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5a_예레미야20장~06절

[주일 오전 설교예레미야 20장~06절 : 파수꾼의 시련과 역사 2018/04/15 Lord's day(Sunday) Morning

2016년 9월 18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20장~06절

제목 : 파수꾼의 시련과 역사


1. 바스훌의 박해와 선지자의 예언 : 1~6


『 1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집 유사장(有司長)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2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에 있는 착고에 채웠더니 3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착고에서 놓아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


선지자는 언제나 자기 민족에게 임할 환난 재앙을 예언하고도 핍박을 받는 존재이다(미가서 7장 참조). 본문은 참 선지자가 유사장(성전의 질서유지 책임자)에게 매를 맞고 수금 당하는 모습이다. 유사장 곧 제사장의 두목이 폭행을 했다는 것은 당대의 종교가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알려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형식과 외식적인 교회활동을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러한 교계적 부패를 현실감 있게 증거라도 하라는 듯, 예레미야서 집필 중인 2003년 5월 25일 주일날 아침, 선지자들이 기록한 모든 말씀을 가감치 않고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하는 본 제단을 교인수 1위를 자랑하는 대형화된 거대교권이 폭언과 폭행으로 핍박하는 일이 발생했다. 다음 주소를 통하여 내용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http://goo.gl/kiEecy).음성파일


통화로서 끝인 줄 알았으나 저들은 통화 중에 했던 말인 "너희 교회 어디야? 가서 확 뒤집어버릴테니까... 죽고싶냐?"는 말을 실행에 옮기려는 듯, 통화 후 정확히 4시간 만에 우리 교회(스룹바벨선교회)에 도착하더니 검은 승용차 2대로부터 안전부장(교회의 질서유지와 안전을 담당하는 직책)과 그가 거느리는 키 180cm 이상되는 건장한 남자 4~5명과 무술 유단자로 보이는 험상궂게 생긴 무표정의 장정이 하차하여 교회의 오후 예배 준비성가 시간을 방해하였다. '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키지 않으면 교회가 북방세력으로부터 화를 당한다'는 전도지를 자기네 교회 장로들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하여 그 여집사를 손봐주러 온 것이다. 오자마자 문을 부수듯 두드리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무슨 일로 찾아오셨느냐'고 물으러 나간 청년의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해대는 모습이란 도저히 성령의 열매로 볼 수 없는 흑암 덮인 행위였다.


교회의 신앙생활의 요점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다. 요한복음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3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예레미야는 자기를 "놓아주는 바스훌" 앞에서도 그 예언의 내용을 굽히지 않고 초지일관(初志一貫)하여 전하므로 앞으로 임할 재앙에 대해 분명하고도 견고하게 예언했다. 이렇듯 참 선지자는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할 뿐이다.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바스훌'이란 '권세를 확장하는 자'란 뜻인데 이제부터는 그가 "마골밋사빕" 곧 '사방에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 우게 되리라 한다. 이 이름은 종말에 북방환난이 내려오는 날 '권세 있는 교회가 처하게 될 모습'을 예표한 것이다.


『 4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 원수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5 내가 또 이 성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물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리라 6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거하는 모든 자가 포로되어 옮기우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네가 거짓 예언을 하여 들린 네 모든 친구도 일반이리라 하셨느니라 』


4~6절은 예루살렘과 바스훌에게 임할 환난의 내용이다.


① 그가 그의 친구들이 칼에 죽는 것을 보게 됨(4절).

② 모든 소유와 보물이 원수에게 탈취당하게 됨(5절).

③ 그의 가족들과 그 자신도 바벨론에 사로잡혀가게 됨(6절).


지금은 예레미야서를 다시 읽어 전하는 시대이다. 이 때 '다시 예언하는 말씀'을 멸시하며 압박하는 교회의 권세자들은 바스훌과 같이 모두 '후 3년 반'으로 들어가 기록된 저주의 예언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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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5_D_예레미야07장

[주일 새벽 설교예레미야 07장 : 외식된 신앙고발과 회개요구(하늘황후 우상) 2018/04/15 Lord's day(Sunday) Dawn

2015년 5월 27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 경 : 예레미야 7장

제 목 : 외식된 신앙고발과 회개요구


1. 외식보다 공의를 실천하라 : 1~7


『 1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


• 2절 : "여호와의 집 문에서 선포하라" 하심의 종말론적 의미는 계 22:6, 16절같이 '종들'과 '교회'(행 20:28)에게 다시 예언하라 하심이다(계 10:7~11).


• 3절 :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양식을 먹고(마 24:45)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받지 말고 참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만 들으라는 뜻이다. 신앙 양심이 하나님을 향했다면 언제나 참 선지자를 만나게 된다. 오늘날도 올바른 신앙양심을 가진 자는 이 예레미야서를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이 사람은 결국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바돌로매라 불리었다(요한복음 21:2. 마태복음 10:3. 누가복음 6:14).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신앙양심과 영적 방향이 하나님을 향한 자는 나다나엘같이 결국 바른 길을 찾게 된다.


『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


"이것"이란 성전을 가리키는데, 3번씩이나 반복함은 (그들이 생각하기를) 그들이 믿는 성전 자체가 지극히 신성하여 장차 어떠한 환난이 와도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맹신하는 모습을 역설(力說)하여 꼬집은 것이다. 건물이 웅장하다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다. 환난과 궁핍이 많아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모이는 진실한 교회만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거짓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들은 참 선지자의 진리를 배척하고 단지 그들 육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이 건재하다는 사실로부터 안전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이같이 형식, 외식에 치우친 신앙자들은 거짓 선지자의 거짓 평강에 속고 만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진실성'이 결여된 채 다만 종교의 의식과 외형에서 안도감을 얻는 행위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바이다. 오늘날도 교회의 건물모양과 소속교단의 건재함을 따져 보고 안정감이 드는 교회로 출석교회를 삼는 자들이 많은데, 잘못된 태도이다.


베드로전서 4:17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하셨고, 사 66:6 "훤화하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하셨는데, 이렇게 교회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되는 것은 종말의 성도들이 하나같이 종교적 제도와 교권(敎權)을 의지하며, 하나님(진리) 자체와 계시록(공의) 알기를 우습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사랑과 위로만을 찾는 젖먹이 신앙에서 공의와 진리를 찾는 장성된 신앙으로 나아가지 못함이 심판의 원인이 된다. 단단한 음식을 먹을 때가 되었는데도 젖만을 고집하는 아이는 곧 죽게 될 아이다(히브리서 5:13~14). 영적으로도 때를 따라 양식을 먹지 못하면 마태복음 24: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하신 말씀에 걸려들게 된다.


외식된 자들이 모여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그 곳(변질된 대형교단)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심판받게 될 것을 에스겔 선지자도 예언하였다. 에스겔 9:4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5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


"참으로 바르게 하면" 산다고 하신다. 이는 입술로만 하는 회개가 아니고 그 열매가 참된 생활의 변화로 나타나는 진실한 회개를 뜻한다. "묵은 땅을 가는 것"이요, 외식을 벗어던지고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이다(예레미야 4:3~4). 종말의 교회로 보자면 예수님이 주신 "처음 사랑"을 다시 되찾으라는 뜻이다(계시록 2:1~7).


• 7절 :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백성이 진정으로 회개만 하면 바벨론에 잡혀가 죽지 않고, 조상이 축복으로 받은 이 땅 예루살렘에 살게 되리라는 약속이다. 종말의 기독교회 역시 우상을 받아들이는 협상적 노선(W.C.C., 로마가톨릭)에서 돌이켜 참된 길(새 일)로 나아가면(예레미야 31:21~22)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이 땅(가나안=천년왕국)에 영원 무궁히 거하게 되리라는 예언인 것이다.  


2. 범죄하면서도 구원을 기대함 : 8~16


『 8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9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


• 8절 : "무익한 거짓말"이란 틀에 박힌 기도문과 성전 봉사 의식(儀式)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하는 모든 말이다. 헛된 예배 노선을 따라 행하는 것이 바로 무익한 거짓말이다(이사야 29:13~16).


• 9절: 십계명을 범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


• 10절 :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란 성전을 가리키는데, 그들이 우상에게 사로잡힌 생활을 청산치 못하고 성전에 들어와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함은 실로 가증한 일이다.


『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도적의 굴혈" 저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말씀을 도적질하고(예레미야 23:30) 저희의 범죄를 계속하면서도 위로 받는 방편(方便)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도용(盜用)하고 있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신본주의(神本主義)로 나아가지 않고 인본주의(人本主義)로 치우치는 자들은 모두 다 기독교 성전 안의 도적떼들이다.


『 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


"실로"는 법궤가 있던 곳이다(여호수아 18:1~. 사사기 21:19. 사무엘상 1:3). 그러나 엘리 아들의 부패와 잘못으로 법궤는 블레셋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사무엘상 4장). "실로에 대해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하심은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려주시는 표현이다. 이 말씀은 솔로몬 성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피로 산 은혜 교회도 심판의 다림줄(예언의 말씀)이 없으면 실로와 같이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 1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


"그 모든 일"이란 8~10절까지 기록된 저들의 모든 악행을 가리킨다. 불회개(不悔改)의 결과는 징벌 받는 것 밖에 없다.


『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같이 너희가 의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


• 14절 : "실로에 행함같이" 모리아산에 세워진 솔로몬 성전은 B.C.606년의 1차 환난, 598년의 2차 환난, 587년의 3차 환난을 당하므로 실로보다 비참한 심판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 15절 : "에브라임 온 자손"은 북 이스라엘 10지파를 가리키는데, 이스라엘 므나헴 왕 때(B.C.771) 앗수르 왕 불에게 1차 환난(열왕기하 15:17~22)을 당하여 잡혀갔고, 베가 왕 때(B.C.740) 디글랏 빌레셀에게 2차 환난(왕하 15:27~29)을 당하여 잡혀갔으며, 마지막으로 호세아 왕 때(B.C.721) 살만에셀에게 3차 포로가 되어 잡혀가므로(열왕기하 17:1~9) 북조 이스라엘은 완전히 패망하였다.


『 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


이렇게 말씀하심은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듣지 않으므로)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징계뿐이라는 것이다.


"간구하지 말라" 기도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진리, 특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곧 기록된 말씀 안에서 행해질 때만 상달되는 것이다(11:14, 14:11~12 참조)


3. 무효의 기도 : 17~20


『 17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18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이란 예루살렘 백성이 기탄없이 하나님께 공공연하게 행하는 범죄들을 말한다. 시편 119:126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 유대인들은 가족 구성원 전부가 우상숭배에 총동원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일은 <은혜교회> 안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단 2장을 보면 우상의 발이 철과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발가락 시대인 이 시대의 사람들은 시대적인 우상에 연합하여 땅의 것만 바라보며 살고 있다. 정치는 거짓된 '평화공존'에, 종교는 가증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영향력에 의해 완전히 놀아나고 있는 현실이 그 증거이다.


• 18절 : "하늘 황후"는 앗수르와 바벨론에서 온 종파신(宗波神)인데, 그 때 사람들은 그 여신이 자연계의 생식력을 주장한다고 생각하였다(열왕기하 21:5). 지금도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 근접한 위치에 놓고, 애써 이를 부인하며 실제적으로는 신도들로 하여금 우상숭배를 행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마리아를 모든 은총의 보고(보물창고)라고 믿고 있으며, 마리아 신심을 통하지 않고서는 온전한 은혜, 온전한 구원으로 다가갈 수 없다고 가르치며 믿게 만든다. 다음 23가지 문장은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1』(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작, 하 안또니오 신부 옮김. 푸른군대 한국본부 펴냄) 에 담겨진 내용들을 발췌 나열한 것이다. 글의 번호는 편집자가 임의로 메긴 것이나, 각 문장은 위 책 본문과 일점 일획도 틀리지 않고 같은 것임을 밝혀둔다. 예레미야서에 예언된 "하늘 황후"를 섬기는 사상이 가톨릭의 마리아 신심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유념하며 이들의 주장을 잘 들어보시라!


✦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제1권> 내용 고발


1.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으니 역시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기를 원하신다."


2. "마리아는 천주 성심의 지성소이며 안식처이므로, 하느님께서 그 안에 계시는 것이 우주의 어느 훌륭한 곳이나, 케루빔(그룹) 대천사가 시중을 드는 그의 어좌에 있는 것보다도 더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지극히 마음이 깨끗한 인간일지라도 그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은총이 필요하다."


3. "마리아는 새로운 아담(예수)의 지상낙원으로서, 그 속에서 성신의 권능으로 예수께서 사람이 되시고, 신비의 기적이 일어났다. 마리아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무한한 보화로 가득한 하느님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세계이므로 그 곳(마리아) 안에는 천주의 자비가 흐른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품 속에 품듯이 독생 성자 예수를 마리아의 품 속에 품게 하시고, 예수와 더불어 존귀한 모든 것을 또한 같이 지니게 하셨다."


4. "마리아의 공덕이 하느님의 어좌에까지 다달았으므로 감히 쳐다볼 수도 없고, 마리아의 사랑은 이 세상보다 더 넓으므로 가히 측량할 수 없으며, 마리아의 능력은 하느님의 마음까지도 움직이므로 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으며, 마리아의 겸손과 성덕과 은총의 깊이는 너무 깊어서 상상할 수도 없다."


5. "전 세계가 특히 그리스도 신자들의 나라가 마리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마리아는 많은 나라와 지방, 교구와 도시를 보호하는 주보가 되었으며, 마리아의 이름으로 축성된 대성당도 수없이 많고, 거의가 마리아에게 바쳐진 제대가 있는 성당이고, 여러 가지 죄악을 모면하고, 또 여러 가지 축복을 받는다는 기적의 성모상이나 상본을 모시지 않는 나라가 없을 만큼 마리아의 이름은 널리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지옥에 있는 마귀들조차 마리아를 두려워하고 존경하고 있지 않는가!"


6. "그러나 지금까지도 마리아가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내 마음에 차 있는 기쁨의 영감에서 지금까지 모든 것을 써 왔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되려면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으로 이 세상에 보내고 그분에게 다시 영광을 돌려보낸 성모 마리아가 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마리아의 왕국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무서운 것이 마리아론이다. 그들은 마리아를 공경하는 차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천주교의 교리에서 마리아는 재림론과 새 시대 건설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는 44장 "하늘 여신"에서 더 상세히 다루었다.


7. "천주 성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리아 태중에 잉태케 하였으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의 최고위(最高位)의 사신(使臣)을 보내어 마리아의 승낙을 받으셨던 것이다."


8. "천주 성부께서는 모든 물을 한 곳에 모으시어 바다라고 부르신 것처럼 모든 은총을 한 곳에 모으시어 마리아(St. Antoninus, Summa. p.Ⅳ  Tit. 15, cap. 4, no. 5.)라 일컬으셨다. 위대하신 천주께서는 빛나고 아름답고 귀중한 모든 것과 심지어는 당신의 독생 성자까지도 한 곳에 담고 계시는 풍성한 보고(Idiota, In contemplation  B.M.V.)를 가지고 계시니 이것이 바로 마리아이시다."


9. "천주께서는 생활하시고 죽으심으로써 얻은 무한한 공로와 놀라운 성덕을 모두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넘겨주셨으며, 또 성부로부터 받은 모든 유산을 마리아께서 관리하고 분배토록 맡기셨으며, 마리아를 통하여 당신의 공로와 성덕과 은총을 당신의 지체인 모든 사람들에게 분배해주신다. 예수께서 잔잔하고 풍성한 당신 자비의 물을 흘러 내려보내주는 수로(水路)이며 신비 가득찬 운하(運河)가 바로 마리아이시다."


10. "천상의 선물로서 마리아의 손을 거치지 아니하고 지상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11. "은총이 자연의 완성이며 하늘의 영광이 은총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마리아의 아들이었던 것과 다름없이 하늘에서도 마리아의 아들일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모든 어머니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훌륭한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서 모든 아들 가운데서 완전한 아들로서의 존경과 복종을 하늘에서도 계속하고 계실 것이다."


12.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로 모시지 않는 자이다."


13. "마리아는 영혼들 안에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신다."


14. "마리아는 성인들을 만드신다."


15. "그리스도의 왕국은 마리아를 통하여 온다."


16. "우리는 마리아의 종이다... (중략)... 하느님의 권력과 특권이, 은총에 의해 하느님의 권위 다음으로 마리아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느님 같은 뜻과 하느님 같은 권력에 참여하심으로 또한 그같은 부하들과 노예들을 가지고 계시는 셈이 된다. 그러므로 둘 중 한 분에게 자신을 바치는 것은 바로 다른 분에게도 봉헌하게 된다는 것이다."


17. "우리는 중재자 예수께 이르기 위해서 다시 한 중재자가 필요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직접 나설 만큼 충분히 결백한 것일까? .....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한한 사랑으로 성부의 노를 푸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보속하기 위하여 구원자가 되고 중재자가 되셨다 해서, 그분의 위엄과 거룩함에 알맞지 않는 존경을 해서 되겠는가? .....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위대하심과 우리 자신의 비천함을 비교해 볼 때, 우리 죄인이 직접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기에 두려우면, 우리 어머니이신 마리아에게 의탁하고 그의 도움과 전달하심을 부탁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에는 꼼짝 못하신다..... 하느님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세 계단이 있다. 그 첫 계단은 우리에게 제일 가깝고 우리의 능력에 제일 알맞는 마리아이시다. 둘째 계단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셋째 계단은 천주 성부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기도의 중재자이신 마리아를 거쳐야 하고, 영원한 천주 성부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구원의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해야 한다."


18. "우리가 우리의 모든 선행을 성모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하느님께 바치면, 마리아는 그것을 정화시켜 주시고 꾸미셔서 당신의 아들에게 의합하게 하신다. 우리의 모든 선행과 공덕이 정결되고 축복된 마리아의 손 안에 들면 우리가 바친 공로의 불완전한 것과 불결한 것을 모두 깨끗이 씻기어 버린다. 마리아의 손은 결백하고 또한 항상 부지런하셔서 마리아가 접촉하는 것은 즉시 깨끗하게 된다."


19. "마리아가 있는 그곳에는 악마가 없다. 성령과 더불어 교회가 선언한 것처럼 세상의 모든 이단을 물리치는 이는 다만 마리아뿐이시다."


20. "마리아 신심은 우리의 선행을 꾸준히 계속하게 한다. 죄인들이 회개한 후 쉽게 번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자칫하면 다시 죄를 범하게 되는가? ..... 사람들은 이미 죄에 물들었고 미약하여 의지가 굳세지 못한 반면에 자기 자신의 힘만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할 수 없는 것을 자력으로 하려 하고, 은총의 보화와 성덕과 공로의 보화까지도 자신의 힘으로 간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 신심을 통해서 우리가 가진 바 모든 것을 신뢰하올 동정녀 마리아에게 위탁하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만이 우리의 자연적 및 초자연적 모든 재산을 위한 관리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마리아를 신뢰하고 마리아의 힘에 의지하고 마리아의 자비와 모성애에 우리 자신을 바치면 마리아는 우리의 성덕과 공로를 확보하고,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어머니를 따르는 착한 아이처럼, 또 주인을 따르는 충실한 종처럼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대가 맡은 것을 잘 간수하십시오(디모데전서 6:20), 나의 사랑하올 모후 마리아여! 나는 오늘까지 당신의 전구하심으로서 내가 봉사하는 이상으로 많은 하느님의 은총을 얻었나이다. 나는 쓰라린 체험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았고 이 보화를 극히 파손되기 쉬운 그릇에 담았으니, 그것을 보관하기에는 너무나 내 자신이 가련함을 절감하나이다. 나 비록 어리고 멸시당하나(시119:41) 원컨대 나의 가진 모든 것을 받아 들이시어 그것을 당신의 성실하심과 당신의 힘으로 보호해 주소서. 당신이 나를 붙들어 도우시면 나는 결코 넘어지지 아니하고, 당신이 나를 보호하시면 나는 결단코 나의 원수에게 지지 않겠나이다.""


21. "일찍이 선조들과, 예언자들, 사도들 및 모든 성인 성녀들의 신앙보다 더욱 컸던 마리아의 신앙을 성모 마리아는 너에게 나누어 주신다. 이제 마리아는 하늘 나라에서 통치하시기에 그러한 신앙은 필요없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이제 영광의 빛에 의해서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명백히 직접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이 위대한 신앙은.... 예수 스리스도의 모든 신비와 인간의 최고 목적 및 천주의 마음 속까지 뚫고 나아갈 수 있는 신비로운 열쇠와 같은 민첩하고 예민한 신앙이며, 또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큰 일이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시작하여 완성할 수 있게 하는 용감무쌍한 신앙이며, 그녀는 너의 찬란한 횃불이며, 너의 신비로운 생명이며, 지혜의 기묘한 보화이며, 또 전능한 무기가 되는 신앙인 것이다. 죄에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너는 이 신앙으로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 속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고 황금같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냉담한 사람들을 태울 것이다. 너는 관대하고 힘찬 말을 통해서 바위와 같이 굳은 마음을 움직이고, 레바논의 삼목을 뒤흔들며, 끝내는 구원의 원수와 악마들을 물리칠 것이다."


22. "끝으로 네가 마리아를 생각하기만 하면 마리아는 너를 위해서 하느님을 생각하고, 네가 마리아를 찬미하고 공경하기만 하면, 마리아는 너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고 흠숭하는 것이다."


23. 모든 것을 마리아를 통해서, 모든 것을 마리아와 더불어, 모든 것을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 안에서 살게 되는 은혜로, 모든 것을 마리아를 위해서 해야 한다..... 충실된 종이며 어진 하인으로서 우리는 게으르지 말고 이 숭고한 여주인을 위해서 일을 계획하고 실천해야 한다. 성모 마리아의 특권이 어떤 비난의 대상이 되어 있을 때에는 어떠한 공박에도 항변하며 그 특권을 수호해야 한다..... 우리가 마리아에 대한 이 모든 봉사의 값으로 마리아에게 바라는 것은 사랑하올 여주인 마리아의 종이 된 영광과 현세와 영원에 있어서 마리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굳게 결합되어 있는 행복 이외에 아무 것도 있어서는 아니된다.


마리아 안에서 예수께 영광이여!

예수 안에서 마리아에게 영광이여!

오직 하느님께 영광이로소이다!


여러분들은 사단의 교묘한 논리를 잘 보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듯하면서 하늘 황후 마리아에게로 모든 영광과 지혜와 존귀와 보배를 수렴시키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하늘 황후" 우상숭배 사상은 이 시대에도 예수를 믿는다는 가톨릭 교회 안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마귀의 간교한 언어혼란 전술과, 예수를 인정하는 듯하면서 예수께 범죄하게 하는 이 고도의 책략 책동은 무서운 누룩이다! 우리는 예언서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 시대의 영적, 사상적, 정치적 혼잡(바벨)을 분별해 낼 도리도 없고 이겨낼 힘도 없다. 예레미야에게 죽일 듯 덤벼들던 유대인들 속에 역사한 마귀의 영이 오늘날도 살아 역사하는데, 바로『레지오 마리애 운동』(마리아를 사령관으로 받드는 기도부대)과 『다락방운동』(마리아 사제운동을 이끄는 '곱비' 신부가 주관)을 통하여 감취어진 듯, 그러나 무섭게 역사하고 있다(이 2가지 운동에 대하여는 44장을 참조하라).


예언서란 시대를 초월하는 얼마나 섬세하고 무서우며 놀라운 말씀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신 말씀(이사야 46:10)임이 확실하다. 우리는 가톨릭의 우상숭배 모습을 통해 사단은 거짓의 아비이며 속임수의 천재임을 알 수 있다(요한복음 8:44). 가톨릭은 자신들의 마리아 숭배가 우상숭배인 것을 인지하는 일말(一抹)의 양심은 있었던 모양인지... 십계명 중 제2계명을 삭제해 버리고 말았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공동번역 성서에는 2계명이 그대로 들어 있는데, 어찌하여 인터넷과 각종 출판물 및 조각물에서는 제2계명을 삭제하는 것인지 그 어리석음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들의 변명인즉 이러하다. 제2계명은 제1계명과 의미상 중복된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 하나님이 그 정도도 구분 못하시고 모세에게 친히 새겨 주셨을까? 가톨릭은 하나님을 가르치려 드는가? 십계명은 인간이 받아적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돌판에 새겨 주신 것임을 그들은 망각하고 있다(출애굽기 24:12). 가톨릭 교회에서 발간되는 모든 '기도서'나 '판촉물', '십계명 액자' 등을 확인해 보라! 제2계명이 삭제된 다음과 같은 내용의 10계명이 인쇄되어 있다.


- 가톨릭 십계명 -


1.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2.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3.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4.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5. 사람을 죽이지 마라.

6. 간음하지 마라.

7. 도둑질을 하지 마라.

8. 거짓 증언을 하지마라.

9.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10.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위 내용은 다음의 가톨릭 사이트의 주요기도문 7번째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2계명을 삭제하였는데도 9계명이 아니라 10개의 계명이 되는 것은 왜일까? 위장하기 위하여 10번째 계명을 다시 2개로 쪼개어 놓았기 때문이다.  21세기의 마귀는 이런 식으로 활동하는 모양이다. 말씀가감! 그것은 마귀의 주특기이자 지상사명이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은 저들은 자신들이 보는 가톨릭 공동번역 성서에서 제2계명을 확인할 수 없는가 하는 점이다. (공동번역) 출애굽기 20:3~5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명백한 성경 본문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2계명이 삭제된 십계명으로 모든 책자와 인터넷에 출판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그들의 양심과 눈이 사단에게 정복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우상숭배자의 눈은 자기 죄로 인해 가리워져 진리를 보지 못하게 된다. 성경을 잘 읽지 않는 그들은 자신들이 외우고 있는 십계명이 자신들이 보는 성경과 다르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지적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하기는 커녕 '교회의 어르신들이 결정한 것(주교회의를 말함)'에 순종해야 한다며 오히려 지적자를 타이르곤 한다. 기록된 말씀을 이렇게도 거뜬히 무시하는 그들이 교황권으로부터 내려오는 피라미드식 권력구조에는 얼마나 벌벌 떨며 순종적인지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예레마야 5:30~31).


이제 예레미야 7장의 예언이 이 시대에 다시 예언될 때가 왔다. 이에 외치는 자의 마음은 예레미야처럼 애타는 심정이 될 것이고, 듣는 자들(약 9억의 가톨릭 신자)의 마음은 유대인처럼 강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수풀 속에 사자같이 강한 그 세력! 당할 자가 전혀 없는 자유로운 권세자들! 곧 144,000명이 일어나 예언의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 일어나 그들을 도우실 것이다.


종말의 순종자들이 이 '하늘 황후'의 실체를 다시 예언함으로써 미혹된 무리 중 많은 이들이 살아나올 것이다. 택함받은 자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살아나올 것은 택자가 어떤 모양으로 어디에 숨어 있든 하나님은 '알곡의 마지막 한 알갱이'까지라도(아모스 9:9)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믿고 나아갈 뿐이다. 저 가톨릭의 무리에는 주님이 예정한 자가 많이 섞여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목숨바쳐 외쳐야만 그들이 회개하고 나아와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의 마지막 종들은 겸손히 모든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며 주님이 도구로 써 주실 그날까지 무장하며 기다리자. 만대는 이미 명정되었고(이사야 41:4, 65:6. 마태복음 26:24,31) 모든 일은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의 강권적인 주권하에 진행 중에 있다(이사야 43:13). 승리는 만유의 대주재시요(미가서 4:13. 사도행전 4:24. 계시록 6:10), 만사의 경영자시요(이사야 14:24,27, 46:11), 만왕의 왕이신(다니엘 8:25. 디모데전서 6:15. 계시록 17:14, 19: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으니 군사된 자의 믿음으로 우리의 대장 예수님만 믿고 당당하게 나아가자! 아멘!


『 1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나를 격노케 함이냐 어찌 자기 얼굴에 수욕을 자취함이 아니냐 20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한을 이곳에 붓되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그들의 범죄가 하나님께 손해를 끼치기 보다는 자기 자신들에게 "수욕"을 가져오는 행위가 될 뿐임을 말씀하시므로 그들의 범죄가 얼마나 어리석고 모순된 것인가를 지적하신다. "나의 진노와 분한을 이곳에 붓되"라는 말씀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유다 땅에 미칠 전쟁의 피해를 가리킨다.


4. 복 받는 길 : 21~23


『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22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23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


• 21절 : "너희 희생의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하신 말씀은 "너희의 희생제물에 번제물들을 합하여 그 고기를 먹으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 모든 제물들 가운데 있는 고기를 저희가 다 먹어 버려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제물을 신앙으로 드리지 않고 외식으로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제사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저희 자신의 육체적 사욕을 위한 것이니 이미 속화(俗化)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22절 : 하나님은 번제나 희생을 요구치 아니하신다. 시편 40:6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하나님은 시편 50:8~14절의 내용같이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고 하셨다.


• 23절 :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이와 같은 관계는 모든 신자의 목적하는 바이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이 관계가 바로 영생인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이 되시기 때문이다(이사야 12:2).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함과 그가 명한 모든 길로 행함은 그를 믿고 순종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순종한다 함은 결코 생명없고 기쁨도 없는 규칙따위에 순종하는 수준의 율법주의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사 성령을 부어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축복받는 길이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행하실 일은 새 일이니(이사야 42:9, 43:19, 48:6. 예레미야 31:22) 이 교훈을 도적맞지 않고 전 세계의 영적 이스라엘에게 다시 예언하는 자가 큰 복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계시록 10:7~11, 11:1~12).


5. 화 받는 길 : 24~28


『 24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25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26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의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


이 부분은 모세 때 시내 광야에서의 불순종을 들어 선지 시대의 불순종을 경고하고 있다. 광야에서 60만 명이 죽은 일을 기억하고 화를 받지 말라 예언하심인데, 과거 광야의 범죄보다도 현재의 범죄가 더욱 크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이 너를 청종치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지 아니하리니 28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국민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 』


여기서부터는 유다 민족(民族)이 순종할 소망이 전혀 없음을 내다보시며 말씀하신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유다를 불순종의 국민으로 판정하셨다. 그들에게 진실이 없어졌다 하셨는데, 진실이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리킨다. 종말에도 세계교회 중에 진실한 자는 144,000명뿐이요 그 외에는 협상노선에서 쑥물을 먹고 육체가 죽어야만 하는 게 법이다(흰옷 입은 무리는 진실함을 인정받은 인 맞은 종들이 아니고 새 시대의 백성으로 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택하여 정결케 하신 다수의 무리들이다. 계시록 7:9~17. 이사야 4:4~6 ).


6. 유대교회에 임할 재앙과 통곡성 : 29~34


『 예루살렘아 너의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자산 위에서 호곡할지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 버리셨음이니라 3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3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


• 29절 :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자산 위에서 호곡할지어다" 나실인은 머리털을 기르므로 자신이 하나님께 헌신된 자임을 표했었는데, 만일 더럽힘을 당하면 머리털을 밀어 버렸다(민수기 6:9~12). 고로 "머리털을 베어 버리라" 함은 거룩히 구별된 예루살렘이 하나님 앞에 더 이상 아무 희망도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은 종말의 음녀화된 교회가 더 이상 소망이 없어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예표된 '아마겟돈 전쟁'에서 전멸당할 것을 암시한다. 구약 때는 일시적 멸망 뒤에 회개와 회복이 뒤따랐지만, 인류 종말의 심판은 돌이킬 수 있는 회개의 여지나 회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최종적인 심판이다. 고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이 편한 때 회개하지 않으면 '후 3년 반'으로 들어가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자산 위에서 호곡하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 30절 :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는 집" 곧 성전에 가증한 우상을 두며(열왕기하 21:4~7),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사른" 큰 죄악을 말한다. 이것은 이방신을 위하여 '도벳'이란 곳에 제단을 쌓고 아이를 제물로 드리던 극악한 풍속을 말한다(열왕기하 16:3, 23:10. 예레미야 19:5, 32:35. 에스겔 16:20~21). 모압 왕도 전세가 불리해질 때 자기 아들을 번제로 바친 일이 있다(열왕기하 3:27). 신약에 이러한 기사가 없는 것은 로마가 이런 제사를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약 때에는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자녀를 우상 앞에 불살라 바치는 악습이 비일비재 하였다. 이방은 그러해도 참 신 여호와를 섬기는 이스라엘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 32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날이 이르면 이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육의 골짜기라 칭하리니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함을 인함이니라 33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34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기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쳐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


이 부분에서는 유대민족(교회)이 당할 전쟁의 화를 말씀하고 계신다. 그들이 복을 받기 위하여 우상을 섬기던 장소는 결국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큰 살육의 골짜기가 될 것이며, 그 나라에 기쁨과 경사(慶事)스러운 일이 아주 끊어지게 되어 황폐케 되리라는 경고이다.


종말에도 이와 같다. 이 시대의 교인들도 세계평화공존 정책과 종교 간의 협상이 축복받는 길인 줄로 알고 따라가고 있지만, 결국 이 모든 죄로 인해 환난이 올 때 그들은 재앙을 피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1,260일 다시 예언할 때 불순종했던 성도들의 통곡성이 42달 동안 천지에 사무치는 일이 반드시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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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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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6장

제 목 : 교회부패와 북방환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한1서 4:16). 사랑은 공의의 법에 의하여 실행되는 것이니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아모스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따라 갈 때도 하나님은 그 종 선지자 아모스에게 심판을 알리시고 북방 이스라엘에 가서 북방 앗수르 환난이 내려올 것을 예언케 하셨으나 교만한 이스라엘이 듣지 않다가 멸망 받았다. 또 창세기 18:1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말씀하시고 소돔성에 불심판이 임할 것을 알려주신 하나님이셨으나, 교만한 롯의 사위와 의심하는 롯의 처는 잿가루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이미 모세의 율법에서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면 '원방'에서 '흉악한 민족'이 내려와 노인, 어린아이나 할 것 없이 다 잡아가리라고 예언하신 바 있으니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으며,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신명기 28:49).


이처럼 하나님은 구약 선지시대나 인간 종말의 시대나 동일한 원칙, 곧 예언서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계시록 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신 것이다. 그런데 현실교회는 "예언은 세례요한 까지라고 했는데, 왜 지금에 와서 지나간 예언서를 들먹이냐”고 욕을 하며, "계시록쯤은 없어도 천국 가는데 지장이 없다" 말하므로 예수님과는 정반대의 길로 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선지자 사명을 받은 종들에게는 실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사야 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공산주의는 악이요, 흑암이요, 쓴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기독교 다수(多數)가 '세계복음화'라는 간판 밑에서 이들과 함께 모여 즐기고 있는 것이 오늘날 행해지는 기독교의 영적 간음 실상이다(부록의 W.C.C. 1~8차 총회 문서를 참조하라).


1. 교회가 북방 짐승에게 피습 : 1~8


『 1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중에서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기호를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


"드고아""벧학게렘"은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지방들이다. 바벨론 군대가 침입할 것이니 피난하라고 예언하신다.


『 2 아름답고 묘한 딸 시온을 내가 멸절하리니 3 목자들이 그 무리 양을 몰고 와서 그 사면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


"아름답고 묘한 딸 시온"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교회가 회개치 않는 모습을 일컬으신 표현이다. 주의 은혜 받은 교회가 범죄하고도 회개치 않으므로 생각밖의 큰 환난을 만나 멸절될 것이라 하신다.


『 4 너희는 그를 치기를 준비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볕 그늘이 길었구나 5 일어나라 우리가 밤으로 올라가서 그 전각들을 헐자 하도다 』


"치기를 준비하라"는 말은 전쟁을 행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는 것은 유대에 대한 바벨론의 전쟁태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싸움에 임하기에 적절치 않은 가장 뜨거운 시간에 올라가자는 것이다. 상대를 혼곤케 하기 위해서라면 뜨거운 햇볕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그들은 그만큼 전쟁에 열심히 임했다. 이 열심은 열심을 내는 자신들도 알지 못할 열심으로서 그들은 선민의 범죄를 징계하시려는 하나님의 철저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앞으로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아름답고 묘한 교회에도 북방환난이 임할 것이다. 이때 '북방'은 단지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몽둥이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이사야 10:5~12). 진보교회는 자기 죄의 무서움은 깨닫지 못하면서, 징계하기 위해 들려진 북방 몽둥이는 무서워하고 있다. 이러한 자들은 매를 맞아도 크게 얻어 맞게 된다. 현재 북방 세력과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는 모든 교회들은 자기들의 노력으로 인해 전쟁이 방지되고 평화가 유지되는 줄로 크게 착각하고 있다(마치 일제시대에 자신들이 신사참배를 행하므로 조선교회가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하는 친일파 목사들처럼 말이다). 이런 자들은 멸하기까지 쉬지 않는 잔인한 북방군대에게 철저히 붙이시겠다는 것이다.


"아하 아깝다... 우리가 밤으로 올라가자" 한나절에 해치우려고 하였는데, 아깝다는 것이다. "해가 졌으니 내일 다시 치자"가 아니라, 연이어 야간공격을 개시하므로 잠도 자지 말고 때려 없애자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로 "아름답고 묘한 딸"을 멸절시키고자 주신 열심이다. 유다를 진멸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에 의해 내려온 존재이므로 그들도 제맘대로 행할 수가 없다(요엘 2:10~20). 오늘날 심히 안타까운 점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이라 하는 이들이 구약의 역사적인 사건을 지식적으로만 알 뿐, 그것이 현재의 우리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구약은 유대민족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역사"'라고만 믿는 그들... 이런 종들을 일컬어 하나님은 "소경, 귀머거리"라 하셨다(이사야 42:18~).


『 6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흉벽을 쌓으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


"흉벽"이란 것은 성을 공격할 때 자기 편의 희생을 줄이고, 공격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성 밖에 흙으로 높이 쌓아 올린 담 또는 둑을 말한다(사무엘하 20:15).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 뿐이니라" 하신 것을 보아 예루살렘(교회) 안에 죄악이 얼마나 관영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 7 샘이 그 물을 솟쳐냄같이 그가 그 악을 발하니 강포와 탈취가 거기서 들리며 질병과 창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로 황무케 하여 거민이 없는 땅을 만들리라 』


샘물같이 악(惡)이 발한다는 것은 아담 피로 내려오는 선악과의 본질이 이방인들에게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발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영혼구원은 받았으나 패역의 본질까지 해결받은 자는 오늘날까지 단 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이제 신의 역사(스가랴 4:6)로 말미암아 땅에서 구속받아 처음 익은 열매들이 나타나게 되는데(144,000), 방법은 예레미야 31:22절의 새 일 창조로써이다. "여자가 남자를 안는 큰 이적"의 역사는 계시록 12:1~2, 5절의 역사인데, 이들의 몸은 슥 3:9절의 역사로 개조되되, 이사야 25:6~8절의 잔치를 통해서 이루신다.


2. 하나님의 노(怒)와, 선지자 & 제사장의 불충성 : 9~15


『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땀같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 』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포도송이를 주울 때처럼 유다 사람들을 하나하나 잡아 심판하라는 의미이다.


『 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11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지아비와 지어미와 노인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다" 하심은 그들의 마음의 귀가 세상 소리만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을 싫어했음을 뜻한다.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생명의 말씀을 욕으로 여겨 싫어한 것은 크나큰 죄악이다. 이 말씀을 무시하다가 예루살렘이 잡혀갔다면, 현재의 교회들도 이 예레미야서를 무시하면 똑같이 잡혀갈 것이다. 예수님은 초림주로 계실 때 요한복음 12:48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하셨다. "나의 한 그말"이란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뜻한다(계시록 10:7). 고로 사도 요한은 옛적 선지자들이 예언한 하나님의 비밀을 다시 예언하라는 묵시를 받은 것이다(계시록 10:7~11). 이 음성에 순종할 수 있는 이들은 귀가 할례 받은 자이며, 이 음성을 전심으로 새겨 듣는 자들은 학자의 귀와 학자의 혀까지 받게 된다(이사야 50:4~5).


『 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지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람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


"탐람과 거짓"으로 인해 유다 국가가 70년간 북방 칼에 붙여진다는 예언이다. 렘 6:12절이 이루어질 때 렘 5:17절도 성취된다. 이는 종말의 유다 안에서 또 다시 재연돼야 하는데, 인간 종말에 등장하는 영적 유다의 사명국가에 70년간의 고난이 있을 것이나 회복될 때 전 세계 12지파에게 '전 3년 반' 동안 다시 예언하고 순종치 않는 영적 이스라엘에게는 "당신의 손을 펴시어" '후 3년 반' 짐승 칼에 붙여 죽게 한다는 것이다(계시록 13장). 하나님이 거짓 선지자를 보내심(예레미야 23:15)은 이 백성들이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지 거짓으로 섬기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즉 공의의 시험이다(신명기 13:1~5). 이 시험은 오메가인 이 시대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1958년 3월18일 일곱째 짐승 소련에서 내어보낸 거짓 선지자들로부터 말이다. "탐람과 거짓"이 있는 교회는 누구든지 이 거짓 평화공존의 미혹을 따라가게 됐고, 돈만 아는 검정말 자본주의 정치권도 하나같이 북방에게 속아 탈냉전, 전쟁종식, 평화공존의 사상으로 기울어진 상태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다음으로 찾아올 순서는 '5개월 환난'과 '후 3년 반'에서 죽도록 신음하는 일뿐이다. 성경은 길이니(시편 119:105)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성경대로'(고린도전서 15:3) 빈틈없이 이루고 계신다.


『 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5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지도자가 성경대로 하지 않고 백성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평강"만 외쳐대고 있으니, 이는 백성들에게서 회개할 기회를 박탈시키는 영적 살인행위가 된다. 오늘날 평화공존을 외치는 목사, 신부들은 주님께서 벌하시는 날 모두 다 거꾸러질 것이다. 이들이 망쳐놓은 백성들은 회개치 못하므로 더욱 패역한 길로 치우치게 된다.


3. 교회와 교인들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심판 : 16~21


『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을 알아보라 하셨으나, 그들은 뼛골 속에 박힌 패역으로 인하여 순종할 수가 없었다.


『 17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


구약 교회가 파수꾼의 나팔소리를 강경하게 반대하고 순종치 않은 사실은, 종말에도 144,000명의 증인권세 역사가 펼쳐질 때 음녀화된 교권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올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교회 중 일부와 이방족 중 다수가 크게 회개하여 새롭게 택함받아 '흰 옷 입은 큰 무리'를 이루어 예비처로 들어가게 된다. 이처럼 종말에 다시 한 번 자리바꿈의 역사가 있을 것을 기독교는 감도 잡지 못하고 있다. 회개하는 자라면 누구든지 예수 피에 그 옷을 씻김 받아 '둘째 화'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구약 때든 종말이든 '회개'만이 살 길이다.


『 18 그러므로 너희 열방아 들으라 회중아 그들의 당할 일을 알라 』


솔로몬 성전의 심판을 열방에까지 들으라 하시며 유대 회중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그들은 귀가 할례 받지 못하므로 알아듣지를 못했다. 말세지말인 지금도 교회지도자들이 각종 세상사업을 복음사업과 병행하면서 물량주의와 대형화 경쟁으로 치우치고 있다. 금잔을 손에 든 음녀로 변질되고 있는 모습이다(계시록 17:1~6). 극상 포도 심은 농부의 바라는 맘 무엇인가? 변치 않는 포도열매뿐이다. 포도나무란 열매만을 목적하지 않을 때, 커다란 탈선을 가져온다. 탐심으로 인하여 이것 저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교회는 심판의 경고를 무시한 채 큰 바벨론 길가에 서 있는 교회들이니, "이들의 당할 일"은 재앙뿐이다(이사야 1:18~21).


『 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


사실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심판이 아니라 축복으로 시작되었다. 에덴동산의 축복권이 (비록 인간은 타락했으나) 모리아산의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로 넘어왔고, 그 산(시온산성) 위에 나라를 주시되 주 앞에 통회 겸손한 다윗 손에 맡겨 주셨으며, 또한 그 아들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을 짓게 하시어 영광으로 충만케 하셨건만, 패역한 후손들이 불순종하니 하나님은 공의의 법에 따라 심판하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 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뇨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


오늘날의 신앙노선은 점차 외식적, 형식적으로 변해가므로 신령한 말씀인 예수님의 계시를 자기도 모르게 외면케 된다. 사무엘상 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셨다. 오늘날도 입으로는 "예수 예수" 하면서 예수님의 새 일을 이단이라 정죄하는 목자들은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초림 때에도  "여호와 여호와" 하면서 사람되어 오신 나사렛 예수를 귀신들려 미쳤다 말한 자는 겉으로만 정통일 뿐, 그 속은 귀신의 처소였다(요한복음 8:44~51).


"시바"는 예루살렘에서 1,500마일 남쪽 아라비아 반도의 동남단(東南端)에 자리잡고 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용되는(출애굽기 30:34) "유향"을 이렇게 먼 곳에서 구해오는 것은 '큰 정성'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윤리적으로 자발적이고도 진실한 행함을 보여줘야 할 성민이 형식 차리기에만 힘을 냈다는 것은 "외식하는 경건"이었다. 그들이 "향품"을 원방에서부터 가져오는 수고가 주를 위함인 것 같아도, 이는 하나의 습관화된 종교적 의식일 뿐이었음을 예레미야는 꼬집고 있다.


『 2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백성 앞에 거침을 두리니 아비와 아들들이 한가지로 거기 거치며 이웃과 그 친구가 함께 멸망하리라 』


"거침을 두리니"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을 두시겠다는데, 곧 큰 전쟁과 환난을 가리킨다. 이번 전쟁에서는 아비도 아들도 이웃과 그 친구도 하나도 피할 수 없이 모두가 멸망으로 떨어지는 전멸의 재앙이라는 것이다.


4. 북방 바벨론(러시아)이 내려오므로 백성에게 공포가 임함 : 22~26


『 2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한 민족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23 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자비가 없으며 그 목소리는 바다가 흉용함 같은 자라 그들이 말을 타고 전사같이 다 항오를 벌이고 딸 시온 너를 치려 하느니라 하시도다 24 우리가 그 소문을 들었으므로 손이 약하여졌고 고통이 우리를 잡았으므로 아픔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25 너희는 밭에도 나가지 말라 길로도 행치 말라 대적의 칼이 있고 사방에 두려움이 있음이니라』


"큰 나라가 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유다를 기준으로 볼 때 바벨론은 동북에 위치하나, 침략해 올 때는 북방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러나 이 예언은 종말에 다시 예언함에 궁극적 목적이 있는 것이니 오늘날의 '"북방 한 민족" 곧 "땅 끝의 큰 나라"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한다(이사야 41:5~7). 오늘날의 "북방 땅 끝"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무신론 러시아'이다. 교회를 심판할 자는 교회를 미워하는 자이다. 고로 신,구교로 이루어진 기독교 국가들이 모인 유럽 연합(EU)은 발가락 시대의 우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인간 종말의 마지막 우상은 반드시 '러시아'를 주축으로 모인 세력이 된다(에스겔 38:2).


한국교회가 전혀 예상치 못할 때, 일본 우상의 침략이나(1910.8.29) 공산당 우상의 도발(1950.6.25)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북방에서 또 환난이 올 것인데 이 역시 인간의 지식으로는 예상할 수가 없는 일이다. 북방의 사나움과 심판의 무자비함을 비유하여 말할 때 "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자비가 없으며"라 말씀하셨다. 종교적 외식자들과 '평강'을 외치던 지도자들, 그리고 이들을 따라가던 백성은 이 한반도 땅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 하나님은 오로지 성경대로 이루고 계시니 '지혜자'는 예언을 신뢰하여 피난처 '시온'으로 모여들 것이며(이사야 14:32), 성산 깃발 아래 모여 북방의 붉은 깃발을 꺾어 버릴  것이다(새일성가 40장).


『 26 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굴며 독자를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찌어다 멸망시킬 자가 홀연히 우리에게 올 것임이니라 』


"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굴며..."라고 하심은 회개의 울음으로 용서받으란 뜻이다. 선민이 심판 받는 것은 죄악 때문인데,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죄 짓고도 회개치 않기 때문이다. 죄인이 회개치 않는 것은 교만함이다. 모든 선지자는 하나같이 북방에서 큰 환난이 올 것을 묵시로 받았으니 종말에도 북방이 온다는 말을 빼놓고 나면 할 말이 없게 된다. 다시 예언의 핵심은 북방환난이다. 순종자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환난'을 외치는데, 세력 가진 비겁자들이 큰 목소리로 '평강'을 외쳐대고 게다가 백성들은 이를 좋다 하며 따라가고 있으니 선지자는 자탄하게 된다.


5. 선지자의 사명과 자탄 : 27~30


『 27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미 너로 내 백성 중에 살피는 자와 요새를 삼아 그들의 길을 알고 살피게 하였노라 28 그들은 다 심히 패역한 자며 다니며 비방하는 자며 그들은 놋과 철이며 다 사악한 자라 29 풀무를 맹렬히 불면 그 불에 납이 살라져서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악한 자가 제하여지지 아니하나니 30 사람들이 그들을 내어버린 은이라 칭하게 될 것은 나 여호와가 그들을 버렸음이니라  』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의 말을 순종치 않는 자들에 대하여 최후의 판정을 내리신다.


㉠ 유다 백성을 "놋과 철"이라고 하셨다. 이 백성(교회)이 하나님의 말씀에 무감각함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러한 판결을 받았으니 그들은 더 이상 소망이 없는 백성이 되고 만 것이다(이사야 48:4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 소망없는 이 백성(교회)을 "내어버린 은"에 비유하셨다. "그날에는 천 주에 은 일천 개의 가치되는 포도나무 있던 곳마다 찔레와 형극이 날 것이라" 한 이사야의 예언과 동일한 뜻이다(이사야 7:23).


7장은 무서운 심판예언이다. 이는 북방을 내려보내심으로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그러나 7장에는 하나님의 사랑도 담겨 있다. 외식을 돌이켜 신령으로, 교만을 돌이켜 회개로 나아오는 자에게는 지나간 죄를 묻지 않고 살려주시겠다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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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3_예레미야19장

[금 오후 설교예레미야 19장 : 파기(破器)의 상징인 교회의 멸망 2018/04/13 Friday Afternoon

2016년 9월 16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19장

제목 : 파기(破器)의 상징인 교회의 멸망


1. 힌놈 골짜기의 심판 경고 : 1~9


『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2 하시드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


"오지병"은 목이 좁은 병으로서 속에 담긴 액체를 쏟을 때에 "박뿍 박뿍" 하고 소리가 난다. 이 병은 토기로 만들었으며 오짓물을 발라 구어 윤이 나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병의 깨어짐과 같이 유다 나라(현 교회)가 깨어질 것을 실물교훈(實物敎訓)으로 보이신 것이다.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가라 하심은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어른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시드 문"은 '태양의 문' 혹은 '질그릇 조각의 문'이라고 하는 예루살렘 동편 문을 뜻한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편 골짜기인데, 하시드 문을 통해서 내려가면 '힌놈의 아들 골짜기'가 나온다 하니 하시드 문의 정확한 위치는 예루살렘 성 남동쪽 모퉁이쯤 된다. 이 문은 바로 느헤미야서에 기록된 분문(糞門=똥문)과 동일시된다(2:13). 이 문이 '질그릇 조각의 문'이라 불리우는 것은 근처에 토기장이의 집들이 밀집된 관계로 많은 질그릇 조각 파편이 이 문 부근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선지자가 유다 어른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가는 이유는 앞으로 유다 땅이 '도벳'과 같이 저주 받은 땅이 될 것을 실천적으로 예언하기 위함이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이 주신 땅을 우상숭배로 더럽혔으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도 유다 땅에 살육을 베푸시어 '도벳'과 같은 피비린내 나는 골짜기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 ※ 하시드 문 가까이에 있는 토기장이의 밭은 도벳=기드론 골짜기=힌놈 골짜기=살육의 골짜기 등으로 불리운다. 여기서 불법적인 우상제의가 행해졌으며 바알, 몰렉 등에게 어린아이를 잡아 바치는 악습이 자행되었다. 렘 32:35. 대하 28:3, 33:6. 예레미야 7:32). 이러한 예언을 읽고도 무심하여 계속 가증한 행동을 하게 되면 다시 예언되는 종말! 바로 지금 저 심판의 골짜기에 매장될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


이사야 30:33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이 심판을 벗어나는 방법은 3절부터 펼쳐지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 뿐이다.


『 3 이르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무릇 그것을 듣는 자의 귀가 진동하리니 』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아" 유다 나라가 망하게 된 그 죄책(罪責)이 "왕들""거민들" 양쪽에 다 있다는 말씀이시다. 도벳과 같이 더러워진 "이곳" 유다 땅에 전쟁의 화를 보내시겠다고 하신다. 이때 "듣는 자의 귀가 진동"한다고 하신 것은 엄청난 살육심판의 환난이 임한다는 소식을 듣는 자마다 놀라리라는 뜻이다.


『 4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곳을 불결케 하며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열조와 유다 왕들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며 5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린 죄"는 하나님이 그들을 버려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시는 원인이 된다.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이란 '우상'이다. 하나님의 말씀 이외의 길은 모두 다 우상의 길이다.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다" 함은 선지자 시대에 참된 종들이 많은 핍박을 받아 죽임 당한 사실을 가리킨다(예레미야 2:34, 7:6, 22:3,17). 언제나 종교가 부패해 갈 때는 의인의 피에 주린 불의한 자들이 많아진다(시편 14:4~6). 앞으로 예레미야서를 들고 나가는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많아진다면 우리는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이니 더욱 힘을 낼 일이다.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인 율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헛된 미신으로 떨어졌을까? 아들을 불살라 바침은 사람이 한 번 미혹에 빠지면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예언서 어디를 보나 구약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사단의 꾀임에 끌려간 흔적뿐이다. 이는 아담 이후의 인간 중 뼛골속 선악과의 질을 이기고 사단의 미혹을 받지 않을 자가 없다는 결론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긴 자"가 되는 길은 오직 사단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피와 새 일의 말씀에 연합하는 그것뿐이다. 영육이 누릴 지상 천년의 축복은 사단이 들어쓰는 거짓 선지자의 궤휼(오메가의 미혹)을 이겨야만 준다는 것이 종말의 법이다. 거짓 선지자는 교회를 살육심판의 도벳 골짜기로 몰아넣기 위해 존재하고, 144,000명은 교회를 도벳 골짜기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존재한다.


『 6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는 날이 이를 것이라 7 내가 이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계(謀計)를 무효케 하여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8 이 성으로 놀람과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을 인하여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모욕할 것이며 9 그들이 그 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핍을 당할 때에 내가 그들로 그 아들의 고기, 딸의 고기를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고기를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


죄 값으로 받을 재앙의 선포이다.


① 교회가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의 악행을 버리지 않았으므로 그곳은 "살육의 골짜기"가 되며(6절).

② 현세적, 육체적인 복을 바라며 행하던 유다인의 모계(謀計:계책을 꾀하는 일)는 실패할 것이며(7절).

③ 예루살렘 성이 황폐해져 지나가는 행인들의 놀람과 모욕거리가 될 것이며(8절).

④ 유다인이 적군에게 포위될 때 극도의 식량난으로 서로의 고기를 뜯어먹는 일이 있을 것이라 하셨다(9절) : 이 일은 바로 '후 3년 반'에 떨어진 기독교인들에게 이루어질 일이다(신명기 28:52~57. 열왕기하 6:28~30. 예레미야애가 2:20, 4:10 참조).


우리는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유다 백성이 당할 환난의 비참함이 곧 그들이 행한 죄악의 비참함과 동질동량(同質同量)임을 깨달아야 한다. 21C 종말에 기독교가 무서운 '3대 화'를 통과하게 되는 것은 교회의 죄악이 그만큼 무섭다는 뜻이다.


2. 파기(破器)로 멸망을 경고함 : 10~13


『 10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오지병을 깨뜨리고 11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을 파하리니 그들을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하리라 』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동행자들의 앞에서 "오지병을 깨뜨려"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실물교훈(實物敎訓)를 행하라 하신다. 21C의 교회는 이 살아 움직이는 예언을 경청해야 한다. 사랑과 온유의 예수님이 무서운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 촛대교회를 제외한 모든 교회들이 바로 이처럼 깨어지고는 다시 회복될 수 없는 형편에 처할 것임을 알려주신 예언이기 때문이다.


『 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 곳과 그 중 거민에게 이같이 행하여 이 성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 13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 곧 그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더러워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


예루살렘은 이제 "도벳"과 같이 시체들로 더러워진 땅이 될 것인데, 성지(聖地)가 이렇게 시체들로 더럽게 되는 원인은 <우상숭배>이다. 에스겔 9장에서도 성소에서 어른들 곧 장로들로부터 시체가 될 것을 예언하셨는데, 그 원인 또한 성읍(교회)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 곧 '우상숭배' 때문이라고 알려주셨다(이사야 43:28, 66:6~ , ☞ 에스겔 9장 설교를 참조하라).


3.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예언함 : 14~15


『 14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예언하게 하신 도벳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


선지자는 성전 뜰에서 다시 예언하였다. 내용은 유다 민족이 받을 재앙에 관한 말씀이다. 종말에도 선지자 사명을 가진 파수꾼들은 예수님께서 "교회와 종들"에게(계시록 22:6~,16~) "이후에 마땅히 될 일"(계시록 4:1~)에 관하여 계시하신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그대로 외쳐 예언해야 한다. 인봉개시(印封開始)된 이 말씀을 가감하면 누구든지 이 책에 기록된 재앙이 임하리라고 예언하셨으니(계시록 22:18~19) 이 시대의 성도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계시록 1:3). 우리는 예레미야와 같이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할 자들이다. 그러나 이 일에는 엄청난 시련이 따르는 것이니 20장을 통하여 교훈받지 않고서는 다가올 시련을 이길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 예레미야서를 읽는 우리 모두가 형님 예레미야가 걸어간 길을 묵상할 때 크게 깨닫고 각성하므로 큰 시련이 다가오는 그날에 더욱 담대히 나아가 예언할 수 있는 인격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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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3_D_예레미야05장

[금 새벽 설교예레미야 05장 : 공의와 진리를 찾으시는 하나님 2018/04/13 Friday Dawn

2015년 5월 25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 경 : 예레미야 5장

제 목 : 공의와 진리를 찾으시는 하나님


1. 교회의 영적 간음죄에 대한 심판 : 1~9


『 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


"넓은 거리"란 전 세계 교회의 정경을 말한다(스가랴 2:2. 에스겔 9:4). 영적으로 간음하고 있는 세계 교회를 순행하며 '다림줄'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알아보라는 말씀이시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성읍(교회)을 심판하시기 직전에 이러한 '순찰자' 곧 척량(尺量)하는 사람을 내보내시는 법이다(에스겔 9:4~6. 아모스 7:7~9. 열왕기하 21:12~13).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 정치,종교의 책임을 맡은 자들 중에 율법의 공의를 생각하는 자가 한 명도 없다는 책망이시다. 하나님의 일을 맡아 죽도록 충성하는 예레미야바룩은 이 말씀에 해당되지 않지만, 그들을 제외한 유대교회 전체가 이토록 부패했다는 것이다. 의인은 환경이 좋거나 나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다(창세기 6:9). 창세기 19장에 의하면 소돔,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불바다가 되어 사해(死海)로 변했다. 아브라함은 의인 50명이 있으면 이 성을 멸하시겠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10명까지 여쭙다가 양심상 죄송하여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창세기 18:23~33). 그러나 이제는 문답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이 당신 입으로 직접 말씀해 주신다.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교회 안에 의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이렇게 친히 알려주시는 것은 이 성 중의 죄악에 대해 오래 참아 오신 당신의 긍휼을 이제는 접겠다는 뜻이다. 즉 심판의 시작이다. 이 말씀은 우상숭배로 인해 바벨론에 잡혀갔다가 고토로 회복되어 올 구약 유다 백성만을 목적하여 주신 것이 아니다. 인류 종말에 영적으로 바벨화되어 '후 3년 반' 흑암으로 쫓겨들어가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최종 심판을 당할 21C 기독교계에 "다시 예언하라"고 주신 말씀이다.


『 2 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3 여호와여 주의 눈이 성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거의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


유대교회의 외식과 그것에 따르는 강퍅함을 책망하고 계신다. 종교적 외식은 이렇게 사람의 심령을 강퍅하게 만든다. 오늘날의 교회도 1958년 3월18일부터 불어온 '평화공존'의 마귀 바람으로 인하여 영적 흑암에 덮혀 버림으로 사데 교회와 같이 되고 말았다. 계시록 3:1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그로 인하여 개교회(皆敎會)의 많은 신자들이 장차 올 심판, 주 재림, 천년왕국에 소망을 두기보다 이 땅의 소망만을 위하여 기도하므로, 이러한 '모압의 기도'(이사야 16:12)로 인하여 애통의 소리가 진동할 '후 3년 반' 대환난으로 떨어지게 된다. 부흥회에서, 또 새벽기도에서 "살아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원합니다~, 순종할 것을 다짐합니다~" 하며 기도해 보지만 주님은 "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유는 그들이 마귀와 손을 잡아 주었기 때문이다(W.C.C., 로마가톨릭). 하나님을 섬겨 축복 받고 영광 돌리라고 택해주었건만, 우상에게로 가고 마는 교회의 모습! 바로 선악과를 먹어 발생한 원죄의 체질에서 나온 열매이다.


『 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 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5 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이 심함이니이다 7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8 그들은 살찌고 두루 다니는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9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어찌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


이들은 비천한 자들(無知, 無識)이며 교육받지 못한 우준한 백성이라서 "여호와의 길"(하나님의 율법)을 모른다 할 것이나, 그것으로 그들이 죄책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바로 서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깨달을 수 있도록 쉽게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백성은 계속적으로 율법을 범하였고, 하나님은 이에 대하여 길이 참으시며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율법의 정신을 호소케 하셨다. 이것이 모여 예언서가 된 것이다.


재림하실 예수님께서 전 세계의 피로 사신 교회들을 향해 계시록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 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시고는, 이 말씀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라고 명령하셨으니(10~11) 성경책을 손에 든 크리스챤의 양심치고 이 말씀을 부인할 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순종하는 자는 적다. 성경은 교훈(디모데후서 3:16)이니 누구든지 성경을 손에 든 자는 모든 말씀이 "자기 하나님의 법"임을 인정해야 한다. 들고는 다녀도 성경말씀을 지키지 않을 때, 그 죄책은 자기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못 지켰다 하는 것은 변명이다. 살 길은 구약 백성처럼 하지 않는 것이다. 율법을 무시하니 예언자들이 나타났고, 예언자들의 글을 오늘날의 교회가 또 무시하니 "다시 예언하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마지막 때 살 길은 다시 예언되는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께서 패역을 고쳐주신다 한 말씀을 믿고 나아가는 것뿐이다(이사야 57:18. 호세아 14:4. 이사야 43:1~2). 우리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새일성가 53장). 현재 기독교의 절반 이상은 협상운동을 통하여 이미 "창기의 집"으로 변해 버린 상태이다. 만일 이 말씀을 듣고 돌이켜 회개치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이 보낸  "북방 사자" "사막의 이리" "표범"이 내려올 때 비참하게 뜯어먹힐 것이다. 에스겔 16장의 예언도 이 점을 경고한 것이다.


2. 불경건의 죄로 북방이 침략 : 10~19


『 10 너희는 그 성벽에 올라가 훼파하되 다 훼파하지 말고 그 가지만 꺾어 버리라 여호와의 것이 아님이니라 』


옛날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킨 것은, 종말의 피로 산 교회들이 말세 종들의 다시 예언하는 말씀을 듣지 않으면 북방 러시아 앞에 짓밟힐 것을 미리 보여준 사건이다(이사야 46:10. 로마서 15:4. 히브리서 10:1~). "다 훼파하지 말라"는 것은 죄 지은 백성은 70년간 북방에 잡혀 가 노예생활을 하다가 다 죽되, 그곳에서 태어난 2세들이 '순'의 사명자 스룹바벨 총독의 지휘하에 고토로 귀국할 것을 뜻한 예언이다. 열매(회개) 없는 가지는 찍혀지고 열매 맺는 가지가 남아 세계를 통일한다는 예언이다(이사야 11:1~3. 요한복음 15:1~8).


『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과 유다 족속이 내게 심히 패역하였느니라 12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치 아니하며 말하기를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즉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요 우리가 칼과 기근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13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하느니라 』


"여호와를 인정치 아니하며..." 하나님의 성민(聖民) 사상(思想)이나 행동으로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없다' 하는 무신론자나 우상을 섬기는 이방민족과 다를 바가 없다.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무시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속에 있지 않다고 한다. 2,760년 전에 아모스를 괴롭힌 아마샤의 행동이나(아모스 7:12~13), 1938년 장로교 제27회 총회 때 신사참배를 총회적으로 가결하고 이에 순응치 않는 주기철 목사를 신사참배거부 명목으로 목사직에서 파면시킨 장로교단이나, 오늘날 W.C.C.사상이 들어간 목사, 학자들이 주일을 성수하는 교회를 극보수로 매도하는 현실이나, 또는 천년왕국과 주 재림을 소망하는 교회들을 문자주의적 해석자로 몰아붙이거나 위험한 교회인 것처럼 몰아가는 현실 등은 13절의 내용이 시대를 초월하여 반복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본문에 나타난 '패역'이 오늘날도 목사들과 장로들, 그리고 대학강단의 종교학, 신학과 교수들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패역한 백성은 참 선지자들을 저주하여 말하기를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자기들을 해칠 자는 아무도 없다는 교만한 발언으로, "오리라" 한 칼과 기근은 그 예언을 하는 "참 선지 너희나 당하라"는 뜻이다.


알고 있는 분이 체험한 실화를 소개한다. 3년 전, 가톨릭 예수회의 한 신부와 '예수의 피로써 거듭나는 구원'을 논한 한 목사님의 이야기이다. 신부는 이렇게 응수했다 한다. "거리에 굶는 사람, 가난한 이웃 속에 예수님은 약자의 모습으로 살아계시오. 나는 당신네들처럼 피를 운운하는 무당 같은 신앙보다는 가난한 자를 도움으로써 살아있는 신앙으로 예수와 사귀겠소". 이에 대해 목사님이 로마서 3:25. 에베소서 1:7, 2:13. 골로세서 1:20. 히브리서 9:12, 22, 13:12. 베드로전서 1:19. 사도행전 20:28. 계시록 1:5, 5:9절 등에 나타나 있는 피로 말미암은 구속의 도리를 성경적으로 전하니까 짜증섞인 어투로 왜 자꾸 "피, 피" 하냐며 신경질을 냈다 한다. 더군다나 "혹시 당신의 어린 시절 중 피와 관련한 상처가 마음에 남아 있어 그런지 모르니 과거를 회상하며 피정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말했다 한다[피정(避靜)이란 세속으로부터 도피하여 고요한 중에 묵상하는 것을 말한다]. 피에 관련한 유년기 때의 상처가 있을 터이니 잘 한 번 회상해보라고 자상한(?) 진단까지 내려준 것이다.


또 다른 신부와의 대화에서도 같은 내용을 두고 토론한 적이 있다 하셨는데, 그 신부는 목사님의 얘기를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한다.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 위험한 사상이 오늘날까지 수많은 전쟁과 분열을 조장해왔습니다. 다른 종교들도 다 나름대로의 진리를 품고 있으니 기독교의 독선은 이제 절제되고, 그들의 신앙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는 진리의 구절을 전하며 "신부님이 존경하는 성 베드로도 이와 같이 증거했습니다. 또한 모든 천주교 신자가 존경하는 바오로 사도 역시 아레오바고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단에 경배하는 자들에게 신부님같이 말하지 않고, 오직 '한 분이시며 유일한 만유의 창조주'를 믿으라고 힘써 전했습니다"라고 말했더니(사도행전 17:22~31) 신부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예수가 그렇게 편협한 사람이었습니까? 예수님이 넓은 마음을 가졌던 분이니만큼 이제 우리도 편협한 신앙관을 버리고 대화와 타협으로 사랑을 실천할 때가 왔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목사님의 간증인즉, 처음 신부들과 이러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할 때에는, 이 현상이 일부의 몇몇 신부들에게만 발견되는 개인적 탈선인 줄 알았더니 수년간 다수의 신부, 수녀들과 접촉해보며 가톨릭이 주최하는 성경이나 영성관련 세미나 등을 참석하다보니 이는 탈선된 개인신앙이 아니고 마귀에게 먹혀 버린 가톨릭의 조직적인 신학풍조이며, 변개치 못할 교리적 차원이라는 것이다. 젊은 신부들이 신학교시절부터 이미 이러한 변질된 교훈으로 양육받고 있으니 가톨릭은 과연 자칭 '큰 집'이요, 변질된 '사마리아'가 틀림없다(마태복음 15:6~9. 이사야 29:13).


위 목사님의 간증만 보더라도 우리는 가톨릭에 있어서 '성경말씀'은 온전한 신앙의 대상이 아니고, 교회(가톨릭)의 전통과 함께 필요할 때는 취해지고 불리할 때는 (가톨릭) 교리 뒷전으로 밀려나는 그런 책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그들과 천년왕국이나 예수님의 육신의 부활, 구름 타고 오실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얘기를 나누어봐도 매 일반이라 한다. 성경에 명시된 이러한 정통교리들에 대해서는 "아멘"으로 자신있게 화답하지 못하면서 성경에도 없는 마리아의 '몽소승천(蒙召昇天)'과 무염시태(無染始胎)' 그리고 가톨릭교회와 주교단과 교황의 '무류성(無謬性)' 등을 말할 때는 어찌 그리 견고한 신앙을 보이는건지..... 참으로 기괴한 일이다. 예레미야 5: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 14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


선지자의 말은 불과 같고 백성은 나무와 같다는 것이다. 계시록 11:5절에도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다. 계시록과 선지서를 알지 못하고 현실 속에 빠져(취해) 사는 수많은 교회들은 예수님의 심정으로 돌아와서 다시 예언하거나 그 예언을 받아들여야만 대 환난을 피할 것이다. 또한 지금은 영적으로 캄캄한 밤중이니 철장권세가 나가야만 이 흑암이 물러갈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으로 피택받은 스룹바벨(학개서 2:21~23)의 머릿돌 역사(스가랴 4:7,10)가 세계로 뻗어 나가야만 전 세계가 당면한 사단의 미혹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 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보라 내가 한 나라를 원방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나라이라 그 방언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


원방에서 불러오는 "한 나라"는 강한 나라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족속(교회)이 추수한 곡물과 양식을 빼앗을 것이다. 이 예언은 예레미야 39장에서 성취되었다. 교회가 범죄할 때 내려보내지는 '한 나라'는 언제나 북방이다. 오늘날도 북방에 "한 나라" 곧 로스와 메섹과 두발의 왕인 '곡' 이 준비되어 있다(에스겔 38:1~17). 이들의 성질과 행할 일은 다음과 같다.


『 16 그 전통은 열린 묘실이요 그 사람들은 다 용사라 17 그들이 네 자녀들의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 떼와 소 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의뢰하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 1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치는 아니하리라 19 그들이 만일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느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너희 땅에서 이방 신들을 섬겼은즉 이와 같이 너희 것이 아닌 땅에서 이방인들을 섬기리라 하라 』


"한 나라"가 와서 유다를 잡아갈 이유는 우상숭배 죄 때문임을 알려주신다. 현재 기독교회가 큰 우상 국가인 초강대국들을 의지함은 영적 간음죄에 해당한다(계시록 17:1~6). 이 죄값으로 교회는 17~19절처럼 '후 3년 반' 동안 짐승의 지배를 받되 계시록 13장 같은 무서운 환난을 당하게 된다. 교회가 하나님이 원치 않는 '무신론 사회주의'를 분별 못하고 따라갔으니, 하나님도 교회를 42달 동안 그들의 손에 붙이우시는 것이다(예레미야 13:20~22). 현재 한국교회나 정치도 이 죄악의 길을 걷고 있다.


3. 야곱이 언약을 어기므로 보수하심 : 20~31


『 20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21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계한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하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23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패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하와가 말씀(언약)을 어기고 뱀의 거짓말에 속아 범죄하므로 창세기 3:19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신 말씀에 따라 사망을 당케 되었다. 알파 때에 이러하셨으니 이후의 시대와, 오메가의 시대에도 공의의 법에 따라 보수하실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7대법(선악과의 법, 혼혈금지법, 방주법, 할례법, 율법, 믿음의 법, 예언의 법) 중 마지막인 예언의 법(계시록+예언서)을 어기면 하나님의 보수를 당한다는 것이 종말의 공의가 된다. 그러나 마귀는 모두가 하나되어 '평화공존'을 소망하며 인류에게 닥칠 전쟁을 힘써 막아보자고 교회와 정치세계를 꾀고 있으니, 이 시대에 외쳐지는 '평화', '탈냉전', '전쟁종식', '종교간 대화와 타협'은 공의의 법도를 범케 하는 완전한 '뱀의 소리'이다.


『 26 내 백성 너희 중에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의 매복함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27 조롱에 새들이 가득함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창대하고 거부가 되어 29 살찌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히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송사를 공평히 판결치 아니하니 29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 같은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


"보수하지 않겠느냐" 선지자와 제사장이 타락하였으므로 한국에는 10일간, 세계에는 5개월간 보수하시되 종교 지도자들을 죽음보다 괴로운 고통에 처하게 하시고(계시록 9:3~6), '첫째 화'의 보수가 행해질 동안 인 맞은 144,000명의 강한 전도에 회개한 무리가 추려져 예비처로 보내지면(계시록 12:6, 14), 144,000명의 참 종들은 짐승 칼에 죽었다가 변화 승천하고(계시록 11:7~12), 짐승을 따라가던 거짓 선지자와 권력형 제사장들과 이들을 좋게 여기던 성도들은 지독히 무서운 '후 3년 반' 짐승의 통치하로 떨어져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계시록 12:17, 13장).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최종적인 아마겟돈 전쟁에서 산 채로 불못에 던져진다(계시록 19:20, 17:11. 다니엘 7:25~26).


『 30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


선지자들이 선악과로 나오는 패역의 본질로 인하여 사단에게 이용당하여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도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못된 종들, 주인 노릇하는 삯군들)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은 사망뿐이다(이사야 9:16). 이사야 28:15절에서 알려주신 바와 같이 이 시대에 만연해 있는 평화공존의 분위기는 인류역사의 마지막 미혹이다(탈냉전, 전쟁종식). 에덴동산 뱀의 말이 거짓말이었듯이, 현재 무신론 공산주의인 북방에서 외쳐진 평화공존(1958.3.18)은 '큰 거짓말'이 아닐 수 없다. 다니엘 9:26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순종하는 제단이 있어 이 말씀을 다시 예언하는 시대가 되었건만, 많은 종들이 교권을 더욱 사랑하므로 예언서를 멸시하고 있으니 큰 교회가 하나같이 사단의 이용물이 되는 것밖에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으랴!


이사야 29: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20세기 후반부터 세계는 사단이 연기를 뿜어냄으로 인해 악마득세의 상태가 되어 간다(계시록 9:1~12. 이사야 14:29~32). 세계를 취케 할 '검은 연기'는 하나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기 위해 내보내는 미혹의 흑암인데, 이 흑암을 뚫고 나갈 무기는 하나님의 인(印)뿐이라고 알려주셨다(계시록 9:4). 이 인을 '스룹바벨'의 손에 맡겼다 하셨으니(학개서 2:23), 바벨론의 흑암을 이기고 출바벨론 할 자는 구약 유다의 총독 스룹바벨에게 연합된 종말의 "순의 단체"일 것이다. 종말의 파수꾼 144,000명은 '여호수아', '갈렙'과 같은 두 증인이요(계시록 7:3~8), 이들을 따라가 가나안을 차지한 20세 미만의 어린 백성들은 말세의 '흰 무리'가 된다(계시록 7:9~17). 히브리서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참 형상의 성취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림자인 구약책을 열심히 보아야 한다. 구약 율법과 시편과 예언서는 우리가 계시록과 더불어 읽고, 듣고, 지켜야 할 마지막 다림줄이다.


이사야 40:9~10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교회)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율법은 공의요, 공의는 말씀이니,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죄를 위해 내어준 바 되시어(로마서 4:25) 율법의 요구(사망)를 이루시고 승리하신 이 은혜를 잊을 수 없다면, 주 재림 때 다시 예언하여 증거 마치고(계시록 10:7~11, 11:1~12) 공중에서 그분을 만날 준비를 하는데 있어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자라야 지혜롭고 슬기있는 다섯 처녀의 반열에 들게 된다.


우리는 기름 준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후 3년 반' 짐승통치가 오기 전에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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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2_D_예레미야04장

[목 새벽 설교예레미야 04장 : 북방환난이 올 것을 예언함 2018/04/12 Thursday Dawn

2015년 5월 24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 경 : 예레미야 4장

제 목 : 북방환난이 올 것을 예언함


1. 하나님께서 회개를 권고하심 : 1~4


『 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 2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


이 구절들은 3:22 하반절에서 25절까지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회개 언사를 들으신 후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곧 회개하려거든 진실되게 하라는 것이다. 진실된 회개는 가증한 것을 버리고 요동치 아니함을 말한다. 가증함이란 우상숭배다(계시록 17:1~6).


본문의 "진실과 공평과 정의"는 실상 다 같은 뜻이다. "진실"은 정죄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임을 솔직히 고백함이고, "공평"은 죄인이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옳게 생각함이고(시편 51:4), "정의"는 정죄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태도를 취함이니, 곧 이전의 진실과 공평의 두 가지 태도를 이르는 것이다.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한다" 함은 죄인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주께로 돌아가겠다"고 자백하는 신앙행위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가까이 하고자 결단하는 자의 맘속에는 이 같은 자세가 형성되는 법이다(참조: 신명기 6:13, 10:20).


『 3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4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


"묵은 땅을 갈듯이"란 묶은 죄를 갈아 엎으라는 뜻이고(3절) "여호와께 속하라"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뜻이다(4절). "묵은 땅"이란 사람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니 거기엔 가시덤불(이사야 57:17~19. 창세기 3:18) 곧 죄악이 뿌리 박고 있다(원죄). "갈고"란 말씀은 자아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할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을 마련하는 행위다. 곧 내 마음 속에 어지러져 있는 가시덤불 같은 죄악을 제거하는 회개의 행위가 묵은 땅을 가는 것이다(호세아 10:12. 마태복음 7:3~5).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며 나 여호와께 속하라" 곧 표면적인 신앙생활에만 치우치지 말고 이면적으로 죄악을 끊어버림으로써(마음에 할례를 받음으로) "여호와께 돌아와 속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떠난 생활은 죽은 생활이니 죽은 자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먼저 '나 자신'이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어진다.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의 위치를 모르고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 하며 스스로 위로하기를 즐긴다. 이런 사람은 기도하는 것보다 쾌락을 사랑하거나 성경을 읽고 듣는 것보다 다른 것을 더욱 즐기는 사람이다. 성전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면 이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증표다. 이와 같은 경우라면 마음을 찢어 회개해야 된다. 요엘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라고 예언하셨다.


회개치 않으면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자가 없으리라" 하셨다.


2. 기호를 세우고 외칠 때 불순종하면 지도자가 깜짝 놀람 : 5~9


『 5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


나팔을 시온(야곱의 집)에 선포함이다.


• 예레미야 5:20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 예레미야 9:12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광포(廣布)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같이 타서 지나는 자가 없게 되었느뇨"


• 예레미야 11:2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고하라"


『 6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 』


† "나팔과 기호"


우상을 숭배하고 자기 교만에 빠진 유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회개 촉구의 음성은 무시되고 말았다. 하나님께 속해야 할 그들은 우상과 자기 고집에 취하여 안주했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게 된 원인이다.


나팔과 기호는 '전쟁'을 알리는 표식이다. 이제 유대 민족에게는 적신호가 내려진 것이다. 이 '기호'는 재앙을 피하라고 세우는 시온을 위한 기호이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는 과연 우리의 신앙상태가 적신호의 위협을 깨닫고 화를 피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저 '기호'는 안일한 성도들을 향해 주시는 예언의 말씀으로서 "깨어 있으라"는 신호이며 "회개를 촉구"하는 영적 신호인 것이다.


구약 때와 같이 '재앙(災殃)과 화(禍)'를 앞둔 21C의 <교회와 종들>에게도 (영적으로) '나팔''기호'를 세워야 하는데, 이미 1975년도에 영적 유다 대한민국 땅에 세워주셨다. 이는 멸망할 자들에게는 적신호이며 살 자들에게는 청신호이다. 북방군대에게 멸망할 수밖에 없는 안일한 기독교인의 잠을 깨우기 위해 예수님은 "다시 예언하라" 하신 것이니, 다시 예언할 말씀이 무엇인지 깨달은 자들은 기호를 잡은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순종해야할 뿐이다(계시록 10:7~11). 순종자는 본 제단에서 세운 영적 '기호'에 연합되어 예언서를 전하게 된다(이사야 5:26, 11:10, 13:2, 18:3, 31:9, 49:22, 62:10. 예레미야 6:1, 51:27). 주제별 말씀정리 "기호" 참조


『 7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열방을 멸하는 자가 나아왔으되 네 땅을 황폐케 하려고 이미 그 처소를 떠나 나왔은즉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민이 없게 되리니 8 이를 인하여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대저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니라 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왕과 방백들은 실심할 것이며 제사장들은 놀랄 것이며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리라 』


'기호'와 반대되는 개념은 거짓 선지자의 '거짓된 붓'(예레미야 8:8)과 '아첨하는 말'(에스겔 12:24)이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는 것은 전적인 궤휼이다(예레미야 6:14~15). 기호를 따라가는 예루살렘은 보호를 받을 것이며, 궤휼을 따라가는 예루살렘은 북방 바벨론 칼에 잡혀갈 것이다(예레미야 23:15~32. 이사야 1:20).


"열방을 멸하는 자"에 대해서는 에스겔 21:31에서 자세히 설명해 놓았으니 참조하시기 바란다.


3. 거짓 선지자에게 속지 말고 회개하라 : 10~18


『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미쳤나이다 11 그 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이를 자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 자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케 하려함도 아니며 12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베풀 것이라 13 보라 그가 구름같이 올라오나니 그 병거는 회리바람 같고 그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리라 14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15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16 너희는 열방에 고하며 또 예루살렘에 알게 하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17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8 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


보라 ... 그 병거는 회리바람 같고 그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리라


하나님께서 "속이셨다"는 것은 일찍이 거짓 선지자들이 유대인들에게 "평강하다 평강하다" 말했는데, 평강은 커녕 도리어 바벨론의 침략을 당한 사실을 백성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속인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었지, 하나님이 아니었다. 거짓 선지자들이 저희를 속일 수 있도록 허용하신 것뿐이다. 이렇게 하심은 공의이며, 백성(교회)이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믿고 있는지 시험하시기 위함이었다(신명기 13:1~10). 하와에게 뱀을 보냈듯이 교회에 거짓 선지자를 보내어 까불어 보는 것은 공의일 뿐이다(예레미야 9:15~16, 23:15~32. 이사야 29:10~14, 51:17~23, 66:4). 공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에덴동산에서 살 자격이 있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불법자는 쫓겨난다.


창세기 22:1~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시험은 보이는 동서남북 땅을 몽땅 주시려는 당신의 큰 축복을 과연 받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시험이었다(창세기 12:7~, 13:14~, 15:7,18~). 아브라함이 약속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이 시험에 합격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네 씨(예수)가 그 대적(용과 7머리 짐승국가)의 문을 얻으리라"는 확고한 언약을 세워 주셨다(창세기 22:17).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테스트''템프트'이다. 'TEST(테스트)’는 더 좋은 것을 주시고자 그 중심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시험이요(시편 26:2, 66:10, 139:23. 예레미야 20:12. 스가랴 13:9. 히브리서 11:17. ), TEMPT(템프트)는 그 유혹에 걸리면 넘어져 멸망케 되고 마는 마귀의 올무이다(마태복음 4:1, 6:13, 24:10, 26:41. 고린도전서 7:5. 갈라디아서 6:1. 데살로니가전서 3:5. 디모데전서 6:9. 히브리서 2:18, 4:15. 야고보서 1:12~15. 베드로후서 2:9). 성도에게는 이 두 가지의 시험 모두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하나님은 우리가 'TEMPT'에 빠졌다 해서 심판해 버리시는 무자비한 신은 아니시다. 우리가 '유혹'에 빠졌을 때, 자기 욕심과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그분은 그 강하신 팔로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사랑의 신이신다. 그러나 이러한 자비의 신에게 의뢰치 아니하는 자는 TEMPT(템프트)에 걸려 전멸하고 만다.


4. 회개 못하는 백성을 보시는 하나님의 답답함 : 19~22


『 19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 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 네가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


"슬프고 아프다... 마음 속이 아프고" 예레미야 9:1~ 하나님의 마음이 선지자에게 임하니 선지자는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케 된다.


• 예레미야 13:17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 것이며 여호와의 양무리가 사로잡힘을 인하여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 시편 119:136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같이 흐르나이다"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재앙 받을 백성을 생각할 때 드는 마음이다.


• 시편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경보는 "경고, 신호, 요란한 소리"를 뜻하는데, 전쟁의 경고를 알리는 신호를 의미한다. 선지자는 이를 묵시로 보았다.


• 예레미야 6:1 "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중에서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기호를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 아모스 3:6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시키심이 아니고야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 스바냐 1:15~16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예레미야는 묵시를 통해 유다를 침공할 대적의 모습과 그들의 파괴로 말미암은 황폐함과 참담함을 목도한 후 그 마음의 슬픔과 답답함을 참을 길이 없었다. 도저히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가 없으므로 예레미야 19~31장까지에서 고백적인 애가를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에스겔 19장에도 애가가 나오는데, 이는 슬픈 애가를 통해 백성들을 깨우치고자 함이었다. 선지자의 애가에는 전쟁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제시되어 있는데(예레미야 애가 1~5장. 에스겔 2:8~10), 그것은 자신들이 당할 미래상을 실감나게 알려줄 때 아무리 완악한 백성이라도 혹 돌이켜 회개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 20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천막은 홀연히 파멸되며 나의 휘장은 잠시간에 열파되도다 21 내가 저 기호를 보며 나팔 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북방 바벨론의 침략이 연속될 것을 이름이다. 예레미야는 B.C.627~587년까지 사역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유대 민족은 세 차례나 바벨론의 침략을 당하였다(B.C. 606, 598, 587). 유다는 이제부터 70년간 패망과 쇠약의 길을 걷게 된다(예레미야 25:11, 29:10).


"내가 저 기호를 보며 나팔 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예레미야에게 가중되는 고통이다. 저 기호를 어느 때까지 보아야 하며 나팔 소리를 어느 때까지 들어야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일순간에 지나치고 마는 고통은 극복하기가 쉽다. 그러나 마음에 담아두어야 하거나 오랜 기간동안 비참한 현실을 목도해야 하는 고통은 뼈를 깎는 고통이다. 장시간의 환난과 고통에는 이를 이겨내기 위한 인내의 신앙이 필요하다. 예레미야는 이 많은 북방환난에 대한 묵시를 받고 40여 년간을 외치며 민족을 살려보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듣지 않는 백성의 패역으로 인하여 재앙당할 예루살렘을 눈앞에 놓고 한탄할 적에 "예루살렘(시온)을 향해 외쳤던 기호와 나팔 불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하며 탄식한 것이다. 깊이 있게 들여다 볼 때 "저 기호""나팔소리"는 단순한 육적 전쟁경보가 아니다. 패역자들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경고가 담긴 묵시의 말씀'이다. 사명자가 아니면 이러한 내용을 알기가 힘들다.   


『 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


22절은 이사야 5:20절과 같은 뜻이다. 사망할 자들이 떨어지게 될 구절이다. 반대로 살 자들은 예레미야 16:19, 고린도전서 14:20절로 나아간다. "우준하고 미련하고 무지한 백성"이라는 탄식은 하나님의 탄식이요, 선지자의 아픔이다. 백성을 볼 때 이같이 슬퍼지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북방 기호 앞에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우준하여 하나님의 시온 기호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그들이 미련하여 주님의 시온 나팔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초리를 맞으며 우는 자식도 불쌍하지만은, 회초리를 든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의 우준함은 부모의 마음을 더욱 찢어놓는 법과 같다. 4장의 핵심은 '시온 기호''시온 나팔'이다. 선지자의 마음은 북방 기호로 인하여 슬픈 것이 아니요, 자기 백성이 아무리 외쳐도 회개치 않으므로 슬프고 아프다.


5. 재난의 참상을 비애함 : 23~31


『 23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24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25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26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27 이는 여호와의 말씀에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28 이로 인하여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흑암할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즉 또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 29 기병과 활쏘는 자의 훤화로 인하여 모든 성읍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거하는 사람이 없나니 30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31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딸 시온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 있도다 살육하는 자를 인하여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 』


◈ 재난의 내용은


① 혼돈하며 공허하고

② 빛이 없으며

③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④ 사람이 없으며

⑤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⑥ 성읍이 무너졌으며

⑦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흑암할 것이라

하심과 같다.


27절 :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이 내용은 70년 후에 순과 같은 스룹바벨 단체를 일으켜 귀국시킬 것을 예언한 것이다.


예레미야 29:10~11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요한복음 14:26~2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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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1_예레미야18장

[수 오후 설교예레미야 18장 : 하나님의 절대 권력 2018/04/11 Wednesday Afternoon

2016년 9월 14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18장

제목 : 하나님의 절대 권력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로마서 9:21)


예레미야는 토기장이 집의 비유와 레바논 눈(雪)의 비유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유다의 변절을 강조한다. 그 동안 선지자는 여러 각도로 유다의 패역에 대해서 외쳤지만 유다 민족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계속하여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았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동족백성에게 실생활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토기장이 비유와 레바논 눈의 비유를 베풂으로써 그들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라는 걸 실감나게 깨닫도록 영감적인 교훈을 던져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반응은 더욱 더 포악해질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선지자는 하나님께 공의의 심판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심판호소 역시 선지자의 개인적 감정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대로 인도함을 받은 결과일 뿐이었다.


1. 토기장이의 비유와 하나님의 큰 권세 : 1~10


『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가라사대 2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리리라 하시기로 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


하나님께서는 당신 뜻을 인간 세계에 드러내실 때 실물로 비유하며 가르치시는 경우가 많다. 우리로 하여금 더욱 분명하고 확실하게 깨달아 교훈받도록 하기 위함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다. 말씀이란 '생명'으로 인간의 생활과 역사(歷史)를 떠나서는 그 본질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로 하나님은 영적 존재인 인간들이 몸담고 있는 실생활 속의 비유를 통해 당신의 뜻 드러내기를 즐기신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내재(內在)하시는 주님은 융통성 있는 교재(敎材)들로써 우리들을 깨우치시는데, 세상에 가득한 피조물은 모두 다 택민들을 교훈하기 위한 교보재 역할을 한다. 피조물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을 '자연계시'라 한다.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하신 것은 그저 이론으로 말씀하시는 것보다 그로 하여금 실제 견학(見學)하여 강한 인상과 교훈을 받아 여호와의 뜻을 대언케 하려는 데 목적을 두신 것이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보든지, 그것을 하나님의 교육재료로 여기며 자세히 견학할 줄 알아야 한다. "녹로"는 진흙으로 오지 그릇을 만들 때에 사용되는 도구(틀)이다.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하나님의 종은 하라면 해야 한다. 종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에만 하늘의 역사는 이루어진다.


예레미야 13:1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예레미야 19:1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이사야 20:2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예레미야 33:2~3 "일을 행하는 여호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가 가 보았더니 토기장이가 녹로를 돌리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발걸음을 옮기는 순종을 통해서만 교훈 얻을 장소에 도달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요나는 주의 뜻에 불순종하여 '욥바'로 내려갔다가(요나 1:3) 물고기 뱃속에서 뜨거운 맛을 본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권세 앞에 굴복하여(요나 2장) 주님이 명하신 '니느웨 성'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주님의 뜻은 언제나 인간의 순종과 더불어 계시되는 법이다. 매맞고 코 꿰어 끌려와 일하는 것보다 능동적으로 괴롭고 힘든 일에 맞서 기쁘고 즐거운 태도로 순종한다면 순종자에게도 큰 축복이 임하는 법이요 하나님께도 영광이 돌려지는 법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한복음 15:14) 하셨고,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사도행전 26:19)라 말함으로써 순종하였다. 바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언제나 하늘의 명령에 빨리 순종, 기쁘게 순종, 절대 순종하였던 것이다.


『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때를 따라 이루어지되 만대를 명정하신 대로 이루어진다(이사야 41:4).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그 피를 이어받아 태어나는 모든 혈통이 죄인으로 출생하게 되었지만(시편 51:5), 예수님 보혈의 피(새 언약)로써 타락한 인간의 영혼을 신창조해 주시므로 영혼구원은 기독교의 1차적 본질이 되었다(고린도후서 5:17, 4:16. 베드로전서 1:9,24). 그러나 자범죄를 덮이움 받고 영혼의 소성을 얻어도 육체가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창세기 3:19)만은 아직도 모든 인류에게 역사하고 있다. 중생받은 자들에게도 말이다! 그러나 육적 사망도 범죄로 말미암아 온 것이 확실하므로 기독교 종말에는 원죄(=패역)까지 뿌리 뽑아 그 육체를 예수님과 같이 죽지 않는 몸으로 만들어주는 새 일의 역사가 있게 된다(이사야 42:9), 이 일(새 일)이 다 고해지고 그 말씀으로 척량을 받게 되면 척량받은 자의 육체가 신창조되어(이사야 43:1) "땅에서 구속받아 처음 익은 열매"인 144,000명이 나타나고(계시록 7:1~8) 이들이 철장권세로 역사하여 세계를 돌아 북진하면 능히 셀 수 없는 흰무리가 딸려 나와 촛대교회의 구원 역사가 마무리된다(계시록 7:9~13). 그 후 세계는 짐승 손에 붙여져 42달이 지나가며, 그 끝에 주님과 144,000명이 지상에 강림하여 아마겟돈 전쟁으로 666을 몰아내므로 이 땅의 악(惡)은 제해지고 선(善)만 남아 저주가 물러 간 새 하늘, 새 땅 천년왕국이 창조되는 것이다(계시록 11:15. 이사야 65:17~24. ※ 예언서에는 2가지의 '새 하늘 새 땅'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하늘 새 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천년안식세계를 의미한다) . 144,000과 예비처 백성은 비록 몸의 형질과 영광은 다르더라도 영혼구원 위에 '몸의 변화', '몸의 구속'까지 이루어지므로 기독교 역사가 마무리된다는 것을 증명케 될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종들을 통해 말씀을 기록케 하신 궁극적 목적은 사망과 저주가 사라진 <에덴동산의 회복>이다. 지금은 영혼의 안식을 위해 해산수고할 때가 아니라 이 "땅" 위에서 펼쳐질 지상안식의 성취를 위해 해산수고할 시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간에 이루어지는 협력의 역사(로마서 8:28)도 지상안식(천년왕국)을 목적으로 기도하는 이들에게 강력히 역사한다. 우리는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이다(에베소서 2:3). 3위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 역사가 아니고서는 구원을 이룰 수가 없다(이사야 42:1~4 메시야 유월절 역사 / :5~8 성령의 오순절 역사 / :9~25 성부의 초막절 역사). 하나님은 길가의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는 무소불능하신 분이다(마 3:9). 이러한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간이란 거리의 진흙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욥기 10:9, 33:6. 이사야 29:16, 45:9, 64:8. 로마서 9:21). 그러므로 진토(塵土)인 인간은 평안할 때에 교만치 말아야 하며, 환난이 오더라도 절망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하나님 손에 들려 있는 진흙인 줄을 깨닫고 절대적인 겸비와, 주님만 앙망하는 절개있는 신앙을 파수할 따름이다(이사야 40:31). 그것이 토기장이(하나님) 앞에서 취할 진흙(인간)의 마땅한 태도이다.


『 5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6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


"토기장이""진흙"을 마음대로 주무를 주권(主權)을 가진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과 모든 국가들에 대해 절대적 주권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일러주신다(아모스 5:4, 6~). 우리는 여기 토기장이의 일하는 모습에서 깨달을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 종들에게 꿀 같은 교훈을 주어 먹게 하시며 창조목적(창세기 1:28)을 달성해 나가실 때 우리가 말없이 우리의 심신을 내어드려야 한다는 점이다. 피조물이 제 생각을 버리고 복종하는 것을 재료로 하여 조물주께서도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행사하시기 때문이다(이사야 43:13). 그분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어 놓으셨으며(마태복음 10:30), 국가의 흥망성쇠를 친히 주장하고 계시나(이사야 51:2) 성도의 순종과 복종이 밑거름 될 때에 즐겨 축복을 내리신다. 오병이어(五餠二魚) 없이도 먹고 남게 하실 수 있지만, 어린아이가 들고 나온 오병이어 위에 축복하시는 신이 하나님이시다. 이사야 40: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절대 주권자의 말씀이시다. 우리 종된 피조물은 이 분을 두려워해야 하며, 온유하게 순종해야 하며, 그분만 신뢰하는 겸손을 가져야 한다. 엄마 품에 매달린 갓난아기처럼 자신을 그분께 완전히 내어 맡겨야 한다. 여호와는 우리의 아버지라 하셨으며(이사야 64:8. 시편 68:5, 89:26), 주의 권세는 영원하다 하셨다(다니엘 4:34). 이러한 주(主)님께서 지금도 세상 만사와 모든 인간과, 이 글을 읽는 '나 자신'을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빚어가고 계신다. 아멘!


『 7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8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


백성이 회개할 때에만 소망이 있다는 것을 밝혀주신다. 유다 백성은 불원장래에 벌을 받으리라 선고(宣告) 받은 처지에 있지만, 그들이 회개만 하면 용서받을 소망도 있다고 하신다. "돌이키면"이란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진정한 회개'를 하라는 뜻인데, 단지 말뿐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 생활과 행동적 시정(是正)이 뒤따라오도록 돌이키라는 뜻이다. "나는 인간의 근본적인 돌이킴을 기뻐하는 신이라"는 의미에서 재앙 내릴 뜻이 작정돼 있더라도 얼마든지 "돌이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시며 백성에게 소망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진정으로 자기 죄를 깨닫고 마음을 찢어 통회하는 자에게는 들려도, 패역한 자들에게는 들릴 리 만무하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들을 교훈하실 때 거저가 아니라 "네가 악(惡)에서 돌이키려는 의지를 확정할 때 하나님인 나도 재앙 내릴 뜻을 거두겠다"고 말씀하신다. 신인(神人) 간의 관계가 계약적이고 상호교류적이고 대응적 관계임을 뜻하는 것이다. 인간 없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당신 홀로의 능력으로 새 시대를 창조하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의 기도를 받으시겠다 하신다. 능력은 홀로 갖고 계시나 그대로 이루어 달라고 청하는 성도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스겔 36: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고로 기도란 망하게 된 인간이 전능자시요, 구원자이신 여호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요, 축복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된다.


『 9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惡)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善)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


주님께서 어떤 국가를 건설하기로 작정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악(惡)을 행한다면 그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하신다. 이것을 볼 때 주님은 죄악과 타협하지 않는 신(神)이시다(시편 5:4). 악(惡)이란 "주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는 모든 것"이다(10절). 청종치 아니함이 멸망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사무엘상 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거역하는 것은 사술(邪術)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악(惡)을 행하는 자는 '긍휼과 사랑의 약속'에서 철저히 제외된다(시편 125:5. 에스겔 18:24, 33:18).


2. 하나님의 권고와 백성의 강퍅 : 11~17


『 11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베풀어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 길과 행위를 선(善)하게 하라 하셨다 하라 』


하나님께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항상 동일하시다. 죄악 행하는 자를 벌한다는 것은 알파 때부터 내려오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러나 오늘의 경고는 "너희가 죄악을 행치 않을 수 없는 것을 내가 아노니, 다만 회개하라!" 하시는 사랑 어린 경고인 것이다. 선을 행할 수 없는 우리에게 회개하라는 말씀보다 귀한 말씀이 또 있을까?(마태복음 4:17). 메시야 사명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입술을 여실 때 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였다. 이미 망하기로 작정된 죄악을 쌓아놓은 인간이 회개하기를 거부(拒否)할 때에는 멸망밖에 준비된 것이 없다.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잠언 16:20)라 하였고,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언 28:13) 하셨다. 하나님은 죄인이 돌이켜 돌아올 때에 기뻐함으로 그 배역을 고쳐주시는 신이시다(예레미야 3:22, 7:3. 이사야 55:7).


『 12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는 우리의 도모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


유대인들은 "회개하라"는 사랑의 경고를 헛된 말씀으로 여겼다. 이와 같은 악질적인 죄는 21C 교회 내부에도 뿌리 박혀 있는 고질적 죄악이다. 회개하면 살려주기 위하여 선지자를 보내셨건만 선지자의 외침에 "이는 헛된 말이라"고 조소하는 패역한 백성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구약의 패역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패역을 깨달아 보자!


예레미야 2:25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

열왕기하 6:33 "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이사야 57:9~10 "네가 기름을 가지고 몰렉에게 나아가되... 또 사신을 원방에 보내고 음부까지 스스로 낮추었으며 네가 길이 멀어서 피곤할지라도 헛되다 아니함은 네 힘이 소성(蘇醒)되었으므로 쇠약하여 가지 아니함이니라"


이렇게 패역한 자들은 여호와를 기다리지 않고 우상 따르기에 힘을 내며 말하길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리라" 한다(12). 등을 하나님께로 향하고(예레미야 7:24~) , 주를 청종치 아니하며(예레미야 11:8~), 마음이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습이 고발되었다(예레미야 23:17~ ). 이 같은 반역죄를 범한 자들은 북방 칼에 죽는다(이사야 1:19~20). 오늘날도 저 북방에 무신론 핵강대국 공산당 세력이 등장해 있는 이유는 기독교 안에 존재하는 위와 같은 패역을 심판하기 위함이다. 만일 11절처럼 "돌이켜 선하게" 하지 아니하면 기독교는 3대 화가 지나갈 때 살 길이 없다. 기독교는 가장 살쪘을 때를 조심해야 한다(신명기 32:15. 호세아 13:6).


다음은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이다.


다음

조용기 목사 "성경과 불경 가르침은 하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는 말씀이나 ‘마음이 곧 부처(心是佛)’라는 말씀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말입니다”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인 조용기(趙鏞基·사진) 목사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동국대 불교대학원 최고위과정에서 특강을 했다. 조 목사는 스님 불자 등 70여명의 청중 앞에서 50분간 강연했다. 개신교 보수교단의 핵심인물인 조 목사가 불교 관련 모임에서 강연한 것이 처음인 데다 강연내용도 파격적이어서 주목된다. 조 목사는 “동국대의 제의를 받고 무척 망설였으나 <종교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승낙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선(禪)불교를 신봉해 장남인 자신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불교문화 속에 살았다고 털어놨다. “1953년 폐병을 앓아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우연히 누님 친구의 소개로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예수와 인연이 닿은 것이지요.”


그는 <불교가 한국의 장자 종교>로서 포용력을 갖고 타 종교를 대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종교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저는 케이블 불교TV를 자주 봅니다. 기독교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을 불교 강의를 들으며 깨닫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병조 교수(동국대 윤리문화학과)의 강의는 쉽고 재미있어 빼놓지 않고 봅니다.”


내년에 정년(70세)을 맞는 조 목사는 은퇴 후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밖으로는 해외선교에 주력하고 안으로는 <종교간 대화>를 통해 상호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2004.5.12 >



신명기 32:15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호세아 13:6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이것이 교계적으로 파장을 일으키자 조 목사는 주일 설교에서 나름대로의 해명을 하였으며, K.N.C.C. 대변지인 국민일보에는 다음과 같이 기사가 실렸다.


“구원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존재”…불교대학원 강의 조용기목사<2004.05.16>


16일 주일예배 설교에 앞서 "불교경영자 최고위과정에서의 특강 발언 중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부분이 있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음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최근 동국대 불교대학원 불교경영자 최고위과정 초청 특강내용과 관련,강연내용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르게 보도됐다면서 16일 주일예배 설교에 앞서 진실을 밝혔다.


조 목사는 “내가 마치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식으로 언론에 비쳐졌는데, 결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그들 앞에서 예수께 기도해 마음의 평안과 병고침받은 것을 전했다”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이 있을 뿐이며,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곳에 갔다”고 밝혔다. 조 목사는 또 “처음에 참석을 상당히 주저하면서 기도하다가 ‘무엇을 주저하느냐. 그곳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결정을 내렸다”며 “불교의 가장 중심부에 가서 그들에게 예수께 기도해 마음의 평안과 병고침받은 내용을 들려준 후,예수 안에서만 소망이 있고 소망을 얻으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게돼 축복을 받게 된다고 증거했다”고 설명했다.


조 목사는 “사람의 마음속에 부처가 있다고 하는 불교와, 천국이 우리 마음속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믿는 기독교가 모두 마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고 말했다”며 “그런데 그것을 마치 불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보도됨으로써 진실이 잘못 전달됐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전 교인을 향해 거듭 “구원은 죽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것 이외는 천하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진 적이 없다”고 강조했고, 교인들은 ‘아멘’으로 화답하며 조 목사에게 신뢰의 박수를 보냈다.


한편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부목사는 “비유를 통해 불교와 기독교의 유사점을 설명한 것은 ‘구원의 도’가 아니라 ‘형식적 유사성’에 관한 것이었다”면서 “이를 두고 ‘종교다원주의’ 등의 극단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강연의 원뜻을 바로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고 강조했다.


유영대기자 ydyoo@kmib.co.kr



우리는 조용기 목사의 강연내용을 접했을 때, 이것이 꿈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기사가 교계적인 물의를 일으킨 후 조 목사는 설교를 통해(사도행전 4:12) 오해에 대한 해명을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조 목사와 함께 초대받은 김수환 추기경과 강원룡 목사는 사도행전 4:12절을 인정하지 않는 가증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봉에 선 자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편 1:1~2). 조 목사는 이 말씀 앞에 두려워 떨어야 한다. 또한 발람의 교훈을 추억해야 할 것이다(계시록 2:14. 민수기 22~24, 31:8). 귀신의 소굴 불교계, 그것도 불교경영자 최고위과정에서 왜 김수환 추기경, 강원룡 목사와 더불어 조용기 목사 자신을 초대하였는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75만 성도의 대표인 조 목사는 자신이 귀신의 초대에 휘말린 것인지, 진정 복음 전파를 위하여 바울과 같은 정신(고린도전서 9:19~23)으로 그 자리에 간 것인지를 분별하고 후자가 아니었다면 회개해야 한다. 귀신의 초대에 응하는 것자체가 발람의 길인 것을 왜 모르는가?


조 목사는 설교를 통해 즉시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해명함으로써 이 문제를 가라앉혔지만, 문제는 K.N.C.C.의 여러 교단들과 천주교는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독선과 배타성을 버리고 타 종교와 대화하며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에큐메니칼적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국민일보는 K.N.C.C.의 대변지이고, K.N.C.C.는 무신론 공산당이 장악한 W.C.C.의 산하단체임을 볼 때, 이번 동국대 강연 관련 발언은 어물쩍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종교간 대화를 통해 상호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한 조용기 목사의 발언은 K.N.C.C.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며, 이는 W.C.C.가 수십년간 주장해 온 바이다. 조 목사 자신은 해명을 통해서 책임을 회피하였다 하여도 자신이 몸담은 K.N.C.C.와 천주교의 행보는 조 목사의 해명과 정 반대의 입장일 것인데, 조 목사는 과연 가증한 K.N.C.C.를 탈퇴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묻고 싶은 바이다.


『 13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가 열방 중에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


주께서는 자기 백성의 범죄를 가리켜 너무 이상하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은 열방 중에 어느 나라도 받지 못한 은혜와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버렸다. 첫 아담이 저지른 것과 똑같은 죄악이다. "처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적 신부로 정(定)해진 바, 정결함을 간직해야 할 '영적 처녀'이다. 이토록 귀한 선택과 사랑을 받은 처지에서 늘 항상 감사로 할렐루야를 돌리지는 못하고 도리어 택함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너무나도 모순되며 가증스럽다. 고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괴악(怪惡)한 행태를 지적하시기 위해 자연계(自然界)의 사리(事理)를 들어 꾸짖으신다. 종 예레미야가 기록한 이 자연계시는 일곱 나팔이 이루어지는 기독교 종말의 성도들에게 다시 예언될 교훈이다(계시록 10:7,11).


『 14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반석을 떠나겠으며 원방에서 흘러 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


"레바논의 눈이 들의 반석을 떠나지 않는다" 함은 늘 항상 변함없이 레바논산 꼭대기를 뒤덮고 있는 흰 눈의 모습을 말함이다. "들의 반석"이란 말은 레바논산의 별명(別名)이다. 이렇게 레바논산의 눈은 사시절(四時節) 그 자리를 뜨지 않으나, 이스라엘 민족은 너무도 쉽사리 하나님 앞을 떠나 우상과 이방 강대국가에게로 붙어버린다(에스겔 17:12~16). 소위 선민(選民)이라 불리우는 백성이 자연만도 못하게 변질된 것은 뼛골 속에 박혀 있는 원죄 악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6,000년 묵은 이 악질적인 패역(구약선민과 오늘날 기독교는 거울과 실물 관계)을 새 일 교훈으로 고쳐서 그 근본을 개조시켜 놓겠다고 약속하셨다(이사야 19:19~22, 42:9~, 43:1~3, 57:18. 예레미야 31:21~22. 호세아 14:3~4).


이 일은 계시록 10:7~11, 11:1~12절 말씀과 같이 1,260일(전 3년 반)간 다시 예언하고 증거마친 자들(144,000)이 3일반 죽었다가 생기를 받고 공중으로 들림받을 때 비로소 성취되는데, 이들이 곧 6,000년 만에 원죄의 패역까지 제함받는 최초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바울, 베드로와는 분명 다른 계통의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하였지만(로마서 8:23), 몸의 구속을 보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도요한은 144,000 명에 대하여 묵시받아 분명하게 기록하기를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라 표현하였다. 자신도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요, 같은 사도 계통인 베드로, 바울도 거듭난 자들임을 너무도 잘 아는 요한이 어찌하여 그 노년에 "사람 가운데서 구속 받아 처음 익은 열매"가 훗날 등장하리라는 계시를 받았겠는가? 이는 이 예언의 주인공들은 분명 사도단체인 그들과는 다른 형질을 가진 자들이요, 영혼의 구원 위에 그 육체까지 구속 받은 자들이라는 걸 암시해주는 대목이다(계시록 14:1~5).


기독교 오메가의 역사에서 <육체구원>을 빼놓으면 할 말이 없다. 그러한데도 육체구원만 말하면 자칭 장자총회라 이름하는 교단에서는 '이단'이라고 정죄하기에 바쁘다. 진짜 이단은 육체구원이 이루어질 때 그것을 반대하다가 환난에서 육체를 심판당하는 세력일 것이다. 이미 육체구원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 단체는 이단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몸의 구속' 곧 3대화로부터의 육체보호, 몸의 개조를 144,000명의 역사와 승천, 예비처에서의 흰 무리 보호 등의 성경적 증거로 외치는 자들은 진리의 종들이지 이단이 아니다. 이 역사는 영혼과는 별개의 '육체'와 관련된 사건들이다. 기록된 축복을 놓치지 말자 하는 것은 이단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태복음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예수님께서 땅에 계실 때 친히 '육체구원'을 강조하신만큼, 이러한 일이 성취될 때를 사는 우리는 '영혼구원' 위에 '육체구원'이 있다는 것을 부지런히, 그리고 담대히 전해야 한다.


『 15 대저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 길 곧 그 옛 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케 하여 』


"그 옛 길"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바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돼 온 참된 신앙정로를 가리킨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모세의 율법과 시편과 선지서에 기록된 진리를 버리고 "곁길" 곧, 우상숭배의 도(道)를 따라갔다. 우상의 길은 "닦지 아니한 길" 같아서 사람을 허무한 데로 인도할 뿐이다. 사람이 '닦지 아니한 길' 곧 '우상의 길'을 걷는 것은 탐심 때문인데(골로세서 3:5), 인간의 맘 속에 주님을 경외함이 없을 때에 이 길을 가게 된다(예레미야 2:19). 시편 9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인정할 때 주님은 우리를 곁길로 빠지지 않게 보호해 주신다. '우상의 길'로 가는 것은 자기 길을 굽게 함이요(예레미야 3:21), 거짓된 것을 신뢰함이다(예레미야 13:25). 예레미야 14:10절에서는 이 길을 "어그러진 길"이라고 표현하셨다. 우상은 망령되이 만든 것이므로(예레미야 10:15, 16:19) 부어 만든 우상을 일컬어 '바람'이라 하셨다(이사야 41:29. 호세아 4:17~19, 12:1). 하나님은 주(主)를 버리고 우상을 섬긴 시일대로 벌을 내리겠다 하셨다(호세아 2:13).


백성이 멸망의 이 길을 가게 되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거짓 지도자'이다. 탐심을 쳐서 예언해 주어도 부족할 판에, 백성을 율법의 정도(正道)로 인도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의 다닐 길을 훼파하며 미혹케 함으로서 멸망당하게 하는 자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와 지도자들이다(이사야 3:12). 이사야 9:16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오늘날 K.N.C.C.나 천주교의 머리된 목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에큐메니칼적인 설교는 이방종교인들에게는 환영 받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 설교는 분별력 없는 양 떼들을 사망으로 떨어뜨리는 쑥물인 것이다. 말라기 2:8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만일 오늘날의 기독교가 이 다시 예언하는 말씀을 듣고도 회개치 않는다면 심판하러 내려오는 원수의 칼 앞에 쓰러지게 될 것이다.


『 16 그들의 땅으로 놀랍고 영영한 치소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 머리를 흔들리라 17 내가 그들을 그 원수 앞에서 흩기를 동풍으로 함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


본 구절은 선민이 범한 죄의 결과(16절)로 받을 벌에 대한 예언이다.


"그들의 땅으로 놀랍고 영영한 치소가 되게 하리라"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인데도 불구하고(민수기 13:27), 이 땅이 놀랄 만큼 황폐하여 행인들의 "치소거리"가 되는 것은 그 땅에 거주하던 선민들의 죄값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좋던 땅이 그렇게 비참하게 된 것을 그밖의 어떤 원인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원수 앞에서 흩으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바벨론이 유다를 침략케 하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새 언약이 성취되므로 펼쳐진 은혜시대에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는 자범죄를 사함 받고 성령의 은사 곧 단비를 받아 (영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말을 맞이하여 예언의 법을 범하니 바벨론 통치와 같은 후 3년 반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민에게 그 땅을 주실 때에도 인간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기적, 곧 하나님의 간섭으로 된 것이었고, 그들이 범죄하여 그 땅을 도로 빼앗기는 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으로 되는 것이다. 주시는 이도, 빼앗는 이도, 행하시는 이도 살아 계신 하나님뿐이시다(욥기 1:21).


사무엘상 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예루살렘이 망하는 모습을 말씀하실 때


무더기가 되고(예레미야 9:11)

지나가는 자마다 모욕하며(예레미야 19:8)

놀램과 치소가 되고(예레미야 25:9)

원수 앞에서 흩어질 것이라 말씀하셨다(예레미야 13:24. 신명기 28:25, 64~).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돌이키는 기간을 주어도 돌아오지 않던 백성들을 '재난의 날'에 결코 돕지 않겠다는 말씀이시다(17절). 그 이유는 ① 백성이 등을 하나님께로 향하고(예레미야 2:27), ② 교훈을 하여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예레미야 32:33). 그러므로 하나님 역시 전쟁의 환난이 올 때 백성이 아무리 부르짖어도 외면(外面)하시겠다는 선포이다. 백성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 청종하기를 거부하였으나 주님은 길이 참으사 용서하시며 돌아오기를 고대하셨어도, 백성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조롱뿐이었다. 그래도 하나님은 긍휼로 대하사 또 한 번 살려주시기 위해 종을 통해 마지막 경고를 하신 것이나, 그 최종적인 경고의 말씀조차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도 백성을 버리겠다고 선포하신 것이다.


구약 종말의 이 원리는 인간 종말인 지금도 동일하다. 현재의 피로 사신 교회들이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 곧 "다시 예언하라"(계시록 10:7~11)는 말씀을 들은 체 만 체하며 등지게 될 때, 필경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등지시리라는 것이 오늘의 말씀이 교훈하는 바다. 예레미야와 같은 종말의 선지 144,000명의 슬픈 경고를 무시하는 교회는 3대 화가 올 때에 아무리 부르짖어도 예수님께 버림을 받고야 말 것이다.


스가랴 7:11 "청종하기를 싫어하며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12 그 마음을 금강석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神)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怒)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 1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14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다음 구절들도 참조해 보시라 ☞ 역대하 12:5. 레위기 26:23~24. 말라기 2:9. 이사야 65:12, 66:3~4. 예레미야 11:10~12, 25:4~9, 44:4~6. 에스겔 8:16~18).


3. 모살자(謀殺者)를 위한 선지자의 기도 : 18~23


『 18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모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아무 말에도 주의치 말자 하나이다 』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할 뿐 아니라 선지자의 예언 활동을 저지(沮止)시키려고 대중까지 충동질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운동은 오늘날에도 벌어질 것이다.


① 하나님보다 인간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들이 서로 "오라"고 한 것은 타락한 인간들의 힘을 모아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사단의 궤휼인 인본주의요, 협상주의이다.


② 제도적(制度的) 종교장치 속에서 부패한 "제사장과 소위 지혜자들과 거짓 선지자"의 말을 빌어서, 참 선지자인 예레미야의 예언 운동을 제지하고자 하는 것이다(예레미야 28장). 시대마다 선민이 타락할 때는 하나님의 참된 종을 부패한 기성 교권(敎權)의 지도자들이 가로막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기성 지도자층(旣成 指導者層)은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때에는 그들이 거짓 스승의 운동을 막아주는 일도 있었고, 참 종들을 위기에서 살려준 적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외식자들은 신앙과 의리로 형통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간사한 말로서 의인을 훼방하여 이기고자 한다(시편 12:4). 심판기에는 참 선지자가 많은 박해를 당하는데, 원인은 악마의 득세이다. 악의 종들은 먼저 악의 도모를 이루기 위한 거짓단체를 만들고(예레미야 11:19. 시편 21:11. 이사야 32:7) 그 단체의 힘을 입어 악한 꾀를 도모한다(시편 1: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특자의 계교를 패하게 하시므로(욥기 5:13) 최종적인 승리가 참 종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는 언제나 참 선지자를 죽이려 하며(예레미야 26:11), 그 혀로 심한 악을 꾀한다(시편 52:2. 스가랴 14:12).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음을 깨닫고 주님 주신 혀를 생명의 길에만 사용하자(잠언 18:21. 이사야 11:3~5. 계시록 11:5~6).


『 19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로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옵소서 20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선한 말씀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


지금부터는 대적들을 처벌해 주시기를 청하는 예레미야의 기도이다. 이것은 기도인 동시에 예언이다. 선지자의 기도 중에는 하나님의 뜻 아닌 것이 끼어 있는 법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만대를 정하셨다(이사야 41:4). 하나님께서 그의 대적들을 처벌하시겠다고 하신 것은 알파 때부터 이미 있어 온 예언이다.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벌하시려는 분노를 돌이켜 주실 것을 기도한 바가 있었다(20절 하반).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대적들(유대인들)이 끝까지 회개치 않고 도리어 "악으로 선을 갚고자 하여" 그를 모해(謀害)할 운동을 전개함에 따라(18절), 예레미야는 이제 하나님이 선포하신 그 본래의 예고(豫告)대로 그들을 벌하여 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선지자의 기도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예언할 수 있다. 하나님은 늘 참 선지자를 돌아보신다.


의인을 시험하사 폐부를 살펴 보신다 하셨고(예레미야 20:12)

주께서 탄식을 들으신다 하셨으며(시편 55:16~17)

생명을 보존해 주시겠다 하셨다(시편 64:1).


예레미야와 더불어 다투는 이 백성은 악으로 선을 갚는 백성들이다(시편 35:12, 38:20. 잠언 17:13. 요한복음 15:25). 백성들은 이토록 반역하였지만, 예레미야는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다하였다(예레미야 7:16, 14:9. 시편 106:23. 에스겔 22:30~31).


『 21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붙이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사망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22 주께서 군대로 졸지에 그들에게 임하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취하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치려고 올무를 베풀었음이니이다 』


어느 시대에나 참 선지자를 대적함은 곧 하나님을 대적함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언자(代言者)로서 만전(萬全)을 기(期)하는 사역을 행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인 사감(私感)을 발하여 원수를 맺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선지자는 대적들의 구원을 위하여까지 기도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예레미야를 대적했으니, 그것은 악으로 선을 갚는 행동이었다. 그들의 행위를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된 자들로서 죄악이 노골화(露骨化)된 자들이다(이사야 3:8~9). 이런 때 참 선지가 할 수 있는 기도는 본래 작정하셨던 바대로 "저희를 벌하시옵소서" 하는 기도밖에 없다. 이 기도대로 하나님은 움직이셨고 이 재앙 곧 "기근""전장"으로 인하여 그들의 자녀들은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예레미야 39:1~). 이것은 참으로 비참한 형벌이다. 그들이 이러한 형벌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분신인 선지자를 죽이려 한 죄악 때문이다. 어느 시대이건 선지자를 대적한 죄는 결코 면죄받을 수가 없는 법이다(계시록 11:5). 하나님은 당신의 원수된 자들의 가정은 반드시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셨다(예레미야 11:23. 계시록 2:20~23. 말라기 4:1).


『 23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시며 그 죄를 주의 목전에서 도말치 마시고 그들로 주의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주의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종인 자신을 죽이려 하는 유다 민족을 공도(公道)로써 징책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예레미야 입으로 이러한 기도를 시키신 것은 돌이키면 살겠지만 회개치 않고 끝까지 대적할 때는 그 악을 사할 수 없는 결론으로 가게 됨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느헤미야 4:5. 시편 35:4, 59:5). 언제나 불택자들에게는 예언의 말씀(선지서)이 걸림돌이 되었으니, 오늘날도 그러할 것이다. 예수님 초림 시 불택자들에게는 '새 언약'이 심한 걸림돌이 되었었다. 바울과 베드로가 예언서를 짝 맞추어 '십자가의 도(道)'를 아무리 잘 전해도 불택된 자들은 도리어 사도들을 못박거나 목베어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 시에도 불택자들에게는 '새 일의 교훈'(사도들이 증거하고 남은 모든 예언)이 심한 걸림돌이 되니 이 도(道) 전하는 자들을 죽이기에 이를 것이다.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음녀의 손에 피가 묻은 것(계시록 17:6)은 거짓된 교권이 총동원되어 짐승의 힘을 빌어 참 종들(144,000)의 피를 흘릴 것을 예언한 것이다.


본 제단에는 수 많은 전화가 걸려 온다. 감사와 격려의 전화, 상담 및 문의전화, 훼방과 저주의 전화 등이다. 그 중 훼방하는 이들이 말하는 주된 내용인즉 "구약은 지나간 역사인데, 왜 구약 예언서를 이 시대에 들먹이냐"는 것이다. 그들이 이러한 용감한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은 마태복음 11:13절을 크게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율법과 선지서는 요한까지이니 이 시대에 율법과 선지서를 들먹이는 것은 100% 이단이라는 것이다. 크게 오해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결론이다. 마태복음 11:13절의 참뜻은 짝이 되는 다음 말씀을 통해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누가복음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요한을 마지막으로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가 마무리되고, 예수님의 때로부터는 이전 선지자들이 고한 모든 예언이 성취되는 시대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고로 "율법과 시편과 선지서의 글"은 요한 때에 끝났으니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는 글이 아니고, 바로 예수님 초림 때부터 예수님 재림 때까지 쉬지 않고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성도의 나라' 곧 아름다운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기까지 율법과 시편과 예언서의 말씀은 계시록과 더불어 쉴 새 없이 이루어진다.


같은 성경 말씀을 놓고도 누구는 오해하여 소경이 됨을 볼 때 두려움을 느끼며, 누구는 참 뜻을 깨달아 주의 사업에 매진하게 됨을 볼 때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오직 택자만이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긍휼을 받아서 영, 육 간에 완전한 구원을 얻게 되고, 또한 큰 환난에서 가족까지 구원을 얻어 세세토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성경에 기록된 축복을 차지할 자는 기록된 모든 예언이 주 재림의 날까지 쉬지 않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굳게 믿는 자들일 것이다. 아멘!


예레미야 23:20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예레미야 30:24).


다니엘 10:14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저 이 이상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


미가서 4:1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이사야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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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1_D_예레미야03장

[수 새벽 설교예레미야 03장 : 교회의 간음죄 2018/04/11 Wednesday Dawn

2015년 5월 23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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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3장

제목 : 교회의 간음죄


1. 세속에 물든 죄 : 1~2


『 1 세상에서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본부가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않겠느냐 하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2 네 눈을 들어 자산을 보라 너의 행음치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


본 구절은 신명기 24:1~4절의 말씀을 예레미야 시대에 다시 선포한 것이다. 유다 민족은 하나님을 떠나 많은 우상을 섬겼으니 그것이 곧 음행이었다.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오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보이는 대로 읽으면 안 되고, 속뜻을 읽어야 한다. 이는 무서운 율법의 명령이 아니고 지극히 은혜로운 말씀이다. 요한일서 4:16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우리는 다 죄 많은 존재인데, 드러난 죄보다 드러나지 않은 죄의 수효가 더욱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 죄악을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넓고 깊고 풍성하시다(이시야 86:15, 130:7. 로마서 2:4).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로마서 11:29). 하나님은 이 크신 긍휼 자비로 (구약 때도, 오늘날도) 세상 풍속에 빠진 회복불능의 죄인들에게 "그럴지라도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자산"은 보통 나무가 없는 벌거숭이 민둥산을 가리키는데, 검붉고, 벌거벗은 산이라는 뜻이다. 영적으로는 생명이 없는 죽은 산을 의미한다. 교회란 생명수가 솟아나는 샘터여야 하는데, 교회가 검붉은 사단이 활동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는 뜻이다. "눈을 들어 자산을 보라"는 것은 모든 가증한 우상들의 터전이 되어버린 이스라엘(교회)을 잘 살펴보라는 뜻이다. "길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린 것"은 성민(교인)의 우상숭배 모습이 마치 창기의 모습과 같다는 뜻이다.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로마서 2:4) 이러한 자들이 모여 거대교권을 형성하여 '짐승'을 신랑 삼다가 멸망할 것이니, 이것이 곧 오늘날의 '창기'로서, 계시록 17장의 '음녀'이다.


구약의 우상은 깍아 만든 형상이었으나, 신약의 우상은 어떤 형상보다도 더 무서운 영적 우상이니 침투방법이 내적이며 사상적이다. 이 시대가 지상축복과 전쟁방지라는 '탐심'으로 인해 마귀의 사상을 용납해 준다면 이것이 곧 우상숭배가 된다(골로세서 3:5). 창세기 1:28절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분명 "만물을 다스리라" 하셨는데, 다스리지 못하고 도리어 피조물을 두려워하거나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의뢰하거나 사랑한다는 것은 교회가 살이 쪄 전적으로 타락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사랑이 피조물에게로 향해서야 되겠는가? 사랑을 오용(誤用)하는 죄, 그것이 곧 음행이다.


2. 선민이 정욕을 좇음 : 3~5


『 3 그러므로 단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4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소시의 애호자시오니 5 노를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두시겠나이까 하지 않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


불순종의 죄로 인해 징계를 받으면서도 회개치 못하고 계속하여 파렴치한 범죄를 행하고 있는 백성의 모습... 인간 속에 뿌리박힌 '패역'을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아, 이것이 내 모습이로구나!" 하는 자는 복 받은 자요, 아무런 감각이 없는 자는 감추고 있는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어서 회개해야 살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기 마련인데(잠언 3:11. 히브리서 12:6), 일례로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심하게 우상숭배를 한 고로 3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은 일을 들 수 있다(열왕기상 18장. 야고보서 5:17~18). 택민에게 임하는 모든 징계는 깨달으라고 내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예레미야 시대에도 우상숭배의 죄로 인하여 유다 민족의 땅에 단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진 것이다. 구약 때에는 이처럼 육적으로 재앙이 내렸지만, 종말에는 영적으로 말씀의 단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혼곤한 재앙이 임하게 된다.


아모스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음녀화된 기독교에 영적 재앙인 말씀의 기갈이 오게 되었으므로(1958년 3월~현재), 지금 아무리 계시록을 전해도 들을 귀가 없다. 계시록 9:1~2절 같은 영적 밤중인 '시련기'가 온 것이다. 악마는 득세하고 참 종들은 핍박을 당하고 있는 때가 지금이다. 달리 말하면 숨어서 울고 있는(에스겔 9:4) 주의 종들을 이 말씀으로 찾아내야 할 시기가 이때라는 것이다.


하박국 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바로 지금이 '북방환난'을 고해도 믿지 아니하는 시대이다.


짐승을 탄 음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도 창기의 낯을 가지고 기탄없이 범죄하고 있다(W.C.C. 로마가톨릭 사상은 이미 말씀의 범위를 이탈한 상태이다 - 구약의 사마리아와 유다가 범죄할 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으로 심판을 받았듯이, 이사야 선지서에 예언된 이사야의 작은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가 나타날 때 - 비천한 <스룹바벨>의 머릿돌이 나타날 때 - 종말 시대에 빗나간 이스라엘의 두 집, 곧 가톨릭과 개신교 단체는 예언의 말씀으로 인하여 거치고 넘어지게 된다 하셨다 / 이사야 8:14 ). 저들 협상하는 무리의 도모는 폐해진다 하셨고, 그 사상도 무효라 하셨다(시편 33:10). 하나님은 지혜 있다 하는 자들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자시다(고린도전서 3:19).


무신론 북방 공산정권과 결탁되어 활동하는 종교는 창기가 틀림없는 것이니, 비진리의 정권과 협상하는 W.C.C.의 세력은 짐승을 탄 단체로서 짐승을 탄 음녀의 세력이 틀림없게 된다(계시록 17:3). 유대교회는 재앙을 당하면서도 아비 된 자 하나님이 공의의 노(怒)를 품고 책망하실 때 그 아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도리어 외식하는 경건(4~5)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사실 그들의 아비는 마귀였다 - 요한복음 8:38~44) 노를 멈추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못된 자식은 매가 무서워 빌지만 참된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사실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는 법이다. 우리의 회개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픈 가슴을 생각할 때 터져나오는 것이라야지, 계산적인 회개여서는 안 된다(하나님을 경외하고 지옥의 존재를 인정하여 두려워하는 것은 정상적 신앙이다. 그러나 지금은 성부께서 성자에게 주신 계시록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살리고픈 사랑)을 헤아려 2000년 전의 유대교처럼 되어버린 기독교 백성에게 본질적인 회개를 강권해야 한다. 이것이 다시 예언이다).


3. 선민이 우상을 섬김 : 6~10


『 6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네가 배역한 이스라엘의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7 그가 이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오히려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 패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 쫒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9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요시야 왕 때에 북 이스라엘이 배역하고도 회개치 않은 사실을 남쪽 유다 나라는 잘 알고 있었으며(6~7), 또한 분명 이스라엘의 징계받는 모습까지도 친히 목도한 상태였다(B.C. 721~ 호세아 왕 9년에 앗수르에게 사마리아 패망 / 열왕기하 17:6~).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회개치 아니하고 계속하여 열성을 내며 우상을 숭배한 사실을 책망하고 계신다. 사마리아에게는 "배역" 유다에게는 "패역"이라 칭하신 이유가 여기 있다. 하나님은 '한 등불' 유다를 교훈하시기 위하여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 모든 말씀을 대언케 하고 계신다(B.C. 622년경).


이 말씀에 담긴 교훈은, 타인(他人)이 벌 받는 모습을 지켜볼 때 '나 자신'이 바로 그 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인 줄을 알고 철저히 회개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4. 회개하면 새 땅 회복을 주심 : 11~18


『 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패역한 유다보다 오히려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 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이방신에게 절하고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1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열방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치 아니할 것이며 18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함께 이르리라 』


북쪽 이스라엘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소망을 주시면서 두 번이나 선포하셨다(12, 14). 죄인에게 있어서 아무런 조건도 없이 "돌아만 와 달라"고 하는 말씀은 결코 듣기에 역스러운 것이 아니라 도리어 환영해야 할 자비로운 말씀이다(고멜을 찾아오는 호세아). 그렇다면 이 말씀은 이 시대의 영적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이와 같은 자비를 소망으로 삼고 협상운동의 죄에서 하루 빨리 돌이켜야 재림의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교훈이 된다. 이 시대에 진정한 사명자의 자격은 구약의 모든 역사와 예언을 읽고 종말의 교회를 향해 담대히 다시 예언할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사명이 있는 자에게는 예레미야서가 '귀한 책'이요,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단지 '구약 책'이다.


14~18절에 계속하여 "돌아오라"는 소망의 말씀이 뒤따르고 있다.


①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하시며 소망을 주고 계신다(14) - 성경에는 하나님과 교회를 아내와 남편 사이로 말씀한 구절이 많다(이사야 54:5. 마태복음 25:1~13. 에베소서 5:22~33. 예레미야 3:20, 31:32).


②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권하시되 그들을  단체로 취급하시기보다는 개개인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어조로 다시 시온으로 데려오겠다고 약속하신다. 얼마나 은혜롭고 사랑이 담긴 예언인가! 이 예언은 1차적으로는 70년(예레미야 25:11, 29:10. 다니엘 9:2)이 마쳐지면 바벨론에서 스룹바벨 총독을 중심으로 알곡 한 알갱이 한 알갱이가 모여서 고토로 귀국하여 예루살렘을 회복할 것을 뜻한 예언이다(많은 이들이 바벨화되었으나, 택한 소수는 고토로 귀환되었다). 구약종말에 있었던 일은 모두가 신약종말에 살아 있는 교훈이 된다(이사야 46:10).  따라서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하신 대로 신약 종말의 영적 이스라엘 중에서도 그리 많지 않은 남은 자가 회복된 에덴(고토)에 들어가 천년왕국의 축복을 얻게 될 것을 알 수 있다(이사야 10:22).


5. 하나님의 초대와 약속 : 19~25


『 19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 중에 아름다운 산업인 이 낙토를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 20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떠남같이 너희가 정녕히 나를 속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1 소리가 자산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애곡하며 간구하는 것이라 그들이 그 길을 굽게 하며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이로다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경영과 반대로만 나아가는 이스라엘 자손의 범죄를 계속적으로 지적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녀로 삼으시고 낙토를 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섬길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다(19).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자력으로는 고칠 수 없는 '패역'이 남아 있어 "아내가 남편을 속이듯이" 다시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였다. 그들은 우상숭배의 장소 곧 "자산(검붉은산=청황색말)" 위에서 해결 받지도 못할 그들의 문제를 귀신에게 의뢰하며 지절거렸다. 따라서 이 큰 죄악의 결과로 수치를 당하고 수욕에 덮이었던 것이다. 우상 앞에서 지절거렸던 그들의 목소리는 원수 앞에서 죽도록 고통스러운 애곡(哀哭)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결과로 받는 당연한 보응이다(20~21). 그러나 예레미야가 살아 외치고 있으니, 이제라도 하나님의 "돌아오라"(호세아 14:1)는 자비의 음성을 따라 그에게로 간다면 앞으로 있을 북방 환난에서 남은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종말의 영적 이스라엘에 적용해 보자. 예수 피를 발라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 놓았더니, 하나님이 없다 하는 저 무신론 공산주의와 협상을 하며, 이방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망발(妄發)까지 하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린 이 죄악을 어떻게 씻을 수 있겠는가? 세상의 슬픔 중에서도 사랑을 저버리는 것만큼 상대에게 뼈아픈 슬픔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의 교회도 협상의 길(청황색말)에서 돌아서서 찢어진 마음으로 "돌아오라" 외치시는 그분의 말씀을 가지고(호세아 14:2. 계시록 1:3. 마태복음 24:4) 남편에게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 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23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의 떠드는 무리에게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허사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24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의 어렸을 때로부터 우리 열조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25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는 수욕에 덮이울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열조가 어렸을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


19~21절에서 회개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스라엘이 회개하는 내용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선지자 예레미야는 장차 북쪽 이스라엘에 회개운동이 있을 것을 보여주면서 남쪽 유다 나라를 부끄럽게 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예언한 것이다. 듣는 이들의 가슴 속에 "이스라엘은 회개하는데 어찌하여 유다는 회개하지 않는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암시적 예언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자녀 된 이스라엘에게는 이 외침 밖에 살아날 길이 없다.


요나도 고기 뱃속에서 다음과 같이 외침으로 물 밖으로 토함을 받아 사명을 완수했다.


요나 2:9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23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의 떠드는 무리에게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허사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참으로 허사인 일들이 '작은 산''큰 산' 위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다음 기사들을 통해 다시 예언하는데 참고하기 바란다.



교황, 기독교 통일 운동 촉구

(바티칸시티 AFP=연합뉴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2일 다른 기독교 종파와 대통합을 이룩하기 위해 가톨릭 수장으로서 교황권에 대한 논의를 벌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기독교 통일을 위한 기도 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강론에서 "로마 주교 임무의 본질적 부분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교황의 지상권(至上權)을 행사하는 형식을 찾아내기 위한 보편적인 성찰을 제의하는 일은 유익하다"고 말했다. 교황의 지상권과 절대 무오류성은 가톨릭, 정교회, 신교 간의 통일 운동에 오랫동안 장애로 여겨져 왔다.


교황은 기독교 통일 운동은 취약한 상태에 있으며 따라서 아주 세심하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하고 "그리스도는 하나의 교회를 세우셨으며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따르는 무리의 완전한 통일을 위해 쉼 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기독교 통일이 모든 기독교인들 간의 상호 이해와 존중 그리고 협력을 통해 촉진될 것"이라고 말하고 "교회일치 운동 과정에서 주께서 우리에게 분별력, 참을성, 그리고 믿음을 주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인용: 연합뉴스, 2003.01.23 *****



“동포는 굶는데 가축사료로 쓰다니…”

종교계, 인도적 차원 대북 쌀 지원 촉구

7대 종단·KNCC·여장로협 등 잇단 성명 (2002.8.7)


광복절을 맞아 종교계는 일제히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 재개를 촉구했다. 종교지도자들은 특히 최근 서해교전 사태의 충격과 아픔에서 벗어나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기 위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 기독교를 포함한 7대 종단지도자들이 대국민호소문을

발표하고 있으니 참으로 허사 아닌가!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소속 7대 종단 지도자들은 지난 7일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민족의 화해협력을 지속하고 평화와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시급히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대 종단지도자들은 호소문에서 “북한난민 문제의 합리적 해법을 찾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동포애적인 차원에서 북한의 식량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면서 “어떠한 정치적 견해나 경제적 이해득실에 얽매이지 말고 순수하고도 인도주의적 차원의 대북 지원이 이뤄질 때 남북간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주 ☞ 우리는 쌀을 보내주는데, 북한 주민들은 왜 자꾸 탈북을 하려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았는가? 어리석은 지도자들이여 속지 말라! 2004년 1월 우리 교회를 방문한 탈북자와 인터뷰를 해보니 북한 주민들은 남한이나 외국에서 지원해준 쌀을 한 톨도 구경 못했다 한다).


또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위해서는 쌀 지원을 시급히 재개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이러한 식량지원을 위해서는 민간차원의 지원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지원도 재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충격을 준 서해교전 사태는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을 다시 한번 인식시킨 문제였다”면서 “민족이 처한 전쟁과 긴장상태를 종식시키고 평화와 번영을 이루기 위한 민족적인 노력과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편집자주 ☞ 이 죄악 세상에서는 "끝까지 전쟁이 있을 뿐" 긴장상태의 종식도 없을 뿐더러 평화와 번영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이사야 2:4, 미가서 4:3절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새 시대에서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다).


7대 종단 지도자들은 “정견의 차이는 인정하되 민족의 통일을 먼저 생각하고 개인과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족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문화와 정치문화 형성을 위해 국민 모두가 노력하자”고 호소하면서 이를 위해 종교인들도 함께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편집자주 ☞ 하나님은 7대 종단 종교인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기도만을 들으시며, 또한 성경에 맞아야 들으신다. 7대 종단 지도자들의 행보는 시편 33:10, 56:5절 말씀에 꼼짝없이 잡히게 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총무 백도웅목사)도 같은 날 성명을 내어 정부의 비축미 가축 사료 전용에 대한 반대 입장과 함께 인도적 차원의 대북 쌀 지원을 촉구했다.

KNCC는 “수 천년 동안 우리 민족의 주곡으로서 민족의 생존과 깊은 관계를 가져 온 쌀을 가축사료로 전용 처리하는 것은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지적한 뒤 “현 정부의 정책입안자들과 정치인들은 굶주린 북의 동포들과 나누는 일에 지혜를 모아 주기 바란다”며 쌀문제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인 정책변화를 거듭 촉구했다.

KNCC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공동으로 지난 11일 새문안교회에서 개최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연합기도회’에서도 남북의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노력하고 인도적 대북 지원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여장로회연합회(회장 박재희장로)도 지난 7일 한국기독교회관 대강당에서 제4차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갖고, ‘재고 쌀’이 북한 동포에게 보내지도록 촉구하는 서신을 김대중대통령과 정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여장로들은 서신에서 “현재 북한은 먹을 양식의 부족으로 생사를 오가고 있는 형편”이라면서 “한 피를 이어받은 한 민족으로서 북한동포를 외면한 채 쌀을 사료화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크게 어기는 죄악행위”라고 규정하고 재고 쌀이 북한동포에게 전해지도록 빠른 시일 내에 대책을 강구해줄 것을 촉구했다.


(스룹바벨선교회) ☞ 북한 백성이 굶는 것은 우리가 식량을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공산당이 전쟁준비에만 몰두해있기 때문이다. 본 선교회에 찾아온 한 탈북자와의 대화 중 재밌는 사실을 발견케 되었다. 그는 "전쟁이 나면 무조건 남한이 손해"라고 하였다. "왜냐?"고 물었더니,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더 많이 발전한 나라가 손해가 큰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는 반문하였다. 그리고 북한은 지도층이건 백성이건 누구나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했다. "어차피 전쟁이 날 것이니 경제발전에 돈을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 지혜로운 사랑은 무조건 퍼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다니엘 세 친구처럼 뱀의 사상과는 타협치 않는다는 정신으로 불가마 속을 택할 때 하나님은 승리를 주신다.



삼보일배, 이 땅의 성자들

- 개혁국민정당 국회의원 김원웅 홈페이지의 글 -



궁극은 서로 통하는가 봅니다. 신부스님목사님이 나란히 삼보일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묘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음 속에 빛이 드는 느낌입니다.


산이 죽으면 강이 죽고 강이 죽으면 바다가 죽는다고, 물이 죽으면 생명이 있는 것이 죽고, 생명이 있는 것이 죽는 중에 사람도 아우성치며 죽어간다는 도도한 진실을 일깨우는 삼보일배의 엄숙한 의식이 문득, 나를,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305km를, 절을 하며 올라온 성자들, 그들이 분명히 보여줍니다. 개펄이 죽으니 바다생명이 죽고 바다생명이 죽으니 바다가 죽는다는 사실을. 도처의 죽음의 굿판이 보이지 않느냐고 온 몸으로 보여주는 그들은 바로 오늘날의 희생양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그리스도는 무죄한 인간이었습니다. 무고한 그가 왜 죽음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을까요? 이사야가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이제야 이사야 선지자의 그 애통하는 뜻을 알겠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허물을, 우리의 죄악을 성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삼보일배 55일만에 수경스님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뭔가 쏴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나는 수경 스님을, 그리고 문규현 신부님을 압니다. 순수하고도 맑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들을 본 것은 천안에서였습니다. 그 이후에 그 성자들은 묵언을 하고 과천까지 온 모양입니다. 그 묵언의 의미를 쓴 칼럼을 읽으면서 또 한번 뒤통수를 맞았으니까요.


“그들은 이제 묵언 중이다. 묵언 중인데 답답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강렬하다. 목숨을 건 참회의 기도 수행 중에 입까지 닫아버리다니, 묵언의 의미는 뭘까... 말하지 않겠다는 건 듣지도 않겠다는 거였다. 정이 듬뿍 들어 이제는 그들 자신이 되어버린 새만금의 운명을 놓고, 여전히 방조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느니, 미군측에서 150만평을 요구했다느니, 하는 소문을 듣지 않겠다는 거였다. 그런 어지러운 소문을 들어 슬픔을 갖고 분노를 품어 기도하는 마음을 더럽히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새만금 개발을 강행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의 마음도 내려놓고, 새만금에 대한 연민도 내려놓고,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자만심도 내려놓고, 지금껏 살아온 삶을 참회하겠다는 거였다.”


낮에는 절하고 밤에는 노숙하는 성자들,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어 오히려 힘이 있는 성자들입니다. 새만금에서 군산, 보령, 천안, 평택, 수원을 거쳐 과천, 서울 진입을 앞둔 상황에서 이 땅의 그리스도 한분이 탈진을 하고 쓰러진 것입니다. 그의 고통 속에서 우리의 허물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짜 장님인 것이 아닐까요? 나부터 돌아보겠습니다. 경제논리로 생명들의 삶터를 마구 빼앗아대지는 않았는지. 지금 당장 돈이 되고 편하기만 하면 미래는 없어도 좋다는 식으로 근시안적으로 살지는 않았는지, 세상이 전쟁과 반목으로 험악해져도 우리만 괜찮으면 괜찮은 것이라는 식으로 이기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숲이 다 파헤쳐지고, 강이 다 오염되고 개펄이 다 죽어 바다가 죽고 나서 인간이 돈만 먹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우리는 숲과 함께, 강과 함께, 개펄과 함께,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인간과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스룹바벨선교회>


우리는 지금 '쑥물'이라는 단어를 실감케 한 제대로 된 글 세 편 접하였다. 모두가 '허탄한 짓'이요 '허사'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영향력을 보여준 좋은 예들이라 생각된다.


우리의 죄 때문에 이 땅에 오시고, 우리가 빼앗긴 영생을 찾아주시려고 십자가를 지고 가신 메시야 예수님! 지금 교회는 우리의 신랑되시며 주인되시는 예수께서 마귀에게 빼앗긴 이 땅을 되찾아 새롭게 하시려고 다시 오실 형편의 주 재림기를 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유일하신 창조자요, 유일하신 심판주님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모하지 못하고, 이방 잡신의 종교지도자와 한 자리에 앉아 '환경, 인권, 전쟁방지' 등을 논하며 손잡고 기도하고 공동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변질된 포도나무의 음녀적 행위가 틀림없다.


만일 저 행동이 예수를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그들이 믿는 '가짜 신'을 벗어던지고 유일하신 '참 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 목적에서 행해진 것이라면 진정 칭찬받을 일일 것이다.


고린도전서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그러나 오늘 김원웅 의원이 '성자'라고 칭한 3명의 종교지도자들은 누구인가? 결코 성자가 아니다. 하나는 부처를 섬기는 자로서, 크나큰 우상숭배자요, 나머지 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헛일을 하고 있는 소경된 지도자들이다. 서로의 구원을 존중해주며 싸우지 말자고 하는 자들이니, 결코 바울의 친구가 될 수 없는 이들이다. 성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되는 칭호이다. 세상 모든 이는 다 죄인이다. 그러나 김원웅 의원은 '우상숭배자'와 이방 종교에게까지 하나되자 말하는 '에큐메니칼 노선의 종들'에게 너무 경솔히 '성자'라는 호칭을 붙여주고 있다. 김의원 및 세 명의 종교지도자가 영적으로 '한 팀'이기에 가능한 발언일 것이다.


세상 모든 이는 '자기 죄'를 바라보고 '예수 피'를 바라볼 때, 누구나 거듭나며 의인이 될 수 있다(단, 예정하에서). 그러나 아무리 그럴 듯한 목적이라도 3보1배와 같은 육신을 괴롭히는 모양의 일로써는 결단코 의인이 될 수 없으며, 구원도 얻을 수 없다(사도행전 4:12. 로마서 10:9~10)).


수경 스님은 그렇다 치자! 예수님을 섬긴다는 문규현 신부와, 이희운 목사는 어찌하여 이러한 마귀의 행사에 동참케 된 것일까? 그것은 지금이 금은 연기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계의 다수가 마귀의 사상적 감화에 먹혔다는 증거이다. 무릇 그리스도인이란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셔놓고, 그분의 명령에 의해서, 그분의 영광만을 위하여 일하게 되는 법이다(고린도전서 10:31).


주님은 가증한 것은 받지 않으신다. 위 기사들은 작은 일례지만 현대인들에게 환영받고 있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본질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겉으로 볼 때에는 선한 일처럼 보이나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참 생명 가진 자들을 죽이고, 또한 참된 생명으로 들어가려는 자들의 길까지 원천 봉쇄해 버리는 사탄의 무서운 전략이 숨어 있는 궤휼이다. "화합, 통합, 화해, 일치"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모든 종교적 활동은 청황색말의 활동이므로 동참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화합의 간판 뒤에는 "다 좋으니 기독교만이 진리라는 그 한마디만 하지 말아라"는 사단의 애걸과 속임수가 도사리고 있다. 지금은 마귀도 성경을 들고 나와 '사랑'을 논하는 시대가 아닌가?


환경운동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환경은 몇몇이 지킨다고 보존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3보1배를 한다고 보존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땅은 3차대전으로 인하여 황폐해질 것이며, '후 3년 반' 끝에 오시는 예수님과 144,000과 이 땅의 짐승정권과의 '아마겟돈' 대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될 땅이다. 그리고 나서야, 김원웅 의원이 그리도 바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주어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세계는 이사야 35장과 65장에 예언되어 있다. 그 아름다운 세계를 성경에서는 '새 시대', '천년왕국', '고토'라 부른다. 이 세계에서 '아름다운 환경을 천년간 맛보고' 우리는 소위 '천국'이라 이름하는 더 좋은 신천신지로 들어가게 된다.


점점더 혼란만 가중되는 시대이다. 절대적인 진리(가치)는 사라지고 상대가치가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가치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이러한 혼란의 시국에 하나님은 당신의 양 떼들을 가라지와 쭉정이들로부터 빼내시기 위하여, 심판의 다림줄을 손에 들고 계신다(아모스 7:6~9). 주님은 '뒤집어 엎는 심판기'가 될 때 이 다림줄을 '스룹바벨'의 손에 위탁하신다고 예언하셨다(스가랴 4:10). 다림줄은 곧 '하나님의 인(印)'이다(학개서 2:21~23).


본 선교회는 모든 '혼란의 줄'을 끊어 버리고(이사야 34:11), 진리의 '다림줄'을 선파하는 애굽 땅 중앙에 세워진 외로운 제단이다(이사야 19:19~20). 슬프고 압박받는 제단이지만, 오늘도 주님의 손에 붙들려 쉬지 않고 계시록과 예언의 말씀을 이 시대에 다시 고하고 있다. 본 책자와 본 제단의 홈페이지에 올려진 모든 내용과 설교를 잘 정독하시고 경청하시기 바란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에 소성이 오고 장차 되어질 일을 내다보는 영안이 열리게 될 것이다.


영적으로 '속임수와 사기'가 판치는 시대이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를 진리로 인도해줄 유일한 스승이다. 우리는 영적으로 간교하게 침투해오는 뱀의 손을 뿌리치고, 단호히 말하자! 오직 예수! 오직 성경! 오직 십자가! 그리하면 오직 그분만이 이루실 수 있는 아름다운 평화왕국에서 천년을 살고 더 좋은 세계로 이주하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오메가의 뱀과 선악과를 깨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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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15-5126(교회), 011-9739-2782(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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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0_D_예레미야02장

[화 새벽 설교예레미야 02장 : 배은망덕(背恩忘德)의 죄 2018/04/09 Tuesday Dawn

2015년 5월 22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 경 : 예레미야 2장

제 목 : 배은망덕(背恩忘德)의 죄


1. 주님의 은혜를 받은 교회 : 1~4


『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이스라엘이 출애굽 당시 여호와를 좇던 행위를 말한다. 영적으로 볼 때 이방인인 우리에게 은혜를 입혀 속죄케 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 받은 교회의 첫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초기의 사랑을 말씀하시며 '결혼 때'를 비유하셨다. 그 때만큼은 교회가 예수님을 사랑하였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결혼 때'와 같은 마음으로 다시 사랑하길 원하는 심정이 "네가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하신 말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구약 출애굽 때의 이스라엘이나 초림 예수를 영접한 기독교는 신혼 때와 같은 사랑으로 예수를 잘 믿고 따라왔으나, 종말이 가까이 오고 악마가 득세케 되니 그만 '첫사랑'의 신앙이 변질되고 말았다. 계시록 2:1~7절에 기록되었듯이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은 예수님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일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맺은 "처음 사랑"을 찾지 아니하면 주 재림 때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현 기독교는 '에베소 교회'가 받은 책망이 자신들과는 무관한 줄로 착각하고 있다. 자신들이 십자가의 '피로 맺은 사랑'의 충실한 증인이며 영원토록 그러할 것이라고 스스로 속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정녕 예수님의 '피에 담긴 사랑'을 깨달았다면 『주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책』을 이토록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5장에 가면 이 말씀이 이 시대의 교회를 두고 하신 말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3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


"처음 열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유월절 피로 출애굽했고, 능력의 지팡이로 홍해를 건넜으며, 또 광야 간조(乾燥)한 땅에서 만나와 반석수를 먹고 마시며 약속의 땅에 들어왔는데, 약 900년의 세월이 지나 예레미야 때에 와 보니 죄악이 관영하여 북방 칼에 잡혀가게 된 것은 모두가 '배은망덕'의 결과였다.


"처음 열매"는 하나님께 바치는 최초의 열매이므로 아무나 마음대로 먹을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출애굽기 23:19. 레위기 23:10, 13. 민수기 18:12). 출애굽 초기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거룩히 바쳐진 바 되었으므로 그 백성을 함부로 삼키는 자(침략자)들은 누구든 벌을 받았다.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을 침해하다가 받은 징계는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출애굽기 17:8~16).


2. 주님의 은혜를 버린 죄 : 5~7


『 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


은혜로 택한 백성이 출애굽한 이후 타락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케 해드린 것에 대해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탄식하고 계신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자신들에 대하여 무슨 "불의"라도 행하신 듯, 그렇게 하나님을 멀리 하였다. 은혜를 저버린 것이다(신명기 32:1~43).


"허탄한 것" 곧 우상을 따라갔으니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도 멀리 떠나간 것이다. '애굽'이라는 저주의 땅에서 종 노릇하며 갇혀 있던 400년간의 고역에서 건져주셨건만, 이 큰 은혜를 망각하고 만 것이다.


이제 우리 시대인 종말을 보자! 예수님께서 귀하신 그 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는데, 21세기의 세계 교회는 북방 짐승의 '거짓 평화'인 미혹의 쑥물에 취해 '허탄한 것'을 따라가고 있으니 구약 택민이 걸어간 죄악 길과 어찌 동일한 행보가 아니라 말할 수 있으랴! 이 깊이 숨겨진 비밀을 성령께서 아니 가르치시면 누가 알 수 있으리요!


하나님께로 지음 받은 하와가 간교한 짐승 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따 먹었던 것처럼, 현재 기독교가 뱀의 후손(창세기 3:15)인 북방 짐승의 무신론 유물사관을 분별 못하고 '꿀 바른 독약'인 거짓 평화공존을 따라가고 있으니 알파의 범죄와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험이 기독교계에 오는 것은 더 좋은 세계를 주시기 전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이니, 말씀을 붙잡고 싸우는 것 외에는 승리할 길이 없다. 모르고 잘못한 종은 매를 적게 맞겠지만(누가복음 12:48), 이제 모든 예언서의 말씀이 햇빛같이 밝아지는 만큼 21C의 기독교회는 예언서의 경고를 좇아 양 떼를 데리고 거기(음녀 바벨)서 나와 따로 있어야만 살 수 있다(고린도후서 6:11-17).


시편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하였고,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였다.


아모스 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였고,


잠언 28:5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하였으며,


예레미야 애가 3:25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하였다.


우리 인생들은 위대하신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에 더욱 그를 기억하고 찾아야 한다. 은혜를 잊었다는 것은 생활의 평안과 복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두려운 줄을 모르는 망령된 상태로 들어간 것을 뜻하는데, 이렇게 된 인간(교회)은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의 싫어하시는 일을 감행하고 마는 우매한 용기를 발하게 된다. 독생자의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이 치장해 주신 보물로 육체의 욕심을 충족시키는 재료를 삼는다는 것은 전적인 패역이자 '배은망덕'이 아닐 수 없다. 에스겔 16장에는 이같이 된 교회의 죄악이 섬세하게 예언돼 있다.


3. 우상 섬김의 죄 : 8~13


『 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9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0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11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


멸망할 이방인들은 거짓된 우상을 믿으면서도 그 우상을 끝까지 섬기는 지조를 보이는데, 이스라엘은 어찌하여 참된 유일신 여호와를 그토록 쉽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깃딤과 게달은 거짓 신을 섬기는 장소이지만 그 거민은 대대로 그 우상을 굳건히 믿으며 미신을 지켜왔다. 그런데 참되신 신께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택하신 백성은 '참 신'을 '거짓 신'과 아주 쉽게 바꾸고 마는 죄악을 범했다(11절). 이 일은 주께서 보실 때 너무나도 기막힌 일이니, 하늘도 놀랄 만한 일이라 한 것이다(12절). 이러한 죄악으로 인하여 이제 하나님은 선지를 통하여 죄짓는 백성과 다투시되 죄악의 길을 걷는 이와 같은 교회와 앞으로 대대로 다투신다 하였다(9절). 그러니 우리는 이 시대에 예레미야서 전하기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 13절의 두 가지 죄악


1)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


①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이스라엘이 먹고 영생하는 '생수'로 제공하셨는데(요 4:14, 6:35, 7:38), 그들 편에서 버렸으니 그것은 사랑을 저버린 죄요


② 하늘마저도 놀랄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어리석음이란 진리를 배반한 죄악이다.


2)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


① 위에 계신 분께 순종치 않고, 땅에서 자기 손으로 지은 숭배의 대상을 섬기려는 것은 교만이며 큰 죄악이다(출애굽기 32:1~6, 20:4~6. 신명기  9:12. 이사야 2:8. 예레미야 2:28).


② 이는 사단의 미혹과 공격에 넘어가 사단(우상) 숭배에 빠진 것을 의미한다.


종말에는 어떤 형상을 지닌 우상보다도 탐심의 우상을 경계해야 한다. 물론 '후 3년 반'에 가면 눈에 보이는 우상(계시록 13:14~15)이 들어서겠지만, 거기는 버림 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니, 우리는 현재 음성적으로 세계를 속이는 '영적 미혹'에 맞서 싸워야 한다. 먼저 '스스로 판 웅덩이' 곧 인본주의로 빚어낸 탐심우상(자본주의 경제권)과 인간의 생각으로 만든 사상적 우상(공동소유, 균등분배, 지상낙원을 꿈꾸는 무신론 사회주의)이 교회와 세계를 잠식해 온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성경대로 이루어진 근 100년간의 세계 역사이다. 검정말도 붉은말도 모두가 우상인데, 60억 인구는 이 강한 두 세력 어딘가에 빌붙어 의지하므로 자국의 안위와 이익을 추구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진정 탄식하시는 내용은 진리(하늘 양식)만을 추구해야 할 포도나무(교회)가 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처럼 북방짐승과 남방짐승을 의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에스겔 17장).


4. 이방세력을 의지함 : 14~30


『 14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


"씨종"이라는 말은 종에게서 난 자손을 의미하는데, 종의 신분이 대물림되는 자유가 없는 자를 뜻한다. 이스라엘은 '종'이 아닌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장차 '자유 없는 포로민' 신세가 된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 15 어린 사자들이 너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날려 네 땅을 황무케 하였으며 네 성읍들은 불타서 거민이 없게 되었으며 16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 』


"어린 사자들"은 북방군대를 비유한 것이다. 예레미야 4:7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이도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것에 대한 예언이다. "놉"은 애굽의 수도요 "다바네스"는 나일강변의 도시이다. 의지하던 애굽마저도 유다를 침략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 17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18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음은 어찜이뇨 』


유다의 우상숭배 죄 때문에 남ㆍ북에서 원수들이 침략한다는 것을 뜻한 예언이다. 18절에 "시홀의 물을 마신다" 함은 애굽을 의지하여 살고자 함을 말하며 "앗수르 길에 있음"은 북방과의 수교를 의미한다. 남방 원조를 기대함과 북방의 무력을 의지해보려는 이 모든 행위는 하나님 앞에 범죄가 되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찜이뇨" 하셨으니 하나님이 심히 노하신 것이다. 구약 유다가 남, 북의 열강 사이에 위치하여 하나님을 의뢰치 않고 강대국의 눈치만 보며 살다가 멸망하였듯이, 오늘날의 한국정치나 교회의 형편도 정확히 이 예언에 걸려들고 말았다.


『 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하나님을 제외한 그밖의 것을 의지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 죄이다(시편 56:5. 골로세서 2:8). 이는 가장 무섭고도 두려운 죄악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말 뿐만 아니라 그 마음과 입과 행위로써 하나님 아닌 피조물을 좇아 섬기는 자가 어떻게 심판을 면할 수 있겠는가!


『 20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 22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 23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너는 발이 빠른 젊은 암약대가 그 길에 어지러이 달림 같았으며 24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가 그 성욕이 동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성욕의 때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자들이 수고치 아니하고 그것의 달에 만나리라 25 내가 또 말하기를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말며 목을 갈하게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가겠노라 하도다 』


• 20~25절에서는 유대민족의 죄악을 말씀하셨는데,


① 그 죄는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과거 역사로부터 깊이 뿌리박혀 내려온 죄라는 것과,


② 이스라엘은 본래 하나님께서 세우신 온전한 백성인데(참 종자), 죄에 물들므로 악한 가지처럼 변질되어 버렸다는 것이며(이사야 5:1~4),


③ 인간은 절대 자기힘으로 그 죄악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사야 57:17).


• 24절 : "암약대나 암나귀가 성욕의 때에 헐떡거림과 같다" 함은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 속의 본능으로부터 일어나는 원죄악의 충동을 제어(절제)할 만한 힘이 없음을 뜻한 비유이다(이 말씀은 종말에 예수님의 피로 거듭난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니 교만치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이 이와 같은 죄악(우상숭배)으로 치우쳐, 하나님의 율법과 예언을 순종치 않으므로 결국 우상의 종, 죄악의 종이 되어 멸망당하리라는 것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대언케 하셨다. 예레미야는 당대 백성에게 외쳤으나, 보존된 예레미야서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은 종말의 사명자들로 하여금 이 예언을 온 세계교회에 다시 예언할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계시록 10:11. 시편 102:18,22. 예레미야 26:5).


『 26 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 이스라엘 집 곧 그 왕들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 27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내게로 향치 아니하다가 환란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28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란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가 다 내게 범과하였느니라 30 내가 너희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 그들도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


• 26~30절 : 유대교회가 우상을 섬긴 것은 부끄러운 일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나무와 돌을 가리켜 '나의 부모라' 함과 마찬가지의 우매요,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응답 받지 못하게 되는 실패의 원인임을 말씀하셨다. 이들이 만든 우상이 자신을 구원치 못할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소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을 이스라엘이 모조리 죽였으니(마태복음 23:37) 이는 하나님께 정면으로 대항한 무서운 죄악이었다.


5. 무고한 피를 흘림 : 31~37


『 31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연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하느냐 32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33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


하나님의 교훈과 징책에 순종치 않은 죄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방 나라의 도움을 얻으려고 더러운 애교를 부린 죄를 말씀하셨다. 세상 처녀는 "패물"을 잊지 아니하고, 세상 신부도 "그 고운 옷"을 잊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이토록 쉽게 잊어 버리는가? 너무도 모순되는 일임을 지적하고 계신다. 이러므로 하나님은 당신 백성을 만물보다 거짓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예레미야 17:9). 유대교회는 하나님을 잊은 채로 장구한 세월을 흘려보냈다(32). 하나님을 버린 채 이방 강대국의 "사랑을 얻으려고" 갖은 수단방법을 동원해 가며 교제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구약 때와 같은 사단 역사로 세계의 기독교협의회(W.C.C.)와 로마가톨릭이 동일한 노선을 걷고 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이뢰자 목사님의 문서 한 편을 소개한다.


(신앙문답) 4. 오늘의 W.C.C. 라는 신앙 노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통합을 원하는 사람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비 성서적인 세력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노선이니 오늘의 W.C.C.의 "통합"이라는 간판만은 찬성하는 바이나 통합의 방법이 사단의 세력을 막는 방법이 아니고, 오히려 활동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공산 진영에 소위 "기독교 공산 연맹"이라 하는 단체의 사람을 회개시키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권리를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독교가 스스로 자기를 망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예를 든다면, 전쟁을 하는 군대가 적군이 자기 진중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터준 것과 같은 망령된 행동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공산당과 조금도 연맹할 수 없다는 진리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공산 기독교 연맹"이라는 자체는 공산당에게 이용을 당하는 단체인데, 그러한 분자들에게 회의석상에서 발언권을 허용하고 결의권을 준다는 것은 쑥물과 단물이 합하는 일이니 이러한 기독교의 행보(사상)는 백전 백패할 수밖에 없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의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진노의 막대기(이사야 10:5)로 드신 것이 '공산당'임을 깨달아야 하고, 막대기를 드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하나님 앞에 하나같이 회개하는 운동과, 성령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것과, 종말의 합당한 진리(영원한 복음)로 기독교를 통합시키는 새로운 역사에 주력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알지 못하는 W.C.C. 운동 같은 것은 기독교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망령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진하고 어리석은 양 떼들은 감언이설에 속지 않아야만 살게 됩니다. W.C.C.의 말을 진리로 믿고 따라간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가련한 양들은 울면서 쫓겨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후 3년 반 대환난).




『 34 또 네 옷단에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음을 인함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로 너를 책망함을 인함이니라 』


죄악을 깨닫도록 책망하여 준 선지자들을 죽인 죄이다. 이런 일은 무죄한 피를 흘린 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거스른 죄에 해당한다. 열왕기하 21:16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유다로 범하게 한 그 죄 외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이사야도 이때에 순교한 듯하다. 선지자들은 남의 집 담을 뚫고 들어가는 도둑 같은 존재가 아니라 오직 높은 성루에 올라 예루살렘의 죄를 올바로 지적해주는 귀한 사명자들인데, 음녀 교회들은 선지자들을 남의 집 담을 뚫고 들어와 도둑질하다 잡힌 자를 대하듯 억울하게 죽여버렸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단 취급을 받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도 이러한 음녀적 교권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이니 우리는 순교자 편에 서서 더욱 담대히 이 진리를 파수해야 한다.


『 35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 함을 인하여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


죄인이면서도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은 '영적 소경들'의 특징이다. 요한복음 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죄 없다 하는 자의 죄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스스로 자신을 속임이요, 둘째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다(요한일서 1:8~10).


『 36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37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라 』


내적으로는 선지자들을 죽이므로 자신의 치마에 피를 묻힌 음녀는, 외적으로 이방 나라를 의지하는 죄까지 더하고 있다. 이러한 내외적인 죄로 인해 종말의 음녀 교회는 필경 수치를 당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하나님을 모를 때 지은 죄에 대하여는 회개하므로 매를 맞지 않거나 맞더라도 덜 맞게 된다. 하지만 크게 은혜 받은 자가 그 마음이 강퍅해져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우상을 받아들인 죄는 죄 중에서도 가장 악질에 속하는 '배은망덕'의 죄라는 것이다. 이 길에 서 있는 교회들이 수없이 많고 더욱 늘어날 것이다. 주 재림 기에 이런 교회는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이다.


모세는 광야 40년간 백성의 패역을 경험한 자로서, 다음과 같은 예언을 받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의 걸으실 길을 먼저 (모형적으로) 걸은 자로서 '큰 선지자'이다(신명기 18:15).


신명기 32: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 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현재 영적 유다 대한민국의 자칭 보수세력과 진보세력들이여!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을 의지하며 그들의 눈치 보기를 어느 때까지 할 것인가? W.C.C.와 로마가톨릭이여! 가증한 에큐메니칼 사업 추진하기를 어느 때까지 행할 것인가? 돌이켜 회개치 아니하면 필경 수치를 당하리로다!


이렇게 배은 망덕해진 교회가 범하게 될 죄들이 3장에서 자세히 드러나 있다. 자신의 패역을 먼저 알고 깨달은 자는 아직 회개치 못한 교회들을 향해 이 말씀을 목숨 바쳐 다시 예언해야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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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09_D_예레미야01장

[월 새벽 설교예레미야 01장 : 하나님의 작정과 선지자의 권세 2018/04/09 Monday Dawn

2015년 5월 21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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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 경 : 예레미야 1장

제 목 : 하나님의 작정과 선지자의 권세


예레미야 선지자가 외친 예언의 골자는 유다 나라가 부패(腐敗)하여 끝까지 선지자의 외침을 듣지 않게 되면 북방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70년을 지내고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였다.


계시록 10:7~11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시고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셨으니, 우리는 종말에 살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주 재림 때에 복 있는 자가 될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선민으로 택하신 구약 교회가 당한 비참한 멸망은 당대의 거민에게는 역사이자 현실이었지만, 신약 교회의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예언이 된다. 유다 왕국의 종말은 예수님의 피로 산 교회(사도행전 20:28), 즉 은혜로 다시 택한 교회의 종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그림자)이기 때문이다(히브리서 10:1). 독자들께서는 예레미야 1장부터 52장까지 읽어나가실 때에 "이것이 곧 내가 사는 21세기 기독교의 모습이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올 것이다(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이제 우리가 구약 선지자들의 모든 예언을 이 시대에 가감없이 다시 예언(계시록 10:11)하면 계시록 11:1~12절같이 공중에서 재림의 주님을 만나게 된다.


1.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을 것 : 1~5


『 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3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오 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히니라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


잃어버린 에덴 낙원을 다시 찾아 주시려고 하나님은 만대를 명정하셨고(이사야 41:4), 그 큰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지ㆍ예정 속에서 시대마다 종들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오늘날까지 쉬지 않고 역사하고 계신다(예레미야 23:20, 30:24).


①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요한복음 1:17), 그러나 율법은 택민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었다(갈라디아서 3:24).


②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한복음 1:17) 버림돌 역사로서(마태복음 21:42) 유월절 양의 사명 때문에 혹독한 십자가에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다(이사야 53:5~6). 예수님이 택하신 12사도가 천국복음을 전파하여(마태복음 24:14) 이 복음이 동방 땅 끝까지 이르게 되었다.


③ 이제 동방 땅 끝에서 나가는 '영원한 복음' 곧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세우는 심판의 역사는 스룹바벨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인권(印權)과 머릿돌로 하신다(학개서 2:23. 스가랴 4:7~10).


계시록 7:1~8절은 "구원의 목록" 중 왕권자들에 대해 계시하셨는데, 영적 이스라엘 중 하나님의 인(印) 맞은 자 144,000명을 뽑아내고 그들이 말씀권세로 세계를 휘저어 흰무리를 이끌어 내면 '짐승'이 그들을 미워하여 그들과 싸워 이겨 그들을 죽일 터인데(계시록 11:7 / 3일 반 쓰러짐), 이 때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 올리시려(휴거) 공중에 재림하신다(계시록 11:1~12).


2. 선지자는 심지(心志)가 겸비(謙卑)할 것 : 6


『 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


하나님의 택한 종은 언제나 겸손한 마음 자세로 자신을 낮추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는 법이다.


• 출애굽기 3: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 사사기 6: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 이사야 6:5 "그 때에 내(이사야)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 아모스 7:2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참 종들은 하나같이 자기의 연약성을 깨닫고 겸비했었음을 알 수 있다. 종은 모름지기 주인을 위하여 존재하는 법이니 겸비(謙卑)는 하나님 집의 일을 맡은 종이 지녀야 할 첫째가는 조건이 된다. 하나님의 종은 주인 노릇을 하지 말고 주인의 마음으로 가지고 일해야 한다.


3. 선지자는 담대히 전할 것 : 7~8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데 그 이상의 안전보장(安全保障)이 어디 있겠는가? 선지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만을 위한 종이니 자신의 생각, 자기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실상 무용지물이다. 만일 종이 주인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고 주인의 뜻에 자기의 생각을 섞어서 일한다면 그 종은 주인의 일을 망쳐 버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의 법에 인본주의를 섞어 말씀을 변질시키는 모든 자들은 "거짓 선지자"라 할 수 있다(예레미야 6:13~15, 27:9~10, 15~18).


역사를 볼 때 열방의 선지자는 언제나 한 두 명뿐이고 그 나머지 다수는 항상 거짓 선지자의 편이었다. 우리는 지금 다시 예언하라는 예수님의 명령(계시록 10:10~11)에 절대 순종만 하여 결코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린도전서 4:6. 마태복음 26:24).


4. 선지자는 특권이 있음 : 9~10


『 9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



물이 못 당하고 불이 못 당하였던 하나님의 권세는 종말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 (새일성가 26장 4절)


이사야 43장에서도 말세 종의 특권을 예언하셨다.


① 물과 불이 못 당하는 권세(출애굽기 14장. 다니엘 3장).

② 사람을 지배하는 권세(이사야 43:3~7).

③ 열방 민족을 깨우치는 권세(이사야 43:8~13).

④ 대적을 물리치는 권세(이사야 43:14~18).

⑤ 새 땅을 정복하는 권세(이사야 43:19~21)

⑥ 절대적인 용서를 받게 되는 특권(이사야 43:22~26).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영광을 위하여 만대를 명정하셨으며, 그 명정을 이루시기 위하여 시대 시대마다 들어쓰시는 종들에게는 '특별한 권세'를 맡기신다. 어느 시대의 종이든지 그 종은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요한복음 4:24)의 대행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권세 준 그 종은 그 시대의 기준이 됨과 동시에 그 종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대역죄인이 되어 심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연약한 인간이 마귀와 맞서 그 시대의 기준이 되는 법을 외치려면 위로부터 오는 특권을 받지 않고는 일할 수 없다.



미디안의 패배와 앗수르 군대 185,000명의 하룻밤 멸망(이사야 37:36)은 종말에 태산같은 적기독 세력이 스룹바벨 머릿돌 앞에서 멸망할 것을 앞당겨 보여준 것이다(스가랴 4:7)


새 일은 대적을 물리치는 권세이다! 말세 종들은 일어나라!  권리행사 큼이로다 ! 70장 2절


예레미야는 유다를 중심으로 하여 흩어져 있는 이방 여러 국가들의 멸망까지 예언해야 할 큰 사명자이므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파괴적인 사명자'라고 역설(力說)하셨다. 하나님께서 '열국 심판'을 작정하시고 이 큰 뜻을 예레미야에게 먼저 보이신 것은 예레미야가 자신의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것과 사명자의 특권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말세에 일어날 종들의 특권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다(이사야 55:8). 하나님은 언제나 약한 아이와 같은 자들을 택하시어 강하고 힘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므로(고린도전서 1:19~20. ☞ 마태복음 11:25, 요한복음 7:46, 야고보서 2:5) 부름받은 종은 그 소명의 첫 순간에 하늘의 뜻을 이해하기가 힘든 법이다.


그러므로 종이 절대적으로 명심해야 할 점은 자기의 힘으로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참 종은 하나님의 일을 해나갈 때 첫 마음을 떠올리며 자기에게는 그 일을 감당할 힘이 없음을 생각하고 두려워함이 옳다(6절). 그것이 겸비이다. 종이란 하나님의 일에 순종키 위해 부르심을 입었지, 그 일을 책임지라고 선택된 것은 아니므로 종에게는 '겸손'과 '순종'만이 요구되어지는 덕목의 전부가 된다. 종에게는 아무런 주권이 없음을 망각지 말자.


그러나 옛날부터 지금까지 거짓 종들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며 처신해 왔다. 우리는 오직 주인이 시키는 대로 순종할 따름이다. 참 종이라면 주님이 보내주신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복종케 된다(스가랴 4:6~). 아멘!


5. 살구나무와 북방환난의 이상을 봄 : 11~16


『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


"살구나무"는 '깨어 있다'라는 뜻의 히브리 원어 '솨케드'와 같은 음운을 지닌다. 하나님의 말씀은 깨어 있어서 때가 되면 어김없이 실현되고야 만다. 이는 종말의 심판도 예레미야서대로 어김없이 이루어질 것을 사명자들은 깨달아 알라는 뜻이다. 민수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지팡이 하나씩을 취해 증거궤 앞에 두게 하시며,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라고 말씀하셨다(17:5).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린 것은(8절) 그에게 제사장 사명이 있다는 뜻이요, 이 표징대로 예수님께서 은혜시대의 대제사장으로 오시어 유월절기를 이루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고로 본문의 살구나무는 모든 언약의 말씀을 어김없이 이루시는 예수님이시요, 가지는 그 종 선지자 예레미야를 뜻한다. 종말론적으로 볼 때는 순금등대 촛대역사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출애굽기 25:31~ 정금으로 등대를 만들라 하실 때 살구꽃 형상으로 만들라고 명하셨다. 이는 종말에 흑암을 물리치는 순금등대 촛대역사가 기록된 말씀을 지켜 그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의 신으로 되는 역사"임을 의미한다(스가랴 4:6).


야곱은 양 떼를 물가로 인도하여 살구나무, 버드나무, 신풍나무 그늘을 보게 하여 얼룩무늬 양을 출산케 하였는데(창세기 30:37~), 이로 인해 야곱은 양 떼가 심히 풍부해짐과 동시에 많은 약대, 나귀와 더불어 다수의 노비까지 거느린 부자가 되었다(창세기 30:37~43). 여기서 살구나무는 전술한 바대로 '예수님'을 뜻하며, 버드나무는 '성부'로서 시냇가에 심기워진 생수의 말씀을(시편 1:1~3), 신풍나무(플라타너스)는 껍데기가 벗겨지는 나무이니 우리의 구습(옛사람)을 벗겨주시는 성령을 상징한다(시편 1:1~3).


『 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


"끓는 가마"는 바벨론 북방환난을 비유함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만 내리면 속히 유다를 치러 올 태세를 묵시적 예언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사야 10:5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북방은 우상 숭배하는 선민(교회)을 징치할 몽둥이다(이사야 10:5). 구약의 교회로 대표되는 솔로몬 성전은 70년간 포로살이의 징계를 받아야 했는데(25:11, 29:10), 그 이유는 우상숭배에 있었다. 우상을 통해 들어오는 간교한 사단의 미혹(공격)에 나라 전체가 쓰러진 것이다. 마치 하와가 뱀의 미혹을 받고 넘어져 에덴 전체를 망가뜨렸듯이, 구약 교회도 그렇게 넘어지고 만 것이다. 1천번제를 드렸으며, 겸손한 기도를 올렸던 솔로몬! 그가 지혜를 받아 건축한 솔로몬 성전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넘치도록 충만하였었건만(열왕기상 8:11), 이 성전 안에 우상이 들어서므로 그토록 비참히 훼파될 줄을 그 누가 알았던가! 택함받은 민족사 안에 이렇게 우상숭배로 무너진 화려한 성전이 있었던 것은, 신약 교회의 종말도 그와 같다는 것을 미리 보이신 것이다(히브리서 10:1).


에덴 때 그러했고, 선지시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종말에도 뱀이 들어쓰는 짐승국가인 7째머리(북방 공산권)에서 「평화공존」이라는 궤휼이 나타날 때 이를 분별치 못하고 미혹되어 쓰러진 W.C.C.와 K.N.C.C.라는 개신교 세력은 이방종교에도 진리의 빛이 깃들여 있다고 말하므로(이는 기독교의 유일신론과 요한복음 14:6절의 진리를 허물기 위한 마귀의 물꼬트기 작업이다) 실상 타 종교를 통한 구원을 인정했다. 로마가톨릭 역시 마리아의 위상을 하늘 모후(황후)의 위치까지 격상시켜 놓고, 성체(성찬식)를 미사의 핵심에 위치해 놓으므로 고대의 앗세라(아스다롯) 여신 및 태양신 숭배 사상을 부활시키는데 성공했다. 기독교 안에 이 같은 두 세력이 존재하는 현실은 예수를 믿는 종말의 교회가 그 성전 안에까지 우상(쑥물)을 받아들였음을 입증해 준다(에스겔 8장). 우리는 이 거대한 두 세력이 장차 어떻게 교류하며 어떤 형태로 연합해 갈 것인지에 주목해야 한다(계시록 17:3~6).


이와 같은 현실을 볼 때 솔로몬 성전의 종말이, 어찌 21세기의 기독교 현실의 예표가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 구약은 (무조건) 종말을 미리 보여 준 사건이다(이사야 46:10, 48:3上). 또 전에 기록한 것은 "무엇이든"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하셨으니(로마서 15:4) 예레미야 1장의 북방환난은 우리와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일이다. 고린도전서 10: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영혼구원 때의 우상은 내적인 탐심이지만(골로세서 3:5), 종말 육체구원 때의 (정치적) 우상은 다니엘 2장에 나온 신상의 발가락 부분, 곧 북방 공산주의 정권(소련=철)과 남방 자본주의 정권(미국=진흙)이다. 이 두 세력은 한 밥상에 앉아 거짓말을 하다가(다니엘 11:27) 남방 왕이 찌르면 북방 왕이 많은 병거를 데리고 중동(Middle East)과 동북아(North East)로 내려올 것인데, 결과는 남방 왕의 완패다(에스겔 29:19~20, 30:21~26). 남방 왕은 이 사실도 모른 채 현재 열심히 찌를 채비(差備)를 갖추고 있다. 3차대전은 반드시 '중동'과, '극동'이라 불리우는 동북아의 난제들이 곪아 터지므로 발생한다. 그러나 극동에서 먼저 터진다. 근거는 겔 21:19~32절이다. 희생의 간을 살펴 먼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전멸시키고, 그 다음 성전이 없는 '암몬'을 치라고 예언되어 있다(28~). 이 예언대로 종말에는 '영적 유다'가 존재하는 극동아시아부터 환난이 오고, 연이어 중동으로 번지게 될 것이다. 동북아전쟁은 이사야 7:17~20, 8:5~8, 다니엘 11:44절에 기록되어 있고, 중동 유브라데 전쟁은 계시록 9:13~19, 다니엘 11:40~43절에 기록되어 있다.


한국이 세계적인 '제사장국가', '선지국가'가 되어 144,000명을 움직이는 본부가 되고, 5개월 환난에서 많은 양 떼를 살려낼 수 있게 되는 계기는 바로 이 '동북아전쟁'에서 '시온성회'의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여호와께서 유다 땅에 큰 일을 행하시기 때문이다(요엘 2:20. 이사야 37:36, 8:8). 다니엘 11:44절을 보면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북방 왕'을 번민케 한다고 하였는데, 이 '소문'은 '유다 땅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문이다(이사야 19:17). 소문의 내용은 북편 군대가 전멸하여 '동해'와 '서해' 바다로 수장되는 것! 화가 난 '북방 왕'은 나가서 많은 무리를 도륙, 진멸코자 하는데(다니엘 11:44), 이는 세계적인 전쟁으로 번짐을 의미한다. 초막절기가 있는 7월이 되면 중국과 북한을 앞세우고 한국을 치러 내려온 로스(러시아) 연합군대가 한국 땅에서 하룻밤에 시체가 되어 버린다(예레미야 50:24). 이 엄청난 소문으로 인하여 애굽인(세상사람)들이 놀라 떨고 지렁이 같던 유다는 비로소 일어나 세계로 뻗어 나가며 "영원한 복음"의 빛을 발하게 된다(이사야 60:1~). 이것이 곧 여호와의 '새 일' 역사요, '동방' 역사다. 이 예언대로 이루어지기 위해 현재 극동 아시아에는 엄청난 군비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진리)을 사모해야 할 유다가 강대국의 정치력, 군사력에 의존하는 것은 명백히 '우상숭배'에 속한다. 또한 종교적 쑥물! 곧 비진리를 선포하는 거짓 선지자의 무리와, 가증한 에큐메니칼 운동을 실천하는 거대교권들도 다 우상숭배자의 무리에 속한다. 이들 세력과 그 사상은 우리의 철천지(徹天之) 원수이다. 1958년부터 재앙의 본부 소련에서 외친 '평화공존'의 메시지를 "하나님을 섬긴다" 하는 기독교가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작금(昨今)의 현실(예레미야 6:14, 8:11)은 놀랄 만한 일이다. 전쟁을 위하여 군비는 끝임없이 확장되고 있는 현실에 '평화공존'이 웬 말인가? 우리는 성경 밖의 얘기는 아무리 듣기 좋아도 배격할 줄 알아야 한다(골로세서 2:8). 성경에 반하는 인본주의의 망령된 말을 좇는 행위자의 결말은 멸망과 황폐뿐이다(예레미야 8:15~17. 잠언 14:12).


이사야 9:16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그러므로 우리의 살 길은 우상의 지배권(600=영권, 60=정권, 6=교권)에서 탈피하여 공중에 뜬 돌(머릿돌) 단체가 되는 길이다. 그것만이 천만인이 쓰러지는 환난날에 육체가 임마누엘 나래 밑에서 보호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시편 91:7). 보호받지 못하는 육체는 새 시대를 볼 수 없다. 영혼구원을 얻은 이 시대의 생존성도들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서 6,000년 만에 친히 회복시켜 주시는 에덴동산 땅(계시록 5:10)을 살아서 발로 밟는 것 말고는 없다. 밟되 왕권으로 밟느냐 백성으로 밟느냐를 놓고 충성을 다 할 시기가 '지금'인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육체의 생사여부가 중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 말씀하셨다.


6,000년간 인류를 휘감고 조여온 뱀의 세력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파쇄되면(계시록 19:19~20:3) 우리는 평화로운 임금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며 이 땅에서 1,000년을 살고(지상 천년안식) 그후 백보좌심판을 거쳐 영원한 무궁안식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먼저 정치바벨(짐승)과 종교바벨(거짓선지)이 심판 받는 일이 우리 시대에 있을 것이니, 현재 나의 영적 소속이 '바벨'이냐 '뜬 돌'(시온)이냐 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다니엘 2:34~35). 만일 지금까지 잘 모르고 음녀(창기) 단체에 속해 있었다면, 바로 이 순간 발을 빼고 소속을 분명히 하여 예수님의 명령대로만 정진(正進)해야 할 것이다(고란도전서 6:15~16. 고린도후서 6:17~. 계시록 18:4).



6. 선지자는 준비하고, 예고하고, 주님만 의지할 것 : 17~19


『 17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18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19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허리를 동이고"란 표현은 예언을 선포할 준비태세를 비유한 것이다. 출애굽기 12:11, 열왕기상 18:46, 열왕기하 4:29절을 보면 유대인들은 어떤 일에 착수하기 전, 항상 허리띠를 동여 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복음의 일꾼은 에베소서 6:14절처럼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일해야 한다.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다 고하라 함은 한 마디도 가감치 말고 기록된 예언대로 100% 온전하게 고하라는 뜻이다. 예레미야 26:2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고하되 한 말도 감하지 말라" 하셨고, 계시록 22:18~19절에서도 예수님께서 같은 말씀을 예언하셨다. 이렇게 예언하심은 창세기 3:15절 말씀같이 궤휼자 뱀의 계통에서 말씀을 흐트러뜨리며 최후로 발악하여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악마가 득세할 때에는 '완전무장'하여 주만 의지하지 않고서는 모두가 쓰러지고 마는 법이다. 그러나 기록된 대로 끝까지 순종한 종들은 계시록 11:1~12절 말씀같이 1,260일 다시 예언하고 3일 반 쓰러졌다가(원수들의 조롱을 받다가) 생기를 받아 승천하게 된다.


선지자는 아무런 걱정도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심으로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 같은 권세의 종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사야 43:13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폐할 수 없는 특권이다. 이사야 45: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아멘.


종말의 사명자들이여! 우리는 우상이나 협상을 배격하고 하나님께만 절대 복종하자! 종들에겐 절대 월권(越權)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예수님께서 시편 40:7절대로 오시어 마태복음 26:24절대로 걸어가셨으니, 우리는 이 모습을 본받아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에만 충성하자. 그리하면 주 안에서 안전한 보호를 받으며 수고하다 마침내는 완전한 승리를 하게 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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