


- 5~6절:“이 백성(영적 유다=한국)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진리) 물을 버리고 르신(중국)과 르말리야(북한)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 이 예언은 구약 때 기록되었고, 기록될 당시에는 유다 왕 아하스가 앗수르에게 예물을 바쳐 원조를 청하므로 원수를 물리치게 되었다(열왕기하 16장). 당대에는 아람, 에브라임의 멸망이 즉시에 이루어졌지만 이사야 7:8절의 예언은 “… 65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었으니 이 예언은 그 당시 앗수르에 의해 즉시로 패했던 에브라임의 역사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이 65년이란 연대는 종말로 보아야 한다. 한국은 성경의 모든 예언서를 전 세계에 다시 예언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가진 선지국가이니, 신앙의 선진들이 외치지 못한 모든 남은 말씀은 영적 유다인 한국을 중심으로 해서 완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보라! 2000년 6월 15일에 유다의 대표(대통령)가 에브라임에 들어가 이루어낸 결과는 그들(북방)의 제안과 사상을 기뻐함으로 빚어진 것이니, 오직 성경대로 된 것뿐이다(이사야 8:6). 이사야 7:14~ 처녀가 잉태한 것도 성경대로 된 것이요, 이사야 8:6~ 유다가 에브라임 르말리아의 아들(김정일)을 기뻐함도 성경대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제 남은 것은 이사야 8:7~ 이하의 말씀뿐인데, 이 말씀은 과연 어떠한 말씀이겠는가?


- 7~8절:『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제 순서적으로 앗수르(러시아) 북방환난이 내려올 차례가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모두가 성경을 이루기 위함이니 곧 하나님의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 동방역사(임마누엘 역사)가 이루어지기 위함이다. 환난의 결과에 대하여는 이사야 36~37장에 자세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2. 임마누엘 역사가 복도 되고 화도 됨:9~15


『 9 너희 민족들아 훤화하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필경 패망하리라  10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  11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게 하시며 이 백성의 길로 행치 말 것을 내게 경성시켜 가라사대  12 이 백성이 맹약한 자가 있다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맹약한 자가 있다 하지 말며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  14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15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니라 』


초림 예수님 때에도 많은 사람이 걸려 넘어졌듯이, 재림 때에도 임마누엘 가지 역사에 많은 자가 걸려 넘어지게 된다.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불신한 자들! 이들이 예수를 비방하다가 화를 당했듯이, 종말에도 애굽 땅 중앙제단을 몰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졌고, 또한 걸려 넘어지고 있다. 은혜 때에는 처녀 잉태로 시작한 예수 때문에 많은 교권자가 걸려 넘어졌다면, 심판 때에는 한 가지(이사야 11:1~4)의 역사가 은혜 시대 교권에 큰 걸림돌이 된다. 이사야 8:1~20절의 “마헬살랄하스바스”로 나타난 제단이 복이 될 자도 있고 화가 될 자도 있다는 것이다. 종말의 구원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 역사의 대적자는 “필경 패망하리라” 했으니 인간이 감히 신의 역사를 막을 수 있겠는가? 이사야 7:14절을 막지 못했다면 8장의 임마누엘 역사도 막지 못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명자만 깨닫게 되는 축복의 말씀이기에 듣는 귀가 귀하다.


3. 말씀대로 판단하심:16~22


『 16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17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18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9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21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그 주릴 때에 번조(煩燥)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22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 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 』


믿는 자들이 예언의 말씀 편에 서지 못하고 시험에 빠져 갈팡질팡하는 이 시대에, 동방에서 숨었던 종들이 홀연히 나타나 역사하니 나라가 하루에, 민족이 순식간에 나오게 된다(이사야 66:7~9). 이 역사를 보고도 순종치 않으면 환난에 빠지게 되고 영까지 1,000년간 옥에 간다. “나 원 참, 중생 체험하고 영혼 구원(구원의 확신) 얻었는데, ‘환난’이 다 뭐야? 옥? 구원 받은 사람도 옥에 가냐? 이거 이단 아니야!” 때를 모르시는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자들은 스스로 완전히 속고 있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율법주의자들이 잘려 나간 것은 열심이 모자라서가 아니고 십자가의 법을 몰라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종말의 은혜 교회 교인들이 믿음이 없어 재림 주를 영접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대적인 법을 못 알아봐서이다(불법). 은혜 시대가 접히고 환난의 때가 왔건만 환난에서 살려줄 “계시록”이 무언지, “나팔”이 무언지, “마헬살랄하스바스”가 무언지 “처녀 잉태의 징조”가 무언지... “증거의 말씀”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르면 배워야 할 터인데 배우긴커녕 무시까지 했기에 화가 큰 것이다. 이런 자들은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재림 주 앞에서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마태복음 24:44~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이 바리새인들아! 누가 “율법”을 폐하라더냐? 네가 율법을 참으로 지킬진대, “십자가의 도(道)”에 순종해야 할 것 아니더냐!〕


〔이 종말의 바리새인들아! 누가 “믿음”과 “은혜”를 폐하라더냐? 네가 참으로 피로 산 자녀이거든 예수님 피로 사신 “예언의 법”에도 순종해야 할 것 아니더냐!〕


이 시대에 예언의 등불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아는 자가 심히 적다(마태복음 25:1~ 열 처녀 비유). 2,000년 전의 교만과 패역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지금, 진정으로 슬기 있는 자가 되려면 9·24 제단에서 증거하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정확한 심판의 말씀을 지렁이 같은 사람을 통하여 대한민국 땅에 나타내셨다. 누구든지 이 말씀에 맞지 않으면 재림 주님을 영접치 못한다. 은혜시대 은사는 완전한 것이 오면 폐한다 하셨는데 완전한 역사가 바로 말씀역사다. 말씀은 가해도 재앙, 감해도 재앙이다.


- 21절:자기 하나님을 저주하고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는 자는 계시록 12:17절 같은 바벨교회 교인들이다. 쭉정이는 후 3년 반으로 들어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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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0301a_이사야07장



[성회 설교 화 오후] 이사야 7장 : 유다의 원수 없이할 징조(2016년도 3.1절 대 성회 기념예배) 2016/03/01 Tuesday Morning The March 1st Movement Memorial service for the Assemblies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זרובבל משימ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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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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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사야 7장

제목:유다의 원수를 없이 할 징조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원수가 있기 때문이다. 원수가 없던 가정에 원수가 들어오므로 6,000년 사단과의 큰 전쟁은 시작되었다.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미 6,000년 전에 여자의 후손 예수님의 승리가 예언되었고, 창세기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아브라함의 씨가 대적(뱀)의 문을 얻어 승리한다는 약속이다. 또 창세기 49:8 "유다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유다는 원수(뱀)의 목을 잡았고, 유다를 범할 자가 없다 하셨으니 무소불능의 증인권세 역사이다. 이 모든 예언의 진실성은 유다 지파로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 사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골로세서 2:15).


유다는 가나안을 정복할 때 동방에 진을 치고 앞장 서 나아가던 선구자의 사명을 띤 지파이다. 이와 같이 종말에 새 시대를 정복할 때도 셈의 장막 동방 땅 끝에 진을 친 대한민국이 영적으로 볼 때 유다와 같은 사명국가가 된다(구약은 종말의 그림자이다 - 히브리서 10:1)


따라서 한국의 원수는 세계의 원수요, 한국의 승리는 곧 세계의 승리이다. 21세기 태평양 시대에는 한국이 세계의 중심 국가가 된다. 구약 때 하나님 역사를 계승한 나라가 유다인 것처럼(창세기 49:8~12, 역대상 5:1~2), 인간 종말에도 영적 이스라엘(세계 교회)을 5개월 환난에서 살려내어 새 시대로 인도할 사명을 띤 국가가 바로 한국이요, 새 일 교훈이요(다림줄, 머릿돌, 철장권세), 9·24 제단이다.


2,700년 전 이사야 당시, 유다 주변국으로는 무신론(여호와를 모르거나 탈선된 우상신앙을 말함) 강대국인 앗수르와 아람, 에브라임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은 아람, 에브라임이 동맹하여 동방 유다(민수기 2:3, 10:14)를 대적하여 치고 들어온다는 소문이 있어 왕과 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리듯 어수선할 때였다. 유다 왕 아하스는 이들의 도모가 서지 못할 것이며 이들은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에 불과하다는 말씀을 믿지 못하고, 징조를 구하라 해도 아니구하겠다 하던 터였다. 그리하여 주께서 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유다의 원수를 없이 할 징조로 친히 주신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14절의 말씀이다.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예언대로 약 730년 후에 '원수가 멸망할 징조'로 예수님이 탄생하셨다.


여기서 지혜가 필요하다!


잘 보시라! 이미 처녀가 아들을 낳을 때(예수 탄생)는 구약 유다의 원수(아람, 에브라임)는 더 이상 원수가 아닌 때였다. 또한 16절에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 바 되리라” 하셨다. 그러니 이 예언은 육적 유다가 주인공인 구약 때 되어질 일이 아니고, 영적 유다가 주인공인 종말에 되어질 예언이라는 것이다. 바보에게 물어보라! 도대체 세상에 일이 끝난 후에 주어지는 징조도 있는가? '징조'란 것은 어떤 일이 확실히 이루어질 것에 대한 보증수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볼 때, 본문대로라면 구약 유다의 원수 나라인 아람, 에브라임의 땅이 폐한 바 되기 전에 예수님이 태어나셔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예수님은 이 예언 후 730년 뒤, 즉 아람, 에브라임이 유다를 치고 들어오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 오히려 유다가 로마의 식민 통치하에 있을 때 탄생하셨다. 이 징조를 받은 아하스는 이미 죽어 존재하지도 않을 때이다. 하나님께서 보지도 못할 징조를 왜 떨고 있는 아하스에게 주셨던 것일까? 도대체 이 예언은 어떻게 풀어야 하겠는가?


그 동안 우리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구절만 강조해왔다. 이사야 7:14절 중 그것도 하반절만!... 매년 성탄 때 한 번 낭독 되고는 끝이었다. 이 예언이 어떠한 배경 하에서 주어진 예언인지, 또는 바로 앞 뒤 구절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볼 수조차 없었다. 같은 절의 상반절에는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 있으며, 뒷절에는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 바 되리라”는 말씀이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2,700년 동안 왜 이 앞 뒤 구절은 아무도 언급하지 못했던 것일까?...


답인즉, 때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풀 수 없었다. 사도는 이 예언을 풀 수도 없으며 풀어서도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때가 차고 천국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어 예수님이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즈음, 즉 인류의 역사가 새 시대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가 되니 봉해진 예언을 하나님께서 친히 열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우리가 깨어 더욱 각성해야 할 때이다.


예언적인 앗수르는

지금의 소련이요,

아람은 중공이요,

에브라임은 북한이다.


이사야 46:10~11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유다'는 종말에 셈의 장막, 해 돋는 동방 땅 끝의 사명나라 대한민국이요, 원수는 이를 둘러싼 북방 무신론 국가이다(유다의 대적국가).


1. 다윗의 집에 징조를 주심:1~14


『 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 때에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2 혹이 다윗 집에 고하여 가로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더라 』


영자적인 구약 때도 본문대로 유다의 원수가 있었듯이, 종말에도 영적 유다(한국)의 원수 국가가 실재로 존재한다. 십자가의 도가 1884년에 한국에 들어와 복음의 불길이 불타오를 즈음, 우상 국가인 일본에 의해 (1910년 한일합방이란 명목하에) 억울한 침략을 당하였다.


그 후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으나, 또 다시 1950년 6·25 동란이 일어남으로 붉은 무리(북괴, 중공)가 치고 들어와 많은 피를 흘린 뒤, 아직도 이 문제(사상전쟁)를 해결 못 본 채 오늘날까지 휴전 상태이다.


『 3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5 아람과 에브라임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6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을 삼자 하였으나  7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8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육십오 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9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


하나님의 작정이 이와 같다. 북방은 반드시 망할 것이요 승리는 유다에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큰 아들(스알야숩)과 같이 가서 아하스 왕에게 예언했으나, 악한 왕은 예언을 듣지 않았다. 65년 내에 망할 것을 “꼭 믿으라!” 했으나 왕은 징조도 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예언은 종말까지를 목적하여 주신 것이기 때문에 아하스는 온전히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이제 전 지구적인 스케일로 이 예언을 펼쳐보자! 유다의 원수(일본)가 유다(한국)를 침략한 것이 1910년인데 여기에 65년을 더하면 1975년이 된다(당시 중공과 북괴가 없었으므로 치고들어오는 예언을 이루기 위해 일본이 용역국가로 쓰인 것임). 예언대로 1975년도에 이미 북방은 멸망했다.


망하는 방법을 보자! 이사야 8:4∼ 이사야의 둘째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가 1974년 9월 24일에 학개 2:10∼23절같이 출생하여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유다의 원수 다메섹(중공)의 제물과 사마리아(북괴)의 노략물이 앗수르(소련) 앞에 옮긴 바 될 것임이라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 '아빠, 엄마' 하기 전이면 돌이 지나기 전이니 1975년이 된다. 이 때가 이사야 7:9절에 65년이 되는 때이다. 또 다니엘 7:8절에 3뿔이 빠지는 예언과 동일한 역사다(같은 공산주의지만 사상이 다르기에 환난 날에 중국, 몽고, 북한은 소련의 체제하에 들어간다-예언서에 기록된 이 말씀은 법적으로는 이미 성취된 상태이다. 이제 이 법대로 가시화되는 북방환난만이 남아있다).


“징조와 승리! - 이 징조를 보고 기뻐할 자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탄생을 보고 원수가 망한 것을 믿어야 할 자는

육적 유다이겠는가? 영적 유다이겠는가?”


『 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12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13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왕은 믿음이 없어서 징조를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주께서는 친히 주신 것이다. 이 예언은 730년 후에 마리아의 몸에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므로 이루어졌다(마태복음 1:18). 이 징조는 구약의 아하스나 유다 나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종말에 영적 유다의 북방 원수가 없어진다는 징조이니 유다 한국은 이미 말씀대로 승리한 것이다. 감사할 뿐이로다!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17:17

“아버지 말씀은 진리니이다” 세계 민족을 살리는 동방역사를 이 날까지 숨겨 두셨다가 때가 되니 친히 나타내셨다. 학개서·스가랴서로 순의 제단을 세우시고 연대를 깨닫게 하셨다. 구약의 다니엘도 예언서(예레미야서)를 읽다가 때가 되니 유다의 70년을 깨달았고, 유다 민족은 포로생활에서 돌아왔다(다니엘 9:1∼3).


2. 원수를 들어 씀:15~20


『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  17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비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의 오는 날이니라  18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지경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19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  20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


창세 전에 예수 안에서 택한 자들에게 왕권을 주시려고 원수를 들어 쓰시고.., 이긴 자의 수가 차면 원수를 없이 하고 버터와 꿀을 먹는 새 시대를 이루신다는 것이 예언서의 골자이다. 2,000년 전에 십자가로 완전 승리하신 예수님의 승리가 무엇인지를 이제 재림 때에 눈으로 밝히 보게 된다(골로세서 2:15). 북방 두 나라(북한, 중국)는 말씀, 즉 법적으로는 1975년도에 이미 망했으나 눈으로 확인될 때는 재림 직전이다. 곧 이 두 나라는 초막절 전에 소련에게 뽑히게 되고 유다에게는 더 큰 앗수르(실제적인 대적 러시아)가 내려온다. 이 때의 역사는 이사야 8장에서 보이셨다. 북방 앗수르에서는 (황충)이 오고 애굽에서는 파리(거짓 선지)가 와서 모든 초장(교회)에 앉게 된다. 이렇게 유다에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가 오게 되는 것은 한국이 선지 국가가 되기 위해 쭉정이를 날려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쭉정이는 없애고 알곡만 남겨서 세계 민족(나라와 방언과 임금과 백성)에게 다시 예언함으로 5개월 환난에서 양 떼를 구원하게 된다.


3. 남은 자를 길러주심:21~22


『 21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22 그 내는 젖이 많으므로 뻐터를 먹을 것이라 무릇 그 땅 가운데 남아 있는 자는 뻐터와 꿀을 먹으리라 』


적은 수가 남아서 민족과 세계를 살린다. 이사야 1:8절에 딸 시온은 '원두밭에 상직막'같이 겨우 남았으며, 이사야 19:19∼ 애굽 땅 중앙에 여호와를 위한 '한 제단'이 있고, 그 변경에는 '기둥'이 있게 된다 했으니 종말에 말씀의 선구자는 심히 적다!


4. 온 땅이 황폐함:23~25


『 23 그 날에는 천주에 은 일천개의 가치되는 포도나무 있던 곳마다 질려(疾藜)와 형극(荊棘)이 날 것이라  24 온 땅에 질려와 형극이 있으므로 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25 보습으로 갈던 산에도 질려와 형극 까닭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놓으며 양의 밟는 곳이 되리라 』


세계적 심판이 땅 끝에서부터 시작되는 데는 먼저 한국을 선지 국가로 만들고, 이 민족(한국)을 통하여 세계 민족을 살리게 된다. 지금 교회들이 물량주의에 치우쳐 그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으나 예언서를 모르니 찔레밭같이 된다. 건물이 크고 교인이 많다고 역사(목회 성공)가 아니라 때를 따라 이루시는 말씀을 믿는 것이 역사이다. 메시야 역사에 대해 바울이 증거하길, 고린도전서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12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성령의 역사를 받고 증거하였던 이 한 구절에 “성경대로”라는 말이 두 번 나온다. 주 재림 때도 성경대로 하실 것이니 모든 예언서의 거의 대부분인 이 재림론을 멸시치 말자.


계시록 10:7∼11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요한아 작은 책(계시록)을 꿀같이 받아 먹어라! 배에는 쓰지만 이 말씀을 다시 예언하는 자만 공중재림 때 나를 만나게 된다!”


결 론


예수님이 처녀 몸으로 탄생하심은 유다 나라의 원수를 없이 할 징조임을 보았다. 예수님 재림 때에는 선지서에 기록된 “예언 그대로” 원수를 심판하시고 에덴동산을 회복하실 것이다. 따라서 모든 예언서를 100% 깨닫고 읽고 듣고 지키는 자만 영·육 간에 복이 있다. 아담은 선악과 먹지 말라는 한마디 말씀을 어기고 동산에서 축출당했다. 종말에도 영적 이스라엘에게 다시 예언하면 영생이요, 예언을 듣고도 가감하면 육체 심판이 있다(계시록 22:18∼19).


새 천년 New Millennium 시대에는 원수가 없고, 죽음이 없고, 전쟁이 없고, 슬픔이 없다. 극도로 아름다운 시대이니 불법자는 절대로 못 들어간다. 우리는 모든 예언의 양식을 꿀같이 먹고 변화체가 되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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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새벽 설교] 예레미야애가 2장 : 고난 중의 기도 2016/03/01 Tuesday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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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예레미야 애가 2장

제목 : 고난 중의 기도


1.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대 고난 : 1~10


『 1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것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진노하신 날에 그 발등상을 기억지 아니하셨도다 』


"처녀 시온"이란 예루살렘 모리아산의 언약을 인하여 400년 후에 야곱 12 지파에게 찾아 주신 축복의 칭호인데, 이들을 "구름으로 덮으셨다" 함은 이들이 범죄할 때 공의의 법대로 70년간 심판하신 일을 이름이다. 죄가 무겁기에 심판도 "하늘에서 땅에 던지듯이" 심하게 내려진 사실에 대하여 선지자는 탄식하고 있다. 시온은 하늘의 임금이 직접 관리하며 아껴주셨으나 범죄하여 패역할 때 땅의 짐승에게 70년을 붙이신 것이다. '후 3년 반'이 바로 이런 곳이다. 예수님의 피로 거듭난 기독교가 아무리 성령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으며 2,000년간 사랑을 받아왔더라도 종말의 흑암을 분별 못하여 범죄하면서도 살려주려고 한 제단을 들어 "회개하라! 종말의 법인 계시록과 예언서 앞에 순종하라" 외치게 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으며 예레미야와 같이 홀로 다시 예언하는 '새 일의 제단'을 배척 멸시하므로 애가서대로 유다 민족과 동일한 운명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혼인잔치를 앞둔 "처녀 기독교"가 새 일을 멸시하면 '후 3년 반' 짐승 세계로 던지움 당함을 잊지 말라!


"그 발등상"이란 사랑받던 주님의 성전 곧 시온산 예루살렘을 가리킨다(시편 99:5, 시편 132:7).


『 2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를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처녀 유다의 견고한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방백으로 욕되게 하셨도다 3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오른손을 거두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사름같이 야곱을 사르셨도다 』


선지자는 유다가 당한 전쟁의 참상을 또다시 진술한다. 특히 본 구절의 말씀은 유다 나라가 소유한 모든 "견고한 것들"이 무너지는 화를 당했다는 것을 부각한다. 든든했던 것이 무너진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항상 뜻밖에, 경각간에 나타난다. 선지자는 이렇게 유다 민족에게 임한 환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번번이 증거하고 있다. "야곱의 모든 거처"는 '야곱의 목장들'이란 뜻으로 방위가 없는 유다 지방들을 가리키고, "견고한 성이 헐림"은 나라의 방백이 수욕에 처할 것이란 뜻이고, "모든 뿔을 자르셨다"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의지할 만한 모든 것을 파괴시키셨다는 의미이다.


"오른손을 거두시고" 오른손은 중요하다. 하나님은 권능의 역사를 항상 오른손으로 행하시기 때문이다. 시편 78:54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55 또 열방을 저희 앞에서 쫓아 내시며 줄로 저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 그러나 백성이 그를 떠나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은 오른손을 거두신 것이다.  시편 78:56 "그럴지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57 저희 열조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같이 빗가서 58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61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62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63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64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 고로 이제 살려면 다시금 주의 오른손에 붙들리는 길밖에는 없다. 다음을 깨달으면 주의 오른손에 의지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종말의 생명책인 요한계시록 곧 원수를 심판하며 택자를 구원해 낼 일곱 인 봉해진 책이 성부의 '오른손'에 있으니(계시록 5:1,7), 원수를 쳐부술 손을 여호와의 '오른손'이라 하심과(출애굽기 15:6),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실 때 그 '오른손'에 불 같은 율법이 있음은 일맥상통하는 진리의 말씀이다(신명기 33:2). 말일의 동방역사에 쓰임 받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택한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때 그분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꼭 붙들어 버리지 아니하신다 약속하셨으니 살 자는 성부의 '오른손'으로 달려나가게 된다(이사야 41:10). 다윗도 대적을 피하여 주께로 나아오는 자를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해 달라 기도하였고(시편 17:7, 18:35, 20:6, 44:3, 60:5, 73:23), 주의 '오른손'은 정의가 충만한 손이라 하였다(시 48:10). 주의 '오른손'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신 손이라 하셨으니(시편 77:10~), 출애굽보다 더 큰 역사인 종말의 동방역사는 주의 손에 붙들린 자들의 승리가 틀림없다.


우리는 주 예수께 접 붙은 포도나무 가지들이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찍혀져 나가는 법이다(요한복음 15:1~6). 시편 80: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이키사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권고하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16 그것이 소화되고 작벌을 당하며 주의 면책을 인하여 망하오니 17 주의 우편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의 위에 주의 손을 얹으소서 18 그러하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케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온 세상에 흑암이 덮이고, 교회까지 졸며 잘 때가 된 지금 우리가 살 길은 주의 우편에 있는 자 인자 예수(계시록)께 다시금 달려나가 소생케 되는 것뿐이다.


구약과 똑같이 오늘날의 세계 교회는 현실 바벨론의 물질문명에 도취되어 물질만능주의, 기복적 신앙주의로 치우치고 있는 실정이며, 다시 예언하라는 재림 예수님의 명령(계시록 10:7~11)은 매우 등한히 여기고 있는 형편이다. 예언서에 순종하면(이사야 1:19~20) 새 시대에서 1000년 안식을 얻게 된다는 진리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는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포도나무)이다. 하나님은 구약 때 자세하게 보여주시고 보여준 그대로 종말을 사는 세계 교회에게 "다시 예언하라"는 명령을 우리에게 내리셨는데, 이 명령에 불순종한다면 다시 한 번 아담같이 땅에서 쫓겨나 육체가 썩은 채로 천년간 옥에 있어야 할 줄을 오늘날의 교회성도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예수님의 피를 믿었다고 모든 것이 완전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담이 빼앗긴 세계는 이 지상이지, 천국이 아니다. 이 지상에서 천년을 누리라고 주신 법에 불순종하는 인간은 예수님의 재림 후 이 땅에 천년의 축복이 임하는 동안 어두운 옥에 갇혀 있다가 예수님의 피 공로로 들어가는 무궁세계(천국)에 들어가는 시기인 마지막 부활 때 부활하여 영생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길 수 있는 심판 방법이다(베드로전서 3:18절 이하를 참조하라).


살리는 권능을 가지신 주의 '오른손'이 자기가 심으신 이스라엘 포도원을 훼파하는 진노의 '오른손'이 되게 한 것은 백성의 패역이다.


『 4 원수같이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아름다운 모든 자를 살육하셨음이여 처녀 시온의 장막에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5 주께서 원수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모든 궁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훼파하사 처녀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


하나님은 성도들의 애호자신데, 이렇게 "원수같이 된" 모양으로 나타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인즉 교회 안의 악(패역)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노하시므로 징계하기를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도라도 아직 완전치 못한 인간일 뿐이기에 그가 징계를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이 노하시는가'를 생각하기보다도 '하나님은 무자비한 신'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 원망하기가 쉬운 법이다(이사야 8:20~22).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 안에는 무한한 사랑이 깃들어 있다(히브리서 12:6). 살육과 진노와 훼파로 성도를 향해 몽둥이를 드셨어도 유다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에게 영원한 형벌은 있을 수 없다. 약속한 70년만 지나면 그 후에는 귀국하여 회복된 고토에 다시 살게 해주시는 것이다(예레미야 25:11).


살 자들은 택자들의 피난처인 주의 '오른손'에 귀의할 것이나(예언의 말씀), 멸망케 될 자들은 주님의 '오른손'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오직 자기의 이마와 오른손에 '짐승의 표'를 받기에 바쁠 것이다. 이런 자들은 애가서에 나타난 모든 저주가 실행되는 '후 3년 반'에 떨어져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하게까지 되는 극도의 고통에 처하게 된다(이사야 8:20~22). 이렇게 될 교회들은 지금 모두 궁과 같은 교회, 견고한 처소에서 외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지금은 계시록과 예언서가 없는 예배는 하늘에서 받지 않으신다. 영적 궁, 영적 견고함은 계시록을 받아들이는 교회만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땅의 모든 교회가 1958년 3월 19일 내려온 세계 유일의 계시록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이 형성한 교권에 의지해서 인간의 견고함만을 더해가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끝까지 예언을 깨닫지 못하면 그들이 쌓은 모든 궁과 견고함은 심판의 날 애통의 소리가 울려퍼지는 공간이 될 것이다(새일성가 38장6절)


『 6 성막을 동산의 초막같이 헐어 버리시며 공회 처소를 훼파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 가운데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


"성막을 동산의 초막같이 헐어 버리시며" 성막은 주님의 법궤가 안칙된 공간이다. 거룩한 시설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법궤에 기록된 하나님의 정신에 부합되는 것보다 성막(성전) 자체를 하나님보다 더 중요히 여겨 그것(예루살렘 성전)을 소유하고 있는 한 자신을 해칠 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로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외친 것이다. 예레미야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이처럼 인간이 종교의 본의를 망각하고, 육안의 눈에 보이는 성막(교회)을 우상화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성막일지라도 서슴치 않고 폐기처분하신다. 고로 구약 예루살렘 성전은 "초막같이" 여김 받아 무참히 헐려 버린 것이다. "공회 처소"는 곧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전해주기 위한 시설물을 가리킨다. 성막, 성전, 회당과 같은 것들이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시설물을 잘못 사용하였다. 이 공회 처소가 종교적 외식을 위한 도구로만 쓰였음이 분명한 건, 진리가 선포돼야 할 그 곳이 오히려 참 선지 예레미야를 비방하고 때리고 쫓아낸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증거해 준다.


이 땅의 어떤 피조물이든지 그것이 제 본위를 이탈하여 사용될 때 여호와께서는 그것들을 서슴지 않고 폐지하신다.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은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열왕기하 18:3~4).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심"도 역시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유대 교회가 '안식일'이라는 제도만 의지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맡긴 예언서를 무시하며 선지를 죽인 것은 그들의 허례허식을 잘 드러내준다. "왕과 제사장"은 백성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사람인데, 그들이 옳지 않게 행하므로 그 자격을 상실할 때 하나님께서 그 직분을 폐하심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시드기야 왕의 눈알이 뽑혔다면, 유다 정권, 유다 교권의 행보를 그대로 걷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 방백과 종교 방백 역시 그렇게 될까 두려워하며 정신을 차려야 한다. 살 길은 있다. 예레미야가 되든지, 그를 돕던 바룩이나 에벳멜렉과 같은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다니엘이 되든지, 그 옆의 세 친구가 되는 길만이 살 길이다. 그밖의 세력은 바벨정치, 바벨교회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벨의 자식이 되면 바벨론이 와서 죽여 버린다는 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진리이다.


『 7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장을 원수의 손에 붙이셨으매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서 훤화하기를 절기날과 같이 하였도다 』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인테리어에 투자하여 번들번들한 교회를 만들어 놓아도 그곳은 예배드리는 처소일 뿐 성소는 아니다. 성소냐 아니냐는 진리가 함께 하느냐 아니냐로 판단 받는다. 종말에도 화려한 대형교회의 신자는 하나님께 버림받아 헐릴 가능성이 높다. 종말의 성소는 순금등대 촛대교회로서 예언의 말씀을 꿀같이 먹은 144,000명의 몸 자체가 순금등대 촛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의 손에 붙들려 주와 동행하는 자들이니 자신도 살 뿐 아니라 세계를 살리고 남음이 있게 된다. 살리는 것이 성소이지 헐려 버림받는 것은 성소가 될 수 없다. 계시록과 예언서가 없는 헛된 제단은 원수에 손에 붙여지게 될 뿐이다.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서 훤화하기를 절기 날과 같이 하였도다" 이 말씀 역시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두드러지게 나타내 준다. 유대 민족이 종교적 절기를 오용하였으므로 이제 그것들은 폐지되고, 그 자리에 도리어 이방 군인이 침략하여 절기를 지키는 것처럼 떠든다는 것이다. 지금도 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추수감사절 등 수많은 절기행사가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계시록도 없이 절기행사에만 치중하는 대형교회들은 원수 손에 붙이워질 "제단, 성소, 궁장"이니 북방 군대가 들어오는 날, 말갛게 벗겨지고 말 것이다(요엘 1:6~9).


『 8 여호와께서 처녀 시온의 성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훼파함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과 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저희가 함께 쇠하였도다 』


"줄을 띠고"란 심판의 범위와 한계와 정도를 결정하셨음을 뜻한다. 종말에도 다림줄(아모스 7:7~9, 스가랴 4:10, 열왕기하 21:13) 말씀에 의해 공의대로 심판하실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멸망은 너무도 처참했으므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이 모습이 생시인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측량(다림줄=심판)이었음을 기억시키고 있다. 이러한 구약 예언 속에는 인간종말을 사는 우리를 겨냥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경륜이 담겨 있다. 그런데 현재 교회는 구약 성민이 당한 이 일이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는 줄 알고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가랴 4:1절처럼 선구자를 선택하여 잠을 깨우시고 잠자고 있는 교회에 외치게 하기 위하여(마태복음 25:6) 학개서 2:10~23절에 기록된 성전을 지으시되 정한 날짜 9월 24일에 순금등대 촛대교회의 지대를 놓게 하시어 전 세계에 다시 예언할 준비를 갖추신 것이다(이사야 46:10, 히브리서 10:1~).


"성과 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저희가 함께 쇠하였도다" 성과 곽은 생명이 없는 시설물이다. 그것들이 "통곡"한다 함은 당시에 임한 멸망의 비참함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다.


『 9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꺾여 훼파되고 왕과 방백들이 율법 없는 열방 가운데 있으며 그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10 처녀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꺾여 훼파되고" 역시 성전이 여지없이 함락된 사실을 드러낸다. 구약 성전이 우상 숭배 죄를 범할 때 이 꼴이 되었다면, 인간 종말에 우상국가인 북방 무신론 사상에 대해 싸워 이기지 못하고 협상을 한다면(W.C.C.) 그 단체는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꺽여 훼파될 것"이다. 협상에 앞장선 교파, 교단, 총회가 영영 망해 버린다는 예언이다. 이렇게 되므로 이 땅의 거대한 협상교회가 10절의 말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2. 시온의 비애와 적들의 조소 : 11~16


『 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 12 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여 그 어미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미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뇨 하도다 』


북방 군대의 침략 때에 기근으로 인해 어린 것들의 정신이 혼미해진 상황을 비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비극은 '구약으로서 끝'이 아니다. 바로 이 시대에 재연될 것이다. 이제 '후 3년 반', 대 환난이 오면 짐승정권(계시록 13장)이 정치와 종교를 장악할 것인데, 순금등대 촛대교회가 전하던 계시록과 예언서로 양식을 삼지 못한 자들이 '후 3년 반' 짐승통치에 들어가 위와 같은 모습으로 죽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약의 모든 예언서는 계시록과 일맥상통한다. 바꿔 말하면, 계시록을 알아야 구약 모든 예언서를 읽을 때 뜻이 통한다는 말이다.


성경은 언제나 현재를 말하고 있다. 구약 때의 역사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거울이 되고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고린도전서 10:6,11). 거울을 보고도 제 모습을 파악 못하는 종들을 일컬어 성경에서는 '소경'이라 칭했다(이사야 29:9~, 42:18~22). 이 소경되고 벙어리된 무익한 종들을 하나님은 '개들'이라고 하셨는데(이사야 56:10),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인류종말의 영적 추수기 때에 계시록을 멸시하고 예언서를 알지 못하는 이 '개들'을 다음의 말씀대로 심판당할 것이다.


이사야 18:5~6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 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버려서 산의 독수리들에게와 땅의 들짐승들에게 끼쳐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과하하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과동하리라 하셨음이니라" 여기 독수리와 들짐승들은 바로 '후 3년 반'을 통치할 짐승정권과 열 뿔을 가리킨다.


『 13 처녀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꼬 처녀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꼬 너의 파괴됨이 바다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 』


"내가 무엇으로 비유할꼬"란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이 당한 참상이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특별한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이 비극의 참상을 바라보는 선지자의 눈물은 곧 예수님의 눈물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유대인을 이렇게도 비참하게 벌하셨을까?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통하여 당신의 살아 계심을 만방에 보여주시고자 하기 때문이다. 선민의 존재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으니, 그 일을 잘못할 때는 공의의 벌을 받는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에게 1차적으로 공의의 징계를 내리 심으로, 종말에 이 일을 다시 읽고 전하여 만방에 주의 영광을 드높여야 할 영적 유다와 영적 이스라엘 전 지파가 확실한 교훈을 갖게 하셨다. 이제 '한 제단'을 통하여 공의의 교훈이 선포되고 있으니 행한 대로 상급과 보응을 얻게 될 것이다(누가복음 12:47~48). 교훈을 멸시하는 자는 "너의 파괴됨이 바다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 하신 대로 '후 3년 반'으로 떨어져 파멸을 당케 될 것이다.


『 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


유다민족이 이와 같은 큰 환난을 당한 이유는 유다에 기생하는 거짓 선지자들 때문이다. 이들은 예레미야와 같이 높은 곳에 서서 멀리 보는 파수꾼의 자리에 서지 않았으며, 민족의 죄악을 지적해서 고쳐주는 의사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 민족에게 비극이 온 것이다. 이 거짓 선지자들은 오히려 참 선지자 예레미야와 우리야를 계속적으로 핍박하였다. 거짓 선지자는 언제 어디서든지 "평강하다 평강하다""거짓 경고와 미혹"만을 외쳤는데(예레미야 8:11), 이는 100%짜리 거짓말로서 귀신의 말이다.


지금의 세계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평화공존', '세계 복음화', '종교 간의 대화와 타협'이라는 간판 아래서 듣기 좋은 말만 외쳐대고 있지 않는가? "끝까지 전쟁이 있다"(다니엘 9:26)고 외치는 스룹바벨 한 제단이 있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에 정치와 종교가 앞장서자"라고 외치는 다수의 제단이 있다.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 북방이 온다고 밤낮 외치다 구덩이에 갇히고 옥에 갇히고 매를 맞던 예레미야 한 명과 그를 때리고 "평강, 평강"을 외치던 다수의 무리 중 어느 쪽이 옳았는가? 2,600년 전과 지금의 종교상태는 완전히 일치한다. 일치하지 않는다면 다시 예언할 수 없게 되니 (외롭고 고되지만) 옛 선지와 일치된 길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뿐이다(이사야 46:10).


예수님이 재림 하시기 전 이 땅에서 평화를 이뤄보자는 것은 사단의 속임수이다. 옛날 에덴동산을 추억해 보자! 뱀이 하와에게 무어라 말했던가? 선악과만 먹으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지 않았는가? 그 말을 들은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류는 슬픔과 질병과 저주와 사망과 전쟁 속에서 오늘날까지 허덕이며 신음하고 있다. 이 저주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해주시려고 예레미야를 보내시고 그 책을 우리 손에까지 전달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 끝까지 불순종하므로 대적할 것인가? 아니면 무릎 꿇어 순종할 것인가? 알파를 보고 오메가를 깨닫는 자들은 복을 받게 된다.


『 15 무릇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하며 처녀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소하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천하의 희락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16 너의 모든 원수는 너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비소하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저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


본 절에서는 선민의 패망한 참상을 또다시 묘사하고 있다.


① 행인들도 유다의 참상을 보고 비웃으며

② 유다를 멸망시킨 원수들은 기뻐하며 더욱 힘을 내어 유다 민족을 힘껏 파멸시킨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바로 이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이 말은 바벨론 원수가 유다를 짓밟고 포악한 행위를 더하면서 하는 말이다. "우리가 얻었다"는 것은 히브리말로 "만났다, 발견했다"는 뜻이다. 예루살렘의 딸이 적으로부터 "이것이 '아름다움의 완성'이요 '온 세상의 기쁨'이라고 사람들이 부르던 성읍이냐?" 하는 비소를 들으며 심하게 훼파되는 모습은 계시록 17장에 기독교의 탈을 쓰고, 평화와 협상을 추구하며 양떼의 생명보다는 돈과 세상 영예만을 추구하던 음녀가 16절에 가서 짐승에게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멸망하는 모습에 비길 수 있다. 우리는 계시록과 예레미야서를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해야 산다.


3.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알고 기도함 : 17~22


『 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원수로 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며 너의 대적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


본 절은 유다가 당한 처참한 일들이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예언하신 대로 성취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레 26:16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의 파종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17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신 28:49~57절도 참조하라. 유다의 참상이 옛날에 명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예레미야 입을 통해 다시 예언서에 기록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언성취 사건을 보고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 18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19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누구나 고난을 받을 때에는 기도해야 한다(야고보서 5:13). 그들이 해야 할 기도의 모습은...


① 눈물로써 기도해야 한다. "눈물을 강처럼 흘려야 될 것"은 그들의 회개가 뜨거워야 하겠기 때문이다.

② 깨어 기도해야 한다. "밤 초경"이라는 말은 밤을 다섯으로 나눈 부분 중 첫째 시간을 의미한다(저녁 7~9시 - 갑야(甲夜)라고 함).

"마음을... 물쏟듯 할지어다" 마음을 쏟아 기도해야 한다(삼상 1:10~16). 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예레미야 29:13).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은 지도자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로 내어 바쳐 전적으로 의지하는 표시이다.


『 20 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 아이를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살육을 당하오리이까 21 노유는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소년들이 칼에 죽었나이다 주께서 진노하신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살육하셨나이다 22 주께서 내 두려운 일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에 무리를 부름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었나이다 내 손에 받들어 기르는 자를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 』


유다가 당한 참상을 다시 진술한다. 비극적 내용을 살펴보면...


1. 여인들이 그 어린 자식을 먹는 일(열왕기하 6:28~29).

2.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성소에서 살육을 당한 일.

3. 남녀 노소와 연령의 차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일.

4. 두려운 일들 곧 생명을 위협하는 일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피할 수 없게 된 일.

5. 젖 먹는 아기들도 죽임을 당한 일.


이와 같은 참변들은 그 배후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악독한 죄악을 연상시킨다. 모든 성경은 선민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니, 특히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 강한 경고장이 된다.


원죄의 악질이 뼛골 속에 박혀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해서 할 수가 없는 줄을 잘 아시고 예수님께서 피로 사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고쳐서 변화체를 만드시겠다는 것이 큰 구원이요, 동방역사요, 초막절기요, 새 일의 역사다(이사야 42:9~, 43:1~5, 57:18~. 예레미야 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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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0229b_이사야43장04절~



[성회 설교 월 오후] 이사야 43:4~ 말세 사명자의 특권 2016/02/29 Monday Afternoon Memorial service for the Assemblies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זרובבל משימ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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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0229a_이사야43장



[성회 설교 월 오전] 이사야 43장 : 말세 사명자의 특권 2016/02/29 Monday Morning Memorial service for the Assemblies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זרובבל משימ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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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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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사야 43:1~28

제목:말세 사명자의 특권


기독교는 마귀를 이기는 종교이고, 성경은 마귀를 이기는 말씀이다. 말씀을 증거하는 종은 하나님께로부터 권세를 받지 않고는 바로 증거할 수 없다. 본 장(章)은 이사야 42:9∼ 이하에 예언한 하나님의 심판날에 될 일인 새 일의 역사에 관해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예언이다.


다시 예언하는 기간은 1,260일이다. 본 장(章)은 『말세 종의 특권』에 대하여 예언하심인데, 여호와께서는 시대 시대마다 종을 들어 역사하심으로 영과 육의 완전한 구원을 성취하신다. 이사야 40:1∼8, 42:1∼8절은 은혜의 역사로서 죽었던 영혼을 구원하심을, 또 이사야 40:9∼, 41:~, 42:9∼43장은 성부께서 심판 권세를 성자에게 주시고, 성자는 다시 그 권세를 말세 종들에게 특권으로 주실 것에 관해 예언한 말씀이다. 3위 하나님은 권세의 신(神)이시니 이 권세를 받은 자라야 종말에 사명자의 역사를 감당할 수가 있다.


예수님의 권세


만일 예수님이 권세자가 아니라면 마귀를 이기시고 성경을 성취하실 수가 없을 것이다(마태복음 4:1∼12).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한1서 3:8).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한복음 1:1∼14).


예수님은 이 땅에 권세자로 오셨다. 요한복음 1:12∼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자녀가 되는 권세는 원수 마귀를 십자가로 이기고 영혼이 해방받는 것이다.


마태복음 9:6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요한복음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골로세서 2:14∼15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율법)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5:3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유월절 양 화목 제물이 되심으로 승리하셨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내 죄값을 대신 치르고 계신 주... 이 사랑 안에 나의 죄악 완전 소멸되도다

독생자 주신 무한 광대한 사랑... 주는 세세토록 영광 찬미 받으옵소서 아멘


갈라디아서 3:17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언약(창세기 15:4)을 430년 후에 생긴 율법(출애굽기 12:40)이 없이 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여...” 결국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일 뿐이다.


언약된 430년만의 출애굽을 예수님이 실질적으로 성취시키시어 우리 영혼이 완전한 구원을 얻게 된 것처럼, 구약 종말에 예레미야 25:11∼, 다니엘 9:2∼을 통해 예언된 70년 포로 기간의 회복도 (완전한 땅의 안식을 주지 못했기에) 인간 종말에 영적 유다인 한국에서 70년이 성취되어야 영적 유다와 이스라엘이 완전히 연합하여 세계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스가랴 1:12∼, 에스겔 37:16∼, :22∼25). 1905년 11월(을사보호조약) + 70 = 1975년이다. 이것이 실질적인 출바벨론 역사이다(예레미야 16:14-16, 23:7-8, 31:8). 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룬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예수님의 죽음은 인생의 죽음을 죽인 고귀한 죽음이다. 할렐루야!


② 사도들의 권세


주께서 승천 후 10일 만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셔서 양 떼를 해방시키게 하셨다(로마서 8:1). 사도행전은 기독교의 출발을 기록한 역사서이다(사도행전 1:2). 성신 받은 대표 종 베드로의 설교에 3,000명이 회개하고 구원의 주님께로 돌아왔다.


성령님은 사도를 통하여 권세의 역사를 행하셨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5∼37).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한복음 20:23). 주께서 제자들(사도)에게 사죄권을 주셨다. 사도들이 동방 땅 끝까지 이 권세를 들고 나옴으로 우리가 영적 해방을 받았다.


③ 말세 사명자의 특권(초막절 역사)


하나님의 권세 역사는 ① 육안으로 볼 수 없게 숨어서 이루는 것이 있고 ②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철장권세가 있다. 영안으로만 볼 수 있는 말씀 권세는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하신 바와 같아 성경을 손에 든 바리새 교파와 사두개 교파, 서기관이라는 사람들이 앞장서 성령님의 역사를 술취한 역사라고 비방하였다. 그들은 소경 귀머거리였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동방역사의 핵심인 학개· 스가랴서가 성취되는 스룹바벨 성전의 말씀 권세를 부인하는 자는 영적 소경이다.


이사야 42:18∼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 이들은 양 떼에게 협상의 쑥물을 먹여 죽게 만든다. 그러나 자기가 무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불쌍한 종들이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육안으로 볼 수 없고, 천국과 새 시대도 육안으론 볼 수 없다. 영안으로만 앞당겨 볼 수 있다. 종말의 예언서도 영안이 있어야 볼 수 있다. 마태복음 12:38∼ 바리새인 중에 몇 사람이 예수께 표적을 보여 주기를 원할 때 주께서 이 음란하고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셨다. 이들은 육안에 보이는 것만을 찾았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역사를 볼 수가 없었다. 지금도 동방에서 새 일의 역사가 성경대로 진행되는데 영안으로 보는 자는 심히 적다.


지금은 다섯째 나팔 시대로 『시련기』이나 깨닫는 자는 적다. 말씀에 떨지 않으면 유혹의 영을 받게 되는데, 이런 자들은 교만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보이려 하며 자기 자랑을 좋아한다(말세의 바리새인).


이사야 19:19∼ 애굽 땅 중앙제단은 유신 2년 9월 24일(1974년)에 성전을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사명을 감당하되 앞으로 되어질 모든 예언이 햇빛과 같이 밝아져, 이 말씀 권세로 매일같이 예언하고 있으나 깨닫는 자가 적은 것은 이사야 49:1∼ 이하와 같이 마광한 살을 전통에 감춰 두었기 때문이다. 사렙다 과부 집에 숨어 있던 엘리야와 같은 역사이다. 말라기 4:5∼ 종말에 엘리야를 보낸다고 예언하셨는데, 보내는 방법은 구약과 같다는 것이다.


애굽 땅 중앙제단은 하나이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은 당신이 인정하시는 제단 하나로만 역사하셨다. 율법을 가르치는 광야 교회도 하나요, 은혜를 베푸시는 피로 사신 교회도 하나요, 종말에 촛대 교회도 하나이다. 성경에는 빠진 것이 하나도 없는데 자세히 찾아보면 학개서에 스룹바벨을 인(印)으로 삼는 9·24 제단이 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생명이 없다. 율법은 시내 산 모세에게, 은혜 제단은 1월 14일 유월절 제단에서→오순절 다락방→세계적 피로 산 제단으로 이어지는 족보가 있다. 그러면 마지막 초막절 제단은 그 근본이 어디란 말인가? 바로 학개·스가랴의 예언대로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에 지대 놓은 성전이란 것이다. 영안으로 자세히 보자! 큰 환난 날에 철장권세가 보이되 초막절과 5개월이 되어야 드러나게 된다.


1. 물과 불이 못 당하는 권세를 주심:1~2


『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


"야곱아" 이는 거듭난 이스라엘 곧 종말의 기독교인들을 향해 주시는 말씀이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로 기독교인은 예수 안에서 새롭게 창조받으므로 조성된 영적 이스라엘이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이 구속은 영혼의 구속을 말함이 아니다. 영혼의 구속은 "이스라엘"이라, "야곱"이라 호칭을 받는 순간부터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렇게 영혼구원을 받은 이들을 "야곱아"하고 부르시면서 주시는 구속은 당연히 영혼의 구속이 아닌 또다른 무엇일 것이다. 그 구속의 내용은 바로 2절에서 설명되어진다.


『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바로 육체구속의 역사이다. 영혼구원은 '천국'을 목적하여 주시는 구원으로 모든 육체가 풀같이 쓰러진다고 증거하며 외쳐진 복음이다(이사야 40:1~8. 베드로전서 1:9,24. 시편 103:15). 그러나 이제 피로 산 교회에 예수님의 피로 산 말씀을 주시어 그 육체를 구속하여 새 천년 안식세계에 알곡으로 집어넣을실 때는 3대 화로부터 육체가 변화받고 보호받아야 할 때이다. 이 일을 위하여 주신 말씀이 '새 일'이요, 이 일을 위하여 세워주신 제단이 '애굽 땅 중앙제단'이다.


예수의 피로 영혼 구원 얻은 영적 야곱을 또 다시 신창조시키시는 데는 목적이 있다. 바로 5개월 환난 때 일어나는 황충 떼(계시록 9:3~)와 싸워 이기게 하시므로 전 세계의 양 떼를 살려주시기 위한 목적이다. 이 일은 '하나님의 인'의 권세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계시록 7:2∼3절에 해 돋는 데서부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印)을 들고 나오는 다른 천사의 역사가 기록되었는데, 바로 인 맞은 자를 일으켜 양 떼를 살려주기 위한 말세 종의 역사를 보이신 것이다. 구약 때의 다니엘과 세 친구 역사나 또는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의 역사는 우리의 행할 바를 미리 보여준 것이니 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하신 바대로이다. 구약 종들을 통해 보여주신 승리의 역사는 종말에 애굽 땅 중앙제단을 지대 놓은 스룹바벨의 승리로써 완전 열매를 맺게 되는데, 스가랴 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하신 대로이다. '큰 산' 적기독의 세력이 미약한 하나님의 종들의 머릿돌 앞에서 멸망하므로 새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예언이다. '은총, 은총' 하는 목소리는 스룹바벨 단체 곧 인 맞은 변화성도가 살려낸 세계적인 양떼들의 기뻐하며 감사하는 목소리이다. 말씀은 예수님 자체이니 곧 머릿돌이다. 예수님이 다윗에게 허락하신 물맷돌이 골리앗을 쓰러뜨림같이 당신 친히 당신의 종인 스룹바벨에게 머릿돌 말씀권세를 주시므로 큰 적기독 세력을 물리치고 평화의 왕국을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이 일을 이룰 자들을 신 창조시키시겠다는 것이니 물도 불도 그들을 당치 못하게 된다. 이와 같은 신창조는 1절같이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른 자만이 받게 된다(이사야 43:1, 45:4, 예레미야 1:5).


2. 사람을 지배하는 권세를 주심:3~7


『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 』


짐승들은 체력으로 상대방을 지배하나 인간들은 세력(정권, 경제력, 여타 권력)으로 상대방을 지배한다. 지금도 강대국이 약소국을 무력으로 지배하는 것이 현실이다. 주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창조된 세계를 말씀으로 지배하시되 말씀에서 이탈하여 타락한 인간으로 말미암아 저주받은 이 세상을 다시 말씀으로 구원하시고, 심판 때가 이르면 사랑어린 경고의 말씀으로 새 땅 축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말씀의 대언자인 선지자는 언제나 자기 백성들의 죄를 책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종말에 말세 종에게 사람을 지배하는 권세를 주심은 피로 사신 교회를 인도하여 새 시대 보내 주실 목적이다. 권세를 받으면 양 떼를 살리나 못 받으면 짐승(북방)의 밥이 된다. 이사야 50: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권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3. 열방 민족을 깨우치는 권세:8~13


『 8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9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은들 그들 중에 누가 능히 이 일을 고하며 이전 일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들로 증인을 세워서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어 듣는 자들로 옳다 말하게 하라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12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과연 태초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


마태복음 25:1∼ 열 처녀 비유에서 기름을 준비한 다섯은 신랑을 영접했고, 준비 없는 미련한 자는 쫓겨났다. 지금이 곧 열 처녀가 졸며 잘 때, 즉 계시록 9:1∼5절의 캄캄한 밤중이다(영적 흑암). 이 흑암의 잠에서 깨어나야 신랑 예수를 영접하게 된다.


● 8∼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종교협상을 통하여 행해지는 마귀 미혹으로부터 종들과 교회를 깨우기 위해 촛대 교회에 말씀 권세를 주셨다. 신앙의 잠을 깨우는 무기는 스룹바벨에게 맡긴 머릿돌과 다림줄의 말씀뿐이다. 은혜 때에는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맡겨서 영혼을 구원시켰고(마태복음 16:19), 종말에는 9. 24 제단에 세계 교회의 잠을 깨울 특권을 맡겨주셨다. 사울 왕의 부패함으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붙이움을 당할 때 이스라엘의 잠을 깨우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자는 물맷돌을 던진 다윗이었다.


오늘도 세계 교회의 부패함으로 기독교 전체가 북방 무신론 짐승에게 붙이움을 당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알곡을 살리기 위해 동방에 촛대 교회인 9·24 제단을 보내주셨다(학개서 2:10∼23). 어느 시대이건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자들만이 살리움을 받게 되어 있다. 이사야 43:13∼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4. 대적을 물리치는 권세를 주심:14~18


『 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16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


은혜 시대에는 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겸손하게 오셨기에 그 뒤를 따르는 모든 종들도 겸손하게 순교했으나, 종말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원수를 심판할 때이므로 종들에게도 권세를 주어 원수를 물리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사야 45:1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말세 종)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공산당을 때려 부술 말세 종에 대한 예언이다. 이사야 43:14∼ “바벨론이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하셨고, 사사기 7장에서도 기드온 300명 군대에게 미디안 대군이 멸망당했고, 히스기야 왕 때도, 유다 나라의 기도 앞에서 앗수르 군대 185,000명이 하룻밤에 멸망당했다. 모세 앞에 애굽이 망했듯이, 오늘날도 공산당 군대는 말씀 권세 앞에서 하룻밤에 멸망한다(이사야 37:36). 구약 때의 기사는 종말의 예표이다.


미디안의 패배와 앗수르 185,000의 멸망은

종말에 태산같은 적 기독 세력이

스룹바벨 머릿돌 앞에 멸망할 것을 보여준다

(스가랴 4:7)


새 일은 대적을 물리치는 권세 !

말세 종들은 일어나라 권리행사 큼이로다 !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5. 새 땅을 정복함:19~21


『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


새 일은 초막절 보호와 새 시대를 이루는 일이다. 우리는 여호와의 새 일에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아담은 불순종하므로 에덴동산을 저주받게 하였으나,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온전히 순종하시므로 에덴낙원을 회복케 해주셨다. 이 일이 곧 여호와의 새 일이다. 예수님의 새 언약으로 새 사람이 되었다면 여호와의 새 일 교훈으로 새 시대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사야 65:17∼25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새 일은 이사야 48:6, 예레미야 31:22, 민수기 16:30에서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언제나 앞으로 될 일을 모르는 자에게는 소망이 없다. 언약 중에 최고는 새 언약이요, 일 중에 최고는 새 일 교훈이다. 따라서 시대 중에 최고는 새 언약과 새 일에 순종한 자들이 얻게 되는 새 시대이다.


6. 절대적인 용서를 받게 됨:22~26


『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와 하였으며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26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 』


과거 우리는 우상숭배만 했는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 허물을 용서해 주셨으니, 무엇으로 이 은혜를 갚을까? 항상 순종함으로 영광을 주께 돌리자!


7. 성소에서 저주받는 자도 있게 됨:27~28


『 27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나니 28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며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 』


큰 사랑을 받은 종교 지도자들이 사랑을 주신 예수님보다 교권을 더 사랑하여 말씀을 반역하게 되므로 강단부터 심판이 있다. 앞으로 3대 화(☞ 설교듣기)가 오는 때에는 종들과, 교인들과, 불신자들이 차례로 심판을 받게 되니 모든 일에 정로로 행해야만 살게 된다. 아모스 7:7∼ 심판의 다림줄을 주셨으니 누구든지 황충 떼와 불심판을 피하려면 다림줄 말씀만 따라가야 할 것이다. 다림줄은 곧 정로(正路)이다.


십자가의 도는 허물과 죄악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역사이지만 심판의 다림줄 말씀은 용서가 없다. 누구든지 예언서를 가감하면 이 책에 기록된 재앙이 그에게 더할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받으신 책대로 심판하시는데, 지상의 교회는 심판 말씀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원수와 손을 잡고 그것이 진리인 줄 알고 일하고 있으니 그 종말이 어떻게 될까?


베도로전서 4: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이사야 66:6∼ “훤화하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하셨다.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판단하던 자들이 재림 주님 앞에서는 먼저 심판받게 된다. 계시록 14:15∼20 곡식도 포도송이도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렀도다! 하셨다. 포도주 틀을 밟으니 피가 흘러 말굴레까지 닿았다.


천국복음으로 씨를 뿌렸으니 이제는 다림줄로 추수를 해야 한다.


때를 따라 말씀 양식을 먹고 새 땅 안식의 축복을 받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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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0229_D_예레미야애가01장



[월 새벽 설교] 예레미야애가 1장 : 예루살렘(교회)의 황폐를 애곡함 2016/02/28 Monday Daw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זרובבל משימ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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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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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애가(哀歌)

- The Lamentations of Jeremiah -


성경 : 예레미야 애가 1장

제목 : 예루살렘(교회)의 황폐를 애곡함


1. 비애(悲哀)의 기도 : 1~11


『 1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


선지자는 그 민족을 대표하여 기도하되 그 당면한 고통으로 인하여 죄책감이 들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소위 선민(選民)이라는 유다 민족의 처지가 이러한 도탄으로까지 떨어진 것은 도대체 웬 일인가?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 드리는 첫마디 기도는 "슬프다"로 시작되었다.


『 2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


"친구들도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애굽인은 당시 유다의 친구였다. 그러나 죄악으로 인해 바벨론 몽둥이로 얻어 맞는 유다에게 애굽이라는 친구는 무용지물이었다. 북방환난으로 당하는 슬픔은 "밤새도록" 눈물이 끊이지 않을 만큼의 커다란 애통임을 알 수 있다. "사랑하던 자""친구"와 같은 의미로 친구는 유다 민족이 하나님보다도 더 의뢰하던 애굽을 의미한다(에스겔 17장 참조).


『 3 유다는 환난과 많은 수고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도다 저가 열방에 거하여 평강을 얻지 못함이여 그 모든 핍박하는 자가 저를 쫓아 협착한 곳에 미쳤도다 』


유다가 바벨론에서 당하는 고난은 극도로 괴로운 것이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는 '환난'이라는 단어가 몸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여기 기록된 "환난", "수고", "평강을 얻지 못함", "핍박" 등은 죄값의 결과로서 당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다. 하나님은 선민이 지은 육체의 죄값에 대해서는 이 땅에 있는 동안 보응하신다. 우리 민족이 겪은 40년간의 일제통치나 잊지 못할 6.25 환난 등은 이 나라가 하나님 앞에 지은 죄값으로 얻어 맞은 몽둥이(a stick; a club; a cudgel)었다. 하지만 이 슬픈 역사는 반대로 이 나라가 하나님 앞에 택함 받은 민족임을 입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제통치와 전쟁의 비극을 겪은 이 민족의 교회지도자들은 오늘날 예레미야와 같이 이 민족이 당할 세 번째 환난을 앞에 두고 눈물로써 다시 예언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4 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이 황적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저도 곤고를 받았도다 』


유다 백성이 하나님 앞에 종교적 절기를 지키기 위해 북적북적 발걸음을 옮기던 "시온의 도로"는 얼마나 복된 길이었는가? 그러나 이제는 "사람이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도대체 이 역사는 종말을 사는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기에, 목숨바쳐 성경을 사수한 수많은 사람의 피값과, 인쇄술의 발달을 통해 '예레미야 애가'라는 제목의 책으로 우리 손에 쥐어졌는가? ..... 그건 바로 이 시대에도 죄악을 행한 교회는 이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다시 예언"케 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계시록 10:11). 은혜를 풍성히 누리며 복받던 피로 산 교회(사도행전 20:28)가 종말이 되어도 때를 몰라 철을 따라 주시는 말씀 양식을 먹지 않고 오히려 평강만 외쳐대는(예레미야 6:14, 8:11) 거짓 선지의 쑥물만 받아 먹고 있으니 결국 대 환난(후 3년 반)에 빠지게 되고, 그 결과가 위와 같으리라는 교훈인 것이다. 노아 때 셋의 계통 중 가인의 후손들과 혼혈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던 무리도 상당히 존재 했었다 . 그러나 그들이 방주를 불신하다가 홍수에 빠져 죽은 것은 육체심판이 무엇이며 영혼구원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본보기가 된다(베드로전서 3:18~을 보라). 방주를 무시했지만, 하나님께 제사드리던 영들은 예수님의 피 공로에 힘입어 옥에서부터 영혼을 구원받았다. 이것은 종말의 때 아무리 예수님을 영접한 교회라 할지라도 계시록과 선지서의 새 일(방주)을 불신할 때 육체에 구원이 없을 것을 예표한 단 한 번밖에 없는 사건이다.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다(마태복음 24:37).


영혼구원에 덧붙여 이 종말에는 육체구원과 육체심판이 실행됨을 잊지 말라. 영혼구원의 시대에는 심판의 대상이 믿지 않는 자였으나(요한복음 16:9), 육체구원 시(時) 심판의 대상은 계시록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아 딱 멈추고 더이상 나아가지 않으려 하는 피로 산 교회가 된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분명 "교회와 종들"에게 듣고 살라고 주신 책이기 때문이다(계시록 1:3~20, 구체적으로는 1:4,11절. 22:6,16절을 참조하라).


『 5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


유다 민족을 주장하는 자가 이방인으로 바뀐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의 행한 죄악을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구약 때는 이렇게 이방인의 손에 넘겨졌다가 때가 차매 다시 회복을 받았지만, 종말에는 그런 것이 없다. 종말의 역사는 냉정하고 준엄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이제 다가오는 새 일의 역사는 악의 씨를 진멸하는 최종적인 심판이요, 의의 씨를 번성케 할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는 후세를 위해 교훈하는 시대가 아니요, 지금껏 기록된 교훈이 최종적으로 열매맺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종말의 부패한 기독교에겐 구약 때의 회복과 같은 소망이 절대 없다. 부패한 교회(음녀)는 이방인의 손에 붙여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보내며 죽도록 고생하다가 그의 칼에 죽는다(계 17:16). 죽고도 천년간 옥에 다녀 와 백보좌 심판 시(時) 부활하여 영원무궁세계에 들어간다. 부끄러운 구원인 것이다.


피를 믿은 기독교가 영원무궁세계 가는 것(천국시민권)은 누구도 막을 수 없지만, 아무리 피를 믿는 기독교라도 천년왕국 문턱에서 얼마든지 탈락할 수 있다. 모세 때 문설주에 피 바르고 홍해를 건너 간 하나님의 백성이 어찌하여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광야의 시체가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라! 피는 애굽의 노예신분을 벗어던지고 홍해를 가를 조건은 되었지만, 요단강을 건널 때는 법궤에 순종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양의 피와 법궤, 곧 예수 십자가와 그분이 승천하셔서 그 피로 산 말씀을 다 순종해야 새 시대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를 전해도 이단이라고만 하니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양의 피 = 예수 십자가 피 = 버림돌이다. 이 버림돌에 연합한 자들에게 성령의 인(印) 치심이 있어(에베소서 1:13) 2000 년간 은혜로 양육되었거늘... 이제 법궤(Ark) = 계시록과 예언서 = 머릿돌 = 다림줄 = 하나님의 인(印) 의 시대가 왔건만(학개서 2:23, 스가랴 4:7~10) 가나안을 앞에 두고 또다시 광야의 시체로 쓰러지려 하는 것인가? 여호수아, 갈렙과 같은 장부의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법을 몰라 구원의 도리를 올바로 전하지 못하는 종들은 3대 화가 올 때 그 첫 번째 화에서 죽기까지 괴로움을 당한다는 것이 계시록이 말하는 첫째 화의 비극이다(계시록 9:4~6).


『 6 처녀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저의 목백(牧伯)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이 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림 같도다 』


"처녀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유다 나라의 영광이 떠났다는 것이다. 유다의 "영광"이란 하나님이 그들의 예배를 통하여 함께 해 주시며 시온을 당신의 거처로 삼아 오신 그 사실을 말한다(시편 132:13~14).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아니 하시느냐에 따라 목백(Prince) 곧 지도자들이 흥왕하기도, 쇠망하기도 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 때에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유다 나라를 버리시니 그 나라의 영광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은 모두가 무력해져 버렸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지 말고 신랑 예수를 대적하는 짐승정권,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조금이라도 용납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극상포도 심은 농부가 바라는 마음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변치 않는 포도열매이다.


『 7 예루살렘이 환난과 군박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생각함이여 백성이 대적의 손에 빠지나 돕는 자가 없고 대적은 보고 그 황적(荒寂)함을 비웃도다 』


생각 밖에 북방의 포로가 되고보니 옛날 예루살렘의 자유가 그립도다. "그 황적함"이란 그 나라의 모든 행사들 곧 사생활부터 시작하여 공생활이나 예배행위까지도 폐지된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전 "환난과 군박(핍박)"을 통하여 다가올 환난과 군박에 빠지지 않도록 지혜 있는 다섯 처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마태복음 25:1~10).


『 8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같이 되니 전에 높이던 모든 자가 그 적신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 』


유다를 높이던 자들도 이제 와서 그들을 업신여기고 있다. 이유는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불결한 자"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원 죄악 때문에 속이 썩어 있었음에도, 썩은 속을 도려내 회개하라 외치던 선지자를 때리고 무시했으니 그들의 종교생활은 회칠한 무덤이었다(마태복음 23:13~39). 형식과 외식으로 겉을 포장하다가 북방 바벨론이 와서 회칠한(whitewashed) 무덤을 파헤치니 그 썩은 냄새가 만천하에 진동하게 된 것이다. 전에 높이던 자의 "업신여김" 앞에서 시온의 딸인 예루살렘은 수치스럽게 탄식하며 뒤로 물러가고 있다.


말세 교회들도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아 지도자들은 양 떼를 속이고 양 떼는 쑥물을 먹으며 속지만(예레미야 9:15, 23:15) 북방 러시아가 내려오는 날에는 더 이상 속일 수 없이 거짓 평화공존의 썩은 냄새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스룹바벨 선교회의 다시 외침을 멸시하던 모든 교회의 외식과 감추어진 죄악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이다. "저가 탄식하며 물러 가도다" 벌을 받고서야 죄를 깨닫고 수그러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종말(추수기)에는 벌을 받으면 그로서 끝장이지 새로 시작해 볼 수 있는 무엇도 남지 않는다. 6,000년 인류역사는 동방역사, 새 일의 역사로 종결되고 천년왕국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땅에서 펼쳐지는 회복된 고토, 곧 제 7,000년기의 에덴동산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9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나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게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


유다 민족이 "놀랍게 낮아졌다"고 함은 너무도 갑자기 그 처지가 바뀌어진 사실을 말한다.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나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 - 이것은 여인의 음란이 치마에 나타난 것처럼 유다 민족의 죄악이 노골적으로 탄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기들의 받을 벌을 생각해봄조차 없다는 것이다. 양심의 타락으로 철면피(鐵面皮)한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불택자는 이 세상에서 마음 놓고 죄지으며 제 세상처럼 살다가 영원한 형벌로 떨어지지만, 택민에게는 죄악이 관영할 때에 벌이 따르게 된다. 고로 택민 유다는 민족 죄악으로 인해 필경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70년간의 포로 생활은 그들의 죄악이 컸음과 그들이 여전히 주의 택한 백성임을 알려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 10 대적이 손을 펴서 보물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을 금하여 주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사오나 저희가 성소에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


이방인들은 거룩한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법인데 이제 그들은 기탄없이 성전에 들어와 성전 기구들까지 가져갔다. 알곡들에게는 이 이상으로 마음 아픈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자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선지자들은 이를 슬피 여겨 탄식한다. 거룩(구별)한 성전이 이방인에게 침범을 당하게 되는 것은 사명자들이 범죄하고 제 사명을 감당못했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행하지 않고 인본주의로 기울어 자기들 마음대로 행했기 때문이다. 지도자와 백성이 모세 율법을 실행치 아니할 때 여러 선지자가 애타는 마음으로 예언했지만 끝까지 불순종하므로 심판이 내려졌다. 종말에도 피로 산 교회가 다시 예언하는 종말의 외침(계시록 10:7~11)을 불순종한다면 공의의 심판이 뒤따를 것이다(교회 심판은 베드로전서 4:17, 이사야 43:28, 이사야 66:6. 에스겔 9장을 참조 - 더 자세한 내용은 “성전부터 심판" 클릭).


『 11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  』


성성(聖城)이 원수의 압제와 포위로 인하여 양식이 핍절된 사실을 말한다. 백성들이 살아보겠다고 보물로 식물을 바꾸는 사실을 보니 성 안의 기아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던가를 알 수 있다. 종말을 위해 들어 쓴 구약의 주인공인 육적 이스라엘에게는 육적 재앙이 임했었다. 그러나 종말의 심판 때는 영적 재앙과 육적 재앙이 모두 임한다. '전 3년 반'은 영적인 기근과 기갈로 황폐해질 때요, '후 3년 반'은 이렇게 된 교회가 육적으로 멸망하는 때이다.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유다가 하나님보다 육을 만족시키는 음식물을 더 사랑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벌을 내리신 것이다(에스겔 4:16~17).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소서" 선지자는 극도의 국난(國難)에 대하여 탄식하면서도 낙심치 아니하고 주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종에게 있어 '낙심'은 죄악이다. 오직 용기있게 돌진하며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낙심'에 빠진 자는 기도할 수 없는 법이요, 해본들 상달될 수 없는 법이다.


2. 하나님의 정의(正義)의 징치(懲治)와 재화(災禍) : 12~19


『 12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


선지자는 유다 민족을 대표하는 입장인데, 그러한 그가 심히 놀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민족이 극도로 심한 환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더욱 징계하시기 때문인 것이다(잠언 3:11, 히브리서 12:7 - "아들징계" 참조). 선지자는 이 진리를 알고 민족을 대표하여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 13 위에서부터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베푸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고적하여 곤비케 하셨도다 14 내 죄악의 멍에를 그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케 하셨음이여 내가 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붙이셨도다 』


선지자는 이 민족에게 임한 환난이 인력(人力)으로는 막을 수 없는 천래(天來)의 것임을 지적한다.

"위에서부터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라고 함은 그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이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뜻이고,

"내 발 앞에 그물을 베푸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다" 함은 유다 민족으로서는 어찌 손을 써볼 수도 없는 무적(無敵)의 환난이 "그물"과 같이 임했다는 것이다.

"종일토록 고적하여 곤비케 하셨도다"는 것은 그가 환난에 처하여 기쁨이 없고 병들었다(곤비)는 뜻인데, 환난 때문에 심히 쇠퇴하여진 유다 민족의 처지에 대한 표현이다.

"죄악의 멍에를 그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유다가 당한 환난이 그 민족이 범한 죄악 때문임을 밝힌다. 멍에를 그 목에 얽어매듯이 죄악의 짐이 이제부터 유다민족의 목덜미를 짓누를 것이니 그 죄악을 속하기까지의 부담이 심히 클 것을 "피곤"으로 표현하였다.

"내가 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붙이셨도다" 강한 나라 바벨론의 침략을 당하여 패망케 된 사실과 더불어 그 통치 아래서 죄악 탕감의 기간 70년을 싫건 좋건 겪어야 함이 내포되어 있다.


『 15 주께서 내 지경 안 모든 용사를 없는 것같이 여기시고 성회를 모아 내 소년들을 부수심이여 처녀 유다를 술 틀에 밟으셨도다 』


유다가 당하는 수난이 상상할 수 없었던 일로 연출되는 상황을 묘사한다. 믿었던 대로 일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와 정반대로 일이 전개될 때에 사람들이 마땅히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유다는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의지했고 용사들의 힘을 주의 힘보다 더 믿었던 것이다. 그들의 생각에는 그 용사들의 손이 능히 갈대아 군사들을 막아줄 수 있을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막상 일을 당하고 보니 사태는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이러한 황당한 비극을 "성회를 모아 내 소년들을 부수심이여"라고 표현한다.

"유다를 술 틀에 밟으셨다"는 것은 '철저한 심판'을 의미하는 통상적인 은유이다. 밟으신 분이 하나님임을 알려주고 있으며 이는 종말의 기독교 역시 패역하여 죄악을 범할 때 자신을 피로 사신 예수님께 '철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알려준다. 계시록 14:19~20절이 그것이다. 심판은 임박해 있다.


『 16 이를 인하여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흐름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영을 소성시킬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  17 시온이 두손을 폈으나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면에 있는 자를 명하여 야곱의 대적이 되게 하셨으니 예루살렘은 저희 가운데 불결한 자 같도다 』


선지자에게 슬픔이 임한 것과 동시에 그 민족에게도 마땅히 그리해야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징벌로서 임한 환난 앞에서 사람들은 마땅히 마음을 부드럽게 가지고 애통하며 회개해야 함을 의미한다. 유다가 당한 고통을 선지자 개인의 고통과 합치시키고 있다. 이는 유다에 남아서 잡혀가는 백성을 보며 느끼는 선지자의 슬픔이기도 하며, 동시에 상처당한 유다 민족이 열국 가운데 "불결한 자"와 같이 되어 모두들 유다를 떠나가고, 홀로 더러운 처지에 남아 있는 민족의 슬픔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누구든지 죄악으로 인해 징벌받는 그들을 멀리 하기를 원하고 있다. 죄악이 관영한 기독교회가 심판받는 그날에 기독교를 애처로이 보아줄 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 18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근심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


본절의 상반절에 또 다시 수난자의 회개를 진술한다. 고통 중에 있으면서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하는 것은 그들이 당한 처지가 하나님의 벌이라 생각하며 매를 순히 맞는 자녀의 마음이니 자기 스스로 자기를 벌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귀한 회개의 마음이다. 다윗도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편 51:4) 하였다. 예레미야는 유대 민족의 회개 심리를 대신 표현하여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라고 한다. 이어서 그는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라고 말함으로 자기가 당하는 고난이 자기의 범한 죄와 관련되었다는 의미로 또 다시 그 민족의 처참한 수난 광경을 애처롭게 묘사한다. 민족을 사랑하는 선지자의 중보의식을 볼 수 있다.


『 19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불렀으나 저희가 나를 속였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소성시킬 식물을 구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였도다 』


[유다 민족이 바라보던 맹방과 원조가 그 본래의 약속대로 실행되지 않은 사실이 진술됐다(상반절). 여기서 이른 바 "내 사랑하는 자"란 유다 민족이 의뢰하던 애굽을 말함이다. 애굽은 유사시(有事時)에 유다를 돕기로 약속했었으나 막상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을 때에는 도와주지 않았다(에스겔 30:21~26). ]


[바벨론의 침략을 당했을 때 침략 자체만으로도 비극이었겠지만 참다운 지도자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비극을 더욱 처참케 한다(하반절). 평안한 때에는 이런 흑막(黑幕)을 가리우고 나서서 어디까지나 남들을 위하는 지도자인 듯이 자처한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 본색이 탄로될 날은 오고야 말았다. 종말에도 거짓 선지자는 다 이와 같다. 구약 때 참 선지자가 예레미야 한명뿐이었던 것은 종말에도 올 환난을 바라보고 울며 기도하는 참 사명자가 많지 않을 것을 보여준다. 종말의 지도자들 모두가 평강, 협상, 화합만을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말이 옳은 듯하여도 이들은 경각간에 도래하는 환난 앞에서 모두 기절하고 말 것이다.]


3. 고민 중에 하나님께 슬프게 구함 : 20~22


『 20 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내가 환난 중에서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번뇌하오니 나의 패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으로는 칼의 살륙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 21 저희가 나의 탄식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고 나의 모든 원수가 나의 재앙을 들었으나 주께서 이렇게 행하심을 기뻐하나이다 주께서 반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시리니 저희가 나와 같이 되겠나이다 22 저희 모든 악을 주 앞에 나타내시고 나의 모든 죄악을 인하여 내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곤비하니이다』


예레미야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민족을 대표하여 중보기도를 한다. 그의 회개기도는 환난 그 자체보다도 자신의 죄악 때문이었다. "환난을 당할 때 나의 패역이 심히 큼이니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선지자는 그 환난 중에 위로를 받기는커녕 도리어 그의 환난 당함을 기쁘게 생각하는 원수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의 원수들이 보응(retribution; nemesis)받게 될 사실을 내다보고 기도한다. 누구든지 원수의 실패를 보고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벌하신다(잠언 24:17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그러므로 성도는 타인의 실패를 보고 기뻐할 것이 아니다(로마서 12:19~20). 도리어 자신도 그렇게 될까 두려운 마음으로 항상 삼가며 기도해야 할 뿐이다(갈라디아서 6:1).


"주께서 반포하신 날"이란 유다가 회복될 날을 의미한다. 유다가 회복되는 날(70년 회복)은 유다의 원수가 무너지는 날이니 하나님의 크신 공의는 치우침이 없이 실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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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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