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 소개하는 엘리야 (말라기 4:5)

예레미야 15장 - 면할 수 없는 재앙과 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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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 〈북방환난과 새 시대 회복〉

예언연대 : B.C. 628년∼588년경


성경 : 예레미야 15장

제목 : 면할 수 없는 재앙과 벌


1. 재화(災禍)는 기정 방침 : 1~9


『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치라 』


"내 앞에서 쫓아 내치라" 하나님은 강하게 진노하셨다. 재림 예수님이 이와 같은 상태로 오신다는 것을 교회는 알까?

"모세와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중보기도한 가장 대표적인 선지자들이었다(이시야 99:6).


◈ 모세 :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해주시기를 간구했던 모세의 기도를 보자! 출애굽기 32:32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모세는 자기 민족을 위하여 대신 죽겠다는 희생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출애굽기 17:11절에도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긴 사실이 기록되었다. 또한 모세는 40일 금식을 두 번씩이나 하고 율법과 십계명을 받았다(신명기 9:9,18). 모세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주 앞에 "엎드렸음"이 민수기에서만도 다섯 번 기록되었다. 이는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린 지도자였음을 뜻한다. 신명기 34: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이처럼 위대한 모세가 기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다"는 선언이시다. 도대체 교회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범죄 때문이다. 회개치 않는 강퍅함 때문이다. 범죄하고도 회개치 않는 자는 하나님 앞에 "쫓겨남"을 당해 망한다는 교훈이다.


◈ 사무엘 : 사무엘 선지자도 민족을 위하여 기도함에 최선의 열심을 내었던 참 종이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하였다(사무엘상 12:23).


하나님께서 이런 위대한 지도자들이 주 앞에 서서 예레미야 당시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한다 할지라도 들어주시지 않겠다 하시는 이유는 예레미야 당시의 유대 민족이 모세나 사무엘 당시의 열조(烈祖)보다도 더욱 악하였기 때문이다(예레미야 16:12). 예레미야 때의 백성들은 원죄의 악이 극도로 발동하여 강퍅해진 상태이므로 회개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3대 화를 앞에 놓은 종말의 기독교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100% 버림을 당하게 된다는 교훈이다.


주님의 강한 진노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①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예레미야 7:16). ②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곤액을 인하여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을 듣지 아니하리라"(예레미야 11:14). ③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예레미야 14:11).


구약 시대의 모든 예언은 종말의 참형상을 위한 그림자이다(로마서 15:4, 히브리서 10:1, 이사야 46:10). 따라서 본 예레미야 15장의 말씀도 주 재림 때에 될 일들이 분명하다. 계시록 6:12~17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 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사마리아가 3차에 걸쳐서 앗수르에게 잡혀갔듯이, 주님의 심판선고를 받은 유다도 영락없이 3차례나 바벨론에 잡혀가게 되었다(예레미야 7:15, 23:39~, 52:3). 1차는 BC 606년 여호야김 4년(역대하 36:6~. 예레미야 22:18), 2차는 BC 598년 여호야긴 석 달째(열왕기하 24:8. 역대하 36:8~), 3차는  BC 587~ 시드기야 11년 째이다(열왕기하 25:1. 역대하 36:15).


『 2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될 자는 포로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환난을 당하여 불평하는 유대인들의 원성이다. 이처럼 평소의 신앙생활이 외식적이던 자들은 환난 때를 당하여서는 필경 원망과 불평의 소리를 내게 된다. 원망 섞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그들이 원치 않는 모든 재앙 가운데로 떨어지리라 하심이다. 망할 자는 가룟 유다와 같이 어두움으로 나아간다(요한복음 13:30~). 아노스 5:18~20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


『 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


심판의 방법들이 나왔다. 이에 대해 구약을 상고해 보면 ① 이스라엘이 불순종할 때 들짐승을 보내신다 하셨고(레위기 26:22). ② 그 시체를 짐승들의 밥으로 준다 하셨으며(신명기 28:26). ③ 또 들과 삼림 중의 짐승들의 삼킴에 내어준다 하셨고(이사야 56:9). ④ 네 가지 중벌(칼,기근,짐승,온역)을 내리신다 하신 말씀들이 있다(에스겔 14:21).


유대인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여, 회개도 할 수조차 없는 '짐승'이 되고 말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이 백성을 '짐승'에게 붙여 버리신다는 것이다. 네 가지 재앙 "죽이는 칼""찢는 개""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땅의 짐승"의 역할은 시대마다 7머리 짐승이 담당해 왔고, 오늘날에는 북방 러시아와 그 연합군이 담당할 것이다.


네 가지 재앙의 의미는 이렇다. 유다(교회)가 하나님이 원치 않는 우상숭배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주시는 많은 기회를 버리며 끝까지 회개치 않았으니, 이제 그들도 그들이 원치 않는 들짐승의 세력에게 원치 않는 통치를 당해보라는 것이다. 재앙을 '네 가지'로 말씀하심은 유다가 완전히 소멸되기까지 주어질 재앙이라는 뜻이다. 또한 모든 피조물을 다 동원해서 내리시는 재앙이므로 유다에게는 '피난처'가 없게 되리라는 뜻도 포함한다. '후 3년 반'에 떨어진 기독교 성도들에게는 피난처가 없다. 피난처의 문이 마지막 회개시기인 '5개월 환난' 끝에 닫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재앙은 이처럼 무자비하고 무서운 것이다. 회개할 많은 기회를 주면서 기다리시셨던 만큼 그가 재앙을 내리기로 작정하셨을 때는 누구도 피난처를 찾을 수 없다. 앞으로 전 세계에 계시록 13장 같은 대 환난이 온다. 그 세계가 바로 예레미야 15장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세계이다. 짐승 손에 넘겨진 자들에게는 '피난처'가 없다. 반면에 '거짓평화'와 '에큐메니칼' 거짓 연합운동을 반대한 자들은 새 시대를 차지할 '남은 자'로 인정받아 예비처 안에서 '3년 반' 동안 보호받게 된다(계시록 12:6).


『 4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바를 인하여 내가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으리라 』


히스기야 왕은 유대의 부패한 종교를 개혁했으나, 그의 아들 므낫세는 그 부친의 선한 개혁을 뒤집어 엎었다. 이와 같은 행위는 말할 수 없이 큰 죄이다. 이는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반역한 죄일 뿐만 아니라, 인륜적(人倫的)으로도 부친을 반역한 죄이기 때문이다. 므낫세 왕의 반역적 정치를 따라간 모든 백성을 "세계 각국에 흩으리라"고 하신다. 자, 영적 유다인 우리 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사야 8:4~8절을 읽고 상고하면 깨닫게 되리라! (☞ 관련자료). 진리를 거스르는 정권을 열방 중에 흩어버리리라 하심은 예레미야 9:16~, 29:18, 34:17절에서도 증거되었다.. 므낫세의 죄악은 열왕기하 21:11, :13~, 23:26절을 참조하라. 그러나 그는 바벨론 환난을 경험한 후 크게 회개하여 그제야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 깨닫고 주 앞에 겸비하여 우상들을 철폐했음이 성경에 기록돼 있다(역대하 33:12~19).


『 5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곡할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뇨 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염증이 났음이로다 7 내가 그들을 그 땅의 여러 성문에서 키로 까불러 그 자식을 끊어서 내 백성을 멸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그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8 그들의 과부가 내 앞에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졌느니라 내가 대낮에 훼멸할 자를 그들에게로 데려다가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놀람과 두려움을 그들에게 졸지에 임하게 하였으며 9 일곱 자식을 생산한 여인으로는 쇠약하여 기절하게 하며 오히려 백주에 그의 해로 떨어져서 그로 수치와 근심을 당케 하였느니라 그 남은 자는 그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유다가 받을 벌의 내용들이다. ① 불쌍히 여길 자가 없고(15절), ②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가고도 하나님이 부르실 때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으므로 하나님도 심판작정을 "돌이키지 않겠다" 하셨고(6~7절), ③ 전쟁으로 인한 남자들의 사망으로 과부가 많아질 것과 전쟁의 공포로 두려워하는 모습, 기절하는 모습들이 예언되어 있다(8~9절).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남편이 희생된 과부들과 아들을 잃은 모친들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상처를 입게 되리라는 뜻이다(이사야 3:25~26). "일곱 자식"은 많은 자식을 의미한다. 전쟁으로 인해 아들을 잃은 모친들의 절망이 묘사되었다. "수치"는 멸망(滅亡)을 의미한다(이사야 13:12). 이와 같은 전화(戰禍)는 과부가 바다 모래보다 많아진다는 표현을 보아 인정 사정이 없으며, 엎친 데 덮친 듯이 임하는 강도높은 재앙이다(이사야 24:6~, 47:9~. 예레미야애가 1:1). "내가 대낮에 훼멸할 자를 데려다가"란 북방환난이 비밀스럽게 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보내시는 몽둥이인 만큼 자신 있고 당돌하게 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태해지고 강퍅해진 백성에게는 "졸지에" 갑작스럽게 닥쳐온 환난이라는 것이다. "백주에... 해가 떨어짐"은 심각한 절망상태를 뜻한다(아모스 8:9~10. 미가서 3:6). 환난과 관련한 이 모든 표현들은 유대 민족의 죄악이 그처럼 당돌하고, 무섭고, 하나님의 마음을 절망케 하는 죄악들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예레미야는 예언을 통해 백성이 자신들의 과거 죄를 회상(回想)하여 회개토록 유도하고 있다.


이 예언대로 구약 교회에 바벨론 재화가 임했다면, 다시 예언함에 의해(계시록 10:7~11) 21세기 종말에도 기독교가 북방 재앙을 당케 될 것이다. 이미 세계 땅 1/3의 교회는 파괴되었고, 이제는 세계적인 멸망을 앞두고 있다.  양의 피(구약)로 세워진 유대 민족이 범죄할 때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셨으나(예레미야 25:3~4) 백성은 듣지 않았고(마태복음 21:34~44) 그 결과 북방 칼이 임하였다. 하지만 약속한 70년이 찰 때(예레미야 25:11, 29:10) 스룹바벨 총독을 앞세워 고토로의 회복을 허락하셨다. 인간 종말에 예수 피(신약)로 세워진 기독교회가 범죄할 때 다시 예언하는 제단이 나타나 신랑이 온다고 외치므로(마태복음 25:5~6. 이사야 40:9~11. 계시록 1:7. 이사야 19:1~) 택한 종들이 일어나 예언의 등불을 밝히게 되나(144,000) 미련한 처녀들은 '무익하고 악한 종'의 행실을 하면서 기름 준비가 없었으므로 뒤늦게 깨닫긴 해도 혼인예식(1차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 데(후 3년 반)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다가 죽게 된다(마태복음 25:30. 새일성가 23장3절).


사명 국가 유다(한국)가 일제시대 신사 참배의 우상숭배를 회개치 못할 때, 6.25 공산당 몽둥이를 얻어맞는 것이며, 그러고도 회개치 않을 때 이 죄악이 쌓여 붉은 짐승을 탄 음녀(W.C.C. / K.N.C.C.)의 악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계시록 17:3~5). 이와 같이 회개치 않으면 북방 7째 머리 러시아를 들어서 심판하신다는 것이 예언서 전체의 뜻이다.


에스겔 38:1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옛적에 내 종 이스라엘 선지자들을 빙자하여 말한 사람이 네가 아니냐 그들이 그때에 여러 해  동안 예언하기를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그들을 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이 한 번 정하신 일이므로(예레미야 44:27~, 42:16, 에스겔 5:12) 우상숭배(협상죄)한 자들은 재앙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한반도의 쭉정이가 심판받으면, 내려왔던 북방군대는 '동해', '서해'로 수장되고(요엘 2:20), 대한민국은 제사장국가(출애굽기 19:5~6)가 되어 스룹바벨의 '머릿돌'과 '하나님의 인'과 '다림줄'의 권세를 자랑하게 된다. 이 때 세계의 알곡들이 '은총, 은총'을 외치며 모여들 게 되 며(스가랴 4:7~10. 학개서 2:21~23), 전 세계적인 추수가 강권으로 시행되어 1,260일 순금등대 촛대역사가 마무리된다. 우리가 다시 예언하는 이 내용으로 인해 우리는 한국 교회에서 판찍은 이단이 되었고, 저주와 조롱거리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2. 선지자의 탄식과 하나님의 응답 : 10~14


『 10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모친이여 모친이 나를 온 세계에게 다툼과 침을 당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뀌어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뀌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


선지자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아무런 연고 없이 자기와 다투며 핍박하는 것에 대하여 원통히 여기고 있다. 선지자는 그들과 금전 관계로 피차간 틀어진 일도 없었다. "뀌어주지도" "뀌이지도" 아니하였다. 준 것이 있다면 다만 그들이 구원받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뿐이다. 그런데도 백성과 지도자들이 하나되어 예레미야를 저주하는 배은망덕을 보이는 것은 유대인들이 사단의 지배아래 끌려들어갔기 때문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단은 선민 속으로 들어와 진리를 거역케 한다. 기독교는 현재의 종교이다. 기독교에만 유일한 생명이 있고, 생명은 현재이기 때문이다. 사단은 역사적, 교리적 연구의 대상이 아니다. 바로 지금 내가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 투쟁의 대상이다(히브리서 12:4. 야고보서 4:7).


"내게 재앙이로다" 다툼과 침(때림)을 당했기 때문이다(예레미야 1:19). 사람마다 종일토록 예레미야를 조롱한 사실(예레미야 20:7)은 인간(人間)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예레미야 20:7). 그러나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렸다(시편 126:5~6). 땅의 사람은 예레미야를 조롱하고 저주했지만 주님께서는 주의 종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시편 109:28). 그들이 예레미야와 다투며 그를 때려도 주의 종인 예레미야를 이길 수 없고, 까닭도 없이 내뱉은 그 저주는 결코 예레미야에게 임할 수 없는 것이다.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잠언 26:2). 잘못 배달된 짜장면은 중국집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 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로 복을 얻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대적으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로 복을 얻게 할 것이며"

① 하나님은 주의 남은 백성의 모든 일이 결국 잘 되게 하실 것이다(이사야 30:18~).

② 고난이 유익이 되도록 말이다(이시야 119:67~72, 이사야 48:10, 이사야 29:1~4).

③ 선지자가 복을 받게 되는 이유는 전심으로 하나님만 찾았기 때문이다(예레미야 29:13).

④ 북방 바벨론이 예레미야를 선대하고 해하지 아니한 것은(예레미야 39:11~12, 40:4) 선지자가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한 결과이다(계시록 2:10).


◈ 그러나 선지자의 생애에는 고독이 많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비와 긍휼 베풀어주실 것을 호소하였으나(예레미야 14:19~22) 이 중보기도에 대한 응답은 보다 더 확실히 이스라엘을 심판하리라는 내용으로 임했다(예레미야 15:1~9). 예레미야는 진실히 살려보려는 기도를 하였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지자를 조롱하고 미워하였다. 요한일서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조롱과 핍박중에 예레미야는 좌절에 빠져 욥이 그러했던 것처럼(욥기 3:1)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기까지 하였다(예레미야 20:14~18). 예레미야는 모든 대상으로부터 고립되었음을 느끼고 극심한 고독감에 시달렸다. 동족과 교회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것은 심히 괴로운 일이다. 가는 곳마다 비방거리, 저주거리가 되는 것이 얼마나 감내하기 힘든 일일까? 게다가 하나님이 시켜서 그렇게 한 것뿐인데, 전하면 전할 수록 생명의 위협만 가중될 때 인간으로서는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보며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고 했으니, 이러한 극심한 상황들이 결국 예레미야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게까지 만들었던 것이다(예레미야 15:10).


때때로 하나님의 종들은 "내가 버림받았구나" 하는 느낌에 떨어질 때가 있다(이사야 49:1~5). 이때가 바로 영적으로 심히 고독한 시련기이다. 이 기간이 바로 계시록 9:1~12절의 때인데, 왕권받을 종들에게만 임하는 특별한 시련기간이다. 계시록 9장의 제목은 "악마득세"요, 다섯째 나팔의 제목은 "시련기"인데 이로 인해 참 종들에게는 혀가 마를 딱한 사정이 오고(이사야 41:17) 아무리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하박국 1:1~8). 이 과정을 겪어야만 원수를 이길 수 있는 최고 영계까지 자라나게 된다.


『 12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13 그러나 네 모든 죄로 인하여 네 사경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 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14 너로 네 대적과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니라 』


"철과 놋"은 북방 바벨론을 비유한다. 다니엘 2:41~ 발가락이 철과 진흙인데 철은 공산주의 국가요 진흙은 자본주의 국가이다. 철과 진흙이 서로 섞여 있지만, 철은 단단하여 물렁물렁한 진흙을 부서뜨리게 된다. 그러나 공중에 뜬 돌(머릿돌 말씀 심판)이 우상의 발을 쳐서 없이 하고, 우상을 친 돌이 온 세계에 가득하여 새 시대를 이룬다고 약속하셨다(다니엘 2:34~35, 44~45). 하나님은 구약 유대민족을 통해 지금의 기독교회가 회개치 않으면 북방 바벨론 세력으로 어떤 모양으로 파멸당 할 것 인지를 미리 보여 주신 것이다. 2,600년 후에 나타날 우리들을 위해서 말이다.


① "재산과 보물로... 탈취를 당케 하며 ② "알지 못하는 땅으로 끌려가게 하리니" -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좇아왔는데(창세기 12:4) 후손들은 선지자가 대언하는 축복의 말씀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결국 아브라함이 건너왔던 유브라데강을 다시 건너가서 첫 아담과 같이 육체가 썩어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종말에도 세계교회가 계시록과 모든 선지서의 말씀을 무시하면 계시록 9:14~ 유브라데 강가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 20억이 죽고, 곧이어 계시록 13장같이 '후 3년 반' 대 환난으로 들어가 짐승통치 밑에서 창세이래로 없던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많은 수가 죽고, 표 받은 자들은 예수님의 지상강림 때 계시록 16:12~19:21절까지의 아마겟돈 전쟁으로 전멸당하게 된다.


심판사건의 주 무대는 알파 때나 오메가 때나 매일반 유브라데 강이다(강 길이=2,700Km). 이와 같은 비극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교회의 죄악과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 인류사나 교회사에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이사야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태초부터 종말까지의 모든 사건을 명정하셨다. 인류역사는 그분이 정하신 대로 행해질 뿐이(이사야 43:13).


미리 깨달으면 유익될 일들은 다음과 같다.


① 욕심으로 쌓아 놓았던 자신의 재산이 북방환난 때 다 탈취당할 것을 미리 내다 보아야 한다. 그것이 보인다면 재산에 대한 욕심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범죄치 않게 될 것이다(13절).


② 죽음보다 못한 포로 생활(예레미야 22:10)이 자신들이 받을 분깃임을 내다 보아야 한다. 그러면 생명에 대한 애착 때문에라도 범죄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들려줘도 이 문제를 해결치 못하는 것은 원죄의 패역(이사야 57:18)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패역을 없애는 제단으로 이사야 19:19~ 애굽땅 중앙제단을 세우셨다(5대강국 때 등장). 이는 학개서 2:10~23 예언대로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에 지대놓은 스룹바벨 머릿돌 제단, 순금등대 제단이다. 하나님은 이 제단을 통하여 새겨야 할 말씀을 다 새겨서 하루에 죄악을 제하시고 사망을 영원히 멸하신다 예언하셨다(스가랴 3:8~10, 이사야 25:6~8). 사망이 멸함받은 '새 천년 안식세계'는 이 제단의 '인(印)의 권세'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인쳐서 택한 144,000명과 그에 딸려 나오는 흰 무리를 제외하면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소멸하게 된다.


"진노의 맹렬한 불" 맹렬한 불은 인정사정을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일단 무엇엔가 붙으면 다 소각하기 전까지는 꺼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진노 역시 이같이 두려운 것이다. 사단은 실재로 존재하는 '불심판'을 비유로 왜곡함으로써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불탈 세상에서 소망을 끊지 못하도록 유도한다. 참고하라.


◈ "불"에 대하여


① 불로 비유된 말씀.

• 예레미야 5:14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 계시록 11: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 신명기 33:2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 심판하실 말씀을 강한 불로 비유하신 예언들이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불에 관련된 단어 전체가 '말씀의 불'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② 실제 불 - 소돔성은 유황불로 심판받았는데, 다음 예언들은 바로 이 같은 태워버리는 불을 가리킨다.

• 이사야 33:11~12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며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 민족들은 불에 굽는 횟돌 같겠고 베어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

• 이사야 24:6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거하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거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으며..." 이 불은 심판 때 계시록 16:12~19장 내용같이 임할 아마겟돈의 심판의 불이다.

• 누가복음 17:28~30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에스겔 38:22~ , 말라기 4:1~ 의 유황불이나 풀무불은 핵전쟁의 불을 예언함이다. 사단은 언제나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인간 생각으로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는데, 이는 옛 뱀이 선악과를 먹으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하며 하와를 꾀었던 것과 같은 모양이다. 지금도 많은 이단들이 성경을 왜곡시키고 있다. 그들은 핵무기 심판의 불에 관한 말씀이 성경에 분명하게 존재함에도 이것이 비유라 하고, 성경에 나오는 '불'은 전부가 '말씀의 불'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유대인이나 현 교회가 하나님의 맹렬한 말씀의 불을 외면한다면 3차 전쟁(계시록 9:14~21)과 아마겟돈(계시록 16:12~21) 전쟁에서 횃돌같이 불에 탐으로 한줌의 재가 될 것이다. 이렇게 피조세계가 주님의 진노가 담긴 맹렬한 불에 살라짐은 백성의 행악을 인한 주님의 분노 때문이다(예레미야 4:4). 온 땅이 불에 타서 다시는 심지도 못하는 소돔, 고모라 땅과 같이 되는 것은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까닭이라고 3,500년 전에 미리 알려주셨다(신명기 29:23~26). 시편 21:9) "네(예수)가 노할 때에 저희로 풀무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로 저희를 삼키시리니 불이 저희를 소멸하리로다"


『 15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컨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권고하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을 인하여 나로 멸망치 말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치욕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


선지자가 개인 감정으로써 사적인 원수를 심판해 달라고 기도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는 대언자인 자신을 죽이려 하는 하나님의 원수들로부터 치욕당하는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붉은 용(600)의 감화를 받은 정치-종교세력 66을 한없이 오래 참아 살려두시면, 예레미야는 사명을 다하기 전에 일찍 죽어 하나님의 일을 완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시편 26:9, 시편 3:1~ ). 선지자의 이러한 간청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당신의 공의을 이루어 달라는 기도일 뿐, 사감(私感)은 아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구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이 처한 상황을 종보다도 더 잘 아심은... ① 주님은 언제나 당신을 향한 종의 마음을 감찰하고 계시며(예레미야 12:3), ② 종의 입술에서 나온 모든 것이 주 앞에 기억돼 있기 때문이다(예레미야 17:16).


예레미야에게 이러한 환경을 주시는 것은 종의 마음을 살피시고 시험하사 그 종을 연단하시기 위함이다(시편 17:3, 26:2).


『 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 거짓 종들이 득실거리는 가운데 자신의 직위(職位)가 주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을 상기하며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라 말한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① "얻어먹었다"고 한 것은 그가 계획한 바도 없고 구한 바도 없이 뜻밖에 선지자의 사명과 그 전할 말씀을 받게 되었다는 고백이다(예레미야 1:5~10).

② "내게 기쁨, 내 마음의 즐거움" 달고도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을 체험하였다는 것이다. "얻어 먹는다"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말씀의 떡을 맛있게 받아 먹었다는 어린아이와 같은 표현이다.

③ 죄인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다는 것은 그의 속에 신령한 말씀이 깊이 새겨지므로 그것을 전할 때마다 옛 사람 예레미야는 없어지고 그 말씀에 화합한 하늘 사람이 진실히, 힘껏 전하게 됨을 의미한다. 욥기 23:12, 시편 19:10, 시편 119:72, :97~ 의 내용들도 예레미야와 같이 말씀의 꿀을 체험한 자들의 고백이다.   


『 17 내가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을 인하여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


"내가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기뻐하는 자의 회(會)라는 뜻은 '진리를 조롱하는 자들의 화합'이란 뜻이다. W.C.C.나 K.N.C.C. 단체는 예언서의 반대편에 서서 인위적인 평화를 소망하며 따라가는 음녀적 노선의 단체들이다. 가증한 모든 종교단체들은 앞으로 '음녀'로 대통합될 것이며, 이 일이 성취되기 위하여 마귀는 지금 '에큐메니칼 운동' 곧 '종교통합운동'을 조종하는 것이다. 앞으로 '개신교연합단체'와 '로마가톨릭'의 융합이 어떠한 모양으로 진행될지 그 귀추(歸趨)가 주목된다. 성경의 종말은 오직 큰 전쟁으로써 '짐승'을 이기는 것뿐인데, 신랑 예수님을 대적하는 짐승 사상을 따라가며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음녀적 사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사상을 가진 교회들을 분노로 치시는 것은 "공의의 심판"일뿐, 무자비가 아니다.


"주의 손을 인하여"란 말은 "주의 손 때문에"란 뜻이다. 이것은 주님의 능력의 손이 선지자를 붙들어 영적 감동 속에 이끌어 가심을 가리킨다(예레미야 20:7~, 이사야 8:11~, 에스겔 1:3~ ). 이 영감(靈感)은 회개치 않는 백성을 치겠다는 주의 진노적인 영감이니(17절) 이 영감을 받은 선지자는 악도들과 타협할 수 없고, 접촉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홀로 앉았다고 한다(이사야 49:21). 이는 염세주의(厭世主義) 생활이 아니다. 혼탁하고 바벨화된 세상에서 진리 사상을 목숨 바쳐 지켜내려 하는 자가 처하게 되는 생활이다. <고독한 순종의 길> 예레미야와 같이 이 길을 가지 않겠는가?


『 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


선지자는 계속적으로 백성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계속해서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뜻인즉 이렇다. 흐르는 시내인 줄 알고 찾아와 보았더니 메말라 있어 물을 얻기는 커녕 절망감만 안고 돌아가는 자의 심정처럼 예레미야 마음이 하나님 앞에 그렇다는 것이다(욥기 6:15~20). 선지자는 하나님을 구원자로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늘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도록 방치하시기만 하는가 말이다! 나는 약한 종인데 하늘의 위로가 조금은 있어야 될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일찌감치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예레미야 1:10) 말씀하시고는 어째서 속이는 이처럼 나를 이 모양 이 꼴로 방치해 두시는가 말이다!


이 불평 담긴 말은 원죄(패역) 때문에 나오게 된 좋지 못한 말이다. 요나가 했던 항변과 비슷한 종류이다(요나 4:1~9). 이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회개를 독촉하신다.


『 19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


예레미야가 회개하면(돌아오면) 그를 계속해서 선지자로 쓰시겠다고 하신다.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예레미야가 예언사역(豫言使役)을 하는 중에 사람들에게 아첨하지 말고, 선악간 취사선택(取捨選擇)을 잘하며, 강직(剛直)하게 외치면... 즉 강퍅한 자들에게 맞서 아낌없이 곧은 말로 경고할 것이며, 아무리 입장이 곤란하여도 가치 있는 일을 변호하며 의(義)로운 자들을 변호해 준다면...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라" 버리지 않고 사명감당을 허락하겠다는 뜻이다. "그들은 네게로 돌아 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백성(교회)들이 예레미야가 지도하는 대로 돌아와야 함은 마땅한 일이나 그가 낙심하여 하나님께 항변하거나 변심하여 백성(교회)의 수준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다. 진리를 따라 순종한다는 종들에게 있어서 '협상'은 쑥물이요 사망이다.


회개를 독촉받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권고와 책망을 통해 크게 깨닫고 각성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체질이 연약함을 아시므로 사명자가 말씀 받고도 흔들려 혹 약해졌을지라도 다시금 깨우치며 일으켜 주신다. 시편 145:14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 20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속하리라 』


흔들렸던 종에게 예레미야 1:18절의 말씀을 기억시켜 주시는 사랑이다. 선지자는 잠시 약해졌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굳세게 붙드시며 원수라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과 악한 자, 무서운 자라도 그를 범하지 못할 것을 약속해 주셨다. 유대인의 핍박을 근절시키겠다 하심도 아니요, 난관을 제거해 주겠다 하신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즉 고난 받는 선지자와 동행해주심으로써 그의 예언 사역을 승리로 이끌어 주신다는 의미이다(새일 성가 14장 ♬ 내가 따라 갈 때에 주님 붙드시도다 주의 손에 붙들린 내가 승리하리라...). 이는 고통을 이기고 나아가는 종에게 왕권을 주시기 위한 모략적 사랑이다. 예레미야는 이제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26:14~15절을 보면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여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적그리스도의 무리와 대적하여 싸울 144,000명이 되려면 하나님이 나서시어 친히 인(印)을 쳐 주시고 담대함을 주셔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서 자신의 어깨와 목에 들어간 힘을 빼고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시편 55:22) 하신 말씀을 의지하여 매일 새벽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님(시편 68:19) 앞에 무릎 꿇자! 내 모든 뜻과 정성을 다 바치고, 내 몸과 마음과 시간을 내어드리자! 기계로만 쓰시옵소서.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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