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1110_D_이사야55

 

[목 새벽 설교] 이사야 55장 : 하나님의 확실한 은혜 2016/11/10 Thursday Dawn


2016년 1월 6일 예배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זרובבל משימ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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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성경:이사야 55:1~13

제목:하나님의 확실한 은혜


하나님의 완전 역사는 첫째 아담으로 왕국을 이루실 목적이 아니고 마지막 아담 예수님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루실 목적이다. 흙에서 난 사람은 간교한 뱀의 말을 듣고 미혹 받아 선악과를 따먹고 그 범죄한 값으로 흙으로 돌아갔으나, 하늘에서 오신(요한복음 3:13, 고린도전서 15:47)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확실한 은혜를 베푸시고 십자가에서 완전 승리하신 후 승천하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보좌 우편에서 대언 기도를 하시되(요한1서 2:1) 예언서가 다 성취될 때까지 계시다가 정한 때가 오면 만왕의 왕으로 공중재림 하셨다가(계시록 11:11~) ‘후 3년 반’ 대환난을 지나서 지상강림 하시어 아마겟돈 전쟁으로 이 땅의 악을 제하신다(계시록 13:~19:).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 예수님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게 된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은혜는 율법과 달라서 값없이 주시는 것인데, 『하나님의 확실한 은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시어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또한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으신 것이다. 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거룩한 성도의 나라가 올 것인 데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하신 이 한 말씀이 보증수표가 된다. 이미 이사야 53장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의 저주를 받으시고 돌아가실 것을 예언하셨는데, 예언하신 그대로 이루셨고(요한복음 19:30), 부활 후 제자들에게 명하신 대로 이 천국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된 오늘에 아직까지도 은혜 안에 거하지 못하는 자는 불쌍한 자이니 속히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할 것이다. 예수의 피로 거듭나고 장성하여 성결한 인격이 되면 철장권세를 받아서 역사하게 된다.


1. 말씀을 듣는 자의 영혼을 살리심:1~3


『 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


이 세상이 목마른 세상이 된 것은 아담의 범죄 타락 후부터이다. 이 땅은 없는 것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목마른 상태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목마름, 부귀 영화의 목마름, 권력의 목마름과 갈증을 느끼는 세상이다. 시원한 물을 찾아보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영생의 물은 없다. 잡을 듯하나 잡히지 않고... 헤메이며 잠시 살다가 풀같이 쓰러지는 것이 불쌍한 인생들의 생활이다. 모든 사람이 목마른 가운데서도 진리를 깨닫지 못해 죄 가운데 빠지게 된다. 인생의 이 큰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예수께서 이 죄악 세상에 생명의 물로 오셨다.


스가랴 9: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인하여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 이 말씀에서 ‘물 없는 구덩이’란 율법을 말함이다. 율법은 완전한 법이나 부패한 인간이 지킬 수 없는 법이니 물 없는 샘과 같다. 목마른 인간이 물을 얻으려고 율법의 샘을 찾았으나 약하고 부족한 인격이라 하나도 행할 수 없으니 오히려 율법의 샘이 사람을 잡는 구덩이(틀)가 되고 말았다(로마서 7:10).


요한1서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므로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로마서 10:4) ☞ 찬송가 214장


▶ 요한복음 2:1~10절을 보니 예수님께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첫 이적을 행하셨다. 여기서 물은 ‘말씀’을, 포도주는 ‘피’를 가리킨다. 요 1:14~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 하셨으니 육체로 오시기 전에는 영원한 말씀으로 계셨다. 히브리서 9:22~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했다. 곧 율법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피가 있는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생명의 물이 되셨으니 누구든지 예수의 피와 살을 먹지 않고는 살 길이 없다(요한복음 6:53).


▶ 요한복음 4:5~34절에 수가성에 시집을 다섯 번 간 여자가 예수님을 만나서 생수를 얻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여자’는 죄에 갇힌 우리들 전체를 가리킨다. 로마서 7:2~3절을 보니 신랑은 법이다. 따라서 신랑이 다섯이라는 것은 구약의 딸 이스라엘이 다섯 가지 법을 섬긴 것을 가리킨다. 이들은 ① 선악과의 법 ② 혼혈금지법 ③ 방주법 ④ 할례법 ⑤ 율법인데 이 법들은 인간에게 생수가 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연약한 여인에게는 폭군 같은 남편이었다. 신랑이긴 하되 참된 신랑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 요한복음 5:1~9절에 베데스다 못가에 38년된 병자가 있었는데,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병 고침을 받게 된 것은 참된 생명물(베데스다 못)로 오신 예수님을 비유한 것이다. 이 병자도 역시 ‘우리들 자신’을 대표하는데 영·육 간에 병으로 죽게 된 우리가 예수님께 접붙어서 참된 진액을 받으므로 영생을 얻었으니 예수님은 생수(참된 음료)이시다. 요한복음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7:37~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1절: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은 이 땅에 참된 생수로서 오신 분이다. 예수께만 있는 이 생수를 먹는데 있어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것이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심정으로 목마른 자라면 누구든지 생명수가 되신 예수님께로 나아오라는 것이다. 사는 길은 이 길밖에 없으니 이 길로 나아와야 할 것이로되 “나를 청종하라”(2절) 하셨으니 순종과 희생이 있어야 생수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 2절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참된 양식과 음료는 예수님뿐이시니 예수님 밖에서 사는 생활은 아무리 부요할지라도 그 영혼을 배부르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을 떠나서는 다 헛수고요 다 헛된 생활이다. 영적인 양식이 없으니 항상 배고프고 불만·불평·시기·질투뿐이다. 내가 최고의 보배(예수)를 소유했다면 다른 것이 필요가 없다(마태복음 13:44~46).


아모스 8:11~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우리는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닮아야 최고의 인격자가 된다. 성경 기록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 3절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하셨다(요한복음 1:17). 은혜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려면 율법에서 한 걸음 도약해 은혜의 교훈으로 나아와야 하듯이, 환난 때 재림의 주님을 영접하려면 은혜에서 한 걸음 나아와 새 일의 교훈을 들어야 한다. 육체의 양식은 입으로 먹지만 영혼의 양식은 귀로써 먹는다. 그래서 계시록 2~3장에서 말씀하시길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신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다(로마서 10:17).


2.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여 주심:4~5


『 4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5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


● 4절:누가복음 1:33~ 예수님은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하셨는데, 다니엘의 예언대로 69이레가 되매 예수께서 이 땅에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자)로 오셨는데, 곧 “만민의 인도자 · 명령자”이셨으니 증거하시길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요한복음 14:6). 이 이스라엘의 인도자·명령자 예수를 진실한 종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 5절“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이 나라를 성경은 천국이라 부르는데(마태복음 4:23), 이 천국 운동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여, 몸의 안식, 지상 안식. 무궁 안식으로 이루어져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완전히 이루게 된다.


예수 믿고 중생 받은 자는 이미 마음에서 천국이 이루어진 것이요, 주 재림 때에 예언을 지키는 자에게는 지상에서 1,000년간 살 수 있는 축복이 주어지는데 이 때가 바로 의의 왕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시대이다(이사야 32장). 그래서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오셨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 주셨다. 또한 이제 재림 때에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예수의 일을 지키는 자에게 철장권세(새일성가 72)를 주시어 극도로 “영화롭게” 하여 주신다(계시록 2:26~27).


이사야 59:19~, 60장을 보면 해 돋는 동방에서 말씀의 빛인 예언서를 다시 예언할 때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오리라...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오리라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였음이라”고 거듭 말씀하셨다(새일성가 75).


죄인 괴수가 하나님 집에서 영화롭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공로일 뿐이다. 아멘!


3. 나오는 자를 널리 용서하여 주심:6~7


『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데는 7대 법을 세우시고 시대 시대마다 역사를 하신다. 때에는 죄를 가르쳐 주시는 율법의 때가 있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은혜의 때가 있고, 이 땅에서 죄인을 제해 버리시는 용서 없는 심판의 때가 있다. ☞ 하나님의 시대적인 역사표


● 6절:이 종말의 때에는 예언의 법에 의해 무서운 심판을 행하시기 전에, 예언서를 듣고 바벨에서 나오기만 하면 누구든지 널리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가 있고 '만날래야 만날 수 없는 때'가 있다. 지금 예수님은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시니 속히 문을 열고 재림의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하겠다.


스가랴 8:9~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학개, 스가랴)들의 입의 말을 이 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하셨다. 인생이라는 것은 믿을 것을 믿고 잡을 것을 잡아야 용서 받고 참되이 살 수가 있다.


종말에 널리 용서해 주시는 곳이 바로 초막절 촛대 교회이다. 스가랴 14:16절에 누구든지 초막절에 올라오지 않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초막절 성전의 시작은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이다. 학개서 2:10~23절의 예언대로 종말 뒤집어엎을 때가 오면 모든 교회가 9월 24일에 지대 놓고 시작한 여호와의 제단으로 나아와야 하는데(이사야 2:2~), 때를 몰라 이 제단에 나타난 모든 예언서를 불순종한다면 예언을 가감하는 자로서 환난 날에 육체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 7절:“돌아오라” - 전도서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6절 말씀처럼 우리에게는 지금이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다. 인생의 난제가 산같이 쌓인 현실에, 참된 기독교 신자라면 이사야서를 자세히 읽고 듣고 지켜서 돌아와야 한다. “돌아오면”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하신 것이다.


이사야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 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라”


십자가 피를 믿으므로 죄악 세상에서 돌아오고,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므로 허락받고 나온 마귀의 미혹으로부터 돌아오는 자는 영과 육이 온전해지는 『큰 구원』을 받게 된다.


4. 기쁨과 평강으로 인도하심:8~13


『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10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복을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당신이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은 속히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라는 경고의 말씀이다. 전도서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한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이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시니 우리를 새 시대로 인도하신다.


계시록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그러므로 예언서의 말씀은 결코 헛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이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지금은 피 바르고 홍해를 가를 때가 아니요, 법궤만 의지하여 요단강을 가르고 가나안에 들어갈 때이다. 출애굽 때의 60만 대군 중에서 남은 자 여호수아, 갈렙을 본받아 우리는 적은 수이지만 말씀의 법궤를 메고 앞으로만 돌진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말세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값없이 주심은 우리를 통하여 영원한 영광을 받으시려고 역사하심인데, 그 역사의 계획서가 곧 성경이라는 것이다. 영혼을 구원하여 영화롭게 하는 역사는 이방 갈릴리에서 하셨고(이사야 9:1~3, 마태복음 4:14~), 종말에 육체를 구원하여 영화롭게 하는 역사는 동방 땅 끝에서 하신다고 하셨다(이사야 24:14~15). 그러므로 기독교에는 영화롭게 하는 일이 크게 두 번(1·2차 역사-계시록 6:2)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며, 또한 이 역사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가 복 있는 자라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주가 인도하는 대로 내가 따라 가리라

피곤하고 곤고해도 염려할 것 없도다

여호와를 앙망하면 새 힘 얻고 올라가

독수리와 같이 날아 승리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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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15-5126(교회), 011-9739-2782(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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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1109_예레미야44

 

[수 오후 설교] 예레미야 44장 : 예레미야 최후의 예언 (하늘여신 우상) 2016/11/09 Wednesday Afternoo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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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성경 : 예레미야 44장

제목 : 예레미야 최후의 예언


1. 황폐의 원인은 우상숭배 : 1~6


『 1 애굽 땅에 거하는 모든 유다인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거하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모든 재앙을 보았느니라 보라 오늘날 그것들이 황무지가 되었고 거하는 사람이 없나니 3 이는 그들이 자기나 너희나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나아가 분향하여 섬겨서 나의 노를 격동한 악행을 인함이라 4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치 말라 하였어도 5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므로 6 나의 분과 나의 노를 쏟아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살랐더니 그것들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고 적막하였느니라 』


애굽에 사는 '악한 무화과'들의 우상숭배가 얼마나 강퍅한 죄악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본국에 있을 때 자기 동포들이 우상숭배로 인해 멸망 받은 것을 목격하고서도 애굽 땅에까지 도망온 자로서 또 다시 우상숭배를 행하는 이 모습이란..... 이것이 바로 인간의 패역이다. 그들의 죄는 ①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 곧 사단에게 분향한 것과(3절) "종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경고가 있었음에도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회개치 않은 강퍅함이다.


유다 땅에서 제1, 제2계명을 범하여 북방 칼을 맞고 패망한 유다의 역사! 이 가슴 아픈 수치의 역사를 체험하고도 선지의 말을 어겨가면서까지 애굽에 왔다면, 수치와 상처가 아무는 동안에 근신하며 자중해야 함이 옳지 않겠는가? 그러나 뼛골 속 선악과의 기질은 상황을 봐주지 않고 튀어 나와 인간의 육신과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것이다. 이 원죄악이 오늘도 "거듭났다" 자랑하는 기독교인의 뼛골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패역 때문에 유다의 남은 자들마저 재차 북방 칼에 상하여 씨가 말라진 이 비극은 '구약의 비극'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들의 역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언이 되어 오늘날의 기독교 안에서 그대로 이루어질 일인 것이다. 인간 종말에 모든 예언서가 등불이 되어 밝혀질 때, 기독교계 안에서도 예레미야서의 일들이 재연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발견된 선악과의 악질, 곧 범죄와 패역은 아직 소멸되지 않고 우리 속에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종말에는 마귀의 전술이 고급화되고 교묘해져서 기독교계 스스로는 자신의 패역을 잡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언의 등불이 들어가는 곳마다 흑암이 빛 앞에서 자신의 정체가 폭로되므로 깨달아 화를 피할 자들이 다수(多數) 나오게 된다. 고로 마귀는 계시록과 선지서! 즉 예언의 등불만은 읽히지 못하도록 총 궐기하여 교계의 지도층 속에 들어가 마태복음부터 유다서까지만 사모하도록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의 정치-종교적인 모든 범죄들은 종말의 예루살렘 성읍(기독교)에서도 각종 가증한 형태로 이면화되어 나타난다. 구약성경은 종말에 발생할 인간의 패역을 미리 앞당겨서 '보이고', '교훈하신'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악마가 득세하는 21세기에는 '예언서'가 아니고서는 이 시대의 흑암을 물리칠 수 없다(하박국 1:1~8, 2:1~4). '인간 종말의 시대'는 하나님의 7대법 중 '예언의 법'이 집행될 시기이므로, 예언의 등불을 밝히지 못하고 애굽 사상으로 치우치면 새 시대에 들어갈 권리를 박탈당함과 동시에, 예언을 가감한 그 죄로 육체가 북방 칼에 맞아 죽고(이사야 1:20), 그 영혼까지 1,000년간 옥에 갔다가 '마지막 부활(계시록 20:11~)' 때 예수님의 피 공로로 벌거벗은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이 미리 보이신 공의의 법이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하신 말씀의 참된 의미는 노아 때에 이미 종말을 고해 놓았다는 뜻이다(누가복음 17:26. 베드로전서 3;18~20).


지금은 교계에 깊은 흑암이 역사하므로 '십자가'만으로 다 된 줄 아는 교만이 도리어 '의로움'으로 인정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피로 산 말씀'인 예언서를 무시한 성도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ㄱ) 육체는 북방 칼에 죽고(구약 선민이 선지자의 말을 반대하다가 북방에 잡혀간 것을 추억하라! - 예레미야 39:1~10).


ㄴ) 몸이 사는 회복된 에덴 천년왕국이 펼쳐지는 기간 동안 예언의 법을 무시한 죄의 대가로 옥에 가 있다가


ㄷ) 백보좌 심판 때 영생의 부활로 일어나 천국에 들어가는 과정을 걷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위 '천국'이란 제8천년기부터 펼쳐지는 영원무궁세계를 뜻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새 일 제7천년기의 땅! 곧 '회복된 에덴'을 차지하라고 주신 말씀이다. 이를 아는 자의 수효가 교회 중에 심히 적으므로 이 시대의 교회는 '북방 칼'에 호되게 얻어 맞게 되는 것이다. 지금 교회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절에 기록된 바울 사도의 편지에서 더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더 세밀하고 정확한 묵시인 요한계시록을 주셨는데도 말이다. 때를 따라 양식을 주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마태복음 24:45~). 때에 따른 양식을 제대로 받아 먹는 자만이 복이 있다.


2. 애굽에 거하는 유다의 남은 자도 우상숭배 : 7~14


『 7 나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 유다 중에서 너희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 먹는 자를 멸절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게 하려느냐 8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의 소위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너희의 가서 우거하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끊어버림을 당하여 세계 열방 중에서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9 너희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한 너희 열조의 악과 유다 왕들의 악과 왕비들의 악과 너희의 악과 너희 아내들의 악을 잊었느냐 10 그들이 오늘까지 겸비치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열조 앞에 세운 나의 법과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느니라 』


본토민이 잡혀 간 원인이 우상숭배임을 말씀하신 데 이어 지금부터는 도망한 유다의 남은 자들을 향한 최후 예언을 시작하신다. 총독 살해사건으로 인해 화가 났을 북방이 두려워(41:1) 애굽으로 도망온 유다 백성이 이방 땅에 와서까지 우상을 숭배하는 기막힌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탄식하신다. 하나님은 이 기막힌 현실을 다음의 3가지 질문 형식으로 표현하셨다.


① 너희가 "멸절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게 하려느냐?" (7절).


② 하나님 앞에 "끊어버림을 당하여 세계 열방 중에서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8절).


③ 유다에 거하던 백성이 하나님의 벌(북방 바벨론 환난)을 자초한 "이전 죄악(유다 땅에서 행한 죄)들을 벌써 잊었느냐?" (9절).


그들은 이전 죄악들을 벌써 잊은 걸까? 생각만 해도 소름끼칠 무서운 북방 재앙을 당한 것은 모두 저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는 '우상' 섬김에 있었거늘, 어찌 유다의 남은 자가 또 다시 '우상' 앞에 분향하게 된 것일까? 축복으로 택함받은 민족이 저주의 칼에 상하였다면, 매맞은 원인을 생각하며 한없이 통회케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 터인데, 화를 피하고 '남은 백성'까지도 원죄악의 고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사단의 공격을 당하여 교만(43:2)과 패역으로 떨어져 버릴 때 하나님의 마음은 한없이 찢어졌던 것이다.


오늘날은 어떠할까? 이 시대는 예레미야서의 경고(북방환난)로부터 안전지대에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모든 말씀을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시록 10:11). 북방에서 끓는 가마(예레미야 1:13)가 남을 향해 기울어진 인간 종말의 형편이 유대민족의 역사에 녹아져 있는 것이니 그들의 패역과 교만은 오늘날의 패역과 교만인 것이다. 고로 본문 7~9절을 이 시대에 다시 외치면 이러하다.


"은혜받은 교회여, 백성의 지도자들이여, 너희는 북방 칼에 멸절당하므로 피로 산 백성이 이 땅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하려느냐?"


"피로 산 교회여, 하나님이 없다 하는 무신론 짐승 세력과 이방신을 섬기는 우준한 백성들 앞에서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일제침략과 6.25 전쟁을 겪고서도 그 환난을 불러들인 죄악(기독교박해, 신사참배)을 회개치 못하고 어찌 더 큰 죄악(공산당 협상)을 용납하는 것이냐?"


지금 기독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어째서 성경을 손에 든 (은혜로 택한) 백성이 구약 종말이 인간종말을 미리 보여주신 사건임을 이리도 더디 믿는단 말인가? (이사야 46:10. 로마서 15:4. 히브리서 10:1. 고린도전서 10:6,11). 예수님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이사야 19:1~),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때(이사야 59:19)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 당신을 영접케 하려고 세워 주신 '애굽 땅 중앙제단'(이사야 19:19), 엘리야 제단(말라기 4:5)에서 예레미야서의 메시지를 힘써 다시 외치고 있건만, 아무도 듣지 않고 있다. 이 좋은 꼴을 어서 받아 먹고 남에게 전파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이 마당에, 이 좋은 꼴을 자기도 먹지 않을 뿐더러 남까지 먹지 못하도록 발로 마구 짓밟는 사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다(에스겔 34:18). 사도들이 전하지 못한 '남은 좋은 꼴'과 '남은 맑은 물'은 누구를 통해서건 이 시대에 100% 다 전파되어야만 하는데(계시록 10:7. 누가복음 24:44. 마태복음 5:17) 이 일에 누가 나설 것인가?


종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교만히 행하던 구약 교회가 저주를 받아 멸망하였다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계시록 10:7)이 다시 예언될 때 다시 듣지 않는다면, 그 교만함으로 인하여 다음의 저주 예언으로 떨어지게 될 것은 분명한 일 아닌가? (예레미야 26:5~6).


『 11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재앙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며 12 내가 또 애굽 땅에 우거하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리라 13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같이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니 14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는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남아서 그 사모하여 돌아와서 거하려는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도피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


위 말씀을 보니 이제 남은 백성이 '멸망할 사실'은 (용서의 여지가 없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차원의 일이 되어 버렸다. ① 온 유다를 끊어버리겠다 하셨고(11절) ② 남은 자들을 취하여 엎드러뜨리겠다 하셨으며(12절) ③ 백성을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게 하여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라 선포하셨기 때문이다(12~13절). 이는 회개를 유도하기 위한 경고 차원의 말씀이 아니라, 교만을 징계하기 위한 무서운 심판 선언적인 말씀들이다. 이는 당신의 진노를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이다.


교회가 범죄할 때 거룩한 성(聖城) '예루살렘'이라도 치셨거늘, 이방의 '애굽 땅'에서이랴! 시온산일지라도 채찍에 상하였다면 우상의 소굴이요 죄악의 땅인 애굽(계시록 11:8)은 더 강한 철채찍으로 훼파하실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을 성취하시고자 바벨론 군대를 애굽 땅에까지 보내어 징벌케 하셨으니, 이 일로 화려한 애굽뿐만 아니라 그곳에 거하던 유다의 남은 자들까지 완전히 소탕되었던 것이다(46:12, 26~). 하나님의 예언은 100% 성취되기 마련이다.


14절 : "도피하는 자들 외에는 (고토로)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 이미 4:6절에서 선포된 바 있는 예언으로서 북방환난을 피할 수 있는 길은 '기호 밑' '임마누엘 나래 밑'으로 도피하는 길뿐임을 시사한다.


이제 21세기에 '하늘 여신' 숭배사상에 물들어 있는 패역한 교계에서도 본 제단에서 외치는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나올 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를 갖고 있지 않던 이방의 순수한 사람들(이방족) 중에서 절실히 깨달고 돌아올 자가 오히려 더 많을 것이다. 흰 무리의 구성원 중 교회 밖의 사람들이 더욱 많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므로 급히 예수를 믿게 됨과 동시에 예비처로 인도되어 환난을 면케 되는 것이니, 출애굽 때의 역사와 같다. 마귀 정권과 마귀 교권과 각종 인본주의 체제에 잡혀 있는 하나님의 예정된 흰 무리를 다 찾아내기 위하여 뽑히움 받은 자들이 바로 세계 각국에 흩어져 존재하는 144,000명이다(미가서 5:7~9).


우리 시대에는 애굽화된 정치, 애굽화된 종교체제로부터 탈출하여 시온으로 "도피하는 자들"의 행렬이 이어질 것인데, 5개월간만 진행된다. 이것을 암시한 말씀이 바로 14절이며, 이들을 이끌어낼 종말의 선지자적 사명이 스룹바벨 제단에 초막절 역사로 연합될 세계 각국의 '우는 자들'이다(겔 9:4). 인간을 속이는 마귀의 권세가 이토록 강하지만 새 일의 용사들은 어서 어서 모여들어서 다림줄의 진리 잡고 합심단결 되어 보자! 억만 마귀가 일어나 우리를 훼방한들 무엇이 두려우랴!


패역과 살기로 가득 차 예레미야를 대적하던 유다의 남은 자들처럼, 오늘날의 교우들도 자신들의 탐심(우상)을 쳐서 예언하는 예레미야와 같은 우리들에게 돌을 집어 던질 것이나, 우리가 두려워 말고 저들에게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살리고픈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살아야 할 마지막 알곡까지 살려내고자 하는 아비(농부)의 마음(아모스 9:9)! 오직 그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다음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실제로 만날 수 있게 된다.


3. 그들의 반항과 선지자의 대답 : 15~24


『 15 때에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거하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16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17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정녕히 실행하여 우리의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방백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대저 그 때에는 우리가 식물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니 18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19 여인들은 가로되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에게 경배하는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


예레미야가 애굽으로 도망한 자들 속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지 말라"는 말씀을 전할 때 유다의 남은 자들이 발악하며 반대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백성의 상태를 분석해 보자.


① 예레미야를 반대하는 일에 남녀 모두가 일치 단결해 있고(15절), 우상사상에 깊이 빠져 있던 터라 양심이 마비된 채 너무나도 뻔뻔스러운 모습을 갖고 있다. 하나님 섬기는 일에는 하나될 줄 모르는 그들이 어찌하여 우상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이토록 강력한 일치 단결력을 보이는가? 과연 사단의 마력이 아닐 수 없다.


② 그들은 참 선지자의 예언을 불청(不聽)하고 자신들이 분향하는 "하늘 여신"을 섬기며그 앞에 서원한 대로 강행하리라 한다. 예레미야에게 철저히 맞서고 있는 모습이다(16~17上). 이 패역자들의 도전적인 입술은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방백들이 유다 성읍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말하고 있다(17절). 3~5절, 9절에 있는 진리의 경고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이다.


이들이 참 선지자를 반대하는 이유는 17下~18절이 증거한다. "대저 그 때에는 우리가 식물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니 18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던 시절에는 식물이 풍부하였는데, 그것을 폐지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이 찾아왔다고.....? 과연 이 말은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요, 마귀가 시키는 거짓말이다!


진리에 비추어 보면 그들의 말이 거짓인 것이 금방 드러나고 만다. 참된 종교(신앙) 생활이란 '하나님 제일주의'로서 이방종교와 같이 이 세상에서의 복리(福利)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로 현재에도 "예수님만 제대로 믿으면 부자가 안 될 수 없다. 예수 믿고도 가난한 것은 잘못 믿어 그렇다" 하는 설교는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자의 설교가 아닐 수 없다).


이 시대에는 다음 말씀이 정통이다!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9:58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의 삶은 우리 대장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과도 상반된다. 우상숭배가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에 한재가 임했던 것은 부인치 못할 사실인데(열왕기상 17:1~16. 예레미야 14:1~6), 그들은 눈이 짧아 오히려 자기들이 "하늘 여신"을 섬길 때는 재앙이 없었다고 우기며 거짓말을 해대고 있다(요한복음 8:44). "다른 신들"과 그 중 하나인 "하늘 여신"을 섬긴 결과로 피 터지게 맞아놓고서도 소경, 귀머거리 독사가 되어 우상을 섬길 때는 복이 쏟아졌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는 생명의 경고를 듣지 않겠다는 뜻이다(시편 58:3~5). 이들은 하나님께서 회개 하기를 바라며 참고 기다리시던 시기를 (재앙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복을 받던 평안의 시기로 오해하고 있다. 이러한 오해와 무지로부터 터져 나오는 불만과 불평 또한 마귀에게 사로 잡힌 불택자들의 주특기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선지자 단체로서

예레미야 44장을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한다!


우리가 진정 이 시대의 파수꾼인지 아닌지는 이 예언이 가서 꽂혀야 할 대상이 우리 앞에 나타나 우리를 괴롭히는지 아닌지로 판명될 것이다. 이사야서를 깨달은 종말의 사명자들이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쓰고 '북방에서 노략이 속히 온다'는 증거를 시작할 때는(이사야 8:1~4) 심판을 앞둔 종말의 시기이다. 이 때 '유다'의 사명을 행할 백성 중에 말씀(실로아 물)을 버리고 친 북방(르신, 르말리야) 사상으로 기울어 범죄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앗수르(러시아) 왕이 유다 목에까지 치고 올라올 것이 예언되어 있고(8:6~8), 이 환난이 유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대될 것과(9), 이 때 하나님은 시온의 피할 곳이 되어주시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라 하셨다(14). 고로 척량줄을 들고 '이스라엘의 두 집'을 순행해보면 "하늘 여신"을 숭배하는 범죄가 우리 눈에 발견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두 집'은 어디를 말하는 걸까? - 구약 때는 사마리아(오홀라)와 유다(오홀리바)를 뜻하지만 -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가 다시 예언되는 인간 종말에는 바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는 큰 집(구교)과 작은 집(신교) 곧 '가톨릭'과 '개신교' 단체가 되는 것이다(이면화). 이제 '가톨릭'과 '개신교' 두 집안 사람들은 '큰 서판'을 취하여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하신 묵시(이사야 8:1), 곧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하신 지체치 아니할 묵시의 말씀(하박국 2:2~3)이 녹음테잎과 서책과 인터넷으로 공개되고 있는 이상, 이 예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남은 자'가 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야의 둘째 아들인 마헬살랄하스바스의 역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니라" 하셨기 때문이다. 순종하면 살지만, 거절하여 배반하면 이 말씀에 걸려 넘어져 북방 칼이 내려오는 그 날, 비참히 쓰러지게 된다(이사야 1:19~20).


5대강국 때 세워진 다림줄(먹그릇) 가진 중앙제단! (이사야 19:18~20). 본 제단에서 파수꾼의 눈을 갖고 교회 위에 다림줄을 드리워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들을 살펴보니(에스겔 9:4), 이스라엘의 '큰 집'인 가톨릭 안에서 가증한 '하늘 여신 숭배'가 잡혀 나왔다. 이제 보라! 이들이 행하는 여신 숭배의 상태는 위험수위를 넘어서 멸망의 지경에 가 있음을 발견케 될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제2권


다음은 7장에 이어 가톨릭에서 출판한『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2권』(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작, 하 안또니오 신부 옮김. 푸른군대 한국본부 펴냄) 에 담겨진 내용들을 발췌 나열한 내용이다. 글의 번호는 편집자가 편의상 메겨 놓은 것이며, 각 문장은 위 책의 본문과 일점 일획도 틀리지 않음을 밝힌다. 이미 7장에서 예언된 "하늘 황후"가 44장에서는 "하늘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음을 읽을 때 독자들은 가톨릭의 마리아 신심(信心)이 일반인이 알고 있는 상식선을 뛰어넘어 고도의 '우상숭배' 지경에 도달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먼저 묵주기도(로시리오 기도) 끝에 올리는 '성모찬송'을 소개함으로 가증한 여신숭배 고발을 시작한다.


성모찬송


"하례하나이다. 천지의 모후여, 우리의 생명이시요, 기쁨이시며, 희망이신 자비의 어미니여, 하례하나이다. 귀양살이 하는 에와(하와) 자손이 눈물의 골짜기에서 울며, 탄식하며 어머니를 부르나이다. 우리의 변호자이신 어머니여, 그 어지신 눈으로 우리를 굽어보소서. 이 귀양살이가 끝난 다음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 예수를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너그러우신 마리아여, 자애로우신 마리아여, 어지신 동정 마리아여. 천주의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시어, 그리스도의 언약하신 바를 얻게 하소서. 기도합시다. 천주여, 외아드님이 당신 생애와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갚음을 마련하셨나이다. 이 신비를 묵상하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로사리오를 바치오니, 우리로 하여금 그 내용을 본받고, 언약된 바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편집자 주: 기도 첫 부분에 '천지의 모후'라는 단어에 주목하고, 중반부의 '아드님 예수를 우리에게 보여주소서'라 한 내용에 주목하라. 보여줄 수 있는 자가 보여지는 대상보다 높음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기도 마지막에 '예수'가 빠진 그냥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하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합해 볼 때, 이 기도문은 마귀에게 올려지고 있는 기도임이 분명해진다. 가톨릭은 몇 년 전 성경에서 '야훼'(여호와)라는 칭호를 모두 삭제하고 대신 '주님'으로 고쳐놓았으며, 이렇듯 기도 끝에 붙여져야 할 '예수'라는 가장 귀한 이름(사도행전 4:12)조차 빼놓은 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 마리아가 천지(하늘과 땅)의 모후로 둔갑했으며, 어찌하여 마리아가 그 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말고 할 위치에까지 가게 된 것인지, 지금부터 차근히 밝혀내 보려 한다. 생각하면 할 수록 가슴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 무서운 "하늘 여신" 숭배사상이다.


모든 단어는 가톨릭 교회가 쓰는 용어를 그대로 인용하였으며, 매 번호 옆 (  ) 안은 다뤄진 내용을 압축한 주제어이다.


1. (은총의 통로) "하느님께서는 마리아께 당신 모든 은총의 보관, 관리, 분배의 소임을 위탁하셨기에, 하느님의 은총과 선물은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나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그 권한으로, 영원하신 성부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덕과 성신(성령)의 선물을 당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당신의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보내 주신다'고 베르나르도 성인은 가르칩니다." (10번 참조)


2. (천상 어머니) "어린이라면 누구나 본성상 어머니와 아버지의 보호 아래 삽니다. 은총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참된 자녀가 되려면, 하느님을 아버지로,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누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되어 영광으로 여긴다고 말하면서도 마리아께 진실한 자녀로서의 사랑을 표해 드리지 않는다면, 이는 거짓이며 그가 모신 아버지께 불경이 되는 것입니다."


*** 우리를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장성시키며 양육시켜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 보내주신 성령이시다. 그런데 가톨릭은 성령의 자리에 교묘히 마리아를 앉혀 놓고 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마리아를 하늘 모후(어머니)로 모시지 않고 있는 전 세계의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은 '교회의 참된 자녀'에서 제외된다. 서강대 등, 예수회가 운영하는 대학의 교양필수 과목 중 예수회 신부들이 강의하는 수업내용을 살펴보면, 가톨릭 이외의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일례 과목명: 서강대 그리스도교 사상). 그들은 겉으로는 '통합'과 '화합', '종교간 대화와 타협'을 외치고 있으나, 실제 그들의 교리로 들어가보면 아무리 성경대로 믿는 신실한 개신교회라도 그들에게는 가톨릭에서 가지 쳐 나간 '이단'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마지막 때 막대한 재력과 권력을 소유한 가톨릭이 짐승(정권)과 야합할 경우, 그네들의 교리를 벗어난 모든 신실한 성도들을 심하게 핍박하리라는 것을 자연스레 예상해 볼 수 있다.


3. (성령의 베필) "성신께서는 마리아를 당신 배필로 삼으셔서,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에 의해서, 마리아로부터, 당신의 위업인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탄생케  하셨으니, 당신 정배의 말을 거절해 본 일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신비스런 방법으로 간선자(揀選子:분간하여 뽑힘받은 자=간택자)들을 뽑아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사도들을 위해 간구하셨고, 또한 오늘날 우리들을 위해 친히 간구하고 계신 분은 오직 성령님이 뿐이신데, 가톨릭은 이 역할이 성령의 정배라 표현한 마리아의 특권인 것처럼 조작하고 있다. 정배(正配)란 장가처, 적처(嫡妻) 곧 '혼례식을 치르고 맞은 아내'를 뜻하는데, 혼인잔치의 주인공은 예언의 등불을 높이 든 '지혜로운 다섯처녀'이지, 마리아라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마태복음 25:4,10. 계시록 19:7~9).


4. (영적 양분의 근원, 양육자) "마리아는 우리 영혼을 기르시고 하느님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각별한 임무와 권한을 부여 받으셨습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모든 간선자가 생활하고 있는 동안에는 마리아의 태내에 숨겨져 있는 것과 같아서, 복된 어머니께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다시 낳으실 때까지는 실제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아기에 그 어머니의 젖이 가장 좋듯이, 모든 간선자도 마리아로부터 그 모든 영신의 영양분과 힘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통달케 하시는 이도 성령 이시요(요한복음 16:13, 2:27. 고린도전서 2:10, 13), 고치시고 인도해주시는 분도 성령이시요(로마서 8:13~14), 완전히 결실케 하시는 분도 성령이시다(갈라디아서 5:22). 그리스도와 같은 완전한 인격에 이르도록 장성시켜 주시는 분도 성령이시요(에베소서 4:13~17),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이도 성령님뿐 이시다(요한복음 14:16). 우리로 예수를 영접토록 인도하시는 분도 성령님이시지만,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을 듣고 예수를 마음에 영접하는 순간 우리 안에 내주하시어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므로(사도행전 10:44~46), 성령께서는 마리아에게 우리 영혼을 기를 권한을 이양하실 어떠한 이유도 없으며, 우리가 예수께로 가기 위해 마리아를 거쳐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다. 가톨릭은 '그 아기에 그 어머니의 젖'을 운운하면서 신자들이 마리아로부터 영혼의 영양분과 힘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이는 성경에서 아주 멀리 떠난 '다른 복음'임이 확실하다(갈라디아서 1:6~8). 누가복음 11: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영적 양분은 '마리아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설교를 통하여 확실히 못박으셨다.


5. (원죄 없음) "마리아는 하느님의 뛰어난 주형(鑄型)으로서, 성신에 의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합체시켜 내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우리 인류도 하느님과 일치시켜 내십니다. 그 주형 안에서 다시 주조되기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진실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상을 입게 됩니다. 이는 나약한 인간에게 적합하고 부드러운 방법으로서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상을 그대로 본뜰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티끌 만한 죄의 그림자도 없는 거룩하고 정결한 마리아에게는 마귀가 절대로 침범할 수 없기에, 그르칠 위험이 없는 안전한 방법인 것입니다."


*** (편집자 주: 가톨릭은 마리아가 어미 뱃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죄가 없이 잉태되었으며(무염시태), 태어나 지상에 살아 있을 동안도 어떤 죄도 범치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마리아를 일컬어 '인류를 하느님과 일치시켜 내는 자'라 하고 있다. 또한 마리아에게는 티끌 만한 죄의 그림자도 없고 거룩하고 정결하다 한다. 마귀가 이기지 못하는 분은 삼위의 하나님밖에 없는데, 마리아를 마귀가 절대로 침범치 못할 신의 경지에 올려 놓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가톨릭은 삼위일체의 신앙을 떠나 전적으로 '아세라 신앙'에 젖어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사사기 3:7. 열왕기상 14:15,23. 열왕기하 13:6, 17:9~10). 구약에서 보여지는 바알(태양)신과 아세라 여신 숭배사상은 신약으로 넘어와서는 가톨릭 안에서 '성체'와 '마리아' 숭배 형태로 재연되고 있다. 순교자의 동무 종인 우리들은 때가 되면 순교의지를 가지고 가톨릭 안으로 들어가 거짓 교리에 속고 있는 순진한 양 떼들을 살려낼 마음므로 다음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이사야 27:9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 함을 얻을 결과는 이로 인하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로 부숴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태양상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여기서 잠시 태양상에 해당하는 가톨릭의 '성체' 신앙을 소개한다.


먼저 '신영성체의 기도'를 소개한다 : "지극히 거룩하신 성사(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영하다 : 성체 먹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옵나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 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시옵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옵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현세에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가톨릭대사전에 소개된 '성체'를 소개한다) '성체' : 성체는 미사 중 성찬의 전례 부분에서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해져 한 가지 신비를 세 가지 측면에서 보여준다. 우선 성체는 세상 끝날까지 인간과 함께 계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된 '실재적'이며 '신체적' 현존이다(편집자주: 이 사악한 교리가 사람들을 성체 앞에 절하며 경배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성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즉, 미사성제를 통해 희생이 계속됨으로써(편집자주: 히브리서 7:27, 9:12,26절에 위배된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성체는 사랑의 일치를 보여준다. 즉 신자들은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영혼의 초자연적 생명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편집자주: 희고 둥근 빵쪼가리를 입에 넣음으로 영혼의 초자연적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무의미하다).


*** 포도주<피>와 떡<말씀>의 신령한 의미는 온데 간데 없고, 기업에서 만든 마주앙(상표이름) 포도주와 밀가루 떡 형상에 가짜 예수가 들어 앉아 경배를 받고 있으니 이 웃지 못할 희극은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이사야 9:16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6. (의탁의 대상) "자기의 능력과 기술만 믿는 조각가와 같이 통속적인 방법으로만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사람을 눈여겨 보십시오. 자기의 재간에만 의존하지 않고 마리아께 의탁하여 성신의 역사하심을 입은 유연하고 초탈한 사람과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전자에는 얼마나 많은 오점과 결함과 착각이 있으며, 얼마나 많은 암흑과 닦이지 않은 후박함이 스며 있습니까? 그러나 후자는 얼마나 순결하고 천상적이며 얼마나 그리스도를 잘 닮은 모습입니까?"


*** 에녹은 말씀과 동행하여 하늘에 올라갔고, 모든 선지자들이나 예수님 당신도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의 무기 하나로 승리하셨다(마태복음 4:4,7,10). 마태복음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예수님 당신이 그러하셨으니 포도나무 가지인 우리도 그렇게 하기만 하면 된다. 그밖의 것은 마귀와의 싸움에서 우리를 도와주지 못한다. 하나님의 뛰어난 주형(鑄型)인 마리아께 의탁하여야 천상 복에 참여한다는 교리는 기록된 말씀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는 '거짓 복음'이다.


7. (신의 낙원 / 거룩함 / 찬미의 대상) 마리아 찬미! "하느님의 위대함을 제외하고는, 하느님께 있어서 천상의 동정녀 마리아보다 더 위대한 피조물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천국에서 제일 높은 세라핌 천사들도 이에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편집자주: '하늘여신', '하늘황후' 사상이 잘 드러나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낙원이요 형언할 수 없는 세계로서 성자께서 그 안에 들어가셔서 신비를 행하시고 그를 보호하시면서 그 안에 의합하셨습니다. 나그네인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만드셨으며, 이 세상을 떠나 당신의 영광을 입은 사람들을 위해 천국을 만드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한 세계도 만드셨으니, 그것이 바로 마리아로서, 대부분의 인류에게뿐 아니라 더 높은 하늘의 천사와 성인들에게까지도 알려지지 않은 세계입니다. 이들은 하느님께서 자기의 세계인, 이 천상의 동정녀 마리아 안에 깊숙히 숨어서 멀리 계심을 보고, 신비스러운 놀라움에 가득 찬 나머지, 끊임없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하고 신비스러운 놀라움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가 무엇이 부족하여 마리아라는 피조물 속에 들어가 사신단 말인가? 이 얼마나 마귀적인 발상인가? 얼마나 황당한 사단의 조작인가? 마리아만을 노골적으로 찬미하고 싶으나 속여가며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살짝 끌어오는 저 간교함을 보라!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라고 외치는 건, 도대체 누구를 향한 외침인가? 동정녀 마리아 안에 깊숙히 숨어 있는 하느님(마귀)이 그렇다는 것인가? 하느님이 마리아 안에 깊숙히 숨겨져 있는 그 신비스러운(?) 사실이 그렇다는 것인가? 애매모호한 문장은 바른 지적을 피해가면서 (속여서 멸망케 할) 자신의 목적을 달성키 위한 마귀 제1의 전술인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언어혼란 전술에 능한 이유도 그들의 아비가 마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직히 말하자!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계시록 15:4). 성경 전체에서 '거룩하시다'라고 찬송된 대상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뿐이시다(시편 22:3, 77:13, 99:3, 5절, 9절. 계시록 6:10). 계시록 4:8 "네 생물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복된 처녀 마리아도 그녀의 기도에서 하나님만을 거룩하다 했고(누가복음 1:49), 그녀 자신이 정결 예식을 행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간 사실을 볼 때 마리아 역시 일반 죄인들과 다름 없는 죄인의 후손임을 잘 알 수 있다(누가복음 2:22). 그런데도 가톨릭은 마리아가 그 어머니의 탯속에 있을 때부터 죄가 없이 잉태되었고(무염시태), 평생을 죄없이 살았으며, 요셉과는 한 번도 동침한 적이 없는 '평생 동정녀'라고 칭송하고 있다. 심지어 마리아를 <모든 거룩함의 기준이자 근원>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마리아는 곧 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교회를 통하여 신자는 거룩함을 배우고, 완전히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를 거룩함의 기준이자 근원으로 여긴다" (가톨릭 교리문답 490쪽, 2030항).


거듭난 성도라면 누구나 성경의 마리아가 겸손하고 정직한 주의 여종인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가톨릭이 추앙하는 마리아는 '하늘 여신', '하늘 황후'로 변개된 마리아로서, 마귀가 조작해낸 마리아이지 성경의 마리아가 아니다. 마리아는 자기를 거룩하다 한 적이 없었고, 오직 하나님만 높이고 찬양하였다. 마리아가 낙원에서 이 땅을 내려다 본다면 가톨릭의 현 모습을 심히 가증히 여길 것이다. 누가복음 1: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 거짓 교리에 대해서는 29번에서 다루었다.


8. (성부의 거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마리아를 통해 더 가까이 더 합당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마리아 안에 오셔서 사십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어디서나 천사들과 천상 성인들의 양식이 되시지만, 마리아 안에서만 하느님의 자녀들의 양식이 되시는 것입니다."


*** 가톨릭의 교리를 살펴볼 때, 마리아가 없이는 하나님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재림론에 있어서까지 마리아가 없이는 예수님은 결코 이 땅에 재림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한 신으로 보인다. 간교하고 무서운 '재림론' 부분은 후반부에서 다루었다.


9. (일치-중재자 / 찬미의 대상) "마리아는 한낱 피조물이니, 하느님과의 일치의 길에 장애가 된다는 오류에 젖은 사람들과 같이는 생각하지 마십시오(편집자주: 우리를 두고 하는 마귀의 소리이다). 마리아 안에 살고 계신 분도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 홀로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께서 누리는 하느님과의 일치는 바오로 사도나 모든 성인들을 초월합니다. 하느님만을 위해 창조된 마리아는 우리를 당신 안에 묶어두기 보다는 오히려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시며, 당신과 일치하면 일치할수록, 더욱 더 하느님과 일치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마리아여!' 하고 부르면 마리아는 '하느님' 하고 부르시며 응답하시고, 우리가 엘리사벳처럼 '복되다' 이르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십니다. 우리가 엘리사벳처럼 마리아를 찬미하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십니다."


*** 찬미할 대상은 과연 누구인가? 신구약 66권 전체에서 '찬미'가 들어 있는 구절들을 모두 찾아 놓았으니 확인하라! '찬미'라는 단어는 오직 하나님께만 쓰였을 뿐, 마리아를 찬미하면 그 찬미가 하나님께로 돌려진다는 구절은 한 군데도 없다(마태복음 21:16, 26:30. 사도행전 2:47, 3:8~9, 16:25. 고린도전서 14:15. 에베소서 1:6,14, 5:19. 골로세서 3:16. 히브리서 13:15).


10. (은총의 통로) "하느님의 지혜에 의해 설정된 은총의 질서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만 은총을 분배해 주신다고 토마스 성인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로 나아가 일치하기를 원한다면 성자께서 사람이 되시어 그분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 통로를 이용해야만 합니다. 그 통로는 바로 마리아이십니다." (1번 참조)


11. (찬미, 봉헌의 대상) "마리아께 대한 완전한 신심은 자기 봉헌입니다. 성모 마리아께 더 많은 존경과 사랑과 신뢰와 영광을 바치는 것입니다. 매괴회나 서의회에 가입하고, 로사리오 기도를 한다든지,마리아의 상()이나 마리아의 상본을, 또는 마리아 제대를 공경하며, 드러나게 마리아를 찬미하고 마리아의 어떤 신심회에도 가입합니다."


*** 아예 십계명의 제2계명을 범하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명백한 마귀의 말이 아닌가? 평상시 죄와 악을 기막히게 은폐케 하는 변신과 사기의 천재 마귀가 어찌하여 이렇게 공개적으로 마리아의 상()이나 마리아 제대 공경하라고 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가톨릭 안에는 제2계명이 없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십계명과 관련된 내용은 7장의 "하늘 황후" 마지막 부분을 참조하라!


12. (봉헌의 대상) "완전한 봉헌!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전부 마리아의 것으로서 마리아께 완전히 바치면서, 동시에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또한 예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모든 것을 마리아를 통해서, 마리아와 더불어, 마리아 안에서 그리고 마리아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 우리의 구주시고 천지의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가톨릭의 교리에 의해 12번 문장에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있으시다.


13. (봉헌의 대상) "우리는 아무런 강요도 없는 완전한 자유와 사랑으로써 아무 조건 없이 우리 자신을 양도하고 봉헌하기 위해 어떠한 축일을 선택해서 몸과 영혼을, 외적인 소유물, 즉 집이나, 가족이나, 수입을, 그리고 내적이며 정신적 소유인 공로, 은혜, 덕과 보속을 바치는 것입니다."


*** 예레미야 7:18절과, 44:17,19절에 기록된 내용이니 하나님의 말씀은 놀랍도록 정확하도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생명)을 생명없는 마리아 상() 앞에 봉헌할 수는 없는 노릇!!!


14. (봉헌의 대상)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도록 우리의 모든 권리를 위임해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당신 뜻대로 당신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용하실 것입니다."


*** 우리를 이용한다는 것은 우리를 주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우리를 주관할 능력이 없다. 사람의 발걸음을 움직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예레미야 10:23. 잠언 16:9). 마리아가 자신의 뜻과 자신만이 아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마리아'를 여신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인하는 꼴이 된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라는 문구는 '사단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로 해석됨이 마땅하다.


15. (봉헌의 대상)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마리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은 완전한 헌신에 있습니다.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완전히 마리아의 것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 사단의 속성은 자꾸 무엇인가를 바치라는 것이다. 행위를 바치고, 시간을 바치고, 재물과 소유를 바치고, 심지어는 자기 자식의 생명까지도 바치라는 것이다! (신명기 12:31. 열왕기하 17:16~17. 역대하 28:3~4. 예레미야 7:31).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바쳐짐이 마땅하다(마태복음 22:37, 10:39). 그러나 15번 문장 어디를 보아도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고는 기록돼 있지 않고, 오직 아세라(마리아)에게 바치라고만 되어 있다. 이렇게 먼저 마귀에게 충성할 것을 가르쳐놓고 그 다음 예수를 끌어와 교묘히 위장해보려는 것이 간교한 마귀의 술책이요, 혼란전술이다


16. (봉헌의 대상 / 은총의 통로) "먼저 마리아를 통해 예수께 우리 자신을 바침, 마리아를 통해 당신 성자를 보내 주시고 마리아를 통해 우리에게 은총을 나누어 주시는 하느님 성부를 본받는 길이 됩니다. 또한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신 성자를 모범으로 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표양을 주시고 우리를 부르심으로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그 같은 길로 우리도 당신에게로 나아오길 원하십니다. 또한 성신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만 당신 은총과 선물을 내려주시기 때문에 마리아를 통해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것은 성신을 본받는 길이 됩니다. '은총이 우리에게 보내어진 그 길로 은총의 원천인 성부께로 되돌아 가는 것이 합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베르나르도 성인은 반문하셨습니다(편집자주: 일개 죄인을 교회 맘대로 '성인'으로 시성하여 그를 높여 존칭어를 쓰고 있다)."


*** '마리아를 통하여'라는 말이 7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가톨릭은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는 3위의 하나님께로 가지 못하도록 세뇌적인 장치를 해놓고 있는 것이다. 이 '다른 교훈'이 아닌 '바른 교훈' 곧 '복음'(디모데전서 6:3)으로 저 안에 있는 영혼들을 살려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가톨릭의 순진한 양 떼들은 이처럼 거짓 지도자들에게 속아 허탄한 이야기를 좇고 있으니(디모데후서 4:3~4) 우리는 이 시대의 전도인으로서 그들을 살릴 마음으로 우리의 파수꾼 직무를 다하여야 한다(디모데후서 4:5. 디도서 1:9).


17. (중재자-대변자) "우리가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께 나아가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 때문에 무한히 거룩하신 예수님께 죄를 품고 직접 나아가기에는 합당치 못하기 때문에 마리아를 예수님과의 대변자요 중재자로서 모실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 예수님을 우리의 형제요 중재자로 삼아 겸손되어 부복함으로써, 우리의 심판관이신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됩니다."


*** 예수께서는 "죄 있는 자는 나에게 오라" 하시는데(마태복음 9:13. 누가복음 15장. 찬송 337장), 가톨릭은 "죄 있는 자는 직접 못 간다" 가르치니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거룩한 가톨릭교회'의 말을 믿어야 할까? '거룩한 성경'의 말씀을 믿어야 할까? 가톨릭은 이처럼 죄인은 예수께로 집적 나아가기에는 합당치 않으니 마리아를 거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중의 '중재자'를 갖고 있는 셈이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 때문에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살아나셨건만(로마서 4:25), 가톨릭은 죄인으로서는 감히 이 예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마리아라는 또 다른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성경에 없는 소리로서 마귀의 거짓말이다.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 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18. (여왕 / 중개자) "우리 눈에는 좋아 보이는 선행이라 해도, 하늘의 별까지 불결해 보이는 하느님 대전에는 얼마나 초라하고 보 잘 것 없이 보여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여왕이신 마리아께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이 선물(선행)을 손에 받아, 정결케 해주시고 성스럽게 해주시고 아름답게 꾸며 주셔서, 하느님 대전에 의합하게 바쳐질 수 있도록 간청해야 할 것입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만일 당신이 하느님께 무엇을 바치려거든 먼저 그것을 마리아 손에 맡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거절 당할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9. (봉헌, 중개자) "우리의 모든 헌신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성모님의 손에 맡기나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정성을 다하여 우리 자신을 마리아께 봉헌하고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우리 자신을 완전히 끊어 버리면, 마리아께서는 더더욱 자비롭게 인도해 주실 것이며, 백배로 보답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 선물을 당신 사랑의 금쟁반에 놓아주실 것이며, 리브가가 야곱에게 옷을 입혔듯이, 당신 맏아들이요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실 것입니다. 그 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이며, 마리아 손에 달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리아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끊고 나면 우리는 두 번 옷을 입는 것입니다."


*** 모든 것을 성모님 손에 맡기라 하고, 자기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하라 한다. 그러면 마리아가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 주시고, 우리 행위에 백배로 보답해 주신다 하니, 바로 '신'의 모습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 역시 '마리아의 손에 달린 것'이라 하니 "가톨릭은 마리아교가 아닙니다. 개신교 형제들이여!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하는 그들의 설명 역시 마귀가 주는 거짓말임이 탄로나고 있다.


20. (의뢰의 대상) "저의 위대하신 여왕이여! 저를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시고, 제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모두를 당신께 의탁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시온지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을 온전히 당신께 바칩니다. 당신은 하느님과 인류에게 성실하시고 당신께 의탁하는 것 어느 것도 없애지 않으십니다. 당신은 강용(剛勇)하시니(주:강하고 날랜 분이시니), 빼앗고 해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마리아를 따를 때 방황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마리아를 생각할 때 그르치지 않을 것이며, 마리아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실 때 파멸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를 보호해 주실 때 두렵지 않을 것이며, 우리를 이끌어 주실 때 지치지 않을 것이며, 마리아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실 때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것이 '하늘 여신'이 아니고 무엇이랴! 가톨릭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권위를 높이는 척하면서 자기들도 기독교 정통 교리를 고수하고 있는 듯 위장한다. 마리아에 대한 질문에는 언제나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는 마리아를 단지 예수를 낳아준 어머리로서 '공경'하는 것뿐이지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위의 글들을 보면 그 말들이 다 거짓이었음이 드러난다. '강용하시다'는 말은 마리아에게는 합당치 않다. 강하신 자, 그 이름이 용사이신 자는 주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5:3. 이사야 40:10. 계시록 18:8).


21. (중재자, 은총의 통로) "마리아는 그의 아들(예수)을 만류하시어 다른 사람을 벌하지 않게 하시고, 마리아는 마귀를 억제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게 하시며, 마리아는 덕을 굳게 잡아 그것이 소멸하지 않게 하시며, 마리아는 은총을 굳게 잡아 그것이 바람에 날리어 흩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 마리아를 신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가톨릭측의 항변은 이제 완전히 거짓말로써 드러나고 있다. 성자 예수님의 뜻을 만류할 수 있고, 마귀를 억제할 수 있다면 그녀는 신으로 섬김받을 만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천하지를 다 둘러보아도 성부의 권한을 넘겨받은 예수님의 뜻을 만류할 자는 없다(이사야 43:13. 요한복음 5:22=계시록 5:1~7). 또한 마귀를 멸하실 분 역시 예수님밖에 없다(요한1서 3:8).


22. (피난처, 안식처) "모든 것을 마리아 안에서! "모든 일은 '마리아 안에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서히 이 내적 생활에 적응해서 우리 안에 마리아의 생각과 영신적인 모상을 심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모든 영혼에게 있어서 거절당할 두려움 없이 그의 모든 기도를 하느님께 들어 올릴 수 있는 축복된 장소입니다. 마리아는 또한 다윗의 탑과 같으셔서 우리의 모든 적으로부터의 피난처가 됩니다. 마리아는 타고 있는 등불과 같으셔셔, 우리의 마음을 비추고 하느님 사랑으로 불태우고 계십니다. 마리아는 성스러운 제단으로서, 우리는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을 명상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마리아는 우리가 하느님 대전에 기꺼운 존재가 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며 우리 모두의 안식처입니다. 기도할 때에도 마리아 안에서 하면, 예수님의 마음에 의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마리아 안에서 하고, 어디서나 어떤 일에서도 우리 자신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 아니다! 모든 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야 한다. 성경에는 '마리아 안에서'라는 말씀은 한 구절도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말씀은 신약에만 45회나 나온다.


23. (중재자) "모든 것을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는 항상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야 합니다. 무엇을 간청하려면 언제나 마리아의 대변과 그의 유력한 중개를 이용해야 하며, 혼자서 직접 예수 그리스도께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완전한 마귀의 발언이다! 성경에 없는 소리다. 마리아 숭배 사상은 이교도들의 여신숭배 관습이 가톨릭 교회 안에 정착된 것으로 보면 정확하다. 사도행전을 보면 '에베소' 지방에서는 아데미 여신이 숭배되었고(행 19:23~41), 이집트에서는 예로부터 '이시스' 여신이 숭배되어 왔다. '이시스' 숭배자들은 '이시스'를 '위대한 처녀', '신의 어머니'라고 불렀었는데, 현재 가톨릭에서도 마리아를 '자비하신 동정녀', '천주의 성모'라 부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AD 313),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AD 392) 4세기 말엽부터는 이교도적 우상숭배가 로마법에 의해 금지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교도들이 섬기던 여신 사원이 로마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을 것이고, 숭배의 대상을 잃은 그들은 로마의 위세를 업고 퍼져나가는 그리스도교에서 자신들의 허전함을 달래줄 수 있는 '마리아'를 발견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 추측일 것이다.


자기 동포가 바벨론 칼에 상하고 포로되어 잡혀간 걸 보고서도 애굽에 와서 '하늘 여신'을 숭배했던 그들은 소위 '선민'이라는 유대 민족이었음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하물며 이방인들이야 얼마나 더 자신들의 패역을 달래줄 여신을 찾았겠는가? 그때 바로 '마리아'라는 아주 좋은 대체물이 가톨릭 안에 존재했던 것이다.   


4세기경 에베소는 소아시아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중심지가 되었고, 431년 에베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에서는 200 여명의 가톨릭 주교들이 모여 마리아의 신학적인 위치에 관한 중대한 결졍을 내려 네스토리안(Nestorian) 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네스토리우스'는 성모 마리아에게 테오토코스('신을 낳은 사람')라는 칭호를 붙이면 그리스도의 인간적 본성을 손상시키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그 칭호 사용을 비난하여,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파문당했다. 신의 어머니(Mother of God) 교리는 바로 이 '에베소 공의회'에서 태동되었다. 지도자들의 잘못된 교리 하나가 그 교리를 따르는 모든 백성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법이다(이사야 9:16, 3:12).


24. (봉헌의 대상) "모든 것을 마리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마리아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고귀하신 모후의 종이므로 모든 일에 있어서 마리아께 봉사와 유익과 찬미를 바친다는 것을 최선의 목적으로 하고, 다음으로는 하느님께 보다 큰 영광과 찬미를 바친다는 것을 최후의 목적으로 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 여기서도 그들이 마리아를 예수의 '육적 모친'으로서가 아니라, '하늘 모후'로 섬기고 있음이 잘 드러난다. 그들은 빠져나갈 여지를 두기 위해 '마리아를 찬미하라' 한 다음에는 언제나 '하느님께 보다 큰 영광과 찬미를 바쳐야 한다'고 토를 달아 놓는다. 하지만 '찬미'는 천지를 창조하신 삼위의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할 것이므로, 그 이외의 존재에게는 이 단어의 사용이 합당치 않다. 그러나 가톨릭이 마리아도 찬미하고 하나님도 찬미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저 악행이 남녀신으로 짝이 되어 숭배받던 '바알-아세라' 신앙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자들은 언제나 남신, 여신을 함께 섬겨 왔다(출애굽기 34:13. 사사기 3:7).


구약 때에도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상을 훼파하였는데, 훼파된 우상을 본 우상숭배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사기 6:28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29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30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오늘날 스룹바벨 제단이 가톨릭의 태양상(성체)과 아세라상(마리아)을 말씀의 칼로 찍어 훼파하면 약 9억에 가까운 가톨릭 성도와 그 우두머리들은 위와 같이 날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레미야서에 예언된 '하늘황후'(7:18)와 '하늘여신'(44:17)을 보고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예레미야처럼 죽기까지 다시 예언할 것이다. 아멘!


25. (중재자) "마리아 없이 예수께 직접 나아감은 온당치 못함! "예수님과 하느님께 바로 나아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당신이 한 일과 당신의 뜻은 아직 보잘 것 없지만 마리아를 통하여 나아간다면 마리아는 당신 안에서 일을 하시어 당신이 한 일을 정당화시키시고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도록 하실 것입니다."


26. (여왕이며 속죄자) "마리아의 현존하심을 직접 입지 못해도 염려 말 것! 복되신 동정녀의 현존하심을 당신 영혼이 바로 입지 못했다 해서 크게 상심하지 마십시오. 이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 자비하심으로 그 은총을 입었다 해도, 충실하지 못하거나 마음 안에 마리아를 모시고 있지 않으면 잃기 쉬운 것입니다. 이러한 불행에 처했다 해도 조용히 당신의 여왕에게로 나아가서 속죄를 하십시오."


*** 가톨릭에서의 마리아는 인간의 속죄까지 받아줄 수 있는 '하늘 여신'이 분명하다. 그러나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죄를 사하는 속죄의 권세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는 것이다(히브리서 9:22).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속죄는 완성되었다(히브리서 10:10~14). 피의 공로를 믿는 것만이 하나님이 불의한 인간들에게 요구하시는 유일한 행동이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구원을 받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믿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행위뿐이다(로마서 3:27). 홈페이지 >> 신앙문답 150선 >> 12번을 참조하라.


27. (성부의 어좌) "사랑하는 사람이여, 암브로시오 성인의 말씀과 같이 '우리 안의 마리아 영혼이 주님을 찬미하고, 우리 안의 마리아 마음이 하느님께 대한 기쁨에 용약'할 수 있도록, 이 신심에 충실하여 은총을 얻을 수 있도록 합시다. '낙원이라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의 품속보다, 하느님의 어좌인 마리아의 품속에 머묾이 더 큰 영광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게릭 수도원장이 말하고 있습니다."


*** 성경 본문을 무시한 채, 자신들이 임명한 성인들과, 일개 수도원장의 권위를 더 따르는 이유는 저들 교리에 진리의 기준이 2가지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聖經)'과 '성전(聖傳)'이 그것이다. 그들은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성전(聖傳)'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이것은 말뿐이지, 그들은 '성경'과 '성전'이 상충될 때는 언제나 '교회의 전통'을 따른다. 자세히 관찰해 볼 때, 가톨릭은 성체(예수가 이 안에 현존한다고 믿고 있음)를 하늘의 태양과 같이, 마리아를 하늘의 달(천상모후)과 같이, 모든 천사와 성인들을 별과 같이 비유하여 떠받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단이 무저갱에 들어가기 전까지는(계시록 20:1~3) 그가 사주하는 우상숭배의 모습은 시대가 변하여도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어 교회 안에 침투하기 마련이다. 구약의 교회가 섬기던 '해', '달', '별'의 천체숭배 사상은 오늘날 가톨릭 안에서 '성체(태양)', '마리아(달)', '천사와 모든 성인 성녀(별)' 숭배 사상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


신명기 4:19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길까 하노라" - 육적으로 행하던 우상숭배가 영적으로 변형되어 시행되고 있다.


신명기 17:3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4 혹이 그 일을 네게 고하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사실하여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5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 남자나 여자를 쳐 죽이되...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 돌로 쳐 죽이라 하셨으니 우리도 스룹바벨 제단의 '머릿돌'의 권세로 이 모든 가증한 우상숭배 행태를 쳐부수어야 한다.


열왕기하 17:13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또 나의 종 선지자들로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14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그 목을 굳게 하기를 그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저희 열조의 목같이 하여 15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 열조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좇아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하사 본받지 말라 하신 사면 이방 사람을 본받아 16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스바냐 1: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6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예레미야 8: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2 그들의 사랑하며 섬기며 순종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 쬐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가톨릭은 몇 해 전부터 자신들이 보는 공동번역 성서에서 여호와 곧 '야훼'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주님'이라 고쳐 부르고 있다. 아무 성당이나 들어가 미사에서 낭독되는 <제1독서> 말씀을 들어보라. '야훼'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와'를 용사이신 당신의 이름이라 알려주셨고(출애굽기 15:3), 여호와 그 '성호'를 송축하라 하셨으며(시편 103:1), 이사야 선지자에게는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하고 직접 말씀하셨다(이사야 42:8). 가톨릭의 거짓 복음에 대해서 바른 복음으로 쳐서 예언해야 할 제단은 우리이다. 예레미야 강해서에서는 '하늘 여신'에 대해서만 다루고, 바알에 해당하는 '성체' 곧 태양상에 대한 내용은 에스겔 강해서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겠다.


28. (여왕이며 영혼의 생명) "마리아는 그의 자녀들의 영혼 안에 살으신다! 이 신심을 충실히 이행하면, 영혼 안에는 많은 행복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리아의 생명을 우리 영혼 안에 심는 것으로서, 이제부터 살아있는 것은 우리 영혼이 아니라 우리 영혼 안에 살고 있는 마리아의 생명입니다(편집자주: 갈라디아서 2:20절과 대조해 보라!). 왜냐하면 마리아의 생명이 그 영혼의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고마우신 은총으로, 마리아께서 우리 영혼 안에 여왕으로 군림하시게 되면, 얼마나 큰 경이로움이 일어나게 되겠습니까? 마리아는 경이의 행사자로, 우리 영혼 안에서 은밀하고 우리가 느끼지 못하게 일하시게 됩니다. 그것이 알려지면 하시는 일의 아름다움이 빛을 잃기 때문입니다."


*** 마치 북한의 김일성 부자 우상화를 보는 듯하다. 북한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우리가 자는 것도, 입는 것도, 살아 숨쉬는 것도 모두가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과, 위대하신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의 은택으로 되어지는 일이라고 세뇌시키고 있는데, 지금 볼 때 가톨릭의 마리아 신심 또한 그러하다. 피라미드식 절대복종 체제나 사상교육(세뇌) 체제를 비교해 볼 때 공산주의 집단과 가톨릭 집단은 매우 유사하다.


29. (평생동정) "마리아는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낳으심의 풍성한 동정녀이시므로, 마리아는 그 속에서 지배하시는 모든 영혼들에게 마음과 몸의 순결과 의향과 계획의 순진성과 선행의 풍성함을 확보하십니다. 사랑하는 이여, 하느님을 탄생시킬 만큼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결실을 낳은 마리아이신데(편집자주: 히브리서 7:1~3절과 대조해 보라!), 당신 영혼 안에서 수수방관 하신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리아는 당신 영혼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살게 해 주시고, 당신 영혼을 예수님과의 끊임없는 일치 속에 살도록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가 아니다. 마리아는 기록된 바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마태복음 1:25) 하신 대로 예수를 낳을 때까지만 동침치 아니하였고 이후로는 요셉과 동침하여 예수의 형제들을 낳았다. 마태복음 13장에서는 그 형제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13: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딸들은 마가복음 6:3절에, 고린도전서 9:5절과 갈라디아서 1:19절에서도 예수님의 형제들이 언급됐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 아닌 가장 정확한 증거를 소개한다. 시편 69:8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外人)이 되었나이다" 이 예언대로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가 메시야임을 믿지 않고 은근히 비꼬았던 것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 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가톨릭이여 대답해 보라! '모친의 자녀'라 함은 '친 형제'를 말함인가? '사촌 형제'를 말함인가?


들으라, 가톨릭이여! 말씀이 이토록 정확한데, 계속하여 마리아를 거룩함의 근원으로, 평생 동정이신 순결한 여인으로 우상화 할 것인가? 또한 마태복음 12:46~50절에서도 어미와 형제가 찾아왔다는 말에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반문하시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말씀하심으로 마리아를 특별대우 하지 않으셨고, 당신의 근본이 인간의 혈통에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임을 알려주셨음을 왜 애써 모른척 하려고들 하는가?(히브리서 7:3). 몰랐을 땐 적게 맞아도, 알려주고 회개할 충분할 시간을 주었는데도 말씀 앞에 순종치 않으면 그 벌이 심히 무거워지는 법이다(마태복음 12:47~48).


가장 무서운 재림론! 마리아를 통해 세말(世末)을 내다 보는 그들!


30. (세말 재림론의 주인공) "하느님께서 처음에 마리아를 통해서 비천한 몸으로 세상에 오셨듯이, 온 교회가 그가 오시길 기다리는 재림시, 모든 것을 지배하시고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실 때에도,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 오신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천국이 지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듯이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인류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기와 방법으로 오실 것은 확실합니다. 아무리 박학한 사람이나 성경에 통달한 사람이라 해도 이것만은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 가톨릭이 이처럼 말함은 재림론에서 마리아를 우월하고 핵심적인 위치에 놓기 위함이다. 마귀도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사람을 선택하여 쓰면서 30~50년이 걸리는 장기적인 일일지라도 끈기를 갖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지금도 재림론에 있어서 마리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신학적 연구는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본 책자의 뒷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그리스도의 왕국은 마리아를 통하여 온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성모 마리아가 더욱 알려지고 더욱 사랑을 받고 더욱 공경받을 것을 하느님이 바라고 계심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성신의 은총과 빛으로 내가 알려 주려는 완전한 내적 신심을 실천한다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그 때에 비로소 그들의 믿음으로만 볼 수 있었던 것을 뚜렷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 7장 설교를 참조하면 직접 표지그림을 볼 수 있다.


31. (마리아 왕국, 여자의 후손)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빨리 올지도 모를 세상의 종말시, 하느님께서는 성신으로 충만하고 마리아의 정신에 젖은 사람들을 들어 올려 강력한 왕국을 지으실 것입니다. 마리아를 통해 이 왕국은 죄를 타파하고 부패한 세상의 왕국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며 놀라운 일을 벌리게 될 것입니다. 나의 부족한 점이 많아 완전한 설명을 못하지만 이러한 신심을 가진 거룩한 사람들이 그 왕국을 이어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때 거룩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마리아께 대한 그들의 완전한 헌신으로 완성할 것입니다. 나의 부족한 설명으로 이 서술이 완전하지 못하고 문제의 요점이 올바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 내용의 마지막 쯤 오니 마귀의 정체가 더욱 잘 폭로되고 있다. 천년왕국이 마리아를 통해서 마리아의 정신에 젖은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이 말은 마귀가 그 주인임이 틀림없는 말이다. 죄를 타파할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신데(이사야 7:15. 요한1서 3:8. 창세기 3:15), 가톨릭은 모든 성당마다 마리아가 뱀의 머리를 밟고 있는 동상을 세워놓음으로써 '여자의 후손'을 마리아로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이시다(갈라디아서 4:4. 이사야 7:14). 마귀로부터 그 수족(手足)을 찔려 상하신 분도 예수요, 부활하시고 또 친히 재림하심으로써 마귀의 골통을 완전히 깨부술 분도 철장권세의 주인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계시록 2:27, 19:15. 시편 2:9).


32. (봉헌의 대상, 성체) "어떤 특별한 축일을 정하여 그날에 자신을 마리아께 완전히 의탁함으로써,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바쳐야 합니다. 이러한 의향으로 이 날에 영성체(편집자주: 성체=예수가 그 안에 현존한다고 하는 태양 모양의 밀떡)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 바알과 아세라 사상이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다. 마리아께 대한 봉헌과 영성체를 통하여 인간의 영혼을 완전히 마귀에게로 인도하고자 함이다.


33. (주인 되시는 마리아) "해마다 봉헌 기념일이 오면 예속과 의존의 표시로, 성모님께 조그마한 예물을 드려야 하는데, 이는 종된 자로서 주인에게 바치는 예()입니다."


***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이라는 이 책을 이쯤까지 읽어 온 자라면 이제 그 영혼이 장악되었겠다 싶었는지, 마귀는 이제 아예 노골적으로 가톨릭 성도를 '종', 마리아를 '주인'이라 선언하고 있다. 우리가 그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릴 우리의 주인은 삼위일체의 하나님뿐이시다. 잠언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우리 9.24 스룹바벨 제단과 이곳에 연합될 세계의 '우는 자들'은 엘리야와 같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거짓 선지자들의 제단을 여호와의 불제단 앞에 굴복시킬 것이며(종교바벨 격파), 또한 북방 철의 장막까지 치고 올라가(정치바벨 격파) 갇혀 있는 양 떼들을 살려냄으로써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릴 백마용사들이다(스가랴 6:6,8). 하지만 가톨릭은 주인을 저버리고 우상을 제 주인으로 삼고 있으니 본 주인의 마음을 심히 괴롭게 하는 못된 종들이다. 이사야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큰집=가톨릭)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소, 나귀만도 못한 자들이 바로 마리아를 섬기는 자들이다.


34. (값진 진주, 생명나무) "마리아의 땅에 묻혀 있는 보화와 복음의 값진 진주를 발견하였다면, 그것을 살 수 있도록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파십시오. 복되신 어머니께 당신을 희생으로 바쳐 마리아 안에 당신을 없이 해야만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해 온 신심(마리아신심)인 그 생명의 나무를 성신께서 당신 영혼 안에 심어 주셨으니, 때가 올 때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해 기르십시오."


*** 가증하도다! 성경이 말씀하는 보화와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천년왕국'과 '천국'이지, 마리아가 아니다(마태복음 13:44~46절과 대조해 보라!). 또한 가증하도다! 생명 나무는 지혜로 상징된 예수님이지 마리아가 아니다(잠언 3:18). 천년왕국과 천국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하신 생명나무시다(계시록 2:7, 22:2,14,19). 생명나무 실과를 따 먹으면 영생한다고 하신 말씀은(창세기 3:22), 예수와 예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마다 영생한다고 하신 말씀(요한복음 3:15~16, 5:24, 6:27,40)과 같으니 여호와 하나님과 그 아들 주 예수와 진리의 영이신 성령 곧 삼위일체의 하나님만이 영생을 주시는 생명나무가 되신다(요한복음 4:14, 5:39).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한복음 5:40). 마리아와 성체를 숭배하는 가톨릭 교권은 이 말씀에 정확히 걸려들고 말았다. 영생하시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과 만왕의 왕 예수님으로 기록되었으니(창세기 21:33. 다니엘 4:34, 12:7) 마리아 숭배자들과 성체숭배자들은 어서 회개하고 요한복음 6:51절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살 것이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에스겔서에서 상세히 기술하겠으나 여기서도 간단히 짚고 넘어갈 필요성을 느낀다. 가톨릭은 이 '살'이 '성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밀떡이 경배와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한복음 6:47). 영생이 '성체'와 같은 물질 쪼가리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다는 말씀이시다.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한복음 6:50). 가톨릭은 '먹고'라는 단어를 오해하여 입 속에 들어가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성체'를 조작해 내었지만, 여기서 '먹고'란 입으로 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귀로 듣고 영으로 소화한다는 뜻이다. 즉 '먹고'는 '듣고'의 의미이다. 다음 말씀을 보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한복음 5:25).


'성체'는 세상 기업체의 공장 기계가 찍어내어 가톨릭측에 공급하는 것이지만, 인자의 살은 위로부터 내려와 어떤 이 속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육신의 눈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신령한 떡이다. "사람이 이 떡(=말씀)을 먹으면(=들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영)이로라 하시니라"(요한복음 6:51). 예수님의 살은 '영'이니 물질덩어리 '성체' 따위는 절대로 예수님의 살(=영)이 될 수 없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한복음 6:63). 모든 말씀을 볼 때, 살리는 것은 영이며, 영은 말씀이며, 말씀은 떡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으니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6:51) 하신 말씀의 '떡'은 인간이 찍어내고 사제가 그 위에 십자가를 그으며 강복할 때 신령하게 변화하는 '성체' 쪼가리가 아니라 오직 기록된 말씀을 읽을 때 들어오는 신령한 말씀의 떡이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한복음 6:33).

신약을 미리 보이신 구약의 모형역사인 출애굽기를 살펴보자! 출애굽기 12: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기'는 어린 양의 살이니 바로 '말씀'을 예표한다. 말씀을 먹을 때 반드시 '불'에 구워 먹어야지 '날로나 물에 삶아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성령의 불' 곧 기름부음의 역사(요한1서 2:20,27)로만 말씀을 소화할 수 있지, '날로나 물에 삶는' 인본주의로써는 소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가톨릭처럼 예수님의 말씀인 고기(=살)를 제멋대로 해석하거나(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으면(체계적 거짓교리화)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말씀은 포도주로도 비유되는데, 포도주에 물을 섞으면 보응을 받는다 하셨다(이사야 1:22). 포도주는 아무 것도 첨가됨 없이 맑게 유지되어야 하며(이사야 25:6), 혹 무엇을 섞어야 한다면 포도주끼리만 혼합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잠언 9:5. 이사야 34:16).


이렇게 성경을 상고해보니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것은 어린 양의 피와 어린 양의 살, 곧 '예수의 피와 말씀'뿐 이다. 생수와 생명의 떡은 영육에 안식을 주는 '말씀'밖에 없다. 가톨릭이 조작해낸 가짜 떡(성체) 가짜 중보자(마리아)는 그 누구에게도 생명을 줄 수 없다.


35. (생명 나무) "생명의 나무인 마리아가 심어진 영혼은 복됩니다. 자라서 꽃피우는 영혼은 더욱 복됩니다. 마리아께서 결실을 맺게 해 주시는 그 영혼은 더욱 더 복됩니다. 영원히 죽을 때까지 마리아의 그 결실을 맛보고 보존하는 자는 누구보다 복됩니다."


*** 이 책에서는 '마리아께 관계된 말씀'이라는 타이틀 아래 잠언 8:22~35절의 말씀을 기록해 놓고 있다(194~195p). '예수'의 위치를 마리아로 대치하려는 간교한 술책이다. 인용한 잠언 본문 밑에는 36번의 기도내용을 삽입해 놓았다.


36. (성부의 거처, 전구자)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여, 당신은 성신의 협력하심으로써 영광스러운 동정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을 당신 성자의 맞갖은 거처로 마련하셨으니 마리아를 기쁘게 기념하는 우리로 하여금 마리아의 너그러운 전달로 닥쳐올 모든 악에서 구함을 얻게 하소서. 아멘."


*** '영광스러운'이라는 단어는 피조물에게는 해당 없는 단어이다. 마리아 앞에는 절대로 붙여서는 안 될 단어이며, 마리아가 우리의 '기념'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든 악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능력 역시 '마리아의 너그러운 전달(중보=전구)'에 있지 않고, '성령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과(로마서 8:26~27),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언기도'에 있다(로마서 8:34. 히브리서 7:25. 요한1서 2:1). 우리는 이 글을 통해 가톨릭에서의 '예수'란 마리아를 섬기는데 있어 날아올 공격들을 막아내기 위해 장치한 방패막이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죄인들에게만 구세주가 필요하다. 마리아 역시 하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고백했지 않는가?(누가복음 1:47). 세상에 죄인이면서 다른 죄인들을 위하여 중재할 수 있는 존재란 없는 것이다.


37. (신의 어머니, 승천) "마리아의 전 위대성 존귀하심은 그분이 하느님의 모친이시라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모친이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오묘한 신비체의 모친도 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랑하시는 제자가 보는 가운데 전 인류를 성모님께 맡기셨다."


*** 웃기는 소리이다. 성경을 찾아보라. 마리아는 오순절 이후로 성경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사도행전 1:14). 만일 예수께서 전 인류를 정녕 마리아에게 맡기셨다면, 그의 제자 베드로나 계시로 진리를 알게 해주신 바울(갈라디아서 1:12. 에베소서 3:3), 특히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 말씀에 의해 마리아를 돌보며 그녀의 임종까지 보았을 사도 요한의 진술을 통해 마리아의 전 위대성과 존귀하심이 신약기록 속에 나타났어야 한다. 그러나 요한이나 바울이나 베드로나 모든 사도들의 글과 전도자들의 행적을 상고해 볼 때 다음 여섯 가지 내용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1) 마리아의 무원죄잉태 (무염시태, 無染始胎)

2) 마리아의 죄없음

3) 마리아의 평생동정

4) 마리아의 승천(몸+영혼)

5) 천상 모후의 왕관을 씀

6)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 간청하며, 구제하고, 중재하는 여인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신 구절은 없다. 공생애 기간 중 "여자여"라고 두 번 부르셨을 뿐이다(요한복음 2:4, 19:26). 마리아 역시 예수님의 피가 필요했고, 부활이 필요했고, 다락방에서 다른 120명의 형제들과 똑같이 성령의 임재를 받고 천국복음을 전파한 평범한 죄인 중의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그런데도 가톨릭은 교황으로부터 마리아 앞에 경배하기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가톨릭 성도들은 이 성경적인 사실들을 인정하고 하늘로 들림을 받아 '하늘 황후=하늘 여신'이 되었다는 마귀의 환상을 떨쳐 버리고 바벨 종교인 가톨릭의 소굴에서 어서 나오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온은 알곡의 집단이고, 바벨은 가라지와 하나된 쭉정이의 집단이다. 바벨에는 정치바벨과 종교바벨 2가지가 있는데, 모두가 간교한 마귀, 사단, 붉은 용의 지배를 받고 있다. 사람이 만들어낸 다음 그림을 믿을 것인가? 오직 "기록되었으되" 기록된 성경을 믿을 것인가?


마리아가 승천해서 천상 모후의 관을 썼다는 거짓 교리가 먹혀 들어가기만 하면 계시록 12장의 '해를 입은 한 여자'의 자리에 마리아를 앉혀 놓기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되면 마귀의 머리를 깨어 부술 '해를 입은 한 여자'의 실체 곧 144,000명을 해산하는 종말의 '촛대교회'의 존재를 은폐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마귀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위장과 조작과 은폐에 뛰어난 마귀 떼들은 속임수로 세상을 교란시키고 있지만, 하나님은 간교한 마귀 떼들을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실 것이다. 욥기 5:12 "하나님은 궤휼한 자의 계교를 파하사 그 손으로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며 13 간교한 자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며 사특한 자의 계교(計巧)를 패하게 하시며 14 그들은 낮에도 캄캄함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이미 31번 문장과 그림을 통해 마리아가 뱀의 머리를 밟고 있는 모습과 "나는 새 시대의 시작이다"라는 마귀의 망령된 말을 소개했다. 가톨릭의 교리 속에 흐르고 있는 마리아의 위상승격 과정을 정리해 보자. 마리아 원죄없이 잉태됨⇒마리아 평생동정⇒마리아 승천⇒마리아 천상모후의 관 씀⇒마리아 열두별의 면류관의 주인공(계시록 12:1~)⇒마귀의 머리를 짓밟음⇒마리아를 통한 새 시대(마리아 왕국) 창조! 이것은 세상의 모든 악을 없이 하고 평화로운 새 시대를 건설하시려고 탄생하신 '한 아기'의 자리를 너무도 뻔뻔스럽게 도둑질하는 행위이다(이사야 7:15, 9:6. 요한1서 3:8).


도적의 집에는 저주의 두루마리가 들어간다고 하셨다(스가랴 5:1~4). 가톨릭은 말씀 도둑질에도 왕이요, 양 도둑질에도 1등이다. 시편 50: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뱀의 머리를 짓밟는 자가 마리아라는 가톨릭의 교리는 앞으로 모든 쭉정이들을 모아 멸망으로 인도할 것이다. 가톨릭은 그들의 믿음대로 마리아를 섬기는 조직을 통해 '평화운동'과 '새 시대 운동'에 열을 올릴 것이고, 이들은 빛을 가장하여 등장할 적그리스도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평화'를 말하며 세상의 쭉정이들을 모아들일 때, 반드시 딸려가서는 잠시간 이용당하고는 멸망할 것이다.


세말(世末)에 있을 영적 혼란! 이 혼잡은 말씀의 다림줄(스가랴 4:10)을 쥔 스룹바벨 단체에 연합하지 않고서는 분간할 수조차 없다. 앞으로 적그리스도적인 바벨 단체들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여 막강한 조직력으로 점차 하나가 되어갈 것이다. 그 중앙에는 모든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음녀'가 위치해 있을 것이고, 이 음녀가 올라 타게 될 짐승은 10뿔의 우두머리가 될 북방 러시아 나라가 담당할 것이다. 짐승을 따라가는 용공주의 W.C.C.단체나, 헛된 꿈으로 세상을 장악해보려는 로마가톨릭 단체나 모두 영적으로 미쳐 있는 것이 틀림없다(새일성가 60장2절). 죽을 줄도 모르고 따라가는 가련한 양 떼들, 구할 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크신 영광 오늘 여기 나타나, 세계 만민 흑암 중에 빠져 있는 오늘에, 깨우치자! 일으키자! '신랑 온다' 외치어(마태복음 25:6) 모든 원수 물리치고 모든 양 떼 살리자" (새일성가 37장)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예레미야 51:6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끊침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45 나의 백성(시온)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나 여호와의 진노에서 스스로 구원하라"


이사야 52: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바벨=혼잡)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스가랴 2:7 "바벨론 성(정치+종교)에 거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신명기 32:32 "그들(이방잡족=바벨)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 33 그들의 포도주(쑥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


고린도전서 10: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 그러니 가톨릭 성도들이여! 어서 진노를 받을 가톨릭(바벨론 성)에서 나와서 우리와 함께 촛대교회(시온성)로 도피하자! 그들은 성경을 장식품 혹은 자기 변호용으로만 쓰고 성경보다도 교회의 전통(성전)을 더 중요시 하니 그들은 진리를 믿는 자들이 아니요, 사람의 교훈과 자기 손으로 만든 것 앞에 절하는 자들이 분명하다(예레미야 1:16. 이사야 2:8, 17:8, 31:7. 사도행전 7:41). 다음은 '개신교 형제들을 위한 가톨릭 사이트'에서 발췌한 그들의 주장이다(http://myhome.nate.com/dominic1/).


과연 "성서"만으로 족한가?


예수께서는 한 줄의 성서도 친히 쓰지 않으셨고, 또 제자들에게 성서를 쓰라고 명하신 적도 없습니다 (물론 사도 요한에게 묵시록을 쓰라고 하신 것은 예외).


<< 편집자주: 마귀 소리다! 예수께서는 시공을 초월한 무소부재의 신이시며 영원무궁의 신이시므로 인간의 몸으로 오시기 이전에도 영으로 계시며 당신의 말씀을 계시하셨다. 이사야 9:6절을 보라!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다. 신명기 33:2절의 '불 같은 율법'을 소유하신 분도 예수시며 그 율법을 모세에게 주신 분도 예수시다(신명기 18:15). 가톨릭은 이 말에 '예수'와 '성부'는 다르다는 궤변으로 맞서겠지만, 천만에... 요한복음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셨다. 그는 본래 성부와 본체이시며(빌립보서 2:6), 하시는 일이 같아서(요 14:10) 성부의 일이 곧 성자의 일이다(요한복음 6:29). 또한 성부와 성자는 같은 목적을 위하여 일하신다(요한복음 5:17, 6:38~). 요한복음 1:2~4절에서도 '태초'부터 계신 예수와, 그는 생명이신 말씀임이 증거되어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은 3위1체의 하나님이시니 성경은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그의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하였다(요한복음 1:14) >>


또 당시에 이미 있던 성서(구약성서)를 배포하라고 하신 바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을 여러 곳으로 파견하실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이 가르침을 그대로 받들고 실천했습니다.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시오.",  "여러분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것이요."


주님의 12사도와 72제자와 초대 교회 신자들 가운데 여덟 사람만이 성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네 복음서와 서간 등은 모두 어느 개인이나 어떤 교회에 보내어진 것입니다. 즉, 그것들은 교회 내의 어떤 긴급한 문제의 해결을 목적으로 한 집필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내의 어떤 폐습을 바로잡을 목적 또는 신자들의 행동규범을 세워 줄 목적으로 하는 주교의 교서(敎書)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성서를 전파하였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다만  "그리고 제자들은 떠나가서 사방에 복음을 선포하였는데(물론 입으로..) 주님께서 함께 일하시며 표징들이 따르게 하심으로써 말씀을 굳건히 뒷받침하셨다." 라고 하였을 뿐입니다.


구약시대에든 신약시대에든 신자들은 모름지기 교회의 산 권위의 지도를 받도록 마련되었고, 결코 성서의 자유해석으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16세기 이른바 종교혁명까지는 세상이 생긴 이래 죽은 법률조문만으로 백성을 다스렸다는 사실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국민에 대한 국법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한 성서와 동일시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이 국법해석자의 판결에 복종하여야 하듯이 신자도 성직자의 성서해석에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서가 유일한 지도자"라는 말들을 하는 사람을 가끔 봅니다. 과연 그렇다면 큰 돈을 써서 굉장한 예배당과 주일학교를 세울 필요는 대체 어디 있으며, 성서만이면 그만이라던 목사의 설교를 들을 필요나 어린이들에게 교회 교육이 왜 필요하고, 또 주일에 예배당에 갈 필요는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성서 만능 주창자들의 모순이 있습니다. 정말 "성서만 있으면 족하다"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설교와 교리 교육을 중지해야 옳을 것입니다. 나는 이제 개신교 형제들에게 성서가 결코 만능이 아닌 이유를 밝혀 보려 합니다.


만약 한 목사가 성서 한 권을 주며 말하기를 " 이 책을 믿으시오. 다인(多人) 구원을 위해서는 이 책만 있으면 됩니다"라고 하였다고 합시다. 그러나 책을 펴면 큰 의혹이 먼저 생길 것입니다. 즉, 이 성서에 기록된 사실이 과연 계시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또 성서가 주님의 말씀 전부인지 아닌지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 (중략).....


가톨릭을 신임하지 않는 개신교 종파 중에서는 성서 중 어느 부분이 순전한 주님의 말씀인지에 대하여 서로 논쟁합니다.....(중략)..... 정경/위경 판정의 난공사는 이제 끝나 주님의 말씀만을 실은 성서가 세상에 나타났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번역인지 그릇된 번역인지를 또 누가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성서의 원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정통한 자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입니다. 성서 원어 정통자가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됩니까?


그러므로 성서를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려거든 유일한 성서보존자인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의존하는 길밖에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만약 올바로 번역된 성서를 가졌다 칩시다. 그렇다 해도 그 성서만이 영혼 구원의 지도자 구실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 해석은 반드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야 합니다..... (중략).....


우리의 자모이신 가톨릭교회를 가리켜 성서를 경시하는 교회라고 하는 비방은 마치 성모 마리아를, 그 가슴에 안은 '아기 예수를 눌러 죽이는 여자'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참으로 가톨릭 교회는 15세기 동안 유일한 성서의 수호자였습니다.....(중략)..... 』


여기까지만 소개한다. 소위 이것이 가톨릭 교회의 영계이니, 그들이 어찌 성경 말씀을 가감하고 도적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린도서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헛된 기도문과 미사의식)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우상=가톨릭의 모든 우상체제들)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아멘!

3위 1체의 하나님은 창조도, 율법도, 예언도, 은혜도, 심판도 항상 함께 하신다.

다음을 참조하라! (요한복음 1:14. 계시록 3:14, 21:6. 요한복음 17:24, 1:18, 14:28. 계시록 19:13. 잠언 8:26~30. 요한복음 17:5. 로마서 9:5~. 요한1서 5:20. 요한복음 1:2, 10:30. 마태복음 1:23. 요한복음 1:9, 6:32, 15:1, 8:16. 계시록 1:8. 고린도전서 4:19. 히브리서 1:3. 빌립보서 2:5. 요한1서 22:8~10).


간교함의 극치! (계시록과 마리아)


38. (해를 입은 여자, 영생의 문) "묵시록의 여인! 마리아는 어머니로서 언제나 아드님을 앞서 오십니다. 당신 아드님이 다시 임하실 때도 역시 마리아는 아드님을 위해 길을 닦으실 것입니다. 당신은 태양을 입은 여인으로서 깊은 곳의 군사들을 대항해 싸울 구세사의 마지막 싸움을 지휘하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당신의 짝이신 성신과 함께 간선된 영혼들에게 '오라' 하시는 저 복된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이십니다."


*** 마리아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것은 마귀의 거짓말이다. 요한복음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3:16,36, 4:14, 5:24,39). 가톨릭은 들으라! 요한복음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마귀는 마리아를 통해서 영생을 도둑질하려 하고 있으니 저 안에 있는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이들을 우리는 복음으로 살려야 한다.


39. (여왕, 주인, 모후) " 당신(마리아)은 또한 우리의 어머니시요, 우리의 주인이시요, 여왕이시니, 우리를 예수께 인도하시고 내게 성신의 빛과 사랑을 빌어주사 나로 하여금 예수를 점점 더 잘 알고 점점 더 사랑하게 하소서. 나 당신께 온전히 헌신함으로써 당신과 함께 영원히 예수께 속해 있기가 원이로소이다."


(1~39번의 사상이 다음 40번 마지막 장문에 다 모여 있다)


40. "오! 영원한 강생하신 지혜여, 지극히 사랑하올 달고 단 예수여, 당신은 참 천주 참 사람이시요, 영원하신 성부의 아들,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의 아들이니이다..... 쉼없이 찬미와 영광 드리오니, 마리아를 통해서 저를 당신의 충실한 종 만드시려, 언제나 어머니 마리아께 기꺼이 순명하셨나이다..... 당신과의 중개자로 제게 내려 보내주신, 당신 거룩한 어머니의 빌어 주심에 모든 것 맡기나이다. 회개와 용서를 빌고 당신 지혜를 얻어 보존할 수 있도록, 마리아께 달려가 의탁하나이다. 하례하나이다. 하자 없으신 마리아, 천주의 감실이여, 영원한 지혜께서 당신 안에 계셔 천사들과 사람들의 찬미 받기 원하나이다. 하례하나이다. 하늘과 땅의 여왕이여, 주님 아래 만상이 당신 왕국에 승복하나이다. 하례하나이다. 모든 죄인의 피난처여, 당신 자비 누구에게도 거절치 않나이다. 천상지혜를 구하려는 저의 기도 들으시고, 당신께 바치는 이 비천한 종의 서원과 제물을 받으소서. 불충한 죄인(자기이름)은 당신 손 안에서 성세 때의 서원을 새롭게 하나이다. 영원히 사탄을 끊고 그 영화와 행실을 버리겠나이다. 강생하신 지혜에게 제 모든 것 바치오니, 예수를 따라 십자가 지고 전보다 더 더욱 충실케 해 주소서.


천상 천하 모든 이 앞에 이 날을 간택하여 제 어머니, 주인 위해 모두를 바치나이다. 저의 몸과 마음, 저의 모든 좋은 점, 내적 외적 모든 행실, 어제나 오늘이나 가치로운 모든 선행을 종으로서 바치나이다. 저를 다스릴 모든 권리와 제 가진 모든 것 남김 없이 바치오니, 하느님 더 큰 영광 위해 영원토록 기꺼이 가져 주소서.


지극히 인자하신 동정녀여, 이 종의 바침을 거두어 들이소서. 영원한 지혜께서 당신 모성 가지시고 슬하에 승복하심을 기리고 본받기를 지극히 원하오며, 성삼께서 당신께 내리신 그 총애 감사하기 위함이나이다. 저는 이제 당신 종으로, 당신의 영광 찾고 언제 어디서나 순명하겠나이다.


찬미하올 어머니여, 저를 가져다가 사랑하올 당신 아들의 영원한 종으로 바쳐 주소서. 당신 통해 구원하셨듯이 당신 통해 저를 받아들이게 해 주소서. 지극한 자비의 어머니여, 주님의 진실한 지혜를 얻게 은혜 내려 주시고, 당신 사랑하시고 가르치신 우리를 당신 자녀요 종으로 이끄시고, 기르시고 보호하시는 우리 중에 저도 넣어 주소서.


성실한 동정녀여, 저로 하여금 어떤 일에 있어서나, 강생하신 말씀이신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요, 후계자요, 종이 되게 하여 주시어, 세상에서는 당신의 전달과 표양을 따라 그리스도를 충만히 닮게 하여 주시고, 천국에서는 그와 같은 영광에 이르게 해 주소서. 아멘


오! 사람이 되신 영원한 지혜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는 나의 온전한 헌신을 몽포르의 루도비꼬 성인의 뜻과 정신으로 하였듯이 당신의 모친이시며, 또한 나의 모친이신 마리아를 통하여, 오늘 이 온전한 헌신을 당신의 거룩하신 모친성요셉, 그리고 모든 천상 성인 성녀들의 입회 하에 갱신하고 또 굳게 하나이다....."


몽포르 성인의 마리아께 대한 기도


"하례하나이다. 마리아여, 영원하신 성부의 사랑하올 딸이여, 하례하나이다(하례賀禮=축하의 예식). 마리아여, 당신 성자의 경애하는 어머니여, 하례하나이다. 마리아여, 성신의 충실한 베필이여, 하례하나이다. 마리아여, 저의 사랑하는 어머니요, 주인이요, 여왕이시여, 하례하나이다. 저의 기쁨, 저의 영광 저의 마음, 저의 영혼이여, 당신은 자비하오시니 저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시며, 의당히 저도 또한 당신의 것입니다. 아직도 당신의 것이기에 부족한 점이 많나이다. 이제 저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조금의 남김도 없이 다 바쳐 드리나이다. 아직도 당신께 속하지 못한 그 무엇이 제 안에 남아 있으면, 제 모든 것의 주인이 되어 주소서. 하느님께 부당한 것 모두 쳐 부수시고 없애셔서, 당신께 기꺼운 것만 심고 가꾸소서. 당신 신앙으로 밝히 비추시어 제 마음의 어두움을 거두시고, 당신 깊은 겸손으로 제 오만 누르소서. 당신 밝은 마음으로 저의 방황 이끄시고, 하느님 매일 보시니 주님의 현존으로 제 마음 채우소서. 당신 마음의 불타는 사랑으로 저의 미지근함 태우시고, 내 죄 대신으로 당신 성덕 꽃피우시고, 당신 공덕이 보탬이 되어 제 부족 채우소서. 지극히 사랑하올 어머니 마리아여, 예수님과 그의 뜻을 알려는 당신의 영신(귀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말게 하시고, 주님을 찬미하고 기리려는 당신의 영혼(악령)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게 하여 주소서. 당신의 마음같이 순수하고 열렬한 사랑으로 하느님만을 기리겠나이다. 영시나 계시나 눈으로 직접 봄은 바라지도 않사옵고 영신적인 즐거움은 구하지도 않나이다. 하느님을 밝히 봄은 당신의 특전이요, 천상의 환희와 당신 성자 오른 편에 영광되이 승리함은 당신만의 특전이오며, 당신은 천사와 인류와악마까지 지배(?)하여, 당신의 뜻대로 하느님의 선물을 부어줄 수 있음은 당신께만 합당한 은혜이나이다.

오! 천상의 마리아여, 주님께서 당신에게 하사하신 (가장 좋은 몫)으로써 아무도 빼앗을 수 없으니, 제 마음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제 몫으로 바라는 건 꼭 한 가지 있사오니 당신의 것이 되기 소원이나이다. 영신의 기쁨 없이도 믿을 수 있사옵고, 누구의 위로 없어도 감내할 수 있나이다. 쉽 없이 제 자신을 멀리 하겠사옵고, 죽을 때까지 당신 미천한 종으로 열심히 이기심과 욕심 없이 살아가겠나이다. 한 가지 은총만을 간절히 구하오니, 언제 어디서나 "아멘"만 발하게 하소서. 지금 당신 세상에서 하옵시는 모든 일에, 지금 당신 하옵시는 모든 일에, "그렇게 하소서"란 말만 있게 하여 주시어, 당신만이 제 안에서 영원토록 예수 영광 기리게만 해주소서(편집자주: 거짓말이다!), 아멘."


*** 마리아를 전심으로 찬미하여 놓고는 끝에 가서 예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인 듯 위장하며, 자신의 간교함을 감추어 보려는 이 얄팍함이란... 거짓의 아비된 자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지 아니한가!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모든 마음의 여왕이신 마리아의 회


모든 마음의 여왕이신 마리아의 회는 1899년 3월 15일 처음 조직되었고, 1913년 4월 28일 비오 10세에 의해 로마에서 공식 인준되었다. 오늘날 이 회는 미국, 캐나다, 아이티,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88개의 지부를 두고 전 세계에 수 십만의 회원이 있다.


"모든 마음의 여왕이신 마리아의 회"가 지닌 목적은 우리 안에 마리아의 왕국을 건설하여, 우리 영혼 안에서 예수께서 보다 완전히 다스릴 수 있게 해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 성별식 기도문


"오오 마리아여, 나의 여왕이며 나의 어머니시여! 나는 당신에게 나 자신을 드립니다. 당신께 나의 헌신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나는 오늘 당신에게 나의 두 눈과 귀와 입과 가슴과 나의 존재 전체를 무조건적으로 드립니다. 그러므로 선하신 마리아여, 나는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의 소유물인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소서. 아멘"


이라크 전쟁 시 교황의 메시지


가톨릭 평화신문 2003년 3월 30일자  <교황, "이들을 동정 마리아께 맡깁니다"> 라는 제목의 기사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바티칸시티=외신종합】 <이라크 전쟁으로 군인과 민간인들의 희생이 늘어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평화의 선물을 거듭 기원하면서 전쟁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교황은 23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복식을 주재한 후 “전쟁의 희생자들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을 특별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맡겨 드린다”면서 이라크에 평화가 올 수 있도록 마리아의 전구를 청했다.


미국의 이라크 개전 직후 충격 속에 모든 일정을 중지하고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친 교황은 22일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와 “폭력과 무기로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며 평화를 거듭 호소했다. 교황은 “전쟁이 인류의 운명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평화가 정의와 연대의 사회를 건설하는 유일한 길임을 더욱 강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선포하는 일이 한층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24일 미국의 루터교회 지도자들을 만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위험과 불확실로 가득찬 세계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을 선포하는 데에 하나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며 “정의와 연대의 결실인 평화를 세상에 주시도록 하느님께 함께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


마리아(하늘 여신)에 대한 주제별 요약정리


값진 진주(34번) / 거룩함(7번) / 마리아 왕국(31번) / 무염시태(5, 37번) / 봉헌의 대상(11~16, 19, 24, 32번) / 생명나무(34~35번) / 성령의 베필(3번) / 성부의 어좌(거처)(27, 36번) / 속죄자 마리아(26번) / 성체(32번) / 승천(37번) / 안식처(피난처)(22번) / 양육자(4번) / 여왕(18, 20, 26, 28, 39번) / 영생의 문(38번) / 영적 양분의 근원지(4번) / 여자의 후손(31번) / 영혼의 생명(근원)(28번) / 원죄 없음(5번) / 은총의 통로(1, 10, 16, 21번) / 의뢰(의탁)의 대상(6, 20번) / 인도자, 보호자(20번) / 재림론의 주인공(30, 31번) / 주인 되시는 마리아(33, 39번) / 중재자, 대변자, 중개자, 전구자(17~19, 21, 23, 25, 36번) / 찬미의 대상(7, 9, 11번) / 천상 어머니(신의 어머니)(2, 26, 37번) / 평생 동정(29번) / 해를 입은 한 여자(38번)


살펴본 바와 같은 '마리아 숭배' 문제는 참으로 교묘하다. 왜냐하면 평상시에는 희미하게, 눈에 띠지 않게 존재하는 듯 하지만, 파고 들어가면 이와 같이 비복음적인 무서운 독소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각 개인이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 유일한 중보자로서 믿을 때라야 해결되지, 그렇지 않고서는 교묘히 말려들어 알게 모르게 우상숭배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톨릭 안에서는 '예수가 나의 구세주'라는 고백은 없고 온통 '마리아는 나의 어머니', '마리아는 나의 여왕', '마리아께 찬미하고 마리아를 공경하자'는 고백뿐이다. 가톨릭인들을 올바른 복음으로 인도하려면 전도자들은 다음과 같은 성경적 진리를 숙지해야 한다.


1) 마리아는 죄인이다! - 마리아도 구세주가 필요한 죄인이며(누가복음 1:47), 제사가 필요한 죄인이었다(누가복음 2:22).


2)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 아니다! - (29번 참조) 마리아는 예수님 말고도 6명 이상의 자녀를 더 낳았다(마가복음 6:3). 가톨릭이 주장하는 '사촌설'은 시편의 칼 69:8절로 물리치면 된다. 카톨릭의 거짓말에 의하면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인데, 여인의 처녀성이 그리도 위대한 것이라면, '평생 동정남'인 요셉은 더더욱 위대한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의 모친이라는 이유만으로 '신의 어머니'가 되었다면, 요셉 역시 '신의 아버지'가 되어야 옳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요셉의 위치는 마리아에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다. 즉 그들의 마리아 신앙은 고대로부터 내려져오던 여신숭배 사상의 연속일 뿐이다.


3) 마리아는 천주의 성모가 아니다! - 한 여자가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할 때(누가복음 11:27~28) 예수님은 그 말을 인정치 않으심으로 '마리아 숭배' 요소를 원천봉쇄 해두셨다. 또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심으로써 당신과 마리아를 육적으로 연결짓는 것이 옳지 않음을 지적하셨다(마태복음 12:50). 예수님은 아비도, 어미도, 시작도, 끝도, 족보도 없다.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이시다(히브리서 7:1~3). 한 번도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으셨고 오직  '여자여' 하셨다(요한복음 2:4, 19:26). '하나님의 어머니'란 말은 마귀 앞잡이 '레오' 교황이 칼케돈 공회(AD 451)에서 공표한 이후, 교리로 굳어진 카톨릭만의 사악한 전통이다. 가톨릭의 마리아는 이교도의 여신숭배 사상에 기원을 둔 '여자 마귀'에 불과하다. 마리아가 진정 '하나님의 어머니'라면 이미 초대교회 때 주의 종들이 마리아를 '성자 예수의 어머니', '하늘 모후'로 높이며 전도했을 것이나, 그런 증거는 전혀 없다.  


4) 마리아는 우리의 인도자, 전구자, 중재자가 될 수 없다! - 4복음서 저자들뿐만 아니라 사도들, 전도자들 일체 중 그 누구도 구원문제를 마리아와 연관시켜 논하지 않았다. 가장 오래 살았고,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그녀를 모셨을 사도요한의 글(요한복음, 요한서신, 요한계시록)을 보아도 마리아가 우리를 예수께로 인도하는 '중재자'라던가, 우리의 구원을 '돕는 자'라고 언급된 구절이 없다.  '무염시태', '평생동정', '승천', '천상 모후의 왕관' 사상이 마귀가 조작해낸 것이 아니라면 사도요한이 먼저 그러한 내용을 전파했을 것이다. '성모송'(아베 마리아:성모에게 드리는 기도)은 1568년 교황 피우스 5세가 성무일도(聖務日禱)에 삽입한 후부터 널리 사용된 것이니 인간작품이지 기독교적 교리가 아니다.


이렇게 정리해 보니, 성경에 나오는 주의 모친(누가복음 1:43) '마리아'와 카톨릭이 경배하며 섬기는 '마리아'는 완전히 다른 두 존재이며, 아무 연관도 없는 별개의 여인들이다. 우리는 주의 말씀만을 신뢰하여 마귀의 간교하고 세밀한 혼란의 칼을 더 강하고 크고 견고한 '말씀의 칼'로 물리쳐야 할 자들이다. 아멘!


가톨릭이 재림론에 대하여는 무심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30번 이하에서 소개된 말세론을 보면 가톨릭은 '마리아'와 관련하여 재림론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위에 설명된 모든 조작된 교리는 결국 그녀를 계시록 12장의 '해를 입은 한 여자'로 만들기 위한 사단의 철저한 준비작업임을 고발하며 '하늘 여신'에 대한 증거를 마치려 한다. 가톨릭을 들어 쓰는 마귀의 의도는 마리아를 종말론의 핵심요소인 '해를 입은 한 여자'로 만들기 위함이지만, 진정한 '해를 입은 한 여자' 제단은 마리아와 연계된 가톨릭의 재림론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를 다 밝혀 증거하였다. 지금껏 독자들은 가톨릭의 마리아 동상이나 마리아 그림에 12별의 면류관이 둘려져 있음은 잘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성당을 가든지 주의깊게 살펴보라. 마리아가 '여자의 후손'으로 위장되어 뱀을 밟고 있는 모습과, 마리아가 '해를 입은 한 여자'로 둔갑되어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예언은 '하늘 여신' 아세라를 섬기고 있는 가톨릭 교인들 중 끝까지 회개치 않고 강퍅케 될 자들에게 다시 예언될 말씀이다.  


『 20 예레미야가 남녀 모든 무리 곧 이 말로 대답하는 모든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21 너희가 너희 선조와 너희 왕들과 방백들과 유다 땅 백성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들에서 분향한 일을 여호와께서 기억지 아니하셨느냐 생각지 아니하셨느냐 22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소위를 더 참으실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무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거민이 없게 되었나니 23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여호와의 법과 율례와 증거대로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앙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미쳤느니라 24 예레미야가 다시 모든 백성과 모든 여인에게 말하되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


전날의 멸망이 어찌하여 찾아왔는가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뻔뻔스럽게 멸망의 죄악을 변호하는 무리에게 예레미야는 사실 그대로를 기억시켜주고 있다.


"놀램과 저줏거리가 된 상태"(22절)에서 우상숭배를 고집하여 여호와의 말씀에 또다시 대항하므로 이제 그들에게는 최종적으로 임할 저주만이 남아 있다.


4. 그들에게 심판을 선고함 : 25~30


『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와 너희 아내들이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이루려 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서원한 대로 반드시 이행하여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리라 하였은즉 너희 서원을 성립하며 너희 서원을 이행하라 하시느니라 26 그러므로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나의 큰 이름으로 맹세하였은즉 애굽 온 땅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는 내 이름을 일컬어서 주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라 하는 자가 없게 되리라 27 보라 내가 경성하여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니 애굽 땅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칼과 기근에 망하여 멸절되리라 28 그런즉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이 애굽 땅에서 나와 유다 땅으로 돌아오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는 유다의 모든 남은 자가 내 말이 성립되었는지, 자기들의 말이 성립되었는지 알리라 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너희를 벌할 표징이 이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한 말이 단정코 성립될 것을 그것으로 알게 하리라 30 보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를 그 원수 곧 그 생명을 찾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인 것같이 애굽 왕 바로 호브라를 그 원수들 곧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그들이 "하늘 여신"을 숭배하겠다고 한 대로 행하라고 이제는 허용하신다(25절).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주실 때는 아직 그 백성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 허용하시는 단계에 들어가면 그 백성은 이미 버림받았다는 증거이다(민수기 22:20 - 재물에 눈이 어두워진 발람의 교훈을 추억하라! 계시록 2:14).


유대인들 중에 하나님을 믿는 자가 없게 되리라고 한다(26절). 믿음도 성령도 위에서 주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구절이다(에베소서 2:8. 사도행전 2:38).


여호와께서 경성하여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복을 거두겠다 하신다(27~28절).


재앙의 실행방법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29~30).


이제 하나님이 명령만 내리면 바벨론 군대가 내려와 애굽을 정복할 것이며 시드기야 왕의 잡혀감같이 애굽 왕 바로 호브라도 그렇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초림주를 영접시킬 엘리야는 말라기 3:1, 이사야 40:3절에 기록돼 있고, 재림주를 영접시킬 엘리야는 말라기 4:5~6, 이사야 19:19~20, 학개서 2:7, 21~23절에 기록돼 있으니 만일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저주로 땅을 치심으로 천지가 진동(학개서 2:6, 21~22)되는 그날에 하나같이 패망하고 말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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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1109_D_이사야54

 

[수 새벽 설교] 이사야 54장 : 하나님의 영원한 긍휼과 자비 2016/11/09 Wednesday Dawn


2016년 1월 5일 예배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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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성경:이사야 54:1~17

제목:하나님의 영원한 긍휼과 자비


하나님은 영원하신 긍휼과 자비의 신이시다. 영원한 영광 중에 계시며 영원한 영광을 받으시려고 만물을 창조하셨다. 창조물 중에 으뜸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나(창세기 1:27) 아담으로부터 시작한 모든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로마서 3:23). 이렇게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완전한 율법을 주셨고, 이 율법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보내시사(이사야 53장)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되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어지게 하사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옮겨 주셨으며(로마서 8:2), 생명의 법으로 옮기움을 받은 피로 산 교회를 인간 종말의 마지막 미혹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 예언의 말씀으로 교훈하셨으니,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새 땅의 축복을 받으리라 하셨다.


율법을 지켜야 할 인간이 약하고 부족하여 한 가지도 지키지 못할 때, 독생자를 보내시사 영원한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고(로마서 8:3~4), 이제는 황금 보석 꾸민 집에서 영원한 축복을 받으라는 예언이 본문이다(11~14절).


1. 홀로된 자의 자식으로 영광을 얻게 하심:1~3


『 1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


예수님은 홀로된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지이다(요한복음 15:1~). 죄인이 예수(참 포도나무)님의 가지가 되는 것이 세계에서 제일 큰 축복이다. 이렇게 된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긍휼로 된 것이다. 이 역사를 이루시려고 구약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너는 나의 벗'이라 하셨다(이사야 41:8). 또한 '너의 씨를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창세기 22:18).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치게 하신 것은 곧 예수님이 모리아산(골고다; 역대하 3:1~)에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미리 실천적 언약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따라서 사라의 나이 90세(경수가 끊어진 후)에 아들을 얻었다는 것은 약속의 씨로서 얻었다는 뜻이다. 앞으로 태어나실 예수님의 모형이었다. 성경대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긍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갈라디아서 4:22~31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사라는 영자적이요 마리아는 실천적이니 사라의 아들 이삭은 약속을 보여주는 표징이요,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님은 실체로서 약속을 이루신 참 포도나무가 된다. 우리는 이에 접붙으므로 참 가지가 되는 것이니 이보다 더한 축복은 없다. 죄악 세상에서는 남편 있는 자가 주인 노릇을 하지만 주 재림의 날에는 홀로된 여인의 자녀만 남게 된다는 것이 본문이다.


● 2~3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펴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언약이 이 땅에 성취되어 약속의 자녀가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같이 번창하였으므로 이 땅이 좁으니 확장해 달라는 것이다.


스가랴 8:4~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 많으므로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


이사야 49:19~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창세기 13:14~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세기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


야곱에게도 약속하셨다. 창세기 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온 땅이 저주를 받았으나,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 한 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다시 인간과 땅을 회복케 하심으로 영광을 얻으신다는 것이다.


즉 이사야 53장을 믿는 자에게 54장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이니, 즉 예수님의 피로 산 씨들이 이 말씀까지 읽고 듣고 지킬 때, 새 시대 곧 ‘유명한 종식할 땅(에스겔 34:29)’에서 생육·번성·충만·정복하여 다스리는(창세기 1:28) 에덴의 참 열매가 된다는 교훈이다.


『하늘 나라를 얻는 자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아멘!


2. 잠시 버렸던 자식을 구속하심:4~8


『 4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을 보지 아니하니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


구속의 역사에는 모략이 있으므로 말세 종들이 잠시 버림을 당하는 일이 있으나 종말에는 반드시 구속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왜 버림을 당하는가? 이유는 하나님의 교회가 부패하여 심판의 다림줄을 증거해도 듣지 않고, 오히려 비소하고 대적하기 때문이다.


지렁이 같은 야곱이 새 타작기로 쓰여질 때가 종말 동방역사의 때인데(이사야 4:14~15), 은혜의 해에는 원수들이 은혜 받은 자를 때리고 죽여도 그냥 놔두었지만, 신원의 날에는 오히려 원수를 없이 하고 억울함을 당한 만큼 상급을 주신다는 것이다. 교만한 교권과 정권이 무너지는 날이 여호와의 심판하시는 날이다.


● 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예수님은 우리의 남편이시요, 구속자시요, 목자장이시다. 이사야 53장같이 죽으시어 오늘날까지 중생의 씨를 나게 하시고, 이사야 54장 같은 새 시대를 이루신다. 구약에서 보여주실 때도 아브라함의 독생자 이삭을 모리아산의 제물로 삼고 야곱의 12지파를 일으켜 젖과 꿀이 있는 가나안을 주심같이, 은혜 때에도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속건 제물로 삼으시어 신령한 영적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루신 후, 그 가운데서 뽑아낸 자 144,000명과 수많은 종족 백성으로 새 시대를 이루신다는 것이 본문의 예언이다.


● 6~8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이라 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새 땅의 치리권을 받을 자는 요셉같이 시련이 있을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다윗 왕도, 예수님도 잠시 버림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시편 22:1). 그러니 인간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참 종들은 오직 말씀 하나만 굳게 잡고 나아가야 된다는 것이다. 역사는 말씀이 응하기까지니 새 일의 교훈만 따라 가자!


1958년 3월부터 소련 수상 후르시초프가 거짓된 위장 평화공존을 들고 나오므로 세계에는 미혹의 연기가 덮여 계시록 9장같이 해와 공기가 어둡게 되었다. 이 때부터가 영적 시련기이니 종들이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는 때이다. 하박국 1장같이 악의 세력이 독수리같이 높아질 때이다(계시록 8:13절과 동일). 이와 같은 때, 순의 종들이 예언서를 햇빛같이 밝히지 않고서는 도저히 흑암을 이길 수 없다.


3. 화평케 하는 언약을 옮기지 아니함:9~10


『 9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10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


우리는 노아처럼 말씀의 방주를 예비해야 한다


옛날 노아 때같이 시련 받던 종들을 다시는 책망하지 않고 긍휼과 자비만 베푸실 것을 예언하심이다.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 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로다』 -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시니 그러므로 야곱은 성경에 기록한 대로 소멸되지 아니하고 새 땅을 정복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약속을 믿으므로 믿음의 열조가 되었다. 믿음에는 성경 이사야 53장같이 이 땅에서 실현된 일, 즉 되어진 일을 믿어야 할 때(☞ 은혜시대)가 있고, 이사야 54장같이 앞으로 이루어 질 것을 믿어야 할 때(☞ 환난시대)가 있다. 내 맘대로 골라 믿지 말고 예언서 전체를 믿어 살아 새 시대에 들어가야 할 때가 지금이다. 북방에서 진노의 막대기가 내려올 것이니 정신을 차리고 말씀의 방주를 지을 때이다.


4. 보석으로 꾸민 성에서 영광을 누리게 하심:11~14


『 11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12 홍보석으로 네 성첩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14 너는 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할 것이라 』


이 예언은 1,000년 안식세계를 보여주심이다. 물질세계의 창조목적은 지상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실 목적이시다. 새 시대는 극도로 아름다우니,


마귀가 없다(계시록 20:1~3).

거룩한 씨가 번성한다(이사야 27:6).

구속한 자만 들어온 곳이다(이사야 35:8~10).

지질이 변하였다(이사야 49:9~10).

평화와 의의 통치뿐이다(이사야 60:17~18).

백성이 의롭다(이사야 60:19~21).

약자로 강국을 이룬 곳이다(이사야 60:22).

기뻐하고 즐거워한다(이사야 65:18~).

수고가 헛되지 않은 곳이다(이사야 65:21~).

피해가 없다(이사야 65:24~25).


5. 하나님의 자녀를 치는 자를 패망케 하심:15


『 그들이 모일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모여 너를 치는 자는 너로 인하여 패망하리라 』


이사야 42:13~과 스가랴 14:12~의 예언같이 진리를 대적하는 자는 그 육체에 재앙을 받으므로 죽는다는 것이다. 살이 썩고 혀가 썩는다 하셨다. 이 날까지는 순교만 당하던 교회가 여호와께서 일어나심으로 대적을 크게 치게 된다 하셨다.


6.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를 송사하는 혀를 정죄하심:16~17


『 16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기계를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17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나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로마서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사랑하는 자의 원수를 주께서 친히 갚아 주시고 영원한 영광을 얻으신다는 것이다. 성도의 기업과 의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말씀 때문에 욕을 먹어도 절대 남을 욕하지 말고 끝까지 참음으로 행하자! 나머지는 주께서 다 이루어 주신다.


당신은 구약의 사건 전부가 이미 지나간 일이 아닌, 인간종말에 다시 이루어질 완전한 현실로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에겐 예수님의 예언과 모든 순교자들의 원한을 풀어줄 선지자적 사명이 있습니다. (☞새일성가 13장)


마태복음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렇게 핍박하였느니라” - 다니엘의 세 친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풀무불에 들어갔으나 하나님께서 건져 주신 사건은 종말에 말세 종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역사이다(구약은 거울). 앞으로 예언대로 원자탄이 터지고 핵전쟁이 일어나 세계가 불바다가 될 때에 하나님의 인 맞은 종들은 살아남을 말씀이다. 그러나 미혹을 받아서 미친개같이 남을 욕하던 자들은 이 날에 불싸개가 된다. 축복도 영 다음에 육이요, 재앙도 영 다음에 육이니 예수님의 택한 종으로 영적 재앙을 면하고 축복을 받았다면 뒤집어 엎는 종말에도 예수님께서 택하신 종의 말을 들으므로 영·육이 화를 면코 새 시대를 보게 된다(학개서 2:6, 23, 이사야 50:10).


너희는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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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새벽 설교] 이사야 53장 : 여호와의 뜻을 성취함 2016/11/08 Tuesday Dawn


2016년 1월 4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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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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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사야 53:1~12

제목:여호와의 뜻을 성취함


아담의 타락 이후에 그의 씨로서는 이 땅에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해 드릴 자가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마지막 아담(고린도전서 15:45~49)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셔서 아버지의 뜻을 성취해 드린다는 예언이 본문이다. 기독교 종말에 유다의 원수를 없이 할 징조로 이사야 7:14~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대로 순종의 여인 마리아의 몸을 빌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탄생하셨도다. 할렐루야!


복음의 시작은 이사야 9:1~3 “이방 갈릴리 해변에서부터 큰 빛이 비췰 것”을 예언하셨고, 이사야 42:1~4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는 예언대로 상한 갈대 같은 죄인을 꺾지 않고 구원해 주셨다.


1. 아드님(예수)을 멸시 당하게 하심:1~3


『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 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사 그 아들이 십자가 상에서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정월 14일) 유월절 양의 사명을 완성하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걸머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죄인들을 살리려고 죄 없는 예수님이 대신 고초를 당하셨다. 나사렛에서의 30년간의 목수 생활, 갈릴리 해변을 중심으로 한 3년간의 공생활에서, 보는 사람마다 욕하고 조롱하고 비웃었으니... 이렇게 되는 것은 이사야 53장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함이었다.


시편 22:6 “나는 사람이 아니요 벌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라는 이 말씀이 예언 그대로 이루어졌으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예수께서는 “산에 여우도 굴이 있고 나는 새도 집이 있건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셨다(마태복음 8:20, 누가복음 9:58). 당시 유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예수님 설교를 듣고 마귀라고 정죄했다(요한복음 10:19~21). 소위 성경을 가르친다는 선생들이 이 꼴 이었으니 그 당시의 종교적 부패를 알 만하다. 이 유월절 양인 예수님의 모든 행적은 4복음서 안에 기록되었다. 구약에 예언하신 메시야에 관한 말씀이 사람의 눈 앞에서 이루어진 것을 (보고 들은 그대로) 기록한 것이 4복음서이다. 예수님은 오직 우리 죄인을 위하여 멸시를 받으신 것이다. 인간은 무엇으로도 이 은혜를 갚을 길이 없을 것이다. 이 몸을 천 번 만 번 드려도 갚을 길이 없을 것이다.


♬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찬송가 141장)


2. 찔림을 받아 상하게 하심:4~6


『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예수님은 우리 죄만 담당하신 것이 아니고 병까지 걸머지셨다. 우리의 연약한 것과 영과 육의 눌린 모든 것을 친히 짊어지셨다. 마태복음 8:16~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병도, 죄도 다 담당하셨기에 진정으로 믿는 자 안에서는 죄 사함의 역사가 일어나며 각종 병이 치유되며, 생활은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리라” 하셨다. 성도들은 이 말씀대로 자기 십자가를 분명히 알아 예수님의 십자가에 손대지 말고 자기 십자가만 지고 나가야 한다. 자기 십자가란 주님을 믿고 따라 가려는데 방해되는 영·육 간의 모든 장애물이다. 즉 자기를 극복하는 것이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생활이다. 병이 온 것은 회개가 없는 죄 값으로 온 것이니 철저히 회개할 때 물러가게 된다. 그러나 만일 병이 내게 준 십자가라면 병원에 가도 소용없게 된다(물론 병원 가서 나을 병을 무지하고 어리석은 신앙으로 고쳐보겠다고 망치는 것은 주 앞에 죄가 됨을 명심하라). 우리를 대신해서 주님이 상하셨으니 주님 안에서 순종하는 자 되자! 특별한 사명자에게는 교만치 말라고 주시는 질병도 있다(고린도후서 12:7).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이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24~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의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하였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죄 값은 예수님의

귀하신 생명으로 담당하셨다.

당신의 몸을 희생하므로

단 번에 하나님께 지불하셨다.

(히브리서 9:22).


3. 죽음을 당하게 하심:7~9


『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시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 6시간 동안(오전 9시~오후 3시) 고난을 당하시고 운명하신 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지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래서 율법의 저주 아래 죽었던 우리까지 살리움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아버지의 뜻이 성취되었다(갈라디아서 3:10~13). 예수님 초림의 목적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러 오신 것이지 은혜도 베풀지 않은 채 죽이려(심판) 오신 것이 아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마태복음 26:24절에 말씀하셨다. 유월절 양으로 오신 당신의 살은 우리의 참된 양식이요, 당신의 피는 우리의 참된 음료이다. 출애굽 때 보여주신 그대로 예수님은 정월 14일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셨다(고린도전서 5:7).


4. 그의 공의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심:10~12


『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3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아버지께서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시켜 주시려고 아들(예수님)이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혀 죽기를 원하셨다. 마태복음 5:17~ “예수께서 내가 온 것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려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셨다. 우리는 약해서 율법의 613가지의 조문을 한 가지도 지킬 수가 없었다.


로마서 7: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여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의’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


로마서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懇求)하시는 자시니라...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모든 죄를 십자가로 덮으시고 널리 용서하셨다. 이사야 53장으로 중생 받은 참 이스라엘은 이사야 54장의 예언대로 새 시대를 기업으로 받고 영·육 간에 영생의 축복을 얻게 된다. 그런데도 주님이 지키라고 주신 피로 산 예언서 새 일을 불순종하는 자들은 아담같이 지상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다. 즉 새 시대에 갈 수 없다. 우리는 알파와 오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아담처럼 되어서는 아니된다.


예언을 지켜서 새 시대에 가자!


계시록 14:1~5절 말씀대로 어린 양이 인도하는 대로 어디든지 따라가는 자는 시온산 정부의 왕권을 받는다. 이사야 54:1~3절에서는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하셨다(갈라디아서 4:25~31 인용).


첫 아담의 범죄로 에덴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모리아산을 지정하시어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창세기 22:1~18) 명하셨는데, 이후 다윗은 이 모리아산을 빼앗아 시온산성(다윗성)을 세워 33년간 왕국을 통치하였다(사무엘하 5:6~7). 솔로몬은 이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였다(역대하 3:5). 이 모든 율법(그림자)을 이루시려고 예수님은 이삭같이 오시어 예루살렘 영문 밖(시온산=모리아산=감람산=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려 화목제물이 되시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셨고(사도행전 1:11~12), 또 감람산으로(스가랴 14:4, 계시록 14:1) 재림하셔서 악을 제하시고 선을 택하여(이사야 7:15), 이사야 54:11~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첩을 지으며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라” 하신 말씀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 예수님 한 사람이 순종하시고, 그 피와 말씀으로 그에게 완전히 접 붙은 순종자들로 인하여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왕국이 이루어져 버터와 꿀이 넘치는 새 시대가 열리니 감사하고 감사 하고 감사할 뿐이로다.


할렐루야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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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1106b_예레미야43

 

[주일 오후 설교] 예레미야 43장 : 교만과 불순종 2016/11/06 Lord's day(Sunday) Afternoon


2014년 12월 5일 예배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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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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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예레미야 43장

제목 : 교만과 불순종


1. 요하난 단체가 애굽으로 이거함 : 1~7


『 1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게 하신 이 모든 말씀을 다 말하매 2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및 모든 교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는 애굽에 거하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


멸망 받을 자의 행위를 보라! 예언을 듣고도 순종치 않고 오히려 "당신의 하나님"(2절) 이라 칭하며 앞서 자기들 스스로 참 선지자로 시인했던 예레미야를 대적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떤 말씀이든지 다 순종하겠다고 해 놓고 자기 뜻에 맞지 아니할 때 도리어 참 선지자를 대적하고 해하며 어느덧 "당신의 하나님""우리 하나님"이 되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애굽에 가지 말라고 아니하셨다"는 억지를 부린다(사단의 특성을 잘 새겨 놓으시라). 이 사람들의 행위는 ① 배신적인 행동이며 (처음에는 기도를 부탁하지 않았는가! 42:1~2) ② 불신앙의 행동이다(2절).


하나님 말씀의 권위는 그의 뜻을 행하려는 자만이 깨닫는다(요한복음 7:17).


요하난 단체는 교만한 단체이기에 유브라데 강가에 버려진 동족의 운명처럼 그들도 애굽 땅에서 썩게 된다(베띠의 교훈).


『 3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꼬드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인의 손에 붙여 죽이며 바벨론으로 잡아가게 하려 함이니라 하고 』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 바룩이 조작한 말이라고 한다. 의심을 품게 하는 것 또한 사단의 특성이다. 예루살렘에 있으면 바벨론이 곧 잡으러 올 것이 분명한데 "남아 있으라" 하는 건 자기들을 죽게 하기 위하여 바룩이 예레미야를 꼬드긴 결과라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들은 늘상 정욕적이거나 사심에 치우친 자들이므로 그 시작은 그럴 듯해도 결국에서는 진리를 100% 대적하기 마련이다.


시편 12:2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4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예루살렘에 행해진 모든 일을 진실로 묵상하며 돌이켜 보건대 그들은 예레미야를 참 선지자로 여겼으리라! 또한 바룩이 예레미야를 도와 함께 고난당한 종임을 생각할 때(36:1~19) 그들은 바룩이 예레미야를 꼬드겨 유다의 남은 자를 죽이려 하고 있다는 망언은 하지 않았으리라!


우리는 여기서 사단의 특성을 연속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사단이 들어쓰는 인간의 행동은 앞과 뒤가 모순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그러다 모순이 드러나게 되면 어거지로 타인에게 뒤집어 씌우기 시작하며, 이러한 자신의 행동을 깨닫지 못하고 시편 12:4절처럼 교만히 말하다가 결국에는 불못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단과 그에게 속한 자들의 운명인 것이다.


『 4 이에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대장관과 모든 백성이 유다 땅에 거하라 하시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


"유다 땅에 거하라 하시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불순종은 악한 무화과들의 특성이다. 창세기 13:14 모리아산 예루살렘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이다. 고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받아 마땅한 그들의 분복(分福)인 땅이다. 그들이 거기서 사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런데! 출 애굽한 지 어언 900년이 경과한 이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망령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43장 본문은 오늘날에 그대로 다시 예언된다! 영적으로 출애굽한 기독교가 오늘날 영적인 애굽으로 다시 기어 들어가고 있으니 이는 예언서를 깨닫지 못한 소치(所致)이다. 계시록 11:8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을 영적으로 하면 '애굽'이요 '소돔'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동행치 않으면 영적으로 애굽에 거하는 자이다.


『 5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대장관이 유다의 남은 자 곧 쫓겨났던 열방 중에서 유다 땅에 거하려 하여 돌아온 자 6 곧 남자와 여자와 유아와 왕의 딸들과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넘겨 둔 모든 사람과 선지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영솔(領率)하고 7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이러하였더라 』


• 5~6절 : 요하난 단체가 애굽에 내려간 일은 스스로 죽으려고 내려간 꼴이 되었다. 예레미야와 바룩도 그들과 동행하였는데 그들이 억지로 사로잡아간 것이다. 고로 자의가 아닌 예레미야의 애굽행은 죄책을 지지 않게 된다.


• 7절 : "다바네스"는 애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는 도시이다.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에 대하여는 42:20, 43:2~3절에 기록돼 있다.


2. 선지자가 애굽의 멸망을 예고함 : 8~13


『 8 다바네스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9 너는 유다 사람의 목전에서 네 손으로 큰 돌들을 가져다가 다바네스 바로의 집 어귀의 벽돌 깔린 곳에 진흙으로 감추고 』


애굽에 들어서자마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이 애굽에 들어가기 전에 그 백성에게 각성을 촉구할 만한 기회이다. 만일 끝까지 회개치 않고 애굽에서 살기를 고집한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반드시 임할 것이다.


"큰 돌들을 가져다가.... 바로의 집 어귀의 벽돌 깔린 곳에 감추어 둠" 이것은 10절에 설명한 것과 같이 바벨론 왕이 애굽을 정복하고 돌아와서 바로의 궁전자리에 자기의 궁전을 세우리라는 예언이다. 악한 무화과의 종말은 이와 같이 결국 자기들이 피하려던 바벨론 왕에 의해 멸망 당하는 것이다.


『 10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오리니 그가 그 보좌를 내가 감추게 한 이 돌 위에 두고 또 그 화려한 장막을 그 위에 치리라 11 그가 와서 애굽 땅을 치고 죽일 자는 죽이고 사로잡을 자는 사로잡고 칼로 칠 자는 칼로 칠 것이라 』


유다의 남은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고집스러이 애굽으로 가서 거하게 되므로 하나님은 북방 몽둥이를 애굽에까지 보내어 그들을 심판하게 하셨다. 인간의 머리로는 하나님을 피할 수 없도다(42:16).


『 12 내가 애굽 신들의 집에 불을 놓을 것인즉 느부갓네살이 그들을 불사르며 그들을 사로잡을 것이요 목자가 그 몸에 옷을 두름같이 애굽 땅을 자기 몸에 두르고 평안히 그곳을 떠날 것이며 13 그가 또 애굽 땅 벧세메스의 주상들을 깨뜨리고 애굽 신들의 집을 불사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


바벨론 왕이 애굽 땅을 쉽사리 정복하여 "목자가 그 몸에 옷을 두름같이 할 것"을 이름이다. "벳세메스"는 애굽인들이 말하는 대로 "온"이란 땅인데(창세기 41:45) 나일강 동편에 있고 멤피스의 북쪽으로 2 마일 밖에 있다. 오늘날도 벳세메스에서 주상(柱像)들의 유적이 발견된다고 한다. 강대국가는 우상국가(단 2장)이니 유다(성도)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산다. 종말을 미리 보여주시고자 구약 역사를 주관하실 때에 "좋은 무화과"는 70년을 믿고 바벨론에 가서 70년 연대를 믿고 기다려 회복을 받아 돌아온 스룹바벨 단체라 하셨으니, 영적 애굽행이냐? 영적 바벨행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오늘날의 기독교회는 예레미야 43장을 올바로 깨달을 때 자기의 거처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동방 역사는 하나님이 운전대를 잡으시고 구약에서 보여주신 그대로 이루시는 모략과 경륜의 역사이다. 이것을 깨닫는 자 복 되도다!


극상 포도나무 씨를 심어서 사랑으로 길러 놓았더니 마귀를 따라가 들포도만 맺히니 농부의 마음은 한없이 찢어지는도다! 하나님은 애굽에까지 잡혀 간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 땅에서도 예언의 말씀을 계속하여 남기신다. 한 번 빗나간 그들은 회개할 수 없었고, 회개치 못하므로 마귀의 종이 되어 이방 '하늘 여신'까지 섬기게 된다.


'애굽행'을 고집한 자들이 '하늘 여신'까지 섬기게 되는 이 연속된 죄악은 21세기 기독교의 종말에 다시금 발생할 일들이므로, 예레미아의 노정을 걷는 우리들에겐 44장의 사건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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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1107_D_이사야5117절~52장

 

[월 새벽 설교] 이사야 51장17절~52장 :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 / 시온의 종말의 영광 2016/11/07 Monday Dawn


2016년 1월 3일 예배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זרובבל משימ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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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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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절망 중에 건져 주심:17~23


『 17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너의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19 이 두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도다 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22 네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23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찌기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의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같게, 거리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 여호와께서는 어떤 자에게 분노의 잔을 주시는가?


이사야 66:1~6절에 말씀에 떨지 않는 자에게 유혹의 영을 부어 주신다고 하셨다. 종말은 계시록 9장같이 미혹해 보는 흑암의 때인데, 말씀에 떠는 자는 예언서를 꿀같이 먹어 하나님의 인(印) 침을 받게 되고, 말씀에 떨지 않는 자는 유혹의 영을 받으므로 새 시대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아담이 시험 받은 것처럼 종말에도 은혜 받은 교회에 오메가의 시험(다섯째 나팔)이 온다. 학교에서도 예습·복습을 철저히 한 학생만이 총명하고 담대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모든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구약을 잘 복습하고 모든 예언서를 철저히 무장하는 완전한 예습이 있어야만 오메가의 시험(미혹) 앞에서 담대하고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다. 1958년 3월부터 소련 수상 후르시초프의 거짓된 평화공존(계시록 9장)이 세계를 덮게 되니 햇빛 같던 교회가 어두움에 잠겼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어두움의 단체이다. 성경을 손에 들고도 예언서를 몰라 흑암에 떨어진 자들이다. 하나님 편에서는 강한 이방 공산당을 심판하고 새 시대를 이루실 것이 목적인데(이사야 2:4, 미가서 4:2), 하나님 뜻도 모르고 멸망당할 대적(공산당)과 협상하는 교회는 음녀 교회이다(계시록 17장). 누구든지 이 분노의 잔에서 빠져 나와야 환란에서 보호받는 초막절기를 지킬 수 있다.


● 그러므로 21절:너 포도주가 니아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하심은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아버지 오른손으로부터 받은 안팎으로 기록된 심판의 구약 책을 말씀하심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기록된 책대로 행하시는 역사이다.


지금 이 때는 이사야 5:20절 같이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을 쓴 것으로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하고 외칠 때이니 지혜 있는 다섯 처녀는 기름을 예비하여 등불을 든다고 했다(마태복음 25장). 처녀는 교회요 등은 예언의 등불을 말한다(예수님의 확실한 증인 베드로도 성령을 충만 히 받고 편지하기를 베드로후서 1: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치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하였다). 즉 이사야나 베드로나 종말에는 예언의 등불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강한 흑암이 올 것을 내다보았다. 이 사악한 흑암은 예루살렘, 즉 교회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9:14~15 “그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열국 중에 그들을 헤치고 진멸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니라”


예레미야 23: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들에게 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邪惡)이 예루살렘 선지자에게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예레미애 25: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잔을 받아 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치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칼을 보냄을 인함이라”



은혜 받은 교회가 말씀은 따라가지 않고 세상 길로만 치우치니,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은 봉한 책이 되고 말았다. 강단에서는 예언을 못 밝히고 세상 이야기만 해대니 성도들의 심령은 메마르고 컬컬하게 시들어 간다.


● 22절:“보라 내가...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 그러나 이러한 흑암의 때에, 이 민족과 이 시대의 양 떼를 살리시려고 동방 한국에 예언서를 밝혀 주셨다. 오직 믿는 자가 살 길은 심판할 예언서를 듣고 따라가는 이 한 길뿐이다. 예언서의 내용은 연대와 날짜까지니 가감 없이 지켜야 한다(신명기 32:7, 사도행전 1:6~8, 17:26~). 취하여 잠든 자들을 깨워서 빛으로 인도하는 역사! 이것이 바로 새 일의 역사이다. 예레미야 31: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스가랴 4:7~ 머릿돌·다림줄은 스룹바벨의 손에 있으니 1974년 지대 놓은 9·24 제단, 스룹바벨 중앙교회에 약속하신 대로 모든 말씀을 밝혀 주셨다. 이 제단은 이사야 19:18~19절같이 5대 성읍(5대 강국) 때 세워진 애굽 땅 중앙제단으로 진리로 인해 압박 받는 제단이다. 4대 강국 때 세워진 대표 종의 9·24 제단(1964. 9. 24)은 예표의 제단이다(스가랴 3:8). 예표 종은 사단과 싸워 승리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하셨으며, “내가 네 죄과(罪過)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며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셨다(스가랴 3:1~5). 즉 예표 종(이뢰자)은 자기의 사명을 마친 것이다.


부분적인 역사, 혼선된 예언을 들으면 분노의 잔을 벗어날 수 없다. 성경대로 허락받고 나와 득세하는 마귀의 때인 이 때, 기독교가 무엇으로 마귀를 이긴단 말인가? 사랑으로? 타협으로? 은사 역사로? 이적 기사로? 결코 아니 될 말이다. 마귀(흑암)는 무찌르는 무기가 따로 있다. 바로 머릿돌, 다림줄의 진리인 철장권세 말씀이다.


● 23절:“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 이미 21절에 이르시기를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하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고린도전서 4:6). 이 말씀을 듣고 끝까지 진실할 때(계시록 17:14) 우리 등을 땅바닥 밟듯하며 우리 허리를 길바닥 디디듯 하여 우리를 곤고케 하던 자들에게 재앙의 잔을 돌리시므로 우리는 허리를 펴고 원수를 이기는 승리를 맛보게 해주신다는 진실한 약속이시다.


승리는 순종자의 것이다. 할렐루야~!






성경:이사야 52:1~15

제목:시온의 종말의 영광


시온은 다윗 왕이 왕도를 정한 곳으로 이 시온 성을 평화의 성(예루살렘)이라 한다. 성경 기록의 목적은 육적 이스라엘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요, 그들을 통해 보여주시면서 미리 예지·예정하셨던 영적인 세계 이스라엘의 구원이 목적이다. 예수님이 성경을 성취하시려 오심으로부터 육적 이스라엘은 택민의 사명이 끝나게 되었다(이는 그들이 영적 이스라엘이 될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의 행하심에는 치우침이 없도다).


마태복음 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했고, 마태복음 21:33~4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했으며, 마태복음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하심으로 주님을 영접치 아니한 유대인의 멸망을 예언하셨다. 육적 이스라엘의 패역과 교만이 심판 받은 것이다. 이들의 잘려나감으로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크신 경륜이로다(에베소서 1:3~14, 로마서 11장). 그러나 잘려나간 그들이라도 예수가 그리스도(메시야)임을 믿고 돌아올 때에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다.


영적 이스라엘이란 민족과 국경의 차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는 역사이니 이를 기독교의 십자가의 도(道)라 한다(에베소서 3:6~8, 갈라디아서 3:27). 은혜 시대의 시온의 영광은 이방 갈릴리에서부터라는 이사야 9:1~3절의 예언이 예수님 때 성취되므로 마태복음 4:12~17절에 인용하여 기록되었고, 종말의 시온의 영광은 해 돋는 동방 땅 끝에서부터라고 예언했으니(계시록 7:2~, 이사야 24:14, 41:1~4, 59:18~) 북방에서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환난이 올 때 하나님 권세로 북방을 무찔러 승리한다는 것이 종말에 있을 시온의 영광이다.


1. 부정한 자가 다시는 없게 됨:1~2


『 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2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


세계 교회를 대표하는 동방에 하나님의 선지 국가를 세우시어 알곡을 모집하는 역사(초막절)가 펼쳐지는데 있어 부정한 자는 허락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할 때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신정 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므로 동방 시온의 영광은 찬란하게 된다. ☞ (찬송가 248장)


●1절 상반절:“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 신앙의 잠을 깨우는 역사는 동방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스가랴 4장같이 캄캄한 영적 밤이 온 세계를 덮은 이 때에 순금등대 감람나무 같은 종의 역사로 태산 같은 북방 원수의 세력이 평지가 되며, 머릿돌 말씀의 진리 역사를 보고 일어난 대중적인 무리로 은총의 골짜기를 이루시는 데는 모든 역사가 동방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사야 51:17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하신 말씀처럼 20세기 종말의 세계 모든 교회가 이같이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가 내려오는 북방환난을 당하게 되는 것은 이 말씀인 예언서를 듣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빛도 어두움도 창조하셨는데(이사야 45:7), 왕국건설(☞ 왕국건설 승리가)을 위하여 마지막 어두움을 들어 쓸 때 누구든지 이 어두움을 물리치는 길은 예수님께서 피로 사신 예언서를 따르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큰 싸움이 있다고 경고하시며 이미 이길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이니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예언서는 구원의 법이자 심판의 법이 된다. 따르는 자에게는 구원의 책이요, 버리는 자에게는 심판의 책이다.


● 1절 하반절“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하심은 스가랴 2:5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하심과 같은 역사이다.


● 2절:“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 이 말씀은 동방의 빛(한국의 말씀)으로 완전한 해방을 받되 이제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슬픈 아리엘’의 때, 곧 땅에서 나직히 지껄거리는 지렁이의 때, 전통에 감춰진 시련의 때를 지나 강력한 새 타작기, 마광한 살, 시온의 잠을 깨우는 철장권세로 쓰임받는 동방역사로 초막절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이다.


2. 원수의 압박에서 속량하여 줌:3~6


『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4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이왕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寓居)하였었고 앗수르 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 알리라 곧 내니라 』


해방에는 때가 있다. 구약 때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400년, 즉 이방 땅 애굽의 노예생활을 마치고 해방 받는다는 창세기 15:14절의 말씀이 출애굽기 12:40절에서 성취되었으니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전도서 3:1).


육적 이스라엘의 육적인 해방에도 ‘때’가 있었다면, 세계 영적 이스라엘의 진리 해방에도 때가 있을 것이다. 앞에 기록했듯이 육적 이스라엘의 해방은 창세기 15:14절과 출애굽기 12:40절로 증거되었다.


그렇다면 영적 이스라엘의 해방은 성경 어느 구절에 기록되었을까?


바로 학개, 스가랴서이다. 유다(한국)의 성전이 9·24 제단으로 시작된다는 것이 학개서의 말씀이다. 스가랴 1:12~ “이(유다)를 노하신지 70년이 되었나이다” - 여기서 “70년”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 ‘70년’은 동방 유다에서부터 회복이 시작되어 세계 영적 이스라엘을 회복하게 되는 핵심적 연대이다. 70년이란 1905년부터 아무 이유 없이 일본에게 값없이 팔려간 영적 유다 한국을 기준한 것이니(∵ 스가랴 선지가 1:12절을 외칠 때는 주전 520년 경으로 구약 유다가 회복된 지 이미 16년이 지난 후이기 때문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값없이 팔려간 한국이 70년이 차는 해 1975년에 돈 없이 속량된 것이다.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우리 민족도, 세계 이스라엘도 학개, 스가랴의 예언대로 정한 때에 해방이 된 것이다.


● 4절:“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이왕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 하였었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에 400년, 북방 바벨론에 70년 잡혀가 포로 생활을 하였으나 정하신 연대가 될 때 어김없이 회복을 주셨듯이(다니엘 9:1~, 에스라 1장), 인간 종말의 세계적인 이스라엘 회복도 구약 때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 5~6절:“...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줄 알리라 곧 내니라” -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강대국들은 이 모든 일들이 자기들의 힘과 뜻대로 되는 줄 아나 하나님의 모략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로다! 그러므로 미가 선지자는 4:11~ “이제 많은 이방이 모여서 너를 쳐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 모략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하고 외쳤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걸어가는 구원의 길이다. 즉 살기로 작정된 자만 주야로 묵상하게 되는 책이다(시편 1:1~2). 그러니 구원이 없는 이방인이 깨달을 수가 없고 갖다 펴 주어도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핍박할 뿐이다.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와 똑같이 종말에도 “예언의 법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새 시대 가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세요 능력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지!!!


3. 파수꾼이 재림의 주님을 만나게 됨:7~8


『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8 들을지어다 너의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


파수꾼은 예수의 일꾼이니 자행자지(自行自止) 할 수가 없다. 세상과의 타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주님을 만날 수가 없다. 세상은 넓은 길이지만 파수꾼이 가는 길은 좁은 길이다. 그래서 산을 넘는다고 했으니 이 산은 천신만고(千辛萬苦) 시련의 산이다. 종말에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들림을 받으니 시련의 산이란 곧 이 싸움을 가리킨다. 스가랴 4:6~7절에 순금등대 역사는 인간의 힘이나 능(能)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신(神)으로만 되는 역사라 했다. 스룹바벨이 머릿돌을 내어놓을 때에 태산이 평지가 되리라 하셨으니, 여기서 태산이란 우리를 대적하는 666의 큰 세력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물이니 하나님의 통치만 받아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자기의 욕심을 쳐서 자기를 복종시키고, 심판의 다림줄만 굳게 잡아 어떠한 역경의 산이 와도 이겨낼 때 철장권세 승리의 종이 된다.


동방역사는 단체역사니 순수히 말씀으로만 뭉쳐진 단체가 일어나서 예언서 전체를 밝힐 때 세계적인 흑암은 물러가게 된다. 종말에 미혹해 보는 흑암을 이기는 자가 환난 날의 파수꾼이다. 촛대 교회 양 떼를 양육하던 파수꾼들은 전 3년 반의 증거를 마치고 공중에서 재림의 신랑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고(휴거), 이 말씀을 좇아오던 양 떼들은 예비처로 피난 간다(계시록 11:7~12, 12:예비처에서의 양육).


4. 하나님의 위로와 구속:9~10


『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였음이라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


기독교 종말의 영·육 구원 역사는 동방 땅 끝 유다(한국) 예루살렘으로부터 하시는데, 스가랴 1:12절에 70년이 되면 하나님이 유다에 돌아오셔서 성전을 건축하신다고 예언하셨다. 그 예언대로 1975년에 학개서로 승리의 제단을 세우셨다.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70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16~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구원에는 먼저 죽었던 영혼이 중생을 받는 영혼의 구원이 있다. 이 역사가 오순절 다락방에서부터 전 세계로 전파 될 때에 성령 받은 사도들은 순교자로 나서게 되었다. 이렇게 이미 영혼 구원을 얻은 교회에 종말에는 두 번째로 육체의 구원을 주시는데, 아담의 선악과 먹은 원죄로 인해 죽게 된 것은 영과 육이기 때문에 살려야 할 대상도 영과 육 전체라는 것이다. 죄 값의 결과는 영의 사망뿐 아니라 육의 사망까지인데, 예수님께서 영혼만 구원하신다면 완전한 구세주가 아니다. 따라서 완전하신 예수님은 때를 따라 역사하시되 1차로는 영혼 구원, 2차로는 영·육 구원을 이루시어(계시록 6:2) 영과 육이 아울러 안식을 누리는 천년 안식세계를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구약의 택민은 영혼 구원이 뭔지도 몰랐다. 오직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는 그들의 성경을 보는 유아기적 시각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혼 구원의 속죄양으로 오셨듯이, 종말에도 다시 오실 재림 주는 영혼 구원밖에 모르는 은혜 교회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서운 심판주로 오시되 종말의 법인 예언의 법을 일점 가감없이 순종하여 새긴 자들에게는 육의 사망까지 멸해주시어 당신 형상을 닮은 144,000을 일으킴으로 새 시대의 왕권을 이루겠다는 것이니, 이러한 종말론의 정확한 진리는 사도 사명을 통하여서가 아니라 ‘보아너게’(우뢰의 아들; 마가복음 3:17) 곧 사도 요한의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는 선지자의 계통으로 역사하시겠다는 것이다. 즉 종말에 되 어질 일은 사도의 사명을 가진 은혜 시대 교역자로서는 깨달을 수 없고 깨달아서도 안 되는 것이 법이다.


계시록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셨고, 계시록 22:6~7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하셨으니, 이 말씀대로 종말의 역사는 선지자에게 전하신 복음대로 이루시되 원수의 손에 쓰러지며 죄 사함의 구원을 외쳤던 사도들의 영의 하나님이라 명칭하지 않으시고 오직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라 하셨으니, 먼저는 이 시대가 흑암의 시대라는 것을 알고, 이 시대에 세운 하나님의 선지자가 누구인지 분별하여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이 이 시대의 지혜일 것이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의 뜻을 순종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사야 51: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따라서 재림 때 이루어질 역사는 죄 값으로 썩어질 육체를, 예언의 양식으로 개조하여 썩지 않을 변화체로 만들어 주시는 큰 구원의 역사임을 믿자! 이것이 가능한 것은 예수님이 보좌에 가셔서 하나님 오른손으로부터 심판할 예언서를 받아 이 땅에 주시며 이 책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 새길 것을 다 새겨서 이 땅의 죄과를 하루에 제하여 버리는 역사(스가랴 3:9)를 행하되 해 돋는 편 동방 9·24 제단을 통해 행하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의 기독교가 육체구원을 말하면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이단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묻겠다! 육체의 죽음이 하나님의 창조 원리인가? 육체가 골골거리다가 쇠약과 질병으로 썩어지는 것이 진리란 말인가? 결코 진리가 아니다! 성경은 영혼의 죽음과 더불어 육체의 죽음도 분명히 죄 값의 결과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라는 구절을 오해하여 육체 죽음을 정당화하는데, 이는 무지이다. '사람에게 정했다'라는 것은 그렇게 정하기 이전에는 그 법이 효력을 발생치 못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 번 죽는 것’을 언제 정하셨는가? 바로 창세기 3:19절에서 정하셨다.


창세기 3:14~19절까지는 죄로 인한 벌책! 즉 고통과 사망의 선포이다. 이 선포 안에 육체의 죽음이 들어 있음을 깨달으라! 사망은 죄 값이지 결코 선하신 창조 원리가 아니다. 모든 선지가 받아 성경에 기록한 죄와 사망을 영원히 멸하리라는 주님의 언약을 인간의 머리로 제한하지 말라!(스가랴 3:9, 이사야 24:, 25:6~8). 그러니 이 모든 말씀을 본문 그대로 외치는 한국의 사명은 종말의 예루살렘 사명이라는 것이다.


이사야 41: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같게 하매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 구약을 통해 종말관을 보여주셨는데, 대제국 바벨론을 들어 쓰시고 기한이 차 꺾어버리실 때에 동방 고레스를 들어 역사하셨듯이, 세계 이스라엘을 황충 떼의 환난으로부터 육체까지 구원하는 역사는 동방 한국(고레스 사명)에서부터 예언서로 하신다는 것이 곧 동방역사이다(이사야 45:1~5, 계시록 7:2~).


5. 하나님이 뒤에서 호위하심:11~12


『 11 너희는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켤케 할지어다 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 』


종말에 쑥물을 먹이는 바벨 교회로부터 어서 나오라는 교훈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영혼의 정결함을 얻었으나 그것으로 예수님의 사명이 끝난 것이 아니니(승천 후 피로 사신 책을 또 주셨기에), 미혹해 보는 종말의 시대에 이 미혹을 이길 수 있는 무기인 모든 율법서와 예언서대로 다시 예언하여 행하므로 인격적인 정결함을 받는다. 그러니 이 예언대로 이루어질 때에는 성경을 혼선시키는 W.C.C. 단체로부터 나와서 혼잡을 물리치는 스룹바벨 진리단체가 되어야 한다.


6. 종들을 지극히 존귀케 하심:13~15


『 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14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15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


구약의 선지자, 예수님, 사도들, 모든 종들이 이 땅에서 무시를 당했다. 말세 종들도 이 악한 세대에 이 말씀을 다시 예언할 때 똑같이 무시를 당할 것이나 하나님 예언대로 지극히 존귀하게 되어 영화롭게 된다는 것이다. 정녕 그러하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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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1106a_예레미야42

 

[주일 오전 설교] 예레미야 42장 :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 2016/11/06 Lord's day(Sunday) Morning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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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성경 : 예레미야 42장

제목 :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


1. 요하난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함 : 1~6


『 1 이에 모든 군대의 장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아와 2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소서 당신이 목도하시거니와 우리는 많은 중에서 조금만 남았사오니 3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


바벨론 포로이송이 있은 후 남은 백성이 요하난의 지도를 따라 애굽으로 피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된 동기는 41:16~18절에 나타나 있다. 지금 이들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자기들이 앞으로 어떻게 행해야 할지에 관한 하나님의 합당한 계시를 얻어달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별해야 할 것은 이들이 가진 행위의 이중성이다.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요망하는 행위 자체로는 아직 무엇이 잘못됐는가를 분간해내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저들의 이면을 파헤쳐 보자. 그들은 기도를 부탁하면서도 이미 유다 땅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결정을 그 마음 속에 내려둔 상태였다. 이는 원죄에 물든 인간의 간사함을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이스마엘이 그다랴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도망간 사건이 결국 바벨론 왕의 노를 격동케 할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41:18). 시온산(예루살렘)에 남아 있으면 또 다시 북방 군대의 칼을 맞을 것이니 강대하여 전쟁위협을 당할 일이 없는 애굽 땅으로 피신하면 편안히 살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굳혀 놓은 상태에서 최후수단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려 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궁지에 몰릴 수록 하나님만 앙망해야 하는데, 요하난은 잠시 생사화복(生死禍福)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예레미야애가 3:38)을 망각하고 멸망의 길 '애굽행'을 택했던 것이다.


다시 예언한다! 지금도 교회지도자들이 전쟁의 공포로 인해 평화공존 거짓정책에 미혹을 받아 협상의 쑥물을 먹고 있다. 구약의 요하난의 실수가 오늘날 거대하게 세계적으로, 교회적으로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선지자들을 통해 종말에 관하여 빠짐없이 예언하셨다(이사야 34:16). 그러므로 사명자가 자세히 읽고 깨달아 증거를 마치면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계시록 11:1~12).


"우리는 많은 자 중에서 조금만 남았사오니" 다른 곳으로 피난함으로써 소수의 백성이나마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는 의도가 담긴 말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졌다. 자기들의 소욕대로 하기를 굳게 정해 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척 하는 것은 시작부터가 모순된 것이요 가증한 것이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여호와는 예레미야와 직통하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왜 "우리 하나님"이라는 말을 못했던가? 그것은, 그들도 여호와가 특별히 대선지자 예레미야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과 또한 당신의 계시를 예레미야에게 진실히 보이시는 줄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두려워함 없이 자기들의 소욕을 뒤로 감추고 예레미야를 이용하며 하나님을 속이려 했던 것이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북방군대가 와서 유대인들을 많이 잡아갔으니만큼 이미 그들은 예레미야를 권위있는 선지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벌써 다른 데로 향해 있는 속마음을 감추고 마치 어떤 응답에라도 순종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양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욕심에 눈이 가리워지면 이런 행위를 하면서도 자기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마귀에게 속고 있는 자들은 모두가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법이다.


예레미야의 권위는 하나님 편에 굳게 서서 일하는 데로부터 온다. 강한 민족주의와 바벨론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탈 그 때 북방이 들어와도 (도망하지 않고) 항복하면 산다고 외친 것을 보면 그가 아부나 타협을 거부하고 인본주의도 배격하며 오직 여호와의 뜻만을 전하는 진실한 참 종이란 것을 알수 있다.


『 4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고하리라 』


예레미야는 자신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는 백성들의 청을 허락했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너희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과 그들 사이가 계약적인 관계임을 밝혀주는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 하고서는 살 수가 없고,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서만 보호와 축복이 있을 것을 암시(暗示)한 것이다.


『 5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는 우리 중에 진실 무망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


그때에 백성들은 이 구절들에 있는 말씀대로 순종을 약속하되 속과는 달리 너무도 지나친 확고한 말로써 장담했던 것이다.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죄인된 자기들의 무능(無能)을 인정치 않는 과분한 장담이다.


"여호와는 우리 중에 진실 무망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자기들의 실행력과 여호와 하나님의 진실성을 대등(對等)시키는 말로서 상대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과 진실함을 과신하며 뱉은 말이다.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께 자신의 증인이 되라고 할 수 있는가? 죄인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명목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이는 오직 여호와뿐이시다(창세기 22:16. 민수기 14:21~. 신명기 32:40~. 이사야 45:23, 49:18. 예레미야 22:5, 24~. 에그겔 5:11~, 14:16~. 스바냐 2:9. 요한복음 8:14). 언제 넘어질 지 모르는 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교만'일 뿐이다. 우리도 혹 이런 맹세를 할까 조심하여야 한다.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역시 너무 지나친 확언이며 감언이설이었다. 이는 스스로가 자신을 속이는 행동으로서, 자신들은 이 말대로 행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말이 마귀가 주는 거짓말임은 얼마 안 가서 금방 드러나고 만다.


위의 3가지 언사는 외식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즐겨쓰는 방식의 어투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수제자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외식자가 아닌, 죄인 된 자로서의 마땅한 태도가 요한복음 21:15~17절에 잘 나타나 있다. 갈라디아서 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우리는 혹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을지라도 "무익한 종이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함이 옳다. 본 장을 통하여 교만이 무엇이며 겸손이 무엇인 것을 확실히 배우도록 하자.


2.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응답받음 : 7~12


『 7 십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 』


"10일" 후에야 응답이 왔다. 하나님의 역사로서는 금방이라도 응답하실 수 있는 문제인데 왜 10일나 끄셨을까? 10일에는 큰 뜻이 있음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다니엘 1: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10일은 시험기간임을 알 수 있다.


계시록 2:8~10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서머나 교회에게도 예언하시기를 앞으로 10일간 환난의 시험이 있다고 하셨다. 앞으로 북방환난이 일어나면 유다 땅에 10일 동안 환난이 있다는 것이다. 초막절의 역사는 환난이 들어온 후 10일 만에 나타난다는 뜻이다(요엘 2:1~32).


사도행전 2:1~ 오순절 역사에서도 10일 만에 성령강림이 있었다 (요엘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고로 10일이란 기간은 기도하는 기간이요 환란의 기간이요 시험의 기간임을 알 수 있다.


『 8 그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대장관과 백성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부르고 9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보내어 너희의 간구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가라사대 10 너희가 이 땅에 여전히 거하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니라 』


예레미야는 그의 받은 바 계시를 민중에게 발표하기 위하여 그들을 빠짐없이 다 모이도록 했다. 이유인즉 이 중대한 일에 있어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가 순종하여야 되겠기 때문이다. 계시받은 바에 의하면 순종하면 살고 순종치 않으면 죽을 것이 확실하므로 다 모여 들으라 한 것이다.


10절의 계시는 애굽으로 가려던 남은 백성이 그곳으로 갈 생각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에 머물러야만 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요하난 단체)은 떠나야 산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더러 머물러야 산다고 하신다. 두 마음을 품었었더라도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그들이 머물기만 하면 그들을 보호해주시겠다는 의미에서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리라"는 약속까지 하셨다. 감사요 은혜가 아닌가?


이사야 43: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하셨고 본절 하반절에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릴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니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긍휼 자비는 한이 없기만 하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변치 않으시니 70년만 되면 귀국이 있다는 것이다(예레미야 25:11~12, 29:10. 다니엘 9:2).


『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 12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여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 보내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


하나님은 그들에게 바벨론 왕에 대하여는 "두려워 말라"고 안위하신다. 두 번씩이나 말씀하신 것은 이스마엘 사건 때문에 겁내고 있는 그들로부터 공포심을 제해 주시기 위함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그의 손에서 건지리라" 하셨고 또한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겠다"고 하신 말씀이 진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3. 애굽으로 가면 재앙과 화가 있을 것을 예언함 : 13~18


『 13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복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거하지 아니하리라 하며 14 또 말하기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식물의 핍절도 당치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결단코 들어가 거하리라 하면 잘못 되리라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인도에 순종하는 경우에 구원이 있으리라는 약속과 동시에 애굽으로 가려는 당신의 백성을 만류시켜 가나안 땅에 머물도록 재차 권고하셨다. 이는 순종하는 경우에는 구원이 있으리라는 원칙을 보여주면서도, 만일 참 선지자의 말을 듣고도 불순종하면 재앙이 있을 것을 시사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 때 남은 백성들은 "오직 살 길은 애굽으로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사야 선지도 "애굽은 신이 아니요 사람이니 그곳에 들어가면 저주뿐이라"고 이사야 31:1~3절에 예언한 바 있으나 선민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강대국을 의지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런 자에게는 재앙밖에는 달리 준비된 것이 없다.


문제는 오늘날의 기독교 안에서 위와 같은 일을 너무도 정확하게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적으로 볼 때 평화공존은 영적 애굽으로 치우치는 길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 15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 거하기로 고집하면 16 너희의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의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을 것이라 』


"유다의 남은 자여" 백성에게 행해지는 마지막 예언을 잘 듣고 재앙을 피하라는 뜻이 담긴 간곡한 어투이다.

"고집하면" 말씀을 이탈하여 자기 고집 중에 따먹은 선악과의 뿌리가 아담 후손들에게 유전되므로 우리는 패역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분명한 죽음의 길이 생명의 길로 보이는 것은 영적으로 소경, 귀머거리가 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선악과의 질을 붙들고 역사하는 흑암이 오면 생명의 길은 보이지 않고 어두움의 길이 살 길로 착각되기만 하는 법이다(이사야 5:20, 42:19~).


『 17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앙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1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와 분을 예루살렘 거민에게 부은 것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른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 』


부탁한 기도의 응답이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겠다 장담하던 그들이(42:6) 만일 10일간 기도하고 받은 이 진실된 응답을 무시하고 애굽으로 내려간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저버리며 크신 사랑을 배척하는 악독한 불신앙이 되고 말 상황이다. 고집하는 자는 이미 기록한 바 "악한 무화과"라 하셨다(24장). 살려주려 해도 받지 않겠다는 자들에게는 "노와 분을 부으리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살려고 간 그곳에서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선민인 백성은 하나님이 직접 택한 백성이요, 누구보다도 축복을 많이 부어준 백성이니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할 때엔 부어 줄 재앙도 크다는 것이다.


4. 하나님 말씀 불순종 : 19~22


『 19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 일로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날 너희에게 경계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 20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고하라 우리가 이를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21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고하였어도 너희가 그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치 아니하였은즉 22 너희가 가서 우거하려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 』


"유다의 남은 자들아" 남은 자들이 애굽으로 가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임을 지적해 주고 있다(20절). 자기들의 입으로 어떠한 말씀이든 지키겠다고 장담하였고(6절), 하나님께서도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명백히 경고하신 상황이기 때문이다(19절). 그러나 그들은 행위에서는 이미 불순종의 의지가 농후하게 배어나오므로(21절) 그들이 처음에 예레미야에게 와서 진실된 모양으로 기도부탁을 했던 때와는 완전한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43장에 가면 그들은 결국 불순종의 의지를 행실로 옮기게 된다. 사단의 조종대로 행하고 마는 것이다. 이제 사단에게 점령된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들어보아 마지막 때 다시 한 번 있을 이 일을 간접 체험토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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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새벽 설교] 이사야 51장 :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 2016/11/06 Lord's day(Sunday)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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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성경:이사야 51:1~23

제목:하나님의 위로와 구원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에게 구속 역사를 하시되 본문에 예언하신 대로 하시게 된다. 성경은 영혼과 육체에 관한 완전한 구원을 목적으로 기록하신 하나님의 계약서이다. 성도에게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해도 본문의 예언대로 순종치 않는다면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된다.


로마서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1. 시련 끝에 위로를 주심:1~3


『 1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3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


● 1절:“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으라” -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들어야 한다. 아브라함같이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새 땅의 축복을 받게 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어떻게 이루실 것을 구약 때 다 보여주신 것이 육적 이스라엘 역사서이다. 또 율법과 선지서에서 미리 예언하셨고 또 예언대로 이루어 보여주셨다(이사야 46:10).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명령하셨다. 목적은 새 시대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창세기 12:1~4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창세기 13:14~17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 주시되 창세기 15:13~16절같이 이방 애굽에서 400년간의 노예생활을 하고, 40년간의 광야 시련을 거쳐 주시겠다고 작정하셨다.


이제 종말에 말세 종들에게 너희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보라고 하셨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갔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다. 시련이 곧 축복이다.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생활


창세기 12:1~4절을 보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용기 있게 순종의 걸음을 걸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교훈의 생활이요 본보기이다. 아브라함에게 세운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그 자손들에게 모든 선지자에게 예언한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라 명하셨다. 종말에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약속된 축복을 받으려면 촛대 교회를 건축하라는 것이 학개, 스가랴서의 말씀이다.


스가랴 8: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 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하셨다. 학개서 2:10~23절까지의 예언은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 성전 건축을 시작하면 세상을 뒤집어엎을 때에 남은 자가 된다고 하셨다. 여기서 다리오 정치는 동방역사의 유신 정치이다. 동방의 대표 종(이뢰자 목사님)이 1972년 8월 7일에 별세하니, 10월 17일 유신 헌법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1972년 12월 27일 유신 대통령이 취임하니 73년은 유신 1년이요, 74년은 유신 2년이 된다. 곧 1974년, 즉 유신(다리오) 2년에 학개서를 깨닫게 하시어 9월 24일에 역사적인 순의 제단 지대를 놓으니 사람의 머리로 되는 것이 아니고 때가 차매 말씀이 이루어지는 강권적인 역사인 것이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이 때부터 모든 예언서가 밝아졌다.


이사야 19:18~ 다섯 성읍 때 애굽 땅 중앙제단이 세워진다고 예언하셨는데, 대표 종이 세웠던 1964년 9·24 성전은 4대 성읍(미·영·불·소) 때였으니 예표의 제단이다(스가랴 3:8). 예표 시대란 순을 내기 위해 보여주고 가르칠 때인 것이다. 오직 말씀대로 다리오 왕 2년이 될 때 순의 제단을 강권으로 세워주셨으니 남은 말씀도 강권으로 이루실 줄 믿고 나가는 바이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은혜 시대에 관한 예언을 모두 이루셨는데, 그 이루신 말씀이 몸에 들어오면 중생을 받게 되었고(영혼 구원), 재림 때는 이 후에 마땅히 될 일 곧 예수님의 피로 산 모든 예언서가 몸에 들어와야 변화체가 된다는 것이다(계시록 4:1, 10:7).


스가랴 3:9~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하셨으니 누구든지 예언서를 가감하면 재앙이요 멸망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말씀을 다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성경대로 오셔서(유월절양) 순종하심으로 전 세계로 구원을 받게 하셨으니, 그 가지인 우리도 스룹바벨 성전 건축에 절대 순종할 때에 철장권세를 받아 전 세계 민족을 환란에서 살려주게 된다.


계시록 14:4~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시온산에 서서 주와 같이 왕권을 누리게 된다. 만일 아브라함이 불순종했다면 믿음의 조상이란 큰 축복을 받을 수가 없고 또한 하나님의 큰 구원이 성취될 수 없다. 오직 아브라함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하나님은 이를 의롭게 여기시고 새 시대를 이루는 구속의 역사를 개척하셨다. 하나님은 말씀을 순종할 때 언약대로 실천해 주셨다(그러므로 말씀을 버리면 언약과도 무관해진다).


순종의 제사를 드림


창세기 22:9~12절에 하나님은 제물을 원하지 않고 순종을 원하셨다. 사무엘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邪術)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邪神)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 사울 왕이 버림받은 이유는 불순종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절대적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그래서 본문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2절).


순종으로 만민이 복을 받음


창세기 22:18~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귀한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아낌없이 번제로 드릴 때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상징적인 그림자 사건으로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모리아산에서 화목 제물이 되시므로 천하 만국의 택한 자들이 영혼의 구원을 받게 될 것을 보여준 것이다.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마귀의 일을 멸하고(요한1서 3:8) 세계를 통일하실 말씀이다.


2. 심판을 내리면서 구원하심:4~8


『 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


하나님의 공의는 곧 말씀인데 불순종하는 자는 새 시대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 공의이다. 민수기 14: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인간 종말에서도 구약같이 1974년 9월 24일에 세워진 촛대 교회에서 밝혀준 말씀을 거역·반대하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이요 빛이시니 순종하지 않는 자는 공의의 심판을 받아 아담같이 된다.


창세기 1장의 창조의 빛은 생명과 약동의 빛이다. 이 빛의 세계(에덴)에서 살다가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타락한 인간에게, 다시 갈릴리로부터 큰 빛을 주시니 곧 죽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빛이었다(이사야 9:1~3). 이 날까지는 갈릴리 빛을 받아 영혼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심령천국을 누렸으나, 종말이 되어 계시록의 예언(나팔)대로 미혹해 보는 흑암(계시록 9장)이 온 세계 교회를 덮은 이 때는 종말의 큰 빛, 곧 동방 예언의 말씀(등불)을 높이 들어야만 허락받고 나온 흑암을 뚫고 새 시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 만대 축복이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거대한 역사의 여정인데, 들어보지도 않고 이단시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종말관의 예언이 아니면 육체 구원을 받을 길이 없다. 영이 뭔지도 모르는 북방 무신론 정권이 칼을 들고 나와 교회를 대적할 때 하나님이 무엇을 보호하시랴! 당연히 육체다. 육이 살아야 영과 육이 아울러 새 시대를 본다. 우리의 목적은 새 시대이지 죽어 천당이 아니다. 하나님은 종말의 예언을 중생 못 받은 이방인에게 전하신 것이 아니다. 이미 영혼의 구원을 얻어 크게 성장한 종들(종말의 교회)에게 이 말씀을 들으라 하셨다(계시록 1:1, 4장, 20장, 22:6). 마태복음 24:22절에서도 창세 이래로 없던 대환란이 올 때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말씀하셨다. ‘북방환란’은 불순종하는 자의 육체를 이 땅에서 끊어버려 성결한 새 시대를 앞두고 쭉정이(인간 쓰레기=불법자)들을 쓸어내는 대청소 작업이다.


중생을 받았어도 예언의 법을 무시할 때 육체는 북방 칼에 죽고 그 영까지 1,000년간 옥에 간다는 것이 종말의 심판의 법이니, 인자가 다시 올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이 임하리라(마태복음 24:45)는 것은 종말의 타락과 더불어 심판 방법이 노아의 때와 같다는 것이다(베드로전서 3:19~20). 그러니 종말은 영혼 구원을 얻어 주님의 은사를 자랑하던 자들이라도 이 예언의 법을 모른다면 크게 후회하는 날이니 불법자의 애통할 날이다(마태복음 7:21~27). 그러니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때를 따라 나눠주는 양식을 꿀같이 받아먹고 순종하는 자가 되자!(마태복음 24:45).


창조의 빛에서 타락한 가인은 흑암의 아들이 되어 심판을 받았고, 은혜의 갈릴리 빛을 반대하던 유대교 교인들도 영적 흑암에 빠져 독사의 자식이 되었으니, 이제 또한 종말에 예언의 빛이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순종치 않는 자는 영과 육이 아울러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죄를 범했다 하여 심판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죄를 사해 주시려고 교훈을 주셨는데도 그 교훈에 불순종할 때에 용서 없는 심판이 내린다는 것이다. 노아 때에 방주를 주셨는데도 불신하여 타지 않은 자는 물 속에 장사 지낸 바 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심판을 작정하시고 행하신 일이나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는 교훈이 된다(로마서 15:4, 고린도전서 10:11, 베드로전서 3:20).


주께서 율법과 선지서를 이루시려고 유월절 양으로 오셨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주셨으며, 종말에 개국 이래로 없던 큰 환란이 올 때 초막절기로 육체까지 보호하시려고 9·24 제단을 주셨으니 눈이 있다면 때를 알아야 하겠고 때를 알았다면 법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자기의 의를 세워보려고 촛대교회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5개월 환란에서 절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 노아 때 불순종자들에게는 방주 문이 닫힌 것처럼, 종말에도 첫째 화와 동시에 육체구원의 문을 닫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3. 능력을 베풀면서 위로하심:9~11


『 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救贖)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


인도자 모세의 손에 능력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으니,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위로의 역사였다. 압제자 애굽을 굴복시킴같이, 강대국 앗수르! 화려한 바벨론과 페르시아 대제국! 놋쇠 같은 헬라! 철 같은 로마가 모세의 뒤를 이은 권세의 종들과 예수님, 사도, 성령의 권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망하게 되었다. ☞ (일곱 머리 짐승 국가)


이제 종말에 소련을 굴복시킬 말씀이 스룹바벨 제단에 머릿돌 말씀, 철장권세로 준비되어 있다(스가랴 4:7).


아멘!


4. 대적을 들어 쓰면서 구원하심:12~16


『 12 가라사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 13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4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 양식이 핍절하지도 아니하리라 1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로 흉용케 하는 자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려 하였음이니라 』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안식을 이루시기 위해서 마귀를 창조하셨고, 또 사단의 이용물인 강대국가를 시대마다 일곱 머리 짐승으로 들어 쓰신 후 꺾어 버리셨다. 언제나 시온은 오직 위대하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용기 있게 나가야 승리한다.


애굽에서 나올 때도 하나님께서는 종 모세만 바라보고 끝까지 따라온 여호수아, 갈렙 두 사람에게만 가나안 복지 밟는 것을 허락하셨으니 종말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강대국의 대적을 보고 겁내며 두려워하던 자들은 굳세지 못하니, 곧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고로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 우리의 거울이다. 바벨론 대적이 유다를 괴롭힐 때도 다니엘과 세 친구는 신앙의 절개를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아 풀무불과 사자굴로부터 살아나왔으니(다니엘 3장, 6장) 이를 본 열왕은 무릎을 꿇고 절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었다. 이것도 우리의 거울이다(히브리서 10:1, 로마서 15:4).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우리의 대적이 아무리 태산 같을지라도 조금도 겁내지 말고 말씀만 의지하여 싸우자. 그리하면 승리는 위에서 주실 것이다. 대적을 보고 두려워하는 왕이나 정치인, 종교인들은 모두 원수의 밥이 된다. 우리는 다윗같이 믿고 달려나가 돌(머릿돌)을 던지면 역사는 위에서 하신다. 위에서 오는 역사는 신의 역사이니, 강한 원수가 일격에 거꾸러진다.


5. 절망 중에 건져 주심:17~23


『 17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너의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19 이 두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도다 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22 네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23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찌기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의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같게, 거리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 여호와께서는 어떤 자에게 분노의 잔을 주시는가?


이사야 66:1~6절에 말씀에 떨지 않는 자에게 유혹의 영을 부어 주신다고 하셨다. 종말은 계시록 9장같이 미혹해 보는 흑암의 때인데, 말씀에 떠는 자는 예언서를 꿀같이 먹어 하나님의 인(印) 침을 받게 되고, 말씀에 떨지 않는 자는 유혹의 영을 받으므로 새 시대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아담이 시험 받은 것처럼 종말에도 은혜 받은 교회에 오메가의 시험(다섯째 나팔)이 온다. 학교에서도 예습·복습을 철저히 한 학생만이 총명하고 담대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모든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구약을 잘 복습하고 모든 예언서를 철저히 무장하는 완전한 예습이 있어야만 오메가의 시험(미혹) 앞에서 담대하고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다. 1958년 3월부터 소련 수상 후르시초프의 거짓된 평화공존(계시록 9장)이 세계를 덮게 되니 햇빛 같던 교회가 어두움에 잠겼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어두움의 단체이다. 성경을 손에 들고도 예언서를 몰라 흑암에 떨어진 자들이다. 하나님 편에서는 강한 이방 공산당을 심판하고 새 시대를 이루실 것이 목적인데(이사야 2:4, 미가서 4:2), 하나님 뜻도 모르고 멸망당할 대적(공산당)과 협상하는 교회는 음녀 교회이다(계시록 17장). 누구든지 이 분노의 잔에서 빠져 나와야 환란에서 보호받는 초막절기를 지킬 수 있다.


● 그러므로 21절:너 포도주가 니아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하심은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아버지 오른손으로부터 받은 안팎으로 기록된 심판의 구약 책을 말씀하심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기록된 책대로 행하시는 역사이다.


지금 이 때는 이사야 5:20절 같이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을 쓴 것으로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하고 외칠 때이니 지혜 있는 다섯 처녀는 기름을 예비하여 등불을 든다고 했다(마태복음 25장). 처녀는 교회요 등은 예언의 등불을 말한다(예수님의 확실한 증인 베드로도 성령을 충만 히 받고 편지하기를 베드로후서 1: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치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하였다). 즉 이사야나 베드로나 종말에는 예언의 등불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강한 흑암이 올 것을 내다보았다. 이 사악한 흑암은 예루살렘, 즉 교회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9:14~15 “그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열국 중에 그들을 헤치고 진멸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니라”


예레미야 23: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들에게 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邪惡)이 예루살렘 선지자에게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예레미애 25: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잔을 받아 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치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칼을 보냄을 인함이라”



은혜 받은 교회가 말씀은 따라가지 않고 세상 길로만 치우치니,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은 봉한 책이 되고 말았다. 강단에서는 예언을 못 밝히고 세상 이야기만 해대니 성도들의 심령은 메마르고 컬컬하게 시들어 간다.


● 22절:“보라 내가...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 그러나 이러한 흑암의 때에, 이 민족과 이 시대의 양 떼를 살리시려고 동방 한국에 예언서를 밝혀 주셨다. 오직 믿는 자가 살 길은 심판할 예언서를 듣고 따라가는 이 한 길뿐이다. 예언서의 내용은 연대와 날짜까지니 가감 없이 지켜야 한다(신명기 32:7, 사도행전 1:6~8, 17:26~). 취하여 잠든 자들을 깨워서 빛으로 인도하는 역사! 이것이 바로 새 일의 역사이다. 예레미야 31: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스가랴 4:7~ 머릿돌·다림줄은 스룹바벨의 손에 있으니 1974년 지대 놓은 9·24 제단, 스룹바벨 중앙교회에 약속하신 대로 모든 말씀을 밝혀 주셨다. 이 제단은 이사야 19:18~19절같이 5대 성읍(5대 강국) 때 세워진 애굽 땅 중앙제단으로 진리로 인해 압박 받는 제단이다. 4대 강국 때 세워진 대표 종의 9·24 제단(1964. 9. 24)은 예표의 제단이다(스가랴 3:8). 예표 종은 사단과 싸워 승리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하셨으며, “내가 네 죄과(罪過)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며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셨다(스가랴 3:1~5). 즉 예표 종(이뢰자)은 자기의 사명을 마친 것이다.


부분적인 역사, 혼선된 예언을 들으면 분노의 잔을 벗어날 수 없다. 성경대로 허락받고 나와 득세하는 마귀의 때인 이 때, 기독교가 무엇으로 마귀를 이긴단 말인가? 사랑으로? 타협으로? 은사 역사로? 이적 기사로? 결코 아니 될 말이다. 마귀(흑암)는 무찌르는 무기가 따로 있다. 바로 머릿돌, 다림줄의 진리인 철장권세 말씀이다.


● 23절:“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 이미 21절에 이르시기를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하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고린도전서 4:6). 이 말씀을 듣고 끝까지 진실할 때(계시록 17:14) 우리 등을 땅바닥 밟듯하며 우리 허리를 길바닥 디디듯 하여 우리를 곤고케 하던 자들에게 재앙의 잔을 돌리시므로 우리는 허리를 펴고 원수를 이기는 승리를 맛보게 해주신다는 진실한 약속이시다.


승리는 순종자의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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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61105_D_이사야50

 

[토 새벽 설교] 이사야 50장 : 택한 종의 담력 2016/11/05 Saturday Dawn


2015년 12월 31일 예배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מַהֵר שָׁלָל חָשׁ בַּז‎ (ישעיהו 08:01 )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זרובבל משימ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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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323-4 5F Sangdo 3-dong)5F 18, Guksabong 1-gil, Dongjak-gu, Seoul, Korea






성경:이사야 50:1~11

제목:택한 종의 담력


하나님께서 택한 종들에게 축복을 주시겠다고 49장에서 예언하시고 다시 본 장(章)에서는 완전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담력을 주시겠다고 예언하셨다. 구약 때에도 종에게 담력을 주셔서 원수를 이기고 민족을 구원시켰다. 택한 종은 시대마다 역사를 하는데, 곧 하나님의 대행자이다.

율법 시대는 모세와 선지자를 들어서 성경을 기록하셨고,

은혜 시대는 예수님과 사도를 들어서 성경을 성취하셨다.

환란 시대는 모태로부터 택한 종들 중에서, 또 다시 고난의 풀무에 단련시킨 말세 종을 택하여 모든 예언서로 완전히 무장시켜 대적을 물리칠 권세를 주시니 이로써 새 시대를 이루신다(계시록 17:14).


1. 하나님의 구속의 능력을 믿을 것:1~3


『 1 나 여호와가 이 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보냄을 입었느니라 2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찜이뇨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은즉 바다가 마르며 하수가 광야가 될 것이며 거기 물이 없어졌으므로 어족이 갈하여 죽어 악취를 발하게 되느니라 3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


기독교 종말에는 이 예언대로 하나님의 구속의 능력을 믿지 않는 자는 3절로 떨어져 흑암과 굵은 베로 덮는 슬픔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종말의 구원은 영·육 간의 가족적, 단체적 구원이다. 하나님의 구속에 대하여 바로 가르치는 장소가 애굽 땅 중앙제단(사 19:19)이요, 순금등대 촛대 교회이다(스가랴 4:1~10). 가족구원


① 은혜를 베푸시려고 독생자의 피로 교회를 세우시어(행 20:28) 세계적으로 택한 백성의 영혼을 구속해 주셨다. 대표 종은 베드로 바울이다.

② 환란 시대에는 택한 야곱들의 영·육을 완전하게 구속하시려고 스룹바벨 9·24 성전을 세워 주셨다. 대표 종의 말을 들으라고 :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라고 말씀하셨다.


● 2절:“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찜이뇨 하심은 종을 보냈으나 듣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사 59:15~16절에서도 쓸 사람이 없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21:33~ 이하에 포도원 농부들이 주인의 종을 죽이고 아들(예수)까지 죽였으니 악한 세상이로다. 말세 종들이 하나님의 구속의 능력을 어떻게 믿어야 할 것인가를 구약에서 보여주셨으니 그대로 믿으면 승리한다. 여호수아 1장, 3장같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면 된다. 여호수아는 순의 종의 그림자이다. 여호수아는 언약궤를 믿고 그 궤를 존중히 모셨다. 이 언약궤는 예수님의 모형이었다. 법궤만 의지하여 나아갈 때 요단강이 갈라지고 죄악의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 그러나 불순종자는 죽었다. 종말에 될 일을 슥 3장에 보여주셨는데, '여호수아(대제사장)'는 예표요, ‘순’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다는 예언대로 학개 2:10~23절같이 다리오 왕(유신) 2년 9월 24일에 성전 지대 놓은 제단이 나왔는데, 이 제단을 존귀하게 여긴다면 북방을 이기고 새 시대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종말의 구속 방법은 오직 이 한 길뿐이다. 스가랴 4:7~ 머릿돌을 내놓으면 태산(북방)이 평지가 된다 하셨고, 지대를 놓은 자가 또한 마치리라 하셨다.


이 큰 구속 역사에서 떨어질 자에 대하여 스가랴 5장에 예언하셨다. 스가랴 5장은 『종말의 재앙』인데, 저주가 어떤 자의 집에 들어가는가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저주의 대상은 도적의 집이라 하셨다. 그렇다면 교회는 도적의 집이 되지 않기 위해서 다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① 예수님의 양 떼를 도적질하는 종들이 저주를 받고(요한복음 10:),

② 예수님의 피로 산 예언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종이 저주받을 것이요(예레미야 23:30),

③ 성도들 중에는 십일조를 도적질 하는 자가 저주받는다(말라기 3:7~12).


양 떼도, 말씀도, 십일조도 다 주의 것이다.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는가! 착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십일조는 은혜 시대에 있어 천국 가는 법은 아니다. 십자가 우편 강도는 십일조 안 냈어도 낙원에 갔다. 레위기 27:30~ 십일조는 하나님 것이다. 고로 사람이 손댈 수 없다. 민수기 18:21~을 보니 십일조는 제사장의 기업이라 못을 박으셨다.


십일조를 드리는 방법은 히브리서 7: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일조를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 구약 때에는 제단이 하나였으나, 은혜 때에는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으니 자기가 소속된 교회에서 아브라함과 같은 마음으로 정성껏 드려야 한다. 이유는 하나님이 정하신 제사장(교역자)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하신 십일조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여 제멋대로 드린다면 그 사람은 도적이다. 십일조에 혼선이 왔다면 그 개인, 그 단체는 바벨의 영에 잡혀 있다.


스가랴 5장 본문은 말씀 바벨이나 십일조 바벨이나 똑같은 도적이므로 다 저주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어떤 집에서 소에게 일을 시키고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면 죄이다. 그러한데 제사장 직분이랴! 디모데전서 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 율법으로 규정하신 하나님의 법이 성령의 역사로써 성취가 된다. 성경은 진리니 성경대로 따를 때 축복받게 하신다. 이사야 66:1~4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말씀에 떠는 자에게는 권고하지만 자기 길을 택한 자에게는 유혹의 영을 부어 주신다”고 했으니 하나님의 법대로 행하면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으나 인간의 생각대로 행하면 “저주의 두루마리”가 들어간다.


제사나 십일조나 제 생각대로 드린다면 드리고도 저주다. 대표적인 예로 사울 왕이 있다. 사울 왕이 아말렉을 쳤을 때, 그 나라 왕을 불쌍히 여겨 살려주었고, 좋은 짐승은 탐이 나 살려서 가져왔다. 이 행위 때문에 그는 망하게 되었다(하나님 법은 “전멸하라”였다-사무엘상 15:3, 18. 28:18).우리도 법대로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효이다. 은혜 때에는 천국열쇠 가진 은혜 교회에, 환란 때는 다림줄의 진리를 가르치는 촛대 교회에 와서 순종해야 한다. 만일 어떤 자가 불쌍한 종이 있다 하여 십일조를 가지고 그를 도와준다면 그도 도적이 된다. 도와주려면 자기의 것으로 도와야지 남의 것을 내 것처럼 횡령하여 비밀로 돕는다면 은밀한 도적이 된다. 말라기 3:9~ “너희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느니라” 하셨으니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 없이는 새 땅 축복이 없다. “사람이 십일조를 속하려면 그것에 5분 일을 더할 것이요”라고 레위기 27:31절에 말씀하셨다. 우리가 예언의 말씀을 받고서도 법대로 순종치 않다가 떨어지는 자가 될까 심히 염려가 된다.


2. 하나님께서 구재(口才) 주실 것을 믿을 것:4~5


『 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


심판기가 되면 종에게 학자같이 말하는 혀를 주어 모든 교회가 선지서가 과연 무슨 말씀인지를 알도록 다시 예언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 없다면 영적 혼란기에 미혹을 받게 된다. 택한 종에게 학자의 혀(口才)를 주신 목적은!


● 4절:곤핍한 자를 도와주는 역사이다. 지금 이 때는 다섯째 나팔의 시기로서 모든 영들이 곤핍을 느끼는 원인은 “학자의 혀”를 받은 종이 나타나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깨달아 증거한 선지서는 영혼 구원이 목적이었지만, 이제 세계가 불탈 때는 육체까지 보호해야 할 때이니 나머지 예언서를 학자같이 말하는 종이 나와서 외칠 때 학자같이 깨닫는 종들이 모여드는데, 이들이 곧 감람나무 같은 권세의 종들이다. 흑암은 빛 앞에서 물러가는 것이 진리이되 영적 흑암은 주님 피로 사신 책(예언의 말씀)으로만 물러가는 것이 법이므로 “학자의 혀”로 다시 예언하는 이 사명만이 곤핍을 당한 영들을 소성시키는 마지막 역사를 감당케 된다.


● 5절:순종하게 하는 역사이다. 완전한 교훈이 완전한 인격을 만든다. 하나님의 새 일의 교훈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는 인격자들을 만들어 주는 교훈이다. 대표의 종이 학자같이 말할 때 듣는 자도 학자같이 깨닫게 되어 용기 백배로 힘을 얻게 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억지로 지배할 수 없다. 종말의 진리를 바로 증거할 때, 진리에 목마르던 자들이 듣고 깨달아 진리와 하나가 되니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심령으로 자진해서 순종하는 것을 신앙의 자유라 하는 것이다(출애굽기 4:10, 이사야 6:5, 에스겔 33:22, 이사야 41:15, 스가랴 12:8을 보면 하나님은 종들을 하나님같이 만들어 쓰신다).


3.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믿을 것:6~7


『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


주께서는 아무나 덮어놓고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요, 진리를 순종하는 자를 도우시되 절대로 수치를 당치 않도록 종의 얼굴을 부싯돌같이 만드시며 승리케 하신다. 어리석은 자는 종말관의 진리를 분명히 깨닫지도 못하면서 제 스스로 하나님이 도와줄 줄로 믿고 있는 자인데, 이 사람의 믿음은 미신을 믿는 일과 다름이 없다. 이런 자들은 큰 수치를 당하게 된다(이사야 41:8~16, 예레미야 20:7~13).


4.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심을 믿을 것:8~9


『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올지어다 9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


로마서 8:30~37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의(義=道)로 우리를 의롭다 하셨으니 누구도 이를 막을 수 없다. 종말에 당신 피로 산 백성 중 피로 산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택해 새 땅에 보내주시기로 작정하셨으니(초막절 역사) 의심 없이 믿는 자 되자!


5. 어두운 데서 빛으로 들어갈 것을 믿으라:10~11


『 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11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들어가며 너희의 피운 횃불 가운데로 들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슬픔 중에 누우리라 』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면 횃불 같은 예언서 말씀 속에서 평안을 누리게 된다. 갈릴리 빛은 영혼 구원이요(이사야 9:1), 동방의 빛은 육체의 구원이다(이사야 60:1~). 삼위 일체의 빛이 모두 내게 와야만 온전한 빛의 종이 된다.


● 11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불꽃 가운데로 들어가며 너희의 피운 횃불 가운데로 들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슬픔 중에 누우리라』


여기서 불이라 하심은 진노가 담긴 심판의 불이 아니라 예언의 등불을 말씀하신 것이다. 종말로 오메가의 미혹이 세계적으로 덮였으니 누구든지 사단의 흑암을 물리치려면 예언의 등불을 갖는 길밖에 없다(베드로후서 1:19~). 계시록 1:13~에 등장하는 일곱 촛대 교회는 모든 예언서가 100% 밝아진 종의 목소리를 청종해야만 그 양 떼가 살아서 새 천년 안식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광야 교회에는 영혼 구원이 없고(사도행전 7:38), 피로 사신 교회에는 육체 구원이 없다(사도행전 20:28).


오직 촛대 교회에만 주 재림시 영·육 구원이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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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오후 설교] 예레미야 41장 : 이스마엘의 반란 2016/11/04 Friday Afternoon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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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זרובבל משימ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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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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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예레미야 41장

제목 : 이스마엘의 반란


1.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살해함 : 1~3


『 1 칠 월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


"왕의 종친"이란 말은 왕손이란 말이다. 이스마엘이 유다의 왕손이었으니만큼, 그때의 집권자였던 그다랴를 없애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이란 말은 그저 왕을 섬기는 고관들의 이름이다.

"떡을 먹다가" 총독 그다랴의 대접으로 음식을 먹던 중에 일어난 사건이다. 음식 대접을 받던 중에 그 대접하는 주인공을 죽이는 것은 살인 중에도 가장 악한 방법이다(요한복음 13:18). 민족이 포로가 된 상황에서 그것도 그 남은 자들 가운데 이런 악한 일이 또 발생하는 것은 예레미야가 "악한 무화과"라고 말한 예언이 참된 예언임을 증거해준다(24:1~10). 예레미야 39장에서 41장까지는 실천적 예언으로 특히 40:7절부터 41:18절까지는 그 남은 백성이 심한 불행 가운데 빠지게 될 사실을 보여준다.


『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한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바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3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한 모든 유다인과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


이스마엘 일당이 그다랴와 및 그의 지지자(支持者)들과 갈대아 군사들을 일시에 죽인 사실은 내란죄에 해당되고 유다의 지배국인 바벨론을 대적하는 행동이었다. 이스마엘은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보낸 사단의 단체에 속한 악인이다. 자기 개인의 정권욕을 위해서는 유다인이야 죽든지 살든지 관여치 않는 그의 행태는 사단의 속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2. 사마리아 예배자를 살해함 : 4~9


『 4 그가 그다랴를 죽인 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


"이틀이 되었어도" 그 정보가 나가지 못하도록 한 것을 볼 때 매우 간교한 자임을 알 수 있다.


『 5 때에 사람 팔십 명이 그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에서부터 와서 여호와의 집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6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서 울며 행하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여 7 그들이 성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로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니라 』


이스마엘이 행한 또 하나의 무서운 살인행위가 드러나는데, 그는 무죄한 사람 80명 중 70명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80명은 몸에 유다의 멸망을 슬퍼하는 표시를 한 채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오는 도중이었다. 사단은 항상 사람을 죽이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살인자이다(요한복음 8:44). 사단에게 잡힌 이스마엘 일당이 치밀한 계획과 연기로 그들을 꾀어 살해한 것을 볼 때 정말로 간교한 살인마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악한 무리가 그 땅의 남은 백성을 휩쓰는 것을 볼 때 예레미야가 예언한 "악한 무화과"라는 말이 정확히 맞아 떨어짐을 알 수 있다.


『 8 그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였으므로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 형제와 함께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


80명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뇌물을 주고 죽음을 면하였다. 여기서 사단의 또하나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옳은 정치에 대하여는 역적의 무리가 되게 하고 물질에 대하여는 탐심으로 가득찬 도적떼가 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단의 사주인 것이다. 돈은 일만악을 저지르게 하는 뿌리임과 동시에 일만 악당들에게는 삶과 행위의 목적이자 이유인 것이다.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라고 말할 때 그들의 살인의지는 어느 새 재물에 대한 탐심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성에서 선악과의 질이 최고로 발동하니 하나님의 시온산은 사단의 집이 되고 만 것이다.


『 9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 죽인 시체로 거기 채우고 』


그 당시 이스마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가 하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다랴는 총독이요, 총독 주위에 딸린 식솔들을 생각할 때 총독에게 속한 사람을 모두 죽여 구덩이에 던졌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살인이었겠는가? 이 구덩이는 유다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함을 보아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사상적으로 나뉘어 간헐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전쟁이 치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3. 요하난의 잡힌 자를 다시 찾음 : 10~18


『 10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 하여 떠나니라 』


"암몬"은 롯의 둘째 딸과 아비와의 동침으로 태어난 잡족이다(창세기 19:38). 이 민족은 이스라엘의 숙적(宿敵)으로서 늘 이스라엘을 침략하였다(사사기 3:13. 사무엘상 11:1~11. 예레미야 49:6~9. 에스겔 25:1~7. 아모스 1:13~15. 스바냐 2:8~11).


『 11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의 행한 모든 악을 듣고 12 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가에서 그를 만나매 13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한 모든 군대장관을 보고 기뻐한지라 14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에게 포로되었던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15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


이스마엘의 악행을 보고 일어난 요하난의 의거(義擧)에 대하여 말한다. 그때에 이스마엘의 포로들 중 8명을 제외하고 거의 전부가 이스마엘을 배반하고 요하난 쪽으로 건너갔다. 이렇게 요하난은 피 흘림 없이 승리하고 이스마엘은 패배를 당했다.


"기브온 큰 물가" 이 곳은 미스바의 동북쪽, 예루살렘 북서쪽 약 8k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성경지명사전의 '기브온')


『 16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하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인과 유아와 환관을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17 애굽으로 가려 하여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18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인을 두려워함이었더라 』


"요하난"은 정의감이 강한 용사요(13~15) 또한 애국심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치명적 실수는 이제로부터 발생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하여 이 민족이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그들의 지배를 받을 것을 명하셨다. 그러나 요하난은 일시적인 두려움으로 그 뜻을 거스르고 반대 방향 곧 애굽 땅으로 도망가려 했던 것이다. 실패자의 생각은 언제나 인본주의로 흐르기 마련이다. 이렇게 유다 민족의 말로(末路)는 예레미야의 예언 그대로(24장) 그 남은 백성까지 더욱 불행해지는 상황으로 떨어진다.


선한 지도자 그다랴가 암살 당하고 이스마엘은 남은 백성까지 모조리 살해하는 악행을 하였고, 요하난까지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고 말았으니 사단의 힘은 강하고도 강했다. 본장의 사실들은 모두가 역사적으로 고증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 역사 이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한 예레미야 24:8~10절의 예언이 있었음을 잊지 말자(24:8~10). 보이는 세계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 하늘의 정한 뜻에 의해 철저히 지배당함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이제 42장부터는 남은 자들의 불순종이 노골화된다. 교만과 패역을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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