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예레미야 02장 - 배은망덕(背恩忘德)의 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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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 경 : 예레미야 2장

제 목 : 배은망덕(背恩忘德)의 죄


1. 주님의 은혜를 받은 교회 : 1~4


『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이스라엘이 출애굽 당시 여호와를 좇던 행위를 말한다. 영적으로 볼 때 이방인인 우리에게 은혜를 입혀 속죄케 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 받은 교회의 첫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초기의 사랑을 말씀하시며 '결혼 때'를 비유하셨다. 그 때만큼은 교회가 예수님을 사랑하였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결혼 때'와 같은 마음으로 다시 사랑하길 원하는 심정이 "네가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하신 말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구약 출애굽 때의 이스라엘이나 초림 예수를 영접한 기독교는 신혼 때와 같은 사랑으로 예수를 잘 믿고 따라왔으나, 종말이 가까이 오고 악마가 득세케 되니 그만 '첫사랑'의 신앙이 변질되고 말았다. 계시록 2:1~7절에 기록되었듯이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은 예수님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일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맺은 "처음 사랑"을 찾지 아니하면 주 재림 때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현 기독교는 '에베소 교회'가 받은 책망이 자신들과는 무관한 줄로 착각하고 있다. 자신들이 십자가의 '피로 맺은 사랑'의 충실한 증인이며 영원토록 그러할 것이라고 스스로 속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정녕 예수님의 '피에 담긴 사랑'을 깨달았다면 『주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책』을 이토록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5장에 가면 이 말씀이 이 시대의 교회를 두고 하신 말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3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


"처음 열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유월절 피로 출애굽했고, 능력의 지팡이로 홍해를 건넜으며, 또 광야 간조(乾燥)한 땅에서 만나와 반석수를 먹고 마시며 약속의 땅에 들어왔는데, 약 900년의 세월이 지나 예레미야 때에 와 보니 죄악이 관영하여 북방 칼에 잡혀가게 된 것은 모두가 '배은망덕'의 결과였다.


"처음 열매"는 하나님께 바치는 최초의 열매이므로 아무나 마음대로 먹을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출애굽기 23:19. 레위기 23:10, 13. 민수기 18:12). 출애굽 초기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거룩히 바쳐진 바 되었으므로 그 백성을 함부로 삼키는 자(침략자)들은 누구든 벌을 받았다.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을 침해하다가 받은 징계는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출애굽기 17:8~16).


2. 주님의 은혜를 버린 죄 : 5~7


『 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


은혜로 택한 백성이 출애굽한 이후 타락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케 해드린 것에 대해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탄식하고 계신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자신들에 대하여 무슨 "불의"라도 행하신 듯, 그렇게 하나님을 멀리 하였다. 은혜를 저버린 것이다(신명기 32:1~43).


"허탄한 것" 곧 우상을 따라갔으니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도 멀리 떠나간 것이다. '애굽'이라는 저주의 땅에서 종 노릇하며 갇혀 있던 400년간의 고역에서 건져주셨건만, 이 큰 은혜를 망각하고 만 것이다.


이제 우리 시대인 종말을 보자! 예수님께서 귀하신 그 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는데, 21세기의 세계 교회는 북방 짐승의 '거짓 평화'인 미혹의 쑥물에 취해 '허탄한 것'을 따라가고 있으니 구약 택민이 걸어간 죄악 길과 어찌 동일한 행보가 아니라 말할 수 있으랴! 이 깊이 숨겨진 비밀을 성령께서 아니 가르치시면 누가 알 수 있으리요!


하나님께로 지음 받은 하와가 간교한 짐승 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따 먹었던 것처럼, 현재 기독교가 뱀의 후손(창세기 3:15)인 북방 짐승의 무신론 유물사관을 분별 못하고 '꿀 바른 독약'인 거짓 평화공존을 따라가고 있으니 알파의 범죄와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험이 기독교계에 오는 것은 더 좋은 세계를 주시기 전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이니, 말씀을 붙잡고 싸우는 것 외에는 승리할 길이 없다. 모르고 잘못한 종은 매를 적게 맞겠지만(누가복음 12:48), 이제 모든 예언서의 말씀이 햇빛같이 밝아지는 만큼 21C의 기독교회는 예언서의 경고를 좇아 양 떼를 데리고 거기(음녀 바벨)서 나와 따로 있어야만 살 수 있다(고린도후서 6:11-17).


시편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하였고,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였다.


아모스 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였고,


잠언 28:5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하였으며,


예레미야 애가 3:25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하였다.


우리 인생들은 위대하신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에 더욱 그를 기억하고 찾아야 한다. 은혜를 잊었다는 것은 생활의 평안과 복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두려운 줄을 모르는 망령된 상태로 들어간 것을 뜻하는데, 이렇게 된 인간(교회)은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의 싫어하시는 일을 감행하고 마는 우매한 용기를 발하게 된다. 독생자의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이 치장해 주신 보물로 육체의 욕심을 충족시키는 재료를 삼는다는 것은 전적인 패역이자 '배은망덕'이 아닐 수 없다. 에스겔 16장에는 이같이 된 교회의 죄악이 섬세하게 예언돼 있다.


3. 우상 섬김의 죄 : 8~13


『 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9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0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11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


멸망할 이방인들은 거짓된 우상을 믿으면서도 그 우상을 끝까지 섬기는 지조를 보이는데, 이스라엘은 어찌하여 참된 유일신 여호와를 그토록 쉽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깃딤과 게달은 거짓 신을 섬기는 장소이지만 그 거민은 대대로 그 우상을 굳건히 믿으며 미신을 지켜왔다. 그런데 참되신 신께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택하신 백성은 '참 신'을 '거짓 신'과 아주 쉽게 바꾸고 마는 죄악을 범했다(11절). 이 일은 주께서 보실 때 너무나도 기막힌 일이니, 하늘도 놀랄 만한 일이라 한 것이다(12절). 이러한 죄악으로 인하여 이제 하나님은 선지를 통하여 죄짓는 백성과 다투시되 죄악의 길을 걷는 이와 같은 교회와 앞으로 대대로 다투신다 하였다(9절). 그러니 우리는 이 시대에 예레미야서 전하기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 13절의 두 가지 죄악


1)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


①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이스라엘이 먹고 영생하는 '생수'로 제공하셨는데(요 4:14, 6:35, 7:38), 그들 편에서 버렸으니 그것은 사랑을 저버린 죄요


② 하늘마저도 놀랄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어리석음이란 진리를 배반한 죄악이다.


2)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


① 위에 계신 분께 순종치 않고, 땅에서 자기 손으로 지은 숭배의 대상을 섬기려는 것은 교만이며 큰 죄악이다(출애굽기 32:1~6, 20:4~6. 신명기  9:12. 이사야 2:8. 예레미야 2:28).


② 이는 사단의 미혹과 공격에 넘어가 사단(우상) 숭배에 빠진 것을 의미한다.


종말에는 어떤 형상을 지닌 우상보다도 탐심의 우상을 경계해야 한다. 물론 '후 3년 반'에 가면 눈에 보이는 우상(계시록 13:14~15)이 들어서겠지만, 거기는 버림 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니, 우리는 현재 음성적으로 세계를 속이는 '영적 미혹'에 맞서 싸워야 한다. 먼저 '스스로 판 웅덩이' 곧 인본주의로 빚어낸 탐심우상(자본주의 경제권)과 인간의 생각으로 만든 사상적 우상(공동소유, 균등분배, 지상낙원을 꿈꾸는 무신론 사회주의)이 교회와 세계를 잠식해 온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성경대로 이루어진 근 100년간의 세계 역사이다. 검정말도 붉은말도 모두가 우상인데, 60억 인구는 이 강한 두 세력 어딘가에 빌붙어 의지하므로 자국의 안위와 이익을 추구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진정 탄식하시는 내용은 진리(하늘 양식)만을 추구해야 할 포도나무(교회)가 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처럼 북방짐승과 남방짐승을 의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에스겔 17장).


4. 이방세력을 의지함 : 14~30


『 14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


"씨종"이라는 말은 종에게서 난 자손을 의미하는데, 종의 신분이 대물림되는 자유가 없는 자를 뜻한다. 이스라엘은 '종'이 아닌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장차 '자유 없는 포로민' 신세가 된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 15 어린 사자들이 너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날려 네 땅을 황무케 하였으며 네 성읍들은 불타서 거민이 없게 되었으며 16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 』


"어린 사자들"은 북방군대를 비유한 것이다. 예레미야 4:7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이도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것에 대한 예언이다. "놉"은 애굽의 수도요 "다바네스"는 나일강변의 도시이다. 의지하던 애굽마저도 유다를 침략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 17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18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음은 어찜이뇨 』


유다의 우상숭배 죄 때문에 남ㆍ북에서 원수들이 침략한다는 것을 뜻한 예언이다. 18절에 "시홀의 물을 마신다" 함은 애굽을 의지하여 살고자 함을 말하며 "앗수르 길에 있음"은 북방과의 수교를 의미한다. 남방 원조를 기대함과 북방의 무력을 의지해보려는 이 모든 행위는 하나님 앞에 범죄가 되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찜이뇨" 하셨으니 하나님이 심히 노하신 것이다. 구약 유다가 남, 북의 열강 사이에 위치하여 하나님을 의뢰치 않고 강대국의 눈치만 보며 살다가 멸망하였듯이, 오늘날의 한국정치나 교회의 형편도 정확히 이 예언에 걸려들고 말았다.


『 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하나님을 제외한 그밖의 것을 의지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 죄이다(시편 56:5. 골로세서 2:8). 이는 가장 무섭고도 두려운 죄악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말 뿐만 아니라 그 마음과 입과 행위로써 하나님 아닌 피조물을 좇아 섬기는 자가 어떻게 심판을 면할 수 있겠는가!


『 20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 22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 23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너는 발이 빠른 젊은 암약대가 그 길에 어지러이 달림 같았으며 24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가 그 성욕이 동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성욕의 때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자들이 수고치 아니하고 그것의 달에 만나리라 25 내가 또 말하기를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말며 목을 갈하게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가겠노라 하도다 』


• 20~25절에서는 유대민족의 죄악을 말씀하셨는데,


① 그 죄는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과거 역사로부터 깊이 뿌리박혀 내려온 죄라는 것과,


② 이스라엘은 본래 하나님께서 세우신 온전한 백성인데(참 종자), 죄에 물들므로 악한 가지처럼 변질되어 버렸다는 것이며(이사야 5:1~4),


③ 인간은 절대 자기힘으로 그 죄악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사야 57:17).


• 24절 : "암약대나 암나귀가 성욕의 때에 헐떡거림과 같다" 함은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 속의 본능으로부터 일어나는 원죄악의 충동을 제어(절제)할 만한 힘이 없음을 뜻한 비유이다(이 말씀은 종말에 예수님의 피로 거듭난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니 교만치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이 이와 같은 죄악(우상숭배)으로 치우쳐, 하나님의 율법과 예언을 순종치 않으므로 결국 우상의 종, 죄악의 종이 되어 멸망당하리라는 것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대언케 하셨다. 예레미야는 당대 백성에게 외쳤으나, 보존된 예레미야서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은 종말의 사명자들로 하여금 이 예언을 온 세계교회에 다시 예언할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계시록 10:11. 시편 102:18,22. 예레미야 26:5).


『 26 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 이스라엘 집 곧 그 왕들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 27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내게로 향치 아니하다가 환란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28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란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가 다 내게 범과하였느니라 30 내가 너희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 그들도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


• 26~30절 : 유대교회가 우상을 섬긴 것은 부끄러운 일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나무와 돌을 가리켜 '나의 부모라' 함과 마찬가지의 우매요,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응답 받지 못하게 되는 실패의 원인임을 말씀하셨다. 이들이 만든 우상이 자신을 구원치 못할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소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을 이스라엘이 모조리 죽였으니(마태복음 23:37) 이는 하나님께 정면으로 대항한 무서운 죄악이었다.


5. 무고한 피를 흘림 : 31~37


『 31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연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하느냐 32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33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


하나님의 교훈과 징책에 순종치 않은 죄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방 나라의 도움을 얻으려고 더러운 애교를 부린 죄를 말씀하셨다. 세상 처녀는 "패물"을 잊지 아니하고, 세상 신부도 "그 고운 옷"을 잊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이토록 쉽게 잊어 버리는가? 너무도 모순되는 일임을 지적하고 계신다. 이러므로 하나님은 당신 백성을 만물보다 거짓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예레미야 17:9). 유대교회는 하나님을 잊은 채로 장구한 세월을 흘려보냈다(32). 하나님을 버린 채 이방 강대국의 "사랑을 얻으려고" 갖은 수단방법을 동원해 가며 교제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구약 때와 같은 사단 역사로 세계의 기독교협의회(W.C.C.)와 로마가톨릭이 동일한 노선을 걷고 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이뢰자 목사님의 문서 한 편을 소개한다.


(신앙문답) 4. 오늘의 W.C.C. 라는 신앙 노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통합을 원하는 사람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비 성서적인 세력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노선이니 오늘의 W.C.C.의 "통합"이라는 간판만은 찬성하는 바이나 통합의 방법이 사단의 세력을 막는 방법이 아니고, 오히려 활동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공산 진영에 소위 "기독교 공산 연맹"이라 하는 단체의 사람을 회개시키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권리를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독교가 스스로 자기를 망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예를 든다면, 전쟁을 하는 군대가 적군이 자기 진중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터준 것과 같은 망령된 행동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공산당과 조금도 연맹할 수 없다는 진리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공산 기독교 연맹"이라는 자체는 공산당에게 이용을 당하는 단체인데, 그러한 분자들에게 회의석상에서 발언권을 허용하고 결의권을 준다는 것은 쑥물과 단물이 합하는 일이니 이러한 기독교의 행보(사상)는 백전 백패할 수밖에 없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의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진노의 막대기(이사야 10:5)로 드신 것이 '공산당'임을 깨달아야 하고, 막대기를 드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하나님 앞에 하나같이 회개하는 운동과, 성령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것과, 종말의 합당한 진리(영원한 복음)로 기독교를 통합시키는 새로운 역사에 주력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알지 못하는 W.C.C. 운동 같은 것은 기독교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망령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진하고 어리석은 양 떼들은 감언이설에 속지 않아야만 살게 됩니다. W.C.C.의 말을 진리로 믿고 따라간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가련한 양들은 울면서 쫓겨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후 3년 반 대환난).



『 34 또 네 옷단에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음을 인함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로 너를 책망함을 인함이니라 』


죄악을 깨닫도록 책망하여 준 선지자들을 죽인 죄이다. 이런 일은 무죄한 피를 흘린 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거스른 죄에 해당한다. 열왕기하 21:16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유다로 범하게 한 그 죄 외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이사야도 이때에 순교한 듯하다. 선지자들은 남의 집 담을 뚫고 들어가는 도둑 같은 존재가 아니라 오직 높은 성루에 올라 예루살렘의 죄를 올바로 지적해주는 귀한 사명자들인데, 음녀 교회들은 선지자들을 남의 집 담을 뚫고 들어와 도둑질하다 잡힌 자를 대하듯 억울하게 죽여버렸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단 취급을 받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도 이러한 음녀적 교권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이니 우리는 순교자 편에 서서 더욱 담대히 이 진리를 파수해야 한다.


『 35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 함을 인하여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


죄인이면서도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은 '영적 소경들'의 특징이다. 요한복음 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죄 없다 하는 자의 죄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스스로 자신을 속임이요, 둘째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다(요한일서 1:8~10).


『 36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37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라 』


내적으로는 선지자들을 죽이므로 자신의 치마에 피를 묻힌 음녀는, 외적으로 이방 나라를 의지하는 죄까지 더하고 있다. 이러한 내외적인 죄로 인해 종말의 음녀 교회는 필경 수치를 당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하나님을 모를 때 지은 죄에 대하여는 회개하므로 매를 맞지 않거나 맞더라도 덜 맞게 된다. 하지만 크게 은혜 받은 자가 그 마음이 강퍅해져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우상을 받아들인 죄는 죄 중에서도 가장 악질에 속하는 '배은망덕'의 죄라는 것이다. 이 길에 서 있는 교회들이 수없이 많고 더욱 늘어날 것이다. 주 재림 기에 이런 교회는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이다.


모세는 광야 40년간 백성의 패역을 경험한 자로서, 다음과 같은 예언을 받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의 걸으실 길을 먼저 (모형적으로) 걸은 자로서 '큰 선지자'이다(신명기 18:15).


신명기 32: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 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현재 영적 유다 대한민국의 자칭 보수세력과 진보세력들이여!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을 의지하며 그들의 눈치 보기를 어느 때까지 할 것인가? W.C.C.와 로마가톨릭이여! 가증한 에큐메니칼 사업 추진하기를 어느 때까지 행할 것인가? 돌이켜 회개치 아니하면 필경 수치를 당하리로다!


이렇게 배은 망덕해진 교회가 범하게 될 죄들이 3장에서 자세히 드러나 있다. 자신의 패역을 먼저 알고 깨달은 자는 아직 회개치 못한 교회들을 향해 이 말씀을 목숨 바쳐 다시 예언해야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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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01장 - 하나님의 작정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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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 경 : 예레미야 1장

제 목 : 하나님의 작정과 선지자의 권세


예레미야 선지자가 외친 예언의 골자는 유다 나라가 부패(腐敗)하여 끝까지 선지자의 외침을 듣지 않게 되면 북방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70년을 지내고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였다.


계시록 10:7~11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시고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셨으니, 우리는 종말에 살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주 재림 때에 복 있는 자가 될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선민으로 택하신 구약 교회가 당한 비참한 멸망은 당대의 거민에게는 역사이자 현실이었지만, 신약 교회의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예언이 된다. 유다 왕국의 종말은 예수님의 피로 산 교회(사도행전 20:28), 즉 은혜로 다시 택한 교회의 종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그림자)이기 때문이다(히브리서 10:1). 독자들께서는 예레미야 1장부터 52장까지 읽어나가실 때에 "이것이 곧 내가 사는 21세기 기독교의 모습이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올 것이다(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이제 우리가 구약 선지자들의 모든 예언을 이 시대에 가감없이 다시 예언(계시록 10:11)하면 계시록 11:1~12절같이 공중에서 재림의 주님을 만나게 된다.


1.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을 것 : 1~5


『 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3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오 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히니라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


잃어버린 에덴 낙원을 다시 찾아 주시려고 하나님은 만대를 명정하셨고(이사야 41:4), 그 큰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지ㆍ예정 속에서 시대마다 종들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오늘날까지 쉬지 않고 역사하고 계신다(예레미야 23:20, 30:24).


①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요한복음 1:17), 그러나 율법은 택민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었다(갈라디아서 3:24).


②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한복음 1:17) 버림돌 역사로서(마태복음 21:42) 유월절 양의 사명 때문에 혹독한 십자가에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다(이사야 53:5~6). 예수님이 택하신 12사도가 천국복음을 전파하여(마태복음 24:14) 이 복음이 동방 땅 끝까지 이르게 되었다.


③ 이제 동방 땅 끝에서 나가는 '영원한 복음' 곧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세우는 심판의 역사는 스룹바벨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인권(印權)과 머릿돌로 하신다(학개서 2:23. 스가랴 4:7~10).


계시록 7:1~8절은 "구원의 목록" 중 왕권자들에 대해 계시하셨는데, 영적 이스라엘 중 하나님의 인(印) 맞은 자 144,000명을 뽑아내고 그들이 말씀권세로 세계를 휘저어 흰무리를 이끌어 내면 '짐승'이 그들을 미워하여 그들과 싸워 이겨 그들을 죽일 터인데(계시록 11:7 / 3일 반 쓰러짐), 이 때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 올리시려(휴거) 공중에 재림하신다(계시록 11:1~12).


2. 선지자는 심지(心志)가 겸비(謙卑)할 것 : 6


『 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


하나님의 택한 종은 언제나 겸손한 마음 자세로 자신을 낮추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는 법이다.


• 출애굽기 3: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 사사기 6: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 이사야 6:5 "그 때에 내(이사야)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 아모스 7:2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참 종들은 하나같이 자기의 연약성을 깨닫고 겸비했었음을 알 수 있다. 종은 모름지기 주인을 위하여 존재하는 법이니 겸비(謙卑)는 하나님 집의 일을 맡은 종이 지녀야 할 첫째가는 조건이 된다. 하나님의 종은 주인 노릇을 하지 말고 주인의 마음으로 가지고 일해야 한다.


3. 선지자는 담대히 전할 것 : 7~8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데 그 이상의 안전보장(安全保障)이 어디 있겠는가? 선지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만을 위한 종이니 자신의 생각, 자기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실상 무용지물이다. 만일 종이 주인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고 주인의 뜻에 자기의 생각을 섞어서 일한다면 그 종은 주인의 일을 망쳐 버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의 법에 인본주의를 섞어 말씀을 변질시키는 모든 자들은 "거짓 선지자"라 할 수 있다(예레미야 6:13~15, 27:9~10, 15~18).


역사를 볼 때 열방의 선지자는 언제나 한 두 명뿐이고 그 나머지 다수는 항상 거짓 선지자의 편이었다. 우리는 지금 다시 예언하라는 예수님의 명령(계시록 10:10~11)에 절대 순종만 하여 결코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린도전서 4:6. 마태복음 26:24).


4. 선지자는 특권이 있음 : 9~10


『 9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



물이 못 당하고 불이 못 당하였던 하나님의 권세는 종말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 (새일성가 26장 4절)


이사야 43장에서도 말세 종의 특권을 예언하셨다.


① 물과 불이 못 당하는 권세(출애굽기 14장. 다니엘 3장).

② 사람을 지배하는 권세(이사야 43:3~7).

③ 열방 민족을 깨우치는 권세(이사야 43:8~13).

④ 대적을 물리치는 권세(이사야 43:14~18).

⑤ 새 땅을 정복하는 권세(이사야 43:19~21)

⑥ 절대적인 용서를 받게 되는 특권(이사야 43:22~26).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영광을 위하여 만대를 명정하셨으며, 그 명정을 이루시기 위하여 시대 시대마다 들어쓰시는 종들에게는 '특별한 권세'를 맡기신다. 어느 시대의 종이든지 그 종은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요한복음 4:24)의 대행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권세 준 그 종은 그 시대의 기준이 됨과 동시에 그 종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대역죄인이 되어 심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연약한 인간이 마귀와 맞서 그 시대의 기준이 되는 법을 외치려면 위로부터 오는 특권을 받지 않고는 일할 수 없다.



미디안의 패배와 앗수르 군대 185,000명의 하룻밤 멸망(이사야 37:36)은 종말에 태산같은 적기독 세력이 스룹바벨 머릿돌 앞에서 멸망할 것을 앞당겨 보여준 것이다(스가랴 4:7)


새 일은 대적을 물리치는 권세이다! 말세 종들은 일어나라!  권리행사 큼이로다 ! 70장 2절


예레미야는 유다를 중심으로 하여 흩어져 있는 이방 여러 국가들의 멸망까지 예언해야 할 큰 사명자이므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파괴적인 사명자'라고 역설(力說)하셨다. 하나님께서 '열국 심판'을 작정하시고 이 큰 뜻을 예레미야에게 먼저 보이신 것은 예레미야가 자신의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것과 사명자의 특권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말세에 일어날 종들의 특권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다(이사야 55:8). 하나님은 언제나 약한 아이와 같은 자들을 택하시어 강하고 힘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므로(고린도전서 1:19~20. ☞ 마태복음 11:25, 요한복음 7:46, 야고보서 2:5) 부름받은 종은 그 소명의 첫 순간에 하늘의 뜻을 이해하기가 힘든 법이다.


그러므로 종이 절대적으로 명심해야 할 점은 자기의 힘으로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참 종은 하나님의 일을 해나갈 때 첫 마음을 떠올리며 자기에게는 그 일을 감당할 힘이 없음을 생각하고 두려워함이 옳다(6절). 그것이 겸비이다. 종이란 하나님의 일에 순종키 위해 부르심을 입었지, 그 일을 책임지라고 선택된 것은 아니므로 종에게는 '겸손'과 '순종'만이 요구되어지는 덕목의 전부가 된다. 종에게는 아무런 주권이 없음을 망각지 말자.


그러나 옛날부터 지금까지 거짓 종들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며 처신해 왔다. 우리는 오직 주인이 시키는 대로 순종할 따름이다. 참 종이라면 주님이 보내주신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복종케 된다(스가랴 4:6~). 아멘!


5. 살구나무와 북방환난의 이상을 봄 : 11~16


『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


"살구나무"는 '깨어 있다'라는 뜻의 히브리 원어 '솨케드'와 같은 음운을 지닌다. 하나님의 말씀은 깨어 있어서 때가 되면 어김없이 실현되고야 만다. 이는 종말의 심판도 예레미야서대로 어김없이 이루어질 것을 사명자들은 깨달아 알라는 뜻이다. 민수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지팡이 하나씩을 취해 증거궤 앞에 두게 하시며,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라고 말씀하셨다(17:5).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린 것은(8절) 그에게 제사장 사명이 있다는 뜻이요, 이 표징대로 예수님께서 은혜시대의 대제사장으로 오시어 유월절기를 이루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고로 본문의 살구나무는 모든 언약의 말씀을 어김없이 이루시는 예수님이시요, 가지는 그 종 선지자 예레미야를 뜻한다. 종말론적으로 볼 때는 순금등대 촛대역사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출애굽기 25:31~ 정금으로 등대를 만들라 하실 때 살구꽃 형상으로 만들라고 명하셨다. 이는 종말에 흑암을 물리치는 순금등대 촛대역사가 기록된 말씀을 지켜 그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의 신으로 되는 역사"임을 의미한다(스가랴 4:6).


야곱은 양 떼를 물가로 인도하여 살구나무, 버드나무, 신풍나무 그늘을 보게 하여 얼룩무늬 양을 출산케 하였는데(창세기 30:37~), 이로 인해 야곱은 양 떼가 심히 풍부해짐과 동시에 많은 약대, 나귀와 더불어 다수의 노비까지 거느린 부자가 되었다(창세기 30:37~43). 여기서 살구나무는 전술한 바대로 '예수님'을 뜻하며, 버드나무는 '성부'로서 시냇가에 심기워진 생수의 말씀을(시편 1:1~3), 신풍나무(플라타너스)는 껍데기가 벗겨지는 나무이니 우리의 구습(옛사람)을 벗겨주시는 성령을 상징한다(시편 1:1~3).


『 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


"끓는 가마"는 바벨론 북방환난을 비유함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만 내리면 속히 유다를 치러 올 태세를 묵시적 예언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사야 10:5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북방은 우상 숭배하는 선민(교회)을 징치할 몽둥이다(이사야 10:5). 구약의 교회로 대표되는 솔로몬 성전은 70년간 포로살이의 징계를 받아야 했는데(25:11, 29:10), 그 이유는 우상숭배에 있었다. 우상을 통해 들어오는 간교한 사단의 미혹(공격)에 나라 전체가 쓰러진 것이다. 마치 하와가 뱀의 미혹을 받고 넘어져 에덴 전체를 망가뜨렸듯이, 구약 교회도 그렇게 넘어지고 만 것이다. 1천번제를 드렸으며, 겸손한 기도를 올렸던 솔로몬! 그가 지혜를 받아 건축한 솔로몬 성전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넘치도록 충만하였었건만(열왕기상 8:11), 이 성전 안에 우상이 들어서므로 그토록 비참히 훼파될 줄을 그 누가 알았던가! 택함받은 민족사 안에 이렇게 우상숭배로 무너진 화려한 성전이 있었던 것은, 신약 교회의 종말도 그와 같다는 것을 미리 보이신 것이다(히브리서 10:1).


에덴 때 그러했고, 선지시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종말에도 뱀이 들어쓰는 짐승국가인 7째머리(북방 공산권)에서 「평화공존」이라는 궤휼이 나타날 때 이를 분별치 못하고 미혹되어 쓰러진 W.C.C.와 K.N.C.C.라는 개신교 세력은 이방종교에도 진리의 빛이 깃들여 있다고 말하므로(이는 기독교의 유일신론과 요한복음 14:6절의 진리를 허물기 위한 마귀의 물꼬트기 작업이다) 실상 타 종교를 통한 구원을 인정했다. 로마가톨릭 역시 마리아의 위상을 하늘 모후(황후)의 위치까지 격상시켜 놓고, 성체(성찬식)를 미사의 핵심에 위치해 놓으므로 고대의 앗세라(아스다롯) 여신 및 태양신 숭배 사상을 부활시키는데 성공했다. 기독교 안에 이 같은 두 세력이 존재하는 현실은 예수를 믿는 종말의 교회가 그 성전 안에까지 우상(쑥물)을 받아들였음을 입증해 준다(에스겔 8장). 우리는 이 거대한 두 세력이 장차 어떻게 교류하며 어떤 형태로 연합해 갈 것인지에 주목해야 한다(계시록 17:3~6).


이와 같은 현실을 볼 때 솔로몬 성전의 종말이, 어찌 21세기의 기독교 현실의 예표가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 구약은 (무조건) 종말을 미리 보여 준 사건이다(이사야 46:10, 48:3上). 또 전에 기록한 것은 "무엇이든"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하셨으니(로마서 15:4) 예레미야 1장의 북방환난은 우리와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일이다. 고린도전서 10: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영혼구원 때의 우상은 내적인 탐심이지만(골로세서 3:5), 종말 육체구원 때의 (정치적) 우상은 다니엘 2장에 나온 신상의 발가락 부분, 곧 북방 공산주의 정권(소련=철)과 남방 자본주의 정권(미국=진흙)이다. 이 두 세력은 한 밥상에 앉아 거짓말을 하다가(다니엘 11:27) 남방 왕이 찌르면 북방 왕이 많은 병거를 데리고 중동(Middle East)과 동북아(North East)로 내려올 것인데, 결과는 남방 왕의 완패다(에스겔 29:19~20, 30:21~26). 남방 왕은 이 사실도 모른 채 현재 열심히 찌를 채비(差備)를 갖추고 있다. 3차대전은 반드시 '중동'과, '극동'이라 불리우는 동북아의 난제들이 곪아 터지므로 발생한다. 그러나 극동에서 먼저 터진다. 근거는 겔 21:19~32절이다. 희생의 간을 살펴 먼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전멸시키고, 그 다음 성전이 없는 '암몬'을 치라고 예언되어 있다(28~). 이 예언대로 종말에는 '영적 유다'가 존재하는 극동아시아부터 환난이 오고, 연이어 중동으로 번지게 될 것이다. 동북아전쟁은 이사야 7:17~20, 8:5~8, 다니엘 11:44절에 기록되어 있고, 중동 유브라데 전쟁은 계시록 9:13~19, 다니엘 11:40~43절에 기록되어 있다.


한국이 세계적인 '제사장국가', '선지국가'가 되어 144,000명을 움직이는 본부가 되고, 5개월 환난에서 많은 양 떼를 살려낼 수 있게 되는 계기는 바로 이 '동북아전쟁'에서 '시온성회'의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여호와께서 유다 땅에 큰 일을 행하시기 때문이다(요엘 2:20. 이사야 37:36, 8:8). 다니엘 11:44절을 보면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북방 왕'을 번민케 한다고 하였는데, 이 '소문'은 '유다 땅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문이다(이사야 19:17). 소문의 내용은 북편 군대가 전멸하여 '동해'와 '서해' 바다로 수장되는 것! 화가 난 '북방 왕'은 나가서 많은 무리를 도륙, 진멸코자 하는데(다니엘 11:44), 이는 세계적인 전쟁으로 번짐을 의미한다. 초막절기가 있는 7월이 되면 중국과 북한을 앞세우고 한국을 치러 내려온 로스(러시아) 연합군대가 한국 땅에서 하룻밤에 시체가 되어 버린다(예레미야 50:24). 이 엄청난 소문으로 인하여 애굽인(세상사람)들이 놀라 떨고 지렁이 같던 유다는 비로소 일어나 세계로 뻗어 나가며 "영원한 복음"의 빛을 발하게 된다(이사야 60:1~). 이것이 곧 여호와의 '새 일' 역사요, '동방' 역사다. 이 예언대로 이루어지기 위해 현재 극동 아시아에는 엄청난 군비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진리)을 사모해야 할 유다가 강대국의 정치력, 군사력에 의존하는 것은 명백히 '우상숭배'에 속한다. 또한 종교적 쑥물! 곧 비진리를 선포하는 거짓 선지자의 무리와, 가증한 에큐메니칼 운동을 실천하는 거대교권들도 다 우상숭배자의 무리에 속한다. 이들 세력과 그 사상은 우리의 철천지(徹天之) 원수이다. 1958년부터 재앙의 본부 소련에서 외친 '평화공존'의 메시지를 "하나님을 섬긴다" 하는 기독교가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작금(昨今)의 현실(예레미야 6:14, 8:11)은 놀랄 만한 일이다. 전쟁을 위하여 군비는 끝임없이 확장되고 있는 현실에 '평화공존'이 웬 말인가? 우리는 성경 밖의 얘기는 아무리 듣기 좋아도 배격할 줄 알아야 한다(골로세서 2:8). 성경에 반하는 인본주의의 망령된 말을 좇는 행위자의 결말은 멸망과 황폐뿐이다(예레미야 8:15~17. 잠언 14:12).


이사야 9:16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그러므로 우리의 살 길은 우상의 지배권(600=영권, 60=정권, 6=교권)에서 탈피하여 공중에 뜬 돌(머릿돌) 단체가 되는 길이다. 그것만이 천만인이 쓰러지는 환난날에 육체가 임마누엘 나래 밑에서 보호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시편 91:7). 보호받지 못하는 육체는 새 시대를 볼 수 없다. 영혼구원을 얻은 이 시대의 생존성도들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서 6,000년 만에 친히 회복시켜 주시는 에덴동산 땅(계시록 5:10)을 살아서 발로 밟는 것 말고는 없다. 밟되 왕권으로 밟느냐 백성으로 밟느냐를 놓고 충성을 다 할 시기가 '지금'인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육체의 생사여부가 중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 말씀하셨다.


6,000년간 인류를 휘감고 조여온 뱀의 세력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파쇄되면(계시록 19:19~20:3) 우리는 평화로운 임금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며 이 땅에서 1,000년을 살고(지상 천년안식) 그후 백보좌심판을 거쳐 영원한 무궁안식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먼저 정치바벨(짐승)과 종교바벨(거짓선지)이 심판 받는 일이 우리 시대에 있을 것이니, 현재 나의 영적 소속이 '바벨'이냐 '뜬 돌'(시온)이냐 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다니엘 2:34~35). 만일 지금까지 잘 모르고 음녀(창기) 단체에 속해 있었다면, 바로 이 순간 발을 빼고 소속을 분명히 하여 예수님의 명령대로만 정진(正進)해야 할 것이다(고란도전서 6:15~16. 고린도후서 6:17~. 계시록 18:4).



6. 선지자는 준비하고, 예고하고, 주님만 의지할 것 : 17~19


『 17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18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19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허리를 동이고"란 표현은 예언을 선포할 준비태세를 비유한 것이다. 출애굽기 12:11, 열왕기상 18:46, 열왕기하 4:29절을 보면 유대인들은 어떤 일에 착수하기 전, 항상 허리띠를 동여 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복음의 일꾼은 에베소서 6:14절처럼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일해야 한다.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다 고하라 함은 한 마디도 가감치 말고 기록된 예언대로 100% 온전하게 고하라는 뜻이다. 예레미야 26:2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고하되 한 말도 감하지 말라" 하셨고, 계시록 22:18~19절에서도 예수님께서 같은 말씀을 예언하셨다. 이렇게 예언하심은 창세기 3:15절 말씀같이 궤휼자 뱀의 계통에서 말씀을 흐트러뜨리며 최후로 발악하여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악마가 득세할 때에는 '완전무장'하여 주만 의지하지 않고서는 모두가 쓰러지고 마는 법이다. 그러나 기록된 대로 끝까지 순종한 종들은 계시록 11:1~12절 말씀같이 1,260일 다시 예언하고 3일 반 쓰러졌다가(원수들의 조롱을 받다가) 생기를 받아 승천하게 된다.


선지자는 아무런 걱정도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심으로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 같은 권세의 종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사야 43:13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폐할 수 없는 특권이다. 이사야 45: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아멘.


종말의 사명자들이여! 우리는 우상이나 협상을 배격하고 하나님께만 절대 복종하자! 종들에겐 절대 월권(越權)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예수님께서 시편 40:7절대로 오시어 마태복음 26:24절대로 걸어가셨으니, 우리는 이 모습을 본받아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에만 충성하자. 그리하면 주 안에서 안전한 보호를 받으며 수고하다 마침내는 완전한 승리를 하게 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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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00장 - 서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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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예레미야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 또는 '여호와께서 던지신다'라는 뜻이다.


B.C.750여년경 이사야 선지자에게 묵시가 내렸는데, 내용은 유다의 부패(腐敗)로 인해 북방 바벨론의 침략이 있을 것이며, 바벨론은 그 후 70년 만에 메데-바사에게 멸망하리라는 예언이었다(이사야 13∼14장, 44:16~28, 45:1~7, 46~47장).


이사야 선지자가 이런 예언을 한 지 120년 정도가 지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도 '임박한 북방환난'을 묵시로 보여주셨는데, 바로 "끓는 가마"가 북방에서부터 기울어져 있는 광경이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선지자로 택하여 세웠으니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겠다"고 하시면서 유다 나라가 바벨론에 잡혀가 70년간 종살이하게 될 것을 베띠가 썩는 묵시로 보여주셨다(13장). 예언을 듣지 않는 교만한 백성은 이처럼 심판받겠지만, 작정된 기한(70년)이 차면 스룹바벨 순의 단체가 고국(본토)으로 돌아와서 시온산에 성전을 건축하리라는 것이다. 교만자는 제하고 새로운 '순'으로 성전을 재건케 한다는 것이 이사야로부터 시작하여 말라기 이전의 학개, 스가랴까지의 모든 선지자들이 고한 예언의 핵심이 된다(참고. 에스겔 40~47장).


그러므로 본서(本書)는 에스겔서와 더불어 이사야서의 참고서 역할을 한다. 즉 이사야가 대표적으로 묵시 받은 것이, 예레미야와 에스겔 당시에 좀 더 임박한 현실로 다가와 이 두 선지(예레미야, 에스겔)에 의해 재차 예언되었거나, 선지자의 생전에 그대로 성취되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차원 더 나아가 이 일을 다시 예언하기 위해 태어난 사명자들이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가 받은 묵시들과 그 묵시가 구약 이스라엘에게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을 2004년을 살고 있는 우리 시대(정계, 교계)로 끌어다 볼 때, 유다의 모든 역사가 우리에게 하나의 거대한 예언 역할을 해준다는 점이다. 이것을 실천적 예언이라 한다(이사야 46:10).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 영적 유다의 사명을 가진 한국에서도 영적 진리회복을 위한 70년간의 고통(스가랴 1:12~16)이 1905년부터 시작되었고, 이 70년이라는 중요한 회복의 연대는 학개, 스가랴서의 예언성취로 이루어졌다. 1905년 11월에 한-일 양국간에 체결된 을사보호조약으로부터 70년 째인 1975년에 한국은 성경의 진리(학개서 2:10~23)로 해방을 받았던 것이다.


제자들이 승천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육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물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도행전 1:7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다. 이 말씀대로 셈의 장막 동방 땅 끝인 대한민국에 천국복음이 들어온 지도 벌써 120년이 되었다. 제자들은 육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물었으나 예수님은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염두에 두신 것이므로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스가랴 1장의 예언이 성취될 때가 오자 하나님의 예정하에 일본이 악의 용역국가로 등장하여 한국을 괴롭히기 시작했고(을사보호조약), 70년이 되는 해에 학개, 스가랴서의 예언대로 성전 건축이 시행되었다. 이 성전 건축으로부터 시작하여 1,260일간의 다시 예언(계시록 11:3)을 마감하면 기독교 종말의 영ㆍ육의 완전구원을 이루는 초막절기 새 일의 역사가 완성된다.


새 언약은 말라기 1:10~ 성전의 문을 닫은 지 430년 만에 예수님이 양의 문(요한복음 10:7)으로 오시어 닫혔던 문을 여시고 양 떼를 구원하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성경을 손에 들고 외운다던 유대교회는 오히려 이를 깨닫지 못하였다(사도행전 13:27~). 하나님은 이미 모세의 율법책에서부터 새 언약의 역사를 거울로 보여주셨는데도(출애굽기 12:40) 소경된 종들은 깨달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마태복음 15:14).


이처럼 종말에도 영적으로 깊은 밤중과 같은 시대가 펼쳐지니(마태복음 25:1~15) 영적 유다의 70년 회복인 '새 일'에 대하여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밤중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새 일은 하나님의 책에 5회나 기록된 명백한 진리인데도 말이다! (민수기 16:30. 이사야 42:9~, 43:19~, 48:6~. 예레미야 31:22).


예레미야 31: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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