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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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62_예레미야애가03장

[주일 오후 설교예레미야 애가 03장 : 환난 중에 하나님을 앙망 2018/06/24 Lord's day(Sunday) Afternoon

2016년 12월 04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애가 3장

제목 : 환난 중에 하나님을 앙망


1. 재화에 대한 선지자의 탄식 : 1~20


『 1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 2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3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 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꺾으셨고 5 담즙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6 나로 흑암에 거하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7 나를 둘러 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9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사 내 첩경을 굽게 하셨도다 10 저는 내게 대하여 엎드리어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의 사자 같으사 11 나의 길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로 적막하게 하셨도다 12 활을 당기고 나로 과녁을 삼으심이여 13 전동의 살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14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15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16 조약돌로 내 이를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17 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 버렸음이여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


참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민족을 대표한 처지에서 자기 민족이 당한 고난의 의의(意義)를 보여주고 있다. 당한 고난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암담한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1) "흑암"과 같은 혼돈(2절).

2) "종일토록" 구타를 당함과 같은 괴로움(3절).

3)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뼈를 꺾는 것" 같은 고통(4절).

4) "담즙" 곧 쓸개즙과 같이 쓴 것과 수고로 사방이 에워싸이는 절망과 답답함(5절). 70년간 고난을 벗어날 길은 없게 됐다.

5) "죽은지 오랜 자"같이 된 절망(6절). 시편 143:3참조.

6) "결박" 당하여 꼼짝할 수 없는 부자유(7절). 욥기 19:8, 시편 88:8참조.

7) "기도응답"은 커녕 상달조차 되지 않는 것 같은 버림받은 느낌(8절). 70년간은 아무리 괴로워도 응답을 주실 수가 없다. 하박국 1:2. 그러나 진노기간이 끝나면 응답하신다(하박국 2:1~3, 시편 91:15, 시편 102:2, 잠언 18:10, 이사야 65:24, 요엘 2:32 참조).

8) "다듬은 돌을 쌓아" 길을 막아 놓은 것이 절대자의 간섭임을 깨달음(9절).

9) 하나님의 징계가 대기(待機)하였다가 달려드는 "곰과 사자"의 공격같이 느껴짐(10절).

10) "몸을 찢는 것" 같은 고통으로 느껴짐(11절).

11) "적막한 처지"에 빠져 희망의 서광을 찾아볼 수 없는 처지(11절).

12) 겨누어 쏜 "활"에 맞은 것처럼 괴로움(12~13절).

13) "조롱거리"가 된 듯한 수욕감(14절, 예레미야 20:7 참조). 에스겔 선지자도 자기 백성에게 속담거리가 되었었고(에스겔 12:22), 노아도 산 위에 쓸모 없이 큰 배만 짓는다고 모든 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었었음. 말세 종도 같은 길을 가야 함.

14) 먹지 못할 "쓴 것"을 억지로 삼켜야 하는 고통(15절).

15) "돌" 섞은 식물을 먹다 "이"가 부러지게 된 자의 고통과 허탈함(16절).

16) "재로 덮은 자"와 같이 비천케 된 처지(16절 하반).

17)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므로" 복은 자취도 찾을 수 없게 된 절망(17절).


『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


선지자는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라고 아뢰며 낙심 중에 기도하지만 21절 이하에 소망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2. 하나님의 긍휼과 성실을 앙망 : 21~23


『 21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시다(찬송가 82장). 알곡에게는 그분의 초림도, 재림도 최고의 살아생전 최고의 소망이 된다. 구약 교회가 선지자의 예언을 무시하다가 북방 칼에 잡혀갔으나 70년(예레미야 25:11, 예레미야 29:10)이 지나면 스룹바벨 총독의 인도로 귀국하여(에스라 1:8, 세스바살=스룹바벨 총독) 학개,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스가랴 8:9)대로 성전을 재건함이 그들 최후의 소망이었듯이... 기독교 종말에도 다시 예언하라(계시록 10:7~11) 하신 재림 예수님의 명령을 패역한 자들은 반대하다가 북방 칼에 잡혀가 죽게 되지만, 순종하는 스룹바벨 단체 144000 명에게는 이 명령이 새 시대를 향한 최후 소망이 되는 것이다. 이 소망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예수님이 순종한 144,000과 더불어 지상강림하심으로써 새 천년 안식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레미야 31:15~22절에 기록되길 야곱의 부인 라헬이 자식이 없어 울 때 최후의 소망은 :22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하신 말씀이었다. 이는 "큰 이적"으로서 바로 계시록 12:1~5절에 나타난 내용과 동일하다.


3. 환난을 참고 하나님을 대망할 것 : 24~33


『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  


여호와는 우리의 기업이시다. 예레미야 51:19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 이사야 19:25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 지어다"


하나님은 창세기 13:14~17, 22:15~18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다 주셨다. 주시되 400년 후에 (유월절이 성취되므로) 주신다고 언약하셨다(창세기 15:13). 구약 때의 표면적 400년은 출애굽기 12:40~ 430년 만에 이루어진 모세의 출애굽역사로 이루어졌고, 이면적 400년은 마태복음 27장에서 이루어졌는데, 말라기 1:10절의 말씀대로 성전 문을 닫은 지(예언자가 끊긴 지) 430년 만에 예수님이 양의 문, 성전의 문(요한복음 10:7,9)으로 오셔서 십자가상에서 유월절 양으로 화목제사를 완성하심으로써 우리의 소망은 성취되었다. 이 기쁜 소식을 사도행전 1:8절같이 "땅 끝까지" 전하느라고 2000년이 걸렸고, 이 은혜의 기간동안 양의 문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구원을 주셨다(베드로전서 1:9).


반면, 육체구원은 70년 만에 이루어지는 출 바벨론 역사인데 표면적으로는 B.C. 606~536년까지의 70년 세월이었다. 썩은 것을 도려내고 새로운 순 같은 스룹바벨 단체가 귀국해서 성전을 재건한 역사가 70년 회복이었는데(순의 역사), 이것이 이면적으로 성취될 사명의 장막이 영적 유다인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1905~1975 / 70년 회복이다. 스가랴 1:12). 일본을 들어 이 나라를 노하실 때로부터 70년이 차매, 학개서에 기록된 날짜 9월 24일날에 지대를 놓아 제단을 세우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인 맞은 종들 144000명을 불러모을 다림줄, 머릿돌의 권세가 장전된 것이다.


우리가 이 동방역사에 기록된 말씀대로 죽도록 충성하면 세계의 선구자적 동무 종들(144,000)이 자연스레 하나가 되어 모이되 무신론, 이방종교, 정치협상, 종교통합 운동 등의 비진리 세력에 성경대로 맞서 죽기까지 싸워(다시 예언) '여호와만이 참신'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전 세계의 흰무리들이 회개하고 쏟아져 나오도록 역사하게 된다. 이들이 해산수고를 다할 때 천년왕국이 건설되어 아담이 빼앗긴 땅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 세계 알곡들에게 선포할 사명이 동방 유다나라의 선구자적 종들과 전 세계의 144,000명에게 있는 것이다. 이들은 황충떼가 일어나 인 맞지 못한 자들을 괴롭히는 5개월 동안 세계적으로 강하게 외치다가 3차대전 직전에 적그리스도의 손에 의해 순교할 것이다. 수를 채운 순교자의 동무 종들이 역사를 마치면 예수님은 이들을 불러 올리시기 위해 공중에 재림하신다(계시록 11:1~12).


구약 유다를 통해 보여주신 400년과 70년이라는 1차, 2차 역사가 새 언약, 새 일의 실질적 역사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신약과 종말의 역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3대절기 중 유월절, 초막절에 해당하는 역사이다. 기독교가 영혼구원으로 시작하여 완전한 영,육 구원으로 마무리된다는 데에는 이러한 두 가지 연대(400년, 70년)와, 두 가지 약속(새 언약, 새 일), 그리고 3대절기라는 배경이 있는 것이다.


천년왕국은 순교자와 변화성도라는 1차부활 받은 자와, 이 땅에서 육체가 살아 들어가는 백성들(예비처 흰 무리)로 이루어지기에 몸의 구속, 육체구원, 육체보호는 더 이상 이단적 내용일 수 없다. 오히려 기독교 종말론의 핵심적 내용이 된다. 핵심을 말할 때가 되니 마귀가 총동원되어 방해하고 있다. "기업"이라는 것은 몸을 가진 인간이 받아누리는 재산이자 터전인데, 왜 이 시대의 기독교는 기록된 피조세계의 참다운 회복인 천년왕국을 간과하고 곧바로 영체가 누리는 무궁안식시대(천국)부터 가려고들 하는가? '제7천년기'로 작정된 땅의 안식을 거쳐 '제8천년기'인 무궁안식 세계로 이전하여 주님과 영원토록 동거 동락하라는 것이 성경이 명하고 있는 구원의 정로(正路)이다. 우리는 학창시절의 경험을 통하여 공부 못하는 학생이 꼭 '영어' 시간에 '수학' 책을 펴놓는다는 진리를 안다. 지금은 '천년왕국' 수업시간이다. '천국' 수업은 이전에 지나가지 않았는가? 그러나 흑암이 와서 덮어 버리니 다음 시간 수업교재도 펴놓지 못하고 졸며 앉아 있는 것이다. 선생님(재림 주)은 이런 학생을 교실 밖 복도로 내쫓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있으라" 하실 것이다(마태복음 25:12, 26~30).


하나님은 저주가 삼킨 땅에서 저주를 물리쳐 주시어 에덴이 다시 금 회복되도록 역사 하시려 한다.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온전한 땅의 축복을 누리는 것을 보셔야만 물질계를 창조한 목적을 달성하시게 된다. 그 때 다시 한 번 웃으시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실 것이다. 계시록 16:17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창세기 1:31 "보시니 심히 좋았던" 알파 때의 기쁨을 종말에 "되었다" 하심으로 다시 맛보시는 때가 바로 천년왕국이다.


창조목적은 물질세계인 천년왕국이 마무리되고 영원무궁세계가 펼쳐짐으로써 마감되는데, 이 거대한 역사는 완전한 안식으로 우리를 데려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되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사랑이요 꿀이로되 이 사랑을 압축할 때 나오는 고농축액이 바로 '로얄제리'인 '새 언약'과 '새 일'이다(렘 31장).


새 언약 = 예레미야 31:31~34, 누가복음 22:20, 히브리서 9:15절의 유월절 양의 역사이다(고린도전서 5:7).

새 일 = 이사야 42:9, 이사야 43:19, 이사야 48:6, 예레미야 31:21~22절의 예언으로 출바벨론 역사, 철장권세 역사이다. 영육구원, 가족구원, 세계통일의 역사이다.


『 25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  


"기다림(25~26)" 하나님의 언약인 70년을 기다림이다. 다니엘 9:1~3절에 다니엘은 바벨론 속에서 하루 3번씩 기도하며 기다리다가 연수를 깨닫고 유다의 회복을 보았다.


"멍에를 메는(27~29)일"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의 특별한 사명(예레이야 1:5, 에스겔 1:3)을 말하는데, 시대마다 이 멍에를 메야 하는 대표자가 있다. 율법은 모세에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다(요한복음 1:17). 환난시대에는 학개서 2:23절에 스룹바벨을 하나님의 인(印)으로 택하셨다.

"혼자 앉아서(28절)"란 대표적인 종은 항상 홀로될 수밖에 없음을 보이시는 말씀이다(이사야 11:1~의 한 가지, 이사야 19:19~의 한 구원자, 이사야 45:1~의 고레스의 역사는 인간 종말의 큰 구원을 이룰 때 동방역사 대표적 사명자가 등장하여 일할 것을 알려주는 예언이다).


『 29 입을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32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니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


사명 국가가 예수님 나라를 건설하는 대역사에 불리움 받아 일을 하다가 약하여 범죄함으로 징계나 핍박을 받을 시에는 달게 받는 자세, 아니 오히려 더 많이 받기를 원하는 영적 지혜가 유망하다는 뜻이다.


주님의 때리는 매는 그 끝이 정하여져 있으므로 그 매를 순히 맞으라고 함(30~32, 욥기 5:17~18, 미가서 6:9 참조).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주님의 "본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 고난을 당케 하시는 것은 주님 보실 때 그것이 필요하므로 내리시는 사랑의 징계라는 고백이다(33절).


4. 재난 중에서 반성하고 회개할 것 : 34~41


『 34 세상에 모든 갇힌 자를 발로 밟는 것과 35 지극히 높으신 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 사람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것은 다 주의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37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하랴 38 화(禍), 복(福)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냐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   


① 선민의 억울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 참을 줄 아는 것이 지혜라고 하신다(34~36).

②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주의 명령"에 의하여 되는 것이니만큼 인간은 그것을 잘 참아야 된다고 하신다(37~38).

③ 선민이 고난받는 것은 "자기 죄로 벌을 받음이니" 그것을 원망치 않는 것 역시 지혜라고 하신다(39절).


원죄로 인해 질적으로 타락한 인간을 고난의 풀무에 집어넣어 연단시킴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은 그분의 사랑 담긴 모략이다. 오늘날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생명의 근원인 새 언약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자범죄를 용서한 것이지, 원죄까지 다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 원죄가 사라진즉 육체의 죽음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믿고도 모든 육체가 풀과 같이 쓰러지는 것은 믿음의 법(로마서 3:27)에 의해 마지막 날에 생명의 부활을 주시겠다는 공의의 법인 것이다.


하지만 천년왕국을 앞에 두고 까불어 보는 이 시점에서는 십자가의 도(道)만 전해서는 참 종이 될 수 없다. 만일 십자가의 도(道)만 전파하는 것으로써 기독교가 끝을 바로 맺을 수 있다면, 또다시 예수님이 계시록 5장에서 당신의 피로 책을 사서 사도요한에게 계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새 시대의 문턱에서는 반드시 (쭉정이의) 육체를 심판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육체구원을 위하여 새 일 교훈을 주신 것이다. 육체를 개조시켜서 변화체로 만드시는 일이 없고서는 마지막 주의 종들도 마귀의 손에 의해 다 전멸될 것이다. 그러면 이 땅은 회복될 수 없는 것이다. 고로 기독교 종말에 영과 육을 당신의 몸과 같이 변케 하는 마지막 역사를 남겨두신 것이다(빌립보서 3:21. 로마서 8:23. 에베소서 4:30. 계시록 14:4). 이사야 42:9~ 새 일을 고하고, 43:1~ 육체를 신창조시켜서, 43:19~ 새 일을 행하므로 새 시대에 들여보내 주신다는 약속이 있다. 이사야 57:15~21절에도 거듭난 백성의 탐심의 죄악을 고쳐서 완전케 하신다는 예언이 있고, 또한 이사야 25:6~8, 스가랴 3:9절에도 새겨야 할 말씀을 다 새겨서 하루에 죄악을 제하신다는 약속이 있다.


이 모든 예언들은 십자가 피로 인한 '믿음의 법'을 이루려고 주 신 말씀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바울이나 베드로나 요한의 서신에는 위 구절들 중 적어도 하나는 인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 계통의 어떤 종도 위 구절들을 인용치 못했다. 피로 산 '예언의 법'이 집행될 시기에 성취될 예언은 하나님의 인 맞은 자들이 인용한다. '피'를 흘리시고는, '피로 산 말씀'을 받아서 영혼구원 얻은 기독교회에게 "읽고, 듣고, 지키라" 말씀하신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가? 그것은 영을 죽이는 자범죄뿐만 아니라 육체를 썩게 하는 원 죄악까지 굴복시켜 아름다운 새 시대를 이루시기 위함이다.


현 기독교계에 육체구원이라는 단어는 여간 생소한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이 생소해 한다고 주 께서 기록된 말씀을 가감하실 수 있으랴! 지금은 비록 많은 사람이 믿지 않고 핍박하므로 이 새 일의 일꾼들이 고난의 길을 걷고 있지만, 시편 119:67~74절에 "고난이 유익"이라 하신 것은 새 일의 역사를 통하여 모두가 웃으며 "할렐루야"를 돌릴 수 있는 아름다운 추수의 날을 이루시겠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당당히 믿고 전파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영혼구원'의 역사도 2000년 전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를 거쳐 지중해 일대를 장악하고 아프리카를 거쳐서(16C) 유럽으로 건너가 아메리카 대륙을 경유하여 아시아 장막으로 들어와 동방 땅 끝의 이 작은 땅 대한민국에 전해질 때까지 대적들로부터 얼마나 심한 중상모략과 핍박을 당해왔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 일을 상기해 볼 때, 새 천년 큰 축복을 앞두고 벌어지는 새 일의 동방역사에서 당신의 종들이 다시 한 번 낮아지고 멸시 천대 받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고 감사하게 된다. 동방 새 일의 역군들은 성령님의 동행하심으로 모든 것을 견디며 넉넉히 이기고 나아갈 것이다.


아멘...


『 40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41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


민족을 위해 회개하며 성민의 회복을 바라는 선지의 마음은 이 종말의 기독교에게 지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새 일 역사 앞에 돌아오라는 말로 다시 예언될 수 있다. "행위를 조사하라"는 말씀은 말씀 앞에서 시대를 분별하여 구체적으로 회개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회개나 고침을 이룰 수 없고 오직 여호와의 새 일 교훈으로만 뼛골 속 깊은 데까지 곪은 영적 부패를 치료하여 원죄의 질을 뽑아낼 수가 있다.


예수님의 피로는 자범죄를 씻음 받고(스가랴 13:1~. 이사야 53:1~12. 시편 22장) - 성자의 유월절 역사.

성령님의 역사로는 영적 장성을 얻어 열매 맺음을 받으며(갈라디아서 5:22) - 성령의 오순절 역사.

이제 마지막 초막절기 곧 여호와 성부의 새 일 교훈(피로 산 심판 책)으로는 6,000년 묵은 선악과의 원죄 질을 고침 받아 새 시대 에덴에서 축복을 누리며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 이사야 42장 "하나님의 3대 역사" 참조.


5. 죄로 인한 환난과 그에 따른 비애 : 42~54


『 42 우리의 범죄함과 패역함을 주께서 사하지 아니하시고 』


모든 죄악은 선악과의 원죄로 말미암아 일어나는데 이 죄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해주겠다는 언약서가 바로 성경이라는 책이다.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께서 죄인의 죄짐을 100% 맡아서 해결해 주심에 있어서, 요한복음 19:30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다시 계시록 5:7절의 말씀을 이루셔야 한다. 곧 계시록 6:1~2절의 흰 말 타신 예수님이 "이기고"(유월절-영혼구원) "또 이기는"(초막절-육체구원) 백마 2차 승리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주장하기를 "흰 말은 마귀"라 하나 흰 말은 마귀가 아니요, 오직 '기독교 복음운동'인 진리 역사이다. 두 번 이겨야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하늘의 작정이 "이기고 또 이기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뿐이다.


이러한 하늘의 뜻에 대하여 땅의 인간이 "십자가 승리로 한 번만 하면 됐지 뭘 또 하냐" 한다면 참으로 당돌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성자 예수님은 이기고 올라가시어 당신 피값으로 성부 오른손에 든 책을 사서 그 인을 떼어 요한에게 계시하실 때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라"는 지상명령을 주셨다. 그런데도 그의 피로 산 백성된 자들이 "우리는 예수 십자가로 영혼구원 받았다"라고 말하며 계시록 6:1~2절의 역사를 마귀역사라 한다면 이제 "또 이기시려는" 하늘의 예수님은 참으로 난감치 않으실 수 없다. 사명자로서 분명히 말하건대, 계시록 6:2~ 백마의 "이기고"는 기독교 1차 승리! 곧 어린 양 예수가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음을 뜻한다(골로세서 2:15, 계시록 5:5, 요한복음 19:30, 고린도전서 15:20). 바로 뒤 백마가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것은 기독교 2차 승리! 곧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아버지 손에 있는 봉한 책(구약 모든 예언서의 비밀)의 내용을 열어 보이심으로써 그간 감취어진 '하나님의 비밀'(계 10:7)이 인간 종말에 완전히 개시되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인 계시이다.


세계적으로 왕권을 누릴 종들(변화성도)과 백성될 자들(예비처 흰무리)을 모아 육체구원(보호)을 이루어 새 시대 들어갈 구원의 목록을 마련하는 역사가 바로 "또 이기려고 하더라"로 보여진 백마의 2차 승리 역사이다. 이것은 계시록 19:11~21절 아마겟돈 전쟁의 대 승리로 마무리되는데, 이 땅에 존재하는 원수 마귀(600)와 그 앞잡이 짐승 정권(60)과  그에 빌붙은 거짓 선지 교권(6)을 없이 하므로 끝을 맺는다. 잡히는 과정은, 먼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잡혀 산 채로 유황 불 못에 던져지고(계시록 19:20), 그 다음으로 용이 잡혀 무저갱에 던져짐으로 끝난다(계시록 20:1~3). 이렇게 되면 이 땅은 에덴으로 완전히 회복된다.


이제야 비로소 '눈물'과 '고통'과 '한숨'과 '질병'과 '슬픔'과 '탄식'과 '저주'와 '전쟁'이 사라지고, '사망'까지 사라진 완전구원, 영육구원, 완전안식의 땅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백마가 2번째 이기는 모습으로 보인 것이니 "백마는 마귀"라 설교하는 그 목사가 마귀이다. 만일 모르고 그랬다면 회개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확실히 알고서도 계속하여 "우리는 예수 십자가로 영혼구원 받았다" 말하며 계시록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겠는가? 여전히 여호와의 새 일은 이단이며, 계시록 6:1~2절의 역사는 마귀역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43 진노로 스스로 가리우시고 우리를 군축하시며 살륙하사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 44 주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우사 기도로 상달치 못하게 하시고 45 우리를 열방 가운데서 진개와 폐물을 삼으셨으므로 46 우리의 모든 대적이 우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 47 두려움과 함정과 잔해와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 』


유다 민족의 역경과 곤란은 "진노로 스스로 가리우심", "군축하심(따라잡음)""살륙하심", "기도를 들어주시지 아니하심"(44절)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 밉보이면 이리도 불쌍히 된다. "열방 가운데서 진개(티끌)와 폐물"처럼 천대와 조롱을 받는 것은 이스라엘이 주 앞에 다시 서기 위해 필수과정으로 치뤄야 하는 죄값의 결과이다(45~46).


"두려움과 함정과 잔해와 멸망"(47절) - 극도의 재앙을 뜻함인데, 마음이 강퍅한 죄인들은 이같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회개치 아니한다. 하나님께서 인정사정 보지 않고 이토록 여지없이 벌하신 것은 사랑과 더불어 지켜져야만 하는 공의가 무엇인지를 인간종말을 살고 있는 세계교회에게 일깨워주시기 위함이다. 인간이 죄를 범하고도 죄의 삯을 치르지 않는다면 - 죄 지은 인간을 하나님이 거저 용서하여 주신다면 - 하나님 역시 마귀 앞에 고소를 당하여 꼼짝 못하시게 된다. 하나님은 깡패가 아니시라 공의의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마귀가 하나님께 허락 받은 한도 내에서 참소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랑스런 당신의 자녀일지라도 무턱대고 편들기만을 행하실 수는 없는 것이다. 불법은 하나님의 속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 자녀가 다칠지라도 당신 입에서 나간 공법을 진실하게 집행할 의무가 하나님께는 있다.


이스라엘을 땅 위에서 아주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이렇게 고난의 풀무에 던져 단련시키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 "인간 사랑"에 기인한다. 내 자식인 아담(사람)이 아무리 잘못하여도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부모의 마음... 동시에 마귀를 따라가 죄를 범하는 불의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심판주의 공의(公義)...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간자, 참소꾼, 훼방꾼인  마귀! 마귀는 인간 중 범죄치 않는 자가 하나도 없는 사실을 카메라에 찰칵 찍어 주님 앞에 가져오는 것이다. 죄악의 구렁텅이 속에서 날마다 허우적대는 인간들.... 마귀 참소에 걸리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는 이 사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사실은 한없는 사랑이심과 동시에 '눈이 정결하시어 죄악를 참아보지 못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하박국 1:13)을 난감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인간의 전적인 부패는, 정확하게 집어내어 고소하는 마귀의 참소권에는 더욱 힘을 실어 주는 반면, 인간을 살리기 위해 변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누를 끼치기에 충분할 만한 패역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멋있는 분이신 것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공의를 빌미삼아 인간을 사망으로 몰아가려는 사단 마귀의 참소가 아무리 섬세하고 날카로울지라도 당신의 자녀를 건져내시고 남음이 있는 - 가히 '하나님적'이시라 말할 수밖에 없는 - 엄청난 계획을 갖고 계신 사실에 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의 사랑이 우리의 부족과 그 부족을 공격하는 방해꾼의 참소 앞에 소멸될 정도라면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이 아니로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주(主)시며 야곱의 허물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니 또한번 할렐루야! (민수기 23:21).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으려 손을 뻗던 그 순간부터, 아니 뱀이 인간을 속이려고 하와에게 다가가던 그 순간부터 벌써 인간이 패할 것을 아시고 인간을 살릴 작정을 세워 놓으신 것이다(창세기 3:15,21. 신명기 21:23. 시편 40:7, 22:1~21).


혹시 시기 질투자요, 거짓말하는 자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한복음 8:44)인 마귀의 참소에 걸려 오늘도 양심에서 들려오는 죄의식을 외면하고 자기 힘으로 자신의 수치를 가리워 보려고 무화과 잎사귀 따기에 여념이 없는 중생받지 못한 분들이 계신다면 오늘 주님의 사랑 안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길 주 앞에 간구한다. 마귀의 올무로부터 범죄한 자녀를 살려 내시려는 아버지의 작정이 기독교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데, 진리를 몰라 물없는 샘인 율법(유대교), 또는 이방 종교(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에 속하여 생수를 얻어보려고 애쓰는 수많은 자들이 있다.


그러나 택자라면 "누구든지" 먼저 자신의 더럽고 수치스러운 부분을 조용히 떠올리며 자신이 죄인임을 주 앞에 고백할 때, 죄 없는 그분이 죄인을 달아 죽이는 사형틀에서 비참하게 피흘려 죽어 간 그 사실에 가슴이 미어질 것이다. 택자라면 "성경 속의 십자가 사건"을 묵상해 볼 때 그분의 선물(에베소서 2:8)이 하늘로부터 임할 것이 확실하다.


로마서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행위로는 선(善)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이 알려주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인데, 수 많은 이방 종교와 유대 교회는 행위로써 사람을 꽁꽁 묶어두어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해방(구원)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위에서 오는 선물이란 바로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비천한 인간세계에 내려오시어 인간의 죄를 떠맡아 대속의 피를 흘려주신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다(빌립보서 2:5~10). 이제 한 이야기를 들어보라!


사업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누린 한 남자가 있었다. 성공으로 인해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많아진 그는, 이제 세상을 즐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시작한 것이 카지노 노름이었다. 돈에 더 욕심을 낼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한 여유를 가진 그였지만(창세기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아담은 왕이었고 부요했다), 더 크게 한 탕 잡을 수 있다고 집요하게 유혹해오는 노름에서의 승부욕은(창세기 3:4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그것을 먹는 날... 하나님과 같이 되어...") 그의 영적 눈을 가리우고 정욕의 눈만 밝아지게 만들었다(창세기 3:6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한탕주의라는 이름의 선악과를 따 먹은 그에게! 이제 점점 심각한 상황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는 자기가 벌거벗은 거지와 같이 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급한 김에 손 닿는 대로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아 보다가 결국 '사채'의 수렁에까지 발을 디디게 되었다(창세기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사채'라는 수렁은 늪이 되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급기야 낯을 들고 가족을 볼 면목조차 생기지 않게 된 그는 하루 이틀씩 외박을 하게 되었고, 그의 죄의식은  그로 하여금 자꾸만 사람들을 피하여 숨고 싶게만 만들었다(창세기 3:8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이 노름(선악과)은 한 푼 두 푼 아껴서 장만했던 집과 수십 년간 땀과 눈물로 이룩해 놓은 회사를 먹어 치워 버렸다(창세기 3:17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오손도손 다정했던 가족관계도 다 파괴되고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고독과 쓸쓸함과 쇠약함과 질병과 언제 당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였다. 카지노에서 고용한 조폭들과 사채업자(마귀)는 떠나간 처와 자식에게까지 찾아가 윽박지르며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했지만, 가장이 되어 위협당하는 가족조차 보호할 힘조차 없게 된 그는 "이제 더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하며 자살을 생각하기까지 이른다. 자살을 맘먹고 강가에 앉은 그는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위하여 소주를 연거푸 두 병이나 들이부었다. 얼큰한 기운이 올라오자 그는 준비한 면도칼을 집어들어 자신의 동맥줄에 가져다 대었다. 그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치는 영상이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사업 핑계로 그간 한 번 제대로 찾아뵙지도 못했던 80 먹은 아버지의 얼굴..... "죽기 전에 아버지 얼굴이나 뵙고 죽자" ..... 이렇게 다짐한 그는 칼을 접어 넣고 아버지의 집 앞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대문 앞에 도달하였으나 차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업성공으로 부요를 누릴 때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던 불효가 양심을 짓누르고 있었다. "쓸 데 없는 불효자식, 얼른 죽지 뭐하러 이곳은 찾아 왔나!" 이렇게 되뇌이며 홀딱 망한 모습으로 아비의 집 앞을 얼쩡거리는 모습이란..... 비참 그 자체였다(누가복음 15:17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렇게 몇 시간을 떨다 지친 그는 혈관과 뇟속을 휘감는 알콜 기운에 휘말려 쓰러졌고, 차디 찬 밤이슬은 그의 온 몸을 적시었다.


새벽녘, 신문을 가지러 나오던 그의 아버지는 노숙자 차림의 거지가 대문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들뻘 되는 남자가 술에 골아 집에도 못 가고 남의 집 대문가에 추하게 쓰러져 있는 모습이란... "쯧쯧쯧..." 아버지는 한심하기도 함과 동시에 나이나 허우대가 얼굴 본 지 오래된 아들뻘쯤 되는 것 같아 딱한 생각이 들어 깨워 따끈한 차나 한 잔 먹여 보낼까 하는 심정으로 신문을 집어 들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다가가면서 드는 생각이..... '설마 아들 녀석일까?' ..... 왜 이런 생각이 나는 건지..... 아들일 리 만무한데 말이다. '닮긴 매우 닮았는걸...' 하면서도 '아닐거라' 생각하며 한걸음씩 다가가 보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설 수록 저 가슴 밑이 뭉게져 녹아 내리는 것 같음은 왜일까...?, 그렇다! 아비의 본능은 그가 아들임을 분별해 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무조건 등에 업어 방으로 들여놓고 보았다(누가복음 15:20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비는 아랫목 아직 개지 않은 이불 밑으로 아들의 몸을 뉘이고 그의 몸을 녹여 주었다.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잠에서 깨어난 아들은 인자한 모습으로 자신을 내려다보시는 아버지 앞에 정신을 차리며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누가복음 15: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노름에 손을 댄 것부터 시작하여 사채업자의 협박, 가정불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자살을 결심한 데 이르기까지, 아들은 가슴 속 모든 응어리를 아버지 앞에 털어놓았다. 이미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된 일인지를 어림잡아 짐작했던 아버지는 그 모든 이야기를 화 한 번 내지 않으시고 차분히 들어주셨다. 아들의 이야기가 끝나자 깊은 한 숨을 쉬신 후, "걱정할 것 없다" 하시며 종이를 하나 꺼내 와서는 무어라고 끄적끄적 쓰셨다. 그리고는 아들의 손을 잡아끌어 손가락을 강제로 펴시고는 인주를 묻혀 지장을 찍게 하셨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사채업자 '○○○'에게 대출받은 일금 '○○○'원 총액에 대하여 父 '○○○'는 子 '○○○'를 대신하여 일체의 채무를 이행할 것을 약속한다. 父 '○○○'와 子 '○○○' 양방은 ○○년 ○월○일 부로 위 내용이 사실임에 동의한다. 금일 이후로 사채업자 '○○○'와 子 '○○○' 간의 채무관계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모든 법적 책임은 父 '○○○'에게 영구적으로 이양되며, 만일 채무 불이행으로 빚을 갚지 못할시 동반되는 형사적 처벌까지 父 '○○○'이 담당할 것을 명히 계약한다"


채권자 : 사채업자 ○○○ (마귀떼  印)

채무자 : 죄인괴수 ○○○ (아들딸  印)

연대보증자 : 무소불능 ○○○ (성삼위  印)


○○○○년 ○월 ○일


아버지는 당신이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는가를 생각하셨는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세상에서 볼 재미는 다 본 사람이다.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라 생각하고 이 일은 내 소관대로 처리하게 맡겨 두어라. 이 일에 관하여는 일체 간섭치 말고 이제 너는 내가 네게 주는 이 돈을 가지고 가서 새 출발을 하여라. 애비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나도 너를 더 이상 아들로 생각지 않겠다. 네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라 생각하고 어여 가 가족들을 찾아 다시 일어나거라"


이와 같다. 한 번의 실수로 사채업자에게 완전히 발목을 잡혀 죽게 된 아들은, 죄로 인해 사탄에게 잡혀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 우리 인간이다.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버리고, 아들의 인생을 부활시키는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 인간을 대속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다. 그러나 이 비유적 이야기로 어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올바로 전달할 수 있으랴! 세상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빚을 갚거나 대신 형을 살아줄  순 있어도, 도박계를 청소할 수 있다거나 법망을 피해 이익을 챙기는 악독한 사채업자들을 처벌할 지혜도 권세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이 땅의 모든 죄짓게 하는 것과 불의의 처사와 악인을 아울러 심판해버릴 완전권세를 갖고 계신다.


지금의 세상은 악인이 득세하고 거짓된 자가 흥황하여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듯 느껴지는 세상이다.

• 시편 10:3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 시편 92:7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 하박국 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심판은 여지 없이 시행되고야 말 것이다.

• 욥기 8:22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 시편 9: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 시편 1: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 시편 9: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塗抹)하셨나이다"

• 시편 11: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 시편 37: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 시편 92:7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 시편 104:35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지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철없는 못된 아들이 슈퍼마켓(화려한 애굽, 바벨론 마귀세상)에서 좋은 물건(선악과)을 훔치다가 걸렸다 하자. 아들을 법대로 반드시 감방에 집어넣고야 말겠다는 못된 슈퍼주인(마귀)에 대하여 아버지는 철없는 아들이 행한 절도에 대한 처벌을 자신이 대신하여 받겠다 나선다. 혹여나 슈퍼 주인이 후에라도 아들을 해꼬지 못하도록 처벌받음과 동시에 물건값까지도 다 지불하겠다는 것! 지불하되 아들이 밖에 나가서나 학교생활에서라도 혹여나 슈퍼 주인의 소문 퍼뜨림을 인하여 고개숙이는 일이 없도록 두 배나 넘치게 철저히 갚아주시겠다는 것이다. 슈퍼 주인은 아버지의 희생적이고 깔끔한 일처리로 인하여 그 아들을 참소할 권리를 박탈당한다. 이것이 아들을 위한 아비의 사랑이다. 사단도 어찌해 볼 수 없는 넘치는 아비의 사랑...! 사탄이 원하는 것은 돈도 아니요, 아비의 처벌도 아니다. 오로지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들을 아비로부터 떼어내려는 이간이다. 아들을 흑암(사망) 속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 원하고도 원하던 사탄의 소망이겠지만, 두 배나 갚아 버리고 친히 형무소생활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완전한 아버지를 슈퍼주인(마귀)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 이사야 40: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 스가랴 9:12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保障)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그러므로 참되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참아들)은 하나님(참부모) 앞에서만 고개를 숙이며, 오로지 하나님께만 감사하게 된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이방 종교의 구원을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인가? (가톨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서부터는 이방종교의 구원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현 W.C.C.도 8차까지의 총회내용을 살펴볼 때 구원 문제에 있어서 이방종교가 치고 들어올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주고 있다. 진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슈퍼(화려한 바벨론) 주인(사단)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을 건드릴 수조차 없는 것이어늘(로마서 6:9,14, 8:2. 히브리서 11:28)... 이 시대의 처녀(기독교) 딸 시온은 이방 사상을 따라감으로써 다시금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 31:21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오늘 예레미야 애가서와 계시록의 내용은 날 위해 죽어주신 주님을 찬미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복음서와 편지서의 메시지를 통하여 2,000년간 온 세계에 전파된 내용이다. 지금은 천국복음으로 씨 뿌릴 때가 아니고 계시록과 예언서로 알곡을 추스려야 할 때인 것이 분명한 만큼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는 진리를 선포할 때인 것이다(계시록 5:9~10). 죄 지어 죽게 된 인간이 어차피 죽을 목숨 주를 위해 살아드려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면 죄인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시되 '해를 입은 한 여자'를 통하여 '철장 든 아들 144,000'명을 해산케 하심으로써만 이루어지는 귀한 면류관이다.


만일 하나님이 아들(예수)의 몸을 율법의 요구 앞에 내어주심으로써 기독교의 모든 구원이 끝난 것이라면, 오늘날 예레미야 애가서는 우리 앞에 아무 소용도 없게 된다. 애가서는 택함받은 백성이 다시금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므로 당하게 되는 성민(이스라엘)의 심판임을 기억하라(기독교 심판 = 미련한 다섯 처녀 = 한 달란트 받은 자 = 마태복음 25장). '십자가의 도'는 거저 베풀어 주시고는 한없이 기다려 주시면서 예수를 영접하는 자가 영혼구원 얻어 자녀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은혜시대의 사랑이다. 그러나 이제는 은혜로 값없이 부르시는 시기를 접으시며 구약 백성에게 행하시던 그 공의를 들고 찾아오시어 세상의 악을 제하실 때(교회를 심문하실 때)이므로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하는 자세로는 심판 주님을 영접할 수가 없다. 생명을 주고 산 아들 곧 피로 산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발로 차고 이방종교와 협상하며 무신론과 손잡으며 참 선지를 핍박한다면 하나님은 아무리 당신의 아들 딸일지라도 공의에 의해 다시 파멸시킬 수밖에 없다 하신다. 하나님의 '이 아픈 마음'이 오늘 예레미야의 마음을 통해 슬프게 다시 외쳐지고 있는 것은 누구를 위한 교훈인가? ....... 바로 예레미야서를 들고 다니는 종말의 기독교인들을 위한 교훈이 아니겠는가!


『 48 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49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50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는도다 』


이 말씀은 선지자의 슬픔을 보여 주심이다. 백성은 저희의 죄악으로 인하여 벌을 받았으나 선지자는 자신을 (때리고 가두던) 그들의 이 비참한 처지를 보고 고소해하지도 통쾌히 여기지도 않는다. 눈물로써 슬퍼한다. 오늘날도 참 선지자라는 것은 교파, 교단을 초월하여 이렇게 죄인의 패망에 대하여도 애석히 여기는 마음을 금하지 못하므로 울며(에스겔 9:4) 다시 예언하는 것이다(계시록 10:11). 그 눈물은 소망 없는 사람의 슬픔 같은 단순한 인정(人情)이 아니다. 하나님을 찾는 하나의 애도(哀悼)인 것이다. 이 시대의 기독교는 (아니 바로 당신은) 예루살렘 성읍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들로 울고 있는가? 아니면 예루살렘 성읍의 모든 죄악을 조장하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 51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를 인하여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하는도다 』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는 유다의 모든 도시들을 의미하고 종말로 볼 때에는 천주교를 포함하여 십자가로 세운 모든 개신교 교파들을 의미한다.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한다" 함은 예루살렘 멸망의 참상을 두 눈으로 지켜보며 울 수밖에 없는 선지자의 고통을 말함이다. 계시록과 예언서를 꿀같이 먹은 자는 이 고통을 갖게 되며, 이 고통을 가진 자에게는 예언서와 계시록이 꿀 같은 양식이 된다.


『 52 무고히 나의 대적이 된 자가 나를 새와 같이 심히 쫓도다 53 저희가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 54 물이 내 머리에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


또 다시 선지자는 유다 민족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여 그 당한 참상을 표현하고 있다. 선지자는 자신이 "새가 사냥꾼에게 쫓김같이" 되었으며, 원수들이 그를 "구덩이에 넣고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란 이런 비참하고 긴박한 처지에 떨어질 때라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된다(고린도후서 1:8~9).


6. 하나님의 구원과 적에 대한 보복을 구함 : 55~66


『 55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56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57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 58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을 펴셨고 내 생명을 속하셨나이다 59 여호와여 나의 억울을 감찰하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신원하옵소서 60 저희가 내게 보수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감찰하셨나이다 61 여호와여 저희가 나를 훼파하며 나를 모해하는 것 62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과 종일 모해하는 것을 들으셨나이다 63 저희가 앉든지 서든지 나를 노래하는 것을 주여 보옵소서 』


선지자는 하나님께 자기 민족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간구한다. 선지자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이유로써 기도한다.


"심히 깊은 구덩이"에 빠졌기 때문에...(55절).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을 때에 하나님만이 구원자가 되신다.

"과거에 도와주신 일"이 있었기 때문에...(56절). 욥기 5:19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라고 하였다.

③ 하나님께서 일찍이 "두려워 말라"고 약속하신 적이 있기 때문에...(57절). 바닷물이 마를 수 없음같이 바다보다 넓은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는다.

"생명을 속(贖)하셨기" 때문에...(58절).

⑤ 하나님의 선민이 죄 값으로 벌을 받은 것이지만 "원수에게 억울하게 된 슬픈 처지를 다 감찰하셨기" 때문에(59~63), 하나님께 매를 맞는 자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위로가 다시 임하는 날이 오게 된다.


『 64 여호와여 주께서 저의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하사 65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고 저주를 더하시며 66 진노로 저희를 군축(窘逐)하사 여호와의 천하에서 멸하시리이다』


본 절은 유다의 원수를 벌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저의 손으로 행한대로 보응함", "그 마음을 강퍅케 하심", 그들을 "저주하심", 그들을 "따라 잡으심", 그들을 "천하에서 멸하심"이다.


다니엘 5:24~ 벨사살 왕이 하나님의 성전 기명으로 술을 마시던 날 분벽에 하나님의 글자가 나타나 심판을 단행했다. 바벨론 심판은 하늘에서 정한 뜻이니 땅에서 이루어질 때 동방 바사 왕 고레스의 칼이 그날 밤 성문을 뚫고 들어왔던 것이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이 목베임을 당하므로 유다는 귀국했는데, 바로 약속된 70년이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예레미야 25:10~11).


율법으로 거룩히 성별한 백성이 우상숭배와 탐심으로 흘러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할 때 무시무시한 심판을 당하여 70년을 잡혀갔다는 것은, 종말에 예수의 피로 산 교회가 애굽(세상복락)을 바라보고, 강대국(미국)을 의지하며, 이방종교를 수용하면 다시금 북방 바벨론(러시아) 손에 잡혀가 '후 3년 반'을 살게 될 것을 미리 고하신 것이다. 스룹바벨 제단에서 울며 외치는 다시 예언의 다림줄을 멸시치 말고 남은 4~5장의 말씀으로 크게 깨닫기를 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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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전 설교예레미야 애가 02장 : 고난 중의 기도 2018/06/24 Lord's day(Sunday) 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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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애가 2장

제목 : 고난 중의 기도


1.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대 고난 : 1~10


『 1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것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진노하신 날에 그 발등상을 기억지 아니하셨도다 』


"처녀 시온"이란 예루살렘 모리아산의 언약을 인하여 400년 후에 야곱 12 지파에게 찾아 주신 축복의 칭호인데, 이들을 "구름으로 덮으셨다" 함은 이들이 범죄할 때 공의의 법대로 70년간 심판하신 일을 이름이다. 죄가 무겁기에 심판도 "하늘에서 땅에 던지듯이" 심하게 내려진 사실에 대하여 선지자는 탄식하고 있다. 시온은 하늘의 임금이 직접 관리하며 아껴주셨으나 범죄하여 패역할 때 땅의 짐승에게 70년을 붙이신 것이다. '후 3년 반'이 바로 이런 곳이다. 예수님의 피로 거듭난 기독교가 아무리 성령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으며 2,000년간 사랑을 받아왔더라도 종말의 흑암을 분별 못하여 범죄하면서도 살려주려고 한 제단을 들어 "회개하라! 종말의 법인 계시록과 예언서 앞에 순종하라" 외치게 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으며 예레미야와 같이 홀로 다시 예언하는 '새 일의 제단'을 배척 멸시하므로 애가서대로 유다 민족과 동일한 운명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혼인잔치를 앞둔 "처녀 기독교"가 새 일을 멸시하면 '후 3년 반' 짐승 세계로 던지움 당함을 잊지 말라!


"그 발등상"이란 사랑받던 주님의 성전 곧 시온산 예루살렘을 가리킨다(시편 99:5, 시편 132:7).


『 2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를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처녀 유다의 견고한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방백으로 욕되게 하셨도다 3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오른손을 거두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사름같이 야곱을 사르셨도다 』


선지자는 유다가 당한 전쟁의 참상을 또다시 진술한다. 특히 본 구절의 말씀은 유다 나라가 소유한 모든 "견고한 것들"이 무너지는 화를 당했다는 것을 부각한다. 든든했던 것이 무너진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항상 뜻밖에, 경각간에 나타난다. 선지자는 이렇게 유다 민족에게 임한 환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번번이 증거하고 있다. "야곱의 모든 거처"는 '야곱의 목장들'이란 뜻으로 방위가 없는 유다 지방들을 가리키고, "견고한 성이 헐림"은 나라의 방백이 수욕에 처할 것이란 뜻이고, "모든 뿔을 자르셨다"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의지할 만한 모든 것을 파괴시키셨다는 의미이다.


"오른손을 거두시고" 오른손은 중요하다. 하나님은 권능의 역사를 항상 오른손으로 행하시기 때문이다. 시편 78:54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55 또 열방을 저희 앞에서 쫓아 내시며 줄로 저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 그러나 백성이 그를 떠나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은 오른손을 거두신 것이다.  시편 78:56 "그럴지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57 저희 열조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같이 빗가서 58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61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62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63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64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 고로 이제 살려면 다시금 주의 오른손에 붙들리는 길밖에는 없다. 다음을 깨달으면 주의 오른손에 의지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종말의 생명책인 요한계시록 곧 원수를 심판하며 택자를 구원해 낼 일곱 인 봉해진 책이 성부의 '오른손'에 있으니(계시록 5:1,7), 원수를 쳐부술 손을 여호와의 '오른손'이라 하심과(출애굽기 15:6),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실 때 그 '오른손'에 불 같은 율법이 있음은 일맥상통하는 진리의 말씀이다(신명기 33:2). 말일의 동방역사에 쓰임 받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택한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때 그분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꼭 붙들어 버리지 아니하신다 약속하셨으니 살 자는 성부의 '오른손'으로 달려나가게 된다(이사야 41:10). 다윗도 대적을 피하여 주께로 나아오는 자를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해 달라 기도하였고(시편 17:7, 18:35, 20:6, 44:3, 60:5, 73:23), 주의 '오른손'은 정의가 충만한 손이라 하였다(시 48:10). 주의 '오른손'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신 손이라 하셨으니(시편 77:10~), 출애굽보다 더 큰 역사인 종말의 동방역사는 주의 손에 붙들린 자들의 승리가 틀림없다.


우리는 주 예수께 접 붙은 포도나무 가지들이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찍혀져 나가는 법이다(요한복음 15:1~6). 시편 80: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이키사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권고하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16 그것이 소화되고 작벌을 당하며 주의 면책을 인하여 망하오니 17 주의 우편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의 위에 주의 손을 얹으소서 18 그러하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케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온 세상에 흑암이 덮이고, 교회까지 졸며 잘 때가 된 지금 우리가 살 길은 주의 우편에 있는 자 인자 예수(계시록)께 다시금 달려나가 소생케 되는 것뿐이다.


구약과 똑같이 오늘날의 세계 교회는 현실 바벨론의 물질문명에 도취되어 물질만능주의, 기복적 신앙주의로 치우치고 있는 실정이며, 다시 예언하라는 재림 예수님의 명령(계시록 10:7~11)은 매우 등한히 여기고 있는 형편이다. 예언서에 순종하면(이사야 1:19~20) 새 시대에서 1000년 안식을 얻게 된다는 진리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는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포도나무)이다. 하나님은 구약 때 자세하게 보여주시고 보여준 그대로 종말을 사는 세계 교회에게 "다시 예언하라"는 명령을 우리에게 내리셨는데, 이 명령에 불순종한다면 다시 한 번 아담같이 땅에서 쫓겨나 육체가 썩은 채로 천년간 옥에 있어야 할 줄을 오늘날의 교회성도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예수님의 피를 믿었다고 모든 것이 완전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담이 빼앗긴 세계는 이 지상이지, 천국이 아니다. 이 지상에서 천년을 누리라고 주신 법에 불순종하는 인간은 예수님의 재림 후 이 땅에 천년의 축복이 임하는 동안 어두운 옥에 갇혀 있다가 예수님의 피 공로로 들어가는 무궁세계(천국)에 들어가는 시기인 마지막 부활 때 부활하여 영생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길 수 있는 심판 방법이다(베드로전서 3:18절 이하를 참조하라).


살리는 권능을 가지신 주의 '오른손'이 자기가 심으신 이스라엘 포도원을 훼파하는 진노의 '오른손'이 되게 한 것은 백성의 패역이다.


『 4 원수같이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아름다운 모든 자를 살육하셨음이여 처녀 시온의 장막에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5 주께서 원수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모든 궁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훼파하사 처녀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


하나님은 성도들의 애호자신데, 이렇게 "원수같이 된" 모양으로 나타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인즉 교회 안의 악(패역)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노하시므로 징계하기를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도라도 아직 완전치 못한 인간일 뿐이기에 그가 징계를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이 노하시는가'를 생각하기보다도 '하나님은 무자비한 신'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 원망하기가 쉬운 법이다(이사야 8:20~22).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 안에는 무한한 사랑이 깃들어 있다(히브리서 12:6). 살육과 진노와 훼파로 성도를 향해 몽둥이를 드셨어도 유다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에게 영원한 형벌은 있을 수 없다. 약속한 70년만 지나면 그 후에는 귀국하여 회복된 고토에 다시 살게 해주시는 것이다(예레미야 25:11).


살 자들은 택자들의 피난처인 주의 '오른손'에 귀의할 것이나(예언의 말씀), 멸망케 될 자들은 주님의 '오른손'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오직 자기의 이마와 오른손에 '짐승의 표'를 받기에 바쁠 것이다. 이런 자들은 애가서에 나타난 모든 저주가 실행되는 '후 3년 반'에 떨어져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하게까지 되는 극도의 고통에 처하게 된다(이사야 8:20~22). 이렇게 될 교회들은 지금 모두 궁과 같은 교회, 견고한 처소에서 외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지금은 계시록과 예언서가 없는 예배는 하늘에서 받지 않으신다. 영적 궁, 영적 견고함은 계시록을 받아들이는 교회만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땅의 모든 교회가 1958년 3월 19일 내려온 세계 유일의 계시록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이 형성한 교권에 의지해서 인간의 견고함만을 더해가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끝까지 예언을 깨닫지 못하면 그들이 쌓은 모든 궁과 견고함은 심판의 날 애통의 소리가 울려퍼지는 공간이 될 것이다(새일성가 38장6절)


『 6 성막을 동산의 초막같이 헐어 버리시며 공회 처소를 훼파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 가운데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


"성막을 동산의 초막같이 헐어 버리시며" 성막은 주님의 법궤가 안칙된 공간이다. 거룩한 시설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법궤에 기록된 하나님의 정신에 부합되는 것보다 성막(성전) 자체를 하나님보다 더 중요히 여겨 그것(예루살렘 성전)을 소유하고 있는 한 자신을 해칠 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로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외친 것이다. 예레미야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이처럼 인간이 종교의 본의를 망각하고, 육안의 눈에 보이는 성막(교회)을 우상화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성막일지라도 서슴치 않고 폐기처분하신다. 고로 구약 예루살렘 성전은 "초막같이" 여김 받아 무참히 헐려 버린 것이다. "공회 처소"는 곧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전해주기 위한 시설물을 가리킨다. 성막, 성전, 회당과 같은 것들이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시설물을 잘못 사용하였다. 이 공회 처소가 종교적 외식을 위한 도구로만 쓰였음이 분명한 건, 진리가 선포돼야 할 그 곳이 오히려 참 선지 예레미야를 비방하고 때리고 쫓아낸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증거해 준다.


이 땅의 어떤 피조물이든지 그것이 제 본위를 이탈하여 사용될 때 여호와께서는 그것들을 서슴지 않고 폐지하신다.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은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열왕기하 18:3~4).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심"도 역시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유대 교회가 '안식일'이라는 제도만 의지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맡긴 예언서를 무시하며 선지를 죽인 것은 그들의 허례허식을 잘 드러내준다. "왕과 제사장"은 백성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사람인데, 그들이 옳지 않게 행하므로 그 자격을 상실할 때 하나님께서 그 직분을 폐하심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시드기야 왕의 눈알이 뽑혔다면, 유다 정권, 유다 교권의 행보를 그대로 걷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 방백과 종교 방백 역시 그렇게 될까 두려워하며 정신을 차려야 한다. 살 길은 있다. 예레미야가 되든지, 그를 돕던 바룩이나 에벳멜렉과 같은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다니엘이 되든지, 그 옆의 세 친구가 되는 길만이 살 길이다. 그밖의 세력은 바벨정치, 바벨교회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벨의 자식이 되면 바벨론이 와서 죽여 버린다는 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진리이다.


『 7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장을 원수의 손에 붙이셨으매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서 훤화하기를 절기날과 같이 하였도다 』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인테리어에 투자하여 번들번들한 교회를 만들어 놓아도 그곳은 예배드리는 처소일 뿐 성소는 아니다. 성소냐 아니냐는 진리가 함께 하느냐 아니냐로 판단 받는다. 종말에도 화려한 대형교회의 신자는 하나님께 버림받아 헐릴 가능성이 높다. 종말의 성소는 순금등대 촛대교회로서 예언의 말씀을 꿀같이 먹은 144,000명의 몸 자체가 순금등대 촛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의 손에 붙들려 주와 동행하는 자들이니 자신도 살 뿐 아니라 세계를 살리고 남음이 있게 된다. 살리는 것이 성소이지 헐려 버림받는 것은 성소가 될 수 없다. 계시록과 예언서가 없는 헛된 제단은 원수에 손에 붙여지게 될 뿐이다.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서 훤화하기를 절기 날과 같이 하였도다" 이 말씀 역시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두드러지게 나타내 준다. 유대 민족이 종교적 절기를 오용하였으므로 이제 그것들은 폐지되고, 그 자리에 도리어 이방 군인이 침략하여 절기를 지키는 것처럼 떠든다는 것이다. 지금도 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추수감사절 등 수많은 절기행사가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계시록도 없이 절기행사에만 치중하는 대형교회들은 원수 손에 붙이워질 "제단, 성소, 궁장"이니 북방 군대가 들어오는 날, 말갛게 벗겨지고 말 것이다(요엘 1:6~9).


『 8 여호와께서 처녀 시온의 성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훼파함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과 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저희가 함께 쇠하였도다 』


"줄을 띠고"란 심판의 범위와 한계와 정도를 결정하셨음을 뜻한다. 종말에도 다림줄(아모스 7:7~9, 스가랴 4:10, 열왕기하 21:13) 말씀에 의해 공의대로 심판하실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멸망은 너무도 처참했으므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이 모습이 생시인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측량(다림줄=심판)이었음을 기억시키고 있다. 이러한 구약 예언 속에는 인간종말을 사는 우리를 겨냥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경륜이 담겨 있다. 그런데 현재 교회는 구약 성민이 당한 이 일이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는 줄 알고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가랴 4:1절처럼 선구자를 선택하여 잠을 깨우시고 잠자고 있는 교회에 외치게 하기 위하여(마태복음 25:6) 학개서 2:10~23절에 기록된 성전을 지으시되 정한 날짜 9월 24일에 순금등대 촛대교회의 지대를 놓게 하시어 전 세계에 다시 예언할 준비를 갖추신 것이다(이사야 46:10, 히브리서 10:1~).


"성과 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저희가 함께 쇠하였도다" 성과 곽은 생명이 없는 시설물이다. 그것들이 "통곡"한다 함은 당시에 임한 멸망의 비참함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다.


『 9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꺾여 훼파되고 왕과 방백들이 율법 없는 열방 가운데 있으며 그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10 처녀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꺾여 훼파되고" 역시 성전이 여지없이 함락된 사실을 드러낸다. 구약 성전이 우상 숭배 죄를 범할 때 이 꼴이 되었다면, 인간 종말에 우상국가인 북방 무신론 사상에 대해 싸워 이기지 못하고 협상을 한다면(W.C.C.) 그 단체는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꺽여 훼파될 것"이다. 협상에 앞장선 교파, 교단, 총회가 영영 망해 버린다는 예언이다. 이렇게 되므로 이 땅의 거대한 협상교회가 10절의 말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2. 시온의 비애와 적들의 조소 : 11~16


『 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 12 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여 그 어미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미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뇨 하도다 』


북방 군대의 침략 때에 기근으로 인해 어린 것들의 정신이 혼미해진 상황을 비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비극은 '구약으로서 끝'이 아니다. 바로 이 시대에 재연될 것이다. 이제 '후 3년 반', 대 환난이 오면 짐승정권(계시록 13장)이 정치와 종교를 장악할 것인데, 순금등대 촛대교회가 전하던 계시록과 예언서로 양식을 삼지 못한 자들이 '후 3년 반' 짐승통치에 들어가 위와 같은 모습으로 죽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약의 모든 예언서는 계시록과 일맥상통한다. 바꿔 말하면, 계시록을 알아야 구약 모든 예언서를 읽을 때 뜻이 통한다는 말이다.


성경은 언제나 현재를 말하고 있다. 구약 때의 역사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거울이 되고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고린도전서 10:6,11). 거울을 보고도 제 모습을 파악 못하는 종들을 일컬어 성경에서는 '소경'이라 칭했다(이사야 29:9~, 42:18~22). 이 소경되고 벙어리된 무익한 종들을 하나님은 '개들'이라고 하셨는데(이사야 56:10),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인류종말의 영적 추수기 때에 계시록을 멸시하고 예언서를 알지 못하는 이 '개들'을 다음의 말씀대로 심판당할 것이다.


이사야 18:5~6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 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버려서 산의 독수리들에게와 땅의 들짐승들에게 끼쳐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과하하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과동하리라 하셨음이니라" 여기 독수리와 들짐승들은 바로 '후 3년 반'을 통치할 짐승정권과 열 뿔을 가리킨다.


『 13 처녀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꼬 처녀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꼬 너의 파괴됨이 바다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 』


"내가 무엇으로 비유할꼬"란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이 당한 참상이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특별한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이 비극의 참상을 바라보는 선지자의 눈물은 곧 예수님의 눈물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유대인을 이렇게도 비참하게 벌하셨을까?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통하여 당신의 살아 계심을 만방에 보여주시고자 하기 때문이다. 선민의 존재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으니, 그 일을 잘못할 때는 공의의 벌을 받는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에게 1차적으로 공의의 징계를 내리 심으로, 종말에 이 일을 다시 읽고 전하여 만방에 주의 영광을 드높여야 할 영적 유다와 영적 이스라엘 전 지파가 확실한 교훈을 갖게 하셨다. 이제 '한 제단'을 통하여 공의의 교훈이 선포되고 있으니 행한 대로 상급과 보응을 얻게 될 것이다(누가복음 12:47~48). 교훈을 멸시하는 자는 "너의 파괴됨이 바다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 하신 대로 '후 3년 반'으로 떨어져 파멸을 당케 될 것이다.


『 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


유다민족이 이와 같은 큰 환난을 당한 이유는 유다에 기생하는 거짓 선지자들 때문이다. 이들은 예레미야와 같이 높은 곳에 서서 멀리 보는 파수꾼의 자리에 서지 않았으며, 민족의 죄악을 지적해서 고쳐주는 의사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 민족에게 비극이 온 것이다. 이 거짓 선지자들은 오히려 참 선지자 예레미야와 우리야를 계속적으로 핍박하였다. 거짓 선지자는 언제 어디서든지 "평강하다 평강하다""거짓 경고와 미혹"만을 외쳤는데(예레미야 8:11), 이는 100%짜리 거짓말로서 귀신의 말이다.


지금의 세계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평화공존', '세계 복음화', '종교 간의 대화와 타협'이라는 간판 아래서 듣기 좋은 말만 외쳐대고 있지 않는가? "끝까지 전쟁이 있다"(다니엘 9:26)고 외치는 스룹바벨 한 제단이 있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에 정치와 종교가 앞장서자"라고 외치는 다수의 제단이 있다.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 북방이 온다고 밤낮 외치다 구덩이에 갇히고 옥에 갇히고 매를 맞던 예레미야 한 명과 그를 때리고 "평강, 평강"을 외치던 다수의 무리 중 어느 쪽이 옳았는가? 2,600년 전과 지금의 종교상태는 완전히 일치한다. 일치하지 않는다면 다시 예언할 수 없게 되니 (외롭고 고되지만) 옛 선지와 일치된 길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뿐이다(이사야 46:10).


예수님이 재림 하시기 전 이 땅에서 평화를 이뤄보자는 것은 사단의 속임수이다. 옛날 에덴동산을 추억해 보자! 뱀이 하와에게 무어라 말했던가? 선악과만 먹으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지 않았는가? 그 말을 들은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류는 슬픔과 질병과 저주와 사망과 전쟁 속에서 오늘날까지 허덕이며 신음하고 있다. 이 저주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해주시려고 예레미야를 보내시고 그 책을 우리 손에까지 전달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 끝까지 불순종하므로 대적할 것인가? 아니면 무릎 꿇어 순종할 것인가? 알파를 보고 오메가를 깨닫는 자들은 복을 받게 된다.


『 15 무릇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하며 처녀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소하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천하의 희락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16 너의 모든 원수는 너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비소하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저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


본 절에서는 선민의 패망한 참상을 또다시 묘사하고 있다.


① 행인들도 유다의 참상을 보고 비웃으며

② 유다를 멸망시킨 원수들은 기뻐하며 더욱 힘을 내어 유다 민족을 힘껏 파멸시킨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바로 이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이 말은 바벨론 원수가 유다를 짓밟고 포악한 행위를 더하면서 하는 말이다. "우리가 얻었다"는 것은 히브리말로 "만났다, 발견했다"는 뜻이다. 예루살렘의 딸이 적으로부터 "이것이 '아름다움의 완성'이요 '온 세상의 기쁨'이라고 사람들이 부르던 성읍이냐?" 하는 비소를 들으며 심하게 훼파되는 모습은 계시록 17장에 기독교의 탈을 쓰고, 평화와 협상을 추구하며 양떼의 생명보다는 돈과 세상 영예만을 추구하던 음녀가 16절에 가서 짐승에게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멸망하는 모습에 비길 수 있다. 우리는 계시록과 예레미야서를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해야 산다.


3.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알고 기도함 : 17~22


『 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원수로 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며 너의 대적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


본 절은 유다가 당한 처참한 일들이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예언하신 대로 성취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레 26:16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의 파종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17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신 28:49~57절도 참조하라. 유다의 참상이 옛날에 명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예레미야 입을 통해 다시 예언서에 기록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언성취 사건을 보고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 18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19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누구나 고난을 받을 때에는 기도해야 한다(야고보서 5:13). 그들이 해야 할 기도의 모습은...


① 눈물로써 기도해야 한다. "눈물을 강처럼 흘려야 될 것"은 그들의 회개가 뜨거워야 하겠기 때문이다.

② 깨어 기도해야 한다. "밤 초경"이라는 말은 밤을 다섯으로 나눈 부분 중 첫째 시간을 의미한다(저녁 7~9시 - 갑야(甲夜)라고 함).

"마음을... 물쏟듯 할지어다" 마음을 쏟아 기도해야 한다(삼상 1:10~16). 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예레미야 29:13).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은 지도자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로 내어 바쳐 전적으로 의지하는 표시이다.


『 20 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 아이를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살육을 당하오리이까 21 노유는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소년들이 칼에 죽었나이다 주께서 진노하신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살육하셨나이다 22 주께서 내 두려운 일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에 무리를 부름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었나이다 내 손에 받들어 기르는 자를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 』


유다가 당한 참상을 다시 진술한다. 비극적 내용을 살펴보면...


1. 여인들이 그 어린 자식을 먹는 일(열왕기하 6:28~29).

2.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성소에서 살육을 당한 일.

3. 남녀 노소와 연령의 차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일.

4. 두려운 일들 곧 생명을 위협하는 일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피할 수 없게 된 일.

5. 젖 먹는 아기들도 죽임을 당한 일.


이와 같은 참변들은 그 배후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악독한 죄악을 연상시킨다. 모든 성경은 선민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니, 특히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 강한 경고장이 된다.


원죄의 악질이 뼛골 속에 박혀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해서 할 수가 없는 줄을 잘 아시고 예수님께서 피로 사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고쳐서 변화체를 만드시겠다는 것이 큰 구원이요, 동방역사요, 초막절기요, 새 일의 역사다(이사야 42:9~, 43:1~5, 57:18~. 예레미야 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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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617b_예레미야51장

[주일 오후 설교예레미야 51장 :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과 동방역사 2018/06/17 Lord's day(Sunday) Afternoon

2016년 11월 27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51장

제목 :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과 동방역사


1. 바벨론의 멸망 : 1~10


『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멸망시키는 자의 마음을 일으켜 바벨론을 치고 또 나를 대적하는 자 중에 처하는 자를 치되 2 내가 타국인을 바벨론에 보내어 키질하여 그 땅을 비게 하리니 재앙의 날에 그를 에워 치리로다 』


"내가 멸망시키는 자의 마음을 일으켜" 구약의 역사는 종말의 거울임을 알고  역사적 사실을 상고해보아야 한다. 육적 바벨론은 육적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해 (약속한 70년이 찰 때) 하나님의 뜻대로 멸망 당하였다. 다니엘 5장을 보면 벨사살 왕이 극도로 교만하여 하나님의 성소 기명으로 술을 마시다가 분벽의 글자가 나타났을 때 낯빛이 변하고 사지를 벌벌 떨며 어찌할 줄 모르는 꼴이 된 일이 있다. 이 때 다시 태후의 소개로 하나님의 사명자 다니엘이 유유히 나타나 이 글자를 읽고 해석하였는데 그 글자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었다. 뜻을 풀이하면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바벨론의 시대(예레미야 25:11절의 70년)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바르신'의 단수형으로 바벨론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된다는 뜻이다('우바르신'의 '우'는 '그리고'라는 접속사일 뿐이다). 해석을 마친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은 죽임을 당하였고, 은과 같은 메대-바사가 중동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다니엘 2장을 보면 신상의 금머리부터 놋 같은 헬라까지가 구약시대의 우상 강대국들이며, 허리 아래는 신약시대의 강대국으로서 철로 된 다리(로마)와 철과 진흙(소련, 미국)으로 이루어진 발가락이 있었다. 정상인의 머리 길이와 발바닥 길이는 대개 일치하는데, 이는 바벨론을 상징하는 머리가 70년 만에 멸망함같이 발가락 시대의 바벨론도 70년만에 멸망할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구약 바벨론으로부터 70년 만에 해방을 받았던 유다가 존재했듯이, 발가락 시대에도 종말의 바벨론으로부터 '70년 회복'을 얻을 종말의 유다가 필요하다. 구약을 보면 유다의 위치는 해 돋는 동방(민수기 2:3)이라 하였는데, 이는 종말에 등장할 영적 유다까지 내다 보고 섭리하신 그림자 역사(실천적 예언)임을 깨달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왜 영적 유다가 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부록'을 참조하라.


지구는 둥글기에 위치적으로 딱히 중앙이라 할 기준이 없다. 그럼에도 성경에서는 "중앙"을 말한다. 이는 당연히 영적, 사상적 중심부라는 뜻일 것이다. 고로 세계의 중앙은 당연히 지구의 역사를 굴리고 있는 말씀이 밝아진 여호와의 제단일 수밖에 없다(이사야 19:19). 구약 때 에덴도 그 위치가 '동방'이라 하였는데(창세기 2:8) 파괴됨으로 인하여 아브라함을 택하여 건축부지를 이전시킨 것이 바로 모리아산이었다. 이 산에 다윗이 나라를 건설하고 다윗성, 시온산성이라 하였는데, 바로 이 산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부활 승천하셨다. 시온산=감람산=모리아산은 다 같은 장소를 뜻하므로 계시록 14:1, 스가랴 14:4절로 볼 때 예수님은 다시 이 산으로 재림하셔서 일곱째 머리인 큰 바벨론을 파하시되 계시록 16장~19장까지의 아마겟돈 역사로 심판하시고 이 세상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정부로 만드신다. 육적이건, 영적이건 바벨론은 70년 만에 멸망하고 동방의 유다가 승리한다는 것이 변할 수 없는 성경의 작정이다. 이사야 41:2절의 '동방 사람'이란 구약 때는 고레스를 가리키고, 종말에는 철장권세 받은 144000 명의 무리를 가리킨다.


2절의 "타국인"은 동방 메대-바사 연합군의 수장(首長) 고레스이다.


『 3 활을 당기는 자를 향하며 갑주를 갖추고 선 자를 향하여 쏘는 자는 그 활을 당길 것이라 그 청년들을 아끼지 말며 그 군대를 진멸하라 4 무리가 갈대아 인의 땅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질 것이요 그 거리에서 찔림을 당한 자가 엎드러지리라 하시도다 』


"활을 당기는 자" 구약 때와 같이 종말에도 계시록 6:1~2절의 '흰 말 탄 자'가 그 손에 활을 가졌고 이기고(천국복음-마태복음 24:14) 또 이기려고(영원한 복음-계시록 14:6)하더라 함은 예수님께 철장권세 받은 '다른 천사'의 사명자 144000 명에게 영원한 복음의 활을 들려 북방 바벨론 정권을 70년 만에 무너뜨리는 역사를 뜻한다. 세계의 '우는 자들'이여! 바벨론이 이미 무너졌음을 대한민국 땅에 임한 풍년징조를 통하여 깨달으라! 그리 하여야 북방이 치고 내려오는 환난 날, 담대하게 주의 사명을 다하게 된다(다니엘 5:24~31절 예언같이 한국 땅에서 70년 만에 유다의 회복이 성취되었다). "활"에 대하여는 신학자들이 분분한 의견을 제시하여 기독교 종말관에 큰 혼선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 현실인 만큼(흰 말 탄 자를 마귀라고 해석하는 무지의 소치가 판을 치고 있다) 다음을 통하여 '활'과 '살'은 말씀권세임이 분명한 것을 깨닫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굵은 글씨는 활과 살이 모두 말씀의 철장권세를 뜻함을 알려준다.


• 하박국 3:9 "주(재림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살을 바로 발하셨나이다"


• 예레미야 50:29 "활 쏘는 자를 바벨론에 소집하라 무릇 활을 당기는 자여 그 사면으로 진을 치고 쳐서 피하는 자가 없게 하라 그 일한대로 갚고 그 행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니라"


• 시편 45:5 "왕의 살이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 스가랴 9:13 "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14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


• 요한1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 계시록 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 계시록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다니엘 9:1~3절을 보면, 다니엘이 연수를 깨닫고(예레미야 25:11, 29:10) 금식기도로써 하나님 앞에 유다의 회복을 간절히 청할 때, 하나님은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유다 해방령'을 내리게 하셨다. 이 때 스룹바벨이라는 총독이 유다민족의 '남은 자'를 데리고 귀국하여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였는데(육적성전), 인간 종말에도 이 도면대로 실물화 작업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영적 유다를 크게 쓰시려고 한국 민족 중 가장 못난 자를 선택하시어 다니엘과 같이 연수를 깨닫게 하시고는 강한 기도를 시키셨다. 스가랴 1:12절의 말씀은 구약 유다가 회복된 지 16년이 지난 시점에서 받은 묵시이므로 "유다(=한국)를 노하신 지 70년(1905~1975)이 되었나이다" 하신 말씀은 자동적으로 종말의 유다로 넘어오게 된다. 스가랴 선지자는 자민족 유다가 아닌, 또 다른 유다민족이 회복되는 모습을 묵시로 보았던 것이다.


이 일을 깨달을 때 학개, 스가랴서의 모든 예언이 불덩이같이 타오르게 되었고, 스가랴 1:16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신 말씀도 종말의 신령한 예루살렘을 뜻함이요, 먹줄 역시 육적인 먹줄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스룹바벨과 관련된 학개, 스가랴의 모든 예언이 기독교가 무너져갈 때 그 근본부터 뜯어고쳐 다시 일으키는 신령한 영적 성전 재건역사임을 알고, 이 일에 절대 기준이 되는 것이 스가랴 4:10절의 '다림줄'임을 깨달았다. 고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내 집에 돌아오셨다 한 1975년을 새로운 진리가 발포되는 기준점으로 잡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70년' 만에 영적 유다 장막에 돌아오시므로 흔들림없는 절대 기준인 '먹줄'을 쳐주신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비로소 계시록 7:1~8절과 같이 동방의 가련한 하나님의 종들이 세계 강국들을 향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는 강권명령을 내릴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고로 동방 한국에서부터 일어나는 초막절, 영원한 복음의 역사가 전 세계에 다 고해질 때까지는 (위기만 있을 뿐) 결코 유브라데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 성경을 보면 분명 '다른 천사'가 땅을 해롭게 할 '네 천사'를 향하여 명령을 하고 있다. 명령하는 자가 받는 자보다 높은 것이 당연하다면, 유브라데 전쟁은 144,000 명이 다 인(印)을 맞은 후에야 시작될 것이다. 인(印)은 절대자의 주권을 상징하는 도장인데, 먹줄이요, 다림줄이다. 이 진리로 똘똘 뭉쳐진 종의 입술권세가 바로 '머릿돌'이다(스가랴 4:7). 머릿돌이 나가면 골리앗이 쓰러진다.


역사는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 속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그분이 작정하고 보낸 자라면 어떤 강적(强敵)도 그와 더불어 맞설 수 없다. 구약 때 메대-바사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징벌하시기 위하여 택하신 채찍이니만큼 아무리 강하던 바벨론일지라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이 종말에도 하나님이 택하신 동방 독수리(한국)를 북방 바벨론(러시아와 열 뿔)이 당해낼 수 없는 것이다. 당할 수 없다는 것을 법적으로 못박아 놓으신 것이 바로 스가랴 1:12절의 '70년 회복'인 것이다(1975년). 이를 깨달은 종들이 세계로부터 모여들어 신령한 한 단체를 이루어 증거를 마치고 적그리스도의 손에 의해 순교하고, 3일 반 후 생기 받아 살아나면 완전 변화체가 되어 '42달' 뒤에 적그리스도가 장악한 세계를 심판하기 위하여 주와 함께 내려와 아마겟돈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이사야 13:17~23, 14:4~11, 47:1~7, 48:14~15).


구약 때 70년 회복이 진행되는 순서는 이러했다! 먼저 예레미야서에 70년이 기록됐고, 다니엘이 읽음으로써 깨달아 민족을 위해 기도했고, 그 다음 말씀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종말도 동일하지 않겠는가? 먼저 구약 70년 회복이 있은 지 16년 후에 스가랴 선지에게 구약 70년 회복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종말의 70년 회복을 기록케 하시고(스가랴 1:12), 종말에 먼 나라(스가랴 6:15) 곧 동방 땅 끝 대한민국에서 다니엘과 같은 사명자가 이 말씀을 읽음으로써 깨달아 이 민족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게 되고, 그 다음에는 깨달은 말씀대로 동방 순의 종들 앞에서 온 세계를 취케 하던 미친 바벨론이 멸망케 되는 것이다.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주실 것을 간구하면 하나님은 들으신다(에스겔 36:37).


『 5 대저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하나 그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에게 버림을 입지 아니하였나니 6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끊침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


구약 유다 민족은 표면적인 사명 국가이다. 70년간 북방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으므로 그들과 함께 멸망하도록 그곳에 버려둘 수 없었다. 그래서 바벨론에서 도망하여 나오라 하셨는데, 나온 후 향하여 갈 곳은 바로 구원 역사의 태동지인 모리아산이었다. 이와 같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간 종말에 영적 유다의 사명을 하도록 택함 받은 국가인 한국도 1905년 을사보호 조약으로부터 70년이 되던 해인 1975년도가 되기 1년 전, 곧 1974년도에 학개, 스가랴를 깨달아 그곳에 기록된 예언대로 9.24 제단을 세우게 하셨다.


스가랴 2:6~7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하늘의 사방 바람같이 흩어지게 하였거니와 이제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망할지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 성에 거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10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스가랴 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말씀하신 원리대로 회복받는 것이 육체구원의 초막절 역사인데,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신 말씀은 이러한 구약의 예언서의 말씀이 짝을 찾아 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일에는 정한 때가 있기에(마태복음 24:45) 때가 되면 사명자로 깨닫게 하시고 기도의 향을 쌓게 하사 여호와께서 속히 이루시게 된다(이사야 60:22). 하나님의 예언이 인간의 눈에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공상과학 소설의 이야기같을 지라도 진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박국 2: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 7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


계시록 17장을 보면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주시는데,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하셨다.


20세기가 될 때 등장한 <공산주의 세력>은 바로 <북방 앗수르>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나오게 된 정치괴물 일곱째 짐승(바벨론)이다. 그러나 일곱째 머리 소련만을 바벨론이라고 보면 안 된다. 왜냐하면 구약 역사에는 앗수르 환난과 바벨론 환난이 있었는데, 앗수르 환난 때에는 예루살렘이 소화되고 멸망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등장한 공산주의의 세계침투로써 교회가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저기서 등장하는 마지막 '작은 뿔'과 '거짓 선지자'의 세계교회 미혹으로써 기독교는 끝을 보게 되는 것이다. 구약 택민이 앗수르 환란을 당한 이후 회개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계속적으로 패역할 때 마지막으로 내려온 북방세력이 바로 '바벨론'이었다.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일곱째 머리 소련이 세계 땅 1/3 안의 교회를 훼파하긴 하였지만, 자본주의권 안의 교회까지 다 멸망시키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현실의 교회가 쓴 맛을 한 번 보고도 계속하여 패역할 때 7째 머리에서 나온 8째 왕에 의하여 거대하고 종말적인 최후 바벨론이 형성되어 세계 교회는 끝장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7째 짐승이건, 8째 왕이건 하나님을 대적하기는 마찬가지이나 먼저 7째 짐승과 더불어 주거니 받거니 하던 기독교세력이 소위 세계교회협의회(W.C.C,)라는 <음녀의 전신단체>임을 고발한다. 일곱째 머리에 빌붙은 종교 바벨의 사명을 띤 이 무리들이 로마가톨릭 및 가증스런 모든 종교세력들과 한 데로 뭉쳐야 비로소 진정한 거대 음녀(바벨교회)와 그 단체의 머리요 "또 다른 짐승""거짓 선지자"가 나타날 것이다(계시록 13:11~, 16:13, 19:20, 20:10). 이 음녀의 멸망은 계시록 17: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하신 말씀대로 성취될 것이니, W.C.C. 및 로마가톨릭에서 도망쳐 나오지 않으면 재림의 주님을 영접할 수 없다.


7째 머리가 들고 나온 공산주의 강령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뱀의 소리 무신론).

둘째, 종교(기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적기독 뱀의 사상).

셋째, 인간은 무덤이 종점이다(영계를 부정하는 유물사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옛 뱀, 마귀, 사단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붉은 용의 사상에 오염된 사단의 자식들과 세계교회가 함께 모여 춤을 추니 마치 하와가 간교한 뱀의 말에 미혹 받는 것과 같음이요, 모세가 돌판을 받으러 40일 올라간 사이 출애굽기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한 일과 동일한 현상이다. 알파의 미혹이나 오메가의 미혹이나 성경으로 쪼개보면 다 마귀 소리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세계교회협의회나 가톨릭과 같은 거대한 기독교 조직체들은 가증한 에큐메니칼 운동을 추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신들 가운데 하나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유일한 구원의 문인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도 인류가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여 세계 거민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모압 왕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여 이스라엘 무리를 멸망시키려 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도 사상적으로 모압의 손자벌인 북방 소련이 W.C.C. 내에 공산당원들을 대거 잠입시켜 활동케 하므로 오늘날과 같은 변질된 기독교 괴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어느덧 개포도가 포도원에 가득하게 되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현실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최후까지 사랑의 경고를 주고 계신다. 아직 살 기회는 있다는 뜻이다.


이사야 52:11~12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


하지만 '후 3년 반'을 통치할 궤휼자가 '3뿔'을 뽑고 내려오는 그날이 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게 된다. 그러니 살 수 있는 많이 남지 않은 이 때, 시간을 아껴 말씀무장과 전도활동에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 8 바벨론이 졸지에 넘어져 파멸되니 이로 인하여 울라 그 창상을 인하여 유향을 구하라 혹 나으리로다 9 우리가 바벨론을 치료하려 하여도 낫지 아니한즉 버리고 각기 고토로 돌아가자 그 화가 하늘에 미쳤고 궁창에 달하였음이로다 』


"바벨론이 졸지에 넘어져 파멸되니" 이는 인간 중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는 것이다. 금머리 바벨론이 70년 만에 무너진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한 자에게는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사야 29:1~5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의 진 친 성읍이여 년부년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필경 너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군대로 너를 에우며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불려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경각간에 갑자기 이룰 것이라" 예루살렘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는 예언대로 진행되었다. 아리엘(예루살렘의 애칭)이 슬프게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괴로움을 받는 것은 그 원수를 통해 구원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모략적인 역사이다. 그러나 70년이 차면 5절과 같이 아리엘(예루살렘)의 대적은 세미한 티끌같이 흩어지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불려가는 겨같이 날아갈 것을 약속하셨다. 70년이란 하늘에서 나리는 얼마나 위대하고 귀한 역사인가? 이 일이 인간의 예상과 생각을 뛰어넘어 경각간에 갑자기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울라 그 창상을 인하여 유향을 구하라 혹 나으리로다" 이는 일종의 풍자요 반어법의 표현으로 파멸되기로 작정된 바벨론이 혹시라도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오늘날 붉은 짐승을 탄 음녀는 제 손에 들려 있는 금잔(경제권)이 최고인 줄 알았겠지만, 북방 환난이 올 때는 아무리 짐승과 같은 색인 자주빛, 붉은색 옷을 입었다 할지라도 파멸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짐승이 멸망 당하는 것이야, 말씀대로 마땅한 일이지만, 교회가 변질되어 짐승을 따라간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 아닌가?


"무신론 유물사관이냐? 유일신 여호와 사상이냐?" 이념과 사상이 문제이다. 이 시대의 정권, 교권은 어디로 가는가... 멸공인가? 협상인가?


멸공만이 진리이다


『 10 여호와께서 우리 의를 드러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 』


본절은 70년이 되므로 북방 바벨론이 멸망을 당할 때 유다 사명을 가진 민족(한국)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말이다. 말라기 때 성전문을 닫은 지 430년 만에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찾아오시어 당신 사랑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로마제국의 십자가에 자기 몸을 친히 내어주어 승리하시므로(골로세서 2:15) 옛 언약 유월절 제사를 이면적으로 완전 성취하셨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영혼을 살리신 것이 렘 31:31절 "새 언약" 약속대로였다면, 이제 종말에 하나님께서 잠시 노하사 예루살렘을 일본에게 내어주고(일본은 1905년에 을사보호조약을 들고 용역국가로 등장) 공산당에게 붙이셨다가 70년 만에 다시 그 땅에 돌아오사 먹줄을 치심으로(진리의 말씀 주심) 일곱째 머리 북방 러시아가 1975년도에 망하게 되었다는 영적 비밀을 깨닫게 하셨다. 고로 7째에 속한 8째 왕은 이미 죽은 목숨이 되어 있는 것이다. 곧 세계 교회와 정치 세계에 쑥물을 먹이므로 양 떼들을 사망과 음부의 골짜기로 끌고가려던 오메가의 미혹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짐승(8째 왕)과 이에 연합된 거짓 선지자는 끝날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며 성도들을 괴롭게 하여(다니엘 7:25) 자기 힘으로 신을 삼고(하박국 1:11) 세력의 신을 공경할 것이나(다니엘 11:38) 하나님은 진실하사 예레미야 31장의 남은 역사인 "새 일"(예레미야 31:15~22)을 창조하여 라헬의 최후의 소망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예레미야 31:1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7 너의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세계교회가 아무리 범죄하여도 이는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연고인 줄 알고 참소권을 가진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살려내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크나큰 긍휼을 베풀어 예수 믿고 거듭났으나 "아담처럼 마귀에게 속아 거의 죽게 된 기독교"를 살릴 새로운 일을 예비하신 것이다. 새로운 일!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새 일>이다(새일은 성경에 5회나 기록된 명백한 합법적 역사이다 - 이사야 42:9, 43:18~, 48:6. 예레미야 31:22. 민수기 16:30). 새 언약으로 거듭난 자식들이 범죄할 때 어떻게 고쳐서 살려줄 것인지를 하나님은 2,600년 전 예레미야서에 기록케 하셨으니, 마귀가 이 일을 다시 예언하려는 종들을 방해하지 않을 리 없다. 20세기의 마귀 떼들은 이 일만은 성사되지 못하도록 총동원되어 발악하는 것이다. 가슴 아픈 것은 거듭난 자들의 입에서 "새 일이 성경에 어디 있느냐?", "새 일은 이단이다" , "천국복음 영접하여 천국티켓 따 놓았으면 됐지, 무슨 또 영원한 복음인가?" 하는 패역한 망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패역한 이 세대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해 놓으셨다.


예레미야 31:21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 들로 돌아오라 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여자가 남자를 안는다는 것을 난해구절로 여기고 아무도 해석 못하고 있는 것은 현실 기독교가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없을 만큼 많이 타락하여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본절은 남자를 안을 그 "여자" 교회에게만이 양식이 될 말씀이다. 22절의 "여자"란 21절의 "패역한 처녀 이스라엘"과는 아주 다르다. 22절의 "여자"는 21절의 여자를 살릴 여자이기 때문이다. 말세에 바벨론을 치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해방시킬 사명 맡은 이 "여자"는 촛대 교회로서 계시록 12:1절에 "해를 입은 한 여자"로 등장한다.


이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는 것은 그 누구도 제대로 된 해석을 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때가 찼으므로 본 제단에서 그 뜻을 밝힌다. 여기 "남자"는 원어로 '가베르'인데, 일반적인 의미의 남자뿐만 아니라 '군인(=용사)'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또한 "안으리라"의 원어는 '테소베브'로서 포위하여 잡는다는 뜻이 있다. 킹 제임스 번역을 참조하면 '안으리라'는 'compass' 곧 '빙 둘러 획득하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고로 이는 '해를 입은 한 여자'에게서 햇빛과 같은 진리의 말씀이 나갈 때 진리를 사모하는 세계적인 신앙용사들(144,000명)이 그 진리에 사로 잡혀 여자를 중심으로 하는 큰 군대를 이룰 것을 뜻한 것이다. 이는 이사야 19:19절과 짝이 되는 말씀으로서 애굽 땅 중앙에 '여호와를 위하여 한 제단'이 서며, 그 변경에는 '기둥'이 있으리라는 말씀과 같다. 이 일을 '새 일 창조'라 하신 것이니, 이 새 일을 통하여 용의 세력 곧 바벨정치와 바벨교권을 완전히 섬멸하고 아름다운 새 시대를 건설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 일이 아니고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바벨론에서 나와 젖과 꿀이 흐르는 천년왕국(고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잠언 9:1 "지혜(예수님)가 그 집(애굽 땅 중앙제단)을 짓고 일곱 기둥(144,000)을 다듬고 2 짐승(적기독세력)을 잡으며 포도주(예언의 말씀)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이사야 25:6) 3 그 여종(해를 입은 한 여자)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파수꾼의 사명 / 이사야 40:9~11=마태복음 25:6=새일성가37:1절) 4 무릇 어리석은 자(패역한 딸)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5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6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본 제단은 주님의 작정된 이 일을 이루어드리기 위하여 오늘도 예언의 등불을 높이 들 주님의 신부될 자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세계 각국에 숨어 있는 마지막 종들이여! 본 제단이 외치는 다시 예언의 음성을 기도로써 분별하여 마지막 남은 주의 역사(초막절)를 성취함에 있어, 바벨론을 무너뜨린 메대-바사의 동방 군대처럼 거룩한 용사로 쓰임받는 축복을 받길 원한다!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춘 이 잔치에 참여하여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자. 아멘!


2. 메대, 바사 왕이 바벨론을 공격 : 11~26


『 11 화살을 갈며 방패를 굳게 잡으라 여호와께서 메대 왕들의 마음을 격발하사 바벨론을 멸하기로 뜻하시나니 이는 여호와의 보수하시는 것 곧 그 성전의 보수하시는 것이라 』


육적인 구약 전쟁은 무력 전쟁이니 바사 왕이 활, 창, 방패와 같은 무기로 바벨론을 공격하여 승리하였다(다니엘 5:25~31). 그러나 종말에는 신령한 영적 전쟁이니 무기가 아니고 말씀 권세로써 싸우게 된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계시록 6:1~2절의 '백마 탄 자'가 활을 가지고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함은 종말의 역사가 말씀의 활(철장권세)로 행해질 것을 뜻한다. 유월절 절기에 예수님이 1차로 승리하시고, 만민에게 오순절 성령이 내려오시므로 전 세계적으로 복음농사가 이루어졌다. 이제 추수역사인 초막절에 오래 저장된 포도주를 고루고루 혼합하여(짝맞추어) 예언의 식탁을 차려 놓은 중앙 제단에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이사야 41:15)로서의 사명을 완수하므로 하나님의 3대절기는 마무리된다. 여기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란 무엇인가? 핵을 가졌으나 사상이 짐승인 인간 쭉정이를 날려버릴 신령한 무기이다.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날이 바짝 선 말씀의 칼 권세이다. 계시록 19:11~21절에도 예수님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와 원수를 진멸하심을 볼 수 있다. 흰 무리를 모으기 위해 입에서 불이 나갈 때는 5개월 환난 때이고, 쭉정이를 태워버리기 위해 불이 나갈 때는 아마겟돈 전쟁 때이다.


이사야 13:17~18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내가 격동시켜 그들을 치게 하리니 18 메대 사람이 활로 청년을 쏘아 죽이며 태의 열매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이를 가석히 보지 아니하리라" 은과 금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은 종말의 144000명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구약 메대인은 돈을 좋아했다.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계 역사를 주장하시기 위하여 이방 왕들의 마음까지도 격동시켜 움직이심을 볼 때 천지만물과 모든 생명체의 근원되시며 인도자되시는 유일하신 분임을 알 수 있다.


"성전의 보수하시는 것"이란 바벨론이 70년간 여호와의 성전을 파괴시킨 죄악에 대하여 벌하시겠다는 말씀이다(예레미야 50:28 참조).


『 12 바벨론 성벽을 향하여 기를 세우고 튼튼히 지키며 파숫군을 세우며 복병을 베풀어 방비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 거민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경영하시고 행하심이로다 』


"바벨론 성벽을 향하여 기를 세우고" 이 기(旗)는 총공격의 신호를 알리는 깃발이다. 포위망을 강화하고 복병을 매복시키고 보초를 세워 방비할 것을 명하심은 메대-바사군을 통해 바벨론에 대한 당신의 경영을 빈틈없이 이루시겠다는 의지이다. 바벨론이 이 총공격을 아무리 방어한들 별 수 없이 패망할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의 경영과 작정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보면 인류 역사가 여호와의 장 중에서 지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사야 14:24~27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25 내가 앗수르 사람을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발 아래 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 13 많은 물가에 거하여 재물이 많은 자여 네 탐람의 한정, 네 결국이 이르렀도다 』


본 절에서 우리는 3가지를 배운다.


① 바벨론은 유브라데 강물을 이용하여 많은 돈을 모았다.

② 그 많은 재물을 가지고도 나눌 줄 모르고 끝없이 소유하려 했던 탐람이 그 멸망을 자초하였다.

③ 돈이 많고 두려울 자가 없던 맹방이라도 하나님의 경영연대 70년이 차면 힘없는 여인같이 주저앉고 만다.


『 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로 맹세하시되 내가 진실로 사람을 황충같이 네게 가득히 하리니 그들이 너를 향하여 소리를 높이리라 하시도다 』


메대-바사의 군대가 황충떼 같다는 뜻이며 바벨론을 이기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리라는 의미이다.


『 15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16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17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만든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18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시는 때에 멸망할 것이나 』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바벨론의 우상을 대조해 보라. 하나님은 전능하신 참 신인 반면에(15~16), 우상은 다 거짓되고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17~18). 오늘날 세계인구는 60억이며 그들이 가진 종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배하는 유다와 야곱의 남은 자만이 구원(영,육)을 얻고, 우상을 섬기는 강대국가는 바벨론과 같이 패망하고야 말 것이다.


다니엘 2:44~45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 19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


이스라엘만이 하나님 산업의 지파이며(왕상 8:53, 사 63:17),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분깃이다(시편 16:5. 예레미야 10:16). 주 예수를 믿는 참 이스라엘만이 새 땅을 줄 재어 분배해 줄 때, 기업의 소유자가 된다는 예언이다.


• 이사야 19:25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 임이니라"

• 시편 16: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


『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의 철퇴 곧 병기라 내가 너로 열방을 파하며 너로 국가들을 멸하며 21 내가 너로 말과 그 탄 자를 부수며 너로 병거와 그 탄 자를 부수며 22 너로 남자와 여자를 부수며 너로 노년과 유년을 부수며 너로 청년과 처녀를 부수며 23 너로 목자와 그 양 떼를 부수며 너로 농부와 그 멍엣소를 부수며 너로 방백들과 두령들을 부수리로다 24 그들이 너희 목전에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 내가 바벨론과 갈대아 모든 거민에게 갚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신학자 중에 어떤 이는 이 부분을 바벨론을 들어서 타국을 치는 것으로 해석하는데 본문은 그런 뜻이 아니다. 메대-바사를 들어서 바벨론을 쳤듯이, 종말에 철장권세 종들(야곱 12지파 중 인 맞은 자)을 들어서 7째 머리의 사상과 8째 왕의 궤휼을 때려 부수겠다는 것이다. 본문에 파하고, 멸하고, 부순다는 말이 총 10번이나 나오는 것을 볼 때, 말씀으로 바벨을 때려 부수는 종말의 역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 스가랴 4:7절의 내용과 같다. 이 역사는 풀무불 앞에서도 신앙절개를 변치 않았던 다니엘 세 친구와 같은 순교사상으로 무장된 인격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일본의 천조대신 앞에서 굴복하지 않았던 주기철 목사님의 사상도, 3•1절의 정신도 모두가 거듭난 기독교인들의 변치 않는 신앙절개에서 나온 사상이었다. 이러한 대한민국 기독교인의 민족성을 마지막 동방역사의 날에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쓰시겠다는 것이니 감사할 뿐이로다! 형님 '셈'이 잘해야 동생 '함'과 '야벳'이 축복을 받는다.



『 2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온 세계를 멸한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대적이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 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 26 사람이 네게서 집 모퉁이 돌이나 기초돌을 취하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영영히 황무지가 될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바벨론을 "멸망의 산"이라고 예언하셨다.


계시록 8: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1917년 10월 17일 레닌, 스탈린이 혁명을 일으켜 지구 땅 삼분의 일을 불탄 산, 멸망의 산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 멸망의 산 안에서는 참된 종교가 살아 숨쉴 수 없다. 하나님의 땅을 마귀의 땅으로 만들어 버린 이 바벨론을 하나님은 멸망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구약 애굽은 앗수르에게 멸망했고, 앗수르는 바벨론에게, 바벨론은 메대-바사에게, 메대-바사는 헬라에게, 헬라는 그 패권을 로마에게 넘겨주므로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지중해의 판도는 로마의 손아귀에 있게 된 것이다. 이 로마(서로마-독일, 동로마-터키에게 멸망)도 이제 인류사에서 2류 무대로 밀려나고, 18세기 이후에 형성된 발가락 시대에 넷째 짐승인 마지막 나라 소련(러시아-로스-메섹-두발 왕 곡)이 공중에 뜬 돌에게 부숴지고, 우상을 친 돌이 태산을 이루어 성경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오게 되면 이곳이 New Millennium 천년왕국이다(계시록 11:15, 다니엘 2:30~35). '밀레니엄'이라는 거룩한 말이 라면봉지나 아이스크림 박스따위에 광고문구 정도로나 새겨지는 것은 타락한 이 세계가 진정 성경을 멀리 떠나 우상의 세계에 속해 있음을 입증해 준다. 다니엘은 7장에서 신약종말의 4대강국을 묵시로 받았다. 여기서의 넷째 짐승이 바로 다니엘 2장의 철 곧 북방 무신론 정권이다.


다니엘 7:17~22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18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19 이에 내가 네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종말 4대강국의 모형인 다니엘 8장에서는 "23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패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엄장하며 궤휼에 능하며..." 네 나라의 마지막 때 패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난다고 하였으니, 지금이 바로 '한 왕'이 일어나 "24 그가 장차 비상하게 피괴를 행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25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궤휼을 이루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한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깨어지리라" 하신 예언이 이루어질 때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잘못된 사사로운 경영을 도모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어서 돌이켜 이 때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3. 바벨론(북방)의 멸망과 하나님의 보복 : 27~40


『 27 땅에 기를 세우며 열방 중에 나팔을 불어서 열국을 예비시켜 그를 치며 아라랏과 민니와 아스그나스 나라를 불러모아 그를 치며 대장을 세우고 그를 치되 사나운 황충같이 그 말들을 몰아오게 하라 28 열국 곧 메데인의 왕들과 그 방백들과 그 모든 두령과 그 관할하는 모든 땅을 예비시켜 그를 치게 하라 29 땅이 진동하며 고통하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바벨론을 쳐서 그 땅으로 황무하여 거민이 없게 할 경영이 섰음이라 』


70년이 차자(예레미야 25:11~12) 메대-바사 군대가 동원되어 바벨론을 쳤듯이, 인간 종말에도 스가랴 1:12절같이 유다(대한민국)에서 70년이 이루어질 때 학개서 2:6~23절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인 맞은 144000명을 모집할 순의 제단이 사명을 시작하여 북방을 치고 새 시대를 이루게 하신다. 유다 나라의 왕 히스기야 14년에 북방이 망했다는 징조로서 풍년을 주셨다. 만일 영적 유다나라 대한민국에서도 14년의 임기를 가진 한 왕(대통령)이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왜냐하면 이 예언의 주인공이 이 나라라는 희망이 샘솟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부터 현 노무현 정권까지 한 왕이 14년을 통치한 역사가 있는가? 감사하게도 한 대통령이 존재한다. 이쯤하면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바로 박정희 정권이다. 그는 1961년에 5.16 혁명으로 집권하여 자신의 최후가 될 1979년 10.26 사건을 맞을 때까지 고맙게도 영적 유다인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왕 노릇을 해주었다.


그렇다면 그의 집권 후 14년째가 되던 해인 1975년도에 유다에 임하리라 한 풍년의 징조가 성취되었는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일이 있긴 있었다. 필리핀의 마닐라 시(市) 교외에 본부를 둔 국제벼연구소(IRRI)에서 개발한 ‘기적의 볍씨(miracle rice) IR 8’을 들여와 연구를 거듭한 결과, 한국 실정에 맞는 통일벼 계통의 신품종 육성에 성공, 1974년 이래 이 품종 보급에 주력함으로써 미곡증산에 다대(多大)한 실적을 올린 것이다. 이리하여 1975년부터 이 나라에 풍년이 들기 시작한 것을 '우연'으로 볼 것인가? 동방역사의 진실성을 더해주는 '예언성취'로 볼 것인가? 역사 이래로 줄곧 배고픔 아래서 허덕여오던 이 나라가 동남아국가(인도네시아)에 쌀을 차용해주는 일까지 발생한 것은 바로 1975년도부터였다. 히스기야 14년과 박대통령 14년! 우연으로 치부하고 넘겨 버리기에는 너무도 가슴 뭉클한 무언가가 온 몸을 휘감는다. 이러한 영의 전율은 이것이 하늘로부터 임한 징조임을 뜻한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얀 쌀밥 앞에 앉을 때마다 이런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주님, 저 북방 앗수르(러시아)가 망한 징조인 흰 쌀밥을 오늘도 먹습니다. 감사하오니 기드온이 '양털-이슬'의 징조를 믿고 무기 하나 없이 담대히 나아가 북방 미디안을 뒤집어 엎은 것같이(사사기 6:36~40), 이 나라도 1975년에 임한 풍년의 징조를 믿고(이사야 37:30) 북방 앗수르를 뒤집어 엎는 다윗 같은 사명을 감당케 하옵소서. 아멘!"


『 30 바벨론의 용사는 싸움을 그치고 그 요새에 머무르나 기력이 쇠하여 여인같이 되며 그 거처는 불타고 그 문빗장은 부러졌으며 31 보발군이 달려 만나고 사자가 달려 만나서 바벨론 왕에게 고하기를 그 성읍 사방이 함락되었으며 32 모든 나루는 빼앗겼으며 갈밭이 불탔으며 군사들이 두려워하더이다 하리라 』


초강대국이던 바벨론이 갑자기 무력(無力)하게 되어 패전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는 것은 성경의 작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징벌이다. 하나님은 유다의 하나님이시므로 유다를 기준하여 법을 세우시고 실행하시고 판결하신다. 유다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잠시 그들을 징계할 사명으로 등장한 바벨론이 유다가 죄값을 다 치룬 마당에도 계속하여 강포를 행하도록 내어 버려둘 이유는 없는 것이다. "70년간 바벨론의 종노릇을 하리라" 하시고 그대로 이루어 해방을 주신 것은, 범죄와 불의를 용납할 수 없다는 하나님의 공의로움(로마서 6:3)과 야곱의 허물을 돌아보시지 않으리라(민수기 23:21)는 영원한 사랑을 이루기 위한 그분의 크신 은혜였다.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진실함은 십자가의 사랑에서 정수를 이룬다. 물건을 훔친 자를 가게 주인의 고소로부터 자유롭게 풀어주고 물건 값까지 내어주는 분은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 도둑질하다 걸려서 감옥 갈 줄 알았는데, 이분(예수)을 만나고 다시 자유를 얻은 자들이 나이가 들매 이 사랑을 망각하고 다시 가게 진열대에 놓인 온갖 상품(애굽=바벨)들의 유혹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이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께 타작마당의 쭉정이 같은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 3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딸 바벨론은 때가 이른 타작마당과 같은지라 미구에 추수 때가 이르리라 하시도다 』


바벨론을 "때가 이른 타작마당" 같다고 하셨는데, 씨를 뿌린 때가 있었다면 반드시 추수 때가 온다는 교훈이다. 창세기 11:9~ 인간이 쌓은 바벨탑이 여호와 앞에 무너졌듯이, 하나님을 불신하여 교회를 훼파해 버린 저 "무신론 유물사관의 붉은말"이 정체를 바꾸어 "평화공존(WCC종교)과 탈냉전(정치)을 외치는 청황색말"로 둔갑하여 활동하는 종말의 북방 바벨론 비밀도 70년(1975년) 만에 다 무너진다는 것이다. 히스기야 14년에 임한 풍년의 징조로 북방 앗수르가 망했으니, 영적 유다 대한민국의 사명자들은 하박국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하신 말씀을 믿고 용기있게 나아갈 뿐이다.


『 34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나로 빈 그릇이 되게 하며 용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 35 나와 내 육체에 대한 잔학(殘虐)이 바벨론에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시온 거민이 말할 것이요 내 피 흘린 죄가 갈대아 거민에게로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예루살렘이 말하리라 』


바벨론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얼마나 잔인하게 행하였는가를 진술한다. 그 진술은 유다 민족을 대표하는 예루살렘이 그것을 하나님께 고소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지나치게 잔인하였던 사실은 ①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② 나로 빈 그릇이 되게 하며 ③ 용같이 나를 삼키며 ④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다 한 표현으로 잘 드러난다. 이는 짐승이 움켜잡은 것의 먹을 만한 부위는 다 긁어먹고 그 나머지는 내어버림과 같이 바벨론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짐승같이 잔인하게 행하였다는 것이다. 말세의 교회가 부패하면 구약 유다가 바벨론에게 당한 것같이 당할 것인데, 그 비참함의 모양은 계시록 13장의 후 3년 반 통치가 잘 말해주고 있다. 표면(구약)을 보며 이면(종말)을 뚫어볼 줄 아는 통찰력! 이것이 마지막 종들이 받은 달란트이다. 하나님은 선민을 징계하시지만, 징계 후에 막대기는 가차없이 꺾어 버리시는 것(이사야 10:5~9)은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원리이다. 몽둥이는 자식에게 공포를 주기 위함이 아니요, 오직 자녀를 교훈하고 바로 양육키 위한 사랑의 장치임을 깨달아야 한다. 부모의 사랑 앞에 무릎 꿇지 않고, 몽둥이가 두려워 황폐한 무더기가 될 그 앞에 무릎 꿇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 3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네 송사를 듣고 너를 위하여 보수하여 그 바다를 말리며 그 샘을 말리리니 37 바벨론이 황폐한 무더기가 되어서 시랑의 거처와 놀람과 치솟거리가 되고 거민이 없으리라 』


70년(BC 538)이 차자 하나님의 거룩한 그릇들로 술을 퍼 마시며 흥청대던 바벨론 왕 벨사살은 고레스 칼 앞에 죽임을 당하였다(다니엘 5:25).


『 38 그들이 다 사자같이 소리하며 어린 사자같이 부르짖으며 39 열정이 일어날 때에 내가 연회를 베풀고 그들로 취하여 기뻐하다가 영영히 잠들어 깨지 못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0 내가 그들을 끌어 내려서 어린 양과 수양과 수염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게 하리라 』


"사자같이 소리한다" 함은 그들이 세계를 향해 호령할 만한 강대국인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강한 나라가 정한 때에 바사에게 망한 것을 보이신 것은, 인간 종말에도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루며 악의 한 축을 이루어 호령하던 러시아도 예언대로 70년(1975)이 찰 때 하룻밤에 망하여 버린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오늘날 신학자들이 구약 바벨론이 망한 것은 알면서 종말의 북방 바벨론(러시아)이 멸망한 사실은 모르고 있다(사실 알 수도 없지만...). 깊이 감추어진 영적 비밀이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정치는 사단이 지배하는 유물사관(오직 물질뿐이라는 사상) 정치이므로 바벨론 족속은 육체적 만족을 위해서라면 겂없이 성전 기명으로 연회를 베풀 수 있는 무지한 족속이다. 그토록 강한 힘을 갖고 세계 민족 중 유리한 위치를 점령한 그들이 그토록 많은 십자가가 세상에 퍼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종교(기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사상이 하나님께로부터가 아니라 마귀에게로부터 왔음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바벨)는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편 49:20)". 다니엘 5:24~ 분벽 글자를 통해 바벨론 왕 벨사살을 심판하신 것처럼, 본 예레미야서(분벽 글씨를 주신 분께로 온 말씀)를 통해 종말의 바벨론 역시 멸망할 것은 너무도 확실한 사실이다. 바벨론 성을 향하여 기호를 들고 나갈 동방 고레스 단체여, 어서 일어날지어다! 아멘.


4. 바벨론 우상 처벌과 황폐 : 41~53


『 41 슬프다 세삭이 함락되었도다 온 세상의 칭찬 받는 성이 빼앗겼도다 슬프다 바벨론이 열방 중에 황폐하였도다 42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그 많은 파도가 그것에 덮였도다 43 그 성읍들은 황폐하여 마른 땅과 사막과 거민이 없는 땅이 되었으니 그리로 지나가는 인자가 없도다 44 내가 벨을 바벨론에서 벌하고 그 삼킨 것을 그 입에서 끌어내리니 열방이 다시는 그에게로 흘러가지 아니하겠고 바벨론 성벽은 무너지리로다 』


본문은 또다시 바벨론 멸망의 결과를 진술한다. 여기 "세삭"이란 명칭은 바벨론을 가리킨다. "세삭이 함락"된 결과는

열방 중에 "빼앗겨 황폐됨"(41절). - 하나님의 예언대로(예레미야 25:11) 성취된 것이다.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42절). - 비유로서 메대 바사 군대가 바다처럼 광대한 세력으로 그곳을 점령하였다는 뜻이다. 7머리 강대국가는 애굽부터 차례 차례 망하여 왔다.

"마른 땅과 사막과 거민이 없는 땅"이 되고 성벽은 무너짐(43~44절). 고레스와 그 후 다리오 왕 때에 바벨론 요인 400명을 죽이고 성벽은 다 무너 뜨리 웠으므로 바벨론은 적막하여졌다.

"벨을 바벨론에서 벌하고(44절)" - '벨'은 바벨론의 주요 신을 가리킨다(이사야 46:1). 하나님께서 "벨"을 벌하시겠다고 하심은 바벨론의 그 우상숭배 행위가 하나님께 대한 반역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본족이건 이방이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자는 살지만 신 아닌 것으로 신을 삼는 자들은 본족이건 이방인이건 철저히 멸망시키시는 분이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우상에는 유형적인 것도 있고 무형적인 것도 있으나 이 시대에는 무형의 우상인 탐심(골 3:5)이 교회와 세계를 장악해가고 있다.


『 45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나 여호와의 진노에서 스스로 구원하라 46 너희 마음을 겁약하게 말며 이 땅에서 들리는 풍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풍설은 이 해에도 있겠고 저 해에도 있으리라 경내에는 강포함이 있어 관원끼리 서로 치리라 』


본절은 유다가 바벨론에서 나올 때를 말씀하신다. 70년이 차면(예레미야 29:10)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하셨으니 그 예언대로 성취되는 것이다. 인간종말도 이와 똑같다. 스가랴 1:12절의 70년이 영적 유다 한국에서 이루어질 때 스룹바벨 제단이 나타나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하고(학개서 2:4), 부패한 교회를 각성시켜 다시 일으키는 성전 재건역사를 행할 때 "손을 견고히" 하므로(스가랴 8:9) 세계 영적 이스라엘 종들의 이마에 인이 쳐지게 되는 것이다.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신 말씀대로 스룹바벨 단체는 "준행하여"(에스겔 9:11) "하나님의 인"을 치므로(계시록 7:2~8) 세계에 숨겨 놓으신(이사야 49:1~5. 열왕기상 19:18) 하나님의 종 144000명은 다 한 사상으로 모이게 된다(계시록 14:1~5).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야곱의 남은 자는 열국 중과 여러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네 손이 네 대적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미가서 5:7~9). 이는 인간의 힘과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어떤 사람이나 교파를 중심하여 될 수도 없는 위에서 오는 역사이다(스가랴 4:6). 스룹바벨은 "복명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라고 말하는 자이므로 절대 순종만이 그의 살 길이다.


영혼과 몸의 구속을 얻은 자들로 에덴 동산을 회복하자는 것이 성경 기록의 목적인데, 일에는 순서가 있다. 에덴 회복을 위한 3대 절기(출애굽기 23:14. 레위기 23장. 민수기 29장. 신명기 16장) 중, 유월절의 감춰진 연대는 400년(창세기 15:13)이요(출애굽기 12:40), 초막절의 감춰진 연대는 70년임을 이미 여러 번 살폈다. 출애굽은 유월절 역사로 영혼의 구원을 주는 절기요, 출 바벨론은 초막절 역사로 육체 구원을 주는 절기이다. 이렇게 두 번 역사 해야만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진다. 가나안으로 향해 가는 과정에서 반석에서 물이 터진 것도 두 번이요(출애굽기 17:6~. 민수기 20:6~ ), 십계명을 받은 것도 두 번이다(출애굽기 32장, 34장). 계시록 6장의 백마 탄 자도 두 번을 이기려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유월절로 시작하여 초막절로 완성되는 완전 구원의 비밀을 보이신 것이다. 오순절은 유월절에 뿌린 씨가 초막절 때까지 잘 자라도록 중간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기독교가 두 번 승리해야 함을 알고 사단은 매 역사마다 방해하는 전략을 펼쳤으나 이 영적 전쟁에서 예수님은 패하실 수 없기에 성령님을 보내시어 나약한 종들 속에 역사하는 것이다.


4복음서의 내용은 '유월절' 역사로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공로로 영혼 구원을 이루신 비밀을 증거한 것이요, 사도행전부터 유다서까지는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를 증거한 것이다. 성령님은 진리이시니 말씀 사상을 통하여 움직이신다. 이렇게 유월절로 씨뿌리고 오순절로 길러낸 구원의 밭에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게 될 때 초막절 역사는 불가피한 것이다. 이 초막절을 위하여 마지막 종 사도요한에게 계시하신 책이 계시록인데, 알곡을 거두는 방법은 계시록 2:27절에 철장권세로 666 짐승의 사상부터 때려부수고 구원을 얻게 하신다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행해진 간교한 뱀의 거짓말 사상이 오늘날의 공산주의의 거짓 평화공존과 그들이 교회 안에 보낸 발람 같은 거짓선지들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하여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 큰 미혹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예언서 곧 다림줄(아모스 7:7) 뿐이다(스가랴 4:7~10). 다림줄이 누구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라고 하였는가? 바로 스룹바벨이다. 스룹바벨은 곧 초막절 역사에 부름받은 일꾼인 것이다.


『 47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바벨론의 조각한 신상들을 벌할 것이라 그 온 땅이 치욕을 당하겠고 그 살륙 당한 모든 자가 그 가운데 엎드러질 것이며 48 하늘과 땅과 그 중의 모든 것이 바벨론을 인하여 기뻐 노래하리니 이는 파멸시키는 자가 북방에서 그에게 옴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9 바벨론이 이스라엘 사람을 살륙하여 엎드러뜨림같이 온 땅 사람이 바벨론에서 살륙을 당하여 엎드러지리라 하시도다 』


바벨론 패망은 이스라엘을 신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결과이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막대기(이사야 10:5)이니 사용이 끝나면 꺾어버리는 것이 공의이다. 7머리(계시록 17:9~13) 짐승은 구약 때부터 종말까지 이스라엘 앞에 몽둥이 노릇을 한 것뿐이다. 성도는 죄를 지었으니 일곱 머리 짐승에게 채찍을 맞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의 성도들을 압제, 멸시하던 바벨론이 멸망한다는 것은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까지 함께 기뻐할 일이다.


『 50 칼을 면한 자들이여 서지 말라 행하라 원방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 』


유다인이 살 곳은 모리아산 예루살렘이다. 이 말씀은 출바벨론하는 스룹바벨 단체가 가져야 할 사상이다. 구원받을 자가 피할 곳은 오직 시온(이사야 14:32)과 예루살렘(이사야 2:3)뿐이다. (참조구절) - 이사야 31:9, 37:32. 예레미야 4:6.


『 51 이방인이 여호와의 집 성소에 들어가므로 우리가 책망을 들으며 수치를 당하여 부끄러움이 우리 얼굴에 덮였느니라 』


"이방인"은 북방의 "잔인한 군주"(이사야 19:4)요, "한 이족"이요(요엘 1:6), "이방인"(계시록 11:1~2), "작은 뿔"(다니엘 7:20~26), "여덟째 왕"(계시록 17:11)을 말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예루살렘(교회)에 침입하여 유다 족속을 모욕하였으며(모욕할 것이며), 그들로 수치를 당하게 한(할) 장본인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막대기 바벨이 하나님의 뜻 이상으로 유다를 너무 심하게 괴롭힌 죄악에 기인한다(스가랴 1:14~15).


『 5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그 조각한 신상을 벌할 것이라 상함을 입은 자들이 그 땅에서 신음하리라 53 가령 바벨론이 하늘까지 솟아오른다 하자 그 성을 높이어 견고히 한다 하자 멸망시킬 자가 내게서부터 그들에게 임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소망이 없는 바벨론은 마귀, 우상만 섬기다가 때가 오니 메데-바사에게 패망했다. 땅 중앙 나무같이 교만(다니엘 4:22)했으니 그의 패망은 당연한 것이다(잠 16:18). 노아의 세 아들이 흩어져 살았지만 아직 구음(口音)이 하나이던 시대에 장차 올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강력한 지도자(영걸)가 등장하여 창세기 11:4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한 것이 멸망할 자의 시초 발언이었던 것처럼, 종말에도 강력한 힘으로 전 세계 민족의 사상과 종교, 경제시스템 등을 하나로 묶어 통치할 바벨이 나올 것인데, 이들 역시 성과 대(세상 뼈대의 근간을 이루는 정치, 종교, 경제, 문화)를 쌓아 하늘에 닿게 하여 (하나님의 이름 영광이 아닌) 인본주의의 영광을 구하고, (예수님의 천년왕국이 아닌) 뉴에이지-새 시대를 건설하려 할 것이다. 이 주체(대장)는 바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 하며 자기 땅의 교회를 다 때려 죽이고는, W.C.C. 속에서 자유로이 활동하다가(위원장 6명중 4명의 자리를 차지하는 등...), 인류 최초로 달나라에 로켓을 쏘아 올려 착륙하여서는 "달에 가보니 하나님이 없더라"는 망언을 하고 돌아와, 급기야 2002년도에는 구소련을 경계하기 위하여 설립된 NATO 에 제 발로 당당히 들어가 가입하는 데 성공한 거짓말과 사기의 명수, 러시아이다. 러시아는 북방 로스 민족의 후예로서 장차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의 무리의 대장이 될 것을 성경은 알려주고 있다(에스겔 38:7). 로스는 '러시아', 메섹은 '모스코바', 두발은 현 북서 시베리아의 '투볼스크'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로스, 메섹, 두발 = 에스겔 38:2~, 39:1~).


5.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파멸과 예언자 : 54~64


『 54 바벨론에서 부르짖는 소리여 갈대아인의 땅에 큰 파멸의 소리로다 55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황폐케 하사 그 떠드는 소리를 끊으심이로다 그 대적이 많은 물의 요동함같이 요란한 소리를 발하니 56 곧 멸망시키는 자가 바벨론에 임함이라 그 용사들이 사로잡히고 그들의 활이 꺾이도다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공의대로 인간의 죄악을 보복하실 사실에 대하여 묘사한다. "부르짖는 소리"는 바벨론을 침략하는 군대가 고함치는 소리인데, 그 무서운 소리는 부귀영화를 자랑하면서 천하를 호령하던 바벨론 도시를 때려눕히며 요란한 소리를 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보복의 소리요, 공의의 심판이다. ☞ "여호와의 신원의 날" 참조


『 57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 방백들과 박사들과 감독들과 관장들과 용사들로 취하게 하리니 그들이 영영히 자고 깨지 못하리라 』


교만한 바벨 정권과 세계적인 바벨 교권이 "영영히 잠들고 깨지 못하리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될 때가 바로 성도의 나라, 새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는 때이다.


『 58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의 넓은 성벽은 온전히 무너지겠고 그 높은 문들은 불에 탈 것이며 백성들의 수고는 헛될 것이요 민족들의 수고는 불탈 것인즉 그들이 쇠패하리라 하시니라 』


구약 바벨론 성은 완벽한 성벽으로 견고한 요새지였다. 바벨론 백성(종말의 심판받을 성도와 백성)은 든든한 성벽만 의지하여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날에 일시에 불타 버렸다. 종말에도 그대로 이루어지리라(계시록 18:10). 아멘!


『 59 유다 왕 시드기야 사 년에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스라야가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갈 때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씀을 명하니 스라야는 시종장(侍從長)이더라 60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임한 모든 재앙 곧 바벨론에 대하여 기록한 이 모든 말씀을 한 책에 기록하고 61 예레미야가 스라야에게 이르되 너는 바벨론에 이르거든 삼가 이 모든 말씀을 읽고 62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이곳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땅을 멸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거기 거하지 못하게 하고 영영히 황폐케 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라 63 너는 이 책 읽기를 다한 후에 책에 돌을 매어 유브라데 하수 속에 던지며 64 말하기를 바벨론이 나의 재앙 내림을 인하여 이같이 침륜(沈淪)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니 그들이 쇠패하리라 하라 하니라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마치니라 』


예레미야가 스라야로 하여금 바벨론 멸망을 예언한 책을 돌에 매어 유브라데 하수 속에 던지도록 한 행동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미 선지자의 입에 말씀이 임한 자체로 하나님의 경영은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이지만, 그 경영이 기록된 책을 다시 한 번 강물 속에 빠뜨려 건질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바벨론이 이와 같이 이 창조세계 안에서 다시는 보이지 않을 것을 실천적으로 보인 것이다. 약속적 예언, 묵시적 예언, 실천적 예언의 삼중적 선포는 종말의 사명용사들로 하여금 멸망할 바벨론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호와만 바라보고 새 힘 받고 돌진할 수 있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표현일지라!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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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617a_예레미야50장20절~

[주일 오전 설교예레미야 50장20절~ : 북방 바벨론 재앙과 이스라엘 구원 예언 2018/06/17 Lord's day(Sunday) Morning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50장20절~

제목 : 북방 바벨론(소련)의 재앙과 이스라엘의 구원


이사야 10:5 "화 있을진저 앗수르(소련)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12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소련)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계시록 17:3~5절에 짐승을 탄 음녀의 이마에 '큰 바벨론'이란 이름이 있는데 이 짐승은 시대마다 존재하여 7대법을 지키는 주의 종들을 대적해 온 적기독 국가이다.  7머리 짐승 중 일곱째 머리는 바로 이 시대에 우리가 싸워야 할 큰 바벨론이다.


1. 바벨론 공격과 교회의 사죄 : 14~23


『 2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발견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나의 남긴 자를 사할 것임이니라 』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돌아보지 아니하시고(스가랴 3:9) 새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약속이다. 구약 때는 새 언약이 미성취된 시대였으므로 출바벨론 시(時) 모든 죄를 그대로 가지고 귀국했던 것이다. 그러나 종말의 때는 새 언약으로 자범죄를 씻어(이사야 53장, 스가랴 13:1~) 영혼을 구원받은(베드로전서 1:9~. 히 10:39) 기독교 성도들을 상대로 말씀하시므로 거기(중생)에 종말의 2차 역사인 새 일 교훈을 더하여 패역한 육체까지 개조시켜 주시기 때문에(이사야 57:15~19, 호세아 14:4~, 이사야 19:19~22, 이사야 42:9~, 이사야 43:1~19) 종말의 출 바벨론 역사인 <초막절기 역사>가 성취되면 영육 간에 완전한 의인이 되어 죄없는 사람을 이룬다. 그러므로 새 시대는 완전한 자들이 완전한 예수님과 더불어 완전복락을 누리는 완전한 <지상천년왕국>이 되는 것이다.


『 2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올라가서 므라다임의 땅을 치며 브곳의 거민을 쳐서 진멸하되 내가 너희에게 명한 대로 다하라 22 그 땅에 싸움의 소리와 큰 파멸의 소리가 있으리라 23 온 세계의 방망이가 어찌 그리 꺾여 부숴졌는고 바벨론이 어찌 그리 열방 중에 황무지가 되었는고 』


위 말씀대로 144000명이 북방을 치고 계시록 16:12~ 아마겟돈 전쟁에서 멸공진리로 악의 세력을 진멸케 된다.


"온 세계의 방망이가 어찌 그리 꺾여 부숴졌는고 바벨론이 어찌 그리 열방 중에 황무지가 되었는고" 이 예언대로 바벨론의 종말은 70년 만에 끝난 것이다. 이를 믿기는 너무도 힘이 들겠지만, 원리를 깨달으면 간단하다. 육적 유다의 70년 회복이 이루어지는 그 해에 유다의 원수 바벨론이 멸망하였다면, 종말에도 그렇게 됨을 어린아이같이 믿으면 된다. 온 세계의 방망이가 부숴진 증거는 24절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2. 바벨론의 교만에 대한 징벌 : 24~32


『 24 바벨론아 내가 너를 잡으려고 올무를 놓았더니 네가 깨닫지 못하고 걸렸고 네가 나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만난 바 되어 잡혔도다 』


바벨론의 종말은 '70년'으로 정해져 있고(예레미야 25:11), '70년'이 필할 때 고레스가 일어나서 바벨론을 침으로써 이루어졌다. 다니엘 5:25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 한 마디에 바벨론 왕 벨사살이 망하고(B.C.538) 메대와 바사에게 나라가 넘어가 다니엘 2:32,39절의 '가슴과 두 팔'의 시대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표면적 역사는 인간 종말이 되어 이면적으로 결실한다. 최종 결실기인 이 시대에 구약 그림자의 모형대로 스가랴 1:12~ '70년 회복'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이 예언대로 북방 바벨론(러시아)이 영적 유다의 '70년'의 위력 앞에 멸망 당했음을 믿으라! 두 눈으로 이 사실이 확인되는 때는 초막절(7.15)을 분수령으로 하여 벌어지는 세계적인 '5개월 환난' 때이다.


이와 같은 동방역사의 줄거리는 앞서 여러 번 말한 바, 실천적 예언의 기법을 깨달으면 쉽사리 이해된다. 표면적 유다의 히스기야 왕 14년에 이루어진 이사야 37:30~37절 예언의 성취는 종말의 동방 유다의 권세를 믿으라고 예고편으로 보여주신 사건이다. 그림자와 실물은 크기는 달라도 모양새는 같다. 따라서 종말의 동방 유다 나라에도 히스기야처럼 14년 이상 치리한 자가 있기만 하면 안성맞춤이다. 때마침 이 나라에는 '박정희'라는 투철한 멸공 대통령이 존재하였으니, 이 역사에 대입해 보면 성경 예언이 '그림자-실물' 구조로 되어 있다는 주장에 진실성이 확보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되길 히스기야 14년(이사야 36:1)에 유다를 치러 온 북방 앗수르가 멸망할 징조는 그 해부터 임하는 풍년이라 하였다(이사야 37:30). 박대통령 14년은 몇년도인가? 그가 집권한 것이 1961년 5.16 때이니 이에 14년을 더하면 1975년이 된다. 만일 1975년부터 한국 땅에 보릿고개가 사라지고 풍년이 임했다면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경영이 아니라고 말할 자가 누구이겠는가? (통계청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한국 땅에는 1975년부터 풍년이 들기 시작하여 아무리 농사가 안 되어도 해마다 평작은 넘고 있는 실정이다. 천재 만명이 동원돼 세계역사를 연구한다 하더라도 타국의 역사에서는 이와 같은 경우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동방 고레스의 사명은 오직 아시아 셈의 장막 동방 땅 끝의 '대한민국'에만 위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약의 유다와 종말의 대한민국은 <정치><종교><인접강대국들의 지리분포> 면에서 그 모양새가 놀랍도록 유사한 쌍둥이 나라이다.


다니엘 2장 44~이하에 발가락 시대인 열왕의 때에 공중에 '뜬 돌'이 우상의 발을 치면 우상은 티끌같이, 먼지같이 없어지고 우상을 친 '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 천하에 가득 차는 묵시가 나오는데, 이것은 구약 동방 바사의 고레스가 구약 북방 바벨론을 때리듯, 종말의 동방 고려(KOREA)국에서 마지막 짐승 북방 바벨론을 때려부수되 고레스와 같은 권세인 '스룹바벨' 머릿돌 권세가 나타나 알곡을 모으고 쭉정이를 심판하는 성부 하나님의 초막절 역사를 이루어낸다는 묵시들과 일맥상통한다. 6,000년간의 선악 대전쟁을 종결시키는 세계통일의 역사는 70년의 포로기를 마치고 가나안을 되찾아가는 천년왕국 건설의 역사이다.


유월절이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 권세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니 할렐루야! 오순절 역시 성자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심으로 이루셨으니(요한복음 14:26) 할렐루야! 초막절 심판역사도 성부 아버지께서 성자에게 모든 심판권을 넘겨주심으로 이루어지니(계시록 5장 - 인권인수) 할렐루야! 모든 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사도행전 4:12)으로 인하여 실행되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니,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다니엘 8:25. 디모데전서 6:15. 계시록 17:14, 19:16)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세 무궁토록 찬미 찬송 받으실지어다. 아멘!


『 25 나 여호와가 그 병고를 열고 분노의 병기를 냄은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갈대아인의 땅에 행할 일이 있음이라 』


"병고를 열고 분노의 병기를 내신"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치고자 하신다. 일이 되어지는 순서를 보면 이렇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부패 타락한다 ⇒ 바벨론이 성민과 그 나라를 철저히 짓밟고 유린한다 ⇒ 교만한 바벨론은 자기 사명의 한계도 모르고 세상을 향해 죄악을 충만히 쌓아간다 ⇒ 모든 악을 제해 버릴 심판기가 도래한다 ⇒ 주님의 의로운 분노의 병기들(144,000/이사야 13:5)이  이 땅 위에 등장한다 ⇒ 교만한 악의 세력은 완전히 진멸된다.


구약 고레스는 하나님께 특별한 사명을 받아 바벨론을 쳤는데, 그의 강권역사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해방되어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종말의 영적 이스라엘이 구원 받는 역사에서도(계시록 7장) 고레스와 같은 사명을 가진 '7배 강한 종들'이 강권역사를 이루게 될 것이다(이사야 43:18~). 과거 출애굽 때 애굽을 쳤던 모세의 능력과(430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거짓선지의 무리를 도륙했던 엘리야의 능력이 마지막 동방 고레스 사명자들에게 임하여 - 구약의 바벨론을 단 칼에 베어 버렸던 것처럼(70년) - 종말 악의 세력 666을 진멸할 것이다. 주님의 의로운 심판병기 144,000명이 일어나 흰 옷 입은 무리를 구원시키고, 3일 반 죽었다가 들림받고 시온산에 예수님과 같이 강림하여 붉은 용(600)과 바벨세력(66)을 쳐부술 일! 이것이 주님이 당신의 백성을 아름다운 시온산, 예루살렘, 천년왕국, 새 시대로 귀환시키기 위하여 "갈대아인의 땅에 행할 마지막 일"이 되는 것이다.


『 26 먼 데 있는 너희는 와서 그를 치고 그 곳간을 열고 그것을 쌓아 무더기 같게 하라 그를 진멸하고 남기지 말라 』


"먼 데 있는 너희"란 동방 '메대-바사' 나라를 가리킨다. "무더기 같게 하라"는 것은 바벨론 사상을 심판하라는 것인데, "진멸하고 남기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없는 심판을 의미한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로서 진멸하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했다. 종말에도 구약 때 있었던 심판과 동일하게 행해진다(이야사 46:10).


『 27 그 황소를 다 죽이라 도수장으로 내려가게 하라 그들에게 화 있도다 그들의 날, 그 벌받는 때가 이르렀음이로다 』


"그 황소를 다 죽이라" 함은 70년과 더불어 바벨론 마귀 떼들의 사명이 끝났기 때문이다. 황소는 성경에 총 6번 등장하는데, 예수님을 못박은 6째 짐승 로마와 유대교권 역시 본절과 더불어 마귀 떼로 표현되었다(시편 22:12). 그 외에는 제물용(시편 69:31. 히브리서 9:13, 10:4)과 선물용(창세기 32:15)으로 기록되었다. 주의 종들은 사명을 마치기 전에 죽을 수가 없고, 마귀의 종들은 사명이 끝났으니 살려둘 필요가 없다. 다니엘 2장의 금머리 사명이 끝났으니 그 정부와 정객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라는 뜻이다.


『 28 바벨론 땅에서 도피한 자의 소리여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보수하시는 것, 그 성전의 보수하시는 것을 선포하는 소리로다 』


여호와께서 보수할 때에는 먼저 북방을 들어서 세계 교회를 시험해 보는 일이 있고, 그 다음 심판을 행하시게 된다. 계시록 9:1~12절의 다섯째 나팔은 세계 교회를 미혹해 보는 시험기간이다. 마태복음 2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이 미혹을 이기기 위해 주님은 한 제단을 세워 주셨는데, 바로 학개서 2:10~23절의 스룹바벨 성전이다. 이 제단에 맡겨진 하나님의 인은 종말의 미혹을 뚫고 나갈 강력한 도장인데, 이 강권역사가 바로 종말의 순의 역사이다. 1974년 9월 24일이 중요한 것은 순의 역사 시작을 위한 성전 지대가 세워진 날이기 때문이다.


『 29 활 쏘는 자를 바벨론에 소집하라 무릇 활을 당기는 자여 그 사면으로 진을 치고 쳐서 피하는 자가 없게 하라 그 일한 대로 갚고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니라 』


본 절은 바로 여호와의 초막절 역사인데, 유다 땅에서 일어나는 이사야 37장의 환난의 때이다. 유다는 선지국가로서 성별되어야 하기 때문에 심판도 먼저 임하게 되는데, 북방이 내려옴으로 일어나는 10일 환난으로써 한반도의 쭉정이를 모두 쓸어버리게 된다(계시록 2:10). 그러나 쭉정이를 청소하러 내려온 앗수르 군대(북방 로스 군대)는 10일 환난의 끝날(초막절) 하룻밤에 송장이 된다.


『 30 그러므로 그 날에 청년들이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군사들이 멸절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날 곧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 교만한 자가 걸려 넘어지겠고 그를 일으킬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놓으리니 그 사면에 있는 것이 다 살라지리라 』


구약 때 예루살렘에 들어와 이사야 36:18~20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19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20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그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내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라고 외치며 극도의 교만을 보였던 앗수르와 같이 여호와를 무시하고 자기의 세력을 믿던 교만한 바벨론 정권은 다 무너지고 불에 살라질 것이다.


3. 바벨론의 교만에 대한 징벌 : 33~46


『 33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함께 학대를 받는도다 그들을 사로잡은 자는 다 그들을 엄히 지켜 놓아 주지 아니하거니와 34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니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라 결코 그들의 원을 펴서 그 땅에 평안함을 주고 바벨론 거민으로 불안케 하리라 』


열방을 압제하고 주관하던 북방 원수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비밀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고린도전서 2:6~9). 북방이라는 것은 유다를 위하여 막대기(이사야 10:5)로 잠깐 쓰여지고, 결국은 불못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계시록 19:19~).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저 북방이 만일 하나님의 예언서를 알았더라면, 만왕의 왕 만주의 주를 대적하는 짐승의 행동과 주의 백성 유다를 훼방하는 교만한 언사는 쓰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나 모든 것은 심판책에 기록된 그대로 이루어질 뿐이다(이사야 41:4, 43:13).


『 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이 갈대아인의 위에와 바벨론 거민의 위에와 그 방백들과 지혜로운 자의 위에 임하며 36 칼이 자긍하는 자의 위에 임하리니 그들이 어리석게 될 것이며 칼이 용사의 위에 임하리니 그들이 놀랄 것이며 37 칼이 그들의 말들과 병거들과 그들 중에 있는 잡족의 위에 임하리니 그들이 부녀같이 될 것이며 칼이 보물 위에 임하리니 그것이 노략될 것이요 』


하나님이 보낸 고레스의 칼(말세종의 말씀의 칼)이 바벨론에게 임하므로 그들이 놀라는 가운데 멸망을 당하게 된다. 이 역사는 다음 말씀으로 완성되게 된다. 계시록 11: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종말에는 말씀 권세로 원수를 소멸시킨다. 증인권세 승리하리~ 새일성가 75장 3절


『 38 가뭄이 물 위에 임하여 그것을 말리우리니 이는 그 땅이 조각한 신상의 땅이요 그들은 우상에 미쳤음이니라 39 그러므로 사막의 들짐승이 시랑과 함께 거기 거하겠고 타조도 그 중에 깃들일 것이요 영영히 거민이 없으며 대대에 거할 자가 없으리라 4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을 무너지게 한 것같이 거기 거하는 사람이 없게 하며 그 중에 우거하는 아무 인자(人子)가 없게 하리라 』


바벨론에 가뭄이 임하고, 영영히 거민이 없으며, 대대에 거할 자가 없으리라 하셨다. 인간 종말에 계시록 13장과 같은 대환난이 오면 가뭄과 흉년이 들고, 대환난 끝에 가서 세계는 불바다가 된다.


『 41 보라 한 족속이 북방에서 오고 큰 나라와 여러 왕이 격동을 받아 땅 끝에서 오나니 42 그들은 활과 창을 가진 자라 잔인하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그 목소리는 파도가 흉용함 같도다 딸 바벨론아 그들이 말을 타고 무사같이 각기 항오를 벌여 너를 칠 것이라 』


한 족속이 북방에서 오는 것은 메대-바사 족속이다. 다니엘 2장에서 우상의 금머리(바벨론)가 위세를 떨치는 70년이 지나면 목과 가슴의 시대로 이어지는데, 은으로 이루어진 이 부분이 바로 메대-바사이다. 가슴에는 양 팔이 달려 있듯이, 메데와 바사는 연합하여 바벨론을 치고, 메대 왕 다리오가 먼저 2년간 왕 노릇을 하고 고레스는 섭정 통치를 하다 후에 고레스에 의해 병합통치되었다. 인류역사는 하나님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 43 바벨론 왕이 그 소문을 듣고 손이 약하여지며 고통에 잡혀 해산하는 여인의 구로함 같도다 44 보라 사자가 요단의 수풀에서 올라오는 것같이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라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서 쫓아내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위에 세우리니 나와 같은 자 누구며 나로 더불어 다툴 자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뇨 45 그런즉 바벨론에 대한 나 여호와의 도모와 갈대아인의 땅에 대하여 경영한 나 여호와의 뜻을 들으라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어가고 그 처소로 황무케 하리니 46 바벨론의 함락하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부르짖음이 열방 중에 들리리라 하시도다 』


본절은 계시록 16:17~21절의 내용과 동일하다. 모든 선지자는 사단의 역사가 성경대로 심판을 받아 새 천년 시대가 오면 바벨의 세력을 이 땅에서 찾아볼 수조차 없게 될 것을 예언하였다.


계시록 18:21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하셨으니, 말씀대로 이루어질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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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610b_예레마야48장

[주일 오후 설교예레미야 48장 : 모압에 대한 예언 2018/06/10 Lord's day(Sunday) Afternoon

2016년 11월 16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48장

제목 : 모압에 대한 예언


1. 모압이 받을 심판과 재화 : 1~13


『 1 모압에 대한 말씀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슬프다 느보여 그것이 황폐되었도다 기랴다임이 수치를 당하여 점령되었고 미스갑이 수치를 당하여 파괴되었으니 2 모압의 칭송이 없어졌도다 헤스본에서 무리가 그를 모해하여 이르기를 와서 그를 끊어서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자 하는도다 맛멘이여 너도 적막하게 되리니 칼이 너를 따르리로다 3 호로나임에서 부르짖는 소리여 황무와 큰 파멸이로다 』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딸들의 자손(잡족)인데, '약속'이 없는 저주받은 민족이다(창세기 19:30). "모압"이라는 단어가 종말을 고해놓은 예언서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종말에 교회 안에 모압사상이 만연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압의 사상을 가진 목자와 교인들은 이 말씀이 다시 예언될 때 하나같이 구약 모압이 당한 저주와 심판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모압은 예로부터 이스라엘과 숙적관계이다. 출애굽 때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므로 그들을 망하게 하려고 금전으로 발람 선지를 매수하여 초청하여 저주의 제사를 드리게 하였으나 실패하고 도리어 저주를 당한 일이 있었다(민수기 22~24장). 그 이후로도 모압 민족은 수 세기(世紀) 동안 이스라엘에게는 원수의 나라였다(사사기 3:12~30. 사무엘상 14:47. 사무엘하 8:2. 열왕기하 3:4~27. 역대하 20:1절~). 모압에 대한 예언은 민수기 24:17. 이사야 15장, 16장, 25:10~12. 아모스 2:1~3절에도 기록되었다.


"느보", "기랴다임" 등은 느보산 주변에 있는 도시들이다. "미스갑"은 산지(山地)인데 두 도시를 포함한 지방 이름으로 이곳은 모압의 요새(要塞)이다. 이 예언대로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파괴한 후에 모압과 싸워 그 족속을 점령하였다. 세계의 중앙은 모리아산인데, 그곳에 세워진 다윗왕국과 솔로몬 성전이 부패되므로 그 이웃 모든 이방 국가에도 동일한 심판이 임한 것이다. 종말에도 세계적인 영적 이스라엘 중에 중앙은 유다이니(한국) 유다에서부터 심판하여 전 세계에 시온산 정부가 이루어지게 하신다(계시록 11:15, 이사야 24:1~23, 이사야 65:17~24). 기독교회는 모압 사상을 멀리하고 오직 예수님의 부탁인 예언서를 읽고, 듣고, 지켜야 영혼구원과 더불어 환난날 육체구원을 얻게 된다. 그러나 대적자 마귀는 오늘날도 모압의 사상으로 참 이스라엘을 방해하러 나와 있고, 많은 어리석은 성직자들은 발람과 같은 음녀가 되어 발락을 따라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관하여는 계시록 2~3장 설교를 참조하라.


• 2절 : "모압의 칭송이 없어졌도다"라고 하신 것을 보니 교만한 사단의 역사가 한 때 칭송받을 만큼 대단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사야 16:6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의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 과장이 헛되도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높아지고 과장하여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말씀 앞에 100% 거꾸러지게 된다(잠언 16:18). "헤스본 무리가 그를 모해하여... " '헤스본'은 모압의 국경 도시인데 바벨론 군대가 모압을 정복하기 전에 그곳에서 전략을 꾸몄다고 한다. 이것은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을 반영시킨다.


• 3절 : "호로나임에서 부르짖는 소리여 황무와 큰 파멸이로다" '호로나임'은 남쪽으로 '소알' 가까이에 있는 도시로서 평원지대이다. 인간들은 좋은 장소와 풍족한 생활 여건을 좇아 모여 살며 이러한 인간들이 모인 곳은 자연스럽게 도회지로 성장하지만, 도시문화가 양산해내는 죄악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쌓이게 되면 남녀노소, 빈부귀천, 도농(都農)을 막론하고 용서 없는 심판이 내려진다.


『 4 모압이 멸망을 당하여 그 영아들의 부르짖음이 들리는도다 5 그들이 울고 울며 루힛 언덕으로 올라감이여 호로나임 내려가는 데서 참패를 부르짖는 고통이 들리도다 6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여 광야의 떨기나무같이 될지어다 』


"영아들의 부르짖는 소리" 전쟁의 비극이다. 모압의 사상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신뢰하는 사상이다. 그들은 실상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도 외인이 볼 때에는 대단한 열심과 경건이 있는 자로 오해할 만큼 강한 신앙적 색채를 띠는 자들이다(이사야 16:12).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열심은 멸망 받을 열심이다(로마서 10:2). 헛된 것에 열심을 내던 모압에게 생각 밖의 큰 심판이 임하였다(예레미야 17:5~6). 종말에도 십자가 보혈과 그 피로 산 말씀(계시록과 예언서) 사상 밖에서 열심을 내는 자들은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방 종교에도 구원이 있으니 서로 간에 존중하며 화합과 상생의 길을 도모하자고 말하는 모든 종교지도자들은 심판대상 1호가 된다.


『 7 네가 네 공작(工作)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취함을 당할 것이요 그모스는 그 제사장들과 방백들과 함께 포로 되어 갈 것이라 8 파멸하는 자가 각 성에 이를 것인즉 한 성도 면치 못할 것이며 골짜기는 훼파되며 평원은 파멸되어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로다 9 모압에 날개를 주어 날아 피하게 하라 그 성읍들이 황무하여 거기 거하는 자 없으리로다 』


모압의 죄는 "공작과 보물을 의뢰하였다"는 것과 "그모스 신"을 섬겼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뢰하는 것을 극히 미워하신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미신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은 저희가 의지하는 신을 없애 버리는 신이시다(이사야 3:1~3). 그모스는 모압의 거짓 신인데(민수기 21:29) 모압인들은 아이들을 우상 앞에 불태워 바치곤 하던 민족이다(열왕기하 3:27). 이와 같이 민족적인 우상숭배는 그 나라가 패망케 할 죄가 된다. 일본도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천조대신을 섬기다가 1945년 8월에 패망국이 되지 않았는가! 대한민국 장로교는 이 더러운 우상 앞에 엎드려 절하므로 하나님 앞에 대죄를 지어 놓고도 "장자 총회"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 건립 및 W.C.C. 단체에 적극 협조함으로 더 더욱 매맞을 짓을 쌓아가고 있다. 기독교가 이 죄를 진실로 회개하지 못한 채 더 큰 우상인 북방짐승 사상과 손을 잡아 주다가는 앞으로 큰 환난에 떨어지게 된다(계시록 13장).


『 10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당할 것이로다 11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의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치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그 그릇을 기울일 자를 보낼 것이라 그들이 기울여서 그 그릇을 비게하고 그 병들을 부수리니 13 이스라엘 집이 벧엘을 의뢰하므로 수치를 당한 것같이 모압이 그모스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로다 』


"여호와의 일"이란 은혜 때는 새 언약(예레미야 31:31~34)을 전함이요, 종말에는 새 일 역사를 전파함이다(예레미야 31:22~, 이사야 42:9, 43:19, 48:6). 계시록 10:7~11 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즈음에 일할 종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은 옛날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다시 예언하라는 것이다(계시록 10:7~11). 이 부탁을 불순종하는 자는 모압 사상을 가진 자이다. 영적 흑암이 전 세계에 덮인 지가 이미 46년이 되었으니 여호와의 새 일을 아는 자가 없고 사명자 이외에는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주님은 이사야 42:9 "새 일을 고하노라..." 이사야 43:19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사야 48:6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아니하겠느뇨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한 일을 네게 보이노니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셨다.


은혜시대는 심판하시는 때가 아니니 평안히 지냈으나(옛적 모압의 안일함을 생각하라) 북방 심판이 오는 날은 은혜의 말씀(천국복음)만으로는 환난을 피할 수가 없다는 예언이다.


북조 이스라엘이 벧엘에서 금송아지를 의지하다가 망한 것같이 종말의 기독교회가 살찌매 모압 사상이 들어와 여호와의 일은 태만히 하고 땅의 것만 찾다가 멸망할 것을 예언하심이다. 신명기 32: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이것이 다시 예언이요, 이것이 구약의 주변국들을 빗대어 종말에 교회를 겨냥하시는 예언의 기법이다. 율법과 시편과 예언서는 계시록과 더불어 종말의 기독교회가 반드시 먹어야 할 생명의 양식이다. 예언을 무시하면 북방 칼이 올 때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고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게 된다(이사야 8:20~22).


2. 육체의 힘과 의를 상실함 : 14~25


『 14 너희가 어찌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용사요 전쟁의 맹사라 하느뇨 15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같이 말하노라 모압이 황폐되었도다 그 성읍들은 연기가 되어 올라가고 그 택한 청년들은 내려가서 살육을 당하니 16 모압의 재난이 가까왔고 그 고난이 속히 임하리로다 17 그의 사면에 있는 모든 자여, 그 이름을 아는 모든 자여, 그를 위하여 탄식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부러졌는고 할지니라 18 디본에 거하는 딸아 네 영광 자리에서 내려 메마른 데 앉으라 모압을 파멸하는 자가 올라와서 너를 쳐서 네 요새를 파하였음이로다 19 아로엘에 거하는 여인이여 길 곁에 서서 지키며 도망하는 자와 피하는 자에게 일이 어찌 되었는가 물을지어다 』


사람들은 평안할 때에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편하고, 많이 가졌을 때 교만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만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불행과 비운을 내다 볼 줄 아는 것이 살 자의 지혜이다. 모압같이 사는 자는 "황폐""연기""살육""재난""고난"에 떨어진다. 선견자와 같이 이런 일을 내다볼 수 있다면 인간은 교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심판날에 본문을 멸시하는 자에게 글자 그대로 임할 터인데, 내용인즉 용사도, 맹사도, 청년들도 다 거꾸러지고, 그들의 소망이 허사가 되리라는 것이다.


『 20 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 너희는 곡하며 부르짖으며 아르논 가에서 이르기를 모압이 황무하였다 할지어다 21 심판이 평지에 임하였나니 곧 홀론과 야사와 메바앗과 22 디본과 느보와 벧디불라다임과 23 기랴다임과 벧가물과 벧므온과 24 그리욧과 보스라와 모압 땅 원근 모든 성에로다 25 모압의 뿔이 찍혔고 그 팔이 부러졌도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


심판은 공의의 말씀으로 행하시니 시온사상에서 빗나가면 누구든지 심판의 대상이 된다. "모압의 뿔이 찍혔고 그 팔이 부러짐"은 여호와의 심판이 실행되기 때문이다. 심판은 반드시 있으니 심판을 멸시치 말고 노아 때나 롯의 때를 깊이 생각해 보라.  새일성가 23장 "각성할 일"


3. 모압의 교만과 비탄 : 26~38


『 26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이는 그가 나 여호와를 거스려 자만함이라 그가 그 토한 것에서 굴므로 조롱거리가 되리로다 27 네가 이스라엘을 조롱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도적 중에서 발견되었느냐 네가 그를 말할 때마다 네 머리를 흔드는도다 28 모압 거민들아 너희는 성읍을 떠나 바위 사이에 거할지어다 깊은 골짜기 어귀에 깃들이는 비둘기같이 할지어다 29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 자고와 오만과 자긍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3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 노함의 허탄함을 아노니 그가 자긍하여도 아무것도 성취치 못하였도다 31 그러므로 내가 모압을 위하여 울며 온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으리니 무리가 길헤레스 사람을 위하여 슬퍼하리로다 32 십마의 포도나무여 너의 가지가 바다를 넘어 야셀 바다까지 뻗었더니 너의 여름 실과와 포도에 파멸하는 자가 이르렀으니 내가 너를 위하여 곡하기를 야셀의 곡함보다 더하리로다 33 기쁨과 즐거움이 옥토와 모압 땅에서 빼앗겼도다 내가 포도주 틀에 포도주가 없게 하리니 외치며 밟는 자가 없을 것이라 그 외침은 즐거운 외침이 되지 못하리로다 34 헤스본에서 엘르알레를 지나 야하스까지와 소알에서 호로나임을 지나 에글랏셀리시야까지의 사람들이 소리를 발하여 부르짖음은 니므림의 물도 말랐음이로다 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모압 산당에서 제사하며 그 신들에게 분향하는 자를 내가 그치게 하리라 』


모압이 취하게 됨은 여호와께서 "잠들게 하는 신"을 부어주심이다(이사야 29:10~16). 어느 시대나 말씀에 떠는 자는 권고하시지만 말씀에 떨지 않으면 유혹의 영을 부어주신다(이사야 66:1~5). 흑암에 빠진 자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참 종들을 조롱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거짓 종들에게 배척, 조롱을 받으시다가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성경대로 모든 수욕을 다 당하셨다. 이제 종말에 "모압 산당(협상주의 교회)에서 제사하며 그 신들에게 분향하는 자를 내가 그치게 하리라" 하심은 계시록의 말씀이 성취됨으로 이루어질 것인데, 곧 첫째 화가 오면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게 되며 협상교회는 후 3년 반 둘째 화에 빠져 쭉정이가 당할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예언이다.


『 36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피리같이 소리하며 나의 마음이 길헤레스 사람들을 위하여 피리같이 소리하나니 이는 그 모았던 재물이 없어졌음이니라 37 각 사람의 두발이 밀렸고 수염이 깎였으며 손이 베어졌으며 허리에 굵은 베가 둘렸고 38 모압의 모든 지붕에서와 거리 각처에서 애곡함이 있으니 내가 모압을 재미 없는 그릇 같이 깨뜨렸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예레미야 39장에서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잡혀갔던 것같이 종말에 기독교 안에서 모압 사상을 가진 자도 재미 없는 그릇 같이 깨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록한 말씀은 반드시 실행하는 분이시니 이 다림줄 곧 예언의 말씀이 없는 자들은 결국 용서 없는 심판을 받게 되고 말 것이다.


4. 적군의 침략과 말일의 회복 약속 : 39~47


『 39 아하 모압이 파괴되었도다 그들이 애곡하는도다 모압이 부끄러워서 등을 돌이켰도다 그런즉 모압이 그 사방 모든 자의 조롱거리와 두려움이 되리로다 4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그가 독수리같이 날아와서 모압 위에 그 날개를 펴리라 41 성읍들이 취함을 당하며 요새가 함락되는 날에 모압 용사의 마음이 구로하는 여인 같을 것이라 42 모압이 여호와를 거스려 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4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모압 거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임하나니 44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떨어지겠고 함정에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내가 모압의 벌 받을 해로 임하게 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5 도망하는 자들이 기진하여 헤스본 그늘 아래 서니 이는 불이 헤스본에서 발하며 화염이 시혼의 속에서 나서 모압의 살쩍과 훤화하는 자들의 정수리를 사름이로다 46 모압이여 네게 화 있도다 그모스 백성이 망하였도다 네 아들들은 사로잡혀 갔고 네 딸들은 포로가 되었도다 』


출애굽 때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모압 왕 발락이 모세의 칼에 죽었듯이(민수기 31:8) 종말에도 스룹바벨 역사를 대적하는 사상적 모압(66=짐승정권+음녀교권)에게는 용서없는 심판이 내리게 된다. 이유인즉 하나님은 뒤집어 엎는 종말에 스룹바벨을 종으로 택하여 당신의 인(印)을 삼겠다 하셨기 때문이다(학개서 2:21~23). 하나님의 인(印)은 머릿돌이요, 다림줄이니 이 사명이 누구의 손에 맡겨져 있는가를 깨닫는다면 하나의 사상으로 뭉쳐 적기독 정권과 교권을 심판하는 동방역사에 귀한 일꾼으로 쓰임받게 된다(스가랴 4:7~10).


『 47 그러나 내가 말일에 모압의 포로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모압을 심판하는 말씀이 이에 그쳤느니라 』


그러나 말일에 모압에게도 회복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이 예언대로144,000 명이 사자같이 일어나는 5개월 환란 때 세계적인 성령(늦은 비)의 역사가 임하여 환란 중에 택해진 양 떼들이 하나같이 회개하고 돌아와 새 시대에서 이스라엘 12지파의 노비(이사야 14:2)가 될 것이다(계시록 7:9~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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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610a_예레마야48장

[주일 오전 설교예레미야 48장 : 모압에 대한 예언 2018/06/10 Lord's day(Sunday) Morning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48장

제목 : 모압에 대한 예언


1. 모압이 받을 심판과 재화 : 1~13


『 1 모압에 대한 말씀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슬프다 느보여 그것이 황폐되었도다 기랴다임이 수치를 당하여 점령되었고 미스갑이 수치를 당하여 파괴되었으니 2 모압의 칭송이 없어졌도다 헤스본에서 무리가 그를 모해하여 이르기를 와서 그를 끊어서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자 하는도다 맛멘이여 너도 적막하게 되리니 칼이 너를 따르리로다 3 호로나임에서 부르짖는 소리여 황무와 큰 파멸이로다 』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딸들의 자손(잡족)인데, '약속'이 없는 저주받은 민족이다(창세기 19:30). "모압"이라는 단어가 종말을 고해놓은 예언서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종말에 교회 안에 모압사상이 만연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압의 사상을 가진 목자와 교인들은 이 말씀이 다시 예언될 때 하나같이 구약 모압이 당한 저주와 심판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모압은 예로부터 이스라엘과 숙적관계이다. 출애굽 때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므로 그들을 망하게 하려고 금전으로 발람 선지를 매수하여 초청하여 저주의 제사를 드리게 하였으나 실패하고 도리어 저주를 당한 일이 있었다(민수기 22~24장). 그 이후로도 모압 민족은 수 세기(世紀) 동안 이스라엘에게는 원수의 나라였다(사사기 3:12~30. 사무엘상 14:47. 사무엘하 8:2. 열왕기하 3:4~27. 역대하 20:1절~). 모압에 대한 예언은 민수기 24:17. 이사야 15장, 16장, 25:10~12. 아모스 2:1~3절에도 기록되었다.


"느보", "기랴다임" 등은 느보산 주변에 있는 도시들이다. "미스갑"은 산지(山地)인데 두 도시를 포함한 지방 이름으로 이곳은 모압의 요새(要塞)이다. 이 예언대로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파괴한 후에 모압과 싸워 그 족속을 점령하였다. 세계의 중앙은 모리아산인데, 그곳에 세워진 다윗왕국과 솔로몬 성전이 부패되므로 그 이웃 모든 이방 국가에도 동일한 심판이 임한 것이다. 종말에도 세계적인 영적 이스라엘 중에 중앙은 유다이니(한국) 유다에서부터 심판하여 전 세계에 시온산 정부가 이루어지게 하신다(계시록 11:15, 이사야 24:1~23, 이사야 65:17~24). 기독교회는 모압 사상을 멀리하고 오직 예수님의 부탁인 예언서를 읽고, 듣고, 지켜야 영혼구원과 더불어 환난날 육체구원을 얻게 된다. 그러나 대적자 마귀는 오늘날도 모압의 사상으로 참 이스라엘을 방해하러 나와 있고, 많은 어리석은 성직자들은 발람과 같은 음녀가 되어 발락을 따라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관하여는 계시록 2~3장 설교를 참조하라.


• 2절 : "모압의 칭송이 없어졌도다"라고 하신 것을 보니 교만한 사단의 역사가 한 때 칭송받을 만큼 대단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사야 16:6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의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 과장이 헛되도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높아지고 과장하여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말씀 앞에 100% 거꾸러지게 된다(잠언 16:18). "헤스본 무리가 그를 모해하여... " '헤스본'은 모압의 국경 도시인데 바벨론 군대가 모압을 정복하기 전에 그곳에서 전략을 꾸몄다고 한다. 이것은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을 반영시킨다.


• 3절 : "호로나임에서 부르짖는 소리여 황무와 큰 파멸이로다" '호로나임'은 남쪽으로 '소알' 가까이에 있는 도시로서 평원지대이다. 인간들은 좋은 장소와 풍족한 생활 여건을 좇아 모여 살며 이러한 인간들이 모인 곳은 자연스럽게 도회지로 성장하지만, 도시문화가 양산해내는 죄악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쌓이게 되면 남녀노소, 빈부귀천, 도농(都農)을 막론하고 용서 없는 심판이 내려진다.


『 4 모압이 멸망을 당하여 그 영아들의 부르짖음이 들리는도다 5 그들이 울고 울며 루힛 언덕으로 올라감이여 호로나임 내려가는 데서 참패를 부르짖는 고통이 들리도다 6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여 광야의 떨기나무같이 될지어다 』


"영아들의 부르짖는 소리" 전쟁의 비극이다. 모압의 사상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신뢰하는 사상이다. 그들은 실상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도 외인이 볼 때에는 대단한 열심과 경건이 있는 자로 오해할 만큼 강한 신앙적 색채를 띠는 자들이다(이사야 16:12).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열심은 멸망 받을 열심이다(로마서 10:2). 헛된 것에 열심을 내던 모압에게 생각 밖의 큰 심판이 임하였다(예레미야 17:5~6). 종말에도 십자가 보혈과 그 피로 산 말씀(계시록과 예언서) 사상 밖에서 열심을 내는 자들은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방 종교에도 구원이 있으니 서로 간에 존중하며 화합과 상생의 길을 도모하자고 말하는 모든 종교지도자들은 심판대상 1호가 된다.


『 7 네가 네 공작(工作)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취함을 당할 것이요 그모스는 그 제사장들과 방백들과 함께 포로 되어 갈 것이라 8 파멸하는 자가 각 성에 이를 것인즉 한 성도 면치 못할 것이며 골짜기는 훼파되며 평원은 파멸되어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로다 9 모압에 날개를 주어 날아 피하게 하라 그 성읍들이 황무하여 거기 거하는 자 없으리로다 』


모압의 죄는 "공작과 보물을 의뢰하였다"는 것과 "그모스 신"을 섬겼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뢰하는 것을 극히 미워하신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미신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은 저희가 의지하는 신을 없애 버리는 신이시다(이사야 3:1~3). 그모스는 모압의 거짓 신인데(민수기 21:29) 모압인들은 아이들을 우상 앞에 불태워 바치곤 하던 민족이다(열왕기하 3:27). 이와 같이 민족적인 우상숭배는 그 나라가 패망케 할 죄가 된다. 일본도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천조대신을 섬기다가 1945년 8월에 패망국이 되지 않았는가! 대한민국 장로교는 이 더러운 우상 앞에 엎드려 절하므로 하나님 앞에 대죄를 지어 놓고도 "장자 총회"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 건립 및 W.C.C. 단체에 적극 협조함으로 더 더욱 매맞을 짓을 쌓아가고 있다. 기독교가 이 죄를 진실로 회개하지 못한 채 더 큰 우상인 북방짐승 사상과 손을 잡아 주다가는 앞으로 큰 환난에 떨어지게 된다(계시록 13장).


『 10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당할 것이로다 11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의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치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그 그릇을 기울일 자를 보낼 것이라 그들이 기울여서 그 그릇을 비게하고 그 병들을 부수리니 13 이스라엘 집이 벧엘을 의뢰하므로 수치를 당한 것같이 모압이 그모스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로다 』


"여호와의 일"이란 은혜 때는 새 언약(예레미야 31:31~34)을 전함이요, 종말에는 새 일 역사를 전파함이다(예레미야 31:22~, 이사야 42:9, 43:19, 48:6). 계시록 10:7~11 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즈음에 일할 종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은 옛날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다시 예언하라는 것이다(계시록 10:7~11). 이 부탁을 불순종하는 자는 모압 사상을 가진 자이다. 영적 흑암이 전 세계에 덮인 지가 이미 46년이 되었으니 여호와의 새 일을 아는 자가 없고 사명자 이외에는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주님은 이사야 42:9 "새 일을 고하노라..." 이사야 43:19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사야 48:6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아니하겠느뇨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한 일을 네게 보이노니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셨다.


은혜시대는 심판하시는 때가 아니니 평안히 지냈으나(옛적 모압의 안일함을 생각하라) 북방 심판이 오는 날은 은혜의 말씀(천국복음)만으로는 환난을 피할 수가 없다는 예언이다.


북조 이스라엘이 벧엘에서 금송아지를 의지하다가 망한 것같이 종말의 기독교회가 살찌매 모압 사상이 들어와 여호와의 일은 태만히 하고 땅의 것만 찾다가 멸망할 것을 예언하심이다. 신명기 32: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이것이 다시 예언이요, 이것이 구약의 주변국들을 빗대어 종말에 교회를 겨냥하시는 예언의 기법이다. 율법과 시편과 예언서는 계시록과 더불어 종말의 기독교회가 반드시 먹어야 할 생명의 양식이다. 예언을 무시하면 북방 칼이 올 때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고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게 된다(이사야 8:20~22).


2. 육체의 힘과 의를 상실함 : 14~25


『 14 너희가 어찌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용사요 전쟁의 맹사라 하느뇨 15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같이 말하노라 모압이 황폐되었도다 그 성읍들은 연기가 되어 올라가고 그 택한 청년들은 내려가서 살육을 당하니 16 모압의 재난이 가까왔고 그 고난이 속히 임하리로다 17 그의 사면에 있는 모든 자여, 그 이름을 아는 모든 자여, 그를 위하여 탄식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부러졌는고 할지니라 18 디본에 거하는 딸아 네 영광 자리에서 내려 메마른 데 앉으라 모압을 파멸하는 자가 올라와서 너를 쳐서 네 요새를 파하였음이로다 19 아로엘에 거하는 여인이여 길 곁에 서서 지키며 도망하는 자와 피하는 자에게 일이 어찌 되었는가 물을지어다 』


사람들은 평안할 때에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편하고, 많이 가졌을 때 교만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만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불행과 비운을 내다 볼 줄 아는 것이 살 자의 지혜이다. 모압같이 사는 자는 "황폐""연기""살육""재난""고난"에 떨어진다. 선견자와 같이 이런 일을 내다볼 수 있다면 인간은 교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심판날에 본문을 멸시하는 자에게 글자 그대로 임할 터인데, 내용인즉 용사도, 맹사도, 청년들도 다 거꾸러지고, 그들의 소망이 허사가 되리라는 것이다.


『 20 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 너희는 곡하며 부르짖으며 아르논 가에서 이르기를 모압이 황무하였다 할지어다 21 심판이 평지에 임하였나니 곧 홀론과 야사와 메바앗과 22 디본과 느보와 벧디불라다임과 23 기랴다임과 벧가물과 벧므온과 24 그리욧과 보스라와 모압 땅 원근 모든 성에로다 25 모압의 뿔이 찍혔고 그 팔이 부러졌도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


심판은 공의의 말씀으로 행하시니 시온사상에서 빗나가면 누구든지 심판의 대상이 된다. "모압의 뿔이 찍혔고 그 팔이 부러짐"은 여호와의 심판이 실행되기 때문이다. 심판은 반드시 있으니 심판을 멸시치 말고 노아 때나 롯의 때를 깊이 생각해 보라.  새일성가 23장 "각성할 일"


3. 모압의 교만과 비탄 : 26~38


『 26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이는 그가 나 여호와를 거스려 자만함이라 그가 그 토한 것에서 굴므로 조롱거리가 되리로다 27 네가 이스라엘을 조롱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도적 중에서 발견되었느냐 네가 그를 말할 때마다 네 머리를 흔드는도다 28 모압 거민들아 너희는 성읍을 떠나 바위 사이에 거할지어다 깊은 골짜기 어귀에 깃들이는 비둘기같이 할지어다 29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 자고와 오만과 자긍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3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 노함의 허탄함을 아노니 그가 자긍하여도 아무것도 성취치 못하였도다 31 그러므로 내가 모압을 위하여 울며 온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으리니 무리가 길헤레스 사람을 위하여 슬퍼하리로다 32 십마의 포도나무여 너의 가지가 바다를 넘어 야셀 바다까지 뻗었더니 너의 여름 실과와 포도에 파멸하는 자가 이르렀으니 내가 너를 위하여 곡하기를 야셀의 곡함보다 더하리로다 33 기쁨과 즐거움이 옥토와 모압 땅에서 빼앗겼도다 내가 포도주 틀에 포도주가 없게 하리니 외치며 밟는 자가 없을 것이라 그 외침은 즐거운 외침이 되지 못하리로다 34 헤스본에서 엘르알레를 지나 야하스까지와 소알에서 호로나임을 지나 에글랏셀리시야까지의 사람들이 소리를 발하여 부르짖음은 니므림의 물도 말랐음이로다 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모압 산당에서 제사하며 그 신들에게 분향하는 자를 내가 그치게 하리라 』


모압이 취하게 됨은 여호와께서 "잠들게 하는 신"을 부어주심이다(이사야 29:10~16). 어느 시대나 말씀에 떠는 자는 권고하시지만 말씀에 떨지 않으면 유혹의 영을 부어주신다(이사야 66:1~5). 흑암에 빠진 자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참 종들을 조롱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거짓 종들에게 배척, 조롱을 받으시다가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성경대로 모든 수욕을 다 당하셨다. 이제 종말에 "모압 산당(협상주의 교회)에서 제사하며 그 신들에게 분향하는 자를 내가 그치게 하리라" 하심은 계시록의 말씀이 성취됨으로 이루어질 것인데, 곧 첫째 화가 오면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게 되며 협상교회는 후 3년 반 둘째 화에 빠져 쭉정이가 당할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예언이다.


『 36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피리같이 소리하며 나의 마음이 길헤레스 사람들을 위하여 피리같이 소리하나니 이는 그 모았던 재물이 없어졌음이니라 37 각 사람의 두발이 밀렸고 수염이 깎였으며 손이 베어졌으며 허리에 굵은 베가 둘렸고 38 모압의 모든 지붕에서와 거리 각처에서 애곡함이 있으니 내가 모압을 재미 없는 그릇 같이 깨뜨렸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예레미야 39장에서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잡혀갔던 것같이 종말에 기독교 안에서 모압 사상을 가진 자도 재미 없는 그릇 같이 깨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록한 말씀은 반드시 실행하는 분이시니 이 다림줄 곧 예언의 말씀이 없는 자들은 결국 용서 없는 심판을 받게 되고 말 것이다.


4. 적군의 침략과 말일의 회복 약속 : 39~47


『 39 아하 모압이 파괴되었도다 그들이 애곡하는도다 모압이 부끄러워서 등을 돌이켰도다 그런즉 모압이 그 사방 모든 자의 조롱거리와 두려움이 되리로다 4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그가 독수리같이 날아와서 모압 위에 그 날개를 펴리라 41 성읍들이 취함을 당하며 요새가 함락되는 날에 모압 용사의 마음이 구로하는 여인 같을 것이라 42 모압이 여호와를 거스려 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4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모압 거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임하나니 44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떨어지겠고 함정에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내가 모압의 벌 받을 해로 임하게 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5 도망하는 자들이 기진하여 헤스본 그늘 아래 서니 이는 불이 헤스본에서 발하며 화염이 시혼의 속에서 나서 모압의 살쩍과 훤화하는 자들의 정수리를 사름이로다 46 모압이여 네게 화 있도다 그모스 백성이 망하였도다 네 아들들은 사로잡혀 갔고 네 딸들은 포로가 되었도다 』


출애굽 때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모압 왕 발락이 모세의 칼에 죽었듯이(민수기 31:8) 종말에도 스룹바벨 역사를 대적하는 사상적 모압(66=짐승정권+음녀교권)에게는 용서없는 심판이 내리게 된다. 이유인즉 하나님은 뒤집어 엎는 종말에 스룹바벨을 종으로 택하여 당신의 인(印)을 삼겠다 하셨기 때문이다(학개서 2:21~23). 하나님의 인(印)은 머릿돌이요, 다림줄이니 이 사명이 누구의 손에 맡겨져 있는가를 깨닫는다면 하나의 사상으로 뭉쳐 적기독 정권과 교권을 심판하는 동방역사에 귀한 일꾼으로 쓰임받게 된다(스가랴 4:7~10).


『 47 그러나 내가 말일에 모압의 포로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모압을 심판하는 말씀이 이에 그쳤느니라 』


그러나 말일에 모압에게도 회복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이 예언대로144,000 명이 사자같이 일어나는 5개월 환란 때 세계적인 성령(늦은 비)의 역사가 임하여 환란 중에 택해진 양 떼들이 하나같이 회개하고 돌아와 새 시대에서 이스라엘 12지파의 노비(이사야 14:2)가 될 것이다(계시록 7:9~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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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603b_예레미야45장

[주일 오후 설교예레미야 45장 : 바룩에 대한 유훈 2018/06/03 Lord's day(Sunday) Afternoon

2013년 5월 26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45장

제목 : 바룩에 대한 유훈


1. 바룩의 비탄 : 1~3


『 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제 사년에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이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니라 때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하여 가로되 2 바룩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3 네가 일찍 말하기를 슬프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치 못하다 하도다 하셨고 』


1~3절의 내용을 볼 때 예레미야서가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가 들려준 대로 "바룩"이 기록한 것이다. 바룩이 일찍이 말하기를 "슬프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치 못하다"라고 한 사실을 지적함과 동시에, 이와 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바룩에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위로의 말씀을 전파하신다. 참 선지자를 도와주는 자에게도 선지자에게와 같은 고난이 있다는 것을 교훈한다.


2. 선지자 예레미야의 답 : 4~5


『 4 또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나의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나의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이러하거늘 5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그러나 너의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로 생명 얻기를 노략물을 얻는 것 같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


여호와께서는 상심한 바룩을 위로하시기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① 하나님의 주권을 기억하고 생각하라 (4절하반).

② 온 세상이 죄로 인하여 환난을 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③ 대사를 경영치 말라 -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니 인간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철저히 의탁하라.


모든 육체가 재앙을 받고 천만인이 쓰러지는 재앙 중에라도 "내가 너로 생명 얻기를 노략물을 얻는 것 같게 하리라" 하신 말씀은 바룩에게 슬픔과 고난을 이길 힘을 주고 있다. 종말의 사명자들의 심령에도 바룩의 비탄과 같은 비탄이 임할 것이나 오늘 말씀하신 "생명 구원의 약속"에서 우리는 모든 풍파를 이길 소망을 얻게 된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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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전 설교예레미야 44장 : 예레미야 최후의 예언 (하늘여신 우상) 2018/06/03 Lord's day(Sunday) Morning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스룹바벨선교회 "Zerubbabel mission" http://www.headstone.pe.kr

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44장

제목 : 예레미야 최후의 예언


1. 황폐의 원인은 우상숭배 : 1~6


『 1 애굽 땅에 거하는 모든 유다인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거하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모든 재앙을 보았느니라 보라 오늘날 그것들이 황무지가 되었고 거하는 사람이 없나니 3 이는 그들이 자기나 너희나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나아가 분향하여 섬겨서 나의 노를 격동한 악행을 인함이라 4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치 말라 하였어도 5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므로 6 나의 분과 나의 노를 쏟아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살랐더니 그것들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고 적막하였느니라 』


애굽에 사는 '악한 무화과'들의 우상숭배가 얼마나 강퍅한 죄악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본국에 있을 때 자기 동포들이 우상숭배로 인해 멸망 받은 것을 목격하고서도 애굽 땅에까지 도망온 자로서 또 다시 우상숭배를 행하는 이 모습이란..... 이것이 바로 인간의 패역이다. 그들의 죄는 ①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 곧 사단에게 분향한 것과(3절) "종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경고가 있었음에도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회개치 않은 강퍅함이다.


유다 땅에서 제1, 제2계명을 범하여 북방 칼을 맞고 패망한 유다의 역사! 이 가슴 아픈 수치의 역사를 체험하고도 선지의 말을 어겨가면서까지 애굽에 왔다면, 수치와 상처가 아무는 동안에 근신하며 자중해야 함이 옳지 않겠는가? 그러나 뼛골 속 선악과의 기질은 상황을 봐주지 않고 튀어 나와 인간의 육신과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것이다. 이 원죄악이 오늘도 "거듭났다" 자랑하는 기독교인의 뼛골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패역 때문에 유다의 남은 자들마저 재차 북방 칼에 상하여 씨가 말라진 이 비극은 '구약의 비극'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들의 역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언이 되어 오늘날의 기독교 안에서 그대로 이루어질 일인 것이다. 인간 종말에 모든 예언서가 등불이 되어 밝혀질 때, 기독교계 안에서도 예레미야서의 일들이 재연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발견된 선악과의 악질, 곧 범죄와 패역은 아직 소멸되지 않고 우리 속에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종말에는 마귀의 전술이 고급화되고 교묘해져서 기독교계 스스로는 자신의 패역을 잡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언의 등불이 들어가는 곳마다 흑암이 빛 앞에서 자신의 정체가 폭로되므로 깨달아 화를 피할 자들이 다수(多數) 나오게 된다. 고로 마귀는 계시록과 선지서! 즉 예언의 등불만은 읽히지 못하도록 총 궐기하여 교계의 지도층 속에 들어가 마태복음부터 유다서까지만 사모하도록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의 정치-종교적인 모든 범죄들은 종말의 예루살렘 성읍(기독교)에서도 각종 가증한 형태로 이면화되어 나타난다. 구약성경은 종말에 발생할 인간의 패역을 미리 앞당겨서 '보이고', '교훈하신'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악마가 득세하는 21세기에는 '예언서'가 아니고서는 이 시대의 흑암을 물리칠 수 없다(하박국 1:1~8, 2:1~4). '인간 종말의 시대'는 하나님의 7대법 중 '예언의 법'이 집행될 시기이므로, 예언의 등불을 밝히지 못하고 애굽 사상으로 치우치면 새 시대에 들어갈 권리를 박탈당함과 동시에, 예언을 가감한 그 죄로 육체가 북방 칼에 맞아 죽고(이사야 1:20), 그 영혼까지 1,000년간 옥에 갔다가 '마지막 부활(계시록 20:11~)' 때 예수님의 피 공로로 벌거벗은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이 미리 보이신 공의의 법이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하신 말씀의 참된 의미는 노아 때에 이미 종말을 고해 놓았다는 뜻이다(누가복음 17:26. 베드로전서 3;18~20).


지금은 교계에 깊은 흑암이 역사하므로 '십자가'만으로 다 된 줄 아는 교만이 도리어 '의로움'으로 인정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피로 산 말씀'인 예언서를 무시한 성도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ㄱ) 육체는 북방 칼에 죽고(구약 선민이 선지자의 말을 반대하다가 북방에 잡혀간 것을 추억하라! - 예레미야 39:1~10).


ㄴ) 몸이 사는 회복된 에덴 천년왕국이 펼쳐지는 기간 동안 예언의 법을 무시한 죄의 대가로 옥에 가 있다가


ㄷ) 백보좌 심판 때 영생의 부활로 일어나 천국에 들어가는 과정을 걷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위 '천국'이란 제8천년기부터 펼쳐지는 영원무궁세계를 뜻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새 일 제7천년기의 땅! 곧 '회복된 에덴'을 차지하라고 주신 말씀이다. 이를 아는 자의 수효가 교회 중에 심히 적으므로 이 시대의 교회는 '북방 칼'에 호되게 얻어 맞게 되는 것이다. 지금 교회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절에 기록된 바울 사도의 편지에서 더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더 세밀하고 정확한 묵시인 요한계시록을 주셨는데도 말이다. 때를 따라 양식을 주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마태복음 24:45~). 때에 따른 양식을 제대로 받아 먹는 자만이 복이 있다.


2. 애굽에 거하는 유다의 남은 자도 우상숭배 : 7~14


『 7 나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 유다 중에서 너희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 먹는 자를 멸절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게 하려느냐 8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의 소위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너희의 가서 우거하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끊어버림을 당하여 세계 열방 중에서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9 너희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한 너희 열조의 악과 유다 왕들의 악과 왕비들의 악과 너희의 악과 너희 아내들의 악을 잊었느냐 10 그들이 오늘까지 겸비치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열조 앞에 세운 나의 법과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느니라 』


본토민이 잡혀 간 원인이 우상숭배임을 말씀하신 데 이어 지금부터는 도망한 유다의 남은 자들을 향한 최후 예언을 시작하신다. 총독 살해사건으로 인해 화가 났을 북방이 두려워(41:1) 애굽으로 도망온 유다 백성이 이방 땅에 와서까지 우상을 숭배하는 기막힌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탄식하신다. 하나님은 이 기막힌 현실을 다음의 3가지 질문 형식으로 표현하셨다.


① 너희가 "멸절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게 하려느냐?" (7절).


② 하나님 앞에 "끊어버림을 당하여 세계 열방 중에서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8절).


③ 유다에 거하던 백성이 하나님의 벌(북방 바벨론 환난)을 자초한 "이전 죄악(유다 땅에서 행한 죄)들을 벌써 잊었느냐?" (9절).


그들은 이전 죄악들을 벌써 잊은 걸까? 생각만 해도 소름끼칠 무서운 북방 재앙을 당한 것은 모두 저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는 '우상' 섬김에 있었거늘, 어찌 유다의 남은 자가 또 다시 '우상' 앞에 분향하게 된 것일까? 축복으로 택함받은 민족이 저주의 칼에 상하였다면, 매맞은 원인을 생각하며 한없이 통회케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 터인데, 화를 피하고 '남은 백성'까지도 원죄악의 고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사단의 공격을 당하여 교만(43:2)과 패역으로 떨어져 버릴 때 하나님의 마음은 한없이 찢어졌던 것이다.


오늘날은 어떠할까? 이 시대는 예레미야서의 경고(북방환난)로부터 안전지대에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모든 말씀을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시록 10:11). 북방에서 끓는 가마(예레미야 1:13)가 남을 향해 기울어진 인간 종말의 형편이 유대민족의 역사에 녹아져 있는 것이니 그들의 패역과 교만은 오늘날의 패역과 교만인 것이다. 고로 본문 7~9절을 이 시대에 다시 외치면 이러하다.


"은혜받은 교회여, 백성의 지도자들이여, 너희는 북방 칼에 멸절당하므로 피로 산 백성이 이 땅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하려느냐?"


"피로 산 교회여, 하나님이 없다 하는 무신론 짐승 세력과 이방신을 섬기는 우준한 백성들 앞에서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일제침략과 6.25 전쟁을 겪고서도 그 환난을 불러들인 죄악(기독교박해, 신사참배)을 회개치 못하고 어찌 더 큰 죄악(공산당 협상)을 용납하는 것이냐?"


지금 기독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어째서 성경을 손에 든 (은혜로 택한) 백성이 구약 종말이 인간종말을 미리 보여주신 사건임을 이리도 더디 믿는단 말인가? (이사야 46:10. 로마서 15:4. 히브리서 10:1. 고린도전서 10:6,11). 예수님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이사야 19:1~),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때(이사야 59:19)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 당신을 영접케 하려고 세워 주신 '애굽 땅 중앙제단'(이사야 19:19), 엘리야 제단(말라기 4:5)에서 예레미야서의 메시지를 힘써 다시 외치고 있건만, 아무도 듣지 않고 있다. 이 좋은 꼴을 어서 받아 먹고 남에게 전파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이 마당에, 이 좋은 꼴을 자기도 먹지 않을 뿐더러 남까지 먹지 못하도록 발로 마구 짓밟는 사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다(에스겔 34:18). 사도들이 전하지 못한 '남은 좋은 꼴'과 '남은 맑은 물'은 누구를 통해서건 이 시대에 100% 다 전파되어야만 하는데(계시록 10:7. 누가복음 24:44. 마태복음 5:17) 이 일에 누가 나설 것인가?


종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교만히 행하던 구약 교회가 저주를 받아 멸망하였다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계시록 10:7)이 다시 예언될 때 다시 듣지 않는다면, 그 교만함으로 인하여 다음의 저주 예언으로 떨어지게 될 것은 분명한 일 아닌가? (예레미야 26:5~6).


『 11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재앙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며 12 내가 또 애굽 땅에 우거하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리라 13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같이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니 14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는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남아서 그 사모하여 돌아와서 거하려는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도피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


위 말씀을 보니 이제 남은 백성이 '멸망할 사실'은 (용서의 여지가 없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차원의 일이 되어 버렸다. ① 온 유다를 끊어버리겠다 하셨고(11절) ② 남은 자들을 취하여 엎드러뜨리겠다 하셨으며(12절) ③ 백성을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게 하여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라 선포하셨기 때문이다(12~13절). 이는 회개를 유도하기 위한 경고 차원의 말씀이 아니라, 교만을 징계하기 위한 무서운 심판 선언적인 말씀들이다. 이는 당신의 진노를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이다.


교회가 범죄할 때 거룩한 성(聖城) '예루살렘'이라도 치셨거늘, 이방의 '애굽 땅'에서이랴! 시온산일지라도 채찍에 상하였다면 우상의 소굴이요 죄악의 땅인 애굽(계시록 11:8)은 더 강한 철채찍으로 훼파하실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을 성취하시고자 바벨론 군대를 애굽 땅에까지 보내어 징벌케 하셨으니, 이 일로 화려한 애굽뿐만 아니라 그곳에 거하던 유다의 남은 자들까지 완전히 소탕되었던 것이다(46:12, 26~). 하나님의 예언은 100% 성취되기 마련이다.


14절 : "도피하는 자들 외에는 (고토로)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 이미 4:6절에서 선포된 바 있는 예언으로서 북방환난을 피할 수 있는 길은 '기호 밑' '임마누엘 나래 밑'으로 도피하는 길뿐임을 시사한다.


이제 21세기에 '하늘 여신' 숭배사상에 물들어 있는 패역한 교계에서도 본 제단에서 외치는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나올 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를 갖고 있지 않던 이방의 순수한 사람들(이방족) 중에서 절실히 깨달고 돌아올 자가 오히려 더 많을 것이다. 흰 무리의 구성원 중 교회 밖의 사람들이 더욱 많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므로 급히 예수를 믿게 됨과 동시에 예비처로 인도되어 환난을 면케 되는 것이니, 출애굽 때의 역사와 같다. 마귀 정권과 마귀 교권과 각종 인본주의 체제에 잡혀 있는 하나님의 예정된 흰 무리를 다 찾아내기 위하여 뽑히움 받은 자들이 바로 세계 각국에 흩어져 존재하는 144,000명이다(미가서 5:7~9).


우리 시대에는 애굽화된 정치, 애굽화된 종교체제로부터 탈출하여 시온으로 "도피하는 자들"의 행렬이 이어질 것인데, 5개월간만 진행된다. 이것을 암시한 말씀이 바로 14절이며, 이들을 이끌어낼 종말의 선지자적 사명이 스룹바벨 제단에 초막절 역사로 연합될 세계 각국의 '우는 자들'이다(겔 9:4). 인간을 속이는 마귀의 권세가 이토록 강하지만 새 일의 용사들은 어서 어서 모여들어서 다림줄의 진리 잡고 합심단결 되어 보자! 억만 마귀가 일어나 우리를 훼방한들 무엇이 두려우랴!


패역과 살기로 가득 차 예레미야를 대적하던 유다의 남은 자들처럼, 오늘날의 교우들도 자신들의 탐심(우상)을 쳐서 예언하는 예레미야와 같은 우리들에게 돌을 집어 던질 것이나, 우리가 두려워 말고 저들에게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살리고픈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살아야 할 마지막 알곡까지 살려내고자 하는 아비(농부)의 마음(아모스 9:9)! 오직 그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다음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실제로 만날 수 있게 된다.


3. 그들의 반항과 선지자의 대답 : 15~24


『 15 때에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거하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16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17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정녕히 실행하여 우리의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방백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대저 그 때에는 우리가 식물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니 18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19 여인들은 가로되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에게 경배하는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


예레미야가 애굽으로 도망한 자들 속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지 말라"는 말씀을 전할 때 유다의 남은 자들이 발악하며 반대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백성의 상태를 분석해 보자.


① 예레미야를 반대하는 일에 남녀 모두가 일치 단결해 있고(15절), 우상사상에 깊이 빠져 있던 터라 양심이 마비된 채 너무나도 뻔뻔스러운 모습을 갖고 있다. 하나님 섬기는 일에는 하나될 줄 모르는 그들이 어찌하여 우상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이토록 강력한 일치 단결력을 보이는가? 과연 사단의 마력이 아닐 수 없다.


② 그들은 참 선지자의 예언을 불청(不聽)하고 자신들이 분향하는 "하늘 여신"을 섬기며그 앞에 서원한 대로 강행하리라 한다. 예레미야에게 철저히 맞서고 있는 모습이다(16~17上). 이 패역자들의 도전적인 입술은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방백들이 유다 성읍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말하고 있다(17절). 3~5절, 9절에 있는 진리의 경고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이다.


이들이 참 선지자를 반대하는 이유는 17下~18절이 증거한다. "대저 그 때에는 우리가 식물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니 18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던 시절에는 식물이 풍부하였는데, 그것을 폐지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이 찾아왔다고.....? 과연 이 말은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요, 마귀가 시키는 거짓말이다!


진리에 비추어 보면 그들의 말이 거짓인 것이 금방 드러나고 만다. 참된 종교(신앙) 생활이란 '하나님 제일주의'로서 이방종교와 같이 이 세상에서의 복리(福利)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로 현재에도 "예수님만 제대로 믿으면 부자가 안 될 수 없다. 예수 믿고도 가난한 것은 잘못 믿어 그렇다" 하는 설교는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자의 설교가 아닐 수 없다).


이 시대에는 다음 말씀이 정통이다!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9:58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의 삶은 우리 대장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과도 상반된다. 우상숭배가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에 한재가 임했던 것은 부인치 못할 사실인데(열왕기상 17:1~16. 예레미야 14:1~6), 그들은 눈이 짧아 오히려 자기들이 "하늘 여신"을 섬길 때는 재앙이 없었다고 우기며 거짓말을 해대고 있다(요한복음 8:44). "다른 신들"과 그 중 하나인 "하늘 여신"을 섬긴 결과로 피 터지게 맞아놓고서도 소경, 귀머거리 독사가 되어 우상을 섬길 때는 복이 쏟아졌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는 생명의 경고를 듣지 않겠다는 뜻이다(시편 58:3~5). 이들은 하나님께서 회개 하기를 바라며 참고 기다리시던 시기를 (재앙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복을 받던 평안의 시기로 오해하고 있다. 이러한 오해와 무지로부터 터져 나오는 불만과 불평 또한 마귀에게 사로 잡힌 불택자들의 주특기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선지자 단체로서

예레미야 44장을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한다!


우리가 진정 이 시대의 파수꾼인지 아닌지는 이 예언이 가서 꽂혀야 할 대상이 우리 앞에 나타나 우리를 괴롭히는지 아닌지로 판명될 것이다. 이사야서를 깨달은 종말의 사명자들이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쓰고 '북방에서 노략이 속히 온다'는 증거를 시작할 때는(이사야 8:1~4) 심판을 앞둔 종말의 시기이다. 이 때 '유다'의 사명을 행할 백성 중에 말씀(실로아 물)을 버리고 친 북방(르신, 르말리야) 사상으로 기울어 범죄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앗수르(러시아) 왕이 유다 목에까지 치고 올라올 것이 예언되어 있고(8:6~8), 이 환난이 유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대될 것과(9), 이 때 하나님은 시온의 피할 곳이 되어주시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라 하셨다(14). 고로 척량줄을 들고 '이스라엘의 두 집'을 순행해보면 "하늘 여신"을 숭배하는 범죄가 우리 눈에 발견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두 집'은 어디를 말하는 걸까? - 구약 때는 사마리아(오홀라)와 유다(오홀리바)를 뜻하지만 -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가 다시 예언되는 인간 종말에는 바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는 큰 집(구교)과 작은 집(신교) 곧 '가톨릭'과 '개신교' 단체가 되는 것이다(이면화). 이제 '가톨릭'과 '개신교' 두 집안 사람들은 '큰 서판'을 취하여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하신 묵시(이사야 8:1), 곧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하신 지체치 아니할 묵시의 말씀(하박국 2:2~3)이 녹음테잎과 서책과 인터넷으로 공개되고 있는 이상, 이 예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남은 자'가 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야의 둘째 아들인 마헬살랄하스바스의 역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니라" 하셨기 때문이다. 순종하면 살지만, 거절하여 배반하면 이 말씀에 걸려 넘어져 북방 칼이 내려오는 그 날, 비참히 쓰러지게 된다(이사야 1:19~20).


5대강국 때 세워진 다림줄(먹그릇) 가진 중앙제단! (이사야 19:18~20). 본 제단에서 파수꾼의 눈을 갖고 교회 위에 다림줄을 드리워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들을 살펴보니(에스겔 9:4), 이스라엘의 '큰 집'인 가톨릭 안에서 가증한 '하늘 여신 숭배'가 잡혀 나왔다. 이제 보라! 이들이 행하는 여신 숭배의 상태는 위험수위를 넘어서 멸망의 지경에 가 있음을 발견케 될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제2권


다음은 7장에 이어 가톨릭에서 출판한『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2권』(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작, 하 안또니오 신부 옮김. 푸른군대 한국본부 펴냄) 에 담겨진 내용들을 발췌 나열한 내용이다. 글의 번호는 편집자가 편의상 메겨 놓은 것이며, 각 문장은 위 책의 본문과 일점 일획도 틀리지 않음을 밝힌다. 이미 7장에서 예언된 "하늘 황후"가 44장에서는 "하늘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음을 읽을 때 독자들은 가톨릭의 마리아 신심(信心)이 일반인이 알고 있는 상식선을 뛰어넘어 고도의 '우상숭배' 지경에 도달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먼저 묵주기도(로시리오 기도) 끝에 올리는 '성모찬송'을 소개함으로 가증한 여신숭배 고발을 시작한다.


성모찬송


"하례하나이다. 천지의 모후여, 우리의 생명이시요, 기쁨이시며, 희망이신 자비의 어미니여, 하례하나이다. 귀양살이 하는 에와(하와) 자손이 눈물의 골짜기에서 울며, 탄식하며 어머니를 부르나이다. 우리의 변호자이신 어머니여, 그 어지신 눈으로 우리를 굽어보소서. 이 귀양살이가 끝난 다음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 예수를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너그러우신 마리아여, 자애로우신 마리아여, 어지신 동정 마리아여. 천주의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시어, 그리스도의 언약하신 바를 얻게 하소서. 기도합시다. 천주여, 외아드님이 당신 생애와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갚음을 마련하셨나이다. 이 신비를 묵상하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로사리오를 바치오니, 우리로 하여금 그 내용을 본받고, 언약된 바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편집자 주: 기도 첫 부분에 '천지의 모후'라는 단어에 주목하고, 중반부의 '아드님 예수를 우리에게 보여주소서'라 한 내용에 주목하라. 보여줄 수 있는 자가 보여지는 대상보다 높음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기도 마지막에 '예수'가 빠진 그냥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하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합해 볼 때, 이 기도문은 마귀에게 올려지고 있는 기도임이 분명해진다. 가톨릭은 몇 년 전 성경에서 '야훼'(여호와)라는 칭호를 모두 삭제하고 대신 '주님'으로 고쳐놓았으며, 이렇듯 기도 끝에 붙여져야 할 '예수'라는 가장 귀한 이름(사도행전 4:12)조차 빼놓은 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 마리아가 천지(하늘과 땅)의 모후로 둔갑했으며, 어찌하여 마리아가 그 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말고 할 위치에까지 가게 된 것인지, 지금부터 차근히 밝혀내 보려 한다. 생각하면 할 수록 가슴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 무서운 "하늘 여신" 숭배사상이다.


모든 단어는 가톨릭 교회가 쓰는 용어를 그대로 인용하였으며, 매 번호 옆 (  ) 안은 다뤄진 내용을 압축한 주제어이다.


1. (은총의 통로) "하느님께서는 마리아께 당신 모든 은총의 보관, 관리, 분배의 소임을 위탁하셨기에, 하느님의 은총과 선물은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나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그 권한으로, 영원하신 성부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덕과 성신(성령)의 선물을 당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당신의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보내 주신다'고 베르나르도 성인은 가르칩니다." (10번 참조)


2. (천상 어머니) "어린이라면 누구나 본성상 어머니와 아버지의 보호 아래 삽니다. 은총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참된 자녀가 되려면, 하느님을 아버지로,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누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되어 영광으로 여긴다고 말하면서도 마리아께 진실한 자녀로서의 사랑을 표해 드리지 않는다면, 이는 거짓이며 그가 모신 아버지께 불경이 되는 것입니다."


*** 우리를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장성시키며 양육시켜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 보내주신 성령이시다. 그런데 가톨릭은 성령의 자리에 교묘히 마리아를 앉혀 놓고 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마리아를 하늘 모후(어머니)로 모시지 않고 있는 전 세계의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은 '교회의 참된 자녀'에서 제외된다. 서강대 등, 예수회가 운영하는 대학의 교양필수 과목 중 예수회 신부들이 강의하는 수업내용을 살펴보면, 가톨릭 이외의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일례 과목명: 서강대 그리스도교 사상). 그들은 겉으로는 '통합'과 '화합', '종교간 대화와 타협'을 외치고 있으나, 실제 그들의 교리로 들어가보면 아무리 성경대로 믿는 신실한 개신교회라도 그들에게는 가톨릭에서 가지 쳐 나간 '이단'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마지막 때 막대한 재력과 권력을 소유한 가톨릭이 짐승(정권)과 야합할 경우, 그네들의 교리를 벗어난 모든 신실한 성도들을 심하게 핍박하리라는 것을 자연스레 예상해 볼 수 있다.


3. (성령의 베필) "성신께서는 마리아를 당신 배필로 삼으셔서,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에 의해서, 마리아로부터, 당신의 위업인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탄생케  하셨으니, 당신 정배의 말을 거절해 본 일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신비스런 방법으로 간선자(揀選子:분간하여 뽑힘받은 자=간택자)들을 뽑아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사도들을 위해 간구하셨고, 또한 오늘날 우리들을 위해 친히 간구하고 계신 분은 오직 성령님이 뿐이신데, 가톨릭은 이 역할이 성령의 정배라 표현한 마리아의 특권인 것처럼 조작하고 있다. 정배(正配)란 장가처, 적처(嫡妻) 곧 '혼례식을 치르고 맞은 아내'를 뜻하는데, 혼인잔치의 주인공은 예언의 등불을 높이 든 '지혜로운 다섯처녀'이지, 마리아라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마태복음 25:4,10. 계시록 19:7~9).


4. (영적 양분의 근원, 양육자) "마리아는 우리 영혼을 기르시고 하느님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각별한 임무와 권한을 부여 받으셨습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모든 간선자가 생활하고 있는 동안에는 마리아의 태내에 숨겨져 있는 것과 같아서, 복된 어머니께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다시 낳으실 때까지는 실제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아기에 그 어머니의 젖이 가장 좋듯이, 모든 간선자도 마리아로부터 그 모든 영신의 영양분과 힘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통달케 하시는 이도 성령 이시요(요한복음 16:13, 2:27. 고린도전서 2:10, 13), 고치시고 인도해주시는 분도 성령이시요(로마서 8:13~14), 완전히 결실케 하시는 분도 성령이시다(갈라디아서 5:22). 그리스도와 같은 완전한 인격에 이르도록 장성시켜 주시는 분도 성령이시요(에베소서 4:13~17),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이도 성령님뿐 이시다(요한복음 14:16). 우리로 예수를 영접토록 인도하시는 분도 성령님이시지만,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을 듣고 예수를 마음에 영접하는 순간 우리 안에 내주하시어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므로(사도행전 10:44~46), 성령께서는 마리아에게 우리 영혼을 기를 권한을 이양하실 어떠한 이유도 없으며, 우리가 예수께로 가기 위해 마리아를 거쳐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다. 가톨릭은 '그 아기에 그 어머니의 젖'을 운운하면서 신자들이 마리아로부터 영혼의 영양분과 힘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이는 성경에서 아주 멀리 떠난 '다른 복음'임이 확실하다(갈라디아서 1:6~8). 누가복음 11: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영적 양분은 '마리아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설교를 통하여 확실히 못박으셨다.


5. (원죄 없음) "마리아는 하느님의 뛰어난 주형(鑄型)으로서, 성신에 의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합체시켜 내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우리 인류도 하느님과 일치시켜 내십니다. 그 주형 안에서 다시 주조되기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진실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상을 입게 됩니다. 이는 나약한 인간에게 적합하고 부드러운 방법으로서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상을 그대로 본뜰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티끌 만한 죄의 그림자도 없는 거룩하고 정결한 마리아에게는 마귀가 절대로 침범할 수 없기에, 그르칠 위험이 없는 안전한 방법인 것입니다."


*** (편집자 주: 가톨릭은 마리아가 어미 뱃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죄가 없이 잉태되었으며(무염시태), 태어나 지상에 살아 있을 동안도 어떤 죄도 범치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마리아를 일컬어 '인류를 하느님과 일치시켜 내는 자'라 하고 있다. 또한 마리아에게는 티끌 만한 죄의 그림자도 없고 거룩하고 정결하다 한다. 마귀가 이기지 못하는 분은 삼위의 하나님밖에 없는데, 마리아를 마귀가 절대로 침범치 못할 신의 경지에 올려 놓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가톨릭은 삼위일체의 신앙을 떠나 전적으로 '아세라 신앙'에 젖어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사사기 3:7. 열왕기상 14:15,23. 열왕기하 13:6, 17:9~10). 구약에서 보여지는 바알(태양)신과 아세라 여신 숭배사상은 신약으로 넘어와서는 가톨릭 안에서 '성체'와 '마리아' 숭배 형태로 재연되고 있다. 순교자의 동무 종인 우리들은 때가 되면 순교의지를 가지고 가톨릭 안으로 들어가 거짓 교리에 속고 있는 순진한 양 떼들을 살려낼 마음므로 다음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이사야 27:9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 함을 얻을 결과는 이로 인하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로 부숴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태양상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여기서 잠시 태양상에 해당하는 가톨릭의 '성체' 신앙을 소개한다.


먼저 '신영성체의 기도'를 소개한다 : "지극히 거룩하신 성사(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영하다 : 성체 먹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옵나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 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시옵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옵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현세에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가톨릭대사전에 소개된 '성체'를 소개한다) '성체' : 성체는 미사 중 성찬의 전례 부분에서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해져 한 가지 신비를 세 가지 측면에서 보여준다. 우선 성체는 세상 끝날까지 인간과 함께 계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된 '실재적'이며 '신체적' 현존이다(편집자주: 이 사악한 교리가 사람들을 성체 앞에 절하며 경배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성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즉, 미사성제를 통해 희생이 계속됨으로써(편집자주: 히브리서 7:27, 9:12,26절에 위배된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성체는 사랑의 일치를 보여준다. 즉 신자들은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영혼의 초자연적 생명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편집자주: 희고 둥근 빵쪼가리를 입에 넣음으로 영혼의 초자연적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무의미하다).


*** 포도주<피>와 떡<말씀>의 신령한 의미는 온데 간데 없고, 기업에서 만든 마주앙(상표이름) 포도주와 밀가루 떡 형상에 가짜 예수가 들어 앉아 경배를 받고 있으니 이 웃지 못할 희극은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이사야 9:16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6. (의탁의 대상) "자기의 능력과 기술만 믿는 조각가와 같이 통속적인 방법으로만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사람을 눈여겨 보십시오. 자기의 재간에만 의존하지 않고 마리아께 의탁하여 성신의 역사하심을 입은 유연하고 초탈한 사람과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전자에는 얼마나 많은 오점과 결함과 착각이 있으며, 얼마나 많은 암흑과 닦이지 않은 후박함이 스며 있습니까? 그러나 후자는 얼마나 순결하고 천상적이며 얼마나 그리스도를 잘 닮은 모습입니까?"


*** 에녹은 말씀과 동행하여 하늘에 올라갔고, 모든 선지자들이나 예수님 당신도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의 무기 하나로 승리하셨다(마태복음 4:4,7,10). 마태복음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예수님 당신이 그러하셨으니 포도나무 가지인 우리도 그렇게 하기만 하면 된다. 그밖의 것은 마귀와의 싸움에서 우리를 도와주지 못한다. 하나님의 뛰어난 주형(鑄型)인 마리아께 의탁하여야 천상 복에 참여한다는 교리는 기록된 말씀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는 '거짓 복음'이다.


7. (신의 낙원 / 거룩함 / 찬미의 대상) 마리아 찬미! "하느님의 위대함을 제외하고는, 하느님께 있어서 천상의 동정녀 마리아보다 더 위대한 피조물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천국에서 제일 높은 세라핌 천사들도 이에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편집자주: '하늘여신', '하늘황후' 사상이 잘 드러나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낙원이요 형언할 수 없는 세계로서 성자께서 그 안에 들어가셔서 신비를 행하시고 그를 보호하시면서 그 안에 의합하셨습니다. 나그네인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만드셨으며, 이 세상을 떠나 당신의 영광을 입은 사람들을 위해 천국을 만드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한 세계도 만드셨으니, 그것이 바로 마리아로서, 대부분의 인류에게뿐 아니라 더 높은 하늘의 천사와 성인들에게까지도 알려지지 않은 세계입니다. 이들은 하느님께서 자기의 세계인, 이 천상의 동정녀 마리아 안에 깊숙히 숨어서 멀리 계심을 보고, 신비스러운 놀라움에 가득 찬 나머지, 끊임없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하고 신비스러운 놀라움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가 무엇이 부족하여 마리아라는 피조물 속에 들어가 사신단 말인가? 이 얼마나 마귀적인 발상인가? 얼마나 황당한 사단의 조작인가? 마리아만을 노골적으로 찬미하고 싶으나 속여가며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살짝 끌어오는 저 간교함을 보라!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라고 외치는 건, 도대체 누구를 향한 외침인가? 동정녀 마리아 안에 깊숙히 숨어 있는 하느님(마귀)이 그렇다는 것인가? 하느님이 마리아 안에 깊숙히 숨겨져 있는 그 신비스러운(?) 사실이 그렇다는 것인가? 애매모호한 문장은 바른 지적을 피해가면서 (속여서 멸망케 할) 자신의 목적을 달성키 위한 마귀 제1의 전술인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언어혼란 전술에 능한 이유도 그들의 아비가 마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직히 말하자!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계시록 15:4). 성경 전체에서 '거룩하시다'라고 찬송된 대상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뿐이시다(시편 22:3, 77:13, 99:3, 5절, 9절. 계시록 6:10). 계시록 4:8 "네 생물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복된 처녀 마리아도 그녀의 기도에서 하나님만을 거룩하다 했고(누가복음 1:49), 그녀 자신이 정결 예식을 행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간 사실을 볼 때 마리아 역시 일반 죄인들과 다름 없는 죄인의 후손임을 잘 알 수 있다(누가복음 2:22). 그런데도 가톨릭은 마리아가 그 어머니의 탯속에 있을 때부터 죄가 없이 잉태되었고(무염시태), 평생을 죄없이 살았으며, 요셉과는 한 번도 동침한 적이 없는 '평생 동정녀'라고 칭송하고 있다. 심지어 마리아를 <모든 거룩함의 기준이자 근원>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마리아는 곧 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교회를 통하여 신자는 거룩함을 배우고, 완전히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를 거룩함의 기준이자 근원으로 여긴다" (가톨릭 교리문답 490쪽, 2030항).


거듭난 성도라면 누구나 성경의 마리아가 겸손하고 정직한 주의 여종인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가톨릭이 추앙하는 마리아는 '하늘 여신', '하늘 황후'로 변개된 마리아로서, 마귀가 조작해낸 마리아이지 성경의 마리아가 아니다. 마리아는 자기를 거룩하다 한 적이 없었고, 오직 하나님만 높이고 찬양하였다. 마리아가 낙원에서 이 땅을 내려다 본다면 가톨릭의 현 모습을 심히 가증히 여길 것이다. 누가복음 1: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 거짓 교리에 대해서는 29번에서 다루었다.


8. (성부의 거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마리아를 통해 더 가까이 더 합당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마리아 안에 오셔서 사십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어디서나 천사들과 천상 성인들의 양식이 되시지만, 마리아 안에서만 하느님의 자녀들의 양식이 되시는 것입니다."


*** 가톨릭의 교리를 살펴볼 때, 마리아가 없이는 하나님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재림론에 있어서까지 마리아가 없이는 예수님은 결코 이 땅에 재림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한 신으로 보인다. 간교하고 무서운 '재림론' 부분은 후반부에서 다루었다.


9. (일치-중재자 / 찬미의 대상) "마리아는 한낱 피조물이니, 하느님과의 일치의 길에 장애가 된다는 오류에 젖은 사람들과 같이는 생각하지 마십시오(편집자주: 우리를 두고 하는 마귀의 소리이다). 마리아 안에 살고 계신 분도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 홀로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께서 누리는 하느님과의 일치는 바오로 사도나 모든 성인들을 초월합니다. 하느님만을 위해 창조된 마리아는 우리를 당신 안에 묶어두기 보다는 오히려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시며, 당신과 일치하면 일치할수록, 더욱 더 하느님과 일치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마리아여!' 하고 부르면 마리아는 '하느님' 하고 부르시며 응답하시고, 우리가 엘리사벳처럼 '복되다' 이르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십니다. 우리가 엘리사벳처럼 마리아를 찬미하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십니다."


*** 찬미할 대상은 과연 누구인가? 신구약 66권 전체에서 '찬미'가 들어 있는 구절들을 모두 찾아 놓았으니 확인하라! '찬미'라는 단어는 오직 하나님께만 쓰였을 뿐, 마리아를 찬미하면 그 찬미가 하나님께로 돌려진다는 구절은 한 군데도 없다(마태복음 21:16, 26:30. 사도행전 2:47, 3:8~9, 16:25. 고린도전서 14:15. 에베소서 1:6,14, 5:19. 골로세서 3:16. 히브리서 13:15).


10. (은총의 통로) "하느님의 지혜에 의해 설정된 은총의 질서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만 은총을 분배해 주신다고 토마스 성인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로 나아가 일치하기를 원한다면 성자께서 사람이 되시어 그분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 통로를 이용해야만 합니다. 그 통로는 바로 마리아이십니다." (1번 참조)


11. (찬미, 봉헌의 대상) "마리아께 대한 완전한 신심은 자기 봉헌입니다. 성모 마리아께 더 많은 존경과 사랑과 신뢰와 영광을 바치는 것입니다. 매괴회나 서의회에 가입하고, 로사리오 기도를 한다든지,마리아의 상()이나 마리아의 상본을, 또는 마리아 제대를 공경하며, 드러나게 마리아를 찬미하고 마리아의 어떤 신심회에도 가입합니다."


*** 아예 십계명의 제2계명을 범하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명백한 마귀의 말이 아닌가? 평상시 죄와 악을 기막히게 은폐케 하는 변신과 사기의 천재 마귀가 어찌하여 이렇게 공개적으로 마리아의 상()이나 마리아 제대 공경하라고 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가톨릭 안에는 제2계명이 없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십계명과 관련된 내용은 7장의 "하늘 황후" 마지막 부분을 참조하라!


12. (봉헌의 대상) "완전한 봉헌!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전부 마리아의 것으로서 마리아께 완전히 바치면서, 동시에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또한 예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모든 것을 마리아를 통해서, 마리아와 더불어, 마리아 안에서 그리고 마리아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 우리의 구주시고 천지의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가톨릭의 교리에 의해 12번 문장에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있으시다.


13. (봉헌의 대상) "우리는 아무런 강요도 없는 완전한 자유와 사랑으로써 아무 조건 없이 우리 자신을 양도하고 봉헌하기 위해 어떠한 축일을 선택해서 몸과 영혼을, 외적인 소유물, 즉 집이나, 가족이나, 수입을, 그리고 내적이며 정신적 소유인 공로, 은혜, 덕과 보속을 바치는 것입니다."


*** 예레미야 7:18절과, 44:17,19절에 기록된 내용이니 하나님의 말씀은 놀랍도록 정확하도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생명)을 생명없는 마리아 상() 앞에 봉헌할 수는 없는 노릇!!!


14. (봉헌의 대상)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도록 우리의 모든 권리를 위임해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당신 뜻대로 당신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용하실 것입니다."


*** 우리를 이용한다는 것은 우리를 주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우리를 주관할 능력이 없다. 사람의 발걸음을 움직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예레미야 10:23. 잠언 16:9). 마리아가 자신의 뜻과 자신만이 아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마리아'를 여신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인하는 꼴이 된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라는 문구는 '사단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로 해석됨이 마땅하다.


15. (봉헌의 대상)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마리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은 완전한 헌신에 있습니다.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완전히 마리아의 것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 사단의 속성은 자꾸 무엇인가를 바치라는 것이다. 행위를 바치고, 시간을 바치고, 재물과 소유를 바치고, 심지어는 자기 자식의 생명까지도 바치라는 것이다! (신명기 12:31. 열왕기하 17:16~17. 역대하 28:3~4. 예레미야 7:31).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바쳐짐이 마땅하다(마태복음 22:37, 10:39). 그러나 15번 문장 어디를 보아도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고는 기록돼 있지 않고, 오직 아세라(마리아)에게 바치라고만 되어 있다. 이렇게 먼저 마귀에게 충성할 것을 가르쳐놓고 그 다음 예수를 끌어와 교묘히 위장해보려는 것이 간교한 마귀의 술책이요, 혼란전술이다


16. (봉헌의 대상 / 은총의 통로) "먼저 마리아를 통해 예수께 우리 자신을 바침, 마리아를 통해 당신 성자를 보내 주시고 마리아를 통해 우리에게 은총을 나누어 주시는 하느님 성부를 본받는 길이 됩니다. 또한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신 성자를 모범으로 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표양을 주시고 우리를 부르심으로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그 같은 길로 우리도 당신에게로 나아오길 원하십니다. 또한 성신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만 당신 은총과 선물을 내려주시기 때문에 마리아를 통해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것은 성신을 본받는 길이 됩니다. '은총이 우리에게 보내어진 그 길로 은총의 원천인 성부께로 되돌아 가는 것이 합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베르나르도 성인은 반문하셨습니다(편집자주: 일개 죄인을 교회 맘대로 '성인'으로 시성하여 그를 높여 존칭어를 쓰고 있다)."


*** '마리아를 통하여'라는 말이 7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가톨릭은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는 3위의 하나님께로 가지 못하도록 세뇌적인 장치를 해놓고 있는 것이다. 이 '다른 교훈'이 아닌 '바른 교훈' 곧 '복음'(디모데전서 6:3)으로 저 안에 있는 영혼들을 살려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가톨릭의 순진한 양 떼들은 이처럼 거짓 지도자들에게 속아 허탄한 이야기를 좇고 있으니(디모데후서 4:3~4) 우리는 이 시대의 전도인으로서 그들을 살릴 마음으로 우리의 파수꾼 직무를 다하여야 한다(디모데후서 4:5. 디도서 1:9).


17. (중재자-대변자) "우리가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께 나아가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 때문에 무한히 거룩하신 예수님께 죄를 품고 직접 나아가기에는 합당치 못하기 때문에 마리아를 예수님과의 대변자요 중재자로서 모실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 예수님을 우리의 형제요 중재자로 삼아 겸손되어 부복함으로써, 우리의 심판관이신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됩니다."


*** 예수께서는 "죄 있는 자는 나에게 오라" 하시는데(마태복음 9:13. 누가복음 15장. 찬송 337장), 가톨릭은 "죄 있는 자는 직접 못 간다" 가르치니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거룩한 가톨릭교회'의 말을 믿어야 할까? '거룩한 성경'의 말씀을 믿어야 할까? 가톨릭은 이처럼 죄인은 예수께로 집적 나아가기에는 합당치 않으니 마리아를 거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중의 '중재자'를 갖고 있는 셈이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 때문에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살아나셨건만(로마서 4:25), 가톨릭은 죄인으로서는 감히 이 예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마리아라는 또 다른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성경에 없는 소리로서 마귀의 거짓말이다.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 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18. (여왕 / 중개자) "우리 눈에는 좋아 보이는 선행이라 해도, 하늘의 별까지 불결해 보이는 하느님 대전에는 얼마나 초라하고 보 잘 것 없이 보여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여왕이신 마리아께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이 선물(선행)을 손에 받아, 정결케 해주시고 성스럽게 해주시고 아름답게 꾸며 주셔서, 하느님 대전에 의합하게 바쳐질 수 있도록 간청해야 할 것입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만일 당신이 하느님께 무엇을 바치려거든 먼저 그것을 마리아 손에 맡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거절 당할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9. (봉헌, 중개자) "우리의 모든 헌신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성모님의 손에 맡기나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정성을 다하여 우리 자신을 마리아께 봉헌하고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우리 자신을 완전히 끊어 버리면, 마리아께서는 더더욱 자비롭게 인도해 주실 것이며, 백배로 보답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 선물을 당신 사랑의 금쟁반에 놓아주실 것이며, 리브가가 야곱에게 옷을 입혔듯이, 당신 맏아들이요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실 것입니다. 그 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이며, 마리아 손에 달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리아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끊고 나면 우리는 두 번 옷을 입는 것입니다."


*** 모든 것을 성모님 손에 맡기라 하고, 자기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하라 한다. 그러면 마리아가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 주시고, 우리 행위에 백배로 보답해 주신다 하니, 바로 '신'의 모습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 역시 '마리아의 손에 달린 것'이라 하니 "가톨릭은 마리아교가 아닙니다. 개신교 형제들이여!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하는 그들의 설명 역시 마귀가 주는 거짓말임이 탄로나고 있다.


20. (의뢰의 대상) "저의 위대하신 여왕이여! 저를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시고, 제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모두를 당신께 의탁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시온지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을 온전히 당신께 바칩니다. 당신은 하느님과 인류에게 성실하시고 당신께 의탁하는 것 어느 것도 없애지 않으십니다. 당신은 강용(剛勇)하시니(주:강하고 날랜 분이시니), 빼앗고 해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마리아를 따를 때 방황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마리아를 생각할 때 그르치지 않을 것이며, 마리아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실 때 파멸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를 보호해 주실 때 두렵지 않을 것이며, 우리를 이끌어 주실 때 지치지 않을 것이며, 마리아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실 때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것이 '하늘 여신'이 아니고 무엇이랴! 가톨릭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권위를 높이는 척하면서 자기들도 기독교 정통 교리를 고수하고 있는 듯 위장한다. 마리아에 대한 질문에는 언제나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는 마리아를 단지 예수를 낳아준 어머리로서 '공경'하는 것뿐이지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위의 글들을 보면 그 말들이 다 거짓이었음이 드러난다. '강용하시다'는 말은 마리아에게는 합당치 않다. 강하신 자, 그 이름이 용사이신 자는 주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5:3. 이사야 40:10. 계시록 18:8).


21. (중재자, 은총의 통로) "마리아는 그의 아들(예수)을 만류하시어 다른 사람을 벌하지 않게 하시고, 마리아는 마귀를 억제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게 하시며, 마리아는 덕을 굳게 잡아 그것이 소멸하지 않게 하시며, 마리아는 은총을 굳게 잡아 그것이 바람에 날리어 흩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 마리아를 신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가톨릭측의 항변은 이제 완전히 거짓말로써 드러나고 있다. 성자 예수님의 뜻을 만류할 수 있고, 마귀를 억제할 수 있다면 그녀는 신으로 섬김받을 만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천하지를 다 둘러보아도 성부의 권한을 넘겨받은 예수님의 뜻을 만류할 자는 없다(이사야 43:13. 요한복음 5:22=계시록 5:1~7). 또한 마귀를 멸하실 분 역시 예수님밖에 없다(요한1서 3:8).


22. (피난처, 안식처) "모든 것을 마리아 안에서! "모든 일은 '마리아 안에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서히 이 내적 생활에 적응해서 우리 안에 마리아의 생각과 영신적인 모상을 심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모든 영혼에게 있어서 거절당할 두려움 없이 그의 모든 기도를 하느님께 들어 올릴 수 있는 축복된 장소입니다. 마리아는 또한 다윗의 탑과 같으셔서 우리의 모든 적으로부터의 피난처가 됩니다. 마리아는 타고 있는 등불과 같으셔셔, 우리의 마음을 비추고 하느님 사랑으로 불태우고 계십니다. 마리아는 성스러운 제단으로서, 우리는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을 명상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마리아는 우리가 하느님 대전에 기꺼운 존재가 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며 우리 모두의 안식처입니다. 기도할 때에도 마리아 안에서 하면, 예수님의 마음에 의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마리아 안에서 하고, 어디서나 어떤 일에서도 우리 자신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 아니다! 모든 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야 한다. 성경에는 '마리아 안에서'라는 말씀은 한 구절도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말씀은 신약에만 45회나 나온다.


23. (중재자) "모든 것을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는 항상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야 합니다. 무엇을 간청하려면 언제나 마리아의 대변과 그의 유력한 중개를 이용해야 하며, 혼자서 직접 예수 그리스도께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완전한 마귀의 발언이다! 성경에 없는 소리다. 마리아 숭배 사상은 이교도들의 여신숭배 관습이 가톨릭 교회 안에 정착된 것으로 보면 정확하다. 사도행전을 보면 '에베소' 지방에서는 아데미 여신이 숭배되었고(행 19:23~41), 이집트에서는 예로부터 '이시스' 여신이 숭배되어 왔다. '이시스' 숭배자들은 '이시스'를 '위대한 처녀', '신의 어머니'라고 불렀었는데, 현재 가톨릭에서도 마리아를 '자비하신 동정녀', '천주의 성모'라 부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AD 313),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AD 392) 4세기 말엽부터는 이교도적 우상숭배가 로마법에 의해 금지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교도들이 섬기던 여신 사원이 로마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을 것이고, 숭배의 대상을 잃은 그들은 로마의 위세를 업고 퍼져나가는 그리스도교에서 자신들의 허전함을 달래줄 수 있는 '마리아'를 발견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 추측일 것이다.


자기 동포가 바벨론 칼에 상하고 포로되어 잡혀간 걸 보고서도 애굽에 와서 '하늘 여신'을 숭배했던 그들은 소위 '선민'이라는 유대 민족이었음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하물며 이방인들이야 얼마나 더 자신들의 패역을 달래줄 여신을 찾았겠는가? 그때 바로 '마리아'라는 아주 좋은 대체물이 가톨릭 안에 존재했던 것이다.   


4세기경 에베소는 소아시아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중심지가 되었고, 431년 에베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에서는 200 여명의 가톨릭 주교들이 모여 마리아의 신학적인 위치에 관한 중대한 결졍을 내려 네스토리안(Nestorian) 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네스토리우스'는 성모 마리아에게 테오토코스('신을 낳은 사람')라는 칭호를 붙이면 그리스도의 인간적 본성을 손상시키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그 칭호 사용을 비난하여,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파문당했다. 신의 어머니(Mother of God) 교리는 바로 이 '에베소 공의회'에서 태동되었다. 지도자들의 잘못된 교리 하나가 그 교리를 따르는 모든 백성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법이다(이사야 9:16, 3:12).


24. (봉헌의 대상) "모든 것을 마리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마리아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고귀하신 모후의 종이므로 모든 일에 있어서 마리아께 봉사와 유익과 찬미를 바친다는 것을 최선의 목적으로 하고, 다음으로는 하느님께 보다 큰 영광과 찬미를 바친다는 것을 최후의 목적으로 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 여기서도 그들이 마리아를 예수의 '육적 모친'으로서가 아니라, '하늘 모후'로 섬기고 있음이 잘 드러난다. 그들은 빠져나갈 여지를 두기 위해 '마리아를 찬미하라' 한 다음에는 언제나 '하느님께 보다 큰 영광과 찬미를 바쳐야 한다'고 토를 달아 놓는다. 하지만 '찬미'는 천지를 창조하신 삼위의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할 것이므로, 그 이외의 존재에게는 이 단어의 사용이 합당치 않다. 그러나 가톨릭이 마리아도 찬미하고 하나님도 찬미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저 악행이 남녀신으로 짝이 되어 숭배받던 '바알-아세라' 신앙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자들은 언제나 남신, 여신을 함께 섬겨 왔다(출애굽기 34:13. 사사기 3:7).


구약 때에도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상을 훼파하였는데, 훼파된 우상을 본 우상숭배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사기 6:28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29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30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오늘날 스룹바벨 제단이 가톨릭의 태양상(성체)과 아세라상(마리아)을 말씀의 칼로 찍어 훼파하면 약 9억에 가까운 가톨릭 성도와 그 우두머리들은 위와 같이 날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레미야서에 예언된 '하늘황후'(7:18)와 '하늘여신'(44:17)을 보고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예레미야처럼 죽기까지 다시 예언할 것이다. 아멘!


25. (중재자) "마리아 없이 예수께 직접 나아감은 온당치 못함! "예수님과 하느님께 바로 나아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당신이 한 일과 당신의 뜻은 아직 보잘 것 없지만 마리아를 통하여 나아간다면 마리아는 당신 안에서 일을 하시어 당신이 한 일을 정당화시키시고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도록 하실 것입니다."


26. (여왕이며 속죄자) "마리아의 현존하심을 직접 입지 못해도 염려 말 것! 복되신 동정녀의 현존하심을 당신 영혼이 바로 입지 못했다 해서 크게 상심하지 마십시오. 이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 자비하심으로 그 은총을 입었다 해도, 충실하지 못하거나 마음 안에 마리아를 모시고 있지 않으면 잃기 쉬운 것입니다. 이러한 불행에 처했다 해도 조용히 당신의 여왕에게로 나아가서 속죄를 하십시오."


*** 가톨릭에서의 마리아는 인간의 속죄까지 받아줄 수 있는 '하늘 여신'이 분명하다. 그러나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죄를 사하는 속죄의 권세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는 것이다(히브리서 9:22).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속죄는 완성되었다(히브리서 10:10~14). 피의 공로를 믿는 것만이 하나님이 불의한 인간들에게 요구하시는 유일한 행동이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구원을 받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믿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행위뿐이다(로마서 3:27). 홈페이지 >> 신앙문답 150선 >> 12번을 참조하라.


27. (성부의 어좌) "사랑하는 사람이여, 암브로시오 성인의 말씀과 같이 '우리 안의 마리아 영혼이 주님을 찬미하고, 우리 안의 마리아 마음이 하느님께 대한 기쁨에 용약'할 수 있도록, 이 신심에 충실하여 은총을 얻을 수 있도록 합시다. '낙원이라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의 품속보다, 하느님의 어좌인 마리아의 품속에 머묾이 더 큰 영광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게릭 수도원장이 말하고 있습니다."


*** 성경 본문을 무시한 채, 자신들이 임명한 성인들과, 일개 수도원장의 권위를 더 따르는 이유는 저들 교리에 진리의 기준이 2가지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聖經)'과 '성전(聖傳)'이 그것이다. 그들은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성전(聖傳)'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이것은 말뿐이지, 그들은 '성경'과 '성전'이 상충될 때는 언제나 '교회의 전통'을 따른다. 자세히 관찰해 볼 때, 가톨릭은 성체(예수가 이 안에 현존한다고 믿고 있음)를 하늘의 태양과 같이, 마리아를 하늘의 달(천상모후)과 같이, 모든 천사와 성인들을 별과 같이 비유하여 떠받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단이 무저갱에 들어가기 전까지는(계시록 20:1~3) 그가 사주하는 우상숭배의 모습은 시대가 변하여도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어 교회 안에 침투하기 마련이다. 구약의 교회가 섬기던 '해', '달', '별'의 천체숭배 사상은 오늘날 가톨릭 안에서 '성체(태양)', '마리아(달)', '천사와 모든 성인 성녀(별)' 숭배 사상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


신명기 4:19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길까 하노라" - 육적으로 행하던 우상숭배가 영적으로 변형되어 시행되고 있다.


신명기 17:3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4 혹이 그 일을 네게 고하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사실하여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5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 남자나 여자를 쳐 죽이되...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 돌로 쳐 죽이라 하셨으니 우리도 스룹바벨 제단의 '머릿돌'의 권세로 이 모든 가증한 우상숭배 행태를 쳐부수어야 한다.


열왕기하 17:13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또 나의 종 선지자들로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14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그 목을 굳게 하기를 그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저희 열조의 목같이 하여 15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 열조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좇아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하사 본받지 말라 하신 사면 이방 사람을 본받아 16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스바냐 1: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6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예레미야 8: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2 그들의 사랑하며 섬기며 순종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 쬐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가톨릭은 몇 해 전부터 자신들이 보는 공동번역 성서에서 여호와 곧 '야훼'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주님'이라 고쳐 부르고 있다. 아무 성당이나 들어가 미사에서 낭독되는 <제1독서> 말씀을 들어보라. '야훼'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와'를 용사이신 당신의 이름이라 알려주셨고(출애굽기 15:3), 여호와 그 '성호'를 송축하라 하셨으며(시편 103:1), 이사야 선지자에게는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하고 직접 말씀하셨다(이사야 42:8). 가톨릭의 거짓 복음에 대해서 바른 복음으로 쳐서 예언해야 할 제단은 우리이다. 예레미야 강해서에서는 '하늘 여신'에 대해서만 다루고, 바알에 해당하는 '성체' 곧 태양상에 대한 내용은 에스겔 강해서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겠다.


28. (여왕이며 영혼의 생명) "마리아는 그의 자녀들의 영혼 안에 살으신다! 이 신심을 충실히 이행하면, 영혼 안에는 많은 행복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리아의 생명을 우리 영혼 안에 심는 것으로서, 이제부터 살아있는 것은 우리 영혼이 아니라 우리 영혼 안에 살고 있는 마리아의 생명입니다(편집자주: 갈라디아서 2:20절과 대조해 보라!). 왜냐하면 마리아의 생명이 그 영혼의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고마우신 은총으로, 마리아께서 우리 영혼 안에 여왕으로 군림하시게 되면, 얼마나 큰 경이로움이 일어나게 되겠습니까? 마리아는 경이의 행사자로, 우리 영혼 안에서 은밀하고 우리가 느끼지 못하게 일하시게 됩니다. 그것이 알려지면 하시는 일의 아름다움이 빛을 잃기 때문입니다."


*** 마치 북한의 김일성 부자 우상화를 보는 듯하다. 북한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우리가 자는 것도, 입는 것도, 살아 숨쉬는 것도 모두가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과, 위대하신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의 은택으로 되어지는 일이라고 세뇌시키고 있는데, 지금 볼 때 가톨릭의 마리아 신심 또한 그러하다. 피라미드식 절대복종 체제나 사상교육(세뇌) 체제를 비교해 볼 때 공산주의 집단과 가톨릭 집단은 매우 유사하다.


29. (평생동정) "마리아는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낳으심의 풍성한 동정녀이시므로, 마리아는 그 속에서 지배하시는 모든 영혼들에게 마음과 몸의 순결과 의향과 계획의 순진성과 선행의 풍성함을 확보하십니다. 사랑하는 이여, 하느님을 탄생시킬 만큼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결실을 낳은 마리아이신데(편집자주: 히브리서 7:1~3절과 대조해 보라!), 당신 영혼 안에서 수수방관 하신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리아는 당신 영혼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살게 해 주시고, 당신 영혼을 예수님과의 끊임없는 일치 속에 살도록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가 아니다. 마리아는 기록된 바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마태복음 1:25) 하신 대로 예수를 낳을 때까지만 동침치 아니하였고 이후로는 요셉과 동침하여 예수의 형제들을 낳았다. 마태복음 13장에서는 그 형제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13: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딸들은 마가복음 6:3절에, 고린도전서 9:5절과 갈라디아서 1:19절에서도 예수님의 형제들이 언급됐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 아닌 가장 정확한 증거를 소개한다. 시편 69:8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外人)이 되었나이다" 이 예언대로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가 메시야임을 믿지 않고 은근히 비꼬았던 것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 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가톨릭이여 대답해 보라! '모친의 자녀'라 함은 '친 형제'를 말함인가? '사촌 형제'를 말함인가?


들으라, 가톨릭이여! 말씀이 이토록 정확한데, 계속하여 마리아를 거룩함의 근원으로, 평생 동정이신 순결한 여인으로 우상화 할 것인가? 또한 마태복음 12:46~50절에서도 어미와 형제가 찾아왔다는 말에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반문하시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말씀하심으로 마리아를 특별대우 하지 않으셨고, 당신의 근본이 인간의 혈통에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임을 알려주셨음을 왜 애써 모른척 하려고들 하는가?(히브리서 7:3). 몰랐을 땐 적게 맞아도, 알려주고 회개할 충분할 시간을 주었는데도 말씀 앞에 순종치 않으면 그 벌이 심히 무거워지는 법이다(마태복음 12:47~48).


가장 무서운 재림론! 마리아를 통해 세말(世末)을 내다 보는 그들!


30. (세말 재림론의 주인공) "하느님께서 처음에 마리아를 통해서 비천한 몸으로 세상에 오셨듯이, 온 교회가 그가 오시길 기다리는 재림시, 모든 것을 지배하시고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실 때에도,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 오신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천국이 지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듯이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인류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기와 방법으로 오실 것은 확실합니다. 아무리 박학한 사람이나 성경에 통달한 사람이라 해도 이것만은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 가톨릭이 이처럼 말함은 재림론에서 마리아를 우월하고 핵심적인 위치에 놓기 위함이다. 마귀도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사람을 선택하여 쓰면서 30~50년이 걸리는 장기적인 일일지라도 끈기를 갖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지금도 재림론에 있어서 마리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신학적 연구는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본 책자의 뒷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그리스도의 왕국은 마리아를 통하여 온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성모 마리아가 더욱 알려지고 더욱 사랑을 받고 더욱 공경받을 것을 하느님이 바라고 계심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성신의 은총과 빛으로 내가 알려 주려는 완전한 내적 신심을 실천한다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그 때에 비로소 그들의 믿음으로만 볼 수 있었던 것을 뚜렷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 7장 설교를 참조하면 직접 표지그림을 볼 수 있다.


31. (마리아 왕국, 여자의 후손)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빨리 올지도 모를 세상의 종말시, 하느님께서는 성신으로 충만하고 마리아의 정신에 젖은 사람들을 들어 올려 강력한 왕국을 지으실 것입니다. 마리아를 통해 이 왕국은 죄를 타파하고 부패한 세상의 왕국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며 놀라운 일을 벌리게 될 것입니다. 나의 부족한 점이 많아 완전한 설명을 못하지만 이러한 신심을 가진 거룩한 사람들이 그 왕국을 이어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때 거룩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마리아께 대한 그들의 완전한 헌신으로 완성할 것입니다. 나의 부족한 설명으로 이 서술이 완전하지 못하고 문제의 요점이 올바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 내용의 마지막 쯤 오니 마귀의 정체가 더욱 잘 폭로되고 있다. 천년왕국이 마리아를 통해서 마리아의 정신에 젖은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이 말은 마귀가 그 주인임이 틀림없는 말이다. 죄를 타파할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신데(이사야 7:15. 요한1서 3:8. 창세기 3:15), 가톨릭은 모든 성당마다 마리아가 뱀의 머리를 밟고 있는 동상을 세워놓음으로써 '여자의 후손'을 마리아로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이시다(갈라디아서 4:4. 이사야 7:14). 마귀로부터 그 수족(手足)을 찔려 상하신 분도 예수요, 부활하시고 또 친히 재림하심으로써 마귀의 골통을 완전히 깨부술 분도 철장권세의 주인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계시록 2:27, 19:15. 시편 2:9).


32. (봉헌의 대상, 성체) "어떤 특별한 축일을 정하여 그날에 자신을 마리아께 완전히 의탁함으로써,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바쳐야 합니다. 이러한 의향으로 이 날에 영성체(편집자주: 성체=예수가 그 안에 현존한다고 하는 태양 모양의 밀떡)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 바알과 아세라 사상이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다. 마리아께 대한 봉헌과 영성체를 통하여 인간의 영혼을 완전히 마귀에게로 인도하고자 함이다.


33. (주인 되시는 마리아) "해마다 봉헌 기념일이 오면 예속과 의존의 표시로, 성모님께 조그마한 예물을 드려야 하는데, 이는 종된 자로서 주인에게 바치는 예()입니다."


***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이라는 이 책을 이쯤까지 읽어 온 자라면 이제 그 영혼이 장악되었겠다 싶었는지, 마귀는 이제 아예 노골적으로 가톨릭 성도를 '종', 마리아를 '주인'이라 선언하고 있다. 우리가 그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릴 우리의 주인은 삼위일체의 하나님뿐이시다. 잠언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우리 9.24 스룹바벨 제단과 이곳에 연합될 세계의 '우는 자들'은 엘리야와 같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거짓 선지자들의 제단을 여호와의 불제단 앞에 굴복시킬 것이며(종교바벨 격파), 또한 북방 철의 장막까지 치고 올라가(정치바벨 격파) 갇혀 있는 양 떼들을 살려냄으로써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릴 백마용사들이다(스가랴 6:6,8). 하지만 가톨릭은 주인을 저버리고 우상을 제 주인으로 삼고 있으니 본 주인의 마음을 심히 괴롭게 하는 못된 종들이다. 이사야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큰집=가톨릭)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소, 나귀만도 못한 자들이 바로 마리아를 섬기는 자들이다.


34. (값진 진주, 생명나무) "마리아의 땅에 묻혀 있는 보화와 복음의 값진 진주를 발견하였다면, 그것을 살 수 있도록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파십시오. 복되신 어머니께 당신을 희생으로 바쳐 마리아 안에 당신을 없이 해야만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해 온 신심(마리아신심)인 그 생명의 나무를 성신께서 당신 영혼 안에 심어 주셨으니, 때가 올 때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해 기르십시오."


*** 가증하도다! 성경이 말씀하는 보화와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천년왕국'과 '천국'이지, 마리아가 아니다(마태복음 13:44~46절과 대조해 보라!). 또한 가증하도다! 생명 나무는 지혜로 상징된 예수님이지 마리아가 아니다(잠언 3:18). 천년왕국과 천국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하신 생명나무시다(계시록 2:7, 22:2,14,19). 생명나무 실과를 따 먹으면 영생한다고 하신 말씀은(창세기 3:22), 예수와 예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마다 영생한다고 하신 말씀(요한복음 3:15~16, 5:24, 6:27,40)과 같으니 여호와 하나님과 그 아들 주 예수와 진리의 영이신 성령 곧 삼위일체의 하나님만이 영생을 주시는 생명나무가 되신다(요한복음 4:14, 5:39).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한복음 5:40). 마리아와 성체를 숭배하는 가톨릭 교권은 이 말씀에 정확히 걸려들고 말았다. 영생하시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과 만왕의 왕 예수님으로 기록되었으니(창세기 21:33. 다니엘 4:34, 12:7) 마리아 숭배자들과 성체숭배자들은 어서 회개하고 요한복음 6:51절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살 것이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에스겔서에서 상세히 기술하겠으나 여기서도 간단히 짚고 넘어갈 필요성을 느낀다. 가톨릭은 이 '살'이 '성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밀떡이 경배와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한복음 6:47). 영생이 '성체'와 같은 물질 쪼가리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다는 말씀이시다.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한복음 6:50). 가톨릭은 '먹고'라는 단어를 오해하여 입 속에 들어가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성체'를 조작해 내었지만, 여기서 '먹고'란 입으로 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귀로 듣고 영으로 소화한다는 뜻이다. 즉 '먹고'는 '듣고'의 의미이다. 다음 말씀을 보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한복음 5:25).


'성체'는 세상 기업체의 공장 기계가 찍어내어 가톨릭측에 공급하는 것이지만, 인자의 살은 위로부터 내려와 어떤 이 속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육신의 눈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신령한 떡이다. "사람이 이 떡(=말씀)을 먹으면(=들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영)이로라 하시니라"(요한복음 6:51). 예수님의 살은 '영'이니 물질덩어리 '성체' 따위는 절대로 예수님의 살(=영)이 될 수 없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한복음 6:63). 모든 말씀을 볼 때, 살리는 것은 영이며, 영은 말씀이며, 말씀은 떡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으니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6:51) 하신 말씀의 '떡'은 인간이 찍어내고 사제가 그 위에 십자가를 그으며 강복할 때 신령하게 변화하는 '성체' 쪼가리가 아니라 오직 기록된 말씀을 읽을 때 들어오는 신령한 말씀의 떡이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한복음 6:33).

신약을 미리 보이신 구약의 모형역사인 출애굽기를 살펴보자! 출애굽기 12: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기'는 어린 양의 살이니 바로 '말씀'을 예표한다. 말씀을 먹을 때 반드시 '불'에 구워 먹어야지 '날로나 물에 삶아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성령의 불' 곧 기름부음의 역사(요한1서 2:20,27)로만 말씀을 소화할 수 있지, '날로나 물에 삶는' 인본주의로써는 소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가톨릭처럼 예수님의 말씀인 고기(=살)를 제멋대로 해석하거나(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으면(체계적 거짓교리화)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말씀은 포도주로도 비유되는데, 포도주에 물을 섞으면 보응을 받는다 하셨다(이사야 1:22). 포도주는 아무 것도 첨가됨 없이 맑게 유지되어야 하며(이사야 25:6), 혹 무엇을 섞어야 한다면 포도주끼리만 혼합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잠언 9:5. 이사야 34:16).


이렇게 성경을 상고해보니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것은 어린 양의 피와 어린 양의 살, 곧 '예수의 피와 말씀'뿐 이다. 생수와 생명의 떡은 영육에 안식을 주는 '말씀'밖에 없다. 가톨릭이 조작해낸 가짜 떡(성체) 가짜 중보자(마리아)는 그 누구에게도 생명을 줄 수 없다.


35. (생명 나무) "생명의 나무인 마리아가 심어진 영혼은 복됩니다. 자라서 꽃피우는 영혼은 더욱 복됩니다. 마리아께서 결실을 맺게 해 주시는 그 영혼은 더욱 더 복됩니다. 영원히 죽을 때까지 마리아의 그 결실을 맛보고 보존하는 자는 누구보다 복됩니다."


*** 이 책에서는 '마리아께 관계된 말씀'이라는 타이틀 아래 잠언 8:22~35절의 말씀을 기록해 놓고 있다(194~195p). '예수'의 위치를 마리아로 대치하려는 간교한 술책이다. 인용한 잠언 본문 밑에는 36번의 기도내용을 삽입해 놓았다.


36. (성부의 거처, 전구자)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여, 당신은 성신의 협력하심으로써 영광스러운 동정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을 당신 성자의 맞갖은 거처로 마련하셨으니 마리아를 기쁘게 기념하는 우리로 하여금 마리아의 너그러운 전달로 닥쳐올 모든 악에서 구함을 얻게 하소서. 아멘."


*** '영광스러운'이라는 단어는 피조물에게는 해당 없는 단어이다. 마리아 앞에는 절대로 붙여서는 안 될 단어이며, 마리아가 우리의 '기념'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든 악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능력 역시 '마리아의 너그러운 전달(중보=전구)'에 있지 않고, '성령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과(로마서 8:26~27),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언기도'에 있다(로마서 8:34. 히브리서 7:25. 요한1서 2:1). 우리는 이 글을 통해 가톨릭에서의 '예수'란 마리아를 섬기는데 있어 날아올 공격들을 막아내기 위해 장치한 방패막이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죄인들에게만 구세주가 필요하다. 마리아 역시 하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고백했지 않는가?(누가복음 1:47). 세상에 죄인이면서 다른 죄인들을 위하여 중재할 수 있는 존재란 없는 것이다.


37. (신의 어머니, 승천) "마리아의 전 위대성 존귀하심은 그분이 하느님의 모친이시라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모친이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오묘한 신비체의 모친도 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랑하시는 제자가 보는 가운데 전 인류를 성모님께 맡기셨다."


*** 웃기는 소리이다. 성경을 찾아보라. 마리아는 오순절 이후로 성경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사도행전 1:14). 만일 예수께서 전 인류를 정녕 마리아에게 맡기셨다면, 그의 제자 베드로나 계시로 진리를 알게 해주신 바울(갈라디아서 1:12. 에베소서 3:3), 특히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 말씀에 의해 마리아를 돌보며 그녀의 임종까지 보았을 사도 요한의 진술을 통해 마리아의 전 위대성과 존귀하심이 신약기록 속에 나타났어야 한다. 그러나 요한이나 바울이나 베드로나 모든 사도들의 글과 전도자들의 행적을 상고해 볼 때 다음 여섯 가지 내용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1) 마리아의 무원죄잉태 (무염시태, 無染始胎)

2) 마리아의 죄없음

3) 마리아의 평생동정

4) 마리아의 승천(몸+영혼)

5) 천상 모후의 왕관을 씀

6)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 간청하며, 구제하고, 중재하는 여인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신 구절은 없다. 공생애 기간 중 "여자여"라고 두 번 부르셨을 뿐이다(요한복음 2:4, 19:26). 마리아 역시 예수님의 피가 필요했고, 부활이 필요했고, 다락방에서 다른 120명의 형제들과 똑같이 성령의 임재를 받고 천국복음을 전파한 평범한 죄인 중의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그런데도 가톨릭은 교황으로부터 마리아 앞에 경배하기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가톨릭 성도들은 이 성경적인 사실들을 인정하고 하늘로 들림을 받아 '하늘 황후=하늘 여신'이 되었다는 마귀의 환상을 떨쳐 버리고 바벨 종교인 가톨릭의 소굴에서 어서 나오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온은 알곡의 집단이고, 바벨은 가라지와 하나된 쭉정이의 집단이다. 바벨에는 정치바벨과 종교바벨 2가지가 있는데, 모두가 간교한 마귀, 사단, 붉은 용의 지배를 받고 있다. 사람이 만들어낸 다음 그림을 믿을 것인가? 오직 "기록되었으되" 기록된 성경을 믿을 것인가?


마리아가 승천해서 천상 모후의 관을 썼다는 거짓 교리가 먹혀 들어가기만 하면 계시록 12장의 '해를 입은 한 여자'의 자리에 마리아를 앉혀 놓기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되면 마귀의 머리를 깨어 부술 '해를 입은 한 여자'의 실체 곧 144,000명을 해산하는 종말의 '촛대교회'의 존재를 은폐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마귀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위장과 조작과 은폐에 뛰어난 마귀 떼들은 속임수로 세상을 교란시키고 있지만, 하나님은 간교한 마귀 떼들을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실 것이다. 욥기 5:12 "하나님은 궤휼한 자의 계교를 파하사 그 손으로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며 13 간교한 자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며 사특한 자의 계교(計巧)를 패하게 하시며 14 그들은 낮에도 캄캄함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이미 31번 문장과 그림을 통해 마리아가 뱀의 머리를 밟고 있는 모습과 "나는 새 시대의 시작이다"라는 마귀의 망령된 말을 소개했다. 가톨릭의 교리 속에 흐르고 있는 마리아의 위상승격 과정을 정리해 보자. 마리아 원죄없이 잉태됨⇒마리아 평생동정⇒마리아 승천⇒마리아 천상모후의 관 씀⇒마리아 열두별의 면류관의 주인공(계시록 12:1~)⇒마귀의 머리를 짓밟음⇒마리아를 통한 새 시대(마리아 왕국) 창조! 이것은 세상의 모든 악을 없이 하고 평화로운 새 시대를 건설하시려고 탄생하신 '한 아기'의 자리를 너무도 뻔뻔스럽게 도둑질하는 행위이다(이사야 7:15, 9:6. 요한1서 3:8).


도적의 집에는 저주의 두루마리가 들어간다고 하셨다(스가랴 5:1~4). 가톨릭은 말씀 도둑질에도 왕이요, 양 도둑질에도 1등이다. 시편 50: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뱀의 머리를 짓밟는 자가 마리아라는 가톨릭의 교리는 앞으로 모든 쭉정이들을 모아 멸망으로 인도할 것이다. 가톨릭은 그들의 믿음대로 마리아를 섬기는 조직을 통해 '평화운동'과 '새 시대 운동'에 열을 올릴 것이고, 이들은 빛을 가장하여 등장할 적그리스도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평화'를 말하며 세상의 쭉정이들을 모아들일 때, 반드시 딸려가서는 잠시간 이용당하고는 멸망할 것이다.


세말(世末)에 있을 영적 혼란! 이 혼잡은 말씀의 다림줄(스가랴 4:10)을 쥔 스룹바벨 단체에 연합하지 않고서는 분간할 수조차 없다. 앞으로 적그리스도적인 바벨 단체들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여 막강한 조직력으로 점차 하나가 되어갈 것이다. 그 중앙에는 모든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음녀'가 위치해 있을 것이고, 이 음녀가 올라 타게 될 짐승은 10뿔의 우두머리가 될 북방 러시아 나라가 담당할 것이다. 짐승을 따라가는 용공주의 W.C.C.단체나, 헛된 꿈으로 세상을 장악해보려는 로마가톨릭 단체나 모두 영적으로 미쳐 있는 것이 틀림없다(새일성가 60장2절). 죽을 줄도 모르고 따라가는 가련한 양 떼들, 구할 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크신 영광 오늘 여기 나타나, 세계 만민 흑암 중에 빠져 있는 오늘에, 깨우치자! 일으키자! '신랑 온다' 외치어(마태복음 25:6) 모든 원수 물리치고 모든 양 떼 살리자" (새일성가 37장)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예레미야 51:6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끊침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45 나의 백성(시온)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나 여호와의 진노에서 스스로 구원하라"


이사야 52: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바벨=혼잡)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스가랴 2:7 "바벨론 성(정치+종교)에 거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신명기 32:32 "그들(이방잡족=바벨)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 33 그들의 포도주(쑥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


고린도전서 10: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 그러니 가톨릭 성도들이여! 어서 진노를 받을 가톨릭(바벨론 성)에서 나와서 우리와 함께 촛대교회(시온성)로 도피하자! 그들은 성경을 장식품 혹은 자기 변호용으로만 쓰고 성경보다도 교회의 전통(성전)을 더 중요시 하니 그들은 진리를 믿는 자들이 아니요, 사람의 교훈과 자기 손으로 만든 것 앞에 절하는 자들이 분명하다(예레미야 1:16. 이사야 2:8, 17:8, 31:7. 사도행전 7:41). 다음은 '개신교 형제들을 위한 가톨릭 사이트'에서 발췌한 그들의 주장이다(http://myhome.nate.com/dominic1/).


과연 "성서"만으로 족한가?


예수께서는 한 줄의 성서도 친히 쓰지 않으셨고, 또 제자들에게 성서를 쓰라고 명하신 적도 없습니다 (물론 사도 요한에게 묵시록을 쓰라고 하신 것은 예외).


<< 편집자주: 마귀 소리다! 예수께서는 시공을 초월한 무소부재의 신이시며 영원무궁의 신이시므로 인간의 몸으로 오시기 이전에도 영으로 계시며 당신의 말씀을 계시하셨다. 이사야 9:6절을 보라!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다. 신명기 33:2절의 '불 같은 율법'을 소유하신 분도 예수시며 그 율법을 모세에게 주신 분도 예수시다(신명기 18:15). 가톨릭은 이 말에 '예수'와 '성부'는 다르다는 궤변으로 맞서겠지만, 천만에... 요한복음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셨다. 그는 본래 성부와 본체이시며(빌립보서 2:6), 하시는 일이 같아서(요 14:10) 성부의 일이 곧 성자의 일이다(요한복음 6:29). 또한 성부와 성자는 같은 목적을 위하여 일하신다(요한복음 5:17, 6:38~). 요한복음 1:2~4절에서도 '태초'부터 계신 예수와, 그는 생명이신 말씀임이 증거되어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은 3위1체의 하나님이시니 성경은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그의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하였다(요한복음 1:14) >>


또 당시에 이미 있던 성서(구약성서)를 배포하라고 하신 바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을 여러 곳으로 파견하실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이 가르침을 그대로 받들고 실천했습니다.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시오.",  "여러분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것이요."


주님의 12사도와 72제자와 초대 교회 신자들 가운데 여덟 사람만이 성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네 복음서와 서간 등은 모두 어느 개인이나 어떤 교회에 보내어진 것입니다. 즉, 그것들은 교회 내의 어떤 긴급한 문제의 해결을 목적으로 한 집필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내의 어떤 폐습을 바로잡을 목적 또는 신자들의 행동규범을 세워 줄 목적으로 하는 주교의 교서(敎書)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성서를 전파하였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다만  "그리고 제자들은 떠나가서 사방에 복음을 선포하였는데(물론 입으로..) 주님께서 함께 일하시며 표징들이 따르게 하심으로써 말씀을 굳건히 뒷받침하셨다." 라고 하였을 뿐입니다.


구약시대에든 신약시대에든 신자들은 모름지기 교회의 산 권위의 지도를 받도록 마련되었고, 결코 성서의 자유해석으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16세기 이른바 종교혁명까지는 세상이 생긴 이래 죽은 법률조문만으로 백성을 다스렸다는 사실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국민에 대한 국법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한 성서와 동일시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이 국법해석자의 판결에 복종하여야 하듯이 신자도 성직자의 성서해석에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서가 유일한 지도자"라는 말들을 하는 사람을 가끔 봅니다. 과연 그렇다면 큰 돈을 써서 굉장한 예배당과 주일학교를 세울 필요는 대체 어디 있으며, 성서만이면 그만이라던 목사의 설교를 들을 필요나 어린이들에게 교회 교육이 왜 필요하고, 또 주일에 예배당에 갈 필요는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성서 만능 주창자들의 모순이 있습니다. 정말 "성서만 있으면 족하다"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설교와 교리 교육을 중지해야 옳을 것입니다. 나는 이제 개신교 형제들에게 성서가 결코 만능이 아닌 이유를 밝혀 보려 합니다.


만약 한 목사가 성서 한 권을 주며 말하기를 " 이 책을 믿으시오. 다인(多人) 구원을 위해서는 이 책만 있으면 됩니다"라고 하였다고 합시다. 그러나 책을 펴면 큰 의혹이 먼저 생길 것입니다. 즉, 이 성서에 기록된 사실이 과연 계시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또 성서가 주님의 말씀 전부인지 아닌지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 (중략).....


가톨릭을 신임하지 않는 개신교 종파 중에서는 성서 중 어느 부분이 순전한 주님의 말씀인지에 대하여 서로 논쟁합니다.....(중략)..... 정경/위경 판정의 난공사는 이제 끝나 주님의 말씀만을 실은 성서가 세상에 나타났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번역인지 그릇된 번역인지를 또 누가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성서의 원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정통한 자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입니다. 성서 원어 정통자가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됩니까?


그러므로 성서를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려거든 유일한 성서보존자인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의존하는 길밖에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만약 올바로 번역된 성서를 가졌다 칩시다. 그렇다 해도 그 성서만이 영혼 구원의 지도자 구실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 해석은 반드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야 합니다..... (중략).....


우리의 자모이신 가톨릭교회를 가리켜 성서를 경시하는 교회라고 하는 비방은 마치 성모 마리아를, 그 가슴에 안은 '아기 예수를 눌러 죽이는 여자'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참으로 가톨릭 교회는 15세기 동안 유일한 성서의 수호자였습니다.....(중략)..... 』


여기까지만 소개한다. 소위 이것이 가톨릭 교회의 영계이니, 그들이 어찌 성경 말씀을 가감하고 도적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린도서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헛된 기도문과 미사의식)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우상=가톨릭의 모든 우상체제들)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아멘!

3위 1체의 하나님은 창조도, 율법도, 예언도, 은혜도, 심판도 항상 함께 하신다.

다음을 참조하라! (요한복음 1:14. 계시록 3:14, 21:6. 요한복음 17:24, 1:18, 14:28. 계시록 19:13. 잠언 8:26~30. 요한복음 17:5. 로마서 9:5~. 요한1서 5:20. 요한복음 1:2, 10:30. 마태복음 1:23. 요한복음 1:9, 6:32, 15:1, 8:16. 계시록 1:8. 고린도전서 4:19. 히브리서 1:3. 빌립보서 2:5. 요한1서 22:8~10).


간교함의 극치! (계시록과 마리아)


38. (해를 입은 여자, 영생의 문) "묵시록의 여인! 마리아는 어머니로서 언제나 아드님을 앞서 오십니다. 당신 아드님이 다시 임하실 때도 역시 마리아는 아드님을 위해 길을 닦으실 것입니다. 당신은 태양을 입은 여인으로서 깊은 곳의 군사들을 대항해 싸울 구세사의 마지막 싸움을 지휘하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당신의 짝이신 성신과 함께 간선된 영혼들에게 '오라' 하시는 저 복된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이십니다."


*** 마리아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것은 마귀의 거짓말이다. 요한복음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3:16,36, 4:14, 5:24,39). 가톨릭은 들으라! 요한복음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마귀는 마리아를 통해서 영생을 도둑질하려 하고 있으니 저 안에 있는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이들을 우리는 복음으로 살려야 한다.


39. (여왕, 주인, 모후) " 당신(마리아)은 또한 우리의 어머니시요, 우리의 주인이시요, 여왕이시니, 우리를 예수께 인도하시고 내게 성신의 빛과 사랑을 빌어주사 나로 하여금 예수를 점점 더 잘 알고 점점 더 사랑하게 하소서. 나 당신께 온전히 헌신함으로써 당신과 함께 영원히 예수께 속해 있기가 원이로소이다."


(1~39번의 사상이 다음 40번 마지막 장문에 다 모여 있다)


40. "오! 영원한 강생하신 지혜여, 지극히 사랑하올 달고 단 예수여, 당신은 참 천주 참 사람이시요, 영원하신 성부의 아들,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의 아들이니이다..... 쉼없이 찬미와 영광 드리오니, 마리아를 통해서 저를 당신의 충실한 종 만드시려, 언제나 어머니 마리아께 기꺼이 순명하셨나이다..... 당신과의 중개자로 제게 내려 보내주신, 당신 거룩한 어머니의 빌어 주심에 모든 것 맡기나이다. 회개와 용서를 빌고 당신 지혜를 얻어 보존할 수 있도록, 마리아께 달려가 의탁하나이다. 하례하나이다. 하자 없으신 마리아, 천주의 감실이여, 영원한 지혜께서 당신 안에 계셔 천사들과 사람들의 찬미 받기 원하나이다. 하례하나이다. 하늘과 땅의 여왕이여, 주님 아래 만상이 당신 왕국에 승복하나이다. 하례하나이다. 모든 죄인의 피난처여, 당신 자비 누구에게도 거절치 않나이다. 천상지혜를 구하려는 저의 기도 들으시고, 당신께 바치는 이 비천한 종의 서원과 제물을 받으소서. 불충한 죄인(자기이름)은 당신 손 안에서 성세 때의 서원을 새롭게 하나이다. 영원히 사탄을 끊고 그 영화와 행실을 버리겠나이다. 강생하신 지혜에게 제 모든 것 바치오니, 예수를 따라 십자가 지고 전보다 더 더욱 충실케 해 주소서.


천상 천하 모든 이 앞에 이 날을 간택하여 제 어머니, 주인 위해 모두를 바치나이다. 저의 몸과 마음, 저의 모든 좋은 점, 내적 외적 모든 행실, 어제나 오늘이나 가치로운 모든 선행을 종으로서 바치나이다. 저를 다스릴 모든 권리와 제 가진 모든 것 남김 없이 바치오니, 하느님 더 큰 영광 위해 영원토록 기꺼이 가져 주소서.


지극히 인자하신 동정녀여, 이 종의 바침을 거두어 들이소서. 영원한 지혜께서 당신 모성 가지시고 슬하에 승복하심을 기리고 본받기를 지극히 원하오며, 성삼께서 당신께 내리신 그 총애 감사하기 위함이나이다. 저는 이제 당신 종으로, 당신의 영광 찾고 언제 어디서나 순명하겠나이다.


찬미하올 어머니여, 저를 가져다가 사랑하올 당신 아들의 영원한 종으로 바쳐 주소서. 당신 통해 구원하셨듯이 당신 통해 저를 받아들이게 해 주소서. 지극한 자비의 어머니여, 주님의 진실한 지혜를 얻게 은혜 내려 주시고, 당신 사랑하시고 가르치신 우리를 당신 자녀요 종으로 이끄시고, 기르시고 보호하시는 우리 중에 저도 넣어 주소서.


성실한 동정녀여, 저로 하여금 어떤 일에 있어서나, 강생하신 말씀이신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요, 후계자요, 종이 되게 하여 주시어, 세상에서는 당신의 전달과 표양을 따라 그리스도를 충만히 닮게 하여 주시고, 천국에서는 그와 같은 영광에 이르게 해 주소서. 아멘


오! 사람이 되신 영원한 지혜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는 나의 온전한 헌신을 몽포르의 루도비꼬 성인의 뜻과 정신으로 하였듯이 당신의 모친이시며, 또한 나의 모친이신 마리아를 통하여, 오늘 이 온전한 헌신을 당신의 거룩하신 모친성요셉, 그리고 모든 천상 성인 성녀들의 입회 하에 갱신하고 또 굳게 하나이다....."


몽포르 성인의 마리아께 대한 기도


"하례하나이다. 마리아여, 영원하신 성부의 사랑하올 딸이여, 하례하나이다(하례賀禮=축하의 예식). 마리아여, 당신 성자의 경애하는 어머니여, 하례하나이다. 마리아여, 성신의 충실한 베필이여, 하례하나이다. 마리아여, 저의 사랑하는 어머니요, 주인이요, 여왕이시여, 하례하나이다. 저의 기쁨, 저의 영광 저의 마음, 저의 영혼이여, 당신은 자비하오시니 저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시며, 의당히 저도 또한 당신의 것입니다. 아직도 당신의 것이기에 부족한 점이 많나이다. 이제 저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조금의 남김도 없이 다 바쳐 드리나이다. 아직도 당신께 속하지 못한 그 무엇이 제 안에 남아 있으면, 제 모든 것의 주인이 되어 주소서. 하느님께 부당한 것 모두 쳐 부수시고 없애셔서, 당신께 기꺼운 것만 심고 가꾸소서. 당신 신앙으로 밝히 비추시어 제 마음의 어두움을 거두시고, 당신 깊은 겸손으로 제 오만 누르소서. 당신 밝은 마음으로 저의 방황 이끄시고, 하느님 매일 보시니 주님의 현존으로 제 마음 채우소서. 당신 마음의 불타는 사랑으로 저의 미지근함 태우시고, 내 죄 대신으로 당신 성덕 꽃피우시고, 당신 공덕이 보탬이 되어 제 부족 채우소서. 지극히 사랑하올 어머니 마리아여, 예수님과 그의 뜻을 알려는 당신의 영신(귀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말게 하시고, 주님을 찬미하고 기리려는 당신의 영혼(악령)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게 하여 주소서. 당신의 마음같이 순수하고 열렬한 사랑으로 하느님만을 기리겠나이다. 영시나 계시나 눈으로 직접 봄은 바라지도 않사옵고 영신적인 즐거움은 구하지도 않나이다. 하느님을 밝히 봄은 당신의 특전이요, 천상의 환희와 당신 성자 오른 편에 영광되이 승리함은 당신만의 특전이오며, 당신은 천사와 인류와악마까지 지배(?)하여, 당신의 뜻대로 하느님의 선물을 부어줄 수 있음은 당신께만 합당한 은혜이나이다.

오! 천상의 마리아여, 주님께서 당신에게 하사하신 (가장 좋은 몫)으로써 아무도 빼앗을 수 없으니, 제 마음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제 몫으로 바라는 건 꼭 한 가지 있사오니 당신의 것이 되기 소원이나이다. 영신의 기쁨 없이도 믿을 수 있사옵고, 누구의 위로 없어도 감내할 수 있나이다. 쉽 없이 제 자신을 멀리 하겠사옵고, 죽을 때까지 당신 미천한 종으로 열심히 이기심과 욕심 없이 살아가겠나이다. 한 가지 은총만을 간절히 구하오니, 언제 어디서나 "아멘"만 발하게 하소서. 지금 당신 세상에서 하옵시는 모든 일에, 지금 당신 하옵시는 모든 일에, "그렇게 하소서"란 말만 있게 하여 주시어, 당신만이 제 안에서 영원토록 예수 영광 기리게만 해주소서(편집자주: 거짓말이다!), 아멘."


*** 마리아를 전심으로 찬미하여 놓고는 끝에 가서 예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인 듯 위장하며, 자신의 간교함을 감추어 보려는 이 얄팍함이란... 거짓의 아비된 자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지 아니한가!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모든 마음의 여왕이신 마리아의 회


모든 마음의 여왕이신 마리아의 회는 1899년 3월 15일 처음 조직되었고, 1913년 4월 28일 비오 10세에 의해 로마에서 공식 인준되었다. 오늘날 이 회는 미국, 캐나다, 아이티,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88개의 지부를 두고 전 세계에 수 십만의 회원이 있다.


"모든 마음의 여왕이신 마리아의 회"가 지닌 목적은 우리 안에 마리아의 왕국을 건설하여, 우리 영혼 안에서 예수께서 보다 완전히 다스릴 수 있게 해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 성별식 기도문


"오오 마리아여, 나의 여왕이며 나의 어머니시여! 나는 당신에게 나 자신을 드립니다. 당신께 나의 헌신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나는 오늘 당신에게 나의 두 눈과 귀와 입과 가슴과 나의 존재 전체를 무조건적으로 드립니다. 그러므로 선하신 마리아여, 나는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의 소유물인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소서. 아멘"


이라크 전쟁 시 교황의 메시지


가톨릭 평화신문 2003년 3월 30일자  <교황, "이들을 동정 마리아께 맡깁니다"> 라는 제목의 기사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바티칸시티=외신종합】 <이라크 전쟁으로 군인과 민간인들의 희생이 늘어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평화의 선물을 거듭 기원하면서 전쟁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교황은 23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복식을 주재한 후 “전쟁의 희생자들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을 특별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맡겨 드린다”면서 이라크에 평화가 올 수 있도록 마리아의 전구를 청했다.


미국의 이라크 개전 직후 충격 속에 모든 일정을 중지하고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친 교황은 22일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와 “폭력과 무기로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며 평화를 거듭 호소했다. 교황은 “전쟁이 인류의 운명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평화가 정의와 연대의 사회를 건설하는 유일한 길임을 더욱 강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선포하는 일이 한층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24일 미국의 루터교회 지도자들을 만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위험과 불확실로 가득찬 세계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을 선포하는 데에 하나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며 “정의와 연대의 결실인 평화를 세상에 주시도록 하느님께 함께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

마리아(하늘 여신)에 대한 주제별 요약정리


값진 진주(34번) / 거룩함(7번) / 마리아 왕국(31번) / 무염시태(5, 37번) / 봉헌의 대상(11~16, 19, 24, 32번) / 생명나무(34~35번) / 성령의 베필(3번) / 성부의 어좌(거처)(27, 36번) / 속죄자 마리아(26번) / 성체(32번) / 승천(37번) / 안식처(피난처)(22번) / 양육자(4번) / 여왕(18, 20, 26, 28, 39번) / 영생의 문(38번) / 영적 양분의 근원지(4번) / 여자의 후손(31번) / 영혼의 생명(근원)(28번) / 원죄 없음(5번) / 은총의 통로(1, 10, 16, 21번) / 의뢰(의탁)의 대상(6, 20번) / 인도자, 보호자(20번) / 재림론의 주인공(30, 31번) / 주인 되시는 마리아(33, 39번) / 중재자, 대변자, 중개자, 전구자(17~19, 21, 23, 25, 36번) / 찬미의 대상(7, 9, 11번) / 천상 어머니(신의 어머니)(2, 26, 37번) / 평생 동정(29번) / 해를 입은 한 여자(38번)


살펴본 바와 같은 '마리아 숭배' 문제는 참으로 교묘하다. 왜냐하면 평상시에는 희미하게, 눈에 띠지 않게 존재하는 듯 하지만, 파고 들어가면 이와 같이 비복음적인 무서운 독소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각 개인이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 유일한 중보자로서 믿을 때라야 해결되지, 그렇지 않고서는 교묘히 말려들어 알게 모르게 우상숭배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톨릭 안에서는 '예수가 나의 구세주'라는 고백은 없고 온통 '마리아는 나의 어머니', '마리아는 나의 여왕', '마리아께 찬미하고 마리아를 공경하자'는 고백뿐이다. 가톨릭인들을 올바른 복음으로 인도하려면 전도자들은 다음과 같은 성경적 진리를 숙지해야 한다.


1) 마리아는 죄인이다! - 마리아도 구세주가 필요한 죄인이며(누가복음 1:47), 제사가 필요한 죄인이었다(누가복음 2:22).


2)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 아니다! - (29번 참조) 마리아는 예수님 말고도 6명 이상의 자녀를 더 낳았다(마가복음 6:3). 가톨릭이 주장하는 '사촌설'은 시편의 칼 69:8절로 물리치면 된다. 카톨릭의 거짓말에 의하면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인데, 여인의 처녀성이 그리도 위대한 것이라면, '평생 동정남'인 요셉은 더더욱 위대한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의 모친이라는 이유만으로 '신의 어머니'가 되었다면, 요셉 역시 '신의 아버지'가 되어야 옳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요셉의 위치는 마리아에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다. 즉 그들의 마리아 신앙은 고대로부터 내려져오던 여신숭배 사상의 연속일 뿐이다.


3) 마리아는 천주의 성모가 아니다! - 한 여자가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할 때(누가복음 11:27~28) 예수님은 그 말을 인정치 않으심으로 '마리아 숭배' 요소를 원천봉쇄 해두셨다. 또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심으로써 당신과 마리아를 육적으로 연결짓는 것이 옳지 않음을 지적하셨다(마태복음 12:50). 예수님은 아비도, 어미도, 시작도, 끝도, 족보도 없다.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이시다(히브리서 7:1~3). 한 번도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으셨고 오직  '여자여' 하셨다(요한복음 2:4, 19:26). '하나님의 어머니'란 말은 마귀 앞잡이 '레오' 교황이 칼케돈 공회(AD 451)에서 공표한 이후, 교리로 굳어진 카톨릭만의 사악한 전통이다. 가톨릭의 마리아는 이교도의 여신숭배 사상에 기원을 둔 '여자 마귀'에 불과하다. 마리아가 진정 '하나님의 어머니'라면 이미 초대교회 때 주의 종들이 마리아를 '성자 예수의 어머니', '하늘 모후'로 높이며 전도했을 것이나, 그런 증거는 전혀 없다.  


4) 마리아는 우리의 인도자, 전구자, 중재자가 될 수 없다! - 4복음서 저자들뿐만 아니라 사도들, 전도자들 일체 중 그 누구도 구원문제를 마리아와 연관시켜 논하지 않았다. 가장 오래 살았고,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그녀를 모셨을 사도요한의 글(요한복음, 요한서신, 요한계시록)을 보아도 마리아가 우리를 예수께로 인도하는 '중재자'라던가, 우리의 구원을 '돕는 자'라고 언급된 구절이 없다.  '무염시태', '평생동정', '승천', '천상 모후의 왕관' 사상이 마귀가 조작해낸 것이 아니라면 사도요한이 먼저 그러한 내용을 전파했을 것이다. '성모송'(아베 마리아:성모에게 드리는 기도)은 1568년 교황 피우스 5세가 성무일도(聖務日禱)에 삽입한 후부터 널리 사용된 것이니 인간작품이지 기독교적 교리가 아니다.


이렇게 정리해 보니, 성경에 나오는 주의 모친(누가복음 1:43) '마리아'와 카톨릭이 경배하며 섬기는 '마리아'는 완전히 다른 두 존재이며, 아무 연관도 없는 별개의 여인들이다. 우리는 주의 말씀만을 신뢰하여 마귀의 간교하고 세밀한 혼란의 칼을 더 강하고 크고 견고한 '말씀의 칼'로 물리쳐야 할 자들이다. 아멘!


가톨릭이 재림론에 대하여는 무심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30번 이하에서 소개된 말세론을 보면 가톨릭은 '마리아'와 관련하여 재림론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위에 설명된 모든 조작된 교리는 결국 그녀를 계시록 12장의 '해를 입은 한 여자'로 만들기 위한 사단의 철저한 준비작업임을 고발하며 '하늘 여신'에 대한 증거를 마치려 한다. 가톨릭을 들어 쓰는 마귀의 의도는 마리아를 종말론의 핵심요소인 '해를 입은 한 여자'로 만들기 위함이지만, 진정한 '해를 입은 한 여자' 제단은 마리아와 연계된 가톨릭의 재림론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를 다 밝혀 증거하였다. 지금껏 독자들은 가톨릭의 마리아 동상이나 마리아 그림에 12별의 면류관이 둘려져 있음은 잘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성당을 가든지 주의깊게 살펴보라. 마리아가 '여자의 후손'으로 위장되어 뱀을 밟고 있는 모습과, 마리아가 '해를 입은 한 여자'로 둔갑되어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예언은 '하늘 여신' 아세라를 섬기고 있는 가톨릭 교인들 중 끝까지 회개치 않고 강퍅케 될 자들에게 다시 예언될 말씀이다.  


『 20 예레미야가 남녀 모든 무리 곧 이 말로 대답하는 모든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21 너희가 너희 선조와 너희 왕들과 방백들과 유다 땅 백성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들에서 분향한 일을 여호와께서 기억지 아니하셨느냐 생각지 아니하셨느냐 22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소위를 더 참으실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무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거민이 없게 되었나니 23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여호와의 법과 율례와 증거대로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앙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미쳤느니라 24 예레미야가 다시 모든 백성과 모든 여인에게 말하되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


전날의 멸망이 어찌하여 찾아왔는가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뻔뻔스럽게 멸망의 죄악을 변호하는 무리에게 예레미야는 사실 그대로를 기억시켜주고 있다.


"놀램과 저줏거리가 된 상태"(22절)에서 우상숭배를 고집하여 여호와의 말씀에 또다시 대항하므로 이제 그들에게는 최종적으로 임할 저주만이 남아 있다.


4. 그들에게 심판을 선고함 : 25~30


『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와 너희 아내들이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이루려 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서원한 대로 반드시 이행하여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리라 하였은즉 너희 서원을 성립하며 너희 서원을 이행하라 하시느니라 26 그러므로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나의 큰 이름으로 맹세하였은즉 애굽 온 땅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는 내 이름을 일컬어서 주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라 하는 자가 없게 되리라 27 보라 내가 경성하여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니 애굽 땅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칼과 기근에 망하여 멸절되리라 28 그런즉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이 애굽 땅에서 나와 유다 땅으로 돌아오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는 유다의 모든 남은 자가 내 말이 성립되었는지, 자기들의 말이 성립되었는지 알리라 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너희를 벌할 표징이 이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한 말이 단정코 성립될 것을 그것으로 알게 하리라 30 보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를 그 원수 곧 그 생명을 찾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인 것같이 애굽 왕 바로 호브라를 그 원수들 곧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그들이 "하늘 여신"을 숭배하겠다고 한 대로 행하라고 이제는 허용하신다(25절).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주실 때는 아직 그 백성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 허용하시는 단계에 들어가면 그 백성은 이미 버림받았다는 증거이다(민수기 22:20 - 재물에 눈이 어두워진 발람의 교훈을 추억하라! 계시록 2:14).


유대인들 중에 하나님을 믿는 자가 없게 되리라고 한다(26절). 믿음도 성령도 위에서 주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구절이다(에베소서 2:8. 사도행전 2:38).


여호와께서 경성하여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복을 거두겠다 하신다(27~28절).


재앙의 실행방법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29~30).


이제 하나님이 명령만 내리면 바벨론 군대가 내려와 애굽을 정복할 것이며 시드기야 왕의 잡혀감같이 애굽 왕 바로 호브라도 그렇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초림주를 영접시킬 엘리야는 말라기 3:1, 이사야 40:3절에 기록돼 있고, 재림주를 영접시킬 엘리야는 말라기 4:5~6, 이사야 19:19~20, 학개서 2:7, 21~23절에 기록돼 있으니 만일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저주로 땅을 치심으로 천지가 진동(학개서 2:6, 21~22)되는 그날에 하나같이 패망하고 말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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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룹바벨 선교회 20180527b_예레미야41장

[주일 오후 설교예레미야 41장 : 이스마엘의 반란 2018/04/27 Lord's day(Sunday) Afternoon

2016년 11월 4일

Mahershalalhashbaz (Isaiah 8:1), 마헬살랄하스바스 (이사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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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41장

제목 : 이스마엘의 반란


1.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살해함 : 1~3


『 1 칠 월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


"왕의 종친"이란 말은 왕손이란 말이다. 이스마엘이 유다의 왕손이었으니만큼, 그때의 집권자였던 그다랴를 없애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이란 말은 그저 왕을 섬기는 고관들의 이름이다.

"떡을 먹다가" 총독 그다랴의 대접으로 음식을 먹던 중에 일어난 사건이다. 음식 대접을 받던 중에 그 대접하는 주인공을 죽이는 것은 살인 중에도 가장 악한 방법이다(요한복음 13:18). 민족이 포로가 된 상황에서 그것도 그 남은 자들 가운데 이런 악한 일이 또 발생하는 것은 예레미야가 "악한 무화과"라고 말한 예언이 참된 예언임을 증거해준다(24:1~10). 예레미야 39장에서 41장까지는 실천적 예언으로 특히 40:7절부터 41:18절까지는 그 남은 백성이 심한 불행 가운데 빠지게 될 사실을 보여준다.


『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한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바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3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한 모든 유다인과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


이스마엘 일당이 그다랴와 및 그의 지지자(支持者)들과 갈대아 군사들을 일시에 죽인 사실은 내란죄에 해당되고 유다의 지배국인 바벨론을 대적하는 행동이었다. 이스마엘은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보낸 사단의 단체에 속한 악인이다. 자기 개인의 정권욕을 위해서는 유다인이야 죽든지 살든지 관여치 않는 그의 행태는 사단의 속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2. 사마리아 예배자를 살해함 : 4~9


『 4 그가 그다랴를 죽인 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


"이틀이 되었어도" 그 정보가 나가지 못하도록 한 것을 볼 때 매우 간교한 자임을 알 수 있다.


『 5 때에 사람 팔십 명이 그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에서부터 와서 여호와의 집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6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서 울며 행하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여 7 그들이 성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로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니라 』


이스마엘이 행한 또 하나의 무서운 살인행위가 드러나는데, 그는 무죄한 사람 80명 중 70명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80명은 몸에 유다의 멸망을 슬퍼하는 표시를 한 채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오는 도중이었다. 사단은 항상 사람을 죽이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살인자이다(요한복음 8:44). 사단에게 잡힌 이스마엘 일당이 치밀한 계획과 연기로 그들을 꾀어 살해한 것을 볼 때 정말로 간교한 살인마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악한 무리가 그 땅의 남은 백성을 휩쓰는 것을 볼 때 예레미야가 예언한 "악한 무화과"라는 말이 정확히 맞아 떨어짐을 알 수 있다.


『 8 그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였으므로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 형제와 함께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


80명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뇌물을 주고 죽음을 면하였다. 여기서 사단의 또하나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옳은 정치에 대하여는 역적의 무리가 되게 하고 물질에 대하여는 탐심으로 가득찬 도적떼가 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단의 사주인 것이다. 돈은 일만악을 저지르게 하는 뿌리임과 동시에 일만 악당들에게는 삶과 행위의 목적이자 이유인 것이다.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라고 말할 때 그들의 살인의지는 어느 새 재물에 대한 탐심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성에서 선악과의 질이 최고로 발동하니 하나님의 시온산은 사단의 집이 되고 만 것이다.


『 9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 죽인 시체로 거기 채우고 』


그 당시 이스마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가 하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다랴는 총독이요, 총독 주위에 딸린 식솔들을 생각할 때 총독에게 속한 사람을 모두 죽여 구덩이에 던졌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살인이었겠는가? 이 구덩이는 유다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함을 보아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사상적으로 나뉘어 간헐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전쟁이 치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3. 요하난의 잡힌 자를 다시 찾음 : 10~18


『 10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 하여 떠나니라 』


"암몬"은 롯의 둘째 딸과 아비와의 동침으로 태어난 잡족이다(창세기 19:38). 이 민족은 이스라엘의 숙적(宿敵)으로서 늘 이스라엘을 침략하였다(사사기 3:13. 사무엘상 11:1~11. 예레미야 49:6~9. 에스겔 25:1~7. 아모스 1:13~15. 스바냐 2:8~11).


『 11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의 행한 모든 악을 듣고 12 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가에서 그를 만나매 13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한 모든 군대장관을 보고 기뻐한지라 14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에게 포로되었던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15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


이스마엘의 악행을 보고 일어난 요하난의 의거(義擧)에 대하여 말한다. 그때에 이스마엘의 포로들 중 8명을 제외하고 거의 전부가 이스마엘을 배반하고 요하난 쪽으로 건너갔다. 이렇게 요하난은 피 흘림 없이 승리하고 이스마엘은 패배를 당했다.


"기브온 큰 물가" 이 곳은 미스바의 동북쪽, 예루살렘 북서쪽 약 8k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성경지명사전의 '기브온')


『 16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하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인과 유아와 환관을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17 애굽으로 가려 하여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18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인을 두려워함이었더라 』


"요하난"은 정의감이 강한 용사요(13~15) 또한 애국심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치명적 실수는 이제로부터 발생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하여 이 민족이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그들의 지배를 받을 것을 명하셨다. 그러나 요하난은 일시적인 두려움으로 그 뜻을 거스르고 반대 방향 곧 애굽 땅으로 도망가려 했던 것이다. 실패자의 생각은 언제나 인본주의로 흐르기 마련이다. 이렇게 유다 민족의 말로(末路)는 예레미야의 예언 그대로(24장) 그 남은 백성까지 더욱 불행해지는 상황으로 떨어진다.


선한 지도자 그다랴가 암살 당하고 이스마엘은 남은 백성까지 모조리 살해하는 악행을 하였고, 요하난까지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고 말았으니 사단의 힘은 강하고도 강했다. 본장의 사실들은 모두가 역사적으로 고증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 역사 이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한 예레미야 24:8~10절의 예언이 있었음을 잊지 말자(24:8~10). 보이는 세계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 하늘의 정한 뜻에 의해 철저히 지배당함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이제 42장부터는 남은 자들의 불순종이 노골화된다. 교만과 패역을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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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보라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
학개 2:2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서울시 동작구 국사봉1길 18 5층(상도동3동 323-4) 스룹바벨선교회 새일중앙교회







성경 : 예레미야 40장

제목 : 예레미야의 석방


1. 예레미야의 석방 : 1~6


『 1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해방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예레미야는 일찍이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의해 바벨론 군대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아 그 신변안전이 보장되어 있었으나(예레미야 39:14), 그 후 예루살렘이 혼란한 와중에서 그도 엉겁결에 바벨론 군대에게 체포되어 가는 무리 중에 섞이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 보장받은 그 말씀대로 "라마"에서 해방을 받게 된 것이다. 어떠한가? 하나님의 예언은 한 치도 어긋남 없이 필연코 이루어진다는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한 구절 아닌가?


『 2 시위대장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이 재앙을 선포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


시위대장이 말하기를 유다에 임한 전쟁은 이미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뿐이며, 재앙의 원인은 유다 민족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지적한다. 일개 이방 사람 중 하나인 시위대장이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잠깐 이용하시는 것인데, 요나가 하나님의 눈을 피해 도망하여 배 밑층에서 잠잘 때 이방인의 경책(警責)을 당하게 되었던 경우와 유사하다. 요나에게 말한 이방인은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종들이 탈선할 때는 이방 사람을 들어 깨우치기도 하시는 것이다(요나 1:5~6).


『 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해방하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선히 여기거든 오라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선히 여기는 대로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5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 왕이 유다 성읍들의 총독으로 세우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중에 거하거나 너의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시위대장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중에서 그와 함께 거하니라 』


39:11~14절에서처럼 북방군대가 예레미야를 보호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다. 내용인즉,


①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가든지 안 가든지 자유로이 선택토록 함이요(4절상반).

② 어디든지 자기 소원대로 갈수 있는 자유를 보장함이요(4절하반).

③ 그 땅 총독 그다랴에게로 가든지 안 가든지의 자유를 보장함이요(5절상반).

④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낸 것이다(5절).


2. 총독 그다랴의 피선 : 7~12


『 7 들에 있는 군대장관들과 그들의 사람들이 바벨론 왕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이 땅 총독으로 세우고 남녀와 유아와 바벨론으로 옮기지 아니한 빈민을 그에게 위임하였다 함을 듣고 8 그들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두 아들 요하난과 요나단과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느도바 사람 에배의 아들들과 마아가 사람의 아들 여사냐와 그들의 사람들이 미스바로 가서 그다랴에게 이르니 』


바벨론 군대에게 패배를 당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던 군인들이 이제 총독 그다랴에게 모여왔으며 모압, 암몬, 에돔 등지에 흩어졌던 유대인들도 모여왔다. 그때에 모여든 자들은 극히 악한 무화과였다(예레미야 24:1~10). 그러므로 그들은 다 흩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마엘"은 총독 그다랴를 죽이므로 민족에게 화가 미치도록 하였고(41:2) "요하난"은 하나님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반역하고 무리를 거느리고 애굽으로 내려간 자이다(43:7).


『 9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그들과 그들의 사람들에게 맹세하며 가로되 너희는 갈대아인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거하여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 』


그다랴는 9절 이후로 자기를 찾아온 피난민들의 앞길을 열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살 길이라고 이미 가르쳐 주신 바 있다(21:8~9). 그다랴는 의인 아히감의 아들로서(26:24)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유다 총독이 되었으며 그의 지도 원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으로서 남은 백성을 선무(宣撫)하는 귀한 일을 하였다. 당시 피상적(皮相的)인 애국자들은 무조건 바벨론을 반대하는 길만이 애국의 길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에 합당한 애국자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순종하면서 백성을 지도하는 자인 것이다. 그러나 신본주의 애국자는 하나님 지상주의(至上主義)를 실천하고, 민족지상주의를 표방하지 아니하는 만큼 혈기에 넘치는 피상적 애국자들 앞에서 반역자로 몰리기 쉽다는 것도 역사상의 통례이다.


『 10 나는 미스바에 거하여 우리에게로 오는 갈대아인을 섬기리니 너희는 포도주와 여름 실과와 기름을 모아 그릇에 저축하고 너희의 얻은 성읍들에 거하라 하니라 』


돌아온 피난민들에게 전쟁의 화를 겁낼 필요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 식품을 "그릇에 저축"하는 것은 타국 군대의 침략 우려가 없는 때에 하는 행동이다. 총독 그다랴가 이런 안전보장을 약속한 것은 그가 예레미야의 사상계통에 속하여 유다 민족의 진로(進路)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귀한 지도자를 살해한 이스마엘의 행위는 사단에 속한 행위인 것이다.


『 11 모압과 암몬 자손 중과 에돔과 모든 북방에 있는 유다인도 바벨론 왕이 유다에 사람을 남겨 둔 것과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그들의 위에 세웠다 함을 듣고 12 그 모든 유다인이 쫓겨났던 각처에서 돌아와 유다 땅 미스바 그다랴에게 이르러 포도주와 여름 실과를 심히 많이 모으니라 』


"모압", "암몬","에돔" 민족은 유다 민족의 원수가 되는 족속들이다. 그런 나라들 가운데 피하였다가 돌아오는 유대인들은 당연히 바벨론에 항복하라 하신 하나님의 지도를 좋게 여기지 않던 자들이 틀림없을 것이다(악한 무화과). 바로 그들 중에 하나로서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죽인 것이다(41:1~3). 언제나 권력자나 부자들 속에서 역사하는 사단의 속성이 잘 폭로된 사건이다. 종말에도 사단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서 적어도 정치인들과 종교지도자들급 속에 들어가 역사할 것이 분명하다. 사단은 이런 자들을 사주하여 성경과 반대되는 길을 걷게 만드는 것이니, 이 책을 읽는 지도급 인사들은 말씀의 등불로 새로 지음을 받아 그 악한 무리의 사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편에서 순복하여 승리의 길 가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3. 요하난이 총독암살 음모를 고발 :13~16


『 13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들에 있던 군대장관들이 미스바 그다랴에게 이르러 14 그에게 이르되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네 생명을 취하려 하여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보낸 줄 네가 아느냐 하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믿지 아니한지라 』


요하난은 총독 그다랴에게 총독 암살계획에 대하여 밀고(密告)하였다. 사단의 계획이 현실화되기 이전에 항상 이 같은 사상전쟁이 있음을 알되 다음의 몇가지 사실을 참고해야 한다.


① 예레미야의 사상계통에 속하는 그다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유다 남은 백성의 살 길을 잘 지도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그러나 마귀는 반드시 이러한 틈을 놓치지 않고 역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② 그다랴가 그 밀고를 받고도 믿지 않는 것은 무사안일주의(無事安逸主義)의 잘못된 태도였다. 그다랴는 사단의 비밀을 몰랐다. 그러나 비밀을 몰랐던 데서 화가 온 것이 아니라, 알려줘도 믿지 않았던 사실에서 화가 임했으므로 그 책임은 당사자에게 돌아간다.


③ 그다랴에게 밀고하므로 총독암살을 막아주려 했던 요하난의 선함은 그 행위에서 막을 내린다. 이제 잠시 후면 그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은 패역한 무리의 지도자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43:2~7). 육적 전쟁에서건 사상 전쟁에서건 최후의 승자가 진정한 승자이다. 아홉을 잘했어도 마지막 하나에서 무너지면 승리는 마귀의 것이 된다.


에덴동산을 공격하여 무너뜨렸던 옛 뱀은 마귀요 사단이며 붉은 용인데(계시록 12:9, 20:2), 에덴 파괴 이후에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노아 때에도 역사했고(누가복음 17:27), 예루살렘 성전에도 역사했고, 피로 산 교회도 거의 다 장악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마지막 교회인 촛대 교회까지 들어와 계속하여 공격하고 있으니, 사명자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예레미야 11:9~23 ☞ 아나돗(제사장촌) 사람들 / 12:6 ☞ 형제와 아비의 집).


『 15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미스바에서 그다랴에게 비밀히 말하여 가로되 청하노니 나로 가서 사람이 모르게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죽이게 하라 어찌하여 그로 네 생명을 취케 하여 네게 모인 모든 유다인으로 흩어지며 유다의 남은 자로 멸망을 당케 하랴 16 그러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 이르되 네가 이 일을 행치 말 것이니라 너의 이스마엘에 대한 말은 진정이 아니니라 하니라 』


간교한 사단은 밤낮 참소하고 있으나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순종만 하면 성령께서 함께 하시어 인도해 주신다. 구약 때의 모든 교훈은 종말에 등장할 144000명에게 주신 로얄제리와 같은 양식이요 교훈이니, 우리의 인도자-명령자 되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100% 기록된 대로 순종만 할 따름이다. 예수님이 다윗의 입을 빌어 하나님 앞에서 "나는 벌레요" 하셨다면(시편 22:6) 우리는 예수님 앞에 또한 벌레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사야 41:14).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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