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22_D_예레미야14장

[주일 새벽 설교예레미야 14장 : 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교회의 죄 2018/04/22 Lord's day(Sunday) Dawn

2015년 6월 3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14장

제목 : 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교회의 죄


여호야김 왕 때 임한 극심한 가뭄을 놓고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삼중 중보기도를 드리게 된다. 깊은 죄병을 앓고 있던 유다 동포, 재앙을 만나도 회개는커녕 원망과 절규밖에 할 줄 모르는 백성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것이다. 뜨거운 동족애가 담긴 예레미야의 중보기도는 유다 백성들의 깊은 죄악상과는 실로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백성을 돌이킬 소망이 없음을 알아차린 예레미야는 주의 거룩한 이름과 신실한 언약에 매달렸다. 참된 기도란 인간적 소망이나 생각을 뒤로하고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신실하신 언약에 근거하여 호소하고 탄원하는 간구이다. 이러한 기도를 올릴 자는 먼저 자신부터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구해야 한다. 그럴 때라야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한재(旱災)의 참상 : 1~6


『 1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


옛날부터 유다 땅에는 한재가 많았다(창세기 12:10, 26:1~, 42:1~2. 신명기 11:10~17, 28:23~24. 룻기 1:1~. 사무엘하 21:1~. 열왕기상 8:37. 학개서 1:9~11). 한재는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죄악을 범할 때 임하던 징벌이다(레위기 26:19. 신명 11:17, 28:23). 구약 때는 모든 것을 육적으로 계시한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우리는 본문의 재앙을 영적, 육적 양면으로 깨달아야 한다. 종말의 교회가 예수의 계시를 무시하면 예배시간에 말씀의 이슬과 성령의 단비가 끊쳐지게 되므로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하여 자기도 모르게 이방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된다(마태복음 24:49. 하박국 2:5). 한재 재앙은 종종 '땅이 슬퍼하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예레미야 4:28, 12:4. 이사야 3:26), 실은 죄통에 빠져있는 백성을 보시는 하나님의 슬픔이며, 작게는 공의의 심판을 당할 때 곤비케 될 백성 자신들의 슬픔이기도 하다.


『 2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곤비하여 땅에 앉아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


예레미야서는 현재의 '기독교'를 책망하는 예언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구약백성'의 구원을 목적하여 주신 예언도 아니요, '종말의 불신자'들을 책망하신 내용도 아니다. 애통할 자도 교회요, 한재로 부르짖게 될 자도 종말의 교회임을 계시한 예언이다. 화려한 교회와 그에 딸린 부속건물들! 물량주의와 교세확장이 어느 새 목회성공의 기준이 되어버린 현실! 교회 안에 부자 교인들이 점점 증가하고 세상 성공을 위하여 때마다 모여 예수님께 축복을 간구하는 모습! 세상에서의 출세가 거리낌없이 '간증'이란 이름으로 자랑되어지는 현실! 이러한 모든 모습들은 얼마 안 가서 '애통'과 '부르짖음'으로 변할 것이다. "슬퍼하며... 곤비하여... 애통하니"라는 구절은 육적 한재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묘사해주는 표현이나 종말의 성취 때에는 부패한 교회의 성도들이 당할 3대 화의 고통이 된다. 이렇게 백성이 슬퍼하며 놀랄 재앙을 당할 때 예레미야 선지자의 마음 역시 심히 상하여 슬픔 중에 놀라게 된다(예레미야 8:21). 이런 비참한 상황은 '얼굴이 숯보다 검게 된 것'으로 표현되기도 했다(예레미야애가 4:8~9).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재앙으로 인한 부르짖음인데, 회개의 기회를 한없이 제공해 주시며 기다리신 끝에 내려진 재앙이므로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이라 선포한 대로 이 부르짖음은 무시된다(예레미야 11:11). 종말에도 재앙의 장소인 '후 3년 반'에 떨어진 성도들은 아무리 회개해본들 하나님은 그들의 육체를 짐승 칼에 붙여 버리신다.


『 3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4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5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버리며 6 들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 』


귀인들이 구하여도 "물을 구하지 못하고 빈 그릇으로 돌아오는" 일이나(3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 머리를 가리움"은(4절) 도움을 원하나 응답받을 수 없는 절망의 상태를 뜻한다. 인간의 죄로 인해 짐승들까지 기갈을 당하며 "헐떡이는 모습", 새끼에 대한 애착심이 여타 동물보다 뛰어난 "암사슴"이 풀을 찾기에 갈급하여 자기의 "새끼를 내어 버리는" 모습은 참상의 정도가 얼마나 극심한가를 뛰어나게 묘사해 준다. "시랑"과 "들나귀"까지도 풀이 없어 헐떡이다가 시력이 쇠한 모습으로 나타남은 생명 가진 피조물 중에 한재의 화가 미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보여주는 육적 시대에 이러하였다면 이 예언이 종말의 영적 이스라엘에게 다시 예언되어 이루어질 때, 그 화가 얼마나 극심한 재앙으로 확대되어 나타나게 될 지 묵상해 보라! 구약 백성에게 임한 한재의 고통이 종말의 기독교 성도들의 코앞에 다가와 있다. 이 비극의 절정이 바로 계시록 13장의 세계이다.


계시록과 모든 선지자가 받은 묵시는 죽지 않고 살아 있어 예수님의 재림 때 전 세계 교회를 배경으로 다시금 성취되도록 작정돼 있다(이사야 46:10).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책을 받으신 후 사도 요한에게 계시하셨는데, 요한에게 이 작은 책 계시록을 꿀같이 먹고 전 세계 영적 이스라엘에게 "다시 예언하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계 10:7~11). 종말에는 육체적 한재와 기근이 더 비참한 모양으로 임하되 그에 앞서 먼저 영적 기근이 찾아오리라고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했다.


아모스 8:11~12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양식)을 먹지 않던 미련한 자들이 재앙이 임할 기미를 깨닫고 뒤늦게 말씀을 구하러 이리저리 헤매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 모양 가련할 뿐 그 비틀거림의 끝은 북방 칼에 처절히 쓰러지는 것이다(마태복음 24:45~50). 옛날 유대 민족이 모든 선지자의 예언을 버리고 우상 국가와 타협함으로써 심판 받았듯이, 오늘날의 영적 이스라엘도 다시 예언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면 결코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새 언약(렘 31:31)의 피는 믿으면서, 협상반대와 멸공을 외치며 다가올 천년안식을 준비하라는 새 일 교훈(이사야 42:9, 43:1~19, 48:6~, 예레미야 31:21~22)은 멸시하는 자들이 위와 같은 재앙으로 떨어지게 된다. 새 일 반대가 큰 죄라는 뜻이다. 심판의 대상자인 공산국가와 협상하며 양 떼에게 쑥물을 먹이고 있는 W.C.C.와 K.N.C.C.의 가르침은 오메가적 미혹인데, 많은 양 떼들이 W.C.C.의 쑥물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있으므로 쑥물을 먹이는 목자나 무분별하게 받아먹는 양 떼들이나(예레미야 5:30~31) 모두가 대 환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계시록 17장. 18장. 19장). 이런 일을 당하지 말라며 '새 일'을 증거하는 제단은 스룹바벨 제단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수인데 교회가 "물이 없는 우물"(3절)이 된 것은 하나님을 떠나 인간 스스로가 웅덩이를 팠기 때문이다(=인본주의). 이런 웅덩이는 곧 물 없는 우물이 되고 만다(예레미야 2:13). 예레미야 2:26절에 웅덩이를 판 지도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 수치는 영영히 잊지 못할 수욕이라고 예레미야 20:10절에서 밝혀 주셨다.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짐"(4절)은 하늘이 철과 같이 되고 땅이 놋과 같이 되어(레위기 26:19) 땅이 아무런 산물도 내지 못함을 뜻한 표현이다(레위기 26:20). 신명기 28: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리라" 신명기에서는 불순종한 백성의 온 땅은 유황이 되고 만다고 하셨다(신명기 29:23). 인간의 죄로 인해 자연계나 가축까지 고통 받게 되는 것은 이미 창세기 3:17절에서 예언하신 바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한 노아가 저주받은 세상을 뒤엎고 새출발시키시는 데 있어 하나의 의로운 씨가 되었듯이, 예수님 한 사람의 순종으로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을 믿는 것이 종말 기독교의 최후의 소망이다.


• 창세기 5: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 계시록 5: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이와 같이 죄로 인한 저주의 고통을 완전히 벗어나는 길은 예수 안에 있되 '두 가지' 길로 약속되어 있다.


하나는 새 언약(유월절)으로서, 곧 예수님의 보혈이다(이사야 42:1~4, 53:1~12, 49:8上, 61:1~2上, 예레미야 31:31~34).

다른 하나는 새 일(초막절)로서, 곧 예수님의 피로 산 '하나님의 심판책'이다(다니엘 7:10~, 계시록 5:1~10, 10:7~11, 11:1~12, 22:18~19).


이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여 증거를 마치는 길만이 영, 육이 살아 저주가 거치운 아름다운 새 시대(에덴)에 들어가는 길이다. 만일 피로 산 책을 가감하고 우상과 타협하면 육체는 노아 때같이 죽고 그 영까지 천년간 옥에 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베드로전서 3:19~20). 구약은 곧 종말이요,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기 때문이다(이사야 46:11. 마태복음 24:37).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양의 피로 제사하던 의로운 셋의 계통이라도 홍수 심판기를 당해 육체가 사망할 때 그 영까지 옥에 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종말을 향한 중요한 교훈이다. 오늘날도 영혼구원 얻은 교회가 '중생'으로 말미암은 '천국 시민권'만을 주장하며 교만할 이유가 없다. 새 언약(천국복음)으로 인한 영혼구원은 천년왕국이 지나고 백보좌 심판 때 영생의 부활로 나올 조건일 뿐이요, 환난을 피하여 천년왕국에 들어가 사망 없는 몸으로 천년을 살 조건은 '영원한 복음' 곧 '새 일 교훈'의 순종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로 산 예언의 말씀을 청종하는 일은 인간의 힘과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신의 역사로만 이루어진다 하셨다(스가랴 4:6). 아무리 거듭난 성도라 하더라도 원죄의 타락이 뼛골 속에 박혀 있으므로 피로 산 말씀에 한마디도 순종할 수 없는 것은 사도요한과 다니엘이 재림주 앞에서 쓰러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다나엘 8:17~18, 10:8~10, 15~18. 계시록 1:17).


2. 예레미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 7~12


『 7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8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같이 하시나이까 9 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 자 같으시며 구원치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


한재의 참상으로 인한 선지자의 기도이다.


① 선지자는 백성을 대표하여 죄를 자복할 때 민족적 죄악에 대해 연대적 책임의식을 느끼며 "우리"라는 말을 거듭 사용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환난을 당한 민족의 목자가 갖춰야 할 마땅한 태도이다.


② 그는 하나님께 빌기를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하였다(7절). "주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그가 자비롭고 은혜로운 구원자이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재앙으로 벌하신다 하여 그의 이름에 오욕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나, 다만 한없는 긍휼을 다시 한 번 청하여 용서해주실 것을 청하는 죄인의 마음인 것이다. 8절의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란 성호(聖號)가 위 ①번 해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③ 8~9절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인이신데, 왜 이스라엘에게 "거류하는 자"나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과 같이, 또 "구원치 못하는 용사"같이 방관만 하고 계시느냐고 탄식하며 기도하는 부분이다(8~9). 이 의문점에 대하여는 10절에서 답하셨다.


④ 하나님께 유대 민족은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며 버리지 말아주실 것을 구하고 있다(9절).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란 죄악을 지었어도 이 민족이 하나님의 '친 자식'이 아니냐는 호소이다. 그러나 이 말은 남은 백성 곧 경건한 무리들에게만 해당되는 명칭이다. 선지자는 자기 민족의 죄악을 인정할 때 ① 허물이 주 앞에 심히 많다는 것과(사 59:12) ② 죄악 때문에 넘어진다는 것과(호세아 5:5) ③ 민족적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로 나타남을 고백하였다(호세아 7:10) . 선지자는 주님께 자비를 구하고 있다. ' 우리는 악하나 다만 주의 이름을 인하여 용서하소서'(시편 25:;11)라는 맘으로 말이다. 우리를 용서하시어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시편 115:1)라는 심정으로 심판의 뜻을 돌이켜 주실 것을 간청하고 있다. 자신들의 타락함이 많음을 겸손히 고백하는 것이다. 백성은 이미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없는 상태까지 타락되었으므로 예레미야는 더욱 찢어지는 마음으로 중보하고 있다. 백성의 죄목은

. 푸른 나무 아래서 행음한 것(예레미야 3:6).

. 패역이 심한 것(예레미야 5:6).

. 주의 율법을 거역한 것 등으로 나타났다(느헤미야 9:34).


『 10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백성이 하나님께 대하여 지조 있는 충성을 하지 않는다면 주님도 백성에 대한 확실한 보호를 보장치 않으신다. 백성이 여호와 앞에 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우상을 섬기기도 하는 2중적인 태도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가 주어진 사람들의 행위에 대하여 비례식보응(比例式報應)의 반응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시는 것은 우매한 사람들로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 시편 18:25~26절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이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께서는 친 자식(백성들)의 죄악을 확실히 기억하신다(호 8:13. 렘 17:1~4). 또한 원수의 죄악도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사무엘상 15:2).


『 11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


여기서는 유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보여주신다.


① 선지자더러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고 하심.

② 그들의 "금식" 기도를 듣지 않겠다 하심 - 그들의 금식은 외식이고 겸손한 회개와 자책(自責)이 아니며, 또한 정욕(情慾)을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요 다만 금식했다 하는 공로를 세우려 함이니 미신(迷信)적이라는 것이다(스가랴 7:5~14).

③ 그들의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않겠다고 하심(사무엘상 15:22).

④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하심(12).


창조주의 발언이 이러하니 이제 유다는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예레미야 11:1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이렇게 된 이상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듣지 않으신다. 이사야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종말을 사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성경에 나오는 인명, 지명, 국가 등의 모든 재료들은 나를 살리시기 위한 주님의 사랑이라는 점이다. 성경에서 모압은 롯의 딸이 롯과 동침하여 나은 자식, 또는 그의 후손들을 지칭하는 이름이지만, 이것이 예언서에 등장할 때에는 '모압사상'을 가진 이스라엘을 책망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즉 모압의 사상을 가진 자가 하나님 백성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 16:12 "모압 사람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불행하게도 현실 기독교회는 모압의 길을 걷고 있다(이사야 16장 참조).


3.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선고: 13~18


『 13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


거짓 선지자들은 교만하게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평강을 주시리라"는 거짓말을 민중 속에서 외치고 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의 저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이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시험해 보시려는 하나님의 악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신명기 13:1~5, 예레미야 23:15~40). 거짓 선지자들의 존재 이유자체가 공의의 심판을 앞두고 백성을 미혹해보기 위함이므로 거짓 선지자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 말을 주시지 않는다. 언제나 하나님의 감동으로 말미암지 않은 말은 모두가 어두움이다. '복술'도 그러하고 '인간의 마음의 생각'도 그러하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과는 반대로 하나님은 그들이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5절).


에덴동산 뱀의 사상은 거짓 선지자 계통을 타고 내려와 오늘날 교회와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사상을 퍼뜨리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들면 '평화공존', '탈냉전', '전쟁종식', '사랑', '진리는 하나',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종교적 타이틀들이다. 성경은 분명히 북방환난을 말씀하고 있다(예레미야 1:13, 4:6~, 6:1~, 에스겔 1:4, 38:1~9). 또한 끝까지 전쟁이 있다는 것이다(다니엘 9:26~27). 그러나 종말의 거짓 선지자들은 평강(평화공존, 교회일치운동)이 진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예레미야 6:14~15). 이런 자들은 새 일로 강하게 때려부수어야 한다. '평강'은 예수님께만 있으므로 그분만이 줄 수 있다(이사야 9:6. 누가복음 24:36. 요한복음 20:19,21,26. 로마서 16:20. 빌립보서 4:7. 골로세서 3:15. 데살로니가전서 5:23. 히브리서 7:2. 계시록 1:5). 그런데도 1,200만 한국교회가 일치-연합 운동과 평화공존으로만 나아가며 북방의 영적 대적들에게 이용당하고만 있으니 사명자들의 마음은 아프다!


『 17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18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


예레미야는 민족을 위하여 밤낮 울고 있다. 참 선지자는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인격)이 그의 선지자 된 생활에서 증표로 나타난다. 사단은 유다의 멸망을 기뻐하고 원하지만, 참 선지자는 민족을 사랑하기에 심판을 보고 원통히 여긴다.


• 예레미야 8: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 예레미야 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 시편 119:136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 예레미야 52:6 "그 사월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식물이 진하였더라"

• 스가랴 8: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금식에 대하여...

시드기야 11년 4월 9일에 기근이 임하고 성이 함락(예레미야 39:2~).

시드기야 11년 5월 10일에 성이 불탐(예레미야 52:12~).

시드기야 11년 7월 그다랴 총독의 피살(예레미야 41:1~).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에 성읍이 포위(예레미야 52:4)>.


• 예레미야애가 1:20 "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내가 환난 중에서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번뇌하오니 나의 패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으로는 칼의 살륙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

• 예레미야애가 4:9 "칼에 죽은 자가 주려 죽은 자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이들이 찔림같이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이와 같은 참 선지자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었다. 종말에도 이 민족과 세계를 위한 참 선지자들의 호소가 하늘에 쌓이고 있다(새일성가 9장).


4. 백성을 대표한 참 선지자의 애소(哀訴) : 19~22


『 19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받기를 기다려도 놀람을 보나이다 20 여호와여 우리가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위를 욕되게 마옵소서 우리와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22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


선지자의 기도 내용은


①자기 백성의 참상(종말론적으로는 기독교가 당할 일)을 놓고 애소(哀訴)함이며(19절).

②민족(民族)의 죄를 책임지고 자복 기도함이다(19~21). 다니엘 9:3~23 참조.

③또한 자기 민족에게는 의(義)가 없으므로 하나님 자신의 의(義)를 위하여 돌아보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21절).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 민족을 돌아보아 달라는 것이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해 달라는 것이다.


"영광의 위"란 하나님이 나타나기로 하신 성전의 장소를 가리킨다.

• 레위기 26:11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 예레미야 3: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열방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치 아니할 것이며..."

• 예레미야 17:12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언약을 기억하시고" 백성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다. 선지자가 "언약"을 언급한 것은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신 이상 거기에 해당하는 축복과 약속을 필경 실현하실 것을 전제로 하여 간절히 기도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진실성과 변치 못하는 속성을 붙잡고 늘어지는 배짱있는 기도이다. 백성은 패역하여 주님 말씀을 어겼을 지라도 "이렇게 해주마" 하신 분이 당신이니까 당신 이름 위해서 하나님이 져달라는 것이다. 백성을 보면 축복의 언약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니, 아시고 약속한 당신이 당신 영광 위하여 이루어달라는 것이다.


시편 106:45 "저희를 위하여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많은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백성은 무지하여 범죄하나 선지자는 이렇게 눈물 흘리며 동족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하였다. 시대적인 대표 종의 사명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하나님이여 유다 민족을 미워하지 마시옵소서"(21절).


위의 말씀들을 볼 때, 유다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고난의 풀무를 통과한 유다를 통하여 예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겠다는 것이다(스가랴 13:7~9).


• 22절 : "비를 내리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 예레미야 5: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 예레미야 10:13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 신명기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만이 주관하신다. 고로 인간은 복종할 따름이다. 복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복종할 기회를 한 번 더 마련해 보고자 우는 자가 선지자이다. 하지만 이토록 간절한 선지자의 중보도 하나님의 뜻은 돌이킬 수 없었다(15장). 백성의 죄악이 하늘까지 사무쳤기 때문이다. 이같이 돌이킬 수 없는 타락이 종말의 기독교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예언서의 참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수치와 조롱을 당하는 예레미야의 신앙노선을 택할 것인가? 거짓된 다수의 '평강노선'을 따라갈 것인가?


21세기 대다수의 교회가 '사랑과 평화', '일치와 연합', '용서와 화해'를 말하며 뱀의 후손들에게까지 '하나 되자'며 손을 내밀고 있다. 우리 제단의 사상은 구시대적 발상이며 시대에 역행하며, 하나님의 뜻과도 반대된다며 멸시당하고 있다. 그러나 '평강노선'을 걷는 교회의 백성과 지도자들은 <면할 수 없는 재앙과 벌>로 떨어질 것을 15장에서 예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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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21_D_예레미야13장

[토 새벽 설교예레미야 13장 : 교회의 교만 죄 2018/04/21 Saturday Dawn

2015년 6월 2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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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13장

제목 : 교회의 교만 죄


1. 썩은 띠(요대)의 비유와 멸망 : 1~11


『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 말라 하시기로 2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


예레미야의 손에는 썩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 없게 된 "베띠"가 쥐어져 있다. 제사장들이 허리에 띠는 '모시 베띠'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세계 인류 중 유일하게 제사장적 사명을 가진 나라임을 상징해 준다. 이는 영화로운 직분이요, 귀한 사명이었다. 하지만 그 베띠를 이제 유브라데 강물에 던져 버리라 할 것인데, 이는 제사장 직분을 수행해야 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 죄악의 물에 빠져 버렸음을 비유한 것이다.


첫 아담도 선악과를 먹고 이 강가에서 버림을 당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우상숭배가 만연하던 갈대아 우르 땅에서 빼내시고 이 큰 강(유브라데)을 건너오게 하여 복을 주셨건만 그 자손들이 아담에게 물려받은 원죄의 패역으로 말미암아 아담같이 다시 그 강가에 버림을 당하게 되는 형편이 "베띠"의 묵시로 나타난 것이다.


인류 종말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원죄(패역)의 본질을 해결치 못한다면 아담같이 망하되 유대교, 개신교, 가톨릭 할 것 없이 모두 그 육체가 바벨론의 손에 붙여져 죽게 된다(계시록 13장, 18장). 신령하고 은비(隱秘)한 하늘의 하나님의 새 일(민수기 16:30. 이사야 42:9, 43:19, 48:6. 예레미야 31:22) 양식을 버리고 땅의 것만 좇아 살다 보면 반드시 죄악의 땅과 함께 썩어버린다. 6절에 가보니 베띠는 썩어 버렸다. '썩은 베띠'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으로 '짠 맛을 잃은 소금'과도 같다(마태복음 5:13). '썩은 베띠'가 다시 건져진들 그것이 당할 일은 불에 태워지거나 버려져 짓밟히는 일뿐이다. "베"라는 옷감은 성경에서 '정결함'을 상징하는데(사무엘상 2:18), 거룩한 제사장들의 옷감과 허리 띠, 속옷 등의 재료에는 전부 '베'가 쓰여졌다(출애굽기 28:39,42, 39:27. 레위기 6:10 - 세마포는 베옷이다).


1~2절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베띠"를 사서 물가에 두지 말고 허리에 띠되 "값을 주고 산 띠"로 하라고 명령하신다. 이 명령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민 가운데서 구별하여 내실 때에 거저 구원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시되 감히 측량할 수 없는 고귀한 보배피로 그들을 사시고 거룩히 구별하셨음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띠를 사서"라는 표현은 당신 생명으로 '우리'를 사셨다는 것이다(이사야 43:3. 에배소서 1:7.  계시록 5:9~10. 이사야 53:4~10).


선지자에게 그 띠를 "허리에 띠라"고 명하신데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허리는 몸에 부과되는 모든 힘을 받아내는 제 1기둥이다. 운동선수를 보라! 여타부위의 부상은 곧잘 극복해내지만, 허리가 상하는 경우에는 선수로서의 생명이 바로 끝장나고 만다. 모든 힘이 허리에서 나오고 있다는 증거이다.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거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나가는 모습을 비유할 때 흔히들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허리의 중요함과 허리띠의 요긴함을 잘 나타내 준다.


"베띠를 허리에 두른다"는 것은 그 띠를 주인이 직접 취해 자기의 몸에 밀착시킴을 의미한다. 즉 띠를 사용하는 자가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취했다'는 자체에서 큰 의미가 발생한다. 몸 아닌 것이 몸에 와 붙어 몸의 일부처럼 쓰여지기 때문이다. 베띠가 주인에게 취해지는 순간부터 주인의 가장 요긴한 부분을 두름과 동시에, 이제 그 띠가 없으면 주인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질 뿐 아니라 힘을 써서 일을 하려할 때도 옹골지게 해낼 수가 없는 점... 이 점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당신과의 관계를 '베띠의 묵시'로 보이신 이유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세상 백성 중에서도 특별히 구별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하여 자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당신 몸의 일부와 같이 귀히 여겨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허리띠를 졸라메시고 당신의 영광된 구속사업을 성실히 수행하셨던 것이다. 타락된 땅을 재개발하는 건설주가 이 대사업(이사야 58:12~)에서 특별히 유대 민족을 허리띠로 삼은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 얼마나 큰 영광인가?


에덴동산이 얼마나 행복한 장소였던가를 생각해 보자! 하지만 불순종의 죄로 인하여 저주가 에덴을 삼켜 버렸다. 이 저주로 떨어진 동산을 회복시키는데 있어 빛의 도구로 불리움을 받았다면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터인데, 유대인은 아담과 같이 뱀의 말을 따라가 또 다시 범죄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은 본문의 '베띠 비유'인 70년간의 바벨론 유수(幽囚)를 선언하신 것이다.


지금 이 시대! 피로 산 세계 기독교회를 향해 이 말씀을 다시 예언하라는 것! 이는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시다(계시록 10:7~11). 그러나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한탄스런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교단에서 배척받아 더러워진 위치에서도 죽을 자들로 깨달아 살게 하기 위해 목숨바쳐 예언을 증거하는 단체가 '우리'이다. 우리가 외치는 이 예언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치 않으면 구약 솔로몬성전의 운명처럼, 기독교 종말의 운명도 "썩은 베띠"와 같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떤 이름난 목사가 다음과 같이 설교하는 걸 들어보았다.


"소경이 낭떠러지로 가는 것을 보면서 무관심하다거나 기어 풀린 차가 뒤로 밀려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어린아이를 덮치려 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냥 지나친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다."


맞다! 그건 인간이 아니라 살인자이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일 게다. 본 제단은 살려보려는 마음 하나에서 다시 예언하고 있다. '후 3년 반'이라는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교회! '북방환난'이라는 기어 풀린 자동차에 치어 죽을 운명의 교회! 이러한 교회들을 향해 생명의 경고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한 생명이라도 이 책의 말씀을 읽고 깨달아 돌이킨다면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계시록 9:14~ 정해진 년, 월, 일, 시에 유브라데 강가에서는 3차 전쟁이 발발할 것이며, 또한 동일한 장소 유브라데 강가에서 최후의 대중선악전쟁인 아마겟돈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계시록 16:12~). "유브라데"는 구약이건 종말이건 '썩을 자'가 모여드는 심판 장소인 것이다.


하나님은 선민에게 거룩한 율법을 주셨으나 백성은 1,000년도 채 못되어 타락하여 북방 칼에 붙여질 수밖에 없었던 구약종말의 형편처럼, 거룩한 성령께서 단장시켜 주시고 신령한 은사를 부어주신 기독교 역시 2,000년이 채 못되어 타락하고 있다. 이제 남은 일은 본문의 예언대로 다시금 북방 칼에 붙여져 심판받는 일뿐이다. 피로 산 백성에게 이와 같이 행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 그 심정을 안다면 어찌 다시 예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4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5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가에 감추니라 』


선지자가 실제로 "유브라데"로 간 것이 아니다. 13장은 묵시 중에 진행되는 일이다. 베띠를 "바위 틈에 감춤"은 하나의 행동계시(行動啓示)로서 유대 민족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갈 비천(卑賤)한 처지를 묘사하고 있다. 본문의 "물가"라는 표현에서 "물"이란 죄악과 사단의 권세가 횡행하는 현 세상을 상징한다. 계시록 12: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이 여자는 해를 입은 촛대교회인데 사단이 아무리 강한 권세로 공격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게 될 것으로 계시되어 있다. 계시록 17:1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17:15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큰 음녀가 앉은 "물"'바벨 사상'으로 점령된 말세의 죄악세상을 가리킨다.


사단이 역사적으로 이용하는 강대국들은 7머리 10뿔인데, 하나같이 짐승의 마음을 받은 국가들이다. 그러나 미련하게도 유대민족의 시드기야 정권은 출애굽하여 나온 첫 번째 짐승 '애굽'을 의뢰하다가(에스겔 17장) 셋째 짐승인 '바벨론'에게 눈알이 뽑혀 잡혀가고 말았다(예레미야 39장). 하나님의 교회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 물"에 거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준 사건이다. 지금 기독교회는 무엇을,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가? 북방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의지하고 있는가? 북핵 문제를 막아보려고 다자간 협상, 즉 중국, 러시아, 일본을 의지하는가? 만일 교회가 세상 정치꾼들과 같이 이러한 노선을 택하여 기도한다면, 그 종국은 시드기야의 운명과 같이 될 것이다.


"바위 틈에 감추라" 기본적으로 바위 위의 갈라진 틈을 가리키나, 여러 바위나 절벽 등에 나 있는 사이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바위는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피신할 '피난처'로 쓰였지만, 본문에서는 예레미야의 허리에 띤 띠를 숨겨 둘 장소 이상의 뜻은 없다. 고로 "감추라" 하신 것에는 '보호'의 뜻은 없고, 오직 하나님의 '관계단절'의 의미뿐이다.


『 6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취하라 하시기로 7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취하니 띠가 썩어서 쓸데없이 되었더라 』


"여러 날 후에" 띠가 "썩어서 쓸데없이 된 것"을 보게 된다. "썩은 것"은 유대민족의 영광이 쇠락했음을 비유한다. 유대인은 "띠"와 같이 하나님께 밀착되어 있었고, 하나님은 그들만의 하나님이셨다(아모스 3:1~2). 그러나 저희가 충성치 않으므로 이렇게 "썩어져 쓸데없는" 꼴이 되고 말았다. 예루살렘 교회가 세속에 물들어 버릴 때 아무리 하나님이 값 주고 산 띠라도 '70년간' 내어버림을 당한다는 뜻이다. 이는 자연스런 결과로서 종말의 우리에게도 귀중한 교훈이 된다. 예레미야의 띠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벨을 상징하는 '유브라데 강가'에 있었기에 썩는 것은 당연하다(이사야 8:6~8).


교회가 세상 것에 마음을 두면 그 마음이 세상 것에 의해 부패하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우리 육신이 세상에 거하는데 어찌 세상 물을 초월하랴"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바닷물은 짜지만 살아 있는 고기의 살은 결코 소금물에 절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죽은 고기에는 살은 짭잘하게 소금기가 베어든다. 영적으로도 똑같다. 우리 인간은 세상에 속하여 살아도 말씀(생명)과 동행하는 한, 세상 물이 우리를 점령할 수 없는 법이다. 유대민족은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마음에 품어들였다. 또한 주변 물질문명 강대국의 힘(원조)을 동경하며 기웃거렸다. 그 결과 하나님은 떠나시고 유다는 죄악 문명에 물들게 된 것이다.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바벨론)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현재의 세계 교회도 유대 교회의 종말과 같이 썩어짐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치협상, 종교협상의 쑥물을 단물인 줄로 착각하여(이사야 5:20) 북방과 그가 이용하는 거짓 선지의 거짓 평화 앞에 대다수가 쓰러지고 말았다(이사야 51:17~. 예레미야 23:15~. 계시록 9:1~). 세계적으로는 W.C.C.(세계교회협의회), 국내적으로는 K.N.C.C.(한국기독교협의회)가 그러하다. 구약 유대민족은 하나님을 떠난 협상죄로 인하여 70년(예레미야 25:11, 29:10)간 북방에 잡혀가서 모든 육체가 썩어졌다가 70년 후에 스룹바벨 단체가 약 5만명을 이끌고 돌아와서야(에스라 2~3장) 무너진 솔로몬성전 터에 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하였다(에스라 6:14~15).


이렇게 구약 종말의 선민이 받은 심판이 예레미야 서책을 통하여 21세기의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종말을 향해 살아있는 이 교훈을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가 깨달아 예수님 재림 시(時) 예언의 등불을(베드로후서 1:19. 마태복음 25:1~13) 높이 들지 못하면 계시록 13장같은 대 환난에 빠져서 모든 육체가 노아 때와 같이(마태복음 24:37), 롯의 때와 같이(누가복음 17:28~) 심판받아 죽게 된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표면적 바벨론을 치고 나온 구약 스룹바벨의 역사가 인간 종말에도 이면화되어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하여 예정해 두신 제단이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에 지대 놓은 스룹바벨 제단이다(학개서 2:6~7, 10, 18, 20~23. 스가랴 4:9).


『 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10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의 쓸데 없음같이 되리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稱譽)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


이제 하나님께서 "베띠"의 계시를 해석해 주신다. "교만"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영예' 혹은 '아름다운 장식'을 의미한다. 11절의 "이름", "칭예", "영광"이 바로 그 뜻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택함 받으므로 모든 민족 가운데 주님의 자랑거리가 되기로 작정된 민족이다. 하지만 그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영예는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교만을 썩게 하리라" 이렇게 징계하심은 사랑 때문이다(히브리서 12:8~).

① 세력을 인한 교만은 꺽는다 하셨고(레위기 26:19).

②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하셨다(잠언 16:18, 야고보서 4:6). 이렇게 유다가 썩어 무익하게 되기까지 '다른 신'을 좇으며 강퍅한 대로 행하게 된 것은 아담 때부터 내려오는 뼛골 속 '원죄' 때문이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긍휼을 한 몸에 받던 자라도 이처럼 '원죄'악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원죄 문제 해결책은 예수님의 피로 사신 새 일 교훈 속에 녹아져 고침 받는 길 외에는 없다(이사야 42:9, 이사야 43:1~5). 그러므로 새 언약으로 거듭난 기독교가 지상 천년안식을 앞두고 그곳에 들어가라고 주신 말씀인 '새 일'을 멸시한다는 것은 "썩은 베띠"의 운명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이다.


이사야 40: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여호와 앞에서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다. 유다는 열방 어떤 민족보다도 우등한 자리에 있었으나 불순종으로 인하여 가장 비천한 신세(포로민)가 되었다.


2. 포도주의 비유와 장래 고난 : 12~17


『 12 그러므로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차리라 하셨다 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찰 줄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리요 하리니 13 너는 다시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땅의 모든 거민과 다윗의 위에 앉은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으로 잔뜩 취하게 하고 』


"포도주"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육체가 먹는 포도나무 열매와 포도주가 있고(창세기 9:20~27, 누가복음 22:17~18), 다음으로는 영혼이 먹는 극상품 포도나무와 포도주가 있다(이사야 5:2, 25:6~8, 55:1~. 요한복음 15:1~). 셋째로는 영혼이 먹되 먹고 죽는 사단의 거짓말 곧 진노의 포도주가 있다(예레미야 51:7. 계시록 14:18~20, 17:2, 19:15).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차리라" 여기서는 세 번째 뜻으로 쓰였다. 교회에 죄악이 가득 차게 됨에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 또한 가득 차게 되는 형편을 비유한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되는 것은 끝까지 회개치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죄악 가운데) 내어버려 두셨기 때문이다(로마서 1:24, 26, 28). 그러나 교만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하기를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찰 줄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리요"라고 한다. 불신앙의 무리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평이(平易)한 교훈에 감춰진 신령한 뜻을 깨닫지 못하므로 조롱하게 된다. 말씀을 조롱하는 것은 곧 멸망케 될 자들이 상습적으로 범하는 죄악이다.


예레미야 22: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22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키울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을 인하여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이처럼 말씀이 사람되어 오셨어도 유대인들은 청종치 않았다. 요한복음 7: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그러나 진정 율법을 모르는 자는 이 말을 지껄인 자신들(바리새인)이었다. 진리를 오해하여 발설한 저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갔기에 바리새인은 지옥의 아랫목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 7:27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천만에...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안다 하는 대로 예수님이 목수 요셉의 아들이었으면 좋겠거니와... 예수님은 히브리서 7:2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하신 바대로 예수님은 이 세상을 초월한 곳에서 오신 분이었다. 이렇게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의 교만은 '무지의 강가'에서 제 잘난 줄 알고 물장구치는 어린아이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요한복음 9장에서도 예수님께 고침받은 한 소경이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라는 멋진 신앙고백을 하였지만 유대인들은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며 교권을 행사하여 그를 쫓아내었다. 이렇게 유대교권이 범했던 연속적인 교만의 죄들은 오늘날에도 자칭 정통, 장자 교단이라고 하는 계층에서 반복되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당대 유대나라는 이처럼 부패했었다. 창조주를 멸시하고 내어쫓는 지경까지 부패하고도 멸망치 않을 나라가 어디 있으랴! 죄악이 관영한 뒤에는 하나님의 벌(심판)이 임하는 법이다. 이와 같은 역사를 상고할 때, 오늘날의 기독교는 겸손한 마음으로 교회 내의 행위들을 살펴야 할 것이다.


『 14 또 그들로 피차 충돌하여 상하게 하되 부자간에도 그러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관용치 아니하며 아끼지 아니하고 멸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피차 충돌하여 상하게 됨" 유대민족이 내란으로 인하여 망할 것을 의미한다. 육체적인 술취함은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깨어나게 되지만 사단의 영적 미혹에 취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깨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51:21절"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하셨으며, 여기서 '이 말'이란 선지서(예언서)의 내용을 뜻한다. 인간종말에 '살 길'은 예언서를 읽고 듣고 지키는 일뿐이다(계시록 1:3). 이렇게 해야할 자는 이방인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피로 거듭난 교회'라는 점을 명심하라! 이제 황충떼의 환난(계시록 9:3~5)이 일어나면 교회 내부에서부터 충돌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일본귀신이 교회를 치고 들어오니 교회 내부로부터 분열이 났고(옥중성도 vs 신사참배), 공산당 귀신이 교회를 치고들어올 때(W.C.C.)도 교회가 두 동강 났었다(에큐메니칼 지향의 진보교단 vs 보수교단). 포도주병에 대한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던 유대 민족이 결국 70년간의 산 지옥을 경험한 것처럼(예레미야 39:1~11)... 예언의 내용을 읽고도 깨닫지 못하고, 고하고 들려줘도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면 7배나 강한 산 지옥 "후 3년 반"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본문에 담긴 종말의 비밀이다.


『 15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


"들을 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라는 하나님의 부탁이다. 어찌하여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탁하시는가? 살려주고픈 사랑이다. 힘 세신 분이 강권으로 살리면 될 것 아닌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자기의 전 생애를 바쳐 순종하기 전에는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인간 스스로 알 수도 없고, 알아서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는 주님이 정하신 순서가 있다. 다음과 같은 자세가 준비된 사람에게만 주님의 뜻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듣고 판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즉 하나님 뜻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 칠 때라야 비로소 주의 뜻이 계시된다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만한 유대교권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세가 없음은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우리에게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하였던 것이다. '교만의 극치'이다.


• 마태복음 12: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 마태복음 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 마가복음 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이러한 교만 앞에서 예수님은 마음 속 깊이 탄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마가복음 8:12). 그럼에도 표적을 보여달라는 주문은 끊이지를 않았다. 누가복음 11: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니..."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기도하는 집'인 성전이 (본 의미를 상실한 채) 강도의 굴혈이 된 것을 보시고 성전정화를 행하셨을 때에도 교만한 유대인들은 이것이 주께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시편 69:9. 요한복음 2:19)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요한복음 2:18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라고 말하는 교만함을 보였다. 마귀의 자식들에게는 도무지 각성하는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표적 보는 것 자체'는 영생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될 수 없다. 이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증명되고 있다.


요한복음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이 표적을 행하셨을 때 무리가 보인 최초의 반응은 그럴 듯했다. 요한복음 6: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나 이들은 메시야가 왜,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를 알고픈 마음이 없었다. 단순히 자기들에게 빵 좀 주었다 해서 예수로 그 자리에서 임금을 삼으려 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요한복음 6:15).


빵을 얻어 먹음과 동시에 큰 이적을 체험한 유대인들은 그들의 탁월한 장사꾼적 기질을 발동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행할 수 없는 능력의 소유자가 자기들의 손 닿는 곳 가까이에 있으니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분께만 붙어 있으면 빵조각은 확보되겠구나라는 계산이 돌아가던 터였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거기서 그분을 놓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신 예수를 찾아 하루동안 방황했던 그들은 이튿날 예수를 다시 만나게 되자 '찾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기나 하냐'는 듯 원망 섞인 탄성을 쏟아낸다.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


그들이 예수를 애타게 찾았던 것은 예수와 함께 진리를 위해 순교하기 위해서였던가? 그것이 아니었음이 예수님의 다음 답변에서 드러나고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이 말을 들은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또다시 반문했고, 주님은 이에 이렇게 답하셨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여기서 웃지 못할 희극이 연출된다. 독자인 성도여!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을까? 자문해보기 바란다.


요한복음 6:30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지금껏 행해졌던 질문중에 가장 우문(愚問)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지금껏 보았던 이적은 다 무엇이던가? 무엇이었기에 또 표적을 찾는 것일까? 돈을 주고 이렇게 질문하라 해도 정상인이면 할 수 없는 질문을 이리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무지(無知)가 오늘날 세계도처에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한 백성들을 믿게 하기 위하여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신들 무리의 반응이란 이토록 어처구니가 없는 결과뿐 이었으니, 당시 안타까운 예수님의 마음을 어찌 우리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요한복음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아무리 표적을 보여준들 택한 자 외에는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주님은 불택자들을 향해 요한복음 6:36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셨고, 이미 요한복음 4: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며 책망하신 바가 있다.


표적을 보이라 요구하는 유대인들의 교만한 모습을 신약에서 찾아보았다. 유대인은 지겹도록 요구했고 예수님은 이에 다 응해주셨다. 그러나 결론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로 귀결되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다음 말씀이 응하기 위함이다.


요한복음 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이사야 53:1~3)


위에서 언급한 유대인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 거듭난 우리의 모습임을 그 누가 깨달을까?


『 15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


15절 말씀은 바로 거듭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우리가 구약과 2,000년 전 유대교회를 상고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예언서 속에 담겨진 주님의 심정을 더 잘 느끼기 위함이다. 15절 말씀을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음이 곧 교만임을 알 수가 있다. 교만을 떠나려면 먼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마태복음 18:2~4).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것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교만>에서 비롯된다(요한복음 9:34. 누가복음 18:11~). 또한 <죄악을 사랑하여 단호히 끊어버리지 못함>도 숨은 교만의 범주에 들어간다(시편 64:6~7. 이사야 5:18~23).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이사야 선지자도 백성을 향하여 주님의 심정을 대언할 때 이사야 46:12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나를 들으라" 하였으니 진실한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 16 그가 흑암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흑암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


말씀을 들려주어도 끝끝내 회개치 않는 자의 앞길은 흑암 뿐이다. 흑암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치며 점점 극심해진다.


① 1단계는 하나님께서 불순종자에게 "흑암을 일으키는" 단계이다. "흑암"은 재앙을 비유하는데 그것을 "일으키신다" 하심은 하나님께서 회개치 않는 죄인에게 재앙 내리는 일에 착수하시는 단계를 말한다.


② 2단계는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는" 단계이다. 회개치 않는 죄인에게 재앙이 첩첩이 계속되므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는 상태로 치달음을 가리킨다. 이는 마치 밤중에 길 모르는 자가 첩첩산중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꼴과 같다.


③ 3단계는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흑암이 되는" 단계이다. 자기들로서는 "빛"을 바랐던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반대로 "사망"에 이르는 "그늘"(재앙)을 조성하신다. 즉 일이 그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치명적(致命的) 상황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이 상태는 하나님의 간섭으로 오는 불가항력(不可抗力)의 앙화(殃禍)이기에 피하려 한들 피해볼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아모스 5:18~27). 이렇게 된 자들을 죽여 버리기 위하여 내보내는 무리가 바로 '북방 짐승 세력'이다. 오늘날에는 '북방 무신론'의 무리라고 할 수 있다(7째 짐승에서 난 '작은 뿔'과 '10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피할 수 없는 재앙이 오기 전, 즉 기회가 있을 때 어서 돌이켜 회개하라는 것이다. 종말에도 무서운 흑암세계 '후 3년 반'이 오기 전 자기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일찍이 이 길을 택한 자들이 바로 144,000명의 기름 예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이며, 마지막에 가까스로 이 길로 접어드는 자들이 바로 세계적인 '흰 무리'이다.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자들은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 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 하신 처지(대환난)로 떨어지게 된다(이사야 8:21~22 = 미련한 다섯 처녀).


『 17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 것이며 여호와의 양무리가 사로잡힘을 인하여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 것이며" 선지자는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동족의 불순종(교만)으로 인하여 - 기도하는 중에 은근히 곡하게 된다. 선지자의 마음 속에는 이처럼 자기 백성을 아끼는 사랑이 흐르고 있다. 내 편을 사랑하는 일은 쉬워도 나를 대적하는 교만한 자를 사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교만'이란 말은 높아짐을 의미하는데(욥기 33:17. 다니엘 4:37), 여기서는 스스로 마음이 높아져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무시하는 교회적인 죄악을 지적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이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회가 남아 있을 때, 유다가 어서 회개하여 살기를 원했고, 다시금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원했던 것이다.


백성을 위하는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에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회개를 촉구했던 것이다. 선지자가 눈물을 흘린 까닭은 백성을 회개시키는 일에 있어서 자신의 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도 미약했기 때문이다. 눈물은 진실이다!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거짓말할 자는 마귀밖에 없다. 이렇게 선지자의 눈에서 진실하고 뜨거운 눈물이 떨어져도 백성은 교만하여 듣지 않았고, 그들의 굳은 마음은 풀릴 줄을 몰랐다. 이사야 48:4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이러한 고집때문에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잡혀간 것이었다(B.C.606, 598, 587). 하나님은 심판하고 싶어 안달나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래도록 참으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긍휼 자비가 넘치는 신이시다(베드로후서 3:8~9). 언제나 문제는 기회가 와도 회개치 못하는 인간 편에 있다.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 역시 눈물로서 권고하여 다시 예언하는 자들의 촉구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종말의 교회는 5개월 환난(계시록 9:1~12)이 끝날 때까지 회개치 아니하면 '후 3년 반' 대 환난에 떨어져 멸망 당하기로 작정되어 있다. 역사는 주님의 작정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음을 70년 포로기간을 통해 확인한 바 있으니(예레미야 25:11, 29:10), 계시록 9~13장까지 기록된 말씀이 주님의 작정인 줄 믿는다면 지금은 결코 잠잘 때가 아니라 계시록 10:7절의 말씀을 깨닫고 11절처럼 전해야 할 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을 진실로 믿는 자라면 자다가도 머리를 들 때가 지금이다!


3. 왕궁에 원수가 침입할 예언 : 18~21


『 18 너는 왕과 왕후에게 고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19 남방의 성읍들이 봉쇄되고 열 자가 없고 유다가 다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가도다 20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가 받았던 떼, 네 아름다운 양 떼는 어디 있느뇨 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수령으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의 고통에 잡힘이 구로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


이 부분은 끝끝내 회개치 않다가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가게 될 비참한 광경을 예언한 것이다. 이 예언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솔로몬 성전에 임한 심판은 모두가 '피로 산 은혜 교회'가 받을 심판을 미리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① 왕과 왕후가 높은 자리에서 떨어짐(18절).

② 바벨론 군대의 습격을 당하여 남방 애굽 성읍들로 피난하려고 해본들, 허락되지 않으므로 결국 사로 잡혀감(19절).

③ 유대민족(양 떼)은 북방 끓는 가마솥 세력에 의해 통치를 받게 됨(20~21절).


유대민족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바벨론을 친구로 삼으려 한 적이 있었던 고로(20절), 바벨론 왕을 가리켜 "너의 친구"로 표현한 것이다. 21세기에도 이와 동일한 현상이 영적 유다의 정치와 교회 안에서 발견되고 있다. 교회가 앞장서서 북방 무신론 국가와 손을 잡고 그들의 '거짓평화'에 동조해주고 있다는 것이다(K.N.C.C.계열). 북한과 '한 민족'임을 운운하면서 (뒷전으로) 악한 일을 도모하는 그들을 지원해주고, 이제는 아예 공개적으로 손을 내뻗어 '민족공조'를 이루자는 저들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까지 하는데..., 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2003년 4월 23일자 연합뉴스 기사 한 편을 소개한다.





북한이 최근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기도'를 주장하며 <민족 대단결>을 눈에 띄게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을 저해, 남북대결을 고취시키고 있으며 `북침 핵전쟁'을 노리고 있는 만큼 <민족공조>를 통해 이를 타개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평양방송은 22일 `민족 대단결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절박한 요구' 제하의 보도물을 통해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기도가 실천단계에 들어서고 있다며 "민족의 대단결은 오늘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가장 절박한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평양방송은 이어 "미제가 북침 핵전쟁을 도발하면 그 피해는 북과 남의 우리 민족이 당하게 된다"며 "지금은 사상과 제도, 이념을 논하거나 민족공조를 외면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방송은 또 "조선반도에서 외세와 공조한다는 것은 나라의 평화와 민족의 안전을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뜨리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평양방송은 이에 앞서 지난 20일과 21일 잇달아 미국이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의 이행을 가로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북 `핵전쟁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조선반도에서의 대결구도는 북과 남의 조선민족 대 미국"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북한방송은 17일 동족끼리 싸우면 어부지리를 얻는 것은 외세 뿐이라며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을 지켜 나갈 것을 촉구한 데 이어 18일에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지배정책에 민족 공동으로 맞서야 한다고 강조, '민족 대단결'을 요구했다.


북한이 '민족 대단결'을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족 대단결 5대 방침' 제시 5주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국방위원장은 지난 98년 4월 18일 `남북조선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50주년 기념 중앙토론회에 서한을 보내 민족자주 원칙 견지, 남북관계 개선, 외세의 지배와 반 통일세력 반대 등을 골자로 하는 `민족 대단결 5대 방침'을 제시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베이징에서 열리는 `북핵 3자회담'에 북한측이 남측의 참여를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남북장관급회담 개최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북측은 오는 27일부터 평양에서 제10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하는 전화통지문에서 <민족공조>로 우리 민족끼리 남북관계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출처 : 서울=연합뉴스, 2003. 4. 23 >





'한 겨레'이니 '한 민족'이니 하는 말의 이면에는 진정한 동포애와 통일을 위한 염원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 '한 민족', '통일'의 개념은 남한 백성의 그것과는 판이하다. 뱀은 원래 혓바닥이 두 개이며, 뱀이 들어쓰는 공산주의자들은 '용어혼란전술'의 천재들이다. 북한과 남한 내의 좌익세력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의 실체'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 예언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남한이 친구 삼은 자 북한 및 좌익들의 용어 개념

변혁(變革)

개혁(改革)

북한 조선말사전 :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낳게 하는 급격한 변화나 전화를 일으키는 것' (고로 그들이 변혁, 개혁하자고 하는 것은 '혁명'하자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민주(民主)

'민족해방 민중 민주주의 혁명론'을 지지하는 남한 NL계열 운동권학생들은 한국사회의 구조를 ① 미제국주의와 결탁한 지주, 매판 자본가, 반동 관료들을 한 축,  ② 노동자, 농민, 도시 부르주아, 청년, 학생, 지식인, 민족자본가를 또 다른 한 축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저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국가'란 ②의 세력이 ①의 세력을 몰아내고 백성이 된 '사회주의 국가'임을 알아야 한다. 저들은 남한 정부가 미제국주의와 그 앞잡이들에 의해 유지되는 식민지적 사회 정체제도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전제한다. 이 구조는 오직 혁명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民' 곧 백성이란 위의 ②번의 '붉은 세력'과 그 친화세력들로 제한된 표현임을 알고 속지 말아야 하는데, 이미 때는 늦었다. '친일파 청산'을 사회 이슈화시키고 '친북좌익활동'을 정당화하며 배고픈 북한 백성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나몰라라 하는 정책을 쓰는 자들이 모두 저 출신들이다.


참고로, 'NL'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북한의 대남혁명론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에 입각하여 한국사회를 공산화하려는 세력이다. 이들의 명칭은 다양한데, NLPDR파, NL(민족해방)파, '주사파', '친북운동세력' 등으로 불려지며 국내 좌익권 중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이루고 있다. 이 출신들이 정치권에 포진하여 2004.4.15 총선에 대거 진출하고 있다. 저들이 국회장악에 성공하면 우선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완전철수'부터 진행시킬 것이며, 남한 민중과 교회 성도들은 저들이 장악한 매스컴의 영향력과 빛을 가장한 궤휼에 속아 더욱 더 타락케 될 것이다.

민중(民衆)

민주(民主)

민족(民族)

북한 공산당은 남한의 정치기구를 송두리째 전복시키기 위한, 소위 <민중, 민주, 민족 혁명운동>이라는 것을 한다. 그런데 이것이 남한 내 자생적 공산주의자들과 친북세력들에 의해 '한국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부드러우면서도 마치 '자유민주주의의 한 노선'인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어 이미 용어혼란전술에 성공하고 있다. 거물간첩 송두율이 '민주화투사'로   초대되는 것이나, 좌익들의 일체행위가 이미 '민주화 운동'으로 각인되어 있는 실정이다.


저들은 이들은 모든 기업체의 노동자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구미가 당기는 '임금인상 슬로건'을 내세워 선동함으로써 노사분규를 일으키게 한 주체세력이며, 5공에서 6공으로 전환되는 시기의 취약점을 이용하여, 노사분규를 극대화시키며 분신자살을 사주한 세력인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당시 순진한 대학생들이 마귀미혹에 속아 줄줄이 분신하던 사건은 생각하기도 싫다. 무신론 공산주의 사상은 사람의 생명을 도구화하는 잔인한 사상으로 마귀에게 속한 사상이다(요한복음 8:44). 이들은 말단 세포적인 방침으로 청와대서부터 남한 사회 어느 곳이든 다 주둔해 있다.


이 운동을 하는 자들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계급을 <매판독점자본가, 신중산계급, 중소상공업자, 부농, 노동자, 빈농, 영세상인 및 도시 빈민>의 7계급으로 나누며 지배계급은 <매판독점자본가, 신중산계급, 중소상공업자, 부농계급>이며, 나머지 <노동자계급, 빈농, 영세상인 및 도시빈민>을 피지배계급으로 본다. 혁명적 민중은 '노동자, 빈농, 영세상인 및 도시빈민'의 3계급이지만, 실천적으로는 여기서 다시 '상층노동자' 계급을 제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즉 '가지지 못한 자''민중'으로 보며, 한국사회를 크게 2계급으로 나누어 하부층이 상부층을 타도하는 것을 '혁명'으로 본다. 따라서 진보계열 신문이나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무리들이 즐겨쓰는 '민주, 민중, 민족'이라는 용어에는 이 붉은 무리의 철학이 상당히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학생때부터 전경에게 쫓겨다니며 감옥에 드나들며 다져진 사상은 정치판에 들어가건 노동판에 들어가건 강하게 살아 있는 법이다. 방송도 믿지 말고, '평화''민주'와 같은 단어도 듣지 말아야 할 시대이다. 성경이 아니고서는 한치 앞도 분별할 수 없이 속고마는 '혼란'의 시대가 지금이다.


본 선교회를 찾아온 한 탈북자의 진술을 들어보면 북한은 지도층이나 백성이나 '머지 않아 전쟁은 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국가발전'이나 '민생안정' 따위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전쟁 나면 다 같이 파괴될 것인데, 국가발전에 더 많이 발전(투자)한 쪽이 어리석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당과 백성 사이에 만연해 있다 한다.


남한은 전쟁이 나면 피해가 큰 쪽은 이쪽이니 어찌하든 전쟁만은 막아보자는 쪽에서 통일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타락한 자본주의 체제를 까부수고 위대한 수령동지의 염원인 <남조선 인민의 해방>을 위한 통일을 이루어보자는 취지에서 움직이고 있으니, 남북한의 교류가 옳은 열매를 맺을 확률은 0% 인 것이다. 이렇게 성경을 모르면 전쟁이 두려워 그들(독사)의 협박에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고, '남북통일축구'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운동을 통해서라도 긴장을 완화해 보려는 인본주의가 꽃피게 된다. 2002년 9월 7일에 열린 남북통일축구 경기장에는 태극기 반입이 철저히 저지됐다. '민족화합'이라는 속임수 이벤트를 위해 '민족의 얼' 태극기를 희생시킨 사건이다. 북한은 태극기를 분단의 상징으로 보고 있고, 민족화합의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다. 저들 사상에 우리가 동조해준 꼴이 된 우습고 하심한 사건이었다. 북한이 굳이 ‘태극기가 있는 곳에서는 경기를 할 수 없다’고 고집하는 이유를 우리는 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평양경기장에 인공기가 걸렸다고 해서 우리 측이 경기를 포기하겠는가? 남한은 절대 그렇게 못한다. 우리는 못하는 것들을 저들은 자신있게 한다. 북쪽의 사상은 철같이 강하며, 남한의 사상은 진흙같이 무르다는 뜻이다.


'한 민족', '한 핏줄'을 운운하며 '민족공조'를 외치는 것은 감정(민중선동)에 호소하는 북측 전술 중 하나임을 소개했다. '핏줄'을 논하자면 우리 모두가 노아의 후손으로서 인류 모두가 다 '한 핏줄' 아닌가? 400만이 살상된 6.25를 일으켜 놓고도 회개치 않는 그들이 무슨 '핏줄'을 알겠는가? 다 뱀의 소리일 뿐이다. 무신론 '짐승사상'이 망하고 예수의 나라가 오기로 작정된 이 마당에 '단일민족'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한 핏줄'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두가 마귀의 언어혼란전술에 불과한 것인데, 정치나 교회가 이를 분별 못하고 있으니 큰 일이다.


북방에 일곱째 머리 소련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이미 세계는 심판기로 접어든 것이다. 북한 역시 본질적으로 저들의 무신론-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출발한 나라로서 자본주의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하나님'이란 단어는 입에만 올려도 당장 총살형에 처해진다고 한다(2004년 현재 탈북자 ХХХ씨 증언). '한 겨레', '한 민족'을 운운하는 북한 지도부는 '한 민족', '한 겨레'의 목에 총칼을 들이 대고 피비린내를 풍긴 1950. 6. 25. 동란을 아직까지 회개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땅굴을 파고 있다. 400만을 희생시킨 전쟁을 벌여놓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그들은 결코 '한 민족', '한 겨레'가 아니다. 더구나 "신이 없다"는 그들의 사상은 영락없이 뱀의 사상이니 이 사상에 교회는 절대로 손을 잡아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에덴동산에 '뱀 한 마리'가 등장할 때 하나님이 6일간 아름답게 창조하신 에덴이 황무지로 변하였음을 기억하자. 오늘 저 북방의 무신론 정권은 그 뱀의 마지막 후손인데 어찌 그 입에서 나오는 평화공존(1958. 3. 18)과 민족공조라는 말이 참말일 수 있겠는가? 다니엘 9:26절 이하에는 장차 '한 왕'이 일어나서 끝까지 전쟁을 일으키다가 멸망할 것이 예언돼 있다. 또한 본문 13:21절에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수령으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하셨다. 예언대로 구약 예루살렘 성전을 치러 '북방 군대'가 내려왔던 것처럼 이제 21세기의 타락한 기독교를 치러 '북방 군대'가 다시 한 번 내려올 것이다. 이것이 구약 종말을 통하여 인류 종말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경륜과 모략과 오묘이다(이사야 46:10).


『 20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가 받았던 떼, 네 아름다운 양 떼는 어디 있느뇨 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수령으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의 고통에 잡힘이 구로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회개치 않는 교만한 교회가 당할 '확실한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이것을 뒤에서 다시 '구스인''표범'의 예로 설명하셨다. 구스인과 표범이 그 피부와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악에 익숙해져 있는 유다도 결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23절). 이유는 원죄 때문이다. 유다인들은 오랜 죄악의 관습에 물들어 타락하고 썩어져 이제는 '회개'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선과 악도 구별치 못하는 취한 백성이 된 것이다(이사야 5:20). 이같이 영적으로 취한 유다에게 다가올 일은 '멸망'뿐이다. 하나님이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초개처럼 유다 백성을 유랑자로 끌고 가시겠다는 것은 '멸망'시키겠다는 의미이다(24절).


멸망의 원인은 늘상 '한 가지'! 조상적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시편 51:5) 곧 패역뿐이다. 유다의 확실한 멸망을 말씀하실 때 한 번 더 유다의 죄악을 지적해 주시면서 그 멸망이 유다인에게는 아주 당연한 것임을 "분깃"이라는 표현으로 알리셨다.


다시 말하지만 멸망의 원인은 원죄(패역) 때문이며, 이 원죄로 말미암아 마땅히 의지해야 할 하나님보다 강대국가를 의지한 것이 멸망케 될 화를 자초한 것이다. 참 선지자가 외치는 진리의 말씀은 제 마음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버리고, 있지도 않는 '평강'을 외쳐대는 거짓 선지자들의 달콤한 유혹을 힘써 의지한 모습! 그 결과가 멸망이라는 것을 종말의 교회는 깨닫고 배우라는 것이다. 북방에서 오는 자들이야 제 욕심 이루려고 치러 오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유대인을 징계할 심문권을 맡겨 내려보내신 것이다.


에스겔 23:24 "그들이 병기와 병거와 수레와 크고 작은 방패를 이끌고 투구 쓴 군대를 거느리고 치러 와서 너를 에워쌀지라 내가 심문권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 심문권대로 너를 심문하리라"


독자들이여! 세계지도를 펴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저 북방의 무신론 공산국가들을 살펴보라! 주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심문권이 보이는가?


보인다면 당신은 말세종이요,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들의 심문을 피할 수 없는 자이다. 셈의 장막을 보라.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 북한... 모두가 사회주의(공산주의)가 휩쓸고 지나간 나라들뿐이다. 20세기 종말에 공산당이 나온 것은 '교회심문' 그 목적밖에 없다. 이제 심문당할 일만 남아 있다. 이 때 교회를 살려 보려는 마음을 가진 자라면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 편이요(왕권), 이 말에 감동을 받는 자들은 흰무리요(백성), 이도 저도 아닌 자들은 패역한 구약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대언자들을 배척하는 일에 동참했다가 멸망할 자들이다.


종말에 세계 교회를 향해 다시 예언하게 되는 144,000명은 예레미야서를 먹지 않을 수 없다. 먹지 않으면 순교자의 동무종으로서 길을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1,260일은 선지자로서 슬픈 경고의 예언을 하고, 3일 반 동안은 제사장으로서 자기 생명을 바쳐 의로운 제물이 되었다가, 공중재림시 들림받아 '후 3년 반'이 지나면 만왕의 왕 예수님과 함께 지상에 강림함으로써 왕 노릇을 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대선지자, 대제사장, 만왕의 왕 삼직분을 완성하신 것같이,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던 종들(144,000)도 그의 가지로서 이 삼직분에 동참케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4. 재난의 원인은 범죄에 있음 : 22~27


구스인의 피부색과 표범의 반점이 변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죄악도 주님께서 새 일로 고쳐주시는 그날까지 '패역'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될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 22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는고 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 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


유대민족이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가게 될 원인을 진술하고 있다. 원인은 그들의 죄악이 너무 크고 완고하다는 데 있다. 그들은 "악에 익숙"하여 강퍅하고 회개할 수 없는 정도의 상태로 접어 들었다 한다. 교회의 죄악상이 이쯤 되면 남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일뿐이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은 북방의 침략전 앞에 패전(敗戰)하여 나라가 당하게 될 모든 능욕이다. "발뒤꿈치가 상한다" 함은 신발이 없어서 발뒤꿈치가 드러남이니, 곧 맨발로 도망함과 잡혀감을 뜻한 표현이다(이사야 20:4~). 교회가 우상을 섬긴 죄(협상)와 회개 없는 예배(새일 멸시)로 인하여 육체 심판을 받게 되는데 있어서


먼저는 성도의 하체가 드러날 것이며

이사야 3:17~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


성도의 볼기도 드러날 것이다.

이사야 20:4~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 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성도의 부끄러운 것까지 보일 것이다.

이사야 47:2~3 "맷돌을 취하여 가루를 갈라 면박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네 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수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 24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초개같이 흩으리로다 2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네 응득(應得)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연고라 26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27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 』


유대민족이 비참하게 사로 잡혀가도 그들의 죄 때문인 고로 당연하다는 것을 두 차례나 강조하셨다. ① 그들이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초개같이 흩어질 것"과 ② "치마를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하신 이 두 가지 말씀은 "간음과 사특한 소리 곧 비루하고 가증한 음행" 때문에 당하는 "응득이요, 분깃이라" 하신다. 이러한 보응을 받는 것은 아담 후손 속에 역사하는 원죄의 패역을 이기지 못하여 뱀이 꾀일 때 창조자를 버리고 "거짓을 신뢰한 연고"이다. 원죄에 물든 인간은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사단의 공격 앞에 백전백패하고 만다. 원죄 때문에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게 되어 우상을 섬기는 것이며(예레미야 10:14), 원죄 때문에 눈이 가리워져 거짓 것으로 피난처를 삼고 허위 아래 자기 몸을 숨기는 것이다(이사야 28:15). 원죄가 역사하니 정치가와 판사 같은 두령들이 돈을 밝히는 것이며, 원죄가 역사하므로 선지자는 돈을 위해 점치면서 '평강'을 외치는 것이다(미가서 3:11).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2,600년 전에 드러내었던 수치를 오늘날 다시 드러내시겠다는 뜻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원죄에 물든 인간의 사회는 그 모습 그대로이다. 새로 발견되는 악이 없으며, 더 나아지는 점도 없다. 예수님께서 정결케 하신 교회만은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선지서는 바로 교회 안의 백성이 그러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예레미야애가 1:8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같이 되니 전에 높이던 모든 자가 그 적신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 교회가 이방인들 앞에 수치당할 것을 에스겔 16:37, 23:29절에서도 예언하셨다. 원인은 한결같으니 음행! 곧 우상숭배 때문이다.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예루살렘에 화를 선포하는 것은 예레미야 4:13절을 다시 예언함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하셨는데, 패역으로 인하여 무시하고 듣지 않으므로 결국 바벨론이 성을 포위하여 식량이 끊겨, 연약한 부녀(婦女)가 자기 자녀를 잡아먹게 되는 비참지경의 화를 당하였다(예레미야애가 4:10). 인간이 짐승같이 되어버리는 '화'를 당한 원인은 "피 흘린 성읍, 곧 예루살렘의 죄악"에 있다(에스겔 24:6).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 한국의 기독교회여!(K.N.C.C.), 세계의 기독교회여!(W.C.C.)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한국교회는 일본우상과 행음한 사실을 교단적, 민족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세계교회는 붉은 말이 위장하여 나온 청황색말이 장악한 W.C.C.로부터 어서 빠져 나와야 한다. 한국 교회가 과거 신사참배 골짜기 속에 새겨져 있는 자신의 발자국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여 회개치 못할 때, 더욱 큰 우상소굴인 W.C.C. 골짜기로 기어 들어가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현재 K.N.C.C.에는 대한민국 8개교단이 가입하고 있다).


예레미야 4:30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31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딸 시온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 있도다 살육하는 자를 인하여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


한국 교회는 위와 같은 비극을 당하기 이전에, 즉 10일 환난을 당하기 전까지(세계교회는 5개월 환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회개할 기회가 있다. 그 안에 다시 예언하는 말씀 앞에 굴복하고 회개하면 살려니와, 끝까지 완고하면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하신 말씀에 그대로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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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20_예레미야22장

[금 오후 설교예레미야 22장 : 유다 모든 왕들에 대한 경고 2018/04/ Friday Afternoon

2016년 9월 28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22장

제목 : 유다 모든 왕들에 대한 경고


1. 회개 권고와 형벌의 선고 : 1~9


『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서 이를 선언하여 2 이르기를 다윗의 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


"왕의 집"에 내려가 예언하는 행동은 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그가 가서 증거할 예언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기에 익숙한 왕들이 들으면 반드시 격노케 될 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아모스와 같이 하나님만 믿어 극히 담대해지는 일이 없고서는 이와 같은 명령은 순종키가 어려운 말씀이다(아모스 7:13). 그러나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이 순종하였듯이 선지자의 사명을 가진 이 시대의 종들도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읽어 다시 예언하는 데 있어 주저함 없이 나아가야 한다.


1절 초두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로 시작하여 2절 끝에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로 끝내는 것을 보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힘껏 높이고 있다. 이것은 그 듣는 자들로 말씀의 앞에서 두려워 떨라는 의미이다. 기독교는 계시(啓示)의 종교로서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앞에 그 백성이 100% 믿고 떨어 순종할 때에만 "기록된 대로" 축복과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종교이다.


『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제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박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


"공평"이란 치우침 없는 판단을 의미하는데 옳고 그름을 분별함이다. 뒤에 이어 나오는 "정의를 행하라" 함은 각 사람에게 합당한 권리를 찾아주라는 것이다. 이것은 뒤에서 즉시 해설되고 있으니 곧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라"는 명령이다. "이방인""과부""고아", 이 셋은 성경에 흔하게 등장하는 약자의 대명사로서 하나님이 특히나 불쌍히 여기시는 이들이다(야고보서 1:27).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는 것은 여호야김 왕이 선지자 우리야를 잔인하게 죽인 사실을 지적하며 경고한 말씀이다(예레미야 26:20~30).


『 4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마는 5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로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무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6 나 여호와가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꼭대기 같으나 내가 정녕히 너로 광야와 거민이 없는 성을 만들 것이라 7 내가 너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병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순종할 것을 독촉하는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형통하겠지만(4절), 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파멸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결과로 가게 되는 (시기상) 중요한 단계에서 선포된 말씀인 만큼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그들에게 확인시키는 의미에서 "내가 나로 맹세하노니"라고 말씀하셨다(히브리서 6:13).


"이 집이 황무하리라"(5절) 하셨는데, 예언을 듣지 않은 결과로 예레미야 39장에 그 결과가 기록됐다.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꼭대기 같으나 내가 정녕히 너로 광야와 거민이 없는 성을 만들 것이라"(6절) '길르앗'은 아름다운 목장으로 유명하고(길르앗=도피성, 수 20:8), '레바논'은 울창한 백향목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유다 민족이 죄를 회개치 않음으로 '광야'와 같이 되리라고 하신다.


"내가 너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7절) 유다 민족을 침략하여 파괴할 짐승의 나라 바벨론의 군대를 의미한다. 빛이건 어둠이건, 선인이건 악인이건, 상급이건 보응이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장 중에서 결정되고 움직인다. 고로 예언에 순종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이다(이사야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 8 여러 나라 사람이 이 성으로 지나며 피차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에 이같이 행함은 어찜인고 하겠고 9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연고라 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


유대인들의 마음은 너무도 강퍅하여서 바벨론의 1차 침략(B.C.606)을 당하고서도 매맞은 이유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던 상태이다. 그러니 다가올 2차 몽둥이를 예언하고 있는(B.C.599년경)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다. 고로 하나님은 패역한 그들에게 2차 파멸의 이유를 친히 설명해 주고 계신다. 아담의 가정이 뱀의 말에 홀려 넘어간 것과, 솔로몬 성전이 사단(우상)에게 홀려 넘어간 것처럼, 오늘날의 예수님의 피로 사신 수많은 교회들도 북방을 본부로 하여 퍼져나온 '평화공존' 궤휼정책에 완전히 홀려 넘어간 상태가 지금이니 이 시대의 성민이 다시 예언되는 예레미야서를 청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택자는 돌아온다(거짓 평화공존에 연합된 종교인들은 100% 심판의 대상이다). ☞ 신앙문답 112번.


2. 여호아하스의 비참한 운명 : 10~12


『 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서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니라 11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 아비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 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12 잡혀간 곳에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


요시야의 큰 아들 여호아하스가 애굽에 사로잡혀갈 것을 예언하면서 포로지에서 생을 마감할 것을 말씀했다.


3. 여호야김의 죄와 그 형벌 : 13~23


『 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불공평으로 그 다락방을 지으며 그 이웃을 고용하고 그 고가를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광대한 집과 광활한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15 네가 백향목으로 집 짓기를 경쟁하므로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비가 먹으며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공평과 의리를 행치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


요시야 왕의 둘째 아들 여호야김을 꾸짖는 말씀이다. 그는 백성을 고용하고도 노임을 주지 않던 못된 왕이었다(약 5:4).


"네가 백향목으로 집 짓기를 경쟁하므로 왕이 될 수 있겠느냐" 자기 집을 화려하게 짓는 것에 있어 경쟁심이 발동하는 따위의 인격으로는 왕위를 유지할 수 없음을 지적하신다. 오늘날도 성도를 치리하는 많은 목자들이 교인 1명의 영혼구원(천국)과 육체구원(천년왕국) 문제보다도 <신자 등록수><화려한 건물짓기>에 경쟁적이다. 교회의 외형 통한 자존심 보존 따위로 과연 하나님이 맡겨주신 제사장의 직무를 다할 수 있겠는가?


"네 아비가 먹으며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공평과 의리를 행치 아니하였느냐" 부친 요시야의 모범된 생애를 들면서 그를 꾸짖으신다. 지금의 개신교는 16세기에 요시야와 같은 루터가 등장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축복받아 세워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개신교가 또 다시 계시록과 예언서로 종교 개혁을 단행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은 여호야김의 악행으로 떨어져 있다는 증거이다. 교회 안에 극도로 죄악이 가득 찬 때가 지금인 것을 예언서를 먹은 자가 아니고서는 알 자가 없다.


『 17 그러나 네 눈과 마음은 탐람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강포를 행하려 할 뿐이니라 』


부친과는 정반대로 백성에게서 착취하기를 그치지 않았고 의인을 살해하는 악행을 저지른 것을 지적하며 여호야김 왕의 회개를 독촉하고 있다.


『 18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슬프다... 슬프다" 여호야김 왕이 북방의 적군에게 죽게 될 것과 그의 죽음을 슬퍼할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을 말씀하셨다. 왕의 죽음에 그 백성이 안타까와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잔악하고 포학이 얼마나 심했던가를 짐작케 해 준다. 오늘날도 자기 배를 채우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북방이 내려오는 날 여호야김과 같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 20 너는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음이니라 』


높은 곳에 올라 여호야김의 비운을 외치라 하시는 건, 그의 운명이 이 예언대로 마감될 것이 확실함을 강조한 것이다. "너를 사랑하는 자"란 왕의 가족들과 그의 근친들을 가리키는데, 여호야김이 죽는 환난 날 함께 망하리라는 의미다.


『 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던 사실을 지적하며, 그로 인해 그 국가가 멸망하게 됨을 예언하신다. 건강할 때 몸 돌보고, 높아질 때 겸손하고,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할 줄 아는 것이 지혜이며 왕된 자의 도(道)이건만 그는 "평안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며 자신만을 돌보았던 것이 나라를 패망케 한 죄악이 되었던 것이다. "네 습관이라"이라 하심은 멸망 당 할 여호야김의 불순종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긴 세월을 통해 쌓여 온 고질적인 죄악이었음을 말해준다.


『 22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키울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을 인하여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23 레바논에 거하여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의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키울 것이요" 여호야김 밑에서 일하던 지도자들도 바람에 불려가는 연기처럼 모두 다 멸절되리라는 뜻이다. "레바논에 거하며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란 높고 영광된 자리에 거하면서 환난의 두려움을 모른 채 교만해 날뛰며 사치했던 왕을 비유한 말씀이다. 교만자는 극도로 높아졌다가는 반드시 더럽고 가련하고 미천한 처지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는 성경 곳곳에서 증명되는 진리이다(이사야 28:1~4, 14:5~23. 아모스 4:1~3. 6장).


4. 여호야긴의 죄와 그 형벌 : 24~30


『 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너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 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25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의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26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미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에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고 27 너희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혀 갈 것과 그의 모친 또한 쫓겨나 죽을 것을 예언하신다. "오른 손의 인장 반지" 이것은 그 소유자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보물로서 중요한 문서에 인을 칠 때 사용되는 도장이었다. 여호야긴(고니야)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와 같이 긴밀하고 중요한 관계였다 할지라도 죄를 회개치 않는 한 (공의 법칙에 의해) 그는 사정 없이 내던져진다는 것이다.


『 28 이 사람 고니야는 천한 파기(破器)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29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3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無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 』


왕의 장래가 얼마나 비참할 것인가를 탄식한 예언이다. 구약 유다에 있었던 사건은 인간 종말에 교회에 있을 심판이므로 정신을 차리고 들어야 한다.


"천한 파기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사람이 천하여 쓸모없이 된 그릇을 내어버리듯이 여호야긴도 하나님 앞에 그렇게 던지움을 당할 것이라 한다. 본래는 그렇게 될 일이 아닌데, 왜 변질되어 불순종함으로 이와 같은 일을 자초했느냐는 탄식조의 말씀이다.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유대 민족의 말로(末路)를 대표하는 여호야긴과 그 가족의 비참한 운명을 내다볼 때 느껴지는 원통함과 탄식이 배어져 있는 말씀이다.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총애를 받던 기독교회가 구약 교회가 걸어갔던 이 모든 일에 유념치 않고, 다시 예언하는 말씀을 무시하여 오메가의 미혹 앞에 끌려간다면 북방 칼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유대 왕가에 대한 예언을 어찌하여 오늘날의 교회에 적용시키느뇨?"라고 말하는 모든 이들은 사단의 자식들이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복음을 주신 궁긍적 목적은 인간 종말의 세계 역사가 계시록 10:7절처럼 되게 하시어, 계시록 11:15절의 나라를 이루기 위함에 있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의 역사가 동일함을 깨닫고 구약 교회가 당한 이 비운을 세계적으로 선포하여 세계 교회로 하여금 이 예언의 확실성을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다시 예언하라" 명령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가 된다. 참 종은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자이다. 예수님은 '작은 책'과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꿀같이 먹고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라" 하셨으니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뿐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멘!"


(신앙문답) 112. 지금 세상이 평화를 부르짖는 이 때에 기독교 신자의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우리 기독 신자는 '평화'를 반대할 것도 없고, '평화'를 위하여 활동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한 말씀대로 '잠깐동안 잠잠한 때'도 있고, '홀연히 환란이 임하는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애쓴다 하여도 말씀대로 되는 일을 막을 수가 없으니 우리는 말씀대로 나리는 역사를 날마다 받아야 할 것이요, 말씀대로 될 장래를 분명히 알고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낙심할 필요도 없이, 날마다 우리의 사는 목적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새 시대에 두고 그날의 수고에서 만족을 찾고 충성을 다할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니,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에 순종할 의무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죽을 것 같은 일이라 하더라도 주의 뜻이라면 순종해야할 것이며, 아무리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있다 하여도 주의 뜻이 아니라면 순종치 않아야 할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을 앞세운다는 것은 교만에 가까운 일이니,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생각밖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종들은 풀무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단 3장).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우리의 생각밖에서 나타난다는 것은 과거 성도들의 삶에서도 그러했지만, 이제 우리 시대에는 더욱 분명한 사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를 부르짖는 세상' 속에서 말씀대로 오는 평화 왕국을 위하여 활동하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인격을 무장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인위적인 평화'라는 것은 '잠깐'인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므로) 인위적인 평화에 목적을 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 행해진 뒤에 오는 완전한 평화 왕국에 목적을 두고 심판 날에 두려움이 없이 설 수 있는 인격과 신앙을 다지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것도 생각지 않고 내 인격 하나를 바로 가지기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전 생활의 목적으로 두고 싸워 나가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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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20_D_예레미야12장

[금 새벽 설교예레미야 12장 : 재앙 받기를 자초(自招)하는 교회 2018/04/20 Friday Dawn

2015년 6월 1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12장

제목 : 재앙 받기를 자초(自招)하는 교회


1. 선지자의 호소와 하나님의 답 : 1~6


『 1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


"쟁변"이란 투쟁적인 변론을 의미한다.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한 것은 역설체(力說體)이다. 예레미야가 이 점을 역설한 이유는 그가 비록 이후로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의문을 갖기도 하겠지만 "주님의 공의"을 믿는 그의 신앙만큼은 의심이 없다는 것이다.


욥기 9:3 "사람이 하나님과 쟁변하려 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이 질문은 시편 73:2~16절에도 기록돼 있다.  이 세상에서는 형통하는 악인들이 더 우세한 듯 산다. 하지만 그들은 반드시 멸망당할 때가 있는 반면,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많은 재앙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해 주시므로 필경 하나님을 영원한 분깃으로 모시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약속해 준다(시편 73:18~28, 17:14~15).


『 2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형통하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되어지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합 1장). 이들의 형통함이 부러울 것이 없는 것은 그들의 분깃은 '이 세상 것'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그들의 인생 또한 참 성도들의 영적 승리를 도와주는 보조자 역할(악역)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이사야 10:5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하셨으니 야곱을 위하여 에서가 존재하고 아벨을 위하여 가인이 존재하고 예수님을 위하여 가룟 유다가 존재하며 예레미야를 위하여 하나냐가 존재하는 것이다. 종말에도 스룹바벨 단체를 위하여 666 바벨이 존재한다. 144,000명의 종의 수만 차면 잠시 쓰시던 악을 제하시고, 버터와 꿀이 넘치는 새 시대 천년왕국을 이루신다고 주님 친히 약속하셨다(이사야 7:15).


『 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하옵소서 』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이 말씀은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맡겨지는 선지 직분을 완수했다는 뜻이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만큼 절실한 사명감을 가지고 예언했는가를 보여준다. 이렇게 선지자가 할 일을 다하였으니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반역하던 유대인에게 대하여는 이제 멸망이 선포될 뿐이다. 선지자의 예언이란 듣는 자들이 회개치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예언이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절대 작정을 대언(代言)하는 자이니만큼 백성이 그의 말을 무시하여 거절할 때에는 심히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거짓 선지자도, 참 선지자도 다 하나님이 쓰신다. 하나님이 이렇게 거짓 선지자까지 내어보내심은 이 백성이 진실로 여호와를 믿는 것인지, 믿는 시늉만 하는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라 하셨다(신명기 13:1~5. 예레미야 23:15~32).


『 4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무수한 "채소"와 "짐승들"까지도 다 "멸절"되야 하는가에 대해 하나님께 애탄하며 질문하고 있다. 하나님은 스바냐서에 확실히 답해 놓으셨다. 자연계의 재앙도 인간의 죄값이라는 것이다(스바냐 1:2~6).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악인들의 심히 악하고 무지한 말이다. 이 말에는 첫째, 예언자들이 떠들어 대던 소리가 맞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비아냥거림의 뜻이 담겨 있다. 둘째로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은 감찰하지 않으신다는 실로 무신론적인 신앙이 담긴 말이다. 이방 무신론 공산당 같은 자들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본문 예언은 하나님의 성전 안에 저러한 말을 지껄이는 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교회 안에' 말이다!


시편 10:3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鑑察)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교회 안에 악인이 있다.


『 5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 하겠느냐 』


예레미야가 예언사역을 하는 중 고향 사람들로부터 받는 핍박의 괴로움을 하나님께 고할 때 임한 말씀이다. 앞으로 보다 더 큰 고통이 임할 것인데, 현재의 고통 정도로 피곤하다면 어찌 버티어낼 수 있겠느냐는 질문형식의 권고 말씀이다. 예레미야가 그 고향 아나돗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것은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배신당했을 대의 느낌과 같은 것이었으니, 실로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당할 더 큰 환난에 비할 때 "평안한 땅에서 무사히 지내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시다. 앞으로 "요단의 창일함"과 같은 일이 있을 것이라 하신다. 이는 요단강의 넘치는 수재(水災)를 의미한 것으로, 이제 북방 바벨론 군대가 홍수물이 넘치듯 밀려내려오므로 당할 고통에 비하면 지금 당하는 고난은 '새 발의 피'(鳥足之血)라는 것이다(다니엘 11:40~45).


다시 예언하고 있는 말세의 종들이여! 우리가 현재 전도 중에 당하는 '혀가 마를 딱한 사정'은 앞으로 이 나라에 북방 공산당이 내려와서 안겨줄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자.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니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의지하지도 말자. 우리는 하나님만 의뢰하여 더욱 담대히 나아갈 것뿐이다. 시편 118: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아멘!


『 6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


예레미야가 현재 당하는 고난은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정도이지만 앞으로는 "형제와 아비의 집"에서까지 배척당할 것이라 하신다. 이런 환난은 강한 종으로 빚어내어 확실하게 쓰시기 위한 연단이라고 본다(이사야 48:10~, 29:1~4). 이사야 50: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강인한 인격으로 만들어야만 수치를 이기고 나아가 사명을 완수할 수 있으므로 주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고난의 풀무에 집어넣어(이사야 48:10) 금강석같이 만드신다(겔3:8~9).


"그들이 너를 속이며...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참 종의 주변에는 인정(人精)으로 다가와 믿게 한 후 쓰러뜨리는 마귀의 배신행위가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참 종이 마귀가 쓰는 그 인정(人情)을 받아주지 않을 때, 그 종의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는 것이다(마태복음 10:34~39). 미가 선지자도 이르기를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하였고(미가서 7:5), 다윗도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기도하였으니(시편 141:3), 참 종의 갈 길은 인간의 잔정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만 교통해야 하는 고독한 길이다.


창세기 22장의 모리아산의 제사를 추억해 보자. 아브라함은 천하만민을 살리게 될 큰 제사를 행함에 있어 입술의 문을 굳게 지켰다. 동행한 두 사환에게 의로운 거짓말을 하여 먼 곳에 머물게 함으로써 제사의 방해를 받지 않았으며(22:5), 또한 뭔가를 눈치챈 듯 두려워하며 질문하는 아들의 물음에도 우회적으로 답변하여 '입술의 문'을 지키었다. 하늘이 준 지혜이다(22:7~8). 미리 알려주었다면 사단은 이삭에게 순종심보다는 공포심을 주었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빠른 달음질로 도망하여 자기를 죽이려는 하는 아비의 집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출발 전날 밤, 품에 누운 여인과 의논하지 않은 아브라함의 입술은 최고로 귀한 입술이다! 만일 사라를 존중히 여겨 그녀와 의논하였다면 사단은 사라 속에 들어가 나이 90에 얻은 귀한 독자를 잡아 죽이려는 남편을 '미친 영감'으로 매도하며 이삭을 구해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자녀'로 주신 자식을 죽이려는 남편을 마귀들린 자로 몰아세웠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라뿐 아니라 그 집의 모든 종들까지 아브라함이 귀신들린 줄 알고 차후로 심히 경계했을 것이다.


만일 아브라함이 종들이나, 아들에게나, 그 품에 누운 여인 사라 중 누구 하나에게라도 '입술의 문'을 열었더라면 모리아산 제사는 마귀의 훼방으로 망쳐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려는 마귀의 참소는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것이니 참 종은 하나님의 뜻을 가슴에 묻어둔 채 조용히 실천에 옮겨야 할 뿐이다. 이 인격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은 오늘도 종들을 단련시키고 계신다(이사야 29:1~8).


사명이 큰 종과 그 가정, 그리고 그 교회 안에는 마귀의 참소가 극도로 강한 법이다. 고로 하나님은 당신의일이 완성되기까지 참 종의 입술을 굳게 지켜 주신다. 사람이 힘세고 고집있는 소를 부릴 때 그 코를 꿰어 부리는 것처럼, 하나님도 어디로 빗나갈 지 모르는 패역한 인간들을 쓰실 때에 그 코를 꿰어 꼼작 못하게 하신 후 쓰신다. 도망가던 요나는 코가 꿰어 잡혀온 대표적 경우이고, 모든 선지자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아브라함은 순하게 말씀을 좇아간 대표적인 모범 케이스이나 그의 '입술 문'을 지켜주신 분은 여호와시다. 선지자의 길은 마귀에게 얻어터지고 마귀불에 그슬리는 고난의 길이므로 하나님이 붙잡아주시지 않으면 인간으로서는 다 도망가고 마는 법이다. 지금 예레미야도 극도의 고통 중에 있으나 하나님은 그의 코를 꿰고 그의 입술을 지키시며 당신의 일을 완성해가고 계신다.


2. 산업 황폐를 슬퍼함 : 7~13


『 7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산업을 내어던져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을 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 』


"내 산업, 내 집, 내 마음에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과 유대인을 의미하는데, 종말적으로는 '피로 사신 세계의 영적 이스라엘'을 뜻한다. 지금도 세계교회가 구약 때와 같이 "하나님의 성전이 여기 있으니 누가 감히 우리를 침략하랴"(예레미야 7:4) 라는 안일함을 보이고 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심판 받았으니 교회에는 더 이상 심판이 없다는 주장이다(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자범죄를 씻기 위한 죽음이다. 원죄 즉 육체 심판 문제는 보혈로 사신 책을 통해 해결받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뼛골 속 원죄까지 다 씻으셨다면 현재 우리 육체가 늙고 병들어 흙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창세기 3:19). 이 '사망선고'는 초림주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요, 그분이 친히 재림할 때 해결하실 문제이다(이사야 25:6~8. 스가랴 3:9). 이 때 쓰이는 법은 당신의 '피로 산 말씀'이다. 종말의 환난이란 '영혼구원' 받은 교회의 불법을 심판하는 일이므로(육체심판), 이 심판을 피하는 길은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그 믿음 위에 그분의 피로 산 예언서의 법까지 순종하는 것뿐이다). ☞ 하나님의 시대적인 7대법


하나님께서는 종교적 외형만 붙잡고 그 권위와 위엄 아래 피신하는 자들을 제일로 미워하신다. 이들은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나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난 자들인데, 계시록 11:1~12절같이 성전 안에 있는 자들을 척량할 때 성전 밖 마당이 되어 이방인(북방)의 칼에 붙여질 자들이다. 마태복음 23:23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義)와 인(仁)과 신(信)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메시야께서도 외식자들을 정죄하신 말씀이다. 그렇다면 만왕의 왕의 재림 주 앞에 서야 할 종말의 외식자들 역시 정죄당할 것은 뻔하다. 종말의 외식자들은 누구일까? 교회에 다닌다면서도 예수님이 재림주 형상으로 사도요한에게 나타나시어 하신 말씀을 따르지 않는 모든 자들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나의 내 피로 산 교회들이여(사도행전 20:28), 너희는 이 예언의 말씀을 꿀같이 먹고 내가 다시 올 때에 전 세계에 다시 예언하라"(계시록 10:7~11). 이 말씀을 잊고 살면서도, 그 받은 '영혼구원'에 만족하며(안주하며) 다시 예언하는 자들을 훼방하는 이들은 모두 종말의 외식자들이다. 주님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멸시하던 자들은 결국 재림하시는 주님께 심한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마태복음 24:45~51).


『 8 내 산업이 삼림 중의 사자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발하는 고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라 』


"내 산업"이란 유다 민족을 의미한다. 그러나 종말인 현재에는 이 땅의 교회들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을 고집하며 그 말씀을 지키지 않기는 매한가지이다. 특히 '다시 예언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하나님의 새 일(예레미야 31:22)을 애써 이단시하고 있는 모습은 하나님께 대한 마지막 대항이라고 볼 수 있다. "삼림 중의 사자 같다"고 하심은 선민이 하나님께 으르렁대며 대드는 모습을 비유하신 것이다. 예언을 불신앙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함이니 이를 싸우려고 달려드는 사자의 모습에 비유하신 것이다. 인생은 그 창조된 목적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라"는 것인데, 인생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자신을 더 신뢰하며 세상의 무수한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그것이 곧 우상숭배이다. 우상제일주의는 사단에게 속한 사상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배척하는 말로 형용치 못할 배은망덕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하심과는 정반대로 행하며 하늘에 대해 투쟁적으로 움직인다. 20세기에 들어 '하나님이 없다' 하는 무신론 유물사관의 무리가 등장해 북방에 자리를 잡고 핵강대국이 된 것도 모두가 성경을 이루기 위함이다. 이들이 나타난 것은 '사자같이 사납게 제 주인을 향하여 으르렁거리는 망령된 교회'를 잡아먹기 위해서이다. 이 적기독의 무리는 성경의 '짐승'으로서 타락한 교회를 심판하고 잠시 세상을 차지하였다가(후 3년 반) '아마겟돈'에서 멸망할 세력이다.


『 9 내 산업이 내게 대하여는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 매들이 그를 에워싸지 아니하느냐 너희는 가서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것을 삼키게 하라 』


유대교회가 "무늬 있는 매"와 같다 하신다. 무늬 있는 매란 얼룩진 육식조(肉食鳥)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비둘기 같은 순한 새가 아니고 매우 사나운 새이다. 교회를 사나운 육식조(六識鳥)에 비유한 것은 선민이 하나님을 떠나 육식조와 같은 이방인의 마음을 본받으며 이방인의 풍속에 자신을 물들였음을 의미한다. "매들이 그를 에워싸지 아니하느냐" 이것은 이방 모든 나라들이 위에서 말한 바 "무늬 있는 매"와 같은 유대교회를 침략하리라는 말씀이다. 유다 나라는 예쁘게 꾸미고서 이방과 타협·협상하므로 덕을 볼 줄 알았으나(평화공존) 도리어 주 앞에 심판 받을 행위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계시록 17장). 종말에도 은혜를 크게 받고서도 이와 동일한 노선을 가고 있는 "무늬 있는 매"가 등장했다(W.C.C., K.N.C.C. / 사명국가 대한민국의 협상정치). 이 예언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북방 칼에 무참히 죽어나가고 말 것이다.


지금의 기독교는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의 예언을 버리고 사단의 거짓 평화공존을 따라가고 있는 현실이므로, <다시 예언하는 단체>가 없다면 쑥물을 먹고 죽어가는 양 떼를 살려낼 도리가 없다(새일성가 57장 3절).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길은 '하나님의 시온깃발'을 높이 들고 다시 예언하는 길뿐이다(새일성가 37장 2절). 상황이 예언대로 흘러갈 줄 미리 아시고 주님은 초막절(레위기 23:34~44) 역사를 위하여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신 것이다(계시록 10:11).


이사야 56:9~10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오늘날의 교회 지도자들은 '벙어리 개'가 되어버린 현실이다. 고로 들의 짐승 곧 북방 공산당이 하나님의 몽둥이가 되어 내려온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당시에는 유다가 북방 바벨론으로부터 세 차례의 침략을 당하므로 이 예언이 성취됐고, 예수님 당시에는 AD 70년에 로마 제국이 유대교회를 멸망시키므로 성취되었으며(마태복음 23:37~39),


종말에는 소련이 후 3년 반 동안 세계 교회의 쭉정이를 다 멸함으로써(계시록 13장) 이 예언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다시 예언하라 함의 귀중성을 알겠는가? 우리가 살고 죽는 길이 구약책에 기록돼 있다. 고로 이 시대의 살 길은 '평화공존'이 아니라 '다시 예언' 뿐이다(계시록 10:7~11).


『 10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훼파하며 내 분깃을 유린하여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 』


"많은 목자"란 이방 나라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유대교회가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잔인무도한 이방 나라의 폭군들에게 유대백성을 버리신 것이다. 여호와만이 유다의 목자이신데, 이제 목자가 바뀐 것이다. "내 포도원, 내 분깃, 나의 낙토"라는 세 가지 말이 나오는데, 아무리 아름다운 하나님의 소유라 하더라도 회개치 않고 끝까지 불순종하면 여지없이 버린다는 교훈이다.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내리시고, 반석을 터뜨려 물을 내주시면서까지 살려내신 당신의 귀한 이스라엘이었다. 여러 가지 이적으로 가나안 강대 족속들을 멸해 주시고, 이스라엘에로 승리케 하신 하나님이셨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소산을 내려 주시고, 당신이 거하실 성전건축을 허락하시어 영광으로 충만케 하시고 제사를 받아주시던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백성은 배은망덕하고 우상을 따라갔다. 자기 패역을 좇아 각기 제 길로 치우쳤다. 그러나 하나님은 패역을 참으시며 때마다 심판치는 아니하셨다. 길이 길이 참으사 선지자를 보내시며 훈계하셨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비의 마음으로 말이다. 백성이 선지자를 죽이면 또 보내시고, 가두고 내쫓아도 다시 일으켜 내보내셨다. 당신이 백성에게 매맞고 쫓겨나시면서 그들의 살 길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한없는 은혜로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치 않고 불순종할 때 눈물을 흘리시며 북방 몽둥이를 내려보내 심판하셨다.


구약의 역사를 보면서 '이방의 개'였던 우리의 패역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값없이 거저 얻은 은혜로 '피로 산 백성'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나 선지자들이 맞아죽어가며 기록한 '생명의 경고'가 다시 예언되는 오늘날, 이 예언을 또 다시 무시한다면 아무리 피로 산 17억의 영적 선민이라 할지라도 구약 선민보다 더 나은 대우를 기대할 수 없다. 종말의 심판은 구약보다 훨씬 더 준엄할 것이다. 악마는 득세하고(하박국 1장, 계시록 9장), 교만의 북방 몽둥이는 주의 손 안에 높이 들려져 있기 때문이다(이사야 10:5~19).


『 11 그들이 이를 황무케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무함은 이를 개의하는 자가 없음이로다 12 훼멸하는 자들이 광야 모든 자산 위에 이르렀고 여호와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삼키니 무릇 혈육 있는 자가 평안치 못하도다 』


본 구절은 유대가 북방 칼에 의해 얼마나 비참하게 유린당할 것인가를 묘사해 준다. "황무"란 말이 3번이나 나오고, "훼멸", "여호와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삼킴", "평안치 못함" 등의 비참한 표현들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구약 유다의 형편은 종말의 협상주의 교회가 처할 형편이기도 하다. 모든 예언은 종말의 거울임을 한 시(時)라도 잊지 말라! (히브리서 10:1~1. 고린도전서 10:6,11. 로마서 15:4. 이사야 46:10~).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자연계도 인간의 죄 때문에 재앙을 받는다(창세기 3:17. 로마서 8:19~22).


"이를 개의하는 자가 없음이로다" 예레미야에 대한 아나돗 사람들의 죄악은 하나님께 대한 유다 전체의 죄악과 같다. 죄악으로 인해 환난 앞에 직면하여서도 완고하여 회개치 못하므로 예비된 심판이 결국 시행되리라는 뜻이다.


『 13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인하여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를 인함이니라 』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불순종한 백성들에게 받을 재앙은 노력하고 기대한 것에 비해 형편없는 소산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 떠난 모든 노력은 헛수고가 됨을 뜻한다. 사명자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을 때 하나님은 노력해도 허사가 되는 재앙을 내리신다(학개서 1:9~11).


3. 포로민에 대한 예언과 회복의 약속 : 14~17


『 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산업으로 준 산업을 다치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게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 버리겠고 유다 집은 그들 중에서 뽑아 내리라 15 내가 그들을 뽑아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17 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본 구절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택민을 위하여 막대기로 사용한 북방 바벨론을 70년이 찰 때 징벌할 것임(예레미야 25:12).

택민은 죄값을 치르고 반드시 돌아올 것임(역대하 36:21~23. 에스라 1:1~11).

택민이 돌아올 때 이방인들도 함께 하여 야곱의 도(이사야 2:3)를 부지런히 배우며, 바알 신을 섬기던 열심으로 참 신 하나님을 섬기면서 새 땅 백성으로 가입될 것임(계시록 7:9~15).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기준을 세우시고 기준에 합당한 선택을 행하신다. 먼저는 '율법'을 세우시고 율법으로 당신 백성을 택하셨고, 그 후에는 '십자가'를 세우시고 은혜로 다시 뽑아 택하셨으며(사도행전 13:48), 이제 마지막 환난시대에는 '기호'를 세우시고 변화성도로 택한 자 144,000명(계시록 7:2~8)과 그들의 전도를 받고 백성으로 택함 받아 환난을 면코 새 시대에 들어갈 흰무리(계시록 7:9~17)를 끌어내신다. 성경의 커다란 줄거리는 이렇다. 당신의 선하신 선택과 모략을 통해 구약역사를 주관하시며 예언이 기록되게 하신 다음, 그 예언을 다시 피로 산 백성에게 그대로 적용되도록 역사를 운행하시어 당신의 메시야 왕국을 이루어내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그의 결정함에 결코 후회가 따르지 않는 절대적인 선택과 유기를 행하시므로 피조물 된 자로서는 그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에베소서 3:18~19). 다만 시대마다 주시는 말씀에 어린아이와 같이 순종하므로 '입법자' 하나님께로부터 긍휼을 얻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백성된 자로서의 최고 지혜일 것이다.


순종보다 나은 제사는 없다(사무엘상 15:22).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하시되 각처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순종의 깨끗한 제물을 드리는 자들로서 백성을 삼겠다 하셨다(말라기 1:11). 겸손한 자는 예언서를 붙잡고 순종으로 나아가 하늘과 땅의 축복을 차지하지만, 교만한 자는 세상 죄악의 물에 빠져 썩음을 당하고 말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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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9_D_예레미야11장

[목 새벽 설교예레미야 11장 : 언약의 호소 2018/04/19 Thursday Dawn

2015년 5월 31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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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11장

제목 : 언약의 호소


1. 언약의 선고 : 1~8


『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 가라사대 2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고하라 』


"이 언약"이란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주신 모든 약속이다(창세기 12:3, 22:18. 신명기 27:26). 우리 인류는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천국복음(마태복음 24:14)과 인종 가을에 쓰일 영원한 복음(계시록 14:6)에 순종하므로 영과 육이 온전히 살아서 빼앗긴 에덴동산의 축복을 얻을 수 있다. 이 언약을 삼위의 하나님께서 진실히 다 이루시면 그곳이 '그리스도의 나라'이다(계시록 11:15).


"고하라" 이스라엘은 이 언약을 들어야만 살 수 있기에 고하라 하신다.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 약 1,500년간에 걸쳐 모세로부터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고하게 한 것이 바로 '율법'과 그 현실적 해석인 '예언서'이다. 천지는 없어져도 율법(정신)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룬다 하셨다(마태복음 5:17).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시대를 향하여서도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福音)과 같이 이루리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신 것이다(계시록 10:7~11). 그런데 현재의 교회들은 '예언서' 알기를 우습게 알고, 깊은 영적 잠에만 취해가니 한탄스런 마음뿐이다.


『 3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좇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아주 엄중한 말씀이라 생각된다.


① 언약의 말씀은 하나님의 '무궁한 진실'에 의한 것으로서 그 이상 믿을 만한 것은 천하에 없으며, 누구든지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주님께로 돌아올 길을 아주 잃게 되기 때문이다.

② 언약의 말씀은 실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는 말씀인데, 그것을 좇지 않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겠다'고 대적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③ 언약의 말씀은 모두가 다 옳기만 한 말씀으로, 누구든지 그것을 받지 않을 때에는 멸망의 길인 악(惡)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사도행전 13:27~).


신명기 27:15~26절에도 두 번이나 저주 선언을 하시면서 그 당연성을 고조시켰다. 저주를 받을 만한 죄를 고집하는 자는 결국 발뒤꿈치로 송곳을 걷어차는 격과 같다.


『 4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열조를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쇠풀무"는 무서운 압제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그러한 고통을 체험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세우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셨다. 이 거룩한 언약의 말씀은 이스라엘을 괴롭히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그들을 평안케 하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종말론적으로 볼 때 이 말씀 안에는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다시 찾아 천년 안식을 주시겠다는 궁극적 목적까지 담겨 있는 것이니, 만대를 명정하신 하나님께서 '세계통일역사'라는 큰 뜻을 보이실 때에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시라"(이사야 11:16)는 말씀으로 대신하신 것이다(호세아 2:15. 미가서 7:15).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430년(출애굽기 12:40) 만에 출애굽 한 것은 지상에 있는 '약속의 땅'(천년왕국의 그림자)에 가자는 것이었지, 부활의 몸으로 들어가는 영체세계인 '천국' 가자는 목적은 아니었다. 영혼의 천국과 지상천국은 반드시 예수님 손에서 다 이루어져야 하되 '마음의 천국'은 신약 곧 새 언약의 피로 죄를 씻고 영혼의 구원을 얻음으로 이루어지고, 아직 이루지 아니한 새 일(예레미야 31:22. 이사야 42:9, 이사야 43:19)로는 원죄까지 제하여 출애굽 때 보여준 약속된 '땅'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니 '새 언약'과 '새 일'을 통한 예수님의 완전역사만이 인류에게 참 기쁨(에덴)을 회복시켜 줄 수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자꾸만 예수님 피 공로로 얻은 심령천국에 갖다 붙이는 것은 새 시대가 무엇인지, 새 일이 무엇인지, 기독교 2차승리(계시록 6:2, 7:1~8, 19:11~21)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행하는 실수이다. 율법주의자들이 '은혜시대'의 역사를 이해 못하여 새 언약의 메시야를 반대했듯이, 은혜의 종들 또한 '환난시대'의 역사가 무언지 모르기 때문에 새 일의 심판주님을 반대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성경(종말론)을 보는 눈이 어려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ㆍ육간의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면 실제 땅은 실제 땅으로, 영적 축복은 영으로, 말씀의 불은 말씀으로, 심판의 불은 실제 불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때와 시기'를 분별하는 지혜로운 종이 됨과 동시에 자기의 사명을 정확히 수행할 수 있게 된다.   


『 5 내가 또 너희 열조에게 한 맹세 곧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날이 그것을 증거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창세기 15:7~21. 출애굽기 6:4) 모리아산의 축복은 '땅'에서 받을 축복이다(시편 105:9~11). 구약은 종말의 거울이다(히브리서 10:1~. 이사야 46:10). 모세가 명한 '유월절 양의 피'로써 애굽의 고역에서 430년 만에 해방받은 옛적의 그림자는, 그 모양 그대로 말라기 1:10~ 성전 문을 닫은 지 430년 만에 신약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면적인 유월절 양인 예수님의 피로써 실체화되었다. 양의 피를 바른 표면적 이스라엘이 예수님의 피를 바른 이면적 이스라엘로 바뀐 것이고, 표면적인 애굽이 이면적인 죄악세상 애굽(계시록 11:8)으로 변화된 것이다. 모세 때의 출애굽은 신약시대의 중생(거듭남) 역사요, 3일길 끝에 통과한 홍해는 예수님께서 밤낮 사흘 끝에 부활하신 사건이다. 홍해를 건너간 이스라엘을 애굽 군대가 더 이상 쫓아갈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된 영적 이스라엘을 죄와 사망이 더 이상 주관할 수 없음을 뜻한다.


로마서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 로마서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렇게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였다(히브리서 10:1). 모세 총회가 걸어간 길도 오늘날 기독교의 행보를 미리 보여준 사건이다. 우리 기독교는 지금 어린 양 예수의 피를 바르고 중생받아 신령한 영적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루어 약속의 땅 가나안(천년왕국)을 향하여 가고 있는 중이다.


그당시 모세 총회를 방해하던 '모압'이나 그밖의 '이방 잡족'의 무리들은 바로 종말의 '일곱째 머리'와 그에 붙은 열 뿔에 비길 수 있다. 이러한 <그림자-실물구조>를 깨닫는 자는 본 선교회에서 외치는 말씀들이 꿀같이 달게 느껴지므로 구약의 모든 말씀을 계시록과 더불어 이 시대에 증거할 수 있게 된다. 방주가 완성되기까지는 방주에 필요한 양만큼의 '잣나무'(Korean pine)를 잘라와야 하듯이, 오늘날도 이 말씀을 꿀같이 먹고 무장하여 다시 예언할 수 있는 파수꾼의 인격자(잣나무)들이 완비되면 하나님은 5개월간(창세기 7:24. 계시록 9:3~5) 황충 떼를 내려보내신다. 이 때 '인 맞은 자' 144,000명(=인간방주)은 환난의 물 위에 떠서 세계를 향해 종일종야 외치므로(이사야 62:6~7) 많은 '흰 무리'가 회개하여 예비처로 인도받게 된다. 이 같은 일이 성취됨으로써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왕권자'와 '일반백성'이 완비되는 것이며, 이 일을 이루는 데 있어 기준으로 세워놓으신 제단이 바로 학개 2:6~20절의 제단이요, 그 사명자는 학개 2:21~23절의 스룹바벨이다. 예수님은 모세요, 144,000명은 두 증인 여호수아, 갈렙과 같은 자요, 흰무리는 20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에 비길 수 있다. 이러한 <그림자-실물구조>를 알아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모략과 경륜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다.


◈ 언약에 대하여!


구약 책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새 일' 교훈으로써 영·육 간의 완전한 구원을 주실 것이 약속돼 있는데(예레미야 31:31~34, 21~22), '언약'이라는 것은 인격과 인격이 만나 결성(結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인격적으로 상대하시며 계약적으로 관계해 오셨다. 인간의 죄악으로 갈라진 신(神)과 인(人)의 화합은 이제 신이 제시한 계약의 성취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계약파기(契約破棄)의 시기(時期)는 곧바로 신인(神人)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다(율법시대는 행위계약, 은혜시대는 은혜계약). 계약을 세우고 성취시키실 때마다 종을 들어서 역사하셨으니, 율법 때는 '모세'요, 은혜 때는 '베드로-바울'이요, 뒤집어 엎는 심판 때는 '스룹바벨'이다. 종말의 역사를 위해 남겨 놓으신 별개의 종(요한복음 21:21~22) 사도요한(보아너게=우뢰의 아들/막 3:17)의 사명이 이전된 종말의 '뢰자(雷子)' 계통에서 초막절 열매들인 144,000명이 일어나면 그들이 수많은 흰무리를 새 시대로 인도할 것인데, 이 일체의 사건이 '순의 역사'로 열매맺는 '순금등대 촛대역사'이고, 이 때 쓰임 받는 사명자가 '스룹바벨'이며, 그의 손에 주신 권세가 바로 '머릿돌'(스가랴 4:7)과 '다림줄'(스가랴 4:10)과 '하나님의 인'의 권세이다(학개서 2:21~23).


마태복음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 6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말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준행하라 7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간절히 경계하며 부지런히 경계하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청종하라 하였으나 8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하였어도 그들이 행치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말로 그들에게 응하게 하였느니라 하라 』


누구든지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다면 순종(준행)해야마 복을 받는다고 하신다.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라고 하신 말씀은 시간적으로 볼 때 경고하시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예레미야 30:24).


"간절히, 부지런히 경계하기를" 패역하여 말을 들어먹지 않는 이스라엘을 살리고픈 애타는 하나님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언제나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시는 사랑 끝에 공의(심판)를 시행하신다. 참는 동안 돌이키지 못하는 교회에는 형벌이 따르기 마련이다.  


2. 교회의 배약(背約)과 장래 형벌 : 9~17


『 9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10 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에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겼은즉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 열조와 맺은 언약을 파하였도다 』


"반역"이란 유대교회가 율법의 계약을 위반하고 우상을 섬긴 사실을 가리킨다.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행하여 모든 우상을 철폐하고 이스라엘을 다시금 여호와 앞으로 돌이켜 놓았으나(열왕기하 23:1~25) 그의 아들들과 백성은 또다시 부패하여 반역하고 말았다(여호아하스로부터 시드기야까지). 이제 남은 것은 피할 수 없는 재앙뿐이다.


『 1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12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곤액 중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치 못하리라 13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효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효대로 그 수치되는 물건의 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단을 쌓았도다 14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곤액을 인하여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을 듣지 아니하리라 』


유대교회(현 교회의 거울)가 강퍅한 죄를 고집하므로 받을 벌이 크다는 것이다.


내리는 재앙을 피할 길이 없음(11)


그들이 구원받기를 애원해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심(11) :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록)을 듣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도 저희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스가랴 7:11~14).


그들이 위하는 신들(이방신, 우상들)이 그들을 구원하여 주지 못하는 사실이 드러남(12~13) : 환난 전에 많은 다른 신들(이원론, 다원론, 협상사상)을 섬겼으며 그 신들이 저희를 구원해 줄 줄로 알았다. 그러나 구원은 여호와께로만 말미암는다(요나 2:9). 여호와 밖에는 구원자가 없도다!(이사야 45:20~25).


유대교회가 벌받을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참 선지자는 저희를 위하여 기도하지 못하게 되었음(14) : 참 진리를 전하는 종들의 입에서 나오는 기도를 받을 수 있는 때가 복되다. 기도에는 향을 쌓을 수 있는 때가 있고, 기도의 제목과 대상이 있는 법이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기도는 올려봐야 무효이다(이사야 16:12). 고로 하나님께 상달될 수 있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는 참 선지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 15 나의 사랑하는 자가 많이 행음하였으므로 거룩한 제육이 그에게서 떠났거늘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는고 그가 악을 행하며 기뻐하도다 』


"나의 사랑하는 자"란 택한 백성을 가리킨다. "많이 행음하였다" 함은 그들이 하나님을 최고로 섬긴다 하면서도 우상 앞에 가서 분향하던 가증한 행위를 가리킨다. "거룩한 제육(제사에 사용하는 고기)이 그(유대교회)에게서 떠났다" 함은 그들이 아무리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도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말세지말인 지금도 많은 교회가 협상노선에 서서 예배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거짓교회와 남북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W.C.C.나 가톨릭신앙은 이방종교의 구원과 무신론자들까지의 수용을 주장하고 있다. 무신론(귀신)과 짝하는 이러한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겠는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킬 행음일 뿐이다(계시록 17:3~5).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는고" 그들의 성전봉사 행위를 무의미하게 여기시는 말씀이다(예레미야 7:3~11. 이사야 1:1~17). "그가 악을 행하며 기뻐하도다"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우상숭배(북방사상 용납)를 행하며, 회개는커녕 도리어 교만을 뽐내는 유대민족의 죄악을 지적하심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구약 교회의 범죄는 인간 종말에 있을 기독교 부패를 미리 보여준 예언적 역사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정치적 평화공존, 종교적 에큐메니칼 운동(이방 잡신을 허용하는 종교단일화운동) 등은 구약 때의 우상숭배와 똑같은 행음이다. "진리는 하나"라는 간판아래 행해지는 인류 최대의 종교적 음행이 현재 진행되는 '에큐메니칼운동'이다. 정치적으로는 '신세계질서운동', 문화적으로는 '뉴에이지운동'이라 불리운다. 우리는 무엇을 보든 구약의 사건과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로마서 15:4).


『 16 나 여호와가 그 이름을 일컬어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큰 소동 중에 그 위에 불을 피웠고 그 가지는 꺾였도다 17 바알에게 분향함으로 나의 노를 격동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의 악을 인하여 그를 심은 만군의 여호와 내가 그에게 재앙을 선언하였느니라 』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 감람나무는 의인을 상징한다(시편 52:8). 푸른 감람나무 같던 유대교회가 장차 전쟁으로 인하여 불타게 되며 가지가 꺽이울 것을 말씀하셨다. 그들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17절~ "바알에게 분향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킨 까닭이다.


"그를 심은 만군의 여호와 내가 그에게 재앙을 선언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교회를 세우셨으니 세우신 분께서 당신의 뜻과 맞지 않을 때 멸하시는(벌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로마서 18:1~6. 로마서 9:21 = 토기장이의 절대선(善)과 절대권력).   


3. 예언의 반응과 재앙 : 18~23


『 18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내가 그것을 알았나이다 그 때에 주께서 그들의 행위를 내게 보이셨나이다 19 나는 끌려서 잡히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과실을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산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 이름으로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를 죽이려는 아나돗 사람들의 음모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는 이 음모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계시로 알려주셨기에 알게 된 것이다. 인간은 진리도, 될 일도, 아무 것도 알 수 없지만 선지자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받으므로 인간 세상의 가장 깊은 문제까지도 알게 된다.


"순한 어린 양"이란 말은 길들여져 사랑 받는 양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집안에서 어린 양을 자기 아이처럼 기르는 풍속이 있다(출애굽기 12:3~6). 양은 자기를 사랑해주던 가족들이 자기를 죽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도 자기 고향 아나돗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를 갖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악한 계획은 이미 진행 중에 있었다.


"그 나무와 과실을 함께 박멸하자" 예레미야와 및 그의 영향력을 온통 멸해 버리자는 뜻이다. 참 선지자는 언제나 사단의 무리들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됨을 알려주는 예언이다(요한복음 15:18~21, 디모데후서 3:12). 우리도 이 길을 피해갈 수 없다.


『 20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정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수를 내가 보리이다 하였더니 』


성도는 억울함을 당할 때조차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심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나의 원정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예레미야는 원수 값는 일을 주님께 맡기고 있다. 참 선지자의 입으로부터 아뢰어진 송사는 주께서 친히 맡아 주신다(로마서 12:19). "주의 보수를 내가 보리이다" 예레미야가 그들이 불행해지는 모습 보기를 원해서 한 말이 아니고 그저 저들의 장래가 어떠하리라는 것에 대한 예언일 뿐이다. 선지자를 죽이려 하는 것은 대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니 대죄 중의 대죄이다.


『 21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취하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기 때문에 그를 죽이겠다고 한다. 예레미야를 미워한다기보다 그의 입에 임한 여호와의 말씀을 미워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예언사역은 마귀가 주인인 이 세상에서 결코 환영받을 수 없다. 예레미야는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과 유대민족을 위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핍박을 받고 있다. 그러한 만큼 그는 그 일(진리의 파수)에 있어서만큼은 하나님께서 필경 보호해주실 것과 승리 주실 것을 믿고 안심하게 된다.


『 22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23 남는 자가 없으리라 내가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에니라 』


예레미야를 핍박한 죄 값으로 인해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아나돗 사람들이 많이 죽게 될 것을 예언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배척하는 고향 사람들 앞에서 마태복음 13:57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고 말씀하셨다. 관련된 구절들을 소개하니 참조하라.


스가랴 13:3 "사람이 오히려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 예언할 때에 칼로 찌르리라"


미가서 7:6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참된 진리의 자녀들은 입으로 하나님의 길을 간다 말하면서 행위로는 악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이중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핍박이 오더라도 하니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간다. 진리가 싹나며 열매 맺는 곳에는 극심한 마귀참소가 있는 것이 순리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마지막 성도들은 11장의 본문 말씀에 힘 입어 어떠한 마귀 참소가 오더라도 '피와 말씀'을 증거하므로 이기며 전진해야 한다(계시록 12:10~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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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8_예레미야21장

[수 오후 설교예레미야 21장 : 회개 없는 기도 2018/04/1Wednesday Afternoon

2016년 9월 21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21장

제목 : 회개 없는 기도


1. 시드기야 왕에 대한 예언 : 1~7


『 1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보내어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2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던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


본문은 시드기야 왕이 난국을 당하여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15:11절에 "내가 진실로 내 대적으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이다. 선지자를 불신하던 왕이 선지자에게 기도원조를 부탁했으나 이 모습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실함이라고는 들어 있지 않았다.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고 한 시드기야의 간청은 당면한 난국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 여하를 알아보려는 얄팍한 마음일 뿐,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왕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가 우리를 떠나리라"고 하였으나 이것은 왕의 오판이었다. 여호와는 죄인을 거저 구원하시는 신(神)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먼저 그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회개 없이는 절대로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코자 하는 하나님의 공의(公義)이기 때문이다.


"... 하던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왕이 보낸 자들의 말이 끝나자마자 말씀이 임한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왕의 기도 부탁에 대해 즉각적인 거절의 뜻을 나타내신 것이다. 임한 말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3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벨론 왕과 또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과 싸우는 바 너희 손에 가진 병기를 내가 돌이킬 것이요 그들을 이 성 중에 모아 들이리라 5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


시드기야 왕이 원하던 바와는 정반대로 예루살렘이 북방 칼 앞에 멸망케 되리라는 예언만 쏟아져 나오고 있다(예레미야 37:8~10).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심은 당신의 택한 백성을 위한 사랑의 마음에서이다. 회개도 없이 육적인 도움만 바라는 그들의 사상은 깨어져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와 분과 대노"로 가슴 아픈 징계를 행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종말의 성도들을 향한 귀한 교훈이 된다. 종말에 북방세력을 무너뜨리고 새 시대를 이루는 말씀 곧 새 일(예레미야 31:22)을 외치는 '한 제단'이 등장해 있으나, 대다수의 교권에서는 시드기야처럼 애굽(미국)의 도움만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 구약 때와 꼭 닮았다. 모든 강대상에서 교세의 확장과 성도의 물권축복을 위한 기도는 홍수와 같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북방문제에 대하여는 한 마디의 기도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참되이 기도하는 제단의 부르짖음은 그 내용이 낯설고 시대착오적이라 하여 이단취급을 받고 있으니 어두운 시대이다. 그러나 정작 북방이 홍수물처럼 내려오는 그날에는 다수의 교권이 자신들의 생각이 오판이었음을 깨닫고 급한 중에 '종말론'과 '살 길'을 알아보려고 '새 일' 제단 앞에 사람을 보내어 장차 될 일을 묻겠지마는, 그것은 진실한 회개의 정신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라 단지 급한 불을 꺼보려는 기회주의적 몸부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노(大怒)를 피할 수가 없다는 교훈이다.


장차 아모스 8:9~13절과 같은 현실이 한국 땅과 세계교회에 임할 것이다. '새 일'을 멸시하던 포도원은 질려와 형극이 가득한 개포도밭이 된다 하셨다(이사야 5:5~8, 7:23). 그러나 가련한 자들과 진실한 자들과 참된 성도들은 북방세력으로부터 구해내시겠다 하셨으니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예레미야 16:15~23, 31:7~22). 하나님은 '새 일'이 라헬에게 최후의 소망이 될 것이라 예언하셨다(예레미야 31:17~22). 교회가 가질 최후의 소망으로 '새 일'을 주셨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장차 '새 일'을 대적하는 교권과 정권은 재앙과 칼에 죽되 조금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한 채 패망한다는 것이 다음 예언의 참뜻이다.


『 6 내가 또 이 성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7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그 후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① 사람이나 짐승이 모두 다 염병에 죽고(6절).

② 전쟁과 염병으로 다 죽고 남은 자들이 또 다시 원수의 손에 잡히고(7절上).

③ 그 잡힌 자들이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원수의 칼에 죽게 되리라 하셨다(7절下).


이와 같은 현상은 표면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도 잔인한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비참하여 동정을 줄 만도 한 이 재앙의 배후에는 절대로 동정할 수 없는 '깊이 숨겨진 교회의 악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가 당하는 형벌이 아무리 크다 한들 교회가 하나님께 지은 죄악의 크기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욥기 11:6 "지혜의 오묘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너는 알라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


2. 백성들의 항복을 권함 : 8~10


『 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9 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같이 얻으리라 』


유다가 살 길은 "항복하는 길"밖에 없다고 하신다.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같이 얻으리라" 전쟁에서 얻어지는 '노략물'은 근근히 얻어지는 것이며 위태한 중에 수확(收穫)되는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생명이 위기에 빠져 있지만 그들이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항복하면 그나마 근근히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유다 왕이 항복하지 않고 친애굽 노선을 취했으므로(에스겔 17장)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가 내려왔던 것을 상고할 때, 우리는 이 사실을 21세기 교회에 다시 예언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교회가 자기의 죄악으로 인해 내려오는 북방세력을 막아보려고 하나님을 떠나 남방 강대국을 의지한다면, 시드기야와 유대교회가 당한 황폐와 멸망을 그대로 당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예언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짧지만, 저 "한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구약 모든 예언서를 구구절절이 무장해야 하니 '진정한 파수꾼'은 1분 1초라도 무가치한 일에 시간을 낭비할 겨를이 없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6) 하신 말씀은 이때를 위한 말씀이다. 예언서(기름)를 무장(예비)한 자는 이스라엘 교회가 미혹을 받아 영적으로 캄캄한 밤중이 될 때,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는 음성에 벌떡 깨어 흑암을 물리칠 예언의 등불을 밝히고 신랑을 영접해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되지만, 생명의 말씀을 주어도 이단이라 하며 핍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구약 때 그러했던 것처럼 '사망'으로밖에 나아갈 길이 없을 것이다.


『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를 위함이라 이 성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로 사르리라 』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이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진노를 내리기로 결심하셨음을 의미한다. 이제 유다 나라가 멸망케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빚어지는 철저한 심판인 것이다. 고로 유다가 하나님이 내려보내신 북방군대에 항전(抗戰)한다 함은 결국 하나님의 경영에 대항하는 꼴이 된다. 그러므로 살 길은 9절! 곧 정하신 몽둥이 앞에 항복하는 길뿐이라는 것이다(예레미야 27:6~1).


3. 왕가(王家)와 백성에 대한 심판 선고 : 11~14


『 11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1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내 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


이 말씀은 유다 왕가(王家)의 집권자(執權者)들을 향하여 주신 예언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표현이 두 차례 연거푸 나왔으니 이것은 하나님이 힘주어 말씀하고 계심을 뜻한다. "다윗의 집"은 다윗과 같은 의(義)로운 임금이 세운 기반(基盤)에서 의로운 통치(統治)를 행할 왕가(王家)이다. 이러한 지위에 앉아서 불의(不義)를 행한다는 것은 너무도 모순된 일이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이여"라 부르시면서 불의한 집권자들이 의롭게 될 것을 권고(勸告)하고 계신다.


『 13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골짜기와 평원 반석의 거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골짜기와 평원 반석"은 작은 산들로 골짜기를 이루고 또 여러 평원(平原)을 갖고 있는 유대 땅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지리적 환경을 믿고 자신들의 나라를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요, 반석 같은 땅으로 알 때 그들은 자연히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으로 마음 든든해 하는 범죄를 행케 된 것이다. 하나님 아닌 것으로 든든해 하는 것! 그것이 곧 우상숭배이다.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하나님을 거역하여 재앙을 당하게 된 유다가 하나님 아닌 것을 의지하여 안일한 대비태세를 보이고 있으니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대로 벌하시겠다 말씀하신 것이다.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하심은 장차 유다 땅이 바벨론 군대의 공격으로 인해 환난의 불길에 휩싸일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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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8_D_예레미야10장

[수 새벽 설교예레미야 10장 : 북방에게 포로될 야곱에 대한 경고 2018/04/18 Wednesday Dawn

2015년 5월 30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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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 경 : 예레미야 10장

제 목 : 북방에게 포로 될 야곱에 대한 경고


1. 우상숭배의 죄악 : 1~16


『 1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이스라엘 집이여" 이는 육적 이스라엘을 향한 선지자의 외침이었으나, 다시 예언될 때에는 영적으로 개혁된다.  갈라디아서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표면적 이스라엘이 전 세계적인 기독교 백성으로 개혁, 확장되었으니(히브리서 9:10) 이제 이 예언을 듣지 않는 자는 '예언의 법'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되며, 시간 바쳐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예언에 기록된 안식을 얻게 된다. 이제 우리가 '종말의 이스라엘'이 되었다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들을지어다" 하신 말씀을 잘 듣고 새겨 보자.


『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 』


"열방의 길"이란 이방 원수 마귀의 길이다.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여기 '하늘의 징조'란 애굽이나 바벨론에서 유행하던 미신을 말한다. 자연계의 일월성신에 어떤 징표가 나타나면 저들은 두려워  떨었던 것이다.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두려워지는 것! 이것이 곧 우상숭배이다. 이사야 45:6~7 "해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 3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 그 위하는 것은 삼림에서 벤 나무요 공장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4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5 그것이 갈린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


우상이 헛된 것임을 몇가지로 지적하셨으니

① 우상은 삼림에서 벤 나무일 뿐이다.

② 우상은 은과 금으로 장식하여 세워놓은 것일 뿐이다.

③ 스스로 아무런 동작도 하지 못하니 따라서 화나 복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 6 여호와여 주와 같은 자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인하여 크시니이다 7 열방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치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이는 주께 당연한 일이라 열방의 지혜로운 자들과 왕족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음이니이다 8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偶像)의 도는 나무뿐이라 9 다시스에서 가져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가져온 금으로 꾸미되 공장과 장색의 손으로 만들었고 청색 자색 감으로 그 옷을 삼았나니 이는 공교한 사람의 만든 것이어니와 10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


선지자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송하고 있다.


①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하여 그의 위대하심이 나타남 : 6절.

② 하나님은 독일 무이하심 : 7~9절.

③ 하나님은 참되시고 살아 계시고 영원하심 : 10절.


『 11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12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13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이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 11절 :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 은 모두가 우상인데 천지에서 멸망할 것이다.

• 12절 : 여호와만이 참신이시요 축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 13절 : 자연계시나 특별계시를 보아도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섭리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이사야 14:24~27).


『 14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 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15 그것들은 헛 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


여기서는 또다시 우상 섬기는 자들의 어리석음과 및 그들의 장래 멸망을 지적한다.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다"는 말은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우준'(愚蠢)이란 말은 짐승같다는 뜻이다(시편 49:12, 20).


『 16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


여기서는 '야곱'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분깃'으로 가진 사실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분깃' 혹은 '산업'으로 소유하신 사실이 나타난다(이사야 19:25. 렘 51:19. 신명기 4:20, 32:9).


2. 야곱 집에 재앙을 예언함 : 17~22


『 17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여 네 꾸러미를 이 땅에서 수습하라 18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땅에 거하는 자를 이번에는 내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란 야곱이 북방군대에게 포위 당할 모습을 말씀하심이고, "깨닫게 하리라"는 말씀은 70년간 고난의 노예생활을 한 후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스룹바벨 총독의 지도하에 회복하여 고토로 귀국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하셨다.



『 19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나의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 』


"내 상처"와 "내 중상"은 북방칼에 의한 큰 피해를 뜻한다.

"이는 참으로 나의 고난이라" 함은 자식이 벌받는 모습으로 괴로워하는 아비의 마음이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 말씀을 음녀화된 기독교회가 후 3년 반 큰 환란에 빠져 중상을 당할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우시랴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예언


『 20 내 장막이 훼파되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 』


"나의 장막"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이다. 교회의 성도란 이 세상에서 장막생활을 하는 자이며, 교회의 삶은 세상에 대한 집착의 삶이 아니라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의 삶과 같다고 성경은 말씀한다(베드로전서 2:11). 히브리서 13:14 "여기에는 우리에게 영구한 도성이 없는고로 우리는 장차 올 도성을 찾고 있노라"(KJV). '장막'이란 볼 품도 없고 영구한 것이 못되는 누추한 거처이다. 그와 같이 교회의 성도는 이 세상에서 멸시를 받으며 비천한 자리에서 소망의 생활을 하다가 천년안식 세계로 들어가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 21 목자들은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치 못하며 그 모든 양 떼는 흩어졌도다 22 들을지어다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풍성이 오니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시랑의 거처가 되게 하리로다 』


"목자들"이란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세속화되고 변질되었다. 이들이 "형통치 못하리라"는 것은 성경에 언약된 복이 떠나리라는 뜻이다.


22절의 "북방에서 크게 떠드는 풍성이 온다"는 것은 바벨론 군대가 침략하여 오는 것을 가리킨다.


3.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명을 시인함 : 23~25


『 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


사람의 당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재 아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에 대하여는 다음 구절들을 참고하라(잠언 16:1,33, 19:21, 20:24, 21:31, 27:1, 29:26. 야고보서 4:12~15).


『 24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나로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란 공의로, 법대로 판단은 하시되 죽을까 두려우니 인간의 연약한 점을 감안하여 너그럽게 판단해 달라는 뜻이다. 이는 죄인을 멸하기 위한 최종적인 심판이 아니고 다만 당신 백성을 깨우치고 교훈하여 회개시키기 위한 징계일 뿐이다. 악의 씨까지 진멸해버리는 최종 판단은 아마겟돈 때 되어질 일이니 25절이 성취되는 그날이다.


『 25 주를 알지 못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하였나이다 』


열방과 이방족속을 향해 우리가 외칠 일이 하나 있으니 곧 본문 11절 말씀이다.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이는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오직 여호와께서만 하늘을 지으셨기 때문이다(시편 96:5). 야곱을 씹어 삼키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한 열방이 "주의 분노"를 당할 것은 스바냐 선지서에도 똑같이 기록되어 있다.


스바냐 2:10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은 교만하여 스스로 커서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을 훼방함이니라 11 여호와가 그들(열방)에게 두렵게 되어서 세상의 모든 신을 쇠진케 하리니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우리 죄인괴수 미약한 야곱들은 공의대로 심판하시는 주 재림기에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산다.


아모스 7:2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박국 3:2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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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7_D_예레미야09장

[화 새벽 설교예레미야 09장 : 하나님을 모르는 자의 받을 화(禍)와, 아는 자의 자랑할 일 2018/04/17 Tuesday Dawn

2015년 5월 29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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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 경 : 예레미야 9장

제 목 : 하나님을 모르는 자의 받을 화(禍)와, 아는 의 자랑할 일


1. 교회의 거짓된 일로 인하여 슬퍼함 : 1~9


『 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


예레미야는 교회가 당할 환난을 생각할 때 복받치는 슬픔을 눈물로써 다 표현할 길이 없었다. "머리는 물이 되고 눈은 눈물 근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고백에서 백성을 사랑하는 선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 2 어찌하면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의 유할 곳을 얻을꼬 그렇게 되면 내 백성을 떠나가리니 그들은 다 행음하는 자요 패역한 자의 무리가 됨이로다 』


"그들은 다 행음하는 자요... 내 백성을 떠나가리니" 행음하는 백성의 죄를 용납할 수 없다는 선지자의 신앙절개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의 행음이란 영적 음행죄(우상숭배)를 말하며 "패역한 자의 무리"란 신실없이 하나같이 하나님을 배신하기만 하는 유다 백성을 말한다. 언제나 타락된 시대에는 거짓된 것이 팽창하기 마련이다(시편 12:1~4). 오늘날 영적 유다 사회의 지도층에도 무신론 노동당원의 2세들이 많으며, 그들이 대한민국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친북 이적단체들을 힘써 비호하고 있다. 게다가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한국교회협의회(K.N.C.C.)까지 이에 가세하고 있으니 이 같은 슬픈 현실은 오늘날이 크게 행음하는 시대임을 증거해 준다.


『 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이 활을 당김같이 그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아니하느니라 4 너희는 각기 이웃을 삼가며 아무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온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니라 5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혀로 거짓말 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수고하거늘 6 네 처소는 궤휼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궤휼로 인하여 나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


"거짓"과 "진실하지 아니함"과 "궤휼"과 같은 말씀들이 8번이나 나오고 있다. "거짓"은 모든 죄악의 원천(원죄)이며 방법이자 결과이다. "그들이 활을 당김같이 그 혀를 놀린다는 것"은 그들이 거짓을 말하되 조금도 거리낌 없이 담대히 선포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은 "그들이 진리를 위해서는 용감하지 아니하고"라고 해석하면 좋다(KJV). 타락한 인간은 악을 향하여 달음질하는 데는 담대하고, 죄를 성사시키는 데 있어서는 오래 참을 줄도 안다. 하지만 진리를 위하여는 조금도 힘을 쓰지 못한다(사 59:7~9). 이것이 나면서부터 갖고 나오는 인간의 '전적 타락'이다(이시야 51:5. 에베소서 2:3).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선하게 지으셨으나 인간이 자기 욕심에 이끌려 꾀를 내므로 타락한 것이니 어떤 이들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절대강자의 횡포'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회 안의 많은 이들이 거듭나 영혼구원을 받으면 그것으로 다 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고린도전서 10:12). 마귀의 미혹과 인간의 타락 부패는 거듭난 성도에게도 여전히 해당되는 말씀이다(고린도후서 11:3). 만일 그렇지 않다면 '교회와 종들'에게(계시록 1:1,4, 22:6,16) 계시록을 주시며 "다시 예언하라"(계시록 10:11)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8 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를 도모하는도다 9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하심은 징벌하시겠다는 뜻이다. 인간은 자기 죄를 깨닫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억울하다는 항변을 늘어놓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실상은 억울하기에 앞서 주님 앞에 천만 번 죽어 마땅한 것이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 아닌가! (에베소서 2:3).


2. 멸망의 원인은 불순종 : 10~16


『 10 내가 산들을 위하여 곡하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니라 11 내가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만들며 시랑의 굴혈이 되게 하겠고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


인간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자신들만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환경까지 비참하게 만든다. 혹자들은 말하기를 "교회에 심판이 있을소냐?"라고 하지만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만들며",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라는 저 말씀이 교회심판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베드로전서 4:17. 사 43:28, 66:6~). 심판기의 '진정한 사랑'은 멸망 받아 죽게 될 형제들을 향해 경고의 나팔을 부는 것뿐이다(이사야 18:3. 예레미야 4:5~6, 6:1. 에스겔 33:1~5. 요엘 2:1, 15. 스바냐 1:16).


『 12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광포(廣布:널리 알림)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같이 타서 지나는 자가 없게 되었느뇨 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14 그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


지혜로운 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믿고 광포하는 자이다. 교회와 종들이 스스로 똑똑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있지만 사실상 무지이다. 환난이 오는 원인은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하나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과, "바알들을 좇음"에 있다. 이런 죄악이 환난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바알신"은 가나안과 베니게에서 숭배되어 온 남신(男申)으로서 풍년이 들게 하는 신이라 하여 그 파트너 아세라(아스다롯)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그 조상 적부터 섬겨온 내력이 있는 대표적 우상이다(사사기 2:13, 6:28~32 / 왕족시대 - 열왕기상 16:31~32, 18:17~40).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다"는 것은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이 깊이 뿌리박혀 온 역사적 죄악임을 고발하는 것이다. 성경을 상고하니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경배와 바알 숭배를 동일시하기도 했으며(역대상 12:5 '브아랴' = '여호와는 바알이다' / 역대상 14:7 '브엘랴다'와 사무엘하 5:16 '에랴다'는 각각 '바알은 안다'와 '여호와는 아신다'라는 뜻임),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신을 숭배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사사기 2:11~14, 3:7). 다산(多産)을 의미하는 이 남녀 우상은 오늘날 개신교 안으로 침투하여 교회확장, 물질축복, 세속주의 신앙을 부추기는 귀신역사로 나타나고 있고, 가톨릭(구교) 안에서는 성체신앙, 마리아신앙으로 위장되어 숭배받고 있다(7장과 44장을 참조하라).


『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 16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열국 중에 그들을 헤치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


여기서는 회개치 않는 유대인들을 크게 벌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내가 말하노라" 하심은 "칼을 보내리라"는 말씀이 하나님의 권위로 반드시 성취될 것을 뜻한다.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라 함은 교회가 회개치 않으니 심판하기 위하여 거짓 선지자를 보내어 쭉정이를 가려내겠다는 뜻이다. 거짓 선지자를 참 선지자 예레미야 앞에 보내시고는 예레미야에게 거짓 선지자의 쑥을 먹지 말라고 백성 앞에 외치게 하는 것은 에덴동산 때의 원리와 같은 것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뱀의 말이 충돌케 하여 당신께 대한 순종 여부를 알아보셨던 것처럼 예레미야와 거짓 선지자를 충돌시키시면서 백성을 갈라내시는 것이다. 이는 백성 앞에 멸망의 올무를 놓으시는 것이 아니라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세우시기 위한 공의의 방편일 뿐이다.


2,600년 전, 예레미야의 말을 들은 자는 보호해 주고 그의 말을 버린 자는 북방 칼에 붙였던 사실은, 오늘날도 "다시 예언"되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는 자는 보호해 주고 멸시하면 심판해 버릴 것을 알려준다. 세력이 크고 외모가 화려한 W.C.C.나 로마가톨릭의 노선을 좇는 무리들은 '짐승과 10뿔'에게 붙여져 철저한 심판을 당한다는 뜻이다(이사야 1:19~. 신명기 13:1~5. 예레미야 23:15~17). 오늘날 예레미야서가 읽히기 시작했다는 것은 알곡들에게는 화를 피하여 새 시대 간다는 기쁜 소식이지만, (예수 이름만 불렀지) 그 피로 산 말씀을 무시하는 교회들에게는 심판의 나팔이 울린 것이나 다름 없다. 쑥물 먹은 교회들이 통곡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뜻이다.


16절의 말씀은 계시록과 예레미야서를 무시한 성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후 3년 반'으로 쫓겨들어가 짐승 칼에 진멸될 것을 예언하심이다(계시록 17:16. 예레미야 4:30~31. 에스겔 16:35~41, 23:22~30).


3. 교회의 멸망을 비통함 : 17~22


『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하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보내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되 18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 』


"너희는 잘 생각하라" 닥쳐올 일을 깨닫고 비애를 느끼라는 말씀이다. "곡하는 부녀들"의 울음을 통하여라도 다른 사람들을 울음 가운데로 인도하라 하신다. 죄인들은 마땅히 울어야 함에도 울지를 못한다. 그 이유는...


① 교만한 까닭이며

② 강퍅한 까닭이며

③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철면피이기 때문이다.


『 19 이는 시온에서 호곡하는 소리가 들려 이르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수욕을 당하였구나 우리가 그 땅을 떠난 것은 그들이 우리 주택을 헐었음이로다 함이로다 』


"이는"이란 말로 시작하여 유대인들이 울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북방칼은 올 것이니 울어야 한다. "아주 망하였구나" "크게 수욕을 당하였구나" "헐었음이로다"란 울어야 할 이유들이다. 죄인의 살 길은 통회, 자복, 울음밖에 없다. 회개자의 모범인 다윗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하였다(시편 56:8) .


『 20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을 가르치며 각기 이웃에게 애가를 가르치라 』


"부녀들이여" 하심은 남자보다 여인들이 비교적 심령이 부드러워서 슬픔의 본을 잘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21 대저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와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22 너는 이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떨어지고 거두지 못한 뭇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 오늘의 교회들은 우리가 아무리 "큰 환난이 일어나니 방비하라" 외쳐도 교회에는 심판이 없다고 우겨만 댄다. 참으로 속편한 착각이다. 구약교회의 심판은 모두가 은혜시대 종말에 있을 기독교의 심판을 보여주신 것인데, 이를 깨닫지 못하니 소경이라 책망을 받는 것이다(이사야 29:9~10, 42:18~20, 43:8, 56:10~12). 계시록 7:2~8, 11:1~12절 예언을 보니 제단 안에서 예언의 말씀으로 척량이 행해질 때 척량에 합격한 자는 인을 맞고 흰무리를 살려낸 후 짐승 손에 산 순교를 당하여 세세 왕권을 차지하지만, 척량에서 떨어진 자는 42달 동안 이방인에게 붙여져 철저히 짓밟히게 된다고 하셨다(계 13장). 예수님 피로 구원 받은 기독교회에 어찌 심판이 있을 수 있으랴 말하는 것은 2,000년 전, 요 9:28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말하며 율법으로 세워진 유대교회가 가장 의로운 줄로, 또 영원할 줄로 믿었던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뭇"이란 '볏단', '짚단' 같은 '곡식단'을 의미한다. 인종 가을을 맞이하여 교회 성도들의 시체가 거리에 개똥같이 널부러질 것과 거두지 못한 곡식단같이 버려질 것을 비유한 표현이다(이사야 5:25). 교회에 심판이 없다고 믿는 것은 이 시대 교회의 최고 교만이자 최대 오류이다. 마치 가톨릭이 교황에게는 오류가 없다 말하는 '교황 무류권'이 가톨릭 최대의 오류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교황에게, 혹은 교황이 믿음과 권위로 처리하는 모든 일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그들의 논리가 정말 코웃음 칠 만한 일이라면, 중생받은 개신교회에 심판(재앙)이 올 수 없다고 믿는 것 역시 웃지 못할 희극이라 할 수 있겠다. 인간은 각자가 제 맘대로 지껄이지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4. 심판은 교회나 이방에나 구분이 없음 : 23~26


『 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교회가 자랑치 말아야 할 것이 있다.


① 인간의 지혜를 자랑치 말라 - 인간이 자기 지혜를 자랑치 말 것은 이 땅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작정인 성경대로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의 지혜는 땅 위의 역사를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다.


②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 여호와를 이길 자가 있겠는가? 용사 골리앗이 하나님의 종 다윗 앞에 거꾸러졌듯이, 종말에도 제 힘으로 신을 삼는 북방 공산당을 하나님의 종 스룹바벨이 이기고(스가랴 4:7) 돌이 태산을 이루어 이 땅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1000년간 이루어진다(계시록 5:10, 11:15, 20:6). 인간 종말에는 땅의 정권이나 무력이 하늘 권세인 머릿돌 앞에 박살나고 마니 자랑할 자는 인 맞은 자가 되어 머릿돌을 자랑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라는 것이다.


③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 디모데전서 6:10, 17~19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재물을 떠나 선한 일을 하늘에 쌓으라고 편지하였다.


자랑하는 자는 "이 땅에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행하시는 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만을 자랑하라 하신다.


『 2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


예레미야 시대에 이미 위 예언대로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이나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유대인이 너나 할 것없이 다 같이 북방 바벨론의 칼 앞에 멸망을 당한 바가 있다. 이는 인간 종말에도 회개치 않는 교회와 세상 불신자의 세력 모두가 기록된 예언대로 잔인한 군주(이사야 19:4)요, 이방 세력(계시록 11:2)인 '한 왕'의 백성(다니엘 9:26)의 손에 붙여져 심판을 당할 것을 예표해 준다. 지금은 세상 사람이건 교회의 성도건 남보다 경제적으로 부요해지고, 인간의 조직-단체가 탄탄해지고, 같은 값이면 높은 위치에 올라가 많은 이들을 호령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알고 있는 시대다. 하지만 뒤집어 엎는 심판날이 되면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며 뒤집어 엎으시고 그 거민을 흩으시리니 2 백성과 제사장이 일반일 것이며 종과 상전이 일반일 것이며 비자와 가모(家母)가 일반일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채급하는 자와 채용하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일반일 것이라"(이사야 24:1~) 하신 예언대로 세상 서열과 지위가 무색해지며, 교회나 이방 간에 구분이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인간의 헛된 경쟁에서 우승하여 자랑하는 자가 되지 말고, 명철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아 이 말씀을 다시 예언하는 데만 총력을 기울이자! 기록된 말씀대로 걸어가려는 자를 세상이 막을 수 없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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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6_D_예레미야08장

[월 새벽 설교] 예레미야 08장 : 세상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2018/04/16 Monday Dawn

2015년 5월 28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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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 경 : 예레미야 8장

제 목 : 세상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1. 천체 숭배를 책망함 : 1~3


『 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2 그들의 사랑하며 섬기며 순종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 쬐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3 이 악한 족속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 처에 남아 있는 자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 1절 : "그 때에"란 말은 7장과 연결되어 있으니 곧 북방이 침략할 때를 가리킨다.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단어는 여러 종류다. "왕들", "방백들", "제사장들", "선지자들"은 다 유다 나라의 지도자 계급이다. 백성을 옳은 데로 인도해야 할 지도자들이 민중과 더불어 같은 죄를 범하고 있으니 그 죄책은 더욱 큰 것이다.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리라"는 예언은 침략자 바벨론 군대가 보물 욕심에 유다의 묘실들을 다 파헤치므로 성취되었다. 죽은 자의 뼈가 이렇게 됨은 그들의 살아 생전에 행한 죄목과 관계가 있다.


• 2절 : 지도자들과 백성이 천체 우상을 "사랑하며", "섬기며", "순복하며", "구하며", "경배"하였으니, 하나님께서도 그들이 정성을 다하여 섬겼던 해와 달과 별 앞에서 그 시체의 뼈가 쬐임을 당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과거로부터 일월성신을 우상으로 섬겨왔다(열왕기하 21:5, 23:11. 에스겔 6:4~6, 8:16). 그러나 이스라엘의 시체들은 자기가 섬기던 피조물 앞에 조롱받듯이 널부러져 있다. 우상이 조상의 뼈를 지켜주지 못했던 것이다.


• 3절 : 환난 중에 살아남은 자라 할지라도 각처로 흩어져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리라는 예언이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할 정도이니 종말에도 우상숭배를 행하는 자는 반드시 이와 같은 보응을 받을 것이다. 이들의 고통은 이 세상에서 미리 맛볼 수 있는 지옥고(地獄苦)에 가까운 고통이다. 오늘날 '천국복음 전파'와 그로 말미암은 '마지막 부활'의 소망만으로 기독교가 당한 종말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 지도자들이 많지만, '하나님의 인(印)' 곧 초막절날 쓰일 '새 일'의 '영원한 복음'이 아니고서는 마지막 흑암을 뚫을 수가 없다. 옛적 선지자들이 받은 복음(예언)의 내용대로 다시금 이루어지는 날(계시록 10:7)이 오늘이건만은 교계 지도자들은 천년왕국 끝에 이루어질 천국에 대한 소망만을 심어주고 있으니, 계시록 9:1~5절 같은 '5개월 환난'이 오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당하게 된다. 계시록 10:7절을 깨달아 11절처럼 "다시 예언하라"는 것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그때 가서야 철저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계시록 9:4 "저희(황충떼)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때를 따라 양식을 주지 못한 종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5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2. 환난의 징벌로 마음이 상함 : 4~7


『 4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5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


회개치 않는 이스라엘의 태도가 얼마나 모순된 것인가를 지적하신다. "사람이 엎드러지면" 그대로 있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한 번 "떠나갔다면" "돌아오는 것"이 상리(常理)이거늘 하나님을 떠난 유대민족은 완고하여 다시 돌아올 줄을 모르니 하나님의 한탄과 마음 아픔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하신 말씀에 잘 베어 있다. "거짓을 고집하고"란 하나님을 속이고 우상과 동행하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솔직하지 못할 때 결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요한복음 3:20).


『 6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우상숭배의 진상(眞相)을 인정할 정직한 눈이 없다는 것이다. 인생(人生)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진상을 올바로 깨닫는다면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일밖에는 달리 아뢸 말씀이 없는 법이다. 사람은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이다(로마서 3:10~18). 예레미야 당시는 만민에게 부어주는 성령강림이 없었을 때이니 유대교회는 전혀 반성함 없이 전장(戰場)을 향하여 돌진하는 말(馬)처럼 악을 향해 내달릴 뿐이었다.


『 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 』


철새들도 기후변동에 따라 옮겨 다닐 줄을 알건만, 만물의 주인 된 이스라엘이 하등동물만도 못하다는 책망이시다. 몽학선생인 율법의 시대가 끝나고 은혜의 때(69이레)가 도래하였는데도, 때를 따라 양식을 받아먹지 못하고 '옛 언약'에 머물러 있기만을 고집한 유대인도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므로 저희들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니 이것이 본 자손으로서의 자격을 잃고 쫓겨날 대죄(大罪)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마태복음 8:11~12, 21:43, 23:37~39). 여타의 이방 족속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으뜸가는 선민(選民)이 이렇게 이방 칼에 심판받아 멸망받을 이유가 "때를 거스르는" 죄악때문이었다면, 오늘날도 은혜 준 백성 중 알곡을 뽑아내어 새 시대의 백성(왕권+종족)을 삼으시려 할 때에 "때를 따라" 일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 배반하면(이사야 1:20) 북방 칼에 삼키움을 당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은혜 때의 양식은 아시아 극서쪽의 사도들로부터 외쳐진 '광야의 위로'(이사야 40:1~3) 곧 '천국복음이다(마태복음 4:23, 9:35, 24:14). 그러나 이제 환난 때의 양식은 아시아 극동쪽의 선지자들이 전하는 '높은 산의 외침'인 '아름다운 소식'이니(이사야 40:9~11) 이를 알려줘도 듣지 않는 성도들은 바로 본문 7절의 책망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약속하신 규례를 "때를 따라" 이루시는 신이시다. 이제 동방 산에서 새 일의 포도주 잔치(이사야 25:6~8)가 벌어질 때 '피로 산 교회'라 불리우는 백성이 공중의 철새만도 못한 자들이 되는 일이 없어야겠다. 그러나 마귀는 종교 지도자들과 신학자들 속에 들어가서 때에 맞지 않는 거짓(쑥물)을 먹이므로 많은 백성이 멸망케 될 것이나(이사야 9:16), 멸망을 당치 말라고 '한 제단'을 세워주셨으니 오늘의 예레미야 서책을 예언케 된 것이다.


3. 거짓 선지자 책망 : 8~13


『 8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9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


그들은 스스로 "지혜 있다" 하였으나 실상 거짓된 서기관의 잘못된 교훈 아래 있었다. 거짓 선생들은 참 선지자의 예언을 무시하고 회개치 않다가 결국 침략자 북방군대에게 "경황 중에"(홀연히) 사로잡혔던 것이다. 지혜자 행세를 하던 자들이 실상은 무지한 자였음이 드러나는 때가 바로 북방 곧 "타인"이 내려오는 날이다.


『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전지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람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1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2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6:12~15절의 중복이다. "거짓 평화"의 미혹이 얼마나 강하면 이렇게 두 번씩이나 예언을 하였겠는가? 기독교 종말의 최대 미혹이 바로 "평화"라는 단어를 통해 들어올 것을 강하게 알려주신 것이다. 세계단일정부를 구성하려는 사단의 일꾼들, 단일종교체제를 구성하려는 거짓 선지 음녀의 무리들의 공개문서를 보면 하나같이 "평화" 타령이다. K.N.C.C.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몇몇 문서들을 클릭하여 보라. "평화"라는 단어가 얼마나 남발되고 있는가를 실감케 될 것이다(http://www.kncc.or.kr). 그 중 K.N.C.C.의 정체와 색깔이 잘 드러나고 있는 문서 하나를 소개한다.




탄핵무효, 국회심판, 민주수호를 위한 기독교 비상시국기도회 2004.3.17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사태를 접하며, "탄핵무효, 국회심판, 민주수호를 위한 기독교 비상시국기도회"가 3월 16일 저녁 기독교연합회관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기도회에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교사부, 기독여민회, 기장 생명선교연대,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영등포산업선교회,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 KNCC 인권위원회, EYC, KSCF 등의 에큐메니칼 진영 대부분이 참여했다(이들은 음녀적 노선을 가는 자들로서 회개치 않는 한 심판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3당 야합의 원조와 음모"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박덕신 목사(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상임의장)는 이번 탄핵 사태는 일제 잔재, 외세, 군부독재 귀신들린 자들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한 것이라고 단죄했다(이 시점에서 애써 친일문제를 들추며 동시에 박정희의 업적을 평가 절하하는 세력은 북한의 사주를 받고 있는 친북용공 사회주의 세력들이다).


또한 수구, 보수 언론들(조선,중앙,동아)이 성숙한 시민의 목소리를 국론 분열로 호도 하는 것은 사건의 진상을 왜곡시키려는 음모라고 말하고, 탄핵을 주도한 바로 그 잣대를 귀신들린 자들(무신론 사회주의 귀신이 들린 자신들은 못보고 있다)에게 적용해야 이 사회가 건강해 질 것이라는 요지의 말씀을 전했다(K.N.C.C.의 논지가 북한 로동신문의 논지와 같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일인가?).


기도회에 이어 2부 행사에서는 십자가와 촛불을 들고 종로 5가까지 행진하며, 탄핵무효, 민주수호의 구호를 외치는 십자가 행진이 진행되었다.


1부 기도회에서 함께 드려진 공동기도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탄핵사태에 대한 기독인의 공동기도문>


풀잎 하나 놓치지 않으시고

나뭇가지 하나 빼놓지 않으시고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는 사랑의 주님 !


꽃을 시샘하는 추위속에서도 봄은 오듯이

새 역사를 방해하는 수없는 도전에도 하늘의 역사는 멈추지 않음을 믿습니다.


국민의 뜻을 져버린 탄핵사태 앞에서 이제 놀랜 가슴도 분한 마음도 가라앉히고

저희의 안일함과 타성을 회개하며 주님 앞에 모였습니다.


탄핵안을 가결하는 의사봉 두드리는 소리는,

4.19의 희생과 광주의 절규를, 6월 항쟁의 거룩한 뜻을

(편집자주: 저들의 색깔과, 저들이 정당을 만드는 목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역사의 기억속으로만 가두어 두었던

못난 저희들을 질책하는 주님의 꾸짖음이었습니다.

정의와 평화를 향한 주님의 역사에 무심했던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용서의 주님 !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고,

“의회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환호하였던 어리석은 무리들은

주님의 부활사건을 감추기 위해 모인

제사장과 바리새인처럼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회칠한 무덤처럼 오히려 남의 탓을 하고

언론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습니다.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국민들의 엄중한 심판을 통해

다시는 오만과 군림의 정치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저들을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옵소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저희를 부르신 주님!

고난을 통해 부활이 오듯

정의의 나라, 평화의 새 세계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님을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오늘 슬픔과 고통 속에 눈물짓고 있는 국민들을 위로하시고

오늘의 아픔이 새 역사의 출발점이 되게 하옵소서.

다시는 국민을 배신하는 낡고 부패한 정치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역주의, 불법자금, 정치부패 없는 새 나라를 향해

온 국민과 함께 전진하게 하옵소서.

국민을 조롱하는 기만의 정치 없게 하시고

국민을 섬기는 겸손의 새 정치(사회주의)만 남게 하옵소서.


부활을 위한 산제사로 주님을 받으셨듯이 저희들을 받아주옵소서.

죽음을 이겨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헛되이 부르는 정의와 평화! 위와 같은 노선을 가는 자들은 한국 땅에 10일 환난이 임할 때 모두 진멸될 것이다. 기독교는 복음에는 문을 열어야 하고 사단에게는 문을 닫아야 한다. 현 정권과 K.N.C.C. 및 에큐메니칼 노선의 모든 종파는 복음의 문은 단호히 닫고 사단에게는 문을 활짝 열어주는 정책을 쓰고 있다. 그들이 열어 놓은 문은 자기를 망치는 멸망의 문이 되고 말 것이다. 그 문으로 들어온 북편 군대가 그들을 "진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 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


구약 유대교회에는 진노심판 기간인 '70년' 동안 육체를 만족시킬 풍족한 음식물은 있을수 없다. 예레미야애가 4:1~11절에도 민족적으로 당할 기근의 참상이 자세히 예언되어 있다. 종말에는 '후 3년 반' 짐승 통치시기 동안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초반에 터지는 3차대전(계시록 9:13~) 때 원자탄 및 핵무기가 쓰이므로 대기가 심하게 오염되며 일조량은 감소하고, 수질도 오염되어 물대란이 일어날 것이며, 농지도 피폐해져 식량생산량이 급감해 전 지구적으로 엄청난 기근이 찾아올 것이다. 지금 악어백 들고 다니던 집사, 권사, 장로부인... 3박자 축복(3중 축복)을 성도가 받을 당연한 권리로 알면서도 '예언성취'에는 태무심(殆無心)하던 모든 성도들, 에큐메니칼을 추구하던 교파들, 교회를 사회주의 선전장이 되게 했던 모든 지도자들은 이곳에 떨어져 가만히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비극을 당하게 될 것이다. 성령을 받지 못했던 거짓 종들은 매매활동을 하기 위해서 우상에게 경배하고 666 표를 받을 것이요, 성령을 받고도 저 길을 간 자들은 우상에게 경배할 수 없으므로 쫄쫄 꿂어 죽든지 짐승칼에 죽게 될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나 상상이 아니다. 이미 구약 때 있었던 일이요, 앞으로 부패한 기독교인들에게 현실화될 예언이다(예레미야애가 2:20, 4:10. 열왕기하 6:29. 신명기 28:57).


4. 북방에서 올 재앙 : 14~17


『 14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나 들어가서 거기서 멸망하자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우심이니라 15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치심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 뿐이로다 』


거짓 선지자의 말을 따르던 자들이 이제서야 속은 것을 알고 참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환난이 임했음을 말하고 있다. 거짓된 평강이 나라를 망친 것이다. 알파 때를 보자! 에덴동산의 뱀 한 마리가 거짓평강을 외칠 때 아담 가정을 망쳤듯이, 오메가 때도 그러하다. 지금도 악의 본부 북방에서 1958년부터 평화공존이 외쳐졌으나 이것이 거짓평화(속임수)인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 예수님은 옛날 선지자가 받은 예언대로 심판하시겠다고 계시록 10:7~11절에서 명백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흑암이 깊어지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데, 하나님은 이렇게 된 종들을 가리켜 '소경'이라 책망하셨다(이사야 43:8).


『 16 그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그 준마들의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과 그 소유와 성읍과 그중의 거민을 삼켰도다 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 』


유다를 침략할 군대를 일컬어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라 하셨다. 독사는 작지만 맹독성이 있다. 이사야 14:29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되리라." 이사야 14:12~23 북극집회의 산 위에 좌정한 '하늘에서 떨어진 별'은 뱀이 지배하는 일곱째 머리(1917.10~)의 지도자인데, 이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비기려 하는 자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나 그는 음부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라 하셨다. 뱀의 후손 7째 머리의 지도자였던 악인 스탈린은 유일로 그 후계자에 의해 무덤에서 쫓겨난 자로서 그의 시체를 숙청한 흐루시초프는 이 일로 서방 세계와 기독교계의 관심을 끌며 협상의 길을 터나갔다. 서방 세계에서는 스탈린이 죽고 그 후계자의 노선이 '개방'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 보이자, 붉은 말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의 정권은 '뱀의 뿌리'에서 난 '독사정권'이면서도 1958년 3월부터 자신은 마치 '뱀'의 계통이 아닌 양 '평화공존'과 '교회일치'(W.C.C.)를 표방하고 나왔던 것이다. 정치-종교 양면으로 궤휼(거짓말)을 행했으니 이것이 지구를 잠식해 나가기 시작한 20세기 최대의 미혹이다.


뱀의 뿌리에서 독사정권(청황색말)이 나왔지만 '평화'를 외치는 저 정권이 독사인 줄 알아보지 못하는 시대가 지금이다. "뱀의 뿌리에서 독사가 나겠고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되리라" 하신 예언처럼 이제 최종적으로 '나는 불뱀'이 등장하여 황충떼를 동원하여 연기에 취한 세상을 휘젓고 내려오면(이사야 14:31), 이 연기와 황충떼를 물리치고 빛을 발할 '하나님의 인(印)'의 제단이 세계 앞에 가시화된다. 흑암을 이기는 무기는 예언서를 100% 밝히는 제단에 맡겨주신 '하나님의 인(印)'뿐이다(학개서 2:23). 이 제단은 가장 작은 선지 학개의 예언대로 다리오왕 2년 9월 24일에 지대를 놓고 세워진 촛대교회로서  영적인 '시온산'이다. 이사야 14:31 "성문이여 슬피 울지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지어다 너 블레셋(자본주의 남방세력)이여 다 소멸되게 되었도다 대저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 그 항오를  떨어져 행하는 자 없느니라 32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 예언서 없이는 흑암을 뚫을 수 없으니 예언의 등불을 든 제단(시온)에 연합해야 미혹과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된다. 피하지 못하는 자는 흑암으로 쫓겨들어갈 것이요(이사야 8:20~22), 피하는 자는 새 시대를 차지할 것이다(이사야 24:23 = 시온산 정부는 하나님이 영광으로 충만케 하실 학개서 2:7절의 '한 제단' 역사로 성취된다).


5. 재앙 속에서 애통함 : 18~22


『 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19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 왕이 그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르시기를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케 하였는고 하시니 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21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


선지자는 앞으로 닥칠 재앙을 내다보고 이 비참한 환난을 모면할 길이 없음에 대하여 애통해 한다. 18절에 말하고 22절에서 재설한다.


• 19절 : 먼 땅에 잡혀가서 하는 말인즉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 왕이 그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하고 있다. 그들은 환난의 원인이 자신들의 죄악 때문인 줄을 끝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의 부족은 모른 채 천지에 충만한 하나님께서 시온에 계시는지를 의심하며 불평하는 모습이다. 이는 종말의 성도들 중에 성취될 이사야 8:20~22절의 모습이기도 하다!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 것은 알곡을 모으는 초막절 역사가 성취될 때 '후 3년 반'으로 들어갈 쭉정이교회 성도들의 입에서 터져나오게 될 탄식이다. 종말을 당한 구약 유다 성민의 소망없는 저 탄식이 신약 종말의 성도들의 입에서 다시 한 번 터져나올 일이 없다면 마지막 종들에게 다시 예언하라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계시록 10:7~11).


"내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하나님의 마음 아닌가! 이 마음은 에스겔서 16장을 읽을 때 깊이 깨달을 수 있다. 부모가 없이 고아 되어 버려진 피투성이 갓난아이! 그대로 내버려두면 철없는 개망나니, 걸레 같은 인생을 살 것이 뻔한 버려진 딸아이!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내가 네 부모이다" 알려주시고 거두어 주시는 그 마음(에스겔 16:3~8)..... 이 사랑의 마음으로 나타나신 이가 '새 언약'의 사자요, '천국복음'의 전파자이신 어린 양 예수님이시다(마태복음 4:23, 24:14. 누가복음 22:20). 이 예수를 영접하므로 거저 받은 은혜 속에 부잣집에 입적되어 바른 교육으로 자라나고 좋은 음식으로 양육되어 건강하고 아리따운 처녀가 된 것이 기독교이다.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하지만 아직 남편(재림주)을 맞이할 만큼의 신부 단장은 못 갖춘 터이라... 부모는 이 사랑스러운 딸을 1등 신부로 만들기 위해 "기름을 바르고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이처럼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 놓은 것을 입고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게 된 기독교는 가히 왕후의 지위(재림주의 사모님)에 나아갈 정도로 형통하였던 것이다. 이 딸(기독교)의 화려함을 인하여 이방 세계에서까지도 그 명성을 알아주게 된 것이 2,000년을 성장해 온 기독교의 역사였다. 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복된 영화이다. 기독교의 화려함이 이와 같이 온전하여졌으니 모든 영광을 이 영화로움을 주신 이에게 돌려드림이 마땅한 것이어늘..... 결국 문제는 터지고 말았다. '패역'이다.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엄청난 배도와 이방과의 협상운동이 실행될 예언이다. 부모조차 예상치 못한 너무나 엄청난 변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또 네 수 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세상 음녀는 몸을 내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오건만, 기독교는 하나님께 받은 은, 금, 양식을 줘가면서 이방 짐승에게 몸을 내어주니 이런 기괴한 일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이 일이 성취되는 시기가 지금이 아니라고 말할 자 누구이랴? 기독교가 이처럼 '전무후무한 패역'으로 나아가니, 하나님도 '자고이래로 없던 재앙'(요엘 2:2)과, '창세이래로 없던 환난'(마태복음 24:21)과, '개국이래로 없던 환난'(다니엘 12:1)으로 심판하시는 것이다. 당신이 피 흘린 값으로 사서 길러놓은 딸을 이제는 당신의 공의로 심판해야만 하는 이 현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8:21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슬픔이요, 탄식이다.


예레미야, 에스겔서가 어찌 유대민족에게만 주신 말씀이리요? 이는 종말의 기독교회를 향해 다시 예언할 재료가 분명한 것이니 부인하는 자는 패망할 것이다. "다시 예언"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기름이 필요한데, 이것을 예비하여 나누어주는 제단이 학 2:7절의 제단이요, 그 사명자가 학개서 2:21~23절에 기록된 '스룹바벨' 사명자이다. 이 예비된 기름을 부지런히 나누어주는 일에 우리가 다같이 동참하면 함께 흑암을 뚫고 신랑을 맞이할 것이요, 이 일에 반대하여 협상으로 나아간다면 그 교만 중에 심판받아 흑암으로 쫓겨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망가진 기독교일지라도 '당신의 딸, 당신의 백성'이므로 그 행위를 기어코 돌이켜 고치시고는 혼인예식을 치르고 말겠다는 것이 예언서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다. 호세아 2:19~20절에 기록된 사랑이다. 아비된 자의 최후 훈계! 그것이 바로 스룹바벨 선교회에서 전하는 '새 일 교훈'이요, '영원한 복음'이다.


예레미야 31:21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잘 길러 놓고 보니 '패역'이라는 두 글자가 튀어나온 것이다. '패역'은 어릴 때에는 안 나타난다. 살이 찌고 윤택하여졌을 때, 가장 아름답고 청청할 때 나타난다(신명기 32;15).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들포도가 맺히게 될 때 그 포도원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는가?(이사야 5장 / 새일성가 18장3절). 계속하여 빗나가기만 하는 자식일 지라도 교훈하여 살리고픈 부모의 마음! 이 마음을 헤아린 자만이 새 일의 교훈을 다시 예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살 길을 열어주어도 끝까지 멸망을 고집하는 미련한 백성이 대부분이므로 예수님은 지금도 보좌우편에서 탄식하시며 대언기도를 하고 계신다.


『 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 』


"길르앗"에는 도피성이 존재한다(여호수아 21:38. 신명기 4:43). 구약의 도피성은 오늘날의 교회를 상징한다. 교회에는 유향(성령의 기름)이 있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왜 우리는 치료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우상숭배에 있다고 예언서는 알려준다. 예레미야 8장은 에스겔 8장을 통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데, 에스겔 8장에는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우상숭배 모습이 고발되어 있다. 교회의 북문(北門)에 하나님의 투기를 격발케 하는 우상이 숨겨져 있으며(에스겔 8:3,5 = 북방과 협상하는 W.C.C.), 기독교의 뜰 문 담 너머에는 각종 가증하고 더러운 우상이 총집합해 있는데(계시록 17:5) 그곳에는 놀랍게도 기독교의 종교지도자들(장로 70인)이 모여 가증한 기도의 향을 구름처럼 피어 올리더란 것이다(에스겔 8:7~11). 제사장들이 방 안 어두운 데서 행하는 은밀한 일들(에스겔 8:12)은 기독교를 사칭한 음녀의 이마에 '비밀이라' 써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계시록 17:5). 이 비밀은 하나님이 택하여 주신 종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 전(殿)으로 들어가는 북문에서는 '담무스' 우상을 위한 여인들의 애곡하는 모습(이방종교와 함께 모여 기도하는 기독교의 모습)이 보였다(에스겔 8:14). 이 정도만 해도 놀랄 만한데, 하나님은 이보다 더 가증한 일을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여주시겠다고 하시고는 에스겔 선지를 그 묵시 중에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로 데려가신다(에스겔 8;15~18). 거룩한 제물을 바쳐야 할 제단과 제단 문 앞 현관 사이의 공간에서 벌어진 가증한 일은 과연 무엇이던가?


"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 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이 모습은 오늘날 기독교 종교지도자들 안에서 반드시 재발견될 수밖에 없다. 성령 받고 거듭난 K.N.C.C. 내의 성도들께서는 그대들이 속한 교단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일을 행하고 있는 "이십오 인"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에스겔 8:17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우고 또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 심지어 나무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바사의 태양숭배에서 온 이교도적 관습) 18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에스겔에게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하신 것은 에스겔서를 읽는 종말의 파수꾼들에게 "파수꾼들아 너희가 예언을 통하여 너희 시대를 보았느냐?" 하심과 같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에스겔과 똑같은 말씀을 받았다. 예레미야 23: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특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이 같은 비밀을 증거할 자 누구이며, 이 두려운 범죄를 성 문 앞에 나가 담대히 고할 자는 누구인가? 바로 이 책을 읽고 계신 여러분이다! 종말의 '파수꾼'이 외치지 않으면 재앙 중에 멸망할 그들의 피가 파수꾼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다(에스겔 3:17~21). 하지만 파수꾼이 외치면 자신도 살고 남도 살린다. 그러나 멸망할 자는 알려줘도 죽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하나님은 성민의 우상 숭배죄에 대해 회개를 촉구하셨으나, 강퍅한 백성이 교회 안에 우상을 들여 놓고도 끝까지 회개치 않았으므로 끝내 치료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 주님이 알려주신 이 일을 깨달은 우리는 이제 어찌 해야 좋을까? 이제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할 수만 있다면 택자도 미혹하려 할 것이니(베드로전서 5:8), 우리는 주님의 알곡들을 찾아내기 위하여 죽기까지 다시 예언하자! 예레미야 9:24절의 인격이 되어 하나님만을 자랑하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려드리는 승리자가 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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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415b_예레미야20장07절~

[주일 오후 설교예레미야 20장07절~ : 파수꾼의 시련과 역사 2018/04/15 Lord's day(Sunday) Afternoon

2016년 9월 18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20장07절~

제목 : 파수꾼의 시련과 역사


1. 예레미야의 기도와 확신 : 7~13


『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선지자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시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신명기 12:32) 하셨다. 계시록 22:18~19절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선지자는 주께 받은 사명으로 괴롭지만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태복음 5:11)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 8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


선지가 말할 때마다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는다" 함은 입을 열 때마다 북방환난과 재앙의 내용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1장에서부터 '가마솥이 북에서부터 끓고 있으며 북방 모든 나라가 유다와 이 땅 모든 거민을 치러 내려온다'는 묵시를 받았다(예레미야 1:13~). 그러나 유다 정권과 교회는 듣고도 끝까지 불순종하였기에 결국 바벨론의 세 번째 침략을 당하므로 완전한 붕괴를 맞이하게 된다(예레미야 39장). 그러나 그들은 붕괴를 당하기까지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참 선지를 모욕하고 괴롭히기만 했던 것이다.


『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 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


동족이 가하던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괴로움 중에 다시는 여호와의 뜻을 선포하지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도 아니하겠다 하여도 선지자는 곧 "중심이 불 붙는 것같이" 뜨거워지게 되므로 다시 뛰쳐나가 예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권역사이다. 인간의 힘이 못당하는 성령의 역사이다(스가랴 4:6~ ). 이렇게 되는 이유는...


①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온 말씀임이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이고 ② 말씀의 내용이 너무도 참되기 때문이며 ③ 성령께서 그로 하여금 그것을 전하지 않고는 못 견디도록 그 마음을 뜨겁게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에는 마귀의 참소도 강한 법인데, 오늘날 예레미야를 다시 예언하는 종들도 다음과 같은 대적들의 훼방을 통과케 될 것이다.


『  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


선지자는 자기가 당하는 모든 위험스러운 일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는데, 곧 비방하는 일과 해하려는 음모들이다.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이 말은 원수들끼리 주고 받는 말인데, 예레미야에게서 무슨 허물을 찾으면 알려 달라는 말이며, 고소할 때는 함께 힘이 되어주겠다는 말이다. 이들의 공동 목적은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는 것 한 가지뿐이다.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친한 친구들까지도 예레미야가 죄를 범하고 거꾸러지기를 원하리만큼 참 선지자의 길은 외롭고 고독하며 범인(凡人)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시편 55:1~16).


『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


본절에서는 예레미야가 10절까지에서 고백한 힘겨운 역경 중에서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원수들이 산더미같이 일어나 예레미야를 휘두르는 장면들에서는 마치 하나님조차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의 긴박함과 위기감이 조성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자기와 함께 하여 주시는 "두려운 용사"로 알았으며 원수들이 자신을 이기지 못할 것을 내다 보았다. "그들은...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예레미야는 자신을 박해하는 모든 자가 실패할 것을 확신하였는데, 이는 말세의 종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종말의 파수꾼들이 예레미야서를 들고 나갈 때 대적의 무리들이 죽일 듯 달려들테지만 그들은 큰 수욕을 당하게 되고 예레미야와 같은 144,000명의 용서들은 "두려운 용사" 하나님의 완전보호를 받게 될 예언이다.


『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


예레미야의 신앙을 드러내주는 구절이다. 그는 자기의 심사(心思)에 불의함이 없다는 사실과, 그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안도감을 갖는다. 13~ 극도로 위험한 때이지만 하나님을 노래하며 찬양하는 모습은 하박국 3:16~18절에 나타난 말세 종의 자세이다. 말세 종들은 세상 권세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음이 가난하다.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는 과거형 문투의 신앙고백은 마귀로부터 권세 받은 악한 종들이 말세 종들을 핍박하고 나올 때 큰 위로의 말씀이 될 것이다. 과거형 문투 예언은 이미 그렇게 이루어진 줄 믿고 나아가라는 강한 권고의 말씀이다. 우리는 "구원하셨음이니라" 이 한 말씀으로 인해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소망의 열매는 이처럼 달다. 하지만 인내의 과정은 쓰다는 진리가 다음의 말씀에서 확인된다.


2. 선지자가 자기 생일을 저주함 : 14~18


『 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 나의 아비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네가 생남하였다 하여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훼파하시고 후회치 아니하신 성읍같이 되었더면,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미로 내 무덤이 되게 하지 아니하셨으며 그 배로 항상 부르게 하지 아니하신 연고로다 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 』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그의 출생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한 자까지도 저주를 받았더면 좋았으리라고 하고 있으니(14~15)... 선지자 예레미야의 연약한 체질이 감당키 어려운 얼마나 커다란 고통과 핍박이 덮쳐왔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이러한 저주의 탄식은 선지자의 믿음이 하급이어서가 아니라, 고통이 너무 강하므로 나오는 탄식인 것이다. '출생하지 않았더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로운 환경은 말세 종 144,000명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이 예언이 기록된 것은 참 선지의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가를 알리는 데 있지 누군가를 저주하는 데 있지 않다. 엘리야도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한 바 있다(열왕기상 19:4).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대항할 말세 종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이러한 환경을 거쳐가야 할 것이다.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이것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공포의 소리를 의미한다.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여기서 "그" 는 하나님이시다. 원망하는 말이 아니고 선지자의 길이 이러한 말이 나올 만큼 험하다는 뜻이다.


선지자는 그의 삶 전체가 사단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되는 만큼 그 인생에서는 기가 막힌 일들이 수없이 발생케 된다. 욥기 3:1~26절에서도 기가 막힌 말을 많이 함을 볼 수 있다. 이사야 29:1~4절에도 말세 종은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하신 상태가 된다고 예언돼 있다. 우리가 비껴 갈 수 없는 필수관문의 예언들이다.


이사야 48:10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 이시야 119:67~72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신데, 왜 택한 종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고난의 풀무를 지나게 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하는 종들에게 세세 왕권을 주시기 위함이다. 세세 왕권을 주시되 강한 마귀와 싸움을 붙여 이기는 자에게 준다는 것이 '공의'(公義)이므로 "고난"이 필요한 것이다. 고난은 주님의 '모략적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49:2~ 종을 "마광한 살"같이 아프게 갈아 전통에 감추고 꼼짝 못하게 하시는 것도 다 원수 마귀를 이기게 하기 위한 주님의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핍박과 고통을 도리어 축복으로 알고 감사만 하자! 그것이 진정한 파수꾼의 인격이요, 그가 걸어야 할 신앙의 정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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