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예레미야 44장 - 예레미야 최후의 예언 (하늘여신 우상).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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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경 : 예레미야 44장

제목 : 예레미야 최후의 예언


1. 황폐의 원인은 우상숭배 : 1~6


『 1 애굽 땅에 거하는 모든 유다인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거하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모든 재앙을 보았느니라 보라 오늘날 그것들이 황무지가 되었고 거하는 사람이 없나니 3 이는 그들이 자기나 너희나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나아가 분향하여 섬겨서 나의 노를 격동한 악행을 인함이라 4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치 말라 하였어도 5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므로 6 나의 분과 나의 노를 쏟아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살랐더니 그것들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고 적막하였느니라 』


애굽에 사는 '악한 무화과'들의 우상숭배가 얼마나 강퍅한 죄악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본국에 있을 때 자기 동포들이 우상숭배로 인해 멸망 받은 것을 목격하고서도 애굽 땅에까지 도망온 자로서 또 다시 우상숭배를 행하는 이 모습이란..... 이것이 바로 인간의 패역이다. 그들의 죄는 ①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 곧 사단에게 분향한 것과(3절) ② "종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경고가 있었음에도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회개치 않은 강퍅함이다.


유다 땅에서 제1, 제2계명을 범하여 북방 칼을 맞고 패망한 유다의 역사! 이 가슴 아픈 수치의 역사를 체험하고도 선지의 말을 어겨가면서까지 애굽에 왔다면, 수치와 상처가 아무는 동안에 근신하며 자중해야 함이 옳지 않겠는가? 그러나 뼛골 속 선악과의 기질은 상황을 봐주지 않고 튀어 나와 인간의 육신과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것이다. 이 원죄악이 오늘도 "거듭났다" 자랑하는 기독교인의 뼛골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패역 때문에 유다의 남은 자들마저 재차 북방 칼에 상하여 씨가 말라진 이 비극은 '구약의 비극'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들의 역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언이 되어 오늘날의 기독교 안에서 그대로 이루어질 일인 것이다. 인간 종말에 모든 예언서가 등불이 되어 밝혀질 때, 기독교계 안에서도 예레미야서의 일들이 재연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발견된 선악과의 악질, 곧 범죄와 패역은 아직 소멸되지 않고 우리 속에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종말에는 마귀의 전술이 고급화되고 교묘해져서 기독교계 스스로는 자신의 패역을 잡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언의 등불이 들어가는 곳마다 흑암이 빛 앞에서 자신의 정체가 폭로되므로 깨달아 화를 피할 자들이 다수(多數) 나오게 된다. 고로 마귀는 계시록과 선지서! 즉 예언의 등불만은 읽히지 못하도록 총 궐기하여 교계의 지도층 속에 들어가 마태복음부터 유다서까지만 사모하도록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의 정치-종교적인 모든 범죄들은 종말의 예루살렘 성읍(기독교)에서도 각종 가증한 형태로 이면화되어 나타난다. 구약성경은 종말에 발생할 인간의 패역을 미리 앞당겨서 '보이고', '교훈하신'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악마가 득세하는 21세기에는 '예언서'가 아니고서는 이 시대의 흑암을 물리칠 수 없다(하박국 1:1~8, 2:1~4). '인간 종말의 시대'는 하나님의 7대법 중 '예언의 법'이 집행될 시기이므로, 예언의 등불을 밝히지 못하고 애굽 사상으로 치우치면 새 시대에 들어갈 권리를 박탈당함과 동시에, 예언을 가감한 그 죄로 육체가 북방 칼에 맞아 죽고(이사야 1:20), 그 영혼까지 1,000년간 옥에 갔다가 '마지막 부활(계시록 20:11~)' 때 예수님의 피 공로로 벌거벗은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이 미리 보이신 공의의 법이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하신 말씀의 참된 의미는 노아 때에 이미 종말을 고해 놓았다는 뜻이다(누가복음 17:26. 베드로전서 3;18~20).


지금은 교계에 깊은 흑암이 역사하므로 '십자가'만으로 다 된 줄 아는 교만이 도리어 '의로움'으로 인정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피로 산 말씀'인 예언서를 무시한 성도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ㄱ) 육체는 북방 칼에 죽고(구약 선민이 선지자의 말을 반대하다가 북방에 잡혀간 것을 추억하라! - 예레미야 39:1~10).


ㄴ) 몸이 사는 회복된 에덴 천년왕국이 펼쳐지는 기간 동안 예언의 법을 무시한 죄의 대가로 옥에 가 있다가


ㄷ) 백보좌 심판 때 영생의 부활로 일어나 천국에 들어가는 과정을 걷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위 '천국'이란 제8천년기부터 펼쳐지는 영원무궁세계를 뜻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새 일 제7천년기의 땅! 곧 '회복된 에덴'을 차지하라고 주신 말씀이다. 이를 아는 자의 수효가 교회 중에 심히 적으므로 이 시대의 교회는 '북방 칼'에 호되게 얻어 맞게 되는 것이다. 지금 교회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절에 기록된 바울 사도의 편지에서 더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더 세밀하고 정확한 묵시인 요한계시록을 주셨는데도 말이다. 때를 따라 양식을 주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마태복음 24:45~). 때에 따른 양식을 제대로 받아 먹는 자만이 복이 있다.


2. 애굽에 거하는 유다의 남은 자도 우상숭배 : 7~14


『 7 나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 유다 중에서 너희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 먹는 자를 멸절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게 하려느냐 8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의 소위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너희의 가서 우거하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끊어버림을 당하여 세계 열방 중에서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9 너희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한 너희 열조의 악과 유다 왕들의 악과 왕비들의 악과 너희의 악과 너희 아내들의 악을 잊었느냐 10 그들이 오늘까지 겸비치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열조 앞에 세운 나의 법과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느니라 』


본토민이 잡혀 간 원인이 우상숭배임을 말씀하신 데 이어 지금부터는 도망한 유다의 남은 자들을 향한 최후 예언을 시작하신다. 총독 살해사건으로 인해 화가 났을 북방이 두려워(41:1) 애굽으로 도망온 유다 백성이 이방 땅에 와서까지 우상을 숭배하는 기막힌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탄식하신다. 하나님은 이 기막힌 현실을 다음의 3가지 질문 형식으로 표현하셨다.


① 너희가 "멸절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게 하려느냐?" (7절).


② 하나님 앞에 "끊어버림을 당하여 세계 열방 중에서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8절).


③ 유다에 거하던 백성이 하나님의 벌(북방 바벨론 환난)을 자초한 "이전 죄악(유다 땅에서 행한 죄)들을 벌써 잊었느냐?" (9절).


그들은 이전 죄악들을 벌써 잊은 걸까? 생각만 해도 소름끼칠 무서운 북방 재앙을 당한 것은 모두 저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는 '우상' 섬김에 있었거늘, 어찌 유다의 남은 자가 또 다시 '우상' 앞에 분향하게 된 것일까? 축복으로 택함받은 민족이 저주의 칼에 상하였다면, 매맞은 원인을 생각하며 한없이 통회케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 터인데, 화를 피하고 '남은 백성'까지도 원죄악의 고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사단의 공격을 당하여 교만(43:2)과 패역으로 떨어져 버릴 때 하나님의 마음은 한없이 찢어졌던 것이다.


오늘날은 어떠할까? 이 시대는 예레미야서의 경고(북방환난)로부터 안전지대에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모든 말씀을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시록 10:11). 북방에서 끓는 가마(예레미야 1:13)가 남을 향해 기울어진 인간 종말의 형편이 유대민족의 역사에 녹아져 있는 것이니 그들의 패역과 교만은 오늘날의 패역과 교만인 것이다. 고로 본문 7~9절을 이 시대에 다시 외치면 이러하다.


"은혜받은 교회여, 백성의 지도자들이여, 너희는 북방 칼에 멸절당하므로 피로 산 백성이 이 땅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하려느냐?"


"피로 산 교회여, 하나님이 없다 하는 무신론 짐승 세력과 이방신을 섬기는 우준한 백성들 앞에서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일제침략과 6.25 전쟁을 겪고서도 그 환난을 불러들인 죄악(기독교박해, 신사참배)을 회개치 못하고 어찌 더 큰 죄악(공산당 협상)을 용납하는 것이냐?"


지금 기독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어째서 성경을 손에 든 (은혜로 택한) 백성이 구약 종말이 인간종말을 미리 보여주신 사건임을 이리도 더디 믿는단 말인가? (이사야 46:10. 로마서 15:4. 히브리서 10:1. 고린도전서 10:6,11). 예수님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이사야 19:1~),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때(이사야 59:19)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 당신을 영접케 하려고 세워 주신 '애굽 땅 중앙제단'(이사야 19:19), 엘리야 제단(말라기 4:5)에서 예레미야서의 메시지를 힘써 다시 외치고 있건만, 아무도 듣지 않고 있다. 이 좋은 꼴을 어서 받아 먹고 남에게 전파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이 마당에, 이 좋은 꼴을 자기도 먹지 않을 뿐더러 남까지 먹지 못하도록 발로 마구 짓밟는 사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다(에스겔 34:18). 사도들이 전하지 못한 '남은 좋은 꼴'과 '남은 맑은 물'은 누구를 통해서건 이 시대에 100% 다 전파되어야만 하는데(계시록 10:7. 누가복음 24:44. 마태복음 5:17) 이 일에 누가 나설 것인가?


종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교만히 행하던 구약 교회가 저주를 받아 멸망하였다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계시록 10:7)이 다시 예언될 때 다시 듣지 않는다면, 그 교만함으로 인하여 다음의 저주 예언으로 떨어지게 될 것은 분명한 일 아닌가? (예레미야 26:5~6).


『 11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재앙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며 12 내가 또 애굽 땅에 우거하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리라 13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같이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니 14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는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남아서 그 사모하여 돌아와서 거하려는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도피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


위 말씀을 보니 이제 남은 백성이 '멸망할 사실'은 (용서의 여지가 없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차원의 일이 되어 버렸다. ① 온 유다를 끊어버리겠다 하셨고(11절) ② 남은 자들을 취하여 엎드러뜨리겠다 하셨으며(12절) ③ 백성을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게 하여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라 선포하셨기 때문이다(12~13절). 이는 회개를 유도하기 위한 경고 차원의 말씀이 아니라, 교만을 징계하기 위한 무서운 심판 선언적인 말씀들이다. 이는 당신의 진노를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이다.


교회가 범죄할 때 거룩한 성(聖城) '예루살렘'이라도 치셨거늘, 이방의 '애굽 땅'에서이랴! 시온산일지라도 채찍에 상하였다면 우상의 소굴이요 죄악의 땅인 애굽(계시록 11:8)은 더 강한 철채찍으로 훼파하실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을 성취하시고자 바벨론 군대를 애굽 땅에까지 보내어 징벌케 하셨으니, 이 일로 화려한 애굽뿐만 아니라 그곳에 거하던 유다의 남은 자들까지 완전히 소탕되었던 것이다(46:12, 26~). 하나님의 예언은 100% 성취되기 마련이다.


14절 : "도피하는 자들 외에는 (고토로)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 이미 4:6절에서 선포된 바 있는 예언으로서 북방환난을 피할 수 있는 길은 '기호 밑' 곧 '임마누엘 나래 밑'으로 도피하는 길뿐임을 시사한다.


이제 21세기에 '하늘 여신' 숭배사상에 물들어 있는 패역한 교계에서도 본 제단에서 외치는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나올 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를 갖고 있지 않던 이방의 순수한 사람들(이방족) 중에서 절실히 깨달고 돌아올 자가 오히려 더 많을 것이다. 흰 무리의 구성원 중 교회 밖의 사람들이 더욱 많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므로 급히 예수를 믿게 됨과 동시에 예비처로 인도되어 환난을 면케 되는 것이니, 출애굽 때의 역사와 같다. 마귀 정권과 마귀 교권과 각종 인본주의 체제에 잡혀 있는 하나님의 예정된 흰 무리를 다 찾아내기 위하여 뽑히움 받은 자들이 바로 세계 각국에 흩어져 존재하는 144,000명이다(미가서 5:7~9).


우리 시대에는 애굽화된 정치, 애굽화된 종교체제로부터 탈출하여 시온으로 "도피하는 자들"의 행렬이 이어질 것인데, 5개월간만 진행된다. 이것을 암시한 말씀이 바로 14절이며, 이들을 이끌어낼 종말의 선지자적 사명이 스룹바벨 제단에 초막절 역사로 연합될 세계 각국의 '우는 자들'이다(겔 9:4). 인간을 속이는 마귀의 권세가 이토록 강하지만 새 일의 용사들은 어서 어서 모여들어서 다림줄의 진리 잡고 합심단결 되어 보자! 억만 마귀가 일어나 우리를 훼방한들 무엇이 두려우랴!


패역과 살기로 가득 차 예레미야를 대적하던 유다의 남은 자들처럼, 오늘날의 교우들도 자신들의 탐심(우상)을 쳐서 예언하는 예레미야와 같은 우리들에게 돌을 집어 던질 것이나, 우리가 두려워 말고 저들에게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살리고픈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살아야 할 마지막 알곡까지 살려내고자 하는 아비(농부)의 마음(아모스 9:9)! 오직 그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다음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실제로 만날 수 있게 된다.


3. 그들의 반항과 선지자의 대답 : 15~24


『 15 때에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거하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16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17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정녕히 실행하여 우리의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방백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대저 그 때에는 우리가 식물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니 18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19 여인들은 가로되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에게 경배하는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


예레미야가 애굽으로 도망한 자들 속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지 말라"는 말씀을 전할 때 유다의 남은 자들이 발악하며 반대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백성의 상태를 분석해 보자.


① 예레미야를 반대하는 일에 남녀 모두가 일치 단결해 있고(15절), 우상사상에 깊이 빠져 있던 터라 양심이 마비된 채 너무나도 뻔뻔스러운 모습을 갖고 있다. 하나님 섬기는 일에는 하나될 줄 모르는 그들이 어찌하여 우상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이토록 강력한 일치 단결력을 보이는가? 과연 사단의 마력이 아닐 수 없다.


② 그들은 참 선지자의 예언을 불청(不聽)하고 자신들이 분향하는 "하늘 여신"을 섬기며그 앞에 서원한 대로 강행하리라 한다. 예레미야에게 철저히 맞서고 있는 모습이다(16~17上). 이 패역자들의 도전적인 입술은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방백들이 유다 성읍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말하고 있다(17절). 3~5절, 9절에 있는 진리의 경고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이다.


이들이 참 선지자를 반대하는 이유는 17下~18절이 증거한다. "대저 그 때에는 우리가 식물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니 18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던 시절에는 식물이 풍부하였는데, 그것을 폐지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이 찾아왔다고.....? 과연 이 말은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요, 마귀가 시키는 거짓말이다!


진리에 비추어 보면 그들의 말이 거짓인 것이 금방 드러나고 만다. 참된 종교(신앙) 생활이란 '하나님 제일주의'로서 이방종교와 같이 이 세상에서의 복리(福利)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로 현재에도 "예수님만 제대로 믿으면 부자가 안 될 수 없다. 예수 믿고도 가난한 것은 잘못 믿어 그렇다" 하는 설교는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자의 설교가 아닐 수 없다).


이 시대에는 다음 말씀이 정통이다!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9:58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의 삶은 우리 대장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과도 상반된다. 우상숭배가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에 한재가 임했던 것은 부인치 못할 사실인데(열왕기상 17:1~16. 예레미야 14:1~6), 그들은 눈이 짧아 오히려 자기들이 "하늘 여신"을 섬길 때는 재앙이 없었다고 우기며 거짓말을 해대고 있다(요한복음 8:44). "다른 신들"과 그 중 하나인 "하늘 여신"을 섬긴 결과로 피 터지게 맞아놓고서도 소경, 귀머거리 독사가 되어 우상을 섬길 때는 복이 쏟아졌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는 생명의 경고를 듣지 않겠다는 뜻이다(시편 58:3~5). 이들은 하나님께서 회개 하기를 바라며 참고 기다리시던 시기를 (재앙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복을 받던 평안의 시기로 오해하고 있다. 이러한 오해와 무지로부터 터져 나오는 불만과 불평 또한 마귀에게 사로 잡힌 불택자들의 주특기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선지자 단체로서

예레미야 44장을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한다!


우리가 진정 이 시대의 파수꾼인지 아닌지는 이 예언이 가서 꽂혀야 할 대상이 우리 앞에 나타나 우리를 괴롭히는지 아닌지로 판명될 것이다. 이사야서를 깨달은 종말의 사명자들이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쓰고 '북방에서 노략이 속히 온다'는 증거를 시작할 때는(이사야 8:1~4) 심판을 앞둔 종말의 시기이다. 이 때 '유다'의 사명을 행할 백성 중에 말씀(실로아 물)을 버리고 친 북방(르신, 르말리야) 사상으로 기울어 범죄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앗수르(러시아) 왕이 유다 목에까지 치고 올라올 것이 예언되어 있고(8:6~8), 이 환난이 유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대될 것과(9), 이 때 하나님은 시온의 피할 곳이 되어주시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라 하셨다(14). 고로 척량줄을 들고 '이스라엘의 두 집'을 순행해보면 "하늘 여신"을 숭배하는 범죄가 우리 눈에 발견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두 집'은 어디를 말하는 걸까? - 구약 때는 사마리아(오홀라)와 유다(오홀리바)를 뜻하지만 -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가 다시 예언되는 인간 종말에는 바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는 큰 집(구교)과 작은 집(신교) 곧 '가톨릭'과 '개신교' 단체가 되는 것이다(이면화). 이제 '가톨릭'과 '개신교' 두 집안 사람들은 '큰 서판'을 취하여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하신 묵시(이사야 8:1), 곧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하신 지체치 아니할 묵시의 말씀(하박국 2:2~3)이 녹음테잎과 서책과 인터넷으로 공개되고 있는 이상, 이 예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남은 자'가 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야의 둘째 아들인 마헬살랄하스바스의 역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니라" 하셨기 때문이다. 순종하면 살지만, 거절하여 배반하면 이 말씀에 걸려 넘어져 북방 칼이 내려오는 그 날, 비참히 쓰러지게 된다(이사야 1:19~20).


5대강국 때 세워진 다림줄(먹그릇) 가진 중앙제단! (이사야 19:18~20). 본 제단에서 파수꾼의 눈을 갖고 교회 위에 다림줄을 드리워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들을 살펴보니(에스겔 9:4), 이스라엘의 '큰 집'인 가톨릭 안에서 가증한 '하늘 여신 숭배'가 잡혀 나왔다. 이제 보라! 이들이 행하는 여신 숭배의 상태는 위험수위를 넘어서 멸망의 지경에 가 있음을 발견케 될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제2권


다음은 7장에 이어 가톨릭에서 출판한『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2권』(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작, 하 안또니오 신부 옮김. 푸른군대 한국본부 펴냄) 에 담겨진 내용들을 발췌 나열한 내용이다. 글의 번호는 편집자가 편의상 메겨 놓은 것이며, 각 문장은 위 책의 본문과 일점 일획도 틀리지 않음을 밝힌다. 이미 7장에서 예언된 "하늘 황후"가 44장에서는 "하늘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음을 읽을 때 독자들은 가톨릭의 마리아 신심(信心)이 일반인이 알고 있는 상식선을 뛰어넘어 고도의 '우상숭배' 지경에 도달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먼저 묵주기도(로시리오 기도) 끝에 올리는 '성모찬송'을 소개함으로 가증한 여신숭배 고발을 시작한다.


성모찬송


"하례하나이다. 천지의 모후여, 우리의 생명이시요, 기쁨이시며, 희망이신 자비의 어미니여, 하례하나이다. 귀양살이 하는 에와(하와) 자손이 눈물의 골짜기에서 울며, 탄식하며 어머니를 부르나이다. 우리의 변호자이신 어머니여, 그 어지신 눈으로 우리를 굽어보소서. 이 귀양살이가 끝난 다음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 예수를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너그러우신 마리아여, 자애로우신 마리아여, 어지신 동정 마리아여. 천주의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시어, 그리스도의 언약하신 바를 얻게 하소서. 기도합시다. 천주여, 외아드님이 당신 생애와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갚음을 마련하셨나이다. 이 신비를 묵상하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로사리오를 바치오니, 우리로 하여금 그 내용을 본받고, 언약된 바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편집자 주: 기도 첫 부분에 '천지의 모후'라는 단어에 주목하고, 중반부의 '아드님 예수를 우리에게 보여주소서'라 한 내용에 주목하라. 보여줄 수 있는 자가 보여지는 대상보다 높음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기도 마지막에 '예수'가 빠진 그냥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하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합해 볼 때, 이 기도문은 마귀에게 올려지고 있는 기도임이 분명해진다. 가톨릭은 몇 년 전 성경에서 '야훼'(여호와)라는 칭호를 모두 삭제하고 대신 '주님'으로 고쳐놓았으며, 이렇듯 기도 끝에 붙여져야 할 '예수'라는 가장 귀한 이름(사도행전 4:12)조차 빼놓은 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 마리아가 천지(하늘과 땅)의 모후로 둔갑했으며, 어찌하여 마리아가 그 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말고 할 위치에까지 가게 된 것인지, 지금부터 차근히 밝혀내 보려 한다. 생각하면 할 수록 가슴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 무서운 "하늘 여신" 숭배사상이다.


모든 단어는 가톨릭 교회가 쓰는 용어를 그대로 인용하였으며, 매 번호 옆 (  ) 안은 다뤄진 내용을 압축한 주제어이다.


1. (은총의 통로) "하느님께서는 마리아께 당신 모든 은총의 보관, 관리, 분배의 소임을 위탁하셨기에, 하느님의 은총과 선물은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나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그 권한으로, 영원하신 성부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덕과 성신(성령)의 선물을 당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당신의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보내 주신다'고 베르나르도 성인은 가르칩니다." (10번 참조)


2. (천상 어머니) "어린이라면 누구나 본성상 어머니와 아버지의 보호 아래 삽니다. 은총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참된 자녀가 되려면, 하느님을 아버지로,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누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되어 영광으로 여긴다고 말하면서도 마리아께 진실한 자녀로서의 사랑을 표해 드리지 않는다면, 이는 거짓이며 그가 모신 아버지께 불경이 되는 것입니다."


*** 우리를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장성시키며 양육시켜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 보내주신 성령이시다. 그런데 가톨릭은 성령의 자리에 교묘히 마리아를 앉혀 놓고 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마리아를 하늘 모후(어머니)로 모시지 않고 있는 전 세계의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은 '교회의 참된 자녀'에서 제외된다. 서강대 등, 예수회가 운영하는 대학의 교양필수 과목 중 예수회 신부들이 강의하는 수업내용을 살펴보면, 가톨릭 이외의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일례 과목명: 서강대 그리스도교 사상). 그들은 겉으로는 '통합'과 '화합', '종교간 대화와 타협'을 외치고 있으나, 실제 그들의 교리로 들어가보면 아무리 성경대로 믿는 신실한 개신교회라도 그들에게는 가톨릭에서 가지 쳐 나간 '이단'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마지막 때 막대한 재력과 권력을 소유한 가톨릭이 짐승(정권)과 야합할 경우, 그네들의 교리를 벗어난 모든 신실한 성도들을 심하게 핍박하리라는 것을 자연스레 예상해 볼 수 있다.


3. (성령의 베필) "성신께서는 마리아를 당신 배필로 삼으셔서,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에 의해서, 마리아로부터, 당신의 위업인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탄생케  하셨으니, 당신 정배의 말을 거절해 본 일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신비스런 방법으로 간선자(揀選子:분간하여 뽑힘받은 자=간택자)들을 뽑아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사도들을 위해 간구하셨고, 또한 오늘날 우리들을 위해 친히 간구하고 계신 분은 오직 성령님이 뿐이신데, 가톨릭은 이 역할이 성령의 정배라 표현한 마리아의 특권인 것처럼 조작하고 있다. 정배(正配)란 장가처, 적처(嫡妻) 곧 '혼례식을 치르고 맞은 아내'를 뜻하는데, 혼인잔치의 주인공은 예언의 등불을 높이 든 '지혜로운 다섯처녀'이지, 마리아라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마태복음 25:4,10. 계시록 19:7~9).


4. (영적 양분의 근원, 양육자) "마리아는 우리 영혼을 기르시고 하느님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각별한 임무와 권한을 부여 받으셨습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모든 간선자가 생활하고 있는 동안에는 마리아의 태내에 숨겨져 있는 것과 같아서, 복된 어머니께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다시 낳으실 때까지는 실제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아기에 그 어머니의 젖이 가장 좋듯이, 모든 간선자도 마리아로부터 그 모든 영신의 영양분과 힘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통달케 하시는 이도 성령 이시요(요한복음 16:13, 2:27. 고린도전서 2:10, 13), 고치시고 인도해주시는 분도 성령이시요(로마서 8:13~14), 완전히 결실케 하시는 분도 성령이시다(갈라디아서 5:22). 그리스도와 같은 완전한 인격에 이르도록 장성시켜 주시는 분도 성령이시요(에베소서 4:13~17),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이도 성령님뿐 이시다(요한복음 14:16). 우리로 예수를 영접토록 인도하시는 분도 성령님이시지만,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을 듣고 예수를 마음에 영접하는 순간 우리 안에 내주하시어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므로(사도행전 10:44~46), 성령께서는 마리아에게 우리 영혼을 기를 권한을 이양하실 어떠한 이유도 없으며, 우리가 예수께로 가기 위해 마리아를 거쳐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다. 가톨릭은 '그 아기에 그 어머니의 젖'을 운운하면서 신자들이 마리아로부터 영혼의 영양분과 힘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이는 성경에서 아주 멀리 떠난 '다른 복음'임이 확실하다(갈라디아서 1:6~8). 누가복음 11: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영적 양분은 '마리아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설교를 통하여 확실히 못박으셨다.


5. (원죄 없음) "마리아는 하느님의 뛰어난 주형(鑄型)으로서, 성신에 의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합체시켜 내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우리 인류도 하느님과 일치시켜 내십니다. 그 주형 안에서 다시 주조되기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진실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상을 입게 됩니다. 이는 나약한 인간에게 적합하고 부드러운 방법으로서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상을 그대로 본뜰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티끌 만한 죄의 그림자도 없는 거룩하고 정결한 마리아에게는 마귀가 절대로 침범할 수 없기에, 그르칠 위험이 없는 안전한 방법인 것입니다."


*** (편집자 주: 가톨릭은 마리아가 어미 뱃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죄가 없이 잉태되었으며(무염시태), 태어나 지상에 살아 있을 동안도 어떤 죄도 범치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마리아를 일컬어 '인류를 하느님과 일치시켜 내는 자'라 하고 있다. 또한 마리아에게는 티끌 만한 죄의 그림자도 없고 거룩하고 정결하다 한다. 마귀가 이기지 못하는 분은 삼위의 하나님밖에 없는데, 마리아를 마귀가 절대로 침범치 못할 신의 경지에 올려 놓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가톨릭은 삼위일체의 신앙을 떠나 전적으로 '아세라 신앙'에 젖어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사사기 3:7. 열왕기상 14:15,23. 열왕기하 13:6, 17:9~10). 구약에서 보여지는 바알(태양)신과 아세라 여신 숭배사상은 신약으로 넘어와서는 가톨릭 안에서 '성체'와 '마리아' 숭배 형태로 재연되고 있다. 순교자의 동무 종인 우리들은 때가 되면 순교의지를 가지고 가톨릭 안으로 들어가 거짓 교리에 속고 있는 순진한 양 떼들을 살려낼 마음므로 다음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이사야 27:9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 함을 얻을 결과는 이로 인하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로 부숴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태양상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여기서 잠시 태양상에 해당하는 가톨릭의 '성체' 신앙을 소개한다.


먼저 '신영성체의 기도'를 소개한다 : "지극히 거룩하신 성사(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영하다 : 성체 먹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옵나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 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시옵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옵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현세에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가톨릭대사전에 소개된 '성체'를 소개한다) '성체' : 성체는 미사 중 성찬의 전례 부분에서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해져 한 가지 신비를 세 가지 측면에서 보여준다. 우선 성체는 세상 끝날까지 인간과 함께 계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된 '실재적'이며 '신체적'현존이다(편집자주: 이 사악한 교리가 사람들을 성체 앞에 절하며 경배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성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즉, 미사성제를 통해 이 희생이 계속됨으로써(편집자주: 히브리서 7:27, 9:12,26절에 위배된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성체는 사랑의 일치를 보여준다. 즉 신자들은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영혼의 초자연적 생명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편집자주: 희고 둥근 빵쪼가리를 입에 넣음으로 영혼의 초자연적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무의미하다).


*** 포도주<피>와 떡<말씀>의 신령한 의미는 온데 간데 없고, 기업에서 만든 마주앙(상표이름) 포도주와 밀가루 떡 형상에 가짜 예수가 들어 앉아 경배를 받고 있으니 이 웃지 못할 희극은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이사야 9:16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6. (의탁의 대상) "자기의 능력과 기술만 믿는 조각가와 같이 통속적인 방법으로만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사람을 눈여겨 보십시오. 자기의 재간에만 의존하지 않고 마리아께 의탁하여 성신의 역사하심을 입은 유연하고 초탈한 사람과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전자에는 얼마나 많은 오점과 결함과 착각이 있으며, 얼마나 많은 암흑과 닦이지 않은 후박함이 스며 있습니까? 그러나 후자는 얼마나 순결하고 천상적이며 얼마나 그리스도를 잘 닮은 모습입니까?"


*** 에녹은 말씀과 동행하여 하늘에 올라갔고, 모든 선지자들이나 예수님 당신도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의 무기 하나로 승리하셨다”(마태복음 4:4,7,10). 마태복음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예수님 당신이 그러하셨으니 포도나무 가지인 우리도 그렇게 하기만 하면 된다. 그밖의 것은 마귀와의 싸움에서 우리를 도와주지 못한다. 하나님의 뛰어난 주형(鑄型)인 마리아께 의탁하여야 천상 복에 참여한다는 교리는 기록된 말씀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는 '거짓 복음'이다.


7. (신의 낙원 / 거룩함 / 찬미의 대상) 마리아 찬미! "하느님의 위대함을 제외하고는, 하느님께 있어서 천상의 동정녀 마리아보다 더 위대한 피조물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천국에서 제일 높은 세라핌 천사들도 이에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편집자주: '하늘여신', '하늘황후' 사상이 잘 드러나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낙원이요 형언할 수 없는 세계로서 성자께서 그 안에 들어가셔서 신비를 행하시고 그를 보호하시면서 그 안에 의합하셨습니다. 나그네인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만드셨으며, 이 세상을 떠나 당신의 영광을 입은 사람들을 위해 천국을 만드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한 세계도 만드셨으니, 그것이 바로 마리아로서, 대부분의 인류에게뿐 아니라 더 높은 하늘의 천사와 성인들에게까지도 알려지지 않은 세계입니다. 이들은 하느님께서 자기의 세계인, 이 천상의 동정녀 마리아 안에 깊숙히 숨어서 멀리 계심을 보고, 신비스러운 놀라움에 가득 찬 나머지, 끊임없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하고 신비스러운 놀라움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가 무엇이 부족하여 마리아라는 피조물 속에 들어가 사신단 말인가? 이 얼마나 마귀적인 발상인가? 얼마나 황당한 사단의 조작인가? 마리아만을 노골적으로 찬미하고 싶으나 속여가며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살짝 끌어오는 저 간교함을 보라!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라고 외치는 건, 도대체 누구를 향한 외침인가? 동정녀 마리아 안에 깊숙히 숨어 있는 하느님(마귀)이 그렇다는 것인가? 하느님이 마리아 안에 깊숙히 숨겨져 있는 그 신비스러운(?) 사실이 그렇다는 것인가? 애매모호한 문장은 바른 지적을 피해가면서 (속여서 멸망케 할) 자신의 목적을 달성키 위한 마귀 제1의 전술인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언어혼란 전술에 능한 이유도 그들의 아비가 마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직히 말하자!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계시록 15:4). 성경 전체에서 '거룩하시다'라고 찬송된 대상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뿐이시다(시편 22:3, 77:13, 99:3, 5절, 9절. 계시록 6:10). 계시록 4:8 "네 생물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복된 처녀 마리아도 그녀의 기도에서 하나님만을 거룩하다 했고(누가복음 1:49), 그녀 자신이 정결 예식을 행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간 사실을 볼 때 마리아 역시 일반 죄인들과 다름 없는 죄인의 후손임을 잘 알 수 있다(누가복음 2:22). 그런데도 가톨릭은 마리아가 그 어머니의 탯속에 있을 때부터 죄가 없이 잉태되었고(무염시태), 평생을 죄없이 살았으며, 요셉과는 한 번도 동침한 적이 없는 '평생 동정녀'라고 칭송하고 있다. 심지어 마리아를 <모든 거룩함의 기준이자 근원>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마리아는 곧 신(神)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교회를 통하여 신자는 거룩함을 배우고, 완전히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를 거룩함의 기준이자 근원으로 여긴다" (가톨릭 교리문답 490쪽, 2030항).


거듭난 성도라면 누구나 성경의 마리아가 겸손하고 정직한 주의 여종인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가톨릭이 추앙하는 마리아는 '하늘 여신', '하늘 황후'로 변개된 마리아로서, 마귀가 조작해낸 마리아이지 성경의 마리아가 아니다. 마리아는 자기를 거룩하다 한 적이 없었고, 오직 하나님만 높이고 찬양하였다. 마리아가 낙원에서 이 땅을 내려다 본다면 가톨릭의 현 모습을 심히 가증히 여길 것이다. 누가복음 1: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 거짓 교리에 대해서는 29번에서 다루었다.


8. (성부의 거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마리아를 통해 더 가까이 더 합당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마리아 안에 오셔서 사십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어디서나 천사들과 천상 성인들의 양식이 되시지만, 마리아 안에서만 하느님의 자녀들의 양식이 되시는 것입니다."


*** 가톨릭의 교리를 살펴볼 때, 마리아가 없이는 하나님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재림론에 있어서까지 마리아가 없이는 예수님은 결코 이 땅에 재림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한 신으로 보인다. 간교하고 무서운 '재림론' 부분은 후반부에서 다루었다.


9. (일치-중재자 / 찬미의 대상) "마리아는 한낱 피조물이니, 하느님과의 일치의 길에 장애가 된다는 오류에 젖은 사람들과 같이는 생각하지 마십시오(편집자주: 우리를 두고 하는 마귀의 소리이다). 마리아 안에 살고 계신 분도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 홀로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께서 누리는 하느님과의 일치는 바오로 사도나 모든 성인들을 초월합니다. 하느님만을 위해 창조된 마리아는 우리를 당신 안에 묶어두기 보다는 오히려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시며, 당신과 일치하면 일치할수록, 더욱 더 하느님과 일치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마리아여!' 하고 부르면 마리아는 '하느님' 하고 부르시며 응답하시고, 우리가 엘리사벳처럼 '복되다' 이르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십니다. 우리가 엘리사벳처럼 마리아를 찬미하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십니다."


*** 찬미할 대상은 과연 누구인가? 신구약 66권 전체에서 '찬미'가 들어 있는 구절들을 모두 찾아 놓았으니 확인하라! '찬미'라는 단어는 오직 하나님께만 쓰였을 뿐, 마리아를 찬미하면 그 찬미가 하나님께로 돌려진다는 구절은 한 군데도 없다(마태복음 21:16, 26:30. 사도행전 2:47, 3:8~9, 16:25. 고린도전서 14:15. 에베소서 1:6,14, 5:19. 골로세서 3:16. 히브리서 13:15).


10. (은총의 통로) "하느님의 지혜에 의해 설정된 은총의 질서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만 은총을 분배해 주신다고 토마스 성인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로 나아가 일치하기를 원한다면 성자께서 사람이 되시어 그분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 통로를 이용해야만 합니다. 그 통로는 바로 마리아이십니다." (1번 참조)


11. (찬미, 봉헌의 대상) "마리아께 대한 완전한 신심은 자기 봉헌입니다. 성모 마리아께 더 많은 존경과 사랑과 신뢰와 영광을 바치는 것입니다. 매괴회나 서의회에 가입하고, 로사리오 기도를 한다든지,마리아의 상(像)이나 마리아의 상본을, 또는 마리아 제대를 공경하며, 드러나게 마리아를 찬미하고 마리아의 어떤 신심회에도 가입합니다."


*** 아예 십계명의 제2계명을 범하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명백한 마귀의 말이 아닌가? 평상시 죄와 악을 기막히게 은폐케 하는 변신과 사기의 천재 마귀가 어찌하여 이렇게 공개적으로 마리아의 상(像)이나 마리아 제대를 공경하라고 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가톨릭 안에는 제2계명이 없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십계명과 관련된 내용은 7장의 "하늘 황후" 마지막 부분을 참조하라!


12. (봉헌의 대상) "완전한 봉헌!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전부 마리아의 것으로서 마리아께 완전히 바치면서, 동시에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또한 예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모든 것을 마리아를 통해서, 마리아와 더불어, 마리아 안에서 그리고 마리아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 우리의 구주시고 천지의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가톨릭의 교리에 의해 12번 문장에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있으시다.


13. (봉헌의 대상) "우리는 아무런 강요도 없는 완전한 자유와 사랑으로써 아무 조건 없이 우리 자신을 양도하고 봉헌하기 위해 어떠한 축일을 선택해서 몸과 영혼을, 외적인 소유물, 즉 집이나, 가족이나, 수입을, 그리고 내적이며 정신적 소유인 공로, 은혜, 덕과 보속을 바치는 것입니다."


*** 예레미야 7:18절과, 44:17,19절에 기록된 내용이니 하나님의 말씀은 놀랍도록 정확하도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생명)을 생명없는 마리아 상(像) 앞에 봉헌할 수는 없는 노릇!!!


14. (봉헌의 대상)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도록 우리의 모든 권리를 위임해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당신 뜻대로 당신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용하실 것입니다."


*** 우리를 이용한다는 것은 우리를 주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우리를 주관할 능력이 없다. 사람의 발걸음을 움직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예레미야 10:23. 잠언 16:9). 마리아가 자신의 뜻과 자신만이 아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마리아'를 여신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인하는 꼴이 된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라는 문구는 '사단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로 해석됨이 마땅하다.


15. (봉헌의 대상)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마리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은 완전한 헌신에 있습니다.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완전히 마리아의 것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 사단의 속성은 자꾸 무엇인가를 바치라는 것이다. 행위를 바치고, 시간을 바치고, 재물과 소유를 바치고, 심지어는 자기 자식의 생명까지도 바치라는 것이다! (신명기 12:31. 열왕기하 17:16~17. 역대하 28:3~4. 예레미야 7:31).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바쳐짐이 마땅하다(마태복음 22:37, 10:39). 그러나 15번 문장 어디를 보아도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고는 기록돼 있지 않고, 오직 아세라(마리아)에게 바치라고만 되어 있다. 이렇게 먼저 마귀에게 충성할 것을 가르쳐놓고 그 다음 예수를 끌어와 교묘히 위장해보려는 것이 간교한 마귀의 술책이요, 혼란전술이다


16. (봉헌의 대상 / 은총의 통로) "먼저 마리아를 통해 예수께 우리 자신을 바침, 마리아를 통해 당신 성자를 보내 주시고 마리아를 통해 우리에게 은총을 나누어 주시는 하느님 성부를 본받는 길이 됩니다. 또한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신 성자를 모범으로 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표양을 주시고 우리를 부르심으로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그 같은 길로 우리도 당신에게로 나아오길 원하십니다. 또한 성신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만 당신 은총과 선물을 내려주시기 때문에 마리아를 통해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것은 성신을 본받는 길이 됩니다. '은총이 우리에게 보내어진 그 길로 은총의 원천인 성부께로 되돌아 가는 것이 합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베르나르도 성인은 반문하셨습니다(편집자주: 일개 죄인을 교회 맘대로 '성인'으로 시성하여 그를 높여 존칭어를 쓰고 있다)."


*** '마리아를 통하여'라는 말이 7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가톨릭은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는 3위의 하나님께로 가지 못하도록 세뇌적인 장치를 해놓고 있는 것이다. 이 '다른 교훈'이 아닌 '바른 교훈' 곧 '복음'(디모데전서 6:3)으로 저 안에 있는 영혼들을 살려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가톨릭의 순진한 양 떼들은 이처럼 거짓 지도자들에게 속아 허탄한 이야기를 좇고 있으니(디모데후서 4:3~4) 우리는 이 시대의 전도인으로서 그들을 살릴 마음으로 우리의 파수꾼 직무를 다하여야 한다(디모데후서 4:5. 디도서 1:9).


17. (중재자-대변자) "우리가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께 나아가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 때문에 무한히 거룩하신 예수님께 죄를 품고 직접 나아가기에는 합당치 못하기 때문에 마리아를 예수님과의 대변자요 중재자로서 모실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 예수님을 우리의 형제요 중재자로 삼아 겸손되어 부복함으로써, 우리의 심판관이신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됩니다."


*** 예수께서는 "죄 있는 자는 나에게 오라" 하시는데(마태복음 9:13. 누가복음 15장. 찬송 337장), 가톨릭은 "죄 있는 자는 직접 못 간다" 가르치니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거룩한 가톨릭교회'의 말을 믿어야 할까? '거룩한 성경'의 말씀을 믿어야 할까? 가톨릭은 이처럼 죄인은 예수께로 집적 나아가기에는 합당치 않으니 마리아를 거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중의 '중재자'를 갖고 있는 셈이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 때문에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살아나셨건만(로마서 4:25), 가톨릭은 죄인으로서는 감히 이 예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마리아라는 또 다른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성경에 없는 소리로서 마귀의 거짓말이다.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 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18. (여왕 / 중개자) "우리 눈에는 좋아 보이는 선행이라 해도, 하늘의 별까지 불결해 보이는 하느님 대전에는 얼마나 초라하고 보 잘 것 없이 보여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여왕이신 마리아께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이 선물(선행)을 손에 받아, 정결케 해주시고 성스럽게 해주시고 아름답게 꾸며 주셔서, 하느님 대전에 의합하게 바쳐질 수 있도록 간청해야 할 것입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만일 당신이 하느님께 무엇을 바치려거든 먼저 그것을 마리아 손에 맡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거절 당할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9. (봉헌, 중개자) "우리의 모든 헌신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성모님의 손에 맡기나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정성을 다하여 우리 자신을 마리아께 봉헌하고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우리 자신을 완전히 끊어 버리면, 마리아께서는 더더욱 자비롭게 인도해 주실 것이며, 백배로 보답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 선물을 당신 사랑의 금쟁반에 놓아주실 것이며, 리브가가 야곱에게 옷을 입혔듯이, 당신 맏아들이요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실 것입니다. 그 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이며, 마리아 손에 달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리아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끊고 나면 우리는 두 번 옷을 입는 것입니다."


*** 모든 것을 성모님 손에 맡기라 하고, 자기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하라 한다. 그러면 마리아가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 주시고, 우리 행위에 백배로 보답해 주신다 하니, 바로 '신'의 모습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 역시 '마리아의 손에 달린 것'이라 하니 "가톨릭은 마리아교가 아닙니다. 개신교 형제들이여!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하는 그들의 설명 역시 마귀가 주는 거짓말임이 탄로나고 있다.


20. (의뢰의 대상) "저의 위대하신 여왕이여! 저를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시고, 제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모두를 당신께 의탁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시온지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을 온전히 당신께 바칩니다. 당신은 하느님과 인류에게 성실하시고 당신께 의탁하는 것 어느 것도 없애지 않으십니다. 당신은 강용(剛勇)하시니(주:강하고 날랜 분이시니), 빼앗고 해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마리아를 따를 때 방황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마리아를 생각할 때 그르치지 않을 것이며, 마리아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실 때 파멸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를 보호해 주실 때 두렵지 않을 것이며, 우리를 이끌어 주실 때 지치지 않을 것이며, 마리아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실 때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것이 '하늘 여신'이 아니고 무엇이랴! 가톨릭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권위를 높이는 척하면서 자기들도 기독교 정통 교리를 고수하고 있는 듯 위장한다. 마리아에 대한 질문에는 언제나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는 마리아를 단지 예수를 낳아준 어머리로서 '공경'하는 것뿐이지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위의 글들을 보면 그 말들이 다 거짓이었음이 드러난다. '강용하시다'는 말은 마리아에게는 합당치 않다. 강하신 자, 그 이름이 용사이신 자는 주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5:3. 이사야 40:10. 계시록 18:8).


21. (중재자, 은총의 통로) "마리아는 그의 아들(예수)을 만류하시어 다른 사람을 벌하지 않게 하시고, 마리아는 마귀를 억제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게 하시며, 마리아는 덕을 굳게 잡아 그것이 소멸하지 않게 하시며, 마리아는 은총을 굳게 잡아 그것이 바람에 날리어 흩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 마리아를 신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가톨릭측의 항변은 이제 완전히 거짓말로써 드러나고 있다. 성자 예수님의 뜻을 만류할 수 있고, 마귀를 억제할 수 있다면 그녀는 신으로 섬김받을 만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천하지를 다 둘러보아도 성부의 권한을 넘겨받은 예수님의 뜻을 만류할 자는 없다(이사야 43:13. 요한복음 5:22=계시록 5:1~7). 또한 마귀를 멸하실 분 역시 예수님밖에 없다(요한1서 3:8).


22. (피난처, 안식처) "모든 것을 마리아 안에서! "모든 일은 '마리아 안에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서히 이 내적 생활에 적응해서 우리 안에 마리아의 생각과 영신적인 모상을 심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모든 영혼에게 있어서 거절당할 두려움 없이 그의 모든 기도를 하느님께 들어 올릴 수 있는 축복된 장소입니다. 마리아는 또한 다윗의 탑과 같으셔서 우리의 모든 적으로부터의 피난처가 됩니다. 마리아는 타고 있는 등불과 같으셔셔, 우리의 마음을 비추고 하느님 사랑으로 불태우고 계십니다. 마리아는 성스러운 제단으로서, 우리는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을 명상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마리아는 우리가 하느님 대전에 기꺼운 존재가 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며 우리 모두의 안식처입니다. 기도할 때에도 마리아 안에서 하면, 예수님의 마음에 의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마리아 안에서 하고, 어디서나 어떤 일에서도 우리 자신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 아니다! 모든 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야 한다. 성경에는 '마리아 안에서'라는 말씀은 한 구절도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말씀은 신약에만 45회나 나온다.


23. (중재자) "모든 것을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는 항상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야 합니다. 무엇을 간청하려면 언제나 마리아의 대변과 그의 유력한 중개를 이용해야 하며, 혼자서 직접 예수 그리스도께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완전한 마귀의 발언이다! 성경에 없는 소리다. 마리아 숭배 사상은 이교도들의 여신숭배 관습이 가톨릭 교회 안에 정착된 것으로 보면 정확하다. 사도행전을 보면 '에베소' 지방에서는 아데미 여신이 숭배되었고(행 19:23~41), 이집트에서는 예로부터 '이시스' 여신이 숭배되어 왔다. '이시스' 숭배자들은 '이시스'를 '위대한 처녀', '신의 어머니'라고 불렀었는데, 현재 가톨릭에서도 마리아를 '자비하신 동정녀', '천주의 성모'라 부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AD 313),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AD 392) 4세기 말엽부터는 이교도적 우상숭배가 로마법에 의해 금지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교도들이 섬기던 여신 사원이 로마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을 것이고, 숭배의 대상을 잃은 그들은 로마의 위세를 업고 퍼져나가는 그리스도교에서 자신들의 허전함을 달래줄 수 있는 '마리아'를 발견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 추측일 것이다.


자기 동포가 바벨론 칼에 상하고 포로되어 잡혀간 걸 보고서도 애굽에 와서 '하늘 여신'을 숭배했던 그들은 소위 '선민'이라는 유대 민족이었음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하물며 이방인들이야 얼마나 더 자신들의 패역을 달래줄 여신을 찾았겠는가? 그때 바로 '마리아'라는 아주 좋은 대체물이 가톨릭 안에 존재했던 것이다.   


4세기경 에베소는 소아시아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중심지가 되었고, 431년 에베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에서는 200 여명의 가톨릭 주교들이 모여 마리아의 신학적인 위치에 관한 중대한 결졍을 내려 네스토리안(Nestorian) 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네스토리우스'는 성모 마리아에게 테오토코스('신을 낳은 사람')라는 칭호를 붙이면 그리스도의 인간적 본성을 손상시키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그 칭호 사용을 비난하여,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파문당했다. 신의 어머니(Mother of God) 교리는 바로 이 '에베소 공의회'에서 태동되었다. 지도자들의 잘못된 교리 하나가 그 교리를 따르는 모든 백성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법이다(이사야 9:16, 3:12).


24. (봉헌의 대상) "모든 것을 마리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마리아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고귀하신 모후의 종이므로 모든 일에 있어서 마리아께 봉사와 유익과 찬미를 바친다는 것을 최선의 목적으로 하고, 다음으로는 하느님께 보다 큰 영광과 찬미를 바친다는 것을 최후의 목적으로 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 여기서도 그들이 마리아를 예수의 '육적 모친'으로서가 아니라, '하늘 모후'로 섬기고 있음이 잘 드러난다. 그들은 빠져나갈 여지를 두기 위해 '마리아를 찬미하라' 한 다음에는 언제나 '하느님께 보다 큰 영광과 찬미를 바쳐야 한다'고 토를 달아 놓는다. 하지만 '찬미'는 천지를 창조하신 삼위의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할 것이므로, 그 이외의 존재에게는 이 단어의 사용이 합당치 않다. 그러나 가톨릭이 마리아도 찬미하고 하나님도 찬미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저 악행이 남녀신으로 짝이 되어 숭배받던 '바알-아세라' 신앙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자들은 언제나 남신, 여신을 함께 섬겨 왔다(출애굽기 34:13. 사사기 3:7).


구약 때에도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상을 훼파하였는데, 훼파된 우상을 본 우상숭배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사기 6:28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29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30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오늘날 스룹바벨 제단이 가톨릭의 태양상(성체)과 아세라상(마리아)을 말씀의 칼로 찍어 훼파하면 약 9억에 가까운 가톨릭 성도와 그 우두머리들은 위와 같이 날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레미야서에 예언된 '하늘황후'(7:18)와 '하늘여신'(44:17)을 보고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예레미야처럼 죽기까지 다시 예언할 것이다. 아멘!


25. (중재자) "마리아 없이 예수께 직접 나아감은 온당치 못함! "예수님과 하느님께 바로 나아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당신이 한 일과 당신의 뜻은 아직 보잘 것 없지만 마리아를 통하여 나아간다면 마리아는 당신 안에서 일을 하시어 당신이 한 일을 정당화시키시고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도록 하실 것입니다."


26. (여왕이며 속죄자) "마리아의 현존하심을 직접 입지 못해도 염려 말 것! 복되신 동정녀의 현존하심을 당신 영혼이 바로 입지 못했다 해서 크게 상심하지 마십시오. 이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 자비하심으로 그 은총을 입었다 해도, 충실하지 못하거나 마음 안에 마리아를 모시고 있지 않으면 잃기 쉬운 것입니다. 이러한 불행에 처했다 해도 조용히 당신의 여왕에게로 나아가서 속죄를 하십시오."


*** 가톨릭에서의 마리아는 인간의 속죄까지 받아줄 수 있는 '하늘 여신'이 분명하다. 그러나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죄를 사하는 속죄의 권세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는 것이다(히브리서 9:22).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속죄는 완성되었다(히브리서 10:10~14). 피의 공로를 믿는 것만이 하나님이 불의한 인간들에게 요구하시는 유일한 행동이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구원을 받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믿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행위뿐이다(로마서 3:27). 홈페이지 >> 신앙문답 150선 >> 12번을 참조하라.


27. (성부의 어좌) "사랑하는 사람이여, 암브로시오 성인의 말씀과 같이 '우리 안의 마리아 영혼이 주님을 찬미하고, 우리 안의 마리아 마음이 하느님께 대한 기쁨에 용약'할 수 있도록, 이 신심에 충실하여 은총을 얻을 수 있도록 합시다. '낙원이라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의 품속보다, 하느님의 어좌인 마리아의 품속에 머묾이 더 큰 영광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게릭 수도원장이 말하고 있습니다."


*** 성경 본문을 무시한 채, 자신들이 임명한 성인들과, 일개 수도원장의 권위를 더 따르는 이유는 저들 교리에 진리의 기준이 2가지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聖經)'과 '성전(聖傳)'이 그것이다. 그들은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성전(聖傳)'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이것은 말뿐이지, 그들은 '성경'과 '성전'이 상충될 때는 언제나 '교회의 전통'을 따른다. 자세히 관찰해 볼 때, 가톨릭은 성체(예수가 이 안에 현존한다고 믿고 있음)를 하늘의 태양과 같이, 마리아를 하늘의 달(천상모후)과 같이, 모든 천사와 성인들을 별과 같이 비유하여 떠받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단이 무저갱에 들어가기 전까지는(계시록 20:1~3) 그가 사주하는 우상숭배의 모습은 시대가 변하여도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어 교회 안에 침투하기 마련이다. 구약의 교회가 섬기던 '해', '달', '별'의 천체숭배 사상은 오늘날 가톨릭 안에서 '성체(태양)', '마리아(달)', '천사와 모든 성인 성녀(별)' 숭배 사상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


신명기 4:19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길까 하노라" - 육적으로 행하던 우상숭배가 영적으로 변형되어 시행되고 있다.


신명기 17:3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4 혹이 그 일을 네게 고하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사실하여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5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 남자나 여자를 쳐 죽이되...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 돌로 쳐 죽이라 하셨으니 우리도 스룹바벨 제단의 '머릿돌'의 권세로 이 모든 가증한 우상숭배 행태를 쳐부수어야 한다.


열왕기하 17:13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또 나의 종 선지자들로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14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그 목을 굳게 하기를 그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저희 열조의 목같이 하여 15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 열조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좇아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하사 본받지 말라 하신 사면 이방 사람을 본받아 16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스바냐 1: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6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예레미야 8: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2 그들의 사랑하며 섬기며 순종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 쬐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가톨릭은 몇 해 전부터 자신들이 보는 공동번역 성서에서 여호와 곧 '야훼'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주님'이라 고쳐 부르고 있다. 아무 성당이나 들어가 미사에서 낭독되는 <제1독서> 말씀을 들어보라. '야훼'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와'를 용사이신 당신의 이름이라 알려주셨고(출애굽기 15:3), 여호와 그 '성호'를 송축하라 하셨으며(시편 103:1), 이사야 선지자에게는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하고 직접 말씀하셨다(이사야 42:8). 가톨릭의 거짓 복음에 대해서 바른 복음으로 쳐서 예언해야 할 제단은 우리이다. 예레미야 강해서에서는 '하늘 여신'에 대해서만 다루고, 바알에 해당하는 '성체' 곧 태양상에 대한 내용은 에스겔 강해서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겠다.


28. (여왕이며 영혼의 생명) "마리아는 그의 자녀들의 영혼 안에 살으신다! 이 신심을 충실히 이행하면, 영혼 안에는 많은 행복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리아의 생명을 우리 영혼 안에 심는 것으로서, 이제부터 살아있는 것은 우리 영혼이 아니라 우리 영혼 안에 살고 있는 마리아의 생명입니다(편집자주: 갈라디아서 2:20절과 대조해 보라!). 왜냐하면 마리아의 생명이 그 영혼의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고마우신 은총으로, 마리아께서 우리 영혼 안에 여왕으로 군림하시게 되면, 얼마나 큰 경이로움이 일어나게 되겠습니까? 마리아는 경이의 행사자로, 우리 영혼 안에서 은밀하고 우리가 느끼지 못하게 일하시게 됩니다. 그것이 알려지면 하시는 일의 아름다움이 빛을 잃기 때문입니다."


*** 마치 북한의 김일성 부자 우상화를 보는 듯하다. 북한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우리가 자는 것도, 입는 것도, 살아 숨쉬는 것도 모두가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과, 위대하신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의 은택으로 되어지는 일이라고 세뇌시키고 있는데, 지금 볼 때 가톨릭의 마리아 신심 또한 그러하다. 피라미드식 절대복종 체제나 사상교육(세뇌) 체제를 비교해 볼 때 공산주의 집단과 가톨릭 집단은 매우 유사하다.


29. (평생동정) "마리아는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낳으심의 풍성한 동정녀이시므로, 마리아는 그 속에서 지배하시는 모든 영혼들에게 마음과 몸의 순결과 의향과 계획의 순진성과 선행의 풍성함을 확보하십니다. 사랑하는 이여, 하느님을 탄생시킬 만큼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결실을 낳은 마리아이신데(편집자주: 히브리서 7:1~3절과 대조해 보라!), 당신 영혼 안에서 수수방관 하신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리아는 당신 영혼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살게 해 주시고, 당신 영혼을 예수님과의 끊임없는 일치 속에 살도록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가 아니다. 마리아는 기록된 바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마태복음 1:25) 하신 대로 예수를 낳을 때까지만 동침치 아니하였고 이후로는 요셉과 동침하여 예수의 형제들을 낳았다. 마태복음 13장에서는 그 형제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13: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딸들은 마가복음 6:3절에, 고린도전서 9:5절과 갈라디아서 1:19절에서도 예수님의 형제들이 언급됐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 아닌 가장 정확한 증거를 소개한다. 시편 69:8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外人)이 되었나이다" 이 예언대로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가 메시야임을 믿지 않고 은근히 비꼬았던 것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 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가톨릭이여 대답해 보라! '모친의 자녀'라 함은 '친 형제'를 말함인가? '사촌 형제'를 말함인가?


들으라, 가톨릭이여! 말씀이 이토록 정확한데, 계속하여 마리아를 거룩함의 근원으로, 평생 동정이신 순결한 여인으로 우상화 할 것인가? 또한 마태복음 12:46~50절에서도 어미와 형제가 찾아왔다는 말에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반문하시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말씀하심으로 마리아를 특별대우 하지 않으셨고, 당신의 근본이 인간의 혈통에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임을 알려주셨음을 왜 애써 모른척 하려고들 하는가?(히브리서 7:3). 몰랐을 땐 적게 맞아도, 알려주고 회개할 충분할 시간을 주었는데도 말씀 앞에 순종치 않으면 그 벌이 심히 무거워지는 법이다(마태복음 12:47~48).


가장 무서운 재림론! 마리아를 통해 세말(世末)을 내다 보는 그들!


30. (세말 재림론의 주인공) "하느님께서 처음에 마리아를 통해서 비천한 몸으로 세상에 오셨듯이, 온 교회가 그가 오시길 기다리는 재림시, 모든 것을 지배하시고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실 때에도,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 오신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천국이 지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듯이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인류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기와 방법으로 오실 것은 확실합니다. 아무리 박학한 사람이나 성경에 통달한 사람이라 해도 이것만은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 가톨릭이 이처럼 말함은 재림론에서 마리아를 우월하고 핵심적인 위치에 놓기 위함이다. 마귀도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사람을 선택하여 쓰면서 30~50년이 걸리는 장기적인 일일지라도 끈기를 갖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지금도 재림론에 있어서 마리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신학적 연구는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본 책자의 뒷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그리스도의 왕국은 마리아를 통하여 온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성모 마리아가 더욱 알려지고 더욱 사랑을 받고 더욱 공경받을 것을 하느님이 바라고 계심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성신의 은총과 빛으로 내가 알려 주려는 완전한 내적 신심을 실천한다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그 때에 비로소 그들의 믿음으로만 볼 수 있었던 것을 뚜렷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 7장 설교를 참조하면 직접 표지그림을 볼 수 있다.


31. (마리아 왕국, 여자의 후손)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빨리 올지도 모를 세상의 종말시, 하느님께서는 성신으로 충만하고 마리아의 정신에 젖은 사람들을 들어 올려 강력한 왕국을 지으실 것입니다. 마리아를 통해 이 왕국은 죄를 타파하고 부패한 세상의 왕국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며 놀라운 일을 벌리게 될 것입니다. 나의 부족한 점이 많아 완전한 설명을 못하지만 이러한 신심을 가진 거룩한 사람들이 그 왕국을 이어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때 거룩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마리아께 대한 그들의 완전한 헌신으로 완성할 것입니다. 나의 부족한 설명으로 이 서술이 완전하지 못하고 문제의 요점이 올바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 내용의 마지막 쯤 오니 마귀의 정체가 더욱 잘 폭로되고 있다. 천년왕국이 마리아를 통해서 마리아의 정신에 젖은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이 말은 마귀가 그 주인임이 틀림없는 말이다. 죄를 타파할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신데(이사야 7:15. 요한1서 3:8. 창세기 3:15), 가톨릭은 모든 성당마다 마리아가 뱀의 머리를 밟고 있는 동상을 세워놓음으로써 '여자의 후손'을 마리아로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이시다(갈라디아서 4:4. 이사야 7:14). 마귀로부터 그 수족(手足)을 찔려 상하신 분도 예수요, 부활하시고 또 친히 재림하심으로써 마귀의 골통을 완전히 깨부술 분도 철장권세의 주인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계시록 2:27, 19:15. 시편 2:9).


32. (봉헌의 대상, 성체) "어떤 특별한 축일을 정하여 그날에 자신을 마리아께 완전히 의탁함으로써,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바쳐야 합니다. 이러한 의향으로 이 날에 영성체(편집자주: 성체=예수가 그 안에 현존한다고 하는 태양 모양의 밀떡)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 바알과 아세라 사상이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다. 마리아께 대한 봉헌과 영성체를 통하여 인간의 영혼을 완전히 마귀에게로 인도하고자 함이다.


33. (주인 되시는 마리아) "해마다 봉헌 기념일이 오면 예속과 의존의 표시로, 성모님께 조그마한 예물을 드려야 하는데, 이는 종된 자로서 주인에게 바치는 예(禮)입니다."


***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이라는 이 책을 이쯤까지 읽어 온 자라면 이제 그 영혼이 장악되었겠다 싶었는지, 마귀는 이제 아예 노골적으로 가톨릭 성도를 '종', 마리아를 '주인'이라 선언하고 있다. 우리가 그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릴 우리의 주인은 삼위일체의 하나님뿐이시다. 잠언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우리 9.24 스룹바벨 제단과 이곳에 연합될 세계의 '우는 자들'은 엘리야와 같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거짓 선지자들의 제단을 여호와의 불제단 앞에 굴복시킬 것이며(종교바벨 격파), 또한 북방 철의 장막까지 치고 올라가(정치바벨 격파) 갇혀 있는 양 떼들을 살려냄으로써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릴 백마용사들이다(스가랴 6:6,8). 하지만 가톨릭은 주인을 저버리고 우상을 제 주인으로 삼고 있으니 본 주인의 마음을 심히 괴롭게 하는 못된 종들이다. 이사야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큰집=가톨릭)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소, 나귀만도 못한 자들이 바로 마리아를 섬기는 자들이다.


34. (값진 진주, 생명나무) "마리아의 땅에 묻혀 있는 보화와 복음의 값진 진주를 발견하였다면, 그것을 살 수 있도록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파십시오. 복되신 어머니께 당신을 희생으로 바쳐 마리아 안에 당신을 없이 해야만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해 온 신심(마리아신심)인 그 생명의 나무를 성신께서 당신 영혼 안에 심어 주셨으니, 때가 올 때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해 기르십시오."


*** 가증하도다! 성경이 말씀하는 보화와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천년왕국'과 '천국'이지, 마리아가 아니다(마태복음 13:44~46절과 대조해 보라!). 또한 가증하도다! 생명 나무는 지혜로 상징된 예수님이지 마리아가 아니다(잠언 3:18). 천년왕국과 천국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하신 생명나무시다(계시록 2:7, 22:2,14,19). 생명나무 실과를 따 먹으면 영생한다고 하신 말씀은(창세기 3:22), 예수와 예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마다 영생한다고 하신 말씀(요한복음 3:15~16, 5:24, 6:27,40)과 같으니 여호와 하나님과 그 아들 주 예수와 진리의 영이신 성령 곧 삼위일체의 하나님만이 영생을 주시는 생명나무가 되신다(요한복음 4:14, 5:39).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한복음 5:40). 마리아와 성체를 숭배하는 가톨릭 교권은 이 말씀에 정확히 걸려들고 말았다. 영생하시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과 만왕의 왕 예수님으로 기록되었으니(창세기 21:33. 다니엘 4:34, 12:7) 마리아 숭배자들과 성체숭배자들은 어서 회개하고 요한복음 6:51절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살 것이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에스겔서에서 상세히 기술하겠으나 여기서도 간단히 짚고 넘어갈 필요성을 느낀다. 가톨릭은 이 '살'이 '성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밀떡이 경배와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한복음 6:47). 영생이 '성체'와 같은 물질 쪼가리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다는 말씀이시다.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한복음 6:50). 가톨릭은 '먹고'라는 단어를 오해하여 입 속에 들어가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성체'를 조작해 내었지만, 여기서 '먹고'란 입으로 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귀로 듣고 영으로 소화한다는 뜻이다. 즉 '먹고'는 '듣고'의 의미이다. 다음 말씀을 보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한복음 5:25).


'성체'는 세상 기업체의 공장 기계가 찍어내어 가톨릭측에 공급하는 것이지만, 인자의 살은 위로부터 내려와 어떤 이 속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육신의 눈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신령한 떡이다. "사람이 이 떡(=말씀)을 먹으면(=들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영)이로라 하시니라"(요한복음 6:51). 예수님의 살은 '영'이니 물질덩어리 '성체' 따위는 절대로 예수님의 살(=영)이 될 수 없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한복음 6:63). 모든 말씀을 볼 때, 살리는 것은 영이며, 영은 말씀이며, 말씀은 떡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으니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6:51) 하신 말씀의 '떡'은 인간이 찍어내고 사제가 그 위에 십자가를 그으며 강복할 때 신령하게 변화하는 '성체' 쪼가리가 아니라 오직 기록된 말씀을 읽을 때 들어오는 신령한 말씀의 떡이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한복음 6:33).

신약을 미리 보이신 구약의 모형역사인 출애굽기를 살펴보자! 출애굽기 12: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기'는 어린 양의 살이니 바로 '말씀'을 예표한다. 말씀을 먹을 때 반드시 '불'에 구워 먹어야지 '날로나 물에 삶아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성령의 불' 곧 기름부음의 역사(요한1서 2:20,27)로만 말씀을 소화할 수 있지, '날로나 물에 삶는' 인본주의로써는 소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가톨릭처럼 예수님의 말씀인 고기(=살)를 제멋대로 해석하거나(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으면(체계적 거짓교리화)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말씀은 포도주로도 비유되는데, 포도주에 물을 섞으면 보응을 받는다 하셨다(이사야 1:22). 포도주는 아무 것도 첨가됨 없이 맑게 유지되어야 하며(이사야 25:6), 혹 무엇을 섞어야 한다면 포도주끼리만 혼합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잠언 9:5. 이사야 34:16).


이렇게 성경을 상고해보니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것은 어린 양의 피와 어린 양의 살, 곧 '예수의 피와 말씀'뿐 이다. 생수와 생명의 떡은 영육에 안식을 주는 '말씀'밖에 없다. 가톨릭이 조작해낸 가짜 떡(성체) 가짜 중보자(마리아)는 그 누구에게도 생명을 줄 수 없다.


35. (생명 나무) "생명의 나무인 마리아가 심어진 영혼은 복됩니다. 자라서 꽃피우는 영혼은 더욱 복됩니다. 마리아께서 결실을 맺게 해 주시는 그 영혼은 더욱 더 복됩니다. 영원히 죽을 때까지 마리아의 그 결실을 맛보고 보존하는 자는 누구보다 복됩니다."


*** 이 책에서는 '마리아께 관계된 말씀'이라는 타이틀 아래 잠언 8:22~35절의 말씀을 기록해 놓고 있다(194~195p). '예수'의 위치를 마리아로 대치하려는 간교한 술책이다. 인용한 잠언 본문 밑에는 36번의 기도내용을 삽입해 놓았다.


36. (성부의 거처, 전구자)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여, 당신은 성신의 협력하심으로써 영광스러운 동정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을 당신 성자의 맞갖은 거처로 마련하셨으니 마리아를 기쁘게 기념하는 우리로 하여금 마리아의 너그러운 전달로 닥쳐올 모든 악에서 구함을 얻게 하소서. 아멘."


*** '영광스러운'이라는 단어는 피조물에게는 해당 없는 단어이다. 마리아 앞에는 절대로 붙여서는 안 될 단어이며, 마리아가 우리의 '기념'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든 악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능력 역시 '마리아의 너그러운 전달(중보=전구)'에 있지 않고, '성령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과(로마서 8:26~27),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언기도'에 있다(로마서 8:34. 히브리서 7:25. 요한1서 2:1). 우리는 이 글을 통해 가톨릭에서의 '예수'란 마리아를 섬기는데 있어 날아올 공격들을 막아내기 위해 장치한 방패막이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죄인들에게만 구세주가 필요하다. 마리아 역시 하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고백했지 않는가?(누가복음 1:47). 세상에 죄인이면서 다른 죄인들을 위하여 중재할 수 있는 존재란 없는 것이다.


37. (신의 어머니, 승천) "마리아의 전 위대성존귀하심은 그분이 하느님의 모친이시라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모친이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오묘한 신비체의 모친도 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랑하시는 제자가 보는 가운데 전 인류를 성모님께 맡기셨다."


*** 웃기는 소리이다. 성경을 찾아보라. 마리아는 오순절 이후로 성경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사도행전 1:14). 만일 예수께서 전 인류를 정녕 마리아에게 맡기셨다면, 그의 제자 베드로나 계시로 진리를 알게 해주신 바울(갈라디아서 1:12. 에베소서 3:3), 특히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 말씀에 의해 마리아를 돌보며 그녀의 임종까지 보았을 사도 요한의 진술을 통해 마리아의 전 위대성과 존귀하심이 신약기록 속에 나타났어야 한다. 그러나 요한이나 바울이나 베드로나 모든 사도들의 글과 전도자들의 행적을 상고해 볼 때 다음 여섯 가지 내용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1) 마리아의 무원죄잉태 (무염시태, 無染始胎)

2) 마리아의 죄없음

3) 마리아의 평생동정

4) 마리아의 승천(몸+영혼)

5) 천상 모후의 왕관을 씀

6)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 간청하며, 구제하고, 중재하는 여인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신 구절은 없다. 공생애 기간 중 "여자여"라고 두 번 부르셨을 뿐이다(요한복음 2:4, 19:26). 마리아 역시 예수님의 피가 필요했고, 부활이 필요했고, 다락방에서 다른 120명의 형제들과 똑같이 성령의 임재를 받고 천국복음을 전파한 평범한 죄인 중의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그런데도 가톨릭은 교황으로부터 마리아 앞에 경배하기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가톨릭 성도들은 이 성경적인 사실들을 인정하고 하늘로 들림을 받아 '하늘 황후=하늘 여신'이 되었다는 마귀의 환상을 떨쳐 버리고 바벨 종교인 가톨릭의 소굴에서 어서 나오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온은 알곡의 집단이고, 바벨은 가라지와 하나된 쭉정이의 집단이다. 바벨에는 정치바벨과 종교바벨 2가지가 있는데, 모두가 간교한 마귀, 사단, 붉은 용의 지배를 받고 있다. 사람이 만들어낸 다음 그림을 믿을 것인가? 오직 "기록되었으되" 기록된 성경을 믿을 것인가?


마리아가 승천해서 천상 모후의 관을 썼다는 거짓 교리가 먹혀 들어가기만 하면 계시록 12장의 '해를 입은 한 여자'의 자리에 마리아를 앉혀 놓기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되면 마귀의 머리를 깨어 부술 '해를 입은 한 여자'의 실체 곧 144,000명을 해산하는 종말의 '촛대교회'의 존재를 은폐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마귀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위장과 조작과 은폐에 뛰어난 마귀 떼들은 속임수로 세상을 교란시키고 있지만, 하나님은 간교한 마귀 떼들을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실 것이다. 욥기 5:12 "하나님은 궤휼한 자의 계교를 파하사 그 손으로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며 13 간교한 자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며 사특한 자의 계교(計巧)를 패하게 하시며 14 그들은 낮에도 캄캄함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이미 31번 문장과 그림을 통해 마리아가 뱀의 머리를 밟고 있는 모습과 "나는 새 시대의 시작이다"라는 마귀의 망령된 말을 소개했다. 가톨릭의 교리 속에 흐르고 있는 마리아의 위상승격 과정을 정리해 보자. 마리아 원죄없이 잉태됨⇒마리아 평생동정⇒마리아 승천⇒마리아 천상모후의 관 씀⇒마리아 열두별의 면류관의 주인공(계시록 12:1~)⇒마귀의 머리를 짓밟음⇒마리아를 통한 새 시대(마리아 왕국) 창조! 이것은 세상의 모든 악을 없이 하고 평화로운 새 시대를 건설하시려고 탄생하신 '한 아기'의 자리를 너무도 뻔뻔스럽게 도둑질하는 행위이다(이사야 7:15, 9:6. 요한1서 3:8).


도적의 집에는 저주의 두루마리가 들어간다고 하셨다(스가랴 5:1~4). 가톨릭은 말씀 도둑질에도 왕이요, 양 도둑질에도 1등이다. 시편 50: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뱀의 머리를 짓밟는 자가 마리아라는 가톨릭의 교리는 앞으로 모든 쭉정이들을 모아 멸망으로 인도할 것이다. 가톨릭은 그들의 믿음대로 마리아를 섬기는 조직을 통해 '평화운동'과 '새 시대 운동'에 열을 올릴 것이고, 이들은 빛을 가장하여 등장할 적그리스도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평화'를 말하며 세상의 쭉정이들을 모아들일 때, 반드시 딸려가서는 잠시간 이용당하고는 멸망할 것이다.


세말(世末)에 있을 영적 혼란! 이 혼잡은 말씀의 다림줄(스가랴 4:10)을 쥔 스룹바벨 단체에 연합하지 않고서는 분간할 수조차 없다. 앞으로 적그리스도적인 바벨 단체들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여 막강한 조직력으로 점차 하나가 되어갈 것이다. 그 중앙에는 모든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음녀'가 위치해 있을 것이고, 이 음녀가 올라 타게 될 짐승은 10뿔의 우두머리가 될 북방 러시아 나라가 담당할 것이다. 짐승을 따라가는 용공주의 W.C.C.단체나, 헛된 꿈으로 세상을 장악해보려는 로마가톨릭 단체나 모두 영적으로 미쳐 있는 것이 틀림없다(새일성가 60장2절). 죽을 줄도 모르고 따라가는 가련한 양 떼들, 구할 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크신 영광 오늘 여기 나타나, 세계 만민 흑암 중에 빠져 있는 오늘에, 깨우치자! 일으키자! '신랑 온다' 외치어(마태복음 25:6) 모든 원수 물리치고 모든 양 떼 살리자" (새일성가 37장)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예레미야 51:6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끊침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45 나의 백성(시온)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나 여호와의 진노에서 스스로 구원하라"


이사야 52: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바벨=혼잡)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스가랴 2:7 "바벨론 성(정치+종교)에 거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신명기 32:32 "그들(이방잡족=바벨)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 33 그들의 포도주(쑥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


고린도전서 10: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 그러니 가톨릭 성도들이여! 어서 진노를 받을 가톨릭(바벨론 성)에서 나와서 우리와 함께 촛대교회(시온성)로 도피하자! 그들은 성경을 장식품 혹은 자기 변호용으로만 쓰고 성경보다도 교회의 전통(성전)을 더 중요시 하니 그들은 진리를 믿는 자들이 아니요, 사람의 교훈과 자기 손으로 만든 것 앞에 절하는 자들이 분명하다(예레미야 1:16. 이사야 2:8, 17:8, 31:7. 사도행전 7:41). 다음은 '개신교 형제들을 위한 가톨릭 사이트'에서 발췌한 그들의 주장이다(http://myhome.nate.com/dominic1/).


과연 "성서"만으로 족한가?


예수께서는 한 줄의 성서도 친히 쓰지 않으셨고, 또 제자들에게 성서를 쓰라고 명하신 적도 없습니다 (물론 사도 요한에게 묵시록을 쓰라고 하신 것은 예외).


<< 편집자주: 마귀 소리다! 예수께서는 시공을 초월한 무소부재의 신이시며 영원무궁의 신이시므로 인간의 몸으로 오시기 이전에도 영으로 계시며 당신의 말씀을 계시하셨다. 이사야 9:6절을 보라!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다. 신명기 33:2절의 '불 같은 율법'을 소유하신 분도 예수시며 그 율법을 모세에게 주신 분도 예수시다(신명기 18:15). 가톨릭은 이 말에 '예수'와 '성부'는 다르다는 궤변으로 맞서겠지만, 천만에... 요한복음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셨다. 그는 본래 성부와 본체이시며(빌립보서 2:6), 하시는 일이 같아서(요 14:10) 성부의 일이 곧 성자의 일이다(요한복음 6:29). 또한 성부와 성자는 같은 목적을 위하여 일하신다(요한복음 5:17, 6:38~). 요한복음 1:2~4절에서도 '태초'부터 계신 예수와, 그는 생명이신 말씀임이 증거되어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은 3위1체의 하나님이시니 성경은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그의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하였다(요한복음 1:14) >>


또 당시에 이미 있던 성서(구약성서)를 배포하라고 하신 바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을 여러 곳으로 파견하실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이 가르침을 그대로 받들고 실천했습니다.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시오.",  "여러분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것이요."


주님의 12사도와 72제자와 초대 교회 신자들 가운데 여덟 사람만이 성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네 복음서와 서간 등은 모두 어느 개인이나 어떤 교회에 보내어진 것입니다. 즉, 그것들은 교회 내의 어떤 긴급한 문제의 해결을 목적으로 한 집필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내의 어떤 폐습을 바로잡을 목적 또는 신자들의 행동규범을 세워 줄 목적으로 하는 주교의 교서(敎書)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성서를 전파하였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다만  "그리고 제자들은 떠나가서 사방에 복음을 선포하였는데(물론 입으로..) 주님께서 함께 일하시며 표징들이 따르게 하심으로써 말씀을 굳건히 뒷받침하셨다." 라고 하였을 뿐입니다.


구약시대에든 신약시대에든 신자들은 모름지기 교회의 산 권위의 지도를 받도록 마련되었고, 결코 성서의 자유해석으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16세기 이른바 종교혁명까지는 세상이 생긴 이래 죽은 법률조문만으로 백성을 다스렸다는 사실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국민에 대한 국법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한 성서와 동일시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이 국법해석자의 판결에 복종하여야 하듯이 신자도 성직자의 성서해석에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서가 유일한 지도자"라는 말들을 하는 사람을 가끔 봅니다. 과연 그렇다면 큰 돈을 써서 굉장한 예배당과 주일학교를 세울 필요는 대체 어디 있으며, 성서만이면 그만이라던 목사의 설교를 들을 필요나 어린이들에게 교회 교육이 왜 필요하고, 또 주일에 예배당에 갈 필요는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성서 만능 주창자들의 모순이 있습니다. 정말 "성서만 있으면 족하다"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설교와 교리 교육을 중지해야 옳을 것입니다. 나는 이제 개신교 형제들에게 성서가 결코 만능이 아닌 이유를 밝혀 보려 합니다.


만약 한 목사가 성서 한 권을 주며 말하기를 " 이 책을 믿으시오. 다인(多人) 구원을 위해서는 이 책만 있으면 됩니다"라고 하였다고 합시다. 그러나 책을 펴면 큰 의혹이 먼저 생길 것입니다. 즉, 이 성서에 기록된 사실이 과연 계시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또 성서가 주님의 말씀 전부인지 아닌지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 (중략).....


가톨릭을 신임하지 않는 개신교 종파 중에서는 성서 중 어느 부분이 순전한 주님의 말씀인지에 대하여 서로 논쟁합니다.....(중략)..... 정경/위경 판정의 난공사는 이제 끝나 주님의 말씀만을 실은 성서가 세상에 나타났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번역인지 그릇된 번역인지를 또 누가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성서의 원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정통한 자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입니다. 성서 원어 정통자가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됩니까?


그러므로 성서를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려거든 유일한 성서보존자인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의존하는 길밖에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만약 올바로 번역된 성서를 가졌다 칩시다. 그렇다 해도 그 성서만이 영혼 구원의 지도자 구실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 해석은 반드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야 합니다..... (중략).....


우리의 자모이신 가톨릭교회를 가리켜 성서를 경시하는 교회라고 하는 비방은 마치 성모 마리아를, 그 가슴에 안은 '아기 예수를 눌러 죽이는 여자'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참으로 가톨릭 교회는 15세기 동안 유일한 성서의 수호자였습니다.....(중략)..... 』


여기까지만 소개한다. 소위 이것이 가톨릭 교회의 영계이니, 그들이 어찌 성경 말씀을 가감하고 도적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린도서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헛된 기도문과 미사의식)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우상=가톨릭의 모든 우상체제들)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아멘!

3위 1체의 하나님은 창조도, 율법도, 예언도, 은혜도, 심판도 항상 함께 하신다.

다음을 참조하라! (요한복음 1:14. 계시록 3:14, 21:6. 요한복음 17:24, 1:18, 14:28. 계시록 19:13. 잠언 8:26~30. 요한복음 17:5. 로마서 9:5~. 요한1서 5:20. 요한복음 1:2, 10:30. 마태복음 1:23. 요한복음 1:9, 6:32, 15:1, 8:16. 계시록 1:8. 고린도전서 4:19. 히브리서 1:3. 빌립보서 2:5. 요한1서 22:8~10).


간교함의 극치! (계시록과 마리아)


38. (해를 입은 여자, 영생의 문) "묵시록의 여인! 마리아는 어머니로서 언제나 아드님을 앞서 오십니다. 당신 아드님이 다시 임하실 때도 역시 마리아는 아드님을 위해 길을 닦으실 것입니다. 당신은 태양을 입은 여인으로서 깊은 곳의 군사들을 대항해 싸울 구세사의 마지막 싸움을 지휘하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당신의 짝이신 성신과 함께 간선된 영혼들에게 '오라' 하시는 저 복된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이십니다."


*** 마리아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것은 마귀의 거짓말이다. 요한복음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3:16,36, 4:14, 5:24,39). 가톨릭은 들으라! 요한복음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마귀는 마리아를 통해서 영생을 도둑질하려 하고 있으니 저 안에 있는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이들을 우리는 복음으로 살려야 한다.


39. (여왕, 주인, 모후) " 당신(마리아)은 또한 우리의 어머니시요, 우리의 주인이시요, 여왕이시니, 우리를 예수께 인도하시고 내게 성신의 빛과 사랑을 빌어주사 나로 하여금 예수를 점점 더 잘 알고 점점 더 사랑하게 하소서. 나 당신께 온전히 헌신함으로써 당신과 함께 영원히 예수께 속해 있기가 원이로소이다."


(1~39번의 사상이 다음 40번 마지막 장문에 다 모여 있다)


40. "오! 영원한 강생하신 지혜여, 지극히 사랑하올 달고 단 예수여, 당신은 참 천주 참 사람이시요, 영원하신 성부의 아들,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의 아들이니이다..... 쉼없이 찬미와 영광 드리오니, 마리아를 통해서 저를 당신의 충실한 종 만드시려, 언제나 어머니 마리아께 기꺼이 순명하셨나이다..... 당신과의 중개자로 제게 내려 보내주신, 당신 거룩한 어머니의 빌어 주심에 모든 것 맡기나이다. 회개와 용서를 빌고 당신 지혜를 얻어 보존할 수 있도록, 마리아께 달려가 의탁하나이다. 하례하나이다. 하자 없으신 마리아, 천주의 감실이여, 영원한 지혜께서 당신 안에 계셔 천사들과 사람들의 찬미 받기 원하나이다. 하례하나이다. 하늘과 땅의 여왕이여, 주님 아래 만상이 당신 왕국에 승복하나이다. 하례하나이다. 모든 죄인의 피난처여, 당신 자비 누구에게도 거절치 않나이다. 천상지혜를 구하려는 저의 기도 들으시고, 당신께 바치는 이 비천한 종의 서원과 제물을 받으소서. 불충한 죄인(자기이름)은 당신 손 안에서 성세 때의 서원을 새롭게 하나이다. 영원히 사탄을 끊고 그 영화와 행실을 버리겠나이다. 강생하신 지혜에게 제 모든 것 바치오니, 예수를 따라 십자가 지고 전보다 더 더욱 충실케 해 주소서.


천상 천하 모든 이 앞에 이 날을 간택하여 제 어머니, 주인 위해 모두를 바치나이다. 저의 몸과 마음, 저의 모든 좋은 점, 내적 외적 모든 행실, 어제나 오늘이나 가치로운 모든 선행을 종으로서 바치나이다. 저를 다스릴 모든 권리와 제 가진 모든 것 남김 없이 바치오니, 하느님 더 큰 영광 위해 영원토록 기꺼이 가져 주소서.


지극히 인자하신 동정녀여, 이 종의 바침을 거두어 들이소서. 영원한 지혜께서 당신 모성 가지시고 슬하에 승복하심을 기리고 본받기를 지극히 원하오며, 성삼께서 당신께 내리신 그 총애 감사하기 위함이나이다. 저는 이제 당신 종으로, 당신의 영광 찾고 언제 어디서나 순명하겠나이다.


찬미하올 어머니여, 저를 가져다가 사랑하올 당신 아들의 영원한 종으로 바쳐 주소서. 당신 통해 구원하셨듯이 당신 통해 저를 받아들이게 해 주소서. 지극한 자비의 어머니여, 주님의 진실한 지혜를 얻게 은혜 내려 주시고, 당신 사랑하시고 가르치신 우리를 당신 자녀요 종으로 이끄시고, 기르시고 보호하시는 우리 중에 저도 넣어 주소서.


성실한 동정녀여, 저로 하여금 어떤 일에 있어서나, 강생하신 말씀이신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요, 후계자요, 종이 되게 하여 주시어, 세상에서는 당신의 전달과 표양을 따라 그리스도를 충만히 닮게 하여 주시고, 천국에서는 그와 같은 영광에 이르게 해 주소서. 아멘


오! 사람이 되신 영원한 지혜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는 나의 온전한 헌신을 몽포르의 루도비꼬 성인의 뜻과 정신으로 하였듯이 당신의 모친이시며, 또한 나의 모친이신 마리아를 통하여, 오늘 이 온전한 헌신을 당신의 거룩하신 모친성요셉, 그리고 모든 천상 성인 성녀들의 입회 하에 갱신하고 또 굳게 하나이다....."


몽포르 성인의 마리아께 대한 기도


"하례하나이다. 마리아여, 영원하신 성부의 사랑하올 딸이여, 하례하나이다(하례賀禮=축하의 예식). 마리아여, 당신 성자의 경애하는 어머니여, 하례하나이다. 마리아여, 성신의 충실한 베필이여, 하례하나이다. 마리아여, 저의 사랑하는 어머니요, 주인이요, 여왕이시여, 하례하나이다. 저의 기쁨, 저의 영광 저의 마음, 저의 영혼이여, 당신은 자비하오시니 저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시며, 의당히 저도 또한 당신의 것입니다. 아직도 당신의 것이기에 부족한 점이 많나이다. 이제 저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조금의 남김도 없이 다 바쳐 드리나이다. 아직도 당신께 속하지 못한 그 무엇이 제 안에 남아 있으면, 제 모든 것의 주인이 되어 주소서. 하느님께 부당한 것 모두 쳐 부수시고 없애셔서, 당신께 기꺼운 것만 심고 가꾸소서. 당신 신앙으로 밝히 비추시어 제 마음의 어두움을 거두시고, 당신 깊은 겸손으로 제 오만 누르소서. 당신 밝은 마음으로 저의 방황 이끄시고, 하느님 매일 보시니 주님의 현존으로 제 마음 채우소서. 당신 마음의 불타는 사랑으로 저의 미지근함 태우시고, 내 죄 대신으로 당신 성덕 꽃피우시고, 당신 공덕이 보탬이 되어 제 부족 채우소서. 지극히 사랑하올 어머니 마리아여, 예수님과 그의 뜻을 알려는 당신의 영신(귀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말게 하시고, 주님을 찬미하고 기리려는 당신의 영혼(악령)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게 하여 주소서. 당신의 마음같이 순수하고 열렬한 사랑으로 하느님만을 기리겠나이다. 영시나 계시나 눈으로 직접 봄은 바라지도 않사옵고 영신적인 즐거움은 구하지도 않나이다. 하느님을 밝히 봄은 당신의 특전이요, 천상의 환희와 당신 성자 오른 편에 영광되이 승리함은 당신만의 특전이오며, 당신은 천사와 인류와악마까지 지배(?)하여, 당신의 뜻대로 하느님의 선물을 부어줄 수 있음은 당신께만 합당한 은혜이나이다.

오! 천상의 마리아여, 주님께서 당신에게 하사하신 (가장 좋은 몫)으로써 아무도 빼앗을 수 없으니, 제 마음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제 몫으로 바라는 건 꼭 한 가지 있사오니 당신의 것이 되기 소원이나이다. 영신의 기쁨 없이도 믿을 수 있사옵고, 누구의 위로 없어도 감내할 수 있나이다. 쉽 없이 제 자신을 멀리 하겠사옵고, 죽을 때까지 당신 미천한 종으로 열심히 이기심과 욕심 없이 살아가겠나이다. 한 가지 은총만을 간절히 구하오니, 언제 어디서나 "아멘"만 발하게 하소서. 지금 당신 세상에서 하옵시는 모든 일에, 지금 당신 하옵시는 모든 일에, "그렇게 하소서"란 말만 있게 하여 주시어, 당신만이 제 안에서 영원토록 예수 영광 기리게만 해주소서(편집자주: 거짓말이다!), 아멘."


*** 마리아를 전심으로 찬미하여 놓고는 끝에 가서 예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인 듯 위장하며, 자신의 간교함을 감추어 보려는 이 얄팍함이란... 거짓의 아비된 자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지 아니한가!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모든 마음의 여왕이신 마리아의 회


모든 마음의 여왕이신 마리아의 회는 1899년 3월 15일 처음 조직되었고, 1913년 4월 28일 비오 10세에 의해 로마에서 공식 인준되었다. 오늘날 이 회는 미국, 캐나다, 아이티,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88개의 지부를 두고 전 세계에 수 십만의 회원이 있다.


"모든 마음의 여왕이신 마리아의 회"가 지닌 목적은 우리 안에 마리아의 왕국을 건설하여, 우리 영혼 안에서 예수께서 보다 완전히 다스릴 수 있게 해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 성별식 기도문


"오오 마리아여, 나의 여왕이며 나의 어머니시여! 나는 당신에게 나 자신을 드립니다. 당신께 나의 헌신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나는 오늘 당신에게 나의 두 눈과 귀와 입과 가슴과 나의 존재 전체를 무조건적으로 드립니다. 그러므로 선하신 마리아여, 나는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의 소유물인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소서. 아멘"


이라크 전쟁 시 교황의 메시지


가톨릭 평화신문 2003년 3월 30일자  <교황, "이들을 동정 마리아께 맡깁니다"> 라는 제목의 기사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바티칸시티=외신종합】 <이라크 전쟁으로 군인과 민간인들의 희생이 늘어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평화의 선물을 거듭 기원하면서 전쟁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교황은 23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복식을 주재한 후 “전쟁의 희생자들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을 특별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맡겨 드린다”면서 이라크에 평화가 올 수 있도록 마리아의 전구를 청했다.


미국의 이라크 개전 직후 충격 속에 모든 일정을 중지하고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친 교황은 22일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와 “폭력과 무기로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며 평화를 거듭 호소했다. 교황은 “전쟁이 인류의 운명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평화가 정의와 연대의 사회를 건설하는 유일한 길임을 더욱 강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선포하는 일이 한층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24일 미국의 루터교회 지도자들을 만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위험과 불확실로 가득찬 세계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을 선포하는 데에 하나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며 “정의와 연대의 결실인 평화를 세상에 주시도록 하느님께 함께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

마리아(하늘 여신)에 대한 주제별 요약정리


값진 진주(34번) / 거룩함(7번) / 마리아 왕국(31번) / 무염시태(5, 37번) / 봉헌의 대상(11~16, 19, 24, 32번) / 생명나무(34~35번) / 성령의 베필(3번) / 성부의 어좌(거처)(27, 36번) / 속죄자 마리아(26번) / 성체(32번) / 승천(37번) / 안식처(피난처)(22번) / 양육자(4번) / 여왕(18, 20, 26, 28, 39번) / 영생의 문(38번) / 영적 양분의 근원지(4번) / 여자의 후손(31번) / 영혼의 생명(근원)(28번) / 원죄 없음(5번) / 은총의 통로(1, 10, 16, 21번) / 의뢰(의탁)의 대상(6, 20번) / 인도자, 보호자(20번) / 재림론의 주인공(30, 31번) / 주인 되시는 마리아(33, 39번) / 중재자, 대변자, 중개자, 전구자(17~19, 21, 23, 25, 36번) / 찬미의 대상(7, 9, 11번) / 천상 어머니(신의 어머니)(2, 26, 37번) / 평생 동정(29번) / 해를 입은 한 여자(38번)


살펴본 바와 같은 '마리아 숭배' 문제는 참으로 교묘하다. 왜냐하면 평상시에는 희미하게, 눈에 띠지 않게 존재하는 듯 하지만, 파고 들어가면 이와 같이 비복음적인 무서운 독소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각 개인이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 유일한 중보자로서 믿을 때라야 해결되지, 그렇지 않고서는 교묘히 말려들어 알게 모르게 우상숭배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톨릭 안에서는 '예수가 나의 구세주'라는 고백은 없고 온통 '마리아는 나의 어머니', '마리아는 나의 여왕', '마리아께 찬미하고 마리아를 공경하자'는 고백뿐이다. 가톨릭인들을 올바른 복음으로 인도하려면 전도자들은 다음과 같은 성경적 진리를 숙지해야 한다.


1) 마리아는 죄인이다! - 마리아도 구세주가 필요한 죄인이며(누가복음 1:47), 제사가 필요한 죄인이었다(누가복음 2:22).


2)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 아니다! - (29번 참조) 마리아는 예수님 말고도 6명 이상의 자녀를 더 낳았다(마가복음 6:3). 가톨릭이 주장하는 '사촌설'은 시편의 칼 69:8절로 물리치면 된다. 카톨릭의 거짓말에 의하면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인데, 여인의 처녀성이 그리도 위대한 것이라면, '평생 동정남'인 요셉은 더더욱 위대한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의 모친이라는 이유만으로 '신의 어머니'가 되었다면, 요셉 역시 '신의 아버지'가 되어야 옳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요셉의 위치는 마리아에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다. 즉 그들의 마리아 신앙은 고대로부터 내려져오던 여신숭배 사상의 연속일 뿐이다.


3) 마리아는 천주의 성모가 아니다! - 한 여자가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할 때(누가복음 11:27~28) 예수님은 그 말을 인정치 않으심으로 '마리아 숭배' 요소를 원천봉쇄 해두셨다. 또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심으로써 당신과 마리아를 육적으로 연결짓는 것이 옳지 않음을 지적하셨다(마태복음 12:50). 예수님은 아비도, 어미도, 시작도, 끝도, 족보도 없다.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이시다(히브리서 7:1~3). 한 번도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으셨고 오직  '여자여' 하셨다(요한복음 2:4, 19:26). '하나님의 어머니'란 말은 마귀 앞잡이 '레오' 교황이 칼케돈 공회(AD 451)에서 공표한 이후, 교리로 굳어진 카톨릭만의 사악한 전통이다. 가톨릭의 마리아는 이교도의 여신숭배 사상에 기원을 둔 '여자 마귀'에 불과하다. 마리아가 진정 '하나님의 어머니'라면 이미 초대교회 때 주의 종들이 마리아를 '성자 예수의 어머니', '하늘 모후'로 높이며 전도했을 것이나, 그런 증거는 전혀 없다.  


4) 마리아는 우리의 인도자, 전구자, 중재자가 될 수 없다! - 4복음서 저자들뿐만 아니라 사도들, 전도자들 일체 중 그 누구도 구원문제를 마리아와 연관시켜 논하지 않았다. 가장 오래 살았고,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그녀를 모셨을 사도요한의 글(요한복음, 요한서신, 요한계시록)을 보아도 마리아가 우리를 예수께로 인도하는 '중재자'라던가, 우리의 구원을 '돕는 자'라고 언급된 구절이 없다.  '무염시태', '평생동정', '승천', '천상 모후의 왕관' 사상이 마귀가 조작해낸 것이 아니라면 사도요한이 먼저 그러한 내용을 전파했을 것이다. '성모송'(아베 마리아:성모에게 드리는 기도)은 1568년 교황 피우스 5세가 성무일도(聖務日禱)에 삽입한 후부터 널리 사용된 것이니 인간작품이지 기독교적 교리가 아니다.


이렇게 정리해 보니, 성경에 나오는 주의 모친(누가복음 1:43) '마리아'와 카톨릭이 경배하며 섬기는 '마리아'는 완전히 다른 두 존재이며, 아무 연관도 없는 별개의 여인들이다. 우리는 주의 말씀만을 신뢰하여 마귀의 간교하고 세밀한 혼란의 칼을 더 강하고 크고 견고한 '말씀의 칼'로 물리쳐야 할 자들이다. 아멘!


가톨릭이 재림론에 대하여는 무심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30번 이하에서 소개된 말세론을 보면 가톨릭은 '마리아'와 관련하여 재림론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위에 설명된 모든 조작된 교리는 결국 그녀를 계시록 12장의 '해를 입은 한 여자'로 만들기 위한 사단의 철저한 준비작업임을 고발하며 '하늘 여신'에 대한 증거를 마치려 한다. 가톨릭을 들어 쓰는 마귀의 의도는 마리아를 종말론의 핵심요소인 '해를 입은 한 여자'로 만들기 위함이지만, 진정한 '해를 입은 한 여자' 제단은 마리아와 연계된 가톨릭의 재림론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를 다 밝혀 증거하였다. 지금껏 독자들은 가톨릭의 마리아 동상이나 마리아 그림에 12별의 면류관이 둘려져 있음은 잘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성당을 가든지 주의깊게 살펴보라. 마리아가 '여자의 후손'으로 위장되어 뱀을 밟고 있는 모습과, 마리아가 '해를 입은 한 여자'로 둔갑되어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예언은 '하늘 여신' 아세라를 섬기고 있는 가톨릭 교인들 중 끝까지 회개치 않고 강퍅케 될 자들에게 다시 예언될 말씀이다.  


『 20 예레미야가 남녀 모든 무리 곧 이 말로 대답하는 모든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21 너희가 너희 선조와 너희 왕들과 방백들과 유다 땅 백성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들에서 분향한 일을 여호와께서 기억지 아니하셨느냐 생각지 아니하셨느냐 22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소위를 더 참으실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무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거민이 없게 되었나니 23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여호와의 법과 율례와 증거대로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앙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미쳤느니라 24 예레미야가 다시 모든 백성과 모든 여인에게 말하되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


전날의 멸망이 어찌하여 찾아왔는가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뻔뻔스럽게 멸망의 죄악을 변호하는 무리에게 예레미야는 사실 그대로를 기억시켜주고 있다.


"놀램과 저줏거리가 된 상태"(22절)에서 우상숭배를 고집하여 여호와의 말씀에 또다시 대항하므로 이제 그들에게는 최종적으로 임할 저주만이 남아 있다.


4. 그들에게 심판을 선고함 : 25~30


『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와 너희 아내들이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이루려 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서원한 대로 반드시 이행하여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리라 하였은즉 너희 서원을 성립하며 너희 서원을 이행하라 하시느니라 26 그러므로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나의 큰 이름으로 맹세하였은즉 애굽 온 땅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는 내 이름을 일컬어서 주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라 하는 자가 없게 되리라 27 보라 내가 경성하여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니 애굽 땅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칼과 기근에 망하여 멸절되리라 28 그런즉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이 애굽 땅에서 나와 유다 땅으로 돌아오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는 유다의 모든 남은 자가 내 말이 성립되었는지, 자기들의 말이 성립되었는지 알리라 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너희를 벌할 표징이 이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한 말이 단정코 성립될 것을 그것으로 알게 하리라 30 보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를 그 원수 곧 그 생명을 찾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인 것같이 애굽 왕 바로 호브라를 그 원수들 곧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그들이 "하늘 여신"을 숭배하겠다고 한 대로 행하라고 이제는 허용하신다(25절).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주실 때는 아직 그 백성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 허용하시는 단계에 들어가면 그 백성은 이미 버림받았다는 증거이다(민수기 22:20 - 재물에 눈이 어두워진 발람의 교훈을 추억하라! 계시록 2:14).


유대인들 중에 하나님을 믿는 자가 없게 되리라고 한다(26절). 믿음도 성령도 위에서 주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구절이다(에베소서 2:8. 사도행전 2:38).


여호와께서 경성하여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복을 거두겠다 하신다(27~28절).


재앙의 실행방법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29~30).


이제 하나님이 명령만 내리면 바벨론 군대가 내려와 애굽을 정복할 것이며 시드기야 왕의 잡혀감같이 애굽 왕 바로 호브라도 그렇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초림주를 영접시킬 엘리야는 말라기 3:1, 이사야 40:3절에 기록돼 있고, 재림주를 영접시킬 엘리야는 말라기 4:5~6, 이사야 19:19~20, 학개서 2:7, 21~23절에 기록돼 있으니 만일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저주로 땅을 치심으로 천지가 진동(학개서 2:6, 21~22)되는 그날에 하나같이 패망하고 말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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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43장 - 교만과 불순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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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경 : 예레미야 43장

제목 : 교만과 불순종


1. 요하난 단체가 애굽으로 이거함 : 1~7


『 1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게 하신 이 모든 말씀을 다 말하매 2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및 모든 교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는 애굽에 거하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


멸망 받을 자의 행위를 보라! 예언을 듣고도 순종치 않고 오히려 "당신의 하나님"(2절) 이라 칭하며 앞서 자기들 스스로 참 선지자로 시인했던 예레미야를 대적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떤 말씀이든지 다 순종하겠다고 해 놓고 자기 뜻에 맞지 아니할 때 도리어 참 선지자를 대적하고 해하며 어느덧 "당신의 하나님""우리 하나님"이 되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애굽에 가지 말라고 아니하셨다"는 억지를 부린다(사단의 특성을 잘 새겨 놓으시라). 이 사람들의 행위는 ① 배신적인 행동이며 (처음에는 기도를 부탁하지 않았는가! 42:1~2) ② 불신앙의 행동이다(2절).


하나님 말씀의 권위는 그의 뜻을 행하려는 자만이 깨닫는다(요한복음 7:17).


요하난 단체는 교만한 단체이기에 유브라데 강가에 버려진 동족의 운명처럼 그들도 애굽 땅에서 썩게 된다(베띠의 교훈).


『 3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꼬드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인의 손에 붙여 죽이며 바벨론으로 잡아가게 하려 함이니라 하고 』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 바룩이 조작한 말이라고 한다. 의심을 품게 하는 것 또한 사단의 특성이다. 예루살렘에 있으면 바벨론이 곧 잡으러 올 것이 분명한데 "남아 있으라" 하는 건 자기들을 죽게 하기 위하여 바룩이 예레미야를 꼬드긴 결과라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들은 늘상 정욕적이거나 사심에 치우친 자들이므로 그 시작은 그럴 듯해도 결국에서는 진리를 100% 대적하기 마련이다.


시편 12:2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4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예루살렘에 행해진 모든 일을 진실로 묵상하며 돌이켜 보건대 그들은 예레미야를 참 선지자로 여겼으리라! 또한 바룩이 예레미야를 도와 함께 고난당한 종임을 생각할 때(36:1~19) 그들은 바룩이 예레미야를 꼬드겨 유다의 남은 자를 죽이려 하고 있다는 망언은 하지 않았으리라!


우리는 여기서 사단의 특성을 연속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사단이 들어쓰는 인간의 행동은 앞과 뒤가 모순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그러다 모순이 드러나게 되면 어거지로 타인에게 뒤집어 씌우기 시작하며, 이러한 자신의 행동을 깨닫지 못하고 시편 12:4절처럼 교만히 말하다가 결국에는 불못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단과 그에게 속한 자들의 운명인 것이다.


『 4 이에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대장관과 모든 백성이 유다 땅에 거하라 하시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


"유다 땅에 거하라 하시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불순종은 악한 무화과들의 특성이다. 창세기 13:14 모리아산 예루살렘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이다. 고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받아 마땅한 그들의 분복(分福)인 땅이다. 그들이 거기서 사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런데! 출 애굽한 지 어언 900년이 경과한 이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망령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43장 본문은 오늘날에 그대로 다시 예언된다! 영적으로 출애굽한 기독교가 오늘날 영적인 애굽으로 다시 기어 들어가고 있으니 이는 예언서를 깨닫지 못한 소치(所致)이다. 계시록 11:8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을 영적으로 하면 '애굽'이요 '소돔'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동행치 않으면 영적으로 애굽에 거하는 자이다.


『 5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대장관이 유다의 남은 자 곧 쫓겨났던 열방 중에서 유다 땅에 거하려 하여 돌아온 자 6 곧 남자와 여자와 유아와 왕의 딸들과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넘겨 둔 모든 사람과 선지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영솔(領率)하고 7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이러하였더라 』


• 5~6절 : 요하난 단체가 애굽에 내려간 일은 스스로 죽으려고 내려간 꼴이 되었다. 예레미야와 바룩도 그들과 동행하였는데 그들이 억지로 사로잡아간 것이다. 고로 자의가 아닌 예레미야의 애굽행은 죄책을 지지 않게 된다.


• 7절 : "다바네스"는 애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는 도시이다.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에 대하여는 42:20, 43:2~3절에 기록돼 있다.


2. 선지자가 애굽의 멸망을 예고함 : 8~13


『 8 다바네스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9 너는 유다 사람의 목전에서 네 손으로 큰 돌들을 가져다가 다바네스 바로의 집 어귀의 벽돌 깔린 곳에 진흙으로 감추고 』


애굽에 들어서자마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이 애굽에 들어가기 전에 그 백성에게 각성을 촉구할 만한 기회이다. 만일 끝까지 회개치 않고 애굽에서 살기를 고집한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반드시 임할 것이다.


"큰 돌들을 가져다가.... 바로의 집 어귀의 벽돌 깔린 곳에 감추어 둠" 이것은 10절에 설명한 것과 같이 바벨론 왕이 애굽을 정복하고 돌아와서 바로의 궁전자리에 자기의 궁전을 세우리라는 예언이다. 악한 무화과의 종말은 이와 같이 결국 자기들이 피하려던 바벨론 왕에 의해 멸망 당하는 것이다.


『 10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오리니 그가 그 보좌를 내가 감추게 한 이 돌 위에 두고 또 그 화려한 장막을 그 위에 치리라 11 그가 와서 애굽 땅을 치고 죽일 자는 죽이고 사로잡을 자는 사로잡고 칼로 칠 자는 칼로 칠 것이라 』


유다의 남은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고집스러이 애굽으로 가서 거하게 되므로 하나님은 북방 몽둥이를 애굽에까지 보내어 그들을 심판하게 하셨다. 인간의 머리로는 하나님을 피할 수 없도다(42:16).


『 12 내가 애굽 신들의 집에 불을 놓을 것인즉 느부갓네살이 그들을 불사르며 그들을 사로잡을 것이요 목자가 그 몸에 옷을 두름같이 애굽 땅을 자기 몸에 두르고 평안히 그곳을 떠날 것이며 13 그가 또 애굽 땅 벧세메스의 주상들을 깨뜨리고 애굽 신들의 집을 불사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


바벨론 왕이 애굽 땅을 쉽사리 정복하여 "목자가 그 몸에 옷을 두름같이 할 것"을 이름이다. "벳세메스"는 애굽인들이 말하는 대로 "온"이란 땅인데(창세기 41:45) 나일강 동편에 있고 멤피스의 북쪽으로 2 마일 밖에 있다. 오늘날도 벳세메스에서 주상(柱像)들의 유적이 발견된다고 한다. 강대국가는 우상국가(단 2장)이니 유다(성도)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산다. 종말을 미리 보여주시고자 구약 역사를 주관하실 때에 "좋은 무화과"는 70년을 믿고 바벨론에 가서 70년 연대를 믿고 기다려 회복을 받아 돌아온 스룹바벨 단체라 하셨으니, 영적 애굽행이냐? 영적 바벨행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오늘날의 기독교회는 예레미야 43장을 올바로 깨달을 때 자기의 거처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동방 역사는 하나님이 운전대를 잡으시고 구약에서 보여주신 그대로 이루시는 모략과 경륜의 역사이다. 이것을 깨닫는 자 복 되도다!


극상 포도나무 씨를 심어서 사랑으로 길러 놓았더니 마귀를 따라가 들포도만 맺히니 농부의 마음은 한없이 찢어지는도다! 하나님은 애굽에까지 잡혀 간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 땅에서도 예언의 말씀을 계속하여 남기신다. 한 번 빗나간 그들은 회개할 수 없었고, 회개치 못하므로 마귀의 종이 되어 이방 '하늘 여신'까지 섬기게 된다.


'애굽행'을 고집한 자들이 '하늘 여신'까지 섬기게 되는 이 연속된 죄악은 21세기 기독교의 종말에 다시금 발생할 일들이므로, 예레미아의 노정을 걷는 우리들에겐 44장의 사건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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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42장 -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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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경 : 예레미야 42장

제목 :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


1. 요하난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함 : 1~6


『 1 이에 모든 군대의 장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아와 2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소서 당신이 목도하시거니와 우리는 많은 중에서 조금만 남았사오니 3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


바벨론 포로이송이 있은 후 남은 백성이 요하난의 지도를 따라 애굽으로 피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된 동기는 41:16~18절에 나타나 있다. 지금 이들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자기들이 앞으로 어떻게 행해야 할지에 관한 하나님의 합당한 계시를 얻어달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별해야 할 것은 이들이 가진 행위의 이중성이다.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요망하는 행위 자체로는 아직 무엇이 잘못됐는가를 분간해내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저들의 이면을 파헤쳐 보자. 그들은 기도를 부탁하면서도 이미 유다 땅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결정을 그 마음 속에 내려둔 상태였다. 이는 원죄에 물든 인간의 간사함을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이스마엘이 그다랴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도망간 사건이 결국 바벨론 왕의 노를 격동케 할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41:18). 시온산(예루살렘)에 남아 있으면 또 다시 북방 군대의 칼을 맞을 것이니 강대하여 전쟁위협을 당할 일이 없는 애굽 땅으로 피신하면 편안히 살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굳혀 놓은 상태에서 최후수단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려 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궁지에 몰릴 수록 하나님만 앙망해야 하는데, 요하난은 잠시 생사화복(生死禍福)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예레미야애가 3:38)을 망각하고 멸망의 길 '애굽행'을 택했던 것이다.


다시 예언한다! 지금도 교회지도자들이 전쟁의 공포로 인해 평화공존 거짓정책에 미혹을 받아 협상의 쑥물을 먹고 있다. 구약의 요하난의 실수가 오늘날 거대하게 세계적으로, 교회적으로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선지자들을 통해 종말에 관하여 빠짐없이 예언하셨다(이사야 34:16). 그러므로 사명자가 자세히 읽고 깨달아 증거를 마치면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계시록 11:1~12).


"우리는 많은 자 중에서 조금만 남았사오니" 다른 곳으로 피난함으로써 소수의 백성이나마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는 의도가 담긴 말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졌다. 자기들의 소욕대로 하기를 굳게 정해 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척 하는 것은 시작부터가 모순된 것이요 가증한 것이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여호와는 예레미야와 직통하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왜 "우리 하나님"이라는 말을 못했던가? 그것은, 그들도 여호와가 특별히 대선지자 예레미야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과 또한 당신의 계시를 예레미야에게 진실히 보이시는 줄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두려워함 없이 자기들의 소욕을 뒤로 감추고 예레미야를 이용하며 하나님을 속이려 했던 것이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북방군대가 와서 유대인들을 많이 잡아갔으니만큼 이미 그들은 예레미야를 권위있는 선지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벌써 다른 데로 향해 있는 속마음을 감추고 마치 어떤 응답에라도 순종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양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욕심에 눈이 가리워지면 이런 행위를 하면서도 자기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마귀에게 속고 있는 자들은 모두가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법이다.


예레미야의 권위는 하나님 편에 굳게 서서 일하는 데로부터 온다. 강한 민족주의와 바벨론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탈 그 때 북방이 들어와도 (도망하지 않고) 항복하면 산다고 외친 것을 보면 그가 아부나 타협을 거부하고 인본주의도 배격하며 오직 여호와의 뜻만을 전하는 진실한 참 종이란 것을 알수 있다.


『 4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고하리라 』


예레미야는 자신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는 백성들의 청을 허락했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너희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과 그들 사이가 계약적인 관계임을 밝혀주는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 하고서는 살 수가 없고,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서만 보호와 축복이 있을 것을 암시(暗示)한 것이다.


『 5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는 우리 중에 진실 무망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


그때에 백성들은 이 구절들에 있는 말씀대로 순종을 약속하되 속과는 달리 너무도 지나친 확고한 말로써 장담했던 것이다.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죄인된 자기들의 무능(無能)을 인정치 않는 과분한 장담이다.


"여호와는 우리 중에 진실 무망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자기들의 실행력과 여호와 하나님의 진실성을 대등(對等)시키는 말로서 상대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과 진실함을 과신하며 뱉은 말이다.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께 자신의 증인이 되라고 할 수 있는가? 죄인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명목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이는 오직 여호와뿐이시다(창세기 22:16. 민수기 14:21~. 신명기 32:40~. 이사야 45:23, 49:18. 예레미야 22:5, 24~. 에그겔 5:11~, 14:16~. 스바냐 2:9. 요한복음 8:14). 언제 넘어질 지 모르는 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교만'일 뿐이다. 우리도 혹 이런 맹세를 할까 조심하여야 한다.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역시 너무 지나친 확언이며 감언이설이었다. 이는 스스로가 자신을 속이는 행동으로서, 자신들은 이 말대로 행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말이 마귀가 주는 거짓말임은 얼마 안 가서 금방 드러나고 만다.


위의 3가지 언사는 외식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즐겨쓰는 방식의 어투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수제자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외식자가 아닌, 죄인 된 자로서의 마땅한 태도가 요한복음 21:15~17절에 잘 나타나 있다. 갈라디아서 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우리는 혹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을지라도 "무익한 종이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함이 옳다. 본 장을 통하여 교만이 무엇이며 겸손이 무엇인 것을 확실히 배우도록 하자.


2.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응답받음 : 7~12


『 7 십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 』


"10일" 후에야 응답이 왔다. 하나님의 역사로서는 금방이라도 응답하실 수 있는 문제인데 왜 10일나 끄셨을까? 10일에는 큰 뜻이 있음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다니엘 1: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10일은 시험기간임을 알 수 있다.


계시록 2:8~10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서머나 교회에게도 예언하시기를 앞으로 10일간 환난의 시험이 있다고 하셨다. 앞으로 북방환난이 일어나면 유다 땅에 10일 동안 환난이 있다는 것이다. 초막절의 역사는 환난이 들어온 후 10일 만에 나타난다는 뜻이다(요엘 2:1~32).


사도행전 2:1~ 오순절 역사에서도 10일 만에 성령강림이 있었다 (요엘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고로 10일이란 기간은 기도하는 기간이요 환란의 기간이요 시험의 기간임을 알 수 있다.


『 8 그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대장관과 백성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부르고 9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보내어 너희의 간구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가라사대 10 너희가 이 땅에 여전히 거하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니라 』


예레미야는 그의 받은 바 계시를 민중에게 발표하기 위하여 그들을 빠짐없이 다 모이도록 했다. 이유인즉 이 중대한 일에 있어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가 순종하여야 되겠기 때문이다. 계시받은 바에 의하면 순종하면 살고 순종치 않으면 죽을 것이 확실하므로 다 모여 들으라 한 것이다.


10절의 계시는 애굽으로 가려던 남은 백성이 그곳으로 갈 생각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에 머물러야만 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요하난 단체)은 떠나야 산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더러 머물러야 산다고 하신다. 두 마음을 품었었더라도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그들이 머물기만 하면 그들을 보호해주시겠다는 의미에서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리라"는 약속까지 하셨다. 감사요 은혜가 아닌가?


이사야 43: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하셨고 본절 하반절에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릴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니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긍휼 자비는 한이 없기만 하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변치 않으시니 70년만 되면 귀국이 있다는 것이다(예레미야 25:11~12, 29:10. 다니엘 9:2).


『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 12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여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 보내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


하나님은 그들에게 바벨론 왕에 대하여는 "두려워 말라"고 안위하신다. 두 번씩이나 말씀하신 것은 이스마엘 사건 때문에 겁내고 있는 그들로부터 공포심을 제해 주시기 위함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그의 손에서 건지리라" 하셨고 또한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겠다"고 하신 말씀이 진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3. 애굽으로 가면 재앙과 화가 있을 것을 예언함 : 13~18


『 13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복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거하지 아니하리라 하며 14 또 말하기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식물의 핍절도 당치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결단코 들어가 거하리라 하면 잘못 되리라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인도에 순종하는 경우에 구원이 있으리라는 약속과 동시에 애굽으로 가려는 당신의 백성을 만류시켜 가나안 땅에 머물도록 재차 권고하셨다. 이는 순종하는 경우에는 구원이 있으리라는 원칙을 보여주면서도, 만일 참 선지자의 말을 듣고도 불순종하면 재앙이 있을 것을 시사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 때 남은 백성들은 "오직 살 길은 애굽으로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사야 선지도 "애굽은 신이 아니요 사람이니 그곳에 들어가면 저주뿐이라"고 이사야 31:1~3절에 예언한 바 있으나 선민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강대국을 의지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런 자에게는 재앙밖에는 달리 준비된 것이 없다.


문제는 오늘날의 기독교 안에서 위와 같은 일을 너무도 정확하게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적으로 볼 때 평화공존은 영적 애굽으로 치우치는 길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 15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 거하기로 고집하면 16 너희의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의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을 것이라 』


"유다의 남은 자여" 백성에게 행해지는 마지막 예언을 잘 듣고 재앙을 피하라는 뜻이 담긴 간곡한 어투이다.

"고집하면" 말씀을 이탈하여 자기 고집 중에 따먹은 선악과의 뿌리가 아담 후손들에게 유전되므로 우리는 패역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분명한 죽음의 길이 생명의 길로 보이는 것은 영적으로 소경, 귀머거리가 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선악과의 질을 붙들고 역사하는 흑암이 오면 생명의 길은 보이지 않고 어두움의 길이 살 길로 착각되기만 하는 법이다(이사야 5:20, 42:19~).


『 17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앙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1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와 분을 예루살렘 거민에게 부은 것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른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 』


부탁한 기도의 응답이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겠다 장담하던 그들이(42:6) 만일 10일간 기도하고 받은 이 진실된 응답을 무시하고 애굽으로 내려간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저버리며 크신 사랑을 배척하는 악독한 불신앙이 되고 말 상황이다. 고집하는 자는 이미 기록한 바 "악한 무화과"라 하셨다(24장). 살려주려 해도 받지 않겠다는 자들에게는 "노와 분을 부으리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살려고 간 그곳에서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선민인 백성은 하나님이 직접 택한 백성이요, 누구보다도 축복을 많이 부어준 백성이니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할 때엔 부어 줄 재앙도 크다는 것이다.


4. 하나님 말씀 불순종 : 19~22


『 19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 일로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날 너희에게 경계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 20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고하라 우리가 이를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21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고하였어도 너희가 그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치 아니하였은즉 22 너희가 가서 우거하려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 』


"유다의 남은 자들아" 남은 자들이 애굽으로 가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임을 지적해 주고 있다(20절). 자기들의 입으로 어떠한 말씀이든 지키겠다고 장담하였고(6절), 하나님께서도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명백히 경고하신 상황이기 때문이다(19절). 그러나 그들은 행위에서는 이미 불순종의 의지가 농후하게 배어나오므로(21절) 그들이 처음에 예레미야에게 와서 진실된 모양으로 기도부탁을 했던 때와는 완전한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43장에 가면 그들은 결국 불순종의 의지를 행실로 옮기게 된다. 사단의 조종대로 행하고 마는 것이다. 이제 사단에게 점령된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들어보아 마지막 때 다시 한 번 있을 이 일을 간접 체험토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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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41장 - 이스마엘의 반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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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경 : 예레미야 41장

제목 : 이스마엘의 반란


1.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살해함 : 1~3


『 1 칠 월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


"왕의 종친"이란 말은 왕손이란 말이다. 이스마엘이 유다의 왕손이었으니만큼, 그때의 집권자였던 그다랴를 없애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이란 말은 그저 왕을 섬기는 고관들의 이름이다.

"떡을 먹다가" 총독 그다랴의 대접으로 음식을 먹던 중에 일어난 사건이다. 음식 대접을 받던 중에 그 대접하는 주인공을 죽이는 것은 살인 중에도 가장 악한 방법이다(요한복음 13:18). 민족이 포로가 된 상황에서 그것도 그 남은 자들 가운데 이런 악한 일이 또 발생하는 것은 예레미야가 "악한 무화과"라고 말한 예언이 참된 예언임을 증거해준다(24:1~10). 예레미야 39장에서 41장까지는 실천적 예언으로 특히 40:7절부터 41:18절까지는 그 남은 백성이 심한 불행 가운데 빠지게 될 사실을 보여준다.


『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한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바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3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한 모든 유다인과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


이스마엘 일당이 그다랴와 및 그의 지지자(支持者)들과 갈대아 군사들을 일시에 죽인 사실은 내란죄에 해당되고 유다의 지배국인 바벨론을 대적하는 행동이었다. 이스마엘은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보낸 사단의 단체에 속한 악인이다. 자기 개인의 정권욕을 위해서는 유다인이야 죽든지 살든지 관여치 않는 그의 행태는 사단의 속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2. 사마리아 예배자를 살해함 : 4~9


『 4 그가 그다랴를 죽인 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


"이틀이 되었어도" 그 정보가 나가지 못하도록 한 것을 볼 때 매우 간교한 자임을 알 수 있다.


『 5 때에 사람 팔십 명이 그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에서부터 와서 여호와의 집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6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서 울며 행하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여 7 그들이 성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로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니라 』


이스마엘이 행한 또 하나의 무서운 살인행위가 드러나는데, 그는 무죄한 사람 80명 중 70명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80명은 몸에 유다의 멸망을 슬퍼하는 표시를 한 채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오는 도중이었다. 사단은 항상 사람을 죽이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살인자이다(요한복음 8:44). 사단에게 잡힌 이스마엘 일당이 치밀한 계획과 연기로 그들을 꾀어 살해한 것을 볼 때 정말로 간교한 살인마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악한 무리가 그 땅의 남은 백성을 휩쓰는 것을 볼 때 예레미야가 예언한 "악한 무화과"라는 말이 정확히 맞아 떨어짐을 알 수 있다.


『 8 그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였으므로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 형제와 함께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


80명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뇌물을 주고 죽음을 면하였다. 여기서 사단의 또하나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옳은 정치에 대하여는 역적의 무리가 되게 하고 물질에 대하여는 탐심으로 가득찬 도적떼가 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단의 사주인 것이다. 돈은 일만악을 저지르게 하는 뿌리임과 동시에 일만 악당들에게는 삶과 행위의 목적이자 이유인 것이다.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라고 말할 때 그들의 살인의지는 어느 새 재물에 대한 탐심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성에서 선악과의 질이 최고로 발동하니 하나님의 시온산은 사단의 집이 되고 만 것이다.


『 9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 죽인 시체로 거기 채우고 』


그 당시 이스마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가 하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다랴는 총독이요, 총독 주위에 딸린 식솔들을 생각할 때 총독에게 속한 사람을 모두 죽여 구덩이에 던졌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살인이었겠는가? 이 구덩이는 유다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함을 보아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사상적으로 나뉘어 간헐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전쟁이 치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3. 요하난의 잡힌 자를 다시 찾음 : 10~18


『 10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 하여 떠나니라 』


"암몬"은 롯의 둘째 딸과 아비와의 동침으로 태어난 잡족이다(창세기 19:38). 이 민족은 이스라엘의 숙적(宿敵)으로서 늘 이스라엘을 침략하였다(사사기 3:13. 사무엘상 11:1~11. 예레미야 49:6~9. 에스겔 25:1~7. 아모스 1:13~15. 스바냐 2:8~11).


『 11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의 행한 모든 악을 듣고 12 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가에서 그를 만나매 13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한 모든 군대장관을 보고 기뻐한지라 14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에게 포로되었던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15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


이스마엘의 악행을 보고 일어난 요하난의 의거(義擧)에 대하여 말한다. 그때에 이스마엘의 포로들 중 8명을 제외하고 거의 전부가 이스마엘을 배반하고 요하난 쪽으로 건너갔다. 이렇게 요하난은 피 흘림 없이 승리하고 이스마엘은 패배를 당했다.


"기브온 큰 물가" 이 곳은 미스바의 동북쪽, 예루살렘 북서쪽 약 8k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성경지명사전의 '기브온')


『 16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하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인과 유아와 환관을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17 애굽으로 가려 하여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18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인을 두려워함이었더라 』


"요하난"은 정의감이 강한 용사요(13~15) 또한 애국심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치명적 실수는 이제로부터 발생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하여 이 민족이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그들의 지배를 받을 것을 명하셨다. 그러나 요하난은 일시적인 두려움으로 그 뜻을 거스르고 반대 방향 곧 애굽 땅으로 도망가려 했던 것이다. 실패자의 생각은 언제나 인본주의로 흐르기 마련이다. 이렇게 유다 민족의 말로(末路)는 예레미야의 예언 그대로(24장) 그 남은 백성까지 더욱 불행해지는 상황으로 떨어진다.


선한 지도자 그다랴가 암살 당하고 이스마엘은 남은 백성까지 모조리 살해하는 악행을 하였고, 요하난까지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고 말았으니 사단의 힘은 강하고도 강했다. 본장의 사실들은 모두가 역사적으로 고증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 역사 이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한 예레미야 24:8~10절의 예언이 있었음을 잊지 말자(24:8~10). 보이는 세계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 하늘의 정한 뜻에 의해 철저히 지배당함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이제 42장부터는 남은 자들의 불순종이 노골화된다. 교만과 패역을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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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40장 - 예레미야의 석방.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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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경 : 예레미야 40장

제목 : 예레미야의 석방


1. 예레미야의 석방 : 1~6


『 1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해방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예레미야는 일찍이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의해 바벨론 군대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아 그 신변안전이 보장되어 있었으나(예레미야 39:14), 그 후 예루살렘이 혼란한 와중에서 그도 엉겁결에 바벨론 군대에게 체포되어 가는 무리 중에 섞이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 보장받은 그 말씀대로 "라마"에서 해방을 받게 된 것이다. 어떠한가? 하나님의 예언은 한 치도 어긋남 없이 필연코 이루어진다는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한 구절 아닌가?


『 2 시위대장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이 재앙을 선포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


시위대장이 말하기를 유다에 임한 전쟁은 이미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뿐이며, 재앙의 원인은 유다 민족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지적한다. 일개 이방 사람 중 하나인 시위대장이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잠깐 이용하시는 것인데, 요나가 하나님의 눈을 피해 도망하여 배 밑층에서 잠잘 때 이방인의 경책(警責)을 당하게 되었던 경우와 유사하다. 요나에게 말한 이방인은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종들이 탈선할 때는 이방 사람을 들어 깨우치기도 하시는 것이다(요나 1:5~6).


『 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해방하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선히 여기거든 오라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선히 여기는 대로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5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 왕이 유다 성읍들의 총독으로 세우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중에 거하거나 너의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시위대장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중에서 그와 함께 거하니라 』


39:11~14절에서처럼 북방군대가 예레미야를 보호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다. 내용인즉,


①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가든지 안 가든지 자유로이 선택토록 함이요(4절상반).

② 어디든지 자기 소원대로 갈수 있는 자유를 보장함이요(4절하반).

③ 그 땅 총독 그다랴에게로 가든지 안 가든지의 자유를 보장함이요(5절상반).

④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낸 것이다(5절).


2. 총독 그다랴의 피선 : 7~12


『 7 들에 있는 군대장관들과 그들의 사람들이 바벨론 왕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이 땅 총독으로 세우고 남녀와 유아와 바벨론으로 옮기지 아니한 빈민을 그에게 위임하였다 함을 듣고 8 그들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두 아들 요하난과 요나단과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느도바 사람 에배의 아들들과 마아가 사람의 아들 여사냐와 그들의 사람들이 미스바로 가서 그다랴에게 이르니 』


바벨론 군대에게 패배를 당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던 군인들이 이제 총독 그다랴에게 모여왔으며 모압, 암몬, 에돔 등지에 흩어졌던 유대인들도 모여왔다. 그때에 모여든 자들은 극히 악한 무화과였다(예레미야 24:1~10). 그러므로 그들은 다 흩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마엘"은 총독 그다랴를 죽이므로 민족에게 화가 미치도록 하였고(41:2) "요하난"은 하나님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반역하고 무리를 거느리고 애굽으로 내려간 자이다(43:7).


『 9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그들과 그들의 사람들에게 맹세하며 가로되 너희는 갈대아인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거하여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 』


그다랴는 9절 이후로 자기를 찾아온 피난민들의 앞길을 열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살 길이라고 이미 가르쳐 주신 바 있다(21:8~9). 그다랴는 의인 아히감의 아들로서(26:24)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유다 총독이 되었으며 그의 지도 원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으로서 남은 백성을 선무(宣撫)하는 귀한 일을 하였다. 당시 피상적(皮相的)인 애국자들은 무조건 바벨론을 반대하는 길만이 애국의 길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에 합당한 애국자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순종하면서 백성을 지도하는 자인 것이다. 그러나 신본주의 애국자는 하나님 지상주의(至上主義)를 실천하고, 민족지상주의를 표방하지 아니하는 만큼 혈기에 넘치는 피상적 애국자들 앞에서 반역자로 몰리기 쉽다는 것도 역사상의 통례이다.


『 10 나는 미스바에 거하여 우리에게로 오는 갈대아인을 섬기리니 너희는 포도주와 여름 실과와 기름을 모아 그릇에 저축하고 너희의 얻은 성읍들에 거하라 하니라 』


돌아온 피난민들에게 전쟁의 화를 겁낼 필요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 식품을 "그릇에 저축"하는 것은 타국 군대의 침략 우려가 없는 때에 하는 행동이다. 총독 그다랴가 이런 안전보장을 약속한 것은 그가 예레미야의 사상계통에 속하여 유다 민족의 진로(進路)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귀한 지도자를 살해한 이스마엘의 행위는 사단에 속한 행위인 것이다.


『 11 모압과 암몬 자손 중과 에돔과 모든 북방에 있는 유다인도 바벨론 왕이 유다에 사람을 남겨 둔 것과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그들의 위에 세웠다 함을 듣고 12 그 모든 유다인이 쫓겨났던 각처에서 돌아와 유다 땅 미스바 그다랴에게 이르러 포도주와 여름 실과를 심히 많이 모으니라 』


"모압", "암몬","에돔" 민족은 유다 민족의 원수가 되는 족속들이다. 그런 나라들 가운데 피하였다가 돌아오는 유대인들은 당연히 바벨론에 항복하라 하신 하나님의 지도를 좋게 여기지 않던 자들이 틀림없을 것이다(악한 무화과). 바로 그들 중에 하나로서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죽인 것이다(41:1~3). 언제나 권력자나 부자들 속에서 역사하는 사단의 속성이 잘 폭로된 사건이다. 종말에도 사단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서 적어도 정치인들과 종교지도자들급 속에 들어가 역사할 것이 분명하다. 사단은 이런 자들을 사주하여 성경과 반대되는 길을 걷게 만드는 것이니, 이 책을 읽는 지도급 인사들은 말씀의 등불로 새로 지음을 받아 그 악한 무리의 사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편에서 순복하여 승리의 길 가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3. 요하난이 총독암살 음모를 고발 :13~16


『 13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들에 있던 군대장관들이 미스바 그다랴에게 이르러 14 그에게 이르되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네 생명을 취하려 하여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보낸 줄 네가 아느냐 하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믿지 아니한지라 』


요하난은 총독 그다랴에게 총독 암살계획에 대하여 밀고(密告)하였다. 사단의 계획이 현실화되기 이전에 항상 이 같은 사상전쟁이 있음을 알되 다음의 몇가지 사실을 참고해야 한다.


① 예레미야의 사상계통에 속하는 그다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유다 남은 백성의 살 길을 잘 지도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그러나 마귀는 반드시 이러한 틈을 놓치지 않고 역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② 그다랴가 그 밀고를 받고도 믿지 않는 것은 무사안일주의(無事安逸主義)의 잘못된 태도였다. 그다랴는 사단의 비밀을 몰랐다. 그러나 비밀을 몰랐던 데서 화가 온 것이 아니라, 알려줘도 믿지 않았던 사실에서 화가 임했으므로 그 책임은 당사자에게 돌아간다.


③ 그다랴에게 밀고하므로 총독암살을 막아주려 했던 요하난의 선함은 그 행위에서 막을 내린다. 이제 잠시 후면 그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은 패역한 무리의 지도자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43:2~7). 육적 전쟁에서건 사상 전쟁에서건 최후의 승자가 진정한 승자이다. 아홉을 잘했어도 마지막 하나에서 무너지면 승리는 마귀의 것이 된다.


에덴동산을 공격하여 무너뜨렸던 옛 뱀은 마귀요 사단이며 붉은 용인데(계시록 12:9, 20:2), 에덴 파괴 이후에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노아 때에도 역사했고(누가복음 17:27), 예루살렘 성전에도 역사했고, 피로 산 교회도 거의 다 장악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마지막 교회인 촛대 교회까지 들어와 계속하여 공격하고 있으니, 사명자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예레미야 11:9~23 ☞ 아나돗(제사장촌) 사람들 / 12:6 ☞ 형제와 아비의 집).


『 15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미스바에서 그다랴에게 비밀히 말하여 가로되 청하노니 나로 가서 사람이 모르게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죽이게 하라 어찌하여 그로 네 생명을 취케 하여 네게 모인 모든 유다인으로 흩어지며 유다의 남은 자로 멸망을 당케 하랴 16 그러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 이르되 네가 이 일을 행치 말 것이니라 너의 이스마엘에 대한 말은 진정이 아니니라 하니라 』


간교한 사단은 밤낮 참소하고 있으나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순종만 하면 성령께서 함께 하시어 인도해 주신다. 구약 때의 모든 교훈은 종말에 등장할 144000명에게 주신 로얄제리와 같은 양식이요 교훈이니, 우리의 인도자-명령자 되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100% 기록된 대로 순종만 할 따름이다. 예수님이 다윗의 입을 빌어 하나님 앞에서 "나는 벌레요" 하셨다면(시편 22:6) 우리는 예수님 앞에 또한 벌레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사야 41:14).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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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9장 - 예루살렘 함락.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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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경 : 예레미야 39장

제목 : 예루살렘 함락


1. 적군 침입과 눈이 뽑혀 포송되는 왕 : 1~7


『 1 유다 왕 시드기야의 구년 시월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2 시드기야의 제 십일년 사월 구일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이 온전히 성취된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다. 예레미야서 39장부터 41장까지는 역사적 예언으로서 기록된 것이다. 이 부분은 성경의 예언성취가 얼마나 정확하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니 우리는 이 점(역사성)을 주목하면서 읽어야 한다. 선지자는 약 40년간 유다 나라가 북방에 의해 패망하리라는 예언을 거듭 말하여 왔다. 이제 급기야 이 예언대로 바벨론 군대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와서 18개월 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다가 성을 함락시키게 된 것이다. 육체를 지니고 자연계 안에서 살도록 창조된 인간인 이상 그 누구도 자연의 법칙을 어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선민인 이상 예언대로 성취되는 인류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출 자는 없는 것이다.


구약의 모든 선지의 말씀이 다시 예언되는 이 시대에, 저 북방에서 끓는 가마솥이 등장하여 남방(에스겔 20:46~49)을 향해 기울어져 있으니 이제 예레미야 39장의 예언은 다시 한 번 종말의 역사로서 재현될 것이다.


『 3 바벨론 왕의 모든 방백이 이르러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르보와 환관장 살스김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기타 모든 방백들이었더라 』


"중문"은 예루살렘 성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중요한 문이다. 그들이 아직 성중에 들어가지 않고 먼저 성안의 모든 형편을 감시하기 위하여 "중문"에 앉아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실은 예레미야 1:15절의 예언이 정확히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예레미야 1: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종말의 북방환난과 탈선한 교회의 최후가 보이는가?


『 4 유다 왕 시드기야와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길로 좇아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5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6 바벨론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인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 하여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


시드기야 왕과 예루살렘에 대하여 외쳤던 예레미야의 예언이 현실 속에서 모두 성취되는 순간이다. 선지자의 입에서 나간 예언이 얼마나 무섭도록 적중하는가는 다음 사실이 말해 준다.


왕이 도망하되 밤에 두담 샛문을 통하여 도망한 것(4절). 에스겔 12:12 "무리가 성벽을 뚫고 행구를 그리로 가지고 나가고 그 중에 왕은 어두울 때에 어깨에 행구를 메고 나가며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하려고 자기 얼굴을 가리우리라 하라"

그물에 걸리듯이 바벨론 군대에게 붙잡힌 것(5절). 에스겔 12:13 "내가 또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고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왕이 바벨론 왕앞에 와서 심문을 당한 것(5절하반). 예레미야 34:3절 "네 눈은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그 입은 네 입을 마주 대하여 말할 것이요".

왕의 눈이 뽑히움(7절). 에스겔 12:13 "내가 또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고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그를 끌고 갈대아 땅 바벨론에 이르리니 그가 거기서 죽으려니와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땅을 보지 못함은 눈알이 뽑혔기 때문이다.


2. 예루살렘 소화(燒火)와 백성의 포송 : 8~10


『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바벨론으로 잡아 옮겼으며 10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


북방 갈대아(바벨론)인들이 유다를 불태우고 성벽을 헌 후, 부자와 힘센 용사들을 포송하였으되, 오직 아무 소유가 없는 가난한 자들은 유다에 남겨 두어 밭과 포도원을 그들에게 준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부선망(富先亡)의 원칙은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적용됨을 볼 수 있다. 환난이 닥치면 유력한 자와 부자가 먼저 망한다는 사실은 종말에도 한 번 더 적용될 것이다.


3. 바벨론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우대함 : 11~14


『 1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레미야에 대하여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에게 명하여 가로되 12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 13 이에 시위대장 느부사라단과 환관장 느부사스반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14 보내어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서 취하여 내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붙여서 그를 집으로 데려가게 하매 그가 백성 중에 거하니라 』


전란 중에서도 예레미야는 보호를 받으리라 한 다음의 예언들이 성취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예레미야 1:8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예레미야 15: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속하리라".


4. 에벳멜렉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 15~18


『 15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6 너는 가서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이 성에 재앙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나의 말이 그 날에 네 목전에 이루리라 1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붙이우지 아니하리라 18 내가 단정코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되리니 이는 네가 나를 신뢰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구원하여 준 에벳멜렉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된다. 그것은 바벨론으로 말미암은 전쟁의 화가 예루살렘에 임할 때에 하나님께서 특별하고도 확실하게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참 종을 도와주면 이와 같이 보호를 받게 된다.


"네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되리니"(18절) - 에벳멜렉이 그 위험한 전쟁 중에서 하나님의 보호로 구원을 받아 누리는 기쁨이 구사일생의 경우와 같이 될 것을 가리킨다.


"이는 네가 나를 신뢰함이니라" 에벳멜렉의 신앙행위에 대하여는 38:7~13을 참조바람. 에벳멜렉의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서나 거짓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의 편에서 살면 진리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요한복음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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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8장 - 예레미야의 재차 투정(投井).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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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경 : 예레미야 38장

제목 : 예레미야의 재차 투정(投井)


1. 예레미야의 피소와 투정 : 1~6


『 1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의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 』


1절에 기록된 네 방백들은 시드기야 왕의 심복 분자들이다(5절참조).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은 이미 21:1, 37:3절에 등장한 바 있다. 이들이 예레미야의 말을 청취한 동기는 바리새인들처럼 그를 고발하려는 것이었다.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으나(37:21), 계속적으로 예언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세상 마귀가 하나님의 종들을 육신적으로 가두는 것은 가능해도 그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말씀만은 가둘 수 없다. 하나님 입에서 한 번 나간 말씀은 아무런 속박됨 없이 반드시 목적지까지 전파되고야 마는 법이다(디모데후서 2:9. 이사야 55:11).


『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살리라 3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가 취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


2~3절과 같은 말씀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러므로 그 말씀대로 되는 날 그것을 지켜보는 자들은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됐음을 부인치 못할 것이다. 선지자가 외치는 말들은 청자(聽者)가 듣고 회개치 않는 한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들려주어도 회개치 않는 그들에게는 2~3절이 얼마나 듣기 싫은 고통의 소리였겠는가!


"그의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살리라" 그러나 회개하여 선지자의 말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잃을 뻔한 생명을 건짐 받는 구원의 기쁨이 있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 4 이에 그 방백들이 왕께 고하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치 아니하고 해를 구하오니 청컨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


방백들은 오해하고 참 선지를 공격한다. 하나님의 종은 사실 백성의 해(害)를 구한 것이 아니다.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단의 흑암이 덮이우니 정치 방백들이 진리를 곡해하여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사실 '회개'라는 것은 영광에 이르는 길이요, 결코 천해지거나 낮은 데로 떨어지는 길이 아닌 것을......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많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이 말은 유익한 말씀을 해로운 것으로 오해하여 말하는 공연한 걱정이다.


『 5 시드기야 왕이 가로되 보라 그가 너희 손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릴 수 없느니라 』


시드기야 왕의 태도는

①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했음이요 ② 무책임했으며 의인을 돌보지 않고 악인의 편에 서 있었다. 그 결과는 비참함과 멸망이었다(예레미야 39장).


『 6 그들이 예레미야를 취하여 시위대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 내리웠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흙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흙 중에 빠졌더라 』


"구덩이"는 물이 없는 웅덩이다. 고난의 풀무와 같다(이사야 48:10).


2. 에벳멜렉의 간청으로 구출함 : 7~13


『 7 왕궁 환관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의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음을 들으니라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8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고하여 가로되 9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서 주려 죽으리이다 10 왕이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11 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서 헝겊과 낡은 옷을 취하고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줄로 내리우며 12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너는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네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 대라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13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


7~13절에는 예레미야가 왕의 환관 구스 사람 에벳멜렉으로 말미암아 그 빠졌던 구덩이에서 구출된 사건이 진술된다.


"환관"은 먼 옛날부터 중동지역과 중국에 많았는데, 왕의 궁녀들과 여자 숙소에서 수종들거나 경호하는 일에 담당했다. 주로 왕의 '시종' 역할을 담당하던 환관을 '내시'라 칭했다(열왕기상 22:9. 열왕기하 9:32, 24:15, 25:19. 역대상 28:1~ 참조). 환관은 통치자가 궁전에 거느릴 수 있는 수많은 아내나 첩에게 가장 적당한 경호원으로 여겨졌고, 왕의 은밀한 규방에서 지낼 수 있는 허물 없는 입장 덕분에 왕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에벳멜렉'의 충언은 그의 지위에서 오는 기회를 잘 살린 경우일 것이다.


왕에게 늘 충언을 올려야 할 유다 방백들은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 하고, 보잘 것 없는 일개 이방족 중 한 사람인 '환관'은 참 선지를 구하는 일에 용감히 앞장섰으니 우리에게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세상적으로 똑똑하며 '정통족보'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사단 편에 서고, 세상적으로 무언가 부족한 위치에 있는 자들이 오히려 진리 편에서 일하는 것은 알파로부터 오메가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진리일 것이다. 이는 사탄이 똑똑하고 유력한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기를 즐긴다는 것을 증거해준다. 아모스 선지는 안일하며 마음이 든든한 자들과 이 세상에서 유명하여 우승한 자들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외쳤다(아모스 6:1).


3. 왕과 예루살렘에 대하여 운명을 예언함 : 14~28


『 14 시드기야 왕이 보내어 선지자 예레미야를 여호와의 집 제 삼문으로 데려오게 하고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한 일을 물으리니 일호도 내게 숨기지 말라 』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불러 밀담(密談)을 하였다. "내가 한 일을 네게 물으리니 일호도 내게 숨기지 말라" 예레미야는 바벨론 침략하에 있는 유다에 대하여 그가 받은 계시를 여러 차례 왕에게 말한 바 있다(21:4~10, 32:4, 34:2~6). 그런데도 왕이 지금 또다시 묻는 것은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함이 아니요, 행여나 좋은 소식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맘에서이다. 이러한 사상은 불신앙자의 사상이요, 병든 사상이다. 예수님을 불신한 빌라도의 간사한 태도와 시드기야 왕의 태도는 굉장히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요한복음 18:33~38, 19:10~11). 얼핏보면 참종을 위하는 척 보일 수도 있지만, 본질을 보라! 종말에도 유력자 중 시드기야와 같은 자, 빌라도와 같은 자가 많이 나올 것이다. 재림 시(時)에 이루어지고 있는 계시록과 예언서 곧 '하나님의 비밀'과 '옛적 선지자들의 말씀'을 손에 들고다니면서도 불신하는 자들은 모두가 시드기야와 비슷한 자들이다(이사야 43:8~ ).


『 15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왕에게 아시게 하여도 왕이 단정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가령 내가 왕을 권한다 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 16 시드기야 왕이 비밀히 예레미야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우리에게 이 영혼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고 네 생명을 찾는 그 사람들의 손에 붙이지도 아니하리라 』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왕이 단정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라고 했다. 이것도 시드기야 왕의 요구에 응하기 전에 그가 전하는 말씀에 대한 왕의 신중한 순종이 있어야 할 것을 암시적으로 내포하여 그를 주의시키기 위한 발언이었다(15절). 지조 없는 겁쟁이와 같은 시드기야 왕은 5절과는 상반되는 내용 곧 예레미야를 죽이지 않고 보호할 것을 서약하였다(16절).


『 17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입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18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


위 진술은 사실상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줄 모르는 그 시대의 분위기로 볼 때 반역자로 몰리기 쉬운 위험한 말이었다(38:4, 37:13).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주 신 말씀인 것이 확실한 만큼 사람의 생각을 섞지 않고 그대로 예언하였다. "항복하면 살수 있다"는 것이 골자이다.


『 19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컨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붙이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 20 예레미야가 가로되 그 무리가 왕을 그들에게 붙이지 아니하리이다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고한 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존하시리이다 』


예레미야의 항복 권고를 받은 시드기야는 '먼저 항복한 유다인들'의 조롱을 두려워 하며 항복을 주저하고 있다. "항복한 유다인"이란 시드기야의 정책노선과는 반대 노선을 주장했던 자들이므로, 왕은 그들의 항복을 비겁한 처사로 매도했을 터였다. 그러니 예레미야의 말을 좇아 뒤따라 항복하고 말면 그들 앞에 설 자신의 체면이 말이 아닐 판이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그의 성품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시드기야의 이와 같은 행동은 예레미야가 외치는 말씀의 권위가 곧 하나님의 권위라는 사실을 인식치 못한 데서 발생하였다. 예수님 말씀 마태복음 20:1~16절의 내용처럼, 시드기야는 당시에 그저 회개하고 "주시는 대로 받겠나이다" 하는 상태까지 마음을 비워 순종해야 했다. 진정 회개한 자는 자신을 죽은 자와 같이 여기며 하나님만 바라보며 행동하게 되어 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그의 앞길 전부를 맡아 주시는 것이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잠언 5:21~23).


『 21 그러나 만일 항복하기를 거절하시면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말씀대로 되리이다 22 곧 유다 왕궁에 남아 있는 모든 여자가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로 끌려갈 것이요 그들은 네게 말하기를 네 친구들이 너를 꾀어 이기고 네 발이 진흙에 빠짐을 보고 물러갔도다 하리라 23 네 아내들과 자녀는 갈대아인에게로 끌어냄을 입겠고 너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벨론 왕의 손에 잡히리라 또 네가 이 성으로 불사름을 입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


21~23절은 18절의 내용을 재설명한 것이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경우에 당할 시드기야의 심판을 다시 일러준다.


"그들은 네게 말하기를 네 친구들이 너를 꾀어 이기고 네 발이 진흙에 빠짐을 보고 물러갔도다 하리라"(22절하반절). 시드기야 왕은 자기가 항복하는 경우에 자기를 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공연한 염려를 하고 있었으나(18절) 예레미야는 그가 항복하지 않을 경우에 더 견디기 어려운 조롱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곧 왕의 궁녀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면서 그를 조롱하리라는 것인데 그녀들의 말인즉 왕의 친구들(거짓 선지자들)이 왕을 꾀어 수렁에 빠치우고서는 목적을 달성하여 물러간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예언이 이제 인간종말에 완전히 적중된다는 데 있다(계시록 10:7~11). 오늘날 소위 자신의 명패 앞에 '진보'자 붙이기를 좋아하는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 치고 공산주의사상을 뒤로 감추고 나온 W.C.C. 속 거짓 선지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자들은 없다. 공산권 가짜 목자들의 신학에 의해 완전히 속아넘어가 놓고는 자신이 남보다 한 걸음 앞서나가는 진보적인 종이라고 착각하는 인물들이다. 이러한 목자나 그 밑에 있던 성도들은 후 3년 반 바벨론 세계로 잡혀 들어가게 될 터인데, 그 곳에서 자신이 먹이던 양떼 앞에 서게 될 목자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 바벨론에 잡혀간 자기 백성들 앞에 서게 될 시드기야의 모습인 것이다. 이미 5개월 환난 때에 황충떼로부터 죽기까지 괴로운 고통을 당하지만(계시록 9:4~6) '후 3년 반'에 들어가면 조롱당하는 정도를 넘어 구약 시드기야처럼 눈알이 뽑히는 일도 있고, 칼에 쓰러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계시록 17:16. 예레미야 15:2~4).


『 24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너는 이 말을 사람으로 알게 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25 만일 방백들이 내가 너와 말하였다 함을 듣고 와서 네게 말하기를 네가 왕에게 말씀한 것을 우리에게 고하라 우리에게 숨기지 말라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또 왕이 네게 말씀한 것을 고하라 하거든 26 그들에게 대답하되 내가 왕의 앞에 간구하기를 나를 요나단의 집으로 도로 보내지 말아서 거기서 죽지 않게 하옵소서 하였다 하라 하니라 27 모든 방백이 예레미야에게 와서 물으매 그가 왕의 명한 모든 말대로 대답하였으므로 일이 탄로치 아니하였고 그들은 더불어 말하기를 그쳤더라 28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날까지 시위대 뜰에 머물렀더라 』


시드기야 왕은 살 길을 가르쳐준 예레미야의 예언을 반기기는커녕 그 예언 내용을 (비밀스레) 들었다는 사실이 방백들에게 탄로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왕은 왕 된 자로서 자신이 행할 마땅한 의무와 공의를 전혀 집행치 못하고 있는데,


① 온 천하에 공포해야 할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듣고도 감추려 하는 사실에서 그러하고

②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있는 사실에서 그러하다.


율법의 대표 모세는 신명기 27:26절을 외쳤다. 은혜의 대표 바울은 갈 1:8절을 외쳤다. 마지막 시대인 환난의 대표 스룹바벨은 이사야 42:9~, 계시록 22:18~19절을 외쳐야 한다.


생사화복(生死禍福)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을 믿는 자는 사람을 겁내지 않아야 한다. 왕이라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날까 두려워하였고, 방백들은 그 말씀을 공공연히 박해했으니 예레미야는 북방이 치고 올 때까지 감금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28절).


예레미야의 모든 예언은 늘 그대로 성취되었다. 바벨론 군대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나 그때의 유다 민족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당하면서도 믿지 않고 선지자를 박해하였다. 지금도 세계정세는 계시록 9장에 예언된 대로 거짓 평화공존(1958.3월~)의 분위기로 뒤덮여 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다니엘 9:26절 말씀대로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하고 외치게 된다. 예언대로 강대국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전쟁조짐이 중동과 극동에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전쟁으로 끝난다"고 말하는 종들이 없고 "평화~평화"를 외치는 종들만 수두록하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러한 시국에 예레미야서를 다시 예언하는 것은 예레미야의 고통에 동참하는 순종적 행위임과 동시에 그가 받을 면류관을 함께 받게 되는 영광에 참여하는 신앙정로일 것이다. 모든 말씀은 이 시대에 한 말씀도 예외없이 100% 다시 예언될 것이다(계시록 10:1~11, 11:1~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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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7장 - 예레미야의 투옥.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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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경 : 예레미야 37장

제목 : 예레미야의 투옥


1. 북방 바벨론군이 전략상 일시 후퇴 : 1∼5


『 1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로 유다 땅의 왕을 삼음이었더라 2 그와 그 신하와 그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


"고니야"의 또 다른 이름은 여호야긴이다(열왕기하 24:6). 3개월간 왕이 되었던 일이 있으나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감에 따라 그의 숙부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의 세워줌을 받아 왕이 되었다. 그러나 왕과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바벨론에게 반역하기를 꾀하였던 것이다(열왕기하 24:19∼20, 역대하 36:11∼13).


『 3 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4 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 』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시드기야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서도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더러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주기를 청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① 왕 자신은 스스로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

② 하나님 말씀에 순종치는 않으면서 곤란한 때를 당하면 그의 도우심만 받고저 하는 얄팍함을 보이고 있다.


이는 실상 하나님을 오해한 데서 비롯 되어지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시드기야 왕의 태도는 신앙적인 것이 아니고 이교적(異敎的)인 것이다. 또한 매우 기회주의적인 태도이다.


『 5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


이때는 애굽 왕 바로 호브라(BC 588)가 바벨론 군대를 대항하기 위하여 애굽에서 떠나왔다. 이것은 유다가 청병(請兵)한 까닭이었다. 애굽의 소문을 들은 북방군대는 일시적으로 후퇴했다.


2. 예레미야가 적군이 재침할 것을 예언함 : 6∼10


『 6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7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 왕에게 이르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8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취하여 불사르리라 9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10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


시드기야 정권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지 않고 하나님보다도 애굽 정권을 의지하였다(에스겔 17장. 예레미야 24:8~10).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유다를 버리지 아니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시려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내용인즉,


① 바로의 군대는 후퇴하여 애굽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7절).

② 북방은 다시 예루살렘에 와서 그 성을 불사를 터이니 유다를 떠나리라고 생각지 말라는 것(8-9).

③ 설혹 유다가 북방을 쳐서 부상자만 남도록한다 할지라도 그 부상자들이 예루살렘성을 불사르리라는 것(10절).


화(禍), 복(福)은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오는 것이다(예레미야애가 3:38). 이를 알고 있는 선지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유다를 향해 권면도, 책망도 해보았으나 유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배반하고 말았다. 배반자의 최후는 북방 칼에 처참히 쓰러지는 것이었다(예레미야 39장).


3. 예레미야가 투옥됨 : 11∼15


『 11 갈대아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떠나매 12 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중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 하여 13 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두목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가로되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


예레미야가 사촌 하나멜에게 밭을 샀는데 그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베냐민 땅으로 갔을 때 문지기 두목이 예레미야에게 "너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하며 오해를 하게 되었다. 이것은 거짓된 누명이다. 이처럼 선지는 언제나 사탄에게 괴롭힘을 받아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게 된다(이사야 52:14).


"베냐민 문"은 예루살렘의 북쪽 문이다(예레미야 8:7. 스가랴 14:10). 이것을 '에브라임 문'이라고도 한다(열왕기하 14:13. 느헤미야 8:16).


유다 백성은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의뢰치 않고, 인본주의로 친애굽주의만을 고집하여 바벨론을 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지금의 교회 역시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종말에 하나님의 뜻은 오직 새 일이다(예레미야 31:22). W.C.C.나 로마가톨릭의 인본주의, 통합주의, 바벨적 사업은 잠시간은 화려하고 선하게 보여도, 하나님의 새 일 권세 앞에서 경각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이사야 29:5~8).


『 14 예레미야가 가로되 망령되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이리야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를 잡아 방백들에게로 끌어가매 15 방백들이 노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으로 옥을 삼았음이더라 』


"망령되다"라는 말은 언행이 보통사람에 비해 심히 어그러져 있다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이리야가 자기에게 씌우는 누명이 사실과는 반대된다고 지적한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바른 말을 하여도 방백들이 죄없는 선지자를 때리고 감금한 사실을 보면 당시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무법(無法)하고 부패하였던가를 알 수 있다.


4. 시드기야가 선지자를 보호함 : 16~21


『 16 예레미야가 토굴 옥 음실에 들어간지 여러 날만에 17 시드기야 왕이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가로되 여호와께로서 받은 말씀이 있느뇨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가로되 왕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이다 』


시드기야 왕이 선지자를 석방하고 그에게 계시유무를 물어본 태도는 그가 방백들보다 선량한 면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대하 36:11-13절에서는 시드기야 왕을 악한 왕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왕이 간신배들에게 좌우(左右)되었기 때문이다. 왕은 진실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예레미야를 단순히 여러 점술자들 중 한 사람처럼 취급했던 것이다. 이것은 실로 커다란 잘못이었다.


육신은 옥에 갇혔어도 영적으로는 자유로운 것이 바로 선지자이다. 왕은 육적으로는 자유가 있는 것 같아도 영적으로 마귀에게 포로가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도 마귀 영권(600)과 짐승 정권(60)에 잡힌 지도자가 부패한 교권자들(6)인데,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저들 세력의 행하는 일과 발언에 '아멘'만 연발하고 있으니 실로 밤중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예레미야 5:30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구약종말은 인간종말의 형편을 자세히 본떠 놓은 형틀과도 같다.


"비밀히" 왜 비밀히 하였을까? 그것은 예레미야를 박해하는 신하들을 두려워한 까닭이다. 시드기야가 왕의 신분으로서 자신의 신하들을 두려워하여 참 선지자를 만나는데 있어 "비밀스럽게" 행동하였다는 것은 정말 큰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 18 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관대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19 바벨론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


예레미야가 자신을 변호하는 장면이다. 요한복음 18:23~ 예수님도 이렇게 자기를 변호하신 적이 있었다. 선지자는 이와 같은 변호를 통해서 그가 선포한 예언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레미야는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 무슨 죄를 범했관대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라고 한 것이다(18절). 예레미야가 북방이 오지 않는다고 말한 거짓 예언자들에 관해 왕에게 이르기를 "평강만을 외치던 종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하였다. 이 내용이 다시 예언되는 종말에는 평화공존 협상주의가 선(善)이라고 외치던 거짓 종들은 북방이 내려올 때 말 문이 막힌 채 두려워하다가 '후 3년 반'에 들어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 20 내 주 왕이여 이제 청컨대 나를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21 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하여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덩이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다할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


20절은 선지자의 탄원서이다. 선지자는 끌려오기 전에 요나단의 집에 갇혀 있었는데 이제 다시는 그리로 돌려 보내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며, 맡겨진 귀한 사명을 끝까지 완수해야 할 인물이다. 이 탄원은 일개 육신적 죽음이 두려워서 청한 말이 아니었다. 죽음이 무서웠다면 지금껏 매맞고 갇힐 일도 없었겠거니와, 왕의 면전에서 진리대로 말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참 선지자의 존재 이유는 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키 위함이다("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계시록 19:10).


시드기야 왕은 그를 시위대 뜰에 두고 양식을 공급하게 하였다. 결과 예레미야는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손에 넘기워지지 않고 선지자로서의 남은 사명을 다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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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6장 - 왕이 예언서를 소각함.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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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경 : 예레미야 36장

제목 : 왕이 예언서를 소각함


1. 바룩이 예언서를 낭독함 : 1~8


『 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 년에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 』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 계시(啓示)의 역사성을 밝히 보게 된다.


① 요시야 왕 때부터 여호야김 때까지(40년) 예레미야가 유다 민족의 장래에 대하여 자세히 예언한 것이니 그 분량이 풍부하다. 거짓 선지자의 거짓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예레미야의 예언은 기록되어 있으니 이는 어디까지나 '성취된다'는 것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언젠가는 거짓임이 들어날 것이니 기록하지 않는 것이다. 곧 마귀와 거짓 선지자는 시온산 건설을 위해서 쓰이고는 버려지는 일회용 물품이라 할 수 있겠다.


『 3 유다 족속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앙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킬 듯하니라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사하리라 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


"돌이킬 듯하니라" 하나님은 백성의 완악함과 패역함을 누구보다 잘 아신다. 돌이키지 않고 잡혀갈 것 또한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구약 백성은 듣지 않고 잡혀갔다. 고로 이 말씀은 이제 종말로 넘어오게 되어 있다. 은혜로 얼마를 택하여 피로 사신 후 성령을 보내주시어 영적 이스라엘의 세계적인 대확장을 이루어내셨건만, 교회가 살이 찌매 성령을 근심케 하며 곁길로 치우치게 되는 종말에,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같은 애굽 땅 중앙제단을 통하여 탈선한 교회에 예레미야서를 다시 예언케 하시는데, 이 때 듣고 돌이키는 자들에 대해서는 과거를 묻지 않고 악과 죄를 사하시어 새 시대에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이시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마태복음 18:22). 또한 하나님은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미가서 7:18~20). 용서의 하나님은 돌이키기를 바라시며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리시기도 하며, 천년의 죄도 돌이키기만 하면 하루 만에 사해주시는 자비의 신이시다.


예레미야는 임하는 말씀을 자기 제자 바룩에게 기록하여 전하게 하였다. 참 선지자는 고난이 많다. 고난은 성도의 구원완성과 사역완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필수적인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바룩이 예언을 책에 기록하여 낭독한 이유는 예언자를 통한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그대로 내세우려는 데 있다. 곧 바룩의 전하는 바는 바룩 자신의 권위에 의존되어 있지 않고 선지자 예레미야의 권위에 의존하도록 한 것이다. 기록의 목적이 여기에 있다. 오늘도 성경의 권위는 그것을 낭독하는 일반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록한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있는 것이다(택한 종들). 성경은 그들의 권위에 의존한 전도 문서인 것이다. 종은 곧 하나님의 대사이다(이사야 50:10).


『 5 예레미야가 바룩을 명하여 가로되 나는 감금을 당한지라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은즉 6 너는 들어가서 나의 구전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집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


"나는 감금을 당한지라" 하나님의 참종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도, 왜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역사를 발휘하여 해방해 주시지 않는가?


이사야 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참종들을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셨다고 예언하셨다.


이사야 29:1~4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의 진 친 성읍이여 년부년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필경 너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군대로 너를 에우며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들은 고난 속에서만 인격이 성장된다.


"금식일" 금식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한 목적으로 모인 날에 하나님의 참 종이 회개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예언'을 낭독해도 듣지 않으니 그 금식은 자기들을 위해 행하는 금식임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스가랴 7:1~14).


『 7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날듯 하니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와 분이 크니라 8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무릇 선지자 예레미야의 자기에게 명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집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하니라 』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라 했는데, 성령님의 역사가 없으면 회개가 있을 수 없고 기도도 상달될 수 없다. 구약 때에는 성령께서 개인적으로는 역사하셨으나 단체적으로는 역사하지 아니하셨다. 만민을 위한 성령역사, 곧 "성령 강림"은 사도행전 2:1~ 오순절에 임하였기 때문이다.


2. 미가야 선지가 바룩을 은닉(隱匿)함 : 9~19


『 9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오년 구월에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지라 10 바룩이 여호와의 집 윗뜰 곧 여호와의 집 새문 어귀의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있는 예레미야의 말을 낭독하여 모든 백성에게 들리니라 』


여호야김 왕 5년 9월에 바룩은 목숨을 걸고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했다. 그러나 다음 절들에서 알 수 있듯이, 생명의 말씀을 칼로 베며 불에 태웠으니 여호야김 왕의 강퍅함을 짐작할 수가 있다. 사단이 내적으로 역사하면 하나님을 반대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 사단의 사명은 대적이기 때문이다.


『 11 사반의 손자요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그 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다 듣고 12 왕궁에 내려가서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니 모든 방백 곧 서기관 엘리사마와 스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와 모든 방백이 거기 앉았는지라 13 미가야가 바룩의 백성의 귀에 책을 낭독할 때에 들은 모든 말로 그들에게 고하매 14 이에 모든 방백이 구시의 증손 셀레먀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어 이르되 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한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오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그들에게로 가매 15 그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앉아서 이를 우리 귀에 낭독하라 바룩이 그들 귀에 낭독하매 16 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서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고하리라 17 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그 구전하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뇨 청컨대 우리에게 이르라 18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베풀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19 이에 방백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


① 이 기록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 그대로만을 전하고 있다. 여기 기록된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한 개인을 소개하기 위하여 그 개인의 이름만 말하지 않고 그 조부(祖父)들의 이름까지 덧붙였다.


② 바룩의 낭독한 예언을 들은 당대의 지도자들이 하나님 말씀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다가 필경은 불회개로 떨어진 사실이다. 그들은 그 예언에 담긴 재앙 선포가 민족의 회개를 위한 사랑의 경고인 줄 모르고, 오히려 선지자를 국가에 반역하는 위험한 인물로 오해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마땅히 예레미야의 예언을 환영하고 회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반역한 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는 듯하다. 이는 그들이 바룩과 예레미야에게 함께 숨으라 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3. 여호야김 왕이 예언서를 소각함 : 20~26


『 20 그들이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로 왕의 귀에 고하니 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방백의 귀에 낭독하니 22 때는 구월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피운 화로가 있더라 23 여후디가 삼편 사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小刀)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24 왕과 그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그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25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사르지 말기를 간구하여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


여호야김을 조종하는 마귀를 보라! 마귀 도구된 자들은 자기의 하는 일을 모른다는 특징이 있다(누가복음 23:34).


여호야김 왕이 바룩이 기록한 예언서를 칼로 베고 불사른 악한 행동이 기록되어 있다. 아첨하는 거짓 선지자만 좋아하고 참 선지자의 충언은 배척하는 모습을 보라!  왕은 ① 자기의 죄를 책망해 주는 생명의 경고를 싫어하고 ② 왕 자신과 국가의 멸망을 알려주는 하나님의 진리도 배척하였다. 저 이방 니느웨 왕은 작은 선지자 요나의 외침에 베옷을 입고 회개하였는데, 예루살렘 왕은 살 길을 터주어도 죽으려고 하니 마귀의 힘은 과연 강하다! 여호야김 왕이 칼로 책(진리)을 찢는 것이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도성인신 하신 예수(진리)를 십자가에 찔러 죽이는 것이나, 종말의 정통 교단들이 예수님의 피로 산 말씀인 '새 일'의 교훈을 이단이라 배척하고 거대한 세력을 이루어 말세의 종들(144,000)이 짐승 칼에 순교하도록 내모는 것은 매 한 가지의 역사로 마귀의 열매이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여기에는 큰 비밀이 담겨 있다. 예레미야서가 칼에 찢겨 불 가운데 던져졌다가 다시 기록되어 그 말씀을 모두 성취한 것과, 예수께서 고난의 길을 걸으시고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승천하신 후, 그의 피값으로 심판책을 넘겨 받으신 것은 모두가 성령의 열매로서 이 시대의 144,000명 또한 예수님의 피로 산 책을 꿀같이 먹으면 이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종말의 파수꾼들은 반드시 마귀의 세력 곧 '고난의 풀무' 속에 던져져 지극히 미약해지므로 소멸되는 듯 보이지만, 예레미야 책이 다시 기록됨과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볼 때 이들도 분명 변화 승천하므로 지극히 큰 군대를 이루어 만왕의 왕 예수와 함께 내려와 666과 더불어 아마겟돈 전쟁을 행하여 이 땅의 악의 세력을 완전 소탕하고 불가불 왕 노릇하게 되는 것이다. 마귀는 언제나 발악하여 진리를 대적하지만, 이는 도리어 그 종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줄 뿐이다.


『 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를 명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


귀신 들린 왕이 예언서를 파괴시키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까지 잡으려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때 등장하신다.


시편 119:126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


참 종은 미약한데, 마귀가 강하게 나오니 하나님이 일어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선지자를 숨겨주셨다. 방백들을 통하여 종을 보호하심은 하나님의 섭리 중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숨기신 자들을 원수들이 어찌 찾아낼 수 있으랴! 이사야 49:1~4절을 보면 말세 종들을 마광한 살같이 만들어서 전통에 감추시고 원수가 유다 땅에 들어올 때까지 숨겨 두시는 모략이 기록되어 있다. 종말에 진실한 촛대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서머나 교회'에도 극도로 강한 훼방과 마귀의 시험이 있을 것이라 하셨는데(계시록 2:9~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하셨다. 예레미야와 바룩같이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면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뜻이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죽도록 충성하는 종에게는 마귀가 주는 고난도 "생명의 면류관"으로 바뀌는 법인데, 죽도록 괴롭힌 마귀 편의 운명은 다음과 같이 되는 법이다.


4. 왕의 운명을 예언함 : 27~32


『 27 왕이 두루마리와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으로 기록한 말씀을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8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 왕 여호야김의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29 또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그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 왕이 정녕히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뇨 하도다 30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그에게 다윗의 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31 또 내가 그와 그 자손과 신하들을 그들의 죄악을 인하여 벌할 것이라 내가 일찍 그들과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에게 선포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한 그 모든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다 하라 』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그의 예언을 다른 두루마리에 다시 기록하라고 하셨다(28절). 여호야김 왕은 바룩이 기록한 예언 문서를 불태웠지만 하나님의 진리가 사람의 훼방으로 인해 폐해질 수 없다. 시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는 분위기로 흐른다 해서 오기로 작정된 심판이 어찌 오지 않을 수 있으랴! 왕은 책을 찢음과 동시에 그 예언의 내용까지 함부로 판단하였으니 이중으로 큰 죄악을 범했다(29~31). 하나님의 귀하신 말씀을 무시하고 배반한 자에게는 더욱 무서운 심판이 임하게 된다.


예루살렘이 첫 번째 멸망한 것은 B.C.606 년인데 여호야김 왕이 왕위에 오른지 4년째 되던 해이다. 신정국가가 되어야 할 유다가 하나님의 진리를 훼방할 때 아무리 시온산 정부라 할지라도 원수 바벨론에게 붙여져 속국이 되며, 이방인들 사이에서 수치를 당하였던 것이다. 침략 당한지 7년 후에 왕은 천하게 죽임을 당했고(30절), 그 아들은 3개월간 왕위에 있다가 북방에 붙잡혀 갔다.


역대하 36:6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치고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라고 하였는데 여기 "바벨론으로 잡아 가고"라는 말의 히브리 원어는 잡아갔다는 뜻이 아니고 "바벨론으로 잡아 가려고"라는 뜻이다.


짓밟혀도 퍼져나가는 주의 말씀!

사람을 통하여 이루신다. 아멘!


『 32 이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취하여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매 그가 유다 왕 여호야김의 불사른 책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같은 말을 많이 더하였더라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권고에 의하여 이제 그의 예언들을 "다른 두루마리"에 다시 기록하게 한다. 이 두 번째 기록에는 첫 번째 것에 없던 예언들도 첨부되어 있다. 하나님 말씀은 핍박을 받을수록 더욱 힘있게 전파되는 법이다.


<성경 기록의 목적>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계시록 11:15) 건설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빠짐없이 기록된 완전영감(完全靈感)의 정확무오(正確無誤)한 여호와의 책이다(이사야 34:16, 9:6~7. 로마서 15:4. 요한복음 5:39~47).


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변하지 않는 영원 보편의 진리를 후세에 전하며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고 보인 귀하고도 귀한 책이 성경이다. 하나님은 이미 만대를 명정하였다 하셨으니(이사야 41:4), 이 명정을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실 리 없다(아모스 3:7. 창세기 18:17). 사람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명정이 바로 예언서이다. 예언성취는 역사적인 사건 안에 나타나기 마련이므로 계시는 초시공적(超時空的)인 헛된 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역사적 시간을 경유(經由)해 가면서 완전구원, 완전안식을 향하여 하나하나 차분히 성취함을 본다. 성경 기록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하였다. 들음은 기록한 것을 읽는 것과는 다르다. 들음은 인격체를 통한 증거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으므로 사람들은 사람의 증거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살아서 움직이는 인격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은 참으로 귀하다. 이제 하나님은 이 증거(대언)의 일을 행할 당신의 마지막 종들을 불가운데 던져(스가랴 13:8~9) 은같이, 금같이 연단하여 계시록 10:7~11절의 명령대로 다시 예언케 하심으로, 계시록 20:4~6절의 성도의 나라를 이루실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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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5장 - 정절과 부정절.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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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경 : 예레미야 35장

제목 : 정절과 부정절


1. 레갑족속들의 자숙자계(自戒) : 1~11


『 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때에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레갑 족속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우라 』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종종 실물 교수의 방법을 사용하신다. 신자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되는 것이니 신자들은 그런 실제 상황들을 보고 영적 교훈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


"레갑족속"은 미디안 족속인데, 모세의 장인 호밥(이드로)이 속하였던 족속이다(민수기 10:29, 출애굽기 3:1). 이 족속의 또 다른 이름은 '겐' 족속이다(사사기 1:16). 이 족속은 이스라엘 족속 중에 섞여 살았다(사사기 4:11,17~, 사무엘상 27:10, 30:29). '겐' 족속은 이스라엘과 잘 사귄 자들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충성되이 섬겼다(사사기 4:11, 17~23, 5:24~31, 열왕기하 10:15~28).


『 3 이에 내가 하바시냐의 손자요 예레미야의 아들인 야아사냐와 그 형제와 그 모든 아들과 레갑 온 족속을 데리고 4 여호와의 집에 이르러 익다랴의 아들 하나님의 사람 하난의 아들들의 방에 들였는데 그 방은 방백들의 방 곁이요 문을 지키는 살룸의 아들 마아세야의 방 위더라 5 내가 레갑 족속 사람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 』


4절 : "하나님의 사람"은 선지자를 의미한다(4절). "방"은 성전의 부속실을 의미하는데 그것들은 사무실, 부속건물, 하인들의 방으로 사용된다(36:10,12,20. 역대상 23:28, 28:12. 역대하 31:11. 에스라 8:28,29. 느헤미야 10:38~40). 그런데 "레갑 온 족속들"이 인도함을 받은 "방"은 성전의 유력한 사람들의 방 가까운 곳이었다.


"포도주를 마시라 권하매" 레갑족속은 선조들의 교훈을 굳게 파수하여 먹지 않았다. 이렇게 이방 사람들도 선조의 교훈을 굳게 파수하거늘, 하물며 선민된 자들로서야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더욱 더 철저히 지켜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 6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7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8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9 거처할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두지 아니하고 10 장막에 거처하여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대로 다 준행하였노라 11 그러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이 땅에 올라왔을 때에 우리가 말하기를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가 두려운즉 예루살렘으로 가자 하고 우리가 예루살렘에 거하였노라 』


예레미야의 권면에 대한 레갑 사람의 대답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그들이 그 선조 요나답의 교훈에 의하여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6~7). 레갑 족속은 위의 다섯 가지를 250년 동안 실행하여 왔다.


① 유목생활만 할 것.

② 집도 짓지 말며 평생 장막에만 거처할 것.

③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

④ 파종을 하지 말 것.

⑤ 포도원도 재배치 말 것.


2. 유다인의 불순종을 책망함 : 12~17


『 12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가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14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부지런히 말하여도 너희는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 15 나도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좇아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거하리라 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나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16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 선조가 그들에게 명한 그 명령을 준행하나 이 백성은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 17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나의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


하나님께서는 레갑 족속의 모범을 가지고 유대인들을 꾸짖으신다.


① 레갑 족속은 선조의 명령이라도 순종하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않음(16절).

② 레갑 족속은 그 선조 요나답 한 사람이 한 번 말한 것을 끝까지 지켜 오는데, 유대인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부지런히 예언해도 순종하지 않음(14~15).

③ 레갑 족속은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것 같은(14절) 육신 생활에 관계된 명령도 귀히 여겨 순종하여 오는데, 유대인은 그보다 중대한 하나님의 귀하신 말씀, 환난을 피하라는 예언서를 순종치 않음을 꾸짖었다(15).


지금의 교회들도 자기들의 교단 법규나 내부적 교리는 지키면서, 인간 종말에 대환난이 북방에서 내려온다는 선지서의 말씀은 듣지도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성전 밖 마당이 잡혀가면(계시록 11:1~3) 그 빈자리에 이방인이 노비로 들어올 것이다(이사야 14:1~2). 누구든지 하나님의 인(印)이 없으면 다 쫓겨날 것이다(계시록 11:1~12).


3. 레갑인의 보상 : 18~19


『 18 예레미야가 레갑 족속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준종하여 그 모든 훈계를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하였도다 19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18~1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레갑 사람들에게 그 후손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이 뜻은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계시록 7:9절 이하를 보면 흰 옷 입은 자들이 큰 환난에서 나옴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약속의 자녀들이 약속을 무시하고 쫓겨나면 그 자리에 많은 이방족이 노비로 채워진다는 것을 뜻한다(누가복음 14: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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