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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와 결정론(예정론)
서 론
많은 철학의 대가들이 자유의지와 결정론을 논했습니다. 이 사람 말을 들어보면 그말이 맞는 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어보면 그 말 또한 맞는 것 같기만한 것이 바로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관한 대립입니다. 이제 어리석은 인간들의 변론에 종지부를 찍으려 합니다. 사탄은 오늘도 인간을 속이고 있습니다. 철학에는 일평생을 바쳐도 항구불변한 진리의 답은 나오질 않습니다. 잘 뜯어보면 내가 너보다 잘났다는 인간 교만의 대립역사임을 잘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철학계의 생리입니다.
물론 철학이 인간의 지력을 발달시켜 물질계의 발전을 보게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오늘도 철학과 문화와 거짓 종교에 인간을 묶어 두고 참 생명을 주는 영적인 진리(성경)로 다가갈 수 없도록 보이지 않게 조종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화감동이 임하사 철학으로 역사하는 사탄의 남은 속박을 벗어버리고 더욱 참 자유의 경지로 나아가기를 소망하면서 다음 말씀들을 상고합니다.
성경본문상고
• 창세기 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2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한 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아비멜렉은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하며 자기의 의로움을 강조하였으나 그를 막아 범죄치 않게 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다. 취해 갔으면 충분히 동침할 수 있었음에도 그 밤에 동침치 않고 자다가 그 꿈에 여호와의 음성을 들은 것은 그가 한 일이 아니고 오직 아브라함의 하나님 되시는 여호와의 주권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여전히 시행되는 것처럼 보이나 이면에 자유의지를 초월해있는 예정론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아비멜렉의 온전한 마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행하셨으므로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력해지지 않는다.
자유의지는 인간세계의 일이고 예정은 하늘의 섭리이므로 이둘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양립하고 있는 것이다. 고유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선후문제를 따질 때에는 당연히 창조주의 예정이 피조물의 자유의지를 웃돌고 있음을 알게 되나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영적 교류와 섭리속에서 만들어져 가는 역사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만일 예정이 단순 기계적이라면, 하나님은 가룟 유다가 "주님 내가 아니면 당신은 십자가에 달릴 수 없었으니 나에게도 내 역할에 대한 상급을 주시오" 했을 때 머리를 긁적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의 항변에 머리를 긁적이실 일을 하실 것 같은가? (가당치도 않은 상상이지만) 만일 그분이 가룟 유다가 없을 때만 설교하셨다거나 유다가 구원받을까봐 노심초사 걱정하신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유다의 항변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유다와 모든 제자에게 동일한 생명의 말씀을 주셨고, 동일한 이적을 베푸셨다.
• 요한복음 19:10∼11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다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빌라도는 철저히 자유의지의 범위에서 사고하며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럴만도 한 것이 실제로 그는 세상에서 놓아줄 권세도 풀어줄 권세도 갖고 있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자유의지 이면에 그보다 한 수 앞서는 절대자의 경륜과 예정이 이미 시행되고 있음을 알게 준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다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하신 말씀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요한복음 18:1~13절과 마태복음 26:45~56절의 내용도 이를 잘 지지해준다.
유다도 자기의 자유의지로 예수를 팔며, 베드로도 자유의지로 검을 뽑아 군인의 귀를 내리쳤고 자유의지로 주님을 부인했다는 것은 일반인들도 인정하는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 모든 일을 앞질러 알고 계셨으며, 잡히시던 그날에도 통일교에서 말하듯 의롭지만 힘이 없어 끌려간 것이 아니라 (그래서 그 주님의 억울한 심정을 문선명이나 정명석이 풀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이렇게 예비된(예비하신) 길에 자신을 기쁘게 내어주고 계셨던 것이다(요한복음 10:17~18). 예수께 있어서는 모든 것이 성경대로 잘 되어만 가고 있었다(마태복음 26:24, 26:51~54, 요한복음 18:4,9,11).
예수의 이것이야 말로 참 자유 아닌가? 얼마나 자유로운가? 모든 이가 피하려는 죽음을 그분은 당당하기 자기 의지로 걸어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지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각자가 하나님께 불의하다고 고소할 수 없는 만큼의 완전한 선물로 받은 인생의 영역에서 행해진다. 그러나 영역 설정 자체는 주님의 주권 안에서 되므로 인간은 받은 범위내에서만 자유롭게 행동할 것이지 범위 밖을 간섭하여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간섭해본들 하시는 일 중에는 그른 것이라곤 없이다. 인간은 자기의 자유의지로 주님의 예정 속에 준비된 무대에 스스로 찾아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유다는 나머지 11 제자와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설교를 듣던 수제자이다. 그러나 자기의 자유의지를 (욕심에 이끌려) 백분 악하게 사용할 때 마귀는 그를 잡아다가 주님을 팔도록 예비된 성경의 악역에 그를 앉혀 놓았던 것이다. 자유의지를 하나님을 순종하는 데 사용하는 종을 마귀는 잡아갈 수 없게 되어 있으니 모든 것은 합법적인 게임이다.
• 예레미야 25:9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 .... 예레미야 27:6∼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부리게 하였나니 열방이 그와 그 아들과 손자를 섬기리라 그의 땅의 기한이 이르면 여러 나라와 큰 왕이 그로 자기를 섬기게 하리라마는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라"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악한 종, 영웅호걸들도 그 눈이 가리워진 채 오롯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성경역사에 쓰임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느부갓네살은 자기의 자유의지대로 활동하며 자기의 정복욕과 정치야욕을 위하여 활동하지만 그를 초월해계시는 절대 주권자의 작정 안에서 철저히 쓰임받고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영웅호걸은 세상에서 임시 자기 분복을 받지만, 다 누린 후에는 지옥 가 받는 고통 속에서 평생 이를 갈며 후회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 앞에 영생 얻을 자들이 이 땅에서 행한 실수에 대한 징계를 받을 때 그들을 때리는 몽둥이 혹은 그들을 세탁하는 악의 수세미 정도로 활용될 뿐임을 성경을 통해 깨닫게 된다(일례로, 사울을 들자면 다윗을 괴롭혀 다윗을 기도하게 만들고 다윗의 입에서 시편이 흘러나오게 하는데 쓰임 받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악신에 눌려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 역대상 5:25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긴지라 26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이 앗수르 왕 불의 마음을 일으키시며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마음을 일으키시매 곧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사로잡아 할라와 하볼과 하라와 고산 하숫가에 옮긴지라 저희가 오늘날까지 거기 있으니라"
'불'도 '디글랏 빌레셀'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정치꾼들이나 여전히 자기가 믿지도 않는 분의 충신으로 일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다 나라가 하나님 앞에 범죄했다는 사실이지 대 제국 앗수르 왕이 출동한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보다는 강대국을 믿기에 여러 가지 조약과 협약을 그들과 더불어 맺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만 바라보고 새 힘 받고 돌진하는 신앙의 용사들임을 한 시라도 잊지 말자!
• 로마서 9: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이 한 말씀으로 모든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뛰어넘은 하나님의 선하신 절대주권 속에서 흘러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무릎꿇어야 할 것이다. 악한 종이 자기의 영토록 확장하기 위하여 세상을 휩쓰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실행시키고 계심을 볼 때, 성도들의 삶에서야 더더욱 하나님의 모략과 예지 예정이 작용하고 있을 것은 분명하다. 예정론이라는 것이 감리교가 공박하며 장로교가 답변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이해되어져서는 안 된다. 예정론은 말씀들을 읽고 묵상할 때 느껴지는 하니님의 절대권력과 초월성 앞에 무릎꿇는 일!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 예레미야 18:6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7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8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자유의지)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9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자유의지)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예정은 하나님의 예정이니 인간은 그분의 영역을 저울질하지 말고 제 일이나 잘하면 된다. 위의 말씀에서도 인간의 자유의지가 전혀 무력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음 말씀은 이를 더욱 확실히 증명해준다.
예레미야 26:2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고하되 한 말도 감하지 말라 3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려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4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법을 행치 아니하며 5 내가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낸 나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이미 듣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6 내가 이 집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줏 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혹시', '그리하면',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이라는 표현들은 무얼 말해 주는가? 당신의 예정은 굳게 서 있지만, 그 시나리오 안에서 살고 죽는 문제는 각자가 책임 질 일이라는 뜻 아닌가? 인간이 자기가 당하는 벌을 가지고 창조주께 따질 수 없음과, 자기가 받은 상으로 인하여 타인에게 고소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은 뿌린 대로 거두기 때문이다. 살고 죽는 길도 모르는 인간에게 좌향하면 죽고 우향하면 산다고 하나님이 알려주시는데, 좌향한 존재가 그 결과에 대해서 누구에게 따질 수 있단 말인가?
• 에스겔 29:19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애굽 땅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붙이리니 그가 그 무리를 옮겨가며 물건을 노략하며 빼앗아 갈 것이라 이것이 그 군대의 보수가 되리라 20 그들의 수고는 나를 위하여 함인즉 그 보수로 내가 애굽 땅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던 나라이니 하나님을 뜻을 위해 애굽을 침공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위에서 작정하시고 바벨론을 당신의 작정 안에서 적절히 들어 쓰고 계신다는 점을 보아야 한다. 종말에도 미국(애굽)이 강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종 러시아(바베론)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지고 말 것임을 그 누가 알고 있을까?
만들 수도, 부술 수도 있으신 그분이 길이 참으신다면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생명을 얻는 데에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우리를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앞으로 달려나가는 데에만 자유의지는 사용돼야할 것이다. 멸망받을 자유의지는 가라! 성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예정 속에 응답하여 녹아져 내리는 데 쓰이는 순종일 때만 가치 있음을 깨닫고 복받자.
천지의 대주재시요 운행자이신 하나님은 찬미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나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이요, 만대를 명정하신 그분의 계획대로이다(이사야 43:13). 아멘!
결 론
예정론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작은 머리로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신학적 논쟁의 대상이 아닐 것입니다. 자유의지 역시 인간의 지력을 자랑하는 수준에서 이해되어져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런 논쟁은 세상 사람들의 몫에 맡기고 우리는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지으심을 받았다는 진리(계시록 4:11)와 주님은 빛도 어둠도, 평안도 환난도 창조하시는 분(이사야 45:7)이라는 것을 인정하여 하나님의 절대 예정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예정이란 우리가 따질만한 구석이 절대 없는 완전한 사랑입니다.
예정론이나 미정론에 관한 어떤 신학적 변론보다도
"내가 만대를 명정하였노라"(이사야 41:4)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이사야 43:13) 하신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데만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쓸 수 있어야 겠습니다. 다음 말씀들은 근원(알파)이시며 결론(오메가)이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드러내주는 구절들입니다.
- 십자가 피와 성령의 임재와 다시 오실 재림주의 역사가 전혀 전파되지 않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신자들을 위해 공동번역 성구도 함게 넣었습니다 -
• 예레미야 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 하니이다"
(공동번역) "23 야훼께서도 아시다시피, 사람이 산다는 것이 제 마음대로 됩니까? 사람이 한 발짝인들 제 힘으로 내디딜 수 있습니까?"
• 잠언 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공동번역) "계획은 사람이 세우고 결정은 야훼께서 하신다."
• 잠언 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공동번역) "사람은 속으로 제 할 일을 계획해도 그것을 하나하나 이루시는 분은 야훼시다."
• 잠언 16: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공동번역) "33 주사위는 사람이, 결정은 야훼께서."
• 잠언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서리라"
(공동번역) "21 사람이 많은 계획을 세워도 성사는 야훼의 뜻에 달렸다."
• 잠언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공동번역) "사람이 하는 일은 야훼께 달렸으니 사람이 어찌 스스로 이루랴."
• 잠언 21: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공동번역) "전시에 대비해서 병마를 준비하더라도 승리는 야훼께 달려 있다."
• 잠언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공동번역)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하루 사이에 무슨 변이 생길지 모른다."
• 잠언 29:26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공동번역) "많은 사람이 통치자의 마음을 사려 하지만 판결은 야훼께서 내리신다."
• 시편 3: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공동번역) "야훼여, 승리는 당신께 있사오니 당신 백성에게 복을 내리소서."
• 야고보 4:12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공동번역) "그러나 율법을 정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이기에 이웃을 심판한단 말입니까? 13 "오늘이나 내일쯤 아무 아무 도시로 가서 일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어 보겠다" 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합니다. 14 당신들은 내일 당신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15 그러므로 당신들은 "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 보겠다" 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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